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김상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구독 96

추천

안녕하세요. 김상훈 기자입니다.

corekim@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건강87%
산업7%
경제일반3%
문화 일반3%
  • “혹시 뇌졸중? 증세 양상 살피고 혈압부터 재라”[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로 나눈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예방이 최선이다. 뇌졸중의 90%는 고혈압성 뇌졸중이다. 뇌졸중을 피하려면 고혈압부터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고위험군이라면 1∼2년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아 뇌 건강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정근화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졸중 병력이 있는 환자 △가족력이 있는 사람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위험인자가 있는 사람 △흡연과 음주가 잦은 사람 등 네 가지 유형을 고위험군으로 규정했다. 검사 주기는 의사와 상의한 후 결정한다. 발병한 후에는 신속한 대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뇌경색 ‘골든타임’은 4.5시간. 이 시간 안에 막힌 혈관을 뚫어야 온전한 치료가 가능하다. 최근 골든타임은 연장되는 추세다. 정 교수는 “발병 후 6시간 이전에만 치료하면 온전한 효과를 보는 환자가 많다. 일부 환자는 24시간까지도 치료 효과를 본다”고 말했다. 뇌출혈은 골든타임이 따로 없다. 출혈 규모와 부위에 따라 향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뇌혈관이 터지면 뇌 안에 피가 고여 멍울(혈종)이 된다. 그냥 두면 혈종은 더 커지고, 뇌 안 압력은 높아진다. 3시간을 넘기면 위험하다. 6시간이 지나면 수술 자체가 불가능하고 생명을 잃을 확률도 높아진다. 뇌졸중 발병 초기에 나타나는 전조 증세를 알아차려야 한다. 전조 증세는 다양하다. 두통, 어지럼증, 마비, 균형감 상실, 호흡 곤란, 구토, 복시(複視) 등이 나타난다. 정 교수는 “뇌는 영역별로 관장하는 기능이 다르다. 뇌졸중이 발생한 부위에 따라 증세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조 증세 양상을 숙지해야 전조 증세 중에서 △얼굴 한쪽의 처짐과 마비 △한쪽 팔다리 마비 △어눌함과 언어장애 등 세 가지가 가장 흔하다. 이 기능을 담당하는 곳은 뇌 앞부분(전반부)이다. 정 교수는 “뇌 전반부 면적이 가장 넓어서 뇌졸중 발생 확률이 높다 보니 관련된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비 양상을 잘 살펴야 한다. 뇌는 좌우로 나뉘어 있다. 왼쪽 뇌에 문제가 생겼다면 몸 오른쪽에서 마비 현상이 나타난다. 왼쪽과 오른쪽 모두에서 증세가 나타나면 뇌졸중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뇌 후반부에서 뇌졸중이 발생하면 평형 기능과 균형감이 떨어져 제대로 걷지 못한다. 어지럼증이 심해지기도 한다. 시각을 담당하는 영역이라서 사물 일부가 덜 보이고 갈라져 보이거나 겹쳐 보인다. 두통도 대표적인 전조 증세다. 다만 모든 두통이 그렇지는 않다. 정 교수는 “일단 뇌졸중과 관련된 두통은 마비나 어지럼증 같은 다른 증세를 동반할 때가 많다. 두통만 단독으로 나타난다면 뇌졸중과 관련이 없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두통은 특히 뇌출혈일 때 많이 나타난다. 이 경우에도 특징이 있다. 정 교수는 “종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강도의 두통, 망치로 때린 듯한 두통이 나타난다. 구토 증세를 동반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뇌출혈일 때는 의식을 잃는 경우도 꽤 많다. 의식을 잃은 환자가 어디에 있는지 가족이나 보호자가 신속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증세가 나타났을 때 우선 따져봐야 할 게 있다. 바로 ‘급작성’이다. 정 교수는 “어떤 증세든 오래전부터 만성적으로 나타난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을 때 특히 더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병이 진행되면 일반적으로 혈압이 상승한다. 특히 뇌출혈일 때는 혈압이 급격하게 오를 수 있다. 가정용 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해 보는 게 도움이 된다. 고혈압 약을 먹었는데도 전조 증세가 나타나면서 동시에 혈압이 상승한다면 뇌졸중일 확률이 높다. ● 증세 나타나면 곧바로 병원으로 전조 증세는 뇌졸중이 발생했다는 신호탄이다. 이후 증세가 드러나는 양상은 조금씩 다르다. 정 교수는 이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가 ‘지속적으로 악화’하는 유형이다. 정 교수는 “가장 흔한 유형이다. 갑자기 증세가 나타나고, 이후에 다른 증세까지 나타나며, 증세도 악화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처음에 한쪽 팔다리에서 마비 증세가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비 증세가 심해진다. 그러다가 움직이지 못하는 증세가 추가된다. 말도 심각하게 어눌해진다. 시야가 좁아지거나 사물이 여러 개로 보이는 증세를 경험하고, 다음에는 어지럼증으로 쓰러지는 사례도 많다. 이런 유형은 증세가 짧은 시간에 명확하게 발현된다. 이 때문에 뇌졸중을 조기에 발견하는 비율은 높다. 정 교수는 “이런 유형의 경우 골든타임 이내에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치료 효과도 좋아 정상 생활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 두 유형이 전조 증세를 알아차리기 힘든 게 문제”라고 말했다. ● 증세가 사라졌으니 괜찮다? 두 번째, 증세가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유형이다. 교사 출신 60대 남성 박진수 씨(가명)가 그랬다. 박 씨는 매일 아침 신문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어느 날 글자가 흐릿해지다 곧 어지럼증이 나타났다. 몸이 안 좋아서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운동했더니 증세가 사라졌다. 2일 동안 같은 일이 반복됐다. 3일째 되던 날 아침 식사 때 딸이 아버지가 말하는 게 어눌하고 멍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제야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검사 결과 이미 뇌경색이 진행돼 있었다. 척추에서 뇌로 연결된 동맥이 가장 먼저 막힌 것으로 추정됐다.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고 어지러웠던 게 이 때문이다. 하지만 증세가 곧 사라지자 전혀 뇌경색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소뇌와 후두엽 부위 혈관까지 막혔고, 결국에는 왼쪽 후두엽 뇌 손상이 심해 오른쪽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이런 양상의 뇌졸중을 보통은 ‘미니 뇌졸중’이라고 한다. 정 교수는 “작은 형태의 뇌졸중이란 표현은 안일하다. 잠시 쉬고 있는 것일 뿐, 병은 진행 중이다. 이런 환자의 15% 이상은 일주일 이내에 뇌경색으로 악화한다. 그러니까 폭발을 앞둔 휴화산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뇌로 혈류 공급이 중단되자 혈액을 보충하려는 우리 몸의 방어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혈류가 공급되면서 증세가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병은 다시 진행된다. 이를 의학적으로 ‘일과성 허혈발작’이라고 한다. 정 교수는 “한쪽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눈앞이 캄캄해지는 등의 증세가 갑자기 나타났다면, 지속시간이 10분이 되지 않더라도 병원을 찾아 검사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 애매모호할 때 더 주의해야 셋째 유형은 더 모호하다. 특수한 상황에서만 같은 전조 증세가 반복된다. 언뜻 보기에 뇌졸중과 아무 관련이 없어 보여 일찍 발견하지 못한다. 70대 중반 남성 이석천 씨(가명)는 운동을 좋아했다. 한강 둔치로 나가 달렸고 헬스클럽에도 자주 갔다. 언젠가부터 운동을 마치고 난 후에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멀쩡해졌다. 이 씨는 근력 운동 후유증이라고만 생각했다. 이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꼭 운동하고 난 후에만 오른손에서 힘이 빠졌다. 아주 심하지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 증세가 악화했다. 오른손에서만 나타나던 무기력과 마비 증세가 다리까지 뻗었다. 이 씨는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앓고 있었다. 그제야 걱정돼 병원에 달려갔다. 왼쪽 경동맥이 80% 가까이 막혀 있었다. 뇌로 가는 혈류가 부족해졌고, 뇌 손상은 진행되고 있었다. 급히 처치했지만 손상된 부위는 살릴 수 없었다. 정 교수는 “특히 탈수, 운동, 음주, 과식을 한 뒤 위장으로 혈류가 몰리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뇌 혈류가 줄어들어 뇌졸중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뇌졸중 전조 증세 비슷한 게 반복해 나타난다면, 설령 뇌졸중이 아닌 것 같아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현명하다”고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11시간 전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암 피하고 싶다고? 10대 예방 원칙부터 지키세요”

    국내 기대수명은 남자 79.9세, 여자 85.6세다. 이 나이까지 살 때 암에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올 1월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남자는 37%, 여자는 34.8%였다. 남자 5명 중 2명, 여자 3명 중 1명꼴로, 사망 전까지 1회 이상 암에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암이 고령자만의 질병은 아니다. 현재 암 환자이거나, 한때 암 환자였던 비율은 전 국민의 5% 정도이다. 국민 100명 중 5명은 암과의 투병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다. 물론 고령 환자의 증가율이 더 가파르다. 왜 그런 걸까. 이 증가율을 떨어뜨릴 수는 없을까. ● 고령 암 발생 늘어나는 까닭은초고령 사회, 최선의 시나리오는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박경화 고려대 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 한다. 암 관련 정보를 잘 알아두고, 적극 투병하는 등 기본적인 사항부터 지키면 설령 암에 걸리더라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의학적으로 볼 때 고령 암 환자의 증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암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누적되면서 발생한다. 임채홍 고려대 안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정상적이라면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암세포를 죽인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돌연변이가 누적되면서 암이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도 “나이가 들면서 면역 체계의 방어 능력, 문제가 있는 세포가 자멸하도록 유도하는 기능, 돌연변이를 수리하는 능력이 모두 떨어진다. 이런 점도 고령 암 발생률을 높이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설명을 종합하면, 암은 고령자에게 일종의 만성질환이다. 수명이 늘어나면 고령자도 늘어난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 암을 더 쉽게 진단해 낸다. 결과적으로 암 환자는 증가한다. 앞으로도 고령 암 환자는 줄어들지 않고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나이 들어 암에 걸렸으니 젊었을 때보다 악화하는 속도가 더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틀렸다. 암의 종류에 따라 속도가 다를 뿐, 고령이라고 해서 속도가 더딘 암은 없다. 오히려 폐암, 대장암, 위암, 전립샘암 등에서는 간혹 고령에서 난치성일 때가 있다. ● 그래도 암 예방법은 있다 나이가 들어 암에 안 걸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젊었을 때부터 관리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모든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젊었을 때 잘 관리해야 65세 이후에 암에 덜 걸린다”라고 말했다. 중년 이후에 관리에 돌입하면 늦을까. 박 교수는 “50대든 60대든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관리하면 그만큼 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관리의 기본은 다른 만성질환 예방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적절히 운동하고 잘 먹고, 체중 관리 잘하며, 유해환경을 피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국립암센터가 권고한 10대 암 예방 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 암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덧붙였다.(암 예방 수칙 참고)임 교수는 흡연, 식이 습관, 유전 및 환경 요인이 각각 3분의 1씩 암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담배는 끊고, 올바른 식습관을 갖추는 게 중요한 이유다. 임 교수는 “미국에서 시행된 대규모 연구 결과 여러 색깔의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고, 붉은 육류보다는 생선과 닭고기를 먹으며, 백미보다는 현미나 통곡물을 많이 먹었을 때 암 사망률이 61% 감소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추가로 “고열량, 고지방 음식을 자주 먹으면 비만이 되기 쉽다. 비만은 암의 가장 큰 위험 인자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건강검진은 필수다. 초기에 암을 발견할 때 사망률은 크게 떨어진다. 임 교수는 “유방, 위, 대장암의 경우 국가 검진을 잘 받아 초기에 발견했을 때의 5년 생존율은 94∼99%다. 반면 발견이 늦으면 위암은 7%, 대장암은 20%, 유방암은 49%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국가 암 검진에서 고령자 가이드라인은 따로 없다. 80세 이후에는 검진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따라서 75세 이후부터는 주치의와 상의해서 적절한 시기에 검진하는 게 최선이다.● 의료 발전으로 치료 효과 높여 과거에는 암 진단이 곧 사형 선고로 여겨졌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검진으로 일찍 암을 발견한 덕분에 완치율이 높아졌다. 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가 됐더라도 치료가 충분히 가능하다. 먼저 항암치료를 통해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한다. 수술 결과에 따라 추가 항암치료를 통해 암을 제거할 수 있다. 약물 효과도 크게 개선됐다. 과거에는 항암제가 암세포뿐 아니라 주변의 건강한 세포까지 죽이는 바람에 후유증이 컸다. 최근에는 면역항암제와 표적치료제를 병행 투입하면서 치료 효과를 높이는 정밀의학이 대세다. 박 교수는 “암이 재발했거나 진행하고 있는 경우에도 유전자를 분석한 뒤 가장 적합한 약물을 골라 투입한다”라고 말했다. 방사선치료 효과도 좋아지고 있다. 임 교수는 “전립샘암이나 자궁경부암, 성대암, 인두암의 경우 방사선치료가 항암치료 성적과 비슷할 정도로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조기 폐암과 간암을 앓고 있는 고령자의 경우 방사선수술로 치료 성적을 높이고 있다. 박 교수는 “대체로 초기 암이라면 완치를 목표로 치료한다. 4기라 하더라도 삶의 질을 개선하면서 생존 기간을 충분히 늘리고 있다”라며 “해외 여러 나라와 비교해도 국내 암 치료 성적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 슬기로운 투병이 치료율 높여잘 관리해도 암에 걸릴 수는 있다. 어떻게 투병하느냐가 중요하다. 박 교수는 무엇보다 평소 건강 관리를 주문했다. 기저질환이 있거나 체력이 약하면 치료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 체력이 좋아야 암과 싸워 이겨낼 수 있다. 몇 년 전, 70대 후반 여성 김미순 씨(가명)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암은 뼈로 전이돼 있었다. 가족은 고령 때문에 항암치료를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의료진을 믿고 치료에 임했다. 의료진은 항암 용량을 낮추고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암은 더 이상 악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2년 후 암이 뇌로 전이됐다.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번에도 가족은 고령 환자가 대형 수술을 견디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의료진은 충분히 설명했고, 가족은 의료진을 믿기로 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후로 4년이 흐른 지금, 김 씨는 80대의 나이지만 건강하게 살고 있다. 박 교수는 이를 모범적인 투병 생활 사례라고 소개했다. 첫째, 암을 이겨내겠다는 환자의 의지가 강했다. 간혹 비교적 초기에 암을 발견했는데도 절망감에 빠져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들이 있다. 특히 노인 중에 이런 환자가 많다. 입맛이 없다고 식사를 거르고 운동도 하지 않는다. 박 교수는 “의료진이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다. 병과 싸우려는 환자 의지가 중요하다. 환자의 적극적 의지는 완치에 이르는 요소 중에서 30∼40%는 차지한다”라고 말했다. 둘째,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 중요하다. 의사의 지침을 무시하거나,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환자들이 드물지 않다. 김 씨의 가족은 의사와 소통했고, 의사의 지침을 따랐다. 마지막으로 가족의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 박 교수는 “고령 환자일수록 겁을 먹어 치료에 소극적일 때가 많다. 고령 암 환자의 10∼20%는 초기에 수술과 같은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럴 때 가족이 나서서 안심시켜 주고, 투병 과정에서도 독려해야 치료 효과가 좋아진다”라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11-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00가지 지식보다 사소한 실천이 만성질환 예방한다

    국내 70대 이상 고령자 10명 중 1명꼴로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여러 질환에 동시 노출된 경우도 흔하다. 질병이 있는 65세 이상이라면 평균 4.1개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 사망과의 연관성도 높다. 전체 사망자의 사망 원인을 따져 보면 80%가 만성질환이다. 오래 방치하면 합병증 위험도 크다. 3대 만성질환인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은 심뇌혈관 질환, 암, 치매, 간부전, 신부전 등을 유발한다. 생명까지 위협하는 무서운 병이지만 적극 대처하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만성질환이 오랜 기간 서서히 진행하기 때문이다. 병이 악화하기 전까지는 별 증세가 없어 방치하게 되는 것. 분명한 사실 하나. 만성질환은 초고령 사회, 노년 건강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복병이다. 또 한 가지. 60대 이후에 관리를 시작하면 늦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40대부터 관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게 문제 비만은 여러 만성질환의 주범이다. 비만만 예방해도 만성질환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2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체질량지수(BMI) 25 이상인 국내 성인 남성 비중은 48.8%였다. 2명 중 1명이 과체중 혹은 비만이란 뜻이다. 특히 20∼40대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일단 많이 먹기 때문이다. 열량만 높고 영양이 떨어지는 음식을 폭식한다.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야식을 자주 챙겨 먹는다. 밤새 게임하거나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만 있다. 운동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살이 안 찔 수 없다. 비만의 원인을 우리는 안다. 대표적인 것이 과식과 운동 부족이다. 원인을 알았으니 비만 환자는 줄어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럴까. 류혜진 고려대 구로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알면서도 여러 이유로 실천하지 못하거나 실천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모든 만성질환의 원인이 같지는 않다. 스트레스, 생활환경, 유전적 요인, 약물 부작용, 질병 후유증 등 다양하다. 다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이다. 류 교수는 “이 두 가지만 개선해도 만성질환 예방 효과는 커진다”고 말했다. 만성질환은 일찍 관리할수록 좋다. 평생 정성을 쏟아야 한다. 관리의 핵심은 실천이다. 사소한 것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 류 교수는 이를 연금에 빗대 “젊었을 때 보험료를 내듯이 차곡차곡 건강 습관을 실천하면 나중에 ‘노년 건강’이란 연금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 잘 먹고, 운동하고, 검진받고 식습관부터 개선한다. 류 교수는 “식습관 개선이야말로 만성질환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첫째, 양질의 음식을 골고루 먹는다. 혈당 스파이크를 피한다며, 혹은 다이어트한다며 탄수화물을 꺼리는 이들이 많다.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류 교수는 “섬유질이 풍부한 다당류 위주로 충분히 먹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단백질 섭취량을 늘린다. 나이가 들수록 근 손실이 빨라지기 때문. 소화가 안 된다며 육류를 줄이는 건 잘못이다. 어느 정도 먹어야 할까. 류 교수는 “매 끼니, 손바닥 크기만큼의 단백질 식품을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 용량을 가늠하기 힘들다면 하루에 달걀 2개, 고등어 반 마리, 두부 한 모 이상을 챙겨 먹자. 셋째, 건강기능식품은 약이 아니다. 질병 치료 효과나 안전성에 의문이 든다. 무턱대고 먹었다가 간이나 신장 손상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영양 결핍이 우려되면 양질의 음식을 더 먹는 게 낫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의사와 꼭 상의하자. 운동이야말로 실천이 특히 필요한 요소다. ‘운동해야 하는데…’라는 말만 반복하지 말고, 단 10분이라도 걷자. 최대 심박수의 80% 정도, 혹은 약간 숨이 차고 옆 사람과 말하기 조금은 버거운 강도(중강도)로 주 3회 이상 운동하면 더 좋다. 미국심장학회에 따르면 1주일에 150분 정도의 중강도 운동만으로도 심폐 기능 개선에 큰 효과가 있다. 