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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는 몽상가다. 하지만 그가 진짜 무서운 건 막대한 자금을 무기로 그 꿈을 현실화한다는 점이다. 머스크의 눈은 화성을 향하고 있다. 정확히는 인류의 화성 이주가 목표다. 2024년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 유세장에 등장했을 때도 ‘OCCUPY MARS’(화성을 점령하자)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그 꿈을 위해 인공지능(AI), 로봇, 우주선까지 손에 넣은 머스크가 반도체까지 직접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머스크는 22일 미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초대형 반도체 공장인 ‘테라팹(Fab)’ 건설을 공식화했다. 일주일 전 X(옛 트위터)에서 예고한 대로다. 그는 “테라팹을 짓지 않으면 필요한 만큼의 칩을 확보할 수 없다”고 했다. 외부 위탁 생산만으로는 미래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테라팹은 테슬라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우주 데이터센터 등에 쓰일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대만 TSMC가 자신의 공장을 ‘기가팹’으로 부르곤 하는데, 기가(10억)보다 1000배 큰 숫자인 테라(1조)를 공장 이름에 붙였다. ▷마치 ‘기가팩토리’ 탄생의 데자뷔 같다. 머스크는 2013년 “전 세계 배터리 생산 능력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하나의 공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머스크 특유의 ‘허세’라는 부정적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미 네바다주에서 전기차와 배터리를 만드는 1호 기가팩토리가 문을 열었다. 테슬라가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장악한 데는 미 캘리포니아주, 중국 상하이, 독일 베를린까지 확장된 기가팩토리의 뒷받침이 절대적이었다. “답답하면 내가 만들면 그만”이라는 머스크식 투자 본능이 10여 년 만에 재등장한 셈이다. ▷다만 반도체는 머스크에게도 쉬운 도전이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극강의 실력을 쌓아온 삼성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7%에 그친다. TSMC는 파운드리 사업만 하고,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만 만든다. 반도체 미세공정은 이미 1나노(10억분의 1)대에서 경쟁하고 있어 후발주자에겐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하나씩도 어려운데 머스크는 AI 칩과 메모리 모두를 만드는 데다 설계, 제조, 패키징까지 수직 계열화하겠다는 구상이라고 한다. 아무리 머스크라도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머스크에게 지금 가장 아쉬운 건 시간이다. 그는 발사 비용을 100분의 1로 줄인 재사용 로켓을 개발해 우주 시대를 성큼 앞당겼다. 그러니 사업의 빠른 진척을 가로막는 ‘반도체 공급난’을 하루빨리 풀어내고 싶을 것이다. 테라팹의 성공과 별개로 거대한 메기의 등장에 긴장한 기존 기업들이 반도체 공급 속도를 높인다면, 이 또한 머스크가 원하는 결과물일 수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2022년 인공지능(AI) 챗GPT가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사람처럼 알아듣고, 사람과 같은 말투로 답변한다는 데 있었다. 기존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서비스와 가장 차별화된 점이었다. 부족했던 정확성마저 개선되면서 AI의 활용도는 빛의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호시탐탐 선을 넘으려는 분야가 바로 사람의 일을 대신 해주는 ‘에이전트 기능’이다. AI 구매 대행이 대표적인데, 미국에서 일부 제동을 거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퍼플렉시티의 AI 에이전트 ‘코멧’에는 쇼핑 자동화 기능이란 게 있다. 코멧이 이용자가 알려준 아이디로 아마존에 대신 접속해 물건을 고르고 주문과 결제까지 완료하는 것이다. 아마존은 사람이 아닌 코멧의 접속을 허용한 적이 없다며 작년 11월 퍼플렉시티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은 10일 아마존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코멧의 해당 기능을 일정 기간 비활성화하도록 했다. AI가 사람 대신 쇼핑을 하려면 실제 구매 활동이 일어나는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못 박은 셈이다. ▷아마존이 코멧의 진입을 막아선 건 실은 ‘광고 매출’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많이 팔려면 얼마나 구매자 눈에 잘 띄는지가 중요한데, 좋은 위치를 확보하려면 광고비를 내야 한다. 아마존이 이렇게 번 돈이 작년에만 약 700억 달러다. AI 에이전트가 알아서 물건을 사면 광고주들은 아마존이 아닌 코멧 운영사인 퍼플렉시티에 광고를 하려 할 테니 급한 대로 법을 동원한 것이다. ▷그런데 법원 결정 바로 다음 날 아마존이 보인 ‘이중적’ 행태에 많은 사람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사 AI 에이전트가 외부 플랫폼으로 이동해 구매 대행을 하는 ‘바이 포 미(buy for me)’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외부 AI에는 철저히 문을 닫으면서 자신은 외부 플랫폼들과의 파트너십 계약을 통해 AI 활동 영토를 넓힌 것이다. 아마존은 매월 3억 명 이상이 이용하는 디지털 커머스 시장의 절대 강자다. 웬만한 제조사 판매몰이나 중소 쇼핑몰은 그런 아마존의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이번 미 법원 결정으로 각 플랫폼이 외부 AI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도록 최소한의 ‘방패막’을 갖게 된 건 분명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마존 같은 강자만 유리해진 게 아닌가라는 우려도 나온다. 빅테크들의 AI 에이전트 공세 속에서 다양한 중소 플랫폼이 가진 개성과 특징, 브랜드 가치 등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영화, 음악, 문학 같은 콘텐츠 영역에서도 AI에 선택되기 쉬운 ‘정답형’만 살아남을지 모를 일이다. AI 발전은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되지만, AI가 인간을 ‘대체’하지 않고 ‘보조’해야 한다는 대원칙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겨울철이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종종 올라오는 따뜻한 목격담들이 있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신고 있던 신발을 노숙인에게 벗어주는 사람을 봤다는 내용이다. 신발을 벗어주면 자신이 차가운 바닥과 뾰족한 물질에 노출되기에 선뜻 하긴 어려운 선행이다. 이런 사람들은 ‘제2의 크리스’라 불리기도 한다. 2012년 크리스 더블디라는 캐나다 버스 기사가 맨발로 걷던 노숙인에게 신발을 벗어준 일이 널리 알려진 이후부터다. ▷최근 화제가 된 한 여성화 브랜드 ‘착한구두’의 선물은 응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회사 입사 면접에서 떨어진 한 지원자는 “저희 신발이 후보자님의 내일에도 닿기를 바란다”면서 발 사이즈를 묻는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문자에는 “앞으로 모든 길 위에서 발걸음만큼은 조금 더 가볍고 편안하길 바란다”는 응원도 담겼다. 그는 새 구두 덕분인지 취업에도 성공했다는 얘기를 X(옛 트위터)에 올렸고, 수백만 명이 조회했다. ▷교제 중인 이성에게 신발을 선물하면 떠나간다는 속설이 있다. 신발이 ‘이동’을 위한 수단이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말이 생긴 듯하다. 실제로도 신발 선물을 꺼리는 연인이 꽤 있다. 하지만 가족에게까지 그런 미신이 닿진 않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주인공은 결혼을 앞두고 생전 처음 아버지에게 선물을 한다. 자신과 버진로드를 함께 걸을 때 신을 새 구두다. 무뚝뚝했던 딸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담긴 구두는 너무 커서 불편하지만, 그 마음만으로 충분했던 아버지는 “딱 맞다”며 기뻐한다. ▷이유는 달라도, 큰 구두를 선물받고 바꾸지 못하는 이들이 현실에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플로샤임’ 브랜드 구두를 선물받은 고위공직자들이 그렇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올해 초 J 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이 구두를 신은 모습이 포착됐는데, 뒤꿈치가 손가락 두 개는 들어갈 만큼 남았다고 한다. 트럼프가 발 크기를 눈대중으로 짐작해 주문했기 때문이다. 백악관 참모 여럿과 일부 공화당 의원도 같은 구두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조금 불편하다고 다른 구두를 신었다간 불충하다거나 팀워크를 깬 행동으로 오해받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법하다. ▷정치인들이 ‘낡은 구두’로 서민 이미지를 부각시키곤 하지만, 트럼프처럼 자신이 즐겨 신는 구두를 직접 선물한 사례가 흔한 건 아니다. 