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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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08~2025-12-08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20세기 美음악-21세기 韓창작음악, 비올라로 만나다

    “팬들이 ‘비주류’로 여겨온 음악들로 재미있게 꾸며보려 합니다. 현대음악이나 미국 고전음악, 비올라까지 비주류잖아요.”(최재혁·앙상블블랭크 예술감독) “비올라는 레퍼토리가 적어서 오늘날 새로 쓰이는 음악과 뗄 수 없는 악기입니다. 저를 위해 쓴 곡을 꿈꿔왔어요.”(이한나·비올리스트) 현대음악 또는 동시대음악은 팬 층이 두텁지 않다. 작곡가마다 새로운 음악어법을 펼치기 때문이다. 비올라도 팬이 많다고 하긴 힘들다. 바이올린과 구분 못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20세기 미국음악과 21세기 한국 창작음악이 비올라를 중심으로 만난다. 현대음악 전문 실내악단 ‘앙상블 블랭크’와 비올리스트 이한나가 꾸미는 콘서트 ‘비올라 인 마이 라이프’다. 4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 이번 콘서트는 미국 작곡가 모튼 펠드먼의 ‘비올라 속 내 인생’과 이 곡의 제목을 오마주한 최재혁의 ‘내 인생 속 비올라’가 중심을 이룬다. 이한나가 최재혁에게 먼저 곡을 써 줄 것을 제안했다. 나무판 한 장을 앞에 놓은 타악기 연주자와 비올리스트 두 사람만이 다양한 소리의 실험을 펼친다. 앙상블블랭크의 타악기주자 한문경이 중학교(예원학교)시절 단짝이었던 점도 작용했다며 두 사람은 웃음지었다. “악기 몸통 전체를 사용해 소리를 내는 곡입니다. 좋은 악기를 고생시키기 미안해서, 인터넷으로 10만 원 짜리 비올라를 주문해 드렸어요.”(최) “10만 원 짜리 악기로 연주하는데도 문제는 없지만 실제 어느 악기를 쓸 지는 생각 중입니다, 하하.”(이) 펠드먼의 ‘비올라 속 내 인생’은 고요하고 정적인 작품. 최재혁은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여백의 반복으로 불멸을 표현하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독일 작곡가 힌데미트가 영국 방문 중 영국 왕 조지 5세의 서거를 접하고 하루 만에 써서 당일 BBC 라디오를 통해 세계 초연된 ‘장송곡’도 이한나와 앙상블블랭크 협연으로 연주한다. 비올라가 등장하기 전 콘서트 초반에는 코플란드 ‘아팔라치아의 봄’, 1986년 영화 ‘플래툰’ 배경음악으로 알려진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 등 다소 보수적이고 쉽게 들리는 20세기 미국음악 두 곡이 놓인다. 콘서트 후반부에는 20세 신예 작곡가 김혁재의 ‘똑같은 것들’과 미국 미니멀리즘(최소주의)작곡가 라이시의 ‘여덟 개의 선’으로 무대를 마무리한다. 앙상블블랭크는 젊은 음악가들이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기 위해 2015년 결성한 실내악단. 최재혁과 첼리스트 이호찬, 피아니스트 정다현 등이 ‘아티스틱 커미티(예술위원회)’를 꾸려 운영 방향을 결정한다. 예술감독 최재혁은 2017년 제네바 국제콩쿠르 작곡부문에서 역대 최연소 1위를 차지했고 2018년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를 지휘하며 국제무대에 지휘자로 데뷔했다. 이한나는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킴 카쉬카시안을 사사했고 베르비에 페스티벌, 말보로 페스티벌 등 세계 유수의 음악축제에 출연해 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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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옆에 있어 드립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사에게 야단을 맞고 풀이 죽었다. 누구에겐가 하소연을 하고 싶은데 친구나 가족에게 얘기했다가는 싫은 충고까지 덤으로 들을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일본인인 저자는 2018년 6월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서비스’를 시작했다. 얼핏 심부름 같지만, 그저 ‘있어줄’ 뿐, 적극적인 역할은 절대 맡지 않는다는 서비스다. 저자의 얘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인터뷰를 한 건 아니다. 책의 내용을 정리했으므로 ‘가상’도 아니다. ―어떤 식으로 서비스가 진행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의뢰가 들어오면 마음에 드는 일만 응한다. 교통비와 식비(발생할 경우) 이외의 돈은 받지 않는다. 재미있는 얘기는 의뢰자의 신원 정보를 빼고 SNS에 올린다.” ―어떤 의뢰들이 들어오는가. “집 청소를 잘하나 보고 있어 달라, 공원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면 이상해 보이니 함께 마셔 달라, 재판을 방청해 달라, 연인 자랑을 들어 달라, 이사를 가는데 역에서 배웅해 달라, 마라톤 결승선에서 기다려 달라, 그냥 자기를 생각하기만 해 달라….” ―어떻게 이런 걸 시작하게 됐는가.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글을 썼는데, 다른 사람이 ‘이 정도 해주겠지’라고 기대하는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한 심리상담사가 ‘급여는 존재만으로도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가치가 있다’고 쓴 걸 보고 시작했다.” ―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을 의뢰할까. “우선, 얘기를 들어주면 좋겠다는 의뢰가 많다. 친구에게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친근한 사람에게는 더 입을 닫게 된다. 내가 있어주는 것만으로 동기 부여가 되는 경우도 많다. 신인상에 응모할 소설을 쓰는 걸 지켜봐 달라, 아침에 잘 못 일어나니 약속 장소에 나와 있어 달라고 하기도 한다.” ―왜 돈을 받지 않는가. “돈이 오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의 실제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의뢰인과 상하관계가 생기게 된다.” ―본인에게는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글 쓰는 사람인데, 이 일로 글을 쓰기 위한 다양한 경험을 경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괜찮은 취재 방식 아닌가.” ―그 경험들로 실제 책 여러 권(만화 포함)을 냈고 TV 드라마도 나왔으니 성공한 것 같다. 따라 하는 사람은 없나. “‘뭐든지 하는 사람’ 같은 서비스가 생겼지만 일용직 아르바이트 의뢰만 받아서 접었다고 들었다. 내 콘셉트를 그대로 베낀 사람도 있었지만 SNS로 스토리를 공유하지 않아서인지 성공하지 못했다.” ―미래 세상은 대부분의 일거리를 인공지능(AI)이 가져가고 ‘사람 냄새’가 중요한 일만 남게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스펙이 낮기로 자신이 있다. 세상에는 스펙에 상관없이 ‘인간에 대한 수요’가 있다. 나는 이 일이 촉매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대로 있으면서 다른 물질의 화학 반응을 촉진하거나 늦춰주는 촉매 말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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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나

