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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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5-04-02~2025-05-02
문학/출판25%
문화 일반20%
인사일반13%
역사13%
칼럼10%
미술10%
대통령3%
패션3%
종교3%
  • [광화문에서/조종엽]‘五賊’에서 ‘개미’로 ‘사상계’ 55년 만의 복간

    학자 100명이 ‘1945∼1960년 학문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저술과 인물’로 꼽은 건 특정 인물도 저서도 아닌 월간지 ‘사상계’였다(2005년 교수신문). 장준하 선생(1918∼1975)이 1953년 창간하고 운영한 이 잡지는 전후의 폐허 속에서 사상의 수원지 같은 역할을 했다. 1970년 정권에 의해 강제 폐간될 때까지 우리 민주주의와 지성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55년이 흘러 지난달, 사상계가 계간지로 재창간 1호를 발간하며 돌아왔다. 장준하의 장남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장이 발행인이다. 장 발행인은 “시대정신이 사상계를 부르고 있다”며 “문명과 정치를 비롯한 거대한 ‘전환의 시대’에 작은 물꼬를 트는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작금의 한국이 처한 현실 탓인지 그의 포부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권위주의 시대인 1960, 70년대 창간한 문예지와 1980년대 민주화 물결과 함께 만들어진 계간지들은 시대의 전환기에 한국 사회에 대안적 상상력을 제공했다. 경영난 등으로 그런 잡지 태반이 사라진 시점에, 사상계의 새삼스러운 복간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기초부터 다시 점검할 때가 됐다는 신호처럼 여겨진다. 사상계 폐간의 결정적 계기는 당대 권력자들을 정면으로 비판한 김지하 시인(1941∼2022)의 걸작 ‘五賊(오적)’ 게재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 한국이 직면한 과제는 훨씬 난해하고 복합적으로 변했다. 그런데 이를 풀어야 할 정치판에선 여전히 서로를 두고 ‘적(賊)’이라고 손가락질할 뿐이다. 사상계 편집위원을 맡은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재창간호 권두에 게재한 글 ‘다중 문명전환과 한국의 다중정치’에서 “한국에서 정치는 본령을 잃은 채 진영과 인물 사이의 사법 전쟁으로 옮아갔다”면서 “탈진영적 국가 의제의 성취에 계속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후진적 정치가 반복되는 동안 젊은이들은 무한 경쟁에 내몰린 탓에 ‘공동체의 대(代)’가 끊겨 가고 있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된 유튜브 콘텐츠 중 하나는 독일 쿠어츠게자크트(Kurzgesagt) 채널의 ‘한국은 끝났다(South Korea is over)’였다. 쉽게 말해 ‘한국은 초저출산으로 이미 망(亡)테크를 탔고, 돌이키기가 극도로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내용이다. 경제활동 인구가 사상 최다인 지금은 체감하지 못하지만 앞으론 경제와 사회, 문화의 붕괴가 예정돼 있으며, 출산율이 당장 3배로 올라도 고난의 시대를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건 ‘민주화’ 이후 담론이 힘을 잃은 탓도 있다. 호랑이 등에서 내리고, 설국열차를 떠나려면 용기와 함께 상상력이 필요하다. 함의는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복간한 사상계는 일단은 ‘생태’와 ‘청년’ 등을 키워드로 잡은 듯하다. 경쟁 압박이 생태적 압력의 수준에 이른 가운데, 무한경쟁 아니면 공동체의 몰락이란 극단적 선택지 말고도 제3의 길이 있다는 걸 사상계가 알려주길 기대한다. 사상계 재창간호 표지엔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시 ‘개미’가 실렸다. “점/점/점/점이 움직인다//점/점점/점점점/점이 점점 많아진다//점들이 모여 메를 이룬다/메가 움직이니, 해도/따라 비춘다”. 개미들이 메(산)를 이루면 태양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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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한달간 대한민국 미술축제… 7개 비엔날레 연계

    전국 각지의 비엔날레 행사와 아트페어 등을 연계하는 ‘대한민국 미술축제’가 지난해에 이어 올가을에도 개최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9일 ‘2025 대한민국 미술축제’ 출범식을 열고 “9월 한 달간 전국의 다양한 미술 행사와 협력해 입장권 특별 할인과 한국 차세대 작가 전시 개최를 지원하고, 국내외에 통합 홍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축제는 지난해 참여한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에 더해 청년작가 미술축제인 아시아프와 7개 비엔날레가 협력해 열린다. 서울미디어시티·청주공예·대구사진·광주디자인·전남국제수묵·세계서예전북 비엔날레 및 2025바다미술제 등이다. 6월 16일부터 주요 행사의 입장권을 정가 대비 30∼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아트페어 개최로 세계 미술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9월 초에는 한국의 차세대 작가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아트선재센터 등 서울의 전시 공간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비엔날레와 연계한 신진 작가 기획전시를 새롭게 개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인천·김포·김해공항 등 주요 국제공항도 관련 전시를 연다.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 예술경영지원센터는 국제 학술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전문해설사를 동반하고 지역 미술관, 갤러리와 인근 관광명소를 함께 둘러보는 ‘전국 미술여행’도 마련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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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한달간 ‘대한민국 미술축제’… 입장권 할인·차세대 작가 전시 개최

    전국 각지의 비엔날레 행사와 아트페어 등을 연계하는 ‘대한민국 미술축제’가 지난해에 이어 올 가을에도 개최된다.문화체육관광부는 29일 ‘2025 대한민국 미술축제’ 출범식을 열고 “9월 한 달간 전국의 다양한 미술 행사와 협력해 입장권 특별할인과 한국 차세대 작가 전시 개최를 지원하고, 국내외에 통합 홍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올해 축제는 지난해 참여한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에 더해 7개 비엔날레가 협력해 열린다. 청년작가 미술축제인 아시아프와 서울미디어시티·청주공예·대구사진·광주디자인·전남국제수묵·세계서예전북 비엔날레 및 2025바다미술제 등이다. 6월 16일부터 주요 행사의 입장권을 정가 대비 30~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아트페어 개최로 세계 미술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9월 초에는 한국의 차세대 작가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아트선재센터 등 서울의 전시 공간 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비엔날레와 연계한 신진 작가 기획전시를 새롭게 개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인천·김포·김해공항 등 주요 국제공항도 관련 전시를 연다.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 예술경영지원센터는 국제 학술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전문해설사를 동반하고 지역 미술관, 갤러리와 인근 관광명소를 함께 둘러보는 ‘전국 미술여행’도 마련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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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년전 그려진 이순신 초상화 추정 사진 공개

