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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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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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6~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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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3%
  • [책의 향기]초저금리가 경제위기 해법? 버블은 언젠가 터진다

    “금리를 2%까지 낮출 수 있는 풍부한 돈은 부채와 공직 등의 자금 조달 비용을 줄여주며 왕을 구제할 것입니다. 빚을 지고 있는 귀족 지주의 부담도 덜어줄 것입니다. 이들은 농산물이 더 높은 가격에 팔리면서 더 부유해질 것입니다. 상인들은 더 부유해지고 사람들의 일자리는 늘어날 것입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프랑스 왕실 재정이 파탄으로 이르렀던 18세기 초 스코틀랜드 출신 인물 존 로(1671∼1729)는 섭정 오를레앙 공 필리프 2세에게 이렇게 진언한다. 돈을 찍어내 금리를 낮추자는 얘기다. ‘왕’이나 ‘귀족’ 등의 단어만 ‘정부’, ‘가계’ 등으로 바꾼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오늘날 각국 중앙은행이 취했던 정책과 다르지 않다. 섭정의 금융 책임자가 된 로는 왕립은행을 통해 ‘종이가 모자랄 정도로’ 지폐를 찍어내면서 세계 최초로 저금리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로는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지역에 대한 독점거래권을 가진 ‘미시시피 회사’를 인수했는데, 돈이 풀리면서 이 회사 주식에 대한 투기 광풍이 일었다. 주가는 순식간에 40배가량 폭등했고, “모든 사람이 (투기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백만장자(millionaire)’라는 낱말이 이때 생겼다. 이 같은 정책은 파국을 불러왔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했다. 1719년 말 물가지수는 연초 대비 2배가 됐다. 외환시장에서 프랑스 통화 가치는 계속 하락했다. 마침내 거품도 꺼져 미시시피 회사 주식 가격은 90% 폭락했다. 미국 투자은행에서 일했던 금융인 출신 저술가인 저자는 금리의 역사를 소개하고 저금리가 만들어 내는 각종 부작용을 지적한다. 저금리는 달콤하다. 일시적으로 투자가 늘고, 소비는 증가하며, 실업률은 낮아진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 저자는 “생산성 둔화, 구매 불가능한 주택 (가격 상승), 불평등 심화, 시장 경쟁 소멸, 금융 취약성 등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문제의 원인이 바로 초저금리”라고 진단한다. 극단적 저금리는 저축 의욕을 꺾을 뿐 아니라 생산적 투자를 유도하기는커녕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계층 간 격차만 벌린다. 정부 증권과 우량 채권에 투자하는 연금도 수익률이 하락한다. 대가를 치르게 되는 ‘최후의 심판’은 연기될 뿐 결국은 닥치게 돼 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21세기 급속히 팽창한 세계 교역이 세계의 풍부한 유동성에 의해 가능했던 거품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저자는 세계화와 금리 사이에 되먹임 고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화는 물가 상승 압력을 줄이고, 노동자의 교섭력을 약화시키면서 금리 인하를 유도한다. 역으로 금리 하락은 달러 차입 비용을 줄여 다국적 기업들이 더 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면서 세계화를 추동한다. 만약 정말로 세계 교역이 대부분 거품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면 이 거품이 꺼질 때 닥칠 충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완화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히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도 이제 끝이 보인다는 전망이 슬슬 나오고 있다. 세계 경제의 거품이 충분히 걷힌 것인지, 책의 원제 ‘The Price of Time(시간의 가격)’처럼 금리라는 ‘시간의 가격’을 충분히 매겨 이제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인지는 아마 모두가 뒤늦게 알게 될 것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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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기 부르는 초저금리… ‘공짜 점심’은 없다

    “금리를 2%까지 낮출 수 있는 풍부한 돈은 부채와 공직 등의 자금 조달 비용을 줄여주며 왕을 구제할 것입니다. 빚을 지고 있는 귀족 지주의 부담도 덜어줄 것입니다. 이들은 농산물이 더 높은 가격에 팔리면서 더 부유해질 것입니다. 상인들은 더 부유해지고 사람들의 일자리는 늘어날 것입니다.”끊임없는 전쟁으로 프랑스 왕실 재정이 파탄으로 이르렀던 18세기 초 스코틀랜드 출신 인물 존 로(1671~1729)는 섭정 오를레앙공 필리프 2세에게 이렇게 진언한다. 돈을 찍어내 금리를 낮추자는 얘기다. ‘왕’이나 ‘귀족’ 등의 단어만 ‘정부’, ‘가계’ 등으로 바꾼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오늘날 각국 중앙은행이 취했던 정책과도 다르지 않다.섭정의 금융책임자가 된 로는 왕립은행을 통해 ‘종이가 모자랄 정도로’ 지폐를 찍어내면서 세계 최초로 저금리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로는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지역에 대한 독점거래권을 가진 ‘미시시피 회사’를 인수했는데, 돈이 풀리면서 이 회사 주식에 대한 투기 광풍이 일었다. 주가는 순식간에 40배가량 폭등했고, “모든 사람이 (투기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백만장자(millionaire)’라는 낱말이 이 때 생겼다.이 같은 정책은 파국을 불러왔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했다. 1719년 연말 물가지수는 연초 대비 2배가 됐다. 외환시장에서 프랑스 통화 가치는 계속 하락했다. 마침내 거품도 꺼져 미시시피 회사 주식 가격은 90% 폭락했다.미국 투자은행에서 일했던 금융인 출신 저술가인 저자는 금리의 역사를 소개하고 저금리가 만들어내는 각종 부작용을 지적한다. 저금리는 달콤하다. 일시적으로 투자가 늘고, 소비는 증가하며, 실업률은 낮아진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 저자는 “생산성 둔화, 구매 불가능한 주택 (가격 상승), 불평등 심화, 시장 경쟁 소멸, 금융 취약성 등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문제의 원인이 바로 초저금리”라고 진단한다. 극단적 저금리는 저축 의욕을 꺾을 뿐 아니라, 생산적 투자를 유도하기는커녕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계층간 격차만 벌린다. 정부 증권과 우량채권에 투자하는 연금도 수익률이 하락한다. 대가를 치르게 되는 ‘최후의 심판’은 연기될 뿐 결국은 닥치게 돼 있다.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21세기 급속히 팽창한 세계 교역이 세계의 풍부한 유동성에 의해 가능했던 거품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저자는 세계화와 금리 사이에 되먹임 고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화는 물가상승 압력을 줄이고, 노동자의 교섭력을 약화시키면서 금리 인하를 유도한다. 역으로 금리 하락은 달러 차입 비용을 줄여 다국적 기업들이 더 긴 공급망을 구축하는데 기여하면서 세계화를 추동한다. 만약 정말로 세계 교역이 대부분 거품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면 이 거품이 꺼질 때 닥칠 충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미국 연준이 양적 완화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히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도 이제 끝이 보인다는 전망이 슬슬 나오고 있다. 세계 경제의 거품이 충분히 걷힌 것인지, 책의 원제 ‘The Price of Time(시간의 가격)’처럼 금리라는 ‘시간의 가격’을 충분히 매겨 이제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인지는 아마 모두가 뒤늦게 알게 될 것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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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그는 마지막까지 황혼 일기를 썼다

