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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노란 비옷 차림으로, 노란 리본을 달고 고인을 기린 사람들은 천수이볜이라는 이름을 잊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만 사람들은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억하고 있었다. 인권변호사 출신, 민족을 내세운 대외정책과 경제의 실정(失政), 뇌물수수라는 치욕 또는 정치탄압 논란에 휩싸였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종종 비교됐다. 마잉주 총통의 취임 3주년인 20일을 즈음해 대만을 찾았을 때 외교부 공무원이 말했다. “전직 대통령만 비슷한 줄 아세요? 마(MA) 총통과 이명박(MB) 대통령은 더 비슷하답니다.” 2008년 전후 전임자들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경제와 실용을 강조해 당선된 두 사람은 지금 ‘성공의 덫’에서 고심하는 모습이다. 대만경제는 지난해 10.8% 성장률로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출도 1979년 이래 가장 많은 34.7%가 늘어 무역총액 5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MB도 “글로벌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자부했지만 대만에 비하면 우리의 6.1% 성장률이 무색해진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발표에서 한국이 작년보다 한 계단 오른 22위라며 역대 최고 성적을 자축했는데 대만은 6위다. 2008년 23등, 2009년 8등의 수직상승에서 또 뛰었다.민심은 “성장만으론 충분치 않다” 대만 경제성공의 비결은 실용이다. MA는 법인세 감세(25%→20%→17%)로 상징되는 친기업 정책을 펴면서 “나라 팔아먹는다”는 야당의 비난을 무릅쓰고 작년 6월 중국과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했다. 징역 17년 6개월 형을 복역 중인 천수이볜이 재임 중 대만독립 노선으로 중국 미국과 마찰을 일으킨 반면, MA는 “대만이 평화와 번영 속에 살려면 대륙(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는 실용노선으로 경제성장을 이끈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만에선 MA에 대한 열렬한 지지로 이어져야 할 성장이 오히려 독(毒)이 되는 분위기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으로 성장률은 높아졌지만 내게 돌아온 게 뭐냐, 중국과 너무 가까워져 주권을 잃는 게 아니냐는 불만과 불안이 번졌다. 우리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은 높지만 대기업만 잘나갔다, 대미외교를 잘했지만 안보는 위험해진 게 아니냐고 MB를 비판하는 상황을 보는 것 같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이상과 명분, 현란한 말솜씨와 드라마틱한 정치 없이 교과서대로 성장과 실용만 추구해선 국민의 마음을 잡을 수 없는 건지 안타까울 정도다. 천수이볜 일가의 부패가 드러날 때만 해도 도덕성에 치명타를 맞고 주저앉았던 민주진보당이 이 틈을 비집고 되살아났다. 내년 1월 14일 총통선거에서 MA와 맞붙을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은 MA와는 정반대인 소통의 리더십으로 젊은층에 인기가 높다. 당 주석 3년간 9차례의 선거에서 7번을 승리로 이끈 ‘선거의 여왕’인 데다, MA와 일대일로 붙으면 이긴다는 여론조사에 따라 총통 후보가 돼서 MA는 벌써 밀리는 것 같다. “그럼 천수이볜이나 민진당 정책으로 계속 갔다면 대만 상황이 더 좋아졌을까” 하고 물었더니 대만 사람들은 답을 하지 못했다. 중국과의 관계가 험악할 때 안보는 물론이고 경제까지 흔들렸음을 천수이볜 집권 8년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만과 중국은 별개의 국가라는 양국론을 주장했던 차이 주석도 “집권하면 중국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겠다”고 얼버무리며 성장의 그늘인 양극화 실업 빈곤만 선거이슈로 삼고 있다. 4·27 재·보궐선거에서 무상급식의 ‘무’자도 꺼내지 않아 분당우파의 표심을 잡은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비슷한 전략이다. 물론 MA와 MB는 다른 점이 더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MA는 “2008년 선거 결과는 국민이 부패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을 투표로 보여준 것”이라며 부패 척결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어왔다. 2008년 대만 39위, 한국 40위로 엇비슷했던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가 2010년엔 대만 33위, 한국 39위로 벌어졌다. 국민의 73%가 ‘MA는 깨끗하다’고 보는 대만이 부럽고, 부패 혐의로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을 보고도 달라지지 않는 우리가 부끄럽다.자유민주·反부패 가치 공유를 취임 3주년 기자회견을 MA는 우리의 ‘균형 발전’ 같은 ‘지역 정의’를 내걸고 남부 타이난 시에서 열었다. 그는 “동북아에서 가장 긴장이 높은 곳이 한반도와 대만해협”이라며 “한국과 대만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깊이 이해하고 협조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있는 한 북한은 민주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올해 건국 100년을 맞은 중화민국(대만의 공식 국호)의 존재 역시 황제가 지배해온 중국 사회엔 민주주의가 맞지 않는다는 편견을 깨주는 산 증거다. MB가 부패에 대한 단호한 태도에서도 MA와 가치를 공유했으면 좋겠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2007년부터 2년간 59만여 원의 직불금을 수령한 사실이 인사청문회의 도마에 올랐다. 쌀 직불금은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해 주기 위해 그가 농림부 차관 때 만든 제도다. 2007년 한국농어민신문사 사장 등으로 봉급 받으면서 자신이 만든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59만 원을 타먹은 것이다. 액수가 적다고 부도덕성을 덮을 수는 없다. 서 후보자가 ‘합법적’이라고 주장하자 여당에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니 치사하다”는 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그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2008년 쌀 직불금을 신청한 사실이 드러나 물러났던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 차관만 억울할 판이다. ▷유영숙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대통령 교회’로 유명한 소망교회에 2007년부터 9600여만 원을 헌금한 사실이 논란이 됐다. 그는 “평생 특혜를 바라고 헌금한 적은 없다”며 순수한 십일조임을 강조했다. 이전 다른 교회에선 200여만 원밖에 헌금하지 않았다. 보통 신앙인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십일조를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이 십일조를 내는 것을 탓할 바는 아니지만 “왜 하필 또 소망교회냐”는 말이 나온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의 스포츠카 ‘제네시스 쿠페’를 재산신고에서 누락했다는 의혹에 대해 “아들이 고종사촌형 처의 차를 빌려 탄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들은 작년 트위터에 ‘2010년 서른에 K7 3.5와 젠쿱 3.8의 갈림길에서. 어쩌지 어쩌지’ 같은 글을 올린 적이 있다. 3년 전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 재직 당시 다른 수석들이 하이브리드 소형차로 바꿀 때 더 작은 경차로 바꿨던 아버지의 청렴성마저 의심받게 생겼다. 차라리 “자식이 어디 아비 마음대로 되느냐”고 답하면 솔직하다는 평이라도 들었을 것 같다. ▷대체 이리도 사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 정부가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자신들만 쏙 빠지겠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정부가 ‘공정한 사회’ 깃발을 치켜든 뒤로 각종 개혁조치들이 나왔지만 이번 같은 개각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나면 국민은 또 한번 허탈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한테 장관 후보자의 풀을 넓히라고 촉구하기도 지쳤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이제 초코파이를 맛있게 먹을 순 없을 것 같다. ‘정(情)’으로 유명한 국민간식을 만들어온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이 초코파이 포장재 등을 납품하는 위장계열사 아이팩의 회삿돈을 빼돌려 고급 외제차를 몇 대씩 굴린 혐의로 검찰에 소환될 처지가 됐다. 그것도 카레이싱 산업이나 선수를 키우려 ‘포르셰 카이엔’ 같은 스포츠카를 사거나 리스한 것도 아니고 자녀 통학용이었다니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2002년 처음 그 차를 탔을 때 담 회장의 장남 서원 씨는 열두 살이었다. 