    19세기 말 이순신 장군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초상화 사진이 새로 공개됐다. 이순신 연구 전문가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최근 발간한 ‘교감완역 난중일기’(여해) 개정판에서 새롭게 파악된 군복 차림의 이순신 장군 초상화 사진(사진)을 게재했다. 해당 초상화는 콧수염을 ‘八(팔)’자 모양으로 길게 기른 모습으로, 현대에 그린 영정과 비교해 무인다운 근엄한 느낌을 준다. 초상화의 오른쪽 아래엔 먹으로 ‘汝諧眞影(여해진영)’이란 글이 쓰여 있다. 여해는 이순신의 자(字)다. 가로세로 50X83cm 크기의 족자 형태로, 뒷면엔 작게 ‘祠堂(사당)’이라고 적혀 있어 영정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노 소장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그려져 국내의 이순신 사당에 소장됐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현존하는 고본(古本) 영정류 가운데 얼굴의 상이 가장 잘 그려져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공개된 초상화는 국내 개인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으며, 소장 이력 등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진위 여부 등을 포함해 전문가들의 추가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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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 노래하면 바이런 같은 시인된다던 헐버트 박사, 케이팝 세계적 유행 예언한 셈”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는 ‘한국인은 즉흥곡의 명수로서 한국인이 아리랑을 노래하면 워즈워스나 바이런 같은 시인이 된다’고 했지요. 오늘날 케이팝의 세계적 유행을 약 130년 전에 예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헐버트 박사의 영문판 일대기 ‘What About Korea?(한국을 어찌할 것인가?)’를 최근 출간한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75)은 14일 “1896년 아리랑을 최초로 서양 음계로 채보한 헐버트 박사는 ‘아리랑은 영원한 한민족의 노래가 될 것’이라고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신간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헐버트 박사(건국훈장, 금관문화훈장 수훈)의 삶을 박사의 고국인 미국에 영문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미 백악관과 상하원, 주립도서관 등에도 발송될 예정이다. 1999년 기념사업회를 발족한 김 회장은 “대학 시절 헐버트 박사의 고귀한 삶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마음먹은 지 약 50년 만”이라며 감회에 젖었다. 책 내용은 김 회장이 2019년 국내 출간한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를 바탕으로 미국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보완했다. 이번 책 제목은 3·1운동 뒤 헐버트 박사가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에 제출한 ‘한국 독립 호소문’에서 따왔다.“한국인 7000여 명이 학살됐다면서 박사가 피맺힌 절규를 합니다. 제가 미 내셔널 아카이브에서 2004년 찾아낸 문서지요.” 책엔 헐버트 박사가 1889년 조선 말글의 우수성을 뉴욕트리뷴지에 기고하며 한글 자모를 사상 최초로 서구에 소개한 것과 1905년 을사늑약을 저지하기 위해 고종과 전보를 교환한 내용이 담긴 뉴욕타임스(NYT) 기사,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직후 “일본 외교는 속임수가 전부”라고 한 기고문 등 김 회장이 발굴한 중요 사료들도 담겼다. 김 회장은 1949년 박사의 서거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동아일보 보도를 모아 2015년 추모 특집 소책자를 만들고 박사 영전에 헌정하기도 했다.“헐버트 박사의 삶은 국경을 초월해 세계 젊은이들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어요. ‘승리보다 원칙이 더 중요하다’는 가훈을 온전히 실천한 행동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와 세계에 필요한 말이기도 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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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해주 ‘신한촌’ 전에 ‘개척리’ 있었네

    을사늑약이 맺어지던 1905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의 집을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 찍는 사람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지켜보는 이들이 집 앞에 좌우로 늘어섰는데, 영락없는 한국인의 얼굴이다. 당시는 ‘독립운동의 성지’ 신한촌이 건설되기 6년 전. 사진은 신한촌에 앞선 한인 거주지 ‘개척리’의 풍경이다.20세기 초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은 그동안 주로 민족운동의 시각에서 조명돼 왔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는 당연히 그 범주를 넘어선다. 이런 한인들의 이민사 자체에 주목한 신간 ‘귀화를 넘어서: 러시아로 간 한인 이야기’(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사진)가 최근 발간됐다. 저자는 한인 이주사를 주제로 성균관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자 송영화 씨다. 책에 따르면 개척리는 위생 문제를 우려한 러시아 당국이 늘어난 이민자를 격리하면서 형성된 ‘황인종 게토(ghetto)’였다. 1893년 당국은 한인에게 주거환경이 열악한 시외의 이 지구를 배정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와 개척리를 잇는 큰길이 ‘카레이스카야(한인) 거리’였다. 한인들은 자치기관인 한인거류민회를 구성하고 교육과 위생, 치안을 주요 사업으로 내세웠다. 한인 언론도 위생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청결한 행위로 러시아 당국의 신용을 얻고 자치를 허용받아야 고국 독립의 기초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척리는 1911년 당국에 의해 방역을 명목으로 결국 철거됐다. 저자는 “개척리 철거는 위생 논의에 기반했지만, 동시에 인종주의적 조치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합하자 한인의 법적 지위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일본은 신민화를 유도했다. 한인이 일본인이 되면 거주허가증 발급비가 85% 줄었다. 반면 러시아는 일본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한인에게 국적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에 반감을 지녔던 한인 망명자들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해 일본의 체포와 간섭을 피했다. 이주 한인들은 러시아에서도 뛰어난 농업 능력을 인정받았다. 러시아 외무성 관료 그라베는 한인이 “농작이 불가능한 땅이라 하더라도 잘 일궈 귀리 또는 메밀을 재배한다”고 기록했다. 아무르주의 한 농장에선 한인이 경작한 땅의 단위 수확량이 러시아인의 최대 5배였다고 한다. 한인들의 높은 농업 생산성이 지역의 물가를 안정시킬 정도였다. 러시아는 한인의 러시아 동화 가능성을 끊임없이 의심했지만 한인들은 러시아인이 다니는 학교에 자녀를 통학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저자는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은 고국의 식민화와 현지 적응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마주했다”며 “한반도 바깥에서 새롭게 탄생할 고국을 꿈꿨다”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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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찬탄이든 반탄이든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1980년)’를 여러 차례 꼽았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부활을 주장한 책으로, 일각에선 ‘대통령이 시장 만능주의에 경도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대통령과 나라의 운명이 걸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목전에 둔 가운데, 프리드먼이 이 책 맨 앞에 인용한 한 논고 구절이 눈길을 끈다. “정부의 목적이 유익할 때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경계해야 한다는 걸 경험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들은 악의를 가진 통치자들이 자유를 침해하는 걸 본능적으로 경계한다. 