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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최선을 다하는데도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품고 산다. 일 돈 사랑 관계 등 모든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결핍감이 스스로를 자극한다. 이런 마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세상에서 주변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끊임없이 커진다. ‘부족하다는 느낌’은 소모적인 사회를 만든다. 뒤처질까 봐 겁먹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서로를 이기기 위해 싸운다.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 미국 휴스턴대 연구교수이자 심리 전문가인 저자는 이런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사람들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취약성(vulnerability)은 ‘상처 입다’라는 뜻의 라틴어 ‘vulnerate’에서 유래했다. 취약성은 불확실성 때문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움이 생기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랑에 푹 빠진 마음은 취약하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나를 똑같이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예고 없이 나를 떠나버릴 수도 있다. 작품이나 글,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는 일도 마찬가지다.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취약해진다. 우리는 취약성을 부정하고 숨기는 것에 훨씬 익숙하다.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취약성은 곧 나약함으로 여겨진다. 나의 연약해진 마음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은 두렵다. 때문에 “나는 취약하지 않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고 정말 그런 척 ‘가면’을 쓴다. 마음의 갑옷을 입는 셈이다. 저자는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용기 있게 진짜 인생을 사는 밑거름이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상대방의 취약성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여줄 수 있다. 저자는 이것이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이라고 명명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저자는 자신의 취약성이 노출될 때 느끼는 수치심을 다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자존감에 깊은 흉터가 남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성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가장 보편적 원인은 외모와 모성애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훌륭하게 길러내면서도 날씬하고 젊은 외모를 유지해야 하고, 직장에서는 멋지게 일을 해내야 한다. 여성들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 남성들이 수치심을 느낄 때는 ‘약한 사람으로 보일 때’다. 남성들이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상사가, 가정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오는 든든한 아빠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선 안 되는 ‘상자’ 속에 갇혀 있다고 진단한다. 수치심을 다루는 방법은 용기를 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가 취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취약성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 사람이 보내주는 공감은 “나는 혼자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안도감을 줄 것이다. 저자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길 권한다. “그래 나는 불완전하고 취약한 존재야. 그래도 내가 용감한 사람이라는 진실은 바뀌지 않아. 나는 사랑과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야.”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현대인은 최선을 다하는데도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품고 산다. 일 돈 사랑 관계 등 모든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결핍감이 스스로를 자극한다. 이런 마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세상에서 주변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끊임없이 커진다.‘부족하다는 느낌’은 소모적인 사회를 만든다. 뒤처질까봐 겁먹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서로를 이기기 위해 싸운다.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미국 휴스턴대 연구교수이자 심리 전문가인 저자는 신간 ‘마음가면’(웅진지식하우스)에서 이런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사람들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취약성(vulnerability)은 ‘상처 입다’라는 뜻의 라틴어 ‘vulnerate’에서 유래했다. 취약성은 불확실성 때문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움이 생기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랑에 푹 빠진 마음은 취약하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나를 똑같이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예고 없이 나를 떠나버릴 수도 있다. 작품이나 글,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는 일도 마찬가지다.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취약해진다.우리는 취약성을 부정하고 숨기는 것에 훨씬 익숙하다.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취약성은 곧 나약함으로 여겨진다. 나의 연약해진 마음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은 두렵다. 때문에 “나는 취약하지 않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고 정말 그런 척 ‘가면’을 쓴다. 마음의 갑옷을 입는 셈이다.저자는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용기 있게 진짜 인생을 사는 밑거름이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상대방의 취약성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여줄 수 있다. 저자는 이것이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이라고 명명한다.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저자는 자신의 취약성이 노출될 때 느끼는 수치심을 다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자존감에 깊은 흉터가 남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여성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가장 보편적 원인은 외모와 모성애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훌륭하게 길러내면서도 날씬하고 젊은 외모를 유지해야 하고, 직장에서는 멋지게 일을 해내야 한다. 여성들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남성들이 수치심을 느낄 때는 ‘약한 사람으로 보일 때’다. 남성들이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상사가, 가정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오는 든든한 아빠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선 안 되는 ‘상자’ 속에 갇혀 있다고 진단한다.수치심을 다루는 방법은 용기를 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가 취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취약성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 사람이 보내주는 공감은 “나는 혼자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안도감을 줄 것이다.