지난달 말엔 서울중앙지법이 외제차를 몰다 남의 차를 들이받고 도망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동원 씨에게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4년 전 유흥업소 종업원에게 폭행당했다고 아버지한테 일러 어퍼컷을 날리게 했고 그래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게 만든 바로 그 아들이다. 법원에서 검찰이 구형한 250만 원보다 벌금 액수를 훨씬 높인 이유는 아마도 국민감정의 반영이 아닐까 싶다. 대기업이 잘해서 나라가 성장하고 글로벌 위기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자랑스러워했던 사회분위기도 급속히 싸늘해지고 있다. 마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가 당직을 떠나면서 명언을 남겼다. “권력은 측근이 원수이고 재벌은 핏줄이 원수”라고.탈법·비리가 反기업정서 불 질러 ‘총수 일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기업경영, 세습의 공고화, 무분별한 계열 확대…재벌개혁 포기하면 경제위기 다시 온다.’ 현 상황에 대한 경고 같지만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10년 전 내놓은 자료 중 한토막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지 4년 뒤 나온 내용인데도 어쩌면 지금 경제현실과 이렇게 들어맞는지 신기할 정도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10대 재벌기업의 계열사는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 405개에서 2010년 617개로 52.2% 늘었다. 5일에 한 개꼴로 10대 기업 계열사가 불어난 거다. 지난주 동아일보는 삼성 현대 신세계 SK 금호아시아나 롯데 한진 등 6개 대기업이 1993∼2005년 1차 기업분할에 이어 최근 2, 3세에게 기업을 나눠주는 ‘2차 핵분열’이 활발하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의 막차가 끊어지기 전에 서둘러 재산과 기업을 편법 상속해주려는 ‘터널링(Tunneling·땅굴 파서 길 만들기)’ 전략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글로벌시장에서 인정받는 기업보다 해외브랜드를 들여오거나 그룹 내 납품으로 땅 짚고 헤엄치는 비즈니스가 상당수라는 점이다. 그것도 정보기술(IT) 서비스나 광고홍보 외식, 심지어 문구류 같은 업종에 비집고 들어가 중소기업을, 청년창업을, 기업가정신을 말라죽게 만들고 있다. 친(親)기업정책을 표방한 정부가 투자 많이 해서 성장과 고용을 높여달라고 2009년 출자총액제한 같은 규제를 풀어줬더니, “투자할 데가 없다”며 돈을 쌓아만 두던 오너들이 자녀들에게 비상장회사를 차려줘 돈을 긁어 담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이 잘나가는 것이 배 아파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같은 부(富)라 해도 노력과 실력으로 ‘벌어들인 재산’이면 사람들은 공정치 못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전관예우’가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처럼, 삼신할머니 랜덤(무작위) 덕에 은수저 물고 태어나 거저 돈버는 그들의 일탈적 행위는 국민의 반기업 정서에 불을 지른다. 더구나 대기업 사정에 밝은 국내 굴지 로펌의 한 변호사는 “대기업의 비상장 계열사에서 비자금이나 탈세, 뇌물 같은 부패가 나온다고 보면 틀림없다”고 장담을 했다. 고환율, 임금억제 같은 수출주도정책으로 소비자물가가 뛰어 국민은 앉아서 손해를 보는 판이다. 그런데도 재벌 2, 3세와 대기업 임직원들은 표 나게 돈질을 하니 “갈아엎는 게 낫겠다”는 역심이 안 생길 수 없다.엄격한 처벌 있어야 공정사회다 어떤 사회에서든 이른바 사회지도층인 엘리트는 대중의 승인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회에서 파워는 남들의 호감을 사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다”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지적했다. ‘초코파이 비리’ 같은 부도덕한 재벌이 판치는 사회에선 분배와 포퓰리즘이 정의(正義)로 보일 수 있다. 어쩌면 외환위기 같은 경제위기는 아니더라도 “노무현 정권은 차라리 자비로웠다”며 대기업들이 가슴을 칠 정치사회적 위기가 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겠다고 기존 정책을 뒤집는 게 아니다. 기업비리에 대한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지닌 ‘공정성 본능’은 불법·탈법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없으면 불온하게 끓어오르기 십상이다. 특히 권력의 측근과 관련된 기업비리라면 원수를 응징하듯 찍어내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위험해질 수 있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이 퇴직 전 3년간의 직무와 관련된 업체에 2년간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공무원 준공무원과 업체의 유착을 막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은 임직원들이 취업제한 규정을 피해 관련 기업으로 옮길 수 있도록 정년을 3년쯤 앞두고 인력개발실이나 소비자보호센터, 총무국 등에 보내 ‘보직 세탁’을 해줬다. 지난해 퇴직자 19명 중 11명이 이런 과정을 거쳐 금융권 감사로 취업한 ‘금피아’(금감원+마피아)다. 부산저축은행그룹 소속 5개 계열 저축은행 가운데 4곳의 상임감사가 금감원 출신이다. 전관예우(前官禮遇)의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이들은 특수목적법인(SPC) 120곳이 대주주의 위장계열사임을 알면서도 불법대출 등 2조4000억 원대의 경제범죄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전관예우 관행 정도가 아니라 금감원을 고리로 연결된 조직적 비리에 가깝다. 전관예우의 부패는 정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대법관 퇴임 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로펌 대신 대학으로 간 것이 미담이 됐을 만큼 사법부에는 전관예우가 만연해 있다. 상고 이유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대법원에서 기각 이유도 써주지 않는다는 말은 법조계의 상식이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최근 판사 검사 출신 변호사가 퇴직 전 1년 내 근무한 임지에서는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변호사법을 개정하기로 한 것도 전관예우 병폐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공무원들도 로펌에서 전관예우용으로 모셔간다. 심지어는 변론을 맡은 기업의 세무조사에 대처하기 위해 국세청의 하위직 공무원까지 스카우트한다는 말도 있다.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를 마피아에 빗댄 용어)가 금융권의 행장, 회장 자리를 차지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이 나라는 전관예우라는 거대한 유착관계로 상부구조가 이뤄진 공화국이다. 일본 후쿠시마의 대형 원전사고는 낙하산 인사의 전관예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원전 정책을 입안하는 경제산업성과 안전관리를 책임진 원자력안전보안원의 퇴직 관료들이 도쿄전력에서 전관예우를 즐기느라 철저한 관리 감독을 못했다는 것이다. 전관예우를 보장하는 공직자윤리법부터 개정해 퇴직 공무원의 유관업체 취업을 원천 차단할 필요가 있다. 전관예우 공화국에서 공정 사회는 헛구호에 불과하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시민들은 버스와 지하철 요금 40% 인상이 불공평하다며 무임승차하는 ‘안 낸다(덴 플리로노·Den Plirono)’ 운동을 벌였다. 6개월 전 아테네 북쪽의 소도시 아피드나이 주민들이 자동차도로 통행료 징수에 반대해 ‘안 낸다’고 써 붙이면서 시작된 시민불복종 운동이 그리스 곳곳에 퍼졌다.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방문하며 최종 방문국으로 그리스를 택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이런 장면을 봤는지 궁금하다. 그리스 의회가 1100억 유로(약 161조 원)의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긴축 재정안을 통과시킨 지 6일로 꼭 1년이 됐지만 상황은 더 악화됐다. 과다한 공공연금만 20% 정도 줄였을 뿐 공기업 통폐합 같은 중요한 구조개혁은 공공부문 근로자들과 노조의 저항에 밀려 손도 대지 못했다. 박 전 대표는 “그리스가 해운강국이므로 우리 조선사업과 협력 모델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가능할지 의문이다. 1년 전 124.9%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지금 143%까지 치솟아 채무조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전망된다. “정말 슬픈 일은 의회 다수당인 정부가 꼭 필요한 개혁을 밀어붙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걱정했을 정도다. 6월 5일 총선을 앞둔 포르투갈 역시 지난달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정부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공공부채를 줄이려면 방만한 공공분야부터 효율화해야 하는데 사회당 정부는 국민에게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요구했다. 박 전 대표는 포르투갈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규제가 산업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도 알고 왔는지 모르겠다. 이번 박 전 대표의 특사 방문국 중 두 나라가 유럽에서 구제금융을 받은 세 나라에 속해 있다. 국가든 개인이든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으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분수에 넘치는 복지제도로 공공부채를 키우고도 리더십 부재, 정치권의 갈등, 과도한 규제와 공공분야의 이기주의 때문에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귀국 후 특사활동 보고를 겸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날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두 나라 형편에 대해 두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으면 좋겠다.}