진짜 위험은 열정적이고 선의를 가졌지만 분별이 없는(without understanding)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자유를 침식하는 데 도사리고 있다.” 프리드먼은 정부 정책의 의도가 좋더라도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면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했을 것이다. 원래 이 글을 쓴 이는 미국에서 ‘국민들의 변호사’로 불린 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1856∼1941)이다. 1928년 정부의 사생활 침해에 맞서 프라이버시권의 보장을 역설하며 썼다. 브랜다이스는 경찰이 밀매업자를 감청한 건 부당하다, 범죄자 검거라는 ‘목적’이 불법 도청이라는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무법자가 되면 시민들도 그럴 테고, 세상이 무법천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짧은 인용구를 얼마나 곱씹어가며 읽었을지는 알 도리가 없다. 12·3 비상계엄이 ‘악의를 가진 통치자’의 자유 침해인지, ‘선의를 가진’ 침식 시도인지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중요한 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열정만큼이나 ‘분별 있는 시민’들의 존재가 필수라는 데 있다. 누적된 정치 갈등과 세 대결로 광장은 찬탄과 반탄으로 갈린 채 일촉즉발 상황이다. 헌재에서 원하는 판결이 나오지 않을 경우 불복할 것을 부추기는 정치인들 탓이 크다. 결정이 발표되면 어느 한쪽은 그동안의 믿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은 분노를 느끼고, 분노는 쉽사리 상대를 향한 증오로 바뀐다. 다수가 그런 감정에 몸을 맡겼다간 우리가 간신히 만들고 지켜 온 민주주의가 일거에 무너질 소지마저 없지 않다. 새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을 생각해 본다. 그는 어릴 적 비를 피하다 “내 곁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이 사람들 모두, 그리고 건너편의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고 했다. “수많은 1인칭 시점의 존재를 경험한 놀라운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의견이 달라도 우리는 어차피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 ‘1인칭 시점’까진 무리라고 해도, 최소한 찬탄을 외치는 사람이나 반탄을 외치는 사람이나 서로 조타실을 빼앗으려다 배가 침몰하면 모두 치명적인 피해를 볼 뿐이라는 인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적어도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려 해선 안 된다. 이해와 납득, 그리고 분별. ‘언더스탠딩(understanding)’이 갈등을 딛고 우리 사회를 회복시켜 미래로 이끌 열쇠다.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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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재 결정 무조건 승복해야… 폭력 사태땐 한국 감당못할 위기”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승복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다면 그들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모두)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발언과 행동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헌재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예고하자 원로 및 전문가들은 1일 헌재 결정에 대한 조건 없는 승복을 강조했다. 초유의 12·3 비상계엄과 장기화된 탄핵 정국으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분노한 민심이 헌재 심판 결과를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정치·사회 지도자부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 지도자들이 통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내놓는 등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민 통합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불복하면 감당할 수 없는 위기 맞을 것” 원로들은 탄핵 찬반 세력과 양당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한국 사회의 갈등이 위험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진단했다. 헌재 심의가 길어진 것도 양측이 세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 양측이 자제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며 “시민들이 계속 광장으로 달려 나오는 건 위험천만하다”고 했다. 그는 “탄핵이 인용되면 반대 측에서 항의 집회를 벌이는 등 소요가 일 것”이라며 “대선에 후보를 내 정상적으로 선거를 하고 결과에 순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지 않으면 혼란이 훨씬 클 것이라는 게 최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모든 결과를 다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그런 경우엔 사태가 폭동으로 번질 위험마저 있다”며 “대통령이 임기 단축과 개헌을 시도한다고 해도 엄청난 논쟁을 불러올 것인데, 얼마나 동의를 얻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손 교수는 “개인적으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국가와 국민에 대한 폭력이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속이 쓰릴지언정 받아들여야 한다. 한번 결정된 헌재 판결을 무리하게 바꾸겠다면 남는 것은 폭력뿐”이라고 강조했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agree to disagree)’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대한 이해와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인정이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나 국민들한테 필요하다”며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의 승복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선고 당일) 여야 지도부에서 승복한다는 공식 성명부터 내야 한다”며 “(국민들이 승복하게 만들기 위해선) 차기 주자들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게 통합 얘기를 자꾸,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 “이제 통합의 시간이 돼야” 국민 분열이 극심해진 현 상황에 대해 정 회장은 “한쪽에서는 다수결, 한쪽에서는 거부권 등으로 힘의 논리를 자제하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며 “정치 지도자들이 헌재의 결과를 자기 유리한 쪽으로 서로 유도하기 위해 지금 양쪽에서 텐트를 치고 장외 정치를 하는 이런 모습은 민주국가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선고날인 4일 ‘국가를 걱정하는 원로 모임’에서 국민들은 평상으로 돌아가고 정치인도 원내로 돌아가라고 권면할 예정”이라며 “탄핵심판 이후 국민통합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법적 판단과 별개로 모든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 바로 윤 대통령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며 “전쟁이나 전시에 준하는 상황도 아닌데 계엄을 선포하고 총을 든 군인을 국회로 보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탄핵이 인용될 경우 탄핵 반대 쪽은 헌재의 결과에 