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69)

  • 입력 1997년 11월 29일 20시 12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37〉 『제발 놀라지 마세요, 아가씨! 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랍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여자는 그 영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당신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죠? 나는 칠 년 동안 인간이라곤 한번도 보지 못하고 여기 살고 있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음성이 얼마나 곱고 사랑스러웠던지 정말이지 나는 마음 속까지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며 말했습니다. 『오, 아가씨, 칠 년 간이나 여기서 사셨다고요? 아가씨의 근심과 고생을 쫓아버리게 하려고 운명의 신이 저를 여기로 인도하셨습니다』 『운명의 신이 당신을 여기로 인도하셨다고요? 오, 제발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당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자세한 경위를 말이에요』 그리하여 나는 그 동안 내가 겪은 여러가지 불행과 고초를 모두 들려주었습니다. 내 신세 이야기를 듣고난 처녀의 두 눈에는 가득히 눈물이 고여들고 있었습니다. 『오, 당신같이 고귀한 왕자님께서 그런 불행을 당하시다니…』 이렇게 말하고 난 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이번엔 제 신세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저는 아브누스 제도의 이피타무스 왕의 무남독녀랍니다. 제 나이 열세 살 때 아버지는 저를 백부의 아들, 즉 저의 사촌 오빠에게 시집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여동생의 아들, 즉 저의 이종사촌 중에는 지르지스 빈 라지무스라고 하는 마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저한테 눈독을 들이다가 제가 시집가는 것을 보자 마침내 마각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혼례식날 밤에 저를 훔쳐냈던 것입니다. 아직 순결을 잃지 않은 숫처녀를 말입니다. 저를 훔쳐낸 그는 새처럼 날아오르더니 이곳에다 저를 유폐해버렸습니다. 그 동안 마신은 저에게 필요한 갖가지 물건들, 이를테면 아름다운 옷이나 천, 보석 가구 음식물 따위를 갖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열흘에 한번씩 와서 단 하룻밤만 저를 품고 잡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돌아가곤 한답니다』 듣고 있던 나는 그녀가 가여워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저를 품고 잔 이튿날 새벽이면 돌아가기 전에 마신은 언제나 저에게 환기하곤 한답니다. 그가 없는 동안 혹시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저기 저 벽 위에 새겨져 있는 두 줄의 선을 만지라고 말입니다. 저 선에다 손을 대기만 하면 밤이든 낮이든 마신이 다시 나타나기로 되어 있거든요. 마신이 마지막으로 왔다간 것이 나흘 전이니까, 다시 올 때까지는 아직 엿새 동안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제 닷새 동안 저와 함께 지내시다가 마신이 오기 전날 떠나도록 하세요』 이 말을 들은 나는 기쁨을 누를 길 없어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처녀와 닷새 동안 함께 있을 것을 생각하자 나는 벌써부터 숨이 차올라 가까스로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내 대답을 들은 처녀는 기쁨에 찬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로 다가와 다정스레 내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때 나는 마음 속으로 외쳤습니다. 『오! 이게 꿈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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