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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하게 살아오거나 남의 돈을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는 사람은 그 마음을 쉽게 못 고친다. 벌 받을 땐 벌 받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988년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하던 시절부터 알게 된 김창규 씨(77)는 당시 이 후보가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화투 치다가 교도소 간 친구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딱 잘라서 거절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때는 섭섭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이 후보의 면면을 전달하기 위해 성장 과정과 삶의 궤적을 따라 그를 기억하는 지인 20여 명을 찾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이 후보에 대해 “정의롭고 마음 먹은 것은 꼭 해내는 사람”부터 “위험한 사람”이라는 주장까지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 초교 졸업 후 6년간 소년공 생활 이 후보는 1963년(호적상 1964년) 화전민이 살던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크레파스나 도화지 같은 준비물을 학교에 챙겨 간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화투 노름을 하다가 밭을 날리고 집을 나가 3년간 돌아오지 않았다. 이 후보 뒷집에 살았던 삼계초 3년 후배 김홍락 씨(59)는 “동네가 다 초가집이었고, 내가 초교 2학년 때쯤에야 도로가 뚫려서 버스가 다니고, 전기가 들어왔다. 집에서 삼계초까지 4∼5km 되는 거리였고, 가방이 없어서 보자기를 둘러메고 다니던 시절”이라며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이 후보는) 유달리 씩씩하고 어렸을 때부터 지도자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초등학교 성적표에는 ‘동무들과 사귐이 좋고 매사 의욕이 있으나 덤비는 성질이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따귀를 27대나 맞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씨는 “정의로운 면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집안이 어려워서인지 좀 거칠었다”고 했다. 1976년 초교를 졸업한 직후 아버지가 정착한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꼭대기 월셋집으로 온 가족이 상경했다. 이후 이 후보는 6년간 목걸이 공장을 거쳐 고무부품 공장, 냉장고 공장 등을 전전했다. 아버지는 동네 쓰레기를 치웠고 어머니는 상대원시장 화장실 입구에서 소변 10원, 대변 20원의 이용료를 받고 청소를 했다. 아버지는 자식 공부보다 번듯한 집 한 채 마련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소년공 선배들은 아이스크림 ‘브라보콘’ 내기로 신참들에게 권투 경기를 시켰는데 지면 돈까지 잃었다. 이 후보는 “일당 600원을 받던 시절로 브라보콘이 100원가량 했는데 주로 많이 맞고 지고 (그래서 돈을) 뜯겼다”고 했다. 이 후보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나보다 한 살 어린 꼬맹이 여자애가 나이를 두 살이나 속여 나로 하여금 ‘누나’라고 부르게 해 머리끄덩이를 잡아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주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건방지게 놀던 힘 약해 보이는 동료에게 식판을 집어던지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공장 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쓰기도 했다. 소년공 출신 B 씨는 “키는 조그맣고 삐쩍 말라가지고 나이를 속여 공장에 들어와 네 살 많은 형들과 친구를 먹다가 들켜서 맞기도 했다”며 “독종이라 그렇게 맞아도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해서 더 맞았다”고 전했다. ● 2차례 ‘자살 시도’ 이기고 장학생 된 李스키 장갑과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대양실업을 다니던 중 공장에서 맞지 않고, 돈 뜯기지 않고,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공장 밖을 다닐 수 있는 고졸 출신 대리처럼 되고 싶었다.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3개월 만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당시에도 직원이 2000명 넘는 오리엔트로 공장을 옮겨 도금실과 래커실에서 소년공 생활을 하면서도 단과학원에 다녔다. 공장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공돌이 주제에 맞게 놀아!”라며 구박을 받았다. 오리엔트시계 관계자는 “1980년대 성남의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한 푼이 아쉬운 소년공들이 바글바글했다”고 말했다.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아버지는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단칸방에서 한밤중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그에게 “그깟 공부 따위 해서 뭐 해? 잠 좀 자자, 잠 좀!”이라고 고함을 치는 아버지였다. B 씨는 “그때는 검정고시 하고 나오면 직장에서 주임 정도를 해줬다”며 “그런 주임 같은 거 달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암기력이 좋으니까 다른 애들보다 일찍 붙어서 중앙대 가고 사법시험 패스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업 도중 왼쪽 손목이 프레스기에 눌렸지만 수술도 받지 못했다. 이 후보는 이때 후유증으로 왼팔이 굽었고 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가난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 팔을 못 쓰게 될 것이라는 절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다락에 연탄불을 피우고 수면제 스무 알을 먹었지만 연탄불은 꺼져 있었고 멀쩡하게 눈을 뜨고 일어났다. 수면제를 찾는 소년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약사는 수면제 대신 소화제 같은 것을 잔뜩 줬던 것이다. 1981년 사립대학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특별장학생 제도가 도입되자 마음을 다잡고 이를 목표로 대입을 준비했다. 3학년까지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고 매월 20만 원의 생활비를 받는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20만 원은 공장에서 받던 월급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어머니는 “재맹아, 내는 인자 죽어도 한이 없대이”라고 했다. 이 후보가 20대일 때부터 알고 지낸 효림 스님은 “(이 후보는) 어머니 이야기할 때 보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일반적으로 옛날에 고생한 게 부끄럽기도 하고 가난한 시절에 고생한 걸 숨기고 싶고 이야기 안 하고 싶은데도 (이 후보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1986년 겨울 스물셋 나이에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아버지는 그해 3월 위암 재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고 합격 사실을 전하자 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며칠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공부를 지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와도 화해하게 됐다.● 연수원 시절 대법원장 임명 반대 성명 초안 써사법연수원 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은근히 지연과 학연, 집안을 자랑하는 연수생들이 많았고 몇몇은 노골적으로 연줄 없는 연수생을 무시했다. 그 대신 그는 운동권의 지하서클 조직인 비공개 기수 모임에서 활동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민주당 정성호 의원, 최원식 문병호 전 의원 등이 참여하는 모임이었다. 이들은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지명된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에 반대하는 연수원생 성명을 주도했다. 한 지인은 당시 성명의 초안은 이 후보가 작성했고 문형배 전 재판관이 성명서 사본을 복사해오는 역할을 맡았다고 회상했다. 이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에게 감명을 받아 인권변호사의 길을 마음속에 굳혔다.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C 씨는 “소년공 시절 등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했지만 당시에도 부자나 기득권 있는 사람에 대한 꽤 깊은 적개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한 게 아니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며 “(이 후보는) 딱 사람을 조지는 스타일이었다. 원래 검찰에 가고 싶어 했지만 아무래도 기수 모임 활동한 게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2년 차 때 인권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실습을 했고 성남지원에서 판사 시보로, 고향인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성적이 중상위권이어서 판검사 임용이 가능했지만 성남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고 성남공단의 노동 사건과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건, 경원대와 한국외국어대 등 구속된 학생들의 변호는 물론이고 시국사건 양심수들의 사건도 무료로 맡았다. 일주일에 2번은 이천노동상담소로 가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노동법률 상담을 했다. 1990년 8월 같은 교회에 다녔던 이 후보의 셋째 형수와 김혜경 씨의 어머니가 만남을 주선하면서 이 후보와 김 씨는 가정을 꾸렸다. 이 후보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김 씨에게 청혼했고 답이 없자 소년공 때부터 10년간 써온 일기장을 줬다. 두 사람은 1991년 3월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직장인인 장남 동호 씨(33)는 올 6월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차남 윤호 씨(32)도 대학 졸업 후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성남=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성남=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성남=최미송 기자 cms@donga.com}
“부정하게 살아오거나 남의 돈을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는 사람은 그 마음을 쉽게 못 고친다. 벌 받을 땐 벌 받아야 한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988년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하던 시절부터 알게 된 김창규 씨(77)는 당시 이 후보가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화투 치다가 교도소 간 친구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딱 잘라서 거절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때는 섭섭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이 후보의 면면을 전달하기 위해 성장 과정과 삶의 궤적을 따라 그를 기억하는 지인 20여 명을 찾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이 후보에 대해 “정의롭고 마음 먹은 것은 꼭 해내는 사람”부터 “위험한 사람”이라는 주장까지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 초교 졸업 후 6년간 소년공 생활 이 후보는 1963년(호적상 1964년) 화전민이 살던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크레파스나 도화지 같은 준비물을 학교에 챙겨 간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화투 노름을 하다가 밭을 날리고 집을 나가 3년간 돌아오지 않았다. 이 후보 뒷집에 살았던 삼계초 3년 후배 김홍락 씨(59)는 “동네가 다 초가집이었고, 내가 초교 2학년 때쯤에야 도로가 뚫려서 버스가 다니고, 전기가 들어왔다. 집에서 삼계초까지 4~5km 되는 거리였고, 가방이 없어서 보자기를 둘러메고 다니던 시절”이라며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이 후보는) 유달리 씩씩하고 어렸을 때부터 지도자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이 후보의 초등학교 성적표에는 ‘동무들과 사귐이 좋고 매사 의욕이 있으나 덤비는 성질이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따귀를 27대나 맞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씨는 “정의로운 면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집안이 어려워서인지 좀 거칠었다”고 했다.1976년 초교를 졸업한 직후 아버지가 정착한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꼭대기 월셋집으로 온 가족이 상경했다. 이후 이 후보는 6년간 목걸이 공장을 거쳐 고무부품 공장, 냉장고 공장 등을 전전했다. 아버지는 동네 쓰레기를 치웠고 어머니는 상대원시장 화장실 입구에서 소변 10원, 대변 20원의 이용료를 받고 청소를 했다. 아버지는 자식 공부보다 번듯한 집 한 채 마련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소년공 선배들은 아이스크림 ‘브라보콘’ 내기로 신참들에게 권투 경기를 시켰는데 지면 돈까지 잃었다. 이 후보는 “일당 600원을 받던 시절로 브라보콘이 100원가량 했는데 주로 많이 맞고 지고 (그래서 돈을) 뜯겼다”고 했다. 이 후보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나보다 한 살 어린 꼬맹이 여자애가 나이를 두 살이나 속여 나로 하여금 ‘누나’라고 부르게 해 머리끄덩이를 잡아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주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건방지게 놀던 힘 약해 보이는 동료에게 식판을 집어 던지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공장 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쓰기도 했다. 소년공 출신 B 씨는 “키는 조그맣고 삐쩍 말라가지고 나이를 속여 공장에 들어와 네 살 많은 형들과 친구를 먹다가 들켜서 맞기도 했다”며 “독종이라 그렇게 맞아도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해서 더 맞았다”고 전했다. ● 2차례 ‘자살 시도’ 이기고 장학생 된 李스키 장갑과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대양실업을 다니던 중 공장에서 맞지 않고, 돈 뜯기지 않고,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공장 밖을 다닐 수 있는 고졸 출신 대리처럼 되고 싶었다.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3개월 만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당시에도 직원이 2000명 넘는 오리엔트로 공장을 옮겨 도금실과 래커실에서 소년공 생활을 하면서도 단과학원에 다녔다. 공장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공돌이 주제에 맞게 놀아!”라며 구박을 받았다. 오리엔트시계 관계자는 “1980년대 성남의 경제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한 푼이 아쉬운 소년공들이 바글바글했다”고 말했다.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아버지는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단칸방에서 한밤중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그에게 “그깟 공부 따위 해서 뭐 해? 잠 좀 자자, 잠 좀!”이라고 고함을 치는 아버지였다. B 씨는 “그때는 검정고시 하고 나오면 직장에서 주임 정도를 해줬다”며 “그런 주임 같은 거 달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암기력이 좋으니까 다른 애들보다 일찍 붙어서 중앙대 가고 사법고시 패스한 것”이라고 말했다.프레스기에 눌린 손목 통증은 심해졌지만 수술도 받지 못했다. 이 후보는 이때 후유증으로 왼팔이 굽었고 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가난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 팔을 못 쓰게 될 것이라는 절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다락에 연탄불을 피우고 수면제 스무 알을 먹었지만 연탄불은 꺼져 있었고 멀쩡하게 눈을 뜨고 일어났다. 