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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1∼6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상반기인 1월 1일부터 6월 20일까지 방한객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24일 밝혔다. 문체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 외국인 관광객은 약 882만 명이었다. 지난해 7월 중순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카드 지출액(온라인 소비액 포함)은 약 2조1000억 원으로 추산돼 2018년 1월 집계 이후 처음으로 월 2조 원을 돌파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6·25전쟁 참전국은 공식적으로 모두 22개국이다. 물론 일본은 아니다. 한데 17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개최한 6·25전쟁 제76주년 학술 세미나에선 다소 도발적인 주장이 나왔다. 일부 ‘참전 일본인’을 ‘참전 용사’나 ‘참전 영웅’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현직 교사인 박용준 씨(한국교원대 대학원)는 이날 발표에서 “‘참전국’이라는 틀은 전투부대 파병국과 정규군을 중심에 두는 탓에 실제 참전 양상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6·25전쟁 당시 일본이 물자 지원 외에 기뢰 제거와 군수 등 분야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1970년대 이후 당사자 증언 등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유엔군은 북한군을 추격하기 위해 원산에도 상륙하고자 했지만 기뢰 3000여 발에 가로막혔다. 기뢰 제거(소해)에 동원된 게 일본 해상보안청의 소해정 46척과 1200명이다. 작전 중 기뢰에 접촉하며 배가 침몰해 나카타니 사카타로(당시 21세)가 숨지고 중경상자 18명이 나오기도 했다. 이들이 기뢰를 제거한 통로를 따라 미군 제10군단이 원산에 상륙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롯폰기의 미군 기지에 페인트공으로 취업했다가 사실상 전투원으로 참전해 1950년 9월 4일 가산 전투에서 전사한 히라쓰카 시게하루도 있다. 이처럼 6·25에 참전한 것으로 확인되는 일본인 개인이 대략 40명 정도로 파악된다고 한다. ‘일본이 6·25전쟁 특수를 타고 고도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고만 알고 있는 우리에겐 낯선 이야기다. 발표자는 “참전 일본인들은 미일 양국 정부에 의해 존재가 은폐, 부정됐다”며 “이들을 ‘비정규군 공로자’로서 공적 기억의 장에서 기념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물론 이 주장엔 허점이 있다. 당시 일본은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통치했으며, 주권 국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동원’됐다는 뜻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알다시피 6·25전쟁의 원인은 분단이고, 분단의 기원은 일제의 강점이라는 데 있다. 군정을 벗어난 일본은 전쟁 막바지이던 1953년 여러 차례 관용선을 보내 독도에 상륙했고, ‘다케시마’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침탈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성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해정에 탄 이들은 일본 제국군 출신으로 식민지 조선인을 억압한 군사력의 일부”라며 “그들을 보훈 서사에 편입시키는 것은 식민지 피해국이 가해국 군사 체제 참여자를 ‘영웅’으로 호명하는 역설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이런 ‘두 얼굴의 일본’은 이웃한 국가로서 좋건 나쁘건 그들과 긴밀하게 얽힐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라는 걸 보여준다. 일본 NHK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쓰인 책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후지와라 가즈키 지음·소명출판)엔 태평양전쟁 당시 고아가 된 후 미군 일자리를 지키려다가 19세의 나이로 장진호 전투까지 겪은 다카쓰 겐조를 비롯해 다양한 개인의 서사가 담겼다. 야스쿠니 신사의 한국인 합사 문제를 비롯해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 여전한 가운데 ‘우리 정부 차원의 참전 일본인 기념’ 같은 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전쟁의 격랑에 휩쓸린 힘없는 이들의 이야기라면, 어디에선가 기억돼야 하지 않을까.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올 상반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했다.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상반기인 1월 1일부터 6월 20일까지 방한객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24일 밝혔다.문체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 외국인 관광객은 약 882만 명이었다. 지난해 7월 중순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도 195만 명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163만 명) 대비 19.4% 늘었다. 지역별로는 중국(56만 명), 일본(36만 명), 미주(21만 명), 대만(19만 명), 홍콩(6만 명) 순이다. 지난달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카드 지출액(온라인 소비액 포함)은 약 2조 1000억 원으로 추산돼 2018년 1월 집계 이후 처음으로 월 2조 원을 돌파했다. 강정원 문체부 관광정책실장은 “중동 사태 영향에 따른 유류할증료 인상에도 불구하고, 5월까지 전체 방한 외국인 수는 전년 대비 21% 증가하는 등 견고한 성장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외국인 관광객은 통상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늘어난다. 하반기 기준으로는 지난해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 1011만 명을 기록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6·25전쟁 당시 북한군 점령 지역에서 활동하며 약 6만9000명의 적 병력을 살상하고 주요 시설을 파괴한 한국인 유격대의 창설과 운영에 한국 해군의 기여가 컸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전쟁 발발 제76주년을 맞아 학술 세미나 ‘6·25전쟁기 무명의 영웅들’을 17일 개최했다. 이동욱 연구원은 세미나에서 “한국 해군이 치안대를 무장세력으로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미 제8군의 유격전도 현장에서 공동 지휘하며 유격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발표문 ‘6·25전쟁기 미 제8군 한국인 유격대의 창설 배경’에서 미군 제8240부대에 주목했다. 