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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면서 언론의 비판 기능은 물론이고 개인의 표현의 자유까지 위축될 거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유통금지 대상이 되는 허위조작정보의 개념이 모호해 일상적으로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운영하는 개인도 손해배상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또 정부가 인터넷이나 모바일 정보에 대한 심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여성향 단체인 참여연대도 “국가가 나서 허위조작정보인지를 판단하고 유통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법 취지 자체가 적절하지 못했다”며 “이재명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서라도 위헌적 법률안의 시행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인 유튜브·SNS도 손배 대상 될 가능성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이날 국회에서 통과되자 학계와 시민단체에선 언론사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SNS나 유튜브를 하는 개인도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개정안에 따르면 최대 5배까지 규정된 배액배상은 정보 전달을 업으로 하는 언론사와 유튜브 등에만 적용되지만,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워도 최대 5000만 원까지 가능한 일반 손해배상은 인터넷 등에 정보를 유통한 모든 주체를 상대로 제기할 수 있어서다.특히 기존 정보통신망이 규제해온 불법 정보와 달리 개정안을 통해 신설된 허위조작정보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핵심 정보가 사실이어도 일부만 허위면 허위정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 또 개정안은 허위정보나 조작정보라는 점을 알고도 손해를 끼칠 목적으로 유통한 허위정보를 손해배상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같은 고의성과 악의성을 법률에 명시하지 않고 법원의 판단에 맡긴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불리한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작은 사실관계의 오류만 있어도 ‘악의적 의도에 따라 허위정보를 고의로 유통했다’며 소송을 낼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언론개혁시민연대는 성명에서 “불법이 아닌 합법적 표현까지 삭제·차단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며 “모든 인터넷 이용자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위축 효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참여연대도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물에 대해 무차별적인 고소고발과 소송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언론자유·정보 인권 전문가인 김보라미 변호사(법률사무소 디케)는 “(정보가) 허위라고 해도 표현을 금지하는 것 자체는 위헌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정치인, 고위공무원, 기업인 등 이른바 권력자들의 ‘전략적 봉쇄소송’ 가능성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은 ‘공익 방해’ 목적으로는 배액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규정이 모호해 권력자들이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개정안을 근거로 정부 기관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정보에 대한 사전 심의를 확대하거나 각종 행정 제재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5개 언론단체는 이날 성명에서 “정권이 마음먹기에 따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과징금이나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기능을 이용한 악용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했다. 참여연대도 “행정기관 심의를 확대하며, 언론에 대한 충분한 보호 장치 없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국가 중심의 규제와 강력한 처벌을 도입하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野 “위헌 날치기 입법”국민의힘은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나섰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위헌이 확실한 날치기 입법”이라며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명백한 위헌으로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내년 지방선거까지 특검과 공포 정국을 끌고 가려는 여당의 속셈, 이재명 대통령 지키기를 위한 입틀막법의 의도를 국민이 다 알고 있다”고 했다.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이 법이 겨냥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악의적·고의적 목적을 띤 유포”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소속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현행 법 논리에 막혀 5배 이내로 가중배상을 정한 게 못내 아쉽다”고도 했다.조권형 기자 buzz@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전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에 이어 위헌 논란이 거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또다시 강행 처리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만에 강제 종료하고 찬성 170표, 반대 3표, 기권 4표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개정안은 공포 6개월 후 시행된다. 개정안은 내용의 전부나 일부가 허위면 허위 정보,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하면 조작 정보로 규정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 허위·조작 정보를 정보통신망에 고의로 유통하면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된다. 특히 언론사 등에는 최대 5배의 배액배상이 적용된다. 하지만 조국혁신당과 친여 단체들이 요구한 정치인, 고위공무원, 기업인 등 ‘권력자 손해배상 청구 제한’ 조항이 담기지 않은 가운데 허위·조작 정보의 개념이 광범위해 언론은 물론이고 개인들이 올리는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도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기자협회 등 5개 언론단체는 성명을 내고 “허위·조작 정보를 법으로 규제하는 이상 표현의 자유는 훼손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애초에 국가가 허위·조작 정보 여부를 판단하고 유통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법 취지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두 악법 모두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조권형 기자 buzz@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23일 허위조작정보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며 강행 처리 수순에 들어간 가운데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둘러싼 위헌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사실관계만 잘못돼도 허위 정보로 규정하는 등 규제 대상이 지나치게 넓다는 것. 