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덕

김창덕 본부장

동아일보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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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창덕 본부장입니다.

drake007@donga.com

취재분야

2026-05-28~2026-06-27
칼럼100%
  • [횡설수설/김창덕]하이닉스가 없앤 학력 제한

    인공지능(AI)이 필요한 자료를 척척 찾아주고 데이터 분석은 물론 보고서까지 대신 써주는 시대다. 개발자들도 AI가 코딩한 프로그램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점검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세계 각국에서는 AI가 대체 가능한 인력들에 대한 감원 태풍이 거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AI 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빅테크들은 완전히 달라진 인재상을 전면에 내세운다. 인류 첫 ‘조(兆)만 장자’ 반열에 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인간적인 깊이와 디지털 유연성”을 꼽았다. 자녀들에게 코딩을 가르치지 말라고 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미래의 가장 강력한 프로그래밍 언어는 인간의 언어”라고 했다. 결국 ‘인간다움’, ‘통찰력’ 등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국내에서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AI 시대에는 세 가지 근육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우선 질문을 통해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생각 근육’이다. 기술 혁신에 뒤처지지 않을 ‘적응 근육’과 다양한 파트너들과 유연하게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는 ‘공감 근육’이 그다음이다. 이런 배경 아래 AI 시대의 주역이자 수혜자인 SK하이닉스가 17일 신입사원 수시 채용부터 ‘4년제 학사 학위 이상’이라는 학력 제한을 없앴다. 생각, 적응, 공감의 삼박자를 갖춘 인재라면 고등학교만 졸업했든, 대학 재학 중이든 미리 뽑겠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명문 대학 간판이 없으면 서류심사 통과조차 어렵다 보니 고육지책으로 법에까지 차별 금지 조항이 등장했다. 1994년 시행된 ‘고용정책 기본법’ 제7조는 근로자를 채용할 때 성별, 종교, 나이, 출신 지역, 혼인이나 임신 여부, 병력 등과 함께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을 막았다. 2014년에는 여기에 ‘학력’을 추가해 대졸, 고졸 등도 구분하지 않도록 했다. SK하이닉스처럼 학벌 기준을 스스로 버리는 기업이 늘면 이 법 조항은 언젠가 사문화(死文化)될지도 모른다. ▷다만 학벌을 대체할 공정한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 공공기관에 대대적으로 시행했던 ‘블라인드 채용’은 취지와 달리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지원자들이 그 학력을 얻기 위해 쏟았던 숨은 노력을 평가 절하한다는 반론이 컸고, 그것이 또 다른 ‘불공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오디션’ 형태로 소수 인력을 학력과 상관없이 채용했던 민간 기업들도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SK하이닉스의 도전 역시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AI 도구에 능수능란한 고졸 사원이 핵심 업무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낸다면 채용 시장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빨리 더 큰 폭으로 바뀔 수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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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WP “美 ‘강제노동 관세’는 새 꼼수”

    2021년 1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에 서명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을 지적하면서 면화, 폴리실리콘, 토마토 같은 이 지역 생산품의 수입을 원칙적으로 막았다. 중국 정부는 내정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유엔 공식 보고서나 뉴욕타임스가 폭로한 중국 공산당 내부 문건 등을 보면 중국 내 강제노동은 근거가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강제노동이란 단어가 다시 등장한 것은 올 2월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정부의 일괄적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한 이후다. 미 정부가 상호관세의 대체 무기로 선택한 무역법 301조에서 강제노동을 수입 규제나 관세 부과의 명분으로 인정하고 있어서다. 4월 공청회까지 열며 분위기를 띄운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이달 초 한국 등 54개국에 12.5%의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고 했다. 나라마다 이유도 제각각인데, 한국은 인권 침해 소지를 안고 있는 중국산 강판을 수입해 가공한 뒤 미국에 수출한 것 등을 문제 삼았다. 이른바 ‘방조’ 혐의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3일 사설에서 ‘새로운 꼼수(a new trick)’라는 표현을 쓰며 “(강제노동은) 명백히 보호무역주의를 위한 구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 일본, 스위스 등과 실제 강제노동을 ‘자행’하는 중국에 같은 관세율을 적용한 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논리에서였다. 실제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6개국에는 관세를 우리보다 낮은 10%만 적용하기로 했는데, 왜 그러는지는 심판관인 미국만 알고 있다. WP는 “외국인 노동자 착취 근절은 트럼프 정부가 관세 부과 범위를 정하도록 만든 동기가 아니다”라고 재차 못 박았다. ▷미 정부도 발끈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10일 WP에 공개서한을 보내 “WP의 반대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유력 언론과 정부 간 지상 논쟁이 벌어진 셈이다. 그는 강제노동으로 전부 또는 일부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해 온 것은 미국의 100년 전통으로 트럼프 정부가 갑작스럽게 나선 게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미국의 강제노동 상품 수입은 이중적 잣대가 적용돼온 게 사실이다. 이번 강제노동 관세 대상에서도 트럼프 정부는 커피, 소고기, 희토류 등 자국에 반드시 필요한 품목들은 제외하고 있다고 WP는 짚었다. 필요할 때만 강제노동을 내세운다는 지적으로, 과거 미 초콜릿 업체들이 아동 착취 논란이 컸던 아프리카산 카카오로 막대한 이윤을 남긴 것과도 다르지 않다. 트럼프 정부는 어떻게든 상대국에 관세를 매겨서 자존심도 되찾고 재정 수입도 올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구실이 ‘노동 인권 수호’라는 점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보는 것 같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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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급발진은 없다”