한국인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흔히 ‘켈로 부대’로 불리는 ‘KLO(Korea Liaison Office) 첩보부대’와 수복 지역 내 여러 반공 치안대를 흡수해 1951년 7월 창설됐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치안대의 무장화부터 우리 해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에 밀리면서 1950년 12월 서부전선의 육로가 차단되자, 피란민과 치안대원들은 황해도 해안으로 집결했다. 해군은 1951년 1월 피란민을 구출하면서 치안대에 소총탄 2만 발을 제공했고, 서해 도서에 산재한 치안대원 중 3000명을 선발한 뒤 4개 대대로 편성해 유격 전술을 훈련했다. 이들은 2월 2일부로 해군의용대로 개편됐고, 대원 150명이 상륙해 옹진군 흥미면 일대를 확보하고 적 여단장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해군의용대는 여러 차례 상륙작전을 통해 전투 능력을 갖춘 무장세력으로 발전했음을 입증해, 미 제8군의 한국인 유격대 창설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 토론자로 나선 김인승 공군사관학교 교수는 “당시 서해를 관할하던 영연방 해군은 피란민 구호에 큰 관심이 없었고, 혹한으로 구조 여건도 매우 열악했다”며 “한국 해군 함정의 적극적인 구출 작전으로 대다수 반공주의 무장 조직이 최소한의 피해로 인적 기반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중공군의 대공세로 후방 작전의 필요성이 부각되자, 미군은 1951년 2월 백령도에 유격군 사령부인 윌리엄 에이블 기지(William Able Base)를 설치했다. 한국 해군이 훈련한 치안대원을 유격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기지는 미군과 해군 백령도 주둔 부대가 연합해 운영했고, 최초의 유격대인 동키 제1부대 역시 우리 해군의 주선으로 창설됐다. 서해 도서에 산재한 치안대는 속속 미 제8군의 한국인 유격대로 재편됐고, 약 한 달 만에 1만2000명 규모로 성장했다. 유격대는 군번도, 계급도 없이 북한 후방에서 포로 획득, 보급로 파괴 등 4000여 회의 작전을 수행했다. 정전협정 체결 뒤 국방부 제8250부대로 재편돼 육군에 편입됐다. 이 연구원은 “기존엔 주로 미국 사료 등에만 의존한 탓에 이 부대가 치안대를 모체로 미군의 계획에 따라 조직되고 운영됐다고 인식하는 데 그쳤다”며 “하지만 유격대의 형성은 한국 해군의 지원 아래 무장세력으로 발전한 북한 내 반공주의자들이 한미 군 당국과 협력한 결과”라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6·25전쟁 당시 북한군 점령 지역에서 활동하며 약 6만9000명의 적 병력을 살상하고 주요 시설을 파괴한 한국인 유격대의 창설과 운영에 한국 해군의 기여가 컸다는 분석이 나왔다.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전쟁 발발 제76주년을 맞아 학술 세미나 ‘6·25전쟁기 무명의 영웅들’를 17일 개최했다. 이동욱 연구원은 세미나에서 “한국 해군이 치안대를 무장세력으로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미 제8군의 유격전도 현장에서 공동 지휘하며 유격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밝혔다.이 연구원은 발표문 ‘6·25전쟁기 미 제8군 한국인 유격대의 창설 배경’에서 특히 미군 제8240부대에 주목했다. 한국인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흔히 ‘켈로 부대’로 불리는 ‘KLO(Korea Liaison Office) 첩보부대’와 수복지역 내 여러 반공 치안대를 흡수해 1951년 7월 창설됐다.이 연구원에 따르면 치안대의 무장화부터 우리 해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에 밀리면서 1950년 12월 서부전선의 육로가 차단되자, 피난민과 치안대원들은 황해도 해안으로 집결했다. 해군은 1951년 1월 피난민을 구출하면서 치안대에 소총탄 2만 발을 제공했고, 서해 도서에 산재한 치안대원 중 3000명을 선발한 뒤 4개 대대로 편성해 유격 전술을 훈련했다. 이들은 2월 2일부로 해군의용대로 개편됐고, 대원 150명이 상륙해 옹진군 흥미면 일대를 확보하고 적 여단장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해군의용대는 여러 차례 상륙작전을 통해 전투 능력을 갖춘 무장세력으로 발전했음을 입증해, 미 제8군의 한국인 유격대 창설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이날 세미나 토론자로 나선 김인승 공군사관학교 교수는 “당시 서해를 관할하던 영연방 해군은 피난민 구호에 큰 관심이 없었고, 혹한으로 구조 여건도 매우 열악했다”며 “한국 해군 함정의 적극적인 구출 작전으로 대다수 반공주의 무장 조직이 최소한의 피해로 인적 기반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중공군의 대공세로 후방 작전의 필요성이 부각되자, 미군은 1951년 2월 백령도에 유격군 사령부인 윌리엄 에이블 기지(William Able Base)를 설치했다. 한국 해군이 훈련한 치안대원을 유격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기지는 미군과 해군 백령도 주둔부대가 연합해 운영했고, 최초의 유격대인 동키 제1부대 역시 우리 해군의 주선으로 창설됐다. 서해 도서에 산재한 치안대는 속속 미 제8군의 한국인 유격대로 재편됐고, 약 한 달 만에 1만2000명 규모로 성장했다. 유격대는 군번도, 계급도 없이 북한 후방에서 포로 획득, 보급로 파괴 등 4000여 회의 작전을 수행했다. 정전협정 체결 뒤 국방부 제8250부대로 재편돼 육군에 편입됐다.이 연구원은 “기존 인식은 주로 미국 사료 등에만 의존한 탓에 이 부대가 치안대를 모체로 미군의 계획에 따라 조직되고 운영됐다는 데 그쳤다”며 “하지만 유격대의 형성은 한국 해군의 지원 아래 무장 세력으로 발전한 북한 내 반공주의자들이 한·미 군 당국과 협력한 결과”라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최근 연일 증시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뭔가를 꽉 붙들지 않으면 웬만한 투자자는 어지러울 정도. ‘부의 대이동’(2020년) 등 베스트셀러를 출간했고, 유튜브 채널 등 여러 매체에 출연하고 있는 금융인 겸 작가가 거시 경제의 주요 변수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지정학적 분쟁과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신임 의장, ‘K자 경제’, 인공지능(AI) 혁명, 달러 패권의 향방 등 5가지를 세계 경제의 판도를 흔들 갈림길로 제시한다. 하나하나가 모두 어마어마한 주제들이지만, 구어체로 비교적 평이하게 다뤘다. 최근 만병통치약처럼 회자되는 AI 혁명은 세계를 ‘고성장과 저물가’로 이끌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낙관엔 여러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당장은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고, 중립 금리를 밀어 올릴 수 있으며, 수익성과 성장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는 것. AI가 혁신을 만들지 못했을 땐 실망도 클 수 있다. 