또 조국혁신당 등이 요구했던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기업인 등 이른바 ‘권력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외하는 내용은 끝내 반영되지 않으면서 불리한 보도를 막기 위한 소송 남발을 막을 장치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일부 친여 단체들에서도 “언론의 비판 감시 기능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훨씬 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권력자에 ‘전략적 봉쇄소송’ 남발 길 터줘개정안은 정보통신망을 통한 유통금지 대상에 허위정보와 조작정보 개념을 신설해 추가했다. 내용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면 ‘허위정보’,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된 정보면 ‘조작정보’라는 것. 하지만 허위조작정보의 개념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허위인지 아닌지, 조작인지 아닌지를 누가 결정할 수 있나”라며 “국가가 나설 일이 아니다. 소송이 끊이지 않게 될 것이고, 법원에서도 불분명하게 다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자칫 보호해야 할 표현 행위까지도 규제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법무부는 “일부 내용이 허위인 경우 허위정보로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전체의 취지를 살펴 사실과 합치하지 않는 부분이 중요한 부분인지를 고려하여 허위사실을 판단하고 있는 판례의 취지를 고려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핵심 내용이 사실이면 일부가 허위더라도 허위정보로 규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 고위공무원, 기업인 등 권력자들이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민주당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당한 비판과 감시 활동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배액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 무분별한 소송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이 조항에 대해 “막연하고 추상적”이라고 지적했다. ‘공익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에 대한 규정이 모호한 만큼 정치인 등이 불리한 보도를 막기 위해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 민주당은 전략적 봉쇄소송인지 확인을 요청하면 법원이 60일 안에 결정하는 ‘중간 판결’ 제도도 안전장치로 뒀다고 주장하지만, 참여연대 등 10개 시민단체는 17일 “사실관계가 복잡한 명예훼손 사건 특성상 단기간 내에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상 언론사 기준조차 제시 안 해‘이중 규제’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법원이 판결로 인정한 허위조작정보 등을 2회 이상 유통하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10억 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 역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특히 개정안이 사실상 언론사와 그 유튜브 채널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최소한의 기준조차 제시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배액배상 대상이 되는 언론 등의 정보게재 수와 구독자 수, 조회수 기준을 모두 대통령령으로 위임한 것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친여 단체로 분류되는 참여연대에서도 위헌 소지를 지적하며 즉각 폐기를 촉구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24일 법안 처리를 강행할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언론과 각을 세워 온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해 온 법안인 만큼 우군의 반대에도 강행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언론인이 기사 작성에 있어 혹시 많은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리지 않을까 자기검열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기에 위헌”이라고 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광복 80주년인 올해가 저물어가는 가운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서울 종로구)이 우리 현대사의 여정을 조명한 전시 2건을 최근 개막했다.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1945-1948 역사 되찾기, 다시 우리로’는 격동의 해방공간 속에서 잃어버렸던 우리의 이름을 되찾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며, 우리의 말과 문화 및 기억을 회복해 나갔던 여정을 조명하는 특별전이다.전시 1부는 우리말에 초점을 맞췄다.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 ‘말모이’와 ‘훈민정음해례본’의 첫 영인본, 광복 후 우리나라가 부여받은 국제 무선호출부호 ‘HLKA’가 새겨진 서울중앙방송 스피커 등을 볼 수 있다. 2부에선 조선총독부에 넘어갔다 반환된 ‘국새 칙명지보’, 우리 손으로 벌인 첫 국립박물관 발굴 조사(경주 호우총 발굴)에서 나온 청동 용기 등을 통해 식민 지배로 단절됐던 과거를 잇고 역사의 연속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공동체의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3부에선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병풍 ‘팔사품도’ 등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내년 3월 31일까지 열린다.박물관 주제관에선 한국 현대사 속 ‘밤’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특별전 ‘밤 풍경’이 개최되고 있다. 조선의 야금(夜禁) 제도부터 미군정이 공포한 야간통행금지령, 1982년 야간통금 해제에 이르기까지 밤을 둘러싼 제도적 변화 등을 소개한다. 통금과 관련된 다양한 일화를 담은 만화 ‘고바우영감’ 원화, 늦은 밤 PC통신의 추억이 담긴 ‘하이텔 단말기’, 달을 바라보며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독립운동가 김여제의 시 ‘추석’이 게재된 상해판 독립신문 등을 볼 수 있다. 내년 3월 22일까지.