    우리가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외부 신호는 보통 대뇌피질로 전해진다. 이곳에서 상황을 분석한 뒤 각 신체 부위에 적절한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공포스러운 상황이 갑자기 닥치면 우리 뇌에선 ‘생존 스위치’가 켜져 이성적 판단을 건너뛰게 된다고 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운전자들이 위험을 인지한 순간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는 실수가 많아지는 이유를 뇌 과학 관점에서 밝힌 연구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실제 대형 교통사고를 조사하다 보면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 운전자들이 적지 않다. 무거운 처벌이 두려워 일단 거짓말부터 하는 이도 있겠으나, 워낙 찰나의 순간이라 본인이 밟은 게 액셀러레이터인지 브레이크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서 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차량 결함으로 결론이 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2018년 고속도로에서의 운전자 부부 사망 사건을 둘러싼 민사소송에서 항소심이 급발진을 사고 원인으로 인정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다시 뒤집었다. ▷삼성화재에 따르면 언론에 보도된 페달 오조작 ‘의심’ 사고는 2021년 66건에서 작년 153건으로 급증했다. 사망자는 같은 기간 15명(12건)에서 51명(39건)으로 늘어났다. 특히 2021∼2025년 5년간 페달 오조작이 원인으로 보이는 사고의 70%가 60대 이상이 운전한 경우였다. 운전 경력이 길수록 도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좋을 수는 있는 반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은 떨어져 ‘행동 오류’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최근에는 ‘페달 오조작 급가속 제어 장치(ACPE)’ 같은 안전 보조 장치가 기본 탑재된 신차가 꽤 있다. 사람이나 장애물이 가까이 있으면 가속 페달을 잘못 밟아도 시속 8km 이하로 속도를 제어하는 식이다. 유럽은 올해부터 차량 안전평가 항목에 이 장치 탑재 여부를 반영하고 있고, 일본은 2028년 9월 이후 생산하는 자동차에 ACPE 설치를 의무화한다. 한국도 2029년부터 이런 안전 장치를 신차에 반드시 탑재하도록 작년에 시행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기존에 운행 중인 차들에 대해서는 기술적으로 뾰족한 수가 없다. 이미 거대한 전자장치로 진화한 자동차에 ACPE 같은 소프트웨어를 추가하는 건 타이어 교체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존 장치들과 충돌을 일으키면 더 위험한 상황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당장은 제도 보완을 통해 도로 안전을 지킬 수밖에 없다. 인지 능력과 신체 반응 속도가 떨어지는 운전자들의 대체 이동수단을 확대하면서 운전대를 내려놓도록 유도하는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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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공포보다 탐욕이 더 많아”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기업공개(IPO)를 위한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4일부터 기관투자가 대상 설명회를 시작하는 이 기업은 IPO를 통해 750억 달러(약 114조 원)를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세웠던 최고 조달 기록(294억 달러)의 2.5배 규모다. 머스크가 목표로 하는 스페이스X의 기업 가치는 최대 2조 달러. 스페이스X의 베일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글로벌 자본시장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초대형 IPO는 새로운 자본을 끌어들여 금융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본 블랙홀’이 되기도 한다. 대형 펀드나 기관들이 새 종목을 투자 포트폴리오에 넣으려면 다른 주식들을 팔아 현금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전닉스’가 모든 자금을 빨아들이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오른 종목보다 내린 종목이 훨씬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스페이스X 상장을 앞두고 시장의 기대감 못지않게 긴장감도 함께 고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스페이스X의 IPO 대표 주관사인 골드만삭스가 직접 방어에 나섰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분명히 공포보다 탐욕이 더 많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급격히 오른 주가의 조정 가능성이나 인공지능(AI) 버블에 대한 걱정보다, 자본 투자로 추가 이익을 얻겠다는 욕구가 아직은 더 강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금융시장에 유동성이 계속 공급돼 스페이스X를 포함해 앞으로 이어질 대형 IPO들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금 한국 증시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공포’와 ‘탐욕’으로 구분된다. 2일 기준 코스피는 꼭 1년 전보다 226% 올랐다. 미국 나스닥(41%) 등 해외 증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이렇게 급격히 상승하다 보니 일부에서는 조정에 대한 공포심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투자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달 말 상장한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 16개는 이틀 만에 시총 5조 원을 넘어섰다. 주가가 오르면 두 배 수익을 내고, 내리면 두 배를 잃는 이 위험한 상품에 투자하려고 수십만 명이 의무교육을 신청하고 있다. 적어도 이 시각엔 탐욕이 공포에 완승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유튜브나 온라인 카페에 등장하는 자칭 주식 전문가들은 여전히 한목소리로 “더 올라간다”를 외치고 있다. ‘포모’(FOMO·소외 공포) 심리로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들로서는 기회가 남았다는 달콤한 말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주가의 흐름은 누구도 예단할 수 없고, 투자의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져야 한다. “남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을 부려라.” 지금이 바로 워런 버핏의 조언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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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창덕]반도체, ‘필수공익사업’ 지정은 어떤가

    2005년 여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가 파업에 나섰다. 휴가를 떠나려던 여행객들의 발이 묶였고 항공 물류 대란으로 피해 기업들도 속출했다. 정부는 결국 25일 만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해 파업을 강제 중단시켜야 했다. 그해 겨울 이번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운항을 거부했다. 정부는 나흘 만에 또다시 긴급조정권을 꺼내들었다. 1963년 도입된 긴급조정권은 지금껏 딱 네 번 발동됐는데, 그중 두 번이 그해 이뤄진 것이었다. 하늘길이 막혔을 때 국가 경제가 어떤 혼란에 빠지는지 경험한 정부는 이듬해 법 개정에 나섰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에 명시된 필수공익사업 범위에 ‘항공운수사업’을 넣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항공사는 2008년부터 필수공익사업장으로 분류됐다. 노조 파업 시에도 대체근로를 허용해 국제선 80%, 국내선 70%인 최소 운항률을 지키도록 한 것이다.국가 경제를 볼모로 잡는 ‘반도체 파업’ 20여 년 전 이야기를 다시 꺼낸 것은 지난달 목전까지 갔던 삼성전자 노조 파업이 준 충격 때문이다. 평균 연봉이 1억 원이 넘는 노조원들이 성과급 5억∼6억 원을 요구하는데도 회사로서는 파업 위기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다. 공장이 서면 피해가 10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정부도 긴장감을 드러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긴 마찬가지였다. 7만 명 노조원들의 결정에 올해 국가 예산의 7분의 1이 날아갈 참이었다. 다행히 반도체 공장 셧다운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전자 노조는 반도체 사업장에서 파업이 얼마나 위력적인 카드인지를 새삼 확신하게 됐을 것이다. 크레인 위로 올라가거나 건조 중이던 선체 바닥에 들어가 셀프 감금을 하지 않아도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노조는 요구 사항이 생길 때마다 파업이란 만능열쇠를 꺼내들지 모른다. 당장 삼성 노조의 ‘완승’을 지켜본 SK하이닉스 노조가 “우리도 삼성만큼 수억 원을 저리 대출해 달라”고 요구할 예정이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게 반도체의 ‘필수공익사업’ 지정이다. 반도체처럼 국가 경제에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산업이 한 이익집단에 의해 흔들린다는 건 불합리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서다. 반도체는 올해 1∼5월 누적 기준으로 대한민국 수출의 37%를 차지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의 시가총액은 코스피 전체 시총의 55%가 넘는다. 반도체 파업이 전 국민의 삶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경이다. 물론 헌법상 노동자의 기본권 중 하나를 법으로 제한하는 일인 만큼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쉽게 볼 문제는 아니다. 현재 노동조합법은 필수공익사업을 ‘업무의 정지 또는 폐지가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 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고 그 업무의 대체가 용이하지 않은 사업’으로 정의한다. 이미 지정된 철도, 항공, 수도, 전기, 가스, 병원, 통신 등처럼 반도체도 그런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왜 반도체만?”이라는 형평성 논란을 잠재울 논리도 필요하다.‘경제 안보’ 관점에서 안전장치 필요 여기서 시계를 20년 전으로 다시 되돌려 보자. 정부가 항공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할 때도 “비행기 안 뜬다고 굶어 죽나”는 반발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법 개정을 밀어붙였던 것은 항공 마비가 불러온 국가적 피해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항공 파업이 경제 생태계의 특수한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면, 반도체 파업은 나라 경제 전체를 한참 뒤로 물릴 수도 있다. 성장잠재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우리 경제에 그 뒷걸음질은 치명상이 될 것이다. 반도체는 ‘경제 안보’의 일환으로 다뤄야 하는 산업이다. 그러니 공익 관점에서의 파업 안전장치는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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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학점 인플레’ 제동 건 하버드