수면제를 찾는 소년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약사는 수면제 대신 소화제 같은 것을 잔뜩 줬던 것이다. 1981년 사립대학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특별장학생 제도가 도입되자 마음을 다잡고 이를 목표로 대입을 준비했다. 3학년까지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고 매월 20만 원의 생활비를 받는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20만 원은 공장에서 받던 월급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어머니는 “재맹아, 내는 인자 죽어도 한이 없대이”라고 했다. 이 후보가 20대일 때부터 알고 지낸 효림 스님은 “(이 후보는) 어머니 이야기할 때 보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일반적으로 옛날에 고생한 게 부끄럽기도 하고 가난한 시절에 고생한 걸 숨기고 싶고 이야기 안 하고 싶은데도 (이 후보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1986년 겨울 스물셋 나이에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아버지는 그해 3월 위암 재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고 합격 사실을 전하자 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며칠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공부를 지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와도 화해하게 됐다.● 연수원 시절 대법원장 임명 반대 성명 초안 써사법연수원 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은근히 지연과 학연, 집안을 자랑하는 연수생들이 많았고 몇몇은 노골적으로 연줄 없는 연수생을 무시했다. 그 대신 그는 운동권의 지하서클 조직인 비공개 기수 모임에서 활동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민주당 정성호 의원, 최원식 문병호 전 의원 등이 참여하는 모임이었다. 이들은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지명된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에 반대하는 연수원생 성명을 주도했다. 한 지인은 당시 성명의 초안은 이 후보가 작성했고 문형배 전 재판관이 성명서 사본을 복사해오는 역할을 맡았다고 회상했다. 이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에게 감명을 받아 인권변호사의 길을 마음속에 굳혔다.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C 씨는 “소년공 시절 등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했지만 당시에도 부자나 기득권 있는 사람에 대한 꽤 깊은 적개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한 게 아니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며 “(이 후보는) 딱 사람을 조지는 스타일이었다. 원래 검찰에 가고 싶어 했지만 아무래도 기수 모임 활동한 게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2년 차 때 인권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실습을 했고 성남지원에서 판사 시보로, 고향인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성적이 중상위권이어서 판검사 임용이 가능했지만 성남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고 성남공단의 노동 사건과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건, 경원대와 한국외국어대 등 구속된 학생들의 변호는 물론이고 시국사건 양심수들의 사건도 무료로 맡았다. 일주일에 2번은 이천노동상담소로 가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노동법률 상담을 했다. 이 후보는 1990년 8월 같은 교회에 다녔던 이 후보의 형수와 김혜경 씨의 어머니가 만남을 주선하면서 두 사람은 가정을 꾸렸다. 이 후보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김 씨에게 청혼했고 답이 없자 소년공 때부터 10년간 써온 일기장을 줬다. 두 사람은 1991년 3월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직장인인 장남 동호 씨(33)는 올 6월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차남 윤호 씨(32)도 대학 졸업 후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성남=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성남=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18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집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배춧잎 투표지’ ‘소쿠리 투표’ 등 부실 관리에 대해선 참 죄송하게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선거인 또는 투개표사무원 등의 실수나 착오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나, 그것이 선거 조작 등 부정선거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에도 중앙선관위 청사 앞에는 “범죄조직 선관위는 해체하라” 등을 외치는 부정선거론자의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노 위원장은 최근 댄 애리얼리 미국 듀크대 심리학 및 행동경제학부 교수가 쓴 ‘미스빌리프(misbelief)’를 읽고 있다고 했다. 이성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가짜뉴스 등 비이성적인 것들을 믿게 되는 이유에 대해 쓴 책이다. 노 위원장은 “인간의 기본적인 뇌 구조나 생각, 심리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며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당일 선거연수원에 머무르던 중국 간첩단 해커들이 체포돼 미군 오키나와 기지로 압송됐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그게 현대사회에서 가능한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특히 언론출판의 자유를 유튜브 등 디지털 매체에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며 “하루가 다르게 역정보나 허위 정보가 나오는 상황이라면 진실이 드러날 기회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직 대법관이자 선관위 수장으로서 부정선거 음모론이 유튜브 등을 통해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것에 대한 우려와 고민이 묻어 있는 듯했다. 다음은 일문일답.》―부정선거론자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근거 없이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저지를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동안 그런 부분들에 대해 정치권의 말씀도 많이 듣고 나름대로 설명을 했는데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렇지만 우리 민주 사회의 가장 근본이 되는 선거 투표 절차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민의 신뢰가 필요하다. 그래서 저희는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계속 최선을 다하겠다. 가장 구체적인 제도나 절차 관리부터 시작해 큰 흐름을 통해서 계속 해법을 찾고 이야기를 듣고 고쳐 나가도록 하겠다.” ―위원장께서 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부정선거가 발생할 수 없다고 단언했는데, 부정선거 의혹이 커진 데는 배춧잎 투표지나 소쿠리 투표 등 선관위의 일부 부실 관리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배춧잎 투표지’ ‘소쿠리 투표’ 등 부실 관리에 대해선 참 죄송하게 생각하고, 그런 면에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쿠리 투표는 2022년 대선 사전투표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오미클론 확산 과정에서 우리가 좀 세심하게 챙기지 못했다. 그 후에 전임 위원장이 물러났다. 직후 내부 조사도 했고 제가 부임하고 난 뒤 특별 감찰도 했다. 공직선거에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협조 받은 약 30만 명의 외부 인력이 개표사무원으로 참여한다. 그만큼 그 과정에서 선거인 또는 투개표사무원 등의 실수나 착오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나, 그것이 선거 조작 등 부정선거의 근거가 될 순 없다. 지금까지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은 이러한 복잡하고 다양한 선거 절차와 이에 대한 이해 부족, 선거인의 다양한 투표 행태, 투·개표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실수 등이 정치 양극화, 일부 유튜브 채널의 과도한 사익 추구, 확증편향 심화 등 사회현상과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유튜브를 통해 근거 없는 주장들이 확산되고 있다. “정말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해킹을 해가지고 투표함을 바꿔치기 한다는 게 우리 사회에서 상식적으로 가능한가. 그(부정선거) 과정에서 누구 한 분이라도 양심선언을 하면 영웅이 될 수 있는데 없지 않나. 지난번에 총선 할 때부터 도입한 수검표라든지, 폐쇄회로(CC)TV 24시간 공개라든지, 최선을 다해 제도적인 보완을 하고 이번 선거에서도 국민적 관심이 높은 투·개표 절차의 모든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릴 것이다.” ―선관위가 ‘공정선거참관단’을 운영하기로 했다. “정치 관련 학회가 주도해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된 공정선거참관단이 사전투표, 선거일투표, 개표 등 주요 투·개표 절차 사무 현장을 직접 참관하는 것이다. 참관단 활동은 언론사 동행 취재, 선관위 홈페이지 및 유튜브 게시 등으로 국민에게도 선거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선거 종료 후 참관단 운영 결과를 포함한 외부 평가를 통해 선거 관리 과정의 투명성도 확보하겠다. 학회가 자율적으로 교수님과 학생 등 참관단을 구성하고 우리는 주어진 예산에서 최대한 반영할 예정이다. 보여드릴 수 있는 건 다 보여드려서 국민들이 이제 의혹을 좀 제대로 한번 풀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선거에서 또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사전투표자 수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어 사전투표소별 투표자 수를 공개할 예정이다. 중앙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의 선거통계 시스템은 1시간 단위(오전 7시∼오후 6시)로 시·도별, 구·시·군별 사전투표율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으나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는 사전투표소별 관내·관외 사전투표자 수를 시간대별로 추가로 공개하는 것이다. 선관위가 제공하는 사전투표소의 시간대별 투표자 수와 참관인이 직접 헤아린 투표자 수를 시각마다 비교할 수 있어 사전투표자 수가 부풀려지지 않았음이 증명될 것이다.” ―본보가 〈6·3대선, 부정선거 음모론 끝내자〉 시리즈를 통해 정당과 보안 전문가, 학계 등이 참여하는 ‘민관정 검증단’ 구성, 전 투·개표 과정 녹화 등을 제안했다. “동아일보가 구체적으로 제안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민관정 검증단’은 앞서 언급한 공정선거참관단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처음 실시하는 만큼 다양한 인사가 참여해 투·개표 과정을 참관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투표함 온라인 24시간 공개는 우리도 고민을 했었는데, 안정적인 중계시스템이 담보돼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페이크 영상 기술이 뛰어나니까 의혹만 더 커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투·개표 사무원 인건비 증액에 대한 요구 등 예산 문제가 있다. 사전투표 신고제는 입법 정책적 결정 사항으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정치권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투·개표 과정 녹화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면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하겠으며 장기 과제로도 잘 검토하겠다.” ―사전투표제 폐지 등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14년도에 소위 부재자투표가 폐지되면서 여야 합의로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저희는 그야말로 법에 정해진 대로 선거 관리를 하는 입장이다. 국민의 불신을 자꾸 불러일으킬 정도의 제도 같으면 국회에서 한번 근본적인 고민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선관위 경력채용 비리 의혹은 독립기관으로 외부의 감시를 덜 받아서 벌어진 일 아닌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맞다. 변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1995년 울진군 선관위원장을 할 때 보니 당시 선관위는 비인기 부처여서 다른 행정부 공무원들이 한 직급 올려 선관위에 9급이 8급으로 오고 7급이 6급으로 오고 이렇게 시작이 됐다. 가령 전남 해남에서 보궐선거를 해야 되는데, 마침 직원이 한 명 빠진 상황이라고 하면 누가 해남에 오겠나. 그러다 보니 이게 우선 급하게 지인한테 ‘좀 와달라’고 한 측면이 있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녀를 위해 규정을 바꾸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제 그런 ‘비다수 경력채용’은 폐지했다.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규정도 정비하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도록 철저히 하겠다.” ―일각에선 선관위 구성과 관련해 ‘법관의 겸직 및 비상근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번에 전임 사무총장이 자녀 경력 채용 논란 때문에 물러나면서 후임 총장을 뽑아야 될 때 고민을 많이 했다. 판사들은 자기가 판결 내린 재판에 대해 정치적인 편향성이 있다는 식으로 폄훼 받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 나름대로 대외적으로도 정치적 중립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교수님들도 중도에 가까운 분이 많지만 명망이 높은 분일수록 공천심사위원 등 특정 정당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는 분들이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분들은 모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2022년 5월부터 3년가량 중앙선관위원장직을 맡았는데 소회가 궁금하다. “제가 선관위원장으로 와보니까 제일 불편한 게 넥타이 고르기다. 빨간색, 파란색 다 맬 수 없고…(웃음),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저는 평생 재판을 하다 보니까 정무적 판단이나 홍보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선거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한 핵심 제도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 여러분께서도 투표에 적극 참여해 주시고 정책과 공약 그리고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꼼꼼히 따져 희망과 통합으로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적임자를 뽑아 주시길 당부드린다. 정당·후보자 및 국민 모두가 선거 결과에 승복해 화합의 대한민국이 되기를 희망한다.”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63)△한양대 법학과△사법연수원 제16기△대법원 재판연구관△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서울북부지법 법원장△서울고법 부장판사△현 대법관·중앙선관위원장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1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입구에 위치한 행정안내동은 한적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직무정지 이전까지 대통령실이 주관하는 각종 회의나 행사 참석을 위해 방문 출입증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던 평상시 모습이 사라진 것.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용산 대통령실 정문에 걸린 봉황기가 내려졌고, 청사 1층에 위치한 윤 전 대통령의 활동사진이 나오던 전광판도 정지됐다. 