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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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25~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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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시록적 공포속 강렬한 예술의 힘”

    올해 노벨 문학상은 ‘묵시록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사진)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 시간)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게 만드는, 강렬하고도 예지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헝가리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2002년 케르테스 임레(1929∼2016) 이후 23년 만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현지 라디오를 통해 “매우 기쁘면서도 평온하고, 긴장된다”며 “오늘은 내가 노벨상 수상자가 된 첫째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2월 스웨덴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선 “상을 받으면 놀라울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주목이라고? 오늘 스톡홀름의 한 약국에 갔더니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라봤다”고 했다.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난 작가는 부다페스트대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몽골 등에 체류하며 작품을 썼다. 2015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로 같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폐허와 종말이라는 주제를 특유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형식으로 담아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림원은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라며 “그의 세계는 동양으로 시선을 돌려 보다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를 취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 국내에도 출간된 대표작 ‘사탄탱고’(1985년)는 헝가리 남동부의 버려진 집단농장 마을이 배경인 소설이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체제에 유린당하고 끝내 고통의 굴레에 갇히는 과정을 그려냈다. 1994년 헝가리 영화감독인 터르 벨러가 동명의 흑백영화를 제작했으며, 상영 시간이 7시간 반(439분)에 이른다. 2015년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영국 작가 머리나 워너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음역을 가진 몽상가적 작가”라며 “겁나고 낯설면서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웃긴 장면을 만들어 낸다”고 평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작품이 지닌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고 했다. 국내에 그의 소설은 ‘사탄탱고’를 비롯해 ‘저항의 멜랑콜리’(1989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년) 등 6권이 번역 출간돼 있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을 번역한 노승영 번역가는 “인류 역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라고 했다. 국내 출간된 작가의 소설을 모두 펴낸 출판사 알마의 안지미 대표는 “가장 큰 특징은 만연체 문장으로, 소설 ‘라스트 울프’는 하나의 문장으로 이뤄졌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헝가리 문학 전문가인 김보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은 “서사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무게감이 있고, 탄탄하면서도 깊게 심리를 파고드는 작가”라고 설명했다. 노벨 문학상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6억5000만 원)다. 관례에 따르면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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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문학상에 ‘묵시록 문학의 대가’ 헝가리 크러스너호르커이

    올해 노벨 문학상은 ‘묵시록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에게 돌아갔다.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 시간)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게 만드는, 강렬하고도 예지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헝가리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2002년 케르테스 임레(1929~2016) 이후 23년 만이다.크러스너호르커이는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현지 라디오를 통해 “매우 기쁘면서도 평온하고, 긴장된다”며 “오늘은 내가 노벨상 수상자가 된 첫째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2월 스웨덴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선 “상을 받으면 놀라울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주목이라고? 오늘 스톡홀름의 한 약국에 갔더니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라봤다”고 했다.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난 작가는 부다페스트대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몽골 등에 체류하며 작품을 썼다. 2015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로 같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크러스너호르커이는 폐허와 종말이라는 주제를 특유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형식으로 담아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림원은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라며 “그의 세계는 동양으로 시선을 돌려 보다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를 취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2018년 국내에도 출간된 대표작 ‘사탄탱고’(1985년)는 헝가리 남동부의 버려진 집단농장 마을이 배경인 소설이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체제에 유린당하고 끝내 고통의 굴레에 갇히는 과정을 그려냈다. 1994년 헝가리 영화감독인 터르 벨러가 동명의 흑백영화를 제작했으며, 상영 시간이 7시간 반(439분)에 이른다.2015년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영국 작가 머리나 워너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음역을 가진 몽상가적 작가”라며 “겁나고 낯설면서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웃긴 장면을 만들어 낸다”고 평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작품이 지닌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고 했다.국내에 그의 소설은 ‘사탄탱고’를 비롯해 ‘저항의 멜랑콜리’(1989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년) 등 6권이 번역 출간돼 있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을 번역한 노승영 번역가는 “인류 역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라고 했다. 국내 출간된 작가의 소설을 모두 펴낸 출판사 알마의 안지미 대표는 “가장 큰 특징은 만연체 문장으로, 소설 ‘라스트 울프’는 하나의 문장으로 이뤄졌을 정도”라고 소개했다.헝가리 문학 전문가인 김보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은 “서사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무게감이 있고, 탄탄하면서도 깊게 심리를 파고드는 작가”라고 설명했다.노벨 문학상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6억5000만 원)다. 관례에 따르면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5-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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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재, 한국인 첫 ‘찰리 채플린 어워드’ 수상