    2012년 한 한국인 대학생이 화제가 됐다. 한국 국적 유학생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하버드대의 ‘소피아 프로인트’ 상을 받은 경제학과 진권용 씨다. 이 상은 하버드대를 졸업한 법률가 맥스 프로인트가 1964년 어머니 소피아를 기리기 위해 거액을 기부하면서 제정됐다. 최우등 졸업생 중 최고 학점자에게 주어지는데,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계산할 정도로 엄격하게 수상자를 가린다. 3년 만에 조기 졸업한 진 씨의 학점은 4.0이었다. 전 과목 만점은 그해 졸업생 1552명 중 두 명뿐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이 상을 무려 55명이 받았다. 모두 만점이어서 소수점을 따질 수도 없었다. ‘학점 인플레이션’이 빚어낸 결과였다. 실제 2005∼2006학년도 하버드대 학부생 중 ‘A’학점(‘A-’ 제외)을 받은 비율은 수업별로 약 25%였는데, 2024∼2025학년도는 60%에 육박했다. 서서히 상승하다 온라인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 팬데믹 때 껑충 뛰었다고 한다. ▷성적 변별력 문제는 하버드대 교수진이 이미 3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논의해 왔다. 그러다 더는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올해 ‘과목당 A학점 20% 이하’라는 개편안을 내기에 이르렀다. 단 A-를 포함해 이하 학점은 제한이 없다. 성적 제한제는 최근 이 대학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한 이메일 투표에서 70%의 찬성률로 가볍게 통과했다고 미 언론이 보도했다. 앞서 2월 학부생 대상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94%가 반대했지만, 교수들의 결심을 바꿔놓기엔 역부족이었다. 2027∼2028학년도부터 A학점을 받으려면 5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물론 하버드대가 고육지책으로 꺼내 든 성적 제한제가 교육적으로 무조건 ‘옳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하버드대가 벤치마킹했다는 프린스턴대는 2004년 A계열 학점(A+, A0, A-) 비율을 35% 미만으로 강제했는데, 취업 시장에서 타 명문대보다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만이 커지면서 2014년 정책을 백지화했다. 또 세계 최고의 지성이 모인다는 하버드대인데, A학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많지 않겠냐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학교 측도 그래서 우선 3년만 제도를 운영한 뒤 재평가를 하기로 했다. ▷학점 인플레이션 논란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작년 기준 A계열 학점 비중은 서울대가 63%, 연세대와 고려대도 각각 60%, 58%로 절반이 훌쩍 넘는다. 학점을 ‘짜게’ 주기로 유명한 서강대에서도 40%에 이른다. 채용 시장에서 고학점을 필살기로 쓰던 시대는 지났다지만, 대학 교육에서 경쟁이 점차 느슨해지다 보면 학문에 대한 열의도 함께 식을까 우려스럽다. 세계 최고 대학도 어떤 방향이 옳은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게 성적 평가다. 학생의 실력과 노력을 공정하게 가려주는 평가 제도는 입시만이 아니라 대학 교육에서도 꼭 필요하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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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재택근무는 권리 아니다’

    미국 델은 2024년 전사 직원들에게 재택근무자는 승진에서 제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상당수 직원들이 원격근무를 고수하자 작년 하반기부터는 일정 거리 이내 거주자들은 무조건 주 5회 출근하도록 지침을 강화했다. 아마존도 작년부터 전원 출근제로 전환했다. 구글이나 오픈AI 같은 경쟁사로 인재들이 떠나는데도 “속도감 있는 결정을 위해서” 정책을 밀어붙였다. 스타벅스는 작년 1월 ‘주 3회 사무실 출근’을 의무화한 지 10개월 만에 출근일을 ‘주 4회’로 늘렸다. “이것이 스타벅스에 올바른 길”이라는 브라이언 니콜 최고경영자(CEO)의 말에는 결연함마저 엿보였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흐름이 이어져 왔다. 신작 출시 지연으로 골머리를 앓던 엔씨(NC), 넥슨, 넷마블 등 게임업체들은 2022년 하반기 재택근무를 없앴다. 카카오가 2023년 3월 도입한 ‘오피스 퍼스트’ 근무제도 결국 서로 얼굴 보고 일하자는 것이었다. 한동안 출퇴근 시간을 아꼈던 직원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하지만 회사들은 낮아진 생산성을 회복하려면 유기적인 소통이 필수라 판단했다. ▷이런 변화 속에 재택근무 축소를 둘러싼 기업과 직원 간 갈등은 급기야 법정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는 2022년부터 ‘주 2회’ 재택근무 선택권을 주던 것을 올 1월부터 ‘주 1회’로 바꿀 예정이었다. 그러자 민노총 소속인 이 연구소 노조가 법원에 ‘취업규칙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은 최근 기각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확산한 재택근무와 관련해 나온 첫 사법적 판단이다. ▷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은 근로계약서에 ‘근로 장소’에 대한 근로자의 권리가 명시돼 있지 않고, 재택근무 횟수를 줄인다고 해서 근로자들에게 큰 불이익이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남양연구소 직원들의 평균 재택근무 횟수가 이미 주 1회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 즉, 노조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주장한 취업규칙의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안 소송의 결과가 아니라 해도, 이번 결정은 다른 기업 노사에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는 있다. ▷2019년 10만 명이 안 됐던 국내 재택근무자 수는 2021년 114만 명까지 급증했다. 팬데믹이 끝나자 작년 52만 명으로 다시 줄었다. 직원들에게 사무실 출근을 다시 종용하는 기업은 원격근무의 한계를 명확하게 실감했기에 그런 경영적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특수한 상황에서 일시 시행한 근무 형태를 직원들은 마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여겨 왔다. “줬다 뺏는 격”이라며 발끈하는 게 그래서다. 다만 직장인이라면 ‘집에서 일할 권리’를 따지기 전 ‘출근할 의무’부터 지켜야 하지 않나. 법원의 이번 판단도 그런 의미로 읽힌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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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반값’ 5세대 실손보험

