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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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광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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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18~2025-12-18
칼럼100%
  • “불치병 형제와 아버지 돕고 싶어”… 세상은 아직 따뜻했습니다

    불치병인 근이영양증으로 투병하는 박현민(25) 현진 씨(19) 형제와 이들을 홀로 돌보는 아버지 박승훈 씨(51) 사연이 알려지자 함께 아픔을 나누며 돕고 싶다는 독자들의 후원 문의가 이어졌다. 이들의 제주도 여행을 주관한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과 본보에는 이날 하루에만 30여 건의 후원 신청이 들어왔다. 경기 안산시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 정모 씨는 이날 기자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지난달 현민 씨 형제처럼 근이영양증을 앓던 동생을 하늘나라로 보냈다”며 “기사를 보니 먼저 간 동생과 간병하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이 생각나 물질적 지원을 포함해 현민 씨 가족을 어떻게든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30여 명의 후원 신청자 가운데 20명가량은 물질적 지원을 약속하며 계좌번호를 물어왔다. 후원 의사를 밝힌 사람은 서울의 한 특급호텔 대표, 가정주부, 대학생 등 다양했다. 또 자원봉사 등을 통해 돕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자신을 60대 아파트경비원이라고 소개한 한 후원자는 “내가 돈이 없어 경제적 도움은 못 줘도 몸은 아직 펄펄하다. 아버지가 아이들 데리고 외출하거나 씻길 때 나도 돕고 싶다”라며 연락처를 남겼다. 다슬기원액 제조 공장을 운영한다는 이모 씨는 “두 아들과 아버지 건강을 위해 다슬기원액이라도 기부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기사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는 반응도 많았다. 은행원 설모 씨는 “기사를 보며 아버지가 생전에 너무 무뚝뚝하셔서 ‘사랑한다’는 말 한번 못해 본 일이 떠올라 많이 울었다. 추석이라 곧 아버지 묘소를 찾아뵐 텐데 현민 씨네 가족도 따뜻한 추석이 됐으면 좋겠다”며 선물을 보낼 주소를 물었다. 두 아들을 둔 교사라고 밝힌 윤모 씨는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해서 평소 야단을 많이 쳤는데 건강하고 밝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며 “형제가 집에서만 지내면 많이 답답할 텐데 바깥세상을 볼 수 있도록 책을 보내주고 싶다”고 전해왔다. 직업군인 출신의 박모 씨도 e메일에서 “14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이후 얼굴 보조개를 이용해 컴퓨터를 쓰는데 이 글도 보조개로 쓰는 중”이라며 “막상 휠체어 위에서 살아보니 그 형제들의 고통이 실감이 되고 현민 씨 가족이 사는 걸 보며 제가 더 힘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www.wish.or.kr) 02-3452-7474. 후원 계좌 하나은행 365-1004-1004-004, 예금주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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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rrative Report]불치의 근육병 앓는 형제, 그들을 홀로 키운 아버지… 3부자의 특별한 제주 여행

    20대 초반을 넘기기 어려운 병이라고 했다.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 폐 근육까지 마비돼 질식하듯 죽어가는 근이영양증. 박승훈 씨(51)의 두 아들은 모두 이 병을 앓고 있었다. 현민(25) 현진 씨(19) 형제는 모두 이 근육병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 천형(天刑)이나 다름없었다. 형제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현민 씨는 이 병 환자들의 평균 수명을 이미 넘겼다. 폐가 상당 부분 굳어 하루 14시간을 산소호흡기에 의존한다. 앉아 있기도 어렵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한다. 현진 씨는 형의 6년 전 모습이다. 형은 동생의 미래이고 동생은 형의 과거였다. 이들은 늘 집에 누워 함께 지냈다.형은 생을 마감하기 전에 바다 냄새를 맡고 싶어 했다. “사방이 뚫린 곳에서 바다 냄새를 맡고 싶다”는 말을 수백 번 되뇌었다. 동생은 5월 형의 소망을 담아 소원성취 기관인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사연을 보냈다. 두 달 만에 당첨 소식이 왔다. 평생 병마와 싸워야 하는 두 아들을 바라보기 힘들어 하던 엄마가 14년 전 집을 떠난 뒤 세 부자(父子)가 함께하는 첫 여행이었다. 세 남자는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게 됐다. 기자도 그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여행을 함께했다. ○ 고통스러운 여행의 시작 고작 2박 3일 여행이지만 24일 경기 성남시 현민 씨 집 앞에는 어른 가슴 높이의 짐 가방이 3개나 나와 있었다. 가방 안에는 산소호흡기, 호흡조절기 등 의료장비와 환자용 매트가 담겨 있었다. 트럭까지 불러 짐과 휠체어를 싣는 아버지에게 아파트 경비원이 물었다. “오늘 이사 가시나 봐요.”마음은 들떠 있었지만 난생처음 비행기 여행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34kg가량의 현민 씨를 안고 기내에 들어갔다. 좌석 3개를 확보한 뒤 오른쪽 끝에 아버지가 앉고 왼쪽 두 자리에 현민 씨를 뉘었다. 아버지 무릎에 머리를 파묻은 현민 씨는 왕방울만 한 눈을 깜박이기만 했다.비행기가 뜨기 전 승무원이 아버지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정상적인 비행 중 사고에 대해서는 보호자가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였다. 죽음을 앞둔 자식에게 이런 서약서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다른 불치병 환자 가족처럼 아들에게 허락된 시간이 더 소중했는지 아버지는 주저 없이 서류에 사인했다. 그들은 이미 살기 위해 마음 졸이지 않는 방법을 터득한 듯했다.○ 바다를 가슴에 품다힘겨운 비행 끝에 도착한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해안휴양지인 섭지코지가 이들의 첫 행선지였다. 아버지는 관광에 앞서 미리 얼려온 생수통을 형제들 품에 안겼다. 땀이 많이 나면 식으면서 감기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오르자 작은아들 현진 씨가 손짓을 한다. 소변이 급하다는 신호였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후미진 곳으로 옮긴 뒤 페트병을 꺼내 능숙하게 소변을 받아냈다.현진 씨는 전동 휠체어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마음껏 바다 구경을 했지만 휠체어에 누워 있는 형은 곁눈질로 바다를 내려다봤다. 아버지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형 현민 씨를 아기처럼 끌어올렸다. 제주의 푸른 바다는 그렇게 맏아들의 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어깨에 팔을 기댄 현민 씨는 신기한 듯 바다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바다 향기를 담아 가겠다”며 지그시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했다. 병으로 쇠약해진 호흡기 근육이 경련을 일으킨 것이다. 다시 휠체어에 누운 현민 씨는 동생을 바라보며 기자에게 말했다. “저도 몇 년 전엔 저렇게 돌아다녔는데…. 동생이 부럽기도 하지만 저 녀석도 곧 저처럼 될 것 같아서 그게 참 불쌍해요.”○ 큰아들의 유일한 효도아버지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목욕 준비를 했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두 아들은 땀에 젖어 있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아버지는 현민 씨 먼저 욕실로 안고 가 옷을 벗겼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몸이 드러났다. 다리는 아버지 손목보다 가늘었다. 새하얀 피부엔 핏기가 없었다. 척추측만증까지 겹쳐 등은 S자로 휘어 있었다. 박 씨는 큰아들이 초등학생 때 찍은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아동복이 꽉 낄 만큼 통통했던 그가 이렇게 변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아버지는 욕조를 놔두고 차가운 욕실 바닥에 아들을 뉘었다. 욕조에서 미끄러진 아들이 옴짝달싹 못한 채 질식사할 뻔한 기억 때문이다. 현민 씨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아빠, 여기까지 와서 힘드시죠”라고 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슬픈 미소’가 번졌다.박 씨는 저녁 식사를 내오며 소주 한 병을 가져왔다. 두 아들 입에 밥 한 숟가락을 먹일 때마다 그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지독한 불면증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평소 매 시간 일어나 두 아들의 근육이 뭉치지 않도록 수시로 자세를 바꿔준다. 산소호흡기를 끼고 자는 현민 씨의 상태도 살펴야 한다. 그러다보니 10년 넘게 깊은 잠을 자 본적이 없다.그걸 아는 현민 씨는 아버지가 깰까봐 혼자 끙끙대는 날이 많다. 현민 씨는 “그것 외에 아버지에게 효도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수없이 떠올려본 자살14년 전 아내가 집을 나가고 혼자가 됐을 때, 아버지는 수없이 자살을 떠올렸다. 불치병에 걸린 두 아들을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감뿐 아니라 간병을 위해 공무원 생활까지 그만둬 경제적 궁핍도 심각했다.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 100만 원이 전부였다. 높은 곳만 가면 뛰어내릴 생각이 들까봐 한동안 베란다에도 나가지 못했다. “술에 취하면 애들한테 ‘베란다에서 함께 점프할까’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둘째가 형 손을 꼭 잡습디다. 목숨이란 게 그렇더군요.”주변에선 두 아들을 장애인시설로 보내고 새 장가를 들라는 권유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두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글쎄요…. 애들한테는 좋을지 몰라도 저는 혼자 못 살아요.”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전용매트에 두 아들을 차례로 눕혔다. 현민 씨에겐 산소호흡기를 씌웠다. 현진 씨는 호흡 조절기를 물린 채 숨쉬기 훈련을 시켰다. 이 연습을 열심히 해야 형처럼 되는 날을 늦출 수 있다. 연습을 조금만 해도 가슴 통증이 심해진다. 현진 씨가 못 하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형이 나서서 “나처럼 되고 싶냐”고 했다. 여행중 형이 화를 낸 건 그때가 유일했다. 비장애인이 평소 느끼지도 못하는 숨쉬기가 이들에겐 매일 밤 생사를 걸어야 하는 일이다.현진 씨의 호흡기를 누르던 아버지가 숨이 가쁜 듯 주먹으로 가슴 왼쪽을 치기 시작했다. 두 아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심장도 안 것일까. 아버지도 아들을 돌보느라 몇 년 전 심장에 병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심장 판막수술까지 받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있다. ○ 아버지의 편지어렸을 적 공군비행사가 꿈이었던 현민 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친구를 사귀어 보겠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 뒤부터는 마음을 비웠다. 그 대신 매일 같은 옷만 입는 아버지를 위해 직접 돈을 벌어 옷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에게는 마지막 꿈인 셈이다. 현민 씨는 “아버지한테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고 가야 할 텐데…”라고 혼잣말을 했다. 현민 씨는 자신을 품어준 세상에 ‘자신의 마지막’을 남기기로 했다. 지난달 동생과 함께 장기기증서약을 한 것이다. 아버지는 이미 15년 전 기증서약을 했다.여행 마지막 날 밤, 아버지는 잠자리에 누운 두 아들 사이에 앉아 붉은색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남자끼리 지내다 보니 평소 깊은 대화가 없었는데 모처럼 용기를 내 쓴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들 현민, 현진아. 아빠가 너희 나이 땐 참 꿈이 많았는데 너희들이 온종일 집에만 누워있는 걸 보면 다 내 죄인 것 같아 가슴이 메도록 쓰리구나.’산소호흡기를 하고 누운 현민 씨는 아버지가 편지를 읽는 동안 눈물로 그렁그렁해진 두 눈을 계속 깜박였다. 자식에게 큰 짐을 지운 것을 자책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버리지 않고 키워준 것에 대한 감사함…. 그들의 ‘아름다운 여행’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제주=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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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노현 ‘단일화 뒷거래’ 파장]오세훈法이 곽노현 잡는다?… 郭, 2억줬다 35억 토해낼판