    상사에게 야단을 맞고 풀이 죽었다. 누구에겐가 하소연을 하고 싶은데 친구나 가족에게 얘기했다가는 싫은 충고까지 덤으로 들을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신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미메시스)의 저자 모리모토 쇼지는 2018년 6월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곤 자신의 이름도 ‘렌털 아무것도…’로 바꿨다. 얼핏 심부름 같지만, 그저 ‘있어줄’ 뿐, 적극적인 역할은 절대 맡지 않는다는 서비스다. 저자의 얘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인터뷰를 한 건 아니다. 책의 내용을 정리했으므로 ‘가상’도 아니다.―어떤 식으로 서비스가 진행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의뢰가 들어오면 마음에 드는 일만 응한다. 교통비와 식비(발생할 경우) 이외의 돈은 받지 않는다. 재미있는 얘기는 의뢰자의 신원 정보를 빼고 SNS에 올린다.” ―어떤 의뢰들이 들어오는가. “집 청소를 잘 하나 보고 있어 달라, 공원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면 이상해 보이니 함께 마셔 달라, 재판을 방청해 달라, 연인 자랑을 들어 달라, 이사를 가는데 역에서 배웅해 달라, 마라톤 결승선에서 기다려 달라, 그냥 자기 생각대로 해 달라….” ―어떻게 이런 걸 시작하게 됐는가.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글을 썼는데, 다른 사람이 ‘이 정도 해주겠지’라고 기대하는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한 심리상담사가 ‘급여는 존재만으로도 얻을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가치가 있다’고 쓴 걸 보고 시작했다.” ―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을 의뢰할까. “우선, 얘기를 들어주면 좋겠다는 의뢰가 많다. 친구에게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친근한 사람에게는 더 입을 닫게 된다. 내가 있어주는 것만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경우도 많다. 신인상에 응모할 소설을 쓰는 걸 지켜보아 달라, 아침에 잘 못 일어나니 약속장소에 나와 있어달라고 하기도 한다.” ―왜 돈을 받지 않는가. “돈이 오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의 실제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의뢰인과 상하관계가 생기게 된다.” ―본인에게는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글 쓰는 사람인데, 이 일로 글을 쓰기 위한 다양한 경험을 경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괜찮은 취재방식 아닌가.” ―그 경험들로 실제 책 여러 권(만화 포함)을 냈고 TV드라마도 나왔으니 성공한 것 같다. 따라 하는 사람은 없나. “‘뭐든지 하는 사람’같은 서비스가 생겼지만 일용직 아르바이트 의뢰만 받아서 접었다고 들었다. 내 컨셉트를 그대로 베낀 사람도 있었지만 SNS로 스토리를 공유하지 않아서인지 성공하지 못했다.” ―미래 세상은 대부분의 일거리를 인공지능(AI)이 가져가고 ‘사람 냄새’가 중요한 일만 남게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스펙이 낮기로 자신이 있다. 세상에는 스펙에 상관없이 ‘인간에 대한 수요’가 있다. 나는 이 일이 촉매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대로 있으면서 다른 물질의 화학 반응을 촉진하거나 늦춰주는 촉매 말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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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튜브]교향악 황제들의 계보 이어준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교향곡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종종 하나의 연속된 줄기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교향곡의 완성자’로 불린 하이든의 제자 베토벤은 ‘불멸의 아홉 곡’으로 불리는 교향곡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그 베토벤을 존경했던 슈베르트는 베토벤이 죽었을 때 운구에 참여했고 훗날 베토벤 바로 옆에 묻혔다. 베토벤이 죽고 49년이 지난 1876년,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 세상에 나왔다.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이 작품을 ‘교향곡 10번’이라고 불렀다. 베토벤의 아홉 곡을 잇는 곡이라는 뜻이었다. 브람스는 완성도가 높은 교향곡 네 곡을 써서 이 전통의 적자임을 입증했다. 브람스가 쌓아올린 네 개의 봉우리 다음에 나타난 커다란 산맥은 구스타프 말러였다. 말러는 언뜻 브람스의 계승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순음악파’ 브람스와 대립해 ‘종합예술’을 목표로 했던 바그너의 추종자였다. 그러나 브람스와 말러는 자주 그 시대의 음악 경향에 대한 담론을 나누며 세대를 뛰어넘어 우정을 이어갔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브람스가 한 번 본 적도 없는 베토벤의 위업을 반세기나 지나 갑자기 계승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한스 폰 뷜로의 말 한마디로 그 왕관을 순순히 넘겨줄 수 있을까. 이 교향곡 왕조의 신화를 더 완전하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그레이트’)에 대한 얘기다. 이 곡이 있음으로써 교향곡의 물줄기는 베토벤에서 슈베르트, 그리고 슈만과 멘델스존, 이어서 브람스로 이어진다. 최소한 마치 그렇게 이어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연은 이렇다. 슈베르트가 죽고 9년이 지난 1837년, 음악평론가 겸 아직 무명 작곡가였던 로베르트 슈만이 슈베르트의 형 페르디난트를 찾아갔다. 페르디난트는 동생 슈베르트가 남긴 악보 꾸러미로 슈만을 안내했다. 슈만은 거기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교향곡 악보를 발견한다. 놀라움과 기쁨은 말할 수도 없었다. 슈만은 친한 친구이자 지휘자였던 멘델스존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악보를 보냈다. 이 곡은 멘델스존의 지휘로 1839년 게반트하우스에서 처음 연주됐다. 객석에 앉은 슈만은 당시 연애 중이었던 클라라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클라라. 나는 오늘 복을 받았소. 이 곡은 형용할 수 없소. 인간의 목소리요. 모든 악기가 엄청나게 즐겁고 관현악법도, 엄청난 길이도 놀랍소. 난 정말 행복했고 당신이 나의 아내가 되고 내가 이런 곡을 쓸 수 있기만 빌었소.” 이 편지는 교향곡의 위대한 전통이 슈베르트로부터 그의 유작을 발견한 슈만의 손으로 인계되는 환상을 일으킨다. 슈만은 실제로 다음해인 1840년에 교향곡 1번 ‘봄’을, 그 다음해 오늘날 교향곡 4번이 되는 교향곡 d단조를 쓰는 등 교향곡 네 곡으로 선배들의 업적을 잇는다. 슈베르트의 악보더미에서 슈만이 찾아내 다시 불씨를 키워낸 교향곡의 전통은 다시 슈만의 제자였던 브람스에게 계승된다. 슈만은 독일 오스트리아 음악계에 브람스의 존재를 알린 선생이자 스승이었다. 이렇게 보면 하나의 계통도가 그려진다. 하이든이 쌓아올린 교향곡의 토대는 제자 베토벤에게 이어지고, 베토벤을 운구했고 그의 곁에 묻힌 슈베르트에게, 그 슈베르트의 교향곡을 찾아낸 슈만에게, 그 슈만의 제자 브람스에게, 그 브람스와 친교를 나눈 말러에게. 장대한 산맥이 구비치는 것처럼 이어진다. 물론 이는 신비주의적인 시각일 뿐이다. 교향곡의 세계에는 모차르트나 브루크너,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체코의 드보르자크,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등 앞에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거장들이 있다. 하지만 하이든에서 말러로 이어지는 일련의 ‘인연’들은 오늘날 그들의 음악을 듣는 음악팬들에게 신비로운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KBS교향악단 콘서트에서는 ‘지휘자가 된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7번을 지휘와 솔로를 겸해 연주한 뒤 후반부에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더 그레이트’를 지휘한다. 작품의 장대함과 유려함을 즐기는 데서 나아가 교향곡 역사의 위대한 전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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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여기, 한여름의 음악축제로 오라

