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日 원전 대응의 허점과 日王의 이례적 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7일 03시 00분


동일본 대지진의 후폭풍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망 및 실종자가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수십만 명이 일주일 가까이 힘겨운 대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파장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어제 아키히토 일왕이 1989년 즉위 이후 처음으로 대(對)국민 메시지를 내놓은 것도 사태의 심각성과 엄중함을 시사한다. 아키히토 일왕은 TV로 방영된 비디오 메시지에서 “원전 상황이 예단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데 관계자들이 전력을 다해 사태 악화를 막아 달라”고 말했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키운 것은 후쿠시마 제1원전 관리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의 무능과 안이한 대응이었다. 간 나오토 총리는 그제 “TV에서 (원전이 폭발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는데 총리 관저에는 1시간 정도 연락이 없었다”며 도쿄전력을 질책했다. 국가적 위기를 맞아 특유의 절제된 모습을 보여 온 일본 국민과 언론도 도쿄전력에 대해서는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이 회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일본 정부에도 국민적 분노가 옮겨가면서 간 총리는 그동안 도쿄전력에 맡겼던 원전사고 수습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일본 최대 전력업체인 도쿄전력은 원자로 폭발 및 화재사고에 대한 정보 공개와 정부 보고조차 철저히 하지 않았다. 원전에서 불이 났는데 119에 불을 꺼달라는 황당한 신고를 했고, 폭발로 인한 방사성 물질 누출 위험이 예상되는데도 원전 주변에서 작업하던 자위대에 통보하지 않았다. 증시에 상장된 민간기업인 도쿄전력이 주가 폭락을 우려해 정보 공개에 소극적이었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원자로 안에서 증기가 발생하는 후쿠시마 원전과 달리 한국 원전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가 분리된 구조여서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정부와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은 ‘도쿄전력의 실패’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원전 운영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돼야 마땅하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국의 발전(發電) 전력량에서 차지하는 원자력발전의 비율을 2010년 31.1%에서 2024년까지 48.5%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원전 확대는 불가피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더 중요해졌다. 정부와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은 미증유의 재난에도 견뎌낼 수 있는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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