저자는 “AI의 성장이 본격화되는 시기보다 인플레이션이 먼저 찾아올 수 있다”며 “저성장 고물가에 가까운 국면이 형성될 경우 주식과 채권 등의 자산 시장이 고전하고, 인플레이션을 헤지하는 자산들이 힘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저자는 “미국은 테크와 에너지가 모두 갖춰져 있고, K자 상단에 해당하는 산업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AI 경쟁력 역시 가장 뛰어나다”며 “긴 호흡에서 봤을 때 달러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서울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迎秋門)이 철재로 복원된 지 51년 만에 전통 양식인 목재로 교체된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22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영추문의 보수공사가 진행된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공사는 가로 6.05m, 세로 4.8m 크기의 영추문 판문(板門)을 목재 문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경복궁의 각 문은 전통적으로 목재 판문을 썼지만, 영추문은 1975년 복원 당시 철로 제작됐다. 그간 다른 대문과의 통일성을 확보하고 역사성과 전통성을 회복하기 위해 나무로 새 문을 만들어 달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철문의 무게 탓에 여닫는 사람이 다칠 위험이 크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에 문화유산위원회 궁능문화유산분과위는 지난해 12월 문을 교체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영추문은 경복궁 창건 당시 세워졌던 동서남북 4개 대문 중 하나로, 동문인 건춘문(建春門)과 짝을 이룬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다시 건립했지만, 일제강점기에 문 앞에 전차 선로가 생기며 전차의 진동 영향으로 1926년 석축이 무너지고 끝내 헐렸다. 복원된 뒤에도 43년 동안 일반인의 통행이 제한되다가 2018년 개방됐다. 1896년 2월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왕세자였던 순종과 함께 경복궁을 빠져나간 문으로도 유명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케이팝 시장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대중음악 중소기획사의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중소기획사 글로벌 도약 지원’ 사업을 올해 새롭게 추진한다. 이를 위해 공모를 거쳐 첫 지원 대상으로 ‘리센느’ ‘싸이커스’ ‘튜넥스’ ‘키라스’ ‘캔트비블루’ ‘82메이저’ ‘빅오션’ ‘유스피어’ ‘엑신’ ‘에잇턴’ 등 10개 그룹을 선정했다.문체부에 따르면 이 사업을 통해 매년 역량 있는 중소기획사 10곳을 선정, 연간 최대 약 3억 원씩 지원한다. 또한 성과 평가를 통해 최대 3년간 연속 지원해 소속 가수의 중장기적인 성장을 뒷받침한다. 이번 사업은 기존의 음반 제작, 공연 등 개별 분야에 한정된 칸막이식 지원을 탈피해 기획사의 필요와 전략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곳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에 각 기획사는 지원금을 수출용 음반 및 뮤직비디오 제작, 해외 현지 마케팅 및 홍보, 해외 공연 개최 등, 해외 진출에 필요한 분야 내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지원 사업에 선정된 그룹 리센느(RECENNE, 더뮤즈엔터테인먼트)는 일본과 미국 활동 계획을 밝혔다. 리센느는 최근 일본에서 진행된 ‘케이콘 저팬(KCON JAPAN)’에서도 멋진 공연을 선보인 바 있다. 또한 8월 ‘케이콘 엘에이(KCON LA)’에 출연하고, 이를 통해 ‘케이-라이징 스타’로 도약할 예정이다. 그룹 에이티즈(ATEEZ)의 동생 그룹 격인 싸이커스(xikers, KQ엔터테인먼트)도 일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 향후 미니 앨범 공개와 유닛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5세대를 대표하는 퍼포먼스 아이돌로 입지를 굳힐 계획이다.신흥 시장을 통해 세계 진출을 준비하는 그룹도 있다. 올해 3월에 정식으로 데뷔한 후 일본, 대만 등에서 해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신인 그룹 튜넥스(TUNEXX, IST엔터테인먼트)는 인도 뭄바이에서 특별 무대를 선보이고, 현지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해 인도 시장과의 접점을 넓혀간다. 신곡 타타(TATA)를 필두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그룹 키라스(KIIRAS, 린브랜딩)는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쇼케이스를 개최하고 아시아 7개국, 10개 도시에서 팬미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기존 중남미 팬덤을 바탕으로 신규 시장까지 개척해 실력파 케이팝 그룹의 위치를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밴드 그룹도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해외 단독 공연과 프로모션 등을 통해 해외 팬덤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밴드 캔트비블루(can’t be blue)다. 이 그룹은 스포티파이 레이다(스트리밍 기업 스포티파이에서 2020년부터 진행 중인 신예 가수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세계 시장과의 접점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문체부에 따르면 케이팝은 2025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15.8%, 수출액은 32.4% 증가하는 등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나, 대형기획사 중심의 쏠림 현상이 심화하며 생태계의 허리가 약화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2023년 기준 대기업의 연간 음악제작비는 평균 431억 1000만 원에 달하는 반면 중소기업의 제작비는 평균 14억 9000만 원에 그쳤다. 해외 공연 횟수 역시 대기업은 연 83.4건이나 중소기업은 4건에 불과해 20배가 넘는 격차를 보였다.최성희 문체부 콘텐츠미디어산업관은 “케이팝이 세계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산업의 허리인 중소기획사가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이번 신규 사업을 통해 또 다른 ‘중소의 기적’이 탄생해 케이팝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독립의 요구는 실로 정의의 결정으로 평화의 표상인 것이다. … 최후까지 싸워서 완전 독립을 회복하자! … 대한 독립 만세!”독립운동가 권오설 선생(1897∼1930)이 100년 전 쓴 대한독립당 격고문(檄告文)의 내용이다. 