    배우 이정재(53·사진)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필름 앳 링컨 센터(FLC·Film at Lincoln Center)에서 수여하는 공로상인 ‘찰리 채플린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 배우의 소속사인 아티스트컴퍼니는 “3일(현지 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찰리 채플린 어워드 아시아’ 시상식에서 이 배우가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찰리 채플린 어워드는 미 뉴욕에 있는 FLC가 1972년 전설적인 배우 찰리 채플린이 망명 생활을 마치고 미국에 귀국한 것을 기념해 제정한 상이다. 첫해 채플린이 받은 뒤로 세계 영화계에 공헌한 인물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이 상은 2018년부터 아시아 부문이 신설돼 해마다 수상자를 발표해 왔다. 지금까지 장이머우(張藝謨) 감독과 배우 량차오웨이(梁朝偉) 등 중화권 영화인들이 주로 받았으며, 한국인이 받은 건 처음이다. 이 배우는 “존경하는 영화인이자 예술가, 아티스트인 찰리 채플린의 이름으로 주는 상을 받으니 긴장되고 무게감 때문에 더 떨린다”며 “아시아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 배우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 뒤, 해당 작품으로 2022년 제74회 미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영화 ‘스타워즈’의 스핀오프 드라마인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콜라이트(The Acolyte)’에 출연하기도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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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고만 있어도 시선을 끈다… 한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출판사 ‘에디토리알 화랑(Editorial Hwarang)’이 근래 발간한 번역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표지에 온통 한글이 가득하다. 양복을 입은 남성이 담배를 피우는 삽화를 실었는데, 담배 연기 속을 ‘거리’ ‘진통’ ‘낙조’ 같은 한글이 채우고 있다. 서예가가 쓴 한글을 스캔해서 만들었는데, 해당 출판사는 현지에서 한국 작가들의 책을 출간할 때 꼭 표지에 한글 제목을 넣는다고 한다.최근 K콘텐츠가 글로벌 히트를 치면서 한글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해외 출판사들도 한국 문학 등을 소개하며 한글을 현지 언어보다 더 크게 쓰거나 전면에 배치하는 경우가 잦다. 한국 화장품이나 음식 포장지에 한글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9일 한글날이 579돌을 맞은 가운데, 한글의 디자인적인 주목도가 글로벌 시장에서 갈수록 높아지는 모양새다.● “한글 써야 현지에서 좋아해”출판사 에디토리알 화랑의 경우엔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단어를 한글로 표지 곳곳에 넣기도 한다. 4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 응한 니콜라스 브라에사스 대표는 이에 대해 “특히 30세 이하 현지 독자들에겐 한글의 인지도가 매우 높다”며 “서점에 진열된 수천 권의 책 가운데서도 한글은 세련된 차별성을 부여한다”고 설명했다.프랑스의 ‘드크레센조(Decrescenzo)’ 출판사도 지난해 프랑스인이 한국의 사진 작품을 해설한 에세이 ‘빛을 향한 여행’ 프랑스판에서 ‘골목’이란 글자를 표지 전면에 바둑판식으로 배치했다. 프랑크 드크레센조 대표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의미를 지닌 골목의 가치를 강조하고 싶었다”며 “표지엔 한국어의 고유한 문자 체계인 한글을 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다”고 했다.‘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등을 번역 출간한 브라질 출판사 인트린세카(Intr´inseca)의 레베카 볼리테 편집국장 역시 “브라질은 K드라마, K팝 팬층이 두꺼워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며 “한국 작가들의 책이 K컬처 팬들에게 쉽게 인식될 수 있도록 원서 표지의 요소를 가급적 유지한다”고 했다.해외에서 작품의 현지화(Localization) 대신 ‘한글화(Hangeulization)’가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서구 출판계가 우리 책을 번역 출간할 때 ‘오리엔탈리즘’(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왜곡된 인식과 태도)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상황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이전에는 책 내용과 무관하게 여성이나 한복 차림의 인물 등을 표지에 사용하곤 했다. 브라에사스 대표는 “이제는 한글의 사용이 한국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훨씬 더 진정한 방법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한글, 트렌드와 감각의 문화적 언어”해외로 수출되는 각종 소비재에서도 한글은 강력한 브랜드 정체성(BI)을 발휘하고 있다. 농심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측과 지식재산권(IP) 사용 계약을 맺고 지난달부터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신라면 패키지에 캐릭터와 한글을 노출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비비고’ BI를 바꾸면서 영문 표기만 있던 로고에 한글을 추가했다. LG생활건강도 미국과 캐나다, 일본 시장에서 화장품 브랜드 ‘강남글로우(Gangnam Glow)’에 한글을 병기하고 있다.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은 “한글은 직선과 동그라미라는 간결한 도형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술적·디자인적 가치가 매력을 끈다”며 “한글 자체가 가진 기하학적 예술성에 K팝이나 K드라마의 인기가 합쳐지면서 한글은 ‘트렌드’와 ‘감각’을 상징하는 문화적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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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단어라는 피리를 불 뿐… 그 소리 홀린 분들이 따라오죠