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22일 야당이 요구해온 ‘통일교 특검’을 전격 수용하면서 수사 결과에 따라 통일교에 대한 정부의 해산 조치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종교의 정치 개입을 비판하며 종교단체 해산 검토를 지시한 가운데 특검 수사를 통해 통일교의 정교 유착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정부가 해산 절차에 착수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金 “정교 유착은 헌법 질서와 직결”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2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그동안 국민의힘과 통일교, 신천지 등의 정교 유착 의혹이 지속됐다”며 “정교 유착은 헌법 질서와 직결된다. 위반 정당은 해산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검 수사를 통해 정교 분리 등 헌법 위반이 확인되면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 민주당과 정부는 특검을 통해 통일교가 정교 유착 등 헌법에 위배된 심각한 위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 확인되면 통일교 재단에 대해서도 해산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통일교의 위법 행위가 특검 수사 등을 통해 드러날 경우 주무 관청이 사실관계를 판단해 ‘해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종교 목적의 비영리 법인에 대한 설립허가권과 취소권을 갖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설립 취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취지다. 현재 문체부에는 통일교 관련 법인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유지재단(통일재단)이 등록돼 있다. 1963년 문체부의 법인 설립허가를 받은 비영리 법인인 통일재단은 일화와 용평리조트, 선원건설, 세일여행사, 파인리즈리조트, 팜스코, 신정개발특장차, 일신석재 등 14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법제처는 ‘법인이 목적 외의 사업을 하거나 설립허가 조건을 위반하거나 기타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 주무 관청이 그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민법 38조를 근거로 통일재단 설립허가를 취소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재단의 설립 목적이 선교와 교육 사업 등인 만큼 정교 유착 등 심각한 헌법 위반 행위가 확인되면 설립허가 취소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 다만 계열사들에는 해산 결정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부 관계자는 “법인 설립허가가 취소되더라도, 각각의 계열 법인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법조계 전망은 엇갈려 법조계에선 정부가 통일재단 설립허가를 취소하더라도 법적 논란은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종교법인법’을 통해 정부가 종교법인을 관리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는 종교단체를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별도의 법률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종교법인법을 통해 올해 3월 1심 법원이 통일교 해산을 선고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반면 한국은 종교단체를 직접 규율하는 법률이 없어 법원은 종교법인 해산을 상당히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민법에 따라 종교법인 설립을 취소하는 결정이 자칫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종교법인 설립 취소는 법인의 목적 사업이나 존재 자체가 공익을 해한다고 인정되거나, 법인의 행위가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공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법원 판결을 통해 종교법인 해산이 확정된 사례는 드물다. 동방교는 일부 간부의 금품 갈취 등이 인정돼 1976년 국내 최초로 해산 판결이 내려졌고, 천종회도 2003년 법원에서 ‘종교의 탈을 쓴 사기 행각’이 인정돼 해산됐다. 반면 한국불교일련정종구법신도회는 일본 군국주의를 신봉한다는 이유로 서울시가 설립허가를 취소하고 2심까지 승소했지만, 2017년 대법원은 “함부로 공익을 해한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파기 환송했다.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광복 80주년인 올해가 저물어가는 가운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서울 종로구)이 우리 현대사의 여정을 조명한 전시 2건을 최근 개막했다.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1945-1948 역사 되찾기, 다시 우리로’는 격동의 해방공간 속에서 잃어버렸던 우리의 이름을 되찾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며, 우리의 말과 문화 및 기억을 회복해 나갔던 여정을 조명하는 특별전이다.전시 1부는 우리말에 초점을 맞췄다.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 ‘말모이’과 ‘훈민정음 해례본’의 첫 영인본, 광복 후 우리나라가 부여받은 국제 무선호출부호 ‘HLKA’가 새겨진 서울중앙방송 스피커 등을 볼 수 있다. 2부에선 조선총독부에 넘어갔다 반환된 ‘국새 칙명지보’, 우리 손으로 벌인 첫 국립박물관 발굴조사(경주 호우총 발굴)에서 나온 청동용기 등을 통해 식민지배로 단절됐던 과거를 잇고 역사의 연속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공동체의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3부에선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병풍 ‘팔사품도’ 등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내년 3월 31일까지 열린다.박물관 주제관에선 한국 현대사 속 ‘밤’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특별전 ‘밤 풍경’이 개최되고 있다. 조선의 야금(夜禁) 제도부터 미군정이 공포한 야간통행금지령, 1982년 야간통금 해제에 이르기까지 밤을 둘러싼 제도적 변화 등을 소개한다. 통금과 관련된 다양한 일화를 담은 만화 ‘고바우영감’ 원화, 늦은 밤 PC통신의 추억이 담긴 ‘하이텔 단말기’, 달을 바라보며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독립운동가 김여제의 시 ‘추석’이 게재된 상해판 독립신문 등을 볼 수 있다. 내년 3월 22일까지.조종엽 기자 jjj@donga.com}

