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싶다/삼척동굴]석동일/억겁의 신비 카메라에

  • 입력 1997년 12월 4일 07시 44분


한국산악회 산악회원으로 오직 히말라야 등반만을 꿈꾸던 내가 동굴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85년 충북 단양군에 있는 노동굴이었다. 처음 약간의 긴장말고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나는 막상 굴에 들어서자 가슴이 막 뛰기 시작했다. 거대한 암실과도 같은 칠흑같은 암흑과 정적이 나를 압도했다. 난 태초 이래의 순결한 모습들을 때로는 아연실색하고 망연자실하며 때로는 깊은 심호흡을 하면서 카메라에 조심조심 담았다. 그 당시 나는 내 발로 걷고 내 몸으로 기어 동굴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동굴의 어떤 신비한 힘에 의해 빨려들어간 것만 같았다. 그후 내 영혼은 언제나 동굴을 찾았다. 가슴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뾰족한 종유석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쓰고 헤드랜턴과 보조랜턴을 차고 등반장비와 식량을 짊어지고 그 숱한 카메라 장비를 욕심껏 껴안고 나는 동굴을 기어다녔다. 카메라 작업에서의 어려움은 동굴이 내게 주는 억겁의 신비, 그것과의 어떤 교감에서 느끼는 외경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5억년전 캄브리아후기 유존동물이라는 갈르와벌레와 같은 희귀동물을 동굴속에서 만나기도 하고 종유석으로 코팅된 곰의 뼈를 발견하기도 하면서 나는 동굴이 가진 것이 단순한 종유석의 조화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동굴의 아름다움에 철저히 반해버렸고 태초 이래 순결을 더듬는 나의 일에 늘 가슴 설레었다. 그러다 한때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다. 알몸을 드러낸 동굴이 결국 어떤 길을 걷게 되는지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나는 어쩌면 어둠속에 가려진 동굴의 베일을 들추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치한에 지나지 않았는지 회의했다. 동굴의 신비를 벗겨 뭇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그 신비를 훼손하는 추악한 발톱을 동굴로 유도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오랫동안 번민했다. 동굴의 파괴는 근원의 파괴이며 태초에 대한 모욕이다. 나는 동굴이 꼭꼭 숨어 아예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서 동굴이 발견됐다는 얘기만 들리면 당장 짐을 꾸린다. 발견되는 그 순간부터 오염이 시작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현장에 달려가 원형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나는 동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사진가이기 보다 동굴의 원형을 보존하는데 앞장서는 사진가이고 싶다. 석동일(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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