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창작기금」받은 유용주시인, 역경통한 희망 노래

  • 입력 1997년 3월 25일 08시 37분


[권기태 기자] 「격렬한 분노가 나를 키웠다/열꽃 핀 얼굴을 다독이며 눈물 삭이는 깊은 그늘/힘이 있어야 오래 울 수 있으니」(나무·1 정진규선생님께) 창작과비평사 주관 「신동엽 창작기금」의 올해 수혜자로 뽑힌 시인 유용주씨(37)의 삶과 시는 「흙탕물 속의 하늘」 「황무지 위의 꽃」에 비유할 만하다. 그의 십대 이력은 대략 이렇다. 「중학교 1학년을 중퇴한 후 직업병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약값을 위해 전남 보성 「명월각」에 취직, 자기 키보다 조금 작은 자장면 배달통을 들고 하루 1백리를 걸어 다니다. 누나가 「구출」해줘 대전역 앞 중앙시장에서 빵공장 직공, 국수 배달원,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다. 끓는 물에 살갗이 허물어지고 매일 매맞기가 하도 싫어 누나 따라 상경하다. 금은방 직공을 하며 덕수궁 옆 정동제일교회 야학에 나가다. 거기서 칠판 위에 씌어진 윤동주의 「서시」를 처음 보고 부르르 떨다. 16개월 만에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돌파하다」. 이후 그는 시인 정진규씨를 만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시베리아 원목 같다』는 한마디를 듣고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일거리를 찾아 전전했다. 음식점으론 한식 일식 중식 양식집을, 막노동판에 가선 조적(벽돌공) 배관설비 내장목수 형틀목공을, 거리에 나가선 우유배달 신문팔이 구두닦이를 다 거쳤다. 돈 부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닥치는대로 책을 사보며 시를 써 대학노트 10권을 빽빽히 채워왔다. 그러나 제도권 시문단은 엄혹했다. 신춘문예, 계간지 투고란 모두 문을 닫았다. 결국 제대로 된 등단 없이 지금은 절판된 시집 「오늘의 운세」를 90년 펴내고 서울을 떠나 충남 서산으로 내려가야 했다. 좌절해서 동맥을 끊은 것도 이때였다. 이 절망의 절정에서 희망이 트이기 시작했다. 얼굴도 모르는 신경림 시인이 계간지에서 그를 격찬했고 창작과 비평사에서 원고청탁을 해왔다. 시집 「가장 가벼운 짐」이 나온후 시인 김지하씨가 『기필코 여의주를 물라』며 등을 두드리고 문학평론가 황현산 임우기씨가 절찬, 솔출판사에서 「크나큰 침묵」을 펴내게 됐다. 동맥을 끊은 무렵 그에게 다가온 대졸 엘리트 출신의 아내(교사)가 든든한 힘이 돼주었다. 그는 지금 농사를 지으려 한다. 곡절 많은 그에게 시는 여전히 「시아버지의 도폿자락」처럼 외경스럽다. 「폐차 직전의 고물차 한대/밤새 추억의 쓰레기더미 넘치게 수거하여/안간힘을 쓰고 고갯마루를 기어오른다(…)낮은 포복으로 간신히 냉장고 문을 연다/시,시아버지 도폿자락,시다앗…/서늘한 바람과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혼신의 힘으로 부여잡는다/투둑 코피가 터진다」(한소식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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