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21세기 흥례문’

  • 입력 2001년 10월 25일 18시 15분


지금 파리에 가면 노트르담 성당을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다. 복원 공사 때문에 성당 뒤편이 그물망과 비계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전후좌우 어디에서 봐도 완벽한 건물로 유명한데 한동안은 뒷맵시를 감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노트르담 성당의 복원공사는 무려 10년간 계속된다. 길어 보이지만 이 성당을 짓는 데 1163년부터 1345년까지 200년 가까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결코 긴 세월이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데 시간만 충분히 쏟는 건 아니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고증을 통해 옛 모습을 완벽히 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노트르담 종탑에 쓰인 사암(沙巖)이 어느 지방의 어느 산에서 캐온 것으로 확인되면 반드시 그곳의 돌을 가져다 사용한다. 다른 재료를 사용하면 완벽한 복원이 아니고, 같은 종류의 돌이라도 산지가 다른 것을 섞어 사용하면 돌들이 ‘싸워’ 건물 수명이 짧아지거나 빨리 뒤틀어지기 때문이라 한다. 프랑스 문화재전문가들은 복원공사는 노후한 건물을 손보는 정도가 아니라 옛날 건물을 옛날 재료로 다시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오늘 낙성식을 갖고 85년 만에 새 모습을 선보이는 경복궁의 흥례문도 정성어린 복원작업의 산물이다. 96년부터 5년 동안 233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공사가 계속됐으니 기간이나 투입된 돈이 만만치 않다. 총지휘자격인 대목수 신응수씨를 비롯해 연인원 2만9093명이 공사에 참여해 땀을 흘렸다. 신씨는 “1000년이 지나도 손가락질 받지 않을 궁궐을 짓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96년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 자리에 원래의 임자가 들어섰다는 의미도 크다.

▷흥례문을 비롯해 2009년까지 무려 20년간 계속되는 경복궁 복원 사업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21세기 새 궁궐’ 건축이다. 전각 기둥이나 들보 등 굵은 목재들은 국내에서 구할 수가 없어 북미산 육송 등 수입산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프랑스인들이 고색창연한 루브르박물관에 자신 있게 초현대식 유리 피라미드를 들여앉히듯 문화란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야 우리 것이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방형남논설위원>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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