    “창밖으로 하얀 눈이 내린 날이었어요. … 59년을 함께 산 순한 부인이 누워있는 남편의 이불자락을 끌어다 덮으며 ‘한 이불 덮고 있습시다’ 하고 농담하자 모두 크게 웃었어요. 삶의 끝자락에 선 남편에게 건넨 용서와 사랑의 한마디였다고 생각해요. 저도 마지막 인사로 귓가에 나지막이 기도해 드렸고요.” 간병사로 호스피스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노인을 돌보던 저자는 자신이 과거 돌봤던 고인의 임종 장면을 노인에게 이같이 들려준다. 가족이 원해 간병사로서 고인의 임종까지 지켰던 것. 조금 길다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그는 이내 말한다. “나도 그렇게 해줘.” ‘죽음학(생명윤리학)’과 관련된 일을 하던 저자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88세 노인을 22일 동안 돌본 기록이다.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노인은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저자는 돌볼 뿐이다. 배변 조절이 되지 않자 노인은 당혹스러워한다. 코는 헐어서 딱지가 생기고, 몸에는 줄이 3개가 달린다. 소변줄과 복수를 빼기 위한 줄, 그리고 수액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돌보며 할 일은 더욱 많아진다. 저자는 ‘한 사람이 살아온 자취를 날것으로 드러내는’ 노인의 발을 마사지하고, 악몽을 꾸는 그를 위로한다. 마지막까지도 삶은 계속된다. 노인은 집에서부터 써 온 ‘황혼일기’를 병원에서도 계속 쓴다. 저자는 “삶의 마지막 자락으로 가는 하루하루가 특별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죽음이 가까워진 노인에게 섬망 증세가 찾아온다. 노인은 뜬금없이 횡설수설하고, 시계를 잘못 본다. 침상을 올리자 비행기에 탄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저자는 노인이 섬망 속에서 “본부에 연락하라”고 지시하자 그에 맞춰 복도에 나가 이리저리 살피는 시늉을 하고 “보고했습니다!”라고 힘줘 말하기도 한다. 현실과 섬망 사이를 오가며 노인은 말한다. “한 열흘간 일하다 죽었으면 좋겠다.” 저자는 “환자는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 문턱에서도 끝까지 존중받아야 할 가치 있는 생명을 지닌 인간”이라고 말한다. 환자와 의료진 간 오해도 생긴다. 의료진은 “시원하게 소변 좀 보게 해드릴까요”라고 묻고 소변줄을 단다. 하지만 노인은 뒤늦게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 “나쁜 짓이야”라고 불평한다. 저자는 책에서 “의료진은 환자에게 에두르지 말고 정확한 용어로 설명해 줘야 오해를 방지한다”며 “최소한 신체에 어떤 장치를 하고, 어떤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지는 설명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약성 진통제 사용 여부에 관해서는 “완화의료에 관한 정보를 미리 자세히 파악한 뒤 자신에게 맞는 호스피스를 요구하는 게 좋다”고 했다. 임종의 고통을 겪던 노인은 기다렸던 큰손자가 왔을 때는 말을 못 하게 된 상태였다. 노인의 아들과 함께 임종을 지키던 저자는 그의 귀에 대고 힘주어 말한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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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 통일TV 송출 중단… “北선전 내용에 고객 불만”

    북한 콘텐츠를 갈무리해 방송하던 ‘통일TV’의 송출이 18일 중단됐다. 통일TV를 송출하던 KT 인터넷TV(IPTV) 지니TV는 이날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방송프로그램 내용상 문제 등으로 인해 고객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부득이하게 통일TV 방송프로그램 제공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KT는 “채널 평가 과정에서 통일TV가 북한 체제를 선전한 사실을 확인해 긴급히 계약을 해지했다”며 “5개월 전부터 (통일TV에 대한) 고객 불만이 접수됐다”고 송출 중단 사유를 밝혔다. 통일TV는 2021년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방송채널사용사업자 인가를 받은 뒤 지난해 8월 17일 올레TV(현 지니TV)에서 첫 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진천규 통일TV 대표는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북녘의 모습과 정보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 조선중앙TV 방송 내용 등을 바탕으로 북한의 경제와 여가생활, 요리, 음악, 예술 등을 소개해 왔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관계자는 “채널 사용 인가 당시엔 기본적 방송 계획만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방송 홈페이지에 따르면 통일TV 협동조합 이사장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맡고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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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유능한 독재자?… 스탈린은 어떻게 전쟁 이끌었나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함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 인물이 ‘조지아의 도살자’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다. 1922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그가 대숙청과 소수민족 강제이주 등으로 죽인 사람은 수천만 명에 이른다. 그가 저지른 악의 증거와 피해자들의 고통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러나 비난은 이내 의문과 마주한다. ‘스탈린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나?’ 한 가지 답은 ‘스탈린이 매우 유능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 코크대 명예교수로 제2차 세계대전과 소련 외교 정책의 권위자로 꼽히는 저자는 특히 스탈린이 2차 대전 동안 지도자로서 얼마나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독소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전투로는 1942년 7월 시작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꼽힌다. 수십만 독일군이 진격해 오자 스탈린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로 알려진 명령 제227호를 내린다. 소련이 직면한 위기를 설명하면서 애국적 의무를 설파하는 한편 후퇴한 군을 질타하고 ‘철의 규율’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명령 없이 후퇴하는 이들은 반역자로 규정했다. 규율을 위반한 이들은 ‘형벌 부대’에 배치했고, 적 진영에 대한 정면 공격 같은 위험한 임무를 맡겼다. 명령은 효과를 냈다. 도망치는 지휘관을 총살하는 등 무자비한 규율 체계가 작동한 ‘붉은 군대’는 어마어마한 소모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잃지 않았다. 소련군은 이 전투에서 100만 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독일군 사령관을 포함해 9만여 명의 포로를 붙잡으면서 히틀러에게 처음으로 대패를 안겼다. 한 해 전 모스크바 방어전에서도 스탈린의 역할이 컸다. 수도를 빠져나가던 주민들의 불안감은 스탈린이 수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라디오 방송으로 전해지자 누그러졌다. 스탈린은 연설을 통해 히틀러와의 싸움을 ‘유럽의 노예화된 인민을 해방시키는 투쟁’으로 규정하며 군과 주민의 전의를 끌어올렸다. 스탈린은 또한 군의 활력을 높이고 혁신적 분위기를 유도했으며, 전쟁을 위한 자원을 매우 성공적으로 동원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스탈린이 소련에 우호적인 체제를 동유럽에 수립하고, 공산주의 체제를 방어하는 것이 우선이었을 뿐 냉전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전후 소련과 서방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데에는 서방 측의 책임도 크다는 얘기다. 스탈린이 승인한 6·25전쟁에 대한 대목도 나온다. 김일성의 남침을 말리던 스탈린은 1950년 1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할 수 있고,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마음을 바꾼다. “스탈린에게 한국전쟁은 매우 값비싼 계산착오였다. … 한국전쟁은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을 단호하게 저지한 투쟁이라고 선전할 수 있었으나, 그런 주장은 심지어 공산주의 집단 내에서도 공허하게 들렸다. 