    소설가 구병모(49)는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데뷔할 때부터 매일 10∼20쪽씩 사전 읽기가 취미였다. 27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라, 들고 다니기도 벅찬 두꺼운 탁상용 사전이었다. ‘파과’ 같은 낯선 단어 제목의 작품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그의 힘이 어쩌면 이런 사전 탐독에서 나온 건 아닐까. 지난달 펴낸 신작 장편소설 ‘절창’(문학동네)도 마찬가지다. 예령(豫鈴·시각을 알리는 종), 오언(烏焉·모양이 비슷해 틀리기 쉬운 글자), ‘분요(紛擾·요란스럽다)’ 등 낯선 단어의 향연이다. 독자 후기를 보면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동아일보 전화 인터뷰에 응한 구 작가는 “독자들께서 계속 사전을 찾게 만든다는 점에서 죄송하기도 하다”면서도 “이번에 조금 고생해서 사전을 찾다 보면 다른 책을 읽을 때는 걸림돌이 전혀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소설은 ‘상처를 만지면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다뤘다.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초감각능력)의 매개가 ‘상처’라는 발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사이코메트리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나아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구 작가는 “우리는 타인이란 텍스트를 늘 오독하지만, 계속 실패할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읽어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며 “아마 그건 인간의 본능일 것”이라고 했다. 보통 이런 장르에서 주인공은 경찰 수사를 돕거나 사회적으로 유용한 방향으로 능력을 활용한다. 하지만 구 작가는 이런 설정을 거꾸로 뒤집는다. 만약 초능력이 철저히 나쁜 일에만 쓰인다면?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소설가들이 글을 쓰며 답을 찾는 경우는 드물어요. 오히려 함께 고민하고 싶어 계속 질문을 소설로 던지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답을 찾았다, 유레카!’ 한다면, 그 순간 이후로는 오히려 글을 쓸 동력을 잃지 않을까요? 하하.” 실은 제목인 ‘절창(切創)’도 낯선 단어다.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라는 뜻이다. 역시 일상에선 잘 쓰이지 않는다. 그는 “처음 출판사에 제목을 가져갔을 때, 절창(絕唱)인 줄 알고 ‘명창’이나 ‘서편제’가 먼저 떠오른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마침 원고를 넘길 당시는 그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파과’가 개봉한 직후였다. 구 작가는 “파과라는 단어 역시 일상에서 흔히 쓰이지 않지만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었던 경험이 있으니, 절창도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탁상용 사전이 2000쪽이라고 하면, 우리가 평생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지나치는 낱말이 훨씬 더 많잖아요. 아예 쓰이지도 못하고 덮이는 말들이 너무 아까워요.” 낯선 단어가 독서의 장벽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구 작가의 팬들은 사전을 찾아가며 소설을 읽는다. 어떤 독자는 단어장을 따로 만들어 정리해 가며 읽는다고 한다. 구 작가는 “제 방식이 마음에 드는 독자들이 꾸준히 모이고 있는 것 같다”며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계속 피리를 불고 있고, 그 소리가 마음에 드는 분들이 따라오는 느낌”이라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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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회 인촌상 시상식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39회 인촌상 시상식이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30일 열렸다. 인촌상은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유지를 이어 나가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이진강)와 동아일보사는 인촌 선생의 탄생일인 10월 11일에 맞춰 매년 시상식을 진행해 왔으나, 올해는 한가위 연휴를 고려해 일정을 앞당겨 30일 진행됐다. 이날 수상자는 △해밀학교(교육) △신달자 시인(언론·문화)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인문·사회) △김범준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과학·기술)로 각각 상장과 메달,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수상자 공적은 본보 9월 8일자 A8면 참조 이진강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인촌상 수상자들은 인촌 선생께서 민족의 독립과 산업 발전을 위해 토대를 쌓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분야에서 남다른 노력으로 탁월한 공적을 쌓았다”며 “올해 수상자들은 감당하기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뛰어난 공적을 이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준다”고 밝혔다. 김도연 인촌상 운영위원장은 수상자 선정 경위를 보고했다. 운영위원회는 외부 심사위원 16명을 위촉하고 후보군을 추린 뒤 6∼8월 수차례 회의를 열고 최종 수상자를 확정했다. 가수 인순이로 널리 알려진 김인순 이사장(68)이 2013년 강원 홍천군에 설립한 해밀학교는 ‘흐린 하늘이 갠 뒤 밝게 빛나는 배움터’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 다문화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학교다. 다양한 이주 배경의 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학습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교사들이 다국어 자동 번역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혁신적 교육도 선도하고 있다. 2023년 강원도 최초로 구글 레퍼런스 스쿨에 선정됐다. 김 이사장은 시상식에서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히며 “제 사춘기가 힘들고 길었는데,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 옆에서 열심히 살면 아이들도 자기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다 보니 인촌상을 받게 됐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사회에서 늘어나는 다문화 아이들 생각하면서 봉사하겠다. 이런 길이 제가 받은 사랑을 갚고 나라를 위한 길이라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신달자 시인(82)은 1964년 여성지 ‘여상’에 시 ‘환상의 방’이 당선됐고,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문단 활동에 나섰다. 여성 특유의 심미감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삶의 고뇌를 섬세한 감성으로 표현하며 여성성을 바탕으로 시 세계를 확장했다. 어려운 삶의 모습을 따뜻한 온기로 표현하며 공감을 얻었고, 한국의 대표적 여성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신 시인은 “제가 상상도 못한 인촌상을 받는다는 비현실적인 소식에 눈이 젖어왔다”며 “나이가 들더라도 감수성과 통찰력을 더욱 연마하면서 ‘이 빠진 연장’이 되지 않기 위해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병연 교수(63)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에 일어나는 경제 변화 등을 연구하는 ‘이행기 경제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북한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해 북한 경제와 국가 간 경제 제도의 비교연구라는 비주류 분야를 소신 있게 연구했다. 비교경제 분야 최고학술지에 8편 등 총 50편에 가까운 논문을 게재했다. 2017년 영문 서적 ‘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는 “민족의 큰 스승이자 선각자셨던 인촌 선생을 기리는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며 “현재 한반도 상황을 보면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지만 어려운 문제를 풀려는 노력 자체를 인정해 주시는 위로와 격려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범준 교수(49)는 2008년 최고 권위 학술지인 ‘Physical Review Letters’에 이리듐 산화물에서의 새로운 부도체 상태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전자 사이의 강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일반적 물리 법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강상관 물질 중 이리듐 산화물에 대한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최근 세계 최초로 스핀 액정 상을 관측해 양자컴퓨팅과 초전도체 등 미래 혁신기술 분야 경쟁력 향상에 기대감도 낳고 있다. 또 비탄성 공명산란 연구 기법을 최초로 도입한 대형 장비를 포항 가속기연구소에 구축했다. 김 교수는 “교육과 문화의 힘으로 미래를 열고자 했던 인촌 김성수 선생님의 뜻이 인재를 길러 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데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니 수상이 무겁고 따뜻한 당부로 느껴진다”며 “앞으로도 연구실, 강의실 그리고 국가 연구시설을 잇는 든든한 다리를 놓겠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엔 수상자들과 가족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축하 공연은 동아국악콩쿠르 입상자 위주로 구성된 퓨전 국악공연팀이 펼쳤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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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노벨은 어떤 책에 꽂힐까

