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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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2-25~2026-03-27
문학/출판46%
문화 일반31%
음악8%
인사일반8%
학술3%
국제인물3%
만화1%
  • 뜨개질 열풍에 싱잉볼 명상까지… ‘느린 취미’로 소확행 찾는다

    《‘느린 취미’ 부활 속도와 효율이 일상이 된 시대, 청년들은 일부러 ‘느린 시간’을 경험하려 한다. 한때 어르신들 취미로 여겨졌던 뜨개질이 트렌드가 되고, 사라지던 음악감상실이 부활하고 있다. 속도를 늦추는 사람들을 들여다봤다.28일 오후 서울 광진구에 있는 뜨개 공방 ‘단비스튜디오’.이날 ‘뜨개질 원데이 클래스’ 도전 과제는 카드지갑 만들기였다. “혹시 바로 완성을 못 하는 경우도 있나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학창 시절 미술 수행평가 평균 점수가 늘 B를 넘지 못했던 ‘똥손’으로 살아온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공방을 운영하는 김명주 씨(32)는 “어떻게든 다 완성하게 만들어 드리니 걱정 말라”며 웃었다.뜨개질은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크게 각광받고 있는 ‘느린 취미’ 중 하나다. 한때 어르신들의 취향으로 여겨졌던 뜨개질은 요즘 인스타그램에 ‘뜨개질’ 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온 게시물만 약 130만 건에 이를 정도다. ‘뜨개스타그램’ ‘뜨개질’ ‘니팅힙(Knitting hip)’ 등의 태그도 쏟아진다.》‘느린 취미’가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뜨개질 같은 느린 취미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해 마음을 진정시키는 활동을 일컫는다. 청년층에겐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를 준다고 여겨지며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분위기. 해외에서도 ‘Mindfulness(마음챙김)’나 ‘Digital detox(디지털 디톡스)’의 수단으로 여겨지며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유럽의 푸근한 할머니 된 느낌”뜨개질 수업은 이런 느린 취미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날 수업은 7호 코바늘로 가장 기초적인 ‘사슬뜨기’와 ‘짧은뜨기’를 익히며 시작됐다. 먼저 시범을 보여주는 김 씨의 능숙한 손길 끝에 카드지갑의 몸체가 차곡차곡 쌓여 올라갔다. 처음엔 정확한 위치도 헷갈리고, 팽팽하게 실을 고정하려면 펴야 하는 손가락은 자꾸만 구부러졌다. 하지만 느릿느릿 다음 코를 뜨기 위해 바늘을 옮기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줄어들고 손의 감각만이 남았다. 김 씨는 “예전엔 뜨개질이 ‘엄마들의 취미’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팬데믹 이후 젊은 세대들도 많이 찾는다”며 “요즘엔 ‘디지털 디톡스’를 이유로 입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전했다.뜨개질이 힙한 취미로 뜨는 건 쇼츠나 릴스 등에 찌들어 산만해진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데다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바늘이야기’는 뜨개인(뜨개질하는 사람)의 성지로 불린다. 뜨개질 관련 용품을 팔고, 2층에 뜨개질 공간도 따로 마련해뒀다. 목도리와 장갑은 물론이고, 비니와 티코스터 등 만들 수 있는 물품 종류도 많다. 뜨개질을 취미로 삼은 지 3년쯤 됐다는 직장인 정수인 씨(29)는 “출퇴근 버스에서도 뜨개질을 하고, 만든 물건은 주변에도 나눠준다”며 “뜨개질을 하다 보면 불안감이 줄어든다. 마치 코코아를 마시는 유럽의 푸근한 할머니가 된 느낌”이라고 했다. 30대 직장인 박모 씨도 “요새는 도안과 실이 함께 든 키트를 구매할 수 있어 더 편리하다”며 “뜨개질이 ‘방구석 골프’라 불릴 만큼 의외로 재료 값이 많이 들긴 하지만,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뜨개질 사내 모임도 생기고 있다. 출판사 민음사엔 ‘짓기방’이란 모임이 있다. 글이든, 점토든 무엇이든 만드는데, 주력 아이템은 뜨개질. 이정화 민음사 해외문학팀 차장은 “점심 시간에 탕비실 등에서 삼삼오오 모여 뜨개질을 하곤 한다”며 “‘이 집 실이 싸다’는 등 정보나 구하기 어려운 도안을 공유한다”고 했다. 영화를 보며 뜨개질을 하는 이색 이벤트도 등장했다. CGV는 지난해 CGV강변 씨네&포레 상영관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뜨개질하는 ‘뜨개상영회’를 열었다. 관객들의 호응이 이어지자 전국 10여 개 극장으로 확장해 진행하기도 했다. CGV 관계자는 “뜨개질과 결이 맞는 잔잔한 영화를 상영했을 때 특히 관객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음악도 ‘집중해서’ 듣는다느린 취미의 유행은 뜨개질로 그치지 않는다. 음악을 차분하게 감상하는 공간인 ‘음악감상실’도 최근 다시 늘고 있다.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소비 방식은 갈수록 파편화되고 있지만, 오히려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는 공간을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셈이다.지난해 문을 연 서울 마포구 음악감상실 ‘틸트’는 이런 흐름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단순히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가 아니다. 소리를 ‘듣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도록 설계됐다. 특히 중심 공간에 360도 전 방향 스피커를 설치해 방문자들이 어디서나 동일한 소리를 체험할 수 있다. 직장인 문모 씨(29)는 이달에만 두 번이나 틸트를 찾았다. 윤상의 앨범 ‘클리셰’를 처음부터 끝까지 90분간 듣는 리스닝 세션과 데이비드 보위의 주요 곡을 100분간 감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문 씨는 “진득하게 음악을 듣다 보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소리가 들리고, 아티스트가 곡에 담은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며 “앨범 수록곡 중 분명 취향에 맞지 않는 트랙도 있지만, 그마저도 애정을 갖고 끝까지 들어보는 연습이 된다”고 했다.