근력 운동도 필수다. 대체로 유산소 운동에 투자하는 시간만큼 근력 운동을 하면 된다.만성질환에 대처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게 또 있다. 건강검진이다. 정진만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식습관을 개선하고 운동을 꾸준히 해도 40대부터는 만성질환 위험이 급격히 커진다. 심각한 중증 질환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자기 나이에 맞는 관리 필요 류 교수는 “20대와 30대는 만성질환과 무관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통계상으로는 50대 이후 중증 질환에 많이 걸린다. 다만 병의 ‘불씨’는 30대, 40대부터 자란다.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이면서 날씬한 30대가 많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과는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체성분을 측정해 보면 내장지방 비율이 정상 범위 끝에 있거나 초과한 경우가 꽤 있다. 40대부터는 이런 ‘내부 변화’ 속도가 빨라진다. 30대 때보다 기초대사량이 떨어지면서 지방이 더 쌓인다. 그런데도 여전히 혈당과 혈압이 정상으로 나오면 경각심은 생기지 않는다. 혈당과 혈압 수치가 정상 범위를 초과하더라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40대는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질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직장, 육아, 부모 모시기 등 여러 문제가 겹쳐 스트레스를 최대한으로 받기 때문. 자신을 챙길 여유가 없다. 류 교수는 “60대 이후 만성질환의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40대의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자신에게 충분히 투자해야 한다. 양질의 음식을 먹고, 시간을 내서 운동해야 한다. 그래야 만성질환 불씨를 꺼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40대에 적극 관리하지 못하면 50대에 만성질환이 본격화한다. 늦지 않았다. 다만 병의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 류 교수는 “약 먹기를 거부하거나 자주 빼먹는 50대가 의외로 많다. 더 무서운 질병으로 악화하지 않으려면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60대 이후에는 병을 더 악화시키지 않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 근육량 유지가 필수다. 단백질 풍부한 음식을 넉넉히 먹어 줘야 한다. 물론 약은 빠뜨리면 안 된다. 골절 사고로 사망률이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뼈 건강에도 신경 써야 한다. ● 중증 질환 증세 빨리 알아차려야 잘 관리해도 뇌출혈 같은 중증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이 같은 병은 시간이 생명이다. 전조 증세를 알아두는 게 좋다. 정 교수는 “뇌졸중 초기 대처가 늦으면 뇌가 영구 손상돼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뇌출혈이나 뇌경색의 경우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한 강도의 두통이 나타나거나 몸이 한쪽으로 기운다. 어지럼증이 생기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도 생긴다. 얼마 전까지 없던 증세가 ‘갑자기’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이런 증세는 5∼30분 이내에 사라지기도 한다. 이 경우에도 병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2차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잊힌 채 방치된다. 정 교수는 “만성질환이 있는 60대 이후라면 첫 증세가 나타났을 때 환자가 판단하려 하지 말고 신속하게 응급실로 가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급성심근경색 증세도 알아 두자. 주로 통증이 나타나는데, ‘쥐어짜듯’ 혹은 ‘강하게 누른 것처럼’ 아픈 게 특징이다. 호흡 곤란도 발생한다.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이 있다면 이런 증세가 나타났을 때 곧바로 응급실로 가야 한다.▶[초고령 사회, 더 건강하게!] 〈1회〉 주목, 일본 노인 의료 시스템“건강장수 비결? 웃으며 재활, 근력운동은 꾸준히!”▶[초고령 사회, 더 건강하게!] 윤을식 고려대 의무부총장 인터뷰▶[초고령 사회, 더 건강하게!] 〈2회〉 치명적 노인 질환 미리 막자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11-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급성 중증 치료 전담할 대학병원 노인의학센터 필요”

    국내 대학병원은 중증 난치성 질환 치료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전문가 양성, 신약 및 신의료 기술 개발 같은 일도 대학병원의 중요한 역할이다. 대한민국이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이후 이런 대학병원의 역할은 달라질까. 윤을식 고려대 의무부총장(고려대 의료원장)은 “노인의학센터의 본격적인 가동을 비롯해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부총장에게 초고령 사회, 달라질 대학병원의 모습에 대해 들어 봤다. ―이미 노인센터를 운영하는 병원과 의원이 꽤 있다.“물론 그렇다. 하지만 활성화돼 있지는 않다. 고령자 진료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의사 인식도 강하지 않다. 제대로 노인의학센터가 운영되려면 신경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정형외과, 혈액종양내과 같은 여러 진료과가 한데 모여 고령자 진료에 집중해야 한다.” ―노인의학센터 진료는 뭐가 다른가. “현재 시스템에서는 콩팥이 안 좋은 70대 환자가 병원에 가도 해당 진료과만 들렀다가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나이라면 여러 질병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 노인의학센터에서는 다학제 진료를 통해 종합적으로 살피고 치료한다. 또 환자가 복용하는 약을 분석해 불필요한 약물 사용을 줄이고 빠뜨린 약도 찾아낸다. 그 결과 치료 성적을 높일 뿐 아니라 또 다른 질병을 미리 찾아낼 수도 있다.” ―동네 의원 역할과 겹치지는 않나.“대학병원 노인의학센터는 급성기 중증 고령 환자를 주로 치료할 것이다. 이런 환자를 1∼2주 동안 집중적으로 치료한 뒤 재활병원, 중급 병원, 동네 의원에 단계적으로 이송한다. 역으로 동네 의원 등에서 중증 질환을 발견하면 신속하게 대학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중요하다. 정기 검진을 통해 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는 역할은 의원과 중급 병원이 중심이 되고, 대학병원은 중증 환자 치료와 의료기관 간 진료를 연계하는 중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의료 시스템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대학병원 환자의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 고령자다. 문제는, 그 환자들이 재활병원 등으로 옮겨져 물리치료를 받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퇴원 후 추가 조치 없이 집에 있다가 넘어져 골절상을 당하고, 1주일 만에 다시 병원에 실려 오는 사례를 숱하게 봤다. 이런 상황을 줄이려면 대학병원 노인의학센터는 급성기 중증 환자를 치료하고, 하위 병원에 보낸 후에도 비대면 진료를 통해 지속적으로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대학병원이 고령 치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점이 가장 다르다.” ―노인의학센터를 당장 출범시킬 수는 없나. “제도적으로 손봐야 할 부분이 적잖다. 가령 노인 치료에 적용되는 의료비용인 ‘고령 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고령자일수록 치료에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 시간이 더 많아진다. 하지만 치료비는 40대나 70대를 구분하지 않고 같다. 그 차액을 고령 수가를 통해 어느 정도 지원해야 대학병원이 노인의학센터를 설치, 운영할 여력이 생긴다. 비대면 진료 제도에 대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 ―보완할 점이 또 있나.“이른바 고령 수가가 적용되는 나이도 결정해야 한다. 60세로 할 것인지, 65세로 할 것인지, 혹은 추가로 다른 합의를 볼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노인의학센터 설치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다. 노인 병동은 건축재부터 달라야 하고 바닥재도 푹신푹신한 재료를 써야 한다. 공간 배치도 따로 신경 써야 한다.” ―대학병원의 또 다른 역할은 무엇인가.“치료 분야 말고도 연구와 전문가 교육은 오롯이 대학병원 역할로 남는다. 미국과 일본 같은 외국에서도 이 점은 변하지 않았다. 대학병원과 지역 연계 시스템이 구축되면 1차 의원과 2차 병원 인력을 교육하는 것도 대학병원 역할이 될 것이다.” ―초고령 사회, 새로운 병원 모델을 제시한다면.“다양한 첨단 정보통신(IT) 기술을 접목한 병원이어야 할 것이다. 고령 환자를 위한 별도의 노인의학센터가 있어야 한다. 급성기 환자의 다음 치료가 가능한 재활병원과 요양병원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좋다. 주거 공간인 ‘시니어 하우스’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다. 일종의 고령 사회 의료 콤플렉스다. 이런 미래 병원 모델을 고려대 의료원이 추진하고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10-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건강장수 비결? 웃으며 재활, 근력운동은 꾸준히!”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2024년 12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그 파장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노인 의료 시스템 개혁이 절실하다.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동아일보는 고려대 의료원과 함께 이 방법을 찾기 위한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일본은 20여 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고령자 건강 관리가 더 시급해졌다. 대표적 노인 질환인 치매만 보더라도 인지장애를 포함하면 900만여 명에 이른다.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곧 들이닥칠 미래다. 병에 걸리지 않는 것, 그리고 걸려도 건강하게 사는 것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일본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일본 아이치현 오부시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NCGG)를 찾았다. 2004년 설립된 NCGG는 고령자 전문 국립센터로 301개 병상을 갖추고 20개 이상의 진료과를 운영한다. 치매를 비롯해 노인 질병에 대한 예방과 연구 활동도 활발하다.아라이 히데노리 이사장(노년내과 전문의)은 “NCGG는 노인 환자가 삶의 질을 유지하며 가족과 함께 즐거운 노년을 보내기를 가장 원한다”고 말했다. 혹시 이곳에서 해답이 보일까. NCGG를 들여다봤다. ● “참여형 재활, 병 진행 늦춰”먼저 재활 치료를 지켜봤다. 매주 3회 오후 1시간씩 주로 경증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다. 환자와 스태프 등 10여 명이 참여하는데, 언뜻 보기에는 그저 왁자지껄 e스포츠를 즐기는 듯했다. 벽에 걸린 대형 TV에 볼링 게임 화면이 떴다. 환자들은 순번이 돌아오자 게임기를 들고 볼링 동작을 취했다. 볼링핀을 쓰러뜨리든 쓰러뜨리지 못하든 격려와 환호의 박수가 쏟아졌다.여러 감각 기관을 써서 다른 환자들과 사회적 교류를 하며 유쾌하게 즐기는 것. 이것이 이 센터의 재활 치료였다. 환자들은 내내 웃었다. 아라이 이사장은 “치매 환자들은 잘 웃지 않는다. 자주 웃게 만들어야 감정도 풍부해지고 치매 진행도 늦춘다”고 말했다. 즐겁게 투병해야 치료 효과도 높다는 뜻이다. 치매 치료실이 유쾌했던 이유다. 노인 질병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같은 방식의 재활 프로그램은 강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 영역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은 충실히 운영되고 있다. 아이치현 나고야시 신차야 노인보건시설은 국내 요양병원과 노인주간보호센터를 혼합한 모델인데, 단지 ‘수발’만 하지는 않았다. 사와다 아키히로 사업부장은 “노인들이 건강을 회복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재활을 돕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 젓기, 실내 자전거 타기 같은 재활 훈련을 하는 경증 환자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근력 강화 운동이나 그룹 재활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었다. 가령 취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소프트볼을 하거나 산책을 하기도 한다. 사와다 부장은 “이런 참여를 통해 사회적 유대감을 높임으로써 우울증과 기억력 감소를 막는다. 결과적으로 치매 진행도 늦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절대 필요한 근력 운동 아라이 이사장은 “노인 건강에 운동, 특히 근력 운동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NCGG는 여러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근력과 유연성을 모두 키울 수 있으면서 노인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동작을 추려 봤다. 매일 30∼60분씩 해보자. 가능하면 시간을 정해놓고 같은 시간대에 하는 게 좋다. 기본 자세는 의자에 앉아 상체를 세우고 정면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① 한쪽 무릎을 펴며 지상과 수평이 되게 쭉 뻗는다. 발끝은 천장을 향한다.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가며 50회씩 3세트를 한다. ② 한쪽 발을 바닥에 댄 채로 쭉 뻗는다. 상체를 숙이면서 손을 발끝으로 뻗는다. 발끝은 천장을 향한다. 30초 동안 멈춘 후 좌우 바꿔 시행한다. 3세트 반복한다. ③ 한쪽 다리를 끌어 올려 허벅지가 배에 닿도록 노력한다. 좌우 번갈아 가며 50회씩 3세트를 한다. ④ 앞 동작을 반복하되 허벅지를 들어 올렸을 때 상체를 뒤튼다. 오른발을 들면 왼쪽 팔꿈치가 오른발 허벅지에 닿도록 한다. 좌우 교대로 10회씩 3∼5세트를 한다. 의자에서 일어서자. 의자 등받이를 잡고 선다. ① 다리를 앞뒤로 벌린 후 앞무릎을 구부리고 뒷다리를 쭉 편다. 종아리에서 팽팽함이 느껴져야 한다. 30초 동안 지속한다. ② 다리를 살짝 벌려 선다. 한쪽 발을 뒤쪽으로 쭉 찬다. 이때 무릎은 자연스럽게 굽힌다. 좌우 돌아가며 30회씩 3세트를 한다. ③ 앞 동작을 똑같이 하되 무릎을 편다. 좌우 돌아가며 50회씩 3세트를 한다. ④ 어깨너비로 발을 벌린다. 한쪽 발을 옆으로 들어 올린다. 좌우 번갈아 가며 30회씩 3세트를 한다. ⑤ 두 발을 붙인 후 까치발 동작을 취한다. 50회씩 3세트를 한다. ⑥ 옆으로 선 뒤 한쪽 발끝으로 마룻바닥에 크게 원을 그린다. 무릎은 쭉 편다. 좌우 돌아가며 10회씩 3세트를 한다. 벽을 이용할 수도 있다. 벽에 등을 대고 선 뒤 ① 몸을 쭉 뻗으며 만세를 부른다. 30초 동안 그 자세를 유지한다. ② 스쾃 자세를 취한다. 무릎을 많이 구부릴 필요는 없다. 강도를 조절하며 50회씩 3세트를 한다. ③ 벽에서 떨어져 두 팔을 앞으로 뻗는다. 허리를 펴고 무릎만 구부리며 앞으로 걸어간다. 3m씩 10회 반복한다. ● 촘촘히 연결된 노인 건강 네트워크 치매, 근력 감소, 우울증 예방은 NCGG가 가장 염두에 두는 목표다. 아라이 이사장은 “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센터가 개발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노인 건강 네트워크다. 코그니사이즈(Cognicise)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영어로 인지(Cognition)와 운동(Exercise)을 결합한 용어다. 뇌와 몸을 함께 훈련함으로써 인지 기능과 신체 기능을 동시에 끌어올린다. 이를테면 걷거나 체조하면서 계산을 수행하는 식이다. 숫자를 세며 걷다가 3의 배수가 나오면 손뼉을 치기도 한다. 지자체는 센터가 만든 프로그램을 매주 한두 번씩 지역 회관에서 진행한다. 이와 별도로 NCGG는 노인들을 위한 운동법이나 식사법 같은 건강 지침을 만들어 지자체에 제공한다. 시민 대상 건강 강좌도 진행한다. 때론 NCGG 전문가들이 직접 노인들을 교육하기도 한다. 아라이 이사장은 “센터 하나만으로는 노인 질병 예방을 완전히 달성할 수 없다. 지자체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라이 이사장은 촘촘하게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으면 노인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훨씬 수월하다고 했다. 그는 “주민끼리 사회적 교류를 늘리면 생활 만족도가 올라가고 ‘우울 점수’가 낮아진다. 이에 따라 치매와 근력 감소도 예방할 수 있다. 이 네트워크가 끊어지지 않고 제대로 가동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글·사진 아이치현=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10-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60가지 넘는 림프종, 다학제 협진으로 최적 치료법 찾는다”[베스트 메디컬 센터]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에는 다른 대학병원(3차 병원)을 거쳐 온 환자가 꽤 많다. 이 때문에 ‘혈액암 4차 병원’이라고도 부른다. 여러 강점이 있기 때문인데, 특히 두드러진 것이 다학제 협진이다. 다학제 협진은 여러 진료과 의사가 모여 환자 치료법을 논의하는 시스템이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림프종센터는 다학제 협진 분야 선두에 서 있다. 림프종센터는 2009년 다학제 협진을 도입했다. 14년 만인 2023년 11월 협진 4000건을 돌파했다. 지난달 기준 4160건으로 늘었다. 국내 최다 기록이다. 이 시스템을 도입한 주역이자, 지금도 림프종 다학제 협진팀을 이끄는 조석구 혈액내과 교수에게 장점을 물었다. 조 교수는 “림프종의 질병 특성상 다학제 협진은 꼭 필요하다. 진료 정밀도와 환자 만족도를 모두 높이는 최적의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림프종 다학제 협진 꼭 필요 림프종은 혈액암의 일종으로, 면역 기능을 담당하는 림프계에 발생한다. 크게 호지킨 림프종과 비(非)호지킨 림프종으로 나뉜다. 호지킨은 가장 먼저 림프종을 발견한 영국인 의사 이름이다. 호지킨 림프종보다는 비호지킨 림프종에서 악성이 많다. 국내 림프종 환자 95%는 비호지킨 림프종을 앓고 있다. 생존율을 높이려면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우선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부위에 혹이 만져지는지 확인한다. 종양이라면 대체로 크기 2cm 이상이며 눌렀을 때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고무공보다는 딱딱하지만 호두알보다는 딱딱하지 않다. 혹에서 열이 감지되지도 않는다. 체중 변화도 살펴야 한다. 림프종이 많이 진행됐다면 보통 6개월 사이에 체중의 10% 이상이 빠진다. 잠을 잘 때 땀을 많이 흘리는 경향도 강해진다. 이불이 젖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면 병의 악화를 의심해야 한다.다만 림프조직이 전신에 퍼져 있어 어느 부위든 종양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조 교수는 “몸 깊숙한 곳 림프조직에서 림프종이 발생하면 알아차릴 방법이 없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것 외에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건강검진에서 특정 질병을 발견해 치료하러 갔다가 림프종을 발견하는 사례가 많다. 가령 소화불량 증세가 심해 소화기내과에 갔다가 위장에서 림프종을 발견하거나, 고환 이상이 의심돼 비뇨기과에 갔다가 해당 부위에서 림프종을 발견하는 식이다. 빈혈 치료를 하러 갔다가 골수에 림프종이 침범한 사실을 알게 되는 환자도 많다. 림프종은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외에도 세포 치료, 조혈모세포 이식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한다. 다만 세부 유형만 60여 종이어서 각각의 병리학적 판단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진다. 조 교수는 “환자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치료 효과도 높다. 림프종 치료에서 다학제 협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 다학제 협진 어떻게 하나 림프종센터에서는 다학제 협진에 환자가 참여한다. 다학제 협진 현장은 토론장을 방불케 한다. 사전에 준비된 원고나 시나리오는 없다. 미리 치료법을 정하지도 않는다. 의료진은 각자 최선의 치료법을 내놓는다. 의견이 엇갈리면 여러 개 옵션이 나올 수도 있다. 환자는 언제든지 궁금한 점을 질문할 수 있고, 의사들이 내놓은 옵션에서 치료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조 교수는 “14년째 이런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30대 여성 A 씨가 눈꺼풀 안쪽에 림프종이 발생해 병원을 찾았다. 이 경우 방사선 치료가 보통 시행된다. 하지만 백내장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안과 교수가 포함된 협진팀은 환자 상태를 고려해 6개월 혹은 1년마다 추적 관찰하자고 제안했다. 병의 진행 속도가 빠르지 않고 환자 불편도 크지 않으니 굳이 급하게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사실상 ‘치료 보류’인 셈인데, A 씨는 충분히 설명을 듣고 나서 기꺼이 이 결정을 받아들였다. 조 교수는 “치료하지 말자고 결정하는 것도 치료의 일환이다. 다학제 협진이 아니라면 이런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혈액병원 림프종센터장을 맡고 있는 민기준 혈액내과 교수도 “다학제 협진은 각 분야 전문가가 상의하고 환자도 참여해 치료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진짜 맞춤형 진료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학제 협진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진행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의정 갈등 사태 때를 제외하곤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열었다. 보통 한 환자당 20분 정도 소요된다. 다학제 협진팀에는 △혈액내과(조석구 민기준 교수) △소화기내과(강동훈 교수) △호흡기내과(이진국 교수) △안과(양석우 박정열 교수) △방사선종양학과(최병옥 최규혜 교수) △병리과(박경신 김수연 교수) △영상의학과(최준일 교수) △핵의학과(오주현 교수) △전문간호사(이정연) 등이 참여하고 있다.● 삶의 질 높이는 치료법 모색 70대 후반의 B 씨는 몇 달 전 지방의 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위암이 발견돼 내시경으로 종양이 있는 부위만 일부 절제하는 시술을 시행했다. 얼마 후 의사는 암이 깊은 부위까지 침투했다며 위 전체를 들어내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 씨는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겨 추가 검사를 받았다. 이때 위에서 림프종이 발견됐다. 의료진은 위암과 림프종 모두를 치료하려면 위 전체를 들어내는 게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다학제 협진에서 결과가 바뀌었다. 