4·27 재·보선의 큰 패자로 꼽히는 인물이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이하 유시민)다. 친노(親盧) 성지인 경남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요란한 야권 단일화 끝에 나온 이봉수 참여당 후보가 패하자 온갖 화살이 유시민에게 쏟아진다. 자유·정의 중시하는 우파본색유시민의 화려한 개인기에 속수무책이던 민주당은 이제야 안심한 듯 백기 들고 들어오면 좋고, 싫으면 말라는 분위기다. 어쨌든 단일화를 주장했던 유시민도 합방 순간 친노 세력의 적자에서 돌아온 탕아로 전락한다는 건 본인이 더 잘 알 터다.그가 최근에 낸 책 제목처럼 진정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면 이참에 새 정치를 하는 게 그 자신과 국가에 좋다고 나는 본다. 옳은 말도 싸가지 없게 한다고 찍혀 사방에 적을 만들었지만 말인즉슨 옳다는 점은 중요하다. 천안함 사태 때처럼 정략에 따라 말이 달라져 헷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천명(知天命·50세)을 넘어선 그가 언제까지나 재승박덕이라는 소리나 들으며 살 순 없을 것이다.내가 보는 유시민은 민주당에 맞지 않는다. 첫째는 자유라는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은 자유는 강자의 이익을 지켜주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썼다. 물론, 자유를 원하는 것과 똑같이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진보자유주의자라고 했다.그에 비해 민주당은 정권만 되찾을 수 있다면 종북(從北) 정당도 껴안을 듯한 정당이다. 김정일 집단의 눈치를 보느라 북한인권법 제정에 한사코 반대해 ‘색깔’을 의심케 한다. 평등 복지 평화 환경이 자유보다 훨씬 중요하다며 좌클릭을 거듭하는 노선도 유시민과 같지 않다.자유주의자 유시민은 경제관도 친시장적이다. 2004년 이미 “시장친화성이 강한 정책일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홈페이지에 소개했을 정도다. 유시민한테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고 노회찬 당시 민노당 의원이 비꼰 것도 이 때문이었다.그러고 보면 그가 친노 세력의 적자가 맞는지 궁금해진다. 유시민은 2007년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두고 “나는 친노 후보가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회고록에서 “바람을 잘 일으키는 정치인이 바람직한지는 생각해 볼 일”이라며 그에게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진짜 친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유시민은 친노가 아니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런데도 참여당 대표를 맡아 ‘노 정부 계승’을 강조한 건 2012년 대선에서 자신이 야권통합 후보가 돼야 한다는 계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우파논객 변희재는 “한나라당과 같은 노선에 있으면서 정권탈환만을 위해 좌파정당과 손잡은 기회주의”라고 유시민을 비판했다.상상력 빈곤 정당에 자극제 될 듯홀로 설 수도, 야권통합을 외칠 수도 없이 딱해진 유시민 같은 처지가 지금 한나라당이다. 좁혀 말하면 친이(親李)계이고 꼭 집어 말하면 이명박 대통령(MB)의 상황이 그렇다. 그나마 유시민은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나 죄송합니다. 제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트위터에 올린 뒤 침묵에 들어갔지만 여당과 청와대는 서로 남 탓하느라 사생결단이다. 1년 전 6·2 지방선거 뒤 “왜 여권 쪽엔 이광재 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느냐”고 한탄했던 MB나 한나라당은 당장 유시민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가는 당마다 쓰러뜨린 그런 연탄가스를?” 하며 경악하는 사람이 있다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를 들려주고 싶다. 충성심이든, 신념이든, 마키아벨리적 계산에서든, 자신이 하는 일에 유시민만큼 치열한 결기를 보인 인물이 여권엔 없다. 한나라당이 구애해야 할 개혁성향의 젊은층, 수도권 유권자의 관심을 모으는 데도 딱 맞다. 유시민은 2005년 노 대통령이 꺼낸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지지하면서 “공생해야 한다. 우리 정치 사회 문화를 업그레이드해 선진화로 가야 한다”고 했다. 노동 금융 경쟁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춘 선진통상국가이자 대내적으론 사람을 중시하는 사회투자국가를 지향하는 것도 MB정부 비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국가로 가는 전략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필요하다”고, 욕을 먹더라도 말해줄 사람이 있어야 MB정부가 마무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 당연히 유시민은 집중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큰 죄를 지었다”고 한 말이 진심이었다면, 이제는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과연 옳은 일인가’를 숙고해 행동하기 바란다. 날뛰는 미꾸라지면 더 좋다. 상상력 빈곤에 허덕이는 웰빙 한나라당에 자극제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가 민주당에서 기회를 잡았듯이 유시민이 한나라당에서 손학규 이상의 몫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경기침체(recession)가 아니라 남자침체(mancession)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미국 남성들의 곡소리가 터졌다. 금융위기와 집값 폭락으로 금융업 건설업 제조업 등 남자들이 많은 직종의 일자리가 줄면서 남성 실업자들이 급증해서다. 올 들어 제조업 경기가 살아나 “남자침체는 끝났다”는 소리가 나오는 듯하더니 이번엔 교육에서 남자침체 폭탄이 터졌다. 석사 이상 학위를 지닌 고학력 여성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남성을 추월한 것이다. ▷미국의 2010년 센서스에 따르면 25세 이상 인구 중 석사 이상 여성이 1060만 명으로 남성보다 10만 명 많다. 1980년대 초 여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남학생을 넘고, 1996년 여성학사의 수가 남성학사를 넘어선 이래 석사 이상에서 남녀 비율이 뒤집힌 건 처음이다. 미시간플린트대의 마크 페리 교수는 “여성 학력이 더 높아졌으니 다음번 경기침체 때는 여성이 더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학력 여초(女超) 현상으로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남편들도 늘어 지난해 말 200만 명, 아빠 열다섯 중 한 명꼴이다. 뉴스위크지는 양복 입고 출근하던 남자들에겐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아니라 ‘대굴욕(Great Humbling)’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개 숙인 남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고학력 미혼남성들이 비슷한 수준 및 또래의 여성에 비해 귀해지면서 상한가를 치고 있는 점이다. ‘성적 심리학’을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대학과 대학원은 물론이고 괜찮은 직장에선 똑똑한 여자들이 콧대 높은 남자들 때문에 엄청 고민하고 있다던가. ▷하지만 미국 남자가 평균 1달러를 벌 때 여자는 77센트밖에 못 벌고 있다. “성차별이다!”라는 주장도 있지만, 금융 경영 법학 의학 공학 등 돈 잘 버는 전문직종에 여성들의 진출이 적은 탓도 있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남녀 대학졸업자 성비가 52 대 48, 석사는 51 대 49로 바짝 다가섰다. 힘들게 딴 학위를 ‘장롱 학위’로 썩히지 않고 자아실현과 국리민복, 그리고 사랑과 결혼으로 연결시키려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연세대 의대 A 교수는 5년간 연구원들의 인건비를 공동 관리한다며 1억6000만 원을 개인용도로 썼다. 공대 B 교수는 연구원 인건비를 자신의 계좌로 옮겨놓고 7100만 원을 유용했다. 공대 C 교수는 연구원이 아닌 교수와 학생에게 6000만 원을 인건비로 줬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연세대 연구비 집행 실태를 감사한 결과 검찰에 고발한 사안이다. 