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신용평가 정부가 하나

  • 입력 2001년 3월 1일 18시 29분


참으로 개입하고 간섭하기 좋아하는 정부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민간이 선택할 일을 정부당국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발표하는 일이 잦아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번에는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일에까지 정부가 간섭하고 있다는 보도다. 외환위기라는 호된 시련을 겪고도 정부가 아직도 관치(官治)의 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보통문제가 아니다.

신용평가란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발행하는 기업의 속사정을 전문기관이 평가해 투자자들에게 길잡이를 해주는 일이다. 따라서 이 평가가 객관적이고 정확하지 않을 경우 국내외 투자자들은 자칫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신용평가기관은 존재가치를 잃게 되고 투자자들은 한국시장에 등을 돌릴 것이다. 신용평가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객관적이고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는 현대건설 등 일부 특정기업에 대한 신용평가 과정에서 등급을 상향조정하라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개입이 아니라 의견제시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금융기관이 만든 평가회사에 대해 금융감독권한을 갖고 있는 주체가 ‘권세를 실어 의견 제시’를 한다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민간기관이 어디 있겠는가.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들의 내부적 반발이 금감원의 개입을 증명하고 있는데도 당국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정부가 직간접으로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는 현대계열사를 평가할 때 당국으로서는 회사의 자금사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평가등급이 상향 조정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최근의 자금시장이 증명하고 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까지 나서서 평가기관에 불만을 토로한 후 해당 업체의 기업어음이 투자적격등급으로 상향 조정됐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신용평가에서 공신력은 생명과 같다. 신뢰가 쌓이기 위해서 전제되는 것은 신용평가기관이 기업 상황을 자율적으로 분석 평가할 수 있는 분위기의 보장이다. 평가대상 기업이나 정부가 인내심을 잃고 신용평가기관들의 자율적 판단에 간섭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가 진정으로 금융개혁을 원한다면 가장 우선해서 할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용평가기관들의 독립적 활동을 보장하는 일이다. 우리 금융시장의 신뢰를 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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