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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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칼럼니스트입니다.

yuri@donga.com

취재분야

2025-11-08~2025-12-08
칼럼97%
정치일반3%
  • [사설]결국 평신도들의 배척 대상 된 ‘운동권 사제단’

    정진석 추기경의 용퇴를 요구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정구사) 사제들에게 평신도들이 ‘순명(順命)의 원칙을 저버린 일’이라며 ‘교회를 떠나라’고 요구했다. 한국천주교 나라사랑기도회 회원들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생명 환경 평화의 가치를 왜곡 과장해 좌익 활동과 정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전국 평신도들에게 정구사 소속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것을 거부하자고 제의했다. 추기경과 일부 사제, 그리고 일부 사제와 신도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커지는 작금의 사태는 한국 천주교의 장래를 위해 걱정스럽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정구사 사제들의 성명과 행동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구사 사제들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쇠고기라는 근거 없는 주장에 동조해 촛불미사를 집전하는가 하면 주한미군 철수, 평택 미군기지 건설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 같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국책사업을 방해하는 데 앞장섰다. 정구사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희생된 장병과 국민을 위해 기도한 적도, 북한의 시대착오적 권력세습과 인권 참상에 대해 거론한 적도 없다. 평신도들이 오죽하면 ‘한국 천주교회는 하느님을 부인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과는 공존할 수 없다’고 천명하겠는가. 올해 3월 천주교 주교회의 결정에 대해 정 추기경이 최근 “4대강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말하자 정구사는 정 추기경을 집중 공격했다. 정구사는 이달 10일 ‘골수 반공주의자의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함세웅 문정현 등 정구사 출신 사제들은 정 추기경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퇴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이 사회적 정치적 의견이 다른 것을 문제 삼아 추기경을 공격한 것은 평신도에게 모범이 되지 못함은 물론이고 분노를 살 지경에 이르렀다. 나라사랑기도회는 평신도를 대표하는 단체는 아니지만 전문직과 지식인을 중심으로 평신도들의 여론을 반영하는 역할을 했다. 정구사는 사제에 대한 복종심으로 좀처럼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는 평신도들의 쓴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한국은 헌법에서 정교분리(政敎分離)를 명문화한 국가이고 지금은 독재정치 시대도 아니다. 일부 사제가 정치나 이념투쟁을 계속할 작정이라면 평신도들의 바람대로 사제를 그만두고 정치활동에 뛰어드는 것이 낫다.}

    •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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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시험거부 앞장 교육감’의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전국 중학교 1, 2학년 연합학력평가가 치러진 21일 서울 경기 강원 전남 전북 등 친(親)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성향의 교육감이 있는 5개 교육청 관내 학교에선 시험을 보지 않았다. 친전교조 성향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학교장 선택에 맡긴다면서도 원칙적 거부를 밝혀 86개 중학교 중 26개교만 시험에 응했다. 이번 학력평가는 2008년 전교조 서울지부가 ‘학교 서열화 반대’를 내걸고 거부운동을 벌였던 시험이다. 당시 서울지부를 제외한 전교조 본부조차 시험 거부에 부정적이었다. 학력평가를 지지하는 학부모 여론 때문이었다. 일부 교사들이 시험을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강행했으나 학생들 가운데 극소수만이 동참했다. 올해 친전교조 교육감이 당선된 이후 학력평가 거부가 아예 교육청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이뤄진 것은 학부모 의사에 역행하는 일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연합학력평가가 지역별 시도별로 학생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시험”이라며 평가거부가 학력저하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기초학력 미달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1년간 노력했던 학교 교장과 교사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시험 거부 시도 가운데 서울은 지난 7월 전국 고교 2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강남 등 일부 지역의 평균 학력이 높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다른 시도에 비해 학력이 떨어져 학력 격차가 매우 크다. 경기도의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은 서울 다음으로 높았다. 자녀교육에 돈과 관심을 쏟기 힘겨운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서울과 경기에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학력이 낮고 격차가 클수록 평가를 통해 학력 분포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도 시험을 치르지 못해 학생들은 학력 향상의 기회를 잃게 됐다. 부유층은 공교육이 부실해도 사교육을 찾아 보완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2010학년도 교장평가에서 학력증진 성과(학업성취도 향상 정도 10점, 부진학생 감소 비율 10점)를 폐지하고 문화 예술 체육 수련교육, 체벌 학교폭력 추방, 소외학생 배려를 각각 10점씩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에선 공교육이 학력을 올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야 할 판이다. 입만 열면 저소득층을 앞세우는 친전교조 교육감들이 빈곤층 학생들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고민해 봤는지 의문이다.}

    • 201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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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뉴스 콘텐츠 ‘제값 내기’ 정부가 솔선해야

    대부분의 정부부처는 신문기사를 ‘무단 복제’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거나 스크랩 자료를 만들어 복사해 배포한다. 사실상 신문사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김성동 의원 등 25명이 발의한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신문진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정부는 돈을 내고 뉴스 콘텐츠를 이용해야 한다. 김 의원은 지난해 뉴스 콘텐츠를 불법 사용한 규모가 정부기관 53억 원, 공공기관 303억 원이라고 9월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현행 저작권법은 소설 시 논문 음악 연극 무용 사진 등을 저작물로 규정하고 시사보도는 ‘사실 전달에 불과하다’며 보호대상에서 제외한다. 이 때문에 뉴스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닌 것으로 오인되는 실정이다. 누리꾼은 물론이고 정부와 기업도 인터넷상의 뉴스 콘텐츠를 공짜로 알고 복제와 프린트, e메일 전송, 카페 블로그 유통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사실을 전달하는 뉴스 콘텐츠도 기자들이 사건 사고의 현장을 파고들어 상황의 인과를 분석하며, 이슈의 영향과 의미를 전망하는 창조적 노력을 거쳐 나온 지적 생산물이다. 대법원은 2006년 “신문사의 뉴스 기사 및 사진은 개별 기사로 판단해 저작권 여부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국신문협회는 올 9월 “뉴스를 별도의 저작권 대상으로 보지 않는 현행 저작권법을 개정해 저작물로 보호해야 한다”며 뉴스 콘텐츠의 저작권을 인정해 달라고 입법 청원했다. 신문협회는 “지금처럼 뉴스 콘텐츠 제작자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유통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것은 정의의 관념에 반할 뿐 아니라 뉴스 콘텐츠 제작을 위축시켜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발전마저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어제 신문협회 간담회에서 회원사들은 정부부처부터 ‘제값’을 내고 뉴스 콘텐츠를 이용하는 모범을 보이면 저작권 보호의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퓨리서치가 지난해 볼티모어 시의 53개 매체를 1주일간 분석했더니 오리지널 뉴스 콘텐츠의 61%가 신문에서 공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에 실린 정보가 방송 및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양상은 세계 공통이다. 신문은 뉴스 콘텐츠 생산에서 가장 큰 몫을 하면서도 정작 제값을 못 받고 독자와 광고주를 인터넷에 뺏기는 형편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노력에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으면 뉴스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면서 옥석을 구분하기 어려운 정보가 범람해 민주주의도 위협받게 된다.}