원본은 없고, 일본어로 번역된 자료가 고려대 도서관에 남아 있다. 독립기념관은 이 격고 번역본을 비롯해 6·10만세운동 관련 역사 자료 및 사진, 영상 등 총 54점을 전시하는 특별기획전 ‘100년 전 그날을 보다: 6·10만세운동’을 최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개막했다. 전시는 6·10만세운동을 추진한 단체와 인물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살핀다. 1부에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일을 계기로 6·10만세운동을 함께 준비한 과정을 보여주고, 2부에선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을 중심으로 모인 학생들이 전개한 만세운동을 지도와 사진 자료를 통해 소개한다. 3부에선 만세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한 일제의 모습과 재판정에서도 독립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학생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독립기념관은 “6·10만세운동을 추진한 이들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독립정신을 기억하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8월 2일까지.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독립의 요구는 실로 정의의 결정으로 평화의 표상인 것이다.…최후까지 싸워서 완전 독립을 회복하자! …대한 독립 만세!”독립운동가 권오설 선생(1898~1930)이 100년 전 쓴 대한독립당 격고문(檄告文)의 내용이다. 원본은 없고, 일본어로 번역된 자료가 고려대 도서관에 남아 있다.독립기념관은 이 격고 번역본을 비롯해 6·10 만세운동 관련 역사 자료 및 사진, 영상 등 총 54점을 전시하는 특별기획전 ‘100년 전 그날을 보다: 6·10 만세운동’을 최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개막했다.전시는 6·10 만세운동을 추진한 단체와 인물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살핀다. 1부에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일을 계기로 6·10 만세운동을 함께 준비한 과정을 보여주고, 2부에선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을 중심으로 모인 학생들이 전개한 만세운동을 지도와 사진 자료를 통해 소개한다. 3부에선 만세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한 일제의 모습과 재판정에서도 독립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학생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독립기념관은 “6·10 만세운동을 추진한 이들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독립정신을 기억하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8월 2일까지.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불법복제 만화 공유사이트를 운영한 ‘거물’ 사범이 일본에서 송환됐다.문화체육관광부는 11일 “법무부가 오늘 김포공항을 통해 불법복제 만화 공유사이트 운영 사범 A 씨(37)를 일본으로부터 범죄인인도 조치로 송환받았다”고 밝혔다.문체부에 따르면 A 씨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불법복제 만화 공유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슬램덩크’, ‘원피스’, ‘명탐정 코난’ 등 유명 만화 저작물 1400여 개를 불법 게시하고 도박사이트 광고를 게시해 범죄수익을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A 씨는 2017년 일본으로 출국해 2022년 일본에 귀화했다. 2002년 ‘한일 범죄인인도조약’ 체결 후 일본으로부터 일본 국적 범죄인을 인도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체부는 “한국의 웹툰 등 문화 콘텐츠 산업 생태계 전반에 피해를 초래하는 해외 저작권 침해 사범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밝혔다.문체부는 이어 “법무부의 신속한 범죄인인도를 위해 검찰·경찰과 협력해 많은 분량의 사건 내용을 일본 당국에 설명하기 쉽도록 간명하게 정리하는 등 송환을 위한 여러 조치에 힘썼다”며 “향후 법무부·검찰·경찰과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A 씨와 관련된 사건의 범행 수법, 운영 구조 등 전모를 규명하고, 범죄수익도 철저히 추적, 환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이번 송환 조치는 온라인 저작권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계기관 간 유기적인 협력체계와 국제공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라며 “저작권 정책의 주무 부처로서 ‘케이-콘텐츠’ 지킴이 역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5일 오후 경북 울릉군 서면 남서리 남서 고분군. 들돌로 쓰일만한 크기의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거대한 옛 무덤이 땅 위로 네모난 입구를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울릉도만의 독특한 양식이다. 고분의 주인은 “신라로부터 통치권을 인정받은 현지의 유력자”(우산국박물관). 울릉도가 우리 역사의 일부임을 보여주는 유적이지만 고분은 사실상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울릉도 특유의 급경사 탓인지, 기단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돌들은 속절없이 흘러내려 무너지고 있었다. 1950년대만 해도 3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됐지만 지금은 상당수가 훼손돼 10여 기만 남은 상태.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실장은 “위쪽에도 무너진 고분이 수두룩하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정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독도는 우리 땅’ 구호보다 유적 정비를”4~7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진행한 울릉도·독도 탐방에선 영토 및 역사 교육을 위해 관련 유적을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남서 고분군은 길도 정비되지 않은 탓에 평소 찾는 사람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2020년 달린, 하나뿐인 카카오맵 리뷰는 “관광객을 위한 곳이 아님…인디아나존스 놀이(를 해야 볼 수 있는 곳)…”라는 내용. 차량에서 내린 뒤에도 밭 사이로 좁은 비탈길을 꽤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기자는 끝내 발 아래 설치된 경작용 모노레일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세간엔 ‘독도 영토 주권과 울릉도 역사 연구가 무슨 상관이냐’는 오해가 적지 않다. 