저자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길 권한다. “그래 나는 불안전하고 취약한 존재야. 그래도 내가 용감한 사람이라는 진실을 바뀌지 않아. 나는 사랑과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야.”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무한대로 작아지는 환상적인 양자 영역을 펼친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최강 빌런(악당)이자 우주를 다스리는 정복자 캉도 드디어 처음으로 등장한다. 앤트맨 패밀리는 캉에 맞서 가족과 인류를 구하기 위해 또 한 번 고군분투한다. 앤트맨이 최근 흥행 부진 수렁에 빠진 마블도 구할 수 있을까. 마블스튜디오가 올해 내놓은 첫 작품, 앤트맨 시리즈 3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15일 베일을 벗었다. 2018년 국내 관객 545만 명을 모은 ‘앤트맨과 와스프’ 이후 5년 만의 귀환이다. 영화는 스콧 랭(폴 러드)과 그의 딸 캐시 랭(캐서린 뉴턴), 호프 반 다인(이밴절린 릴리)과 양자 영역에서 살아 돌아온 호프의 어머니 재닛 반 다인(미셸 파이퍼), 아버지 행크 핌(마이클 더글러스)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캐시는 행크와 함께 양자 영역에 신호를 보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한다. 이를 스콧에게 선보이는 순간, 가족 모두가 양자 영역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한다. 마블 시리즈를 새롭게 끌고 갈 빌런 ‘정복자 캉’(조너선 메이저스)의 등장이 관전 포인트다. 캉은 “나는 필연적인 존재다(I am inevitable)”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손가락을 튕겼던 타노스의 뒤를 잇는 MCU의 ‘최종 빌런’이다. 그는 멀티버스의 모든 곳에 존재하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앤트맨3’에 등장한 캉은 시공간이 멈춰 있는 양자 영역에 유배됐다. 그를 가둔 자들은 다른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 또 다른 ‘캉’들이다. 그는 자신을 가둔 멀티버스 세계의 또 다른 자신들에게 복수하고, 인류를 정복하기 위해 양자 영역 탈출에 혈안이 돼 있다. 그는 캐시의 목숨을 쥐고 캐시의 아버지인 스콧에게 멀티버스 여행 우주선의 동력장치를 찾아오라고 요구한다. 앤트맨 패밀리는 캉을 양자 영역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운다.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딸 캐시를 향한 아버지 스콧의 사랑, 앤트맨 패밀리의 가족애가 주요 주제다. 개미들의 활약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앤트맨3’가 마블스튜디오의 부진 행진을 끊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앤트맨3’는 MCU 다섯 번째 페이즈(큰 스토리라인을 단계별로 구분한 것)의 첫 개봉작인 만큼 전 세계 마블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네 번째 페이즈 작품들이 “마블 시리즈 역사상 가장 지루하다”는 혹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앤트맨3’는 전작보다 위트가 반감됐고, 최강 빌런이라는 캉은 타노스만큼 압도적이지 못하다. 해외에서는 “역대 최악의 마블 영화”라는 평과 “캉 역을 맡은 조너선 메이저스가 돋보인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다.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구현한 미지의 공간, 양자 영역은 많은 볼거리를 선사한다. 향후 서사에 대한 정보와 위트를 담은 쿠키 영상 2개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앉아 있길 권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제 얼굴, 제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걸려 있는 영화 개봉은 처음이라 떨리고 두려웠어요.” 13년 무명 생활 끝에 영화 ‘범죄도시’(2017년)의 강렬한 조선족 위성락 역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진선규(46)가 데뷔 19년 만에 생애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 판정 시비에 휘말리며 은퇴한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가 오합지졸 복싱부 학생들을 가르치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카운트’다.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라이트미들급 금메달리스트 박시헌 선수(58)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22일 개봉한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5일 만난 진선규는 “시사회 날 문자로 박시헌 선수에게 정말 떨린다고 했더니 ‘대한민국 최고인 진선규가 링에 오르는데 그렇게 떨고 있으면 옆에 있는 선수들이 더 떨지 않을까요. 힘내세요’라고 하셔서 울컥했다”며 “배우로서 중요한 지점에 선 만큼 무대 인사 등 작품 관련 일정에 신나게 임하겠다”고 했다. 카운트에서 시헌(진선규)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부러진 손으로 최선을 다해 싸우지만 결승에서 상대인 미국 선수에게 확연히 밀린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순간 패배를 직감했지만 심판이 들어올린 건 그의 손이었다. 올림픽 개최국인 한국의 복싱협회 입김으로 판정승을 한 것. 그는 금메달리스트가 됐지만 이로 인해 공분을 사 원치 않게 은퇴를 하게 된다. 이 일이 있은 뒤 시헌은 마음이 망가진다. 금메달을 바라보며 “은메달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눈물짓는다. 고교 체육교사가 된 시헌은 어느 날 억지로 참관하게 된 고교 복싱 대회에서 승부 조작으로 기권패를 당한 윤우(성유빈)를 만난다. 반대 상황이긴 하지만 힘 있는 자들의 체스판 말이 된 윤우에게 과거 자신의 모습이 겹쳐진다. 시헌은 윤우를, 그리고 자신을 위해 ‘진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결심한다. 시헌은 복싱부를 만들고 오합지졸 학생들을 모은다.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상처를 치유해 간다. 진선규 특유의 코믹 연기가 탄탄한 이야기에 스며들어 웃음과 감동을 모두 잡았다. 진선규는 “시헌은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매우 비슷한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가족에게서 힘을 얻고 좋아하는 일을 행복하게 하며 후배들과 같이 꿈을 이뤄 나가는 모습,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시헌이 아니라 진선규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시헌 선수는 평생 아픈 꼬리표였던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화되는 데 걱정이 컸다고 한다. 진선규는 “박시헌 선수 본인은 차라리 은메달이었으면 정말 사랑하는 복싱을 계속 하면서 행복하게 꿈을 꾸며 살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이 큰 울림을 줬다”고 말했다. 박 선수는 현재 제주 서귀포시청 복싱 감독을 맡고 있다. 영화를 본 그는 “30년 동안 갖고 있던 아픔을 잘 풀어내고 씻겨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그 일 자체가 마음이 아파서 아직 영화를 못 봤다고 한다. 취미가 복싱인 진선규는 수준급 복싱 실력을 지녔다. 촬영 두 달 전부터는 복싱부원 역을 맡은 성유빈 장동주(환주 역) 등 후배 배우들과 일주일에 세 번 이상 4∼5시간씩 훈련했다. 힘들었던 무명 시절을 잊지 않은 그는 촬영 때마다 모든 단역 배우들과 인사하고, 촬영 전 합을 맞췄다. “누군가는 이 작품으로 ‘진선규도 주인공 할 수 있어’라고 하겠지만 누군가는 ‘안 돼, 걔는 그냥 조연이야’라고 할 수도 있어요. 힘든 상황이 닥쳐도 결국 이겨낸 박시헌 선수처럼 인간 진선규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환상적인 양자 영역이 펼쳐진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최강 빌런(악당), 우주를 다스리는 정복자 캉도 드디어 처음으로 등장한다. 앤트맨 패밀리는 캉에 맞서 가족과 인류를 구하기 위해 또 한 번 고군분투한다. 앤트맨이 최근 흥행 부진 수렁에 빠진 마블도 구할 있을까? 마블 스튜디오가 올해 내놓은 첫 작품, 앤트맨 시리즈 3편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15일 베일을 벗었다. ‘앤트맨과 와스프’(2018년) 이후 5년만의 귀환이다. 영화는 스캇 랭(폴 러드)과 그의 딸 캐시 랭(캐서린 뉴튼), 호프 반 다인(에반젤린 릴리)과 양자 영역에서 살아 돌아온 호프의 어머니 재닛 반 다인(미셸 파이퍼), 아버지인 행크 핌(마이클 더글라스)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캐시는 행크와 함께 양자 영역에 신호를 보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한다. 