    2025년도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9일 오후 1시(한국 시간 오후 8시)경 발표된다. 지난해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상을 받은 뒤 발표되는 만큼 올해 수상자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다. 올해 노벨 문학상 관련 주요 정보와 논점을 문답(Q&A)으로 정리했다. ―올해 수상자는 정해졌나. “전례에 따르면 여름에 선정한 최종 후보 5명 가운데 수상자 1명으로 압축하는 과정이 현재 진행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벨 문학위원회는 6∼8월 최종 후보자 5명의 작품을 낭독하고 평가한다. 9월엔 각 후보자의 문학적 기여와 강점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 일반적으로 10월 초에 최종 투표를 실시하고, 여기서 과반을 득표한 인물이 수상자로 확정된다.” ―최종 후보 5명은 어떻게 뽑나.“보통 노벨 수상자가 발표되고 다음 달인 11월에 차기 노벨 문학상 후보 추천을 요청하는 공식 서한을 세계에 발송한다. 지난해 한 작가가 수상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추천은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문학·언어학 교수, 각국 작가협회장 등 수백 명이 맡는다. 한 작가 역시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5명의 후보를 추린다. 자기 추천은 허용되지 않으며, 후보 명단은 50년 동안 기밀로 유지된다.” ―올해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들은 누구인가. “해마다 해외 베팅 사이트들은 노벨 문학상 잠재적 수상자를 대상으로 시장을 연다. 현재 ‘나이서오즈’에서 호주 작가 제럴드 머네인(1위), 헝가리 소설가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2위), 일본 문학의 상징적 존재 무라카미 하루키(4위)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수상한 한 작가는 당시 베팅 상위권에 없었던 만큼, 어디까지나 참고 지표일 뿐이다.” ―최근 노벨 문학상의 경향이나 특징이 있나.“2017년 스웨덴 한림원의 내부 성추문으로 2018년 시상이 취소된 적이 있다. 이후 한림원은 여성 위원 비율을 높이고 투명성을 강화해왔다. 현재 ‘문학위원회’도 남성 2명, 여성 3명으로 여성이 더 많다. 2019∼2024년 수상자 6명 가운데 여성은 3명으로 정확히 절반이란 점도 눈길을 끈다. 성별 순서도 남-여-남-여-남-여로 이어졌다.” ―선정에 국적이나 정치적 고려도 작용할까.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에서 ‘수상자의 국적과 상관없이 가장 가치 있는 인물에게 상을 수여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심사 과정에서 국가적·정치적 요소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긴 어렵다. 50년 비밀 유지가 해제된 보고서에 따르면 특정 국가가 특혜 받는 듯한 인상을 피하기 위해 상을 조정하기도 했다. 1901년 쉴리프뤼돔(프랑스)이 수상한 뒤, 이듬해 바로 프레데리크 미스트랄(프랑스)에게 상을 주는 데 주저했다. 1948년엔 윈스턴 처칠의 후보 지명이 ‘문학적 의미가 아닌 정치적 의미를 띨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노벨 문학상은 성취에 대한 ‘보상’일까, 덜 알려진 작가에 대한 ‘격려’일까. “위원회 내부에서도 자주 제기되는 문제라고 한다. 1947년 위원회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두고 망설인 것도 같은 이유였다. 한 위원은 ‘그의 성공을 고려하면 상금이 무의미한 제스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헤밍웨이가 마침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노인과 바다’(1952년)를 발표한 뒤인 1954년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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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 넘은 ‘예천 삼강나루 주막’,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예고

    2005년까지 100년 이상 운영됐던 ‘예천 삼강나루 주막’(사진)이 국가민속문화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경북 예천군에 있는 예천 삼강나루 주막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삼강나루 주막은 1900년경부터 2005년까지 100년 이상 운영돼 온 주막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초가집으로, 주막 주인이 거처하는 주모방과 접객을 위한 방, 부엌과 마루로 구성돼 있다. 낙동강과 금천, 내성천이 만나는 나루터에 지어졌으며, 1934년 갑술년 대홍수를 겪었지만 크게 바뀌지 않고 본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나루와 주막의 역사와 민속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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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 ‘여인의 흉상’ 홍콩서 301억원에 낙찰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1944년 연인을 모델로 그린 ‘여인의 흉상’(사진)이 26일(현지 시간) 홍콩 크리스티 가을 경매에서 약 301억 원에 낙찰됐다. 아시아 경매 시장에서 팔린 피카소 작품 가운데 최고가다. 이날 경매의 하이라이트였던 ‘여인의 흉상’은 17분 가까이 경합을 벌인 끝에 추정가(8600만∼1억600만 홍콩달러)를 훌쩍 넘어서 1억6700만 홍콩달러(약 301억 원)에 낙찰됐다. 크리스티 홍콩 측은 “수수료를 포함한 최종가는 1억9675만 홍콩달러에 이른다”며 “아시아에서 팔린 피카소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이라고 밝혔다. ‘여인의 흉상’은 피카소의 다섯 번째 연인이자 대표적 모델이었던 도라 마르를 그린 작품이다. 피카소와 마르는 1936년부터 약 9년간 교제했으며, 이 시기 피카소는 마르를 모델로 한 작품을 60점 이상 남겼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1937년 작 ‘우는 여인’이다. 이번에 낙찰된 ‘여인의 흉상’은 두 사람의 교제 말기인 1944년 3월 5일에 제작됐다. 눈을 크게 뜬 마르의 진홍색 드레스와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대조를 이룬다. 가로 65cm, 세로 80.8cm 크기의 유화로 그림 왼쪽 하단에 ‘Picasso’라는 서명이 새겨져 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그려진 이 작품은 전쟁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피카소의 창작 정신을 보여준다. 개인이 25년 넘게 소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낙찰자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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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 ‘여인의 흉상‘ 301억원 낙찰…아시아 피카소 경매 최고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1944년 연인을 모델로 그린 ‘여인의 흉상’이 26일(현지시간) 홍콩 크리스티 가을 경매에서 약 301억 원에 낙찰됐다. 아시아 경매 시장에서 팔린 피카소 작품 가운데 최고가다. 이날 경매의 하이라이트였던 ‘여인의 흉상’은 8번째로 등장해 17분 가까이 경합을 벌인 끝에 추정가(8600만~1억600만 홍콩달러)를 훌쩍 넘어선 1억6700만 홍콩달러(약 301억 원)에 낙찰됐다. 수수료를 포함한 최종가는 1억9675만 홍콩달러, 약 357억 원에 이른다.‘여인의 흉상’은 피카소의 다섯 번째 연인이자 대표적 모델이었던 도라 마르를 그린 작품이다. 피카소와 마르는 1936년부터 약 9년간 교제했으며, 이 시기 피카소는 마르를 모델로 한 작품을 60점 이상 남겼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1937년 작 ‘우는 여인’이다.이번에 낙찰된 ‘여인의 흉상’은 두 사람의 교제 말기인 1944년 3월 5일에 제작됐다. 그림에서 마르는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며 진홍색 드레스와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대조를 이룬다. 세로 80.8㎝, 가로 65㎝ 크기의 유화로 그림 왼쪽 하단에 ‘Picasso’라는 서명이 새겨져 있다. 개인이 25년 넘게 소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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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질문만 잘해도 깊은 대화로 훅 들어간다