암의 전이가 없는 데다 위암과 림프종 사이를 부분 절제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 것. 위 부분 절제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암은 전이되지 않았다. 다만 림프종은 남아 있었다. 다학제 협진팀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헬리코박터 치료부터 시행했다. 조 교수는 “헬리코박터를 죽이면 림프종도 50∼80% 줄어든다. 따라서 헬리코박터 치료부터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B 씨는 위 림프종에 대한 추적 관찰을 받고 있다. 헬리코박터 치료가 끝나고도 위 림프종에 변화가 없다면 방사선 치료를 시행할 예정이다. 위를 완전히 들어내느냐, 부분 절제하느냐는 이후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이다. 무엇보다 삶의 질이 확 달라진다. 만약 다학제 협진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B 씨는 외과 판단에 따라 위를 완전히 들어내는 수술을 시행했을 확률이 높다. 당시 B 씨는 부분 절제술 결정에 대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다”며 크게 반겼다고 한다. ● 오진 막는 데도 기여 림프종 다학제 협진은 불필요한 진료나 오진 위험을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30대 남성 C 씨의 경우 다학제 협진 덕분에 불필요한 추가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됐다. C 씨는 다른 병원에서 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은 후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 림프종 다학제 협진팀이 C 씨 진료를 맡았다. 림프종의 전이를 비롯해 환자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추가 검사를 시행했다. 폐의 실질 부위에서 종양처럼 보이는 게 발견됐다. 폐암이나 폐 림프종으로 의심되는 상황. 하지만 협진팀은 단정하지 않고, 추가 조직검사를 했다. 그 결과 ‘이상 부위’는 폐결핵으로 판명이 났다. C 씨는 결핵 치료에 이어 호지킨 림프종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현재 C 씨는 종양이 발견되지 않는 ‘관해(寬解)’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C 씨 다학제 협진은 두 차례 진행됐다. 협진팀은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면밀하게 검토했다. 그 결과 정확한 병명을 진단했고, 덕분에 C 씨는 불필요한 치료를 받지 않고 병원을 일찍 나올 수 있게 됐다. 다학제 협진을 통해 오진을 바로잡은 사례도 있다. 50대 남성 D 씨가 그랬다. D 씨는 3년 전 다른 병원에서 십이지장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얼마 후 재발했고 결국 서울성모병원에 왔다. 림프종 다학제 협진팀이 살펴보니 진단 과정에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협진팀은 십이지장과 위장 사이 소장에도 림프종이 있을 거로 의심했다. 이 부위는 일반 내시경 검사로는 확인이 어렵다. 협진팀은 캡슐 내시경 검사를 진행했고, 소장에 침투한 림프종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D 씨는 십이지장 림프종이 재발한 게 아니었다. 소장 림프종의 존재 사실을 의료진이 몰랐던 것이다. 원인을 찾아냈으니 치료 과정은 수월했다. 조 교수는 “다른 병원의 오진이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병리적 판단이 다소 달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점을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처음엔 화가 났던 환자도 나중에는 어느 정도 수긍했다”고 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10-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잠옷소매 타고 목까지 타오른 불… 11회 수술로 이겨내[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길어야 수십 초. 사고는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2019년 9월이었다. 오전 6시경 주부 이현정 씨(53)는 부엌으로 향했다. 남편과 딸의 출근 시간에 맞춰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국을 데우기 위해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았다. 식탁 준비 등을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잠옷 자락이 휘날리며 가스 불을 스쳤다. 불이 잠옷에 올라탔다. 곧이어 이 씨의 어깨와 목을 넘어 머리까지 삽시간에 번져 갔다. 딸이 기겁해 비명을 질렀다. 이 씨가 다급하게 두 손으로 옷자락에 붙은 불을 껐다. 불은 금세 꺼졌다. 얼핏 보기에 큰 화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화상 치료 전문 A 병원으로 향했다. 이 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투병 기간이 그토록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3도 화상, 소독부터 ‘죽을 만큼의 고통’ 1도 화상일 때는 피부가 붉게 변한다. 화상 부위가 따끔따끔하다. 물집은 별로 생기지 않는다. 햇볕이 강할 때도 1도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증세가 가볍다면 해당 부위를 식혀 주고 보습제를 바르는 것으로 어느 정도 처치를 할 수 있다. 증세가 심하면 진통제를 먹는 것으로 치료될 때가 많다. 2도 화상은 표피 안쪽 진피층까지 손상된 상태다. 물집이 여러 개 잡힐 때가 많다. 진피층 깊은 곳까지 손상됐다면 심부 2도 화상 진단을 받는다. 피부 상태가 상당히 나빠진다. 물집이 터지면서 얼룩덜룩한 모양새가 된다. 이 씨는 A 병원에서 심부 2도 화상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부상 정도는 더 심했다. 나중에 이 씨의 추가 수술을 담당한 김연환 한양대병원 성형외과 교수(재건복원센터장)는 “이 씨는 3도 화상에 더 가까웠다”고 말했다. 3도 화상은 진피층을 넘어 피하 지방층까지 손상된 상태다. 피부 이식이 필요할 때가 많다. 이 씨는 3도 화상에 준해 치료를 받았다. A 병원 진단 결과 화상은 옆구리부터 어깨, 목까지 광범위했다. 물집도 심하게 잡혀 있었다. 피부 이식 수술을 당장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술을 진행하려면 물집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딱지가 생겨야 한다. 좀처럼 상처 부위는 단단해지지 않았고 흐물거렸다. 이 때문에 입원 초기에는 상처 부위를 소독(드레싱)하기만 했다. 거즈를 떼고 붙일 때마다 비명이 절로 나왔다. 통증은 드레싱을 끝낸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아팠다.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진통제를 달고 살았지만 통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이 씨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든 시기였다. 정말 치료를 포기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두 손에도 화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병원에서 알게 됐다. 불을 끄려고 두 팔을 휘젓다가 화염에 노출된 것이다. 손에 입은 화상은 심하지 않아 머잖아 회복됐다. 사고 당시 연기를 삼키는 바람에 목구멍이 막혀 한동안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이 또한 곧 회복됐지만 이 씨의 ‘고통 지수’는 점점 커져만 갔다. ● 3회의 수술에도 큰 호전 없어 이 씨는 3개월 동안 A 병원에 입원했다. 어느 정도 피부가 안정되자 피부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상처 부위가 워낙 커서 수술은 두 차례 했다. 1차 수술은 입원 한 달 후인 10월, 2차 수술은 11월에 시행됐다. 명함보다 얇은 두께로 허벅지 피부를 절개해 어깨와 목에 이식했다. 수술은 잘 된 것 같았다. 상처에서 진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염증 악화를 막은 데는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목과 어깨 주변 관절 및 근육이 위축되고 움직이는 범위가 줄어드는 구축 증세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목 근육이 약해져 목이 자꾸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그때마다 당김 현상이 심했다. 두 차례 수술 후에도 구축 증세는 그대로였고 통증은 여전했다. 수술 부위는 얼룩덜룩했고 흉터로 가득 찼다. 이 씨는 “수술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내 몸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12월 이 씨는 퇴원했다. 외래 진료를 이어갔지만 믿음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이 씨는 다른 병원을 물색했다. 2020년 2월, 이 씨는 B 병원에서 다시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번에는 머리 뒤쪽 피부를 떼어 내 이식했다. 3회의 피부 이식 수술 후 의료진은 더 이상 치료법이 없다고 말했다. 재건 수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을 뿐, 구체적인 방법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씨는 열감이 느껴지는 수술 부위를 얼음찜질할 뿐이었다. 뭘 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는 깊어졌다. 흉터가 보일까 봐 한여름에도 외출할 때 스카프를 둘렀다. 온몸이 수술 상처로 가득해 대중목욕탕에는 가지도 못했다. 점점 더 우울해졌다. 그런 이 씨를 위로하기 위해 남편이 벚꽃 거리로 데려갔다. 팔과 목이 드러난 예쁜 옷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에 시선이 머물렀다.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이 씨는 “처음 3개월은 그래도 회복될 것이란 희망이 있었는데, 이 무렵에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 ‘유리피판술’ 시행 후 확 달라져 2020년 4월, 이 씨는 한양대병원을 찾았다. 큰 기대감은 없었다. 그러다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이 씨에게 “흉터를 더 줄이고 구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정말로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피부만 이식한 앞선 세 차례 수술은 화상 치료의 대표 방식이다. 다만 이 씨는 화상 범위가 넓고 깊어, 피부 이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해당 부위 조직을 되살리는 재건 수술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이때 김 교수가 제안한 것이 ‘유리피판술’이었다. 단순히 표피 조직만 이식하는 게 아니라 진피층과 피하지방, 혈관 같은 복합조직을 한꺼번에 이식해 잘 정착하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구축 증세가 심한 목 부위부터 유리피판술을 진행했다. 왼쪽 옆구리에서 복합조직을 떼어 내 오른쪽 목에 이식했다. 옆구리에는 허벅지에서 떼어낸 조직을 채워 넣었다. 이런 수술은 보통 8시간 남짓 걸린다. 이 수술을 전문적으로 시행하는 김 교수의 경우 3시간 정도 소요됐다. 목 부위 구축 증세는 크게 개선됐다. 이어 미용 목적이 가미된 수술을 3회 더 진행했다. 일종의 미세 조정 수술에 해당한다. 턱선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귀 뒤쪽에서 피부를 떼어 내 이식했다. 다음에는 흉터가 덜 보이도록 지그재그로 성형 수술을 했다. 마지막으로 이식받은 부위가 두툼해진 걸 해결하기 위해 지방층을 제거하는 수술도 시행했다. 그해 12월에는 어깨 부위 구축 증세를 해결하기 위해 2차 유리피판술을 시행했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복합조직을 떼어 내 어깨에 이식했다. 마찬가지로 옆구리에는 허벅지 피부를 이식했다. 이후로는 1차 유리피판술과 비슷한 절차로 미세 조정 수술을 3차례 진행했다. 이 모든 수술은 지난해 11월 끝났다. 사고 발생 5년 만이었다. 김 교수는 “관절이 상했다면 더 큰 문제가 있었을 텐데, 다행히 관절은 다치지 않은 상태였다. 덕분에 모든 수술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이제 웃을 수 있어요”이 씨는 지난해 11월 이후로는 매달 1회 병원을 찾아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다른 부작용은 없는지를 살핀다. 지금 상태는 어떨까. 목과 어깨에는 당기는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다. 궂은 날씨에는 증세가 더 심해진다. 그래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운 여름에도 목에 둘러야 했던 스카프와는 이별했다. 수술 흉터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졌다. 가족도 안정을 되찾았다. 이 씨의 우울한 느낌도 줄어들었다. 비로소 웃을 수 있게 됐다. 이 씨는 “사고 전으로 100%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80% 이상 만족한다. 의료진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수술 과정에서 생긴 흉터는 추가 재건 성형으로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김 교수는 “상처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만족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 자존심 회복과 심리적 안정을 위해 재건 성형이 필요한 경우는 상당히 많다. 다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비가 다소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사고는 이 씨의 성격도 바꿨다. 가스 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안전에 대한 경각심도 커졌다. 모든 화구를 인덕션으로 바꿨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스 다룰 때 특히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잠옷이나 펑퍼짐한 옷을 입고 주방 불 앞에 서지 말라는 것이다. 옷자락이 살짝만 휘날려도 불에 닿을 수 있고, 순식간에 불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진료 현장에서 보면 얼굴 주변 화상 사고 상당수가 가스 불에 의한 것이었다”며 “이런 화상의 경우 처음에는 상처 부위가 살짝 붉어 보이기만 하지만 점점 깊어져 치료가 어려워지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화상 사고는 미리 막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10-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온실 자율주행 로봇 개발 ‘아이오크롭스’ 농식품 창업콘테스트 대상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이 주관한 ‘2025 농식품 창업콘테스트’에서 인공지능(AI) 기반 온실 자율주행 로봇을 개발한 ‘아이오크롭스’가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결선 및 시상식은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 롯데중앙연구소 샤롯데홀에서 심사위원, 국민평가단, 후원사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AI 기술로 농업생산 자동화를 추구하는 아이오크롭스는 AI 기반 온실용 자율주행 로봇 ‘헤르마이’를 개발했다. 헤르마이는 온실 내 병해충이 발생하기 전 미리 살피고 관리하는 예찰 및 방제, 수확 등의 농작업을 수행한다. 농식품 창업콘테스트는 올해로 11주년을 맞았다. △농식품 분야의 우수 기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유망 창업가를 발굴하고 △홍보와 투자 유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15년 처음 열렸으며 이후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대상과 함께 상금 5000만 원을 받은 아이오크롭스는 AI 기반으로 주요 농작물을 자동화하는 스마트팜 솔루션을 제공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올해 콘테스트에는 570개 팀이 지원했다. 예선과 본선을 거쳐 10개 팀이 최종 결선 무대에 올랐다. 이번 평가에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 외에 국민평가단도 참여했다.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은 위즈팜(AI 한우 온라인 거래·스마트 경매 시스템 포켓카우 개발)이 받았다. 우수상(장관상)은 시그널케어(친환경 곤충 단백질 등 미생물 발효 기술 기반 업사이클링 대체 발효단백질 원료 프로퓨전 개발)·토포랩(식물세포 배양 기술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의료용 대마 CBD 대량 생산)이 수상했다. 특별상(청년프론티어상)은 리하베스트(탄소 중립형 친환경 업사이클링을 통한 대체 원료 리너지 파우더 개발)가, 장려상(원장상)은 딥플랜트(AI 분석과 혁신기술로 육류의 맛과 품질을 향상시키는 딥에이징 시스템 개발)·다름달음(건강 기능성 첨가물 및 맛과 향을 주입한 과일 등 농식품 생산 및 공급)·솔붐(곤충병원성 진균 대량생산 액상 배양 기술을 이용한 친환경 방제 솔루션 개발)·퓨처센스(식품업계 디지털 전환을 위한 재고와 로스율 관리 및 식품이력추적 솔루션 제공 시스템 Food4Chain)·와이펫(스캔 한 번으로 체온 등 건강 측정 가능한 반려동물 내장칩 및 헬스케어 플랫폼) 등이 받았다. 수상 기업에는 총 1억2000만 원 규모의 상금이 수여됐다. 김정욱 농림축산식품부 농식품혁신정책관 국장은 “정부는 창업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세계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창업 지원, 규제 개선, 투자, 판로 지원 등 정책적 뒷받침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10-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중년보다 위험한 청년 당뇨 급증… 체중부터 줄여라”[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김정철 씨(가명)는 대학교 연구원이던 30대 초반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당뇨병에 걸린 사실조차 몰랐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이었다. 밤늦게까지 일하다 허기가 지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고, 콜라도 많이 마셨다. 체중은 무려 20kg가량 불어났다. 어느 날부터 이유 없이 체중이 빠졌다. 몸이 피곤했고, 기운도 없어졌다. 눈앞도 흐릿해졌다. 김 씨는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래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만 끝내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얼마 후 시행한 혈액 검사에서 공복혈당이 250㎎/dL, 당화혈색소 13.0%로 나타났다. 정상 기준(공복혈당 126㎎/dL 미만, 당화혈색소 4.0∼6.0%)을 훨씬 초과한 것. 김 씨는 이미 상당히 병이 진행된 당뇨병 환자였다. 곽수헌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가 치료를 담당했다. 초기엔 효과가 좋았다. 6개월 만에 당화혈색소 수치가 6.5%로 낮아졌다. 하지만 김 씨가 대학교수가 되고 바빠지면서 병이 다시 악화했다. 진료를 거를수록 혈당 수치는 급속도로 치솟았다. 일종의 ‘재발’인 셈. 곽 교수는 “김 씨가 나중에 다시 치료받으면서 다행히 당화혈색소가 6.5% 수준으로 유지됐다”라며 “최근 급증하는 20대와 30대 청년 당뇨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 폭증하는 젊은 당뇨, 왜? 당뇨병은 제1형, 제2형, 유전성 등으로 구분한다. 가장 흔한 게 인슐린 기능이 떨어져 혈당 조절이 어려운 제2형 당뇨병이다. 제2형 당뇨병은 열량 과잉 섭취와 운동 부족, 과체중과 비만 등 여러 이유로 발생한다. 청년 당뇨의 경우 이 중에서도 과체중과 비만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중년 당뇨와 가장 다른 부분이다. 보통 중년 당뇨의 경우 30%는 ‘마른 당뇨’다. 하지만 청년 당뇨의 마른 당뇨 비율은 10%에 미치지 못하며, 이 경우 제1형이거나 유전성일 확률이 높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대한당뇨병학회 조사(2019∼2022년)에 따르면 19∼39세 청년의 2%인 31만 명이 당뇨병 환자였다. 당뇨 전 단계는 303만 명(22%)에 이르렀다. 추가로 청년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비만 여부를 조사했더니 5%만이 정상 범위에 있었다. 8%는 과체중, 87%는 비만이었다. 곽 교수는 “95%가 비만과 관련이 있는 셈이다. 비만을 잡지 못하면 청년 당뇨는 잡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임신 전 당뇨 환자도 늘고 있다. 30대 초반의 진미연 씨(가명)는 임신에 어려움을 겪어 병원을 찾았다. 검사 도중 당화혈색소가 7.2%라는 결과가 나왔다. 어느새 당뇨병에 걸린 것. 돌이켜 보면 진 씨 또한 배달 음식을 즐겼고, 직장 회식이 잦았으며, 가공식품과 탄산음료를 많이 마셨다. 게다가 가족력도 있었다. 안전한 임신을 위해 약을 따로 쓰지는 않고 혈당 관리에 돌입했다. 식사량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면서 체중을 줄였다. 꾸준히 노력한 끝에 당화혈색소가 6.0%로 떨어졌다. 이후 임신과 출산에 성공했다. 곽 교수는 “취업에 임신 문제까지 겹치면서 스트레스도 더 커진다. 이런 여러 이유로 여성 청년 당뇨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젊은 당뇨가 위험한 이유 중년 당뇨에 비해 청년 당뇨는 발견 자체가 늦은 편이다. 학업, 취업, 결혼 등 인생을 좌우하는 일에 전념하느라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스트레스도 더 크다. 게다가 젊다는 이유로 병을 알리기도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곽 교수는 “주변으로부터 ‘넌 왜 그렇게 살이 쩠어?’라거나 ‘젊은 나이에 어쩌다 당뇨병에 걸렸어?’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감추는 환자들이 꽤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병을 키우기만 하는 청년 환자가 적잖다. 대한당뇨병학회 조사에 따르면 실제 진단을 받은 청년 당뇨병 환자는 절반에 못 미치는 43% 정도다. 치료하는 비율은 더 낮아 35%에 불과하다. 곽 교수는 “동료들의 배려가 절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병원 찾는 시기가 늦어지면 그만큼 치료도 어려워진다. 합병증도 늘어난다. 청년 당뇨 환자의 35%는 고혈압, 75%는 고지혈증의 합병증에 걸린다. 두 가지 합병증을 모두 갖는 비율도 27%다. 청년 당뇨의 가장 큰 위험이 여기에 있다. 곽 교수는 “청년 당뇨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점점 인슐린 조절이 어려워진다. 투입하는 약물도 점점 늘어나고 나중에는 주사까지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당뇨병을 앓는 기간도 길어지고, 치명적인 합병증 위험도 커진다. 30대 중반에 당뇨병 진단을 받은 강철승 씨(가명)의 경우 고혈압과 고지혈증 합병증이 생겼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고, 체중조절과 금연에도 실패했다. 그렇게 10년 이상이 흘렀다. 40대 후반에 회사 야유회를 다녀온 뒤 3개의 관상동맥이 모두 막힌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조치는 잘 됐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아야 했던 것이다.● 방심 금물, 곧바로 치료해야 청년 당뇨의 경우 꾸준히 치료하면 ‘정상’ 수준을 회복할 확률이 중년보다 높다. 