청사 정면에 그대로 걸려 있는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는 현수막이 무색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차기 대선 주자들이 당선 시 용산에 가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면서 사실상 ‘용산 시대’는 3년 만에 끝을 맺게 됐다. 청사가 도감청에 취약하다는 보안상 우려와 함께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파국이 군에 둘러싸인 용산의 지리적 위치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도 명분이 되고 있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우리는 철거민 신세”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부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은 당 복귀나 선거캠프행을 택하기도 하고 할 일이 없어진 직원들은 자리만 지키거나 청사 주변을 산책하며 매일 하루에 3만 보씩 걷는다고 한다. 불과 3년 전 윤 전 대통령은 용산시대를 열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상징인 청와대를 나와 최고 지성들과 가까이서 머리를 맞대고 일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며 청와대도 개방했다. 대통령 집무실에 원형 테이블을 놓아 소통하고 같은 층에 수석실 등도 자리 잡게 해 수시로 토론하겠다고 홍보를 했고, 도어스테핑 등을 통해 국민을 대표한 기자들과 상시 소통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윤 전 대통령의 초심은 지켜지지 못했다. 소통은 명분에 그쳤을 뿐 용산 이전 결정은 윤 전 대통령 부부의 무속신앙에 대한 믿음과 무관치 않다는 ‘주술 논란’이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소통도 없이 ‘충암파’ 등 소수와 상의해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도어스테핑은 본인 뜻과 달리 불편한 질문이 나오자 61회 만에 폐지됐다. 소통의 상징이었던 용산이 윤 전 대통령의 독선과 독단으로 불통의 상징이 돼버린 것이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국민 혈세만 낭비됐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 당선인 시절 496억 원의 예비비를 신청하며 “1조 원이니 5000억 원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근거가 없다”고 단언했지만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832억 원이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합동참모본부의 이전 비용까지 합치면 수천억 원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각 당의 대선 주자들은 대부분 용산 대신 청와대 복귀나 세종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보듯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실이 옮겨진다면 혼선과 혈세 낭비만 반복될 뿐이다. 대통령실 이전은 대선 후보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각 당의 중장기적인 계획이나 비전 아래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위원회 등을 거쳐 결정돼야 할 것이다. 대통령실의 지리적 위치를 바꾼다고 성공한 정부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윤석열 정부에서 얻길 바란다. 대선 다음 날 취임하는 차기 대통령은 용산에 들어가지 않겠다면 청와대나 정부서울청사 등에 임시 집무실을 얻은 뒤 어디로 옮길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개혁신당 대선 후보인 이준석 의원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 영국 다우닝가 10번지처럼 시민과 가까이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꾸리겠다는 구상을 밝혔다.이 의원은 15일 동아일보 유튜브 〈법정모독〉에 출연해 “(대통령에 당선돼) 서울에도 집무실을 둬야 되는 상황이면 영국 다우닝가처럼 시민과 가까이 있는 집무실을 만들겠다”며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미국 대사관, 서울역사문화박물관, 송현동 부지를 합쳐 대통령실을 제대로 꾸며보고 싶다”고 설명했다.이 의원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석열 대통령 파면 하루 뒤인 4월 5일 나눴던 대화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오 시장이 “인간적 고뇌에 가득찬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 이원은 “(오 시장이) 8대 0으로 인용이 됐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큰 잘못을 대통령이 한 건데, 보수 진영이 반성적 자세를 보여야 되는 것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셨다”며 “다른 사람들이야 대권이 눈이 멀어 그렇게 한다 치더라도, 나라도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는 말씀을 그때 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수출 산업단지의 러스트벨화에 대한 대응 공약 발표’ ‘국회 합의 추대를 통한 국무총리 임명’ 등 비전을 제시하면서 “과학적 마인드로 미래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 나가는 것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의 후보 단일화 가능성을 묻자 “단일화를 추진하게 된다면 ‘어차피 국민의 힘이 한통속이네’ 해서 그걸 담아내지 못한다”며 “저는 냉정하게 이기기 위해 가지고 단일화를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앞으로 미래를 생각하면 이제 어쨌든 후보님이 대선 출마 선언하셨고, 지금 매일같이 지역 인사 다니고 계시고. 오늘은 포항 갔다 오셨다고?“오늘 아침에 이제 포항을 갔다 왔는데요. 새벽이죠. 5시부터 이제 인사를 드렸는데 포항의 형산강을 넘어서 남쪽으로 가는 이제 포스코로 들어가는 관문에서 인사를 드렸는데 포항이 미국 대선에서러스트벨트라는 말이 등장했잖아요. 그런데 포항과 구미와 창원과 여수 우리의 자랑할 만한 그런 핵심 수출 산업단지들이 지금 러스트벨트화 돼가고 있습니다. 근데 이건 다름 아닌 중국의 부상에 우리가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중국이 기술 경쟁 원가 경쟁으로 앞서 치고 나갈 때 그것에 우리가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주요 산업단지가 요즘 핵심 산업은 빠져나가고 그러니까. 구미도 보면요. 구미 산단의 전성기는 엘지 필립스와 삼성의 휴대폰 공장이 양대 산맥처럼 떠받들고 있을 때가 거기가 제일 전성기였어요. 그럼 지금은 LG의 어쨌든 LCD 이런 것들은파주로 많이 갔고. 그리고 삼성전자 휴대폰 생산 기지는 잘 아시는 것처럼 베트남으로 갔고, 포항제철도 포스코 동국제강 이런 곳들이 공장을 이제 조금씩 닫기 시작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이 쇠락을 어떻게 지금 우리가 극복할 것이냐. 그 포항 같은 경우에도 새로운 산업들을 물색해 가지고 데이터센터산업도 유치하려고 그러고. 거기에 더해서 뭐 배터리 소재 산업도 유치하려고 하고 하지만 그래도 포항이 상징하던 중후장대함에 제철 철강공업의 메카라는그 느낌보다는 약하거든요. 저는 이게 아마 한국의 러스트 벨트들을 어떻게 우리가 대응할 거냐 이걸 저는 앞으로 공약 꾸준히 발표하려고 합니다.”―이제 대선을 이기려면 결과적으로 국민의힘하고 힘을 합쳐야 된다 단일화해야 된다 이런 얘기 많이 말씀하시지 않나요?“그런데 저는 제가 동탄 선거도 겪어보고. 개혁신당으로, 근데 동탄 선거에서 당선돼 보고 느낀 게 뭐냐 하면은 그 동탄이 민주당이 65%인 지역이에요. 원래 65대 35였거든요. 그전 선거에서. 그런데 이번에 민주당 후보가 39로 줄어들고 그 다음에 국민의힘 후보가 원래 35 나오던 곳인데 17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럼 제가 민주당에서 거의 한 26을 가져온 거고 국민의힘에서 17 정도를 가져온 거거든요. 그러면요, 제가 민주당 표를 가져오는 것도 상당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거를 간과하시면 안 되는 게 이재명 대표가 45% 이렇게 지금 나오는 조사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사들이 유지된다면은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이재명 대표의 비현실적인 그런 공약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가지고 그 표들을 끌어내서 이재명 대표 지지율을 30%로 묶어내야 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그 민주당이, 민주당 계열 지지자들이 그래 우리가 도저히 국민의힘을 못 찍어 하는 표를 담아야 되거든요. 제가 만약에 국민의힘과 단일화나 이런 걸 추진하게 된다면요. 저거 어차피 국민의 힘이 한통속이네 이렇게 해서 그걸 담아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재명 대표는 안정적으로 40%대 후반 득표를 얻게 될 것이고 그럼 이길 방법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냉정하게 이기기 위해 가지고 단일화를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제일 중요한 것은 후보님의 비전, 이제 국가 지도자로서의 비전이 뭔지 좀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제가 방금 두 가지를 살짝 얘기했는데요. 첫째로는 지금 트럼프와 그리고 중국의 어쨌든 변수 때문에라도 국제 환경에 대해 가지고 조금 그래도 이해를 가지고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국내에서는 검찰 동원해 가지고 누구 때리고 이러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인 것처럼 하지만, 해외만 보내놓으면 뭐다른 나라 정상들끼리는 서로 어떻게든 라포를 형성하려고 이렇게 친해지려고 하는데 우리나라 정상들은 수직 자세로 이렇게 차렷 자세로 서가지고 서 있다든지, 아니면은 또 건들거리면서 주변에 수행원들한테 있어 보이는 척한다고 뭐 바이든 날리면 이런 욕설이나 하고 그러니까. 저는 아니면 뭐 어떤 분은 꾸벅꾸벅 졸고 있고. 저는 이런 거 자체가 애초에 이분들이 방구석 여포에 가깝다는 거예요. 글로벌 환경에서 어떻게 소통해야 되고 어떤 아젠다가 다뤄지는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가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거죠. (중략) 그런 차이가 하나 있고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과학 기술입니다. 중국과의 경쟁이 앞으로 격화될 텐데 중국은 지금까지 정치 지도자의 상당수가 공대 출신, 자연계나 아니면 공대 출신으로 나와가지고. 옛날에 뭐 후진타오 이런 사람들 원자바오 이런 사람들 하다못해 수리 과학과 댐 만드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까지 다 있었거든요. 화학 뭐 이런 식으로. 저는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공학적인 사고, 과학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 국가 전체가 이공계적인 마인드로 돌아간다는것 자체가 큰 강점이 됩니다. 제가 계속 지적하지만 저는 제가 이공계 출신이라 가지고 뭔가를 할 때 가설을 세웁니다. ‘자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거야’ 그 다음에 그걸 검증하기 위한 과학적인 절차를 제가 거쳐 가거든요. 하다못해 그 자연 과학이 아니라도 돼요. 사회과학도 괜찮아요. 예를 들어 경제학을 했던 분들 같은 경우에는 내가 이런 가설을 세우면 이런 게 현상이 발생되겠지라는 걸 계속 시험하거든요. 법학하신 분만 좀 다릅니다. 법학하신 분들은 미래가 없어요. 왜냐. 니가 지금까지 해놓은 일로 널 재단하겠다예요.그러다 보니까 윤석열 과거에 밖에 관심이 없는 겁니다. 이재명 이분도 법을 전공하신 분이고 법률가시잖아요. 과거에 밖에 관심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법률가 정치는 끝내야 된다 이런 생각입니다. 뭔가 과학적인 마인드로 그것이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미래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 나가는 것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접니다.”―오세훈 시장은 도대체 왜 경선 불참하시는 건가요?“제가 사실 4월 4일이 탄핵 판결이었잖아요. 그다음에 4월 5일날 제가 서울시청에 가가지고 오 시장님하고 어 만나고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오 시장님이 개인의 본인에 대한 어떤 것보다 이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아 이게 탄핵이 8 대 0으로 인용됐는데 그렇다면 이거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큰 잘못을 대통령이 한 건데 이쯤 되면 보수 진영이 좀 반성적인 자세를 보여야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셨고. 그리고 오 시장님이 아니 다른 사람들이야 대권에 눈이 멀어 가지고 그렇게 한다 치더라도 나라도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좀 있다라는 말씀을 이미 그때 하시더라고요. 4월 5일에. 그래서 오 시장님이 항상 제가 오 시장님과 교류하면서 항상 그런 진정성 있는 정치를 해오겠다고 항상 해오신 분이기 때문에 그걸 제가 듣는 순간, 아 이게 단순 유불리 문제가 아니구나, 굉장히 내적인 고민이 크시구나라는 생각을 좀 했습니다. 제가 그전에도 이제 오 시장님과는 항상 4월 4일 이전에도 뭐 측근들이나 아니면 오 시장님과 교류를 해 왔기 때문에, 오 시장님이 어떤 생각을 평소에 하고 계시는지 알거든요. 그런데 그날 4월 5일 날 뵀을 때는 굉장히 인간적인 고뇌에 가득 찬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약간의 우려되는 점이 대선에서 어쨌든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조직력이잖아요. 그리고 당장 6월 4일 날 이제 용산에 들어갈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당장 예비 캐비닛부터 꾸려야 되는데 개혁신당만으로 그게 가능하겠냐 이런 우려도 좀 있습니다.“저는 당연히 이제 개혁신당이 당선되면요. 제가 당선되면 개혁신당 제 의석을 내려놔야 되니까 의석이 2석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협치가 강제돼 있습니다. 당연히 보수 진영뿐만 아니라 저는 민주당의원들에게도 장관 자리를 제안할 겁니다. 그리고 이미 머릿속에는 어느 정도 아 저 사람은 꼭 같이 일해보고 싶다. 제가 22대 국회 활동해 보면서 민주당 의원들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민의힘 의원들이야 제가 뭐 그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데 이 문화 자체가 대한민국에 생소할 수 있겠지만 아주 좋은 협치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총리 같은 경우에는 저는 제가 대통령이 되면 6월 3일날 대통령이 되면요. 6월 4일날 당장 국회에 국회의장님 찾아뵙고, 우원식 의장님 또 저희 동네 선배 아닙니까? 노원구에 우원식 의장님 찾아뵙고 의장님 다른 건 몰라도 이번에 신 정부의 총리는 국회에서 잘 합의해서 추대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그 의견을 받아들이겠다. 만약에 여야 합의로 한 분 추천해 줄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은 그 굳이 합의가 안 되면 다수당에서 두 분을 추천해 달라. 그러면 제가 그분 중에 한 분을 고르겠다 이런 방식으로 제가 내각을 짜려고 합니다.”―용산으로 들어가실 건가요? 일단.“저는 뭐 운세나 풍수 기운 이런 걸 보는 사람은 아니지만 용산 대통령실은 그 공간 자체가 이미 불통의 상징이 돼버렸습니다. 저는 그래서 용산 대통령실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생각하고요. 대통령 집무실을 대신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공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총리 집무실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잠시 쓰다가, 저는 세종의 제1, 아니 제2 집무실을 빨리 완성하는 방향으로 가고. 그리고 저는 만약에 서울에도 집무실을 둬야 되는 상황이면은. 저는 영국에 보면 이제 다우닝가 몇 번지 이런 것처럼 총리가 문 열고 나면 바로 이제 길가 이런 것처럼. 저는 시민과 가까이있는 곳을. 사실 청와대도 담벼락에 둘러싸인 약간 그런 공간이잖아요. 용산도 그게 싫다고 해 가지고 갔는데 보니까 그 군 기지 안에 들어가 버렸어요. 뭐 하는 분인지 모르겠는데, 그래서 저는 장소로 보면은 그 사실 광화문 바로 앞에 정부청사가 한 쪽에 있고 그 반대쪽에는 미국 대사관과 서울역사문화박물관이 있잖아요. 그리고 저 뒤로 가 보면 동십자각 바로 오른쪽으로 그 송현동 부지가 있습니다. 지금 공원화 돼 있는 송현동 부지가 있거든요. 이 세 가지 부지 그리고 정부청사 이 네 가지 부지를 합쳐가지고 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제대로 한번 꾸며보고 싶습니다. 그거는 왜냐하면 조금 열려 있으면서 밖에 사람들도 걸어 다니고. 왜냐하면 관용차 타고 다니면서 걷지 않는다는 것이 저는 사람들을 얼마나. 