400년 넘게 이어져 온 전남 보성의 고택이 국가유산으로 지정됐다.국가유산청은 ‘보성 봉강리 영광정씨 고택’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호남지역 민가의 특징이 잘 남아있는 이 고택은 정손일(1609∼?)이 처음 터를 잡은 이래 이어져 온 곳으로, 안채 사랑채 사당 등 총 6동으로 이뤄져 있다. 풍수설에 연원한 별칭 ‘거북정’으로 불리기도 했다.‘온양민속박물관 소장 갑주(甲胄)와 갑주함’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두루마기형 전갑(氈甲·모직물 등으로 만든 갑옷) 형태 갑옷으로, 왕실 의장용 등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정준 의원과 나는 세비 이외의 수당금은 받지 않기로 하고 이 뜻을 연서로 국회의장에게 통고했다. … 통고문이 국회 회람장에 올려져 의원석에 돌려지고 있었다. 그것을 나보다 먼저 보고 정 의원이 내게 가지고 왔다. 그 회람장의 통고문 여백에는 ‘네놈은 돈이 많아서 그러느냐’, ‘너는 애국자가 되어서 다르구나’ 하는 온갖 야유와 욕설이 나열돼 있었다.” 제헌국회의원 신현모 선생(1894∼1975)은 유고 ‘필부불가탈지(匹夫不可奪志)’를 통해 제헌국회 당시 벌어졌던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신 선생은 수양동우회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렀고, 한국민주당 소속으로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됐던 인물. 이 이야기는 그 아들(신광순 조선어학회선열유족회 초대 회장)이 30여 년 전 펴낸 유고 등을 통해 손자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 글 ‘나라와 말글에 바친 삶’에 담겼다.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유족회는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최근 ‘시대의 얼굴들: 제헌국회의원을 추억하다’(미래엔·사진)를 발간했다. 책엔 제헌국회의원 중 44명의 발자취에 대한 후손들의 글이 실렸다. 윤인구 유족회장은 “생전 제헌국회의원들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의 마지막 기록일 것”이라며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세대에겐 건국의 아버지들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알리고, 학자들에겐 공적 외에 인간적인 모습을 살피는 연구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인류의 역사라고 하면 흔히 ‘4대 문명의 발상’부터 떠오르기 마련이다. 정주한 인류가 비로소 문명을 꽃피웠다는 통념이 지배적이기 때문.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곧 이주의 역사”다. “정주하지 않았고, 문자도 없었던 사람들의 ‘선사시대’와 그 이후 정주 제국들과 민족들의 ‘본격적인 역사’라는 단절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등의 교수들이 함께 ‘이주의 역사’를 조명한 학술적 입문서다. 저자들에 따르면 태고 시절 호모 사피엔스가 동아프리카를 나와 세계로 퍼져 나간 것부터가 이주사다. 이후에도 정주하기 시작한 초기 농경시대의 이주들(기원전 1만5000년∼기원전 5000년)이 이어지고, 순환 무역과 식민 정복, 19세기의 글로벌 이주 체계 등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주의 역사는 계속된다. 기존의 이주 연구는 국경을 넘어 ‘나가는 이주(emigration)’와 ‘들어오는 이주(immigration)’를 구분하고, 주로 들어오는 이주만 연구했다. 이주민들을 새로운 사회의 제도와 문화에 동화돼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봤던 탓이다. 이런 민족주의적 관점에선 이주민들의 복합적인 삶과 주체성이 묻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저자들은 “문화 접변 과정에서 이주민들은 고국 문화를 복제하지도, 도착지 문화로 통합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의 융합, 즉 제3의 장소 또는 공간을 창조해 낸다”는 설명이다. “‘문화 접변’은 이중적인 과정이다. 사회화를 통해 얻은 문화의 일부 요소는 유지하면서, 다른 요소들은 수정하거나 나머지는 버리는 이주민들의 새로운 사회나 특정 분야로의 점진적인 접근, 그리고 이러한 뉴커머들에 대한 수용 사회의 대개 마지못한 혹은 뒤늦은 적응으로 이루어진다.”(4장 ‘이주 경로들에 대한 시스템 접근법’에서) 저자들은 또 기존 연구에선 배제됐던 ‘여성’과 ‘젠더’의 틀로 이주의 역사를 살핀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사회 변화와 함께 갈등을 촉발하고 있는 ‘이주’의 역사를 학술적으론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지가 담긴 책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고대사학회와 한국고고학회를 비롯한 역사학 및 고고학 분야 48개 학회가 “이재명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사이비역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17일 성명에서 “12일 이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환빠’와 ‘환단고기’를 언급한 것을 계기로 사이비역사가 정치·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며 “사이비역사는 부정선거론만큼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명확하게 선을 긋길 바란다”고 밝혔다. 학회들은 “사이비역사는 일제의 대아시아주의를 모방해 ‘한민족의 위대한 고대사’를 주창하며 싹텄고,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와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국수주의적 이념을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고대 한민족이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지배했다고 해석되는 내용 등이 담긴 환단고기는 1979년 이유립이 간행한 위서(僞書)라는 게 역사학계 정설이다. 성명은 “역사학계와 사이비역사 사이엔 어떠한 학문적 논쟁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대통령실은 환단고기와 관련된 대통령의 애매모호한 표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고대사학회와 한국고고학회를 비롯한 역사·고고학 분야 48개 학회가 “이재명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사이비역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라”는 성명을 17일 발표했다.이들은 성명에서 “12일 이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환빠’와 ‘환단고기’를 언급한 것을 계기로 사이비역사가 정치·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며 “명백한 위서인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한 사이비 역사는 부정선거론 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명확하게 선을 긋길 바란다”고 밝혔다.성명은 “사이비역사의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아시아주의(대동아공영권)와 맞닿아 있다”며 “일제의 대아시아주의를 모방해 ‘한민족의 위대한 고대사’를 주창하며 싹텄다”고 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와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국수주의적 이념을 제공하는 데” 사이비역사학이 활용됐다는 것이다.또 “환단고기는 이 과정에서 탄생한 위서(僞書)”라고 강조했다. 이 책은 고려 말~조선 전기 저술된 여러 책을 수합해 1911년 간행됐다고 하지만, 1979년에 이유립이 간행한 위서라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1911년 간행본은 확인된 바 없으며, 1922년 출토된 ‘천남생묘지명’의 내용을 비롯해 ‘세계만방’, ‘원시국가’, ‘남녀평권(男女平權)’ 등 19세기 말 이후의 근현대 용어가 이 책엔 많이 나온다”고 성명은 지적했다.