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특별한 ‘큐레이션’을 내세운 공간도 있다. 1000여 장의 음반이 빼곡히 들어찬 서울 마포구 재즈 및 클래식 음악감상 공간 ‘쿼터’는 원하는 느낌의 곡을 단어나 문장으로 골라 내밀면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해준다. 28일 이곳을 찾아 “따뜻한 불빛이 떠오르는 음악”을 요청하자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가 흘러나왔다. 온기가 스며든 듯한 음악이 풍성하게 귀를 채웠다.2022년부터 쿼터를 운영하고 있는 재즈드러머 정마루 씨는 “내겐 익숙한 뮤지션이라도 누군가에겐 여전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 ‘키워드’ 형식의 큐레이션을 유지하고 있다”며 “염화칼슘 같은 뜬금없는 단어든, 개인의 사연이든 적어주는 대로 선곡해준다”고 했다. 이어 “이곳은 단순히 음악을 틀어주는 공간이 아니라, 음악을 매개로 이야기가 오가는 ‘살롱’에 가깝다”고 덧붙였다.음악감상실이 다양한 문화 실험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2024년 경기 파주시의 LP 음악감상실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유튜브 콘텐츠 ‘어라운드 클래식’ 오프라인 버전인 ‘오프 어라운드 클래식’을 선보였다. 국립심포니 소속 20, 30대 단원들이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의 현악 4중주 작품을 연주하고, 관객과 대화도 나눴다. 국립심포니 관계자는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기존 공연장과 다른 공간을 택했다”며 “젊은 연인 관객의 방문이 특히 많았다”고 했다.● “두웅” 긴장감 날리는 ‘싱잉볼’“현대인의 몸은 거의 매 순간 각성돼 있죠. 그 긴장감을 잠깐이라도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요가원. 원장의 설명과 함께 ‘두웅’ 싱잉볼(Singing Bowl) 소리가 울렸다. 이날 수련에 참석한 회원들은 진동과 함께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약 15분간 이어진 은은한 소리와 진동에, 몇몇은 잠시 졸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원장은 오히려 “잠이 오든, 오지 않든 스스로 원하는 대로 따라가라”며 “이 시간은 몸을 이완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했다.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 잠시라도 이를 벗어나기 위한 명상도 ‘느린 취미’로 인기다. 특히나 ‘노래하는 악기’로 불리는 싱잉볼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7가지 금속을 녹여 만든 주발을 막대로 두드리면 발생하는 진동이 우리 몸을 이완시킨다고 한다. ‘자율 감각 쾌락 반응(ASMR)’에 자주 쓰이는데, 최근 젊은층에서 인기를 끈 ‘불교 박람회’ 체험 클래스로도 자주 소개됐다. 이날 전체 참석자 5명 중 3명은 30대. 퇴근 뒤 요가원에 들렀다는 김정효 씨(34)는 “하루하루 수많은 생각과 관계에 치여 사는데, 싱잉볼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진다”며 “나 자신에게 몰입하는 게 서툴다 보니 요가원 도움을 받기 위해 찾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회원은 “너무 맘에 들어 싱잉볼을 직접 구매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과 소셜미디어 등으로 인해 세상이 흘러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런 느린 취미를 찾는 이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빠른 변화가 있다 보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디톡스 활동이 주목받기 마련”이라며 “복잡한 세계에서 발을 빼고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취미는 앞으로 더 큰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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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글자-행간-자간까지… 책이 커졌어요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정문을 열고 마주한 첫 매대에 이색적인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초역 부처의 말’(포레스트북스), ‘오십에 읽는 논어’(유노북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익숙하게 봤던 제목들. 그런데 이 책들은 제목이 유난히 또렷하게 읽혔다. 기존 책보다 훨씬 큰 글자. 교보문고가 최근 출판사들과 협업해 선보인 큰글자책 시리즈 ‘이지페이지’다.큰글자책은 출판계에서 오랫동안 ‘필요하지만 드러내고 싶진 않은’ 책으로 인식돼 왔다. 크고 빳빳한 외형 탓에 “교과서 같다”는 인상까지 줬다. 도서관에서도 ‘실버 도서’라며 별도 코너에 비치된 채 고령층만을 위한 특수 포맷으로 여겨졌다. 가격도 일반 책보다 2∼3배 비쌌다.이런 탓에 시중 서점에선 취급 자체가 흔치 않았던 큰글자책에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큰글자책을 특정 연령용으로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독자를 포괄하는 ‘읽기 환경의 선택지’로 재정의하는 분위기다. 오디오북 역시 하나의 새로운 독서 방식으로 자리 잡으며 다양한 연령대들이 즐기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새롭게 내놓은 시리즈 ‘이지페이지’는 단순히 글자 크기만 키운 게 아니다. 행간과 자간, 종이와 표지 디자인까지 전반적인 스타일을 다시 설계했다. 예컨대 ‘노인과 바다’(민음사)를 기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판본과 비교해 보자. 가로 길이는 같지만, 세로 길이는 오히려 더 짧아졌다. 표지는 글씨 크기 외엔 일반 단행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세련되게 디자인해 ‘노인책’이란 인상을 걷어냈다.