이를 스캇에게 선보이는 순간, 이들이 양자 영역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들은 양자 영역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마블 시리즈를 새롭게 끌고 갈 빌런(악당)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저스)의 등장이 관전 포인트다. 캉은 “나는 필연적인 존재다(I am inevitable)”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손가락을 튕겼던 타노스의 뒤를 잇는 MCU의 최종 빌런. 그는 멀티버스의 모든 곳에 존재하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다.‘앤트맨3’에 등장한 캉은 다른 멀티버스 세계의 자신들에 의해 시공간이 멈춰있는 양자 영역에 유배됐다. 그는 자신을 가둔 멀티버스 세계의 또 다른 자신들에게 복수하고, 인류를 정복하기 위해 양자 영역 탈출에 혈안이 돼 있다. 그는 딸 캐시의 목숨을 쥐고 스캇에게 멀티버스 여행 우주선의 동력 장치를 찾아오라고 요구한다. 앤트맨 패밀리는 캉을 양자 영역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운다.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딸 캐시를 향한 스캇의 사랑, 앤트맨 패밀리의 가족애가 주요 주제다. 개미들의 활약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앤트맨3’가 마블 스튜디오의 연이은 부진 행진을 끊을 수 있을지는 물음표가 남는다. ‘앤트맨3’는 MCU 다섯 번째 페이즈(큰 스토리라인을 단계 별로 구분한 것)의 첫 개봉작인 만큼 전 세계 마블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네 번째 페이즈 작품들이 “마블 시리즈 역사 상 가장 지루하다”는 혹평을 받으며 부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전작보다 위트가 반감됐고, 세계관 최강 빌런이라는 캉은 타노스 만큼 압도적이지 못하다. 해외에서는 “역대 최악의 마블 영화”라는 평과 “캉 역을 맡은 조나단 메이저스가 돋보인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다. 우주와는 또 다른 양자 영역만의 모습을 그린 컴퓨터그래픽(CG)은 훌륭하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 까지 앉아있기를 권한다. 쿠키 영상 2개가 기다리고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휴대전화를 집어 들기가 오싹해진다. 해킹 한 번으로 직장과 사는 곳에 대한 정보가 털리는 것은 물론 인간관계가 망가지고 목숨까지 위협받는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 더 섬뜩한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다. 넷플릭스에서 17일 공개한다. 회사원 나미(천우희)는 여느 때처럼 술을 진탕 마시고 버스에 휴대전화를 두고 내린다. 다음 날 휴대전화를 돌려받지만 그때부터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해킹된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회사 사장님 뒷담화가 올라와 직장을 잃게 된다. 나미는 그 배후로 가장 친한 친구를 의심하게 되면서 인간관계마저 뒤틀어진다. 나미의 일상을 손쉽게 점령한 범인은 연쇄살인마 준영(임시완). 준영은 휴대전화를 주운 뒤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 나미에게 돌려준다. 휴대전화는 준영의 눈과 귀가 된다. 휴대전화 렌즈를 통해 나미의 위치를 알아내고, 스피커 도청을 통해 나미에게 벌어지는 일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한다. 나미의 아버지가 자신을 의심하자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으로 나미 흉내를 내며 해킹 프로그램을 심도록 유도하기까지 한다. 준영이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나미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나미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형사 지만(김희원)은 7년 전 가출한 아들이 범죄에 연루됐음을 직감하고 준영의 흔적을 쫓는다. 영화는 동명의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스마트폰이라는 흔한 소재를 사용했지만 속도감 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신인인 김태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연기력이 보증된 배우들의 열연도 몰입도를 높인다. 임시완은 드라마 ‘미생’(2014년)의 장그래 티를 완전히 벗었다. 영화 ‘비상선언’(2022년)에서 ‘완벽한 빌런(악당)’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이번엔 서늘한 표정으로 상대방의 일상을 완전히 앗아간다. 광기 어린 눈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역할이 몸에 맞춘 듯 자연스럽다. 천우희는 평범한 직장인 역을 맡아 누구나 이 같은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아버지가 위험에 처하자 절규하는 그의 감정 연기는 인상적이다. 아들을 살인범으로 의심하는 형사 역을 맡은 김희원은 혼란스러운 심리를 잘 표현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휴대전화를 집어 들기가 오싹해진다. 해킹 한 번으로 내 직장과 사는 곳이 털리는 것은 물론, 인간관계가 망가지고 목숨을 위협받는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 더 섬뜩한 영화, 넷플릭스가 내놓은 현실 밀착형 스릴러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다. 회사원 ‘나미’(천우희)는 여느 때처럼 술을 진탕 마시고 버스에 휴대전화를 두고 내린다. 다음날 휴대전화를 돌려받지만 그때부터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챙겨준 회사 사장님 뒷담화가 인스타그램에 올라가 직장을 잃고, 가장 친한 친구를 의심하게 되면서 둘 사이는 벌어진다. 손쉽게 나미의 일상을 점령한 범인은 연쇄살인마 ‘준영’(임시완). 준영은 휴대전화를 주운 뒤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 나미에게 돌려준다. 휴대전화는 준영의 눈과 귀가 된다. 휴대전화 렌즈를 통해 나미가 현재 있는 위치를 알아내고, 스피커 도청을 통해 나미에게 벌어지는 일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한다. 나미의 아빠가 자신을 의심하자 메신저 앱으로 나미 흉내를 내며 해킹 프로그램을 심도록 유도한다. 나미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형사 ‘지만’(김희원)은 7년 전 가출한 아들이 범죄에 연루됐음을 직감하고 준영의 흔적을 쫓는다. 영화는 동명의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스마트폰이라는 다소 진부한 소재를 사용했지만 속도감 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화면으로 긴박한 상황을 연출한 영화 ‘서치’(2018년)와도 닮았다. 신인인 김태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연기력이 보증된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임시완은 드라마 ‘미생’(2014년)의 장그래 티를 완전히 벗었다. 영화 ‘비상선언’(2022년)에서 ‘완벽한 빌런(악당)’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이번에는 서늘한 표정으로 상대방의 일상을 완전히 앗아간다. “네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며 광기 어린 눈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역할이 몸에 맞춘 듯 자연스럽다. 천우희는 평범한 직장인 역을 맡아 누구나 이 같은 범죄의 타겟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극대화 했다. 아빠가 위험에 처하자 절규하는 연기를 인상적으로 해냈다. 김희원은 아들을 살인범으로 의심하는 형사 역할을 맡아 혼란스러운 심리를 잘 표현했다.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17일 공개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할리우드의 총아’ 데이미언 셔젤 감독(38)이 향락에 찌들었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집념으로 가득했던 1920년대 할리우드의 명암을 담은 영화 ‘바빌론’으로 돌아왔다. ‘위플래쉬’(2015년), ‘라라랜드’(2016년)로 연달아 평단의 극찬을 받은 셔젤 감독은 한국 팬층도 두껍다. 이번 영화는 그가 ‘퍼스트맨’(2018년)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영화는 192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호화 저택에서 난잡한 파티가 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술과 마약에 찌든 사람들은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분출한다. 