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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권 국가들의 ‘왕따 시키기’ 움직임이 카타르가 추진해 온 다양한 개혁·개방 조치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카타르가 외교안보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국가 운영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중동 전체의 개혁·개방 움직임 둔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동 국가 중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더불어 가장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해 온 카타르는 언론 자유와 교육 수준을 높이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는 카타르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개혁·개방에 나서는 중동 국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금융, 물류, 부동산개발 등에 초점을 맞춘 개혁·개방을 추진해 온 두바이보다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갖췄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카타르의 개혁·개방은 사우디 등 주변국의 불만을 더욱 키웠다. 카타르의 변화로 자국 사회의 문제점이 더욱 부각되고, 국민의 불만도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이번 단교 사태로 주목 받는 곳 중 하나는 카타르가 설립해 운영하는 알자지라 방송이다. 알자지라는 ‘중동의 CNN’이란 평가를 들을 만큼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사우디 왕실을 포함한 중동 국가 리더들의 문제점을 비판해 왔고 △일부다처제 △여성의 참정권과 사회 참여 △이슬람 극단주의 같은 민감한 이슈도 적극 다뤘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사우디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실제로 사우디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알자지라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카타르는 이번에 단교를 선언한 국가들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긴밀한 관계여서 갈라설 수 없다”며 “결국 카타르는 사우디 등 주변국이 그동안 불편하게 생각했던 개혁·개방 조치들을 수정하거나 추진 속도를 늦추는 작업을 시도하면서 관계 복원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자지라 운영과 관련해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왕실과 정부가 알자지라 경영에서 영향력을 크게 줄이는 식의 구조 개편을 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과 유럽 유수의 대학 분교를 유치해 설립한 교육특구 ‘에듀케이션시티’ 같은 교육·문화 육성 전략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서구의 대학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수입한 에듀케이션시티는 중동에서 보기 드물게 자유로운 비판, 토론, 연구가 가능한 지역으로 꼽혀 왔다. 하지만 카타르의 개혁·개방 움직임이 위축될 경우 에듀케이션시티 같은 비(非)정치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서구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 역시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한편에서는 “카타르가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지원했다”고 강조하는 사우디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사우디는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와하비즘)의 본산이며 2001년 9·11테러 가담자의 다수가 이 나라 국적자인데, 사우디가 카타르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국제 문제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가드너는 “이슬람권에서 그동안 사우디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극단주의에 불을 붙여 왔다”고 지적했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7일(현지 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국회 의사당과 1979년 이란혁명의 지도자이자 국가 영웅으로 추앙받는 아야톨라 호메이니 묘역에서 이슬람국가(IS)의 테러가 발생하자 국제사회는 “중동의 대표적인 IS 테러 청정지대까지 뚫렸다”며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이란은 수니파 극단주의를 신봉하는 IS가 이단으로 취급하며 적대시하는 시아파의 맹주다. 아랍 국가들과는 언어, 문화, 인종도 다르다. IS라는 강력한 적을 가까이 두고도 이란이 IS 테러로부터 안전했던 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같은 아랍권 주요 국가들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체계적인 IS 억제 시스템을 유지해 온 덕분이었다. 실제로 이란은 자국 내에서 극소수를 차지하는 수니파를 상대로 IS가 단순한 선전전을 진행하는 것도 철저히 막아 왔다. IS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전쟁을 치렀던 ‘적국’ 이라크를 돕기도 했다. 2014∼2015년 IS의 영향력이 확대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도 위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을 때부터 이란은 적극적으로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해 왔다. 미국 내 중동문제 권위자 중 한 명인 발리 나스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원장은 “아랍 국가들은 IS를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있는 이란의 모습을 참고하고, 필요할 경우 적극 협력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 역시 영국 런던(3일)에 이어 라마단 금식 기간에 맞춘 IS 테러의 먹잇감이 되고 만 셈이다. 이라크 모술과 시리아 락까 같은 핵심 거점 지역에서 IS의 영향력이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글로벌 테러 역량’은 막강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례로도 평가받는다. 이번 사건은 최근의 복잡한 중동 정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란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카타르에 대해 사우디,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8개 이슬람 국가가 단교를 선언한 상황에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교 사태를 주도한 국가들은 공식적으로는 “카타르가 극단주의와 테러 단체들을 지원해 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단교 이유는 카타르와 가깝고,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키우기에 나서고 있는 이란을 막기 위한 의도가 더 크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이번 테러는 이란을 겨냥한 수니파 국가들의 잇따른 카타르 단교 사태와 이로 인한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과 긴장감 고조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목적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시아파 맹주 이란의 정신적 지주인 호메이니 묘역을 겨냥한 건 이번 공격이 중동의 종파 갈등을 자극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란이 이번 테러를 계기로 IS 퇴치에 대대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IS 퇴치 작전에 새로운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 입장에선 자신들보다 인구 규모, 잠재적 경제력, 과학기술 역량 등에서 압도적인 이란이 국제적으로 강력한 행동에 나서는 것을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세형 turtle@donga.com·한기재 기자}