내가 좋으면 남도 좋아할 것이란 트럼프식 일방주의가 드러나는 장면일 수 있겠다. ‘트럼프 구두’는 또 그가 얼마나 가까운 측근인지를 확인하는 표식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이 구두는 145달러 정도로, 억만장자 트럼프의 신발치고는 저렴하다. 백악관에선 선물로 받기 전 스스로 구매해 은근히 충성심을 드러내는 참모도 더러 있을 것 같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지난달까지만 보면 이재명 정부의 최고 히트상품은 누가 뭐래도 주식시장이었다. 대선 공약이었던 ‘코스피 5,000’을 핵심 국정 과제로 삼았고, 여당은 이에 발맞추기 위한 특별위원회까지 만들어 입법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런데 정권 출범 7개월여 만인 올해 1월 목표를 달성해 버렸다. 물론 반도체 붐을 타고 목표가 너무 ‘이른’ 시점에 그야말로 ‘강제’ 달성돼 버렸다는 해석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상승장에 제때 올라탄 개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치솟는 주가에 정부는 고무됐고, 6·3 지방선거를 준비하던 여당도 몰려든 표를 세느라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올해만 7번 울린 사이드카그리고 찾아온 2월. 증시 첫날부터 매도 사이드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신임 의장 후보자로 케빈 워시가 지명된 데 따른 이른바 ‘워시 쇼크’가 덮친 것이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날 포함 닷새 만에 3번의 사이드카가 울렸다. 3월 초 ‘이란 전쟁’의 충격은 훨씬 혹독했다. 3, 4일 이틀간 코스피는 20% 가까이 빠지며 투자자들을 패닉에 빠뜨리더니 다음 날 보란듯이 10%를 회복했다. 글로 옮기는데도 이렇게 숨이 찬데, 전 재산을 걸고 곡예비행 중인 투자자들의 심정은 어떨까.우리는 지금 기록적인 ‘롤러코스터 장’을 목격하고 있다. 2002년 이후 코스피에서 사이드카가 한 차례도 발동되지 않은 해가 14번이나 됐다. 한 해 26번 사이드카가 나온 2008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라 예외로 두자. 나머지 중에서는 팬데믹 때인 2020년이 7번으로 가장 많았는데, 겨우 3월 초순이 지나고 있는 올해 벌써 7번의 사이드카가 울렸다.불안정한 증시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본다.우선 한국 증시는 대외 변수에 취약하다는 게 이번에 또다시 입증됐다. 같은 변수에 노출된 일본, 홍콩 등의 증시가 2∼3%씩 오르내릴 때 한국만 유독 진폭이 컸다. 반도체나 방산 같은 한국의 주종목에 뭉칫돈을 투자한 외국인들이 글로벌 경제를 흔드는 이슈가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을 빼고 있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로 끊임없이 변덕을 부리고 있고,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의 전쟁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또 하나는 코스피가 빨라도 너무 빨리 올랐다는 점이다. 작년과 올해 코스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증가율을 보였다. 지난달 하순 6,300 선을 찍었을 때 기준으로는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세 배로 오른 셈이었다. 게다가 지수를 끌어올린 자금의 상당 부분이 빚이다. 증권사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32조 원을 넘어섰다. 빨간색 우상향 그래프를 그릴 때야 적금을 깨든 빚을 내든 개인의 문제지만, 급락장에서는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내 하락 폭을 키우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한국 증시를 자칫 잘못 건드리면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카드의 집’ 같은 상황으로 보는 비관적 시각도 아주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선수가 잘 뛰어야 관객도 찾는다여당 대표 등이 “코스피 1만”을 외칠 때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게 된다. “심장 약한 사람은 못 버틴다”, “코인 시장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데도 정치권이 주식 투자를 너무 부추기는 듯해서다. 지금은 이 대통령이 최근 언급한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차분함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투자자 유인’에만 집중했던 정책 흐름도 냉정한 시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주식의 가치는 근본적으로 기업의 실적과 비전에서 나온다. 그러니 기업의 활동 반경을 과도하게 줄여 놓고 시장 가치가 오르길 기대하는 건 이율배반적이지 않나. 아무리 좋은 운동장을 만들어 봤자 정작 선수들이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경기는 형편없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관객도 그런 경기를 푯값을 내고 보러 오진 않는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에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잃은 이란은 바로 보복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물론 미군이 주둔한 페르시아만 건너편 산유국들을 자폭 드론과 탄도미사일로 공격한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탄도미사일 174발과 순항미사일 8발, 그리고 드론 689대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집중됐다. 하지만 실제 영토에 떨어진 건 드론 44대뿐, 나머지는 모두 방공망에 의해 격추됐다. 요격률은 93%가 넘었다. ▷미 군사기지가 있는 중동 국가들은 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PAC-3 MSE)’으로 영공을 보호한다. UAE가 유독 주목받은 건 한국산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 ‘천궁-2(M-SAM Ⅱ)’ 역시 실전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UAE는 2022년 천궁-2를 도입하기로 하고 미국 시스템 등과 함께 여러 겹의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이번 방어 작전은 우리가 수출한 국산 무기로는 첫 실전이 된 것이다. 이란은 저가 드론과 미사일을 꾸준히 뿌려 상대국의 값비싼 방공망 무기를 소진시키는 ‘가랑비 전략’을 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범용 패트리엇’이라 불리는 천궁-2가 이번 방어작전 때 보여준 요격률은 90% 안팎이었던 것으로 우리 당국은 파악했다. ▷천궁-2는 미사일을 일단 공중 10∼30m 정도로 띄운 뒤 로켓엔진이 점화되는 ‘콜드 론치(cold launch)’ 방식을 쓴다. 직접 목표물을 맞히는 ‘직격 요격(hit-to-kill)’이라는 점에서는 미 록히드마틴의 패트리엇과 방식이 유사하다. 특히 미사일 한 발 가격은 패트리엇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가성비’가 탁월하다. 저가 무기 공격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UAE에 이어 2024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가 연이어 천궁-2 도입 계약을 맺은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였다. ▷방위산업은 세계 정세가 어지러울수록 ‘호황’을 맞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트럼프 미 대통령의 그린란드 편입 시도 등은 유럽 각국이 방위체계 고도화에 서둘러 투자하도록 등을 떠밀었다. 작년 12월과 올 1월 폴란드, 노르웨이에 각각 다연장로켓 ‘천무’를 공급하기로 한 것도 그런 흐름에서다. 전쟁 장기화 우려가 나오는 중동에서도 한국 무기체계 도입 요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은 그동안 사드 등 미국 방어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 이번 천공-2가 성공적으로 실전 능력을 입증한 것은 우리 자체 방어 능력이 한 단계 더 올라섰다는 의미다. 여기에 한국 방산기업들의 전투기, 장갑차, 잠수함까지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자국 영토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군비 태세를 갖추는 국가들의 협력 파트너로서의 위치도 굳혀가고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10일 오후 인구 3000명이 채 되지 않는 캐나다 산간마을 텀블러리지는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갈색 머리 드레스 차림’의 총기 난사범을 피하라는 공습경보가 울렸지만, 때는 늦었다. 주택과 학교에서 사망자 9명이 발견됐고, 25명이 다쳤다. 