무엇보다도 동서관계에서 러시아인들이 말하는 도베리예(신뢰)가 거의 완전히 붕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독재자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이해해야 제대로 된 비판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찬찬히 읽어볼 만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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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대전 승리를 이끈 독재자 스탈린의 리더십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함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 인물이 ‘조지아의 도살자’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다. 1922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그가 대숙청과 소수민족 강제이주 등으로 죽인 사람은 수천만 명에 이른다. 그가 저지른 악의 증거와 피해자들의 고통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러나 비난은 이내 의문과 마주한다. ‘스탈린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나?’ 한 가지 답은 ‘스탈린이 매우 유능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 코크대 명예교수로 제2차 세계대전과 소련 외교정책의 권위자로 꼽히는 저자는 특히 스탈린이 2차 대전 동안 지도자로서 얼마나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독소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전투로는 1942년 7월 시작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꼽힌다. 수십만 독일군이 진격해오자 스탈린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로 알려진 명령 제227호를 내린다. 소련이 직면한 위기를 설명하면서 애국적 의무를 설파하는 한편 후퇴한 군을 질타하고 ‘철의 규율’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명령 없이 후퇴하는 이들은 반역자로 규정했다. 규율을 위반한 이들은 ‘형벌 부대’에 배치했고, 적 진영에 대한 정면 공격 같은 위험한 임무를 맡겼다. 명령은 효과를 냈다. 도망치는 지휘관을 총살하는 등 무자비한 규율 체계가 작동한 ‘붉은 군대’는 어마어마한 소모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잃지 않았다. 소련군은 이 전투에서 100만 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독일군 사령관을 포함해 9만여 명의 포로를 붙잡으면서 히틀러에게 처음으로 대패를 안겼다. 한해 전 모스크바 방어전에서도 스탈린의 역할이 컸다. 수도를 빠져나가던 주민들의 불안감은 스탈린이 수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라디오 방송으로 전해지자 누그러졌다. 스탈린은 연설을 통해 히틀러와의 싸움을 ‘유럽의 노예화된 인민을 해방시키는 투쟁’으로 규정하며 군과 주민의 전의를 끌어올렸다. 스탈린은 또한 군의 활력을 높이고 혁신적 분위기를 유도했으며, 전쟁을 위한 자원을 매우 성공적으로 동원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스탈린이 소련에 우호적인 체제를 동유럽에 수립하고, 공산주의 체제를 방어하는 것이 우선이었을 뿐 냉전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전후 소련과 서방의 전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데에는 서방 측의 책임도 크다는 얘기다. 스탈린이 승인한 6·25전쟁에 대한 대목도 나온다. 김일성의 남침을 말리던 스탈린은 1950년 1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할 수 있고,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마음을 바꾼다. “스탈린에게 한국전쟁은 매우 값비싼 계산착오였다.…한국전쟁은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을 단호하게 저지한 투쟁이라고 선전할 수 있었으나, 그런 주장은 심지어 공산주의 집단 내에서도 공허하게 들렸다. 무엇보다도 동서관계에서 러시아인들이 말하는 도베리예(신뢰)가 거의 완전히 붕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독재자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이해해야 제대로된 비판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찬찬히 읽어볼만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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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총무원장 “문화재 관람료 전면 폐지 추진”

    “문화재 관람료 전면 폐지를 목표로 제도를 개선하겠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사진)은 11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국가지정문화재를 사찰이 신앙적 차원에서 관리·보존하면서 궁여지책으로 문화재 구역 입장료를 받아왔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부가 올해 예산 421억 원을 확보해 5월부터 사찰 등이 문화재 관람료를 안 받거나 감면하면 해당액을 지원하기로 한 가운데 조계종이 관람료의 ‘궁극적 폐지’를 공식화한 것. 진우 스님은 “(정부 예산이) 종단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족하지만 양보하면서 국민 불편을 없애고 문화재 관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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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의 차이는

    한 해외 연구에 따르면 21세기 초 전 세계 질병으로 인한 사망과 고통의 20%는 말라리아와 결핵, 폐렴, 설사 등의 탓이었다고 한다. 모두 가난한 나라 국민이 많이 걸리는 질병이다. 그러나 이들 질병에 대한 연구비는 전체 생의학 연구비의 0.5%도 안 됐다. 신약 개발에 투입되는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민간 기업들이 부유한 나라 국민이 많이 걸리는 질병 연구에 더 많은 힘을 쏟기 때문이다. 일부 철학자들은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고자 ‘연구비의 공정 배분’ 원칙을 제안했다. “질병 연구에 배분되는 자원의 비율은 그 질병으로 인간이 겪는 고통의 비율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 여러 반론도 가능한 주장이지만 확실한 건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과학은 ‘가치’와 직결돼 있다는 것이다. 흔히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별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 세포의 성분을 분석하며, 깊은 땅속 구성 물질을 알아낸다. 사실을 탐구하는 과학이 ‘윤리적으로 옳다, 그르다’ 하는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과학철학자로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인 저자는 “과학적 추론은 가치 판단과 태피스트리(직물)처럼 서로 얽혀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 정보에 완전히 가치중립적 프레임을 부여하는 것은 오히려 불가능에 가깝다. 과학 연구 역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기에 용어와 프레임은 특정 가치와 관련된 미묘한 함의를 가지게 된다. 과거 많이 사용한 ‘지구 온난화’라는 용어는 ‘지구가 따뜻해져 좋은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지적에 ‘기후 변화’라는 말로 바꿔 쓰고 있다. 요즘에는 이 말 역시 문제를 덜 심각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우리는 사실의 진위를 가늠할 때 거의 항상 가치의 도움을 받는다”며 “과학 활동의 모든 단계에 가치가 영향을 미친다는 걸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라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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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100년 콘텐츠 무기로 펼치는 글로벌 OTT ‘왕좌의 게임’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간의 전쟁은 곧 콘텐츠 전쟁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HBO MAX 등은 가입자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흥미로운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이들의 콘텐츠 전쟁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건 고전의 반열에 오른 드라마, 영화 등의 후속작이다. 글로벌 1위 넷플릭스가 최근 내놓은 오리지널 시리즈 ‘웬즈데이’는 1930년대 신문 만화를 원작으로 1960년대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1990년대 여러 차례 영화화된 ‘아담스 패밀리’의 스핀오프(원작의 캐릭터나 상황에 기초해 만든 파생 작품)다. 