중동의 대표적 수니파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예멘 리비아 몰디브 등 수니파 7개국이 5일 카타르와 국교를 단절한다고 선언했다. 사우디 관영 SPA통신은 이날 “사우디 정부는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여러 종파적 조직과 테러조직을 포용하는 카타르와 외교관계 단절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UAE, 이집트, 바레인, 예멘 정부도 유사한 성명을 발표했다. 수니파 7개국은 카타르가 ‘시아파의 맹주’ 격인 이란은 물론이고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시아파 무장단체를 지원하고 있다는 강한 의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카타르의 ‘내정 간섭’을 문제 삼았는데, 이는 카타르가 이란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 자국 내 시아파까지 선동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우디의 경우 주요 유전과 담수화 시설이 있는 동부 지역의 인구 다수가 시아파여서 이란의 부상과 이에 따른 시아파의 이탈을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주류 수니파 국가들이 핵협상을 통해 국제사회로 부상하는 이란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동의 다른 주변 국가들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수니파 국가 중 상대적으로 이란과 가까운 카타르를 본보기로 삼은 것이란 설명이다. 이란에 대해 비교적 유연한 입장인 쿠웨이트와 오만은 이번 결정에 동참하지 않았다. 카타르는 사우디를 ‘큰형님’으로 모시는 걸프 지역 수니파 왕정국가와 달리 이란과도 교류채널을 유지하는 등 독자 외교노선을 걸어왔다. 아랍권에서는 비교적 폭넓은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고, 개혁·개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근본주의 색채가 강한 사우디의 신경을 자극해 왔다. 갈등을 폭발시킨 것은 지난달 23일 카타르 언론에 보도된 카타르 국왕의 연설이다. 당시 카타르 국영통신 QNA에 따르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은 군사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란을 옹호하며, 하마스를 팔레스타인 국민의 적법한 대리인으로 표현했다. 이 보도가 걸프 지역에 파문을 일으키자 카타르 정부는 “해킹에 의한 가짜 뉴스이며 근거 없는 주장에 의한 부당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은 카타르의 주요 언론 사이트를 차단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카타르에 대한 단교 조치로 1981년 이 지역 주요국들로 구성된 걸프협력회의(GCC)의 미래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GCC 회원국들은 그동안 적극적인 경제협력과 자유로운 왕래 등을 추구해 왔고, 한때 단일통화 체제도 검토했다. 이번 사태로 이란에 적대적인 사우디, UAE, 바레인과 덜 적대적인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으로 입장이 나뉘게 됐다.박민우 minwoo@donga.com·이세형 기자}

동남아시아 대표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최근 사회적 변화를 두고 심상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도네시아는 종교, 말레이시아는 인종과 관련된 갈등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동남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중·장기적으로 해당 지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 전체에 적잖은 충격을 줄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인구 2억6000만 명의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그동안 온건주의 이슬람 성향으로 타 종교와 문화에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극단주의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세력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슬람수호전선(FPI) 같은 강경 단체는 국민감정을 자극하며 중국계 기독교인으로는 처음 자카르타 주지사 자리에 올랐던 바수키 차하야 푸르나마(일명 아혹)를 꾸란을 모독한 혐의로 구속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난달 열린 재판에서 인도네시아 법원은 보호관찰 2년을 구형한 검찰보다 훨씬 강화된 징역 2년을 선고해 국제적으로 논란을 빚었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생활의 변화’도 강조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유치와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그동안 관대했던 음주와 해외 대중문화 유입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국 무슬림들의 자유연애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자국 전체 인구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중국계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작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여전히 소수지만 과거처럼 이들의 주장을 철저히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미 인도네시아 주류 사회가 극단주의 단체의 요구를 듣고 있고, 이들의 영향력이 커져 정치적으로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말레이시아는 소수민족인 중국계와 인도계에 대한 차별로 계속 곪아 가고 있다. 인구의 다수를 점하는 무슬림 말레이계에 대한 노골적인 우대 정책이 수십 년간 유지되는 게 문제다. 공무원과 국립대 신입생을 말레이계 중심으로 뽑는 건 이제 특별한 차별도 아니다. 최근에는 정부보조금이 들어가는 사업을 말레이계만 지원할 수 있도록 해 논란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능한 중국계와 인도계들은 유학이나 해외 취업을 떠난다. 그리고 가급적 모국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는 전통적으로 인도네시아보다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더 강했다. 