    ‘죽은 오세훈이 산 곽노현을 잡았다(?).’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사퇴 대가로 2억 원을 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빚더미에 앉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곽 교육감의 혐의가 인정돼 유죄가 확정될 경우 이는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것이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비용 보전으로 받았던 35억2000만 원을 물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2억 원을 줬다가 35억여 원을 토해내야 할 처지에 놓인 셈이다.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3월 공개한 곽 교육감의 재산 총액은 15억9815만 원. 교육감 취임 직후인 지난해 7월에는 재산이 ―6억8000만 원이었지만 선거비용으로 썼던 35억2000만 원을 보전 받아 재산이 다시 늘었다.공직선거법 제265조 2항은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이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보전 받은 선거비용 전액을 국고에 반환하도록 하고 있다. 또 공직선거법 제232조는 ‘후보자가 되지 않게 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재산상 이익이나 공직을 제공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3000만 원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곽 교육감이 유죄를 받으면 교육감 직을 잃는 것은 물론 35억2000만 원을 반납해야 한다.아이러니하게도 이 법은 최근 무상급식 문제로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오세훈 전 시장이 2004년 16대 국회의원 시절 만들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중달을 쫓았듯 물러난 오 시장이 만든 법이 현직에 있는 곽 교육감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다만 공직선거법 제265조 2항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공직자가 검찰 기소 전에 사임하면 선거비용을 반환하지 않도록 하는 맹점이 있다. 예전에는 당선무효 확정판결 전에만 사퇴하면 선거비용을 반환하지 않도록 하다보니 1, 2심 판결 후 사퇴 여부를 결정하는 부작용이 있어 기소 후부터는 사퇴해도 선거비를 돌려받도록 2005년 법규정을 강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소 전 사퇴하는 공직자에 대해선 선거비 반환 책임을 묻지 못하는 미비점이 있다. 때문에 29일 사퇴 거부의사를 밝힌 곽 교육감이 입장을 번복해 기소 전 사퇴할 경우 35억2000만 원을 물지 않아도 된다.한편 전임자인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도 아내 차명계좌에 있는 4억3000만 원을 누락한 채 재산신고를 한 혐의로 2009년 10월 당선무효형인 벌금 150만 원의 확정판결을 받아 선관위로부터 선거비용 28억8000만 원을 반환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공 전 교육감은 지난해 12월 “선거비용은 돌려줄 수 없다”며 선거비용 보전액 반환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패소했지만 아직 돈을 내지 않고 있다. 공 전 교육감은 “당선 무효형이 확정되면 선거비용을 반환토록 한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으나 올 4월 패소하기도 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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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수 반대에 경찰이 평화 구걸해선 안돼… 불법시위 세력 끝까지 찾아내 처벌할 것”

    조현오 경찰청장은 최근 불법 시위와 관련해 엄정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 경찰이 시위대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하지만 군홧발 폭행 같은 돌발 상황은 시위대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시나리오”라며 “불법 시위자는 사후에 반드시 찾아내 법대로 처벌한다는 신호를 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30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조 청장은 28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찰의 향후 집회·시위 관리 방향에 대해 “미국 경찰처럼 정치인이라도 폴리스라인을 넘으면 수갑을 채워 체포하는 것은 우리 정서상 아직 맞지 않다”며 “경찰이 시위대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게 반드시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 강정마을 적극 시위자 20∼50명 불과 조 청장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와 관련해 “현재 배치된 157명 외에 추가 경찰력 투입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조 청장은 “기지 건설에 격렬히 반대하는 세력은 소수에 불과하고 이미 많은 경찰력이 투입돼 경찰관들의 피로가 극에 달했다”며 “해군기지 착공으로 시위대의 불법행위가 예상되거나 벌어진 경우에만 경찰력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24일 서귀포서 송양화 서장이 시위대에게 7시간 동안 억류된 채 연행자 석방을 약속하는 등 황당한 처신을 한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유로도 변명이 안 되는 사안이고 경찰의 집회 통제 방침과도 맞지 않아 경질했다”며 “감찰 조사를 거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강정마을 주민 1800여 명 중 적극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자는 20∼50명에 불과한 것으로 안다”며 “소수의 불법세력을 상대로 경찰이 평화를 구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진압은 신중히” 조 청장은 최근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이 모인 공안대책협의회에서 폭력시위 대응방식을 기존의 ‘해산 유도’에서 체포로 바꾸는 등 강경 대처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에 대해 부연설명을 했다. 조 청장은 “집회 시위 관리는 경찰 고유 업무”라며 “관련 수사는 검찰이 지휘권을 갖고 있어 따르겠지만 집회 시위 관리는 전적으로 경찰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 청장은 “집회·시위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으로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며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법 집행을 해야지 너무 억압하면 ‘공안탄압’이란 여론이 확산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집회 때처럼 극심한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지난해 8월 취임한 뒤 물리적 충돌의 소지가 큰 현장 진압은 신중하게 하되 불법행위를 적극 채증한 뒤 사후에 사법처리하는 방향으로 시위 대응 기조를 바꿨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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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리 범벅’ 곰팡이 군납 빵… 업자 - 軍간부 배만 불렸다

