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십시오. 여기서부터 30대입니다」. 새해에 아주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30대의 문을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또는 담담하게 들어설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맞았던 30대를 이제 떠나려는 이도 있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 도로표지판은 그렇게 말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스물아홉, 서른아홉인 그들의 세밑은 어떤 빛깔을 띠고 있을까.
▼ 「서른 문턱」의 辯
「高眞夏기자」 쌍용정보통신 신입사원 함석호씨(29). 꽉 찬 나이에 아슬아슬하게 원하던 회사에 취업, 30대를 힘차게 출발한다.
『서른이란 나이가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아요.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돼 바랄 게 없어요』
함씨는 대학졸업 후 2년간 스포츠잡지를 만들다 컴퓨터 그래픽에 눈을 떴다. 1년 남짓 독학하면서 이력서를 수십장 쓴 끝에야 제자리를 찾았다.
『컴퓨터그래픽은 무궁무진한 세계라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데 동기들보다 적은 나이도 아니죠. 우선은 일에만 몰두할 작정입니다』
스물아홉의 「노처녀」 우성란씨(대한불교청년회 총무부장).『나는 나이 생각 별로 안하는데 주위에서 자꾸 그래요. 서른에 혼자 뭐할 거냐, 결혼은 영영 안 할 거냐…』 우씨는 87년 상고를 졸업하던 해 겪은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20대 전반을 방황속에 보냈다.육순의 어머니는 막내딸 결혼은 거의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우씨는 『30대를 부정적인 의미의 기성세대로만 여겼는데 잘못된 선입견인 것 같다』며 『20대에 배운 것을 30대에 실천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결혼 3년째. 올해 아들 쌍둥이를 얻은 주부 김수경씨(서울 당산동)는 『서른 고개 앞에 서니 한결 여유롭고 성숙한 느낌』이라고 말한다. 가죽코트가 어울리는 김씨에게서 「푹 퍼진 아줌마」의 모습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주1회 문화센터에서 문장수업을 받으며 시인의 꿈을 다진다. 아침에는 수영강습에도 빠지지 않는다. 김씨는 『30대에는 뭔가 완성하겠다는 의욕이 솟는다』며 『문단 등단 꿈을 이루겠다』고 했다.
프로야구 한화의 장종훈(29)은 『요즘 체력훈련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절감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그만 비켜가지는 않은 것이다. 그는 연습생으로 출발, 입단 10년째인 올해 억대 연봉선수가 됐다. 그러나 올시즌은 죽을 쒔다. 연초 전지훈련중 아버님을 여의었고 지난달에 결혼했다. 『가장이 됐으니 책임감도 무겁고 빨리 안정을 찾아야겠어요. 타자 정년은 35세라지만 몸관리만 잘하면 장수할 수 있습니다. 내년에는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 「마흔 문턱」의 辯
「尹景恩기자」 『마흔이라고 해서 특별히 위기감은 없어요. 다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청춘시절에는 당연하다고 여기던 열정이 식을까봐 그게 걱정이죠』
연극배우 김갑수씨(39)에게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발목을 붙들지 못할 것이다. 연륜이 쌓이고 연기가 무르익고…. 40대에 오히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연기의 꽃을 피우리라 생각하고 있다.
후배들에게서 「선생님」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나이를 꽤 먹었구나」싶은 생각이 든다. 일부러 청바지도 차려 입고 「젊은 친구들」과 얘기도 될수록 많이 한다. 그래야 「생각이라도 나이를 덜먹게 되겠지」하는 생각에서다. 김씨는 『잘봐주면 30대 초반으로까지 보는 사람도 있다』며 싱긋 웃는다.
김씨는 「마흔이면 이제 스스로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는 나이」라는 옛 사람들의 경구(警句)를 되새기며 열심히 뛰고 있다.
새해에 마흔이 되는 주부 김경자씨(서울 서초동). 언젠가부터 거울보는 게 별로 달갑지 않다. 화장 안한 맨얼굴로도 당당하게 외출하던 게 언제였나. 이제는 「얼굴을 문지르고 두들기는」작업을 안하고 밖에 나서면 왠지 초라해 보인다.
『아이 둘 낳아 키우면서 30대를 너무 바쁘고 힘겹게 지나왔나 봐요. 「마흔쯤 되면 좀 편해지겠지」했는데 아이들 공부 챙기랴, 남편 건강 신경쓰랴, 걱정거리만 늘어나네요』
이제 눈앞에 마흔고개가 있다. 그러나 아직 늦지는 않은 것 같다. 수영 볼링 영어회화. 그동안 「내년에 하지, 다음에 하지」하며 접어뒀던 일들을 정말 새해에는 시작해 볼 참이다. 가족에게 더 충실하자는 다짐만큼이나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은 욕심도 부푸는 풍선처럼 커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