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시민과의 거리를 멀게 하는지를 많이 느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국회의원이 된 다음에도 제가 지하철을 타고 버스 타고 다니는 걸 하는 게 뭐냐 하면 제가 뭐 그거를 뭐 쇼 한다고하는 분도 있는데요. 그게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인생 40년가까이 그렇게 살아왔고요. 그게 익숙하기도 하고요.”▶전체 인터뷰는 동아일보 유튜브 [법정모독]을 확인하세요.유튜브: 네이버TV: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사저에 도착한 뒤 지지자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왔다”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에도 12·3 비상계엄 발동으로 인한 국민 분열과 혼란을 자신의 승리로 규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은 11일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저에 도착해 환영 나온 입주민과 지지자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한 지지자가 “너무 가슴 아파요”라고 하자 윤 전 대통령은 “어차피 뭐 (대통령) 5년 하나 3년 하나…”라며 웃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도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어린아이를 껴안기도 했다. 이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은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공개한 메시지에서도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거나 헌재 결정 승복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나라와 국민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면서 정치 행보를 이어갈 뜻을 내비쳤다. 윤 전 대통령은 당시 한남동 관저에서 퇴거하면서도 관저 입구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을 보였다. 또 ‘과잠’(대학교 학과 점퍼)을 입고 관저 정문 앞에서 기다리던 청년들을 껴안기도 했다. 이들은 대통령실 요청으로 관저 앞에서 윤 전 대통령을 배웅할 수 있었다고 밝혀 ‘연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13일 기자들과 만나 “국민과 국회, 헌법에 의해 쫓겨난 대통령이 마치 자기가 개선장군, 승리자인 것처럼 코스프레하는 것을 망상이라고밖에 더 얘기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윤석열의 퇴거 쇼는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조롱하려는 싸구려 연출”이라며 “한 줌 지지자들에겐 메시지가 될지 모르겠으나, 압도적 다수의 국민에겐 더 큰 절망감과 분노를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사저에 도착한 뒤 지지자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왔다”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에도 12·3 비상계엄 발동으로 인한 국민 분열과 혼란을 자신의 승리로 규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윤 전 대통령은 11일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저에 도착해 환영나온 입주민과 지지자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한 지지자가 “너무 가슴 아파요”라고 하자 윤 전 대통령은 “어차피 뭐 (대통령) 5년 하나 3년 하나…”라며 웃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도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어린아이를 껴안기도 했다. 이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은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공개한 메시지에서도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거나 헌재 결정 승복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나라와 국민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면서 정치 행보를 이어갈 뜻을 내비쳤다. 윤 전 대통령은 당시 한남동 관저에서 퇴거하면서도 관저 입구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을 보였다. 또 ‘과잠’(대학교 학과 점퍼)을 입고 관저 정문 앞에서 기다리던 청년들을 껴안기도 했다. 이들은 대통령실 요청으로 관저 앞에서 윤 전 대통령을 배웅할 수 있었다고 밝혀 ‘연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13일 기자들과 만나 “국민과 국회, 헌법에 의해 쫓겨난 대통령이 마치 자기가 개선장군, 승리자인것처럼 코스프레하는 것을 망상이라고밖에 더 얘기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윤석열의 퇴거 쇼는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조롱하려는 싸구려 연출”이라며 “한 줌 지지자들에겐 메시지가 될 지 모르겠으나, 압도적 다수의 국민에겐 더 큰 절망감과 분노를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부정선거에 대한) 피청구인의 판단은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는 4일 부정선거 의혹 등을 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주장을 기각하며 이같이 밝혔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주장하고 있는 의혹 중에는 2020년 실시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접힌 흔적이 없는 투표지, 접착제가 묻어 있는 투표지, 투표관리관인 인영이 뭉개진 투표지 등 의혹이 제기돼 이미 검증·감정을 거쳐 법원의 확정 판결로 그 의혹이 해소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윤 전 대통령이 주장한 부정선거 의혹은 이미 대법원 판결 등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실제 대법원은 2022년 판결을 통해 2020년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탄핵으로 확정된 6·3 대선에 대해서도 부정선거 음모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부정선거가 벌어질 것”이라고 선동하고 있다. 전국 주요 도시에 부정선거 관련 현수막이 내걸리고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선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이 방치되면 6·3 대선 이후에도 불복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도 9일 대국민 담화에서 “수많은 부정선거 소송이 대법원에서 근거 없다고 밝혀졌음에도 계속되는 주장에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투·개표 절차를 더욱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부정선거론이 퍼지는 걸 막으려면 일반인들이 가진 오해가 생길 틈을 줄여야 한다”며 “사실이 아니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등 제도를 보완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끊이지 않는 ‘투표지 분류기 조작설’… “민관정 검증단 꾸려 감시를”[6·3 대선, 부정선거 음모론 끝내자] 〈상〉 ‘투표지 분류기’ 논란 해소하려면① 보안전문가 등 참여 점검-감시② 정당 참관인 수검표 직접 참여③ 선관위, 개표 과정 녹화 보관… 투명성 강화로 오해 소지 줄여야《제21대 대통령을 뽑는 6·3대선이 확정됐다. 하지만 여전히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주장이 나온다.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결로 부정선거 주장에 실체가 없다는 사법적인 판단이 내려졌지만 일각에선 부정선거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하는 선동이 계속되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방치하면 6·3대선 이후에도 선거 결과 불복에 따른 더 큰 사회적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동아일보는 6·3대선을 앞두고 전문가들과 함께 3회에 걸쳐 부정선거 음모론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안을 제안한다.》“자동 분류된 투표지를 재개표하면서 결과가 뒤집혔다.” 2020년 4월 총선이 치러진 지 두 달이 지난 그해 6월 보수 유튜버들 여러 명이 충남 부여군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 소란을 일으키며 항의했다. 옥산면 사전투표지를 분류기로 집계할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 표가 뒤섞였고, 이를 재분류하자 당초 지는 것으로 집계된 미래통합당 표가 더 많은 것으로 결과가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선관위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선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후보의 표가 섞인 적도, 득표 결과가 뒤집힌 적도 없었다. 다만 개표사무원이 집계를 마친 투표지를 100장씩 고무줄로 묶어 정리하는 과정에서 재확인이 필요한 투표지 일부가 합쳐지자 이를 다시 분류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근거 없는 투표지 분류기 조작 의혹 선관위는 항의 방문한 유튜버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설명했지만, 이 사건은 곧 부정선거론자들을 통해 대표적인 부정선거 사례 중 하나로 급속히 확산됐다. 이들은 특정 세력이 투표 분류기를 해킹해 개표 결과를 조작했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개표 참관인의 지적을 받고 재개표하자 득표 결과가 뒤집혔다고 주장했다. 유튜브에선 이 사건에 살을 붙여 민주당 후보가 해당 개표소에서 180표를 받았다가 재개표 결과 159표로 줄어들었다는 근거 없는 허위 정보가 ‘쇼츠’ 형태로 제작돼 유포됐다. 보수 유튜버들은 이 사례를 소개하며 “‘투표지 분류기가 이상했다’는 개표 참관인들의 증언이 쏟아진다” “부여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비슷한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책에도 이 사례가 거론됐다. 근거 없는 부정선거 주장이 유튜브 등을 타고 음모론의 형태로 일파만파 확산된 것이다. 분류기 조작 의혹은 2020년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일각에선 유효표를 미분류표로 분류하는 등 투표용지를 섞어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음모론에 그치던 분류기 조작 의혹은 2023년 국가정보원이 보안점검에서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를 통해 투표지 분류기 해킹이 가능하다”고 밝히며 다시 불붙었다. 당시 국정원은 “실제 해킹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투표지 분류기에 악성코드를 설치해 실제 개표 결과와 다르게 분류되도록 변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를 비롯한 보안 전문가들은 해킹 가능성에 대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분류기에서 무선랜카드를 제거해 통신을 단절시키기 때문에 외부에서 시스템을 공격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 국정원 보안 점검 이후 투표지 분류기는 인가된 보안 USB메모리만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악성코드를 심은 일반 USB메모리를 꽂을 경우엔 작동이 되지 않는다.● “개표 과정 투명성 강화로 오해 소지 줄여야”전문가들은 확산하는 부정선거 의혹들을 불식시키기 위해 개표 과정에서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선관위가 정당과 보안 전문가, 학계 등이 참여하는 ‘민관정 검증단’을 구성해 투·개표 전 과정 전반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현재 선관위는 개표 참관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투표 분류기 해킹 등 부정선거 음모론이 계속되는 만큼 매 선거마다 검증단을 통해 투·개표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점검하고 이를 백서 형태로 공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헌법기관으로서 감시가 소홀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많기 때문에 선거 과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감시 역할도 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정당 등에서 추천하는 참관인이 직접 수검표 작업에 참여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각 정당의 추천을 받아 개표소에서 개표 결과를 검증하는 참관인이 직접 투표지 분류기로 집계된 결과를 검표하는 작업에 참여해 해킹 등 부정선거 시비를 차단하자는 것이다. 한국정당학회는 지난해 발표한 ‘투·개표 참관인 제도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참관인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면 참관인으로서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선거사무 일부를 맡기는 방식을 제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한일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실제 검표 등에 참여함으로써 결과에 승복하려는 마음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수검표는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작업이기 때문에 각 당 참관인 간의 교차 검증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선관위가 개표소별로 투표지 분류기를 통한 개표 과정을 녹화해 보관하는 것도 논란을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정선거 시비가 생기면 해당 개표소의 영상을 법원 판단에 따라 당사자들에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혹을 풀어주기 위해 선관위가 근거를 남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부정선거에 대한) 피청구인의 판단은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는 4일 부정선거 의혹 등을 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주장을 기각하며 이같이 밝혔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주장하고 있는 의혹 중에는 2020년 실시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접힌 흔적이 없는 투표지, 접착제가 묻어 있는 투표지, 투표관리관인 인영이 뭉개진 투표지 등 의혹이 제기돼 이미 검증·감정을 거쳐 법원의 확정 판결로 그 의혹이 해소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윤 전 대통령이 주장한 부정선거 의혹은 이미 대법원 판결 등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실제 대법원은 2022년 판결을 통해 2020년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탄핵으로 확정된 6·3 대선에 대해서도 부정선거 음모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부정선거가 벌어질 것”이라고 선동하고 있다. 전국 주요 도시에 부정선거 관련 현수막이 내걸리고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선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이 방치되면 6·3 대선 이후에도 불복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도 9일 대국민 담화에서 “수많은 부정선거 소송이 대법원에서 근거 없다고 밝혀졌음에도 계속되는 주장에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투·개표 절차를 더욱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부정선거론이 퍼지는 걸 막으려면 일반인들이 가진 오해가 생길 틈을 줄여야 한다”며 “사실이 아니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등 제도를 보완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지명한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대통령이 궐위 상태가 된 만큼 권한대행의 권한과 역할을 폭넓게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권한대행의 역할이 현상 유지에 그쳐야지 대통령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국회 추천 몫이 아닌 대통령 추천 몫 재판관에 대한 지명은 차기 정부로 미룬 적이 있다. 