    국군 장병이 먹는 건빵과 햄버거를 관리하는 공무원 및 군 간부들이 납품업체에서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고 특혜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뇌물 공무원들은 규정보다 높은 가격에 식품을 납품받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품업체는 싸구려 저질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군에 납품했다. 이렇게 남긴 차액은 고스란히 공무원과 군 간부, 납품업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3일 군용 건빵과 햄버거용 빵 납품업체로 선정되도록 낙찰 단가를 미리 알려주고, 원가보다 비싸게 납품할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해당 업체에서 5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방위사업청(방사청) 이모 사무관(5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 사무관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납품업체 관계자 10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사무관은 납품가격을 산정할 때 제조 원가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가격을 올려 D사 등 9개 제조업체로부터 건빵을 납품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들은 건빵을 실제 원가보다 비싸게 납품하면서 지난해 초부터 최근까지 1년 6개월 동안 6억6000여만 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 하지만 D사는 실제보다 높은 가격에 납품하면서도 방사청이 규정한 제조 요건을 준수하지 않고 식품을 만들어 6100만 원의 차액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업체들이 계약상 건빵용 반죽을 만들 때 쌀가루와 밀가루를 같은 비율로 섞어야 하는데 쌀가루는 조금만 쓰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밀가루를 많이 넣어 재료비를 아끼는 등의 수법을 썼다”고 말했다. 실제로 납품업체들이 군부대에 납품한 햄버거용 식빵 중 상당수는 가장 자리에 곰팡이가 피거나 일부가 뜯겨 있고, 건빵은 반죽 상태가 고르지 않아 곳곳이 파였다. 방사청은 4월에도 D사가 햄버거용 빵 제조일자를 속여 군에 납품한 사실을 적발했지만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한 달 뒤 50억 원 규모의 식자재 군납업체로 다시 선정해 특혜 의혹을 받았다. 당시 방사청은 “적법 절차와 규정에 따라 결정된 만큼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경찰 조사로 이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또 경찰은 강원도 전방부대에 근무하는 육군 김모 중령(48) 등 8명에 대해서도 건빵 햄버거 제조업체에서 돈을 받은 혐의를 확인하고 국방부에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 김 중령 등은 건빵과 햄버거 품질검사를 하면서 부패 제품이 나오자 이를 무마해 주고, 위생 점검 단속 정보를 알려주는 조건으로 업체 측에 돈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중령 등은 부패한 햄버거용 빵을 카메라로 촬영해 업자들에게 보여주며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김 중령 등은 5월 한 달 동안만 약 550만 원의 돈을 받았다”며 “과거에도 돈을 받은 혐의가 있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 201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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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 기도 신창원이 올초 외부로 보낸 편지 내용은…

    18일 새벽 교도소 독방에서 자살을 기도한 신창원(44)의 그동안 심리상태를 엿보게 해주는 편지(사진)가 공개됐다. 신창원은 이 편지에서 10여 년 독방 생활로 인한 고통과 좌절감을 호소했다. 이 때문에 신창원이 장기간의 수감생활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택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편지는 1월 문성호 자치경찰연구소장에게 보낸 것으로 문 소장은 수감 중인 신창원에게 재소자 인권운동에 관한 책을 보내준 인연으로 친분을 유지해왔다. 신창원은 편지에서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며 “인간은 인내의 한계점을 넘어서면 어떤 형태로든 극단적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10년 3개월 동안 징벌을 받은 적이 없고,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도주를 기도한 적이 없지만 10년 5개월째 독방에 격리돼 있다”며 “내가 왜 수갑을 차고 다녀야 하며 TV 시청을 금지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그는 미국에서 강력범들을 독방에 격리해 기본적 처우를 제한하는 실험을 했다가 수용자 자살 등 문제가 생겨 실험이 중단된 사례를 거론하며 “엄중 격리된 상태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수용자를 많이 봤고, 나 또한 악몽, 우울 장애, 불면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수십 번 위험한 고비와 수백 번 인내의 한계점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10년 넘게 수감자를 독방에 가두는 가혹한 교도행정에 대해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통해 문제제기하려 했고 논문 작성도 준비하고 있다”며 문 소장에게 해외 교정행정 우수사례와 엄격한 구금이 낳는 부작용에 관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문 소장은 신창원 자살 기도 직후인 18일 오후 이 편지를 트위터에 공개하며 “그의 자살 시도는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라기보다 장기수에 대한 절망적인 수용 실태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신창원은 1989년 공범과 함께 가정집에 침입해 3000여만 원의 금품을 빼앗고 집주인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97년 탈옥해 2년 반 만에 잡혔다. 1999년 7월 다시 수감된 그는 고입과 고졸 검정고시에 연이어 합격하기도 했다.신 씨 병원 치료후 재수감자살 기도 직후 안동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신창원은 정상적인 식사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돼 20일 복역하던 경북 북부 제1교도소(옛 청송교도소)로 옮겨졌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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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30대 중반의 이 남성은 도시 주택가 지역을 아침저녁으로 출몰함. 상습적으로 무고한 시민을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함. 대낮에도 부녀자와 미성년자를 강간하고 유유히 사라짐.’ 신고처: 없음》 읽다 보면 섬뜩해지는 이 현상수배 전단은 사실 경찰이 없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지 반어적으로 묘사한 홍보광고다. 광고 아래는 ‘만약 하루만 경찰이 사라진다면?’이란 문구 아래 ‘세상이 비록 우리를 몰라줄지라도, 세상은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라는 경찰의 존재 의의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이 경찰 홍보 광고는 ‘광고 천재’로 불리며 국제적 광고 공모전을 휩쓴 광고전문가 이제석 씨(29·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가 만들었다. 이 씨는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보수작업 때 ‘이순신 장군 탈의 중’이라고 쓰인 광고물을 설치해 화제를 낳은 인물. 그는 계명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2006년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에 편입한 뒤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원쇼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국제 광고 공모전에서 50여 차례 수상했다. 경찰은 19일 이 씨를 경찰 홍보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이 씨는 이날 위촉식에서 지구대 간판을 술집 네온사인처럼 형상화한 뒤 ‘경찰서는 술집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홍보물도 소개했다. 취객들이 지구대에서 난동을 부리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이 씨는 “근엄하고 딱딱한 지금의 경찰 이미지를 친근하게 바꾸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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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어지자”에 칼부림… 뒤틀린 ‘이별 살인’ 왜?