연구비로 차에 기름을 800만 원어치나 넣는 등의 ‘가벼운’ 사안에 대해서는 경고, 주의에 그쳤다. ▷연세대는 서울대에 이어 두 번째로 연구비 지원을 많이 받는 대학이다. 2009년엔 2597억3200만 원을 받았다. ‘연구비관리 우수인증기관’인 연세대가 이럴진대 다른 대학은 어떨지 겁날 정도다. KAIST는 세 번째로 많은 지원(1932억2500만 원)을 받는다. 지난해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의 설문조사 결과 “약정됐던 연구인건비 전액을 받았다”는 응답은 21.2%에 불과했다. 상당수 연구실에선 ‘랩(Lab)비’라고 불리는 공동예산으로 연구인건비 일부를 떼는 일이 관행처럼 돼 있다. ▷교수들도 할 말은 있다. “연구비를 받는 순간부터 잠재적 범죄자가 되는 기분”이라는 한 교수는 “연구비 집행에 제약이 너무 많아 ‘걸면 걸리게’ 돼 있다”고 했다. 최근 자살로 KAIST 교육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더 키웠던 KAIST의 P 교수의 경우, 인건비 1억554만 원을 공동 관리하다 이 중 2214만 원을 유용한 것으로 교과부 감사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일각에선 “연초에는 예산 처리 문제로 연구비 지급이 안 되기 때문에 P 교수가 이때 쓰기 위해 따로 연구비를 떼어두었던 것 같다”고 추정한다. 규정을 어긴 것은 맞지만 연구실 운영상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지난달 각 대학의 산학협력단장과 연구처장들을 모아 ‘연구비 관리 및 집행의 투명성 제고’ 회의를 여는 등 연구비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개선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학과 국가의 연구개발(R&D)을 위해 국민 세금으로 보내준 연구비를 ‘눈먼 돈’쯤으로 아는 교수라면, 교수 자격이 없다. 현실에 안 맞는 내용으로 작은 꼬투리만 잡혀도 범법자가 될 수 있는 경직된 연구비 규정도 바꿀 필요가 있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오늘은 4·19혁명 51돌이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4·19혁명은 큰 분수령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3·15부정선거에 맞서 고등학생들까지 목숨을 걸고 일어나 민주주의를 향한 거보(巨步)를 내디뎠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은 외길로만 가지 않는다. 4·19혁명정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4·19 이전의 대한민국 건국과 국가 수호의 역사를 폄훼할 수는 없다.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한 건국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이 나라가 존재하기 어렵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은 역사의 진운(進運)을 읽는 혜안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였다. 한미동맹을 맺어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고 후세대가 경제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승만 리더십의 산물이었다. 독재의 과오는 4·19혁명에 의해 단죄됐다. 오늘의 풍요를 가져온 산업화 역시 박정희라는 걸출한 국가지도자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거나 지체됐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60년대와 70년대 국가 자원배분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경제개방과 수출주도 산업화를 강력하게 이끌어 ‘한강의 경제기적’을 이루었다. 41년 전인 1970년 4월 22일 새마을운동을 시작해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으로 농촌 근대화를 이끈 것도 박 전 대통령이었다. 그가 독재와 인권유린으로 국민에게 고통을 안겼고, 그의 재임 시에 정경유착의 뿌리가 내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過) 보다는 공이 컸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적에 힘입어 우리는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이들과 동시대에 한반도 북녘을 지배한 김일성이 남긴 ‘인간 지옥’과는 정통성을 비교할 가치조차 없게 됐다. 박정희 시대 이후 신군부세력에 의한 민주주의 역류(逆流)가 있었다. 이를 물리친 것은 ‘넥타이 부대’를 비롯한 건전한 민주시민 세력이었다. 1987년의 민주화는 위대한 국민의 승리였다. 2차 대전 후 독립한 나라 중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하고, 민주화를 함께 이룬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이제 대한민국은 건국 산업화 민주화에 이어 선진화로 나아가고 있다. 어떤 나라도 글로벌 풍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세계화 시대에 당당히 주요 20개국(G20)의 일원이 됐다. 다만 아직도 민주의식이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했고, 부정부패가 잔존하고 있으며, 시대착오적 이념으로 대한민국을 자해(自害)하는 세력도 있다. 이러한 장애를 극복해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라는 도도한 역사 그 자체가 진보(進步)다. 이른바 ‘진보’라고 자칭하는 좌파세력은 아직도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로 폄훼하고,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라는 역사발전을 진보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수구 좌파세력이다.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껴안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국민이야말로 진정한 진보의 주인공이다.}

다시 젊어질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인성계발에 지장 있는 성적위주 공부는 절대 안 할 작정이다. 하고 싶은공부를 하라는 정책에 따라 술 담배 및 연애가 중고교생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체험학습을 통해 공부하겠다. 80%가 넘는 대학진학률을 걱정하는 대통령을 생각하면 대학은 안 가야 옳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은 나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높이살지 모른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든든학자금)으로 대학을 마치되, 대출금 상환보다 저출산 문제해결이 중요하므로 취업이나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는 생기는 대로 낳을 생각이다. 기르는 걱정은 안 한다. 그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강제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했다. 다자녀 혜택으로 대학까지 보내려면 되도록 많이 낳아야 한다. 열심히 돈 벌어 애들에게 더 나은삶을 마련해줄 꿈은 안 꿀 테다. 복지혜택을 놓치는 건 물론이고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퍼뜨려 공동체를 해칠 우려가 크다. 이처럼나보다 사회를 앞세운 내가 남들만큼 잘살지 못한다면 그건 무조건 사회 책임이다. 엉뚱한 공상이라고, 인성교육을 못받은 탓이라고 비난하지 말기 바란다. 요즘 여야 할 것 없이 친(親)서민 정책을 앞다퉈 내놓는 걸 보면 내가 왜 그렇게 애쓰고살아왔을까 싶다. 정부가 다 해주겠다는데 굳이 책임 있는 시민답게 세금 내며 산 지난날이 억울하기 짝이 없다.내가 낸 혈세로 부패하는 ‘큰정부’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내가 꿈꾸는 인간형을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규정했다. ‘친서민 중도실용’과 ‘공정한 사회’를 표방한정부가 이런 인간형을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의 서민정책특별위원회는 국민의 70%를 서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민이든사회주의적 인간이든, 이들이 많은 사회에서 나와 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건 국가이지 내가 아니다. 혼자 열심히 공부하거나일하다간 공동체와 남에게 폐를 끼치므로 주의해야 한다. 신 교수는 “이런 사회에서 국민에게 필요한 덕목은국가를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그래서 서민이 잘살고 나라가 잘된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하지만 선거판이벌어질수록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판을 믿고 따라선 안 되는 이유가 명백해지고 있다. 첫째, 서민이 시민을 밀어내면서시민의식 대신 관존민비(官尊民卑)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가진다’는 헌법을 영역할 때 국민은 시티즌(시민)으로 쓴다. 시민사회는 신분적 구분이 없는 사회인 반면, 좌파가 쓰는 ‘민중’은억압받는 피지배계급이고 정부가 쓰는 ‘서민’ 역시 보호의 대상이다. 용어는 의식을 좌우한다. 사회를 구성하는개인이 독립한 인간으로서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시민의식이지만 정부로부터 더 많은 걸 얻어내야 한다는 게 서민정서다. 