    ‘망한 대화’라는 직감이 드는 순간이 있다. 김빠진 맥주처럼 식어버린 공기, 제자리만 맴도는 화제. 이처럼 누군가와의 대화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이라면 주목할 만한 책이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의 경영학 교수가 인간관계의 핵심인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야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 탐구한 책이다. 그의 강의 ‘TALK: 비즈니스와 일상에서 더욱 잘 말하는 방법’은 하버드 MBA 과정을 대표하는 명강의로 꼽힌다. 저자는 수많은 대화 주제를 △깊은 대화 △맞춤 대화 △스몰토크로 나눠 ‘주제 피라미드’라는 틀로 설명한다. 평범한 스몰토크를 넘어 상대의 내면에 다가가기 위한 기술을 제시하는데, 책에 실린 대화 사례는 모두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해 무척 생생하다. 핵심은 질문이다. “인생의 의미가 뭘까요”처럼 추상적인 질문은 상대를 주저하게 만든다. 반면 “당신이 사는 집은 어떤 점이 좋은가요” “커피는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나요”처럼 구체적인 질문은 상대에게 세부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더 깊은 대화로 이어진다. 개인정보를 적절히 드러내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날씨를 가지고도 개인적인 얘기를 할 수 있다. “사실 저는 비 오는 날이 좋아요. 아늑한 기분이 들거든요”와 같이 자신을 먼저 열면 상대 역시 이에 화답하듯 자신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의외의 기술도 소개된다. 대화 주제를 ‘자주 바꾸는 것’이다. 저자는 낯선 사람을 짝지어 일부에게는 10분 동안 12가지 화제를 다루라고 지시했고, 다른 그룹에는 원하는 속도로 대화하도록 했다. 한데 전자 쪽이 훨씬 즐겁고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눴다는 결과가 나왔다. 화제를 자주 바꿔도 충분히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도 확인됐다. 그렇다면 언제 화제를 전환해야 할까. 저자는 세 가지 신호를 제시한다. 대화 도중 △침묵이 길어진다거나 △가식적인 웃음이 늘어난다거나 △같은 말을 불필요하게 반복한다면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야 할 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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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천학 시인, ‘제6회 이어도문학상’ 대상 수상

    제6회 이어도문학상 대상에 권천학 시인이 선정됐다.26일 이어도문학협회는 권 시인의 시 ‘희망의 섬 이어도’를 대상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1946년생인 권 시인은 199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사랑의 아포리즘’ ‘고독 바이러스’ 등을 냈다. 권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인생 3모작을 시작하는 시점에 이어도문학상까지 받게 돼 더없이 고맙다”고 했다. 금상은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을 쓴 배진성 시인에게 돌아갔다.이어도문학상은 제주 남서쪽 수중 암초 이어도의 가치 확산과 미래지향적 의미 발견을 목표로 공모하는 상이다. 시상식은 11월 15일 오후 3시 서울 충무로 ‘문학의 집’에서 열린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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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돌 향한 뒤틀린 욕망, 과연 사랑일까요

    “‘강타 사랑해요’를 쓰면서 한글을 뗐어요. 엄정화의 ‘페스티벌’을 보며 숟가락을 떴습니다. 제가 K팝에 대해 (소설을) 쓰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아직 K팝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K팝에 푹 빠졌던 소설가 이희주(33). 그는 지금껏 ‘한 우물만 파온’ 작가다. 2016년 데뷔작 ‘환상통’ 때부터 아이돌 팬의 심리를 깊이 파고들더니, 급기야 2021년 두 번째 장편소설 ‘성소년’은 아이돌 멤버를 납치하는 내용이었다. 성과는 놀라웠다. ‘성소년’은 지난해 영미권 대형 출판사와 억대 선인세 계약을 맺으며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 단편 ‘최애의 아이’와 ‘사과와 링고’로 젊은작가상과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연이어 받았다. 5일 출간한 첫 소설집 ‘크리미(널) 러브’(문학동네) 역시 K팝이 소재. ‘덕질’로 일종의 ‘성덕’이 된 셈이다.16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의 신간엔 불온한 금단의 욕망을 담은 여덟 편이 실렸다. 결코 아름답다고만 할 수 없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수록작 ‘최애의 아이’에선 주인공이 최애 아이돌의 정자를 사서 임신까지 한다. “앞으로 25년은 낡고 닳고 시들어가는 대신 성장하며 아름답게 개화할 … 굿즈”라는 문장은 당황스러울 정도. 이 작가가 이렇듯 집요하게 K팝을 파고드는 건 그의 삶이 창작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제가 소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제 삶 속에 아이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작가는 ‘케이팝 하는 여자들’이란 모임도 하고 있다. 특정 아이돌을 지지하기보단, K팝 팬들이 함께 모여 토론한다. 최근 작가는 여기서 ‘자본주의 바깥에서 사랑하기’를 주제로 발표를 하기도 했다.“팬덤 문화는 소비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어요. 지금은 그게 더 가속화되는 상황이죠. 앨범을 통해 음악을 듣지 않는 시대인데도, 최애를 1등 만들려고 수십 장씩 사요. 많은 팬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구야 미안해’라고 한답니다. 이런 방식에서 어떻게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고민을 발표했어요.” 오랜 K팝 팬으로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어떻게 봤을지도 궁금했다. 이 작가는 “첫 K팝 영화로서 팬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아이돌 모습을 잘 담아냈다”면서도 “팬덤 내부의 복잡성과 정동은 또 다른 방식의 작품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했다.“정반합(正反合)이 있으면 이제 막 정(正)이 나온 셈이죠. 다음엔 반(反)도 한번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K팝의 인기에 힘입어 그의 소설에 대한 해외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 하퍼콜린스와 영국 팬 맥밀런과의 계약도 현지에서 먼저 “K팝 소재의 소설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하며 이뤄졌다고 한다. ‘성소년’은 브라질과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도 출간을 확정했다. 이 작가는 “그간 문단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소재라 처음엔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낯설어했던 시기가 있었다”며 “어쨌든 끈기 있게 하니까 ‘작가의 스타일’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 같다”고 감사를 표했다. 자신처럼 “한국 문단에 돌연변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앞으로 K팝을 소재로 쓰는 작가들이 늘면 돌연변이가 주류가 되는 건 아니냐’고 묻자, 이 작가는 빙긋 웃었다.“K팝 소설은 제가 시초고, 제일 잘 쓴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원조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의 국물 맛을 잘 지켜야죠.”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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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명랑한 싱크로나이즈드 말미잘”… 쪽빛 조명 무대 위로 詩가 흘러내렸다