    지난달 30일 이모 씨(29)는 부산 동래구에 있는 헤어진 여자친구 김모 씨(27)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다시 눌렀다. 막 전 여자친구의 어머니로부터 “이제 마음을 정리하라”는 말을 듣고 나온 상황. 전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할 말이 더 있나’ 하는 생각에 문을 열어 주자 이 씨는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가 흉기로 전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찔렀다. 끔찍한 상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머니 비명소리에 뛰쳐나오던 중학생 아들도 이 씨의 칼에 쓰러졌다. 전 여자친구인 김 씨는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사건으로 김 씨의 어머니는 숨지고 김 씨와 남동생은 중태에 빠졌다.헤어진 애인에게 끔찍한 보복을 가하는 사건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7일 전북 전주시에서는 30대 직장인이 귀가하던 전 여자친구를 집 앞에서 흉기로 살해했다. 6월에는 걸그룹 ‘아이리스’의 멤버 이은미 씨(24)가 전 남자친구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이 씨는 무려 60군데나 칼에 찔렸다. 연인과의 이별은 흔한 일이지만 이처럼 끔찍한 결말로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특히 이 같은 ‘이별 살인범’은 왜 대부분 남성일까.○ 실연당한 남성들 왜 극단적 선택?전문가들은 가해자 심리 분석이나 인간 행태 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진화심리학적 본능=전문가들은 남녀 간 진화심리학적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남성들은 연인에 대해 내 자식을 낳아 줄 여성으로 여기는 본능이 있어 육체적인 질투심이 강한 편이라는 것. 내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면 남의 자식을 위해 평생을 봉사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잘 보살펴 줄 남자를 원하기 때문에 육체적인 관계보다 감정적인 친밀감을 중요시한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공정식 교수는 “여자는 결별 후 감정적 교류가 없으면 관계도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남자는 연애시절 성적 본능이 남아 있어 여전히 ‘내 여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폭력을 써서라도 자기 소유로 만들려는 속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 이론=애인을 때리는 남성들은 대부분 연애 초기 과도한 정성을 보인 경우가 많다. 선물 공세 등 물질적 투자뿐 아니라 일상 업무와 인간관계를 포기해 가면서까지 여자친구에게 헌신하는 것. 이 과정에서 상대에게 동등한 희생을 요구하다가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실연을 당하면 남성이 느끼는 배신감과 박탈감은 연애 초기에 들인 열정에 비례해 커진다는 설명이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준호 교수는 “이런 남성들은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하는 생각에 폭행 자체를 정의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전 여자친구의 가족에게까지 흉기를 휘두른 이 씨의 경우 여자친구가 연락을 피하자 “너 때문에 좋은 직장도 포기했는데 도망가면 무사할 것 같으냐”며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문화지체 현상=가부장적 사고방식에서 빠져나오는 남녀 간 속도차도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요즘 여성들은 남성에게 순종하지 않는데 가부장적 사고에 갇힌 일부 남성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사회 분위기상 그런 분노를 속으로만 쌓아 둔 상태에서 상대방이 결별 통보 등으로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된다”고 말했다.▽신분적 열등감=사회적 지위가 안정적인 남성은 이별 후 새로운 여성을 만나거나 취미생활 등을 통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남성들은 사정이 다르다. 상대 여성과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 때문에 헤어진 뒤 홀로 있는 상태가 길어지면 연애할 때 느꼈던 열등감은 더욱 깊어지고 그게 상대에 대한 극단적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가수 이은미 씨를 살해한 중고차매매업소 종업원 조모 씨(28)는 이 씨가 인기를 얻으면서 이별을 통보하고 연락을 끊자 자신의 불안정한 지위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고 살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력 남친’ 안 바뀐다전문가들은 이 4가지 심리가 일반인에게도 흔히 나타나기 때문에 누구라도 치정범죄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7일 전주에서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박모 씨(39)는 경찰 조사 결과 흉기를 휘둘러 쓰러뜨린 여자친구를 병원 응급실로 직접 옮겼다. 경찰은 “박 씨가 응급실 앞에서 온몸에 피를 묻힌 채 떨고 있었다”며 “홧김에 범행을 하고 후회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최근 검거된 가해 남성의 직업은 공무원, 세무사, 공장 근로자 등 평범한 직장인이 대부분이었다.일부 여성이 ‘남자친구의 성격이나 폭력 성향까지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평강공주 신드롬’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정책국장은 “주먹을 휘두른 남성이 용서를 빌며 애정공세를 펼 때 여성들이 ‘내게도 잘못이 있다’며 다시 받아들이면 그 후 폭력이 점점 세지고 나중엔 그 공포 때문에 결별조차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이충우 인턴기자 고려대 영문과 4학년  김태원 인턴기자 한국외대 불어과 4학년  ▼ 법원 솜방망이 처벌 화 키워 ▼스토킹법도 10년째 국회 계류헤어진 연인을 상대로 한 범죄는 일반의 상식보다 온정적인 처벌을 받고 있다.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9일 헤어진 연인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힌 회사원 김모 씨(37)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계획적 범행이지만 애인 마음을 돌리려는 순수한 의도였다고 보고 가벼운 처벌을 내린 것. 재판부에 따르면 김 씨는 2008년 여자친구 이모 씨(36)가 결별을 선언하고 잠적하자 택배회사 수십 곳을 탐문해 이 씨의 주소를 알아냈다. 그러곤 가스검침원을 가장해 집에 들어가 흉기로 이 씨를 여러 차례 찔러 중상을 입혔다. 법원은 김 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지만 그가 범행 전 남긴 메모에 주목했다. 거기엔 “내 목숨을 주더라도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고 싶다. 난 아직 시작이라 생각한다. 진정 목숨처럼 사랑했기에 후회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재판부는 “이런 글을 쓴 피고인이 살해할 마음까지 먹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고 변심한 피해자를 설득하려 했으나 상대가 반항해 범행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며 살인미수가 아닌 상해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지난달 10일에는 전 여자친구를 도끼로 위협해 납치하고 성폭행한 30대 남성에 대해 “옛 애인이 이별 후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게 된 것에 충격을 받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4년을 선고했다.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정책국장은 “폭력은 집착일 뿐 애정과 무관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인데 법원이 이를 혼동해 온정적 판결을 하고 있다”며 “피해여성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몇 년 뒤 보복 당할까봐 신고조차 못 한다”고 말했다.‘이별 살인’의 전조증상인 스토킹도 이를 처벌하는 법안이 2001년부터 국회에 여러 번 발의됐지만 번번이 묵살돼 경범죄로 취급되고 있다. 경찰관계자는 “애인을 괴롭히는 남성들은 대부분 성격이 소심해 공권력이 개입하면 범행할 엄두를 못 낸다”며 “증거가 없더라도 수사를 할 수 있고 신변보호도 받을 수 있는데 피해 여성들이 되레 수사를 만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 201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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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청장 e메일 수신함 뒤져본 간 큰 의경

    의경이 경찰 내부 전산망을 해킹해 조현오 경찰청장의 e메일 수신함을 뒤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정보통신관리관실은 지난달 말 경찰관 전용 전자메일시스템을 해킹해 조 청장 등 경찰 관계자 10명의 e메일 수신함을 몰래 본 혐의로 부산지방경찰청 산하 기동대 소속 김모 수경(23)을 조사 중이라고 12일 밝혔다. 경찰 내부 e메일은 일반 인터넷과 완전히 분리돼 운영되는 시스템으로 외부인이 인터넷망을 통해 접속할 수 없게 돼 있다. 경찰에 따르면 기동대 행정병인 김 수경은 직속 소대장 PC를 이용해 평소 외워둔 그의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방법으로 내부 e메일 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런 뒤 e메일 시스템을 해킹해 조 청장 등 경찰 핵심 관계자들의 e메일 보관함까지 살펴본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김 수경이 조 청장의 e메일 수신함 화면을 캡처해 외부 인터넷 매체인 ‘보안뉴스’ 제보란에 ‘경찰청 내부망 보안 취약점’이란 제목의 글을 올리자 수사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자신의 컴퓨터 실력을 과시하거나 경찰 내부의 보안상 허점을 보완하려는 공명심에 따른 시도 정도로 보고 있다” 말했다. 김 수경은 6월 20일에도 소대장의 e메일 계정을 무단으로 사용하다 적발됐다. 내부 접속 권한이 없는 의경이 몰래 경찰 전용망에 접속했지만 경찰은 김 수경에 대해 별다른 경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부산의 한 사립대에서 정보보호학을 전공하는 김 수경은 당시 소대장 계정을 통해 “경찰 전자메일 시스템이 너무 쉽게 뚫려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전자 쪽지를 써 경찰청 인터넷 보안부서로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소대장이 쪽지를 보낸 적이 없다고 해 수소문 끝에 김 수경의 소행임을 알게 됐지만 쪽지 내용이 당시 자체 진행 중이던 보안 개선작업 방향과 부합해 징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김 수경이 조 청장 등 경찰 간부들의 e메일 수신 목록은 열람했지만 e메일 내용을 훔쳐보거나 이를 복사해 외부로 유출한 정황은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이날 오전 수사관 2명을 부산으로 보내 김 수경을 상대로 해킹 방법과 내용, 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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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트·싸이월드 회원 3500만명 개인정보 中유출 확인