    • 201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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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공짜 공화국’은 오래 지탱할 수 없다

    전면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시의회의 마찰 때문에 21조6000억 원 규모의 서울시 예산안이 처음으로 법정 기한인 17일 0시까지 처리되지 못했다. 서울시는 교육 관련 예산으로 비가 새는 교실환경 개선이나 방과후 학교 지원을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는 학생들의 ‘위화감 해소’를 위해 무조건 전면 무상급식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전과 울산도 시와 교육청, 시와 시의회 간의 대립으로 예산안 통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충남도와 충남도교육청은 무상급식을 합의했지만 16개 시군 가운데 천안시 공주시 등 7개 시군에선 예산 부담이 크다며 반발한다. 무상급식은 6·2지방선거에서 좌파 교육감들이 내세운 대표적인 포퓰리즘 공약이다. 지금도 소외된 계층의 학생들에게는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민주당 공약은 부잣집 아이들까지 공짜로 점심을 주자는 것이다. 학교에서 거저 점심을 준다고 하니까 중산층 이상 가정도 마다할 리 없다. 그래서 민주당은 전면 무상급식 공약으로 지방선거에서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을 부잣집 아이들 점심값에 쓰고 나면 가난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교육예산이 줄어든다. 서민의 정당을 자임하는 민주당이 오히려 서민에게 해를 끼치는 셈이다. ‘생산적 복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성순 민주당 의원은 “무상급식 공약은 선거만을 겨냥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복지의 탈을 쓴 망국적 포퓰리즘을 거부한다”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좌파진영은 어려운 계층의 자녀가 월 5만 원의 급식비를 지원받느라 가난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증명 과정에서 모멸감을 주지 않는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에서 교육의 본질에 관한 논의는 사라지고 입만 열면 점심밥 타령이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표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정치꾼들의 다음 레퍼토리는 무상의료, 무상주거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런 공짜 포퓰리즘은 국민의 생산의욕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확산시키며 국가재정을 파탄 낼 우려가 있다. ‘공짜 공화국’은 결코 오래 지탱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가 돼야 하는가.}

    • 201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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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합격자 현수막도 못 걸게 하는 곽노현 교육감

    진학과 취업 시즌인 요즘 특성화고(옛 실업고) 앞을 지나다 보면 ‘A대학 아무개 합격’ ‘B기업 ○명 입사’라고 쓴 현수막이 눈에 띈다. 학생들을 진학시키고 취업시켰다는 자부심이 배어 있다. 새 출발을 앞둔 졸업생들에게 격려와 응원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재학생에게 “나도 선배들처럼 되고 싶다”는 꿈과 도전의지를 심어준다. 학교는 내년에 올해보다 더 자랑스럽고 화려한 현수막을 내걸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내 초중고교 교문에 졸업생들의 국제중학교 특목고 명문대학 진학 실적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걸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런 현수막이 학교 서열화와 학생 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관점이다. 국제중 특목고 명문대의 입시경쟁을 과열시킨다는 걱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의 좌절감을 배려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교육감이 간섭하기 시작하면 학교현장의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동력을 차단하게 된다. 학교와 교사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 좋은 실적을 내면 더 큰 의욕과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성과가 현수막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칭찬이 따르고, 재학생도 선배들의 성취에 자극을 받아 학업에 열의를 가질 수 있다. 중학교 졸업예정자들이 고교 선택을 앞둔 현 시점에 어떤 고교가 어떤 대학에 몇 명을 진학시켰는지는 매우 중요한 정보다. 고교선택제의 목적은 학교 간 경쟁을 통해 공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 곽 교육감의 평등교육 집착은 고교선택제의 취지를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접근방식이라면 앞으론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에게 상도 주지 말고 박수도 치지 말아야 한다. 곽 교육감은 취임하자마자 학업성취도 평가를 무력화하고, 전면 무상급식과 체벌금지를 추진해 교육현장을 평등이념의 어설픈 실험장으로 전락시켰다. 그제는 일선 학교가 국어 영어 수학 수업시간의 20%를 재량에 따라 증감할 수 있는 권한을 축소해 10% 이내로 제한했다. 학교 자율권에 대한 침해다. 곽 교육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코드에 맞는 좌파적 교육정책을 펴는데도 올 3월부터 10월까지 전교조 조합원 가운데 서울의 가입교사 수가 가장 많이 줄었다. 교사들 사이에 전교조 교육이념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 201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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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정의구현사제단의 ‘추기경 비난’ 막가는 표현들

    정진석 추기경이 올 3월의 주교회의 성명과 관련해 “4대강 개발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데 대해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10일 “주교회의의 결정을 함부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정 추기경이 “4대강 사업은 과학적 전문적 분야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는 만큼 종교계가 판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발언에 공감하는 천주교 신도와 일반 국민이 많다. 그럼에도 사제단은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부를 편드시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남모르는 고충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다”고 비아냥거렸다. 교황→추기경→주교→신부 순으로 위계질서가 분명한 천주교에서 일부 사제들의 비공식적 모임이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추기경에게 ‘쓴소리’를 하려면 이성적이고 절제된 표현을 써야 옳다. 사제단은 “미움이나 부추기는 골수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하니 교회의 불행”이라고 거칠게 정 추기경을 비난하는가 하면 “당신이 사목적(司牧的) 혜안을 과감하게 포기했거나 아예 갖추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선언”이라고 단정했다. 추기경이기를 포기했거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막말이나 다름없어 사제의 언어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평신도 인터넷저널에 “내 나이 70 평생 천주교회 안에서 장상(長上)께 이렇게 온갖 못된 말을 함부로 써서 대드는 짓을 본 일이 없다”는 글이 올라있다. 편향되고 조악한 운동권 격문 수준의 사제단 성명이 처음은 아니다. 사제단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 뒤인 5월 야당 및 좌파단체들과 함께 “명확한 증거의 공개, 국제적 공인이 없는 섣부른 결론은 국민적, 국제적 불신과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엔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에 앞장서 고(故)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장이 “진정 삶의 권리와 정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왜 북한 인권을 위해 지금껏 촛불을 들지 않았느냐”고 질타한 적도 있다. 사제단은 한국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을 지낸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한 원로사제들이 13일 견해를 밝힐 것이라고 했다. 함 이사장의 성향에 비추어 어떤 의견을 낼 것인지 대충 짐작이 된다. 지금은 유신이나 5공화국 군부 통치 같은 독재치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일부 사제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한 정부와 과거의 군사독재정권을 동일시하고, 걸핏하면 정치투쟁에 나서는 것은 매우 종교적이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 정교분리(政敎分離)의 국가다. 천주교를 아끼는 신자와 국민은 일부 사제들의 편향적인 ‘정의구현’ 활동에 대해 사회 갈등을 키우는 ‘정치구현’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 20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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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장하준이 말하지 않는 것들

