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19세기 유럽, 짝퉁과 일본에 열광하다

동아일보 입력 2011-12-03 03:00수정 2011-12-0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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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이지은 지음/381쪽·2만4500원·지안
파리시장 오스만이 수십 년에 걸친 도시계획을 통해 현대적 도시로 개조한 파리의 거리. 장베로가 그린 그림을 보면 현재의 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안 제공(위), 19세기 남자들의 은밀한 애첩문화를 담담하게 그린 마네의 ‘올랭피아’.(아래 왼쪽), ‘일본의 향기를 담았다’는 19세기 프랑스의 향수 광고.(아래오른쪽)
프랑스 파리 서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지베르니에 있는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집. 정작 그곳에 모네의 원작은 전시돼 있지 않다. 그 대신 침실 식당은 물론이고 복도까지 19세기 일본 우키요에(浮世繪) 화가들의 판화만 수백 점이 걸려 있다. 이국땅에서 만나는 ‘왜색문화’에 한국 관광객들은 눈살을 찌푸리지만 일본 관광객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19세기 유럽에 불어 닥친 ‘자포니즘(Japonisme)’은 반 고흐, 툴루즈 로트레크 등 인상파 화가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우키요에가 그려진 둥그런 일본식 부채는 당시 유럽 여성들에게 최고의 패션 소품이었다. 웬만한 부르주아 가정의 거실에는 일본산 칠기 가구, 도자기, 탈 등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자포니즘’은 몇몇 마니아 예술가의 호사를 넘어 거대한 사회적, 문화적 트렌드였다.

저자는 “일본은 유럽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나라였기에 가장 동경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며 “19세기 일본문화에 대한 열광의 근저에는 미지의 신세계를 향한 부르주아들의 두근거리는 설렘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프랑스 크리스티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프랑스에서 앤티크 감정사 자격증을 취득한 저자는 19세기 도시, 기차, 가구, 레스토랑, 여자, 만국박람회 등을 키워드로 부르주아들의 일상사를 소개한다. 19세기 신문, 백화점 카탈로그 등 프랑스국립박물관 고문서실 등에서 수집한 500여 개의 도판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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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풍이 강타한 19세기, 당시 부르주아들이 열광하던 가구들은 ‘짝퉁’이었다. 거실에는 장중한 느낌의 루이 14세식 가구를 들여놓고 살롱에는 우아한 꽃 장식이 있는 루이 16세식 가구를 채워 넣었다. 각 시대의 스타일을 구분할 줄 아는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럭셔리한 복제품으로 거실을 꾸미는 것이 19세기판 ‘부자의 취향’이었다. 현대인들이 명품 짝퉁을 소비하는 심리와 연결된다.

19세기 사람들에게 기차역은 모던한 예배당 또는 신전이었다. 기차는 외국여행 바캉스문화를 만들어냈고 주말 근교여행이라는 신풍속도 낳았다. 저자는 “인상파 화가들이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났다 한들 기차가 없었다면 결코 교외의 자연의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의 풍경을 그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네, 르누아르, 드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메리 로랑 같은 아름다운 여인들은 당대 권력자나 재산가들의 정부(情婦)였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백화점, 카페, 뮤직홀 등에서 일하며 사교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이 여인들은 ‘19세기판 할리우드 스타’로 부를 만하다.

이들은 ‘반쪽짜리 사교인’이라는 뜻인 ‘드미 몽뎅(demi mondain)’으로 불렸다.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사교계에 들어가지 못했던 18세기와 비교해 돈만 있으면 사교인으로 행세할 수 있는 ‘19세기의 신풍조’를 비꼬아 부르는 말이었다.

저자는 “19세기는 ‘오늘’을 품고 있는 시대”라며 “물질적 발명품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사는 풍습에서부터 미모를 무기로 한 ‘스폰서’ 연예인까지 19세기의 발명품들은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고 말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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