캐나다 왕립기마경찰(RCMP)이 용의자로 지목한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18세 제시 밴 루트셀라였다. 슬픔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 캐나다 국민들은 또다시 충격적인 보도를 접했다. 오픈AI가 8개월 전 용의자와 인공지능(AI) 챗GPT 간 대화에서 ‘레드 플래그(위험 신호)’를 인지하고도 이를 묵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밴 루트셀라는 작년 6월 챗GPT와 며칠에 걸쳐 총기 테러 시나리오를 주고받았다. 자동 모니터링 시스템이 경고음을 울린 뒤 직원 10여 명은 곧바로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일부는 캐나다 수사 당국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오픈AI 경영진은 해당 계정만 차단하고 신고는 하지 않았다. ‘신뢰할 만하고 임박한 위험’이란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밴 루트셀라는 지역 경찰로부터 한 차례 이상 체포된 적도 있는 ‘주요 관찰 대상’이었기에, 어쩌면 오픈AI의 신고가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다. ▷총기 테러범들은 온라인 포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챗봇 등에 사건을 암시하는 ‘디지털 발자국’을 남긴다. 무기 정보를 얻거나 다른 범죄 사례를 찾아보는가 하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글이나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2021년 성탄절 영국 윈저성에 침입했던 석궁 테러 미수범은 AI 챗봇 앱 ‘레플리카’에서 5000여 건의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2022년 흑인만 10명을 살해한 미국 버펄로 총기 난사범은 디스코드, 레딧 등에서 극단적 인종 차별주의를 접했다. ▷텀블러리지 참사는 오픈AI가 위험을 알고도 모른 체했다는 점에서 과거 사례들보다 더 충격적이다. 오픈AI의 이런 판단은 이용자 프라이버시가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특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예측해 이용자 정보를 먼저 제공하면 ‘사찰 논란’이 더 커져 이용자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미 정부의 광범위한 개인 데이터를 분석해 테러 등 범죄 징후 등을 찾아내는 AI 기업 팔란티어가 사회적 기여도와 별개로 인권 침해 비판을 받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AI는 범죄자들이 단순 검색을 하거나 글을 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보 제공을 넘어 이용자에게 절대적 공감을 표한 챗봇이 범죄의 ‘트리거’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챗GPT는 이미 ‘자살 조장’을 이유로도 여러 건의 소송에 휘말려 있다. 텀블러리지 참사를 계기로 개인 프라이버시와 범죄 예방 간 균형추를 찾고, AI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범위를 정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1997년 글로벌 휴대전화 1위 미국 모토로라는 위성전화 서비스인 ‘이리듐 프로젝트’를 위해 만기가 100년 후인 회사채 3억 달러어치를 발행했다. 하지만 이리듐 사업부는 일명 ‘벽돌폰’이란 오명만 남긴 채 처참하게 실패했고, 2001년 헐값에 팔렸다. 그 여파로 휘청거리던 모토로라는 스마트폰 대응 실패로 2012년 휴대전화 사업까지 접었다. 장기 채권을 떠안게 된 존속회사 모토로라솔루션은 앞으로도 71년이나 더 이자를 내야 한다. 모토로라 이후 테크 업계에선 자취를 감췄던 ‘100년물 회사채’가 거의 30년 만에 재등장했다. 주인공은 구글이다. ▷투자자들은 구글을 ‘제2의 모토로라’로 여기진 않았다. 구글 지주사 알파벳이 10일 영국 채권시장에서 10억 파운드(약 2조 원)어치의 10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매수 주문이 10배나 몰렸다. 흥행에 힘입어 금리도 예상보다 낮은 6.125%로 확정됐다. 발행일 기준 영국 국채 30년물보다 겨우 0.8%포인트 높았다. 이 정도면 거의 ‘준국가급’ 장기 신용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알파벳은 미국과 스위스에서도 회사채 발행에 성공해 하루 만에 320억 달러(약 46조 원)를 확보했다. ▷채권 시장에서는 100년물을 흔히 ‘센추리 본드(century bond)’라 부른다. 보통 만기가 10∼30년이면 ‘장기채(long bond)’, 30∼50년이면 ‘초장기채(ultra long bond)’란 이름이 붙는데, 100년은 그런 수식어로는 부족해 아예 기간을 명시한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아 수익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위험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채권 발행 기업이 그때까지 생존하지 못하면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어서다. ▷100년물을 발행한 곳들의 면면을 보면 적어도 ‘안정성’ 측면에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국은 월트디즈니, 코카콜라, 포드, 노퍽 서던(철도회사) 등이 있었고, 유럽에서는 프랑스전력공사, 옥스퍼드대, 오스트리아 국채 등의 사례가 있다. 테크 기업으로는 닷컴버블 이전 IBM과 모토로라 정도만 있었다. 아직 만 서른이 안 된 알파벳은 앞으로 백년기업 반열에 들 확신이 있었고, 시장에서도 통한 셈이다. ▷알파벳의 이번 회사채 발행은 인공지능(AI)과 인프라 투자였기에 더 주목을 끈 측면도 있다. 알파벳이 AI용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등을 구축하는 데 올해 쓰겠다고 한 1850억 달러는 지난 3년간의 투자액을 합한 것보다 많다. 알파벳과 함께 미국 4대 빅테크라 불리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도 올해 최소 4650억 달러의 실탄을 AI 분야에 쏠 준비를 하고 있다. 당장 일 년 후도 보이지 않는 무한경쟁 시대인데, 100년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빅테크들의 패기가 부럽기도 하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성벽을 높이 쌓고 성곽 둘레에 해자(垓字)를 깊이 파면 내부 사람들은 안전해진다. 해자 위로 놓은 다리마저 끊어버리면 외부 위협을 아예 차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밖에서의 젊은 일꾼 수혈과 신선한 물자 보급은 어려워진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곳간은 비고 사람들은 빠르게 지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보호의 역설’이다. 노동시장도 그렇다. 각종 제도로 기득권 노조를 과도하게 보호하면 기업은 신규 인력을 수급하거나 첨단 장비를 도입할 기회를 놓친다. 기업 경쟁력이 추락한 뒤엔 결국 노조가 나눠 가질 과실도 줄어든다.노조엔 ‘보호막’을, 기업엔 ‘족쇄’만 ‘노동자’를 무조건 보호해야 할 약자로 정의하는 순간 그들을 고용하는 ‘기업’은 언제든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경계의 대상이 된다.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이재명 정부의 행보도 현재까지는 이런 이분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작년 8월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 원청 기업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줬고, 경영상의 결정도 파업의 이유로 만들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법”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법 시행은 다음 달인데 전국금속노동조합은 벌써 하청 기업에 투쟁 지침을 전달했다고 한다. 기업의 대(對)노조 전력이 분산되는 것을 지켜보는 대기업 노조만 한층 여유로워졌다.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추진 중인 ‘근로자성 추정제’와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도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예고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의지도 강하다. 프리랜서나 특수고용직이 소송을 걸면 기업은 그들이 ‘근로자가 아님’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명칭부터 ‘추정’이 들어가니 법 조항들도 모호할 게 뻔하다. 그 어려운 일을 맡아줄 대형 로펌들만 축포를 터뜨리게 생겼다. 주 4.5일제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의가 더해지면 기업들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보호막이 늘어나는 노동자와 달리 기업들은 더 많은 족쇄를 차고 있다. 법인세율을 기어이 1%포인트 올리더니 상법 개정은 벌써 세 번째 라운드가 진행 중이다. 