곽 교수는 “청년 당뇨 초기에 발견하고 적극 치료하면서 체중을 15% 이상만 줄이면 5년 이내에 혈당을 정상 수준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당뇨약도 끊을 수 있다. 병을 일찍 발견하는 게 관건이다.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는 증세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위험군의 경우 정기 검사가 필요하다. 곽 교수는 “대한당뇨병학회는 19세 이상 성인으로, 가족력이 있고 과체중 단계를 넘어섰다면 매년 1회 당뇨병 검사를 할 것을 권한다”라고 말했다. 병이 진행되면 증세가 나타난다.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단 많이 마시고(다음), 많이 먹으며(다식), 소변을 자주 많이 보는(다뇨), 이른바 3다(多) 증세가 나타난다. 혈당이 소변으로 자주 배출되고, 목이 마르니 물을 많이 마시며, 당이 에너지로 제대로 전환되지 않아 허기가 지는 것이다. 이와 함께 체중이 빠지고 피로감이 심해질 수 있다. 곽 교수는 “이 정도면 심각한 단계다. 반드시 내분비내과 전문의를 찾아 상담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청년 당뇨로 진단되면 우선 제1형, 제2형, 유전성 등 종류를 구분한다. 치료법도 그에 따라 다르다. 대표적인 제2형의 경우 당뇨병에 대한 기본 교육과 함께 식습관 분석과 교정을 진행한다. 동시에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 곽 교수는 “혈당만 조절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큰 오해다. 궁극적으로는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치료하는 병이다”라고 말했다. ● 야식-단 음료 피하고 금연해야청년 당뇨의 절반 가까이는 체중 증가에서 병이 비롯된다. 따라서 과체중을 방지하는 게 최선이다. 곽 교수는 이를 위해 ‘접시 식사법’을 제안했다. 식사할 때 접시 한 그릇에 모든 음식을 놓은 방법이다. 접시의 절반은 푸른 채소로 채운다. 4분의 1은 곡물류인데, 기왕이면 쌀밥보다는 현미와 같은 잡곡이 낫다. 나머지 4분의 1에는 단백질과 지방 음식을 놓는다. 곽 교수는 “이런 식사법을 통해 열량을 줄이고, 영양소를 균형 있게 섭취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접시 식사법이 어렵다면 어떻게 할까. 곽 교수는 전통적인 한식 식단을 추천했다. 절대 피해야 할 음식도 알아두자. 단순당이 많은 가공식품이나 콜라, 사이다, 주스처럼 액상과당이 많은 음료는 피해야 한다. 배달 음식은 비만의 주범 중 하나다. 대폭 줄이는 게 현명하다. 운동도 필수다. 중년의 경우에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 하지만 20대와 30대는 젊기에 굳이 종목을 가릴 필요는 없다. 좋아하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종목을 즐기면 된다. 단, 운동 강도와 시간은 중요하다. 곽 교수는 “땀이 나고 숨이 찬 정도의 중등도 강도로 매일 30분 이상 5일(총 150분) 이상만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마저도 시간이 나지 않는다면 주말에 각각 40분과 35분씩(총 75분 이상) 땀이 많이 나고 대화하기 힘든 고강도로 운동을 해 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근력 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고위험자라면 금연은 필수다. 청년 당뇨병 환자 중 34%는 흡연자였고, 16%는 주 2회 이상 1회 7잔 이상의 술을 마시는 고위험 음주자였다. 이 수치는 고령 당뇨병 환자의 3배에 이른다. 특히 흡연할 때 당뇨 합병증이 더 일찍 시작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9-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류마티스 관절염, ‘골든타임’만 지키면 완치 가능”[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50대 여성 이재순 씨(가명)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다. 손발 관절이 변형됐다. 손가락 마디가 휘어 단추를 끼우거나 수저 들기가 어려워졌다. 발가락이 뒤틀려 걸을 때 휘청였다. 무릎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았다. 그러다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병원에 갔더니 심혈관이 파열됐다고 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동맥경화에 이어 심혈관질환으로 악화한 것. 이 씨가 더 일찍 류마티스 관절염을 발견하고 치료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김완욱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 내과 교수는 “중증 합병증에 걸리지 않고 완치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조기에 발견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는다면 50%까지는 완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류마티스 관절염은 완치가 힘든 자가 면역 질환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김 교수 말처럼 ‘완치 가능한 질병’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질병, 정확히 알자 우선 류마티스 관절염에 대해 자세히 알아 두자. 똑같은 관절염이지만 퇴행성 관절염과는 병의 원인, 증세, 발병 양상, 치료법이 모두 다르다.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을 많이 사용한 결과 발생한다. 고령, 비만 등으로 연골이 손상된다. 60대 이후 병을 얻는 사람이 많다. 반면 류마티스 관절염은 면역 시스템 오작동으로 발생한다. 자가항체가 관절을 ‘적’으로 인식해 공격한다. 관절 주변 활막에 염증이 생긴다. 염증은 연골과 뼈를 파괴한다.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면 병이 악화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40대와 50대에서 많이 발생하며 30대 환자도 드물지 않다. 환자의 90%가 여성이다. 김 교수는 “여성 환자가 특히 많은 데는 여성호르몬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출산과 폐경처럼 여성호르몬이 변화하는 시기에 발병 비율이 높기 때문. 통증은 가장 대표적인 증세인데, 양상은 좀 다르다.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면 송곳으로 콕콕 찌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진다. 관절이 붓고 빨개지며 열이 나거나 물이 차기도 한다. 반면 퇴행성일 때는 깊고 묵직한 통증이 넓게 나타난다. 김 교수는 “단지 관절 부위가 아프기만 하면 관절통이지만, 약간 말랑말랑하고 부은 상태에서 통증이 심한 상태가 6주 이상 지속된다면 류마티스 관절염일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퇴행성일 때는 무릎, 손가락 같은 여러 부위에서 통증이 나타난다. 류마티스 관절염일 때는 주로 손가락이나 손등에 많이 나타난다. 통증 양상도 다르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자고 일어났을 때 손가락이 뻣뻣한 강직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증세는 1시간 이상 지속되며 수분이 빠져나가는 오후에는 괜찮아진다. 퇴행성일 때도 강직 현상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10분 이내에 사라진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손가락 가운데 관절, 퇴행성은 손끝 첫째 관절에서 증세가 나타나는 것도 다른 점이다. ● 방치하면 폐, 심장도 공격 두 병 모두 통증으로 시작하지만 이후 과정은 달라진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2년 이내에 관절 변형으로 이어진다. 관절이 녹기 시작하면 모양이 뒤틀려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게다가 전신에 염증을 유발한다. 심장, 폐를 비롯한 여러 장기를 공격해 합병증을 일으킨다.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의 60∼70%가 심혈관계 질환 합병증에 걸린다. 폐 섬유화를 비롯해 폐 질환에 걸릴 확률도 40∼60% 높아진다. 뼈엉성증(골다공증), 염증성 질환, 고지혈, 당뇨병에 걸릴 확률도 크게 높아진다. 평균 수명도 6∼7년 짧아진다. 김 교수는 “보통 5∼10년간 병을 방치하면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런 단계에 이르기 전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병의 전 단계, 혹은 초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자기 관절을 자가항체가 공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다만 초기에는 자가항체가 있다고 해서 모두 환자가 되지는 않는다. 보통 60%에서만 증세가 나타나며 40%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 김 교수는 바로 이 단계가 ‘치료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병이 완전히 뿌리내리기 전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40%는 완치한다. 최근에는 50%까지 성적이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많은 환자가 병이 악화한 후에 병원을 찾는다. 무릎, 어깨, 턱 같은 여러 부위에서 증세가 나타나는 데도 인식하지 못하거나 통풍 같은 질병으로 오해한다. 소염제를 잔뜩 먹고 증세가 개선되면 흐지부지 넘어간다. 이런 식으로 1년 정도 흐르면 류마티스 관절염은 크게 나빠진다. 이때 치료를 시작하면 30% 정도는 아예 완치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김 교수는 “손가락을 비롯해 증세는 어떻게든 나타난다. 그것을 단순 통증이나 노화라고 무시하면 치료는 어려워진다. 늘 주의를 기울이고 이상한 점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에 가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 생활하면서 예방법 실천류마티스 관절염은 유전, 환경 요인, 면역 체계 교란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특히 염두에 둬야 할 요인들을 알아 두자. 첫째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자 면역 체계를 교란하는 주범이다. 의도적으로라도 스트레스를 줄이려 노력해야 한다. 둘째, 흡연이다. 최근 연구 결과 담배를 피우면 류마티스 관절염 발병 위험이 3배 이상으로 뛰었다. 류마티스 유전자가 있는 사람이 흡연한다면 이 확률은 2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금연은 필수다. 셋째 치주염, 즉 충치를 조심해야 한다. 충치균은 치아만 부식시키는 게 아니다. 자가항체가 만들어지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충치가 생기면 그만큼 류마티스 관절염이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는 뜻이다. 정기적으로 치과에서 검사하는 게 좋다. 김 교수는 “스트레스, 흡연, 충치는 류마티스 관절염의 3대 위험 요소다. 늘 신경 쓰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와 세균 감염도 원인이다. 실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후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가 25%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손 씻기 같은 개인 위생 관리가 필요하다. 비만도 위험 인자다. 살이 많이 찌면 관절이 더 상하며 비만 호르몬은 염증을 증폭시킨다. 적절한 체중 관리가 필요하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자가항체가 더 잘생긴다. 콜레스테롤 관리도 해야 한다. 운동은 필수다. 체중을 관리하는 것 외에도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근력 운동을 해 줘야 관절이 튼튼해진다. 김 교수는 매일 1시간씩 일주일에 4회 이상 저강도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할 것을 권했다. 다만 붓고 통증이 심할 때는 운동 부작용이 크므로 쉬는 게 좋다. 짠 음식은 피해야 한다. 최근 연구 결과 짠 음식을 먹으면 림프구를 증폭시켜 면역 시스템을 교란할 수 있다는 게 확인됐다. 싱겁게 먹도록 노력해야 한다. ● 표적치료제로 완치율 높여 병 진단에 활용되는 기본적인 방법은 혈액검사다. 이를 통해 병의 원인인 자가항체가 있는지를 검사한다. 여기에 환자 증세를 반영해 의사가 진단을 내린다. 관절 초음파 검사를 시행하면 더 명확하게 병을 진단할 수 있다. 확진이 되면 항류마티스제를 투여한다. 관절 변형을 늦추고 합병증 위험을 낮추는 약이다. 여러 약물을 혼합해 투입하는 ‘칵테일’ 방식이 흔히 쓰인다. 이 방식이 효과를 보지 못하면 표적치료제를 쓴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일으키는 핵심 표적을 겨냥해 차단하는 약물이다. 생물학적 제재로 돼 있어 주사로 투입한다. 김 교수는 “생물학적 제제로 된 표적치료제가 최근 20년 동안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치료 효과는 뛰어나고 부작용은 적다는 것. 처음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6개월 동안 2가지 이상의 항류마티스제를 써도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써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퇴행성 관절염의 경우 수술로 치료하기도 하지만 류마티스 관절염은 수술적 방법을 널리 쓰지 않는다. 수술로 염증이 있는 활막 부위를 제거해도 재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관절로 침범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일부 부위만 수술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김 교수는 “좋은 신약이 속속 나오고 있어 약물 치료만으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약물을 거르면 안 되며, 초기부터 제대로 약물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계절적으로는 습하고 기압이 낮은 장마철이나 겨울철에 병이 더 악화한다. 반면 건조하고 따뜻할 때는 증세가 조금은 수그러든다. 지금부터 가을까지가 치료하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란 뜻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8-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심근경색? 심장도 재활해야 회복 앞당기고 재발 낮춥니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김정언 씨(50)가 가슴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건 2022년이었다. 살짝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좀 심할 땐 가슴이 화끈거렸고, 더 심하면 바싹바싹 타는 듯한 작열감이 느껴졌다. 김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역류성 식도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해 8월 동네 내과에 갔다. 의사도 역류성 식도염 같다고 했다. 처방받은 약을 먹었더니 증세가 조금은 누그러든 것 같았다. 다만 완전하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가슴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김 씨는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년 4개월이 지났다. 2023년 12월, 김 씨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성지동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2022년 여름의 증세가 협심증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씨는 왜 병의 진행을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 운동 안 하면 협심증 악화 모를 수도 당시 김 씨는 운동을 거의 못하고 있었다. 20대 때까지만 해도 보디빌딩 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운동을 즐겼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여유가 사라졌다. 나중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맡다 보니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했다. 밤에는 따로 영업 일도 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게다가 햄버거와 치킨, 콜라를 아주 좋아했다. 30대 초반에 62∼63kg이던 체중은 한때 95kg까지 늘어났다. 2018년에 결혼하면서 체중을 70kg대까지 줄이긴 했지만, 꽤 오랜 기간 비만 상태였던 것. 비만과 운동 부족, 잦은 술자리는 심장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다. 혈압은 정상이었지만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았고, 약한 당뇨도 있었다. 성 교수는 “만약에 김 씨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면 협심증 초기 단계에서 병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협심증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일부가 막힌 병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혈관 면적 70% 내외가 막히면 가슴 통증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협심증이 심해지면 가만히 있어도 흉통이 느껴지지만, 초기에는 움직일 때만 이 증세가 나타난다. 성 교수는 “김 씨가 계속 운동을 했다면 협심증 증세를 초기에 발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앉아만 있었기에 병의 진행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단계를 모두 거치면 급성 심근경색으로 악화할 수 있다.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혔기에 혈액을 공급받지 못한 심장 근육이 죽는다. 치명적인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가슴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협심증부터 의심해야 한다. 통증 양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성 교수는 “가슴이 조이거나 터질 것 같은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고, 명치 부위가 심하게 아플 수도 있다. 심지어 어깨가 아플 수도 있다. 이런 통증이 지속되면 빨리 병원에 가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 씨는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덴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 독감 치료하다 심근경색 발견 2023년 12월, 김 씨는 갑작스레 고열에 시달렸다. 가슴이 너무 아프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요란하게 뛰었다. 잠시 괜찮았다가 얼마 후 다시 아픈 상황이 반복됐다. 맥박은 1분에 140회를 넘겼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진통제를 먹고 버텼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잠을 자다 오전 1시에 깼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의료진은 독감 진단을 내렸다. 신속한 대처로 효과가 나타났다. 4시간 후에는 열이 떨어졌다. 다만 흉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의료진은 심장질환을 의심했다. 심근 효소 검사를 시행했다. 심근 효소는 급성 심근경색이 발병하면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검사 결과 효소 수치가 정상 범위를 초과했다. 의료진은 입원을 연장했다. 성 교수는 “의료진은 크게 세 가지를 본다. 첫째가 증세, 둘째 심근 효소, 셋째 심전도 검사 결과다. 이 셋 중 두 가지 이상에서 심근경색이 의심된다면 그에 맞는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의 경우 심전도 검사 결과는 모호했다. 다만 증세가 나타났고 검사할 때마다 심근 효소 수치가 조금씩 올라갔기 때문에 심근경색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혹시 독감이 심근경색을 유발한 건 아닐까. 성 교수는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관상동맥이 어느 정도 막힌 상황에서 독감이 생기면 염증 반응으로 인해 혈액이 더 응고되면서 혈전이 더 잘 만들어질 수 있다. 이튿날 아침에는 맥박이 160까지 올라갔다. 심근 효소 수치는 또 높아졌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의료진은 혈관 내부를 보기 위한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했다. 예상대로 혈관이 막혀 있었다. 의료진은 곧바로 막힌 혈관 부위를 넓히는 시술(관상동맥 중재술)을 시행했다. 이때는 풍선을 사용해 막힌 혈관을 넓혔다. 다만 막힌 혈관 모두를 뚫지는 못했다. 의료진은 우선 급한 부위부터 처치했고, 6개월 후 2차 스텐트 시술을 하기로 했다.● “36회 심장 재활훈련 모두 끝내” 일단 위기를 넘겼지만 치료는 끝나지 않았다. 성 교수는 “관상동맥 중재술은 급성 심근경색 치료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급성기 이후에 심장 재활 치료를 이어가야 재발을 막고 환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도 심장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보통은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4∼6주 후에 재활 훈련을 시작한다. 매주 3회씩 12주에 걸쳐 36회 병원을 찾아 훈련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환자들이 이를 따르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심장 재활 훈련을 완수하는 환자는 전체 심근경색 환자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김 씨는 중도 포기하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병원을 찾았다.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36회 과정을 모두 끝낼 수 있었다. 재활 훈련은 의료진과 물리치료사 감독하에 진행된다. 환자 건강 상태에 맞게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유연성 운동의 강도와 시간을 정한다. 가슴에 장비를 부착하고 모니터를 통해 심전도와 혈압을 점검하면서 운동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김 씨는 유산소 운동으로 트레드밀을 걷거나 실내용 자전거를 탔다. 처음에는 아주 짧은 시간만 걸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30분 동안 이어서 운동할 수 있게 됐다. 운동 강도는 ‘약간 힘든 정도’를 유지했다. 심박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최대 심박수 40∼60% 범위의 중강도 운동에 가깝다. 무거운 운동기구 대신 고무밴드나 가벼운 아령 같은 소도구를 사용해 근력 운동을 했다. 근력 운동은 일상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한다. 10∼15회씩 두세 세트를 진행했다. 유연성 운동은 주로 스트레칭과 호흡법으로 구성돼 운동 후 피로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 다시 스텐트 시술, 지금은 건강지난해 6월, 예정돼 있던 2차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이후 김 씨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계단을 오를 때 4개 층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2차 시술이 끝나고 2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운동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해 9월부터 느린 속도로 달리기를 시작했고, 10월에는 10분 이상 달릴 수 있게 됐다. 성 교수는 “심장 재활 훈련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차 시술 이후에 지속적으로 재활 훈련을 했기에 2차 스텐트 시술 후에 회복이 빨라졌다는 뜻이다. 단순히 스텐트 시술만으로는 이처럼 빨리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 김 씨도 “재활 훈련의 기여도가 90%는 넘을 것”이라며 심근경색 환자들에게 이 훈련을 적극 추천했다. 이제 김 씨는 스스로 재활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달리는 재미에 푹 빠져 아침저녁으로 5㎞씩, 시속 6∼8km로 달린다. 매주 나흘 정도는 런지나 스쾃 같은 근력 운동도 한다. 물론 식단도 바꿨다. 햄버거와 콜라는 끊었다. 술은 아주 가끔, 최소한만 마신다. 김 씨는 건강에 만족하고 있을까. 그는 “내 건강 상태에 점수를 준다면 10점 만점에 8.5점 이상이다. 건강 능력치가 확실히 올라갔다. 이제 건강한 삶을 이어갈 것”이라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8-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목요일은 토르의 날? 일상에 신화가 녹아 있었네!”[브레인 아카데미 플러스]