영화계에서 일하는 게 꿈인 멕시코인 매니(디에고 칼바)는 파티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다 당대 최고의 무성 영화배우 잭(브래드 피트)의 눈에 들어 촬영장 보조가 된다. 우연히 대타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배우 지망생 넬리(마고 로비)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듬해 최초의 유성 영화가 개봉하면서 세 사람의 삶에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유성 영화에 적응하지 못한 잭은 점점 뒷방으로 밀려나고, 넬리 역시 유성 영화배우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도박에 손을 대며 추락한다. 매니는 기회를 잡아 감독 자리에 오르지만 곤경에 빠진 넬리를 구하려다가 모든 걸 잃을 위기에 처한다. 영화는 세 사람의 삶을 따라가며 그들의 열정과 영광의 순간, 욕망과 타락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배경인 할리우드의 어두운 이면을 까발린다. ‘할리우드에 대한 증오의 편지이자 영화를 향한 러브레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8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쟁쟁한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가 볼만하다. 지난해 인터뷰를 통해 은퇴설에 불을 지폈던 브래드 피트는 인기를 잃어가는 배우 역에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년)에서 할리 퀸 역을 맡았던 마고 로비는 또다시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넬리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매니 역의 디에고 칼바는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신인으로, 이번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음악영화로 정평이 난 감독의 작품답게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재즈도 귀를 사로잡는다. 셔젤의 하버드대 동문이자 전작들을 함께 작업한 저스틴 허위츠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영화 후반부, 재즈 음악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 주요 작품 장면들을 리드미컬하게 보여주는 낯선 대목에 대해 셔젤 감독은 “프리 재즈 같은 것”이라고 했다. 영화는 제80회 골든글로브 5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허위츠가 음악상을 수상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필관(필수 관람)’ 할 만한 작품이 개봉했다.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신예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5년 만에 가지고 돌아온 영화 ‘바빌론’이다. 영화는 향락에 찌들었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집념으로 가득했던 1920년대 할리우드의 명암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18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압박에도 화려한 음악 속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등 쟁쟁한 배우진이 펼치는 연기로 눈과 귀가 즐겁다. 영화는 192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호화 저택에서 난잡한 파티가 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술과 마약에 찌든 사람들은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분출한다. 영화계에서 일하는 게 꿈인 멕시코인 매니(디에고 칼바)는 파티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다 당대 최고의 무성 영화배우 잭(브래드 피트)의 눈에 들어 촬영장 보조가 된다. 배우 지망생인 넬리(마고 로비) 역시 우연한 계기에 대타로 영화에 출연하게 되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듬해 최초의 유성영화가 개봉하면서 세 사람의 위치에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유성 영화에 적응하지 못한 잭은 점점 뒷방으로 밀려나고, 넬리 역시 유성 영화배우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도박에 손을 대며 추락한다. 매니는 기회를 잡아 감독 자리에 오르지만 곤경에 빠진 넬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잃을 위기에 처한다. 영화는 세 사람의 삶을 따라가며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마법 같은 면과 추악한 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할리우드에 대한 증오의 편지이자 영화를 향한 러브레터’라는 평가가 붙는 이유다.‘바빌론’은 ‘위플래쉬’(2014년) ‘라라랜드’(2016년) ‘퍼스트맨’(2018년)으로 연달아 평단의 극찬을 받은 할리우드의 총아 셔젤 감독의 신작이다. 연출 뿐 아니라 영화 속 재즈가 귀를 사로잡는다. 셔젤의 하버드대 동문이자 전작들을 함께 작업한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의 작품이다. 영화 후반부에는 할리우드 영화 주요 작품 장면들을 리드미컬하게 보여주는 낯선 시퀀스가 나오는데, 이 장면에 대해 셔젤 감독은 “프리 재즈같은 것”이라고 묘사했다. 영화는 제80회 골든글로브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고, 허위츠가 음악상을 수상했다.‘은퇴설’이 도는 브래드 피트가 인기를 잃어가는 배우 역을 맡은 것은 아이러니하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년)에서 할리 퀸 역을 맡았던 마고 로비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넬리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매니 역의 디에고 칼바는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신인으로, ‘바빌론’을 통해 할리우드의 관심을 받고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살아 있으면 살아집니다. 우리가 함께 서로의 곁을 지키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이 집단 트라우마를 겪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관련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후유증을 남긴 이태원 핼러윈 참사, 여전히 국민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는 세월호 참사…. 서울성모병원 교수로, 대한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창립 회장인 저자는 다양한 사회적 재난과 진료 사례를 소개하며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는 한국 사회가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얼마나 부족한지 꼬집으면서 ‘피해자들이 손 내밀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트라우마(trauma)’의 고대 그리스어 어원은 ‘뚫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구멍이 뚫릴 만큼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트라우마를 입었다고 말한다. 특정 사건을 겪고 난 뒤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것은 스트레스를 넘어 트라우마에 가깝다. 삶의 방향을 전환시킬 만큼 압도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은 ‘안전감의 상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증)가 번진 것은 감염될까 봐 불안한 마음에 사회적 고립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긴장 수준이 높아지면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63명을 2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병을 앓고 나서 만성 피로를 느꼈던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과 사회가 공감해주지 못하면 트라우마의 고통은 더욱 심화된다. 지난해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자들을 향해 “왜 이태원에 갔느냐”고 힐난하는 게 그 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가해진 댓글 폭력도 유족들의 상처를 헤집는다. 