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들,『엑스트라라도…』방송국 오디션장 북적

  • 입력 1997년 8월 19일 07시 52분


『주인공도 아니면서 간단한 대사를 제대로 못해 「NG(No Good의 줄임말)」를 낼 때가 있습니다. 20명 가량의 스태프가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하게 되죠. 특히 마이크를 들고 서 있는 분에게 가장 미안했습니다』(곽상호·17) 『중1 때 「여명의 눈동자」에서 전쟁중에 죽어서 누워있는 소년역을 했어요.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분장까지 하고 기다렸는데 주인공들 연기장면 촬영이 늦어져 꼬박 하루를 기다렸습니다. 서럽기도 했지만 「쟁쟁한 선배들(채시라 최재성 박상원 등)」을 우러러보면서 「나도 이 다음에는…」하고 입을 앙다물었죠』(조명식·18) 청소년드라마 「스타트」 등에서 조연급과 주연급으로 활동중인 두 사람의 고백이다. TV청소년드라마에 넘치는 발랄하고 푸릇푸릇한 10대 연기자들. 그러나 시청자들의 눈길 한번 못받는 연기자들도 많다. 지나가는 학생1,2는 물론 전화부스에서 통화중인 주인공의 「뒷그림」을 위해 줄을 선 사람, 두세명의 주연들이 대화하는 교실배경을 위해 자리를 지키는 40여명의 학생 등. 이들 조연과 엑스트라들에게는 그러나 「스타탄생」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 「타고난 연기자의 끼를 주체할 수 없어. 난 스타가 될거야」. 이처럼 연기자를 운명적 선택이라고 자기최면을 걸며 연기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중고등학생들이 늘고 있다. 보통 한달에 20만∼40만원의 수업료를 「바쳐 가며」 몇달씩 다닌다. 학교 출석보다 학원 출석을 더 신경쓰면서. 12일 오후 여의도 KBS신관 5층 연습실.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의 오디션을 기다리는 20여명의 스타지망생들이 상기된 얼굴로 모여있다. 대본을 읽다말고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적시는 영란(17). 연기하다말고 머리를 긁적거려 PD의 야단을 맞는 유니(본명 이종현·18). 눈을 찡그리고 입을 씰룩거리며 화난 표정을 연기해보는 서우(17). 이날 오디션은 28일 방송될 「열여덟 스물」편의 촬영을 위해 주연급 연기자 4명을 뽑기 위해 마련된 자리. 그러나 오후4시부터 저녁밥도 잊고서 10시경까지 이어진 연기테스트의 결과는 주인공과 어울려 배구시합을 하는 엑스트라 두명을 선발하는데 그쳤다. 물론 대사는 필요없다. 「널 닮아가는 이유」라는 노래로 가수로 데뷔한 유니도, 「체인지」 「깊은 슬픔」 등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준규도 고배를 마셨다. 물론 이같은 오디션을 통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 지금은 가수로 활동중인 김수근과 MBC 「나」의 주인공인 최강희 등. 최강희는 오디션을 거쳐 수영장에 「첨벙」 뛰어드는 장면 하나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난해 슈퍼탤런트로 뽑힌 이승원과 최근 「스타」의 주역으로 발탁된 권이지 등도 「지나가는 여학생」으로 출연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스타탄생이 「하늘의 별따기」임은 상식. 「신세대보고…」 외에 「스타트」(KBS2) 「나」(MBC) 「감성세대」(EBS) 등의 청소년드라마가 있지만 대부분 아역탤런트 출신의 청소년 연기자들이 주연급으로 출연중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방송활동을 시작해 현재 「스타트」에 출연중인 조명식군(금천고3)은 『수업을 빼먹게 되니까 진도를 맞추기 힘들어 고생』이라고 말한다. 〈김경달기자〉 ▼ 「신세대보고…」제작 KBS 황제연PD ▼ 『연기는 자신감과 끼가 바탕이야』 『손을 엉거주춤 하지말란 말이야』 『대사는 강약 장단이 있어야 되는데 복식호흡도 모르다니!』 오디션 내내 스타지망생들의 「오똑한 코」를 납작하게 만들며 야단을 쳐대는 「아저씨」.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를 3년째 제작중인 KBS TV 황제연PD(40)다. 그는 웬만큼 연기를 잘하는 주연 조연급 연기자 명단을 80여명정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매달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고자 오디션을 갖는다. 『고교생 인턴PD를 제작에 참여시키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의 일상에 밀착해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연기자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최근들어 영상세대답게 상당수 청소년들은 연기력 등 대중문화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데다 「끼」와 개성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어 도움이 된다고. 그러나 가끔 공부는 하기 싫어하면서 방송출연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만으로 방송출연을 조르는 학생들이 있어 곤란을 겪는다고 말한다. 『원래 타고난 기질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연기자 오디션을 오랫동안 하다보니 「연기는 타고 난 게 70%이고 노력이 30%」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나마 공부를 잘하거나 책을 많이 읽은 애들이 대본 암기와 표정연기가 나은 편이라고 덧붙인다. 스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늘 『연기에 목숨을 걸지 말고 레크리에이션처럼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황PD. 영상세대의 「끼 열풍」이 변질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개탄을 잇는다. 『연기학원은 대부분 「수박 겉핥기」식으로 연기를 가르치죠. 한판 승부에 집착하는 대부분의 매니저들은 「키워준다」는 큰소리만 치면서 「잘 난」 10대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황PD는 스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자기확신과 주위의 객관적 평가가 충분히 검증될 때는 물론 연기에 매달려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들어가서 자신의 끼를 맘껏 발산하는 게 훨씬 현명하다』고 충고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