    《궁금하다 생각했지만 그냥 지나쳤던, 하지만 알아두면 분명 유익한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일 수도 있고 최신 트렌드일 수도 있죠. 동아일보는 과학, 인문, 예술,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오∼ 이런 게 있었어?’라고 무릎을 칠 만한 이야기들을 매 주말 연재합니다. 이번주는 신화편입니다.》극한 더위와 호우가 반복되고 있다.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고 있고, 태평양 도서 국가들은 수몰 위기에 놓였다. 기후 위기로 수억 명이 삶의 터전을 잃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최근 나왔다. 자연 파괴와 성장 만능주의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신화는 문학, 예술, 철학을 비롯한 삶의 전 분야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 때문에 인류 문명의 뿌리로 여겨진다. 바로 그 신화에서 힌트를 찾아보자.● “자연을 경외하라” 고대 인류는 자연을 경외했다. 자연을 노하게 하면 벌받을 것이라 믿었다. 우리나라, 유럽, 중국, 인도, 중동 등 여러 지역에 홍수 신화가 전해 내려오는 것이 그 증거다. 신은 오만한 인간을 심판했다. 인간은 겸손을 배웠다. 세상은 혼돈에서 시작됐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그것을 ‘카오스’라 불렀다. 카오스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태동했다. 가이아가 만물을 낳으면서 세상 질서가 갖춰져 갔다.북유럽 신화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암흑, ‘긴눙가가프(심연)’ 시대가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미르’라는 거인이 탄생했다. ‘오딘’ 형제는 이미르를 죽이고 시신을 재료 삼아 세상을 창조했다. 이미르의 몸통으로는 대지를, 머리털로는 숲을, 이빨로는 바위와 돌을 만들었다. 거인의 머리뼈는 하늘이 됐고 피어오른 불똥은 태양과 달, 별이 됐다. 피는 바다가 돼 흘러갔다. 중국 신화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반고’라는 거인이 알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1만8000년 만에 깨어났다. 알이 깨지면서 맑은 기운은 위로, 탁한 기운은 아래로 흘러 각각 하늘과 땅이 됐다. 반고는 발로 땅을 딛고 머리로 하늘을 받쳤다. 하늘은 매일 1장(3m)씩 높아졌고, 땅은 1장씩 두꺼워졌다. 반고도 덩달아 1장씩 커졌다. 그렇게 다시 1만8000년이 흘렀다. 하늘과 땅 사이 거리가 9만 리가 됐다. “앞길이 9만 리 같다”는 말은 이 신화에서 유래했다. 일을 마친 반고는 쓰러졌고, 시신은 해체됐다. 눈은 해와 달이 됐고, 숨결은 바람이 됐다. 살은 들판이 됐고, 피는 강물이 됐다. 북유럽 신화와 비슷한 결말이다. 압도적 거인은 자연을 상징한다. 인류는 자연과 공존하고, 때로는 투쟁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러면서도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았다.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 “미의 여신 원조는 인안나” 오늘날 튀르키예에 해당하는 소아시아 페니키아에 에우로페 공주가 살았다. 그리스 최고신 제우스가 한눈에 반했다. 그는 흰 소로 변신한 뒤 공주에게 다가갔다. 넋이 나간 듯 소를 바라보던 공주가 등에 올라탔다. 제우스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윽고 크레타섬에 정착했다. 유럽의 어원이 여기서 비롯됐다. 에우로페를 영어로 쓰면 ‘Europe’이다. 그리스에서 발행한 2유로 동전 앞면에 이 신화가 새겨져 있다. 크레타섬은 유럽 최초 문명인 미노스 문명이 태동한 지역이다. 에우로페는 소아시아에서 건너왔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 발생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신화는 문명과 마찬가지로 머물지 않고 이동했다. 가령 미의 여신 대명사는 ‘비너스’다. 로마인들이 그리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바꿔 부른 이름이다. 비너스는 금성을 상징했다. 금성을 상징하는 미의 여신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태동한 수메르 지역에도 있었다. 바로 ‘인안나(이난나)’다. 굳이 따지자면 인안나는 ‘원조’ 미의 여신이자 풍요의 여신이다. 바빌론이 수메르를 지배한 후 인안나 이름은 ‘이슈타르’로 바뀌었지만, 속성은 그대로다. 이집트에서도 인안나와 닮은 여신이 존재한다. 하토르다. 하토르는 미의 여신이면서 사랑의 여신이다. 하토르는 전쟁의 신일 때는 무자비한 ‘세크메트’로 인격체가 바뀐다. 이집트 태양신은 오만방자한 인간을 멸종시키려 했다. 이 임무를 하토르가 받았다. 세크메트로 변신한 하토르는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태양신이 놀라 하토르를 달랬다. 이성을 잃은 하토르는 진정하지 못했다. 태양신은 강물에 맥주를 풀었다. 맥주를 마신 뒤에야 하토르가 진정됐다. 맥주의 유래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일대에서 맥주를 처음 마셨다는 역사적 사실이 신화에 반영됐다. 오늘날 서양 문화권에서 ‘바알’은 사탄이나 악마로 여겨진다. 하지만 바알은 중동에서 풍요의 신으로 인기를 끌었다. 성경에서 이단으로 묘사되는 바람에 이후 사탄의 이미지가 덧칠된 것. ● 현대인의 삶에 녹아있는 신화 수메르 사람은 1주일을 7일로 나눴다. 로마인은 신의 이름을 별과 행성에 붙였다. 가장 큰 목성은 주피터, 가장 예쁘다는 금성은 비너스라 불렀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 왕국의 시대가 열렸다. 게르만족은 요일에 자기들의 북유럽 신 이름을 붙였다. 다만 해와 달, 토성에서 비롯된 일요일과 월요일, 토요일은 그대로 뒀다.북유럽 최고신은 오딘이었다. 그는 ‘보덴(Woden)’이라고도 불렀다. 여기에서 수요일(Wednesday)이 태동했다. 최고의 전사이자 천둥의 신 ‘토르(Thor)’에서 목요일(Thursday)이 나왔다. 목요일은 ‘토르의 날’이 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북유럽 전쟁의 신 티르(Tyr)에서 화요일(Tuesday)이, 최고 여신 프리그(Frigg)에서 금요일(Friday)이 만들어졌다. 그리스 신화에서 으뜸 가는 낙원은 평화로운 사후 세계 ‘엘리시온’이다. 이 용어는 오늘날까지도 여러 지역에서 사용된다.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는 ‘엘리시온의 들판’이란 뜻이다.제우스 신은 인간과의 사이에서 헤라클레스를 낳았다.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신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최고 여신 헤라가 잠든 틈을 타서 몰래 그녀의 젖을 먹였다. 놀라 깬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뿌리칠 때 젖이 하늘로 퍼졌다. 이것이 은하수가 된 유래다. 은하수는 ‘the Milky Way’, 즉 ‘우유의 길’이다. 명품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 로고에는 ‘메두사’ 얼굴이 박혀 있다. 메두사를 보면 돌로 변하듯이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치명적인 이미지가 되길 바랐던 거다. 스타벅스 로고 속 인어는 ‘사이렌’이란 괴물이다. 사이렌은 항해자를 유혹해 파멸로 이끌었다. 한번 맛보면 빠져드는 음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승리 여신 ‘니케’에서 따왔다. ● 심리학에 담긴 그리스 신화 유아기 남자가 아버지를 경쟁자로 여기고 어머니에게 성적 애착을 갖는 심리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부른다. 테베 왕국 왕자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내용의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됐다. 그리스 신화의 여러 이야기가 심리학 용어로 쓰이고 있다. 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사령관 아가멤논이 승전한 후 금의환향했다. 하지만 그동안 바람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정부(情夫)와 함께 아가멤논을 죽여 버렸다. 딸 엘렉트라와 아들 오레스테스는 추방했다. 엘렉트라는 오레스테스를 부추겨 어머니를 죽이도록 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어린 딸이 어머니를 경쟁자로 여기고 아버지에게 애착을 갖는 심리를 ‘엘렉트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영웅 테세우스는 아마존족 여왕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아내가 죽자 ‘파이드라’라는 여성과 재혼했는데, 그녀는 테세우스 아들과 사랑에 빠졌다. 이 신화로부터 어머니가 아들에게 집착하는 ‘파이드라 콤플렉스’라는 용어가 나왔다. 자아도취를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남성이 외모에 집착하는 심리는 ‘아도니스 증후군’이다. 아도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표적 미남이다. 피그말리온은 최고의 조각가였다. 여자 인형을 만들어 놓고 사랑했다. 그 간절함에 감동한 아프로디테가 목각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피그말리온 효과’다.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존중하며 북돋워 준다면 실제로 긍정적 결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QR코드를 스캔하면 7일 채널A에서 방송된 브레인 아카데미 ‘미술편’을 볼 수 있습니다. ‘신화편’은 14일 오후 10시 방송됩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8-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궤양성 대장염 신약 속속 출시… 포기 안 하면 완치도 가능”[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이기영 씨(50)는 운동을 즐겼다. 19세 때부터 20년 넘게 헬스클럽에서 근력 운동을 했다. 30대 중반 이후에는 보디빌더 지역 대표로도 활동했다. 그 무렵에는 헬스클럽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권투를 배운 적도 있다. 물론 유산소 운동도 빠뜨리지 않았다. 주 2회 혹은 3회, 5∼10km를 달렸다. 산에도 자주 올랐다. 건강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다만,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이 딱 하나 있었다. 과도한 음주. 이 씨는 40대 초반이 될 때까지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업무를 위한 술자리가 많았지만, 그냥 술이 좋아 마실 때도 많았다. 일단 술자리가 시작되면 최소한 소주 3병에 맥주 3병 이상은 마셨다. 친구와 단둘이 소주 20병을 그 자리에서 비운 적도 있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에는 간혹 설사가 나왔다. 약한 강도의 치질까지 있어 아주 가끔은 피가 살짝 변에 섞여 나왔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술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증세는 곧 사라졌다. 그러다 2016년 11월, 증세가 악화하기 시작했다. ● 설사와 혈변, 잔변감이 특징 종전에는 술 마신 후 하루나 이틀 동안만 증세가 나타났다. 이 무렵부터는 증세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설사와 혈변을 속수무책으로 봤다. 일을 보고 나서도 잔변감이 무척 심했다. 갑자기 대변이 나올 것 같은 ‘급박변’ 증세도 생겼다. 잠을 자는 새벽에 갑자기 변이 마려워 일어나야 했다. 이러다 보니 하루 10∼15회는 화장실을 들락였다. 증세가 오래 지속되자 비로소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 씨는 동네 의원에 가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궤양성 대장염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에 가 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이 씨는 매일 20회 이상 설사와 혈변을 누는 고통을 치러야 했다. 이 씨는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예상한 대로 궤양성 대장염 진단이 떨어졌다. 면역체계가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일종으로, 치료가 쉽지 않은 난치성 질병이다. 대부분의 자가면역질환처럼 병의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씨 치료를 담당한 황성욱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은 30대와 40대에 많이 발병한다. 이 씨처럼 2주 이상 설사와 혈변, 급박변이 이어진다면 이 병을 의심해야 한다. 일찍 발견할수록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식습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황 교수는 “이 병을 악화하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기름지고 맵거나 튀긴 음식, 자극적인 음식이 70%를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 듣는 약 없어 입원과 퇴원 반복 황 교수는 일단 극심한 염증부터 잡기 위해 스테로이드 약물을 고용량으로 투입했다. 일반적으로 스테로이드 약은 염증을 신속하게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가 크다. 다만 장기간 고용량을 사용하면 신체 여러 장기가 손상되고 혈압과 혈당이 상승하며 면역 시스템 이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스테로이드 약은 기한을 정해 단기간 처방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씨는 중증 중에서도 중증이었다.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황 교수는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으로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장은 증세가 개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기간은 아주 짧았다. 2017년 1월, 이 씨는 증세가 다시 나타나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 2주 치료 후 증세가 호전되자 퇴원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증세가 악화해 입원했다. 이런 식으로 2018년 6월까지 이 씨는 모두 7회 입원해 2주씩 집중 치료를 받았다. 완벽한 치료가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뚜렷한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궤양성 대장염이라면 1차로 항염증제를 쓰고, 효과가 없으면 추가로 다른 대장염 치료제를 병행 투입한다. 그래도 효과가 없다면 마지막으로 면역을 억제하는 생물학 제제(製劑)를 쓴다. 이 씨도 똑같은 절차를 거쳤다. 당시 출시돼 있던 세 종류의 생물학 제제를 모두 써 봤지만 증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황 교수는 “이런 약은 환자의 70% 정도는 효과를 본다. 이 씨는 나머지 30%에 해당했다. 쓸 약이 더 이상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때문에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어쩔 수 없이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 입원 치료 중일 때는 몸이 편했다. 금식하면서 장을 쉬게 해 주고 영양 수액 주사를 맞았다. 스테로이드 처방이 염증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퇴원하면 한 달 만에 어김없이 증세가 악화했다. 그러면 다시 입원하는 삶이 반복됐다. 일상생활은 엉망이 돼 버렸다. 급박변 증세가 나타나면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처음에는 여벌 속옷을 가지고 다녔다. 얼마 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직접 운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다 급히 차를 세워 변을 보기도 했다. 차에 이동식 변기와 기저귀를 비치해 뒀다. 이 씨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도 했다. 건강한 사람의 변을 이식하면 궤양성 대장염이 나아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됐다. 집에서 어린 아들의 변을 희석해 좌약 하듯 이식했다. 3일마다 한 달 동안 변 이식을 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황 교수는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확실한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미리 알았다면 말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요법에도 의지해 봤다. 영지버섯이 좋다는 말에 열심히 달여 마셨다.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간 수치만 높아졌다. 이후 민간요법을 완전히 끊었다. 장기간 스테로이드 약을 쓰면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게 뼈엉성증(골다공증)이었다. 황 교수는 “근육량이 줄어들고 마르기 시작하면서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보니 한때 우울 증세까지 나타났다. 입원할 때 몸은 편하지만 우울함은 오히려 심했다. 이 씨는 “어린 아들과 영상 통화를 하면서 우울함을 달랬다. 그마저도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신약 임상시험 참여하고 증세 호전 더 이상 쓸 약이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대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검토했다. 삶이 많이 불편해질 게 빤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약물을 이대로 계속 쓸 수는 없었다. 폐렴이나 장 천공과 같은 응급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컸다. 이 씨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던 중 2019년 1월, 궤양성 대장염 신약이 나오면서 임상시험이 진행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상시험에 지원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약을 복용하기 전에는 매일 15회 이상 혈변을 봤는데, 신약을 쓰고 한 달 만에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다시 한 달 후에는 혈변이 하루 3회로 줄었다. 어떤 약도 듣지 않았는데 2개월 만에 신약 효과가 나타난 것. 2020년 이후로는 발병 이전 상태를 회복했다. 다만 신약의 부작용으로 대상포진을 5회 앓았다. 이 또한 얼마 후, 이 씨 몸 상태에 맞는 대상포진 백신이 개발되면서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게 됐다.지금은 신약과 항염증제만 복용하고 있다. 스테로이드 약물은 끊었다. 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몸 상태를 살펴야 하는 불편은 있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 식습관도 바꿨다. 장을 자극할 수 있는 맵고 짜거나 기름진 음식은 되도록 피한다. 날 음식은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살짝 데쳐 먹는다. 술도 2주에 한 번꼴로 맥주 서너 잔만 마신다. 예전처럼 운동도 꾸준히 한다. 황 교수는 “환자가 어려운 상황을 잘 버티고 낙천적으로 투병했기에 지금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에게 “이 신약 말고도 다섯 종류의 신약이 더 나와 치료할 때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신약은 계속 나온다. 환자들이 끈기를 가지고 투병에 임하면 완치에 가깝게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7-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궤양성 대장염 신약 속속 출시…포기 안 하면 완치도 가능”[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황성욱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궤양성 대장염 이기영 씨자가면역질환 일종 난치성 질환주로 30, 40대에 많이 나타나하루 15회 이상 설사-혈변 보고대중교통 못 타고 일상생활 엉망스테로이드 의존, 대장 절제 검토신약 임상시험 참여 후 빨리 호전이기영 씨(50)는 운동을 즐겼다. 19세 때부터 20년 넘게 헬스클럽에서 근력 운동을 했다. 30대 중반 이후에는 보디빌더 지역 대표로도 활동했다. 그 무렵에는 헬스클럽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권투를 배운 적도 있다. 물론 유산소 운동도 빠뜨리지 않았다. 주 2회 혹은 3회, 5~10㎞를 달렸다. 산에도 자주 올랐다.건강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다만,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이 딱 하나 있었다. 과도한 음주. 이 씨는 40대 초반이 될 때까지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업무를 위한 술자리가 많았지만, 그냥 술이 좋아 마실 때도 많았다. 일단 술자리가 시작되면 최소한 소주 3병에 맥주 3병 이상은 마셨다. 친구와 단둘이 소주 20병을 그 자리에서 비운 적도 있다.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에는 간혹 설사가 나왔다. 약한 강도의 치질까지 있어 아주 가끔은 피가 살짝 변에 섞여 나왔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술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증세는 곧 사라졌다. 그러다 2016년 11월, 증세가 악화하기 시작했다. ● 설사와 혈변, 잔변감이 특징종전에는 술 마신 후 하루나 이틀 동안만 증세가 나타났다. 이 무렵부터는 증세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설사와 혈변을 속수무책으로 봤다. 