이 나라의 이슬람 강경파들이 사회에 만연한 소수계 차별 분위기와 정책을 악용해 근본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일각에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근본 체질’이 중동 지역 나라들과는 달라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4일 폐막한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랴미자르드 랴쿠두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은 “동남아에만 이슬람국가(IS) 추종자가 20만여 명에 이른다는 정보가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은 계엄령까지 선포하며 자국 내 IS 추종 반군 단체 ‘마우테’와 싸우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로 동남아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와 경제·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교류도 활발한 한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 지역 국가들의 사회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최대 근거지인 이라크 모술이 거의 함락 직전까지 왔지만 IS의 테러 능력은 오히려 강화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라크 정부군의 대규모 공습과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연합군의 공격으로 중동 내 IS 세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지만 지난달 22일(현지 시간) 영국 맨체스터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에 이어 IS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테러가 잇달아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발리 나스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장은 “IS가 이라크와 시리아 내 거점을 잃었다고 테러 역량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라며 “IS는 5년 전부터 전투 능력과 별도로 테러 수행 능력을 키워 왔다”고 말했다. 특히 거점 지역인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영향력이 떨어진 IS가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유럽의 주요 지역을 노린 테러에 집중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본거지를 잃은 IS 전사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져 테러를 모의하거나 현지의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IS가 최근 저지른 테러들은 정치적인 이벤트를 앞둔 유럽의 심장부에서 벌어져 공포의 확산 효과가 더욱 컸다. IS는 프랑스 대선 사흘 전인 4월 20일 총기 테러를 벌여 수도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피로 물들였다. 지난달 22일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콘서트가 열린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고, 총선을 닷새 앞둔 이달 3일엔 런던 시내를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가뜩이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혼란스러운 영국에 잇따른 테러가 발생하면서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억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S의 중동 거점이 붕괴되면서 박탈감에 사로잡힌 ‘외로운 늑대’들이 우발적인 테러를 자행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최근 수도 마닐라의 카지노에서 발생한 총기·방화 사건이 IS 테러와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지만 IS는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박탈감을 느낀 잠재적인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의 개인적이고 우발적인 테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박민우 minwoo@donga.com·이세형 기자}

미국 뉴욕의 워싱턴하이츠 지역에 사는 엔리코 델 리오 할아버지(94·사진)는 겨우 걸음 수 있을 만큼 쇠약하다. 한쪽 눈은 실명 상태다. 비좁고 허름한 아파트에 산다. 하지만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운 좋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운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상금 규모가 600달러(약 67만2000원) 이상인 복권에 모두 376번 당첨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받은 전체 상금이 140만 달러(약 15억6800만 원)를 웃돈다. 지난달 27일 뉴욕데일리뉴스는 미 해군 장교 출신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리오 씨의 사연과 함께 그를 ‘정말 운이 억세게 좋은 남자’라고 소개했다. ‘복권왕’이라고 해도 충분하지만 리오 씨가 말하는 당첨 비결은 매우 소박하다. 복권 구매가 오래된 취미인 그는 “꿈에서 나오는 숫자”를 당첨 비결로 꼽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복권을 사는 것도 노하우다. 거주지인 뉴욕뿐 아니라 멕시코와 자메이카 같은 나라에서도 복권을 산 경험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뉴욕 지역에서 당첨됐다. 특히 브롱크스(177번)와 맨해튼(176번)에서 구매한 게 가장 많았다. 또 브루클린(10번)과 퀸스(6번)도 많은 편이었다. 그는 “매일 복권을 사도 절대 당첨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살 때마다 거의 되는 것 같다”며 “가족들은 (내) 어머니가 모든 행운을 나에게 물려준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공을 하늘나라의 어머니에게 돌렸다. 복권에 자주 당첨되지만 돈 욕심은 별로 없다. 당첨금의 대부분을 가족, 친구, 이웃들에게 나눠 줬다. 심지어 “나에게 복권을 판 사람들이나 먼 친척에게도 당첨금을 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리오 씨의 이야기는 최근 뉴욕주 복권 당국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600달러 이상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과 관련된 정보를 분석하면서 알려졌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 리더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발표 직후 엘리제궁에서 영어로 진행한 담화에서 “탈퇴 결정에 실망한 미국 과학자, 공학자, 기업인, 책임감 있는 시민들에게 프랑스에서 제2의 고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유독 강한 프랑스의 대통령이 영어로 담화를 하면서 미국인에게 ‘프랑스로 오라’는 발언을 한 건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으로 공격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또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미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가 슬로건으로 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비꼬아 “우리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말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 지구에 잘못된 결정이고 애플은 기후변화와 싸우고 흔들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제프리 이멀트 제너럴일렉트릭(GE) CEO도 트위터에 “오늘 결정은 실망스럽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로버트 아이거 월트디즈니 CEO는 그동안 활동했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성명을 발표했다. 