    1998년 신세기통신의 ‘017 패밀리 무료요금제’는 나오자마자 메가 히트를 쳤다. ‘24시간 무료 통화’는 지갑이 가벼운 청년층에게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새벽 내내 잠들지 않는 연인이 속출하는가 하면, 얼굴을 맞댄 가족끼리도 “어차피 공짜”라며 전화기를 들기 일쑤였다. 급격히 늘어난 통화량에 회사는 설비 확충 속도를 맞추지 못했고, 이는 통화 품질 악화로 이어졌다. 신세기통신이 경영 악화를 이기지 못하고 2001년 SK텔레콤에 인수된 여러 요인 중 ‘무료요금제’는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같은 시기 금융업계에서도 예측 실패로 인한 애물단지가 탄생한다. 1999년 나온 1세대 실손보험이다. 가입자의 자기부담금은 아예 없거나 극히 소액이었고, 적용 범위는 한마디로 ‘안 되는 게 없는’ 정도였다. 경제학이나 수학 석박사가 즐비한 보험사들이 복잡한 수식을 바탕으로 설계한 이 상품은 ‘병원 쇼핑족’이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 수익성이 곤두박질했다. 동네 정형외과는 도수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의 ‘사랑방’이 됐고, 이들의 치료비는 모두 보험사에 청구됐다. ▷실손보험 정책은 이후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2009년 10∼20%의 자기부담금이 생긴 2세대, 2017년 도수 치료 등 일부 비급여 항목을 기본 보장에서 제외한 3세대, 2021년 비급여 항목 전체를 특약으로만 보장하는 4세대로 각각 진화했다. 세대 전환 기간도 10년→8년→4년으로 짧아졌다. 그런데 보험금 수령자들의 의료기관 이용 행태 역시 빠르게 적응했다. 1∼4세대 실손보험의 위험손해율은 110∼150%로, 보험사들은 여전히 고객들에게 받은 돈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주고 있다. ▷다수 가입자들도 속이 쓰리긴 매한가지다. 작년 실손보험 가입자의 65%가 보험료를 내기만 했을 뿐 받은 적은 없다. 보험금 수령인 상위 10%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지급액 전체의 74%가 건네졌다. 다시 말해 고객 3분의 2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소수의 병원 비용을 대고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병원에 간 적도 없는데 보험료는 계속 올랐다. 이달 6일부터 나온 5세대가 비급여 항목이나 비중증 질환 치료 보장을 축소하고 자기부담금을 늘리게 된 배경이다. ▷과잉 진료나 의료 쇼핑을 제한하겠다는 목적 자체는 이번에도 달라진 게 없다. 눈에 띄는 건 1, 2세대 가입자들이 일부 보장을 빼거나 5세대로 갈아타면 30∼50% 보험료를 깎아주는 ‘반값’ 정책이다. 하지만 “이제 병원 자주 다닐 나이”라며 기존 계약을 고수하겠다는 초기 가입자들이 많다. 보험사와 병원 쇼핑족 간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은 어떤 결말로 향할까. 2010년대까지도 7만 명 이상이 이용하던 ‘017 무료통화’는 2G 서비스 종료로 ‘017’ 번호를 쓸 수 없게 된 2020년에야 완전히 종료됐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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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창덕]노동계 ‘치트키’ 된 노란봉투법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는 웰리브라는 회사가 사내 식당을 운영한다. 셔틀버스 운행과 일부 시설관리도 대신 맡고 있다. 이 회사는 20여 년 전 옛 대우조선해양 자회사로 설립됐지만 2017년 독립했다. 이후 영남권 대형마트와 군청 등 50여 곳으로 고객사를 확대해 연 매출 1200억 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지난달 중순 경남지방노동위원회가 한화오션이 웰리브 노동조합과 교섭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실상 한화오션을 웰리브 직원들의 ‘사용자’로 본 것이다. 아직 결정문 공개 전이어서 지노위 판단 근거를 알 수는 없지만,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사안임에는 분명하다. 자칫 수많은 기업, 기관, 학교 등이 외주 업체에 소속된 구내식당 종사자들과 무더기 교섭에 나서야 할 수도 있어서다. 흔히 ‘노란봉투법’이라 부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이 3월 시행된 후 산업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장면 중 하나다.이미 예고됐던 산업 현장의 혼란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선 원청과 하청 노조 간 교섭 갈등은 시장경제를 지탱해 온 ‘계약’의 의미가 퇴색됐을 때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아는 경제활동 대부분은 계약에 의해 움직인다. 자영업자가 가게 자리를 구할 때나 팔 물건을 사들일 때, 개인이 집을 사고팔 때나 보험 등의 금융 상품에 가입할 때 빠뜨려선 안 되는 게 계약서다. 서로의 약속을 법적 테두리 내로 끌고 와 보호하려는 장치다. 회사에 취직하면 ‘근로계약서’부터 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노봉법에서는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특정 조건에 해당하면 회사를 ‘사용자’로 보고 교섭 의무를 부여한다. ‘근로 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조건에서 ‘실질적’이 뭔지, ‘구체적’이 뭔지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하청 노조들이 교섭 요구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노봉법 시행 한 달 만에 1011개 하청 노조가 372개 원청 사업장을 대상으로 교섭을 신청했다. ‘안 하는 게 손해’, ‘밑져도 본전’ 등의 인식이 퍼지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잇따라 사용자로 인정되자 정부도 화들짝 놀랐다. 이후 공공부문에 대해서만 법안 수정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한 편의 코미디 같다. “장관 나와라”는 안 되고, “회장 나와라”는 된다는 건가. 정규직 노조 역시 노봉법으로 파업에 나설 명분이 대폭 확대됐다. 1일 파업에 들어간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임금 인상안과 함께 기업 분할이나 인수합병(M&A) 등을 결정할 때 자신들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단체협약 개정안도 요구하고 있다. 핵심적인 경영 판단에 노조가 개입하겠다는 뜻인데, 노봉법이 사업 통폐합 등을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시켰기에 가능한 일이다. 노동계로서는 안 통하는 곳이 없는 ‘치트키’ 하나를 확보한 셈이다.‘노사 갈등 유발법’ 오명 벗게 보완을 지난달 말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낸 ‘2026 국내 경영환경 인사이트 리포트’를 보면 기업 71%가 “노동정책 및 노동시장 유연성”을 개혁 우선순위로 꼽고 있다. 보고서는 노봉법 영향에 대해 “분쟁 발생, 운영 차질, 복잡한 도급·하도급 구조 전반에 걸친 불확실성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나라에 누가 아시아 지역본부를 설립하고, 새로운 설비 투자에 나서겠나. 국회도, 정부도 아직 늦지 않았다. ‘약자 보호’라는 법안의 취지를 지키고, ‘노사 갈등 유발법’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지금이라도 보완하면 된다. 입법 시 혼란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현장의 아우성을 목격하고도 모르는 체하는 건 차원이 다른 직무유기다. 우리 당이 밀어붙인 법안이라고, 장관이 민노총 위원장 출신이라고 버틸 일이 아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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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카지노 옆 교회’