    최근 발생한 네이트와 싸이월드 회원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중국에 있는 해커가 주도했고 3500만 명에 달하는 개인정보가 이미 중국으로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해킹이 가능했던 것은 고객들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SK컴즈) 직원들이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개인용 프로그램을 무분별하게 설치해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이 해킹 근원지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SK컴즈에서 유출된 개인정보가 압축프로그램 ‘알집’을 판매하는 컴퓨터 보안업체 이스트소프트의 서버를 경유해 중국에 할당된 인터넷주소(IP)로 넘어갔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28일 해킹 피해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SK컴즈, 이스트소프트, 기타 관련업체의 PC와 서버 등 40여대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 조사 결과 해커들은 지난달 18일 알집의 광고 업데이트 서버를 통해 SK컴즈 사내 PC에 접근했다. 광고 업데이트란 회사가 대중에게 무료로 프로그램을 배포하는 대신 광고 수익을 얻기 위해 사용자들에게 노출되는 광고가 수시로 바뀌도록 하는 작업이다. 이 업데이트 서버를 해킹한 해커들은 미리 파악한 SK컴즈 사내 IP로 감염시킬 대상을 한정한 뒤 정상 업데이트 파일을 악성파일로 바꿔 보내는 방법으로 SK컴즈 사내 PC 62대를 감염시켰다. 해커들은 감염시킨 PC를 원격 조종이 가능한 좀비PC로 만든 뒤 개인정보가 보관된 데이터베이스(DB) 서버에 접근할 수 있는 내부 접속 정보를 일주일에 걸쳐 수집했다. 이후 관리자 권한으로 DB 서버에 접속해 회원정보를 중국으로 유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번 해킹에 사용된 악성코드가 기존에 사용됐던 것들 보다 훨씬 수준이 높고 인터넷 보안의 안전지대라고 여겨지는 보안업체를 대담하게 해킹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상당한 수준의 전문가가 한 소행”이라고 말했다. 이번 해킹 공격의 진원지가 중국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인터넷 보안이 취약하고 국내 수사망이 미치지 않는 중국이 우리나라를 노린 해커들의 집결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8년 중국인 해커가 옥션 회원 1000만 명의 개인정보를 빼간 데 이어 최근에는 북한 해커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국내 온라인 게임을 해킹하는 사례가 잇따라 적발됐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 해킹이 중국 IP를 통해 이뤄졌을 뿐 해커의 신원에 대해서는 아직 단서가 없다”고 설명했다.○ 공짜 소프트웨어가 해커에겐 열쇠 이번 사건에서 해커가 보안망을 뚫는 데 사용한 이스트소프트의 ‘알집’ 프로그램은 일반 개인이 공짜로 내려받아 쓸 수 있다. 하지만 무료 개인용 프로그램은 실행할 때마다 광고 업데이트 기능이 자동으로 작동돼 해커들이 사용자 몰래 악성코드를 심을 수 있는 빌미가 됐다. 반면 기업 고객이 쓰는 기업용 알집 프로그램은 유료로 구입해야 하지만 악성코드 설치 통로가 되는 광고 업데이트 기능이 없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에도 SK컴즈 같은 기업 고객은 유료인 기업용 프로그램만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이번 해킹 과정에서 좀비PC로 이용된 SK컴즈 PC 62대는 모두 개인용 알집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다. SK컴즈 직원들은 물론이고 회사 측에서도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 방지 교육 및 정기 점검 등 충분한 예방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정보기술(IT) 기업 직원들이 개인용 공짜 프로그램을 쓸 경우 해킹 등 심각한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며 “기업용 정품 프로그램을 썼다면 이렇게 쉽게 뚫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 201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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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 공사 몰아주고 뒷돈 챙긴 교직원들… 서울대 과장 등 34명 입건

    학교 공사를 몰아주는 대가로 공사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서울대 등 국립대 교직원과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공사업체는 뒷돈을 주는 대신 자재 단가를 시중가보다 부풀려 납품했으며 이렇게 부풀려진 가격은 등록금과 세금으로 충당됐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9일 창호시설업체인 C사 대표 장모 씨(51·여)로부터 200만∼3000만 원의 금품을 받고 학교 공사를 따게 해준 혐의(뇌물수수)로 서울대 시설과장 최모 씨(54) 등 국립대 6곳 교직원 1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결과 창호업체 대표 장 씨는 전 서울대 시설과장 오모 씨(60)를 영업이사로 고용한 뒤 오 씨를 통해 최 씨 등 국립대 시설과장들에게 뒷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장 씨는 2009년 5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교직원들에게 수시로 골프와 술 접대를 했고 교직원들의 회식비도 대신 내왔다. 경찰은 “장 씨가 납품한 제품은 시중가보다 20∼30%가량 부풀려진 것”이라며 “로비를 받은 교직원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줬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각급 학교에 창호공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장 씨로부터 200만∼15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교육과학기술부와 지방 교육청 시설직공무원 17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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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폭 99%가 구속됐다

    경기 부천시에 사는 김모 씨(51)는 5일 오후 만취상태에서 담배를 피우다 주민 박모 씨(37·여)에게서 항의를 받았다. 김 씨가 박 씨의 초등학생 딸(8)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기 때문. 박 씨가 “왜 어린아이를 괴롭히냐”고 따지자 김 씨는 박 씨 머리채를 낚아채 10여 차례 흔들며 욕설을 퍼부었다. 김 씨는 오래전부터 동네의 골칫덩이였다. 술을 마시면 인사불성으로 동네 식당을 누비며 공짜 식사를 하고 이를 제지하면 상을 뒤엎는 등 행패를 부렸다. 김 씨는 이튿날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구속됐다. 김 씨처럼 술을 마신 뒤 행패를 부리는 상습 취객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경찰청은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음주 후 상습적으로 행패를 부리는 주취폭력범을 집중 단속해 571명을 검거했고 이 중 85.5%인 488명을 구속했다고 8일 밝혔다. 주취폭력범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율도 올해 1∼4월까지는 85.7%였다가 5월 이후 98.7%로 올랐다. 경찰은 주취 폭력범이 경찰관의 공무를 방해할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일반 시민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보고 지난해 말부터 전담 수사팀을 꾸려 집중 단속해왔다. 주취 폭력범죄는 폭력행위가 73%로 가장 많았고 협박이 9.3%로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40대 이상 중년층이 75%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상습주취폭력범의 60%는 전과 11범 이상이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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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머’ 앞세운 재개발의 대가

    도시재개발 업자와 철거민 사이의 보상 협상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한쪽의 이익은 다른 쪽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손해 보지 않으려고 버티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 양쪽이 공멸하는 ‘치킨 게임’으로 바뀐다. 시공업체는 공사비가 갈수록 불어나고 철거민 역시 장사를 못하거나 제때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8일로 공사착공 예정일을 넘긴 지 100일이 되는 서울 중구 명동3구역 재개발 협상이 바로 그런 사례다. ○ “더 내놔”↔“못 준다” 100일째 줄다리기 명동3구역 재개발은 도심을 쾌적하게 바꾸자는 취지의 사업으로 서울 중구청이 지난해 4월 시행인가를 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4월 철거를 끝내고 5월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구역 내에서 장사를 해온 상가 세입자들이 이전을 거부한 채 철거에 반발하면서 착공은 여전히 기약이 없다. 착공이 미뤄지면서 재개발사업 시행사인 명동도시환경개발(명동개발)은 이자만 한 달에 11억4000만 원씩 모두 34억2000만 원을 물었다. 사업 장래성을 보고 돈을 빌리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형태의 고금리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공사인 대우건설도 준비한 공사 장비와 인력을 놀리고 있다. 일을 못한 100일간 하루에 1000만 원씩 약 10억 원의 손해가 났다. 건물 철거를 맡은 창신개발은 제대로 철거를 하지도 못하고 용역직원 인건비로 약 1억2000만 원을 썼다. 공사 지연에 따라 개발 사업자 측은 45억 원을 날린 셈이다. 상가 세입자들도 손해는 마찬가지다. 명동 3구역 내에 있는 점포 102곳 중 아직 가게를 빼지 않고 버티는 점포 11곳의 평균 월수입은 700만∼1300만 원 선. 가게 문을 닫은 것은 아니지만 흉물스러운 주변 환경에 손님도 거의 없어 사실상 파리를 날리고 있다. 가게 한 곳당 월평균 수입을 1000만 원으로 잡을 경우 최근 석 달간 3억3000만 원의 손해를 본 셈이다. ○ 왜 ‘제로섬 게임’ 벌이나 개발 사업자와 세입자 상인 모두 손해지만 해법을 못 찾는 이유는 뭘까. 재개발 시행사는 법에 규정된 액수보다 더 많이 보상할 의향이 있지만 세입자들의 터무니없는 요구엔 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재개발 지역 상가 세입자는 4개월간 영업 손실액과 이전비용을 보상받는다. 시행사인 명동개발은 구청이 정한 감정평가기관 두 곳에서 산정한 보상액보다 20∼40% 많은 400만∼1600만 원을 보상했다. 명동개발 관계자는 “남은 세입자 대부분은 상가 주인과 임대차 계약이 끝나 가게에 남아 있을 권리가 없다”며 “다른 곳에서 지금 수준의 가게를 열 정도의 보상금을 요구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은 현재의 상권을 만들기 위해 권리금 등 5000만∼1억 원을 투자했는데 10∼20%밖에 안 되는 보상금만 받고 쫓겨나면 살길이 막막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입주 당시 투자했던 권리금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돌려받을 길이 없다. 배재훈 명동3구역 상가대책위원장은 “20년 가까이 명동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갑자기 1000만 원 남짓 주면서 다른 데로 가라고 하면 어디서 장사를 하느냐”며 “주거 세입자들 수준으로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한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다. 재개발 지역의 주거 세입자는 휴업 보상비만 받는 상가 세입자와 달리, 개발 이후 재정착을 위해 임대아파트 입주자격을 얻고 개발 기간에는 임시수용시설에서 지낼 수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강한 인턴기자 부산대 법학과  }