일각에선 지난해 12월 국회가 추천한 3명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가 탄핵소추됐던 한 권한대행이 정반대의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 법조계 “월권” vs 韓 “법적 검토와 숙고 거쳐”한 권한대행 측은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 순서로 권한을 대행한다’는 헌법 71조 규정을 근거로 대통령 몫 재판관 후보자 지명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달 24일 헌재가 한 권한대행 탄핵을 기각할 때 “국회가 선출한 3인을 재판관으로 임명해야 할 헌법상 구체적 작위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한 점도 검토됐다고 한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입장문에서 “법적 검토를 거친 뒤, 오늘 오전 동료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마지막으로 여쭙고 저의 결정을 실행에 옮겼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한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재판관 지명을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를 넘어선 월권적 권한 행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날 100여 명의 헌법학자로 구성된 ‘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는 성명을 내고 “대통령 몫 재판관 후보자 지명 및 임명은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직접 부여받은 대통령이 갖는 헌법상 고유 권한”이라며 “(이는) 권한대행이 할 수 없는 월권적·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헌재 헌법연구부장 출신 김승대 변호사도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는 현상 유지적인 것에 그친다고 봐야 한다”며 “국회 추천 몫 재판관에 대한 임명과 달리 대통령 지명권은 현상 유지가 아닌 적극적 권한 행사인 만큼 위헌”이라고 말했다. 한 헌재 연구관은 “헌재가 국회 추천 몫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뒤에도 임명을 미루다가 이제 와서 더욱 적극적인 권한인 ‘지명권’까지 행사한 것은 자기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알박기’ 출마설 등 해석 ‘분분’ 한 권한대행은 이날 “여야는 물론 법률가, 언론인, 사회 원로 등 수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숙고한 결과”라며 “사심 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해 슬기로운 결정을 내리고자 최선을 다하였으며 제 결정의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 권한대행의 갑작스러운 인사권 행사의 배경을 두고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가 탄핵됐던 것과 앞뒤가 맞지 않는 데다 그간 권한대행의 역할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던 한 권한대행의 행보와도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궐위됐으니까 궐위 전과 후의 판단은 다른 것”이라며 “정상 작동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면 이를 정상화시키는 게 가장 기본적인 권한대행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징계 취소 소송 변호인이자 대학 및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지명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의 영향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기 대선 이후로 헌법재판관 지명을 미루면 대통령 몫인 2명의 재판관을 차기 대통령이 임명하는 만큼 헌법재판소의 보수와 진보 지형을 고려해 서둘러 재판관을 지명했다는 것이다. 한 권한대행이 이날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이 법제처장 등에 대한 인사검증은 대통령실이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주한미군 2만8500명 규모는 적절하다고 본다. 중요한 건 병력의 구성이다.”지난해 11월까지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 육군을 지휘했던 찰스 플린 전 미국 태평양육군사령관은 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의 부대 유형이 현재와 미래 위협에 적합한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보, 병참, 미사일 방어, 지휘통제, 사이버, 전자전, 특수작전 등 7가지 분야를 언급하면서 “이 같은 새로운 형태의 병력 구성이 필요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 견제와 미 본토 방어를 우선시하는 미군의 전략 재편을 시사한 가운데 인도태평양 지역 미 육군을 3년 넘게 총괄해 온 플린 전 사령관도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론에 힘을 실은 것이다. 플린 전 사령관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플린의 동생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외교·안보 분야 요직에 발탁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인물이다.》플린 전 사령관은 최근 중국의 대만 포위훈련 등을 두고 “매우 위험한 궤적을 밟고 있다”며 “한미연합군은 중국이 대만에 대해 군사 행동을 취하는 비상사태에 어떻게 대비할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군과 미군이 한반도 바깥으로 전력을 전개(project)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면서 주한미군의 군수물자를 일본, 필리핀에서의 훈련에서 사용했던 사례 등도 거론했다.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으로 북핵 억지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해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필리핀에 배치된 중거리 미사일 포대인 ‘타이푼’이 있는데 한국이나 일본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전진 배치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1기인 2019년 옛 소련과 맺었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탈퇴했고 지난해 냉전 이후로는 처음으로 필리핀 루손섬에 타이푼 포대를 배치했다. 한반도에 중국과 러시아를 사거리로 한 중거리 미사일 포대가 배치되면 ‘사드(THAAD)’ 사태 못지않은 반발이 나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가장 큰 위협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2014년 2성 장군으로 미 태평양육군사령부에서 근무했던 당시와 비교했을 때 중국군의 활동은 10년에 걸쳐 비교 자체가 안 될 만큼 공격적인 수준으로 변화했다. 중국은 매우 위험한 궤적을 밟고 있는데, 우리는 이 속도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 다만 중국의 대만 침공이 당장 임박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대만해협을 건너는 침공 작전은 매우 복잡하고 위험 부담이 큰 어려운 작전이다. 하지만 중국은 꾸준히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중국 견제에 한국이 동참해야 한다고 보나.“우선 한미연합군은 한반도에서 지속적으로 한미 연합훈련을 수행해야 한다. 한미가 높은 수준의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중국의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 태세를 갖추는 차원이다. 다음으로 한국군과 미군이 한반도 바깥으로 전력을 전개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 한미연합군과 동맹은 한반도에서 강한 전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한국군이 지역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역내 동맹국과 파트너들을 안심시키는 신호가 될 수 있고, 중국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경고가 될 수 있다.” ―한국에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기대하나.“한국군은 한반도를 넘어 다른 지역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포병 부대가 호주에서 진행된 ‘탤리스먼 세이버’ 훈련에 참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한미군이 한국에 비축해둔 군수 물자를 한미 정부 승인 아래 필리핀, 인도네시아, 일본, 호주 등에서의 훈련에 사용한 사례도 있다. 한국군이 알래스카와 하와이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미국 내에서 미군과 함께 훈련하는 것도 한국군의 지역 내 존재감을 높이는 중요 요소다.” ―한국군이 대만 위기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인가. “한국군이 대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나 분쟁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겠다. 다만 중국과 대만 사이에 위기나 분쟁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중국해, 남중국해, 황해에서 발생하는 사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제1도련선(the first island chain)’ 북측 측면에 위치해 있다. 일본과 필리핀도 대만의 양측 날개에 위치한 만큼 영향권 안에 있다. 그런 만큼 한반도에 주둔한 한미연합군은 중국이 대만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취할 경우, 무력 충돌이건 중대한 위기이건 간에 어떤 비상사태(contingencies)에 대비해야 할지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미중이 충돌하면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이 동원될 것으로 보나. “한미 간의 사전 협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미일 간 협의도 마찬가지이고, 궁극적으로는 한미일 3자 협의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관계를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며 지속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미일 고위 지도자들이 만나 이 삼각 협력을 어떻게 심화할지 논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정치적 협의는 군 지도자들에게 연합훈련이나 교육, 안보협력 개혁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할 수 있는 ‘면허증’을 부여해 주는 만큼 군사 협력 등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한미군의 규모나 구성 변화 가능성은….“개인적으로 현재 2만8500명의 병력은 한반도를 둘러싼 위협 환경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숫자보다 중요한 건 종류다. 미군과 한국군이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현재 배치된 부대 유형이 현재와 미래의 위협에 적합한지 재검토하는 것이다. 위협의 성격과 작전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에 동맹도 발 맞춰 나가야 한다. 정보, 병참, 미사일 방어, 지휘통제, 사이버, 전자전, 특수작전 같은 새로운 형태의 병력 구성이 필요할 수 있다. 한국에 주둔 중인 병력 유형은 1980년대, 1990년대, 심지어 2000년대 초반과도 다를 수밖에 없고 2025년, 2030년, 2035년에 필요한 부대는 지금과는 다른 형태일 수 있다.” ―미국에선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에 조기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한국군이 충족해야 할 일련의 조건들이 있다. 이 조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평가되고 검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 지휘부가 최종 권고를 하겠지만 전작권 전환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결정이다.” ―북핵 해결을 위해선 확장억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는데….“미국 내에서는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미국의 핵 삼축 체계(nuclear triad)를 현대화하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추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예산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핵 삼축 체계만이 억제력의 전부가 아니다. 또 하나는 핵·생화학·방사능 등 오염된 전장에서 생활하고 작전하고 싸우는 능력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더러운 전장’에 자주 노출되지 않았기에 훈련 수준과 대비 태세가 많이 떨어졌다. 적이 우리 군대가 오염된 환경에서도 작전 가능하다는 걸 안다면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무기의 효과가 줄어들 것이다.” ―미국에서도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다시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결정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정책적 문제다. 이 외에도 미국은 새로운 무기 시스템을 이미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한 사례가 있다. 필리핀에 배치된 중거리 미사일인 ‘타이푼’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 일본 정부나 다른 국가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전진 배치를 충분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중거리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가 억제력 강화에 도움이 될까. “다영역작전부대는 장거리 정밀 타격, 신형 장거리 타격 능력뿐만 아니라 전자전, 사이버, 우주 작전 수행 능력을 통합할 수 있다. 또 그 정보를 융합해 연합국들과 함께 공동 타격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공동 타격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억제력의 핵심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이런 종류의 다영역 작전부대를 한국에 배치하는 방안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주둔비용인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요구할까. “지난해 체결된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대해 차기 미국 행정부가 재협상을 하자고 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가 분담금의 100%를 부담하라는 요청을 받더라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파병 대가로 러시아가 중요 군사기술을 이전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로부터 북한의 기술 이전은 핵 기술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두고 협상할 경우 미국은 러시아에 ‘북한에 대한 기술 이전을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런 논의가 이뤄져야만 한국과 일본, 미국과 전 세계 모두의 안전을 담보할 것이다.”찰스 플린 전 미국 태평양육군사령관△1963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미들타운 출생△1985년 로드아일랜드대 경영학 학사, ROTC 통해 임관△2002∼2004년 504 공수보병연대 2대대장(아프간·이라크 파병)△2007∼2008년 82공수사단 제1여단전투단 여단장(이라크 파병)△2009∼2010년 합참본부장 보좌관, 국제안보지원군(ISAF) 사령관 비서실장(아프간 파병)△2014∼2016년 제25보병사단장(하와이)△2016∼2018년 미 태평양육군 부사령관△2019∼2021년 미 육군본부 작전·계획·훈련 부참모장△2021∼2024년 미 태평양육군사령관고도예 기자 yea@donga.com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지명한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대통령이 궐위 상태가 된 만큼 권한대행의 권한과 역할을 폭넓게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권한대행의 역할을 현상 유지에 그쳐야지 대통령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국회 추천 몫이 아닌 대통령 추천 몫 재판관에 대한 지명은 차기 정부로 미룬 적이 있다. 