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준상/李교육 발언 감상법

  • 입력 2001년 1월 14일 18시 48분


금년에도 교실 풍경은 이전과 별로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 학습붕괴 역시 피할 길이 없을 성싶다. 대학입시를 위한 조기입시교육이 휩쓸고 있고 100만원대를 호가하는 맞춤형 조기영어 강습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들이 바로 그 조짐이다.

실제로 서울 강남 어느 중학교 1학년생 전체의 평균 토플점수는 무려 580점을 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원 입시생들의 평균 토플점수보다도 높은 이들 학생을 앞에 놓고 진땀 흘리고 있는 영어교사들을 생각하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교육현실이 이럴진대 그들을 그저 다그치고 나무란다고 해서, 교실에서 졸고 있는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공부할 것 같지는 않다.

금년부터는 학생들의 수준별 교육과정을 강조하는 새로운 7차 교육과정이 학급마다 도입된다. 이 프로그램은 원래 교육부의 야심찬 계획이다. 이것의 본격적 실천을 앞두고 교사를 향해 열심히 하라는 주문을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우리 교사들에게는 학원교사가 보여주고 있는 정도의 탐구력도 발견하기 힘들다고 이돈희 교육부장관이 교사들에게 면박을 주었다.

이에 대해 교원단체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준다는 약속을 해도 시원치 않을 장관이 오히려 교사들의 가르치려는 의욕마저 꺾어놓고 있다고 빨끈한 것이다. 이장관이 그런 의도로 말한 것 같지는 않고 사실이 아닌 것을 지어낸 것도 아닌 것 같다. 교원단체들이 노동권을 확장해 온 이래 교실붕괴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는 학부모들의 비판 역시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교원단체나 교육정책 모두가 사교육의 그 무서운 속도감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인성교육에 미진한 채 끝내 입시교육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어차피 학교는 학원과 되지도 않는 게임을 벌이고 있다. 매일같이 무서운 입시 준비생들을 키워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학원교사들이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그 누구도 놀랄 정도로 그저 가르치고 익히는 일로 짜여 있다. 하기야 운이 없어 학원교사들이지 그들도 교사자격증을 가진 어엿한 교직 종사자들이다.

사실 하루 평균 5시간 이상을 예습과 복습을 하는 그들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입시생들을 상담해주며 가정에 전화까지 해주는 학원교사들을 보면 오히려 학원교육의 앞날은 밝기만 하다. 이들 학원간의 정보교류나 입시대책 마련도 수준급이다. 모든 입시정보가 그들로부터 나오는 판국이고 보면, 우리가 미워해야 할 것은 입시교육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우리의 교육정책이지 일선교사나 열심히 노력하는 학원교사들은 아닐 성싶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실력을 직접 비교할 일도 물론 아니다.

입시교육이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인데, 7차 교육과정을 실천해야 될 교육행정 책임자로서는 책임이 무거울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교육환경과 교직환경에서 그대로 강행하면 새로운 교육과정의 원활한 운영이 힘들 것은 뻔하다. 이미 수준별 교육과정을 운영해 본 학교들의 실험적 평가들이 그것을 예고해주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교육환경의 전폭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교직환경의 획기적인 변화와 현직교사들의 전문성 신장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교사에 대한 평가작업인데 이것 없이는 교육개혁은 불가능하다. 이미 교육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 교실에서의 교사평가자료로 교실교육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물론 교육행정가에 대한 교육운영 능력 평가도 필수적이다. 교직서비스의 실명제 없이는 교직의 개선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교장 교육감 그리고 교육행정관료, 장관의 정책집행력 모두가 평가되어야 한다. 교직에 대한 서비스의 질은 그들이 보여주는 교육행정 전문성의 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행여 이장관 발언의 파문을 서로 구실 삼아 교사들뿐만 아니라 교육행정가의 능력을 평가하는 정책을 슬그머니 교직개선 대책에서 빼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한준상 <연세대 교육대학원장·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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