    나는 경제학자 장하준을 존경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이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하 23가지)를 국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시켜서만이 아니다. ‘23가지’의 서평기사를 소개한 그의 홈페이지를 보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9개 기사 중 단순 소개를 제외한 6개가 결코 좋은 평이라고 할 수 없는데도 당당하게 올려놓은 그의 담대함 때문이다.외국선 혹평… 국내선 신드롬 ‘23가지’는 주류경제학에서 강조해온 시장개방과 자유무역, 세계화의 ‘허구’를 사정없이 벗겨낸다. “영국 권위지 가디언에서 에드 밀리밴드(노동당 대표)가 그를 점심에 초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는 국내 신문 기사만 보면 엄청난 책이 분명할 것 같다. 하지만 진보신문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서버는 “(금융개혁에 대한 그의) 분석은 비현실적이고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평했다. 더타임스는 “그가 말하는 진실은 그가 자유시장주의자를 비판하는 것처럼 객관적이지 않다”고 썼다. 사회주의 전파를 위해 창간된 잡지 뉴스테이츠먼조차 “(그가 제시한) 국가주도 자본주의는 결국 내파(內破)했다”고 지적했다. 장하준이 소개하지 않은 가디언의 서평이나 남아공 매체인 비즈니스데이의 혹평은 옮기기도 죄스러울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경제학자를 폄훼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다만 지난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거부해야 한다”며 야당과 좌파의 정치투쟁에 힘을 실어준 그의 참모습은 알 필요가 있다고 본다. 스스로 좌파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장하준은 BBC로부터 좌편향이라고 묘사되는 사람이다. 주류경제학 아닌 이단적(heterodox) 경제학 교수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더타임스는 “조심해서 읽으라”고 경고를 붙여놨다. 규제 없는 시장은 없기 때문에 자유시장이란 없다는 장하준 경제학의 대전제부터 동의하기 어렵다. 법이 없는 국가는 없기 때문에 자유국가란 없다는 말과 똑같은 논리 아닌가. 그가 열거한 23가지의 ‘부분적’ 진실과 틀린 팩트를 일일이 적시하기엔 지면이 모자란다. 당장 우리의 최대 현안인 FTA와 복지 교육에 대한 주장만 봐도 나라와 독자들을 오도(誤導)할 공산이 적지 않다. 그는 18세기 영국과 19세기 미국, 그리고 오늘의 중국을 들며 “자유무역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과거에도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가 MBC에서 밝혔듯이 FTA는 두 나라 사이에만 자유무역을 하고 다른 나라는 차별하는 무역이다. 선진국과 FTA 하면 우리가 장기적으로 손해 본다는 게 장하준의 애국적 주장인데, 그 말이 옳다면 미국 최대 노조조직은 한국이 손해 볼까 봐 반대하는 거냐고 묻고 싶어진다.틀린 가치를 옳다고 착각시키나 한미 FTA는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이 우리에게만 활짝 열리는 특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미국시장에서 한국 차와 경쟁하는 일본이 두려워한다”고 했겠나. 그러나 그는 수출과 일자리, 국내총생산(GDP) 증가 같은 계량적 효과뿐 아니라 경쟁을 통해 생산성과 경쟁력도 키울 수 있는 장기적 이익은 외면했다. 영국에 사는 장하준과 그의 아이들은 상관없겠지만 이 땅에 사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겐 너무나 절실한 FTA임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는 또 “부자들에게 세금 많이 걷는 스칸디나비아엔 거대한 복지국가와 높은 경제성장률이 공존한다”며 큰 정부를 옹호했다. 하지만 스웨덴이 1950년대까진 시장경제로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고도 그 뒤 과다한 복지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전형적인 국가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거대한 복지로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를 언급하지 않은 건 물론이다. “교육이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서울대를 나와 케임브리지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그가 “고등교육에 대한 집착을 줄이라”고 하는 데는 기가 딱 막힌다. ‘23가지’ 283쪽에서 “균등하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 혜택을 보기 위해선 그 기회를 잘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남아공 흑인들은 백인들과 똑같이 보수가 높은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지만 그 직업에 적합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면 소용없다”고 한 것과도 앞뒤가 안 맞는, 별로 학자답지 못한 서술이다. 물론 학문의 자유는 중요하고 ‘23가지’가 자본주의에 대한 시야를 넓힌 점에선 훌륭하다. 글로벌 위기 이후 시장경제와 주류경제학에 대한 반성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좌파 지식인들을 비판한 ‘억지와 위선’이라는 책이 지적했듯이 “그의 주장들은 단순히 틀릴 뿐만 아니라 그릇된 가치를 옳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어서 더욱 걱정이 된다.” 장하준이 말하지 않는 더 많은 것들에 대해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들은 왜 남아공 사람만큼도 말하지 않는지 궁금하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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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류샤오보의 빈자리, 중국에 등 돌린 세계

    중국이 잘살게 되면 민주화로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하던 세계는 지금 낙담하고 있다.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 나타나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해야 할 중국의 반체제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씨는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었다. 노벨위원회는 중국에 항의하는 뜻에서 두 개의 빈 의자를 놓고 시상식을 거행했다. 중국 정부는 외교채널을 총동원해 각국 정부에 시상식 불참을 종용했다. 가족의 대리수상을 방해한 나치 독일보다 더하다. 오슬로에 대사관을 둔 65개국 중 한국 등 45개국 대사는 시상식에 참석했다. 류 씨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지이자 중국에 대한 항의라고 봐야 한다. 32년 전 중국 개혁개방의 문을 연 덩샤오핑은 ‘재주를 감추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라’는 뜻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유훈으로 남겼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패권주의적 대국굴기(大國굴起)의 오만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중국이 너무도 빨리 문명국과는 거리가 먼 본색을 노출시키는 바람에 세계는 경계하는 빛이 역력하다.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전후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도 인도네시아 한국 일본을 순방하며 우호 의지를 다진 것은 중국의 위협에 맞서려는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명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중국이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비호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연평도 포격과 우라늄 농축, 핵 확산 행위마저 옹호하고 나서자 러시아와 미국, 유럽연합(EU)과 미국의 관계가 한결 돈독해지는 양상이다. 중국은 류 씨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인터넷 검열과 민주화인사 탄압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은 과연 이런 중국과 상생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영국의 언론인 마틴 자크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이라는 책에서 중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위로 올라서는 2050년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같은 서구적 가치와 질서에 맞지 않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이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 자본주의’로 인권 탄압을 계속한다면 중국의 장래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세계의 민주 진영은 힘을 합해 일당독재와 부패, 국수주의와 오만으로 똘똘 뭉친 ‘중국의 세기’를 거부할 것이다.}