최근법제처는 공무원들의 월정 직책급 등이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보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림으로써 ‘관과 민은 다른계급’임을 분명히 했다. 21세기가 신(新)관존민비 시대가 됐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는 후퇴다. 둘째, 유능한관이 서민들을 잘살게 해주면 차라리 괜찮겠다. 글로벌 위기를 기화로 공공개혁은 물 건너가고 정부 역할이 커지는 추세다. 공조직이나눠줄 수 있는 이권과 특혜, 자원이 커질수록 부패는 커진다는 연구결과 및 실증사례는 너무나 많다. 탈세를 감독해야 할 국세청최고위 간부들이 뇌물을 받고, 국민의 대표로 뽑힌 국회의원은 이익집단의 로비자금을 받아 청부입법을 했다. 재계와 결탁해 거대한부패집단을 형성하는 정관계를 믿을 순 없다. 셋째, 부패한 관과 거지근성의 서민들로 선진국은커녕 지속가능한나라살림도 불가능하다. 물론 정부는 2011년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5.1%인 435조5000억 원으로 결코많은 수준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작년 10월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대로 금융성 기금과 준정부기관 및 공기업 부채에 정부의대민간보증까지 포함하면 GDP 대비 130%나 된다. 재정회계를 ‘마사지’해 국내외에 발표하다 결국 작년 구제금융에 손 내민그리스의 채무비율이 125%였다는 걸 떠올리면 소름이 돋을 판이다. 당신들을 위해 세금 바치기 싫다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서 큰 정부, 큰세금에 반대하는 ‘티파티’가 세를 과시했다. 재정 파탄의 아일랜드에서 2월 정권이 뒤집어졌고 포르투갈 스페인에서도 교체가예고되는 등 유럽에서도 티파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랍의 봄’도 독재자 패거리의 부패에 서민은 물론이고 군과 엘리트까지등을 돌리는 바람에 가능했다. 내가 낸 세금으로 퍼주기 공세에 열 올리는 여야 정치인들은 계산을 잘해주기 바란다.지금 서민들의 복지욕구가 거세 보이지만 순식간에 바뀌는 게 민심이다. 내년엔 당신들에게 세금 바치기 싫다는 시민들의 욕지기가 더커질 수도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16일 친(親)노무현 성향의 정치성 단체인 ‘시민주권’에서 주관하는 ‘4·19 민주올레’ 행사를 현장체험 학습으로 실시토록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민주주의와 인권 의식 고양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서울지역 중고교생 2000여 명의 참석을 사실상 독려했다. 외국 대통령이 방한(訪韓)할 때마다 중고교생들이 강제 동원돼 태극기를 흔들었던 독재정권 시대가 연상된다. 시민주권은 시민단체라고는 하지만 ‘노무현 가치 계승’을 목적으로 정치운동을 하는 단체다. 노 정권 때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씨 등이 관련된 이 단체는 4·2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야당 후보 단일화를 중재하는가 하면 내년 대선을 겨냥해 ‘진보집권을 위한 토론회’ 등을 개최하느라 바쁘다. 지난해 이 단체가 주관한 ‘4·19 민주올레’에는 한상렬 오종렬 진보연대 상임고문 등 광우병 쇠고기집회와 친북반미 시위에 단골로 등장하던 인물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작년 4·19 행사 당일에는 대표를 맡고 있는 이해찬 씨를 비롯한 야권 인사들과 좌파 시민단체들이 모여 “이명박 정권은 무능력한 부패 집단” “이 대통령 하야하라” 같은 구호를 외쳐 반(反)정부 정치집회를 방불케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번은 지난해와 달리 정치색을 일절 배제한 순수한 학생 행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민주권 측은 4·19혁명뿐 아니라 제주도4·3사건, 10·4남북정상선언 등을 기념하는 행사도 ‘민주올레’라는 돌림자로 열고 있다. 이 단체는 홈페이지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적어도 한 세대를 바라보는 안목으로 우리 진영을 준비하고 미래를 설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진영’이라는 말의 함의(含意)가 순수하지 않다. 정치적 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에서 정치색을 뺀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 교육감의 정치적 중립은 교육의 기본이며 법률이 요구하는 바다. 곽 교육감이 정치성향이 짙은 단체와 공동으로 정치성 집회를 주관하겠다는 이유가 궁금하다. 서울시교육감이 특정세력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4·27 재·보선을 앞둔 휴일에 학생들과 가족까지 동원하는 의도 역시 의심스럽다. 곽 교육감이 대체 어떤 목적으로 학생들을 편향된 이념의 집회에 끌어들이려는지 학부모와 학생들은 알 권리가 있다. 좌파 교육감들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온 국민이 감시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들이 당선무효 요건을 완화하고 정치자금은 대폭 허용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제 논에 물대기가 가관이다.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은 배우자의 선거법 위반에 따른 당선무효 기준을 벌금 300만 원 이상에서 700만 원 이상으로 바꾸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의 부인은 벌금 500만 원을 확정 받았지만 경과규정 없이 이 법안이 통과되면 김 의원은 내년 출마가 가능해진다.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위력을 발휘해 변호사 일자리를 1000개 이상 늘리는 준법지원인제 법안을 기습 통과시켜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지만 의원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선거법 위반에 대한 벌금 100만 원(후보자)과 300만 원(배우자와 선거사무장)은 의원직 유지와 상실을 가르는 기준선이다. 현행법상의 벌금을 기준으로 출마가 제한되는 의원을 법 개정을 통해 구제한다면 이는 사법부의 재판권을 짓밟는 입법이다. 의원들이 입법권을 자신들의 비리와 부패를 합법화하는 데 악용한다면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상층부는 거대한 부패사슬이라는 개탄이 나온다. 전 정권 말기와 현 정권 초기에 국세청장을 지낸 한상률 씨가 미국에서 23개월 도피생활을 하는 동안 국세청 현직 간부들은 10개 기업을 압박해 ‘자문료’ 명목으로 받아낸 5억여 원을 그에게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도대체 미국에 숨어 살며 한국에도 못 들어오던 사람이 기업에 무슨 자문을 한단 말인가.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대법관 퇴임 후 연간 100억 원까지도 벌 수 있다는 로펌에 가는 대신 대학으로 간 것이 미담이 됐을 만큼 사법부에는 전관예우(前官禮遇)가 만연하다. 전관예우는 시제(時制)만 미래형으로 연기한 전형적인 판검사 부패다. 국세청과 사법부, 검찰과 경찰, 각종 규제 및 허가권을 가진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들은 이 나라의 강고한 갑(甲)이다. 경험이 많은 어느 기업인은 “이들이 을(乙)의 위치에 있는 기업들에 빨대를 대고 돈을 거둬 윗사람들에게 전별금, 자문료, 떡값으로 전하는 관행이 공직사회에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걸려든 공직자가 집무실에서 뇌물을 받은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나 ‘그랜저 검사’ 같은 사람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공직사회의 부정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작년부터는 공정사회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그렇다면 정관계(政官界)와 법조계는 공정사회의 예외지대인가.}

