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15〉
상인 두목으로부터 일천 디나르의 돈을 빌린 마루프는 정오 기도 시간이 될 때까지 지나가는 모든 거지들에게 계속해서 돈을 집어주었다. 기도 시간이 되자 일동은 사원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드리면서 마루프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오, 언제나 온전하신 신이여! 당신은 마침내 저의 오랜 숙원을 들어주셨나이다. 저에게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세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움큼씩 금화를 나누어주는 것이었답니다. 저는 한푼도 갖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 사람들에게 마음껏 나누어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렇게 기도한 마루프는 사원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궁핍한 차림의 사람들 머리 위로 돈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사원 안은 느닷없이 쏟아지는 알라의 선물을 줍기 위하여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한바탕 극심한 소란이 벌어진 뒤에서야 사람들은 마루프를 주목하게 되었고, 그를 위하여 축복을 빌어마지 않았다. 상인들은 마루프의 후한 인심과 큰 도량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이윽고 일천 디나르의 금화를 모두 소비해버린 마루프는 다른 상인에게 부탁하여 다시 일천 디나르를 빌렸다. 마루프는 새로 빌린 돈 역시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 마루프의 친구인 아리는 그 모양을 보자 기가 막혔다. 그렇다고 참견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마루프는 수많은 상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후 기도 시간에도 마루프는 사원 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린 다음 나머지 돈을 모두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하여 마루프는 그날 하루 오천 디나르의 금화를 빌려 한 푼 남김없이 모두 다 베풀어주었다. 상인들로부터 돈을 빌릴 때마다 그는 말했다.
『내 짐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구려. 돈으로 달라시면 돈으로 갚을 것이요, 물건으로 갚으라고 하시면 물건으로 갚아 드리겠습니다. 돈이든 물건이든 무진장 있으니까요』
밤이 되자 아리는 마루프를 비롯하여 상인들을 향연에 초대하였다. 마루프의 후한 인심과 큰 도량에 대하여 소문을 들은 도성 안의 모든 상인들과 고관대작들은 다투어 아리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상좌에 앉은 마루프는 그저 의상과 보석 이야기만 했다. 상인들이 무어라 물으면 그는 그저 『그런 물건이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하고 말하곤 했다.
이튿날도 마루프는 시장으로 나가, 지난 밤의 향연을 통하여 친숙해진 상인들로부터 전날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렸다. 그리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마루프는 계속해서 돈을 빌려 고아들, 불구자, 병에 걸린 사람들, 아이들이 많이 딸린 과부들,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스무날이 지나자 빚은 자그마치 육만 디나르나 되었다.
물론 마루프도 내심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육만 디나르의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난 이십 일, 더없는 행복감으로 가슴은 충만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더 이상 그 악랄한 마누라로부터 시달림을 받지 않는데다가, 그것이 누구의 돈이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음껏 돈을 나누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하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