    세종솔로이스츠가 2017년부터 개최해온 음악 페스티벌 ‘힉엣눙크!(Hic et nunc!)’가 실내 콘서트와 야외 콘서트, 오페라, 포럼, 마스터클래스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행사는 8월 22일부터 9월 1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울대, 충북 진천 숲을 비롯한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진다. ‘힉엣눙크!’란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이란 뜻. 세계 음악계의 최신 흐름을 알리고 고전을 새로운 맥락과 관점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욕을 표현한다. 올해 주제는 ‘음악, 자연, 인공지능(Music, Nature & AI)’으로 정했다. 축제의 서막은 8월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스티븐 김 리사이틀 ‘Spiritual Reflections(영적 성찰)’로 연다. 스티븐 김은 2019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한 뒤 주목받아온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과 작곡가 이신우(서울대 작곡과 교수)가 그에게 헌정한 바이올린 소나타 2번 ‘Till Dawn(새벽까지)’ 등을 연주한다. 실내악단이 주최하는 음악축제로서 색다른 순서는 9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다. 공연 전반부는 세종솔로이스츠 악장을 거쳐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재직 중인 프랭크 황과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 악장 데이비드 첸 등이 비발디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시작으로 기악 프로그램을 연주한다. 후반부에는 소프라노 캐슬린 김이 도니체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주요 아리아를 콘서트 버전으로 노래한다. 올해 주제 중 하나인 ‘환경’은 9월 5일 충북 진천 미르숲에서 열리는 피아니스트 피에르로랑 에마르 콘서트 ‘새의 카탈로그’로 표현한다. ‘새의 카탈로그’는 프랑스 현대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 새 77종의 노랫소리를 피아노로 표현한 작품. 자연 속에서 현존 최고 메시앙 해석가로 불리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음악축제 프로그램으로는 다소 낯선 ‘인공지능’ 탐구도 눈여겨볼 만하다. 8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산업정책연구원에서 강경원 세종솔로이스츠 총감독과 이신우 서울대 교수가 참여하는 인공지능 포럼을 연다. 9월 9, 10일에는 서울대 음악관에서 이 대학 작곡과 현대음악 시리즈인 ‘스튜디오 2021’과 공동 주최하는 ‘new music project with AI(인공지능이 함께하는 신음악 프로젝트)’가 열린다. 세종솔로이스츠는 1994년 강효 줄리아드음악원 교수가 한국 등 8개국의 젊은 현악 연주자들을 모아 창설했다. 세계 120여 개 도시에서 500회 이상의 콘서트를 열었고 미국 애스펀 음악제,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상임 실내악단으로 활동했다. CNN에서 방영된 2002년 크리스마스 특별공연과 2003년 추수감사절 특별공연은 미국 전역에 방영돼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9년에는 러시아가 주최하는 트랜스시베리아 아트 페스티벌의 한국 파트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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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팽 콩쿠르 본선 한국 7명 진출… 6년만에 ‘제2의 조성진’ 나올까

    세계 최고 권위의 피아노 제전으로 꼽히는 제18회 쇼팽 국제 콩쿠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1년 연기된 끝에 23일 저녁(현지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예선 경연을 마쳤다. 151명이 출연한 예선 결과 한국 7명(가주연 김수연 박연민 박진형 이재윤 이혁 최형록)과 중국 22명, 폴란드 16명, 일본 14명 등 87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들과 세계 주요 콩쿠르 상위 입상자로 예선을 면제받은 9명을 더해 96명이 10월 2∼23일 열리는 본선 경연에서 입상을 놓고 겨루게 된다. 2015년 조성진 우승의 낭보를 전해준 뒤 6년 만에 열리는 올해 쇼팽 국제 콩쿠르는 지난해 이후 여러 주요 콩쿠르가 연기 또는 취소된 가운데 어느 때보다 치열한 불꽃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인 본선 진출자는 김수연(올 5월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 박연민(2017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 3위 및 올 5월 에네스쿠 콩쿠르 우승) 박진형(2016년 프라하 콩쿠르 우승) 이혁(2016년 파데레프스키 콩쿠르 우승) 최형록(2019년 센다이 콩쿠르 우승) 등으로 최고의 실력을 증명해 왔다. 쇼팽 국제 콩쿠르는 1927년 창립된 뒤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 등과 함께 세계 연주계 대표 피아니스트들의 산실로 꼽혀 왔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달리 피아노 부문만 개최한다. 1927년 레프 오보린, 1949년 벨라 다비도비치, 1955년 아담 하라시에비치, 1960년 마우리치오 폴리니, 1965년 마르타 아르헤리치, 1970년 개릭 올슨, 1975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1980년 당타이손, 1985년 스타니슬라프 부닌, 2005년 라파우 블레하치, 2010년 율리아나 아브데예바, 2015년 조성진 등 역대 우승자들의 면면이 그 권위를 증명한다. 조성진 이전 한국인으로는 2005년 임동민 임동혁 형제가 공동 3위를 차지했다. 10월 열리는 본선에서는 3∼17일 1∼3차 본선을 통과한 최종 경연자들이 21∼23일 바르샤바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쇼팽의 협주곡을 협연하는 결선을 치른다. 시상식은 23일 경연 직후 열린다. 예선을 비롯한 경연 전 과정은 쇼팽 국제 콩쿠르 모바일 앱과 유튜브 ‘쇼팽 인스티튜트’ 채널로 생중계된다. 쇼팽 인스티튜트는 예선 경연을 세계에서 4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고 밝혔다. 2015년 조성진 우승 이후 피아노 음악과 국제 콩쿠르 팬덤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한국에서도 여러 팬들이 콩쿠르를 실시간으로 보고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관전기를 공유하며 열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한편 쇼팽 국제 콩쿠르 주최자인 폴란드 쇼팽 인스티튜트는 다음 달 바르샤바에서 주최하는 ‘쇼팽과 유럽 페스티벌’에 피아니스트 문지영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문지영은 다음 달 30일 바르샤바 필하모닉 체임버홀에서 쇼팽 마주르카 Op.56의 세 곡과 전주곡집 Op.28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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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악가 부부가 들려줄 사랑의 노래는?

    “같은 길을 가는 사이에 일 얘기는 금기라고요? 저희는 하루 대화의 4분의 3을 음악 얘기로 채웁니다. 하하.”(최원휘·테너) 테너 남편과 소프라노 아내(홍혜란).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부부가 한 무대에서 유럽 가곡과 한국 창작 가곡을 노래한다. 24일 오후 5시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러브 앤드 라이프―사랑과 삶을 노래하다’ 콘서트.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함께한다. 두 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생으로 만났다. 1980년생인 최 씨가 한 살 많다. 대학 1학년 가을에 사랑을 싹틔웠다. “일찍 알게 되어 함께 음악하기 수월했어요. 더 늦게 만났으면 서로의 색깔이 부딪쳤을지 모르죠.”(홍)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며 결혼식을 올렸다. 반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두 사람의 ‘인생 멘토’다. “유학 생활 초기, 백 선생님께서 지휘자로 계신 한인교회에서 부지휘자와 솔리스트를 맡아달라고 하시더군요. 그 뒤 10년 넘게 저희의 음악적 성장을 지켜보시고, 중요한 순간마다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셨죠. 음악가, 선생,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모두 최선을 다하시는 삶 자체도 큰 가르침이었어요.”(홍) 각각 미국 줄리아드 음대(홍)와 매네스 음대(최)를 졸업한 뒤 미국과 유럽 무대를 오가며 활동했다. “멋있게 느껴졌죠. ‘자기 독일 공연 보러 갈게’ ‘러시아에서 하는데 올래?’ 하지만 장기적으로 함께 활동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콘서트도 그런 생각에서 꾸몄죠.”(최) 졸업 직후 ‘꿈의 무대’로 불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발탁된 홍 씨는 2011년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의 문을 두드렸다. “준비 시간이 부족했어요. 실패할 것 같다고 했더니 남편이 ‘비행기표도 끊었는데 다녀오라’며 등을 떠밀었죠.”(홍) “인터넷으로 전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시상식에서 먼저 아내 이름을 부르더군요. 그래서 수상자 중에선 하위 등수인줄 알았는데 화면을 보니 그런 표정이 아니었어요. 우승이었어요! 친구들과 소리를 지르며 기쁨을 나눴죠.”(최) 최 씨는 지난해 2월 메트로폴리탄에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주인공 알프레도 역으로 데뷔했다. 당일 출연하려던 테너가 컨디션 이상을 일으켜 바로 투입됐다. “전화를 받았는데 ‘혜란아, 오늘이야’ 하더군요. 그동안 메트 데뷔를 위해 얼마나 꿈꾸고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에 눈물이 주룩 흘렀어요.”(홍) 홍 씨는 201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부부이지만 기반은 서울로 옮겼다. 결혼 14년 만인 지난해 5월 딸이 태어났다. 노래를 잘할까? 두 사람은 “엄마가 발성연습 하는 걸 벌써 흉내 내요”라며 웃었다. 이번 콘서트에서 홍 씨는 슈만의 가곡집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노래한다. 여성이 사랑을 만나 결실을 맺고 남편과 사별하기까지를 그렸다. 최 씨는 리스트의 ‘페트라르카 시에 의한 소네트’ 세 곡을 노래한다. 상대를 이상화(理想化)한 사색적인 사랑이 담겼다. 마지막 무대는 작곡가 김신에게 의뢰한 ‘김소월의 세 개의 시에 의한 가곡’이다. 첫 곡 ‘첫사랑’은 소프라노, 둘째 곡 ‘님의 노래’는 테너, 셋째 곡 ‘못잊어’는 듀오를 위해 작곡됐다. 최 씨는 “만남은 어떤 형태든 이별로 끝난다. 그 이별까지도 영원을 부여해 표현한 곡들”이라고 말했다. 4만5000∼7만5000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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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즈와 만나는 바로크음악… 바흐의 견고한 소나타, 어떻게 깰까

