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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지어진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공장 기숙사를 리모델링한 예술 공간 ‘성수나무’가 개관했다. 성수나무는 중정(中庭)의 아흔 살이 넘은 나무를 오래된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의 공간이다. 노동자들이 머물렀던 방들과 부엌의 벽을 허물어, 1층의 절반을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난달 11일 개관에 맞춰 선보인 전시는 박인성 작가의 개인전 ‘레지두(RESIDUE): 존재, 시간, 색, 기억의 파편’이다. 1층의 나머지 공간은 예술가들이 입주하는 작업실로 사용될 예정이다. 연말까지 시범 운영을 거친 뒤 내년부터 공모를 통해 입주 예술가를 선발한다. 성수나무를 운영하는 에이렌즈의 박민경 대표는 “1960년대 젊은이들이 각자의 꿈을 품고 상경해 공장 기숙사에 머물렀던 것처럼, 실력 있는 예술가가 성장하도록 돕고 해외로 연결되는 가교 역할도 하는 게 목표”라며 “예술가와 예술 커뮤니티가 이곳에서 나무처럼 견고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름을 성수나무라고 지었다”고 했다. 성수나무 주변에선 1960년대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 일부도 여전히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성수나무는 이들이 예술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도록, 주민 대상 영화 상영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 작가의 전시는 27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7세기 이탈리아 신학자 토마소 캄파넬라의 책 ‘태양의 도시’는 이상적 도시 국가를 그립니다. 이불 작가는 이 책에서 영감을 얻어 설치 작품 ‘태양의 도시 Ⅱ’를 제작하죠. 그가 만든 태양의 도시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받침대 삼은 지도 모양의 판자들이 바닥에 펼쳐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뎌도 작품을 망가뜨릴까 봐 불안한 마음으로 감상하게 되죠. 또 벽면에는 거울이 부착돼 있지만, 그 표면이 일그러져 ‘예쁜 인증샷’을 찍을 순 없고 희미한 자신의 모습만 비칩니다. 이불 작가는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수많은 ‘이상향’을 이처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지만 버티고 서 있는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묘사해 왔습니다.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4일 개막한 ‘이불: 1998년 이후’전은 이런 이불 작가의 이상향에 관한 탐구를 담은 연작 ‘몽그랑레시(Mon gran recit)’를 중심으로 약 30년간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이 전시의 큐레이터인 곽준영 전시기획실장에게 전시 구성 과정부터 애착이 가는 작품까지 물어봤습니다. ―리움미술관은 왜 지금 이불 작가를 조명하게 됐나요? “올해 전시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이불 작가는 오래전부터 리움에서 전시하고 싶은 작가 리스트에 있었죠. 다만 우리 미술관에서만 전시하기보다 국제 투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홍콩 M+ 미술관과 공동 기획하여 해외 기관으로 투어 전시를 열게 됐습니다. 2002년 로댕갤러리 개인전 이후 23년 만에 삼성문화재단 산하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해 뜻깊습니다.” ―전시 장소가 미술관 내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갤러리입니다. 장소를 선정한 과정도 궁금합니다. “작품의 성격과 규모가 맞아떨어졌습니다. 이불 작가의 연작 ‘몽그랑레시’는 이상향을 꿈꾸었던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건축과 미술을 비판적으로 탐구하고 재해석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요.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갤러리는 렘 콜하스가 설계한 곳으로, 콜하스가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건축에서 자주 쓰인 콘크리트를 창의적으로 사용하고 여기에 유리를 접목했다는 특징이 ‘몽그랑레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블랙박스 공간 구성에선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나요. “블랙박스에 어떤 작품을 전시할지는 일찍부터 결정됐습니다. 이불 작가는 이 공간에서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공상과학(SF), 우주적 분위기를 상상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지닌 ‘태양의 도시 Ⅱ’를 거대한 풍경으로 두고, 그 안에 1990년대 후반부터 발표된 초기작 ‘사이보그’ ‘아나그램’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 Ⅰ’ 등의 작품이 서로를 반사하며 혼란스러운 광경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전시의 멜랑콜리한 서곡과도 같은 곳입니다.” ―블랙박스에서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면 터널을 통과해야 아래 전시장이 보이는 구조가 흥미로웠습니다. “그 터널은 2012년 작품 ‘수트레인’인데요. 이 작품은 늘 전시장 입구에서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문처럼 설치됐습니다. 제목 ‘수트레인’이 프랑스어로 지하 혹은 감춰진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 작품은 지하 공간으로 안내하는 통로이며, 입구에서는 작품의 전체 구조와 외형을 파악할 수 없도록 한 것이 설치 의도입니다. 이 작품을 그라운드 갤러리 입구에 둔 것은 작품의 원래 의도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수트레인’을 빠져나오면 빈 공간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작품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결정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가득 채우자’고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2005년부터 전개된 ‘몽그랑레시’ 연작의 주요 작품들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많은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 여러 작품이 벽면이 없이 서로 겹치고 겹치는, 중첩된 풍경은 이 연작의 특성을 살린 겁니다. ‘몽그랑레시’는 하나의 커다란 서사 대신, 다수의 파편적인 작은 서사들을 비선형적으로 연결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들이 서로 겹치며 또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만들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하나를 꼽기는 정말 어렵지만, 이번 전시에서 입구에 있는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과 지난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에 전시했던 ‘롱 테일 헤일로: CTCS #1’의 조합이 미술관의 건축과 정말 잘 어울리는 설치라고 생각합니다. 