승복하고 특히 일부 지도자들은 1월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 난입과 같은 일이 초래되지 않도록 지지층 결집 메시지를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헌 등을 통한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 교수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정부 여당과 의회 권력 간의 극한 대립이 계엄이라는 불덩이를 만나 엄청난 폭발력을 갖게 됐다”며 “이번 사태를 정당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드는 전기로 삼아아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위성정당을 불러온 현행 비례대표제를 없애고, 다당제의 정착을 위해 중대선거구제나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강 교수도 “헌재 결정이 또 다른 갈등이나 극단적 대결로 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정치제도의 개혁이나 개헌 논의도 나오고 있는데 승자독식 구조를 깨고 포용적 형태의 국정 운영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왜곡된 정보가 증폭돼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202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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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취약한 AI, 고전 번역에 한계… 우리말 의역엔 강점

    최근 학계에선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우리 한문 고전의 번역에도 시험적으로 쓰이고 있다. 한 한문학계 원로는 “젊은 연구자들이 번역을 AI에 의존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기본기가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AI를 쓰면 공부가 늘지 않을까 봐 우려된다는 것이다. AI의 한문 번역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한국고전번역원의 권경순 대외협력처장과 최두헌 선임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챗GPT 4o’(유료), ‘제미나이 2.0 프로’(유료)가 번역한 결과물을 인간 번역자의 것과 비교해 봤다.● 한국어는 청산유수인간 번역자는 성종실록 성종 19년 5월 20일 기사를 “이미 체임(遞任)된 수령은 어쩔 수 없지만, 시임(時任) 수령도 공초를 받지 않고 해당 아전이 공초한 말만 가지고 파직하기도 하고 자급(資級)을 강등하기도 하였으니”라고 옮겼다. 이에 비해 챗GPT는 “이미 교체된 수령(守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지만, 현재 재직 중인 수령조차 직접 소환하여 조사하지 않고, 단지 해당 아전(吏)의 진술만을 바탕으로 삼아 어떤 이는 파직되고, 어떤 이는 강등되는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옮겼다. ‘시임’ ‘공초’와 같은 말을 오늘날 널리 쓰이는 표현으로 옮긴 것이다. 최 연구원은 “가독성과 한국어의 자연스러움 측면에 한정하자면 챗GPT가 인간 번역자보다 낫다는 느낌도 든다”며 “나중엔 번역의 품질 향상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I는 의역이나 생략된 단어를 살려 옮기는 데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일부 번역물은 예스러운 말투 탓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군데군데 오역… 신뢰 어려워AI 고전 번역의 문제는 오역과 들쭉날쭉한 수준이다. 챗GPT와 제미나이는 남구만(1629∼1711)의 ‘약천집(藥泉集)’에 실린 ‘좌윤 최공의 묘갈명(左尹崔公墓碣銘)’을 번역하면서 “무인년에 (최)공은”이라는 뜻의 “戊寅公”을 ‘무인공’이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것처럼 잘못 옮겼다. 권 처장은 “AI가 수식어 등을 인명으로 인식하는 오류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고 했다. 같은 글에서 “중을 홍승주의 군문(軍門)으로 보낸 것입니다(送僧洪軍門是已)”라는 구절은 “승려 홍을 청나라 군영으로 보낸 일입니다”(챗GPT)라고 오역했다. ‘홍군문’은 명나라 측 인물인 홍승주의 군영을 가리키는데도 역사를 모르는 AI가 洪(홍)을 승려 이름으로 번역하는 등 내용을 엉뚱하게 왜곡한 것이다. 챗GPT에선 이를 포함해 한자 210자 분량을 번역했는데 명백한 오역이 5군데 발견됐다. 제미나이 역시 성종실록 기사에서 “일전에 군적 경차관(軍籍敬差官)으로 보낸 관원들”을 “전직 군인 신분으로 경차관에 임명되었던 자들”로 오역했다. 연구원들은 “AI를 초벌 번역용으로 쓰려고 해도 아직은 처음부터 사람이 번역하는 것에 비해 별로 시간이 줄지 않는 수준”이라고 했다.● ‘만능 아닌’ AI, 현명히 활용해야 이 같은 한계는 이들 AI가 학습한 고전 및 우리말 번역 자료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권 처장은 “지금은 인물이나 전례, 고사 등의 정보 검색도 썩 만족스럽진 않은데, 관련 정보가 많은 언어로 질문할 경우엔 더 유용한 답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연구자들 사이에선 ‘어차피 대세인 기술이라면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게 준비하자’는 분위기도 생기고 있다. 최 연구원은 “향후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사람은 번역이 제대로 됐는지를 살피고, 주석을 풍부히 하는 등 심화 연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 역시 인간 연구자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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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하, 민족 역량 결집해 건국에 헌신”

    고하 송진우 선생(1890∼1945)의 탄생 135주년과 서거 80주기 기념 학술대회가 1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송진우의 민족독립과 자유민주건국을 위한 활동’을 주제로 열렸다. 고하는 일제강점기 중앙학교장과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고, 광복 후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로 활동했다. 현병철 고하송진우선생기념사업회 이사는 개회사에서 “고하는 3·1운동을 계획하고 조직했고 문화 교육 활동으로 국민을 깨우치는 데 헌신했다”고 소개했다. 이어진 주제 발표에서 이민원 대한민국사연구소장은 “고하는 나라에 대한 충성과 민족의 문화전통에 대한 자긍심, 현실 국제 정치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독립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신념을 갖고 민족운동을 계속했다”고 밝혔다. 이택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중시해 임정을 중심으로 민족의 역량을 집결해 건국에 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박찬욱 서울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토론자로는 남희숙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과 이선민 서울대 객원연구원, 김영수 영남대 교수, 이명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참여했다.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에겐 ‘고하연구장려금’이 수여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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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신문기사 등 AI학습 데이터 의무 공개 추진