선정 도서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기존 큰글자책은 최신 화제작이나 실험적인 작품이 많지 않았다. 특정 연령층을 전제로 고전 등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는 ‘첫 여름, 완주’(2025년),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2024년) 등 최근에 독자 반응이 좋았던 신간 10권이 포함됐다.큰글자책 시리즈 ‘이지페이지’의 기획을 맡은 박정남 교보문고 점포마케팅 팀장은 “큰글자책은 고령자만을 위한 옵션이 아니라, 더 많은 독자를 위한 읽기 방식이 될 수 있다”며 “영국 사례를 보면 글자가 클수록 청소년의 완독률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보면 젊은 독자들이 “눈이 빨리 피로해진다” “긴 글을 읽기 어렵다”는 경험을 자주 호소한다. 스마트폰 사용 증가 등으로 눈의 피로를 호소하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읽기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는 큰글자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최근 오디오북도 더 이상 중장년층이나 시각 약자를 위한 보조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고 있다.밀리의 서재에 따르면 지난해 오디오북 이용 회원의 연령대는 40대(39.9%), 30대(27.2%), 50대(15.8%), 20대(10.9%) 순. 한 권의 책을 종이책·전자책·오디오북으로 바꿔 가며 읽을 수 있는 ‘페어링’ 기능 이용 횟수도 지난해 10월 기준 누적 1400만 회로 늘어났다. 종이책의 바코드를 찍고 페이지를 입력하면 읽던 지점부터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으로 이어 볼 수 있는 기능이다.이정화 민음사 해외문학팀 차장은 “지적·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젊지만 물리적인 한계를 체감하는 중장년층, 이른바 신중년 세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국방부가 진중문고를 통해 장병 독서를 장려하듯, 신중년의 독서를 뒷받침하는 방식 역시 중요한 문화 복지”라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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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보문고에 ‘큰글자 책’ 떴다…노인용 넘어 ‘새로운 읽기 방식’ 손짓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정문을 열고 마주한 첫 매대에 이색적인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초역 부처의 말’(포레스트북스), ‘오십에 읽는 논어’(유노북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익숙하게 봤던 제목들. 그런데 이 책들은 제목이 유난히 또렷하게 읽혔다. 기존 책보다 훨씬 큰 글자. 교보문고가 최근 출판사들과 협업해 선보인 큰글자책 시리즈 ‘이지페이지’다.큰글자책은 출판계에서 오랫동안 ‘필요하지만 드러내고 싶진 않은’ 책으로 인식돼 왔다. 크고 빳빳한 외형 탓에 “교과서 같다”는 인상까지 줬다. 도서관에서도 ‘실버 도서’라며 별도 코너에 비치된 채 고령층만을 위한 특수 포맷으로 여겨졌다. 가격도 일반 책보다 2~3배 비쌌다.이런 탓에 시중 서점에선 취급 자체가 흔치 않았던 큰글자책에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큰글자책을 특정 연령용으로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독자를 포괄하는 ‘읽기 환경의 선택지’로 재정의하는 분위기다. 오디오북 역시 하나의 새로운 독서 방식으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연령대들이 즐기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새롭게 내놓은 시리즈 ‘이지페이지’는 단순히 글자 크기만 키운 게 아니다. 행간과 자간, 종이와 표지 디자인까지 전반적인 스타일을 다시 설계했다. 예컨대 ‘노인과 바다’(민음사)를 기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판본과 비교해보자. 가로 길이는 같지만, 세로 길이는 오히려 더 짧아졌다. 표지는 글씨 크기 외엔 일반 단행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세련되게 디자인해 ‘노인책’이란 인상을 걷어냈다.선정 도서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기존 큰글자책은 최신 화제작이나 실험적인 작품이 많지 않았다. 특정 연령층을 전제로 고전 등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는 ‘첫 여름, 완주’(2025년),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2024년) 등 최근에 독자 반응이 좋았던 신간 10권이 포함됐다.큰글자책 시리즈 ‘이지페이지’의 기획을 맡은 박정남 교보문고 점포마케팅 팀장은 “큰글자책은 고령자만을 위한 옵션이 아니라, 더 많은 독자를 위한 읽기 방식이 될 수 있다”며 “영국 사례를 보면 글자가 클수록 청소년의 완독률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보면 젊은 독자들이 “눈이 빨리 피로해진다” “긴 글을 읽기 어렵다”는 경험을 자주 호소한다. 스마트폰 사용 증가 등으로 눈의 피로를 호소하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읽기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는 큰글자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최근 오디오북도 더 이상 중장년층이나 시각 약자를 위한 보조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고 있다.밀리의 서재에 따르면 지난해 오디오북 이용 회원의 연령대는 40대(39.9%), 30대(27.2%), 50대(15.8%), 20대(10.9%) 순. 한 권의 책을 종이책·전자책·오디오북으로 바꿔가며 읽을 수 있는 ‘페어링’ 기능 이용 횟수도 지난해 10월 기준 누적 1400만 회로 늘어났다. 종이책의 바코드를 찍고 페이지를 입력하면 읽던 지점부터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으로 이어볼 수 있는 기능이다.이정화 민음사 해외문학팀 차장은 “지적·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젊지만 물리적인 한계를 체감하는 중장년층, 이른바 신중년 세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국방부가 진중문고를 통해 장병 독서를 장려하듯, 신중년의 독서를 뒷받침하는 방식 역시 중요한 문화복지”라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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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수정 단편 ‘눈과 돌멩이’, 제49회 이상문학상 대상 선정