콜하스의 육중한 검은 콘크리트를 배경으로 거대하지만 불안정한 몸체를 드러내는 비행선, 검은 콘크리트로 빚어낸 듯한 조각이 함께 놓였을 때 희열과 감동이 생생합니다. ‘롱 테일 헤일로’는 메트에서 제시간에 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는데 무사히 전시하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998년부터 올해까지 작품을 봤는데, 앞으로 이불 작가의 예술은 어떤 길을 가게 될 것 같나요. “이불 작가는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공부하고 가능한 미래에 대해 열린 사유를 해온 작가이지만, ‘규정’을 거부하는 사람이기에 예측이 어렵습니다.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앞으로도 시대를 성찰하는 작업을 지속할 거라는 것 이외에는….”※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1960년대 지어진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공장 기숙사를 리모델링한 예술 공간 ‘성수나무’가 개관했다.성수나무는 중정(中庭)의 아흔 살이 넘은 나무를 오래된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의 공간이다. 노동자들이 머물렀던 방들과 부엌의 벽을 허물어, 1층의 절반을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난달 11일 개관에 맞춰 선보인 전시는 박인성 작가의 개인전 ‘레지두(RESIDUE): 존재, 시간, 색, 기억의 파편’이다.1층의 나머지 공간은 예술가들이 입주하는 작업실로 사용될 예정이다. 연말까지 시범 운영을 거친 뒤 내년부터 공모를 통해 입주 예술가를 선발한다. 성수나무를 운영하는 에이렌즈의 박민경 대표는 “1960년대 젊은이들이 각자의 꿈을 품고 상경해 공장 기숙사에 머물렀던 것처럼, 실력 있는 예술가가 성장하도록 돕고 해외로 연결되는 가교 역할도 하는 게 목표”라며 “예술가와 예술 커뮤니티가 이곳에서 나무처럼 견고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름을 성수나무라고 지었다”고 했다.성수나무 주변에선 1960년대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 일부도 여전히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성수나무는 이들이 예술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도록, 주민 대상 영화 상영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 작가의 전시는 27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맨해튼 서부. 허드슨 강변의 여객선 터미널을 리노베이션한 스포츠·엔터테인먼트 복합 단지 ‘첼시 피어’ 전시장에 들어서자 벽면을 가득 채운 바닷물이 쏟아질 듯 거센 파도를 일으켰다. 빔 프로젝터 영상이지만, 높은 화질과 정교한 컴퓨터그래픽(CG) 덕에 진짜 바다보다 더 실감 나게 다가왔다. 또 다른 전시장에선 벽면에 화려한 꽃들이 가득했고, 관객의 발자국을 따라 꽃잎이 흩날리기도 했다.한국 특유의 감각과 고도의 기술을 살린 몰입형 디자인 전시 브랜드 ‘아르떼뮤지엄’이 뉴욕에 진출했다. 중국 홍콩과 청두(成都), 미 라스베이거스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거쳐 이뤄낸 성과. 개관 기념 행사가 열린 이날 현장은 ‘K아트’의 또 다른 도약을 기대할 만한 자리였다.● 뉴욕 마천루와 한국 민화의 만남아르떼뮤지엄은 강원 강릉과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만큼 사랑받는 콘텐츠다. 이날 뉴욕 전시장에선 폭포와 꽃, 해변, 파도, 숲 등 아르떼뮤지엄 대표 테마인 ‘영원한 자연’을 주제로 한 콘텐츠 16점이 펼쳐졌다. ‘꽃’ 전시장은 무궁화 씨앗의 생애에 관한 영상과 관객 움직임에 따라 영상이 변하는 인터랙티브 요소가 추가됐다. 마지막 전시장 ‘가든’에선 뉴욕의 대표적인 풍경과 한국의 산수화, 민화 등 전통문화를 결합한 ‘뉴욕 이즈 아트(Newyork is Art)’ 영상이 상영됐다. 아르떼뮤지엄을 운영하는 ‘디스트릭트’ 부사장이자 콘텐츠 총괄 기획자인 이상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영향인지 현지 관객들이 십장생 등 동양적 요소를 좋아해 적극 활용했다”며 “안견의 몽유도원도도 삽입했는데, 이 그림이 일본에 있지만 한국의 작품임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약 4800㎡ 규모인 아르떼뮤지엄 뉴욕은 2023년 개관한 ‘아르떼뮤지엄 라스베이거스’의 약 2배 크기. 주변엔 각종 운동이 가능한 대규모 시설도 있어 주말을 즐기는 가족이나 관광객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특히 ‘꽃’과 ‘정원’에 큰 관심을 보였다.● ‘누적 관객 천만’ K아트의 도전 뉴욕 진출은 야망 있는 문화 콘텐츠 제작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일. 디스트릭트는 2011년 세계 최초로 실내 4D 테마파크인 ‘라이브 파크’를 만들었고, 2020년 서울 코엑스 대형 전광판에서 상영한 ‘웨이브(WAVE)’로 주목받았다. 같은 해 제주에 ‘아르떼뮤지엄’을 개관했는데, 이때부터 뉴욕 진출을 꿈꿨다고 한다.“2021년 뉴욕 ‘원 타임스 스퀘어’ 전광판 운영사의 초청을 받아 ‘워터폴 NYC’를 선보였을 때 반응이 뜨거워, 그때부터 전시장 개관을 맘먹었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에다 개관 절차나 규제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5년이나 걸렸지만 무척 자랑스럽습니다.”(이 부사장) 세계 곳곳에 포진한 아르떼뮤지엄을 찾은 전체 누적 관객은 지난달 기준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2023년 선보인 라스베이거스 지점이 가장 큰 매출을 냈다고 한다. 입장료가 한국보다 3배가량 높지만, 지난해 연매출이 2059만 달러(약 290억 원)로 디스트릭트 전체 매출의 35%를 차지할 정도다. 올해도 하루 평균 방문객이 1485명으로 지난해보다 40% 늘었다. 디스트릭트 측은 “한국 전시장의 경우 개관 후 몇 년이 지나면 관객이 다소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지만, 미국은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이 꾸준히 유입되는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19일 정식 개관한 아르떼뮤지엄 뉴욕은 앞으로 10년 동안 이 공간에서 상설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부사장은 “어제 전시를 보러 온 한 미국 할머니가 우리를 붙잡고 ‘정말 감동받았다. 이런 전시는 처음이다’고 말해 놀랐다”며 “한국의 뛰어난 몰입형 미디어 콘텐츠를 보여줘 하나의 ‘문화 브랜드’로 성장할 계기를 뉴욕에서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다.쉽고 강렬하게… 대중을 파고든다한국형 ‘몰입형 미디어’ 생존법“글로벌 팬덤 공략한 K팝처럼쉬운 주제에 디지털기술 활용”‘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 해석이나 긴 설명은 가급적 자제하고, 피부로 와닿는 감각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한국 관객의 적극적인 반응을 바탕으로 업그레이드를 거듭해온 디스트릭트의 콘텐츠를 보면 K아트 역시 최근 세계에서 사랑받는 K컬처가 지닌 공통적인 특징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비주얼과 귀에 꽂히는 음악으로 글로벌 팬덤을 공략한 K팝처럼 ‘아르떼뮤지엄’ 역시 대중의 취향을 철저히 공략한다. 이를테면 ‘꽃’ 전시장은 꽃의 줄기나 뿌리 같은 복잡한 요소는 없애고 화려한 꽃잎이 흐드러진 모습만 강조했다. ‘폭포’ 전시장도 원래 폭포 옆에 있을 바위나 흙은 모두 지우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의 힘찬 모습만 화면에 가득 채웠다. 여기에 영화 ‘부산행’, ‘놈놈놈’, ‘도둑들’ 등 100여 편의 영화에서 음악을 작업한 베테랑 음악 감독 장영규가 사운드를 만들었다. 전시장에선 프랑스 조향사가 만든 향도 맡을 수 있다.‘자연’을 주제로 삼은 것도 전략적인 선택이다. 바다와 파도, 해, 달, 별 같은 자연 속 요소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런 영상들이 주는 강렬하면서도 공감이 큰 느낌을 고도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구현하는 게 아르떼뮤지엄의 강점이다. 