일을 보고 나서도 잔변감이 무척 심했다. 갑자기 대변이 나올 것 같은 ‘급박변’ 증세도 생겼다. 잠을 자는 새벽에 갑자기 변이 마려워 일어나야 했다. 이러다 보니 하루 10~15회는 화장실을 들락였다. 증세가 오래 지속되자 비로소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 씨는 동네 의원에 가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궤양성 대장염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에 가 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이 씨는 매일 20회 이상 설사와 혈변을 누는 고통을 치러야 했다.이 씨는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예상한 대로 궤양성 대장염 진단이 떨어졌다. 면역체계가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일종으로, 치료가 쉽지 않은 난치성 질병이다. 대부분의 자가면역질환처럼 병의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이 씨 치료를 담당한 황성욱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은 30대와 40대에 많이 발병한다. 이 씨처럼 2주 이상 설사와 혈변, 급박변이 이어진다면 이 병을 의심해야 한다. 일찍 발견할수록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식습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황 교수는 “이 병을 악화하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기름지고 맵거나 튀긴 음식, 자극적인 음식이 70%를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 듣는 약 없어 입원과 퇴원 반복황 교수는 일단 극심한 염증부터 잡기 위해 스테로이드 약물을 고용량으로 투입했다. 일반적으로 스테로이드 약은 염증을 신속하게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가 크다. 다만 장기간 고용량을 사용하면 신체 여러 장기가 손상되고 혈압과 혈당이 상승하며 면역 시스템 이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스테로이드 약은 기한을 정해 단기간 처방하는 게 일반적이다.이 씨는 중증 중에서도 중증이었다.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황 교수는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으로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장은 증세가 개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평화롭고 안정적인 기간은 아주 짧았다. 2017년 1월, 이 씨는 증세가 다시 나타나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 2주 치료 후 증세가 호전되자 퇴원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증세가 악화해 입원했다. 이런 식으로 2018년 6월까지 이 씨는 모두 7회 입원해 2주씩 집중 치료를 받았다.완벽한 치료가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뚜렷한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궤양성 대장염이라면 1차로 항염증제를 쓰고, 효과가 없으면 추가로 다른 대장염 치료제를 병행 투입한다. 그래도 효과가 없다면 마지막으로 면역을 억제하는 생물학 제제(製劑)를 쓴다. 이 씨도 똑같은 절차를 거쳤다. 당시 출시돼 있던 세 종류의 생물학 제제를 모두 써 봤지만 증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황 교수는 “이런 약은 환자의 70% 정도는 효과를 본다. 이 씨는 나머지 30%에 해당했다. 쓸 약이 더 이상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때문에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어쩔 수 없이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입원 치료 중일 때는 몸이 편했다. 금식하면서 장을 쉬게 해 주고 영양 수액 주사를 맞았다. 스테로이드 처방이 염증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퇴원하면 한 달 만에 어김없이 증세가 악화했다. 그러면 다시 입원하는 삶이 반복됐다. 일상생활은 엉망이 돼 버렸다. 급박변 증세가 나타나면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처음에는 여벌 속옷을 가지고 다녔다. 얼마 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직접 운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다 급히 차를 세워 변을 보기도 했다. 차에 이동식 변기와 기저귀를 비치해 뒀다.이 씨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도 했다. 건강한 사람의 변을 이식하면 궤양성 대장염이 나아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됐다. 집에서 어린 아들의 변을 희석해 좌약 하듯 이식했다. 3일마다 한 달 동안 변 이식을 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황 교수는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확실한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미리 알았다면 말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요법에도 의지해 봤다. 영지버섯이 좋다는 말에 열심히 달여 마셨다.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간 수치만 높아졌다. 이후 민간요법을 완전히 끊었다.장기간 스테로이드 약을 쓰면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게 뼈엉성증(골다공증)이었다. 황 교수는 “근육량이 줄어들고 마르기 시작하면서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보니 한때 우울 증세까지 나타났다. 입원할 때 몸은 편하지만 우울함은 오히려 심했다. 이 씨는 “어린 아들과 영상 통화를 하면서 우울함을 달랬다. 그마저도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신약 임상시험 참여하고 증세 호전더 이상 쓸 약이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대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검토했다. 삶이 많이 불편해질 게 빤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약물을 이대로 계속 쓸 수는 없었다. 폐렴이나 장 천공과 같은 응급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컸다. 이 씨의 고민이 깊어졌다.그러던 중 2019년 1월, 궤양성 대장염 신약이 나오면서 임상시험이 진행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상시험에 지원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약을 복용하기 전에는 매일 15회 이상 혈변을 봤는데, 신약을 쓰고 한 달 만에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다시 한 달 후에는 혈변이 하루 3회로 줄었다. 어떤 약도 듣지 않았는데 2개월 만에 신약 효과가 나타난 것. 2020년 이후로는 발병 이전 상태를 회복했다. 다만 신약의 부작용으로 대상포진을 5회 앓았다. 이 또한 얼마 후, 이 씨 몸 상태에 맞는 대상포진 백신이 개발되면서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게 됐다.지금은 신약과 항염증제만 복용하고 있다. 스테로이드 약물은 끊었다. 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몸 상태를 살펴야 하는 불편은 있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 식습관도 바꿨다. 장을 자극할 수 있는 맵고 짜거나 기름진 음식은 되도록 피한다. 날 음식은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살짝 데쳐 먹는다. 술도 2주에 한 번꼴로 맥주 서너 잔만 마신다. 예전처럼 운동도 꾸준히 한다. 황 교수는 “환자가 어려운 상황을 잘 버티고 낙천적으로 투병했기에 지금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에게 “이 신약 말고도 다섯 종류의 신약이 더 나와 치료할 때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신약은 계속 나온다. 환자들이 끈기를 가지고 투병에 임하면 완치에 가깝게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기영 씨 궤양성 대장염 투병 일지2016년 11월설사와 혈변 증세 악화 서울아산병원에서 궤양성 대장염 진단 받고 스테로이드 치료 시작2017년 1월증세 악화로 재입원해 고용량 스테로이드 주사제 투입2017년 1월~2019년 초입원 2주 치료 후 퇴원 반복하며 총 7회 입원 모든 약물 다 썼지만 증세 개선되지 않음건강한 대변을 이식하거나 민간요법에도 의존아무런 효과 없자 대장 절제 수술 검토2019년 1월신약 임상시험 참여2019년 3월신약 투입 2개월 만에 증세가 눈에 띄게 호전 2020년 이후신약 부작용으로 대상포진 5회 앓다가 백신 접종으로 해결2025년 현재건강한 상태신약과 항염증제만 복용하며 운동 늘리고 식습관 조절 중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7-16
    • 좋아요
    • 코멘트
  • “‘왜 걸렸을까’ 자책않고 긍정하며 투병하니 췌장암 이겨내”[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13년 8월, 40대이던 이충구 씨(55)에게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했다. 이 씨는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스텐트 시술을 받고 위기를 넘겼다. 이후 2020년까지 약 7년간 약물 치료를 이어갔다. 이 씨는 당뇨병도 앓고 있었다. 이젠, 정말로 건강에 신경 써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건강검진도 적극 챙겼다. 덕분에 2020년 8월에는 담낭(쓸개) 벽이 두꺼워진 사실도 발견했다. 의료진은 당장은 괜찮으니 추적 관찰하자고 했다. 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4개월 후에 일이 터졌다.● 궤양인가 싶었는데 췌장암 그해 12월, 복통이 심해졌다. 이틀 동안 혈변 일종인 흑변이 나왔다.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됐다. 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실로 갔다. 내시경 검사에서 십이지장궤양이 확인됐다. 심혈관 스텐트를 삽입하고 장기간 항혈전제를 복용하면 간혹 부작용으로 십이지장에 궤양이나 출혈이 생기기도 한다. 이 씨가 그런 사례로 여겨졌다. 그래도 주변 장기 이상 여부는 확인해야 했다. 의료진은 복부 컴퓨터 단층(CT) 검사를 진행했다. 췌장에서 작은 혹이 발견됐다. 이재민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췌장암을 의심했다. 곧바로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예상한 대로 암이었다. 불과 4개월 전에 시행한 건강검진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 교수는 “췌장암은 예후가 가장 안 좋은 암이면서, 동시에 진행 속도가 무척 빠른 암”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건강검진을 시행해도 췌장 CT 검사를 하지 않으면 조기 발견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씨에게 나타난 증세 중 흑변은 췌장암과 큰 관련이 없다. 그러나 복통은 췌장암 증세 중 하나다. 주로 명치에 통증이 나타나고 나중에는 명치 주변과 등으로 통증이 퍼져 나간다. 이 교수는 “이 씨의 통증은 배로 국한돼 있어 십이지장궤양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 씨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이 무렵 그는 부친상을 비롯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체중이 쭉쭉 빠졌다. 그저 스트레스로 인한 체중 감소라고만 여겼다. 이 교수는 “췌장암 초기에는 아무런 증세가 없긴 하지만, 당시 체중 감소가 암의 징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당뇨병을 앓았고 가족력도 있었다. 당뇨병은 췌장암 유발 인자 중 하나다. 가족력이 있다면 췌장암 발병 위험도는 더 올라간다. 이 경우 췌장 건강 상태를 자주 확인하는 게 좋다.● 수술 힘들어 항암치료부터 췌장암 크기는 2.4cm였다. 아주 크지는 않은 편. 다행스럽게도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도 않았다. 이러면 췌장암 1기다. 다만 이 씨의 경우 림프절이 정상보다 커져 있었고, 주변 혈관까지 암이 침투해 있었다. 이 때문에 1기에서 2기 사이로 암의 병기(病期)를 정했다. 췌장은 크게 머리와 몸체, 꼬리 부분으로 나눈다. 발생 건수로만 놓고 보면 머리 부위에 암이 발생하는 환자가 더 많다. 이 씨는 몸체와 꼬리 부분에 발생했다. 수술은 가능한 상황. 문제는 복강 동맥과 간으로 연결된 간문맥에 암이 침투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과거에는 수술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먼저 항암치료를 해서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 결정에 따라 2주마다 2박 3일간 입원해 항암치료를 하기로 했다. 총 12회로 예정하고 그날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첫 치료를 마쳤을 때 백혈구 안에 있는 호중구가 감소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 경우 감염 등의 위험이 커진다. 다행히 용량과 약제 투입 간격을 조정해 부작용을 해결했다. 2021년 2월 CT 검사에서 림프절 비대가 호전된 게 확인됐다. 췌장암 종양표지자인 CA 19-9 수치도 감소했다. 종양표지자는 암을 의심할 수 있는 척도다. 이 수치가 떨어졌다면 암 위험도도 낮아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해 3월 CT 검사에서는 더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암의 혈관 침습이 크게 줄었다. 췌장암 덩어리 자체가 2.4cm에서 1.9cm로 줄었다. 항암치료가 효과를 보고 있는 것. 의료진은 12회로 예정된 항암치료를 앞당겨 종결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외과와 협진해 수술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항암치료를 7회로 끝내고 수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췌장 일부-담낭 절제그해 4월, 이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유영동 고려대 안암병원 간담췌외과 교수가 집도했다. 종양이 췌장 몸통과 꼬리 부위에 있는 데다 간문맥과 닿아 있어 복강경이나 로봇수술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유 교수는 배를 여는 수술을 택했다. 배꼽 상부 명치 부위에서부터 25cm 정도 절개했다. 수술은 2시간 남짓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혈관에 붙어 있는 암 덩어리를 떼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수술을 끝내는 데 6시간이 소요됐다. 유 교수는 “봉합을 비롯해 추가 조치를 하느라 수술 시간이 더 길어진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떼어낸 암의 크기를 재 보니 0.5cm였다. 당시 전이가 의심되던 담낭도 함께 절제했는데, 조직검사를 해 보니 여기서도 암이 발견됐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암을 제거한 셈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 교수는 “췌장암은 수술 후 재발률이 60%를 웃돈다. 이 때문에 수술 후 항암치료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해 5월부터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한 달에 3회씩, 총 6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수술 전 항암치료 때와 달리 당일 치료한 뒤 바로 퇴원하는 방식이었다. 그해 10월, 모든 항암치료를 끝냈다. CA 19-9도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수술 합병증도 없고 소화 기능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022년부터는 3개월 간격으로 CT 검사를 했고, 이후 간격을 늘려 요즘은 6개월마다 검사하고 있다.● ‘역발상’으로 암과 싸워 암 치료 후 5년이 지나면 완치로 규정한다. 췌장암 5년 생존율은 20% 내외다. 가장 치료가 힘든 암이다. 이 교수는 “올 11월 평가에서 재발 없이 안정된 상태가 확인된다면 만 5년 만인 12월에 완치 판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무난히 완치에 이를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힘든 상황이 적잖았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이 씨 심정은 어땠을까. 이 씨는 “딱 3초 동안 눈앞이 까매졌다. 하지만 내가 죄를 지어서 암에 걸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의료진 처방을 충실하게 따르면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항암치료는 쉽지 않다. 이 씨도 그랬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 나갔고, 음식 삼키기도 쉽지 않았다. 식판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동치미를 함께 먹으면서 이겨냈다. 한때 100kg이 넘던 체중은 67kg로 뚝 떨어졌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 씨는 단 한 차례도 항암치료를 거르거나 미루지 않았다.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잘 참아냈다. 이런 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역발상’으로 항암치료에 임했다. 암에 걸리기 전, 이 씨는 본업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 작업을 막연하게 미루고 있었다. 암과 싸우면서 다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인들과 함께 음원을 만들고 발표하는 ‘악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평소 못 했던 거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즐거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환자들에게 “좌절하기보다는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즐거운 일을 하면 병이 낫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췌장암은 가장 생존율이 낮은 암이지만, 최근 여러 치료제가 나오고 있고 의료 기술도 발달하고 있어 치료율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며 “환자들의 긍정적 투병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6-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왜 걸렸나 자책말고 ‘긍정 투병’ 해야 암 이긴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13년 8월, 40대이던 이충구 씨(55)에게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했다. 이 씨는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스텐트 시술을 받고 위기를 넘겼다. 이후 2020년까지 약 7년간 약물 치료를 이어갔다. 이 씨는 당뇨병도 앓고 있었다. 이젠, 정말로 건강에 신경 써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건강검진도 적극 챙겼다. 덕분에 2020년 8월에는 담낭(쓸개) 벽이 두꺼워진 사실도 발견했다. 의료진은 당장은 괜찮으니 추적 관찰하자고 했다. 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4개월 후에 일이 터졌다.● 궤양인가 싶었는데 췌장암그해 12월, 복통이 심해졌다. 이틀 동안 혈변 일종인 흑변이 나왔다.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됐다. 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실로 갔다. 내시경 검사에서 십이지장궤양이 확인됐다.심혈관 스텐트를 삽입하고 장기간 항혈전제를 복용하면 간혹 부작용으로 십이지장에 궤양이나 출혈이 생기기도 한다. 이 씨가 그런 사례로 여겨졌다. 그래도 주변 장기 이상 여부는 확인해야 했다. 의료진은 복부 컴퓨터 단층(CT) 검사를 진행했다. 췌장에서 작은 혹이 발견됐다. 이재민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췌장암을 의심했다. 곧바로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예상한 대로 암이었다. 불과 4개월 전에 시행한 건강검진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 교수는 “췌장암은 예후가 가장 안 좋은 암이면서, 동시에 진행 속도가 무척 빠른 암”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건강검진을 시행해도 췌장 CT 검사를 하지 않으면 조기 발견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씨에게 나타난 증세 중 흑변은 췌장암과 큰 관련이 없다. 그러나 복통은 췌장암 증세 중 하나다. 주로 명치에 통증이 나타나고 나중에는 명치 주변과 등으로 통증이 퍼져 나간다. 이 교수는 “이 씨의 통증은 배로 국한돼 있어 십이지장궤양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 씨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이 무렵 그는 부친상을 비롯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체중이 쭉쭉 빠졌다. 그저 스트레스로 인한 체중 감소라고만 여겼다. 이 교수는 “췌장암 초기에는 아무런 증세가 없긴 하지만, 당시 체중 감소가 암의 징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당뇨병을 앓았고 가족력도 있었다. 당뇨병은 췌장암 유발 인자 중 하나다. 가족력이 있다면 췌장암 발병 위험도는 더 올라간다. 이 경우 췌장 건강 상태를 자주 확인하는 게 좋다.● 수술 힘들어 항암치료부터췌장암 크기는 2.4㎝였다. 아주 크지는 않은 편. 다행스럽게도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도 않았다. 이러면 췌장암 1기다. 다만 이 씨의 경우 림프절이 정상보다 커져 있었고, 주변 혈관까지 암이 침투해 있었다. 이 때문에 1기에서 2기 사이로 암의 병기(病期)를 정했다. 췌장은 크게 머리와 몸체, 꼬리 부분으로 나눈다. 발생 건수로만 놓고 보면 머리 부위에 암이 발생하는 환자가 더 많다. 이 씨는 몸체와 꼬리 부분에 발생했다. 수술은 가능한 상황. 문제는 복강 동맥과 간으로 연결된 간문맥에 암이 침투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과거에는 수술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먼저 항암치료를 해서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 결정에 따라 2주마다 2박 3일간 입원해 항암치료를 하기로 했다. 총 12회로 예정하고 그날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첫 치료를 마쳤을 때 백혈구 안에 있는 호중구가 감소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 경우 감염 등의 위험이 커진다. 다행히 용량과 약제 투입 간격을 조정해 부작용을 해결했다.2021년 2월 CT 검사에서 림프절 비대가 호전된 게 확인됐다. 췌장암 종양표지자인 CA 19-9 수치도 감소했다. 종양표지자는 암을 의심할 수 있는 척도다. 이 수치가 떨어졌다면 암 위험도도 낮아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그해 3월 CT 검사에서는 더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암의 혈관 침습이 크게 줄었다. 