    쪽빛 조명이 비춘 무대. 6명이 보면대(譜面臺)를 두고 앉아 있다. 깊은 바닷속에서 펼쳐지는 연주회처럼. 하지만 무대 위에서 흘러나온 건 시(詩)였다.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김혜순 시인(70)이 후배 시인 5명과 함께 이달 5일 출간한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난다)를 읽는 ‘낭독 극장’을 열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독일 세계문화의집 국제문학상 등을 수상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김 시인의 무대는 13일부터 열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주간의 마지막 프로그램. 오후 7시, 130석 규모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이 암전되자 김 시인의 목소리로 녹음된 ‘시인의 말’이 울려 퍼졌다. 잠시 뒤 김 시인이 무대 왼편에서 조명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연극배우처럼 헤드셋 마이크를 찬 시인은 맨 오른쪽 의자에 앉아 서시(序詩) ‘그리운 날씨’를 읽었다. 이어 유선혜 시인이 들어왔다. 두 시인은 수록 시 ‘쌍둥이 자매의 토크’를 한 연씩 주고받으며 낭독했다. 1955년생과 1998년생, 40여 년의 간격을 잇는 호흡. 뒤이어 안태운, 김상혁, 신해욱, 황유원 시인도 무대에 올랐다. 수록 시 ‘오르간 오르간 오르간’은 6명이 “입술이었다가/계단이었다가/신호등이었다가/총 쏘는 남자였다가/액체였다가/기중기였다가”를 한 행씩 교차로 읽으며 긴장감 있는 리듬을 만들었다. 낭독에 참여한 시인들은 반팔부터 긴팔 외투, 운동화부터 워커까지 자유로운 차림새만큼이나 읽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김 시인은 비교적 담담하게 읽은 반면, 후배 시인들은 감정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황유원 시인은 ‘The Hen’s Scream’을 낭독하면서 “피리 좀 불지 마라”가 반복되자 마지막 구절에선 “‘제발’ 피리 좀 불지 마라”라며 ‘제발’에 힘을 가득 실었다. 김 시인의 신간 시집은 그가 커다란 어항 같은 화면에서 일렁이는 바다 생물 영상을 본 경험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관객들은 바닷속을 유영하듯 자유로운 리듬과 시어에 1시간 반 몰입했다. 어둠 속에서 시 제목을 받아 적던 관객 박성훈 씨는 “‘알라모아나’에서 거울 속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며 “평소에는 시를 직접 읽는 걸 선호하지만, 이번처럼 이미지가 선명한 작품은 낭독으로 듣는 즐거움도 컸다”고 했다. 시 낭독회에 처음 왔다는 유호준 씨는 “시인의 어조와 호흡에 따라 전하려는 마음이 다르게 다가왔다”며 “청각에 몰입하고 싶어 눈을 감고 들었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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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쪽빛 조명 아래 시가 흐르다…김혜순 시인, 후배들과 ‘낭독 극장’

    쪽빛 조명이 비춘 무대. 6명이 보면대(譜面臺)를 두고 앉아 있다. 깊은 바닷속에서 펼쳐지는 연주회마냥. 하지만 무대 위에서 흘러나온 건 시(詩)였다.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김혜순 시인(70)이 후배 시인 5명과 함께 이달 5일 출간한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난다)를 읽는 ‘낭독 극장’을 열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독일 세계문화의집 국제문학상 등을 수상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김 시인의 무대는 13일부터 열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주간의 마지막 프로그램.오후 7시, 130석 규모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이 암전되자 김 시인의 목소리로 녹음된 ‘시인의 말’이 울려 퍼졌다. 잠시 뒤 김 시인이 무대 왼편에서 조명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연극배우처럼 헤드셋 마이크를 찬 시인은 맨 오른쪽 의자에 앉아 서시(序詩) ‘그리운 날씨’를 읽었다.이어 유선혜 시인이 들어왔다. 두 시인은 수록 시 ‘쌍둥이 자매의 토크’를 한 연씩 주고받으며 낭독했다. 1955년생과 1998년생, 40여 년의 간격을 잇는 호흡. 뒤이어 안태운, 김상혁, 신해욱, 황유원 시인도 무대에 올랐다. 수록 시 ‘오르간 오르간 오르간’은 6명이 “입술이었다가/계단이었다가/신호등이었다가/총 쏘는 남자였다가/액체였다가/기중기였다가”를 한 행씩 교차로 읽으며 긴장감 있는 리듬을 만들었다.낭독에 참여한 시인들은 반팔부터 긴팔 외투, 운동화부터 워커까지 자유로운 차림새만큼이나 읽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김 시인은 비교적 담담하게 읽은 반면, 후배 시인들은 감정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황유원 시인은 ‘The Hen’s Scream’을 낭독하면서 “피리 좀 불지 마라”가 반복되자 마지막 구절에선 “‘제발’ 피리 좀 불지 마라”라며 ‘제발’에 힘을 가득 실었다.김 시인의 신간 시집은 그가 커다란 어항 같은 화면에서 일렁이는 바다 생물 영상을 본 경험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관객들은 바닷속을 유영하듯 자유로운 리듬과 시어에 1시간 반 몰입했다. 어둠 속에서 시 제목을 받아적던 관객 박성훈 씨는 “‘알라모아나’에서 거울 속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며 “평소에는 시를 직접 읽는 걸 선호하지만, 이번처럼 이미지가 선명한 작품은 낭독으로 듣는 즐거움도 컸다”고 했다. 시 낭독회에 처음 왔다는 유호준 씨는 “시인의 어조와 호흡에 따라 전하려는 마음이 다르게 다가왔다”며 “청각에 몰입하고 싶어 눈을 감고 들었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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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석기-철기에 가려졌던 ‘목기 인류’