이상진 디스트릭트 부사장은 “회오리바람을 경험할 수 있는 ‘토네이도’는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기물을 활용하는 과학 체험관과 달리, 전시장 안에 오로지 수증기와 공기의 흐름만이 보이도록 고심했다”며 “디자이너와 기술자, 개발자 등 다양한 직군의 제작자들이 아이디어부터 제작까지 함께 난상 토론 과정을 거쳐서 내놓은 산물”이라고 말했다. 특히 디스트릭트는 이번 뉴욕 진출이 2012년 세상을 떠난 최은석 전 대표가 탄탄하게 밑바탕을 다진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사장은 “최 전 대표는 콘텐츠의 디테일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며 “그의 완벽주의 스타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최 전 대표가 이끌었던 시절 디스트릭트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의 해외 론칭쇼나 글로벌 브랜드의 행사에 쓰이는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며 주목받았다. 아르떼뮤지엄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라이브 파크’ 역시 고인의 아이디어였다. 디지털 디자인업계에서 촉망받던 그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출장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디스트릭트는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라이브 파크’의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테마파크인 ‘플레이케이팝’을 열었던 게 분위기 전환에 주효했다. 이는 아르떼뮤지엄의 성공으로도 이어졌다. 이성호 디스트릭트 대표는 “최 전 대표가 아르떼뮤지엄 뉴욕 개관을 보며 하늘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을 것”이라며 감회에 젖었다.뉴욕=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맨해튼 서부. 허드슨 강변의 여객선 터미널을 리노베이션한 스포츠∙엔터테인먼트 복합 단지 ‘첼시 피어’ 전시장에 들어서자, 벽면을 가득 채운 바닷물이 쏟아질 듯 거센 파도를 일으켰다. 빔 프로젝터 영상이지만, 높은 화질과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CG) 덕에 진짜 바다보다 더 실감 나게 다가왔다. 또 다른 전시장에선 벽면에 화려한 꽃들이 가득했고, 관객의 발자국에 따라 꽃잎이 흩날리기도 했다.한국 특유의 감각과 고도의 기술을 살린 몰입형 디자인 전시 브랜드 ‘아르떼뮤지엄’이 뉴욕에 진출했다. 중국 홍콩과 청두(成都), 미 라스베이거스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거쳐 이뤄낸 성과. 개관 기념 행사가 열린 이날 현장은 ‘K아트’의 또 다른 도약을 기대할 만한 자리였다.● 뉴욕 마천루와 한국 민화의 만남아르떼뮤지엄은 강원 강릉과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사랑받는 콘텐츠다. 이날 뉴욕 전시장에선 폭포와 꽃, 해변, 파도, 숲 등 아르떼뮤지엄 대표 테마인 ‘영원한 자연’을 주제로 한 콘텐츠 16점이 펼쳐졌다. ‘꽃’ 전시장은 무궁화 씨앗의 생애에 관한 영상과 관객 움직임에 따라 영상이 변하는 인터랙티브 요소가 추가됐다. 마지막 전시장 ‘가든’에선 뉴욕의 대표적인 풍경과 한국의 산수화, 민화 등 전통문화를 결합한 ‘뉴욕 이즈 아트(Newyork is Art)’ 영상이 상영됐다. 아르떼뮤지엄을 운영하는 ‘디스트릭트’ 부사장이자 콘텐츠 총괄 기획자인 이상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영향인지 현지 관객들이 십장생 등 동양적 요소를 좋아해 적극 활용했다”며 “안견의 몽유도원도도 삽입했는데, 이 그림이 일본에 있지만 한국의 작품임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약 4800m² 규모인 아르떼뮤지엄 뉴욕은 2023년 개관한 ‘아르떼뮤지엄 라스베이거스’의 약 2배 크기. 주변엔 각종 운동이 가능한 대규모 시설도 있어 주말을 즐기는 가족이나 관광객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특히 ‘꽃’과 ‘정원’에 큰 관심을 보였다.● ‘누적 관객 천만’ K아트의 도전뉴욕 진출은 야망 있는 문화 콘텐츠 제작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일. 디스트릭트는 2011년 세계 최초로 실내 4D 테마파크인 ‘라이브 파크’를 만들었고, 2020년 서울 코엑스 대형 전광판에서 상영한 ‘웨이브’(WAVE)로 주목받았다. 같은 해 제주에 ‘아르떼뮤지엄’을 개관했는데, 이때부터 뉴욕 진출을 꿈꿨다고 한다.“2021년 뉴욕 ‘원 타임스 스퀘어’ 전광판 운영사의 초청을 받아 ‘워터폴 NYC’를 선보였을 때 반응이 뜨거워, 그때부터 전시장 개관을 맘먹었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에다 개관 절차나 규제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5년이나 걸렸지만 무척 자랑스럽습니다.”(이 부사장)세계 곳곳에 포진한 아르떼뮤지엄을 찾은 전체 누적 관객은 지난달 기준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2023년 선보인 라스베이거스 지점이 가장 큰 매출을 냈다고 한다. 입장료가 한국보다 3배가량 높지만, 지난해 연매출이 2059만 달러(약 290억 원)로 디스트릭트 전체 매출의 35%를 차지할 정도다. 올해도 하루 평균 방문객이 1485명으로 지난해보다 40% 늘었다. 디스트릭트 측은 “한국 전시장의 경우 개관 몇 년이 지나면 관객이 다소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지만, 미국은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이 꾸준히 유입되는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19일 정식 개관한 아르떼뮤지엄 뉴욕은 앞으로 10년 동안 이 공간에서 상설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부사장은 “어제 전시를 보러 온 한 미국 할머니가 우리를 붙잡고 ‘정말 감동받았다. 이런 전시는 처음이다’고 말해 놀랐다”며 “한국의 뛰어난 몰입형 미디어 콘텐츠를 보여줘 하나의 ‘문화 브랜드’로 성장할 계기를 뉴욕에서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다.뉴욕=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사진)의 출간되지 않은 첫 소설 원고가 뒤늦게 발견됐다. 21일(현지 시간)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울프가 1907년 집필한 소설 ‘바이올렛의 삶’이 다음 달 7일 출간된다.‘바이올렛의 삶’은 울프의 첫 소설로 알려졌던 ‘출항’보다 8년이나 앞선 원고로 거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 3편으로 구성됐다. 울프가 이 소설을 집필하기 전 줄거리만 정리한 초안이 미국 뉴욕 공립도서관에 남아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울프가 초안만 쓰고 실제 소설은 완성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왔다. 하지만 우르밀라 세샤기리 미국 테네시대 교수가 울프의 자서전 에세이 ‘지난날의 스케치’에 대해 연구하던 중 우연히 영국 워민스터 인근에 있는 한 귀족의 저택에서 완성된 원고를 발견했다. 이 귀족은 울프의 가족과 교류가 잦았던 인물이다. 세샤기리 교수는 이 저택의 기록 보관실에 갔다가 타자로 완성된 원고를 찾았다고 한다. 이 원고가 출간되지 않았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세샤기리 교수는 발견된 원고에 대해 “작가가 우울하고 어려운 주제만 다뤘다는 인식을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5m 길이 캔버스 천에 그려진 전남 신안 바다.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을 묘사한 듯한 작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쓰레기로 점령된 해안가의 현실이 보인다. 비닐, 페트병, 폐그물, 부표가 뒤섞인 풍경. 바다는 더 이상 낭만적 기억이 아닌 지구적 위기의 현장임이 드러난다. 강홍구 작가의 개인전 ‘두 개의 바다’가 서울 종로구 전시 공간 공간풀숲에서 최근 개막했다. 