췌장암 덩어리 자체가 2.4㎝에서 1.9㎝로 줄었다. 항암치료가 효과를 보고 있는 것. 의료진은 12회로 예정된 항암치료를 앞당겨 종결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외과와 협진해 수술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항암치료를 7회로 끝내고 수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췌장 일부-담낭 절제그해 4월, 이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유영동 고려대 안암병원 간담췌외과 교수가 집도했다. 종양이 췌장 몸통과 꼬리 부위에 있는 데다 간문맥과 닿아 있어 복강경이나 로봇수술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유 교수는 배를 여는 수술을 택했다. 배꼽 상부 명치 부위에서부터 25㎝ 정도 절개했다. 수술은 2시간 남짓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혈관에 붙어 있는 암 덩어리를 떼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수술을 끝내는 데 6시간이 소요됐다. 유 교수는 “봉합을 비롯해 추가 조치를 하느라 수술 시간이 더 길어진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떼어낸 암의 크기를 재 보니 0.5㎝였다. 당시 전이가 의심되던 담낭도 함께 절제했는데, 조직검사를 해 보니 여기서도 암이 발견됐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암을 제거한 셈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 교수는 “췌장암은 수술 후 재발률이 60%를 웃돈다. 이 때문에 수술 후 항암치료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해 5월부터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한 달에 3회씩, 총 6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수술 전 항암치료 때와 달리 당일 치료한 뒤 바로 퇴원하는 방식이었다. 그해 10월, 모든 항암치료를 끝냈다. CA 19-9도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수술 합병증도 없고 소화 기능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022년부터는 3개월 간격으로 CT 검사를 했고, 이후 간격을 늘려 요즘은 6개월마다 검사하고 있다.● ‘역발상’으로 암과 싸워암 치료 후 5년이 지나면 완치로 규정한다. 췌장암 5년 생존율은 20% 내외다. 가장 치료가 힘든 암이다. 이 교수는 “올 11월 평가에서 재발 없이 안정된 상태가 확인된다면 만 5년 만인 12월에 완치 판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무난히 완치에 이를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힘든 상황이 적잖았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이 씨 심정은 어땠을까. 이 씨는 “딱 3초 동안 눈앞이 까매졌다. 하지만 내가 죄를 지어서 암에 걸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의료진 처방을 충실하게 따르면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라고 했다.누구에게나 항암치료는 쉽지 않다. 이 씨도 그랬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 나갔고, 음식 삼키기도 쉽지 않았다. 식판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동치미를 함께 먹으면서 이겨냈다. 한때 100kg이 넘던 체중은 67kg로 뚝 떨어졌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 씨는 단 한 차례도 항암치료를 거르거나 미루지 않았다.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잘 참아냈다. 이런 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역발상’으로 항암치료에 임했다. 암에 걸리기 전, 이 씨는 본업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 작업을 막연하게 미루고 있었다. 암과 싸우면서 다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인들과 함께 음원을 만들고 발표하는 ‘악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평소 못 했던 거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즐거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환자들에게 “좌절하기보다는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즐거운 일을 하면 병이 낫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췌장암은 가장 생존율이 낮은 암이지만, 최근 여러 치료제가 나오고 있고 의료 기술도 발달하고 있어 치료율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며 “환자들의 긍정적 투병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충구 씨 췌장암 투병 일지〉2013년 8월 : 급성 심근경색 발생해 스텐트 시술. 7년 동안 약물 치료 받으며 관리2020년 8월 : 건강검진에서 담낭벽 두꺼워진 것 발견해 추적 관찰하기로2020년 12월 : 복통과 흑변으로 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실행. 십이지장궤양 발견. 복부 CT 검사와 조직검사 결과 췌장암 확인. 총 12회 예정으로 수술 전 항암치료 돌입2021년 2월 : 림프절 비대 호전되고 췌장암표지자 수치도 떨어져2021년 3월 : 암 크기 많이 작아지고 혈관 침습도 개선돼 수술하기로 결정2021년 4월 : 췌장 일부 절제. 함께 절제한 담낭에서도 암 발견. 수술 후 항암치료 돌입2021년 10월 : 수술 후 항암치료 종결. 정기적으로 암 재발 및 전이 여부 확인2025년 6월 현재 : 재발과 전이 징후 없음. 11월 검사 결과 이상 없으면 12월에 ‘완치’ 판정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6-27
    • 좋아요
    • 코멘트
  • “10대가 돌연 고혈압?… 자율신경계 문제일 수도”[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21년 11월, 당시 중학교 1학년 김하영 양(16)은 제1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쳤다. 그 후 가슴과 윗배에 통증이 나타났다. 숨 쉴 때마다 통증은 더 심해졌다. 밤잠을 자다가 너무 아파서 깬 적도 있다. 평소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은 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증세는 더 심해졌다. 결국 백신 접종 일주일 만에 한양대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진은 백신 부작용으로 판단했다. 통증을 줄이는 치료를 했다. 하영 양은 3일 만에 퇴원했다. 하지만 백신 부작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흉통과 상복부 통증, 두통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2022년 들어서도 네 번 더 입원해 백신 부작용 치료를 받았다. 2∼4일씩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호전되면 퇴원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그해 5월 중순 통증이 사라졌다. 더 이상 병원에 갈 일은 없을 줄 알았다. ● 갑작스레 나타난 고혈압과 빈맥 7개월이 흘렀다. 2022년 12월, 두통이 다시 생겼다. 다만 양상이 과거와 달랐다. 예전에는 잠깐 편두통처럼 아팠다가 진통제를 먹으면 나았다. 이번에는 정수리 부위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처럼 아팠다. 흉통과 상복부 통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영 양 부모는 혹시나 해서 혈압을 측정했다. 수축기 혈압이 130㎜Hg, 확장기 혈압이 81㎜Hg로 나왔다. 성인의 경우 수축기 120㎜Hg 미만, 확장기 80㎜Hg 미만일 때 정상 혈압으로 본다. 하영 양 혈압 수치는 고혈압 전 단계에 속한다. 성인 기준을 따른다면 아직 위험한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영 양을 치료한 나재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고혈압 유발 요인이 전혀 없는 10대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혈압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음주와 흡연도 하지 않고 비만보다는 오히려 마른 체형에 더 가까우며, 부모 모두 고혈압과 무관해 가족력도 없는 하영 양의 경우 고혈압이 생길 이유가 없다는 것. 이 또한 백신 부작용이었을까. 나 교수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백신 부작용으로 고혈압이 생기는 사례가 거의 없는 데다 대표적 부작용인 가슴과 복부 통증은 오히려 사라졌기 때문. 게다가 이때부터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빈맥과 같은 부정맥 증세도 나타났다. 나 교수는 “최초 6개월까지는 백신 부작용이지만 이때부터는 백신 부작용과는 관련이 없다. 새로운 질병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자율신경계 부전 진단 나 교수는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하영 양을 입원시킨 뒤 여러 검사를 시행했다. 하지만 모든 검사에서 정상 소견이 나왔다. 고혈압 원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나 교수는 자율신경계 부전을 의심했다.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혈압이 높아지고 빈맥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자율신경계 부전은 말 그대로 자율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건강하다면 우리 몸은 스스로 혈압과 맥박 등을 조절한다.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서로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이 시스템이 고장 나기도 한다. 그 결과 갑자기 혈압이 치솟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때로는 정신을 잃기도 한다. 물론 정반대로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증세는 분명 위급해 보이는데 많은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율신경계 부전은 성인의 경우 50대 이후에 발생 확률이 올라간다. 기저 질환이 있다면 그 질병을 함께 치료해야 한다. 10대 청소년에게서도 종종 발생하는데, 기저 질환이 없어도 갑자기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원인을 알 수 없다. 특히 10대의 경우 시기를 놓치지 않고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나 교수는 “늦지 않고 제대로 치료만 하면 자율신경계 부전은 성인이 된 후 대부분 개선돼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일시적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적잖다. 그러면 치료 시기를 놓쳐 더 큰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 8개월 동안 17회 입원 나 교수는 우선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을 투입하고 경과를 지켜봤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기 전에 혈압이 떨어졌다. 나 교수는 고혈압 약을 처방한 뒤 퇴원시켰다. 이후 3개월 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다. 2023년 3월, 갑자기 두통이 또 시작됐다. 정수리를 짓누르는 그 두통이었다. 이번에는 강도가 더 셌다. 눈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기도 했다. 코피가 날 때도 있었다. 다시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후 퇴원했지만 나흘이 지나서 다시 같은 증세로 입원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하영 양은 그해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동안 17회 입원 치료를 받았다. 나 교수는 ‘베타차단제’ 계열 약물을 썼다.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 가운데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흥분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교감신경의 ‘베타수용체’를 차단하면 이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혈압이 낮아지고 심장 부담도 줄어드는 것. 다만 교감신경 활동을 너무 차단하면 반대로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저혈압이 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가장 적합한 약을 용량에 맞춰 투입하는 게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 여러 약물을 교차로 처방하기도 했다. 고혈압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혈압은 더 높아졌다. 나중에는 수축기 혈압이 190㎜Hg까지 올라갔다. 정신을 잃어 응급실로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코피도 자주 났는데, 나중에는 약으로 지혈되지 않아 코 안쪽 혈관을 전기로 지져야 했다. 감기라도 걸리면 몸 상태는 더욱 악화했다. 원래 하영 양은 편도가 조금 비대한 편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편도는 더 부어올랐다. 열도 더 많이 올랐고, 혈압도 치솟았다. 심장박동도 더 빨라졌다. 이런 고통을 줄이기 위해 비대해진 편도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목은 많이 편해졌지만, 항생제 부작용이 나타났다. 장염이 심해졌고, 그 여파로 맹장염까지 걸렸다. 하영 양은 “2023년 한 해는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는 기억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 사실상 완치, 유학 앞둬 2023년 10월, 하영 양은 퇴원했다. 이때를 마지막으로 재입원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 교수는 “정말 길고도 힘든 투병이었다. 무엇보다 잘 버텨 준 하영 양과, 의료진을 끝까지 믿어준 부모의 공이 크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 모두 지치기 쉽다”고 덧붙였다. 그해 하영 양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보니 출석 일수를 채울 수 없었다. 마침 한양대병원이 청소년 항암 환자들을 위해 ‘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온라인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하는데, 이 수업에 참석하면 출석 일수를 채운 것으로 인정됐다. 나 교수의 추천으로 병원학교를 다녔다. 덕분에 수업 일수를 채웠고, 하영 양은 친구들과 똑같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하영 양은 국내 고교로 진학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딱 한 번 혈압이 190㎜Hg까지 오른 적이 있었지만, 그 후로는 정상을 되찾았다. 나 교수는 “일시적으로 그런 증세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때를 제외하고 혈압은 항상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다른 이상 증세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혹시 모를 증세에 대비해 상비약을 휴대하고 다니기는 한다.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하영 양은 간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올 8월 미국 대학에 진학한다. 투병 과정에서 간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단다. 그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응원과 따뜻한 격려를 정말 많이 받았다. 나도 나중에는 아픈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학 중에 문제는 생기지 않을까. 나 교수는 “청소년기에 자율신경계 부전은 1∼2년 동안 몰아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미 1년 넘게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6-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0대가 돌연 고혈압?…자율신경계 문제일 수도” [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2021년 11월, 당시 중학교 1학년 김하영 양(16)은 제1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쳤다. 그 후 가슴과 윗배에 통증이 나타났다. 숨 쉴 때마다 통증은 더 심해졌다. 밤잠을 자다가 너무 아파서 깬 적도 있다. 평소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은 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증세는 더 심해졌다. 결국 백신 접종 일주일 만에 한양대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진은 백신 부작용으로 판단했다. 통증을 줄이는 치료를 했다. 하영 양은 3일 만에 퇴원했다. 하지만 백신 부작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흉통과 상복부 통증, 두통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2022년 들어서도 네 번 더 입원해 백신 부작용 치료를 받았다. 2~4일씩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호전되면 퇴원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그해 5월 중순 통증이 사라졌다. 더 이상 병원에 갈 일은 없을 줄 알았다. ● 갑작스레 나타난 고혈압과 빈맥7개월이 흘렀다. 2022년 12월, 두통이 다시 생겼다. 다만 양상이 과거와 달랐다. 예전에는 잠깐 편두통처럼 아팠다가 진통제를 먹으면 나았다. 이번에는 정수리 부위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처럼 아팠다. 흉통과 상복부 통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영 양 부모는 혹시나 해서 혈압을 측정했다. 수축기 혈압이 130㎜Hg, 확장기 혈압이 81㎜Hg로 나왔다. 성인의 경우 수축기 120㎜Hg 미만, 확장기 80㎜Hg 미만일 때 정상 혈압으로 본다. 하영 양 혈압 수치는 고혈압 전 단계에 속한다. 성인 기준을 따른다면 아직 위험한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영 양을 치료한 나재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고혈압 유발 요인이 전혀 없는 10대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혈압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음주와 흡연도 하지 않고 비만보다는 오히려 마른 체형에 더 가까우며, 부모 모두 고혈압과 무관해 가족력도 없는 하영 양의 경우 고혈압이 생길 이유가 없다는 것. 이 또한 백신 부작용이었을까. 나 교수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백신 부작용으로 고혈압이 생기는 사례가 거의 없는 데다 대표적 부작용인 가슴과 복부 통증은 오히려 사라졌기 때문. 게다가 이때부터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빈맥과 같은 부정맥 증세도 나타났다. 나 교수는 “최초 6개월까지는 백신 부작용이지만 이때부터는 백신 부작용과는 관련이 없다. 새로운 질병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자율신경계 부전 진단나 교수는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하영 양을 입원시킨 뒤 여러 검사를 시행했다. 하지만 모든 검사에서 정상 소견이 나왔다. 고혈압 원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나 교수는 자율신경계 부전을 의심했다.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혈압이 높아지고 빈맥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자율신경계 부전은 말 그대로 자율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건강하다면 우리 몸은 스스로 혈압과 맥박 등을 조절한다.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서로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이 시스템이 고장 나기도 한다. 그 결과 갑자기 혈압이 치솟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때로는 정신을 잃기도 한다. 물론 정반대로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증세는 분명 위급해 보이는데 많은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율신경계 부전은 성인의 경우 50대 이후에 발생 확률이 올라간다. 기저 질환이 있다면 그 질병을 함께 치료해야 한다. 10대 청소년에게서도 종종 발생하는데, 기저 질환이 없어도 갑자기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원인을 알 수 없다. 특히 10대의 경우 시기를 놓치지 않고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나 교수는 “늦지 않고 제대로 치료만 하면 자율신경계 부전은 성인이 된 후 대부분 개선돼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일시적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적잖다. 그러면 치료 시기를 놓쳐 더 큰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 8개월 동안 17회 입원나 교수는 우선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을 투입하고 경과를 지켜봤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기 전에 혈압이 떨어졌다. 나 교수는 고혈압 약을 처방한 뒤 퇴원시켰다. 이후 3개월 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다.2023년 3월, 갑자기 두통이 또 시작됐다. 정수리를 짓누르는 그 두통이었다. 이번에는 강도가 더 셌다. 눈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기도 했다. 코피가 날 때도 있었다. 다시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후 퇴원했지만 나흘이 지나서 다시 같은 증세로 입원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하영 양은 그해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동안 17회 입원 치료를 받았다. 나 교수는 ‘베타차단제’ 계열 약물을 썼다.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 가운데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흥분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교감신경의 ‘베타수용체’를 차단하면 이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혈압이 낮아지고 심장 부담도 줄어드는 것. 