넷플릭스에서 최초로 6주 연속 시청시간 1위에 올랐다. 후발 주자인 HBO MAX와 아마존 프라임은 판타지 대전을 치렀다. 선공은 세계적 인기를 모은 ‘왕좌의 게임’ 후속작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었다. HBO MAX에서 지난해 8월 첫 방송 직후 나흘 만에 2000만 명이 봤다. 잘 알려져 있듯 원작은 1990년대 출간되기 시작해 세계에서 수천만 부가 팔린 조지 R R 마틴의 대하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다. 아마존 프라임은 9월 ‘판타지의 아버지’ J R R 톨킨의 레전다리움(미출간 자료 포함 톨킨의 창작물을 아울러 가리키는 이름)을 바탕으로 만든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로 반격에 나섰다. 1, 2화는 나흘 만에 미국에서만 1300만 명이 봤다. 드라마 제작을 위한 판권은 넷플릭스도 노렸다. 하지만 캐릭터 중심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처럼 만들겠다는 제안에 화들짝 놀란 톨킨재단이 거부했고, 오히려 적은 돈을 써내면서 작업에 재단의 참여를 보장한 아마존이 판권을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전다리움 역시 1937년 출간된 ‘호빗’이 시작이다. 마블과 수많은 고전 애니메이션을 자랑하는 디즈니 역시 비장의 무기가 있다. 2012년 루커스필름을 인수하면서 확보한 ‘스타워즈’다. 1977년 처음 개봉돼 오리지널과 프리퀄, 시퀄만 9편의 영화로 제작된 이 시리즈는 ‘미국의 건국 신화’에 비유되기도 한다. 디즈니플러스는 ‘만달로리안’ ‘배드 배치’ ‘북 오브 보바펫’ ‘오비완 케노비’ 등의 스핀오프 시리즈를 만들어 재미를 보고 있다. 최근작 ‘안도르’는 시리즈의 다소 낡은 듯한 느낌까지 걷어낸 수작이라고 본다. 이처럼 흥행이 검증된 콘텐츠의 후속작은 연령대가 높은 오랜 팬덤을 신규 시청자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낸다. 이를 통해 글로벌 후발 OTT도 안착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K컬처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올해도 드라마 ‘더 글로리’가 넷플릭스에서 방영돼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지금은 우리 콘텐츠가 글로벌 OTT에 실려 해외로 뻗어나가지만, 토종 OTT가 오리지널 시리즈로 대박을 치고 다시 수십 년 뒤 후속작으로 이를 ‘우려먹으며’ 오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때가 올 것이라고 본다. 저들에게 100년 콘텐츠가 있다면 우리에겐 삼국유사 같은 1000년 콘텐츠의 저력이 있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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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탁상에 뒷북, 시대에 뒤떨어진 대한민국 행정 서비스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26m²(약 8평)짜리 원룸에서 월세를 살던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부채와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던 모녀가 긴급 복지 지원 등에서 누락된 과정은 전형적인 탁상 행정을 보여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녀가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서울 광진구에서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사는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모녀는 올 5∼10월 전기요금 9만2430원 등을 못 냈다. 요금 납부자 명의는 과거 세입자였지만 명의가 누구든 해당 원룸에 위기 가구가 산다는 건 파악됐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전력공사는 보건복지부에 모녀가 아닌 예전 세입자의 이름을 넘겼고, 구청은 서류상 해당 원룸에 거주자가 없는 것으로 봤다. 이사한 뒤 명의를 변경하지 않고 공과금을 납부하는 세입자는 흔하다. 그래도 납부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현 시스템에서는 요금 체납 시 엉뚱한 이전 세입자가 위기 가구로 포착된다. 정부의 위기 가구 발굴 시스템에 구조적 허점이 있는 것이다. 정부는 모녀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기 전날 ‘그물망’을 촘촘히 하겠다며 위기 가구 발굴에 활용하는 정보를 34종에서 44종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숫자를 늘리기에 앞서 공과금이 체납된 집 주소를 기준으로 위기 가구를 발굴, 지원하는 방안부터 검토했어야 했다. 서울 강남구청이 7일 뒤늦게 강남구 언북초교 앞 이면도로의 차도와 보도를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힌 건 전형적인 ‘뒷북 행정’이다. 2일 이 학교 후문 앞 이면도로에선 하교하던 3학년 어린이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이 도로는 2019년에도 보행로 구분 및 과속방지턱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바뀌지 않았다. 올 2월 서울시가 내놓은 ‘어린이보호구역 종합관리대책’에까지 포함됐지만 제한속도가 낮아졌을 뿐이었다. 그나마 단속 카메라도, 과속 방지턱도 설치되지 않아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뒤늦게 시내 초등학교 주변 교통 환경을 전수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 사례도 많다. 요즘 50만 명 가까운 주택임대사업자들은 부기 등기 의무 유예 종료일(9일) 전 부랴부랴 등기를 하느라 난리다. 법원 인터넷 등기소에서 전자 등기를 신청하는 이도 많은데, 시스템이 마이크로소프트(MS)도 이미 지원을 종료한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 ‘최적화’돼 있다. 말이 최적화지 크롬 등 보편화된 브라우저로는 안 되는 거나 매한가지다. 그나마 익스플로러로도 평범한 사용자에게는 어려운 보안 설정 조정 등을 거쳐야 해 작성 및 제출 과정에서 ‘키보드를 부숴 버리고 싶었다’는 이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이전 정부가 부기 등기 의무화로 임대사업자를 거추장스럽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제대로 성공한 것이란 시니컬한 반응도 나온다. 최근 행정 서비스 수준을 보면 정말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문턱에 선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다. 다른 부문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행정 서비스의 신속한 업그레이드가 절실한 시점이다.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 20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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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공복의 노심초사가 국민 안전 지킨다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운다’는 뜻의 노심초사(勞心焦思)라는 사자성어는 고대 중국 우 임금의 고사에서 나왔다. 우 임금은 황하를 다스리는 13년 동안 밖에서 지내면서 자신의 집 앞을 3번 지나갔지만 모두 집에 들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우 임금은 노심초사하며 치수에 전념하느라 가정도 돌보지 않았고, 건강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나 그 덕분에 백성들은 범람하는 황하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다음 날 기사를 준비하는 내내 안타까움에 손이 떨렸다. 생때같은 목숨이 150명 넘게 순식간에 길에서 스러졌다니…. 그저 참담할 따름이었다. 참사가 커진 원인과 관련해 경찰과 구청 등의 부실 대응 문제가 연일 드러나고 있다. 여러 잘못이 있겠지만 특히 ‘공복(公僕)’들이 있어야 할 때 제자리에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고 당일 서울에 대규모 집회 시위가 예정돼 있었는데도 충북 제천에 내려가 등산을 하고 저녁으로 반주를 한 뒤 잠들었다가 보고 문자와 전화를 놓쳤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보고 전화를 놓쳤다. 서울청 112상황실을 지켰어야 할 당직 상황관리관 류미진 총경은 자신의 사무실에 머물렀다.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당일 집회 현장 대응 후 저녁식사를 하고 차량 이용을 고집하다가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방에서 돌아온 뒤 현장에서 멀지 않은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 명의 생활인으로 보면 이들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국정감사 등으로 지친 윤 청장으로서는 간만의 휴일을 맞아 재충전이 필요했을 수 있다. 김 청장은 3차례 전화를 못 받았지만 2분 후 4번째 걸려 온 보고 전화를 받았다. 