    위수정 소설가(49·사진)의 단편소설 ‘눈과 돌멩이’가 제49회 이상문학상 대상에 27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20년 가까이 느슨하면서도 각별한 우정을 나눈 세 친구의 이야기를 다뤘다. 심사위원인 최진영 소설가는 “숨겨둔 비밀이 많아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며 “상반되는 개념과 감정을 세련되게 뒤섞어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위 작가는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중편소설 ‘무덤이 조금씩’으로 등단했다.우수작에는 김혜진의 ‘관종들’과 성혜령의 ‘대부호’, 이민진의 ‘겨울의 윤리’, 정이현의 ‘실패담 크루’, 함윤이의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등 5편이 뽑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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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대로 올라온 관객들 시를 읽다

    ‘극장 책방’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선 조금 특별한 풍경이 펼쳐졌다. 관객들이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앉아 3000석 규모의 객석을 바라보며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 이색적인 공연 ‘리딩&리스닝 스테이지’가 열렸다. 무대 한편에는 시집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박연준 시인의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신이인 시인의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등 시집 27권이 올해 세종문화회관 공연 27편과 일대일로 짝지어 소개됐다. 90분간 이어진 공연 동안 존 케이지의 ‘풍경 속에서’, 키스 재럿의 ‘쾰른 콘서트’ 같은 음악이 흐르며 무대를 채웠다. 이날 오후 2시 공연에 입장한 관객 60여 명은 서가에서 마음에 드는 시집을 꺼내 자리에 앉았다. 공연 직전까지 사진을 찍던 이들도 이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시와 음악에 집중했다. 무릎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명상하듯 앉아 있는 사람, 시집을 덮고 눈을 감은 채 시구에 머물러 있는 듯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고명재 시인도 연사로 무대에 올라 자신의 시 ‘등’과 ‘노랑’을 낭송했다. 고 시인은 “호주 시드니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할 때 이만한 대형 극장에서 청소기를 돌린 적이 있다”며 “아무도 없는 새벽, 혼자 무대에 올라섰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라는 열렬한 행위가 끝난 뒤의 텅 빈 공간은, 그 자체로 시를 쓰는 마음과 닮아 있다”고 덧붙였다. 휴가 마지막 날 일정으로 공연장을 찾았다는 이은희 씨(52)는 “세종문화회관의 1년 주요 공연을 연초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좋았다”며 “특히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을 ‘사랑의 시인’ 고명재 시인과 연결한 구성은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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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장 책방’의 현실화…무대 위서 시 읽고 낭송한다

    ‘극장 책방’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선 조금 특별한 풍경이 펼쳐졌다. 관객들이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앉아, 3000석 규모의 객석을 바라보며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 이색적인 공연 ‘리딩&리스닝 스테이지’가 열렸다.무대 한편에는 시집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박연준 시인의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신이인 시인의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등 시집 27권이 올해 세종문화회관 공연 27편과 일대일로 짝지어 소개됐다. 90분간 이어진 공연 동안 존 케이지의 ‘풍경 속에서’, 키스 재럿의 ‘쾰른 콘서트’ 같은 음악이 흐르며 무대를 채웠다.이날 오후 2시 공연에 입장한 관객 60여 명은 서가에서 마음에 드는 시집을 꺼내 자리에 앉았다. 공연 직전까지 사진을 찍던 이들도 이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시와 음악에 집중했다. 무릎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명상하듯 앉아 있는 사람, 시집을 덮고 눈을 감은 채 시구에 머물러 있는 듯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고명재 시인도 연사로 무대에 올라 자신의 시 ‘등’과 ‘노랑’을 낭송했다. 고 시인은 “호주 시드니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할 때 이만한 대형 극장에서 청소기를 돌린 적이 있다”며 “아무도 없는 새벽, 혼자 무대에 올라섰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라는 열렬한 행위가 끝난 뒤의 텅 빈 공간은, 그 자체로 시를 쓰는 마음과 닮아 있다”고 덧붙였다.휴가 마지막 날 일정으로 공연장을 찾았다는 이은희 씨(52)는 “세종문화회관의 1년 주요 공연을 연초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좋았다”며 “특히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을 ‘사랑의 시인’ 고명재 시인과 연결한 구성은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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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기술은 사람 섬겨야” AI 알고리즘 경고