왜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상처를 줄까. 부지런한 캐나다의 사회심리학자 라라 캠래스가 연구를 해봤다. 실제로 가장 긍정적 감정을느끼는 관계, 상대의 요구를 잘 아는 사람이 거창한 약속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는 분명 진심이었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피치못할 사정은 늘 생겨난다. 그래서 “약속과 계란껍질은 깨지라고 있다”며 변명하고 다툼 끝에 또 약속을 하곤 한다.정치인과 유권자는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어도 감정으로 얽힌 관계다. 투표와 결혼과 내 집 장만은 감정에 휘둘려 저지르는 일이적지않다. 이명박 대통령(이하 MB)의 동남권 신공항 공약도 좋게 보면 영남 유권자의 요구를 잘 알기 때문에 내놓은 약속이고,달리 보면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 분명하다. 신공항 백지화가 발표되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이하 박근혜)가“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유감스럽다”고 사실상 MB를 겨냥해 말했다. MB는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생각한다”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현재까지의 결과만 본다면 MB는 약속을 깬 정치인이고, 박근혜는 세종시에 이어 연거푸 신뢰의브랜드를 굳히게 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여론과 평가는 단순하지 않다. 부지런한 외국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인의일관성이 항상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아니라는 거다. 미국 대선을 앞둔 2007년 민주당 전초전에서 버락 오바마는초지일관 이라크전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이라크 침공에 찬성했다가 “상황이 바뀌었다”며 반대로 돌아선 힐러리클린턴도 크게 비난받지 않았다. 오히려 이라크전의 잘못을 일관성 있게 부인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더 나쁘다.“내 뜻과 맞으면 일관성 깨도 좋아”사람 심리가 그래서 희한하다. 유권자들은 정치인이 약속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말을 바꿨느냐 아니냐에 큰 관심이 없다. “중요정책에 대한 그 사람의 현재 입장이 내 의견과 같으면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이고 아니면 못 믿을 정치인이라고 본다”는 게 미국마이애미대 힐러리 호프먼 심리학 교수의 연구결과다. 더구나 보통사람들은 정책 내용과 파장을 깊이 알지 못하고자신이 선호하는 정치인의 정책판단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그 선호하는 정치인은 가만 보면 자기와 가치관이나 이해관계가 대체로비슷하다. 현실주의자는 현실주의적 리더가, 이상주의자는 이상주의적 리더가 옳다고 보는 식이다. 그러니 MB와박근혜에 대한 평가도 사람마다,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경제성을 이유로 동남권 신공항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사람들은 MB의공약 파기를 대통령다운 결단으로 평가하는 반면, 정치인의 신뢰나 지역발전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공약 수호를 외치는 박근혜 편이다.세종시 논란도 비슷했다. MB는 세종시를 반쪽 행정수도보다 교육과학중심도시로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수정안을 내놨다.반면 박근혜는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생기는 손실에 비하면 세종시 수정안으로 인한 행정 비효율은 훨씬 작을 것”이라며 수정안반대를 이끌어냈다. 지금도 MB 판단이 옳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내년 정부기관 이전이 본격화되면 시작될 재앙을걱정하고 있다. 현실적 실용적 논리적 성향을 지녔다는 점에서 MB와 닮은꼴 사람들이 그쪽이다. 이들에게는 박근혜의 원칙 고수가융통성 없는 독선이나 다름없다. 거꾸로 박근혜가 옳다고 믿는 사람들은 경제성만 따지는 ‘MB족’을 속물로 본다. 지역주민의절절한 정서와, 균형발전이라는 이상이 걸린 사안을 뒤집어선 안 된다고 여기는 점에서 이들은 박근혜와 성향이 흡사하다.결국 MB와 박근혜의 불일치는 가치관의 충돌이다. 어떤 리더, 어떤 공약을 선택했는지도 각자가 지닌 가치의 반영이었다. 어떤가치만이 옳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약속을 깨는 게 옳은가 그른가를 가리는 것도 쉽진 않다. “결과만 좋으면 대통령의거짓말도, 공약(空約)도 괜찮게 평가된다”는 게 ‘리더는 왜 거짓말을 하나’라는 책을 쓴 미 시카고대의 존 미어샤이머 정치학교수의 분석이다. 세종시나 신공항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은 가능해도 누가 확실히 알 수 있겠나.남의 세금으로 함부로 공약 말라 지금 문제를키우는 사람은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마찰 속에서 고민하는 정치꾼들인 것 같다. 어느 줄에 서야 다음 선거에 유리할지 계산이복잡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국정에 정력을 쏟는 게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과학벨트 선정이나 ‘MB정부 성공과 정권재창출 협조 약속’을 놓고서도 가치 논쟁, 이념 전쟁으로 확대시킬까 겁난다. “내 사랑을 알아달라”며 외치고다니는 정치인들에게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제발 돈 들어가는 약속은 함부로 하지 말기 바란다. 그 대신 ‘부패 척결’처럼,정치판의 의지만 있으면 지킬 수 있는 공약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당신들의 애정을 믿을 수 있겠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투표에 참여해서 망국적 포퓰리즘 좀 막아 보려고 하는데 어디서 할 수 있는지, 절차 좀 알려주세요.” 서울시교육청의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주민투표에 대해 한 서울시민이 인터넷에 질문을 올렸다. 서울시나 구청 홈페이지에는 관련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나한테 물어도 대답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투표법 11조는 ‘공무원(그 지방의회의 의원 제외)은 서명요청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만일 오 시장이 “○○에서 하면 된다”고 알려줄 경우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 ▷서울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준다는 다산콜센터 120에 전화하면 “관련 시민단체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전화번호와 함께 알려준 ‘국민운동본부’를 네이버 주소창에 치면 맨 위에 뜨는 것이 ‘학교급식법개정 국민운동본부’다. 여기에선 ‘친환경 무상급식 범국민 서명’이라는, 정반대의 운동을 벌이고 있다. 다산콜센터가 알려준 전화번호(02-747-0191)로 통화해야 “다음 주에 홈페이지를 열 것이고, 회원 가입을 하면 우리가 직접 찾아가 서명을 받을 예정”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다. 이 민간기구가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다. ▷무상급식 반대 서명을 한번 하려면 이처럼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도 국민운동본부는 어제 “2월 8일 서명운동에 착수한 이후 오늘까지 12만4500명이 서명에 참여했다”고 중간집계 결과를 발표했다. 시민을 상대로 서명을 받을 수 있는 서명요청권 위임자도 3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운동본부 측은 8월 초까지 주민투표 실시에 필요한 41만8000명(서울시 유권자의 5%)의 서명을 무난히 받을 것으로 본다. ▷전면 무상급식 도입을 주도해온 서울시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은 주민투표 운동을 겨냥해 “시의회가 결정한 사안에 대해선 주민투표를 할 수 없다”는 개정조례안을 최근 발의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한다는 지방의회가 주민투표라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원천 봉쇄하려는 사고방식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서울시의회 의원들은 부잣집 자녀들에게 세금으로 공짜 점심을 주는 대신에 진정으로 서민의 자녀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참여연대 등 일부 좌파 단체와 인사들이 ‘시민사회 각계인사’라는 이름으로 어제 “천안함 진상조사 작업은 부실했다”며 “침몰 원인에 대해 납득할 만한 추가조사와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현백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조국 서울대 교수 등 97명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측의 시인과 사과를 남북군사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명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북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에 타고 있던 46명의 용사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사과도 요구하지 말고 북의 치고 빠지기 식 대화 제의에 끌려다니란 말이나 다름없다. 참여연대는 작년 5월 5개국 합동조사단의 공동조사 내용에 의혹을 제기한 ‘천안함 이슈리포트’를 냈고, 6월에는 “한국 정부의 조사과정에 의문이 많다”는 서한과 함께 이 리포트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인 멕시코 등 15개 이사국에 보냈다. 리포트 작성을 주도한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은 자체 실험이나 외부 전문기관에 실험 의뢰도 하지 않았다고 최근 밝혔다. ‘시민사회 각계인사’들은 신뢰성 낮은 의혹을 짜깁기한 리포트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부당한 압력 운운하며 “언론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강변했다. ‘괴담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고, 괴담에 대한 비판은 언론자유 탄압이라는 해괴한 논리다. 중국 측은 천안함 폭침 이후 우리 측 인사들에게 북한 소행임을 사실상 인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우리는 ‘누가 했다, 안 했다’를 말한 적이 없다. ‘북한이 안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들 아니냐”고 되받았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를 보더라도 한국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의 73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민군(民軍) 합동조사단의 최종 결론을 부인하는 일부 좌파들은 한국의 외교력을 심대하게 약화시키고 국가 안보의 둑을 허물고 있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좌파 인사들이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사실과 과학을 존중하는 태도 없이 일방적으로 북측을 편드는 언행을 계속하는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남측에 이런 비호세력이 있으니 북은 도발을 하면서도 마음 든든할 것이다. ‘시민사회 각계’라는 명칭은 국민을 혼란시킨다. 그들은 천안함이 폭침당하든, 연평도가 포격을 당하든, 북한 주민이 굶어죽든 말든, 언제나 북한 편을 드는 친북 인사들이다.}