    프랑스 피레네산맥에는 절벽을 깎아 만든 좁은 길을 걸어야 하는 종주 코스가 있다. 이름은 ‘슈맹 드 라 마튀르(Chemin de la Mâture).’ 번역하면 ‘돛대의 길’이다. 인적 드문 산을 깎아서 왜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또 이름은 왜 돛대의 길일까.때는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은 식민지를 둘러싸고 패권 다툼을 벌였다. 더 크고 강력한 해군 전함을 앞다퉈 건조했다. 관건은 전함을 만들 목재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였다. 뭣보다 아파트 20층쯤 되는 최대 61m 높이의 돛대를 만들 ‘크고 곧은’ 나무가 핵심이었다.프랑스는 그 해결책을 피레네산맥 깊은 곳에서 찾았다. 사람이 좀처럼 쉽게 다닐 수 없다 보니, 거대한 전나무 숲이 그대로 보존된 야생 지역이었다. 1772년 프랑스는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좁은 길을 깎아냈다. 이 길을 통해 돛대용 목재를 비롯해 다양한 용도의 나무를 절벽 아래로 실어 내려왔다.반면 영국엔 돛대를 만들 만한 침엽수가 거의 자라지 않았다. 결국 발트해 연안에서 수입한 상대적으로 작은 나무들을 활용해 조립식 돛대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개의 작은 통나무를 쇠고리로 이어 붙이는 방식이라 구조적으로 취약했다. 당연히 내구성도 떨어져 전투 중 쉽게 부러졌다. 실제로 당시 양국의 주요 해전은 프랑스가 영국을 제압했다. 1779년 그레나다 전투는 영국 해군의 가장 큰 참패로 기록돼 있다.이처럼 ‘목재’는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재료였다. 영국 헐대학교 생물과학과 객원교수인 저자는 문명의 여정을 지탱해 온 핵심 소재로서 나무를 조명한다. 인간이 진화하고 세상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지금에 이를 때까지 6000만 년이 넘는 여정에서 나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흥미롭게 추적한다.특히 이 책은 돌·청동·철이라는 세 가지 재료를 중심으로 인류 역사를 구분해 온 전통적 서사에서 벗어나려는 인식이 핵심이다. 1831년 덴마크 고고학자인 크리스티안 톰센이 돌·청동·철에 따라 인간의 시대를 분류하는 개념을 도입한 이래, 이 방식은 인류학과 고고학의 주류가 됐다.하지만 저자는 인류와 가까운 친척인 유인원이 대부분의 도구를 돌이 아닌 나무로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초기 인류 역시 유인원에게서 목공 기술을 이어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즉, 최초의 도구는 돌이 아니라 나무였을지도. 다만 오늘날까지 남은 인공 유물이 대부분 석기나 금속이다 보니 이들의 중요성이 과도하게 부각됐을 수 있다. 나무의 역할이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지워져 버린 셈이다.저자의 눈은 나무와 돌의 공존으로 향한다. 머나먼 옛 선조들은 오히려 석기를 이용해 ‘나무 도구’를 만들었을 것이란 인식이다. 최초 인류의 직업은 ‘목수’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2001년 탄자니아에서 발굴된 160만 년 전 페닌즈 유적지에서 나온 손도끼와 박편의 날 주변에선 아카시아의 옥살산칼슘 결정이 발견됐다. 손도끼가 목공 작업에 쓰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나무 창을 깎는 데 석기를 이용했다는 건 인류의 지적 능력에도 중대한 진보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따지고 보면, 나무의 쓰임새는 참 다양하다. 큰 구조물을 떠받치는 거대한 부재도 될 수 있고, 이쑤시개 같은 자그마한 도구를 만들 때 쓰일 수 있다. 나무는 얼마나 다재다능한 재료인가. 잠시 세상을 ‘나무 중심’으로 바라보자. 관점의 변화는 삶의 차이를 이끌어낸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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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흥망성쇠서 중요한 소재 ‘나무’…그 역할을 짚어본 책 ‘나무의 시대’ [책의 향기]

    프랑스 피레네산맥에는 절벽을 깎아 만든 좁은 길을 걸어야 하는 종주 코스가 있다. 이름은 ‘슈맹 드 라 마튀르(Chemin de la Mâture).’ 번역하면 ‘돛대의 길’이다. 인적 드문 산을 깎아서 왜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또 이름은 왜 돛대의 길일까.때는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은 식민지를 둘러싸고 패권 다툼을 벌였다. 더 크고 강력한 해군 전함을 앞다퉈 건조했다. 관건은 전함을 만들 목재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였다. 뭣보다 아파트 20층쯤 되는 최대 61m 높이의 돛대를 만들 ‘크고 곧은’ 나무가 핵심이었다.프랑스는 그 해결책을 피레네산맥 깊은 곳에서 찾았다. 사람이 좀처럼 쉽게 다닐 수 없다 보니, 거대한 전나무 숲이 그대로 보존된 야생 지역이었다. 1772년 프랑스는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좁은 길을 깎아냈다. 이 길을 통해 돛대용 목재를 비롯해 다양한 용도의 나무를 절벽 아래로 실어 내려왔다.반면 영국엔 돛대를 만들 만한 침엽수가 거의 자라지 않았다. 결국 발트해 연안에서 수입한 상대적으로 작은 나무들을 활용해 조립식 돛대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개의 작은 통나무를 쇠고리로 이어 붙이는 방식이라 구조적으로 취약했다. 당연히 내구성도 떨어져 전투 중 쉽게 부러졌다. 실제로 당시 양국의 주요 해전은 프랑스가 영국을 제압했다. 1779년 그레나다 전투는 영국 해군의 가장 큰 참패로 기록돼 있다.이처럼 ‘목재’는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재료였다. 영국 헐대학교 생물과학과 객원교수인 저자는 문명의 여정을 지탱해 온 핵심 소재로서 나무를 조명한다. 인간이 진화하고 세상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지금에 이를 때까지 6000만 년이 넘는 여정에서 나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흥미롭게 추적한다.특히 이 책은 돌·청동·철이라는 세 가지 재료를 중심으로 인류 역사를 구분해 온 전통적 서사에서 벗어나려는 인식이 핵심이다. 1831년 덴마크 고고학자인 크리스티안 톰센이 돌·청동·철에 따라 인간의 시대를 분류하는 개념을 도입한 이래, 이 방식은 인류학과 고고학의 주류가 됐다.하지만 저자는 인류와 가까운 친척인 유인원이 대부분의 도구를 돌이 아닌 나무로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초기 인류 역시 유인원에게서 목공 기술을 이어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즉, 최초의 도구는 돌이 아니라 나무였을지도. 다만 오늘날까지 남은 인공 유물이 대부분 석기나 금속이다 보니 이들의 중요성이 과도하게 부각됐을 수 있다. 나무의 역할이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지워져 버린 셈이다.저자의 눈은 나무와 돌의 공존으로 향한다. 머나먼 옛 선조들은 오히려 석기를 이용해 ‘나무 도구’를 만들었을 것이란 인식이다. 최초 인류의 직업은 ‘목수’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2001년 탄자니아에서 발굴된 160만 년 전 페닌즈 유적지에서 나온 손도끼와 박편의 날 주변에선 아카시아의 옥살산칼슘 결정이 발견됐다. 손도끼가 목공 작업에 쓰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나무 창을 깎는 데 석기를 이용했다는 건 인류의 지적 능력에도 중대한 진보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따지고 보면, 나무의 쓰임새는 참 다양하다. 큰 구조물을 떠받치는 거대한 부재도 될 수 있고, 이쑤시개 같은 자그마한 도구를 만들 때 쓰일 수 있다. 나무는 얼마나 다재다능한 재료인가. 잠시 세상을 ‘나무 중심’으로 바라보자. 관점의 변화는 삶의 차이를 이끌어낸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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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3년 전 최초의 한글 번역 성서, 국립중앙도서관서 본다