전시는 바다 생태를 주제로 20여 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온 강 작가의 회화 40점을 선보인다. 특히 전시장에선 작가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바다와 다시 마주한 현실 속 바다가 나란히 교차한다. 바다와 하늘을 웅장하게 담아낸 풍경 연작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닷가의 생명체와 해양 쓰레기가 한 화면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오늘날 바다 생태계를 담았다. 강 작가는 이번 전시의 중심 작품인 ‘25미터 신안 바다’에 대해 “해변이 거대한 쓰레기처리장처럼 보일 때가 있다”며 “폐어망과 플라스틱을 비롯해 세계 바다를 뒤덮은 해양 쓰레기 문제를 환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신안 어의도 출신인 강 작가는 2005년부터 고향과 바다를 오가며 작업을 해왔다. 최근에도 ‘신안바다: 뻘, 모래, 바람’,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 II’ 등의 전시를 통해 신안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전시 공간인 공간풀숲은 환경·안전·보건 분야의 인재 양성과 문제 해결을 위해 2018년 설립된 비영리재단 ‘숲과나눔’이 운영한다. 숲과나눔이 만든 환경 분야 온라인 기록 시스템인 ‘환경아카이브풀숲’을 중심으로 환경 단체의 활동과 예술의 결합을 실험하고 있다. 7월 개관전으로 시민환경운동사를 담은 사진과 기록을 모은 ‘기록과 기억―함께사는길 30년’ 전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10월 1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5m 길이 캔버스 천에 그려진 전남 신안 바다.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을 묘사한 듯한 작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쓰레기로 점령된 해안가의 현실이 보인다. 비닐, 페트병, 폐그물, 부표가 뒤섞인 풍경. 바다는 더 이상 낭만적 기억이 아닌 지구적 위기의 현장임이 드러난다.강홍구 작가의 개인전 ‘두 개의 바다’가 서울 종로구 전시 공간 공간풀숲에서 최근 개막했다. 전시는 바다 생태를 주제로 20여 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온 강 작가의 회화 40점을 선보인다. 특히 전시장에선 작가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바다와 다시 마주한 현실 속 바다가 나란히 교차한다. 바다와 하늘을 웅장하게 담아낸 풍경 연작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닷가의 생명체와 해양 쓰레기가 한 화면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오늘날 바다 생태계를 담았다. 강 작가는 이번 전시의 중심 작품인 ‘25미터 신안 바다’에 대해 “해변이 거대한 쓰레기처리장처럼 보일 때가 있다”며 “폐어망과 플라스틱을 비롯해 세계 바다를 뒤덮은 해양 쓰레기 문제를 환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신안 어의도 출신인 강 작가는 2005년부터 고향과 바다를 오가며 작업을 해왔다. 최근에도 ‘신안바다: 뻘, 모래, 바람’,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 II’ 등의 전시를 통해 신안 프로젝트를 선보여왔다.전시 공간인 공간풀숲은 환경·안전·보건 분야의 인재 양성과 문제 해결을 위해 2018년 설립된 비영리재단 ‘숲과나눔’이 운영한다. 숲과나눔이 만든 환경 분야 온라인 기록 시스템인 ‘환경아카이브풀숲’을 중심으로 환경 단체의 활동과 예술의 결합을 실험하고 있다. 7월 개관전으로 시민환경운동사를 담은 사진과 기록을 모은 ‘기록과 기억-함께사는 30년’ 전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10월 1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처음 (한국 소설) 번역 일을 시작할 때는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알린다는 마음을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어를 영어로 옮길 훌륭한 번역가가 정말 많아졌어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2016년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받은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 씨(38)가 화상 강연으로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 스미스 씨는 20일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2025 현대카드 다빈치모텔’ 행사에서 열린 강연 ‘한국 문학을 세계로 이끈 번역의 힘’에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생업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영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언어를 배우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며 “당시엔 한국어는 번역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국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스미스 씨는 런던 도서전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하면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번역할 기회를 갖게 됐다. 그는 “사람들은 제가 한국 문학 수백 권을 읽은 뒤 한 작가의 작품을 골랐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은 두 번째로 읽은 책”이라며 “하지만 수백 권을 읽은 뒤였더라도 제 선택은 ‘채식주의자’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미스 씨는 이날 한 작가의 작품 중에서 ‘소년이 온다’를 특별히 언급하기도 했다. 작품 속 몇 장면을 좋아하는 대목으로 꼽았다.“광주의 소년 ‘동호’가 양치질을 하거나 한옥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부분의 구체적인 묘사가 그 시대 소년의 평범한 삶을 보여줍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 독자는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단순한 계산기에서 시작해 이제는 인간과 비슷한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기까지 인공지능(AI)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AI는 정말로 창의성을 지닐 수 있고 도덕적인 판단마저 가능해질까. 우리의 일상에 빠른 속도로 스며들고 있는 AI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을 비전문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료하고 친근한 문체로 풀어낸 책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에서 AI를 연구하는 저자는 AI 분야에서 500편이 넘는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여러 국제 학술지의 편집장과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자동 추론, 제약 프로그래밍, 기계 학습 등 AI의 다양한 영역을 연구한 저자가 책에서 강조하는 건 AI가 인간의 지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AI는 본질적으로 ‘인공적’이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흉내내며 발전해 온 과정을 크게 두 가지 단계로 나눠 보여준다. 첫 번째는 ‘기호의 시대’로 AI가 단순한 계산을 하는 수준에서 시작해 스스로 사고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초기의 여정을 말한다. 그다음 ‘학습의 시대’는 이른바 ‘딥러닝’이라고 불리는 시기. 