동반성장위원회 출범 전까지 기업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중소기업협력센터 등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모색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기업에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촉구하자 정부는 하반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전략’을 내놓고 동반성장위를 출범시켜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 장관급 위원장을 맡겼다. 정부가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하던 일과 예산을 가져다가 위원회를 만든 것도 기이하지만 민간기구의 대표에 전직 총리를 낙하산으로 내려 보낸 것도 위인설관(爲人設官)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반성장위의 출범과 인선 절차를 보면 이 정부에 상생의 경제를 할 진정성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정 위원장이 주창하는 ‘대기업 초과이익 공유제(共有制)’는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애매한 개념이다. 일부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 탈취 같은 불공정 행위는 시정돼야 한다. 그러나 초과이익 공유제는 시장경제 원칙을 벗어난 좌파적 제도라는 비판이 경제계에서 들끓었다. 정 위원장도 여러 차례 해석을 바꿀 만큼 분명한 개념 정립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비판이 이어지자 그는 “주무 장관이 방해하는 건 일하지 말라는 의미다. 정부에 동반성장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발끈했다. 당장 사퇴할 듯 날을 세우던 정 위원장이 어제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물러섰다. 정부는 부랴부랴 동반성장위 예산을 편성하고 인력을 두 배로 늘려주며 달래는 모습이다. 여권이 정 위원장에게 목매다는 진정한 이유가 동반성장이 아닌 정치적 고려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정권을 창출하고도 마땅한 대권후보를 내지 못하고 있는 친이명박 세력이 충청 출신으로 총리를 지낸 정 위원장을 ‘박근혜 대항마’로 키우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 위원장도 재벌 때리기 같은 포퓰리즘과 ‘사퇴 배수진’이라는 정치적 쇼를 통해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정 위원장은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도 반(反)한나라당 쪽으로 출마를 저울질하며 여러 번 말을 바꾼 적이 있다. 모두 박수를 치며 꽃가마를 태워줘야만 분당을이든 대선이든 나설 사람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우유부단한 학자 출신이 대권주자로 성장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그가 ‘응석’을 부릴 때마다 쩔쩔매는 여권의 조정력 결핍은 무척 실망스럽다. 정치인으로서의 자질도, 리더로서의 능력도 검증받지 못한 명망가를 위해 국정의 진을 빼는 정부를 보며 국민은 피곤하다.}

“제가 촘스키에 비견될 사람은 아니지만…ㅋㅋㅋ”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며칠 전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한 팔로어가 “놈 촘스키는 존경한다면서 조 교수더러 출마해라 또는 애들이나 가르쳐라 하는 이들이 참 이상하고 신기함” 하고 쓴글을 소개하며 웃음소리까지 넣었다. 저명한 지식인과 비견돼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 같다.“좌파의 말 아닌 행동을 따르시오” 조 교수가 ‘강남좌파’(좌파적 발언을 하는 고학력 중산층)의 아이콘이라면 미국 ‘리무진 리버럴’(부자 좌파)의 대명사는 놈 촘스키다.‘불량국가’ ‘정복은 계속된다’ 같은 반미·반자본주의 책에서 미국 대통령부터 다국적기업까지 거침없이 비판해왔다. 책만 보면양심적 지성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겉과 속, 공(公)과 사(私)가 너무나 다른 게 문제다.리무진 리버럴이라는 말도 분배 같은 좌파의 가치를 외치면서 실제론 고급차를 타고 자신의 부는 결코 분배하지 않는 위선을 비꼰조어다. 미국에선 “이런 좌파들의 말은 따라 하지 말고, 하는 짓을 따라 하라”는 책도 나왔다. 조 교수가말하는 공정, 정의, 복지 같은 이른바 진보 가치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스스로 강남 좌파임을 밝히고서 “자신이 속한 계급에반(反)하는 말과 행동을 일관되게 보여준다면 대중은 좋아하고 밀어준다”(‘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라고 쓴 담대함도 인상적이다.하지만 자기 딸을 외국어고를 거쳐 이공계 대학에 진학시키고는 “나의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결국 아이를 위해양보하게 되더라”고 털어놓은 경향신문 인터뷰를 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을 공부기계로 만드는 현 교육체제를 바꾸려면일차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줄여야 한다”던 그의 글만 믿고 따라 한 학부모나 학교가 있었다면 완전 뒤통수 맞은 거다.딸을 외고 보내고도 ‘외고 죽이기’에 앞장섰던 노무현 정권 때의 김진표 교육부총리와 참 많이도 닮은 사람이 ‘진보집권 플랜’을내놓다니, 그게 어떤 정권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민주당은 조 교수 식의 강남 좌파가 4·27 국회의원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경기 성남 분당을에서 통한다고 본 모양이다. 서울 강남처럼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 가능했던 지역이었지만1, 2년 전부터 한나라당 지지도가 떨어지는 추세다. 아파트 값은 떨어졌고, 온갖 규제는 여전하며, 정부도 능력을 보이지못했다. 그렇다고 경기의 강남을 자부하는 곳에 민주당이 맹목적 평등과 종북(從北)을 외치는 수구 좌파 후보를 낼 수도 없다. 조교수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거론되다 손학규 대표 차출론이 거세진 것도 이 때문일 터다. 깨어있는 우파라면 말해야 한다 여권에서 정운찬전 총리 카드를 만지작거린 데는 그가 전혀 수구 보수적이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본다. 어쩌면 정 전 총리야말로 말로는초과이익공유제를 주장하면서 개혁의지나 능력 없이 ‘꽃가마’만 기대했던 진짜 강남 좌파일지 모른다. 이런 강남 좌파가 분당지역에서 통할지는 미지수다. 분당 사람들은 강남 좌파의 위선을 충분히 알아챌 만한 학력과 전문직, 생활수준을 갖고 있어 쉽진 않을 것 같다. 그들은 강남 사람들처럼 체질적으론 우파지만, 기득권 수호에만 급급하지 않다는 점에서 수구 우파와 거리가 있다. “우파가 이래선안 된다”는 위기의식은 커졌어도 젊은 날 매료됐던 좌파 이데올로기에 미련 두진 않는다는 점에서 강남 좌파와도 다르다. 이념 대신이익을 챙기되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중시하는 합리적 실용적인 ‘분당 우파’다. 그들이 강남 좌파처럼 자신의 신념을외치지 않고, 강남 좌파가 틀렸다고 나서지도 않는 이유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실력 위주로 살아온 분당 우파에게 ‘공부 열심히해야 성공한다’같은 명제는 ‘운동해야 건강하다’는 것처럼 당연해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 정부나 공교육이 못해줘도 스스로 해결할능력도 있다. 자신들이 나선다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들은 편하겠지만 그들만못한 사람들은 몰라서,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정부나 강남 좌파를 믿다 더 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분당 우파는무책임하다. 장하준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그냥 말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은 한경제학 교수도 분당에 산다. 민주당은 아파트 값이 많이 내린 분당을 겨냥해 열흘 전 리모델링 활성화 법안을당론 발의했다. 여권에서도 비슷한 대책을 내놓을 분위기가 감지된다. 분당까지 인물 아닌 포퓰리즘으로 겨룬다면 선거 때마다 또다른 세종시나 신공항이 넘쳐날 판이다. 