부도덕한 경영주가 자기 뜻대로 못 하도록 견제 장치를 두는 것인데 왜 멀쩡한 경영주들까지 어렵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에는 수백만 원씩 투자한 개인 주주들이 아니라 수천억 원씩 지분을 몰래 사 모은 뒤 경영진을 협박하는 해외 투기자본 세력만 웃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머쓱해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외국인 투자기업들과의 간담회에서 기업 지배구조 개혁, 주식시장 정상화, 지방 투자 확대 등에 발언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외국인 자본 투자자가 아닌 한국에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이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를 주제들이다. 외투 기업들의 요청 1, 2순위에 노동 정책이나 세제 개혁이 항상 오른다는 사실을 행사를 준비한 참모진은 정말 몰랐던 걸까.AI로 인한 인력 재배치 일상화 시대 유럽에는 이미 훌륭한 반면교사 모델들이 있다. 프랑스가 1998년 세계에서 처음 시행한 ‘주 35시간 근로제’는 20년 가까이 경제 성장을 방해한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2000년대 초반 근로자 해고를 원천 봉쇄한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그 여파가 누적되면서 청년 실업률이 40∼50%에 달하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지금은 특히 인공지능(AI) 쇼크로 대규모 인력 재배치가 일상화되고 있는 시대다. 미국 빅테크들은 AI가 대체할 인력을 수만 명씩 내보내면서도 전체 고용은 오히려 늘리고 있다. 노동시장 경직도가 세계 선두권인 한국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대통령도 작년 양대 노총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유연성’이란 단어를 어렵게 꺼낸 적이 있다. 실용주의가 구호에만 그치지 않으려면 이제 그에 대한 실천 과제들을 내놓을 때가 됐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한 원로 여자 배우는 여러 동료들 가운데 자신의 외모가 가장 낫다는 취지의 댓글을 포털에 남겼다. 한 남자 배우는 피임 관련 질문에 ‘수위’가 높은 조언을 했고, 다른 남자 배우는 ‘쉽게 돈 먹겠다는 한심한 족속들’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주식 투자자들을 비판했다. 같은 대학 남학우들의 음주 성희롱을 감싸는 듯한 글을 올린 정치인도 있다. 한때의 치기가 발동해서 썼거나, 지금 돌아보면 당장 주워 담고 싶은 것들이지만 오래전 익명으로 남긴 글이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을 것이다. 20여 년이 지나 실명으로 ‘파묘’당하기 전까지는…. 이들의 과거를 허락 없이 공개한 것은 해커가 아니라 게시판 운영자인 네이버였다. ▷‘지식인(iN) 파묘’ 사건은 3일 일어났다. 네이버는 자사에 인물정보를 등록한 세무·법률·의학 등의 전문가 프로필에 ‘지식인’ 링크를 추가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 선수, 게이머, 기업인까지 다양한 직종의 유명인들에게도 링크가 표시됐다. 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지식인이란 코너에 과거 익명을 전제로 쓴 질문이나 답변이 여과 없이 노출됐다는 것이다. 네이버가 하루 만에 시스템을 이전으로 되돌렸지만 이미 1만5000여 명이 과거에 쓴 글로 소환된 뒤였다. ▷지식인 링크는 네이버가 6개월 전에 업데이트를 예고했던 서비스다. 그래서 네이버의 ‘기술적 오류’라는 해명은 더 궁색해 보인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신규 서비스를 내놓을 때는 알파, 베타 등 여러 테스트를 거치며 오류를 수정한다. 작년 매출액이 12조 원이 넘는 국내 1위 포털이 이런 기본적 절차에 실패했다면 심각한 문제다. 네이버는 6일 공식 사과하면서 피해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기술 인력 몇 명에게 책임을 지우고 넘길 일은 아니다. ▷글 작성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명으로 썼던 글이나 자의로 출연했던 방송 화면 중에도 감추고 싶은 ‘흑역사’가 있는데, 하물며 익명 글은 오죽하겠나. 개인 사정이나 주변 관계를 고려했을 때 익명이어야 했을 경우가 많았을 터다. 일거수일투족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라면 더 그렇다. 다른 이용자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익명성을 믿은 게 바보였다”, “이건 네이버가 선을 넘은 거다” 등의 비판이 나온다. ▷네이버는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의 개인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만큼 보안이 뚫리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래서 회사 차원에서는 생존을 걸고 보안 시스템에 투자해야 하고, 내부 구성원들에게도 보다 철두철미한 보안 인식이 요구된다. 이번 지식인 사건으로 이용자들의 실망감이 유독 큰 이유다. 국가대표 인공지능(AI)까지 도전했던 네이버가 이 정도의 정보 보호 수준에 머물러 있다니 씁쓸할 따름이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기 시절인 2017년 케빈 워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는 신임 의장 후보 중 하나였지만 제롬 파월 현 의장에게 밀려 최종 낙점을 받지 못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당시 “그(워시)는 모든 것을 잘못 판단해 왔다”며 후보 거론 자체를 비판했다. 다시 돌아온 트럼프는 지난달 30일 워시를 연준 의장 후보자로 결국 지명했다. 크루그먼의 비판은 한층 거칠어졌다. “그(워시)는 정치적 동물(political animal)이야.” ▷크루그먼은 민주당 성향이 짙은 경제학자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전혀 근거 없는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월스트리트 출신인 워시는 2006년 30대 중반의 최연소 이사로 연준에 입성했다. 그는 연준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천문학적 돈을 풀던 2010년 ‘인플레이션 우려’를 내세워 양적완화 중단을 주장했고 이듬해 사임했다. 긴축을 내세우는 연준 내 ‘매파’ 역할에 충실했던 셈이다. 워시는 그러나 작년부터 정반대로 금리 인하 필요성을 공개 지지했다. 금리만큼은 연준 내 ‘비둘기파’ 성향으로 바뀐 것이다. ▷워시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 가문의 사위다. 장인은 트럼프의 오랜 친구로, 트럼프에게 그린란드 매입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것으로도 알려진 인물이다. 워시가 트럼프 정부마다 연준 의장이나 재무장관 후보로 언급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 이들도 많다. 개인적인 배경이야말로 트럼프가 말한 ‘적임자(cental casting)’라는 것이다. 가장 독립적이어야 할 연준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연준 의장은 흔히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도 불린다.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 연준은 수도 워싱턴에 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12개 지역 연방은행으로 구성된다. FRB 이사 7명과 지역 연방은행 총재 중 5명이 1년에 8번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만에 하나 앞으로 연준이 트럼프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 금리를 조정하면 세계 경제에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 알 수 없다. ▷워시는 더 강경파로 꼽히는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마지막까지 경쟁했다. 시장에서는 워시 지명으로 그나마 불확실성이 줄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지난달 30일 안전자산인 금과 은 현물 가격이 각각 7.9%, 12.9% 내린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워시가 금리는 내리되 ‘매파’ 성향으로 돌아가 연준 유동성 공급은 줄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로 인한 달러 가치 상승 기대감에 비트코인 가격은 8만 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연준 후보자 지명 뉴스만으로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작년 11월 한 시장조사업체가 국가별 현금 사용 비율을 조사해 발표한 적이 있다. 한국은 10%로 전 세계 123개국 중 중국, 호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와 함께 공동 꼴찌였다. 한국인의 일상은 그만큼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카드를 쓰면 자연스럽게 포인트가 적립되는데, 2021∼2025년 쌓인 포인트만 28조 원이었다고 한다. 같은 기간 미처 쓰지 못하고 사라진 포인트도 5000억 원이 넘었다. ▷카드 포인트는 ‘선의의 혜택’이 아닌 ‘마케팅 도구’다. 카드사들은 회원 모집을 위해 경쟁적으로 높은 포인트 적립률을 내세운다. 소비자들은 이 포인트를 소진하는 과정에서 내 돈을 더 얹어 추가 소비를 하기 마련이다. 