성명은 이어 “역사학계와 사이비역사 사이에는 어떠한 학문적 논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학계를 향한 사이비역사의 일방적 비방과 터무니없는 주장이 존재할 뿐”이라며 “대통령실은 ‘환빠’나 환단고기와 관련한 대통령의 애매모호한 표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또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는 사이비역사에 우호적인 정치인이 일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이비역사는 이들과 결탁해 국책기관의 연구사업과 지방자치단체의 편찬사업을 방해했다”며 “정치권은 역사를 정치 도구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말고, 우리 역사를 깊이 성찰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를 해결할 중장기 정책 대안을 모색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이들은 △이재명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사이비역사’의 위험성을 직시하라 △이재명 정부는 ‘사이비역사’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고 어떠한 지원도 하지 말라 △여야 정치권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사이비역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라 △이재명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역사 정책 수립·추진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라고 촉구했다.역사학계와 고고학계는 앞서 5월과 7월에도 각각 민주당과 국정기획위원회에 사이비역사를 비판하는 의견서를 냈고, 10월 전국역사학대회에서도 관련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의 고층 재개발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이 점점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종묘 경관 침해 논란이 정쟁화되는 등 논쟁의 과열 조짐이 뚜렷한 가운데, 사실이 아닌 내용에 근거한 주장도 오가고 있다. 11일 서울시는 국가유산청이 추진 중인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높이·경관 등 이미 촘촘하게 운영 중인 도시 관리 시스템에 ‘세계유산 반경 500m 이내 세계유산영향평가 의무화’를 획일적으로 추가하는 것은 행정 편의적인 이중 규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6개 자치구, 38개 구역 정비사업 등 도시개발 사업에 차질을 빚게 만드는 ‘강북 죽이기 법’이라는 주장이었다. 이튿날 유산청은 반박에 나섰다. 개정안의 내용은 세계유산영향평가 대상 사업, 사전 검토 절차 및 평가서 작성 등에 관한 것이고, ‘500m 이내 세계유산영향평가’라는 내용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유산청은 “서울시가 ‘법적 절차 미비’ 등을 이유로 응하지 않고 있는 세계유산영향평가 제도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입법예고 내용을 살펴보면 관련 내용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해외의 유사 입법 사례를 소개하면서 ‘프랑스는 역사기념물 주변 500m 내 건축 허가 시 국가가 공인한 건축 유산 및 경관 전문가(ABF)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소개했을 뿐이다. 서울시의 오해는 10일 허민 유산청장의 브리핑 가운데 ‘문화유산법에 따라 관련 고시를 검토한다’는 설명이 와전되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유산청 관계자는 해당 고시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유산이면서 세계유산인 대상에 한정하고, 또 그 가치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대규모’ 행위에 한정해, 500m 이내에선 유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해당 고시가 마련된다면 종묘와 창덕궁, 조선왕릉, 수원화성 등 주변이 영향을 받게 된다. 견강부회식 주장도 논쟁에 가세하고 있다. 일각에선 세운4구역에 들어설 고층빌딩을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 비견하기도 한다. ‘에펠탑도 건설 당시에는 욕을 먹었지만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 됐다’는 식이다. 알다시피 파리는 강력한 도심 건물 높이 규제 등을 통해 6층가량의 고풍스러운 건물로 가득한 경관을 지켜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도시다. 파리 시민들은 1973년 완공된 높이 209m의 몽파르나스 타워를 아직도 미워한다. ‘누구 목소리가 큰지’ 경쟁하는 걸 그만두고 차분하게 문제의 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의 고층 개발이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녹지를 만들 돈을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녹지축을 조성’하는 세운지구 재개발에 약 1조5000억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절된 녹지를 잇는다는 데야 반대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지만 그만한 돈을 투입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개발 이익이라곤 해도, 고층 개발은 도시의 밀집도를 더욱 높인다는 차원에선 시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크건 작건 종묘 경관을 침해하면서, 기회가 한정된 도시의 공중 개발 카드까지 써 가며 1조5000억 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에 시민들은 과연 얼마나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제주4·3사건 진압 책임자 논란이 일었던 고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를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보수 진영 일각의 재평가 움직임 속에 국가보훈부가 지난달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한 데 대해 시민사회를 비롯해 여권이 반발하는 등 진영 갈등으로 비화되자 이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 진보 진영의 손을 들어준 것. 국민의힘에선 “지지층 요구에 따라 역사적 판단을 흔드는 명백한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령, 생전 행적 논란… 진보 진영 손들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국가유공자 등록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이 대통령이 전날 취소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가보훈부 서울보훈지청은 올해 10월 박 대령의 유족이 4·3사건 당시 무공수훈을 근거로 제출한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승인해 지난달 4일 유공자증서를 전달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유공자 지정 취소를 요구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권오을 보훈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앞서 박 대령은 올해 9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무장세력과 싸우다가 암살당한 ‘자유의 투사’로 묘사된 바 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무공수훈자라는 이유로 심의 의결도 거치지 않고 국가유공자가 된다는 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 대령은 1948년 5월 6일 제9연대장에 임명된 뒤 제주도로 가 6월 18일 부하에게 암살될 때까지 한 달 남짓 제주4·3사건 진압 작전을 지휘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박 대령의 참모였던 임부택 대위는 박 대령이 “조선민족 전체를 위해서는 30만 도민을 희생시켜도 좋다. 