저자는 “혐오와 편견에 기인한 발언은 마음에 큰 화상을 입은 사람을 다시 불로 지지는 명백한 폭력”이라고 지적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다음 소희를 구해낼 수 있을까.’ 2017년 전주 콜센터에서 근무하던 고등학생 실습생이 자살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다음 소희’가 8일 개봉한다. 정주리 감독이 학대받는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도희야’(2014년)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로는 처음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됐던 이 영화는 “충격적이면서도 눈을 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에서 소희(김시은)가 숨진 후 형사 유진(배두나·사진)은 소희 주변 어른 누구도 미안해하거나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지 않는 것에 분노하며 사건을 추적한다. 배두나는 정 감독과 ‘도희야’에 이어 두 번째로 합을 맞췄다. 전작에서도 배두나는 형사 역을 맡았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일 만난 배두나는 “영화를 보면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을 것 같아 아직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지 못했다”며 웃었다. 그는 출연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저 역시도 어릴 때 막연하고 막막하게 몰아붙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런 것 같다”며 “지금 그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조금 덜 아프고 우리 때보단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이들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은 꼭 참여하려 한다”고 했다. 영화는 소희가 땀을 흘리며 가수의 춤을 따라 추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희는 곱창을 먹다가 뒷자리 남성들이 친구를 무시하자 대거리를 할 정도로 대찬 여고생이다. 하지만 말간 얼굴로 남자친구와 햄버거를 나눠 먹으며 웃을 땐 영락없는 10대다. 소희가 그토록 원하던 ‘사무직 여직원’이 되면서 지옥이 시작된다. “어렵게 구한 자리”라며 담임 선생이 떠민 대기업 하청 콜센터에서 소희가 맡은 일은 ‘방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해지하려는 고객을 설득해 끊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고객들의 폭언과 성희롱, 회사의 실적 압박, 취업률이 떨어진다며 퇴사를 막는 학교의 굴레 속에서 소희는 점점 빛을 잃어간다. 영혼을 갉아먹힌 대가로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최저임금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실습생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콜센터 직원은 모두 실습생이다. 탈출구를 찾지 못한 소희는 결국 추운 겨울 저수지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다. 배두나는 작품에서 가장 분노한 장면으로 교육청 장학사가 유진에게 “적당히 좀 하자”고 말한 부분을 꼽았다. 그는 “감독님이 얘기하고 싶었던 게 어른들의 바로 그 모습”이라면서 “그 장면에서 감정적으로 많이 흔들렸다”고 했다. 배두나는 오늘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수많은 ‘소희’들을 향해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이 버티며 살아가는 게 고맙다. 영화가 그들을 위로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이란에서 실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성스러운 거미’가 8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작품은 이란판 ‘양들의 침묵’(1991년)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성스러운 거미’는 2000년 이란의 최대 종교도시인 마슈하드에서 여성 16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사이드 하네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경찰이 해당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자 가상의 인물인 기자 ‘라히미’가 직접 범인을 추적하는 범죄 스릴러물이다. 범인 하네이는 세 남매를 둔 평범한 가장이자 이란-이라크전 참전용사로서 이웃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더러운 여성들을 죽여 도시를 청소하는 종교적 의무를 행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성매매 여성들을 양심의 가책 없이 살해했다. 자신의 범행을 언론사에 직접 제보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잔인무도한 살인 사건이지만 사건 당시 이란 보수 언론과 일부 대중은 그를 ‘사회 정의를 손수 이룬 영웅’이라고 칭송해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그는 법정에서 “매춘부들은 바퀴벌레보다도 쓸모없는 존재”라며 “하루에 한 명씩 죽이지 않으면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하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2002년 사형됐다. ‘성스러운 거미’는 여성 혐오와 종교, 문화가 얽힌 이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주연을 맡은 자르 아미르에브라히미는 이 작품으로 이란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미르에브라히미는 살인마를 밝혀내기 위해 직접 매춘부로 변장하는 용기를 낸다. 한편으로는 한 여성으로서 주변 남성들로 인해 겪은 신체적·정신적 두려움을 진정성 있게 표현한다. 작품은 지난해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와 영국 가디언지가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기도 했다. 이란의 금기를 다룬다는 이유로 제작 당시 이란 내에서 촬영 금지뿐만 아니라 상영 금지 조치까지 받았다. 영화는 덴마크, 스웨덴, 독일, 프랑스의 합작으로 완성됐다. 연출은 최근 국제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감독 중 한 명인 알리 아바시가 맡았다. 그는 장편 데뷔작인 ‘셜리’(2016년)로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고, 두 번째 장편 ‘경계선’(2018년)으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대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이 2020년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앤드사운드를 통해 차세대 감독 20인 중 한 명으로 그를 꼽으며 “‘경계선’은 눈부시게 독특한 영화”라고 평가한 바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국내에서 ‘콩쥐팥쥐’(1977년) 이후 46년 만에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제작됐다. 25일 개봉한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이다. 작품은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 사는 소녀 그리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엄마를 위해 전설 속의 붉은 곰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스톱모션이란 컴퓨터그래픽(CG) 없이 촬영 대상을 프레임마다 촬영한 뒤 이미지를 연속 재생하는 방식이다. 한 컷당 촬영에 최장 8시간이 걸릴 만큼 지난한 작업이어서 장편 애니메이션에선 잘 사용하지 않는다. ‘엄마의 땅…’은 제작하는 데 총 3년 3개월이 걸렸다. 제작을 총괄한 박재범 감독(33·사진)은 “다큐멘터리 ‘최후의 툰드라’를 보고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삶에 흥미를 느꼈다”며 “소박하고 아날로그적인 삶을 지켜 나가는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들의 삶이 스톱모션의 작업 방식과도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인형과 배경이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데 가장 공을 들였다. 오로라, 겨울눈 배경은 직접 실물을 촬영했다. 오로라는 청록색 천을 떼어서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찍었고, 눈은 스티로폼을 비벼 알갱이가 흩날리는 방법으로 연출했다. 