남은 포인트가 아까워 다른 카드사로 갈아타기를 망설이는 ‘록인(lock-in) 효과’도 있다. 그런데 이 포인트는 회계상으로 ‘이연수익’, 즉 카드사의 부채로 인식된다. 유효기간이 끝나 포인트가 소멸됐다면, 소비자들이 그만큼의 카드사 빚을 대신 갚아준 꼴이 된다. ▷포인트 소멸로 인한 피해는 고령층일수록 컸다. 카드 포인트 전체 소멸액은 매년 소폭이나마 줄었지만, 65세 이상 고령층은 크게 늘었다. 포인트 사용이 대부분 노인 접근성이 떨어지는 온라인이나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어서다. 사용법은 고령층에겐 그저 ‘외계어’일 뿐이다. 오프라인에서도 소액 할인을 받겠다고 일부러 실물 카드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꺼내 보여주는 어르신이 얼마나 될까. 포인트 사용률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통합 포인트 조회 및 현금화 서비스 역시 앱 형태여서, 고령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다음 달부터 65세 이상은 각 카드사에 별도 신청을 하지 않아도, 카드 포인트가 대금 결제 등에 자동 사용되도록 한다니 다행스럽다. ▷카드 포인트와 비슷한 사례들은 일상 곳곳에 있다. 항공사 고객들은 수천, 수만 마일리지를 쌓아놓고도 몇 안 되는 전용 좌석을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성수기나 인기 노선은 아예 엄두도 못 낸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같은 곳은 포인트 소멸 시한이 보통 1∼3년으로 카드사보다 짧아 정부가 이를 5년으로 늘리도록 유도하는 중이다. 통신사 멤버십 서비스는 포인트를 제공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제휴처와 사용 방법을 공부하는 게 웬만한 전공서적 읽기보다 어렵다. 또 연말이면 남은 혜택들이 신기루처럼 증발한다. ▷‘소비자 권리’는 소비자들이 직접 챙겨야 하는 건 맞다. 그렇더라도 이 권리를 행사할 때 너무 높은 허들을 넘어야 한다면, 그 기업은 ‘소비자 기만’이란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더욱이 고령층을 포함한 디지털 소외계층에겐 작은 문턱조차 높은 장벽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기업이 정말 포인트나 멤버십 서비스를 ‘소비자 혜택’으로 포장하고 싶다면 이런 사각지대부터 없애는 게 맞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광고로 혼탁해진 인터넷 검색 결과를 믿지 못했다. 연관성에만 집중한 검색엔진을 만들었고, 1998년 구글을 창업했다.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란 철학을 채택한 배경이다. 그러나 2004년 실적 압박이 커지자 광고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결과와 광고의 엄격한 분리”라는 해명에도 사회적 비판이 거셌다. 구글은 2015년 ‘옳은 일을 하자(Do the right thing)’로 모토를 바꿨다. ▷오픈AI가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에 광고를 붙인다고 한다. ‘플러스 요금제’(월 20달러)는 아니지만 새로 만든 ‘고(Go) 요금제’(월 8달러)를 쓰면 광고를 노출하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 약 8억 명의 챗GPT 사용자 중 유료 가입자는 35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진입장벽을 낮춰 유료 가입자를 늘리는 한편 광고를 새로운 수익 모델로 삼으려는 계획이다. 넷플릭스 같은 구독료 기반 기업들이 신규 수익원을 찾을 때 단골로 써왔던 방식이다. ▷사용자들로선 반가울 리 없다. AI의 답변은 일반 키워드 검색 결과와는 달리 철저히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된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결과물에 훨씬 더 깊이 빠져들고 쉽게 신뢰하게 된다. 문제는 특정 광고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답변이 일부라도 오염될 가능성이다. AI가 추천한 광고를 클릭하면 이는 추가적인 데이터가 돼 다음 답변을 특정 방향으로 왜곡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미 유튜브에서도 알고리즘 추천에 매몰돼 한쪽 면만 보고, 결국 ‘확증편향’에 빠진 이들이 많다. ▷광고 추천은 나와 AI 사이의 대화에 제3자가 끼어든다는 의미다. 유료 구독자인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내밀한 감정까지 AI와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 고민이나 취향까지도 AI가 속속들이 파악하고, 영구 기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픈AI의 광고 전략은 그런 대화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추천하고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광고의 알고리즘 미개입, 개인 데이터 보호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용자들이 검증할 방법은 없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광고 비즈니스 모델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다. 위험한 돈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비영리 법인이던 오픈AI의 영리화를 추진하다가 측근들로부터 쫓겨났다 복귀한 적도 있는 올트먼은 작년 10월 ‘영리 추구’의 걸림돌을 없앴다. 오픈AI 공동 창업자였던 일론 머스크도 올트먼이 비영리 법인 약속을 어겼다며 소송을 건 상태다. 오픈AI는 착한 기업을 표방했다가 돈을 벌어 몸집을 키운 구글의 전철을 똑같이 밟고 있다. 지나치게 자본화된 AI는 검색과는 차원이 다른 태풍을 몰고 올 수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낚시’ ‘전단지’ ‘체험권’ ‘숙제’…. 결이 같은 듯 다른 듯 알쏭달쏭한 이 단어들은 단 하나를 가리킨다. 15일부터 쿠팡이 지급하기 시작한 5만 원 상당의 ‘구매이용권’이다. 대규모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보상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소비자들이 막상 받고 보니 별로 쓸 데가 없더라는 것이다.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격앙된 반응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쿠팡의 이번 이용권은 불편함의 삼박자를 다 갖췄다. 사용처가 제한적이고, 쓰기 까다로운 데다, 유효기간도 짧다. 쿠팡과 쿠팡이츠에선 각각 5000원씩만 쓸 수 있다. 그나마 한 번 결제할 때 다 못 쓰면 남은 금액은 포기해야 한다. 나머지 4만 원은 사람들이 잘 모르던 쿠팡 트래블과 명품 플랫폼 알럭스를 찾아가 용처를 확인해야 한다. 쿠팡 트래블에선 원래 치킨이나 커피 등의 기프티콘도 판매하는데, 이번 이용권으론 결제가 안 된다. 몇십만 원짜리 숙소나 티켓을 살 때만 쓰도록 해 많은 사람들에겐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3개월 내에 소진해야 해서 소비자들은 숙제하듯 까다로운 쇼핑을 해내야 한다. ▷이번 보상안은 쿠팡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매우 좋지 않을 때 나온 것이다. 3370만 명이 개인정보가 유출됐는데도 수장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국회 출석을 거부했다. 그 대신 청문회에 나온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대표는 “미국에선 법률 위반이 아니다” 등의 말로 국회의원들과 입씨름만 벌이다 갔다. 여기에 정보 유출자를 조사한 뒤 정부와 상의도 않고 기습 발표를 한다거나, 미국 정치권을 동원해 오히려 정부를 압박하는 모습은 소비자들의 실망감을 더 키웠다. 결국 ‘분위기 반전’ 카드로 보상안을 발표했는데, 그마저도 ‘고객 묶어두기’에 방점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성이 결여된 보상은 소비자들의 상처를 더 덧나게 하기 마련이다. 2021년 대규모 환불 중단 사태를 일으킨 머지포인트, 2016년 과다 수수료 징수 소송에서 진 미국 티켓마스터 등이 그랬다. 쿠팡의 5만 원 이용권도 그런 전철을 밟는 듯하다. 소비자들 중에는 쿠팡의 정보 유출 사태 자체도 심각하지만, 이후 대처 방식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10여 개 로펌이 모집한 공동 손해배상 청구소송 참여자만 현재 60만∼7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보상 쿠폰마저 소비자의 화를 돋우고 있으니 이 숫자는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쿠팡이 국내 온라인 유통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모든 종류의 물건을 가장 편하게 언제 어디서나 받아볼 수 있다는 편의성 덕택이었다. 그런데 정작 위기에 몰리자 자신의 정체성과는 정반대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쿠폰이 팡팡 쏟아진다’에서 이름을 지었다는 쿠팡이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는 창립 초기에 비해 180도 달라진 것 같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석유화학 업계가 수술대에 오르기 시작한 건 작년 11월부터다. 