컴퓨터가 인간처럼 무언가를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과정에 돌입한 걸 의미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AI가 감정이나 상식이 결여된 기계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그러면서도 이 기술이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거대한 변혁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짚는다. AI 윤리 문제 등을 보다 진지하게 논의하고, 대중과 전문가에게 AI 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할 의무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책은 역사적인 사례와 실생활의 예시가 적절히 배치돼 있다. 독자가 AI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나 과도한 기대를 갖지 않도록 돕는다. 또 AI가 현재와 미래 사회에 미칠 긍정적 영향과 부작용을 모두 짚은 점도 인상적이다. 우리는 이제 AI와 관련된 윤리적·사회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기니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김상민 전 검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의 그림을 건네고 공천을 청탁한 혐의로 18일 구속됐다. 그가 전달한 그림은 이우환 화백(89)의 ‘점으로부터 No.800298’. 하지만 이 그림은 진위 여부가 계속 논란이 됐다.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서는 위작으로, 진품 감정서를 발급했던 한국미술품감정센터는 진품으로 판단했기 때문. 같은 작품을 두고 왜 이렇게 판단이 엇갈린 걸까.최근 국내에선 미술품 진위 논란이 자주 주목받고 있다. 최근까지 법정 소송이 이어진 천경자 화백(1924∼2015)의 ‘미인도’가 대표적 사례다. 미술계에서 작품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건 해외도 마찬가지. 한국도 감정이나 유통 측면에서 좀 더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어 논란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엇갈린 판정’ 안목 감정의 한계 먼저 이 화백의 그림을 위작으로 판단한 이유를 보자.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가 가장 큰 문제로 본 대목은 ‘유통 과정’이다. 해당 작품이 대만 경매에서 3000만 원에 낙찰된 뒤 한국 갤러리에서 1억 원대에 거래되기까지의 과정이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이다. 이 밖에도 물감의 색이나 캔버스 재질이 오리지널과는 차이가 난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반면 진품으로 본 한국미술품감정센터는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해당 작품을 어떻게 판단했는지는 물론이고 감정을 했는지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두 기관의 감정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기관의 모체는 모두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감평원)이다. 2019년 감평원에서 1, 2대 주주가 나와서 만든 기관이 한국미술품감정센터이고, 같은 해 감평원이 문을 닫은 뒤 화랑협회는 자체적으로 감정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감정 방식이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 갤러리 대표나 딜러, 미술사 연구자나 평론가 등이 참여해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안목 감정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때문에 어떤 작품이 갤러리에서 진품 감정서를 받더라도, 이를 100% 진품이라고 신뢰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작품을 거래하는 갤러리가 진품을 보증한다는 의미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사동의 한 갤러리 대표 A 씨는 “이 화백의 작품은 작가가 살아 있는데, 이해 당사자인 딜러가 포함된 제3자가 진위를 보증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카탈로그 레조네’ 만들어야 결국 ‘점으로부터 No.800298’의 진위는 이 화백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확실한 결론을 내는 게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이 화백은 2016년 위작이 대량 유통되는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뒤 한국 미술계와 거의 교류를 끊고 있다. 미술계 관계자는 “과거엔 이 화백도 한국 갤러리들이 요청하면 진위 여부를 확인해 주곤 했다”며 “하지만 요즘은 해외 갤러리하고만 전속 계약을 맺고 한국 갤러리엔 작품을 거의 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미인도’ 위작 논란도 여전히 결론을 내기 어려운 상황. 2016년경 작가는 생존 당시 위작이라고 했는데, 검찰은 진품이라고 판단해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천 화백의 유족은 검찰을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4일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다만 법원은 이 과정에서 작품의 진위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미술품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위작 감정이나 유통에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오래전에 작고한 작가가 아니라면, 해외처럼 ‘카탈로그 레조네’(한 작가의 작품 전체를 기록한 도록) 제작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한 미술계 전문가는 “결국은 작품 출처를 확실하게 만들고, 작가가 진품임을 보증하는 작품을 소장하는 게 최선이다”라고 조언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사진)가 넷플릭스 콘텐츠 가운데 처음으로 누적 시청 수 3억 회를 돌파했다. 17일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에 따르면 케데헌의 누적 시청 수는 14일 기준 3억1420만 회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및 시리즈를 통틀어 최다로, 이 수치가 3억 회를 넘은 것은 케데헌이 처음이다. 6월 20일 공개된 케데헌은 13주 연속 영어 영화 10위 안에 올랐으며, 이달 8∼14일에도 시청 수 2260만 회를 기록해 주간 1위 자리를 지켰다. 넷플릭스 역대 전체 시청 수 2위는 ‘오징어 게임 시즌1’의 2억6520만 회다. 케데헌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골든(Golden)’이 통산 5주째 정상을 차지하는 등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에 8곡이 10주 연속 동시 진입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6일(현지 시간) 세상을 떠난 로버트 레드퍼드는 20세기 ‘할리우드의 전설’로 불린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 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와 맞물려 미 영화계에 등장한 사조인 ‘뉴 할리우드 시네마’를 대표하는 아이콘이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나 버라이어티 등은 별세 직후 앞다퉈 ‘우리가 사랑했던 레드퍼드 필름’을 소개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반향이 컸던 고인의 작품들을 골라봤다.