박 감독은 “지난해 스톱모션 작품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피노키오’가 큰 사랑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며 “스톱모션이 힘든 제작 방식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스톱모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앞으로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드라마를 보신 분이라면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 겁니다.”(커자옌·柯佳嬿) ‘상친자(상견니에 미친 사람)’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에서 큰 인기를 모은 넷플릭스 대만 드라마 ‘상견니(想見你·네가 보고 싶어·2019년)’가 25일 영화로 돌아왔다.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던 커자옌, 쉬광한(許光漢), 스보위(施柏宇) 배우 3인방이 영화에 그대로 출연해 드라마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영화 ‘상견니’ 주연 배우 3인방은 한국을 찾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26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드라마 팬들에게 선물 같은 영화가 될 것”이라며 “한국에서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 다시 한국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영화 ‘상견니’는 1인 2역 주인공인 리쯔웨이·왕취안성(쉬광한)과 황위쉬안·천윈루(커자옌)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타임 슬립 로맨스물이다.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영화의 배경은 이내 각각 상대방이 숨져 존재하지 않는 다른 미래로 바뀐다. 두 사람은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 과거로 타임 슬립을 하지만 같은 세계 안에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두 사람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시공을 오가며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극 중 스보위는 천윈루를 짝사랑하는 모쥔제 역을 맡았다. 영화는 원작 드라마가 대만뿐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큰 인기를 끌자 세계관을 확장해 제작됐다. 영화는 대만에서 개봉 23일 만에 1억 대만달러(약 40억8300만 원), 중국에서 27일 만에 4억 위안(약 730억7200만 원)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드라마 ‘상견니’ 리메이크작 ‘너의 시간 속으로’가 올해 3분기(7∼9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영화 곳곳에는 드라마와 연결되는 장치들이 있어 원작 팬이라면 이를 찾는 재미가 있다.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라스트 댄스’를 통해 타임 슬립한다는 소재도 드라마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메인 프로듀서인 마이팅(麻怡婷)은 “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영화는 타임 슬립 구조를 단순하게 풀었기 때문에 관객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커자옌은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너무 좋았다”면서 “드라마를 다시 영화로 찍고 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드라마에서 1인 2역을 연기했던 느낌 등을 되찾아 가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드라마로 스타덤에 올라 ‘아시아의 첫사랑’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쉬광한은 한국 팬들의 뜨거운 환영에 한국어로 “진짜 놀랐어요”라고 답하며 웃었다. 그는 작품의 인기 비결에 대해 “누구나 한 번쯤 학창시절에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느껴봤을 것”이라며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팬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보위는 “드라마의 명장면과 영화가 연결되도록 세심하게 설계한 부분이 있다”며 “처음에는 영화를 즐기시고 n차 관람을 하면서 어떤 걸 숨겨놨는지 보시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 배우가 다 같이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커자옌은 “눈까지 내려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 굉장히 낭만적이다”라고 했다. 세 배우는 “상견니가 한국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서 다시 한국 팬들을 뵈러 올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상친자(상견니에 미친 사람)’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한국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대만 드라마 ‘상견니(想見你)’가 영화로 돌아왔다. 주연 배우 3인방인 커자옌(柯佳嬿) 쉬광한(許光漢) 스보위(施柏宇)이 영화에 모두 그대로 출연하며 드라마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26일 내한한 이들은 “드라마 팬들에게 선물 같은 영화가 될 것”이라며 관객 100만 명이 넘으면 한국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상견니’ 인기는 예상보다 더 뜨거웠다. 26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총 5회의 무대인사는 예매창이 열린지 1분 만에 매진됐다. 무대 인사를 놓친 팬들은 극장에 들어가는 배우들을 몇 초라도 보기 위해 몰렸다. 극장 직원들이 “제발 앞으로 이동해 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통제해야 할 정도였다. 이날 극장에서 만난 송가형 씨(25)는 “무대 인사를 꼭 보고 싶었는데 예매에 실패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송 씨는 “드라마를 3번이나 봐서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기대가 컸다”면서 “배우들이 그대로 같은 화면에 다시 나오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소원 성취한 기분”이라고 했다. 영화 ‘상견니’는 주인공인 리쯔웨이(쉬광한)와 황위쉬안(커자옌)이 우연히 재회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애틋한 사랑을 한다는 타임슬립 로맨스물이다. ‘상견니’는 한국어로 “네가 보고 싶어”라는 뜻이다. 2019, 2020년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가 대만 뿐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큰 인기를 끌자 세계관을 확장시켜 영화로 제작됐다. 영화는 대만에서 개봉 23일 만에 1억 대만달러(약 40억8300만 원), 중국에서 27일 만에 4억 위안(약 730억7200만 원) 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하고 있다. 영화 곳곳에는 드라마와 연결되는 장치들이 있어 팬이라면 이를 찾는 재미가 있다.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라스트 댄스’를 통해 타임 슬립 한다는 소재도 드라마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메인 프로듀서인 마이팅(麻怡婷)은 “드라마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루프였다면 영화는 평행세계 형식이라 드라마보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커자옌은 “드라마를 봤다면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나는 느낌일 것”이라며 “상견니가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걸 안다. 다시금 영화로 찍게 돼서 한국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해서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드라마로 스타덤에 올라 ‘아시아의 첫사랑’이라는 별명이 있는 쉬광한은 한국팬들의 환영에 한국어로 “진짜 놀랐어요”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그는 상견니가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 “모두가 학창시절을 겪으며 순수한 감정을 경험했지 않나. 그런 감정에 공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스보위는 “추운 날씨에 눈까지 오는데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많은 팬 분들을 봤다. 