충남 대산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나프타분해시설(NCC) 통폐합이 정부에 낸 ‘1호 구조조정 방안’이었다. 나머지 기업들도 정부가 마감시한으로 정한 지난달 하순 빠짐없이 ‘자구안’을 제출했다. 매년 수천억 원씩 적자가 쌓이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업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 설비를 사고파는 것도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는 일이어서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올해 정부 압박 강도가 거세지자 등 떠밀리듯 나온 기업들 간 ‘빅딜’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숫자’ 집착하다 ‘체질’ 놓쳐선 안 돼 왠지 낯이 익다. 꼭 10년 전에도 석유화학 업계는 정부 주도로 똑같은 구조조정을 시도했었다. 2016년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의 국내 생산 설비 규모는 860만 t 수준이었다. 당시 테레프탈산(TPA) 공급 과잉 문제가 더 두드러지긴 했어도 중국 자급률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던 에틸렌 역시 체질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는 분산된 설비들을 지역별 인수합병(M&A)을 통해 통합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해 하반기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정부는 정책 동력을 잃었다. 이듬해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각 부처는 적폐 청산에 초기 역량을 모두 쏟았다.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중장기 과제는 정책 우선순위에 오르지 못했다. 정부 압박이 느슨해지자 기업들은 오히려 에틸렌 생산 설비를 늘려 현재 규모는 1300만 t에 이른다. 그사이 중국은 에틸렌 설비 규모를 3배로 키워 글로벌 공급 과잉 우려도 현실이 됐다.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에 압도당한 석유화학 제품은 수출길이 막혔다. 정부가 다시 한번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에 드라이브를 거는 건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번에는 단순한 ‘숫자 줄이기’에 집착해선 안 된다. 일부 설비 통폐합에만 만족했다가 저가의 중국산 제품에 안방을 내어주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생산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좋은 기업에 범용 제품을 몰아줘 중국에 뒤지지 않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하고, 다른 기업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선(先) 자구 노력, 후(後) 지원’이란 원칙도 한 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일부 산업, 일부 기업에 특혜를 줄 수는 없다는 정부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의 존폐가 걸려 있는 비상 상황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산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도 그런 시각을 담았다. 이 기관은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늦어진 까닭이 기업들이 서로 눈치만 보며 버티기 전략을 고수하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사업 재편 대상을 발굴하고 구체적인 지원책을 실행에 옮겨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도 조언했다. 정부의 소극적 구조조정 지원은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낡은 산업구조 개혁 첫 성공 사례로 작년 한국 수출은 처음 70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반도체를 빼면 오히려 소폭 줄었다. 15대 수출 품목 중 9개가 전년보다 뒷걸음질 쳤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의 비중은 24%를 넘어섰다. 특정 산업 의존도가 이렇게 높은 나라는 중동 산유국과 몇몇 원자재 수출국을 제외하면 대만(반도체)이나 아일랜드(의약) 정도밖에 없다. 반도체 부진으로 15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냈던 게 불과 3년 전이다. 다른 산업 체질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자동차, 정유, 석유화학, 철강 등 한국 주력 산업들은 대부분 1970년대를 전후해 태동했다. 50년이 넘은 낡은 산업구조를 하나씩 고쳐 나가야 한다면 당장 경고등이 들어온 석유화학을 첫 성공 사례로 남겨야 한다. 저성장 탈출 해법도 여기에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아저씨 셋이 모이면 처음엔 육아나 교육에 대한 고민을 찔끔 나누고 이내 부동산 얘기로 옮겨타는 게 불문율이었다. 마지막은 늘 언성을 높여 정치 논쟁을 벌이다 막잔을 비우곤 집으로 향했다. 그러던 풍경이 최근 확 바뀌었다. 주식으로 시작해 주식으로 끝난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심상치 않던 코스피가 새해 들어 매일 최고치를 경신 중이니 화제를 독식할 수밖에 없나 보다. ▷코스피는 7일 전날 대비 0.6% 또 올랐다. 장중 4,600 선까지 넘었다가 오후 들어 하락세로 돌아섰는데, 장 막판 기어이 상승으로 마감했다. 7개월 전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가 됐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뉴욕 법정에 세운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증시는 놀라는 기색조차 없다. 증권사들은 앞다퉈 코스피 목표가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코스피 5,000 시대’는 아직이라던 입장을 바꿔 이젠 목표가를 5,650으로 올려잡은 곳까지 나왔다. ▷기록적인 상승장에서도 모두가 웃는 건 아니다. 전체 지수는 계속 빨간색인데 오른 종목보다 내린 종목이 더 많다고 투자자들은 울분을 내뱉는다. 코스피가 반도체 일부 종목에 무등을 탄 모양새라서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투톱’의 시가총액은 835조 원, 540조 원으로 둘을 합치면 유가증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를 넘는다. 두 기업 주가는 작년 한 해만 각각 125%, 274%가 올랐다. 이들을 제외하면 우울한 ‘블루’ 종목들이 부지기수다. 일부 투자자는 주가가 내리면 이익이 나는 인버스 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 상승 랠리가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던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주변에 호소하는 이들도 적잖다. ▷‘불장’에 빠지지 않는 게 ‘빚투’다. 현재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7조8000억 원에 이른다. 비상계엄 충격이 컸던 2024년 말 15조8000억 원 대비 75%가 늘었다. 빚을 내서라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투자자들의 결연함이 숫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제는 상승 랠리가 끝난 뒤다. 미처 손쓸 새도 없이 반대매매를 당하면 투자 원금은커녕 빚만 남게 된다. IMF 외환위기 직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주가 대상승 국면에서도 무리하게 투자했다 전 재산을 날린 이들이 많았다. ▷시장에서는 코스피 상승 곡선이 당분간은 이어질 거란 낙관론이 우세하다고 한다.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 등 해외 시장도 마찬가지다. 동학개미든 서학개미든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다만 요즘처럼 하루 변동 폭이 큰 롤러코스터장에서는 꼭 좋은 결말만 보장되진 않는다. 나만 낙오될 것 같다는 불안함에 뛰어든 ‘포모(FOMO)족’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지 모른다며 투자 결정을 미루는 ‘포보(FOBO)족’이 더 유리한 때일 수도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는 워런 버핏의 도시다. 그의 고향이자 68년째 거주 중인 2층 단독주택이 있는 곳이다. 버크셔해서웨이(버크셔) 소재지도 물론 오마하다. 인구 50만 명의 이 중소 도시는 외부 인파 수만 명이 버크셔 주주총회를 찾는 5월만 빼면 대체로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다. 버핏은 복잡하지 않은 오마하의 환경이 투자 전략을 구상하고 중요한 판단을 내리기에 적합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작년 11월 버핏의 마지막 연례 주주서한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대목은 오마하의 인연들이다. 그의 평생 동반자 찰리 멍거가 맨 먼저 등장한다. 여섯 살 차이인 둘은 10대 때 버핏의 할아버지 식료품점에서 일한 시기가 아슬아슬하게 엇갈렸다. 