일각에선 지난해 12월 국회가 추천한 3명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가 탄핵소추됐던 한 권한대행이 정반대의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 법조계 “월권” VS 韓 “법적 검토와 숙고 거쳐”한 권한대행 측은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 순서로 권한을 대행한다’는 헌법 71조 규정을 근거로 대통령 몫 재판관 후보자 지명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달 24일 헌재가 한 권한대행 탄핵을 기각할 때 “국회가 선출한 3인을 재판관으로 임명해야 할 헌법상 구체적 작위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한 점도 검토됐다고 한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입장문에서 “법적 검토를 거친 뒤, 오늘 오전 동료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마지막으로 여쭙고 저의 결정을 실행에 옮겼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한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재판관 지명을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를 넘어선 월권적 권한행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날 100여 명의 헌법학자들로 구성된 ‘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는 성명을 내고 “대통령 몫 재판관 후보자 지명 및 임명은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직접 부여받은 대통령이 갖는 헌법상 고유권한”이라며 “(이는) 권한대행이 할 수 없는 월권적・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헌재 헌법연구부장 출신 김승대 변호사도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는 현상 유지적인 것에 그친다고 봐야 한다”며 “국회 추천 몫 재판관에 대한 임명과 달리 대통령 지명권은 현상유지가 아닌 적극적 권한 행사인 만큼 위헌”이라고 말했다. 한 헌재 연구관은 “헌재가 국회 추천 몫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뒤에도 임명을 미루다가 이제 와서 더욱 적극적인 권한인 ‘지명권’까지 행사한 것은 자기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알박기’ 출마설 등 해석 ‘분분’한 권한대행은 이날 “여야는 물론 법률가, 언론인, 사회원로 등 수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숙고한 결과”라며 “사심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해 슬기로운 결정을 내리고자 최선을 다하였으며 제 결정의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 권한대행의 갑작스러운 인사권 행사의 배경을 두고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회 추천몫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가 탄핵됐던 것과 앞뒤가 맞지 않는데다 그간 권한대행의 역할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던 한 권한대행의 행보와도 거리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궐위가 됐으니까 궐위 전과 후의 판단은 다른 것”이라며 “정상 작동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면 이를 정상회시키는 게 가장 기본적인 권한대행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징계 취소 소송 변호인이자 대학 및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지명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의 영향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기대선 이후로 헌법재판관 지명을 미루면 대통령 몫인 2명의 재판관을 차기 대통령이 임명하는 만큼 헌법재판소의 보수와 진보 지형을 고려해 서둘러 재판관을 지명했다는 것이다. 한 권한대행이 이날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이 법제처장 등에 대한 인사검증은 대통령실이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네가 대통령이냐.”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인사 문제와 관련해 주변에서 이의를 제기할 때 이같이 격노했다고 한다. 인사권자라는 권위에 기대 반대 의견을 묵살하며 자신이 정한 인사를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특히 2024년 3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자신의 ‘20년 지기’인 검찰 수사관 출신의 주기환 당시 비례대표 후보를 당선권에서 배제하자 윤 전 대통령은 보란 듯이 다음 날 대통령민생특보에 임명했고 반대하는 참모진에게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몇 달 뒤 주 특보는 금융공기업인 유암코 상임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윤 전 대통령의 독단과 고집을 참모진조차 제어하지 못하면서 윤 전 대통령의 측근 중용 경향이 짙어졌다는 평가다. 윤석열 정부에선 검찰 인맥 이외에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충암고 인맥이 주요 라인을 형성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이후 이 장관에 대한 책임론이 거셌지만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충암고 동기인 정재호 전 주중대사는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대중 외교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평가가 많았고 재임 내내 공관 갑질 논란에 시달렸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민정수석실을 없애는 동시에 추천과 검증을 분리해 공정성을 높이고 대통령실의 권한을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인사 검증 기능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으로 이관했지만 부실 검증은 이어졌다. 검찰 출신들이 인사 및 사정 라인을 차지했지만 인사 검증 시스템은 오히려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인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4명의 장관급 후보자가 낙마했다. 이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7월 초 도어스테핑에서 “그럼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며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라.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것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2대 국가수사본부장에 지명된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하루 만에 물러났고,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비상장주식을 재산 신고에서 누락했다는 의혹 등으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인사 검증 부실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오히려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서로 검증 책임을 미루면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졌다. 고위공직자 후보자 찾기가 어려워지자 돌려막기식 인사가 빈번해졌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윤석열 정부 시작과 함께 주미대사를 거쳐 국가안보실장을 지냈고, 다시 국정원장으로 임명됐다. 지난해 8월에는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가안보실장으로, 장호진 안보실장은 7개월 만에 외교안보특보로 연쇄 이동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서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윤 전 대통령은) 인재 풀을 스스로 가장 협소화시킨 대통령”이라며 “깊은 연고가 있는 사람들만 쓰며 최소한의 탕평 인사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이념적으로 변해 간 것”이라고 지적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헌법재판소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면서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고 밝혔다. 헌재는 파면에 직접적인 이유가 된 12·3 비상계엄의 위헌성과 함께 윤 전 대통령을 향해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국민을 설득할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취임 이후 지난해 총선까지 약 2년 동안 윤 전 대통령이 국정을 주도할 기회를 받았지만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는 것. 전문가들은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한 부족한 책임의식으로 인한 권력 사유화와 일방적 국정 운영, 소통과 협력 대신 진영정치로 극단화의 길을 향했던 윤 전 대통령의 총체적 정치 실패가 그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피청구인은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에야 야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단 한 차례 영수회담을 가졌다. 이어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으로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하는 등 야당을 대화의 파트너가 아닌 ‘척결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헌재는 또 “피청구인은 취임 2년 후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회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며 “(총선 패배 후) 야당과,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되었다”고 했다. 임기 중 치러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 패배한 것은 윤 전 대통령이 국민 설득에 실패한 결과라는 점을 지적하며 비상계엄이 아닌 국회와의 협치 등 민주주의적 방식을 통해 국정 위기를 해결했어야 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민주당은 물론이고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불거진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의혹’ 등을 두고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당시 여당과도 공개적으로 갈등을 표출했다. ‘김건희 리스크’와 이른바 ‘충암파’로 불리는 측근들에 대한 견제 요구를 무력화하고 거대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극단적인 정파 정치가 비상계엄 사태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헌재는 “피청구인으로서는 야당이 중심이 된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고도 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6일 “윤 전 대통령은 공적 책임의식이라는 게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며 “이제는 치유와 회복의 리더십, 통합과 책임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김건희 리스크에 “제 처를 악마화”… 맹목적 ‘충암파’가 계엄 실행〈상〉 헌재도 지적한 尹의 정치실패“선거는 시쳇말로 패밀리 비즈니스”尹, 공과 사 구분 못한 국정운영 논란巨野 줄탄핵-金특검법 등 압박에… 결국 헌법 벗어난 ‘국가긴급권’ 행사“원래 선거라는 건 시쳇말로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하지 않느냐.”윤석열 전 대통령은 경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0월 반려견 사과 사진 논란과 관련해 사진 촬영 장소가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사무실이었냐는 질문에 “집이든 사무실이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제가 한 것인데”라며 “가족이 뭐 어떤 분들은 후원회장도 맡는다”며 이같이 말했다.2년 11개월 만에 막을 내린 윤석열 정부의 실패는 ‘김건희·충암파 정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사 구분을 못 한 국정 운영과 윤 전 대통령의 리더십 부족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당은 물론이고 김 여사 문제를 놓고 한동훈 전 대표와 충돌한 윤 전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이 윤 전 대통령의 고립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김건희 라인’이나 충암파 등 소수의 충성파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비판 여론에 귀를 닫으면서 결국 총체적 정치 실패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권 아킬레스건 된 ‘김건희 리스크’지난해 9월엔 김 여사가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 과정에 개입했다는 명태균 씨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논란은 거세졌다. 명 씨가 김 여사와 사적으로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는 물론이고 급기야 윤 전 대통령이 명 씨에게 직접 “공관위(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하는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됐다.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구체적 해명 없이 의혹을 부인했다. 그 대신 “그야말로 저를 타깃으로 해서 제 처를 많이 좀 악마화시켰다”라거나 “선거와 국정이 잘되게 원만하게 도운 것일 뿐”이라며 김 여사를 감쌌다.김 여사가 대통령실 인사들의 면접을 보는 등 직접 인사에 관여해 왔고 대통령실에 포진한 ‘김건희 라인’들이 김 여사에게 따로 주요 사안을 보고하며 국정에 개입한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실제 보수 진영 인사들은 “대통령이 김 여사에게도 같은 보고서를 보내주라는 이야기를 직접 한 적이 있다” “김 여사가 현안에 대해 맥을 정확하게 짚어서 대통령이 ‘이 사람이 한 큐가 있다’라며 으쓱해하기도 했다”며 윤 전 대통령은 김 여사의 국정 개입을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전했다.2023년 12월 불거진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 의혹은 윤석열 정부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는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김 여사의 사과를 요구했던 한 전 대표와 갈등이 본격화된 것. 여기에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에 외압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대사에 임명해 출국시킨 사건과 황상무 전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회칼 테러’ 발언 등은 총선 패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국민의힘은 108석 확보에 그치며 윤석열 정부에 대한 매서운 총선 민심을 확인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오히려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며 극단 대결의 길로 접어들었다.헌재는 4일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면서 이례적으로 “취임한 때로부터 약 2년 후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다”면서도 “그 결과가 피청구인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하여서는 안 되었다”고 밝혔다. 