서울청에선 상황관리관이 112상황실을 상황팀장에게 맡기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관행이었다고 한다. 용산서장이 관내 집회 시위 대응을 마친 후 늦은 시간에 저녁식사를 한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자리에 있는 공무원은 필요한 시점에 제자리를 지키고, 언제든 긴급한 연락을 받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공무원 모두에게 우 임금 같은 희생을 강요할 순 없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공무는 그만큼 엄중한 일이다. 그런데 경찰 등의 대응을 보면 ‘설마 큰일이 생기겠어’라는 방심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현장에선 사고 전부터 위험 신고가 이어졌고, 사고 후엔 아비규환이 펼쳐졌지만 보고는 늦었다. 당국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구조도 지체됐다. 구청이 사전에 인파를 통제하는 인력을 적절하게 배치했거나, 경찰이 112 신고에 적절하게 대응해 참사를 막았더라도 공무원들에겐 별다른 칭찬이나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잘한 일은 표 나지 않는 것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공무원의 숙명이니, 그 역시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내부보고서 삭제 지시 및 회유 혐의로 수사를 받던 용산서 정보계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잘잘못을 떠나 아까운 목숨이 비명에 가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 20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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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서버 ‘먹통’ 대비한 대응 시나리오 필요하다 [광화문에서/조종엽]

    15일 오후 일이 있어 낯선 동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에 가는 대중교통편이 카카오맵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카카오T로 택시를 부르려는데 마찬가지로 ‘먹통’이었다. 커피를 사려 했지만 카카오톡으로 선물 받은 모바일 커피 상품권을 쓸 수 없었다. 카카오톡으로 내려진 회사 업무 지시는 16일 점심 무렵에야 전달됐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비롯한 카카오 서비스 중단 사태로 기자가 겪은 소소한 불편들이다. 데이터센터 화재가 낳은 이번 사태는 국민들의 일상이 디지털 서비스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했다. 만에 하나 이 같은 일이 정부 서버에서 일어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대한민국 전자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엔이 발표한 2022년도 유엔 전자정부평가에서 우리나라는 193개 회원국 가운데 3위를 차지했다. 개별 항목 중 ‘온라인서비스 수준’과 ‘통신 기반 환경’은 1, 2위 국가와 비슷하거나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각종 공문서 발급과 복지 서비스 신청 등 예전에는 주민센터 등에 방문해 처리해야 했던 일 대부분을 요즘은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편리성이 고도화될수록 위험도 고도화된다. 재정과 법무, 교육, 보건복지, 고용노동을 비롯해 중앙부처 등 50여 곳의 디지털정부 시스템 1460여 개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운영하는 정부 서버와 스토리지에 담겨 있다. 정부 포털 ‘정부24’에 따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만 1만7327개에 달한다. 정부 서버가 모두 먹통이 되면 이들 시스템과 홈페이지도 쓸 수 없게 된다. 물론 대비는 하고 있다. 정부는 대전과 광주에 정부 서버 백업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중요도가 1등급으로 분류된 외교부와 국세청, 경찰청, 특허청 등의 국가시스템은 두 곳의 서버에 구축돼 있고, 실시간으로 같은 자료가 저장된다. 한 서버에서 문제가 생기면 자동으로 다른 서버가 운영하는 재해복구 시스템도 구축돼 있다. 정부는 두 곳의 서버가 동시에 먹통이 돼도 시스템이 복구될 수 있도록 충남 공주에 세 번째 센터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비용 문제 때문에 기관 내부의 업무 시스템과 각종 홈페이지는 대부분 중요도 3, 4등급으로 분류돼 주기적인 백업만 이뤄진다. 추후 복구는 될 수 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일시적으로 먹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전쟁이나 초대형 재난이 정부 서버 먹통 사태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자정부 시스템이 모두 먹통이 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사이버공격 능력이 날로 고도화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일례로 긴급재난 문자는 이동통신사 통신망을 통해 발송된다. 그런데 정부 시스템이 먹통이 된 후에도 문자 발송 여부와 내용에 대한 승인이 전자결재로 이뤄질 수 있을까? 유사시 정부의 피해복구 지원과 각종 자원 배분은 전자정부 없이도 가능할까?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만의 하나’를 대비하는 건 언제나 필요하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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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마저 제대로 조사 안 하면 고의 교통사고 근절 어렵다[광화문에서/조종엽]

    최근 상습 ‘손목치기’범이 경찰에 구속됐다는 뉴스가 운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서울 용산경찰서가 지난달 말 붙잡은 이 범인은 지나는 차량에 손목과 팔 등을 슬쩍 부딪친 뒤 차를 멈춰 세우고 치료비를 요구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서울, 경기 일대에서 보험금과 합의금 등으로 약 3300만 원을 챙겼다. 밝혀진 것만 50여 건이니 드러나지 않은 범죄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실을 보도한 본보 기사에는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범인을 비판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지만 상당수는 경찰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경찰이 보통 차주의 결백 주장은 귀담아듣지 않고 합의를 종용한다. 이번에는 어쩌다 잡았지만 현실은 운전자가 (무조건) 죄인이다” “(고의 사고가) 의심스러워도 원칙대로 조사하는 경찰은 별로 없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최근 기자의 지인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도로에서 운전하다 차선을 변경했는데, 진입한 차선에서 뒤에 있던 차가 바짝 따라오더니 차를 세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뒤차 운전자는 “갑자기 끼어들어 급브레이크를 밟은 탓에 동승자가 다쳤다”며 “그냥 갔으니 뺑소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뺑소니는 아니지만 사고가 정식으로 접수되면 출석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보험 처리 의사는 없느냐”고 물었다. 지인은 “경찰이 치료비를 물어주는 게 낫다고 은근히 권하는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지인이 “그래도 제대로 조사를 받겠다”고 고집하자 길길이 날뛰던 상대 차주가 “사고 신고를 안 하겠다”고 물러나며 일이 마무리됐다. 지인이 정말 교통법규를 위반한 건지, 조금이라도 다친 사람이 정말 있었던 건지는 지금까지도 확실하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취재진이 “손목치기 피해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고 묻자 “사고가 나면 대부분 당황해 현장 상황부터 마무리하느라 범행을 의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경찰에 신고해야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신고했더니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서로 좋게 하시라”며 합의를 유도하는 경찰을 만났다는 경험담이 인터넷 자동차 커뮤니티 등에 넘쳐난다. 용산경찰서에 잡힌 손목치기범 같은 사기꾼들이 그 틈을 파고든다. 경찰에 정식으로 사고가 접수될 경우 적당한 이유를 대고 물러나면 된다고 보고 범행을 이어가는 것이다. 합의를 종용한 경찰이 있다면 아마도 처리할 사건이 너무 많아서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경찰관 수는 최근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경찰관 수는 2010년 처음 10만 명을 넘었는데 올해 7월 말 기준으로는 약 13만2400명에 이른다.(참고로 e-나라지표에 따르면 범죄 발생건수 대비 검거율은 2017년 85.0%에서 2020년 81.2%로 오히려 하락했다.) 이제는 “경찰이 제대로 조사해 억울한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운전자들의 경험담이 넘쳐나는 게시판을 보고 싶다.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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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와달라”며 유인해 11명 성폭행…김근식 내달 출소