    “인공지능(AI) 시대에 얼굴과 목소리를 지킨다는 것은 각 사람 안에 새겨진 신의 흔적을 보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황 레오 14세(사진)가 AI가 갈수록 인간의 삶에 깊게 영향을 미치며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냈다. 24일(현지 시간)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교황은 5월 17일 제60차 ‘세계 소통의 날’을 앞두고 발표한 메시지에서 AI를 주요한 화두로 삼았다. 교황은 “기술 혁신이 인간의 삶을 점점 더 깊이 형성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레오 14세는 “얼굴과 목소리는 모든 사람의 고유한 특성으로, 인간의 정체성과 관계의 기초를 이룬다”며 “이런 목소리와 얼굴, 감정까지 모방할 수 있는 AI 기술은 인간 소통의 본질적 차원을 변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교황은 또 숙고보다 즉각적인 감정 반응을 부추기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에 대한 AI의 악영향도 우려했다. AI로 인한 알고리즘 구조가 인간의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키고 사회적 양극화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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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 ᄒᆞᆫ ᄆᆞ리 기려 줍서”… 제주 방언 쓰는 생택쥐페리 ‘어린 왕자’

    “삼춘양, 양 기려 줍서.(저… 양 한 마리만 그려 줘.)”“무시거 어떵?(뭐?)”“양 ᄒᆞᆫ ᄆᆞ리만 기련도렌 ᄒᆞ엿수다.(양 한 마리만 그려줘…)”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가 주인공에게 그림을 부탁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웃어른을 존칭하는 ‘삼춘’과 ‘~수다’라는 종결어미. 제주 사투리를 썼다.‘어린 왕자는 왜 서울말만 쓸까?’이 물음에서 출발해 ‘어린 왕자’를 경상 전라 강원 등 각 지역 방언으로 옮겨 온 1인 출판사가 있다. 이팝출판사가 2020년 처음 출간된 경상도 사투리판 ‘애린 왕자’는 입소문을 타며 5만 부가 팔렸다. 최근에 제주어판 ‘족은 왕자’를 출간한 최현애 대표(43)와 제주어 ‘번역가’ 이지영 씨(39)를 21일 전화로 만났다. ‘족은’은 제주말로 ‘어린’이란 뜻이다.특히 제주어는 2010년 유네스코 지정 ‘소멸 위기 언어’로 분류된 실정이라, 이번 제주어판은 무게감이 남다르다. 고전을 통해 잊혀지는 지역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제주어는 현대 국어에선 사라진 아래아(·)와 쌍아래아(ᆢ) 및 중세 어휘가 살아 있어 지역의 문화 정체성 측면뿐 아니라 우리말을 이해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산이다.이지영 씨는 원래 제주 환상숲곶자왈공원을 경영하는 숲해설가.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책 한 권을 온전히 제주어로 옮기는 작업은 또 다른 공부가 필요했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가 문장 전체를 제주어로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저도 할머니들 앞에선 사투리가 많이 나오지만, 또래 친구들과는 ‘헨, 마씨, 헷저, 헷수다’ 같은 종결어미나 몇몇 단어만 섞어 쓴다”고 했다.사전을 수시로 찾아봤고, 제주어보전회 강좌도 들었다.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여행자’나 ‘탐험’에 해당하는 제주어가 있는지 어르신들에게 묻기도 했다. 문제는 제주어가 동서남북은 물론 마을마다도 조금씩 다르다는 점. 검수받을 때마다 표현이 또 다른 말로 바뀌는 탓에 작업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기준점을 정했다. 올해 여든일곱이신 이 씨의 외할머니다.이 씨는 “외할머니는 한글을 못 읽으신다. 게다가 평생 한경면 저지리 수동이란 마을에서만 사셨으니 (표준어의) 영향을 덜 받으신 분”이라고 했다. 같은 동네에 살며 같은 말씨를 듣고 자란 사촌 동생 3명도 작업에 참여했다. 이 씨는 제주어판의 오디오북 낭독도 손수 했다.“초등학교 2, 4학년인 제 아이들만 해도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들어요. 학교에서 제주어 교육을 받긴 하는데, 서울 사람이 흉내 내는 것처럼 말하더라고요. 우리는 그래도 귀가 트인 세대인데, 다음 세대는 듣는 것조차 힘든 세대가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로부터 배우고 써 온 말이 사라져 간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사투리 어린 왕자’ 시리즈의 기획자이자 이 책을 경상도 말로 옮긴 경북 포항 토박이 최현애 대표는 “방언은 지역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며 “방언이 표현할 수 있는 정체성을 계속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최 대표는 싱가포르 작가 축제에 참석했다가 독일 틴텐파스 출판사가 진행해 온 ‘어린 왕자’ 지역 언어 번역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지금까지 240여 개 언어로 번역됐는데, 모스부호는 물론 고대 이집트어, 앵글로색슨 룬 문자 같은 사어(死語)로도 번역됐다. 스코틀랜드 고유어인 ‘스코트어’로 ‘해리포터’ 번역판(‘Harry Potter and the Philosoher‘s Stane’)이 출간되는 등 해외에선 이런 비슷한 움직임이 활발하다.최 대표는 “평안도와 황해도 함경도까지, 언젠가 이 땅의 모든 말로 어린 왕자가 ‘양 한 마리만 그려 달라’는 부탁을 건네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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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여성의 아픔을 가벼이 본, 의학의 뼈아픈 오진