● 사기꾼 & 열혈기자, 로맨틱가이레드퍼드의 필모그래피에서 빠질 수 없는 초기작은 역시 1969년 서부극 ‘내일을 향해 쏴라’다. 원제는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당시 국내에선 내수용으로 제목을 바꾼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은 한국 제목이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레드퍼드는 11세 연상인 ‘당대의 스타’ 폴 뉴먼에게 밀리지 않는 근사한 카리스마를 뽐냈다. 뉴먼과 다시 호흡을 맞춘 1973년작 ‘스팅’은 베트남전쟁 직후 혼란의 시기를 반영한 작품. 고인은 초짜 사기꾼 조니 후커 역을 맡아 영악하게 변해 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대공황이 배경인 범죄코미디지만, 사회 불안 등 1970년대 정신을 잘 담아낸 고전이다.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영화도 많다. 1976년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선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기자 밥 우드워드 역을 맡았다. 그가 “정치 스릴러의 아버지”(미 뉴욕타임스·NYT)로 불리는 결정적 계기였다. 1975년 ‘콘도르’도 냉전 시대 불신과 음모를 잘 담아냈다. 멜로 연기 역시 탁월했다. 1973년 영화 ‘추억(The Way We Were)’에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메릴 스트립과 아프리카의 서정적 로맨스를 그린 1985년작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지금도 인생작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유부녀(데미 무어)를 유혹하는 억만장자로 나온 ‘은밀한 유혹’(1993년), 신입 방송인(미셸 파이퍼)을 이끄는 베테랑 앵커를 연기한 ‘업 클로즈 앤 퍼스널’(1996년)도 화제였다. ● 일흔 넘어도 도전적인 눈빛 1980년 감독 데뷔작 ‘보통 사람들’은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명작. 가족의 상실과 회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호평이 컸다. 다만 함께 후보에 올랐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분노의 주먹(Raging Bull)’을 제친 건 “오스카 사상 최악의 선택”이란 논란도 상당했다. 1992년 브래드 피트가 출연해 낚시 붐을 일으켰던 ‘흐르는 강물처럼’과 1994년 오스카 작품상·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퀴즈 쇼’도 두고두고 회자된 작품. 특히 1998년 ‘호스 위스퍼러’는 고인이 감독이자 주연을 맡아 무르익은 연기력과 연출력을 보여줬단 극찬을 받았다. 말년의 대표작으론 2013년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가 자주 언급된다. 대사가 거의 없는 1인극으로 “레드퍼드의 가장 끝내주고 도전적인(the finest and the bravest) 연기”(WP)로 평가받는다. 2018년 ‘미스터 스마일’은 노년의 갱스터를 연기하며 전설의 퇴장을 완성한 작품. 다만 스스로 “은퇴작”으로 공표했다가, 이후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에 출연하며 “섣부른 결정이었다”며 사과하기도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넷플릭스 콘텐츠 가운데 처음으로 누적 시청 수 3억 회를 돌파했다. 17일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에 따르면 케데헌의 누적 시청수는 14일 기준 3억1420만 뷰를 기록했다. 6월 20일 공개된 후 약 석 달만의 기록이다. 이에 따라 케데헌은 지금까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 흥행작이 된 데 이어 첫 3억 회 시청 수를 돌파한 작품이 됐다.케데헌은 2주 전에 넷플릭스 역대 전체 시청수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오징어 게임 시즌1’의 2억6520만뷰다. 케데헌은 공개 후 13주 연속으로 영어 영화 10위 안에 올랐으며, 8~14일에도 시청수 2260만을 기록해 주간 1위 자리를 지켰다. 국가별로는 미국 영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39개국에서 1위를 기록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관에서 눈에 띄는 곳을 그림으로 담거나, 그곳을 찾은 관객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아예 전시 공간 전체를 캔버스 삼아 색을 칠해 커다란 설치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국내외 미술가 14인이 개관 30주년을 맞은 성곡미술관을 재료 삼아 만들어 낸 예술 작품을 모은 전시가 16일 개막했다. 성곡미술관 개관 30주년 기념전 ‘미술관을 기록하다’다. 참여 작가의 면면은 30세인 송예환부터 78세 프랑스 작가 조르주 루스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작가들은 2023년부터 미술관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관찰하며 작업을 구상해, 모두 신작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루스 작가는 미술관 2관 복층 구조인 전시장 벽면과 기둥에 색을 칠했다. 이 색 띠들은 작가가 표시해 놓은 공간에 서서 보면, 2차원의 납작한 직사각형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믿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민재영 작가는 한지와 수묵을 이용해 미술관 주변을 산책하며 봤던 광경 중에 인상 깊게 보았던 장면이나 장소에 대한 기억과 정서를 그림으로 재구성했다. 미술관 관객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성지연 작가의 작품, 미술관 정원을 기록한 베로니크 엘레나와 윤정미 작가의 사진 작품 등도 만날 수 있다. 1995년 11월 개관한 성곡미술관은 성곡 김성곤(1913∼1975)의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성곡미술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1980년대 한국에 공공 미술관이 부족하던 시절, 현대미술을 전시할 공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며 탄생한 한국의 대표적인 사립 미술관 중 하나다. 이수균 성곡미술관 부관장은 “미술관은 ‘성곡내일의작가상’으로 젊은 작가를 지원했으며,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주제전이나 해외 교류전을 운영해 왔다”며 “앞으로도 예술가들이 창의적으로 실험하며 성장할 토대가 되겠다”고 말했다. 12월 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관에서 눈에 띄는 곳을 그림으로 담거나, 그곳을 찾은 관객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아예 전시 공간 전체를 캔버스 삼아 색을 칠해 커다란 설치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국내외 미술가 14인이 개관 30주년을 맞은 성곡미술관을 재료 삼아 만들어 낸 예술 작품을 모은 전시가 16일 개막했다. 성곡미술관 개관 30주년 기념전 ‘미술관을 기록하다’다.참여 작가의 면면은 30세인 송예환부터 78세 프랑스 작가 조르주 루스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작가들은 2023년부터 미술관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관찰하며 작업을 구상해, 모두 신작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루스 작가는 미술관 2관에 복층 구조인 전시장 벽면과 기둥에 색을 칠했다. 이 색 띠들은 작가가 표시해 놓은 공간에 서서 보면, 2차원의 납작한 직사각형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믿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다.