이헌환 아주대 로스쿨 교수는 “윤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선택한 여러 정책들이 국민들에게 선택될 정도로 설득할 수 있고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할 기회가 있었다는 뜻”이라며 “하지만 지속적으로 배타적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맹목적 충성 ‘충암파’가 계엄 실행 옮겨비상계엄 직전 ‘김 여사 라인’ 인적 쇄신 등 3대 요구를 제시하는 한 전 대표와의 ‘윤-한 갈등’은 극에 달했고 야당은 거듭 줄탄핵과 ‘김건희 특검법’ 등을 재통과시키며 윤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한 친윤(친윤석열)계 의원은 “대통령이 계엄까지 하게 된 건 이재명 대표와 한 전 대표에 대한 분노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일각에선 민주적 절차 대신 극단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윤 전 대통령의 성향이 비상계엄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동수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은 2023년 법정에서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당시) 만일 육사에 갔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들조차 모르게 충암고 선후배인 ‘충암파’와 공관, 안가 등에서 만나 비상계엄 선포를 비밀리에 논의했다. 결국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이 선봉에 서면서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가 현실화됐다.이에 대해 헌재는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까지나 헌법에 의하여 부여받은 것”이라며 “가장 신중히 행사되어야 할 권한인 국가긴급권을 헌법에서 정한 한계를 벗어나 행사하여,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행사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윤 전 대통령은 자기가 마음대로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권력을 가지고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이 나라의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이고,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입니다.”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 10일 20대 대선 당선 인사에서 국민들이 자신을 뽑아준 의미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로 2년 11개월만에 헌정 사상 두 번째로 파면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첫 검사 출신’ ‘첫 서울대 법대 출신’ ‘첫 서울 출신’ 등 정치사에 여러 기록을 갖고 당선되면서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윤 전 대통령은 롤러코스터 같은 정치 역정을 밟았다. ‘강골 검사’에서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보수 구원투수로 정치에 입문한 지 9개월 만에 대통령에 당선돼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초유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하며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9수’ 끝에 사시 합격… 늦깎이 검사에서 총장까지충암고를 졸업한 윤 전 대통령은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계속 낙방했다. 9번째 도전 끝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1994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04년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2002년 대선 자금 수사, 2006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 등을 수사했고 특별수사의 핵심 요직인 대검 중수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을 지냈다.‘강골 검사’로 이름을 날린 건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으면서다. 국정원 압수수색 등을 놓고 상부와 갈등을 빚던 윤 전 대통령은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상부의 외압을 폭로했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뒤 좌천돼 3년 가까이 지방에서 한직을 맴돌다 2016년 12월 국정농단 특별검사 수사팀장으로 복귀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됐다. 윤 전 대통령은 이른바 ‘적폐 청산’에 앞장서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 국정원 특활비 의혹 등 수사를 이어갔고 2019년 7월 문재인 전 대통령은 또 한 번 기수를 뛰어넘어 윤 전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했다.● 文정부와 각 세우다 보수 후보로 대권문 전 대통령이 ‘우리 총장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임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총장 임명 직후부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시작으로 정권과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를 포함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를 밀어붙이면서 정권의 압력도 거세졌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20년 11월 급기야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했고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이미지가 굳어진 윤 전 대통령은 이듬해 3월 총장직에서 사퇴한 뒤 6월 말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한 달 뒤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 전 대통령은 입당 98일 만에 대선 후보로 선출되며 보수 진영의 ‘구원투수’로 나서게 됐다. 잦은 말실수와 공감능력 부족 등 ‘정치 신인’의 면모와 ‘김건희 리스크’ 등 약점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 경쟁자인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 등을 파고들었다. “국민이 불러낸 윤석열” “공정과 상식” 등 슬로건을 내건 그는 0.73%포인트 차로 2022년 3월 20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 ‘용산 이전’부터 파면까지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두고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검찰 편중 인사’, 이준석 당시 당 대표 징계 논란, 뉴욕 순방 중 비속어 논란 등의 여파로 윤 전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임기 첫해부터 20∼30%대에 머물렀다. 이듬해 제3자 변제안 등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합의를 꾀하면서 한일관계를 복원했고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케미’를 과시하며 한미동맹을 강화한 점은 외교 분야 성과로 꼽혔다. 하지만 2023년 말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의혹과 지난해 4월 총선 패배 등을 계기로 출범 2년도 되기 전에 윤석열 정부는 급속도로 국정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총선 패배 이후 거대 야당과의 대치는 더 극심해졌다. 야당은 방통위원장을 포함한 줄탄핵에 나섰고 윤 전 대통령은 22대 국회 개원식과 시정연설 등에 불참하는 등 야당과의 소통도 단절됐다. 디올백 수수 사건과 공천 개입 의혹 등 김 여사 문제와 의정 갈등 해법을 둘러싸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갈등도 커졌다. 윤 전 대통령은 결국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몰락을 자초했다. 내란 혐의로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체포돼 구속됐다가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됐다. 그는 탄핵심판 과정에서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강변했지만 결국 헌재는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며 4일 오전 11시 22분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당을 중심으로 대선 준비를 잘해서 꼭 승리하기 바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일 오후 5시경 서울 한남동 관저를 방문한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나 “성원해준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윤 전 대통령은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며 “많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는 입장을 냈다. 헌재 결정에 승복할지에 대해선 침묵을 이어가면서도 국민의힘 지도부에 자신의 파면으로 열리게 된 조기 대선 승리를 당부한 것이다.● 145자 입장 낸 尹, 승복 메시지 없어윤 전 대통령은 오후 1시 55분경 변호인단을 통해 배포한 145자짜리 입장문에서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며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선고문을 읽으며 오전 11시 22분 기준으로 파면을 선고한 지 2시간 33분 만이었다. 탄핵 이후 주로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한 감사의 메시지만 내온 것과 달리 이날 입장문에는 ‘지지자’ 대신 ‘국민’을 언급한 것. 다만 윤 전 대통령은 헌재가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린 데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불복 논란을 의식한 듯 유감 표명은 없었지만 승복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한남동 관저를 찾은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를 만나 “최선을 다해준 당과 지도부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고 신동욱 수석대변인이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또 “비록 이렇게 떠나지만 나라가 잘되기를 바란다”며 “대선과 관련해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당을 중심으로 대선 준비를 잘해서 꼭 승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신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사실상 헌재의 파면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한남동 관저에 머무르며 TV 생중계를 통해 헌재 선고를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공판기일이 열리는 만큼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고인 신분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헌재가 8 대 0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윤갑근 변호사는 헌재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완전히 정치적인 결정으로밖에 볼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21세기 법치주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참담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변호인단 내부에선 4 대 4로 기각될 거란 의견이 많았고 인용되더라도 소수 의견이 1, 2명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만장일치 결과가 나오자 충격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 봉황기 내리고 군부대 尹 사진도 철거 대통령실은 이날 윤 전 대통령의 파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정진석 비서실장과 성태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등 3실장을 포함한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진 전원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일괄 사의를 표명했지만 한 권한대행은 이를 반려했다. 총리실은 “현재 경제와 안보 등 엄중한 상황하에서 한 치의 국정 공백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시급한 현안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이날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기대하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 등 업무 복귀 시나리오를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헌재가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자 20분 뒤인 오전 11시 40분경에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건물 앞에 태극기와 함께 게양돼 있던 대통령 봉황기가 내려졌다. 봉황기는 1967년 1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처음 사용된 국가 수반의 상징으로, 대통령 재임 중 상시 게양된다. 직원들과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용산 대통령실 내부에 설치된 전광판 화면도 꺼졌다. 대통령의 활동과 행보 영상을 담아 송출해 온 전광판은 그간 윤 전 대통령의 직무 정지 기간에도 계속 켜져 있었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각각 대사관 등 재외공관과 군부대 지휘관실 및 회의실 등에 걸려 있던 윤 전 대통령 사진도 철거됐고 행정안전부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기록물 이관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와 외교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가 만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들도 헌재의 파면 선고 이후 윤 전 대통령 계정에 대한 ‘팔로’를 중단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이 나라의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이고,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입니다.”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 10일 20대 대선 당선 인사에서 국민들이 자신을 뽑아준 의미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로 2년 11개월의 재임 기간으로 불명예 퇴진했다.‘첫 검사 출신’ ‘첫 서울대 법대 출신’ ‘서울 출신’ 등 정치사에 여러 기록을 갖고 당선되면서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윤 전 대통령은 롤러코스터와 같은 정치 역정을 보였다. 공정과 상식을 내걸었던 ‘강골 검사’에서 정계 입문 선언 9개월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던 윤 전 대통령은 초유의 12·3비상계엄 선포로 헌정 사상 두번째로 파면된 대통령이자 내란우두머리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하며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9수’ 끝에 사시 합격… 늦깎이 검사에서 총장까지고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성자 씨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윤 전 대통령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충암고를 졸업한 윤 전 대통령은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계속 낙방했다. 9번째 도전 끝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1994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04년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2002년 대선 자금 수사, 2006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 2007년 이른바 ‘신정아 게이트’ 사건 등을 수사했고 특별수사의 핵심 요직인 대검 중수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을 지냈다.‘강골 검사’로 이름을 날린 건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으면서다. 국정원 압수수색 등을 놓고 상부와 갈등을 빚던 윤 전 대통령은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뒤 좌천돼 3년 가까이 지방에서 한직을 맴돌다 2016년 12월 국정농단 특별검사 수사팀장으로 복귀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됐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은 이른바 ‘적폐 청산’에 앞장서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 국정원 특활비 의혹 등 수사를 이어갔고 이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구속했다. 