    그녀는 치료가 어려운 유방암 환자였다. 복부에 여러 개의 튜브를 단 채, 지난 6년간 자신을 돌본 주치의와 마지막 작별의 포옹을 나누던 순간. 생의 끝자락에서 그녀가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선생님께 땀을 흘려서 죄송해요.” 유방암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이 환자를 돌봤던 저자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 이런 말을 하는 환자의 모습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환자는 75세였다. 그녀는 유방절제술 흉터 위에 살구색 접착형 유두를 붙이고 진료실에 들어왔다. “흉한 모습을 보여 선생님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저자가 만난 여성 환자들은 이처럼 땀을 흘려서 미안해하고, 아파서 미안해하며, 심지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 자체를 사과했다. 병에 대한 공포심보다 수치심이 앞서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감정이 개인의 성향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적 유산’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었다. 남성의 몸이 ‘표준’으로 설정돼 온 의학사(史) 속에서 여성 질환의 진단과 치료가 주변부로 밀린 역사는 유구하다. 의학 용어부터가 이를 드러낸다. 여성의 외음부를 가리키는 라틴어 ‘푸덴다(pudenda)’는 ‘부끄러워해야 할 물건’이란 뜻이다. 책은 인체를 11개의 개별 기관계(피부계, 골격계, 근육계, 순환계, 호흡계, 소화계, 비뇨기계, 면역계, 신경계, 내분비계, 생식계)로 나누는 의학 교육의 틀을 따라가며, 그 안에 깊숙이 스며든 남성 중심적 가치관을 하나씩 짚어낸다. 가령 난소암은 의학 문헌에서 종종 ‘침묵의 살인마’로 불린다.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발견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난소암 초기 증상을 경험한 대부분의 여성은 병원을 찾는다. 다만 그 호소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이다. 2022년 부인과 종양학 전문의 바버라 고프가 난소암 환자 1700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 중 15%는 과민성대장증후군, 12%는 스트레스, 9%는 위염, 6%는 변비, 6%는 우울증, 4%는 기타 질환으로 오진됐다. 난소암이 침묵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듣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자신 역시 의사로서 비판하려는 시스템 안에 깊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의식했다고 고백한다. 2022년 기준 미국 의대 지원자의 57%는 여성이고, 의료계에서 활동하는 의사의 38%도 여성이다. 하버드대 의대가 1945년까지 여학생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그러나 의사의 성비가 달라졌다고 해서 의학 자체가 자동으로 달라지는 건 아니다. 많은 치료제가 남성과 여성의 몸에서 다르게 작용함에도, 여성은 오랫동안 연구 대상에서 배제돼 왔다. 이 책은 고정관념을 벗어나 의학의 시야 자체를 확장하자고 제안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질문은 흑인의 몸으로, 동양인의 몸으로, 그리고 젊은이의 몸에서 노년의 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몸을 바라보는 사고방식 자체를 다시 묻는 책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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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동물원 불편했던 이들… 동물 느끼려 찾아오죠

    충북 청주시에 있는 청주동물원엔 동물원 하면 떠오르는 기린이나 코끼리가 없다. 그 대신 부리 휜 독수리와 노쇠한 사자, 웅담 채취 농장에서 구조된 곰이 있다. 내실로 향하는 문이 늘 열려 있어, 동물은 원할 때만 방사장에 나가는 점도 다르다. 관람객은 보고 싶던 동물을 못 보고 갈 수도 있다. 사람에겐 다소 불친절하지만, 동물에겐 가장 친절한 동물원 아닐까. 이 동물원의 진료사육팀장이자 25년 차 수의사인 김정호 씨(52)를 19일 동물원에서 만났다. 그는 8일 자신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어크로스)를 펴냈다. 책의 부제는 ‘상처 입은 동물들을 구조하며 써내려간 간절함의 기록’이다. 작은 시립동물원인 이곳이 전국에 알려진 건 ‘갈비 사자’ 바람이가 계기였다. 바람이는 경남 김해의 한 개인동물원에서 ‘먹이 주기 체험용’으로 기르던 고령의 수사자. 7년 동안 시멘트 바닥의 공간에 갇혀 지내며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모습이 알려져 공분이 일었다. 2023년 김 수의사가 구조한 뒤 청주동물원에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경상도에서 가족과 함께 올라온 할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바람이를 보며 마치 거울 속 자신을 대하듯 말을 거시더라고요. 요즘은 그렇게 연세 드신 분들이 일부러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동물과 사람의 노년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죠.” 일반적인 동물원에선 동물이 늙거나 장애가 생기면 관람객의 시선에서 벗어난 뒤편으로 옮겨져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청주동물원은 이런 관행에서 벗어났다. 동물의 생로병사, 특히 삶의 후반부를 숨기지 않는다. 김 수의사는 “동물원 안에 세상을 떠난 동물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관도 있다”며 “사육사는 ‘동물복지사’로 불린다”고 했다. 