    • 201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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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순덕]사제의 전문성

    “4대강 사업이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천주교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주교회의가 올해 3월 성명을 발표하자 혼란스러워하는 천주교인이 적지 않았다. “4대강 반대 강론 듣기 싫어 성당가기 싫다”는 신자들도 있었다. 원로사제 김계춘 도미니꼬 신부는 평신도 인터넷저널 ‘광야의 소리’에서 “누군가가 순박한 신부들에게 준 자료를 보고 많은 사제가 동의했을 것”이라며 “사제는 믿는 일에 도가 트인 사람들이어서 자신의 지식을 초월한 일에선 잘 속아 넘어간다”고 했다. ▷정진석 추기경이 어제 “주교회의 결정은 4대강 사업이 자연 파괴와 난개발의 위험이 보인다고 했지, 반대한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 추기경은 “주교회의 결정은 난개발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면서 위험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4대강을 개발하도록 노력하라고 촉구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이 주교회의의 체면을 살려주면서도 4대강에 관한 천주교 공식 견해의 방향을 조심스럽게 틀어놓은 것이다. ▷“4대강의 심층적인 문제에 대한 판단은 자연과학자와 토목전문가 등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정 추기경의 발언은 이공계 학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 추기경은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하기 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다닌 엔지니어 후보생이었다. 부친은 북한에서 공업성 차관을 지냈다. “개발은 파괴와 동격이 아니고 4대강 찬반 주장은 종교 분야가 아니다”라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정 추기경은 과거 김수환 추기경보다 사회적 발언을 자제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꼭 필요할 때는 발언에 나서고 있다. 올해 4월에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을 했어야 했다”며 소통의 부족을 지적했다. 작년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여야가 국회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시위 때는 “길거리 정치가 아닌 국회 대의정치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 어제 정 추기경이 “나는 내가 전문가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며 ‘전문가 아닌 전문가’들이 오만 군데 끼어들어 말하는 세태를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새겨들을 만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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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남자는 두번 울지 않는다

    천안함 전몰장병 46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 대통령은 끝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4월 19일 천안함 희생자 추모 연설에서 철통같은 안보를 다짐했다. 그리고 일곱 달 후. 북의 연평도 공격으로 전사한 장병 합동분향소에서 대통령은 고 서정우 하사 부친의 통곡에 또 한번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대통령과 軍을 신뢰할 수 있을까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이 조문을 마치고 눈물을 닦는 사진 뒤엔 거친 비판까지 붙어 있다. “이제 국민은 사망자 앞에서 조문하며 슬퍼하는 군인을 보고 싶지 않다.” “대통령이나 사령관이나 질질 짜는 꼴이니 국방이 이 모양이지.” 상가에선 곡을 하는 것을 예(禮)로 삼았던 우리 민족이다. 하지만 남자는, 더구나 리더는 함부로 눈물을 흘려선 안 되는 법이다. 남녀차별이라 해도 할 수 없다. 맞고 오는 아들을 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당하고 우는 못난 남자도 보기 싫다. 첫 번째 눈물은 인간적 정리 또는 결연함을 보인 것으로 이해한대도 대통령이 똑같은 이유로 두 번이나 우는 건 국민에게 결코 보여선 안 될 모습이다. 인식(認識)이 사실을 이긴다고 했다. 대통령이 북의 연평도 공격 이후 첫 메시지로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고 했든 안했든, 국민의 머릿속엔 이미 제 국민과 영토 보전보다는 전쟁을 더 우려하는 대통령으로 각인돼 버렸다. 우리만의 오해가 아니다. 영국 BBC도 영국 시간 23일 오전 7시 32분 “이명박 대통령은 ‘단호히 대처’하되 또한 ‘상황이 악화되지 않게’ 확실히 하라고 촉구했다”고 전했다. 오보 탓할 것 없다. 대통령의 메시지를 몇 번씩 바꿔 내보낸 것부터가 무능의 소치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전방은 괜찮으냐”고 첫마디를 던졌다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일관된 메시지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위기 자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아니 어떻게 대처한다고 인식되느냐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좌우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두 번의 호기를 놓친 대통령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천안함 사태 뒤 5·24 담화에서 대통령은 분명히 다짐했었다. “앞으로 (북한이)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어제 다이빙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에게도 대통령은 “북한이 추가 도발해 온다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사실상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냉철하게 따지면 대통령이든 경질된 국방비서관이든 ‘이번엔 확전을 피하고 다음엔 가만있지 않는다’고 한 메시지가 잘못됐다고 하긴 어렵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전면전을 원하는 국민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게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강사는 “요 며칠 새 세계 곳곳의 지인들에게서 괜찮으냐는 e메일을 엄청 받았다”며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대통령이 상황 악화를 막은 것을 행운으로 여기라”고 했다. 국가의 명운을 책임진 리더로선 확전이 초래할 인명 피해와 경제적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어찌 보면 이것이 더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다. 벙커에서 나와 국민과 함께하라 문제는 이젠 3·26 천안함 사태가 그럭저럭 지난 뒤 우리가 돌아갔던 평온한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순 없다는 사실이다. 분쟁지역 관련 저자로 이름난 로버트 캐플란은 “정권의 유지에만 사로잡힌 북은 인민을 경제개혁 아닌 끝없는 전쟁태세로 몰아세울 수밖에 없다”고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썼다. 연평도 도발에서 우리의 약한 모습을 또 한번 확인한 북은 수시로 김정은의 영광을 위해 도발할 것이고, 북을 감싸온 중국은 헤게모니를 잡은 듯 경제력 군사력과 자신감을 과시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은 거꾸로 경제적 정치적 위력과 함께 국방예산도 떨어져 가는 상황이다. 어쩌면 과거 정권처럼 제발 가만히 있어 달라고 김정일의 대를 이어 김정은 정권에까지 뇌물을 바치거나 북이 붕괴 또는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던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는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57년째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국 국민으로 살면서도 잊고 지내온 북의 위협을 이제야말로 뼈저리게 느껴야 할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민간인 남녀노소가 모두 무장(武裝)을 할 순 없고 믿을 데는 미우나 고우나 군과 정부뿐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우선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나와 국민 앞에, 국민과 함께 서주기 바란다. 대통령과 주요 인사들의 안전이 국가안위만큼 중요한 건 안다. 그러나 작년부터 경제위기 상황이라며 ‘워룸’을 차리고 수시로 들락거린 비상벙커에 지금까지 모여앉아선 결국 메시지 혼선밖에 나온 게 없다. 설령 대통령이 “한 번 더 도발하면 백배 천배로 갚아주겠다”고 해병대사령관과 똑같은 말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적어도 맨몸으로 북과 맞서는 국민과 똑같은 자세여야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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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순덕]광장에서 만난 손학규