    5월 초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리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연례 주주총회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가장 기다리는 행사다. 그런데 올해는 그 열기가 조금 덜했다고 한다.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워런 버핏이 무대에서 질문에 직접 답하는 대신 다른 주주들처럼 관중석에 앉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자본시장의 슈퍼스타는 대중의 기대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행사 후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버핏은 특유의 비유법을 사용해 투자자들의 조급함에 일침을 가했다. ▷버핏에 따르면 현재 투자 시장은 “카지노 옆에 있는 교회”와 같다. 교회는 전통적인 가치 투자를, 카지노는 초단기 거래와 옵션 상품 등을 의미한다. “아직은 교회에 사람이 더 많지만, 지금만 보면 카지노가 지나치게 매력적”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지금처럼 사람들의 도박 심리가 강한 때는 없었다”는 경고도 했다. 버핏의 투자 철학은 가치와 장기(長期)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런 그의 눈에 지금의 시장은 ‘투기’를 넘어선 ‘도박’에 가까워 보인다는 것이다. ▷버핏이 여전히 대주주인 버크셔는 현재 3970억 달러의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사상 최대 수준이다.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자 ‘일단 기다리기’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셈이다. 이는 “많은 성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고 했던 그의 예전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 인공지능(AI) 등 기술 기업 투자에 지나치게 신중한 버핏에 대해 지난 2, 3년간 다양한 비판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기술주가 폭등한 뒤로는 ‘버핏의 판단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의구심도 확산했다. 하지만 버핏은 그런 평판에 흔들리지 않고 있다. 그레그 에이블 버크셔 신임 CEO 역시 버핏의 철학을 그대로 잇는 모습이다. ▷최근 상황만 보자면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불안정하다’는 평가를 받아도 이상할 게 없다. 작년 말 대비 올 4월 말 기준 주가 상승률은 코스피가 56.6%로 일본 닛케이(17.3%), 미국 나스닥(7.1%), 영국 FTSE100(4.6%) 등을 압도한다. 단기 급등이나 급락은 많은 투자자들의 이성을 흐리게 만든다. 한국 증시의 경우, 버핏 표현을 빌리자면 교회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그 옆 카지노로 새 버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다. ▷‘빚투’는 그런 시장의 또 다른 뇌관이다.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지난달 29일 36조 원을 넘어섰는데, 이는 23일 35조 원을 돌파한 지 4거래일 만에 1조 원이 불어난 것이다.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은 단기 빚투를 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 버핏의 말이 귀에 더 선명하게 꽂히는 게 그래서다. 점심 식사 한 번 함께 하려면 수십억 원의 돈을 내야 하는, 괜히 ‘오마하의 현인’이란 별명이 붙은 게 아닌 투자업계의 전설이지 않나.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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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AI 자격증만 500종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다양한 무료 강연이나, 유료 교육 프로그램 광고를 손쉽게 접한다. 최근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건 역시 인공지능(AI) 활용법이다. 3시간 강의를 들으면 남들만큼 챗GPT를 유려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틀 교육 수료 후 AI 비즈니스 기회를 찾게 해 준다 등의 문구를 보면 클릭을 참기 힘들어진다. 취업 준비생부터 은퇴를 앞둔 직장인, 그리고 전업주부까지 수강생 면면도 다양하다. AI 시대에 나만 뒤처질까 두려워 모여든 이들인데, 정작 교육이 끝나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인 게 함정이다. ▷조급함이 가시지 않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기웃대는 다음 단계가 민간 자격증이다. 2000년대 들어 이력서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자격증 중 컴퓨터활용능력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 엑셀을 잘 다룬다는 인증만 받아도 뿌듯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걸 기억하는 이들이 지금은 ‘AI 자격증’을 찾아보고 있다. 놀랍게도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등록된 자격증 중 AI와 관련한, 정확히는 명칭에 ‘AI’가 들어가는 것이 500개가 넘는다. 대학, 온라인 교육기관, 협회, 민간 기업 등 등록기관도 다채롭다. ▷하지만 이 중에는 AI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아리송한 것들이 많다. ‘AI부동산권리분석가’, ‘AI탄소중립분석사’, ‘AI여행플래너’, ‘AI스포츠전문가’, ‘AI내부감사사’처럼 말이다. 각 직업군에 ‘AI’만 붙인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활용능력’ ‘전문가’ 등 겹치는 용어를 피하다 보니 ‘AI조련사’라 이름 지은 것도 있다. 자격증을 등록한 기관도 AI 전문성과는 멀어 보이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500여 개 자격증 중 한 번이라도 검증 시험이 실시된 것은 50여 개뿐이고, 그마저도 절반 정도는 합격률이 100%였다. ▷‘자격 미달 자격증’ 문제가 AI에 국한된 건 아니다. 민간자격증은 운영 기관이 특별한 결격 사유를 갖지 않는 한 등록만 하면 된다. 2024년 말 기준으로 등록 민간자격증은 5만6000여 개에 달하는데, 이 중 국가공인을 받은 것은 96개에 불과했다. 국가공인 없이도 정상 운영되는 일부를 제외하면 사실상 ‘유령 자격증’이 수만 개에 이르는 셈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조만간 AI 자격증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한 건 해당 분야 등록 건수가 너무 빨리 늘어나 소비자 피해도 덩달아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민간자격증 비즈니스를 얘기할 때 흔히 ‘불안 마케팅’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취업이나 재취업 전선에서 아무런 무기를 갖지 못한 이들의 불안을 타깃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AI의 이름을 달고 우후죽순 나오고 있는 자격증들도 그런 심리를 파고들고 있다. 이러다 AI 자격증 분별 능력을 검증하는 자격증까지 나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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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이주노동자 이름 부르기 운동’

    과거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상대방의 ‘이름’을 부를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상급자에게는 ‘부장’, ‘차장’ 같은 직급에 ‘님’자만 붙여서, 하급자에겐 ‘이 대리’, ‘김 과장’처럼 직급 앞에 성만 붙여 부르는 게 일상적이었다. 물론 ‘야’, ‘너’ 같은 한 글자만 입에 달고 사는 상관도 더러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수직적이고 경직된 문화를 바꾸려면 이런 호칭부터 손을 대야 한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스타트업들은 물론 일부 대기업에서도 ‘OO 님’, ‘OO 프로’처럼 모든 임직원이 직책과 직급을 빼고 서로 이름만 부르는 곳들이 많아졌다. ▷물론 이런 사회적 변화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데,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누가 누군지 잘 구별하지 못해서, 이름을 기억하거나 발음하기 어려워서, 사고 위험 요소가 즐비한 현장에서 이름을 부를 여유가 없어서…. 이유는 다양한데 다 핑계일 뿐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어이, 베트남’, ‘야, 미얀마’ 같은 방식으로 불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에어건 상해’나 ‘지게차 결박’ 사건 같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들이 그 일터와 동료, 그리고 한국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나. ▷한국은 이미 다민족 국가다. 국내에 상주하는 외국인, 귀화자, 다문화가정 자녀 등을 합한 ‘이주배경인구’는 2024년 272만 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20명 중 1명은 해외에서 왔거나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이라는 뜻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주배경인구가 총인구의 5% 이상이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하는데, 한국도 그 기준점을 넘어선 것이다. 하드웨어가 바뀐 만큼 그 안에 들어갈 소프트웨어도 바꿀 필요가 있는데, 아직은 걸음이 더딘 셈이다.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아예 멈춘 건 아니다. 노동자 권익을 높이는 사업들을 꾸준히 해온 4개 재단이 17일 고용노동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여러 사업을 추진할 예정인데, 핵심이 ‘이주노동자 이름 부르기 운동’이다. 이름이 새겨진 안전모 등을 개인에게 지급해 이주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보다 존중받도록 하겠다는 캠페인이다. 27일 울산에서 이번 협약에 따른 첫 안전모 전달식이 열릴 예정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벌써 기대감에 차 있을 것 같다. ▷110만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이 하기 힘든 ‘험한 일’을 맡는 대체 일꾼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소중한 구성원이다.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얘기할 ‘스피커’가 되기도 한다. 이를 떠나 이름을 가진 이들에게 그 이름을 불러주는 건 당연한 것이지 베푸는 게 아니다. 또 성숙한 사회로 가는 시작이어야지 끝이 돼선 안 된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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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양 팀이 4 대 4로 팽팽히 맞선 8회말 투아웃 만루 상황. 홈팀 1번 타자의 방망이가 빠르게 돌았다. 타구는 가운데 담장 근처까지 쭉쭉 뻗어나갔다. 중견수가 몸을 던졌지만 공이 빠졌고, 타자는 그 틈을 노려 2루를 통과해 3루까지 내달렸다. 그만 뛰라는 주루코치의 만류도, 벤치에 있던 감독과 동료들의 안타까운 손짓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3루에 안착하고 나서야 그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팀을 위한 한 베이스 추가 진루를 위해 사이클링히트라는 개인 대기록을 포기한 순간이었다. ▷삼성 라이온즈 우익수 박승규 선수는 10일 NC 다이노스와 치른 그 경기가 작년 8월 부상 이후 8개월 만에 치르는 복귀전이었다. 첫 타석부터 3루타를 쳐낸 박승규는 다음 두 타석에서 단타와 홈런을 때려냈다. 네 번째 타석은 땅볼 아웃. 그리고 문제의 그 타석에서 2루타로 만족했더라면 단타-2루타-3루타-홈런을 한 경기에 모두 친 사이클링히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올해로 45년째인 한국프로야구에서 32번(30명)만 나온 기록을 포기한 것이다. 팀이 8 대 5로 승리한 뒤 박승규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프로스포츠에서 선수의 기록은 곧 자신의 몸값을 의미한다. 한 타석, 한 타석의 결과가 모여 개인 기록이 만들어지고, 흔하지 않은 기록을 달성하면 스타성이 올라간다. 그러니 선수가 기록에 대한 욕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박승규가 화제가 되는 것은 찰나의 고민도 없이 팀을 위한 선택을 내렸다는 점 때문이다. 스물여섯 박승규가 앞으로 어떤 기록을 쌓아갈지는 알 수 없지만, 2026년 4월 10일 8회말의 질주는 야구팬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기록’될 것 같다. ▷축구, 농구, 배구, 핸드볼 같은 다른 단체 종목들도 마찬가지로 ‘팀 퍼스트’ 정신이 강조된다. 2003년 “팀보다 큰 선수는 없다”며 최고 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스페인으로 이적시킨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당시 감독은 팀 우선주의를 가장 극단적으로 강조했던 인물이다. 물론 선수들도 이를 가장 큰 가치로 여긴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전성기 시절 팀 사정에 맞춰 벤치 멤버 역할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미국프로농구(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마누 지노빌리가 오래도록 사랑받은 게 그래서다. ▷가정과 직장에서도 개인과 단체의 이해관계는 늘 부딪치기 마련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개인의 희생을 ‘미덕’인 양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갈수록 옅어지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다수를 위해 나를 버리는 모습은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승패를 가리는 짜릿함만큼이나 ‘박승규의 질주’처럼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낭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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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4달러 내면 30분 만에 나오는 AI 논문