민재영 작가는 한지와 수묵을 이용해 미술관 주변을 산책하며 봤던 광경 중에 인상 깊게 보았던 장면이나 장소에 대한 기억과 정서를 그림으로 재구성했다. 미술관 관객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성지연 작가의 작품, 미술관 정원을 기록한 베로니카 엘레나와 윤정미 작가의 사진 작품 등도 만날 수 있다.1995년 11월 개관한 성곡미술관은 성곡 김성곤(1913~1975)의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성곡미술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1980년대 한국에 공공미술관이 부족하던 시절, 현대미술을 전시할 공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며 탄생한 한국의 대표적인 사립미술관 중 하나다.이수균 성곡미술관 부관장은 “미술관은 ‘성곡내일의작가상’으로 젊은 작가를 지원했으며,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주제전이나 해외 교류전을 운영해 왔다”며 “앞으로도 예술가들이 창의적으로 실험하며 성장할 토대가 되겠다”고 말했다. 12월 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위아래가 거꾸로 뒤집힌 여성의 커다란 초상화. 그 옆에 나란히 놓인 그림에는 샤워를 하고 있는 여성이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뒤집힌 초상화는 독일 작가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회화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거울이 있는 그림은 한국 작가 정강자의 ‘울지 마’다. 두 작가는 위아래가 바뀐 형상, 거울 속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짓 등 현실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을 표현해 자신이 본 세계의 모습을 드러낸다.》이처럼 ‘현실에 충격을 주는’ 형상을 담은 예술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 ‘형상 회로’가 최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관의 2025년 하반기 기획전인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형상’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논한다. 전시는 1970년대 단색화를 중심으로 조명된 추상회화와 민중미술 등 주요 사조에 속하지 않았던 회화의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그 출발점이 되는 건 1978년 시작한 ‘동아미술제’다. 당시 동아미술제는 ‘새로운 형상성’을 화두로 개막했다. 동아미술제가 제시한 ‘형상’이란 용어를 일민미술관은 사실주의적 화법을 지칭하던 ‘구상’과 다른 것으로 해석했다. 이를테면, 기계 장치 같은 구조물에 기이한 오브제를 결합한 이승택의 대형 설치 작품은 산업사회의 잔해 위에 인간의 흔적이 화석처럼 얽힌 인상을 준다고 해석했다. 또 변종곤의 회화 작품은 그림 속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 일부를 생략하는데, 이런 표현들이 현실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고 봤다. 이렇게 전시엔 변종곤, 이승택, 박장년, 한운성, 곽정명 등 동아미술제 수상 작가를 중심으로 바젤리츠와 마르쿠스 뤼페르츠 등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 공성훈, 정석희, 이제, 박광수, 호상근, 김세은, 심현빈, 나디와 지와, 김현진 등 17명이 참가해 작품 98점을 선보인다. 동아미술제의 유산과 해외 작가, 그리고 최근 활동하는 작가들의 실험 정신이 맞닿는 지점을 부각하고자 했다. 전시가 조명하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미술에선 사진을 재구성하거나 내면의 심리, 동시대의 풍경을 결합하는 회화적 양식이 나타난다. 공성훈 작가의 ‘버드나무’, 이제의 ‘청계천 모뉴먼트’처럼 사진을 토대로 한 그림 작품부터 여러 형상이 복잡하게 얽힌 모습을 담은 박광수의 ‘집 유령 거미’ 등을 볼 수 있다. 전시 제목인 ‘형상 회로’는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현실에 빠르게 불을 밝히는 예술 작품의 모습, 각자가 지닌 저마다의 회로 내부에서 다른 빛을 발하는 작가들의 모습을 포괄한다. 동아미술제는 1970년대 미술계 인사를 중심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성격과 명칭을 정한 뒤 1978년 출범했다. 신진 작가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통로가 부족했던 실정에 맞춰, 장르 구분을 최소화하고 작품 규격 제한을 없앴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이르면 대안 공간, 비엔날레, 상업 갤러리들이 등장해 작가들의 활동 무대가 증가했다. 이에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동아미술제는 전시기획 공모로 전환해 운영됐다. 윤율리 일민미술관 학예팀장은 “권위 의식에 도전해 미답의 가치를 발굴한 동아미술제의 창설 정신과 시대 변화를 읽고 혁신에 매진한 진지함은 오늘날 일민미술관과 한국 미술의 정체성에도 계승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다음 달 26일까지 열린다.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엔 현장 신청자를 대상으로 도슨트 프로그램도 진행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관객이 드나들어야 할 건물 입구는 흙더미로 가로막혀 있다. 대신 지하를 통해 내부로 들어서면 하얀 가벽은 모두 철거된 채 콘크리트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깨끗해야 할 미술관 바닥에 흙 언덕이 펼쳐진 가운데 ‘에이리언’이 떠오르는 기계 팔에 덮여 있는 세탁기만 조용히 돌아간다. 1995년 첫 전시 ‘싹’을 시작으로 30년간 운영된 미술관인 아트선재센터가 폐허가 된 듯했다. 이 생경한 광경은 3일 개막한 아르헨티나 출신 현대미술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첫 한국 개인전 ‘적군의 언어’가 빚어냈다. 미술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전체 건물을 재료 삼아 하나의 조각 작품을 만들 듯 독특한 공간이 조성됐다. 첫 한국 전시를 위해 내한한 로하스 작가를 지난달 29일 미술관에서 만났다. 사진 촬영을 하다가 작가에게 ‘흙 언덕 위에 올라갈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거절했다.“여기 발자국이나 모든 흔적은 컴퓨터로 정확하게 계산한 거라 밟으면 안 돼요. 아무렇게 쌓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의 말처럼 엉망처럼 보이는 전시장 속의 모든 요소는 계획된 것이다. 심지어 창문을 가린 천 틈새로 비치는 햇빛까지도. 작가는 지난해 미술관을 찾아 수개월간 직원이나 관객이 건물을 이용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이후 작업실에 돌아가 공간을 구성했다.2층에 놓인 대형 조각은 ‘상상의 종말’ 연작 중 하나다. 작가가 개발한 디지털 시뮬레이션 도구인 ‘타임엔진’에서 그래픽으로 먼저 제작한 뒤 아날로그 조각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로하스는 ‘타임엔진’을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저는 마르셀 뒤샹 이후 현대미술이 막다른 길로 치닫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이미 표현되거나, 이용되고, 미학적으로 해석돼 더 이상 쓸 것이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컴퓨터 기술의 힘을 빌려) 외계인이 된 것처럼 세상을 보고 싶었습니다. 편견도, 선입견도, 문화적 맥락도 모두 지우면 거기서 인간을 다시 사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로하스 작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의 목소리를 지우고 “누구의 것도 아닌 동시에 모두의 것인”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싶다고 했다.