드라마 때부터 지금까지 응원해주고 사랑해준 팬들을 보고 있으니 신기하고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세 배우가 한국에 다같이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맛있는 한국음식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쉬광한은 한국어로 “맛있어요”라며 한우를, 스보위는 대창구이를 꼽았다. 커자옌은 “눈까지 내려 첫인상이 굉장히 낭만적”이라고 했다. 세 배우는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면 다시 인사드릴 수 있지 않겠느냐”며 “상견니가 한국에서도 좋은 성적 거둬서 다시 뵈러 올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을 지켜주는 인공지능(AI) 로봇이 있다. 내 감정과 생각을 학습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어느 날 밤 눈을 떴는데 그 로봇이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면? 공포 영화 ‘쏘우’ 시리즈의 감독과 기획을 맡았던 제임스 완이 제작에 참여해 국내외 호러팬의 기대를 모은 영화 ‘메간’이 25일 개봉했다. 메간은 북미에서 개봉 첫날인 6일 ‘아바타: 물의 길’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23일까지 전 세계에서 제작비(1200만 달러)의 10배가 넘는 1억2500만 달러(약 1540억 원)를 벌어들였다. 제작사는 2025년 속편을 개봉한다고 발표했다. 영화는 자동차 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녀 케이디가 완구 개발 회사에서 일하는 이모에게 맡겨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사고 후 전혀 웃지 않는 케이디를 위해 이모는 개발 중이던 로봇 메간을 케이디에게 동기화한다. 메간은 빠른 속도로 케이디와 세상에 대해 학습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케이디를 지켜야 한다”는 프로그래밍이 지나치게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케이디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메간은 스스로를 킬러 로봇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더 이상 케이디의 말도, 제작자의 말도 듣지 않는 채 꺼짐 상태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인형도 사람도 아닌 오싹한 메간의 모습은 북미에서 영화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영화는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으면 이질감이 커진다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역이용했다. 표정 변화가 전혀 없던 메간이 유연한 몸짓으로 웨이브 댄스를 추는 장면에서 관객은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메간 역은 아역 배우이자 댄서인 에이미 도널드(13)가 연기했다. 제임스 완은 미국 온라인 매체 콜라이더와의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메간을 사실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그녀가 인형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랐다”며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 사이 어디엔가 있는 듯한 메간의 모습이 섬뜩함을 자아낼 것”이라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을 지켜주는 인공지능(AI) 로봇. 내 감정과 생각을 학습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눈을 떴는데 그 로봇이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면? 북미에서 흥행에 성공한 호러 영화 ‘메간’이 25일 국내 개봉했다. 공포영화 ‘쏘우’(2004년) ‘컨저링’(2013년)의 감독 제임스 완이 제작에 참여해 관심을 모았다. ‘메간’은 북미에서 개봉 첫 날인 6일 ‘아바타: 물의 길’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23일까지 전 세계 흥행 수익 1억 2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제작비(1200만 달러)의 10배를 뛰어넘었다. 인기에 힘입어 제작사는 2025년 속편 개봉을 발표했다. ‘메간’은 자동차 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녀 케이디가 완구 개발 회사에서 일하는 이모에게 맡겨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고 후 전혀 웃지 않는 케이디를 위해 이모는 개발 중이던 AI 로봇 ‘메간’을 케이디에게 동기화 한다. 메간은 빠른 속도로 케이디와 세상에 대해 학습해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메간은 “케이디를 지켜야 한다”는 프로그래밍이 지나치게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케이디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곧 스스로 ‘킬러 로봇’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작하고 더 이상 케이디의 말도, 제작자의 말도 듣지 않고 ‘꺼짐’ 상태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인형도 아닌, 사람도 아닌 오싹한 메간의 모습은 북미에서 영화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영화는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이질감을 느낀다는 ‘불쾌한 골짜기’를 역이용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메간이 유연한 몸짓으로 웨이브 댄스를 추는 장면에서는 관객들 사이에서 비명과 웃음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메간 역은 실제 아역 배우이자 댄서인 에이미 도널드(13)가 연기했다. 제임스 완은 영국 매체 콜라이더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메간을 사실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그녀가 인형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랐다”면서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 사이 어디엔가 있는 듯한 메간의 모습이 섬뜩함을 자아낼 것”이라고 했다. 영화는 북미에서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북미에서 영화 시사회를 할 때 홍보 측은 메간과 똑같은 복장을 한 배우들을 시사회장에 등장시켰다. 이들이 로봇처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틱톡과 트위터에서 메간 복장과 춤을 따라하는 챌린지가 유행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는 40년을 찍었는데도 매번 새로운 도전입니다. (저보다 한 살 많은) 톰 크루즈도 (액션 연기를) 했으니 저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홍콩 액션스타 전쯔단(甄子丹·60)이 무협 영화 ‘천룡팔부: 교봉전’으로 돌아왔다. 제작과 주연, 감독, 무술감독까지 1인 4역을 소화한 그는 19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관객에게 항상 새로움을 선사하고 싶다”고 했다. 25일 개봉하는 ‘천룡팔부…’는 최근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통 무협 영화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등을 집필한 무협소설 대가 진융(金庸·1924∼2018)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었다. 시대 배경은 송나라와 요나라가 갈등을 빚던 11세기다. 거지 방파인 개방의 방주가 된 교봉(전쯔단)이 살인 누명을 쓰고 쫓겨난 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전쯔단은 “진융의 소설은 등장인물이 많고 관계가 복잡해 영화화하기 쉽지 않았다”면서도 “교봉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는 교봉에 대해 “무공과 정의감이 뛰어난 인물”이라며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질투를 받지만 정정당당하게 오해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생각할 거리를 준다”고 설명했다. ‘철마류’(1993년), ‘영웅’(2002년), ‘엽문’ 시리즈 등 데뷔 후 줄곧 액션 연기를 펼친 전쯔단에게도 정통 무협지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1000년 전 송나라가 배경이라 무공도 무협지의 세계관에 기반해 훈련해야 했다”며 “상상의 공간이지만 역사적 근거가 있는 무공을 선보이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러닝타임 내내 펼쳐지는 전쯔단의 화려한 액션은 환갑의 나이를 잊게 만든다. 그는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삶을 단순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음주 등) 밤 생활을 최소화한다”고 했다. 