    • 201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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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은 재개발前 5000번 만나 갈등비용 줄여

    재개발로 인한 갈등비용의 심각성을 미리 경험한 선진국들은 개발사업자와 주민 간 갈등 예방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역 주민의 80%만 재개발에 동의하면 나머지 20%는 집행 과정에서 설득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과 유럽 여러 나라는 100%에 가까운 주민들이 동의해야 사업을 추진한다. 일본 도쿄 도심의 롯폰기힐스 재개발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시행사는 땅주인과 세입자를 설득하기 위해 5000번 이상 해당 지역 주민을 만났다. 1988년 재개발조합이 설립된 이후 14년에 걸쳐 보상협상을 했고 2002년 사업계획을 세운 뒤 실제 공사는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은 양측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앵커테넌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앵커테넌트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재개발 후 생길 건물에 입주할 ‘거물 임차인’을 말한다. 이들이 새 건물에 입주하도록 정부가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개발업체는 주민들에게 호의적인 협상을 하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남진 교수는 “우리나라는 재개발로 인한 갈등 비용이 워낙 커 차라리 그중 일부를 갈등 예방에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며 “주민들과 원만히 협상을 이뤄내는 사업자에 대해선 용적률을 높여주는 등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중재해야 한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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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게임 해킹 北해커… 김정일 통치자금 관리조직 39호실 산하 기관 소속

    남한 범죄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북한 해커들과 결탁한 이번 사건은 온라인에서 ‘피아(彼我) 구분’이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북한과 연계한 온라인 범죄가 늘어날 경우 국가 전반의 사이버 안보에 큰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두 차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과 농협 해킹을 통해 큰 혼란을 일으켰다. ○ 국가 영재 모아 해커로 키우는 북한주범 정모 씨(43)가 국내 주요 온라인 게임을 해킹하는 오토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중국에서 북한 컴퓨터 전문가들을 끌어들인 이유는 단지 국내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북한 해커들의 뛰어난 실력도 요인 중 하나였다.경찰 조사 결과 사건에 가담한 김혁, 김이철 등 북한 컴퓨터 전문가 30여 명은 모두 김일성종합대와 김책공업대 등을 나왔으며 북한이 국가적으로 양성한 ‘정보기술(IT) 전사’였다. 북한은 중학생 영재들을 선발해 2년간 강도 높은 컴퓨터 교육을 한 뒤 바로 김일성대나 김책공대 컴퓨터 관련 학과에 입학시킨다. 대학에서도 특출한 실력을 보일 경우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게 해 우수 학생들은 고교와 대학 과정을 4년 만에 마칠 수 있다. 이번에 적발된 북한 해커 대부분은 4년 만에 이 과정을 마친 최우수 영재였다.경찰 관계자는 “북한 해커들은 오토프로그램을 기존 ‘그래픽’ 방식이나 ‘메모리’ 방식보다 훨씬 고도의 실력이 필요한 ‘패킷분석’ 방식으로 제작했다”며 “북한이 정책적으로 컴퓨터 영재를 양성해 사이버 범죄에 활용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화벌이 도구로 전락한 북한 엘리트실제로 이 해커들은 북한 ‘조선능라도무역총회사’ 산하인 ‘능라도정보센터’와 북한 내각 직속의 IT연구기관인 ‘조선콤퓨터센터(KCC)’에 근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조선능라도무역총회사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소위 ‘39호실’ 산하기관인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이 회사 사장인 박규홍은 ‘39호실’ 부부장, 평양시 부시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다.경찰은 북한 해커들이 오토프로그램 개발 대가로 남측에서 받은 돈의 상당액을 북한 당국에 상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 해커들이 개발한 프로그램이 시중에 팔리는 가격은 복제품 한 개에 2만 원. 해커의 몫은 이 중 55%였다. 경찰 관계자는 “북한 해커들이 매달 500달러씩 북한 당국에 의무적으로 송금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외화벌이를 하는 북한의 IT전문가가 1만 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며 매달 500만 달러(약 50억 원)가 북한 당국으로 들어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사이버테러 위한 사전 작업 의혹도문제는 북한 해커의 해킹이 외화벌이에 그치지 않고 남한의 국가 기간망을 노리는 기술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찰 조사 결과 북한 해커들은 오토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국내 게임 이용자의 PC와 게임 서버를 연결하는 서버 포트가 계속 열려 있도록 해놓았다. 북한 측 관리자가 언제든 디도스 등 악성코드를 게임 이용자의 컴퓨터에 삽입해 ‘좀비 PC’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정 씨 일당은 북한 해커들이 국내 서버를 확보해 달라고 요구하자 실제로 마련해 준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서버가 북한 해커의 수중에 넘어가면 북한의 대남(對南) 사이버테러에 적극 활용될 수 있다.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북한 해커들이 온라인 게임의 패킷 정보를 해킹했다는 것은 국내 게임 이용자의 통신 내용을 다 엿볼 수 있는 기술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이라며 “해킹한 정보를 활용해 국가기관의 정보를 빼내는 등 2차 해킹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도 “앞으로는 오프라인 고정간첩보다 온라인에서 원격으로 기밀을 수집하고 전산망을 교란하는 사이버 간첩활동이 급증할 것”이라며 “유명 포털사이트나 게임사, 금융사 등 주요 기업의 온라인 보안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 201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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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사태 피해 전원마을 홍순만 씨 “수해복구 장병들 땀방울이 고마워서…”

    3일 서울 남태령 육군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정훈참모실 탁자에는 앨범 15권이 쌓여 있었다. 최근 산사태로 폐허가 된 서울 방배동 전원마을의 한 주민이 복구 작업을 해준 수방사 장병들에게 보낸 선물이었다. 앨범 위엔 “몸을 던져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고 맨손으로 흙을 퍼내던 그 마음에 절망을 이깁니다”라고 쓰인 편지가 놓여 있었다. 보낸 이는 홍순만, 받는 이는 최대림 중위였다. 선물이 도착한 지 이틀이 됐지만 앨범은 아직 주인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서울 서초동 우면산의 흙더미가 전원마을을 덮친 지난달 27일, 홍순만 씨(59)는 넋이 나간 눈길로 옆집을 바라봤다. 구조를 위해 투입된 수방사 장병들이 한 시신을 앞에 두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고작 생후 18개월 된 유아였다. 한 장병이 국방색 판초우의로 싼 그 시신을 두 손에 들고 방을 나섰다. 전원주택이 많은 비교적 부유한 동네지만 산사태 피해는 홍 씨처럼 저지대 지하에 사는 서민들에게 집중돼 모두 7명이 숨졌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95세 노모를 모시고 부인과 함께 사는 방 두 칸짜리 홍 씨의 집도 토사에 휩쓸렸다. 대피하느라 심장약을 챙기지 못한 홍 씨의 노모는 몇 시간 뒤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며 한 달에 150만 원 남짓 버는 홍 씨는 앞이 까마득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홍 씨에게 진흙을 뒤집어쓴 한 군인이 말을 붙여왔다.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저희가 다 해드릴게요.” 집 근처 부대인 수방사 공병단 중대장 최대림 중위(25)였다. 최 중위 등 장병 10여 명은 홍 씨 집 문을 뜯어내고 토사와 세간 살림을 밖으로 들어냈다. 홍 씨는 뭉개진 가구와 TV를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그를 위로한 건 장병들의 땀방울이었다. 온몸이 진흙범벅이 된 한 장병은 집 이곳저곳을 누비며 “할아버지, 저 토목공학과 나왔어요. 집 예쁘게 고쳐드릴게요”라며 분위기를 돋웠다. 홍 씨는 본래의 쾌활한 성격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수중에 있던 3만 원으로 알사탕을 구해와 장병들 입에 한 알씩 넣어주며 “마음 같아선 업어주고 싶은데 내가 힘이 없어”라고 했다. 환갑도 안 된 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센 홍 씨를 장병들은 ‘알사탕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최 중위는 “할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요구르트 같은 간식을 손에 쥐여 주셔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복구 작업이 계속되면서 홍 씨와 최 중위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홍 씨가 안 보일 때면 최 중위는 ‘할아버지 식사는 챙기셨어요?’, ‘곧 복구되니까 기운내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최 중위는 “부자동네인데 못사는 분들만 피해를 떠안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쓰였다”고 말했다. 산사태 일주일째인 2일, 전원마을 주민들은 복구를 마친 수방사 장병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환송회를 열었다. 늘 작업현장에 있던 홍 씨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다. 환송회 후 장병들이 철수하고 나서야 홍 씨는 두 손에 큰 비닐봉투를 든 채 마을로 달려왔다. 집에서 건진 현금 30만 원으로 문방구 8곳을 돌며 앨범 15권을 사서 오는 길이었다. “구청직원들은 얼굴만 비치고 사라지는데 아들 같은 군인들은 몸을 던져 도와주니 너무 비교가 됐어요. 어떻게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좋은 건 못 주고 군 생활 추억 잘 담아가라는 뜻에서 앨범을 골랐어요.” 홍 씨는 최 중위를 애타게 찾아 헤매다 현장에 있던 수방사 정훈공보참모인 전병규 대령에게 “꼭 좀 전해달라”며 비닐봉투를 건넸다. 그렇게 수방사까지 온 앨범 선물은 아직 전 대령의 책상에 그대로 놓여 있다. 최 중위는 “할아버지 형편이 어떤지 아는데 차마 선물을 받기가 어려웠다”며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간직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강한 인턴기자 부산대 법학과 4학년  김태원 인턴기자 한국외대 프랑스어과 4학년  }