    “바로크 음악의 매력은 자유와 창조죠. 바로크 시대는 장르 사이의 벽이 견고히 세워지기 전이어서, 여러 장르의 예술과 문화가 함께하는 일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최현정 대표(43)가 이끄는 ‘더 뉴 바로크 컴퍼니’는 옛 서양 음악의 악기와 연주법을 살려 연주하는 고음악(古音樂) 전문 단체다. 이젠 국내에서도 고음악 단체를 여럿 찾아볼 수 있지만 더 뉴 바로크 컴퍼니의 작업은 매번 호기심을 불러온다. 국악 정가와 바로크 합주가 함께 연주를 펼치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콘서트로 풀거나 천문학자 케플러의 책 ‘세계의 조화’를 미디어 아트와 융합해 무대에 올리는 식이다.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에 올리는 ‘더 뉴 바로크 컴퍼니 프로젝트 #7’에서 이들은 재즈와 만난다. 다울랜드 ‘흘러라 나의 눈물이여’, 라모 ‘탕부랭’, 바흐 트리오 소나타 BWV 529 같은 옛 음악을 베이시스트 구교진, 드러머 김수준, 피아니스트 윤지희 같은 재즈 아티스트들과 함께 풀어낸다. 이번이 재즈와의 첫 만남은 아니다. 창단 직후인 2014년 공연한 ‘프로젝트 #1’에서 비발디 협주곡집 ‘사계’와 재즈싱어의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흉내가 아닌 진정한 융합을 이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흉내와 진짜 융합의 차이? 아티스트의 치열함에도 달렸고, 공연장에 온 관객들도 직관적으로 느끼기 마련이죠. 저희는 콘서트가 결정되면 거의 매주 만나 세미나를 갖고, 함께할 상대 아티스트들과도 워크숍을 열며 최대한 이해의 폭을 넓힙니다. 그러고는 ‘실전’에서 부딪치며 맞춰 가죠.” 2017년 ‘프로젝트 #4’에서는 정가와 만났다. 서양 바로크 음악과 한국의 정가가 어떻게 화음을 이뤘을까. “바로크 시대에 ‘파사칼리아’라고, 기본 화음을 베이스가 반복하면서 그 위에 선율을 펼쳐내는 형식이 있어요. 그 형식에 정가를 얹었는데 잘 어우러졌습니다. 바로크 연주가들도, 정가를 부른 분도 신기해 할 정도였죠.” 이번 무대에서 콜라보를 펼쳐갈 재즈는 본디 악보에 얽매이지 않는 즉흥 연주(임프로비제이션)가 특징이다. 바로크 시대 음악도 고전주의 이후 음악과 달리 악보 해석에 즉흥성이 크다. 색다른 조화를 기대할 만하다. 콘서트 형식도 독특하다. 1부에서는 더 뉴 바로크 컴퍼니만 무대에 올라 바로크 곡들을 연주하고, 2부에 거의 똑같은 순서로 재즈 아티스트들이 가세해 새로운 색채를 만들어낸다. 라모의 곡이 스윙댄스와 결합하는 부분에선 스윙댄서가 출연한다. “바로크 춤곡을 알려면 실제 춤을 춰봐야 하듯이 재즈를 알려면 스윙 리듬을 알아야죠. 이번에 단원들이 다 스윙을 배웠어요.”(웃음) 고민은 남아 있다. 바흐의 음악은 바로크 시대에서도 특히 엄격한 논리적 구조를 갖고 있다. “바흐의 견고한 소나타를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 어떻게 깨볼지 생각이 많습니다. 며칠 남지 않았지만 아직도 ‘전투적으로’ 고민하고 있어요.” 전석 3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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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십자군전쟁-IS 테러… 종교는 정말 폭력적일까

    세계가 대역병의 울타리에 갇히기 전 서구의 가장 큰 근심은 ‘이슬람 테러’였다. 유럽이나 미국의 대도시에서 칼과 총을 맞은 사람은 희생자의 일부에 불과했다.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한 지역에서는 대량 살육이 일상이었다. “종교는 역사상 모든 주요한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었다.” 학자들과 여러 매체의 단언은 당연시됐다. 십자군전쟁, 30년 전쟁…. 역사 속 증거는 끝도 없어 보였다. 수녀에서 환속한 영문학자로, 다시 종교학자로 삶의 방향을 바꾼 저자(영국)는 이런 인식에 ‘잠깐’이라며 제동을 건다. “종교가 폭력에 가장 많은 책임이 있다면 무엇보다 많다는 것인가?” 질문은 이어진다. “예를 들어보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종교전쟁이란 말인가? 히틀러가 종교적 동기에서 유대인을 살육했나?” 이 책은 ‘폭력으로 본 종교학 개론’이라고 할 만하다. 질문은 도전적이지만 ‘종교는 폭력적이지 않다’고 증명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신화적 부분으로만 여겨져 온 종교 경전의 내용과 실제의 역사가 정치를 비롯한 다른 영역과 어떻게 연관되었는지에 대한 함의를 ‘폭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파헤친다. 중동에서 유래한 ‘유일신 종교’들은 물론 불교를 비롯한 인도의 종교들, 중국의 제자백가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돋보기를 들이댄다. 많은 경우 종교는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강화했지만 폭력의 실제 동기는 다른 곳에, 주로 ‘수익’에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농경이 시작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엘리트 집단은 농산물을 강탈했고 성직자들은 이런 폭력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런 폭력의 구조 덕에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킬 특권계급도 생겨났다. 문명 초기 단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정치는 섞여 있었다. ‘종교’라는 별도의 단어조차 근대 이전엔 없었다. 권력이 전쟁을 비롯한 폭력을 강제했고 성직자들은 이를 뒤늦게 축성(祝聖)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오늘날 ‘가장 폭력적인 종교’로 치부되는 중동 일신교는 그 태생에서 오히려 폭력적 요소가 적었다. 초기 이스라엘 민족은 폭력적 농업국가의 강제에서 벗어나 유목생활을 영위하려는 집단이었고 구약성서에도 이런 성격이 반영됐다. 로마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차지한 게르만족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 구약성서 속에서 이민족을 몰아낸 유대 왕들을 숭배했다. 유럽에서 전쟁은 수익 사업이었다.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제1차 십자군은 사흘 동안 약 3만 명을 살육했다. 종교의 이름을 띤 참화였지만 실제 성격은 물질적 이익을 위한 정복 전쟁이었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종교에 대한 열정은 민족국가에 대한 열정으로 대치됐지만 폭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종교가 폭력과 결부되어 왔지만 종교 고유의 폭력적 본질이란 없다’고 결론짓는다. 21세기에 종교의 이름을 내세운 폭력도 ‘갑자기 생긴 종양’처럼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현대라는 실상의 일부분이며, 공허와 씨름하는 현대인을 위해 종교가 그 공격성을 흡수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종교의 원초적 폭력성’이라는 혐의를 벗겨준 뒤 저자가 종교에 주문하는 메시지는 이렇다. 우리는 종교가 가장 훌륭했을 때 한 일을 해야 한다. 세계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구축하고 존중을 계발하며 세계의 고난에 책임져야 한다.” 원제는 ‘Fields of Blood’(피의 들판·2014년).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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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가 전쟁-폭력의 원인이라면, 히틀러의 유대인 살육은 왜?”

