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사 간섭 싫다』 독립으로 맞선 연주가 부부

  • 입력 1998년 1월 20일 20시 12분


“음반사 눈치 보기 끔찍해. 우리가 직접 해보자.” 한쌍의 용감한 연주가 부부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미국의 첼리스트 데이비드 핑클과 대만출신 피아니스트인 그의 아내 우 한. 두 사람이 설립한 레코드사 ‘아티스트레드’는 벌써 네 장의 CD를 내놓았고 다섯번째를 기획중이다. 무엇이 ‘연주가 사장님’을 만들었을까. 괜찮은 음반사들의 녹음제의가 이어질 때 연주가는 ‘떴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 연주자는 곧 성가신 음반사 담당자들과 마주쳐야 한다. “그 작품은 시장성이 없어요. 다른 작품을 녹음해야 해요.” “이틀 이내에 녹음을 끝내야 합니다. 더 시간을 낼 수 없어요.” 연주자의 자존심이 깡그리 무시되는 순간이다. 남편은 일류실내악단인 에머슨 현악 사중주단의 첼리스트, 부인은 말버러 음악축제와 아스펜 축제 등 가는 곳마다 환영받는 1급 피아니스트이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쳐버린 부부는 자기들 손으로 활로를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녹음 엔지니어를 찾았다. 중국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다홍 시투가 기꺼이 녹음을 맡아주었다. 그는 문화혁명 시절 ‘전축’이 고장날 때마다 혼자힘으로 수리하다 보니 음향학의 전문가가 된 인물. 다음으로 필요했던 것은 음반을 복제할 시설. 성능좋은 마이크와 디지털 녹음기 등에 1만5천달러가 들었다. ‘회사’를 하나 만드는 것이니까 그정도 투자야 기꺼이 감수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작업은 ‘판매망’.부부는‘첨단’의길을 택했다. 인터넷에 ‘아티스트레드’의 사이트를 열었다(www.artist1ed.com). 여기에 부부의 경력, 각 음반에 대한 음향설명, 제작에 얽힌 뒷얘기, 두 사람의 공연계획을 상세히 담았다. 물론 사이트를 통해 음반을 주문하고 전자결제를 거치면 음반이 배달된다. 인터넷 주문을 통해 배달돼온 부부의 CD.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소나타 F장조,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 등이 실렸다. 귀에 익은 프랑크쪽을 들어본다. 먼저 녹음이 기막히다. 첼로의 풍요한 음색은 바로 눈앞에 악기를 세워놓은 듯하다. 탄탄한 피아노의 저음도 일품. 음반에 실린 연주가 더욱 감명깊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편집기의 ‘칼날’을 최소화했기 때문. 같은 작품도 연주할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여러번 거듭된 연주를 싹둑싹둑 잘라 다시 연결한다면 내면의 기복에 따라 고동치는 악곡의 숨은 리듬이 제대로 전해질 리 없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잘할 때까지 앙코르’를 거듭한 두 사람의 앙상블은 기막힌 호흡을 보인다. 프랑크의 곡이 끝난 뒤 낯선 작품 하나가 귀를 붙든다. 에드윈 핑켈 작곡인 ‘버드나무여 나를 위해 울어주오’ 변주곡. 작곡자는 바로 첼리스트의 아버지다. 자기자신의 음반회사를 갖는다는 것은 이런 재미까지를 노린 것이 아닐까.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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