    • 201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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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지통]‘음주운전 경찰’ 잡은 음주車

    “간만에 얻은 휴가라 오랜만에 친구들과 딱 한잔했는데….”전남지방경찰청 1기동대 소속 임모 경사는 2일 새벽 동료 경찰관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이날 0시경 임 경사는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 중이었다. 평소 주량보다 적게 마셨다고 생각한 임 경사는 호기롭게 운전대를 잡았다. 무사히 운전을 해 집에서 불과 1km 남짓 거리인 광주 서구 광천사거리에 멈춰 섰다. 신호에 따라 좌회전을 하던 임 경사는 갑자기 옆구리에 강한 충격을 느꼈다. 로체 승용차가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직진하다 교차로를 가로지르던 임 경사의 차를 들이받은 것.임 경사는 별다른 부상을 입진 않았지만 상황은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로체 운전자에게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을 감지해 음주 측정을 한 결과 혈중 알코올농도가 면허 취소(0.1% 이상) 수준인 0.149%가 나왔다. 가해자와 피해자 중 한쪽의 음주사실이 드러나면 형평성 차원에서 상대편도 음주 측정을 하는 관행에 따라 경찰은 임 경사에게도 음주측정기를 들이댔다. 결과는 0.080%. 면허 정지(0.05% 이상)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결국 음주 차량과의 사고 때문에 음주 사실이 들통 난 것이다. 경찰은 “시민을 계도해야 할 경찰관의 음주 운전은 엄히 다스릴 사안”이라며 “중징계하겠다”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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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잣나무의 재앙?… 지난달 포천서 펜션 덮쳐

    지난달 27일 경기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펜션에 있던 70대 부부 등 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수십 그루의 잣나무였다. 산사태로 흙모래와 뒤섞여 내려오던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펜션을 덮쳐 안에 있던 투숙객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 숨진 것이다.사고를 목격한 금동리 이장 김모 씨(61)는 “거대한 잣나무 수십 그루가 펜션을 덮치자마자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펜션 뒤편의 남청산 자락은 1970년대 녹화사업 때 심은 잣나무가 전체 나무의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산사태로 16명이 희생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지역에도 잣나무 숲이 있다. 전원주택 8채가 매몰되고 2명이 숨진 방배동 임광아파트 건너편 산사태 현장에는 잣나무가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잣나무는 소나무와 참나무 등 다른 나무에 비해 뿌리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다. 이 때문에 산사태에 취약한 잣나무가 많아 피해가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도 2일 국무회의에서 잣나무가 산사태의 원인 중 하나라는 보고를 받은 뒤 “산림을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라”고 지시했다.잣나무는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로 뿌리가 깊은 심근성(深根性) 수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소나무와 비교했을 때 집중호우에 버티는 힘이 크게 떨어진다. 소나무는 상체에 군살이 적고 하체가 튼튼한 반면에 잣나무는 튼실한 상체에 비해 하체가 부실한 편이다. 땅 위에 있는 나무 몸통(Top)의 무게를 뿌리(Root) 부분의 무게로 나눈 값인 TR비율은 잣나무가 소나무보다 30∼50% 높다. 즉, 전체 나무에서 뿌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소나무가 잣나무보다 1.3배에서 1.5배 크다는 것. 잣나무는 줄기를 지탱하는 뿌리의 힘이 소나무에 비해 약하다.순천대 산림자원학과 박인협 교수는 “비옥한 곳에서 자라는 잣나무와 달리 소나무는 척박한 곳에서도 뿌리를 잘 내리는데 땅이 척박할수록 양분을 얻기 위해 뿌리를 더 깊숙이 뻗고 잔가지도 많아진다”며 “토양을 얽매는 힘에 있어서 통상 소나무가 잣나무보다 강하다”고 말했다.▼ 우면산 산사태 현장에도 잣나무 숲길 ▼또 소나무 아래에는 다양한 관목과 잡풀이 많이 자라지만 잣나무는 이파리가 햇빛을 가리는 경우가 많아 나무 밑에 다른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국립산림과학원 박병배 연구원은 “비가 오면 나무 밑에 있는 잡목이 빗물의 속도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잣나무는 밑에 잡목이 적어 물에 쉽게 휩쓸린다”고 설명했다.서울대 산림공학과 윤여창 교수는 “잣나무는 열매가 열려 상업적 이득이 있고 한번 심으면 비교적 잘 자라 목재를 얻기도 쉬워 녹화사업 때 전국적으로 많이 심었다”며 “인공조림이 많아지면 산사태 등 자연재해에는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산림 전문가들은 산사태의 탓을 전적으로 잣나무에 돌리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뿌리가 깊이 내려가는 소나무나 참나무만 심는다고 반드시 산사태 예방 효과가 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소나무와 잣나무 등 심근성 수종은 뿌리를 깊게 박는 일명 ‘말뚝 효과’가 있는 반면 뿌리가 얕은 천근성(淺根性) 나무의 경우 뿌리는 얕아도 사방으로 넓게 퍼지는 ‘그물망 효과’가 있다. 여러 종의 나무를 적절히 섞어 심어야 토양을 밑에서 붙잡고 옆에서 지탱해주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구교상 박사는 “잣나무를 심은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수종 간의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나무만 집중적으로 심는 게 문제”라며 “소나무 같은 침엽수는 뿌리는 깊어도 송진처럼 불씨를 키우는 물질이 있어 산불에는 매우 취약하다”고 말했다.우리나라 산의 토질 특성상 어떤 나무를 심어도 산사태 예방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이수곤 교수는 “우리나라 산은 대부분 흙의 점성이 약하고 흙에 자갈과 바위가 많이 섞여 있어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며 “산사태는 수종뿐 아니라 강수량 경사도 토질 등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정부는 2일 국무회의에서 추가적인 산사태 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김해진 특임 차관은 펜션 붕괴로 3명이 사망한 포천시 산사태 사고를 거론하며 “산사태 발생지역을 직접 둘러보니 잣나무가 많아 앞으로도 산사태가 우려된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녹화사업을 하면서 유실수를 심자고 해서 잣나무를 심었는데 요즘은 잣을 따는 사람도 많지 않아 쓸모없는 나무가 돼버렸다”고 덧붙였다.이 대통령은 “과거에는 산림녹화를 위해 나무를 심기만 했는데 이제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수종관리가 필요하다”며 “강원도에 특히 잣나무가 많은데 이제는 외국처럼 간벌(나무의 밀도나 구성을 조절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작업)을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 농림수산식품부와 산림청이 과학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 201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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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사태 전문가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가 본 밀양 양지마을 산사태 현장