    세계가 대역병의 울타리에 갇히기 전 서구의 가장 큰 근심은 ‘이슬람 테러’였다. 유럽이나 미국의 대도시에서 칼과 총을 맞은 사람은 희생자의 일부에 불과했다.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한 지역에서는 대량 살육이 일상이었다. “종교는 역사상 모든 주요한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었다.” 학자들과 여러 매체의 단언은 당연시됐다. 십자군전쟁, 30년 전쟁…. 역사 속 증거는 끝도 없어 보였다. 수녀에서 환속한 영문학자로, 다시 종교학자로 삶의 방향을 바꾼 카렌 암스트롱은 신간 ‘신의 전쟁(교양인)’에서 이런 인식에 ‘잠깐’이라며 제동을 건다. “종교가 폭력에 가장 많은 책임이 있다면 무엇보다 많다는 것인가?” 질문은 이어진다. “예를 들어보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종교전쟁이란 말인가? 히틀러가 종교적 동기에서 유대인을 살육했나?” 이 책은 ‘폭력으로 본 종교학 개론’이라고 할 만하다. 질문은 도전적이지만 ‘종교는 폭력적이지 않다’고 증명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신화적 부분으로만 여겨져 온 종교 경전의 내용과 실제의 역사가 정치를 비롯한 다른 영역과 어떻게 연관되었는지에 대한 함의를 ‘폭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파헤친다. 중동에서 유래한 ‘유일신 종교’들은 물론 불교를 비롯한 인도의 종교들, 중국의 제자백가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돋보기를 들이댄다. 많은 경우 종교는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강화했지만 폭력의 실제 동기는 다른 곳에, 주로 ‘수익’에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농경이 시작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엘리트 집단은 농산물을 강탈했고 성직자들은 이런 폭력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런 폭력의 구조 덕에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킬 특권계급도 생겨났다. 문명 초기단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정치는 섞여 있었다. ‘종교’라는 별도의 단어조차 근대 이전엔 없었다. 권력이 전쟁을 비롯한 폭력을 강제했고 성직자들은 이를 뒤늦게 축성(祝聖)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오늘날 ‘가장 폭력적인 종교’로 치부되는 중동 일신교는 그 태생에서 오히려 폭력적 요소가 적었다. 초기 이스라엘 민족은 폭력적 농업국가의 강제에서 벗어나 유목생활을 영위하려는 집단이었고 구약성서에도 이런 성격이 반영됐다. 로마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차지한 게르만족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 구약성서 속에서 이민족을 몰아낸 유대 왕들을 숭배했다. 유럽에서 전쟁은 수익사업이었다.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제1차 십자군은 사흘 동안 약 3만 명을 살육했다. 종교의 이름을 띤 참화였지만 실제 성격은 물질적 이익을 위한 정복 전쟁이었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종교에 대한 열정은 민족국가에 대한 열정으로 대치됐지만 폭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종교가 폭력과 결부되어 왔지만 종교 고유의 폭력적 본질이란 없다’고 결론짓는다. 21세기에 종교의 이름을 내세운 폭력도 ‘갑자기 생긴 종양’처럼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현대라는 실상의 일부분이며, 공허와 씨름하는 현대인을 위해 종교가 그 공격성을 흡수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종교의 원초적 폭력성’이라는 혐의를 벗겨준 뒤 저자가 종교에 주문하는 메시지는 이렇다. “우리는 종교가 가장 훌륭했을 때 한 일을 해야 한다. 세계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구축하고 존중을 계발하며 세계의 고난에 책임져야 한다.” 원제는 ‘Fields of Blood’(피의 들판·2014년).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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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폐 음악청년 다룬 다큐 ‘녹턴’ 주인공 무대 선다

    지난해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정관조 감독의 ‘녹턴’ 주인공 은성호(37·사진)가 축하 무대에 선다. 18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JCC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콘서트 ‘지나온 길에 핀 꽃을 잊지 않으리’. ‘녹턴’은 자폐증을 가진 음악 청년 성호와 그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엄마 등 가족의 아픔과 희망을 담아낸 작품. 은성호는 실내악 연주단체 드림위드 앙상블 수석단원으로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다. 정 감독은 “녹턴의 주인공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었지만 축하 파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여의치 않아 성호 씨와 그의 가족에게 바치는 음악회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은성호의 피아노와 한지연 서울시립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수석의 바이올린으로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8번, 엘가 ‘사랑의 인사’ 등 다섯 곡을 들려준다. 2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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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나무의 울림 바순만의 매력이죠”

    “바순을 불거나 듣고 있으면 나무의 따뜻한 질감이 귀로 전해지죠. 들을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악기입니다. 다른 악기에 없는 익살스러운 점도 매력이고요.” 2018년 이탈리아 페사로에서 열린 로시니 바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수상한 바수니스트 이은호(31)가 25일 오후 2시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바순 리사이틀 ‘바로크 투 모던’을 연다. 이은호는 2013년 동아음악콩쿠르 바순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았고 독일 뮌헨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음악사의 시대별로 당대 바순 연주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곡을 골랐어요. 모차르트 시대 프랑스 작곡가이자 바수니스트였던 프랑수아 드비엔의 소나타, 하인츠 홀리거의 ‘바순 솔로를 위한 세 작품’ 중 세 번째 곡이 특히 그렇죠.” 홀리거는 20세기를 대표한 오보이스트로 더 알려진 작곡가. 바순과 오보에는 ‘겹리드악기’로 소리 내는 원리가 비슷하다. 리드는 입으로 무는 떨림판이다. “홀리거의 곡은 현대 바순이 연주할 수 있는 기법을 총동원해 악보를 제대로 읽어내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며 이은호는 웃음을 지었다. 평소 즐겨 듣는 바흐의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도 프로그램에 넣었다. 첼로와 닮은 비올라 다 감바는 바로크 시대 널리 연주된 현악기다. “이 곡이 가진 바로크 시대의 독특한 정취를 바순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너무 좋아하는 곡이지만 본디 관악곡이 아니어서 적절한 분절법(프레이징)으로 숨 쉴 곳을 만드는 데 고심을 했죠.” 그는 교향악단 바순 단원이던 외삼촌을 통해 바순을 알게 됐다. “제가 어릴 때였죠.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내시는데, 사냥에 쓰는 총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삼촌이 재미있게 가르쳐 주셔서 열심히 하다 보니 제 성격에도 딱 맞는 악기 같았죠.” 바순은 리드를 연주자가 스스로 깎아 만든다. “리드가 주는 스트레스나 압박감을 설명하자면 끝이 없죠. 열 개를 만들면 열 가지 소리가 나오고, 온습도에 따라서도 변덕이 심해요. ‘리드의 변덕’을 이기는 게 좋은 바수니스트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리사이틀 이후 색다른 계획도 있다. 선화예고 동문 다섯 명을 규합해 ‘트로스트 바순 앙상블’을 꾸렸다. 8월 28일 서울 서초구 더그란데홀에서 창립 연주회를 갖는다. “바순은 첼로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나무 질감이나 남자의 편한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점이 그렇죠. 첼로가 솔로 악기로 각광받고 첼로 앙상블이 인기라면, 바순도 못할 이유가 없죠.” 25일 리사이틀은 피아니스트 김재원이 함께한다. 전석 3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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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음악제 만든 한국 피아니스트