그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톰 크루즈(61)를 언급하며 “저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음악은 드라마 ‘추노’(2010년)의 최철호 감독이 맡았다. 전쯔단은 “주변에 수소문해서 내가 먼저 연락했다”며 “마음속 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찾고 있었는데 최 감독의 작품들이 영화 속 누추한 집에서 찐빵을 먹는 장면과 완벽하게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영화가 130분으로 워낙 길기 때문에 흐름을 이어가면서 멜로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전쯔단이 한국을 찾은 건 엽문(2009년) 이후 14년 만이다. 그는 “40년 동안 영화를 찍고 팬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며 “이번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무협의 정신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 1720년 영국 경제를 뒤흔든 주가 조작 사건인 남해회사 투기 사태는 경제사에서 ‘원조 버블’로 불릴 만큼 파장이 컸다. 유명 과학자 아이작 뉴턴 역시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었다. 뉴턴은 1712년 매수한 남해회사 주식이 두 배로 오르자 1720년 4월 주식을 모두 팔고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같은 해 후반, 치솟는 주가에 인내심을 잃고 훨씬 높은 가격에 주식을 다시 매수한다. 주가 폭락으로 그가 잃은 금액은 2만 파운드에 달했다. 천재 과학자도 탐욕과 공포 앞에서는 보통 투자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인간은 왜 집단적 망상에 빠져 비이성적 선택을 하는 걸까. 신경과 전문의이자 미국 월스트리트의 유명 투자이론가인 저자는 인간의 이 같은 본성을 신경과학 이론을 활용해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그는 군중이 망상에 빠지는 첫 번째 이유로 모방을 꼽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정보를 분석해 고유한 생각을 하며 산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변에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기보다 우월한 대상을 모방할 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음모론을 아직까지 많은 미국인이 믿는 것, 과거 네덜란드에서 귀족과 신흥 부유층이 갓 수입된 튤립에 경쟁적으로 투자하면서 한 달 만에 50배 이상 가격이 뛴 ‘튤립 파동’ 당시 튤립에 투자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두 번째 이유로 인간이 이야기에 매료되는 존재라는 점을 꼽는다. 저자는 인간이 사실과 자료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도록 설계됐다고 말한다. 종말론이나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의 교리를 들며 이야기가 인간에게 얼마나 매혹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사실과 수치보다 이야기에 더 크게 반응하고, 이야기에 설득력이 더해질수록 비판적 사고 능력이 감퇴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현명하거나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때문에 역사에서 인간이 범한 어리석은 실수를 되짚으며 이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이끌며 은막의 스타로 활약한 영화 배우 윤정희(사진)가 1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했다. 향년 79세.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고인은 총 3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남편 백건우 씨(77) 측에 따르면 고인은 2010년부터 알츠하이머병을 앓아 왔다.》1960∼80년대 ‘은막의 스타’로 활약한 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가 1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했다. 향년 79세. 고인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77)는 20일 국내 영화계 인사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제 아내이자 오랜 세월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배우 윤정희가 19일 오후 5시 딸 진희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꿈꾸듯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영화계에 따르면 유족들은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평소 고인이 자주 찾던 파리 근교 뱅센 지역의 한 성당에서 가족장을 치를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 미사 날짜는 성당 측과 협의 중이나 23일 또는 24일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고인의 유해는 파리 인근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고인은 한국 영화 황금기로 불리는 1960∼80년대에 동료 배우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1세대 트로이카’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조선대 영문학과 재학 중 1200 대 1의 경쟁을 뚫고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군의 수염’(1968년) ‘신궁’(1979년) ‘저녁에 우는 새’(1982년) ‘위기의 여자’(1987년) ‘만무방’(1994년) 등이 있다. 고인은 출연작이 총 330여 편에 달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은막 스타 중 한 명이었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1960, 70년대 대종상 등 굵직한 국내 영화제에서 연기상, 인기 여우상 등을 20여 차례나 받았다. 영화 ‘시’(2010년)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 호주 아시아태평양 스크린 어워즈 등 국내외 7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영화 ‘시’는 고인이 출연한 마지막 작품이었다. ‘만무방’ 이후 16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었다. 고인은 작품에서 알츠하이머를 앓으며 중학생 손자와 살아가다가 시의 세계에 빠져 몰입하는 미자 역을 맡아 열연했다. 생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영화배우는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직업”이라며 “하늘나라 갈 때까지 작품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이 작품이 공개된 2010년 즈음부터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건반 위의 구도자’라 불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 씨와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잉꼬 부부로 유명했다. 1974년 파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년간의 열애 끝에 1976년 3월 화가 이응노(1904∼1989)의 파리 20구 자택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1977년 7월 유고슬라비아에서 북한의 납치 미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인 2019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에게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며 “나보다 더 오래 살라”고 당부했다. 백 씨 측에 따르면 고인은 2018년부터 알츠하이머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2020년에는 고인의 후견인 지정을 놓고 고인의 동생들과 백 씨 부녀 사이에 법적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윤정희의 사망으로 성년후견인 소송은 법적 판단 없이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윤 씨가 한국 영화계에 끼친 공헌이 굉장히 크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후배 배우 김혜수, 고 신상옥 감독의 아들 신정균 감독 등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백 씨와 딸 진희 씨(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