    인천과 경기 서부 일대에서 미성년자 11명을 연쇄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김근식(54)이 다음달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예정이어서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일 여성가족부 등에 따르면 2006년 미성년자 강간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김근식이 다음 달 출소한다. 김근식은 미성년자를 성폭행해 복역하다 2006년 5월 8일 출소한 후 16일 만에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이어 그해 9월 경찰에 붙잡히기 전까지 인천 서구와 계양구, 경기 고양·시흥·파주시 등에서 초중고 여학생(9~17세) 총 11명을 성폭행했다. “무거운 짐을 드는 것을 도와 달라”는 등의 말로 유인한 뒤 자신의 승합차에 태웠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해 범행을 저질렀다. 2006년 11월 1심 재판부는 “교화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며 그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출소할 예정이었으나 2013, 2014년 동료 재소자를 폭행한 혐의로 2차례 재판에 넘겨져 형기가 늘었다. 1일 인천주민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출소 뒤 다시 범행을 저지를까 걱정된다’는 내용의 글이 이어졌다. 여가부 관계자는 “출소 후 거주지가 확정되면 바로 주소 등 개인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청은 “관할 경찰서 내 특별대응팀을 운영해 재방을 방지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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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뒤 어느 날 반지하 거주가 불법화된다면[광화문에서/조종엽]

    “여기서 살면 안 되는 거 알죠? 전입신고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이 가격인 거예요.” 2032년 8월 어느 날. 빌라 반지하의 ‘창고’를 임차하러 온 나에게 집주인은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이곳에서 먹고 자려고 하는 것은 나도 알고 그도 안다. 주인의 말이 무색하게 창고에는 싱크대와 화장실이 설치돼 있고, 전에 살던 세입자가 놓고 간 낡은 옷장은 여전히 쓸 만했다. 반지하 주거가 ‘불법’이라 가스가 연결되지 않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주인이 보증금을 500만 원이나 달라는 건 영 꺼림칙했다. 만에 하나 건물이 경매에라도 넘어간다면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나는 전 재산인 보증금을 건지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창문이 없고, 비좁은 고시원에서 나온 것이 어딘가. 어쨌든 이곳은 확실히 싸다. 반지하가 불법이 되니 요즘은 옥탑방 임차료도 올랐다. 공공임대주택도 알아봤지만 일터와 거리가 너무 멀었다. 직장과 가까운 곳은 보증금이 만만찮았다. 무엇보다 요즘 입주 대기자가 너무 많다. 거주가 불법화된 서울 반지하 가구의 이주 수요를 임대주택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탓이다. 세입자가 떠나고 빈 옆집 반지하에는 밤에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다. 마약이라도 하는 건 아닌지 무섭다. 오늘은 비가 많이 온다. 설마 잠기는 것은 아니겠지…. 이상은 지금부터 10년 뒤 반지하에 사는 것이 법으로 금지됐다고 가정하고, 서울의 한 반지하 세입자의 사연을 가상으로 적어 본 것이다. 최근 기록적 폭우로 반지하 주민 4명이 잇따라 아까운 목숨을 잃자 서울시가 대책을 내놨다. 정부와 협의해 지하·반지하는 주거용으로 신축을 불허하도록 건축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기존 지하·반지하 주택은 ‘유예기간’을 두고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해 사실상 퇴출하겠다고 했다. 볕이 잘 들지 않아 습하고, 안전마저 위협당하는 반지하를 줄여나가면서 시민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퇴출’은 다른 문제다. 조금이라도 임차료가 싼 집을 찾는 수요는 언제나 있다. 모아 둔 목돈이 없는 흙수저 청년, 자녀가 있어 넓은 공간이 필요한 부모, 소득이 없거나 적은 노인 등이 거주비용 대비 입지가 좋거나 공간이 넓은 반지하를 찾는다. 반지하 거주를 불법화했다가는 거주자들이 오히려 법의 각종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주 대책도 정말 실현될지 모르겠다. 서울시는 공공임대주택 23만 채를 신규 공급해 20만 가구에 이르는 반지하 주민이 입주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 시내에 공급된 공공임대주택은 24만 채 수준이다. 이를 2배 가까이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20년 동안’이라는 토를 달았지만 만만한 목표가 아니다. 이미 서울주택도시공사(SH) 부채는 17조 원이 넘어 전국 도시개발공사 가운데 가장 많다. 게다가 반지하 외에도 주거취약계층이 많은데, 이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논란이 확산되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18일 “반지하 퇴출이 아니라 감축”이라고 물러섰다. 혹시 시장으로서 선명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욕만 앞섰던 것은 아닌지 지금이라도 돌아봤으면 한다.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 202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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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이 경찰을 존중해야 경찰이 시민을 보호할 수 있다[광화문에서/조종엽]

    18일 제주경찰청이 공개한 영상이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16일 오전 1시경 제주시 한림읍의 한 주점 앞에서 경찰관이 장봉으로 남성 피의자를 제압하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 경찰관은 장봉을 세차게 휘두르며 나아갔고, 흉기를 든 피의자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경찰관은 장봉으로 피의자의 오른 손목과 팔을 내리쳐 흉기를 내려놓게 했고, 그 틈을 타 나머지 경찰 3명이 달려들어 제압에 성공했다. 경찰이 흉기를 든 범인을 몰아세우는 모습에 누리꾼들은 박수를 보냈다. 영상 속 주인공은 1996년 경찰에 입직한 26년 경력의 한림파출소 순찰2팀장 박정현 경감(49)이다. 방검복을 입었다지만 피의자가 손에 든 길이 23cm의 회칼을 휘둘렀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박 경감에게 전화로 “두렵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런 상황을 많이 경험했고, 무도를 오래 수련해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영상을 본 일부 누리꾼은 경찰이 테이저건을 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에 관해 박 경감은 “그러면 피의자가 쓰러지면서 자기 칼에 찔려 다치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며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그랬겠지만 장봉으로도 제압할 수 있다고 봤다. 여차하면 테이저건을 쏠 준비가 된 동료 3명도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박 경감은 다치지 않고 무사히 범인을 제압했다. 그러나 매일 수많은 경찰이 치안 현장에서 다치거나 폭행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술지 ‘치안정책연구’ 2021년 12월호에 실린 논문 ‘경찰공무원의 폭력 피해 과정과 영향에 관한 연구’(저자 이재영 세한대 교수)에 따르면 2015∼2019년 경찰 2470명이 범인의 공격을 받아 다쳤고 3명이 순직했다. 경찰 폭행 등 공무집행방해 사건도 2020년에만 1만789건에 달한다. 동료 업무 가중 등을 이유로 경찰이 사법 처리를 꺼리는 경향이 있기에 실제 공무집행방해 사건은 더 많을 것이다. 