여야가 어떤 후보를 내놓느냐, 분당이 어떤 인물을 선택하느냐가 ‘미리 보는 2012년대선’이 될 수도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장병완 민주당 의원이 그제 채널A의 2개 주요 주주사에 대해 허위 주장을 늘어놓으며 종합편성채널 선정에 의혹이 있는 듯 몰아가 물의를 빚었다. 현장에서 발언이 잘못됐다는 증거가 제시되자 장 의원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편 심사 관련 자료를 국회에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전형적인 ‘아니면 말고’에 고질적인 ‘남 탓’이다. 국회의원은 기업 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모두 볼 권리가 있고, 관계기관은 이를 다 공개해야 할 의무라도 있단 말인가. 이런 행태는 의원의 독선을 넘어 국회 독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방통위에 공개 의무가 없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장 의원은 자신이 해야 할 기초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면책특권을 방패 삼아 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발언을 무책임하게 하는 것은 악의(惡意)가 있거나 의원 자질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면책특권은 국민과 국가에 이익이 되는 의정 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이지, 의원의 무책임한 허위 폭로를 보호하기 위한 면피성 특권이 아니다. 우리는 본사와 관련된 문제라 오히려 침묵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허위 주장을 악의적으로 확산시키려는 세력이 있어 우리의 의견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장 의원의 주장이 허위임이 명백해졌는데도 그대로 옮겨 허무맹랑한 보도를 하는 일부 좌파매체의 행태도 묵과할 수 없다. 동아일보사는 보도 자료를 통해 “장 의원은 2개 주주사가 2010년 11월 이사회를 열어 동아일보 컨소시엄에 참여키로 결의하고 방통위의 종편 심사 전 이사회 의사록을 방통위에 제출한 사실을 간과했다”며 종편 참여 과정이 적법했음을 충분히 소명했다. 장 의원이 결국 “이사회 결의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는데도 경향신문은 장 의원의 당초 허위 주장만 인용해 보도했다. 허위임을 알고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언론기관인가. 이것은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가 있는 보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장 의원이 엉터리 주장을 들고나온 진정한 의도가 궁금하다. 그는 2007년 기획예산처 장관 당시 이듬해 예산안에서 관리대상수지 적자 전망을 1조 원 이상 틀리게 발표해 그해 9월 20일 “재정수지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통계인데 오류를 막지 못했다”고 사과한 장본인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도 국민 앞에서 허위 주장으로 불신을 증폭시키는 오류의 정치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최시중 방통위원장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내면서 장 의원의 허위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 민주당이 의원들을 동원해 종편 출범을 훼방하려 든다면 단호히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중국은 짝꿍 복(福)도 많다. 2000년대 중반 중국과 미국을 합쳐 만든 신조어 차이메리카(Chimerica), 중국과 인도를 합쳐 나온 친디아(Chindia)에 이어 이번엔 처머니(Chermany)다. 지난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가 수출대국 1위 중국과 2위 독일(2009년)을 묶어 만든 말이다. 처머니엔 공통점이 많다. 다들 글로벌 위기에 허덕일 때 수출로 벌떡 일어선 점이 같고, 제조업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점도 비슷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독일이 유럽의 중국이 됐다”고 평가했다. ▷처머니가 수출로 돈을 번 이면엔 무역수지 적자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있게 마련이다. 재정위기를 겪는 나라들의 눈에 독일이 곱게 보일 리 없다. 대미 수출로 돈 벌어 막대한 달러를 쟁여둔 중국에 대해 미국이 갖는 감정과 비슷할 터다. 구멍 난 재정을 미국은 달러를 찍어 메울 수 있지만 유럽은 다르다. 당장 구제금융 재원을 확충해야 하는데 여력이 있는 나라는 독일뿐이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에선 “우리 덕에 돈 벌었으니 돈 좀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허리띠를 졸라매 성공한 독일에 대해 흥청망청 살아온 나라들이 뒤늦게 손 내미는 형국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도움을 받고 싶으면 우리를 본받으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재정건전성을 지키고,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추는 복지개혁을 하고, 임금인상을 자제하라는 ‘경쟁력 협약’이다. 반론이 불같이 일어났다. 유로화가 깨지면 손해 볼 것이 분명한 독일이 결국 처벌규정을 뺀 ‘유로협약’으로 물러섰다. 그 결과가 바로 닷새 전 브뤼셀 긴급정상회의에서 합의한 유로존 재정안정기금(EFSF) 실질대출여력 확대다. ▷‘유럽의 환자’였던 독일이 불사조같이 일어난 큰 요인은 2000년대 초반 시행한 ‘어젠다 2010’ 개혁이었다. 감세와 복지 축소, 노동유연성 등 보통 우파가 주장하는 정책이어서 “좌파 총리가 노조를 죽였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뒤를 이은 우파정부는 글로벌 위기가 닥치자 기업에 임금보전 지원금을 주어 실업률을 낮추고 기술인력도 지킬 수 있었다. 이념과 상관없이 유능하고 비전 있는 리더를 지닌 처머니가 부럽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동일본 대지진의 후폭풍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망 및 실종자가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수십만 명이 일주일 가까이 힘겨운 대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파장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어제 아키히토 일왕이 1989년 즉위 이후 처음으로 대(對)국민 메시지를 내놓은 것도 사태의 심각성과 엄중함을 시사한다. 아키히토 일왕은 TV로 방영된 비디오 메시지에서 “원전 상황이 예단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데 관계자들이 전력을 다해 사태 악화를 막아 달라”고 말했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키운 것은 후쿠시마 제1원전 관리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의 무능과 안이한 대응이었다. 간 나오토 총리는 그제 “TV에서 (원전이 폭발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는데 총리 관저에는 1시간 정도 연락이 없었다”며 도쿄전력을 질책했다. 국가적 위기를 맞아 특유의 절제된 모습을 보여 온 일본 국민과 언론도 도쿄전력에 대해서는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이 회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일본 정부에도 국민적 분노가 옮겨가면서 간 총리는 그동안 도쿄전력에 맡겼던 원전사고 수습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일본 최대 전력업체인 도쿄전력은 원자로 폭발 및 화재사고에 대한 정보 공개와 정부 보고조차 철저히 하지 않았다. 원전에서 불이 났는데 119에 불을 꺼달라는 황당한 신고를 했고, 폭발로 인한 방사성 물질 누출 위험이 예상되는데도 원전 주변에서 작업하던 자위대에 통보하지 않았다. 증시에 상장된 민간기업인 도쿄전력이 주가 폭락을 우려해 정보 공개에 소극적이었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원자로 안에서 증기가 발생하는 후쿠시마 원전과 달리 한국 원전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가 분리된 구조여서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정부와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은 ‘도쿄전력의 실패’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원전 운영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돼야 마땅하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국의 발전(發電) 전력량에서 차지하는 원자력발전의 비율을 2010년 31.1%에서 2024년까지 48.5%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원전 확대는 불가피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더 중요해졌다. 정부와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은 미증유의 재난에도 견뎌낼 수 있는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