    20대 한국 피아니스트가 독일에서 음악축제를 창설한다. 8월 6∼15일 열리는 첼레 여름 음악축제(Celler Sommerkonzerte)의 예술감독 김정은(27)이 그 주인공. 1315년 건립된 첼레성(城) 등 네 곳에서 여덟 개의 콘서트를 펼치고 피아니스트 베른트 괴츠케의 마스터클래스도 연다. 김정은은 2009년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콩쿠르에서 금호영재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교향악축제에서 역대 최연소인 15세 나이로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 2011년 독일 하노버음대에 진학한 뒤 ‘세브린 김’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직전 첼레 부근에서 콘서트를 열었죠. 연주를 보신 분들이 ‘지역에서 좋은 음악을 자주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용기를 얻어 지역 관공서와 후원 기관들의 문을 두드리며 추진해 나갔습니다.” 첫 번째인 올해 축제 주제는 ‘늦었지만 베토벤(Beethoven-nachtr¨aglich)’. 지난해 탄생 250주년을 맞았지만 코로나19로 충분히 조명 받지 못한 베토벤의 음악을 재조명한다. 여덟 개 콘서트 중 다섯 차례에 김정은이 직접 피아니스트로 출연한다. 코로나19가 도움이 된 점도 있었다. 연주 기회를 잃었던 여러 연주가가 출연 제안에 선뜻 응했다. 14일 연극배우 겸 낭송가 요하나 크룸스트로와 함께 펼치는 콘서트 두 개는 특히 흥미롭다. 오후 4시에는 젊은이들이 보내온 ‘코로나19 속의 일상’ 메시지를 크룸스트로가 낭송하고 김정은이 연주를 펼친다. 이어 오후 7시에는 슈베르트,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하고 크룸스트로는 두 작곡가와 문호 횔덜린의 삶에 대해 독일어권 문인과 연주가들이 쓴 글을 낭송한다. 두 사람이 2년 전부터 독일 곳곳에서 낭송과 음악을 결합해온 시도의 일환이다. 마스터클래스를 여는 괴츠케는 하노버음대에서 김정은을 가르쳐온 은사. 축제 마지막 날인 15일에 마스터클래스에서 가르친 학생들과 두 차례 콘서트를 연다. 같은 학교에서 김정은에게 실내악을 지도해온 피아니스트 마르쿠스 베커도 13일 하이든 콘서트로 축제에 참여한다. 김정은은 “지역 내 여러 기관과 기업에 신청해서 축제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받았다. 정해진 양식을 채워가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고 말했다. 특별히 감사를 표하고 싶은 곳도 있다. “유럽 인증 마스크가 필요해서 우리나라의 마스크 제작업체 에스제이 이노베이션에 축제 로고를 인쇄한 마스크를 제작할 수 있는지 여쭤봤죠. 얘기를 듣더니 1200장을 선뜻 무상으로 지원해주셨어요.” 그는 “큰 규모를 욕심내기보다 지역사회의 반응을 보며 매년 내실 있고 특색 있는 축제로 키워 가겠다”고 다짐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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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때로 진실보다 믿음이 끌리는 이유

    날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미모의 외국 여성이 친구 신청을 해온다. 친구가 되면 달콤한 사랑의 말을 들려주고, 사연이 오가다 보면 입금 요구를 할 것이다. 뻔한데도 이름만 바꾸며 신청이 들어오는 것은 걸려드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로맨스 사기’의 원조 격인 미국의 도널드 로리 사건을 소개한다. 1980년대 후반 로리는 여성 수십 명의 이름으로 연애편지를 보냈고, 혹한 남자들이 보낸 선물을 중고 상점에 파는 식으로 수익을 챙겼다. 그가 사기 혐의로 기소되자 수많은 피해자들이 분노하기는커녕 법원에 모여 그를 옹호했다.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사기였지만 어떤 피해자들에게는 가치 있는 서비스였기 때문 아닐까?” 저자의 시각은 ‘인간이 자신을 기만하는 것은 그 대가를 치를 만한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로 요약된다. 콩고 내전 중 한 부족의 원로가 자신의 꿈을 토대로 ‘총탄을 막아낸다’는 주술과 부적을 만들어냈다. 주술을 행하고 부적을 나눠주자 실제로 부족 사람들은 적을 잘 물리치게 되었다. 착각이 용기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총탄을 맞고 죽은 사람이 나와도 오히려 ‘주술과 부적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은 실수 때문’으로 치부됐다. 이런 자기기만의 사례는 수없이 찾을 수 있다. 가짜 ‘두뇌력 촉진 음료수’도 비싼 값을 주고 산 사람이 문제풀이를 더 잘한다. 심각한 병에 걸린 환자는 그 사실을 모를 때 생존율이 더 높다. 저자는 이런 사례들을 토대로 “인간의 생존은 ‘무엇이 진실인지’보다 ‘무엇이 효과적인지’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생각을 ‘로고스(논리)’와 ‘미토스(이야기)’로 나누었다. 더 좋은 세상에 대한 비전을 얻기 위해서는 로고스 외에 미토스가 필요했다. 우리가 자부심을 갖는 이성과 논리도 정신이라는 유적의 꼭대기에 새로 쌓인 작은 부분이며, 합리성이 전부인 양 행동하다 보면 이 오래된 유적에 반란이 일어난다는 진단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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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튜브]말러와 할리우드 영화음악 다리 놓은 코른골트

    지난달 영국 카디프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리톤 김기훈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 있었다. 이 콩쿠르 1차 결선에서 그가 오스트리아 작곡가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에 나오는 아리아 ‘나의 그리움, 나의 망상이여’를 부르기 시작한 지 얼마 뒤 한 심사위원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은 BBC TV를 통해 방영됐다. 코른골트가 널리 알려진 작곡가는 아니다.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30여 년 전, 영국의 한 음악잡지를 통해서였다. 기사에는 미국 할리우드 볼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었던 존 모체리의 말이 실려 있었다. 요지는 이렇다. “말러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음악은 너무 난해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세계는 말러에게 열광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말러에게 영향받은 후배 음악가 중 여럿이 유대인이었고, 나치가 유대인을 탄압하자 이들은 미국으로 망명해 할리우드의 영화음악가가 되었다. 코른골트가 대표한 이들의 스타일은 지금도 영화음악 주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인들은 말러의 음악 스타일에 익숙해진 뒤 그의 교향곡을 듣게 됐다. 이들에게 말러는 이상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는 열한 살 때 발레곡을 쓰는 등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고 오스트리아에도 불안한 기운이 뻗치자 193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할리우드에 정착한 코른골트는 1935년 영화 ‘한여름 밤의 꿈’을 시작으로 ‘로빈 후드의 모험’ 등 16개나 되는 영화의 음악을 맡아 크게 활약했다. 청년 코른골트를 높이 평가하고 도움을 준 사람 중에는 흥미롭게도 교향곡 거장 구스타프 말러와 오페라 거장 자코모 푸치니가 있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말러는 10년 동안 빈 궁정오페라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세계 최고의 흥행물이었던 푸치니의 오페라를 한 번도 무대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이가 안 좋았던 말러와 푸치니가 코른골트를 좋아하고 도와주는 데는 생각이 같았다. 말러는 신동 코른골트에게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라는 선생을 소개해 주었다. 부인 알마가 결혼 전 음악 수업을 받았던 인물이다. 푸치니는 자기 작품의 악보를 비롯해 코른골트의 발전에 필요한 자료들을 보냈고 코른골트가 이탈리아에서 콘서트를 열면 홍보에 앞장섰다. 푸치니는 “코른골트는 자기에게 필요한 재능의 두 배를 가졌다”고 말했다. 새삼스러운 일은 코른골트의 음악에 그의 후원자들, 즉 말러와 푸치니의 음악이 짙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영화음악 평론가인 루디 벨머는 이렇게 말한다. “코른골트의 음악 스타일은 말러의 주제 발전 기법과 푸치니의 달콤하면서 도취적인 멜로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거장적인 오케스트라 기법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클래식 팬들이 코른골트를 통해 말러를 재발견한 것처럼, 세계 오페라 팬들이 푸치니에게 열광하는 것도, 슈트라우스의 교향시가 콘서트에서 인기를 끄는 것도 이 천재들의 음악어법이 영화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친숙해진 것이 주된 이유일 수 있다.” 이달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푸치니가 미국을 배경으로 쓴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가 공연됐다. 이 작품의 환상적인 관현악에서 오늘날의 영화음악을 연상한 관객이 적지 않았다. 푸치니가 미국 서부 민요 스타일을 차용한 것도 이유이지만, 훗날의 영화음악이 푸치니의 관현악에서 영향을 받은 결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한 가지 우리가 또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코른골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슈트라우스와 말러, 푸치니, 이 세 사람은 모두 독일 음악극의 제왕으로 당대 음악의 문법을 완전히 바꿔버린 리하르트 바그너를 숭배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이다. 말러와 푸치니의 경우 작곡 수업 시간에 이 점을 너무 드러내 선생들의 꾸지람을 듣기까지 했다. 사실 19세기 후반 등장한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대부분 바그너의 정신적 아들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할리우드의 영화음악, 특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은 바그너 및 그의 영향을 받은 거장들의 커다란 우산 아래 있다고 보아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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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난새가 꾸린 ‘청년 음악가의 둥지’