양민 여부를 막론하고 도피하는 자에 대해 3회 정지명령에 불응하는 자는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진술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익단체와 경비대가 제주에 파견되면서 사태가 악화됐다”며 “당시 민간인에 대한 대량 체포는 과도했다는 것이 학계의 연구”라고 했다. 반면 당시 소대장이었던 고 채명신 중장은 생전 진술에서 박 대령이 “폭도들의 토벌보다는 입산한 주민들의 하산에 중점을 뒀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박 대령의 양손자인 박철균 예비역 육군 준장은 동아일보에 “내 할아버지가 부임 후 부대 정비를 하기에도 빠듯했던 기간에 학살을 주도했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민주당은 “국민주권정부가 역사 정의를 향한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며 환영한 반면에 국민의힘은 “역사적 판단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 마음대로 뒤집는 독재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보훈부 “유공자 등록 면밀 검토해 조치” 보훈부는 논란이 이어지자 15일 “무공훈장 재검토 등을 위한 관계기관 협의 및 관련 법령과 절차 등을 면밀히 검토해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보훈부 내부에선 박 대령의 유공자 등록 취소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행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범죄 사실로 형이 확정되지 않은 이상 유공자 등록을 취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령은 생전 범죄 사실이 확인된 바 없고, 사망 후 훈장이 수여된 만큼 훈장 수여 후엔 범죄 사실이 있을 수 없기에 훈장을 취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 또 국가유공자 등록의 근거인 무공훈장을 취소하려면 훈장이 수여될 당시 공적이 허위라는 점이 확인돼야 하지만 6·25전쟁 중 무공훈장이 수여된 박 대령은 공적의 진위를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당시 공적 기록을 관리하는 국방부 역시 박 대령이 어떤 공적으로 훈장을 받은 것인지 구체적인 기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4·3특별법 개정이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과 등 종합적으로 검토해 박 대령의 무공수훈을 취소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경은 인간에게 자연을 돌려주는 일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에서 잃어버린 자연을 되찾게 하는 일이다. … 출근길의 그늘, 공원의 새소리, 산책로의 흙냄새, 계절마다 달라지는 색과 바람의 질감이 감각을 일깨운다. 사람은 그 안에서 위로를 얻고 도시는 다시 숨을 쉰다. … 일과 놀이의 틈, 자연과 인공의 사이, 예술과 과학의 접점. 조경은 그 경계에서 피어난다.”(‘프롤로그’에서) 복개됐다가 20년 전 복원된 서울 청계천을 일주일에도 몇 번씩 걷는다. 걷다 보면 ‘왜가리와 잉어, 족제비가 함께 사는 이 하천이 없었다면 도심에서의 일상이 얼마나 팍팍했을까’ 싶다.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인 저자는 “인공 하천일 뿐이라는 우려까지 온갖 논란이 쏟아졌지만 지금 청계천을 걸어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복원’이라는 더 큰 맥락 속에서 수용됐음을 알 수 있다”고 썼다. 남은 과제가 없진 않지만, 청계천 복원은 ‘삶의 질 중심 위주의 도시 만들기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전환점을 상징한다’는 얘기다. 도시와 조경의 관계를 다룬 교양서다. 저자는 “살기 좋은 도시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해 시민공원에 숨겨진 설계, 서울 경의선 숲길, 선유도 공원, 서울숲, 미국 뉴욕의 고가철로가 탈바꿈한 선형공원 ‘하이라인’, 센트럴파크 등을 통해 도시의 리듬을 바꾸는 조경의 힘을 담담한 인문학적 필치로 조명한다. “서울 종묘의 은행나무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조선 중기인 1519년쯤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거대한 은행나무들이, 조선 왕조 수백 년의 격변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왔다. 매년 5월 종묘대제가 거행되는 날이면, 이 나무들 아래에서 과거와 같은 제례가 이어진다. 나무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연대기이며 나이테에 새겨진 시간의 기록이다.” 저자는 “시간을 품은 경관은 역사의 기록을 넘어 인간 문명의 증언”이라며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거울이며, 변화 속에서도 이어지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운다”고 강조했다.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를 자문해 본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만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경찰이 여야 정치권 인사의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을 피의자로 입건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12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청 특별전담수사팀은 내사(입건 전 조사)를 벌이던 전 전 장관 등 3명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들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고, 일부에겐 최대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정범죄가중법상 뇌물죄도 함께 적용했다. 수사팀은 여야 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에 대한 추가 접견도 준비하고 있다. 전 전 장관에게 현금 4000만 원과 까르띠에 불가리 등 명품 시계 2개를, 임 전 의원과 김 전 의원에겐 총선을 앞두고 각각 현금 수천만 원을 줬다는 게 윤 전 본부장의 주장이다. 수사팀은 전날 서울구치소를 찾아 윤 전 본부장을 3시간가량 접견해 조사한 바 있다. 윤 전 본부장을 비롯해 금품을 제공한 통일교 관계자들도 입건됐다. 경찰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 등을 토대로 조만간 강제수사를 통한 증거물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금품 수수 당사자로 지목된 전현직 의원들에 대한 소환 조사도 준비 중이다. 일부 피의자와는 출석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특검에서 넘겨받은 각종 기록을 검토하고 있으며 최대한 신속히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통일교 측에 재산 목록의 제출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통일교를 겨냥하며 종교단체 해산 필요성을 거론한 가운데, 정부가 교(敎)의 재산을 관리하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유지재단’에 재산목록을 달라고 한 것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서류상 미비한 점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윤 전 본부장은 정치권 금품 제공 의혹에 대해 ‘발 빼기’로 일관했다. 