    작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글로벌 인공지능(AI) 업계의 두 거물이 대담을 펼쳤다. 떠오르는 AI 강자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와 2016년 이세돌과 세기의 바둑 대결을 벌인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였다. 사회자는 “마치 비틀스와 롤링스톤스의 대담 같다”고 표현했다. 비록 ‘홀대당한 억만장자들’이란 밈에 묻히긴 했어도, 두 사람이 AI의 미래에 대해 내놓은 예언은 섬뜩하리만치 파격적이었다. ▷아모데이는 노벨상 수상자와 비슷한 지능을 갖춘 AI 모델이 2026∼2027년 등장할 것으로 봤다. 상대적으로 신중론에 가까운 허사비스도 AI가 5년 내 새로운 과학적 이론을 창조하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들은 올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다시 만났는데, 작년의 예상이 여전히 유효하냐는 질문에 아무런 고민 없이 그렇다고 했다. 인류의 가장 창의적 영역 중 하나인 과학에서도 AI가 인간을 능가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는 신약 개발이나 식량 문제 해결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생물학자, 화학자, 물리학자들이 수년에 걸쳐 입증해 온 일들의 수천 배, 수만 배를 뚝딱 해낸다.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허사비스는 “1년 만에 박사 학위 소지자가 10억 년간 할 일을 해냈다”고 할 정도다. 구조생물학자들은 “알파폴드가 못 하는 복합단백질 구조 예측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유효 기간도 그리 오래갈 것 같진 않다는 전망이 많다. ▷과학자들의 AI 의존도가 커지면서 논문의 ‘양’은 늘었는데 ‘질’은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논문 저장소 ‘아카이브(arXiv)’에 올라온 논문 수는 챗GPT가 등장한 2022년 18만 건에서 작년 28만 건으로 50% 이상 늘었다. 상당수가 품질 검증이 안 된 이른바 ‘AI 슬롭(slop·찌꺼기)’들이라고 한다. 논문 작성 AI 에이전트 ‘데나리오’는 4달러만 내면 30분 만에 논문 한 편을 완성해 준다. 이런 ‘논문 공장’ 논문들은 제대로 된 과학적 통찰이나 실험을 통한 검증이 없는 경우가 많아 지식 생태계를 혼탁하게 만든다. ▷과학자들의 언어는 논문이다. 한때 해괴한 상상이란 비판을 받았더라도 단 한 편의 논문만 제대로 발표하면 지구 반대편 석학들과 계급장 떼고 붙을 수 있는 게 과학계다. 공신력 있는 학술지에 반대 주장의 논문이 나란히 실리는 경우가 있는 것도 그래서다. 학계가 시끌벅적해져야 과학은 또 한 단계 발전했다. AI의 편리함에 ‘중독’된 과학계가 그런 야성을 서서히 잃어갈까 우려스럽다. 이러다 AI가 인간의 수준에 도달하기 전, 인간의 퇴행이 먼저 시작되는 걸 지켜보게 될 수도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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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최고 빌런 떠오른 네타냐후

    2023년 10월 오토바이와 낙하산, 보트로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한 인물에게만큼은 ‘구원자’에 가까웠다.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다. 전쟁이 나면 언제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이스라엘인들은 하마스 침공 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초강경 보수파인 네타냐후부터 찾았다. 그를 향한 반정부 시위도 멈췄다. 네타냐후는 “지금은 전쟁의 시간”이라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당당하게 진군했다. ▷그렇다고 하마스 전쟁 효과가 무제한일 수는 없었다. 뇌물수수,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던 현직 총리 네타냐후는 일명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추진 중이었는데 2024년 1월 대법원에 제동이 걸렸다. 이듬해 3월에는 카타르로부터 홍보비 명목으로 65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카타르 게이트’까지 불거졌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네타냐후로서는 다시 한 번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다음 타깃은 이스라엘의 오랜 정적 이란이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네타냐후는 올 2월 11일 극비리에 백악관을 찾아가 이란 공격을 설득했다. 참모 대다수의 부정적 의견에도 트럼프 미 대통령은 그달 말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제거 작전을 승인했다. 네타냐후로서는 이번 전쟁이 트럼프가 내려준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그에게 휴전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 발표 하루 만에 레바논을 공습한 것은 전쟁을 포기할 수 없다는 네타냐후의 절박함으로 해석된다. ▷네타냐후는 1996년 첫 집권 이후 세 차례에 걸쳐 18년 이상 총리직을 수행해 왔다. ‘전쟁광’, ‘부패한 정치인’이란 논란에도 그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랬던 그가 현재 처한 상황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이란 체제 붕괴라는 시나리오가 ‘오판’으로 드러나면서 이스라엘 국민은 물론이고 해외 유대계의 지지도 바닥을 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전 세계 경제가 흔들린 뒤로는 네타냐후를 향한 비판이 사망한 하메네이와 그의 추종 세력을 겨냥한 것을 능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레오폴도 갈티에리 군사 독재 정권은 경제난으로 정권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1982년 영국이 실효 지배하던 포클랜드제도를 침공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참패했고, 이는 정권이 무너지는 시간을 더 앞당겼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 나폴레옹 3세 역시 내부 불만을 밖으로 돌리려 프로이센과 전쟁을 일으켰다가 1870년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벼랑 끝에 내몰린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은 이렇듯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현 시점 ‘최고 빌런’ 중 하나로 꼽히는 네타냐후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그 책임은 또 누가 떠안게 될까.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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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노조가 귀 닫은 세 가지 여론 [오늘과 내일/김창덕]