    어제 정오 서울 광화문광장.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청와대를 향해 트럼펫을 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리를 듣고 깨어나라는 의미로 연주한 ‘기상나팔’이라고 했다. 그리고 ‘탈의 중’이라는 팻말을 남기고 보수작업에 들어간 이순신 동상을 대신하는 것처럼 왼손으로 칼 대신 팻말을 잡고 섰다. ‘대포정권 완전교체’. 시민들은 흘깃 보고 지나치거나, 다가가 악수를 청하거나, 더러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쇼 아냐?” 한 여성의 말에 친구가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대포정권인 건 맞잖아!” ▷손 대표는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당 대표실에서 ‘100시간 농성’을 벌였으나 별다른 메아리를 내지 못했다. 다음 수순은 장외 투쟁밖에 없을 것이라고 당 안팎에선 진작 내다보고 있었다. 민주당 대표로 복귀한 이후 뚜렷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그에게 ‘반(反)독재 투쟁’은 전공이나 마찬가지다. 아니나 다를까. 손 대표는 그제부터 서울광장에서 일주일간의 철야농성을 결정했다. 하루 세 차례 광화문광장 1인 시위에선 기상나팔을 힘차게 불겠다고 했다. ▷서울광장 농성장에 마련된 ‘국민서명대’까지 일부러 다가와 서명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부 국회의원의 지역구에서 버스를 전세 내어 찾아온 여성들이 서명을 했고, 주변엔 노인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손 대표는 꼭 장외로 나와야 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국민이 아직 잘 모른다”며 “대포폰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손 대표는 장외투쟁과 국회 등원 결정을 동시에 내려 국정 수행과 투쟁을 병행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국민의 어느 정도가 손 대표의 장외투쟁을 지지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낮의 현장 분위기는 뜨겁지 않았다. 제1야당 대표로서 철야농성보다 일자리와 경제, 북한의 핵 위협에 적극 대처하는 것이 ‘대포정권 완전교체’를 성취하는 일일지 모른다. 공교롭게도 장외투쟁 첫날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 터졌다. 민주당은 오후 4시 반 서울광장에서 열 예정이던 최고위원회 장소를 국회로 변경했다. 철야농성팀도 천막을 걷고 철수했다. 오후 5시 또 나팔을 불 예정이었던 손 대표는 그 시간 “그동안 전개한 서명운동을 일단 중지한다”고 말했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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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KBS 개혁, 광고 없는 ‘청정방송’이 시청자 요구다