    문화체육관광부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개발에 쓰이는 신문 기사 등 학습 데이터의 공개를 의무화하도록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기본법) 개정을 추진한다. 문체부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장기 문화비전 ‘문화한국 2035’를 발표하며 “생성형 AI의 데이터 학습·활용 과정에서 저작권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나 선진적인 법체계는 부족한 실정”이라며 “AI와 관련된 저작권 등록 및 활용, 보호 등의 제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대형언어모델(LLM) 개발에 활용되는 언론사 (기사) 자료를 비롯해 다양한 창작물의 저작권을 보호하겠다”며 “AI가 학습한 데이터의 공개 의무화를 위해 AI 기본법과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제정된 AI기본법은 이 같은 규정이 빠져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문체부는 이어 “AI를 통해 만들어진 저작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도록 등록 기준을 개편하는 방안도 추진한다”고 덧붙였다. 문체부는 이날 국립예술단체와 문화예술 공공기관의 지역 이전 추진도 발표했다. 먼저 올해 국립청년예술단체 4개를 지역에 신설할 계획이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최근 국립예술단체 등의 지역 이전에 대한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지역 이전을 통해) 더 많은 민간 예술가가 공급되고, 예술가들에게도 안정적인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추진 의사를 밝혔다. 문체부는 이 밖에 △저출생·고령화 등 사회 위기 문화적 대응 △콘텐츠·관광·스포츠 등 산업 생태계 혁신 △문화 분야 인공지능 대전환 △세계 문화 리더십 제고 △문화 역량 제고 등을 향후 10년 동안의 핵심 정책과제로 꼽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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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곱씹을수록 깊은 ‘이어령의 사유’

    “사랑은 관찰이 아니다/잠수다/강물을 사랑하는 사람은/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고/그냥 뛰어든다”(사랑) “하지만 그것이 ‘민(民)’을 갈라 특정화하거나 민중에 영합하거나 신분과 지위의 전도를 목적으로 한 단순한 하극상으로 잘못 비칠 때 오히려 민주주의는 만종을 울린다.”(민주주의)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통찰이 빛나는 짧은 글이다. 고인은 작고하기 7년쯤 전부터 자신의 어록집을 내고 싶다는 뜻을 주변에 여러 차례 밝혔다고 한다.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을 모아서 사전을 만들어 주게나.”그 뜻에 따라 고인의 3주기를 맞아 발간된 어록집이다. 출판사 측은 “그가 평생 남긴 말과 글에서, 오직 ‘이어령의 사유’로 재정의된 수천 개의 단어와 문장을 모아 엮었다”고 했다. “이어령 장관님은 ‘보통 사람은 죽음이 끝이지만,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처럼 우리는 언제든지 장관님이 남기신 수많은 문장들을 통해 장관님을 만날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라는 추모사(지난달 26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그대로인 책이라 반갑다.“언어는 내 것도 아니며 네 것도 아니다. 조상들의 것이며 동시에 우리들의 것이자 또한 먼 내 자손들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시간) 특히 짧은 글에서 빛을 발했던 그의 사유는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어록집은 이번 책을 1권으로, 앞으로 시리즈로 계속 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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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노숙인 성지’로 묘사되는 3·1운동의 성지 탑골공원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 1회의 주요 무대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이다. ‘딱지맨’(공유)은 이 공원의 노숙인들에게 다가가 ‘자그마한 선물’이라며 복권과 빵 가운데 고르라고 한다. 대부분은 복권을 선택한다. 드라마는 마치 노숙인이 허황되게 ‘한 방’을 좇다가 신세를 망친 이들인 것처럼 왜곡했다. 더 안타까운 건 탑골공원의 묘사 그 자체였다. ‘딱지맨’이 앞에서 빵을 마구 짓밟는 탑골공원 팔각정은 106년 전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3·1운동의 성지다. 헌법 전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법통이 시작된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세계인이 가장 많이 본(8700만 회 시청) 이 드라마에서 이 공원은 노숙인들이 대낮에 아무렇게나 여기저기에 누워 있는 공간으로 표현됐다. 이는 실상과도 다르다. 공원 바로 옆엔 무료급식소가 우리 사회에 감로수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기자가 최근 여러 차례 공원을 찾아가 살폈으나 공원 내부에서 노숙인 행색을 한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세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탑골공원의 이미지는 드라마의 묘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기자가 주변에 이런 얘기를 꺼내자 태반은 ‘실제로 그런 것 아니냐’, ‘탑골공원에서 3·1운동이 시작됐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날 탑골공원은 1년에 하루 3·1절 기념식이 열릴 때 말고는 사실상 죽은 공간이나 다름이 없다. 공원 안엔 지금은 없어진 옛 문화재 지정번호로 ‘국보 2호’인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있다.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히는데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점심시간에 나와서 쉬는 직장인도 찾기 어렵다. 과거 이 공원이 “우리 서민의 정든 곳”, “서울 한복판에서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우리들의 공원” 등으로 인식됐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이렇게 된 큰 원인 중 하나가 공원을 ‘섬’으로 만들고 있는 담장이다. 특히 공원 북쪽과 동쪽 담장 너머 골목은 담장으로 시선이 가려지면서 노상 방뇨와 음주 문제가 오랫동안 심각했다. 지난달 25일 점심때도 남자 둘이 주먹다짐을 해 경찰이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897년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만들어진 탑골공원은 옛날 사진을 보면 원래도 담장이 있긴 했다. 그 시절에 담장이 없는 열린 공원을 상상하긴 어려웠으리라. 그러나 종로구에 따르면 현재의 담장은 1960년대 지어졌던 ‘파고다 아케이드’ 상가를 철거하면서 1980년대 초 모두 새로 만든 것이다. 유산적 가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종로구는 지난해 서쪽 담장 가운데 일부를 허물고 발굴 조사를 했지만 원래 담장의 유구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종로구는 장기적으로 탑골공원의 담장을 허물고 개방형 시민공원으로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원형을 살리겠다고 굳이 새 담장을 만들어 공원을 계속 고립시킬 이유가 없다. 원래 담장 모습이 어땠는지 확인해 볼 가치야 있겠지만 키가 작은 수목 등으로 경계를 표시하는 정도로 복원하면 족할 것이다. 담장을 허물면 석탑 등 내부 국가유산의 보호가 더욱 중요해지겠지만 지금도 출입이 자유로운데 새로운 안전 문제가 생길 것 같지도 않다. 공원을 다시금 시민의 일상에 들여와 3·1운동의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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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유관순, 끝까지 독립의지 안버려”… 3·1운동 가르치는 日양심들