    한 기업의 노조도 ‘여론’을 잘 살펴야 한다. 첫째는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다. 지도부 선출권이 있는 노조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당연하다. 둘째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비(非)노조원. 직장 동료긴 해도 노조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설득해야 노조도 세를 불리고 협상력을 키운다. 셋째는 기업 밖의 시선이다. 노사 협상과 직접 관련이 없어도 외부 여론의 향방에 따라 노조는 때로 날개를 달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립된 섬이 되기도 한다. 최근 노사가 가장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곳 중 하나가 국내 1위 기업 삼성전자다. 지난달 27일 교섭 중단을 선언한 이 회사 노조는 다음 달 하순부터 총파업도 예고한 상태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노조는 세 여론에 얼마나 귀를 기울여 왔을까.메모리 사업부만 유리한 노조 요구안 삼성전자 노조를 이해하려면 우선 회사 사업 구조부터 알아둘 필요가 있다. 크게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과 반도체(DS) 부문으로 나뉜다. DX에는 스마트폰과 가전 등이 있고 DS는 메모리반도체, 파운드리, 시스템LSI 사업부로 구분된다. 국내 임직원이 약 12만 명인 삼성전자에서 최대 노조는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로, 지난달 말 7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조합원의 80%는 DS 부문이고, 그중 절대다수가 메모리 사업부 소속이다. 초기업노조가 교섭을 중단한 것은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 개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다. OPI는 목표 이상의 실적을 달성하면 영업이익에서 법인세, 투자비, 배당 등을 제외한 금액의 20% 정도를 재원으로 ‘연봉의 최대 50%’를 지급하는 보상이다. 재원을 ‘영업이익의 10%’로 바꾸고 개별 상한도 풀어 달라는 게 노조의 최종 요구안이었다. 사측이 “업계 최고 대우” 약속과 함께 특별 보상까지 제시했지만 노조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노조 주장도 일부 이해는 된다. ‘작년 실적이 좋았으니 성과급을 최대한 챙겨 달라’는 것은 조합원 권익을 위해 충분히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 게다가 올해 영업이익은 작년의 몇 배가 될 것으로 예상돼 이번에 ‘상한제’를 폐지해야 내년 초 더 큰 목돈을 쥘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문제는 방법론에 있다. 초기업노조는 재원 기준을 영업이익으로 바꾸자고 하면서 부문별로 공통 지급하던 OPI의 60%는 사업부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안을 내놨다. DS 부문의 경우 적자를 낸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부 성과급을 뚝 떼어내 실적이 좋았던 메모리 사업부에 몰아주는 구조다. 같은 조합원이라도 소수는 희생해도 된다는 것이다. 비조합원은 또 어떤가. 70% 이상이 해당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DX 부문은 애초부터 지도부 관심사에서 멀어져 있었던 듯하다. 대기업 노조들 중 이렇게 한 특정 집단만 유리한 안을 놓고 사측과 대립했던 사례가 있었나 싶다.파업 전까지 합리적 방안 도출하길 조합원 중 소수 집단, 그리고 비조합원들의 여론에 귀를 닫았던 초기업노조는 파업 참여율로 한 번에 ‘명분’을 얻으려 하고 있다. 그러니 파업에 불참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줄 것 같은 협박성 발언을 한다든지, 회사에 협조적인 동료를 찾아 신고하게 하는 등의 무리수가 나오는 것이다. 그보다는 다수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된 소수의 동료들을 먼저 챙기는 게 노조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 아닐까 한다. 삼성전자는 저성장 기조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버팀목이다. 그런 기업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직원들이 “확실한 피해를 입혀야 한다”, “파업하면 회사는 10조 원 손실” 같은 거친 발언을 쏟아내면 외부 시선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귀족노조’ 탄생을 알릴지, 노사가 합리적 상생 방안을 만들어낼지 아직 파업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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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46년 만에 ‘서열 2위’ 복귀한 국방차관

    국방부 차관의 부처 내 의전 서열은 아홉 번째였다. 다른 부처들처럼 장관 바로 다음이 차관이 아닌 것은 중간에 현역 군인 여러 명이 끼어 있어서다. 합참의장, 육·해·공군참모총장, 한미연합군사령관, 육군지상작전사령관, 2작전사령관이 2∼8위로 차관보다 서열이 높았다. 3월 31일 국무회의에서 그런 차관의 서열을 장관 바로 다음으로 올리는 군예식령 개정안이 의결됐다. 현역 군인들을 모두 민간인 신분인 차관 아래에 두도록 한 것이다. ▷국방부에서 차관이 서열 2위로 되돌아가는 것은 무려 46년 만이다.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가 이듬해인 1980년 7월 국무총리훈령 157호를 공포하면서 군인들의 예우를 두 단계씩 올렸다. 장성급의 경우 3급이던 별 하나 준장을 1급 공무원으로 예우한다는 내용만 명시됐는데, 그보다 높은 별 넷인 대장은 장관급, 별 셋인 중장은 차관급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신군부 세력에 대한 군 내부 반발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당근책’을 내세운 것이다. ▷복지 정책을 한번 만들면 없애기 쉽지 않은 것처럼, 군인 예우를 높인 157호 역시 그랬다. 노무현 정부 당시 폐지 시도가 있었지만 “군 사기가 꺾인다”는 반대가 거세 중단됐다. 그러는 사이 신군부의 잔재는 반세기 가까이 명맥을 이어온 셈이다. 이명박 정부 때 경제관료 출신인 장수만 차관, 문재인 정부 당시 노무현 청와대 출신 서주석 차관처럼 ‘실세 국방차관’도 여럿 있었는데, 그들이 지휘한 현역 군인들보다 의전 서열이 아래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이번 차관의 서열 조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필요성이 다시 커진 상황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우선 5선 국회의원인 안규백 장관을 64년 만의 첫 문민 국방부 수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직무 서열이 더 높은 차관이 의전 서열은 대장 7명보다 낮다는 불균형을 바로잡은 것이다. ▷선진국들은 군의 문민통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국방장관과 국방 부장관(한국의 차관)은 물론 육·해·공군 장관도 민간인이다. 특히 댄 드리스콜 육군장관과 존 펠런 해군장관은 월가 출신의 금융전문가다. 유럽의 경우 2014년 한 국제포럼에서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의 여성 국방장관 4명이 찍은 ‘셀카’가 문민통제를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현재도 유럽 여러 나라들이 군 경력이 없는 여성 장관을 꾸준히 임용하고 있다. ▷군의 문민통제는 이처럼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됐다. 차관 서열의 회귀는 또 과거 군사정권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낸다는 의미가 있다. 군으로서도 이런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때 새로운 출발점에 설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여야 군에 대한 신뢰도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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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반도체 품귀에 머스크 “내가 만들겠다”