하지만 독도는 역사적으로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인식됐고, 일본 측은 ‘울릉도를 버린 조선은 독도를 인식조차 못 했다’고 왜곡한다. 그래서 “독도 연구는 울릉도에서 시작해서 울릉도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울릉도 연구가 중요하다. 울릉도엔 우산국박물관과 수토역사전시관, 안용복기념관,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 독도박물관 등이 있어 박물관의 수는 적지 않았지만 정작 역사 유적은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채였다.최근 재단의 종합학술조사에서 ‘沙工(사공) 朴明淂(박명득)’ 등 조선 수토관(搜討官·수색과 토벌 담당 관리) 일행의 이름이 새로 발견된 ‘울릉 태하리 각석’은 미발견 각석문이 있을지도 모르는 암벽 하단이 관람 데크용 콘크리트 구조물에 덮인 상태였다. 이와 별개로 각석의 특성상 비바람에 상시 노출된 탓에, 이번에 새로 제작된 탁본을 본 연구자들 사이에선 “전보다 각석문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연구와 보존 및 관람을 위한 종합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6일 방문한 울릉도 석포전망대 근처 북망루는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지 않는 가운데 일제강점기 군 부대가 주둔했던 막사 터에 수풀만 무성해 전체 규모를 알기 어려웠다. 진입로는 도로 포장이 중간에 끊겨 있었고, 막사 유적으로 추정되는 일부 콘크리트 기초는 위에 휴식용 데크가 설치돼 있었다. 북망루는 일제가 러일전쟁을 계기로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기 위해 독도와 울릉도에 설치했던 여러 망루 중 하나다. 홍 실장은 “정비 상태가 과연 이곳이 러일전쟁 유적지인지조차도 알 수 없는 정도”라고 지적했다.● 학생·교사들도 “독도 우리가 지켜요”이번 탐방엔 ‘독도 지킴이 학교’ 교사 32명이 참여했다. 2008년 시작돼 지금까지 1716개교가 참여한 독도 지킴이 학교는 동북아역사재단이 미래세대의 영토 주권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독도 관련 동아리 활동과 교과 연계수업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는 120개교에서 운영 중이다. 5일 독도에서 서울 단국대학교부속소프트웨어고의 민세현 교사(46)가 “동아리 아이들이 제작 중인 독도 역사 게임에 넣을 독도를 상징하는 요소”를 묻자 김용헌 독도경비대장(49)은 “괭이갈매기와 ‘韓國領(한국령)’ 표석”이라고 답했다.독도경비대원들의 사명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점심식사를 준비하던 경비대의 김병준 경장(32)은 “독도경비대는 근무 희망자가 많아 ‘오고 싶어도 못 오는 곳’”이라며 “원래 1년 의무 복무인데, 연장해서 1년 반째 근무 중”이라고 했다. 김 경비대장은 “독도를 지킨다는 자긍심으로 열심히 근무 중”이라며 국민의 응원을 당부했다.울릉도·독도=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샘 올트먼 거절, 제프 베이조스 무시, 일론 머스크 무시….” 책을 훑다 보면 끝부분, 미국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한 이들의 목록이 먼저 시선을 끈다. 알 만한 글로벌 기술기업 수장들로 ‘기술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는 이들이다. ‘그런 발상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며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이니, 거절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특이점(singularity)’이란 과학용어가 있다. 블랙홀의 특이점과 같이 기존 이론으로는 정의나 설명이 안 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그런데 요즘은 ‘인공일반지능(AGI)의 등장’처럼 혁명적인 기술의 진보를 가리키는 말로도 널리 쓰인다. “초지능을 가진 AI가 인간-기계 혼합체와 함께 유토피아를 불러오고, 모든 결핍을 없애고, 불로장생이나 영생을 누리게 해 줄 발견을 해낼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테크 억만장자들이 퍼뜨리는 이런 믿음은 ‘공상적 비전’에 불과하고, 오히려 위험하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기술로 환원시켜 버린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지구 온난화는 나노 기술이 해결해 줄 것으로, 불평등과 같은 사회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인류를 구원한다’는 과장된 목적 아래 ‘모든 제약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항구적인 성장’이란 약속은 기술업계의 이익에 복무할 뿐이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실현될 수 없는 기술에 대한 집착이 사실은 ‘부와 권력을 독점해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로 탈출하기 위한 욕망’에서 나온다는 것. 번역자인 박주용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그들의 꿈은 실리콘 인간이 온기 없는 행성 간 공간을 영원히 떠다니게 하겠다는 우주 제국 건설의 꿈”이라고 했다. 저자는 “우주는 거대한 자원의 저장고 그 이상이며, 인간 또한 그걸 다 빨아먹는 존재 이상”이라면서 “‘누군가가 인류를 위한 단 하나의 최선을 길을 안다’고 주장할 때 깊은 의심을 품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저항을 통해 바꾸지 못할 인간의 권력이란 없다”(어슐러 K 르 귄)는 것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올해 6·10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학술 심포지엄을 비롯한 다양한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6·10만세운동은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일을 기해 학생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벌였던 독립운동이다. 광복회(회장 이종찬)는 4일 “6·10만세운동기념사업회(회장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와 공동으로 5일 서울 서대문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의정원홀에서 ‘6·10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심포지엄 기조 발표는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6·10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맡는다. 