반 전 총장은 “깊은 실망과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국이 국제사회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 중 하나로서 (파리협약에) 다시 돌아와서 협약 이행을 위한 지도력을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프랑스를 포함해 유럽연합(EU) 3대 경제대국인 독일과 이탈리아는 미국의 탈퇴 선언 1시간 만에 이례적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세계 1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도 이례적으로 내각 장관들이 총동원돼 미국을 비판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일 미국이 협약을 실제로 탈퇴하면 금세기 지구의 평균 기온이 0.3도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이슬람국가(IS)가 2일 새벽 필리핀 수도 마닐라 인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근처의 복합 리조트인 ‘리조트 월드 마닐라(RWM)’에서 일어난 총격·방화 사건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총 38명(고객과 직원 37명, 범인 1명)이 숨진 이번 사건 사망자 중에는 40대 한국인 남성도 포함돼 있다. IS 배후 테러인 것으로 확인될 경우 이 남성은 IS 테러에 의한 첫 번째 한국인 희생자가 된다. IS는 공식 선전 매체인 아마끄를 통해 “IS 전사가 공격을 감행했다”고 발표했다고 2일 CNN이 보도했다. 최근 필리핀 정부는 자국 내 대표적인 무슬림 거주지역인 민다나오섬에 계엄령을 선포한 뒤 IS 추종 반군 단체인 ‘마우테’에 대한 대대적 소탕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IS나 동남아 거점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필리핀에 대한 대규모 테러를 기획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그러나 현지 경찰은 이번 사건이 테러와 연관되지 않은 단순 강도 사건이라고 밝혔다. 필리핀 경찰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새벽 RWM에 복면을 쓴 괴한(남성)이 침입해 카지노의 대형 TV 스크린을 향해 소총을 쏘고, 테이블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였다. 범인은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사망자들이 모두 방화로 인한 연기 때문에 질식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카지노는 창문이 없고,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출입구도 다른 오락시설에 비해 작은 편이다. 갑작스러운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피와 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한국인 사망자는 사고 현장에서 대피한 뒤 휴식을 취하다 사망했고, 사인은 심장마비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 5명을 포함해 최소 54명(일부 언론은 70명 이상으로 보도)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들의 부상 정도는 경미한 편이다. 범인은 카지노 근처의 호텔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카지노 물품 창고에서 1억1300만 페소(약 25억5700만 원)어치의 칩을 챙겨 달아났던 것으로 밝혀졌다. 카지노 칩은 해당 카지노에서 돈으로 바꿀 수 있다. 필리핀 경찰이 이번 사건이 IS와 상관없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도 범인이 카지노 칩을 챙겼다는 점이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정부가 2일 민간단체 8곳의 대북 접촉 신청을 무더기 승인했다. 1일(현지 시간) 미국 정부가 북한 인민군까지 포함한 강력한 추가 대북 독자제재 방안을 발표한 것과 상반된 행보를 보인 것이다.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과정에 제동을 건 데 이어 대북 정책에서도 한미 간 불협화음 조짐이 나타나면서 이달 하순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마찰음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 대북 민간 교류 확대 급물살 통일부가 이날 대북 접촉을 승인한 단체는 어린이어깨동무 등 인도적 지원단체 2곳과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등 종교 교류 단체 6곳이다. 지난달 26일과 31일 각각 대북 접촉을 승인받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북 접촉이 승인된 단체는 10곳으로 늘었다. 새 정부는 “대북 제재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남북 민간 교류는 유연하게 검토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 왔다. 하지만 정부의 대북 접촉 승인 결정은 미국 정부가 추가 대북 독자제재를 발표한 지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공개됐다. 미 재무부가 성명에서 김정은의 이름을 두 차례 언급하며 강경한 대북 제재 의지를 밝힌 직후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의 표결을 앞둔 시점에서 나온 정부의 대북 민간 교류 확대 조치는 국제사회 분위기와는 차이가 컸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우리 정부 대북정책 기조의 무게 중심이 ‘한미 공조’에서 ‘민족 공조’로 옮겨가고 있다”며 “북한의 도발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를 냄으로써 국제 제재를 주도하는 워싱턴 입장에서는 머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가장 시급하지만, 한국 정부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입장도 고려하면서 비핵화 퍼즐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양국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불 끄기에 나섰지만 여전히 양국 정상이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아 미묘한 견해차를 좁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과 온도차 한국 정부의 대북 유화 제스처가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는 국제사회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새 정부 취임 전부터 외교가 안팎에서는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한반도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려다 소외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져 있었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에도 한국 정부가 뚜렷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도 국제사회에 미온적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해 여행금지 및 자산동결 대상을 확대하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 대해 중국은 ‘기존의 제재들로도 충분하다’며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잇따라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자 중국마저도 북한에 등을 돌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엔 소식통들은 “이번 제재안은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장거리미사일 발사실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례적으로 (새 결의안이) 추진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주성하·이세형 기자}