    “사람들은 일제히 ‘독립 만세’라고 외쳤습니다. … 여학생 유관순도 … 고향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일본 헌병대가 모인 사람들을 향해 발포하여 부모님은 살해당했습니다. 유관순도 체포되어 재판에 부쳐져 이듬해 10월 감옥에 갇힌 채 사망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조선 독립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 마나비샤(学び舎) 출판사가 만든 중학 역사 교과서에서 3·1운동에 대한 서술 가운데 유관순 열사(1902∼1920)를 다룬 대목이다. 이 교과서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유관순 열사의 부조와 수형기록표 사진, 3·1독립선언서 요약본 등을 시각 자료로 싣는 등 3·1운동이 충실하게 서술돼 있다. 서술 분량은 2개 면에 걸쳐 있어 일본에서 사용되는 중학 교과서 중 최대다. 다른 중학 역사 교과서 7종은 분량이 보통 해당 교과서의 절반 이하이고, 두어 문장으로 끝낸 책도 있다.이 일본 역사 교과서는 시민단체 ‘아이와 배우는 역사 교과서 모임’(배우는 모임)이 설립한 마나비샤 출판사가 출간했다. 106주년 3·1절을 앞두고 동아일보와 e메일로 인터뷰한 야마다 레이코(山田麗子) 배우는 모임 부대표(71)는 “마나비샤 교과서는 민중과 여성,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사람들이 눈앞의 역사적 사건을 마주하고 다양한 형태로 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마다 부대표는 출판사 편집제작부 소속으로 교과서 제작에 참여했다. 야마다 부대표는 교과서의 3·1운동 서술에 대해 “유관순을 등신대(等身大) 소녀로 그려 부모와 그녀의 죽음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는 물음이 학생으로부터 터져 나오도록 기술했다”고 강조했다. 유관순 열사 역시 평범한 소녀였음을 드러내 학생들이 근본 원인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교사와 시민, 학부모 등 회원이 600여 명인 ‘배우는 모임’은 “아이가 계속 읽고 싶어지는 매력적인 교과서를 만들고 싶은 전현직 교사들이 2010년 만든 모임”이다. 2013년 설립한 마나비샤가 만든 중학 역사 교과서는 2015년을 시작으로 지난해 세 번째로 검정을 통과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교사가 쓰고 역사 연구자가 감수한 것이 특징. 3·1운동 부분은 한국 교사들과 수업 교류를 해 온 미쓰하시 히로오(三橋廣夫) 씨가 집필했다고 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일본 교과서는 주로 3·1운동을 1차대전의 종전과 민족자결주의 확산의 영향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마나비샤 교과서는 동양척식회사의 토지 침탈, 일본식 교육 실시 등 식민 통치의 문제점도 자세하게 다룬다. 야마다 부대표는 “근대 일본과 조선의 관계사도 동학농민군의 주장과 싸움, 동양척식회사의 토지 몰수에 저항하는 농민들의 생각도 기술했다”며 “그런 큰 흐름 속에서 3·1독립운동도 쓰고 있다”고 했다. 교과서에 한반도에서 3·1운동 발생 장소를 지도로 표현한 그래픽과 함께 “3·1운동에는 약 110만 명이 참가했고, 4월 말까지 1200회 이상의 데모가 행해졌다”고 서술한 것도 같은 취지다. 야마다 부대표는 “이 운동이 생활에 뿌리내린 지역의 요구에 근거하고 있던 것을 기술했다”며 “당시 조선 백성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학생들이 더 조사할 것을 기대하며 편집했다”고 했다. 해당 교과서는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서술한 중학 역사 교과서 2개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91년 한국의 김학순의 증언을 계기로 하여, 일본 정부는 전시하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하여 조사를 했다. 그리고 1993년에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는 정부 견해를 발표했다”고 ‘고노 담화문’ 요지와 함께 서술하고 있다. 다만 2021년 일본 각의 결정에 따라 “강제 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일본 정부 입장도 함께 기술했다. 현재 일본에서 마나비샤 중학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30여 곳으로 매년 약 4500명의 중학생이 쓰고 있다. 채택률은 약 0.5%지만, 일부 명문중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과 한국의 시민과 청년들 사이에는 문화를 통한 교류가 심화하고 있지만 역사 학습의 깊이는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돼 왔습니다. 한일의 친선과 우호를 위해서, 앞으로도 아이들이 넓은 시야로 배움을 깊게 할 수 있는 교과서 만들기에 노력하겠습니다.”(야마다 부대표)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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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알아두면 쓸모있는 서양 고전 속 문장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 버리는 것처럼 북핵 이슈를 한 번에 풀어보겠다.” 신문 등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문장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 도대체 뭐기에 복잡한 문제를 대담한 행동으로 단번에 해결한다는 뜻으로 쓰일까.고대 프리지아는 내란이 거듭돼 혼란을 겪었는데,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 번째 사람이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된다’는 신탁에 따라 고르디우스라는 농부가 왕으로 추대됐다. 고르디우스는 신전에 자신이 타고 온 마차를 기념으로 묶어 뒀다. 아무도 훔쳐 가지 못하도록 매듭을 아주 복잡하게 꼬아 묶었다. 이후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이 나오자, 풀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다 마침내 원정에 나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렸다는 얘기다.서강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 등 서구 문학이론을 소개했고, ‘노인과 바다’ 등 명작을 다수 번역한 영문학자다. 그가 서양 고전에 뿌리를 둔 관용어나 고사성어 59개를 추려 유래를 설명했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동명 할리우드 영화(1939년)로 유명해진 말이다. 동명의 원작 소설(1936년)은 제목을 19세기 영국 시인 어니스트 다우슨의 다음과 같은 시구에서 따 왔다. “시나라(Cynarae)여, 나는 많은 것을 잊었노라, 바람과 함께 사라졌노라”. 흥미로운 얘기들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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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릉도-독도, 영토로 관리’ 조선시대 자료 나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조선이 울릉도와 독도를 영토로 관리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 ‘항길고택일기’(사진)를 동북아역사넷 독도아카이브에 19일 공개했다. 재단에 따르면 조선은 17세기 말부터 울릉도에 전임 도장(島長)을 둔 1895년까지 약 200년간 수토(搜討)제를 운영했다. 수토관들은 3년마다 울릉도 등을 방문해 실태를 조사한 뒤 중앙정부에 보고했다. 18∼19세기엔 빈도가 늘어 2년마다 수토가 시행됐으며, 수토제는 1900년 울릉군(鬱陵郡)의 설치로 이어졌다. ‘항길고택일기’는 수토에 쓸 재원과 선박, 삼척 영장(營將)의 부임 등 생생한 수토 현장의 기록을 담고 있다. 재단 측은 “일기를 통해 수토선의 출발지가 삼척 평해 울진 등으로 다양했다는 점, 정기 수토 외에 불시 점검 성격의 수토도 시행됐다는 점 등 다양한 면모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기는 책력(달력)의 여백에 해당 일자에 벌어진 일들을 적은 메모 형태다. 18세기 중반부터 120여 년간 삼척부 용정리(현 강원 동해시)에 있던 항길택(恒吉宅)에서 작성한 12책이다. 2018년 강릉 김씨 감찰공파로부터 기증받은 고서 483책과 고문서 1070여 점 가운데 일부다.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이 자료가 독도 영유권 연구에 적극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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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도어업 독점위해 설립된 日회사, 자국법도 어겨”