제1부에선 ‘6·10만세운동의 준비 과정’을, 제2부에선 ‘전개 과정과 그 이후’를, 제3부에선 ‘순종 장례 및 6·10만세운동의 보도와 평가’를 다룬다. 6·10만세운동기념사업회와 대한황실 의친왕기념사업회는 9일 오후 6시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6·10만세운동 참여자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진혼 음악회를 공동 개최한다. 10일 오전 11시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00주년 기념식이, 오후 2시엔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에서 기념비 제막식이 열릴 예정이다. 기념비는 기념사업회와 천도교가 공동으로 건립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올해 6·10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학술 심포지엄을 비롯한 다양한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6·10만세운동은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일을 기해 학생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벌였던 독립운동이다.광복회(회장 이종찬)는 4일 “6·10만세운동기념사업회(회장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와 공동으로 5일 서울 서대문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의정원홀에서 ‘6·10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심포지엄 기조 발표는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6·10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라는 주제로 맡는다. 제1부에선 ‘6·10만세운동의 준비 과정’을, 제2부에선 ‘전개 과정과 그 이후’를, 제3부에선 ‘순종 장례 및 6·10만세운동의 보도와 평가’를 다룬다.6·10만세운동기념사업회와 대한황실 의친왕기념사업회는 9일 오후 6시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6·10만세 참여자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진혼 음악회를 공동 개최한다. 10일 오전 11시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00주년 기념식이, 오후 2시엔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에서 기념비 제막식이 열릴 예정이다. 기념비는 기념사업회와 천도교가 공동으로 건립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沙工(사공) 朴明淂(박명득) 蔣(?)今男(장금남)’.동북아역사재단의 울릉도·독도 종합학술조사를 통해 최근 확인된 19세기 초 조선의 울릉도 수토군(搜討軍·수색과 토벌군) 선박의 함장 이름들이다. 이를 포함해 조선이 울릉도 등을 공식 영토로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각석문(刻石文·돌에 새긴 글)들이 울릉도에서 새롭게 발견됐다.동북아역사재단은 2일 오전 ‘조선시대 수토로 바라본 울릉도와 독도’ 학술회의를 열고, 4월 20∼24일 벌인 종합학술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1947년 조선산악회 학술조사의 전통을 잇는 이번 탐사에서 울릉도 수토 각석문을 전수 조사했다. 새로운 사료를 찾는 한편, 총 15장의 고품질 탁본도 제작했다.특히 ‘울릉 태하리 각석’에서 새로운 글자가 다수 발견됐다. 수토관이 남긴 태하리 각석문은 30m 넘게 이어지는 암벽에 산재해 있다. 모두 11건가량으로 파악됐다. 조사단에 참여한 고광의 재단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그중 ‘이보국(李輔國) 각석’에서 ‘사공’의 이름 2개가 새로 발견됐다. 이보국은 1804년 강원 삼척영장(營將)으로 부임해 이듬해 울릉도를 수토한 인물. ‘사공’은 함선의 최고 책임자를 가리키는 말로, 수토에 배가 2척 이상 동원됐다는 걸 시사한다. 수토단 규모가 적어도 100명 안팎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이 명문 옆에서 ‘軍O 鄭OO 李OO’라고 쓰인 글도 새로 확인됐다. 군 관련 직책을 가진 인물들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태하리 각석에선 이 밖에도 ‘金(김)’자와 또 다른 ‘金’자, ‘江陵(강릉)’ 등의 자획이 새로 확인됐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이번엔 일정 문제로 여기까지 탁본을 하진 못했지만, 추후 수토 활동 관련 인명 등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조선 조정은 17세기 말부터 약 200년간 수토관이 정기적으로 울릉도를 방문해 실태를 조사하고 보고하도록 했다.재단의 이번 조사에선 각석문을 명확하게 판독하는 성과도 있었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태하리 ‘광서명 각석’(1890, 1893년)에서 기존 ‘使(사)’ 등으로 읽던 글자는 ‘侯(후)’로 봤고, ‘功(공)’이라는 의견이 있던 글자는 ‘切(절)’로, ‘蕩(탕)’으로 읽던 글자는 ‘蒭(추)’로 판독했다. 이에 따라 ‘聖化東漸我侯西來誠切祝華惠深求蒭(성화동점아후서래성절축화혜심구추)’ 문구는 “성스러운 임금의 교화가 동쪽 울릉도에까지 미쳤고, 우리 수령은 서쪽 육지로부터 부임해 왔도다. 왕화(王化)를 받들고자 하는 정성은 지극하였으며, 백성을 기르고 돌보는 은혜는 깊고도 컸도다”는 뜻으로 파악됐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조선 말 울릉도의 통치와 주민들의 인식이 드러나는 구절”이라고 평가했다.이번 조사에선 불교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명장(名匠) 흥선 스님이 각석문을 탁본했다. ‘광서명 각석’은 가로 210cm, 세로 266cm의 한 장짜리 대형 탁본으로 제작됐다. 학술회의에서 공개된 탁본에선 스님이 작업 중 상처를 입어 흘린 희미한 핏방울 자국이 보였다.학술회의에선 해당 유적들의 재정비 필요성도 제기됐다. 태하리 각석은 관람용 데크가 오히려 수토 관련 각석을 가리거나 훼손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됐다. 문상명 재단 연구위원은 “지질환경과 역사문화 콘텐츠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함께 지정되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재단은 향후 각석문을 추가 탁본하고 수토 관련 지역인 경북 울진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철저한 고증을 통한 진실 규명이야말로 우리 영토주권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학술적 방패이자 무기”라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沙工(사공) 朴明淂(박명득) 蔣(?)今男(장금남)’.동북아역사재단의 울릉도·독도 종합학술조사를 통해 최근 확인된 19세기 초 조선의 울릉도 수토군(搜討軍·수색과 토벌군) 선박의 함장 이름들이다. 이를 포함해 조선이 울릉도 등을 영토로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각석문(刻石文·돌에 새긴 글)들이 울릉도에서 새롭게 발견됐다.동북아역사재단은 2일 오전 ‘조선시대 수토로 바라본 울릉도와 독도’ 학술회의를 열고, 4월 20~24일 벌인 종합학술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1947년 조선산악회 학술조사의 전통을 잇는 이번 탐사에서 울릉도 수토 각석문을 전수 조사했다. 