지난해 미국 대선 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캠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하다 해임된 제임스 코미 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사진)이 다음 주중 의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공개 증언에 나선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진영의 러시아 내통 의혹과 관련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1일 CNN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코미 전 국장은 의회에서 올해 2월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났을 당시 나눈 대화에 대해 증언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된 수사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는지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전 국장에게 수사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을 보도해왔다. CNN의 한 소식통은 “중요한 건 그(코미)가 증언한다는 점이며, 그는 기꺼이 증언하고 협력할 생각이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코미 전 국장이 그동안의 의혹을 풀 수 있는 내용을 상당 부분 증언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현재 코미 전 국장은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수사를 위해 최근 특검에 임명된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과도 증언 범위와 형태를 상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BI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된 기밀 누설 등의 문제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조율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코미 전 국장의 의회 증언 뒤 러시아 스캔들 특검의 수사에는 속도가 더 붙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움직임도 활발해질 수 있다. 이미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의혹이 사실일 경우 탄핵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의 7선 연방 하원의원인 앨 그린은 지난달 17일 하원 본회의장 발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 탄핵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공화당에서도 존 매케인과 린지 그레이엄 연방 상원의원 같은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의혹에 대해 꾸준히 비판해왔다. 이에 따라 코미 전 국장의 증언이 반(反)트럼프 진영의 ‘탄핵 작업’과 친(親)트럼프 진영의 ‘트럼프 포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많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합의인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세계는 불과 7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발효된 국제 환경 기준을 다시 쓰거나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는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 모인 195개 협약 당사국이 지구 온난화의 재앙을 막아야 한다며 합의한 결과물이다.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운 1997년 교토 의정서와는 달리 파리 협약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책임을 분담하기로 한 게 특징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기간 “기후변화는 거짓 주장”이라며 당선 시 파리 협약 탈퇴를 공언했지만 취임 후에는 파리 협약 존속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달라진 입장을 보여 항간에선 협약 유지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하지만 화력발전소 등 전통적 석탄 산업 부흥을 통한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협약 탈퇴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탈퇴는 전 세계적으로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 1위 경제 대국이자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인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거부하면 협약 참여 여부를 재고할 국가들이 더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큰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자금에도 비상등이 켜질 수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개도국을 지원하는 녹색기후펀드에 30억 달러(약 3조3000억 원)를 내놓겠다고 공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협약을 탈퇴하면 이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파리 협약에서 탈퇴할 경우 2030년 세계 탄소 배출량이 69Gt(기가톤)에 달해, 파리 협약이 당초 목표로 했던 56Gt보다 23%나 급증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탄소 배출 절감을 위해 선진국에 연 1000억 달러의 지원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협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면 개도국의 배출 절감 노력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정상들이 미국을 빼고라도 협약을 이행하겠다는 단결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도 온난화 대응에 흔들림 없는 자세를 약속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환경보호청(EPA) 청장을 지낸 지나 매카시 전 청장은 이날 포린폴리시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정작 공기 물 토지에 대한 기본적 수요를 간과하고 있다. 파리 협약에서 탈퇴할 경우 막대한 경제적 기회와 외교적 지렛대를 중국에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탈퇴를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 트럼프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협약 유지 쪽에 섰지만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콧 프루잇 환경보호청장은 탈퇴를 주장한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들도 미국의 협약 탈퇴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이 탈퇴할 경우 다른 나라들의 연쇄 탈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글로벌 규제가 그만큼 완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파리 협약 당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배출전망치(BAU·Business As Usual) 대비 37%를 줄이는 것으로 잡았다. BAU는 아무런 감축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배출량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특히 많은 발전,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 관계자들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방향은 맞지만 가속도를 너무 높이면 산업 경쟁력 추락이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해 왔다. 석유화학업체 A사 관계자는 “미국마저 협약에서 빠진다면 우리 정부도 목표 달성에 지나치게 매달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김창덕·이세형 기자}