    3일 오후 부산 수영구 구락로(옛 망미동)의 복합 문화공간 F1963 내 금난새뮤직센터. 303m²(약 90평) 넓이의 공연장 위쪽 유리벽 너머로 한여름의 짙은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할보르센이 편곡한 헨델 ‘파사칼리아’의 주제를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권예은과 첼리스트 최아현이 연주하자 듣고 있던 지휘자 금난새(74)가 다가갔다. “이 주제 위에서 여러 변주를 펼치게 되는데, 조금 슬픈 부분이 있을까요?” 두 연주자가 우울한 악구를 연주하자 금난새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두 악기가 대화하는군요. ‘어쩌다 돌아가셨지?’ ‘그러게 말이야’ 하는 것 같죠?”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연주자들의 입가에 ‘그렇죠?’라는 듯한 미소가 번졌다. 산책하던 시민들이 유리벽 너머로 연주회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F1963은 고려제강 옛 수영공장 자리에 2016년 탄생한 복합 문화공간이다. 서점과 국제화랑 분관, 현대모터스튜디오, 예술전문도서관과 카페, 야외 산책 공간 등이 있는 이곳에 올해 4월 1일 금난새뮤직센터가 자리 잡았다. 뮤직홀 외 다섯 개의 연습실과 넉넉한 크기의 로비를 갖추고 있다. 동영상 제작을 위한 전문장비도 설치 중이다. “금난새 선생이 부산에서 성장해 고향의 문화 발전에 큰 의욕을 가진 걸 알고 있었어요. 기업과 예술가 서로가 확인한 소중한 뜻을 담아내고자 이 공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문화재단 1963의 위미라 이사장은 “운영 방향은 온전히 금 선생의 몫”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매달 주말 4회 초청음악회를 열어 독주에서 큰 규모의 실내악까지 다양한 연주 효과를 시험하고 있다. F1963 내 20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모색 중이다. 금난새뮤직센터의 큰 장점은 명료하면서도 균형 잡힌 음향. 금난새 감독은 마이크 없이 나지막하게 얘기를 이어갔지만 작은 한마디도 구석구석 전달됐다. 바이올린을 연주한 권예은은 “소리가 잘 울리고 연주자 자신의 소리가 또렷이 들려 매우 편하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 아람누리홀과 경남 통영 국제음악당 등 좋은 음향으로 유명한 공연장들의 설계에 참여해 온 김남돈 삼선엔지니어링 대표가 음향 컨설턴트를 맡았다. 김 대표는 “공연장 벽면에 유리를 사용하는 것은 음향 면에서 최악의 선택으로 꼽히지만, 예술과 시민이 소통하는 공간을 만드는 뜻에서 ‘들여다보이는 음악회장’이 됐다”고 말했다. 유리 벽체와 직각을 이루는 짧은 유리면들로 음향의 문제를 해결했다. 아랫부분 벽체엔 각도를 바꾸는 배너를 배치해 잔향을 1.3∼1.7초로 조절할 수 있다. 금난새 감독은 “내 이름으로 된 공간이지만 청년 연주가들의 성장을 위한 둥지로 만들어나가고 싶다. 연습부터 연주까지 이뤄 나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부산 음악계의 발전을 이루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발전을 이룬 땅을 문화 발전을 위해 내놓은 뜻이 귀하다. 우리나라 문화계에 좋은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부산=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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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 호른의 ‘숨어있는’ 색깔 보여드리죠”

    “부드럽고 감싸는 듯한 호른 소리에 빠져서 호르니스트가 됐지만, 그밖에도 호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색깔은 많습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그 다양한 색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한국 금관악기계 간판 스타인 호르니스트 김홍박(39).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으로 활동 중인 그가 3년 만에 리사이틀을 갖는다.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컬러스(Colors·색채들)’란 제목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2009년, 2016년, 2018년에 이어 갖는 네 번째 무대다. 그가 단원으로 있는 실내악 앙상블 ‘클럽M’의 리더 김재원이 피아노를 맡는다. “예전 세 번의 리사이틀에서는 선율미가 풍부한 낭만주의 작품 위주로 프로그램을 꾸렸죠. ‘이 악기로 훨씬 다양한 소리를 들려드릴 수 있는데’라는 아쉬움이 늘 남았습니다.” 이번에 연주할 곡들은 라디오 클래식 FM의 출퇴근 시간대 프로그램들에서 쉽게 들을 듯한 작품들이 아니다. 오이겐 보차의 ‘정상에서’에선 약음기를 끼거나 손으로 나팔(벨)을 막는 ‘게슈토프트’ 기법 등을 통해 호른의 다채로운 음색을 선보인다. 키르히너의 ‘세 개의 시’에선 남성적인 소리를, 힌데미트의 호른 소나타에선 다양한 리듬의 묘미를 펼쳐내고 여성 작곡가 비녜리의 소나타에선 호른의 넓은 음역을 들려준다고 그는 설명했다. 여기에 드레제케의 ‘로만체’처럼 호른의 따스한 음색을 간직한 낭만주의 곡도 넣었다. 2000년 18세의 나이로 동아음악콩쿠르 호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킨 그는 2015년 오슬로 필하모닉 호른 수석으로 선임됐다. 이 악단은 2018년 당시 22세에 불과했던 핀란드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를 차기 수석지휘자로 임명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난해 취임한 메켈레는 어떤 지휘자인지 물어보았다. “지휘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죠. 깊이와 여유가 있고, 세밀하고 부드럽게 지시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뜻하는 방향을 확실히 표시하죠. 단원 개개인의 내면에 있는 음악을 잘 끄집어내요. 현명하게 악단을 잘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나이를 잊게 만드는 성숙한 음악가입니다.” 김홍박은 어릴 때 성악가를 꿈꿨고 조기유학을 희망했지만 “자라면서 목소리는 자주 변한다”는 부모님의 염려로 대신 호른을 시작했다.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게임하듯이 풀어가다 보니 호른에 빠지게 됐죠. 재미있었어요.” 호른은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로 소개됐다. 유수의 교향악단 연주에서도 속칭 ‘삑사리’가 종종 들리곤 한다. “연습할 때는 실수가 없다가도 콘서트에서 긴장하면 실수가 나오는 게 호른입니다. 긴장을 풀고 음색과 표현에 집중하면 완성도도 높고 실수도 없는 연주가 나오죠. 다른 악기 단원들도 호른이 실수하면 눈치를 안 줘요. 그러는 게 더 결과가 좋거든요.”(웃음) 3만∼4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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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문고 금상에 김민서씨-가야금 한승원씨