새로운 사료를 찾는 한편, 총 15장의 고품질 탁본도 제작했다.특히 ‘울릉 태하리 각석’에서 새로운 글자가 다수 발견됐다. 수토관이 남긴 태하리 각석문은 30m 넘게 이어지는 암벽에 산재해 있다. 모두 11건가량으로 파악됐다. 조사단에 참여한 고광의 재단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그 중 ‘이보국(李輔國) 각석’에서 ‘사공’의 이름 2개가 새로 발견됐다. 이보국은 1804년 강원 삼척영장(營將)으로 부임해 이듬해 울릉도를 수토한 인물. ‘사공’은 함선의 최고 책임자를 가리키는 말로, 수토에 배가 2척 이상 동원됐다는 걸 시사한다. 수토단 규모가 적어도 100명 안팎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이 명문 옆에서 ‘軍O 鄭OO 李OO’라고 쓰인 글도 새로 확인됐다. 군 관련 직책을 가진 인물들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태하리 각석에선 이 밖에도 ‘金(김)’자와 또 다른 ‘金’자, ‘江陵(강릉)’ 등의 자획이 새로 확인됐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이번엔 일정 문제로 여기까지 탁본을 하진 못했지만, 추후 수토 활동 관련 인명 등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조선 조정은 17세기 말부터 약 200년간 수토관이 정기적으로 울릉도를 방문해 실태를 조사하고 보고하도록 했다.재단의 이번 조사에선 각석문을 명확하게 판독하는 성과도 있었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태하리 ‘광서명 각석’(1890, 1893년)에서 기존 ‘使(사)’ 등으로 읽던 글자는 ‘侯(후)’로 봤고, ‘功(공)’이라는 의견이 있던 글자는 ‘切(절)’로, ‘蕩(탕)’으로 읽던 글자는 ‘蒭(추)’로 판독했다.이에 따라 ‘聖化東漸我侯西來誠切祝華惠深求蒭(성화동점아후서래성절축화혜심구추)’는 문구가 “성스러운 임금의 교화가 동쪽 울릉도에까지 미쳤고, 우리 수령은 서쪽 육지로부터 부임해 왔도다. 왕화(王化)를 받들고자 하는 정성은 지극하였으며, 백성을 기르고 돌보는 은혜는 깊고도 컸도다”라는 뜻으로 파악됐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조선 말 울릉도의 통치와 주민들의 인식이 드러나는 구절”이라고 평가했다.이번 조사에선 불교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명장(名匠) 흥선 스님이 각석문을 탁본했다. ‘광서명 각석’은 가로 210cm, 세로 266cm의 1장짜리 대형 탁본으로 제작됐다. 학술회의에서 공개된 탁본에선 스님이 작업 중 상처를 입어 흘린 희미한 핏방울 자국이 보였다.학술회의에선 해당 유적들의 재정비 필요성도 제기됐다. 태하리 각석은 관람용 데크가 오히려 수토 관련 각석을 가리거나 훼손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됐다. 문상명 재단 연구위원은 “지질환경과 역사문화 콘텐츠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함께 지정되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재단은 향후 각석문을 추가 탁본하고 수토 관련 지역인 경북 울진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철저한 고증을 통한 진실 규명이야말로 우리 영토주권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학술적 방패이자 무기”라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작이고,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머니’(노자 ‘도덕경’)라고 했습니다. 기록된 유명의 역사 뒤를 받쳐 온 무명의 역사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시 연구실에서 만난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62·민속학 전공)의 말에선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김 교수는 ‘삼국사기’를 ‘역사자연학’이란 분석 틀로 집성한 연구서 ‘삼국사기 자연학’ 1∼7권(한중연 출판부)을 최근 발간했다. 삼국사기에서, 고대 한국인이 자연을 관찰하고 시간을 계산하며 징조를 해석하고 국가 의례를 조직한 방식을 재구성해 낸 역작이다. ‘국가 석학’이라고도 불리는 한국연구재단 우수학자(인문학)에 2011년 선정된 뒤 본격적으로 시작한 연구가 15년 만에 200자 원고지 1만6400장에 이르는 대작으로 결실을 맺은 것. 고대 한국인의 장엄한 우주관과 고대인의 삶을 지배했던 대서사시가 이 책을 통해 되살아난다.● “은하수왕 시조인 신라 건국신화” 고대사 새 지평 개척김 교수는 소지왕이 박혁거세의 시조묘를 혁파하고 487년 신궁(神宮)을 창립한 것을 기점으로 신라 천년을 전반기(시조묘 시대)와 후반기(신궁 시대)로 구분한다. ‘신궁’의 중요성을 알려면 여러 비석에 성한왕(星漢王)으로 기록된, 당대 신라인들이 ‘태조’로 여겼던 인물이 누군지부터 알아야 한다. “천문과 신화학을 잘 모르면 해석이 꼬이는데, 성한왕은 ‘은하수왕’이란 뜻이에요. 문무왕릉비(682년)엔 15대조이며 별들의 왕인 은하수왕이 하늘에 천궁과 땅에 선악(仙岳)을 만들고, 선령(仙靈)으로 내려온 뒤 신라 옥란(玉欄)의 왕궁에서 나라를 열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김씨 왕력(王歷)으로 환산하면 15대조는 첫 김씨 왕인 미추왕입니다. 박, 석, 김씨 가운데 김씨가 왕을 세습하게 되면서 미추왕을 시조로 하는 제2의 건국 신화가 생겨났던 것으로 볼 수 있어요.”김씨 왕들은 즉위 이듬해 정월이나 2월에 신궁에서 즉위식이자 신년 제천 의례를 치렀다.“신라인들은 신왕의 대관식 의례 때 별들의 궁전에서 조상인 은하수왕이 내려와 김씨 왕조의 새 왕을 인정하고 보호한다고 믿었을 겁니다. 은하수는 별의 물이잖아요. 물이 하늘에서 흘러내리려면 통로가 있어야 합니다. 첨성대는 맨 위가 ‘井’(우물 정) 모양일 뿐 아니라, 호리호리한 형태가 영락없이 우물을 닮았지요. 첨성대에서 ‘하늘 우물’ 신화가 재현됐던 것입니다.”김 교수는 “첨성대가 바로 신궁”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박혁거세가 태어난 경주 나정(蘿井)을 신궁으로 여기는 통설과는 다른 견해다. 김 교수에 따르면 ‘김씨 성역’은 반월성에서 미추왕릉에 이르는 공간으로, 나정에서 오릉에 이르는 ‘박씨 성역’과 구분된다. 김씨 성역의 정중앙에 첨성대가 있다. ‘신궁원(神宮園)’이라는 표현도 신궁이 첨성대 주변처럼 넓은 들판에 있었다는 걸 뒷받침한다.“신궁은 동아시아에서도 신라가 가장 먼저 만든 것인데, 이런 이야기가 ‘삼국유사’가 쓰일 당시에도 이미 잊혔던 겁니다.”김 교수는 “나라의 구심점이 되는 신궁 제사 시행을 기점으로 새로 우역(郵驛·현대의 우체국)을 설치하고 도로를 정비하는 한편 시장을 개설하는 등 물적으로도 일신한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라인도 휴일 즐겨” 고대 시간 재구성 신라 아달라왕 4년(157년) 동해 변에 살던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바위에 실려 일본 땅으로 건너가자 신라에서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는 설화(삼국유사)도 김 교수의 연구를 통해 되살아났다. 신라 때 왕경(경주)에선 개기일식이 총 5건 벌어졌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158년 7월 13일 발생했다. 