북한이 ‘워터링 홀(watering hole·물웅덩이)’ 방식으로 불리는 신종 해킹 수법으로 한국 정부와 공공기관의 웹사이트를 공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터링 홀은 공격 대상자가 평소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에 미리 악성코드를 심어둔 뒤 접속하기를 기다리는 해킹 수법이다. 맹수가 물웅덩이 근처에 숨어 먹잇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습성에서 이름을 따왔다. 북한이 한국 정부 사이트와 이곳 방문자들을 모두 노린 셈이다. 한국 인터넷 보안업계는 올해 2∼5월 정부 및 공공기관과 관련된 웹사이트 9곳이 북한의 워터링 홀 수법을 이용한 해킹 시도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난달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외교, 항공우주, 통일 등과 관련된 정부 사이트가 해킹 시도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방문자 수는 파악되지 않아 실제 피해 규모는 현재까지 파악된 것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WSJ는 한국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 해킹 관련 인력은 1300명 수준이고, 이들을 지원하는 조직을 포함하면 5000여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특히 북한 해킹 인력들이 해외 은행과 기업을 담당하는 A팀, 한국을 담당하는 B팀, 이메일 발송·정보 수집 등을 담당하는 C팀으로 역할이 구별돼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자국민들의 인터넷 이용을 차단하고 있지만 해킹 전문 인력들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해빙기’를 맞이했던 미국과 쿠바 관계가 다시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관련 정책들을 대거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 때부터 트럼프는 쿠바가 대대적인 경제 개혁과 인권 개선에 나서지 않을 경우 ‘데탕트를 끝내겠다’고 밝혀 왔다. 29일 정치전문 인터넷매체인 ‘더 데일리 콜러’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완화됐던 쿠바와의 무역과 여행 관련 규정을 다시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트럼프는 강화된 규제를 담은 대(對)쿠바 정책을 이르면 다음 달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쿠바의 115주년 독립기념일인 20일 ‘트럼프표 쿠바 정책’을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트럼프의 해외 순방 일정과 겹쳐 연기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2월부터 오바마 시절 마련된 쿠바 관련 정책들을 점검했다. 존 캐벌리치 미-쿠바 경제통상협회 회장은 “트럼프 행정부는 2월부터 변화(해빙 조치 중단)를 발표할 준비가 돼 있었다”며 “다른 이슈가 많아 공식 발표를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의 쿠바 정책은) 여행과 관련된 단속을 확대하고, 쿠바 혁명군이 관리하는 기관들과의 거래를 막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2015년 국교 정상화 조치에 따라 회복된 대사급 외교관계의 단절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공화당 유력 인사들의 입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쿠바계인 마코 루비오 연방 상원의원(플로리다)과 마리오 디애즈발라트 연방 하원의원(플로리다)은 공개적으로 강경한 쿠바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공화당의 경선에도 참가한 ‘차세대 주자’ 루비오는 3월 트위터에 “(트럼프는) 쿠바를 독재국가로 취급할 것으로 본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와의 화해 무드를 깨는 것에 대한 비판과 우려도 상당하다. 냉전시대 부터 적대국이었던 쿠바와의 관계 개선은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만, 미국 경제에도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통신업계와 항공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쿠바를 잠재력이 큰 미래 성장시장으로 여겨 왔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을 지원하고, 일자리 창출을 중시하겠다고 밝힌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미 연방 상원의원 54명은 최근 쿠바 여행과 관련된 규제들을 모두 철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유럽연합(EU) 중심 국가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유럽의 미국 의존도 줄이기’를 선언한 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사진)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9일(현지 시간) 베르사유 궁전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EU가 러시아와 새로운 관계 설정에 나설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BBC 등은 두 정상의 만남이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프랑스와 독일을 포함한 유럽 주요국들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러시아를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는 지난 대선 때 러시아가 마크롱 선거캠프를 대상으로 해킹 공격을 진행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회의를 계기로 유럽 국가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을 갖게 된 만큼, 독일과 함께 EU의 리더격인 프랑스가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고민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될 경우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설립됐고, 미국과 영국이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운용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EU 안팎에서는 메르켈처럼 마크롱도 미국 의존도 줄이기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크롱은 프랑스 주간지 ‘주르날 뒤 디망슈’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미국과의 정상회담 때 트럼프가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강하게 악수한 건 의도적이었다고 밝혔다. 트럼프를 ‘제압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그는 “순수한 악수가 아니었다. 