그는 “만난 적도 없는 분들에게 금품을 제공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세간에 회자되는 부분도 제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다), 저는 그런 진술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권 의원에게 1억 원을 전달했다는 기존 입장에 대해서도 “배달 사고가 있었다”며 번복하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 윤 전 본부장의 폭로 이후 이 대통령이 통일교를 겨냥해 해산을 언급하고, 교단에서도 “윤 전 본부장의 개인 일탈”이라고 발표하는 등 압박이 이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송혜미 기자 1am@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통일교 측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유지재단(이하 통일재단)에 재산목록의 제출을 요청한 건 통상적 업무의 일환이라고 12일 설명했다. “얼마 전 통일재단이 정관 변경 승인 신청을 해 왔고, 이를 처리하다가 필요해 목록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통일재단은 통일그룹 기업들을 총괄하는 곳으로 모나용평, 일신석재, 세일여행사, 일화 등 14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통일교) 선교 및 교육 사업과 이념 구현을 위한 제반 활동을 지원, 보조하기 위한 재원을 조달하고 재단 소유의 토지와 건물, 기타 재산을 관리”하기 위한 비영리법인으로, 문체부의 감독을 받는다. 정관상 기본 재산이 변동되거나 토지의 매각·취득 등을 하려면 법원 등기 전 문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서류에 미비한 점이 있기에 관련 자료를 달라고 했을 뿐이라는 게 문체부 측의 설명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재단 허가 취소 등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재산목록 제출 요구가 이재명 대통령과 최휘영 문체부 장관 등이 통일교를 겨냥해 ‘해산’을 거론한 최근의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 장관은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종교단체는 민법에 의거해 설립, 운영되고 법을 위반하거나 공익 침해가 인정될 때는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해산시키도록 규정돼 있다”며 “공익 침해가 인정되는지 여러 사실에 대한 면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답한 바 있다. 통일교 관계자는 “통일교 교단이 아니라 유관 기업 등을 관리하는 통일재단으로 자료 제출 요구가 온 것”이라며 “문체부가 통상적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목록을 달라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경찰이 여야 정치권 인사의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을 피의자로 입건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12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청 특별전담수사팀은 내사(입건 전 조사)를 벌이던 전 전 장관 등 3명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들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고, 일부에겐 최대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정범죄가중법상 뇌물죄도 함께 적용했다. 금품을 제공한 통일교 관계자들도 입건한 것으로 알려졌다.수사팀은 여야 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에 대한 추가 접견도 준비하고 있다. 전 전 장관에게 현금 4000만 원과 까르띠에 불가리 등 명품 시계 2개를, 임 전 의원과 김 전 의원에겐 총선을 앞두고 각각 현금 수천만 원을 줬다는 게 윤 전 본부장의 주장이다. 수사팀은 전날 서울구치소를 찾아 윤 전 본부장을 3시간가량 접견해 조사한 바 있다.경찰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 등을 토대로 조만간 강제수사를 통한 증거물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금품 수수 당사자로 지목된 전현직 의원들에 대한 소환 조사도 준비 중이다. 일부 피의자와는 출석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특검에서 넘겨받은 각종 기록을 검토하고 있으며 최대한 신속히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통일교 측에 재산 목록의 제출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통일교를 겨냥하며 종교단체 해산 필요성을 거론한 가운데, 정부가 교(敎)의 재산을 관리하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유지재단’에 재산목록을 달라고 한 것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서류상 미비한 점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이날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윤 전 본부장은 정치권 금품 제공 의혹에 대해 ‘발 빼기’로 일관했다. 그는 “만난 적도 없는 분들에게 금품을 제공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세간에 회자되는 부분도 제 의도와는 전혀 (관계 없다), 저는 그런 진술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권 의원에게 1억 원을 전달했다는 기존 입장에 대해서도 “배달사고가 있었다”며 번복하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 앞서 그는 자신의 재판에서 ‘민주당 국회의원 리스트’에 대한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가 입을 닫았는데, 한 발 더 나아가 기존 의혹까지 부인하는 듯한 증언을 한 것이다. 윤 전 본부장의 폭로 이후 이 대통령이 통일교를 겨냥해 해산을 언급하고, 교단에서도 “윤 전 본부장의 개인 일탈”이라고 발표하는 등 압박이 이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송혜미 기자 1am@donga.com}