다만 교감신경 활동을 너무 차단하면 반대로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저혈압이 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가장 적합한 약을 용량에 맞춰 투입하는 게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 여러 약물을 교차로 처방하기도 했다. 고혈압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혈압은 더 높아졌다. 나중에는 수축기 혈압이 190㎜Hg까지 올라갔다. 정신을 잃어 응급실로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코피도 자주 났는데, 나중에는 약으로 지혈되지 않아 코 안쪽 혈관을 전기로 지져야 했다.감기라도 걸리면 몸 상태는 더욱 악화했다. 원래 하영 양은 편도가 조금 비대한 편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편도는 더 부어올랐다. 열도 더 많이 올랐고, 혈압도 치솟았다. 심장박동도 더 빨라졌다. 이런 고통을 줄이기 위해 비대해진 편도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목은 많이 편해졌지만, 항생제 부작용이 나타났다. 장염이 심해졌고, 그 여파로 맹장염까지 걸렸다. 하영 양은 “2023년 한 해는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는 기억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 거의 완치, 유학 앞둬2023년 10월, 하영 양은 퇴원했다. 이때를 마지막으로 재입원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 교수는 “정말 길고도 힘든 투병이었다. 무엇보다 잘 버텨 준 하영 양과, 의료진을 끝까지 믿어준 부모의 공이 크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 모두 지치기 쉽다”고 덧붙였다. 그해 하영 양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보니 출석 일수를 채울 수 없었다. 마침 한양대병원이 청소년 항암 환자들을 위해 ‘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온라인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하는데, 이 수업에 참석하면 출석 일수를 채운 것으로 인정됐다. 이 교수의 추천으로 병원학교를 다녔다. 덕분에 수업 일수를 채웠고, 하영 양은 친구들과 똑같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하영 양은 국내 고교로 진학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딱 한 번 혈압이 190㎜Hg까지 오른 적이 있었지만, 그 후로는 정상을 되찾았다. 나 교수는 “일시적으로 그런 증세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때를 제외하고 혈압은 항상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다른 이상 증세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혹시 모를 증세에 대비해 상비약을 휴대하고 다니기는 한다.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하영 양은 간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올 8월 미국 대학에 진학한다. 투병 과정에서 간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단다. 그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응원과 따뜻한 격려를 정말 많이 받았다. 나도 나중에는 아픈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학 중에 문제는 생기지 않을까. 나 교수는 “청소년기에 자율신경계 부전은 1~2년 동안 몰아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미 1년 넘게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하영 양 자율신경계 부전 투병 일지▽ 2011년 11월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흉통과 상복부 통증 호소한양대병원 입원▽ 2011년 11월 ~ 2022년 5월6개월 동안 5회 입원하며 백신 부작용 치료▽ 2022년 12월심한 두통과 고혈압으로 재입원여러 검사 결과 원인 찾지 못하자 자율신경계 부전 치료 시작.▽ 2023년 3월 ~ 2023년 10월8개월 동안 17회 입원하며 자율신경계 부전 치료혈압 190㎜Hg까지 상승하고 실신하기도편도 비대 수술 시행 후 장염과 맹장염 앓기도혈압이 안정적으로 유지돼 입원 치료 종결▽ 2025년 현재고혈압 더 이상 발생하지 않으며 건강 상태 유지해외 생활도 가능해 8월 유학 예정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6-13
    • 좋아요
    • 코멘트
  • “천천히 달려도, 빨리 걸어도 질병 예방 효과는 비슷”[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50대 직장인 주상현 씨(가명)는 최근 달리기를 시작했다. 다만 빠른 속도로 달리지는 않는다. 일상적인 걷기와 비슷하거나 살짝 빠른 속도다. 느리게 달리는, 이른바 ‘슬로우 조깅’이다. 주 씨는 2주에 1회 이상 5km에서 7km까지 달린다. 이처럼 느리게 달릴 때도 건강 증진 효과가 클까. 주 씨는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체중이 빠지진 않았지만, 체력 유지에는 좋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주 씨는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오래 달릴 수 있는 것을 느리게 달리기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앞으로 속도를 조금 더 높이고 횟수도 늘릴 계획이다. 요즘 달리기 열풍이 거세지만 여전히 걷기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두 종목의 장단점을 이병찬 중앙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가 분석했다. ● 느리게 달릴까, 빨리 걸을까 이 교수는 운동 강도를 저강도, 중강도, 고강도로 분류했다. 고강도 달리기는 1km를 6∼7분에 주파할 정도, 즉 시속 8∼9km다. 이런 속도로 달리면 빠르게 걷는 것보다 운동량이 상당히 많다. 부상 위험도 크지 않을까. 이 교수는 “달릴 때 무릎과 발목이 다친다는 것은 오해다. 제대로 자세를 잡고 달린다면 부상 위험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고강도 달리기는 훈련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평균 시속 6km 내외의 느리게 달리기가 좋다. 속도만 놓고 보면 시속 6km 내외로 빨리 걷는 것과 똑같은 중강도 운동이다. 미국 심장학회·심장협회도 이 두 가지를 중강도 유산소 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강도가 비슷하니 두 방식의 건강 증진 효과도 비슷하다. 이 교수는 “여러 연구 결과 1주일에 최소한 150분 이상 중강도 운동을 수행하면 심혈관계 질환 위험과 사망률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빨리 걷든, 느리게 달리든 효과가 같으니 1주일에 150분 이상 운동 시간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다만 똑같은 속도라 해도 달릴 때 에너지 소모량이 많다. 달리려면 두 발 모두가 공중에 떠 있어야 하는데, 이 경우 발을 땅에 딛고 있을 때보다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 따라서 빠른 체중 감량을 원한다면 빨리 걷기보다 느리게 달리기가 유리하다. 단, 부상의 위험은 달릴 때 더 커진다. 노인이나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빨리 걷기가 더 좋을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다. 걷든 달리든 숨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 정도까지 지속해야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시속 6km 내외로 빨리 걷는데도 숨이 차지 않는다면 강도를 높이는 게 좋다. ● 적당한 운동 강도는? 고강도를 지속하다가 잠시 강도를 낮췄다 다시 강도를 높이는, 이른바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을 시도할 수도 있다. 이를 중강도로 오래 운동하는 ‘중강도 지속 트레이닝’과 효과를 비교하면 어떨까. 이 교수는 “해외 여러 연구 결과 운동량이 동일(같은 칼로리 소모)하다면 건강 증진 효과의 차이는 없었다”고 말했다.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기 힘든 초보자라면 중강도로 좀 더 길게 해서 원하는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초보자는 중강도 지속 트레이닝에 도전하는 게 좋다. 지속적으로 빨리 걷거나, 빨리 걷다가 느리게 달리는 식으로 변화를 주는 방법 등이 있다”고 말했다. 시속 4km 내외의 저강도로 낮추는 대신 오래 걸을 때도 건강 증진 효과가 클까. 이 교수는 “이런 방식은 두드러질 정도로 심혈관계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심장학회 지침에 따르면 1주일에 최소한 150분 중강도 유산소 운동, 혹은 75분 고강도 유산소 운동을 해야 심혈관계 건강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저강도의 운동이라면 오래 걷는다고 해도 에너지 소모량은 늘릴 수 있지만 심혈관계 건강 증진 효과는 작을 수 있다는 것. 다만 이 교수는 “최근 들어 오래 앉아 있을수록 심혈관 질환 위험과 사망률, 치매, 인지기능 저하 등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보고됐다.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면 이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이 경우 천천히 오래 걷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능하면 빨리 걷는 게 좋지만 그게 안 되면 느린 속도로 오래 걷기라도 하라는 뜻이다. ● 매일 운동할까, 주말에만 할까 매일 30분씩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란 사실은 다 안다. 만약 평일에는 운동하지 않다가 주말 이틀에 몰아서 운동하면 어떨까. 이 교수는 2023년과 올해 각각 발표된 해외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다만 1주일에 최소한 150분의 중강도 운동을 해 주면 된다”고 말했다. 당시 연구는 주중에 운동을 분산해서 하는 사람들과 주말에 운동량을 몰아서 할 때 심혈관계 질환과 당뇨병 예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심방세동, 심근경색, 심부전, 뇌중풍(뇌졸중), 당뇨병의 예방 효과는 두 방식 모두에서 비슷했다. 이 교수는 “이 연구 결과가 제시하는 바는 명확하다. 분산하든 몰아서 하든 운동 목표량을 채우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1회 운동 지속시간은 최소한 10∼15분을 넘겨야 한다. 10분 미만의 운동은 심혈관 건강 증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여러 조합이 가능해진다. 매일 출퇴근할 때 각각 15분씩만 빨리 걷는다면 주말이나 휴일에 운동하지 않아도 목표량은 채울 수 있다. 출퇴근할 때 정거장 2개의 거리만 빨리 걷거나 느리게 달려도 운동량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평일에 너무 바쁘다면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각 75분씩 운동해 주면 역시 목표량을 채우게 된다. 다만 이 교수는 “주말에 몰아서 할 경우 부상 위험도 커지니 되도록 분산해 운동할 것을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주 2회 이상 근력운동을 할 것을 주문했다. 다만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몸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니 이틀(48시간) 간격을 두고 근력운동을 할 것을 권했다. 이 교수는 “노인이 됐을 때 근감소증이 나타나는 것을 막으려면 중년 때부터 충분히 근력운동을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만성질환자는 어떻게 운동할까고혈압, 당뇨 등을 앓고 있는 만성질환자에 대해 이 교수는 “환자가 선호하는 운동을 선택하며 운동 빈도와 강도, 운동 시간을 모두 고려해 처방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유산소 운동은 중강도를 권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속도는 달라질 수 있다. 숨이 차지만, 주변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한 정도의 강도로 걷거나 달리면 된다. 유산소 운동은 매일 30∼60분 정도 시행하는 게 좋다. 연속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어렵다면 10분 단위로 끊어서 해도 된다. 만성질환자의 경우 근력운동도 필수적이다. 자신이 들 수 있는 최대 무게의 60∼80% 정도가 좋다. 가슴 운동이나 코어 운동, 허벅지 운동처럼 큰 근육 운동을 하는 게 좋다. 8∼12회를 1세트로 하되 2세트 혹은 3세트를 하는 게 좋다. 고혈압 환자의 경우 근력운동이 혈압을 높이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이 교수는 “근력운동도 의사와 상담을 한 후 적당한 강도로 하면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당뇨병 환자는 운동 중에 저혈당이 올 수 있어 식후 한두 시간의 시점에서 운동하는 게 좋다. 저혈당에 대비해 간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당뇨병 환자 또한 중강도의 유산소 운동이 좋다. 족부 질환의 위험이 있다면 폭이 넓고 푹신한 신발을 신는 게 좋다. 이런 당뇨 환자나 고령자 환자의 경우 실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다. 스트레칭도 필수다. 운동 전의 스트레칭은 근육의 가동 범위를 넓혀주며 유연성을 높여 운동 효과를 높인다. 부상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보통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을 각각 10∼15분 하도록 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5-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숨차고 다리 부었다고요? 당장 심부전 검사 받으세요”[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60대 초반 남성 박기찬 씨(가명)는 몇 달 전 갑자기 숨이 찼다. 고혈압이 있었지만 약을 꾸준히 먹었기에 그게 원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서너 달 만에 증세가 심해졌다. 숨은 더 차올랐다. 몸도 붓기 시작했다. 박 씨는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했다. 이찬주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부전(心不全) 진단을 내렸다. 원인은 심장판막에 있었다. 승모판막이 망가져서 혈액이 역류하고 있었던 것. 심장에 가해지는 압박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교수가 진단할 당시 박 씨 심장은 물풍선처럼 늘어나 있었다. 현재 박 씨는 이뇨제를 비롯해 여러 약물을 쓰면서 심장 기능을 살리는 치료를 받고 있다. 심장 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판막 수술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박 씨가 고혈압은 충실히 관리했지만, 판막 질환을 의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심부전이 악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 고령화로 심부전 환자 증가 심장은 매일 10만 회 이상 펌프질하며 혈액과 영양소를 온몸에 보낸다. 심장에 고장이 나면 펌프질도 잘 못하고 혈액과 영양소도 내보내지 못한다. 이것이 심부전이다. 심부전은 치료하지 않으면 진행 속도가 빨라지면서 악화한다. 말기 심부전의 경우 1년 이내 사망률이 50%를 넘어선다. 이 교수는 “모든 순환기 계통과 심장질환의 종착역이 심부전”이라고 말했다. 심부전이 생기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심근경색과 협심증이다. 심장벽이 두꺼워지는 비후성 심근병증, 확장 심장도 심부전 원인이다. 대동맥판 협착이나 판막 질환도 심부전을 유발한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심부전 환자는 크게 늘고 있다. 이 교수는 “70세 이상의 경우 10% 정도는 심부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 질병에 대한 일반의 이해도는 낮다. 관련 학회가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명 중 1명이 ‘심부전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심부전 환자 절반 이상에서 심장 맥박이 불규칙한 부정맥이 발견된다. 부정맥은 심부전을 더 악화시키는,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최근 들어 젊은 심부전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 교수는 “젊다고 해도 고혈압과 비만이 있다면 갑자기 심장에 과부하가 가해지면서 심부전으로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 심부전이라고 하면 심장이 뛰지 않는 상태만 떠올린다. 아니다. 혈액을 내보낼 때의 심박출률(心搏出率)이 정상치의 50% 미만이면 심부전으로 진단한다. 간혹 심박출률이 정상인데 심부전인 경우도 있다. 따라서 심박출률만으로 병을 진단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 교수는 “이외에도 여러 증세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심부전으로 진단한다”고 말했다. ● 이런 증세 나타나면 위험 심부전이 의심되는 증세를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우선, 숨이 찬다. 오르막길을 걸을 때 특히 더 숨이 차다. 중간에 쉬지 않으면 언덕을 넘어가기 어렵다. 몇 계단 오르지 않았는데도 무척 힘이 든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숨쉬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 교수는 “이 정도까지 방치한다면 심부전이 상당히 심한 상태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증세는 폐질환이나 심리적 문제가 원인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병원에서 정확한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태다. 둘째, 다리가 붓는다. 심장 펌프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심장에서 가장 먼 부분에 있는 혈액을 끌어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력 때문에 혈액은 다리에 쌓인다. 이른바 울혈(鬱血)이 생기는 것. 처음에는 오래 앉아 있을 때만 다리가 붓는다. 잘 때 다리를 벽에 올리고 자면 부기가 빠진다. 점점 심해지면 손가락으로 정강이뼈 주변 살을 눌렀을 때 움푹 팬 부분이 복원되지 않는다. 셋째, 누우면 기침이 자주 나오고 호흡이 더 어렵다. 앉거나 서 있을 때는 증세가 덜 하다. 이는 심부전으로 인해 폐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폐 X레이를 찍어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물이 찼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누우면 중력에 따라 물이 폐 뒤쪽에 고이게 되고, 물이 차 있는 만큼 순환하는 산소량이 적기 때문에 기침을 자주 하게 된다. 심부전을 의심할 만한 증세는 더 있다. 목 부위 혈관(경정맥)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오기도 한다. 혈액이 심장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심장판막에 문제가 있거나 심장 자체 기능이 떨어지면 혈액 순환이 안 되고 그 부위 혈관만 툭 튀어나오는 것. 장 기능을 활성화하는 혈액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해 장의 점막이 붓기도 한다. 이 경우 장 기능이 심하게 떨어진다. 몸 안에 부종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체중이 늘어나는 것도 심부전 증세다. 심부전이 심하면 간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간부전이 온다. 이 경우 피로감이 너무 심해 움직이기조차 힘들어진다. ● 원인에 맞춰 치료 심장 펌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에 불필요하게 많은 체액이 몸에 쌓인다. 이 체액을 처리하려면 심장은 그만큼 더 무리하게 된다. 따라서 처음에는 심장 부담을 줄이기 위해 몸에 남은 체액을 빼낼 수 있도록 이뇨제를 쓴다. 동시에 심장이 나빠지는 여러 이유를 찾아 그에 맞는 약물을 처방한다. 과도한 교감신경을 차단해 심장 박동을 늦추고 압력을 줄이면서 심장을 달래 주거나 혈압을 낮추는 약물을 쓰기도 한다. 심부전 환자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건강 상태가 조금 좋아졌다고 해서 약을 끊으면 안 된다. 이 경우 50%는 6개월 이내에 다시 악화한다. 약을 꾸준히 먹는다면 20∼30%는 건강을 회복한다. 이 교수는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나머지 환자들도 사망 위험을 줄이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치료 목표”라고 설명했다. 혈관이 좁아진 게 원인이라면 스텐트 시술을 하기도 한다. 판막이 망가졌으면 인공판막을 삽입한다. 심부전 말기에는 심장 기능을 대신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에크모라는 생명 유지 장치를 쓰거나 인공 펌프 비슷한 것을 넣어 이른바 인공심장 역할을 하게 한다. 심부전은 돌연사의 주범이기도 하다. 부정맥 중에서 심실세동, 심실빈맥 같은 치명적 질환은 발생 후 몇 분 이내에 사망할 수 있다. 심실세동과 심실빈맥은 심부전일 때 4∼5배까지 발생 위험이 커진다. 이를 막기 위해 심장이 멈췄을 때 자동 전기 충격을 주는 장치를 삽입하기도 한다. 3개월 이상 심부전 치료를 받았는데 심장 기능이 회복되지 않고, 돌연사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는 환자에게는 이 장치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 평생 생활 습관 관리해야 이 교수는 “암은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반면 심부전은 생활 습관 영향이 무척 크다”고 말했다. 가령 심부전 환자의 80%가 고혈압을 앓고 있을 때, 심부전을 예방하려면 고혈압 관리는 필수라는 얘기다. 이 교수는 고혈압을 방치했다가 심부전으로 응급실에 실려 온 50대 중반 남성 김석진 씨(가명) 사례를 들려줬다. 김 씨는 평소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별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병원에 다니지 않았다. 그러다 호흡이 곤란해지고 다리가 퉁퉁 부었다. 응급실에서 심장초음파 검사를 해 보니 심박출률이 20%에 불과했다. 혈압도 180/110㎜Hg으로 상당히 높았다. 폐에도 물이 차 있었고 콩팥 기능도 50%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이 교수는 이뇨제, 혈압강하제, 심부전 치료제를 투여했다. 다행히 부기도 빠지고 체액량이 줄어들면서 혈압도 떨어져 김 씨는 1주일 후 퇴원할 수 있었다. 4개월 후에는 예전 건강을 되찾았다. 이 교수는 “결과는 좋았지만, 만약 김 씨가 평소 고혈압을 관리했더라면 응급 상황을 맞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평소 건강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부전을 예방하려면 혈압 외에도 관리해야 할 게 많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되 과식을 피하면서 체중을 조절해야 한다. 유산소 운동은 매주 3회 이상은 하는 게 좋다. 담배는 끊어야 하고, 스트레스를 잘 다스려야 한다. 이 교수는 “이 예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실천에 있다. 아는 것보다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2025-05-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