지구대,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들은 취객으로부터 욕설을 듣는 것이 다반사고,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논문 인터뷰에 응한 경찰들은 얼굴이나 가슴을 주취자의 주먹이나 발로 가격당하거나, 할큄을 당하거나, 머리채를 잡힌 경험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난동을 부리던 주취자에게 물린 경찰도 있었다. 폭력 피해를 겪은 경찰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경찰들은 “경악했고, 심적 충격이 대단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든다” “내가 부족해 폭행을 당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대민 활동에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경찰도 적지 않았다. 한 경찰은 “예전에는 출동하면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현장에서 해결해주려고 노력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다른 경찰은 “폭력 피해 트라우마가 있기에 다가가는 대민 서비스는 어렵다”고 했다. 밤길에 칼 든 범인을 만났을 때 경찰이 대신 나서 장봉이나 테이저건으로 맞서주길 바란다면 먼저 경찰부터 존중해야 한다. 시민이 경찰을 존중해야 경찰이 시민을 보호할 수 있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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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하대 성폭행 사망사건’ 이후…대학들 학내 성범죄 예방 고심

    “술자리를 마친 뒤 집 방향이 비슷한 학생들끼리 함께 귀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잘 모르는 남학생과는 절대 그러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18일 서울의 한 사립대 캠퍼스에서 만난 여학생 김모 씨(21)는 최근 인천 인하대 캠퍼스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망 사건 이후 남학생들과의 술자리를 경계하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같이 술을 마신 동기생이 혹시 이상한 짓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어 불안하다”라고 했다. 15일 인하대 캠퍼스에선 이 대학 1학년 학생이 같은 동아리 1학년생으로부터 성폭행 당한 후 3층에서 추락해 사망했다.●거리두기 해제 후 대학가 성범죄 잇따라4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이후 대면수업이 재개되면서 최근 대학 캠퍼스 내 성범죄도 이어지고 있다. 4일 서울 연세대에선 의대생 A 씨(21)가 교내 여자화장실에서 휴대전화로 옆 칸 학생을 촬영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지난달 고려대에서는 축제가 벌어지던 중 30대 남성 B 씨가 캠코더 등으로 다수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 붙잡혔다. 5월에도 성균관대 축제에서 성추행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대면수업과 함께 3년 만에 대학 축제가 부활하고 동아리 모임 등으로 술자리가 늘어난 것도 성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소재 대학 재학 중인 장모 씨(22)는 “거리두기 해제 이후 술자리가 잦아졌는데, 동기나 선후배 학생이 술에 취해 스킨십을 해 불쾌할 때가 종종 있다”고 했다.●“캠퍼스 내 폐쇄회로(CC)TV 늘릴 것”대학 및 교육 당국은 캠퍼스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인하대 측은 18일 회의를 열고 캠퍼스 보안 강화 방안을 검토했다. 학교 측은 교내 건물에 사전 승인받은 학생만 출입할 수 있도록 하거나, 출입 시간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교내 폐쇄회로(CC)TV를 추가 설치하고 보안 인력을 확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인하대 관계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특별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가해자는 수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학칙에 따라 퇴학 등 조치하겠다”라고 했다. 다른 대학들도 고심 중이다. 한 서울 소재 대학본부 관계자는 “우리 학교에서 (인하대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자는 얘기가 나왔다”며 “야간 캠퍼스 내 순찰 강화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인하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과 관련 앞으로 대학 캠퍼스 내 야간 출입 관리를 강화하고 방범시설을 늘리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18일 밝혔다. 이와 함께 현재 운영 중인 대학생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별도의 특별교육도 추진하기로 했다. 한편 인하대에선 연일 학생과 시민들의 피해자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의 요구로 캠퍼스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 함준우 씨(25)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 피해자가 너무 안타깝다”라며 “성범죄 처벌이 강화되길 바란다”라고 했다. 인하대 측은 유족 요청에 따라 추모공간 운영을 이날 오후 중단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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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과 ‘경찰 독립’의 민망함[광화문에서/조종엽]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최근 초유의 ‘치안감 7명 인사 번복 발표’ 논란에 대한 경찰의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요즘 줄임말로 ‘할많하않’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본보 기자가 진상조사 계획을 묻자 “사건 관련 경찰청 인사는 인사담당관뿐인데, 이미 사실관계 파악을 마쳤다. 더 조사할 게 없다”고 했다. ‘우리 쪽 잘못이 아니다’라는 은근한 항의가 행간에서 느껴진다. 경찰청이 “앞으론 인사를 대통령 결재 후 발표하겠다”라고 밝힌 것도 사실 ‘지금까진 결재 전 발표해 왔고, 문제가 없었다’라는 항변에 가까워 보인다. 해명대로라면 경찰은 21일 오후 6시경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인사안(편의상 ‘초안’이라고 지칭)이 ‘관행’대로 행안부와 대통령실이 재가한 안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행안부 측은 최종안이 아닌 초안을 경찰에 보낸 건 절차를 밟기 위해 기안을 마련하라는 취지였고, 대통령실과 조율해 실제 인사발령 내용을 반영하라고 했는데 경찰이 조율 없이 공개했다는 입장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대통령실 결재도 안 된 상태에서 기안 단계(의 인사안)를 (경찰) 인사담당자가 확인하지 않고 내부 공지해버려 문제가 됐다”라고 못 박았다. 엄밀히 말하면 정정된 인사발표(21일 오후 9시 34분) 역시 대통령 결재(21일 오후 10시) 전 발표됐다. 문제의 핵심은 형식적으로 대통령 결재 전이냐 후냐가 아닌 셈이다. 왜 행안부가 경찰에 처음부터 최종안을 보내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사태의 진상은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확실한 건 최근 행안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의 경찰 통제 권고안을 두고 일던 논란이 묻히고, 단숨에 경찰의 ‘국기 문란’ 사태로 국면이 전환됐다는 것이다. 세간에는 경찰 통제 권고안뿐 아니라 이번 인사 번복 발표 논란에서도 권한이 커진 경찰의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정권의 의도가 비친다는 시각이 많다. 선출된 권력의 경찰 통제가 그 자체로 비민주적이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권력의 경찰 통제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고문과 사찰, 선거 개입 등 경찰의 ‘흑(黑)역사’를 겪고 난 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87년 체제’의 합의였다고 본다. 그러나 김창룡 청장이 최근 ‘행안부 경찰국 신설’ 등 논란에서 독립성과 중립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보였다. 김 청장은 지난 정부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비위 문제 등을 밝히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았기 때문이다. 