    KBS 이사회가 전체 수입 가운데 TV 광고수입의 비중을 40%로 유지하면서 수신료를 현재의 2500원에서 3500원으로 인상하기로 의결했다. 그동안 KBS는 수신료를 올려주면 광고를 없애 공영성 높은 방송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이번 인상안은 광고는 그대로 두고 시청자들에게서 수신료만 더 받겠다는 발상이다. KBS 이사회에서 여당 추천 이사들은 2TV의 광고수익을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수신료를 4600원으로 올리는 안을 제시했으나 야당 추천 이사들은 광고를 현행대로 유지하고 수신료만 3500원으로 올리자는 안으로 맞섰다. 수적으로 많은 여당 추천 이사들이 야당 추천 이사들의 인상안을 받아들이고 물러선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KBS가 수신료도 받고 광고수입도 챙기려는 이기주의에 빠져 민주당 안을 받아들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광고 없이 연 25만 원의 수신료를 받는 영국 BBC는 보도 40%, 교양 40%를 편성해 균형 있는 정보와 고급문화를 방송하고 있다. KBS는 보도 20%, 교양 50%에 오락프로를 30%나 내보내는 시청률 위주의 편성을 하면서도 타 방송사보다 확실한 우위에 있지도 못한다. 인건비 지출(37%)이 콘텐츠 제작비 비중(36%)보다 많은 방만한 구조라서 공영성 높은 콘텐츠가 나오기 힘들다. KBS 측은 2012년 말까지 끝내야 하는 디지털방송 전환 재원 마련을 위해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광고 비중을 언제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로드맵이라도 내놓았어야 한다. KBS는 이번에 수신료를 올리고 다음 기회에 또 올리겠다지만 비현실적이다. 1998년 당시 홍두표 KBS 사장이 “수신료를 100% 올리는 대신 2TV 광고를 절반으로 줄인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2TV 광고 유지 결정은 KBS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미디어산업의 구조와 기능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 KBS가 광고를 더 많이 따기 위해 상업방송과 시청률 경쟁이나 벌여서는 저질 논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KBS가 한국의 방송문화를 대표하는 ‘방송의 청정(淸淨)지대’가 되려면 광고방송을 전면 폐지해 시청률에 얽매이지 않는 고품격 방송을 내보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KBS 이사회의 시청료 3500원 안을 그대로 국회에 제출하지 말고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검토를 거쳐 광고를 단계적으로 완전히 없애는 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201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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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EBS가 공교육의 몸통일 수는 없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많은 수험생이 “EBS의 수능강의에서 70% 이상 출제한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말만 믿다가 낭패를 봤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올해 3월 당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올해 수능부터 EBS 수능강의에서 70%를 연계해 출제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EBS 홈페이지 접속이 폭주했고 수험생들은 너도나도 EBS에서 펴낸 교재로 반복학습을 했다. 수능에 응시한 수험생들 중에는 “문제 유형이 EBS 교재하고 달라 까다롭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가채점 1등급 구분점수 추정치도 10여 점씩 떨어졌다. 안태인 출제위원장은 “EBS와 연계된 문제라도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어렵게 출제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수능이 어려워졌으며 이로 인해 또 사교육 수요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EBS 출제가 학생들의 학습방법을 그르쳐 놓고 있다는 관점도 있다. 기본 개념과 원리를 공부하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학생들이 EBS 교재의 문제와 답만 외우느라 기초 공부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EBS 교재도 단순 문제풀이 위주여서 약간 응용하거나 EBS 교재 밖에서 문제를 내면 학생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교육당국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과다한 사교육비는 출산율을 높이는 데도 장애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지만 교육의 본질을 사교육 잡기로 뒤바꿔놓은 지금의 대학입시 정책은 숱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학교 수업도 EBS 강의 때문에 권위를 잃고 있다. 일부 학교에선 EBS 교재 지문과 해답을 외우게 하면서 EBS가 공교육의 몸통이 되다시피 했다. 학원가에서는 100가지가 넘는 EBS 교재를 요약 정리한 기획특강이 판을 친다. EBS 참여강사의 사교육업체 매출도 늘어났다. 이번 수능에서 어려운 문제는 EBS 교재 밖에서 많이 나와 사교육이 더 판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교육정책의 기본은 학교 수업에서 기본 개념과 원리를 충실히 가르치는 것이다. 수능은 ‘주입식 암기식 사교육으로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없도록 출제한다’는 대원칙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을 알아보는 시험으로 돌아가야 한다. 학교 수업을 충실히 받고 교과서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는 방향으로 수능이 출제돼야만 공교육을 살리고 학생들의 대학수학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김순덕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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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서울대에 법인화의 날개를 달아주자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 유수 대학들의 교육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서울대는 다급한 상황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인 서울대를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키우려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기관이라는 굴레를 벗겨줘야 한다. 교과부로부터 독립을 해야 시시콜콜한 정부 규제에서 벗어나 교육 연구 재무경영 및 인력운용의 자율권을 갖고 획기적 개혁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교수들이 총장을 뽑는 직선제는 서울대의 개혁을 가로막는 암적 요소다. 세계 일류대학 중에 교수들의 인기투표로 총장을 선출하는 대학은 없다. 법인화를 하면 총장 직선제도 간선제로 바뀌어 총장이 포퓰리즘 대신 개혁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법인화는 서울대에 날개를 달아주는 발전전략인 셈이다. ‘마지막 직선제 총장’을 자임한 오연천 총장을 비롯해 서울대 구성원 스스로가 법인화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서울대법인화법이 상정되지 못하면 법인화는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이론적으론 다음 달 9일까지가 법안심사 기간이지만 여야가 작년처럼 정쟁에 빠져 정기국회를 넘길 경우 내년부터 정치 바람을 타고 실종돼 버릴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서울대 법인화가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다른 국립대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대한다. 그러나 좌파 교육학자들이 모델로 삼는 핀란드조차 지난해 국립대학 법인화법을 통과시키고 올 1월 시행에 들어갔다. 2006년 국립대에서 법인으로 전환한 싱가포르대는 교수들의 임금체계를 연봉제로 바꿔 교수사회 경쟁에 불을 댕겼다. 권위 있는 영국 더타임스 대학평가 순위에서 최근 4년간 53계단 상승한 KAIST의 발전상을 보더라도 법인화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KAIST는 교육부와 과학기술부가 통합하기 전 과학기술부 산하 특수법인이어서 교육부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2004년 모든 국립대를 법인화한 일본에서 일부 지방 국립대가 경영난을 겪는 것을 보면 서울대처럼 여건이 갖춰진 대학부터 법인화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법인화로 등록금이 사립대학 수준으로 오를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일부 사무직원의 반발도 기득권층의 저항이라는 해석이 있다. 국민 세금으로 방만한 경영을 하기 십상인 국립대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법인화 같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더타임스 평가에서 서울대는 작년 47위에서 올해 109위로 수직 하강했다. 경제규모 15위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나라에서 20위 안에 드는 대학이 하나도 없는 것은 국가의 수치다.}

    • 20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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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부패 몸통’ 잘라내고 당당히 간다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래도 손님이 오면 안 싸운 척하는 미덕이 우리에겐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무사히 끝나자 정치권과 검찰은 다시 전의(戰意)를 불태울 태세다.불법사찰 ‘윗선’ 수사 누가 막았나국민의 눈은 높아졌다. 우물 안 개구리 싸움을 보는 것도 고통이다. G20 합의대로 시장결정적 환율제로 가도 단박에 선진국이 될 순 없지만 지름길은 있다. ‘G20 반부패 행동계획’에 따라 유엔반(反)부패협약을 이행하는 거다. 우리가 2008년 비준한 협약에 따르면 뇌물수수만 부패가 아니다. ‘사법방해’는 부패로 규정하는 게 의무이고 ‘영향력 행사’에 의한 거래 또한 부패 범죄화 입법을 검토할 의무가 있다.마침 오늘 ‘민간인 사찰’ 사건의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에 대한 선고가 나온다. “부당한 권한 행사로 개인의 평온한 삶을 파괴했고 국회의원을 불법 내사해 국기 문란 행위를 했다”며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군사독재 시대를 연상케 하는 민간인 사찰에 일개 총리실 직원 혼자 영향력 행사를 했다고 믿을 국민은 많지 않다. 입때껏 오리발이던 그도 공판에서 “사찰 내용을 이강덕 청와대 공직기강팀장에게 보고했다”고 청와대 연루를 자백한 바다.검찰은 분하거나 억울할 것이다. ‘BH(청와대) 하명’ 메모를 봤지만 구체적 지시 및 보고 흔적은 못 찾았고,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최모 행정관이 증거 인멸 당사자에게 차명폰을 주고 통화한 사실을 확인한 뒤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당했다고 한다.그때 최 행정관의 상관은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으로 청와대 안에서 소란을 피우고도 끄떡없던 사람이다. 이 비서관은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차장의 측근이며, 박 차장은 감히 민간인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대통령 형님의 사람임을 세상이 다 안다. 만에 하나, 결정적 수사 단계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사법방해를 했다면 이는 유엔이 규정한 명백한 부패다.대통령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수사를 놓고도 검찰은 몰매를 맞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 재판에서 그가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대통령 형님에게 수차 세무 관련 청탁전화를 했고, 임천공업 대표에게 대출 청탁과 함께 뇌물 받은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그런데도 검찰은 해외로 의료관광 다니는 천 회장을 불러들이지 못했다.유엔협약은 결정권자가 상황을 몰랐더라도 권력자는 물론 권력 측근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부패로 본다. 본국 송환 같은 국제협력까지 명시했다. 그제 대통령도 천 회장이 있는 일본에서 “G20 합의 이행”을 강조했다. G20 행동계획을 이렇게 모범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되다니 G20 의장국으로서 축복이 아닐 수 없다.재수사 없이 신뢰회복 어렵다부패는 공공의 신뢰를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저해하며 경제성장의 장애물이라고 G20이 지적했다. 2010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0점 만점에 5.4점, 이 정부 출범 이래 2년 연속 0.1점씩 떨어져 178개국 중 39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에서 투자 성공은 적절한 사람(right person)과 골프 칠 사람을 찾는 데 달렸다”고 할 정도다. 대통령 주변이라 해도 다시, 철저히 수사해 ‘부패의 몸통’을 밝혀내지 못하면 당당하게 선진국으로 갈 수가 없다.검찰총장이나 법무장관이 체면에 걸려 제 식구 재수사를 지시하지 못한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외부인사로 첫 감찰 수장에 오른 홍지욱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이 부실수사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다. 그는 “외부에서 온 만큼 검찰 내 관행화한 잘못을 바로잡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권력의 눈치 보기가 관행이라면 이번이 그 치사한 관행을 끝장낼 절호의 기회다. 그리하여 검찰의 잘못을 샅샅이 파헤치고, 특검이라도 해서 부패의 근원까지 찍어내야 대한민국 검찰의 명예를 더럽히는 정치세력이 조용해진다.감찰본부장도 눈치를 볼 경우 한나라당이 재수사를 관철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다음 총선 대선에서 혼이 날 각오를 하기 바란다. 11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재수사 찬성이 59.2%, 반대는 15.3%였다. 한나라당 지지층조차 찬성이 더 많다. 덮고 가도 또 터질 수밖에 없는 아킬레스건이 측근 부패다. 차라리 빨리 재판받아야 차기 대통령한테 사면이라도 받을 수 있다. 물론 한나라당 정권이 막을 내리면 힘들겠지만.가장 좋은 방법은 대통령이 부실수사 의혹을 털고 가는 것이다. 부패의 몸통이 나오든 안 나오든, 불공정한 리더로 남기를 이명박 대통령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22년 전 이맘때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전두환에게 사과와 재산헌납과 낙향을 요구했다(박철언 전 의원 회고록). 그리고 어쨌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지금이 대통령에게 나라가 잘되는 것 말고는 사심이 없음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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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순덕]부시 회고록