국내 최장수 교양지 월간 ‘샘터’가 2026년 1월호(통권 671호·사진)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한다. 샘터는 10일 “스마트폰이 종이책을 대체하고 영상 콘텐츠의 수요가 활자 미디어를 뛰어넘는 흐름을 이기지 못한 데 따른 결정”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샘터는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될 것을 다짐한다’는 취지로 1970년 4월 김재순 전 국회의장(1923∼2016)이 창간했다. 최근까지 평범한 독자들의 사연을 1만1000여 개 담아 오면서 공감을 바탕으로 감동과 웃음을 자아내는 소박한 삶의 이야기들로 사랑을 받았다. 정채봉 작가를 비롯한 유명 문인들이 연재한 글들도 화제였다. 최인호 작가의 연재소설 ‘가족’은 1975년부터 34년간, 법정 스님의 ‘산방한담’은 1980년부터 16년간 이어졌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 장영희 교수와 이해인 수녀 등이 맑고 고운 글로 삶의 의미를 전하며 고정 필진으로 왕성히 활동했다. 한때 월 50만 부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였으며 ‘어머니에게 편지 보내기’ 공모엔 한 달간 1만여 통의 편지가 날아들기도 했다고 샘터 측은 밝혔다. 정호승 시인과 한강 소설가 등이 젊은 시절 샘터 편집부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샘터는 앞서 2019년에도 한 차례 휴간 의사를 밝혔다가 독자의 기부와 기업 후원 등으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수익 악화가 계속돼 6년 만에 마침내 다시 휴간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김성구 샘터 발행인은 “단행본은 계속 발행한다”며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중시하는 샘터의 정신을 계속 지켜 나갈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 호는 이달 24일 발간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번 (개성 만월대) 디지털 복원을 통해서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건물들의 위계와 성격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궁궐의 진화 연구를 위한 단초가 마련된 셈입니다.” 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개최된 ‘개성 만월대 디지털 복원 학술대회’에서 류성룡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렇게 강조했다. 만월대는 고려 태조가 919년 송악산 남쪽 기슭에 창건한 궁궐 터. 이날 학술대회는 만월대를 디지털로 복원하기 위해 2021년부터 시작된 사업의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열렸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등이 주최한 이날 학술대회에선 만월대 각 건물지의 지붕 형태 등 건축 고증연구가 소개되는 한편, 빌딩 정보 모델링(BIM)을 통해 만월대 건축물을 디지털로 복원한 결과물이 시연됐다. 김영재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고려 태조와 4대 조상의 초상을 모시던 장소인 ‘경령전(景靈殿)’에 대해 “평면 유구(遺構)상 전각부가 장방형이란 점을 바탕으로 맞배지붕으로 산정해 건물의 전체 형상을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업은 고려 건축물의 옛 모습을 처음으로 디지털 복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요근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는 “글과 사진 자료로 한정됐던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의 성과를 디지털 공간에서 입체적인 형태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차별성과 도전성을 지닌 작업”이라며 “고려 궁궐과 건물지 연구, 나아가 고려시대사 연구의 심화와 저변 확대에 동력을 제공한다”고 평했다. 다만 유구만 남아 실존했던 건물과 일치하는지 명확히 검증할 수 없다는 점, 2019년 이후 남북 교류 중단으로 현장 방문 및 북한과의 소통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됐다. 이날 학술대회에선 건축 분야에서 만월대 고려 궁궐 전각의 복원 설계 방향, 단청 복원, 건물지의 속성과 해석의 단서 등을 조명한 발표도 이뤄졌다. 역사 분야에선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조사와 남북 교류, 고려시대의 개경과 경기, 개경의 의례 등의 주제를 다뤘다. 고고·미술 분야에선 만월대 건물지 출토 와전(瓦甎) 및 청자 등에 관한 발표가 진행됐다. 디지털 복원 사업은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 성과를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돼 최근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향후 관련 연구 총서를 발간하고, 시민용 공공 콘텐츠도 제작할 방침이다.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은 2005년 실무협의를 시작으로 2007∼2018년 진행됐다. 남북 관계에 따라 일시 중단과 재개가 되풀이됐지만 만월대 전각 등의 유구를 확인했고, 2015년엔 금속활자를 발굴하고 개성에서 전시회와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정태헌 전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은 “만월대 공동 발굴은 남북 관계나 국제 정세에 영향을 받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햇수로 12년이나 지속했다”며 “평화와 공존, 번영의 공감대를 확산시킨 의의를 되살려야 한다”라고 했다. 학계에선 남북 관계가 개선돼 공동 발굴이 재개되길 기대하고 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10월 “문화유산 분야 남북 협력사업 재개를 위해 관계 부처와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현대 로켓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소련 항공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1857∼1935)는 적도 위에 높은 탑을 세워 우주로 나아가는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주 엘리베이터’를 상상한 것이다. 높이 3만5786km 지점에 위성을 띄워 케이블을 내리면 엘리베이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이 높이에선 인공위성의 공전 속도와 지구의 자전 속도가 같기 때문이다. 이 ‘정지궤도’의 위성은 특정 경도 상공에 머무르면서 대륙 규모의 커버리지를 갖는다. 주파수 등의 간섭 없이 정지궤도에서 운용할 수 있는 위성의 수는 한정돼 있으므로 오늘날 각 나라와 기업들이 정지궤도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고도 500∼2000km의 저궤도도 문제다. 저궤도는 통신이나 관측, 과학 실험이 주로 이뤄지는 영역인데, 위성이 많아도 너무 많다. 스타링크는 위성 4만2000기, 윈웹은 6000여 기, 아마존의 카이퍼 프로젝트와 중국 우주 인터넷 프로젝트 첸판은 1만5000기의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다간 충돌로 발생한 우주 쓰레기가 다시 충돌 가능성을 높이며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케슬러 신드롬’이 현실화하지 말란 법이 없다.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장인 저자가 갈수록 치열해지는 우주 개발 경쟁의 실태를 조명한 책이다. 우주의 교묘한 무기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우주전의 연관성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능동적 제거 기술은 우주 안보 측면에서 국방 기술의 하나로 접근되고 있다. … 타국의 인공위성을 고의적으로 제거하는 기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 쓰레기를 제거하는 데 있어서 명확한 책임과 의도를 드러내줄 제도의 마련이 필요해진다.”(6장에서) 최근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우주 산업 경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저자는 “우주 기술의 독점과 종속은 지금의 불균형 문제를 넘어 미래세대의 주권적 선택지를 제한하는 심각한 위협”이라며 “우주 개발의 기술 주권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