방사 훈련장도 있다. 독수리 방사 훈련장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 활공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동물원이 동물을 ‘볼거리’로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갈 곳 없는 동물의 보호소이자 야생동물 재활치료소로 정체성을 바꾼 것. 이에 국내 최초로 2024년 동물 종 보전·증식 과정 운영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됐다. 웅담 채취용 곰부터 야생성을 잃은 산양까지. 김 수의사가 구조에 관여한 동물들은 모두 ‘식구’로 지낸다. “아픈 동물들의 ‘노아의 방주’ 같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먼저 나선 건 아니에요. 주변에서 알려주셔서 알게 됐고, 제가 마음이 안 불편하려고 하는 일이에요. 그냥 수의학이 좋았던 사람인데,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뀐 거죠.” 동물원 한편에는 ‘사람사’란 공간도 있다. 2년 전까지 스라소니가 살던 우리인데,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안내판엔 ‘호모사피엔스’란 학명이 적혀 있다. 김 수의사는 “동물원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남짓 걸린다”며 “그 잠깐을 위해 동물들은 저런 공간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는 걸, 몸으로 한번 느껴 보셨으면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인기 동물도 없고, 동물을 맘대로 볼 수 없는 동물원. 하지만 최근 관람객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동물복지 우선 원칙이 알려지며 “동물은 좋아하지만 동물‘원’은 불편했던” 이들이 전국에서 찾아온다. 동물원은 충북 지역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선생님 한 분이 동물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 영향이 수많은 학생에게 전해져요.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약자를 대하는 마음 같은 게 자연스럽게 길러지지 않을까요?”청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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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기린-코끼리는 없어요…‘사람에게 불친절한 동물원’의 수의사

    충북 청주시에 있는 청주동물원엔 동물원 하면 떠오르는 기린이나 코끼리가 없다. 대신 부리 휜 독수리와 노쇠한 사자, 웅담 채취 농장에서 구조된 곰이 있다. 내실로 향하는 문이 늘 열려있어, 동물은 원할 때만 방사장에 나가는 점도 다르다. 관람객은 보고 싶던 동물을 못 보고 갈 수도 있다. 사람에겐 다소 불친절하지만, 동물에겐 가장 친절한 동물원 아닐까. 이 동물원의 진료사육팀장이자 25년 차 수의사인 김정호 씨(52)를 19일 동물원에서 만났다. 그는 8일 자신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어크로스)를 펴냈다. 책의 부제는 ‘상처 입은 동물들을 구조하며 써내려간 간절함의 기록’이다.작은 시립동물원인 이곳이 전국에 알려진 건 ‘갈비 사자’ 바람이가 계기였다. 바람이는 경남 김해의 한 개인동물원에서 ‘먹이 주기 체험용’으로 기르던 노령의 수사자. 7년 동안 시멘트 바닥의 공간에 갇혀 지내며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모습이 알려져 공분이 일었다. 2023년 김 수의사가 구조한 뒤 청주동물원에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경상도에서 가족과 함께 올라온 할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바람이를 보며 마치 거울 속 자신을 대하듯 말을 거시더라고요. 요즘은 그렇게 연세 드신 분들이 일부러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동물과 사람의 노년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죠.”일반적인 동물원에선 동물이 늙거나 장애가 생기면 관람객의 시선에서 벗어난 뒤편으로 옮겨져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청주동물원은 이런 관행에서 벗어났다. 동물의 생로병사, 특히 삶의 후반부를 숨기지 않는다. 김 수의자는 “동물원 안에 세상을 떠난 동물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관도 있다”며 “사육사는 ‘동물복지사’로 불린다”고 했다.방사 훈련장도 있다. 독수리 방사 훈련장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 활공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동물원이 동물을 ‘볼거리’로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갈 곳 없는 동물의 보호소이자 야생동물 재활치료소로 정체성을 바꾼 것. 이에 국내 최초로 2024년 동물 종 보전·증식 과정 운영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됐다.웅담 채취용 곰부터 야생성을 잃은 산양까지. 김 수의사가 구조에 관여한 동물들은 모두 ‘식구’로 지낸다. “아픈 동물들의 ‘노아의 방주’ 같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제가 먼저 나선 건 아니에요. 주변에서 알려주셔서 알게 됐고, 제가 마음이 안 불편하려고 하는 일이에요. 그냥 수의학이 좋았던 사람인데,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뀐 거죠.”동물원 한편에는 ‘사람사’란 공간도 있다. 2년 전까지 스라소니가 살던 우리인데,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안내판엔 ‘호모 사피엔스’란 학명이 적혀있다. 김 수의사는 “동물원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남짓 걸린다”며 “그 잠깐을 위해 동물들은 저런 공간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는 걸, 몸으로 한번 느껴보셨으면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인기 동물도 없고, 동물을 맘대로 볼 수도 없는 동물원. 