정치의 ‘알파와 오메가(모든 것)’라고 할 순 없지만 (악수를 나누던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었다”며 “작은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미국 정부가 미국에 출입하는 모든 국제선 항공기에 노트북컴퓨터와 태블릿PC 같은 전자기기 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존 켈리 미 국토안보부(DHS) 장관은 28일 폭스뉴스 크리스 월러스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항공기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국제선 항공기에서 전자기기의 기내 반입을 금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켈리는 “항공 교통과 관련해 수많은 위협이 있다”며 “(테러리스트들은) 미국인으로 꽉 찬 미국 항공기를 떨어뜨리는 것에 매우 집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미국은 테러리스트들이 이용했거나,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아랍권 국가의 항공기들을 대상으로 보안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요르단, 이집트, 쿠웨이트, 모로코, 터키 등 8개국의 10개 공항에서 출발하는 7개 항공사의 미국행 항공기에는 스마트폰보다 큰 전자기기를 기내에 반입할 수 없다. 실제로 소말리아 무장단체 알샤밥은 지난해 2월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이륙하는 여객기 안에 노트북을 위장한 폭탄을 반입해 터뜨렸다. 기내에 1m 크기의 구멍이 날 만큼 강력한 폭탄이었다. 같은 해 3월 소말리아 벨레드웨이네 공항 검색대에서는 노트북 폭탄이 터져 6명이 다치기도 했다. 미국의 항공기 보안 강화 움직임은 최근 대형 테러를 자주 경험한 유럽 국가들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영국은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튀니지, 사우디 등 6개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를 운항하는 14개 항공사를 대상으로 미국처럼 전자기기의 기내 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았던 미국과 프랑스 정상 내외가 유럽에서 만나 남편들은 정책으로, 부인들은 패션으로 힘겨루기를 벌였다. 25일(현지 시간) 오후 벨기에 브뤼셀 미국 대사관저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71)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40)은 악수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6초간의 악수 동안 두 정상은 이를 악물 정도로 상대방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고령이라 마크롱보다 악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트럼프의 경우 살짝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또 막판에 트럼프는 손을 놓으려고 했지만 마크롱은 다시 강하게 잡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선 ‘강한 악수’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괴롭게 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악수 요청에는 딴청을 부린 트럼프에게 마크롱이 ‘선제공격’을 시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요 현안에서도 의견 차이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큰 의견 차이가 나타난 건 ‘파리기후협약’이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미 대선 때부터 기후 변화 문제는 중국 등 일부 국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또 당선될 경우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겠다고 밝혀왔다. 이에 대해 마크롱은 ‘탈퇴 재고’를 요청했다고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하지만 미국 측은 파리기후협약 관련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 대신 트럼프가 프랑스에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시리아 사태, ‘이슬람국가(IS)’ 퇴치,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같은 이슈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고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방향에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도 트럼프는 나토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액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토 동맹국들이 중시하는 ‘조약 5조’의 중요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 조약은 한 동맹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 동맹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하는 집단안보 원칙을 담고 있다. 대통령 부인들의 패션 대결도 눈길을 끌었다. 입는 옷마다 화제를 불러오는 톱모델 출신의 트럼프 부인 멜라니아 여사(47)와 마크롱의 24세 연상 부인 브리지트 여사(64)는 첫 만남에서 남다른 옷차림을 뽐내며 패션 감각을 겨뤘다. 교사 출신인 브리지트는 자국 브랜드인 루이뷔통의 검은색 미니정장과 같은 브랜드의 핸드백을 들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치마와 짧은 소매 상의를 소화할 만큼 팔과 허벅지에 군살을 찾기 힘들었다. 이 드레스는 2960달러(약 331만 원)짜리인데 협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패션 리더인 멜라니아는 관록이 돋보이는 선택을 했다. 앞서 이탈리아 방문 때 현지 브랜드인 돌체 앤드 가바나 의상을 입었던 그는 이번 벨기에 방문에서는 역시 현지 디자이너인 윌런스 더 스호턴의 의상을 입었다. 가죽 재질의 베이지색 정장의 상의는 긴팔이었고, 치마 또한 무릎을 덮을 정도로 차분한 스타일이었다. 스호턴은 유방암 생존자로서 2004년 재단을 세워 해마다 1만5000명의 암환자를 지원해온 화제의 인물이다. 멜라니아는 사연 있는 디자이너의 옷을 입어 스호턴이 나눔과 상생을 실천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황인찬 hic@donga.com·이세형 기자}
‘뇌물 스캔들’에 휩싸인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브라질 반(反)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수도 브라질리아의 연방정부 청사 일부가 불에 탔고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경찰 지원을 위해 군 병력까지 배치됐다. 시위대는 테메르 대통령이 뇌물수수로 복역 중인 에두아르두 쿠냐 전 하원의장의 입을 막기 위해 뇌물을 제공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우파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과 노동 개혁 중단도 요구했다. 25일 AP통신에 따르면 약 3만5000명의 시위대가 대통령궁과 의회를 비롯한 정부청사가 밀집해 있는 브라질리아 중심가로 몰려와 행진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과격 시위대가 재무부 농업부 등 연방정부 청사에 불을 질렀다. 브라질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강경 대응하면서 충돌이 커졌다. 최소 50여 명의 시위대가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8월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예산 관련법을 위반한 혐의로 탄핵당한 뒤 부통령에서 대통령이 된 테메르는 뇌물 스캔들과 원활하지 못한 국정 운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테메르 대통령의 지지율은 10%도 안 된다. 