    일본이 독도를 영토로 편입했다고 억지 주장하는 ‘시마네현(島根縣) 고시’ 120년을 맞아 이를 비판하는 관련 학술대회가 잇따라 열린다.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다케시마(竹島)는 주인이 없는 무주지”라며 독도를 시마네현의 오키도사(隱岐島司) 소관으로 불법 편입했다. 시마네현은 2005년 이날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했다. 영남대 독도연구소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는 26일 경북 경산시 영남대 법학전문도서관에서 ‘1905년 독도 편입의 불법성에 관한 학제간 연구’ 학술대회를 연다. 박지영 독도연구소 연구교수는 ‘일본의 독도 편입 과정에 관한 역사적 고찰’을 발표하고 독도 어업을 독점하기 위해 설립된 죽도어렵합자회사가 일본 국내법도 어겼음을 지적한다. 오시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식민주의와 선점 권원의 국제법 법리 검토’에서 일본이 1905년 당시 주장한 ‘무주지 선점 법리’ 자체의 허점을 밝힌다. 이 밖에 ‘1905년 시마네현 고시에 관한 비판론 재검토’(최지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본의 독도 영토편입 조치의 법적 성격에 대한 고찰’(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등도 발표될 예정이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는 25일 서울 서대문구 재단 대회의실에서 독도 침탈의 배경이 된 러일전쟁과 관련해 ‘러일전쟁과 영토의 지정학적 조명’을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머핸(A T Mahan)이 바라본 러일전쟁과 러일해전’을 주제로 러일전쟁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요르그 도스탈 서울대 교수는 ‘냉전 전후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개념과 독일-러시아 관계’를 통해 냉전 이후 전략이 고전적 지정학 사상에 따라 결정됐다고 지적한다. ‘러일전쟁부터 1차 세계대전까지 러일관계’(이나바 지하루 일본 메이조대 교수), ‘20세기 초 유럽에서의 러시아 문제와 고전 지정학의 형성’(이진일 성균관대 교수) 등도 발표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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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회 맞은 ‘한시를 영화로 읊다’… “한시 한 구절로 삶이 바뀔 수도”

    “한시 한 구절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10월부터 동아일보에 2주마다 게재한 칼럼 ‘한시를 영화로 읊다’가 20일 연재 100회를 맞았다. 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만난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햇수로 연재 6년째를 맞았다”며 “매회 칼럼을 온라인에 갈무리하는 독자도 생겼고, 감상문을 보내오는 분들도 있다”며 웃었다. 임 교수의 칼럼은 한문을 낯설어하는 세대가 늘어나는 오늘날에 누구에게나 익숙한 현대 매체인 영화를 매개로 한시를 쉽게 소개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임 교수는 앞서 대학에서 비슷한 교양강의를 했는데 ‘한시는 어렵고 케케묵은 것이라는 편견을 깼다’ 등 호평을 받았던 게 칼럼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임 교수는 “젊은 세대는 꽤 어려운 영화도 곧잘 감상하는데, 한시는 영화보다 감상이 훨씬 쉽다”며 “영화의 감성을 끌어오면 더 쉬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대학생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등 원래 영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영화라는 장르는 시작부터 한시와 친연성이 있다고 했다. “소련 영화감독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이 몽타주 이론을 가다듬을 때 한시에서 기원한 일본 하이카이(俳諧)의 영향도 받았거든요.” 임 교수가 연재한 칼럼에선 거장의 만남이 빈번했다. 5회에선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와 현대의 자장커(賈樟柯) 감독이 함께 고단한 삶에 관한 ‘산수화’를 그렸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와 영국의 린지 앤더슨 감독이 나란히 노년의 삶에서 보물을 건져 올리는 43회도 화제를 모았다. 카메라 워킹과 시인의 시선이 글을 통해 겹쳐지는가 하면, 동양의 미학적 이미지와 서양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교차했다. 임 교수는 한시 의상(意象·이미지) 연구가 전공으로 ‘조선중기 한시 의상 연구’ ‘전형과 변주’ ‘나의 장례식’ 등의 저서를 냈다. 그는 “한국의 한시는 중국 시의 영향이 압도적이지만, 변화를 거치며 중국과는 다른 시가 쓰였다”며 “방대한 한국 한시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통시적으로 연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임 교수의 칼럼들은 한시와 영화를 넘나들며 ‘구체적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짙었다. “과거에 실패한 양반이 남긴 한시는 ‘패배자의 노래’죠. 저는 그런 작품들이 더 와닿습니다. 한시를 통해 지난날에도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고, 그에 대한 답을 어떤 식으로 찾았거나, 또는 답 찾기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요.”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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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촌 선생 70주기 추모식… “공선사후를 실천한 애국 거목”

    동아일보와 고려대, 중앙중고교를 세우고 제2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70주기 추모식이 18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고인의 유택 앞에서 거행됐다. 추모식에는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회장 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을 비롯한 유족과 이진강 인촌기념회 이사장, 김동원 고려대 총장 등 각계 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추모 묵념에 이어 고인 약력 보고, 추모사, 고인의 육성 듣기, 분향 및 헌화의 순서로 치러졌다. 최맹호 동우회장은 약력 보고에서 “인촌 선생은 독립을 위해 민족교육, 민족산업, 민족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민의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제도의 확립을 평생의 과업으로 추진했다”고 했다. 이진강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6·25전쟁 시기에 인촌 선생은 소명 의식을 발휘해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제시하고 스스로 개척했다”며 “손해가 나도 바른길이면 꿋꿋하게 걸어간 선생의 공은 그대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평생 한국 언론사를 연구해 온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추모사에서 “인촌 선생은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었고 현대사에 발자취를 남긴 애국의 거목으로, 언론과 교육기관을 동시에 운영한 유일한 지도자”라며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수행한 선생의 애국애족이 더욱 그리워진다”고 추모했다.인촌을 ‘인생의 스승’으로 모셔 온 105세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날 영하의 날씨에도 추모식에 참석해 분향한 뒤 “병중이신 선생께 세배하러 갔을 때 ‘김 선생, 오셨구려’ 하고 맞아주시더니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 여러 번 기도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나이가 들고 보니 나라를 걱정하는 선생의 마음을 젊은 후배 세대들이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며 “가르침을 주신 선생께 꼭 인사하러 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연극배우 최초로 인촌상을 받은 박정자 배우는 “선생은 나라의 기틀을 잡으신 분”이라고 했고, 2022년 수상자인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젊을 때부터 여러 은사님들로부터 인촌 선생의 큰 뜻과 포용력에 대해 들어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왔다”고 했다. 2023년 인촌상을 수상한 김종규 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국내에서 일제의 핍박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겠는가”라며 “그런 가운데서도 교육과 언론,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선생의 헌신을 높이 기리고 싶다”고 말했다.