김 청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할 경찰위원회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았고, 경찰이 국민보다 정권에 충성하는 모습은 민주화 이후에도 반복됐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 중에서 경찰청이 1991년 내무부 산하에서 외청으로 독립한 이후 취지에 걸맞은 발자취를 남겼다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독립성과 중립성을 주장하지만 근거로 내세울 만한 ‘30여 년 독립의 성과’가 마땅치 않은 경찰의 모습이 민망해 보인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 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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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역량 폄훼 유감”이라는 경찰, 정말 유감스러워야 할 것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 법을 두고 문재인 정권이 새 정부 출범 후 자신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해 만든 ‘방탄법’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경찰이 검찰보다 더 독립적이고,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더불어민주당이 법안을 강행 처리했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현 정권 초기인 2018년 ‘드루킹’ 사건 당시를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경찰은 ‘드루킹’ 김동원 씨를 체포한 뒤에도 한 달 가까이 증거 확보에 필요한 추가 강제 수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언론 보도로 사건 내용이 알려지고, 검찰의 보완 지시를 받고서야 드루킹 통신기록 영장을 법원에 신청했다. 문재인 대선 캠프의 핵심이자 정권 실세로 꼽히는 김경수 당시 민주당 의원이 드루킹과 관련됐을지 모르는 정황을, 경찰은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닐까.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검수완박 입법을 두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신분을 가진 검찰에 비해 경찰이 권력을 훨씬 잘 따르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검찰은 권력의 눈 밖에 나서 옷을 벗어도 변호사로 먹고살 수 있지만, 경찰은 그렇지 못하니 권력의 눈치를 더 많이 본다는 뜻이다. 검수완박이 현 정권 방탄용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권력이 가리키면 달려가 물어 오는 게 경찰인데, 무슨 걱정이냐’는 취지의 얘기를 대놓고 하는 걸 보면 여당 중진들이 경찰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알 수 있다. 3일 검수완박 법안 국무회의 의결 직후 김창룡 경찰청장은 내부 전산망을 통해 전국 경찰에게 서한을 보냈다. 한동안 침묵했던 김 청장은 뒤늦게 “지난 몇 주간 경찰의 수사 역량을 폄훼하는 주장이 이어져 답답하고 언짢으셨을 것이다. 저 또한 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검찰이 검수완박 반대 근거로 경찰의 부실 수사를 연이어 언급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경찰이 정말 유감스러워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는 것 아닐까. 예를 들면 경찰을 두고 ‘권력의 개’라고 부른 것이나 다름없는 여당 실세의 모욕, 권력형 비리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에 비해 경찰의 칼은 무디고 무섭지 않다는 권력자들의 기대 같은 것들 말이다. 민생 범죄 수사도 문제다. 민생 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들 사이에선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부실 수사와 수사 지연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검수완박 법안 통과로 경찰의 수사 총량이 더 늘면 사건 적체도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죽은 권력이든 산 권력이든 민생 범죄든 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수사하는 것이다. 드루킹 사건 당시 경찰 수뇌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자신들의 편을 드는 청와대 눈치를 봤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정권에 코드를 맞춘 대가로 가져온 수사권이라면 자랑스러울 수 없다. ‘수사 역량 부족’ 주장이 폄훼인지 아닌지, 경찰 스스로 증명해야 할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 202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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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일상화된 보이스피싱, 외교적 접근으로 근절해야

    보이스피싱 범죄가 우리 사회에 본격 출현한 건 2006년이다. 그 무렵 인터넷 국제전화가 널리 보급된 것과 관계가 있다. 피싱범들은 발신지를 숨기기 용이하고 사용료도 저렴한 인터넷전화로 ‘안전한’ 중국에서 맘 놓고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는 그해 6월 경찰에 접수된 전화 사기 피해가 73건이었다고 전했다. 하루 2건이 조금 넘었던 것이다. 16년이 지난 지금 보이스피싱은 근절되기는커녕 우리 사회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는 3만982건이었고, 피해액은 7744억 원으로 웬만한 시군의 1년 예산과 맞먹었다. 17분마다 1명이 보이스피싱에 속아 약 2500만 원을 날린다. 이제 보이스피싱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상적 재난에 가깝다. 어르신이나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가 잘 속아 넘어간다는 것도 오해다. 50대 피해자가 가장 많고, 다음이 40대다. 피해 건수는 2018년 이후 3만 건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해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범행 수법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탓이다. 사기범들은 사람들이 ‘070’ 전화에 걸려들지 않자 ‘010’ 등으로 발신자 전화번호를 바꿔주는 ‘중계기’를 쓰기 시작했다. 경찰이 모텔 등에 설치된 중계기를 단속하자 차량에 싣고 다니거나, 아예 중고 스마트폰을 중계기 대용으로 쓰는 수법이 나왔다. 통장 발급 절차를 강화하고, 인출을 지연시켜 수거 통로인 금융계좌를 옥좼더니 전달책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수법을 변경했다. 지난해의 경우 피해자의 3분의 2가 이 방식에 당했다. 일자리를 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전달책으로 활동하다가 중벌을 받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가족 전화번호로 발신한 것처럼 보이게끔 전화를 걸어 납치를 가장하는 수법도 등장했다. 경찰이 ‘공공기관은 전화로 금융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백날 홍보해도 소용없다. 역학조사관 사칭 보이스피싱이 활개를 치는데, 실제로 서울 일부 보건소가 ‘재택치료자 물품지원비’를 지급한다며 문자로 통장 사본 등을 보내라고 요구한 사실이 본보 취재로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은 범정부 합동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 신고·대응센터’를 설립해 보이스피싱에 원스톱 대응할 방침이라고 최근 밝혔다. 필요한 일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고액 이체나 인출을 더 번거롭게 만들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 해법은 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중국, 필리핀 등에 있는 보이스피싱 상부 조직이 건재한 상태에서는 피해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경찰이 현지 당국과 공조 속에 해외에서 조직 총책을 검거했다는 소식이 가끔 전해지지만 전체 피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현지 치안당국이 적극 나서도록 외교적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조직원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약점이다. 그러나 조직 총책은 중국 국적이 다수라고 한다. 사기범들이 한국에 머물면서 해마다 수천억 원을 중국인으로부터 가로챈다고 치자. 중국은 진작 ‘다 때려잡으라’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지 않았을까.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 202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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