버핏은 20대 후반에 만난 멍거를 “더없이 훌륭한 스승이자 보호자 같은 형”이라고 했다. 1980년대 적자 신문사를 가장 쏠쏠한 수익원으로 바꾼 스탠 립시, 1999년 미드아메리칸에너지 인수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월터 스콧 주니어도 평생 동료였다. 젊은 시절 버핏의 맞은편에 살며 가족끼리도 친했던 커피 영업사원 돈 키오는 훗날 코카콜라의 사장을 지낸 뒤 버크셔에 합류했다. ▷오마하 사람들과 오랜 인연을 이어간 삶과 경영 방식은 ‘가치’, ‘장기’ 두 단어로 요약되는 그의 투자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보유 기간은 ‘영원’이다”(1988년), “주식시장은 성급한 사람에게서 인내심 있는 사람에게 돈을 옮기는 장치다”(1986년) 등은 사람을 쓰고 키우는 데도 그대로 적용됐다. 오마하의 인연 중 마지막 즈음 나오는 인물이 1일 버크셔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그레그 에이블이다. 캐나다 출신인 에이블도 1990년대 몇 년간 버핏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았다고 한다. 버핏은 “오마하의 물에 무슨 특별한 성분이라도 있는 걸까”라며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올해 아흔여섯이 된 버핏은 작년 5월 주총에서 예고한 대로 CEO 직을 내려놨다. 쓰러져가던 직물회사 버크셔는 1965년 버핏이 인수한 뒤 60년 만에 연 매출 4000억 달러(약 580조 원)의 투자회사가 됐다. 이 기간 주식 가치는 610만 %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동일 기간 배당금 포함 S&P500 지수 수익률의 130배가 넘는다. 버핏 개인 재산은 1510억 달러로 세계 10위다. ▷버핏이 CEO에서 물러나기로 한 건 “재산 99%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을 빨리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사망한 첫째 부인과 세 자녀 이름으로 된 재단에 지속적으로 재산을 기부하고 있는데, 자녀들의 나이가 벌써 68세, 72세, 73세가 돼 더 미루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멍거, 립시, 스콧, 키오 등 평생의 친구들과 하나둘씩 이별하고 있는 ‘오마하의 현인’은 이제 그의 마지막 남은 과업을 준비하고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놀랍기도 했지만 큰 영광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가 18일 ‘도널드 J 트럼프-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한 말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런 결정을 내린 센터 이사회 의장이 트럼프 본인이다. ▷1971년 개관한 이 센터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스스로에게 준 당선 축하 선물과 다름없었다. 1963년 암살당한 제35대 케네디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 공연장이자 미 수도의 랜드마크라 더 탐이 났던 걸까. 그는 취임 직후 이사회를 측근으로 물갈이하고 자신을 이사회 의장에 ‘셀프’ 임명했다. 센터 측은 이사회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다음 날 ‘트럼프’ 이름을 건물 외벽에 새겼다. 23일 CBS가 녹화 방영한 ‘트럼프-케네디센터 공로상’ 시상식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주인인 양 MC 역할까지 자처했다. 주인공인 문화예술인들은 들러리로 전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이 네임’ 정치는 영역을 가리지 않고 노골화하고 있다. 그는 5조 원이 넘게 투입돼 2030년 완공 예정인 프로미식축구리그(NFL) 워싱턴 커맨더스의 새 안방구장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길 원한다고 한다. 미 해군의 신형 전함도 ‘트럼프급 전함’으로 불릴 것으로 보인다. 100만 달러를 내면 영주권이나 체류 허가를 받는 이민 프로그램은 ‘트럼프 골드 카드’라 이름 붙였다. 곧 나올 500만 달러 이상 기부 프로그램은 ‘트럼프 플래티넘 카드’다. 의회 산하 싱크탱크인 ‘미국 평화연구소’는 ‘도널드 트럼프 평화연구소’가 됐다. 사진도 곳곳에 쓴다. 내년 발행되는 미 국립공원 입장권은 물론이고 비록 초안이지만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 주화’에도 트럼프 이미지가 들어갔다. ▷미국 내 여론은 좋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2.0’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비꼬았다. MSNBC는 “트럼프의 주된 관심사는 국정 운영이 아닌 자기 과시와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셀프 우상화” “자기 홍보 노골화” 등 트럼프의 ‘자기 이름 중독증’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다. 트럼프-케네디센터 이름 확정 후 재즈 뮤지션 척 레드는 2006년부터 그곳에서 해 온 크리스마스이브 공연을 취소했다. ▷현대 사회에서 지도자 이름을 공적 영역에 활용하는 건 그 사람이 직에서 물러났거나 사후에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 권력자 이름을 마케팅 용어처럼 사용하는 건 독재국가에서나 볼 법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편으로 ‘탁월한 사업가’다. 퇴임한 그가 공연장, 경기장, 전함 등을 상대로 이름 사용료를 요구했다는 놀라운 소식이 들려오지 말란 법도 없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올 3월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이 주관한 ‘2025 전영오픈’ 결승전 2세트. 6-6으로 맞선 두 선수의 랠리가 1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상대의 마지막 79번째 샷이 네트에 걸리는 순간 안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배드민턴 여자단식 역사상 최장 랠리로 기록된 순간이었다. 안세영은 이 득점을 시작으로 상대를 거세게 몰아붙였고, 체력적 우위를 내세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안세영의 하루는 오전 5시 반 400m 트랙 열 바퀴를 뛰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전 배드민턴 훈련과 오후 근력 훈련, 그리고 야간 기술 훈련으로 이어진다. 이 일과가 매일 반복된다. 경기 후반부 당장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을 짓고도 어김없이 코트에 몸을 던져 셔틀콕을 받아 넘기는 건 그 덕에 가능했다. 이른바 ‘질식수비’라 불리는 안세영의 플레이스타일은 상대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안세영은 등장부터가 강렬했다. 만 15세가 되던 2017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8전 전승을 거뒀다. 중학생이 선발전을 통과한 것도 놀랍지만 이렇게 압도적 성적을 거둔 사례는 없었다. 물론 국제 무대는 만만치 않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첫 경기 만에, ‘2020 도쿄올림픽’은 8강에서 모두 같은 선수에게 져 탈락했다.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중국 천위페이였다. 안세영은 2022년 7전 8기 만에 복수에 성공했다. 숙적을 넘어선 그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 파리올림픽’을 연달아 제패했다. ▷국내 팬들에게 안세영의 이미지는 단지 운동만 잘하는 선수가 아닌, 할 말은 하는 ‘당돌한’ MZ다. 그는 아시안게임 2관왕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저 평범한 운동선수”라며 광고 모델·방송 출연을 모두 고사해 화제가 됐다. 작년 올림픽 경기가 끝난 뒤엔 대한배드민턴협회와의 갈등을 폭로하면서 스스로 이슈의 중심에 섰다. 올 7월 일본 요넥스와 4년 100억 원 수준의 후원계약을 맺은 뒤 “결국 모든 게 돈 때문”이라는 날 선 비판이 쏟아졌는데도 안세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안세영은 워낙 뛰어난 수비력을 갖춘 데다 최근 크로스 헤어핀과 대각 스매싱 같은 공격 기술도 향상돼 완성형 선수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대급’ 시즌을 완성해 낸 원동력이다. 올해 거둔 11번의 우승, 연간 누적 상금 100만3175달러, 시즌 승률 94.8% 모두 남녀를 통틀어 BWF 신기록이거나 타이 기록이다. BWF 공식 SNS 계정은 안세영의 시즌 마지막 우승 후 “The YOUNG GOAT(역사상 최고 선수)!”라고 썼다. 스물셋 배드민턴 여제는 그럼에도 “아직 내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나 목마른 비인기 종목 ‘슈퍼스타’의 갈증을 안세영이 채워주고 있다.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대한민국의 오늘을 표현하는 말로 ‘혼돈’이나 ‘혼란’보다 더 적합한 말을 떠올릴 수 있을까.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나 배웠을 법한 ‘비상계엄’이 현실화하면서 서울 한복판에선 군인들과 시민들의 대치 상황까지 빚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을 뜻하는 ‘X-이벤트’가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것이다.