“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또한 한 사람이 만든 게 아니죠. 인간과 비인간, 산 자와 죽은 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죠. 저는 조각을 만들 때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이나 변형을 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럴 때 오히려 작품이 저를 벗어나 현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미술관을 뜯고 해체하고 재조립한 로하스 작가의 작품을 보고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원상 복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그중 하나였다. 작가는 “나도 미술관에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이번 작업의 결과물은 이미 건물과 하나가 됐거든요. 우리가 만든 조각은 미술관 건축물과 보존팀이 만들어준 온도, 습도, 보호 환경 속에 편안히 적응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전시장은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있다.) 거미와 개미, 귀뚜라미 같은 생명체도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지요. 이 작품을 어떻게 해체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한 몸이 된’ 미술관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유일한 끝맺음일지도…?” 내년 2월 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현재 세계 남자 마라톤 기록 상위 10명 가운데 절반은 에티오피아 출신이라고 한다. 또 올림픽 남자 1만 m 종목에서 케냐는 딱 1번 우승했지만, 에티오피아는 2025년 기준 여섯 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사람들은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월등한 실력이 ‘유전자’나 ‘열악한 환경’ 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눈부신 기록 뒤엔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을 믿는 ‘집단적 신념’이 큰 역할을 했다. 공동체적 연대가 바탕이 된 고유의 탄탄한 훈련 시스템이 그들을 ‘달리기 강국’으로 만든 셈이다. 이 책은 영국 더럼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가 에티오피아로 직접 참여 관찰 연구를 떠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2시간 20분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저자는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뒤, 다음 날 무작정 밖으로 나가 러너들과 합류한다. 그렇게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15개월 동안 직접 달린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언덕을 달렸고, 하이에나를 쫓아간 적도 있다. 독창적이지만, 때로는 위험하기도 한 방식으로 달리는 에티오피아 러너들의 생생한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에티오피아 러너들은 GPS 시계나 데이터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곳에선 달리기가 수치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자 생존의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만약 GPS 시계를 차더라도 그룹 중 한 명만 쓰거나, 서로 누가 더 느리게 달리는 지 실험하는 데 쓰기도 한다. 이는 무조건 빠른 기록을 세우는 것보다, 러닝이 몸에 주는 느낌과 서로의 호흡을 더 중시한다는 걸 보여준다. 재밌는 건 에티오피아에선 혼자 뛰는 걸 금기시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혼자 뛰는 러너는 ‘기록보다 건강을 위해 달리는 여행객’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에게도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뛰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함께 다양한 지형을 뛰면서, 빠른 페이스가 필요하거나 장애물이 있을 때 서로에게 신호를 주며 한 몸처럼 달린다. 책에는 걷기만 해도 숨이 차 뛰기 힘들 정도로 높은 지대에서 뛰는 러너들도 다뤘다. 이는 특별한 훈련법이라기보단, 고지대의 희박한 산소나 유칼립투스 나무가 가득한 숲 등 특정 장소에서 뛰면 ‘신비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늘 똑같은 조건의 트랙에서 뛰는 것보다 흙이 쌓인 숲이나 돌길 등 여러 곳에서 몸을 적응시키는 게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가 볼 땐, 희한한 ‘전통’도 존재했다. 훈련 중에 쓰러진 한 러너는 자신이 넘어진 이유가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료들은 그를 둘러싸고 퇴마 의식까지 치러준다. 하지만 이건 단순하게 미신으로 폄하할 문제가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오히려 이 러너가 자기에게 닥친 고통과 어려움, 압박 같은 불확실성을 ‘저주’로 받아들였단 점에 주목한다.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 함께 어려움을 해결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러닝을 위한 훈련법이나 심리적 성공담을 알려주진 않는다. 대신 저자의 전문성과 생생한 현장을 바탕으로 달리기의 참 의미를 찾는다. 어쩌면 달리기에는 인생과 문화, 공동체의 경험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도 ‘러닝 인구 1000만 명 시대’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달리기가 인기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전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관점을 통해 새로운 러닝의 매력을 얻을 수 있다. 또 자연환경의 마법적인 힘, 공동체와 연대, 실패와 희망의 인간적인 스토리에 깔린 인류 문화의 한 단면도 관찰할 수 있다. 인류학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마거릿 미드상’ 수상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외국 언론인의 비자(I 비자) 유효기간을 240일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세계신문협회(WAN-IFRA)가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세계신문협회와 한국신문협회를 비롯한 국내외 언론단체들은 11일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 국토안보부(DHS)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새 규정안은 외국 언론인의 주택 확보, 은행 계좌 개설 등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특파원의 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현재 미국의 외국 언론인 비자는 5년간 유효하지만 특정 조건을 준수하면 미국 근무 기간이 끝날 때까지 무기한 연장할 수 있다. 성명은 이어 “(비자 유효기간 단축은) 미국에서 보도되는 보도의 양과 질을 저하시키고, 개방성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해 온 미국의 유산을 훼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공동 성명에는 세계 각국의 신문과 방송, 디지털미디어 및 언론단체 119곳이 참여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