[동아일보 중편릴레이 연재/전경린]

  • 입력 1998년 4월 30일 20시 08분


《뚜렷이 다른 빛으로 반짝이며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30대의 세 여성작가 공지영 전경린 은희경. 그녀들이 어떤 그림을 완성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각기 다른 붓과 물감을 든 세 사람은 1일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를 시작으로 올해말까지 서로 바통을 주고 받으며 동아일보 연재소설을 이어나간다. 각자에게 부여된 시간은 두달반 남짓. 출발선에 선 세 사람으로부터 연재 구상을 들어본다.》

전경린(36)은 지금 ‘출장 중’이다. 지난 겨울 남편과 열한 살 일곱 살 남매를 고향 경남 창원에 남겨두고 일산 신도시의 한 아파트로 홀로 이사했다. “이해해줘. 2년만 열심히 소설 쓰다 올게…” 집 떠나며 그가 남긴 약속이었다.

“작가의 삶과 상상력이 별개일 수 없다고 봐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움직이고 그런 변화속에서 작품이 태어나는 거죠. 십여년이 넘도록 열심히 주부 노릇을 했지만 그 생활만으로는 상상력의 한계에 부닥쳤고 그래서 제 인생의 흐름을 한 번 바꾸어 보기로 한 겁니다.”

첫 신문연재소설인 이번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출장’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그린다. 남편의 실직 이후 어느날 느닷없이 증발해 버린 아내. 그 아내를 찾아 나서는 남편. 아내의 자취,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는 추적자인 남편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가족의 해체나 중산층 아내의 정체성에 관한 겁니다. 중산층 주부는 어찌보면 남편의 월급과 자신의 노동력을 맞바꾸는 일종의 계약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남편이 실직해서 더 이상 계약이 성립되지 못할 때 견고해 보이던 ‘결혼’이라는 구조를 깨고 달아나버리는 아내. 그를 도덕적으로 지탄하는 것만이 과연 능사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을 끼고 앉아 조기교육에 열을 내고 옷도 손수 지어 입히고 온갖 요리책을 섭렵했던 주부, 전경린. 그러나 그 맹렬한 생활에의 몰두로도 ‘나는 출구 없는 공간에 갇혀있다’는 황폐감을 달랠 수는 없었다.

“남편과 아내라는 존재 자체가 상대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떤 역할을 해야한다고 틀 지우는 구조에 억압이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다양한 모습의 결혼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오래 사랑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아닐는지요.”

첫 창작집 ‘염소를 모는 여자’ 이래 전경린은 생의 물줄기를 바꾸는 존재의 결단, ‘절벽 앞에서 뒷걸음치지 않고 뛰어내리는’ 강인한 의지를 끝없이 표출해왔다. 물결을 타지 않고 거스르려는 강렬한 ‘반전’의 욕망은 일상에 길들여진 독자들을 통쾌하게 내려치지만 가끔은 진저리치게도 만든다.

“지금껏 속에서 아우성치는 대로 쏟아내 왔어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호흡을 고르려고 합니다. 삶의 우수를 아는 사람의 이야기, 그래서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는 사람들을 그려내고 싶습니다.”

전경린의 소설은 7월 중순경부터 연재된다.

▼ 약력 ▼

△62년 경남 함안 출생

△경남대 독문과 졸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부문 당선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한국일보문학상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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