테메르 대통령이 물러날 경우 현재 부통령이 공석 상태라 하원은 30일 이내에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게 된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마약범죄 용의자를 재판 없이 사살할 수 있도록 조치해 국제적인 인권 유린 논란을 빚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남부 민다나오 섬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국가(IS)’ 추종 반군 단체 마우테의 대규모 테러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두테르테가 이번 사태를 자신의 ‘공포 정치’를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3일 AP통신과 CNN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는 러시아 방문 중 마우테와 필리핀 정부군 간 교전이 벌어졌고, 마우테가 마라위 시의 시청, 교도소, 주요 거리 등을 장악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즉각 계엄령(60일간 유효)을 선포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남은 일정을 취소한 채 곧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계엄령 발효 기간이) 한 달 안에 끝나면 좋겠지만, 1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해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번 사태는 필리핀 정부군과 경찰이 또 다른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인 아부사야프의 지도자인 이스닐론 하필론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마우테는 마라위 시의 학교와 성당 등에 불을 지르고 전력 관련 시설을 파괴해 도시 전체가 ‘블랙아웃’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또 마라위 시의 주요 시설에 게양돼 있는 필리핀 국기를 내리고, IS의 상징 깃발과 비슷한 모양의 검정기를 게양했다. 자신들이 장악한 주요 건물에는 저격수도 배치하고 있다. 아직 정확한 민간인 피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반군과의 교전 과정에서 정부군 3명이 숨졌고, 12명이 부상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한 반(反)두테르테 진영에서는 도시 한 군데가 공격을 받았는데 섬 전체에 계엄령을 내린 건 지나친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필리핀 의회를 친두테르테 진영이 장악하고 있어 계엄령은 당분간 유지되고, 연장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무분별한 사살과 체포가 추진돼 인권 유린이 더욱 심해질 것이란 전망도 많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기간 중 자신과 측근들이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에 대해 제임스 코미 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이외에 다른 두 명의 정보기관 수장에게도 ‘눈감아 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3일 워싱턴포스트(WP)와 CNN에 따르면 트럼프는 올해 3월 말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DNI)과 마이클 로저스 국가안보국(NSA) 국장에게 ‘러시아 스캔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성명 등을 통해 발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코츠와 로저스는 트럼프의 요구를 거부했다. 보도가 사실일 경우 트럼프의 사건 수사 무마 요청이 모든 정보기관에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는 뜻이어서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국가정보국과 국가안보국 수장에 대한 사건 무마 요청은 스캔들 수사를 진행한다는 이유로 최근 해임된 코미 전 국장이 3월 20일 하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트럼프 진영에 불리한 발언을 한 직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코미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관련 해킹과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의 부적절한 접촉을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의 정권 인수위원장을 지냈던 최측근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용인술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러시아 스캔들의 핵심 연루자로 최근 상원의 관련 자료 제출과 정보위원회 출석 요구를 거부한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기용한 것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크리스티는 이날 기자들에게 “플린은 내 취향이 아니다.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플린을 보좌관으로 임명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백악관에도 들여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가 트럼프 대통령이나 정부에 이익을 가져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을 트럼프 후보, 트럼프 당선인에게 매우 분명히 했다”며 “나는 플린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스캔들 조사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플린과 달리 폴 매너포트 전 트럼프 선대본부장, 비선 참모인 로저 스톤, 카터 페이지 캠프 외교 고문 등은 의회의 협조 요청에 응하고 있다. 크리스티는 코미 전 국장에 대해선 ‘정상적인 관료’라는 평가를 내렸다. 또 트럼프가 코미를 ‘미치광이(a nut job)’라고 표현한 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 증액 계획서를 발표하기로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토가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비난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의 요구를 사실상 받아들인 셈이다. 2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나토 회원국들은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유럽 국가 정상들이 참여하는 벨기에 브뤼셀 정상회의에 자국의 국방비를 어떻게 미국이 요구하는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인지 밝히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군함 △방공체계 △최신형 전차 같은 주요 군사시설 부족 현상 개선 방안도 설명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속적인 압박에 따라 국방비 증액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지만 미국 측의 요구를 완전히 받아들인 건 아니다. 그동안 일부 미국 정부 관계자는 ‘국방비 GDP 2%’를 단순한 지향 목표가 아닌 확실한 의무 사항으로 요구했지만 이번 계획서에서는 이런 강제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28개 나토 회원국 가운데 국방비를 GDP의 2% 수준으로 부담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그리스 폴란드 에스토니아 등 5개국뿐이다. 모든 나토 회원국이 GDP의 2% 수준으로 국방비를 늘리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라는 지적도 많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