    9일 경남 밀양시 상동명 양지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많다.이번 산사태는 2007년 마을 뒤편 신곡산 정상 부근에 만든 임도(林道) 바로 밑에 있는 지반이 유실되면서 시작됐다. 지반 유실은 관리 당국이 산에 길을 낸 뒤 산사태 대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2일 이 지역에 현장 탐방을 나온 서울시립대 이수곤 교수(사진)는 임도 바로 밑 부분이 폭탄을 맞은 듯 깊게 팬 부분을 가리키며 “이번 참사는 도로 시공을 잘못해 생긴 명백한 ‘인재’”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학회 공동 산사태 기술위원회 한국대표로 산사태 문제의 권위자다.이 교수에 따르면 전체 380m 임도 구간 중 이번에 지반이 유실된 5곳은 시멘트 포장 대신 자갈만 깔았다. 산을 깎아 만든 길에 콘크리트를 덮지 않고 자갈만 깔 경우 폭우가 내리면 빗물이 모두 임도 아래로 흡수돼 땅 밑에 있는 흙의 점성을 약화시킨다는 것. 이런 상태에서 폭우가 계속되면 지반 유실로 이어져 산사태가 발생하기 쉽다는 지적이다. 도로 공사를 주관한 밀양시청은 산사태 방지를 위해 약 70cm 두께의 석축을 설치했지만 빗물로 약해진 지반을 지탱하기는 역부족이었다.이 교수는 “임도와 절개지 사이의 배수로를 잘 갖춰놓았더라면 빗물이 여러 곳으로 분산돼 산사태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밀양시는 임도 일부 구간을 비포장도로로 만든 이유에 대해 “일반 도로의 경우 100m당 수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지만 임도는 1km에 1억 원을 약간 넘는 정도의 예산만 주어진다”며 “공사비를 아껴야 하다 보니 경사지 등 포장이 필수적인 곳이 아닌 평지는 자갈 포장만 했다”고 말했다. 밀양시는 사고 발생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소방방재청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다.밀양=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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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 양지마을 일가족 휩쓴 산사태… 1m 옆에 파묻힌 아이 두고 엄마의 사투

    눈을 뜨자 눈 안으로 흙탕물이 밀려들어왔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니 이번엔 진흙이 빨려 들어왔다.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안은 흙으로 가득 차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뭇가지 위에 누운 듯 등은 따끔거렸고 다리는 묵직한 뭔가에 깔려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영애(가명·31·여) 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마치 무덤 속 같았다”고 말했다.○ 그날9일 낮 12시 경남 밀양시 상동면 양지마을. 조 씨는 이곳 시댁에서 제사상에 올릴 전을 부치고 있었다. 이날은 조 씨 시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온 가족이 모인 날. 시어머니는 마루에서 마늘을 다듬고 있었다. 마루 옆 안방에는 큰조카 진욱(가명·15)이가 조 씨의 딸 은영(가명·3)이를 업고 TV를 보고 있었다. 제법 말을 하기 시작한 은영이는 “오빠, 오빠” 하며 까르르 웃어댔다. 현관 난간에 쪼그리고 앉은 작은조카 영욱(가명·12)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점심을 앞둔 시골집의 평화로운 풍경. 전과 산적의 진한 냄새가 온 집안을 휘감고 있었다. 다만 그날따라 유달리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안방에 있던 은영이가 조 씨에게 무언가를 말했지만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르륵… 스르륵…” 나무 마루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소리가 들려오는 부엌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이미 그곳엔 부엌이 없었다. 그 대신 거대한 흙더미가 벽을 부수며 들어오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게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다.○ 임도(林道)-재난의 시작조 씨의 시댁은 해발 560m의 신곡산 자락에 있다. 앞으로는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개천이 흐르고 시댁 주변에는 외지인들이 지어 놓은 전원주택이 여러 채 들어서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이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인 살기 좋은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민 이갑순 씨(64·여)는 “60여 년을 살고 있지만 이런 동네가 없다”며 “평생 홍수네 뭐네 그런 사고 한 번 없이 평온하게 살았다”고 말했다.그런 곳에 밀양시가 2007년 이 마을 뒷산인 신곡산 자락에 380m의 임도를 깔았다. 시는 당시 “산불이 나면 소방차가 그곳까지 올라가 불을 끌 수 있고 목재도 차에 실어 편하게 나를 수 있다”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주민 김병로 씨(73)는 “없던 길을 내주겠다고 하니까 그땐 다들 좋은 일인 줄 알았다”며 “그때 그 공사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이 마을에는 시간당 40mm의 폭우가 쏟아졌다. 길을 내느라 깎은 산자락에선 시뻘건 토사가 군데군데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살려주세요”영욱 군은 마당이 파일 듯 내리는 빗줄기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의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등 뒤에서 ‘쩍’ 하는 굉음이 들렸다. 집이 두 동강 나는 소리였다. 그 사이로 흙탕물과 함께 산더미 같은 흙이 쏟아져 들어왔다.뒤돌아 도망가려는 순간 흙더미에 휩싸인 영욱의 몸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 작은 소년의 몸은 흙과 물에 휩쓸려 개천 쪽으로 100m가량 떠내려갔다. 그는 “살려 주세요”라고 사력을 다해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개천으로 휩쓸려가던 영욱은 빠지기 직전 다리가 바위에 끼여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다른 가족은 대부분 참변을 피할 수 없었다. 조 씨의 시어머니는 집이 있던 자리에서 200여 m 떨어진 마을 정자 주변까지 휩쓸려가다가 나무 기둥에 깔려 숨을 거뒀다. 안방에서 세 살배기 사촌 여동생을 업고 있던 진욱도 인근 개천에서 혼자 숨진 채 발견됐다. ○ 엄마의 사투조 씨도 화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흙더미에 매몰된 채 집에서 150m가량 떨어진 길목까지 떠내려가다 멈췄다. 그 안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기에 몸서리치던 조 씨는 의식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이대로 잠들겠구나. 이대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겹게 눈을 뜨자 차가운 진흙이 눈으로 스며들었다. 송곳으로 눈을 찌르는 듯했다. 참다못해 눈을 감으면 다시 졸음이 몰려왔다. 그는 눈을 뜬 채 또다시 진흙과 맞섰다. “그렇게 죽을 순 없었어요. 우리 딸 살려야 하잖아요. 애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어요. 나는 이대로 죽어도 되는데 우리 딸은….” 몸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던 그가 딸을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잠들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빗줄기가 거세지며 흙더미는 점차 무게를 더해갔다. 빗물을 머금은 흙더미는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가슴을 짓눌렀다. ‘이젠 정말 죽는구나.’그 순간 두 다리를 덮고 있던 진흙 더미가 물살에 휩쓸려갔다. 흙 밖으로 노출된 두 다리를 조 씨는 사력을 다해 흔들었다. 그녀가 보내는 마지막 SOS. 어디선가 희미하게 사람 소리가 들렸다. 구조대원들이 1m 가까이 쌓인 진흙과 자갈을 걷어내자 새카맣게 흙으로 뒤덮인 조 씨의 얼굴이 드러났다. 산사태가 난 지 2시간 40여 분 만이었다. 현장에 있던 한 소방관은 “빗물로 얼굴을 씻겼는데 눈가에 피가 흥건했다”며 “환자를 응급차로 옮기려고 하는데 대원들을 뿌리치더니 어디선가 깨진 안경을 주워다 쓰고는 ‘우리 아이, 우리 아이’ 하며 기어 다녔다”고 말했다. 조 씨는 응급차로 옮겨지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10여분 뒤 딸 은영이는 엄마가 구조된 곳으로부터 불과 1m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안타까운 모정사고 사흘째인 12일 양지마을 마을회관 앞에는 조 씨가 딸을 태우고 왔던 승용차가 찌그러진 채 뒤집혀 있었다. 사고 당일 공장 근무를 나가 참사를 피했던 조 씨의 남편 박모 씨(38)는 숨진 가족들을 화장해 납골당에 안치하고 오는 길이었다. 뒷산에 있던 산소에서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해 어머니와 같은 곳에 모셨다. 10여 년간 홀로 살아오신 어머니가 이제는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와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박 씨는 동네 곳곳을 돌며 가족들의 유품을 찾아다녔다. 집은 형체가 사라지고 냉장고와 장롱 등 세간은 온 동네에 흩어져 있었다. 그는 너덜너덜해진 노트 한 권을 집어 들더니 유심히 내용을 살폈다. 쭈글쭈글해진 종이에는 어머니가 연필로 한 자씩 눌러쓴 글씨가 흙탕물에 번져 있었다. 박 씨는 “어머니가 손녀인 은영이가 유치원에 가면 직접 한글을 가르쳐주고 싶다면서 얼마 전부터 한글을 배우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흔적도 없이 사라진 집터 아래엔 휠체어를 탄 한 여인이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조 씨였다. 눈의 흰자는 아직 핏빛이었고 손톱은 모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는 산사태로 속살을 훤히 드러낸 산자락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말했다.“암흑 같은 흙더미 안에서 엄마를 애타게 찾았을 텐데…. 그렇게 가까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제가 더 죽을힘을 냈을 텐데….”밀양=신광영 기자 neo@donga.com@@@유하늘 대학생 인턴기자 연세대 신방과 3학년@@@}

    • 201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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