    143년 전 간행된 최초의 한글 번역 기독교 성서 ‘예수셩교 요안ᄂᆡ복음젼셔’가 정부에 기증돼 일반에 공개된다.국립중앙도서관은 18일 “강순애 한성대 명예교수로부터 고문헌 324책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기증한 도서 가운데 ‘예수셩교 요안ᄂᆡ복음젼셔’는 1882년 중국 선양(瀋陽) 문광서원에서 간행된 최초의 한글 번역 기독교 성서다. 스코틀랜드 선교사인 존 로스와 존 매킨타이어가 조선인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등과 함께 번역했다. 이밖에도 ‘누가복음’, ‘주교요지’ 등 희귀 고문헌과 조선 후기에 사용된 목활자, 책 표지 문양에 쓰인 능화판 등도 포함됐다.도서관에 따르면 기증 받은 고문헌들은 다음 달부터 본관 5층 고문헌실에 ‘강순애 문고’를 설치해 공개할 계획이다. 도서관 측은 “희귀 고문헌을 국민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보존 처리 및 디지털 작업을 통해 여러 국민들이 활용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했다.고문헌 발굴과 연구에 힘써 온 강 교수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강 교수는 “그동안 모은 고문헌을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며 “앞으로 이용자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수집한 문헌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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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은 인간 본성… AI로 이야깃거리 풍성해져”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인간이 어떤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꿈을 꿉니다. AI가 없었을 땐 들려줄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인간이 할 수 있게 된 가능성. 이것이야말로 놀랍고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까요.” 소설 ‘종이 동물원’ 등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49)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리우 작가는 2011년 발표한 단편 ‘종이 동물원’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과학소설(SF) 문학상인 휴고상, 네뷸러상과 권위 있는 판타지 문학상인 세계환상문학상을 모두 받았다. 제1회 MCT페스티벌 참석을 위해 방한한 그는 15일 간담회에서 “인간(의 노동)이 AI에 의해 대체되지 않을까, 보상은 누가 해줄까라는 우려는 매우 단기적인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리우 작가는 카메라가 등장하며 시각예술이 발전하고 현실을 표현할 다양한 방법이 생긴 것처럼, AI의 탄생은 곧 새로운 형태의 예술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론 미스터리 소설도 독자가 용의자를 취조하는 방식으로 쓰일 수 있다”며 “용의자 안에 다양한 스토리를 집어넣어서 독자와 상호작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예시일 뿐, 훨씬 더 흥분되고 신나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리우 작가는 “기술을 인간과 구별되는 악(惡)으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기술이 인간을 위협하는 식으로 많이 묘사되지만, 사실 기술은 인간 본성과 가치관의 표현이라는 인식이다.“친구와 소통하려 하는데 전화기 없이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저는 아내 빼고는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는걸요. 기술 없이는 인간을 이해하기도 어려워요. 개미집 없이 개미라는 종을 생각하거나, 벌집 없이 벌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어릴 적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리우는 로펌 변호사,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한 이력이 있다. 중국 SF ‘삼체’를 미국에 처음 알린 번역가이기도 하다. 평소에도 다양한 자극을 얻기 위해 의료와 환경, 프로그래밍 등 분야를 막론하고 과학 콘퍼런스에 자주 다니고, 과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제 모든 커리어는 저의 관심사에서 비롯됐어요. 글쓰기가 프로그래밍이나 변호사의 일처럼 경제적으로 많은 보상을 받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작가가 됐습니다. 미래는 타인이 아닌 각자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나 자신의 힘이 가장 중요합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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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대 문인과 예술가 ‘교류의 흔적’ 엿보기

    문인과 예술가들이 남긴 방명록 등을 전시하는 ‘만남의 이정표-방명록’전이 서울 종로구 영인문학관에서 19일부터 개최된다. 영인문학관은 “1958년부터 문인이나 예술가들이 남긴 방명록 등을 모은 다양한 기록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1958년 결혼식 방명록과 1960년 ‘지성의 오솔길’ 출판기념회 방명록, 1969년 이광수 유품 자료 전시회 방명록 등도 선보인다. 오세창 서예가(1864∼1953)의 10폭 병풍은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전시와 함께 이 전 장관의 부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강석경·최윤 소설가의 문학 강연회도 열린다. 최 작가의 작업실을 재현한 ‘작가의 방’도 마련된다. 문학관 측은 “방명록은 모인 사람들의 마음과 교류의 흔적이 예술로서 남는 것이자 누가 찾아왔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물”이라며 “그 시대 문인과 예술가들의 교류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설명했다. 다음 달 31일까지.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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