김 교수는 “신라인들의 천문 경험이 1000년 뒤까지 이어져 설화로 남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역사 속 핼리혜성 기록을 검증한 것도 성과다. 아쉽게도 삼국사기의 혜성 기록은 핼리혜성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 기록에선 “문종 20년(1066년) 4월 달 크기만 한 혜패성이 서북쪽 하늘에 출현했다”는 ‘고려사’ 기록이 처음이다. 김 교수는 ‘송사’ 천문지 등을 종합해 당시 핼리혜성이 지나간 천구상의 경로를 복원하기도 했다. 신라시대에도 오늘날의 요일제와 비슷한 휴일 개념이 존재했다는 것도 밝혀냈다. 비문 등의 날짜를 분석한 결과, 초하루와 보름뿐 아니라 상현과 하현에 해당하는 날짜가 자주 등장한 것. 김 교수는 “한 달에 4번은 쉬었던 신라의 습속이 고려의 공적 공휴일로 제도화됐다”며 “하지만 조선시대 들어 유교 제례 중심의 시간관으로 변하면서 이런 문화가 단절됐다”고 했다. 삼국사기의 시간 기록을 일일이 검증해 외교 연월일을 모두 복원하고 양력으로 환산한 것도 김 교수가 처음이다. 이 분석에 따르면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양력으로는 612년 8월 26일 일어났다. 태풍 등으로 인한 살수(청천강)의 유량 증가가 수공(水攻)을 가능케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무명(無名)의 역사는 경험으로 접근해야” 김 교수는 초자연적 주술 세계를 긍정하던 고대사를 연구하기 위해선 실증주의 역사학을 넘어선 ‘경험주의 역사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건국시조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게 사실이냐고 따지면 뭐 하겠습니까. 삼한일통의 오줌 꿈을 사고팔았다는 몽험(夢驗)의 기록을 어떻게 실증하겠습니까. 건강한 경험 사학이 기존 실증사학의 빈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겁니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회들이 공동으로 검증해 ‘삼국사기 연대기’를 새로 편찬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김 교수의 바람이다. “현행 삼국사기 번역을 더욱 정밀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증하다 보면 기록에 없는 것을 찾아내거나, 바로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역사 관련 정부기관도 참여해서 한 10년 동안 해 보면 어떨까요?”성남=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내년 제20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예술감독으로 이장환 어반오퍼레이션즈 대표(51)가 선정됐다. 홍익대와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를 졸업한 이 감독은 카타르 국립도서관 등을 설계했다. 비엔날레에서 선보일 주제는 ‘사라지는 도시, 누적하는 건축(가제)’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사망한 뒤 실록청을 설치해서 썼다. 고종과 순종 시대의 실록은 일제가 편찬했다. 수록된 사료는 침략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취사 선택됐다. 조선이 신문물 수용의 창구로 미국을 주요하게 고려했음에도, 실록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원문만 실려 있다. 그에 반해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는 관련 문건이 네댓 개나 올라 있다. 조선이 스스로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을 찾기 어려운 이 실록을, 오늘날도 적지 않은 이들이 찾아 읽는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팀이 이들 실록을 보완 및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누락된 근대 공문서를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고 공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교육부 예산을 받아 2024년 시작은 했지만 인력이 충분치 않은 실정이라고 한다. 원래 10년 기한으로 연 10억 원의 예산을 신청했는데, 5억 원만 반영된 탓이다. 그나마 눈 밝은 이들이 예산을 절반이라도 살린 덕에 사업이 닻을 올린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지만 계획대로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가운데 역사 분야 연구와 자료 수집 및 보존 등에서도 차질이 빚어졌던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관련 기관도 마찬가지다. 국립중앙도서관 운영 프로그램 예산은 지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해 21%를 삭감했는데, 올해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국가지식문화유산의 전승’을 첫째 사명으로 하는 이 기관의 고문헌과 근대문헌 수집 예산도 해마다 깎여 올해는 2023년(13억6000만 원) 대비 반 토막이 났다. 그 결과로 2024년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이 경매에 나왔지만 중앙도서관은 응찰도 할 수 없었다. 올해엔 보물급인 ‘이복근 정사공신녹권’의 감정평가를 받고 1억6800만 원에 소장자로부터 매도 동의까지 받았는데, 예산이 없어 막상 계약은 내년으로 미뤄야 했다. 내년 예산은 더욱 깎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매수가 아예 무산될지도 모르는 실정이라고 한다. 귀중 자료의 복원 및 보존 처리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앙도서관엔 양장본(洋裝本)과 동장본(東裝本)을 통틀어 지류 복원 담당 학예사가 딱 1명 있다. 그나마 보물 등으로 지정된 고문헌이 작업의 우선순위에 놓이니, 산성화에 취약한 근대 문헌은 오늘도 그냥 바스러져 간다. 우리의 중앙도서관 격인 일본 국회도서관엔 양장본 6명, 동장본 4명 등 복원 담당자가 총 10명이 있다. 담당자 수가 10 대 1이다. 국격(國格)의 차이는 이런 데서 난다. 일본 총리가 독도를 두고 “일본의 영토라는 인식을 국제 사회에 알려 나가야 한다”고 하는데, 역사 왜곡에 대응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은 어떨까. 역시 지난 정부의 R&D 예산 삭감 과정에서 2024년 사업비가 전년 대비 27% 줄었는데, 올해 예산도 거기서 고작 2.3% 늘어난 수준이다. 이번 정부는 출범 1주년을 앞두고 ‘연구생태계 복원’을 성과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아마 과학기술 분야에 한정된 얘기가 아닌가 한다. 미래 먹거리도, 인공지능(AI)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마침내 길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는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성찰하는 데도 적절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