“민주주의 기틀 다져 대한민국 건국 앞장서”인촌 선생 70주기 추모사민족과 나라를 위한 인촌 선생의 생각과 실천은 헌신적이고 크고 숭고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6·25전쟁 때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지금 우리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에서 민족의 존망이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선생께선 교육으로 나라의 기초를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중앙학교와 고려대를 세우고, 경성방직을 창업해 산업으로 나라에 보답하셨습니다.동아일보를 창간함으로써 나라의 힘을 키워나갈 동력을 굳건히 하셨고, 민주주의 기틀을 다져서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데 앞장서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제시하고 스스로 개척하셨습니다. 이는 선생의 소명 의식이 빛을 발휘한 덕분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선생의 젊은 시절 행적을 좇아가면서 다시 깨닫게 된 선생의 용기와 혜안에서 저희의 왜소함을 느꼈습니다. 중앙학교, 보성전문을 인수하고 동아일보를 창간하시며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이를 지켜내신 인내와 뚝심 앞에서는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존경의 마음이 가득 찼습니다.인촌 선생에 대해 배우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제일 큰 선생의 덕목은 아래와 같다고 감히 말씀 올립니다.“선생께서는 설령 이익이 보여도 그게 바른길이 아니면 가지 않으시고, 손해가 나도 그게 바른길이면 그래도 꿋꿋하게 걸어가셨습니다. 또 선생께서는 큰 공적을 이루고도 이를 내세우거나 거기에 기대지 않으셨습니다. 그 공은 어디로 가지 않고 그대로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강조하고 실천하려고 하셨던 건 ‘통합의 리더십’입니다. 민족의 스승이셨고, 국가의 큰어른이셨던 선생의 명복을 빌며 삼가 추모의 글을 올립니다.“독립 위해 민족의 역량 강조했던 선각자”인촌 선생 70주기 추모사인촌 김성수 선생은 언론인, 교육자, 정치인, 사업가로서 민족운동의 구심점이 되신 분이며, 한국 현대사에 폭넓은 발자취를 남기신 애국의 거목이십니다. 국내에서 일제의 압제를 몸소 겪으며 광복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선생은 한민족이 독립을 달성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언론과 교육을 통해 민족의 자주적 역량을 배양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사상을 실천했던 선각자였습니다. 일제 패망 이후 좌우익이 대립하던 혼돈의 시기에는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독재에 반대하는 세력을 결집해 대한민국의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수행하셨습니다.선생의 70주기를 맞아 불멸의 업적과 공선사후 정신을 돌이켜 보면서 선생의 업적과 애국애족 정신이 더욱 그리워짐을 느낍니다. 선생은 국내에서 문화적 민족운동을 이끌었던 주역이셨습니다.동아일보와 보성전문, 중앙중학은 민족 진영 인사들의 활동 무대이자 은신처였습니다. 민족 사학의 기틀을 다지고 오늘날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고려대라는 학문의 전당을 육성하였습니다. 1920년 창간한 동아일보는 총독부의 탄압을 견디면서 삭제, 압수, 정간, 언론인의 투옥 등 사법 처분의 가시밭길을 헤쳐 왔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던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운 사건은 언론의 가장 상징적인 항일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기업가로도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1917년 경성직유주식회사를 인수해 2년 뒤 경성방직주식회사로 명칭을 바꾸면서 민족기업 육성에 기여하셨습니다. 1923년 물산장려운동도 선생의 참여로 추진되었던 캠페인이었습니다.선생은 교육과 문화운동이라는 장기적인 사업을 추진하여 독립을 쟁취하고 독립 이후의 국가 건설에 대비하겠다는 현실적인 방안을 택했습니다. 민족 정신을 함양하고 실력을 기르는 일은 민족의 먼 장래를 기약하는 실질적 방책이었습니다.남양주=김기윤 기자 pep@donga.com남양주=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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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근대의 뿌리, 낙동강 수해 맞선 ‘혁신 유림’서 찾아야”

    “우리 근대의 뿌리는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일부 유학자의 사상이 아니라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한 이들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조선 후기 낙동강 유역에서 수해와 싸우고 기업적 경영을 했던 ‘혁신 유림(儒林)’이 바로 그들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장서각 고문서연구실장을 지냈던 고문서 전문가 안승준 박사(65)는 10일 경기 수원의 연구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과거 낙동강과 지류인 남강 등은 홍수로 자주 범람했고, 방대한 땅은 옥토가 되기도 황무지가 되기도 했다. 이때 주민들이 ‘물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협력하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우리 근대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학(實學)이나 전통적 공업의 발전 등에서 근대적 발전의 싹을 찾으려 했던 기존 연구와는 출발부터 다른 주장이다. 1996년부터 한중연에서 일하며 전국 고문서 43만여 점을 조사 및 수집, 정리, 간행한 안 박사는 “혁신 유림 집안에서 경제활동과 관련된 대규모 고문서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특히 그가 근래 입수해 주목한 것은 17∼19세기 경남 의령군 부림면 신반(新反)의 보림리(寶林里) 주민들이 남긴 고문서다. 보림리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수해를 막기 위해 낙동강 지천인 신반·유곡천 유역에 버드나무 숲을 조성하고 계(契)를 통해 보존해 왔다. 1696년부터 100년 넘게 10여 리에 걸친 이 수림 지역을 전답으로 개발할 것인가, 아니면 숲으로 그대로 유지해 수익을 학교 재원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두고 소송을 벌였다. 안 박사는 “혁신 유림을 중심으로 주민들은 치열한 논쟁과 법정 공방 끝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안을 도출했다”며 “우리 근대는 소송과 함께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안 박사는 최근 경상국립대 경남문화연구원 진주학연구센터가 주최한 컬로퀴엄에서 이 같은 연구를 발표했다. 안 박사에 따르면 진주 남강 하류의 마진(麻津)마을 재령 이씨 집안도 선비이면서 영농에 힘쓴 유농(儒農)이자 혁신 유림이다. 이 집안은 4만 그루에 이르는 임업과 대규모의 목축업을 경영했지만 정부가 수탈하려 하자 이에 맞서 소송전을 벌였다. 안 박사는 “재산 현황 등을 잘 아는 노비들로 소송에 대응하는 전문 팀을 꾸릴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의 이러한 풍토는 훗날 관(官)의 착취에 저항해 일어난 진주 민란으로도 이어진다. 마진마을은 삼성과 LG, GS, 효성 등 기업의 창업주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교류한 경남 진주 승산마을과 5km 거리다. 안 박사는 “혁신 유림의 정신이 오늘날 글로벌 기업이 태어나는 바탕이 됐다고 본다”며 “조선 후기부터 오늘날까지의 발전을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내용은 고문서를 읽어야 비로소 알 수 있고, 조선왕조실록엔 안 나옵니다. 고문서의 조사, 정리, 해제, 탈초(脫草·초서 등을 읽기 쉬운 필체로 바꿈)가 역사학의 기초입니다. 이런 업무를 연구 업적으로 제대로 인정해 줘야 우리 역사학과 인문학의 기초가 탄탄해질 겁니다.”수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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