    일론 머스크는 몽상가다. 하지만 그가 진짜 무서운 건 막대한 자금을 무기로 그 꿈을 현실화한다는 점이다. 머스크의 눈은 화성을 향하고 있다. 정확히는 인류의 화성 이주가 목표다. 2024년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 유세장에 등장했을 때도 ‘OCCUPY MARS’(화성을 점령하자)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그 꿈을 위해 인공지능(AI), 로봇, 우주선까지 손에 넣은 머스크가 반도체까지 직접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머스크는 22일 미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초대형 반도체 공장인 ‘테라팹(Fab)’ 건설을 공식화했다. 일주일 전 X(옛 트위터)에서 예고한 대로다. 그는 “테라팹을 짓지 않으면 필요한 만큼의 칩을 확보할 수 없다”고 했다. 외부 위탁 생산만으로는 미래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테라팹은 테슬라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우주 데이터센터 등에 쓰일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대만 TSMC가 자신의 공장을 ‘기가팹’으로 부르곤 하는데, 기가(10억)보다 1000배 큰 숫자인 테라(1조)를 공장 이름에 붙였다. ▷마치 ‘기가팩토리’ 탄생의 데자뷔 같다. 머스크는 2013년 “전 세계 배터리 생산 능력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하나의 공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머스크 특유의 ‘허세’라는 부정적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미 네바다주에서 전기차와 배터리를 만드는 1호 기가팩토리가 문을 열었다. 테슬라가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장악한 데는 미 캘리포니아주, 중국 상하이, 독일 베를린까지 확장된 기가팩토리의 뒷받침이 절대적이었다. “답답하면 내가 만들면 그만”이라는 머스크식 투자 본능이 10여 년 만에 재등장한 셈이다. ▷다만 반도체는 머스크에게도 쉬운 도전이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극강의 실력을 쌓아온 삼성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7%에 그친다. TSMC는 파운드리 사업만 하고,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만 만든다. 반도체 미세공정은 이미 1나노(10억분의 1)대에서 경쟁하고 있어 후발주자에겐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하나씩도 어려운데 머스크는 AI 칩과 메모리 모두를 만드는 데다 설계, 제조, 패키징까지 수직 계열화하겠다는 구상이라고 한다. 아무리 머스크라도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머스크에게 지금 가장 아쉬운 건 시간이다. 그는 발사 비용을 100분의 1로 줄인 재사용 로켓을 개발해 우주 시대를 성큼 앞당겼다. 그러니 사업의 빠른 진척을 가로막는 ‘반도체 공급난’을 하루빨리 풀어내고 싶을 것이다. 테라팹의 성공과 별개로 거대한 메기의 등장에 긴장한 기존 기업들이 반도체 공급 속도를 높인다면, 이 또한 머스크가 원하는 결과물일 수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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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美 법원서 제동 걸린 ‘AI 구매 대행’

    2022년 인공지능(AI) 챗GPT가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사람처럼 알아듣고, 사람과 같은 말투로 답변한다는 데 있었다. 기존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서비스와 가장 차별화된 점이었다. 부족했던 정확성마저 개선되면서 AI의 활용도는 빛의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호시탐탐 선을 넘으려는 분야가 바로 사람의 일을 대신 해주는 ‘에이전트 기능’이다. AI 구매 대행이 대표적인데, 미국에서 일부 제동을 거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퍼플렉시티의 AI 에이전트 ‘코멧’에는 쇼핑 자동화 기능이란 게 있다. 코멧이 이용자가 알려준 아이디로 아마존에 대신 접속해 물건을 고르고 주문과 결제까지 완료하는 것이다. 아마존은 사람이 아닌 코멧의 접속을 허용한 적이 없다며 작년 11월 퍼플렉시티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은 10일 아마존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코멧의 해당 기능을 일정 기간 비활성화하도록 했다. AI가 사람 대신 쇼핑을 하려면 실제 구매 활동이 일어나는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못 박은 셈이다. ▷아마존이 코멧의 진입을 막아선 건 실은 ‘광고 매출’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많이 팔려면 얼마나 구매자 눈에 잘 띄는지가 중요한데, 좋은 위치를 확보하려면 광고비를 내야 한다. 아마존이 이렇게 번 돈이 작년에만 약 700억 달러다. AI 에이전트가 알아서 물건을 사면 광고주들은 아마존이 아닌 코멧 운영사인 퍼플렉시티에 광고를 하려 할 테니 급한 대로 법을 동원한 것이다. ▷그런데 법원 결정 바로 다음 날 아마존이 보인 ‘이중적’ 행태에 많은 사람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사 AI 에이전트가 외부 플랫폼으로 이동해 구매 대행을 하는 ‘바이 포 미(buy for me)’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외부 AI에는 철저히 문을 닫으면서 자신은 외부 플랫폼들과의 파트너십 계약을 통해 AI 활동 영토를 넓힌 것이다. 아마존은 매월 3억 명 이상이 이용하는 디지털 커머스 시장의 절대 강자다. 웬만한 제조사 판매몰이나 중소 쇼핑몰은 그런 아마존의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이번 미 법원 결정으로 각 플랫폼이 외부 AI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도록 최소한의 ‘방패막’을 갖게 된 건 분명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마존 같은 강자만 유리해진 게 아닌가라는 우려도 나온다. 빅테크들의 AI 에이전트 공세 속에서 다양한 중소 플랫폼이 가진 개성과 특징, 브랜드 가치 등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영화, 음악, 문학 같은 콘텐츠 영역에서도 AI에 선택되기 쉬운 ‘정답형’만 살아남을지 모를 일이다. AI 발전은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되지만, AI가 인간을 ‘대체’하지 않고 ‘보조’해야 한다는 대원칙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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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창덕]구두 선물

    겨울철이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종종 올라오는 따뜻한 목격담들이 있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신고 있던 신발을 노숙인에게 벗어주는 사람을 봤다는 내용이다. 신발을 벗어주면 자신이 차가운 바닥과 뾰족한 물질에 노출되기에 선뜻 하긴 어려운 선행이다. 이런 사람들은 ‘제2의 크리스’라 불리기도 한다. 2012년 크리스 더블디라는 캐나다 버스 기사가 맨발로 걷던 노숙인에게 신발을 벗어준 일이 널리 알려진 이후부터다. ▷최근 화제가 된 한 여성화 브랜드 ‘착한구두’의 선물은 응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회사 입사 면접에서 떨어진 한 지원자는 “저희 신발이 후보자님의 내일에도 닿기를 바란다”면서 발 사이즈를 묻는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문자에는 “앞으로 모든 길 위에서 발걸음만큼은 조금 더 가볍고 편안하길 바란다”는 응원도 담겼다. 그는 새 구두 덕분인지 취업에도 성공했다는 얘기를 X(옛 트위터)에 올렸고, 수백만 명이 조회했다. ▷교제 중인 이성에게 신발을 선물하면 떠나간다는 속설이 있다. 신발이 ‘이동’을 위한 수단이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말이 생긴 듯하다. 실제로도 신발 선물을 꺼리는 연인이 꽤 있다. 하지만 가족에게까지 그런 미신이 닿진 않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주인공은 결혼을 앞두고 생전 처음 아버지에게 선물을 한다. 자신과 버진로드를 함께 걸을 때 신을 새 구두다. 무뚝뚝했던 딸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담긴 구두는 너무 커서 불편하지만, 그 마음만으로 충분했던 아버지는 “딱 맞다”며 기뻐한다. ▷이유는 달라도, 큰 구두를 선물받고 바꾸지 못하는 이들이 현실에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플로샤임’ 브랜드 구두를 선물받은 고위공직자들이 그렇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올해 초 J 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이 구두를 신은 모습이 포착됐는데, 뒤꿈치가 손가락 두 개는 들어갈 만큼 남았다고 한다. 트럼프가 발 크기를 눈대중으로 짐작해 주문했기 때문이다. 백악관 참모 여럿과 일부 공화당 의원도 같은 구두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조금 불편하다고 다른 구두를 신었다간 불충하다거나 팀워크를 깬 행동으로 오해받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법하다. ▷정치인들이 ‘낡은 구두’로 서민 이미지를 부각시키곤 하지만, 트럼프처럼 자신이 즐겨 신는 구두를 직접 선물한 사례가 흔한 건 아니다. 내가 좋으면 남도 좋아할 것이란 트럼프식 일방주의가 드러나는 장면일 수 있겠다. ‘트럼프 구두’는 또 그가 얼마나 가까운 측근인지를 확인하는 표식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이 구두는 145달러 정도로, 억만장자 트럼프의 신발치고는 저렴하다. 백악관에선 선물로 받기 전 스스로 구매해 은근히 충성심을 드러내는 참모도 더러 있을 것 같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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