    “이민법 개혁 실패에 영향을 미쳤던 미국의 고립주의 보호주의 국수주의가 의회에서 콜롬비아 파나마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가로막았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펴낸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에서 한미 FTA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다. 미국이 외국과의 경쟁에서 화를 내고 또 겁을 내는 나라가 돼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배운 교훈은 대통령은 대중을 이끌어야지 여론이나 좇아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쓴 대목에선 그가 이렇게 사려 깊고 진중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였나 다시 보게 된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부시가 선거에 나왔다면) 에고, 그를 찍을 뻔했다”고 꼬집었다. ▷부시는 예일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의 엘리트이면서도 ‘텍사스 카우보이’ 같은 대중적인 모습으로 대통령이 됐고, 집권 초에는 인기도 끌었다. 문제는 너무나 서민적인 이미지가 굳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중엔 미국 대통령다운 능력과 자질이 있는 건지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최근 회고록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부시는 “내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인 줄 알았던 사람들한테는 내가 책을 썼다는 게 충격일 것”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사실 ‘무방비로 기습공격을 당했다(blindsided)’라는 말은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한 표현이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미군이 이라크 포로를 학대하는 사진을 봤을 때도, 2008년 미국을 강타한 금융위기에 대해서도 부시는 그렇게 묘사했다. 그는 재임 중 가장 의미 있는 일로 ‘9·11테러 이후 미국 땅에 성공한 테러가 없었다’는 사실을 꼽는다. 하지만 반대파들이 수긍할 리 없다. 대통령이 9·11테러를 예방하지 못한 건 무능의 소치라고 공격한다. ▷인기 없는 지도자들은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는 말을 종종 애용한다. 부시 역시 자신의 이라크 침공 같은 정치적 판단과 정책이 여전히 옳은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도 퇴임 당시 30%대였던 지지율이 지난달엔 49%까지 올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자리를 떠난 전직 대통령을 너그럽게 평가해준 것인지, 아니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인지 잘 모르겠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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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종편 선정, 동일한 잣대라야 공정성 보장된다

    정부가 어제 확정한 종합편성(종편) 및 보도전문 방송채널 사업자 선정 기준에서 기업의 재무능력을 평가하는 지표 가운데 ‘성장성’ 측정 방식은 형평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5개 기준 19개 세부항목 중에서 종편의 경우 ‘재정적 능력’의 배점이 90점으로 가장 크다. 따라서 평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항목이므로 종편 진출을 희망하는 사업자와 회계 전문가 사이에서 공감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2005년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 2008년 인터넷TV(IPTV) 선정 때도 총자산증가율은 측정지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업자 평가에서 전례가 없던 총자산증가율을 수정 없이 그대로 확정했다. 총자산이란 부채와 자기자본을 합한 금액을 말한다. 빚을 많이 질수록 총자산의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 빚지지 않고 견실하게 경영해온 기업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공정한 평가라고 하기 힘들다. 자산증가율의 또 다른 문제점은 자산재평가를 언제 받았느냐에 따라 평가결과에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예컨대 부채가 많더라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자산재평가를 해 장부상 자산가치가 높아진 회사는 자산재평가를 하지 않은 사업자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다. 방송위 주장대로 ‘종편 사업자의 투자 의지를 평가하기 위해’ 총자산증가율을 꼭 봐야 한다면, 다른 사업자들에게도 자산재평가를 통해 결과를 반영할 기회를 줘야 공평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자산재평가를 한 사업자와 하지 않은 사업자를 동렬에 놓고 평가하는 것은 100m 달리기를 할 때 한 선수가 몇십 m 앞서 나가 있는 것과 크게 다름이 없다. 모든 선수에게 동일한 잣대와 기준이 적용돼야 판정에 흔쾌하게 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종편 신청 사업자들이 자산재평가를 받은 뒤 재평가 차액을 반영한 재무제표 확인서를 심사에 반영한다면 이러한 불공정성을 시정할 수 있다고 본다. 방송위는 어제 선정 기준을 확정 발표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분명한 답을 주지 않았다. 종편의 새로운 탄생은 1980년 신군부가 언론통폐합으로 만들어낸 지상파 3사의 독과점 구조를 개혁하고,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시대적 의미가 크다. 새 방송사가 이 목표를 향해 부담 없이 뛸 수 있으려면 공정한 기준과 투명한 심사를 통해 종편을 선정해야 한다.}

    • 201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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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일본 知事, 한국 평준화校보고도 감탄했을까