    “2년 전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수상한 뒤 다시 영광을 안았습니다. 더 노력하라는 뜻으로 알고 정진하겠습니다.” 1일 막을 내린 제37회 동아국악콩쿠르에서 거문고 부문 일반부 금상을 받은 김민서 씨(20·한국예술종합학교 1학년)는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그는 고교 재학 중이던 2019년 제35회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이 부문 학생부 은상을 수상했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서울교대, 정효문화재단과 동아꿈나무재단 후원, 롯데그룹 협찬으로 지난달 7일부터 정효아트센터와 서울교대 콘서트홀에서 열린 올해 동아국악콩쿠르에서는 본선 진출자 75명 가운데 일반부 8명, 학생부 4명의 금상 수상자를 포함해 40명의 입상자가 나왔다. 작곡 부문 수석 입상자에게 시상되는 전인평 국악작곡상은 금상 수상자인 박소정 씨(28·전남대 대학원)가 받았다. 민속국악사(대표 조대석)가 악기를 부상으로 주는 민속국악사상은 거문고 일반부 금상 수상자인 김민서 씨와 가야금 일반부 금상 수상자인 한승원 씨(21·한양대 3학년), 가야금 학생부 금상 수상자인 최훈 군(17·전통예고 3학년)에게 돌아갔다. 심사 결과와 심사평은 이달 9일 이후 확인할 수 있다. 본선 실황 영상은 이달 중 동아국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classical)에서 유료로 서비스한다.부문별 수상자 ◇작곡 ▽일반부 △금상 박소정 △은상 한지나(31·한예종 전문사과정) △동상 하수민(22·중앙대 3학년) ◇판소리 ▽일반부 △금상 양혜원(25·한예종 졸업) △은상 김보림(26·한예종 졸업) ▽학생부 △금상 박주연(18·전통문화고 3학년) △은상 곽민지(18·전통예고 3학년) △동상 최예나(17·울산혜인학교 2학년) ◇가야금 ▽일반부 △금상 한승원 △은상 임정완(23·한예종 졸업) △동상 이보경(21·한예종 3학년) ▽학생부 △금상 최훈 △은상 이연화(17·충남예고 3학년) △동상 조윤미(17·가운고 3학년) ◇거문고 ▽일반부 △금상 김민서 △은상 이승민(20·한예종 3학년) △동상 이루리(20·서울대 3학년) ▽학생부 △은상 소승연(18·전통예고 3학년) ◇피리 ▽일반부 △금상 김시헌(23·한예종 3학년) △은상 박혜인(18·한양대 1학년) △동상 박새한(18·한예종 1학년) 박성빈(20·서울대 2학년) ▽학생부 △은상 김보선(16·전통예고 2학년) △동상 박수현(17·계원예고 3학년) ◇대금 ▽일반부 △금상 유수빈(21·한예종 3학년) △은상 박예나(22·한양대 4학년) △동상 정민후(18·단국대 1학년) ▽학생부 △금상 우채운(18·전통예고 3학년) △은상 김용찬(16·전통예고 2학년) △동상 범진한(16·전통예고 2학년) ◇해금 ▽일반부 △금상 고현서(21·한예종 3학년) △은상 김다현(23·서울대 졸업) 최정윤(23·이화여대 졸업) ▽학생부 △금상 한금채(17·김천예고 3학년) △은상 이주현(17·전통예고 3학년) △동상 손빈(16·전통예고 2학년) 김규나(17·전통예고 3학년) ◇가야금병창·민요 ▽일반부 △금상 김초아(21·한양대 3학년) △은상 김시화(23·한예종 졸업) 김사랑(20·수원대 3학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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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교대 음악영재원, 1기 수료음악회 3일 개최

    서울교육대 음악영재원 제1기 수료음악회가 7월 3일 오후 4시 서울교대 종합문화관에서 열린다. 올해 개원한 서울교대 음악영재원은 서울 시내 초등학교 3∼6학년에 재학 중인 음악영재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음악 교육과 융합 교육을 실시해 미래 음악인재를 발굴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첫 학기에 피아노 22명, 바이올린 15명, 첼로 2명, 호른 1명, 가야금 1명, 판소리 1명 등 42명이 수료했다. 서울교대와 건영, 더위크앤리조트가 후원한다. 수료음악회에는 피아니스트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 서울대 교수 등이 참석해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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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은 자신과의 싸움… 젊은세대에 다가가는 방법 고민”

    2019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가 한국인 지휘자 김은선(40)을 차기 음악감독으로 발표했다. 이는 1989년 정명훈의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 취임 이후 한국 지휘자 최고의 성과로 받아들여졌다. 올해 8월 1일 SFO에 공식 취임하는 그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SFO 차기 감독으로 임명된 뒤 1년 반이 흘렀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쓴 것과 비슷한 시간이다. 제한된 여건 속에서 SFO와 어떻게 일해 왔나. “어려움이 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지난해 객원 지휘 일정이 많이 취소돼 거의 모든 회의에 참석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예전 SFO에서 지휘했을 때의 인상이 궁금하다. “2019년 5월에 드보르자크 ‘루살카’를 지휘했는데, 그간 수십 개의 오페라극장과 악단을 지휘했지만 SFO에서 지휘봉을 들었을 때 ‘케미’가 딱 맞는 걸 느꼈다.” ―지난해부터 예술계가 어려운 시기였는데 어떻게 지냈는지. “미국으로 활동 거점을 거의 옮긴 시점에서 코로나19가 터졌다. 연주가 너무 많이 취소됐다. 모든 준비를 다 하고 끝까지 무대에 서려고 노력하다가 거의 마지막 순간에 취소되기 때문에 악보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지난해 프랑스 독립기념일 콘서트를 에펠탑 앞 샹드마르스 광장에서 지휘해 화제가 됐다. “3년 전 예정된 콘서트였지만 3월에 파리가 이동 금지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다. 결국 연주자가 많이 바뀌고 무관객으로 진행됐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도 이동 금지 이후 이 연주가 처음이라서 첫날 연습 때부터 단원들이 모두 기뻐했다.” ―2021∼2022 시즌에 SFO에서 어떤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게 되는지. “8월 21일 개막하는 푸치니 ‘토스카’와 10월 개막하는 베토벤 ‘피델리오’를 직접 지휘한다. 코로나19로 작품 수는 많이 줄었지만 기대와 설렘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 ―고국 무대에서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유럽처럼 가까우면 잠깐씩 다녀올 수 있을 텐데.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웃음)” ―여성 지휘자가 늘어났지만 지휘는 ‘남성의 일’로 인식되어 온 측면이 강하다. 동양인으로서 서양인들 사이에서 일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을 텐데…. “예술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이다. 나는 여자로 자라왔기 때문에 남자가 어떻게 하는지는 알 수 없고(웃음) 어쨌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지휘자로서 성장하면서 주변에서 받은 격려와 ‘선한 영향력’이 있다면…. “내가 중학생일 때 아버지(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가 써주신 글이 있다. ‘예술의 즐거움과 높은 이상을 가지고 세계를 바르게 아는 기쁨으로 배움의 길을 가라. 정직한 노력의 결실로 감사하면서 살아라….’ 그 글을 서예가인 외할아버지께서 써 주셔서 방에 걸어 두고 좌우명으로 삼게 됐다. 연세대 작곡과에 진학한 뒤 지휘를 가르친 최승한 교수님이 ‘너는 좋은 지휘자가 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해 주신 덕택에 이렇게 지휘자가 되었다. 늘 스마트폰에 빠져 있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이 시대 젊은 관객들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 게 좋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는 “올가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겨울에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 내년 영국 필하모니아,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교향악단…” 등의 일정을 얘기하며 “모두 데뷔 연주”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계 정상급 오페라 극장과 오케스트라들이다. “커리어가 폭발하듯 치솟는 시점 아니냐”고 하자 전화기 너머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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