약 2년 뒤인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또 한 번 기수를 뛰어넘어 윤 전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했다.● 文정부와 각세우다 보수 후보로 대권문 대통령이 ‘우리 총장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임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총장 임명 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수사를 시작으로 정권과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를 포함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 등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를 밀어붙이면서 정권의 압력도 거세졌다. 친정권 성향의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현 조국혁신당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수사를 강도높게 진행했고 윤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우던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20년 11월 급기야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이른바 ‘추-윤 갈등’ 속에서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이미지가 굳어진 윤 전 대통령은 이듬해 3월 총장직에서 사퇴한 뒤 6월 말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한 달 뒤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 전 대통령은 입당 98일 만에 대선 후보로 선출되며 보수 진영의 ‘구원투수’로 나서게 됐다. 잦은 말실수와 공감능력 부족 등 ‘정치 신인’의 면모와 ‘김건희 리스크’ 등 약점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 상대 유력 주자인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 등을 파고들었다. “국민이 불러낸 윤석열” “공정과 상식” 등 슬로건을 내건 그는 0.73%포인트 차이로 2022년 3월 20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 ‘용산 이전’부터 파면까지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두고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검찰 편중 인사’, 이준석 당시 당 대표 징계 논란, 뉴욕 순방 중 비속어 논란 등 여파로 윤 전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임기 첫해부터 20~30%대에 머물렀다. 이듬해 제3자 변제안 등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합의를 꾀하면서 한일관계를 복원했고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케미’를 과시하며 한미동맹을 강화한 점은 외교 분야 성과로도 꼽혔다. 화물연대 집단운송 거부에 강경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지율이 반등하기도 했지만 2023년 말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의혹과 2024년 4월 총선 패배 등을 계기로 출범 2년도 되기 전에 윤석열 정부는 급속도로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총선 패배 이후 거대 야당과의 대치는 더 극심해졌다. 야당은 방통위원장을 포함한 줄탄핵에 나섰고 윤 전 대통령은 22대 국회 개원식과 시정연설 등에 불참하는 등 야당과의 소통도 단절됐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윤-한 갈등’은 윤 전 대통령을 더 고립시켰다. 디올 백 수수 사건과 공천 개입 의혹 등 김건희 여사 문제는 물론 의정갈등 해법을 둘러싼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국정 혼란을 키웠다. 윤 전 대통령은 결국 45년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몰락을 자초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체포돼 구속됐다가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됐다.석방된 다음날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에게 “과거 구속 기소당했던 분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런 분들 생각이 많이 났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까지 구속했던 그 역시 구속되는 아이러니한 역사의 장면이자 그의 회한이 담긴 발언이었다. 그는 탄핵심판 과정에서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강변했지만 결국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해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며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한다”며 4일 오전 11시 22분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4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탄핵 정국이 넉 달 만에 마무리되는 것이다. 탄핵심판 선고 전야까지 탄핵 찬반으로 갈라진 민심의 충돌이 이어진 가운데 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끝내 승복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3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관들은 윤 대통령 탄핵 여부를 두고 이날 오전 평의를 열었다. 재판관들은 4일 오전 선고 직전에도 평의를 열어 최종 결정문을 작성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오전 11시부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문을 읽을 예정이다. 재판관 8명 중 6명 이상이 탄핵 인용을 결정하면 윤 대통령은 즉시 파면된다. 이 경우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두 번째 파면된 대통령이 된다. 기각·각하 시에는 즉시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해 직무에 복귀할 예정이다.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탄핵심판 선고기일 전날인 3일까지 승복 선언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질서 유지와 경호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 선고 결과에 따라 직접 메시지를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대표는 이날 승복 여부에 대한 언급 없이 ‘제77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제주 4·3사건과 5·18민주화운동을 언급하며 “계엄이 단죄되지 못해 오늘날 다시 (12·3) 계엄에 의한 군정을 꿈꾸는 황당무계한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탄핵 찬반 단체들은 헌재 선고 이후에도 헌재 인근과 광화문, 한남동 윤 대통령 관저 앞 등에서 시위를 이어간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헌재 결정 이후라도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통합 메시지를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하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날도 헌재 판결 승복을 두고 충돌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늘의 사태를 불러온 데는 민주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승복은 당사자이자 가해자인 윤석열(대통령)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가 4일 오전 11시 열린다.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탄핵 정국이 넉달 만에 마무리되는 것이다. 탄핵심판 선고 전야까지 탄핵 찬반으로 갈라진 민심의 충돌이 이어진 가운데 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끝내 승복에 대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3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관들은 윤 대통령 탄핵 여부를 두고 이날 오전 평의를 열었다. 재판관들은 4일 오전 선고 직전에도 평의를 열어 최종 결정문을 작성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오전 11시부터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읽게 된다. 재판관 8명 중 6명 이상이 탄핵 인용을 결정하면 윤 대통령은 즉시 파면된다. 이 경우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두 번째 파면된 대통령이 된다. 기각·각하 시에는 즉시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해 직무에 복귀할 예정이다.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탄핵심판 선고기일 전날인 이날까지 승복 선언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질서 유지와 경호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 선고 결과에 따라 직접 메시지를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이날 승복 여부에 대한 언급 없이 ‘제77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여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제주 4·3사건과 5·18민주화운동을 언급하며 “계엄이 단죄되지 못해 오늘날 다시 (12·3) 계엄에 의한 군정을 꿈꾸는 황당무계한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탄핵 찬반 단체들은 헌재 선고 이후에도 헌재 인근과 광화문, 한남동 윤 대통령 관저 앞 등에서 시위를 이어간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헌재 결정 이후라도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통합 메시지를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하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날도 헌재 판결 승복을 두고 충돌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늘의 사태를 불러온 데는 민주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승복은 당사자이자 가해자인 윤석열(대통령)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승복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다면 그들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모두)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발언과 행동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헌재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예고하자 원로 및 전문가들은 1일 헌재 결정에 대한 조건 없는 승복을 강조했다. 초유의 12·3 비상계엄과 장기화된 탄핵 정국으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분노한 민심이 헌재 심판 결과를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정치·사회 지도자부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 지도자들이 통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내놓는 등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민 통합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불복하면 감당할 수 없는 위기 맞을 것” 원로들은 탄핵 찬반 세력과 양당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한국 사회의 갈등이 위험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진단했다. 헌재 심의가 길어진 것도 양측이 세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 양측이 자제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며 “시민들이 계속 광장으로 달려 나오는 건 위험천만하다”고 했다. 그는 “탄핵이 인용되면 반대 측에서 항의 집회를 벌이는 등 소요가 일 것”이라며 “대선에 후보를 내 정상적으로 선거를 하고 결과에 순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지 않으면 혼란이 훨씬 클 것이라는 게 최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모든 결과를 다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그런 경우엔 사태가 폭동으로 번질 위험마저 있다”며 “대통령이 임기 단축과 개헌을 시도한다고 해도 엄청난 논쟁을 불러올 것인데, 얼마나 동의를 얻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손 교수는 “개인적으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국가와 국민에 대한 폭력이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속이 쓰릴지언정 받아들여야 한다. 한번 결정된 헌재 판결을 무리하게 바꾸겠다면 남는 것은 폭력뿐”이라고 강조했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agree to disagree)’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대한 이해와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인정이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나 국민들한테 필요하다”며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의 승복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선고 당일) 여야 지도부에서 승복한다는 공식 성명부터 내야 한다”며 “(국민들이 승복하게 만들기 위해선) 차기 주자들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게 통합 얘기를 자꾸,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 “이제 통합의 시간이 돼야” 국민 분열이 극심해진 현 상황에 대해 정 회장은 “한쪽에서는 다수결, 한쪽에서는 거부권 등으로 힘의 논리를 자제하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며 “정치 지도자들이 헌재의 결과를 자기 유리한 쪽으로 서로 유도하기 위해 지금 양쪽에서 텐트를 치고 장외 정치를 하는 이런 모습은 민주국가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선고날인 4일 ‘국가를 걱정하는 원로 모임’에서 국민들은 평상으로 돌아가고 정치인도 원내로 돌아가라고 권면할 예정”이라며 “탄핵심판 이후 국민통합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법적 판단과 별개로 모든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 바로 윤 대통령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며 “전쟁이나 전시에 준하는 상황도 아닌데 계엄을 선포하고 총을 든 군인을 국회로 보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탄핵이 인용될 경우 탄핵 반대 쪽은 헌재의 결과에 승복하고 특히 일부 지도자들은 1월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 난입과 같은 일이 초래되지 않도록 지지층 결집 메시지를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헌 등을 통한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 교수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정부 여당과 의회 권력 간의 극한 대립이 계엄이라는 불덩이를 만나 엄청난 폭발력을 갖게 됐다”며 “이번 사태를 정당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드는 전기로 삼아아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위성정당을 불러온 현행 비례대표제를 없애고, 다당제의 정착을 위해 중대선거구제나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강 교수도 “헌재 결정이 또 다른 갈등이나 극단적 대결로 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정치제도의 개혁이나 개헌 논의도 나오고 있는데 승자독식 구조를 깨고 포용적 형태의 국정 운영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왜곡된 정보가 증폭돼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