국민도, 소상공인도, 기업도 이미 힘들다비상계엄 같은 초유의 사태가 없었더라도 국민은 이미 힘들다. 금리와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고, 질 좋은 일자리 구하기는 갈수록 어렵다. 주가 폭락은 자산가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액 투자자들의 시름을 더 깊게 만든다. 소상공인들은 굳게 닫힌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방법이 없다. 이러다 아르바이트생 월급이나 제때 챙겨줄 수 있을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기업들도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내수시장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비상경영을 선포한 곳도 여럿이다. 산업별로 들여다봐도 잘나가던 한국 자동차와 배터리는 ‘전기차 캐즘’이란 복병을 만났다. 중국발 공급 과잉에 석유화학, 철강처럼 한가락 하던 주요 수출 업종들도 동반 부진에 빠졌다. 건설에 경제 부양 책임을 맡기겠다는 기대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유통은 벌써 사업 구조조정에 한창이다.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반도체가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해 주곤 있다. ‘트럼프 스톰’의 불똥이 언제 튈지 몰라 불안하긴 매한가지지만.기업들은 3일 밤 벌어진 때아닌 난리통에 4일 이른 아침부터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뾰족한 수가 나올 리 없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대기업 임원은 “하나같이 ‘이게 무슨 일이냐’는 장탄식만 내뱉었다”고 했다. 정치적 안정이 빨리 찾아오길 막연히 기대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단다.정치권과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경제마저 흔들려선 안 된다. 전 국민이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어서다. 경제는 생물과 같다.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뛸 수 없는 것처럼 경제도 한번 멈추면 다시 시동을 걸기 힘들다.철저한 계획에 따르더라도 용광로 가동을 한번 멈추면 재가동까지는 길면 반년이 걸린다고 한다. 만에 하나 사전 준비 없이 불을 꺼뜨리면 용광로 전체가 거대한 철강 덩어리로 굳어져 재가동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쇳물을 받아 철강제품을 만들던 압연공장, 냉연공장도 망가져 결국 제철소 문을 닫아야 한다. 나라 경제 역시 멈추면 굳어 버린다.글로벌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싸워야 하는 기업들에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해주는 게 국가가 할 일이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대만 등은 저마다 보조금이다 수입품 관세다 하며 자국 기업 살리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유독 한국 기업들만 상법 개정안 같은 새로운 위협에 시달려야 한다.이런 위기에서야말로 경제가 우선이다급기야 간밤에는 국가 브랜드마저 추락했다. 해외에선 ‘사우스 코리아’를 ‘노스 코리아’로부터 침공을 받을 수 있는 전쟁 위험 국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외국 자본을 유치하거나 해외 기업을 국내로 끌어들일 때 보이지 않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하물며 ‘전쟁 없이도 계엄령 선포가 가능한 나라’가 됐으니 어떻게 믿고 투자하라고 하겠나.지금의 혼돈이 언제 끝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정치 싸움에 경제를, 그리고 기업을 볼모로 잡는 일만 없었으면 한다. 경제가 무너지면 국회의원 300명이 받아가는 세비도, 대통령실을 포함한 행정부 공무원들이 받는 월급도 없다.바닥이 보이지 않는 내수침체를 되살릴 방안을 마련하고 이런 위기에서도 기업들이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스스로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해온 사람들이 당장 해야 할 일들이다. 김창덕 산업2부장 drake007@donga.com}

롯데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은 67조7000억 원으로 전년 71조8000억 원보다 4조1000억 원(5.7%)이 줄었다. 신세계그룹 역시 작년 매출액이 35조8000억 원으로 전해의 37조1000억 원에서 1조3000억 원(3.5%) 뒷걸음질 쳤다. 설령 올해 실적이 다소 반등한다 하더라도 과거에 누렸던 성장세를 기대하긴 힘들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두 기업 스스로도 위기의식이 크다. 롯데지주는 8월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실적 부진 계열사인 롯데면세점과 롯데케미칼은 앞서 6월, 7월 연이어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롯데지주와 화학부문 계열사 임원들은 이번 달부터 급여까지 일부 반납하기로 했다. 신세계라고 다르지 않다. 신세계그룹은 이미 지난해 9월 정기 인사에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25명 중 9명을 바꿨다. 올해 3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승진한 뒤엔 수시 인사를 통해 신세계건설, G마켓, 쓱닷컴의 CEO가 교체됐다. 그리고 지난달 말 정기 인사에서 신세계푸드,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야구단 등 몇 곳의 수장이 추가로 바뀌었다.활력 떨어진 유통 대기업들재계 6위, 11위에 올라 있는 두 거대 그룹이 부진한 이유는 다양하다. 롯데는 중국발 석유화학 공급 과잉으로 인한 화학계열사 실적 추락이, 신세계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확산의 직격탄을 맞은 신세계건설 유동성 위기가 우선 꼽힌다.하지만 가장 뼈아픈 건 그룹 근간인 유통 부문에서 성장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 환경부터가 녹록지 않다. 한동안 이어져 온 고금리 기조로 얼어붙었던 내수 시장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니 유통 기업들은 딱히 손쓸 방법이 없다. 소비자들이 쿠팡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급격히 쏠리는 사이 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아진 것도 부담이다.두 기업이라고 새로운 모멘텀을 찾기 위한 도전이 없었을까.롯데는 2022년 1월 한국미니스톱을 사들여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의 덩치를 키웠다. 이듬해 12월에는 바이오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기 위해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의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했다. 작년 3월 전지소재 업체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2조7000억 원에 인수하면서 전기자동차 생태계에도 뛰어들었다. 신세계는 2021년 4월 여성의류 플랫폼 W컨셉을, 그해 6월에는 3조 원대에 이베이코리아를 그룹에 편입시켰다. 2022년 3월엔 플랫폼 구축 전문기업 플그림을 샀다. 올해 10월엔 뷰티 전문회사 어뮤즈까지 품었다. 문제는 신사업 진출(롯데)이나 디지털 경쟁력 강화(신세계) 어느 것도 아직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업태의 본질’에서 답 찾아내야유통업계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속출하는 가운데 그나마 활기가 도는 전장이 있긴 하다. ‘물건을 판다’는 개념을 넘어 ‘경험을 제공한다’는 콘셉트를 내세운 복합쇼핑몰이다.부동산 개발 회사인 신세계프라퍼티의 스타필드는 하남점, 고양점, 서울 코엑스점, 안성점에 이어 올 1월 MZ세대들의 놀이터를 자처한 수원점을 오픈했다. 광주와 인천 청라, 경남 창원에도 신규 점포를 계획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롯데도 타임빌라스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달 롯데백화점 수원점을 리뉴얼한 타임빌라스 1호점을 낸 것을 시작으로 국내에만 13곳에 점포를 내겠다고 한다.미국에서 아마존이라는 강력한 시장 파괴자의 등장에 잠시 흔들렸던 월마트는 지금도 ‘글로벌 넘버 원 유통기업’이라는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오프라인 채널이 가진 ‘업태의 본질’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면서도 물류, 배송, 상품 구성 등을 끊임없이 혁신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국내 유통산업의 역사를 함께 써온 두 기업이 찾아야 할 답도 결국 여기에 있지 않을까.김창덕 산업2부장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