    일본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지사가 대원외고와 서울과학고를 돌아보고 “충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지사는 일본에서 문제교원 퇴출, 학력향상을 위한 성적 공개 등 공교육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일본에는 한국 같은 엘리트 교육이 없고 한국 외고생 정도의 어학 실력을 갖춘 학생을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교육에 대한 열정, 자유로운 커리큘럼, 글로벌 인재육성이라는 목표가 한국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극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외국 인사들이 한국의 교육을 칭찬할 때마다 우리는 당혹스럽다. 하시모토 지사가 방문한 외고와 과학고는 수월성(秀越性) 교육을 하는 학교다. 그가 한국의 평준화 학교를 자세히 들여다보고서도 과연 극찬을 했을지 의문이다. 평준화 학교에서는 많은 학생이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잔다. 하시모토 지사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만나 “교육에 대한 한국 정부의 열정과 추진력을 오사카 교육에도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니카니시 마사토 교육장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게 “오사카의 학생 성적이 바닥권이어서 서울에서 많이 배우고 싶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2013학년도 이전에 외고 정원을 대폭 줄여 자율고나 일반고로 전환시키고, 우수학생들이 몰리던 자립형사립고도 자율고로 바꾸는 줄 알았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곽 교육감은 외고와 자율고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평준화 학교의 공교육은 개선의 기미가 별로 없다. 교육당국은 외국에서 감탄하며 배우고 싶어 하는 교육모델이 외고와 과학고 같은 수월성 교육임을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평준화의 틀 안에서 공교육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최우선 과제다. 그러나 핵심 글로벌 인재를 기르기 위해선 상위 20% 정도의 학생을 위한 수월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포퓰리즘에 휘말려 엘리트 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면 나라의 밝은 장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내 아이를 우수하게 가르치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의 교육열,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은 우리의 강점이다. 이를 부정하는 풍조가 확산되다 보면 미국과 일본이 한국 교육을 부러워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 201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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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마이스터高출신에 ‘좋은 일자리’ 줄 산학 협동을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의 WSS 종합학교 학생 무라트 세커 군(18)은 1주일은 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뒤 그 다음 2주일은 메르세데스벤츠사(社)에서 실습생으로 일한다.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회사에서 바로 실습할 수 있어 좋다. 독일 기업들은 젊은 기능인재를 선점할 수 있고 세제(稅制) 혜택까지 있어 실습생 고용에 적극적이다. 독일의 ‘기술’이 세계에서 우뚝 선 것도 WSS 같은 직업학교들이 산업현장에 꼭 필요한 기술명장(마이스터)들을 길러냈기 때문이다. 일반 고등학교(김나지움)는 같은 또래 가운데 35% 정도만 다닌다. 독일 같은 ‘산업수요맞춤형 교육’을 위해 올해 3월 전국에서 21개 마이스터고가 첫 신입생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이들 가운데 100∼200명을 뽑아 마이스터고 재학 시절부터 삼성전자에서 현장실습을 시킨 뒤 졸업과 동시에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좀 더 번듯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고교 졸업 후 바로 삼성전자 같은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면 취직 못하는 대학에 굳이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학생이 늘어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을 하지 못해 좌절감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실속 있는 선택일 수 있다. 마이스터고 출신이 좋은 일자리를 많이 얻어 사회의 부러움을 살 정도가 된다면 맹목적으로 대학 진학에 매달리는 풍조가 완화될 것이다. 그러려면 마이스터고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교육 내용과 일자리를 연결하는 산학 협동이 확산돼야 한다. 삼성이 선발하는 인원은 전체 마이스터고 정원 3600명 가운데 3∼6%에 불과하다. 대다수 학생들은 실습 나갈 기업이 없다. 마이스터고 교장과 교사들은 학생 실습을 받아줄 기업을 구하러 외판원처럼 돌아다녀야 한다. 기업은 정부의 ‘협조 지침’도 세제혜택도 없으니 굳이 실습생을 받을 이유가 없다. 정부는 올해 5월 “2018년까지 연평균 4만5000명의 대학졸업자(전문대 포함)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것”이라며 마이스터고를 비롯한 ‘고교 직업교육 선진화 방안’을 대안으로 발표했다. 지금처럼 마이스터고를 방치할 경우 고학력 실업이 과연 줄어들지 의문이다. 정부는 마이스터고는 물론이고 특성화고(구 전문계고)에 대해서도 대폭적인 지원과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교육의 내용과 질에서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고학력 실업을 해결하는 길이다.}

    • 201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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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순덕]反엘리트주의

    “우리 정치가 이렇게 험악한 이유는, 또 사실이나 과학이, 논리에 입각한 주장이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두려움에 빠져 생각을 명확히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중간선거 유세 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 발언은 즉각 설화(舌禍)를 일으켰다. 복잡한 문장을 짧게 요약하면 ‘우리 당이 죽 쑤는 건 유권자들이 뭘 모르기 때문’이라는 불평이다. 대통령과 민주당만 잘났고, 보통사람들은 우중(愚衆)이란 말이냐는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오바마의 ‘큰 정부’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운동 ‘티파티’ 사람들은 미국이 뉴엘리트(New Elite)에 탈취당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도 동부지역 명문가의 명문대 출신이 정치를 주름잡은 건 사실이지만 오바마로 대표되는 뉴엘리트는 좀 다르다. 최고의 명문대를 나와 탁월한 능력이나 노력을 바탕으로 전문직종에서 성공했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더 기분 나쁜 거다. 과거처럼 ‘저 사람은 부모 잘 만나 성공했겠거니’ 할 수가 없어지면서 이젠 시스템이 아닌 자신의 게으름이나 잘못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엔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말해주듯이 보통사람들의 위대함을 좋아하고 또 믿고 싶어 하는 반지성주의 전통이 있기는 하다. 서민의 아픔을 모르고 대중과 동떨어져 있으면서 교수처럼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대통령에게 백인 노동계층 남성들부터 대거 등을 돌렸다. 국민을 아래로 보는 대통령은 엘리트 의식에 빠진 엘리트주의자(Elitist)이고, 엘리트가 우중을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 엘리트 지배주의(Elitism)에 사로잡혀 있다는 논란이 매체마다 일어났다. ▷11·2 미국 중간선거는 반엘리트주의의 승리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반엘리트주의가 꼭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줄 순 있을 것 같다. 엘리트가 진정한 엘리트로 남으려면 결코 잘난 척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하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이미 ‘가난한 출신’을 내걸고 ‘서민 마케팅’을 시작한 터다. 보통사람들도 기억할 교훈이 하나 더 있다. 한때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했던 바로 그 점이 나중엔 정 떨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의 쿨한 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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