하지만 최근 관람객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동물복지 우선 원칙이 알려지며 “동물은 좋아하지만 동물‘원’은 불편했던” 이들이 전국에서 찾아온다. 동물원은 충북 지역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선생님 한 분이 동물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 영향이 수많은 학생들에게 전해져요.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약자를 대하는 마음 같은 게 자연스럽게 길러지지 않을까요?”청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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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 한 문장으로 쓴 600쪽짜리 묵시록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장편소설 ‘헤르쉬트 07769’(사진)가 16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2021년 헝가리에서 발표된 작품으로,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등 그의 대표작을 출간해온 출판사 알마가 노벨상 수상 직후 국내 출간을 예고했다. 신간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문학 세계가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사탄탱고’로 국내에도 익숙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종말과 붕괴의 감각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묵시록 문학’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이야기의 무대는 독일 튀링겐의 가상 마을 카나(우편번호 07769). 주인공 플로리안 헤르쉬트는 이름이 뜻하는 ‘통치와 지배’와는 달리 순박하고 어딘가 어수룩한 인물로, 청소회사를 운영하는 ‘보스’의 통제 아래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소설에서 바흐의 음악은 질서와 완결성을 상징하는 핵심 장치로 등장한다. 600쪽이 넘는 분량을 단 한 문장으로 끌고 가는 구성 역시 작가 특유의 극단적인 문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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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문학상 크러스너호르커이 ‘헤르쉬트 07769’ 국내 출간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장편소설 ‘헤르쉬트 07769’가 16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2021년 헝가리에서 발표된 작품으로,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등 그의 대표작을 출간해온 출판사 알마가 노벨상 수상 직후 국내 출간을 예고했다.신간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문학 세계가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 발표 당시 이 소설을 거론하며 “중부유럽 부조리극 전통에 뿌리를 둔 존재론적 글쓰기”라고 설명했다. ‘사탄탱고’로 국내에도 익숙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종말과 붕괴의 감각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묵시록 문학’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이야기의 무대는 독일 튀링겐의 가상 마을 카나(우편번호 07769). 주인공 플로리안 헤르쉬트는 이름이 뜻하는 ‘통치와 지배’와는 달리 순박하고 어딘가 어수룩한 인물로, 청소회사를 운영하는 ‘보스’의 통제 아래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그는 물리학 수업을 계기로 세계의 붕괴에 집착하게 되고, 급기야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불안은 점차 고립된 강박으로 변해간다.소설에서 바흐의 음악은 질서와 완결성을 상징하는 핵심 장치로 등장한다. 600쪽이 넘는 분량을 단 한 문장으로 끌고 가는 구성 역시 작가 특유의 극단적인 문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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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앨범 ‘아리랑’에 “한국적 정체성” 해외서 주목

    “BTS(방탄소년단)가 새 앨범 제목을 ‘아리랑(ARIRANG)’으로 정한 건 (한국인이란) 자신들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겠다는(clear affirmation) 시그널.”(영국 일간 가디언) 올해 컴백을 선언하며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BTS가 16일 “3월 20일 발매하는 신보 제목은 아리랑”이라고 밝히자, 해외에서도 이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등 엄청난 관심을 쏟고 있다. 가디언은 이날 “아리랑은 한반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민요이자, 세대를 초월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적인 비공식 국가(unofficial national anthem)”라고 평가했다. 특히 BTS가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입거나 공연에서 아리랑 메들리를 선보인 적이 있다는 걸 거론하며 “이들은 꾸준히 한국적 뿌리를 포용하는 모습을 이어왔다”고 했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 역시 ‘아리랑’이 지니는 함의에 주목했다. 포브스는 “이번 앨범 제목은 군 복무 등으로 오랜 공백기를 가졌던 BTS가 자신들의 뿌리로 돌아왔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포브스는 아울러 아리랑이 “약 3600가지 변형과 60여 가지 버전이 존재하는,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한국 민요”라며 “2012년 한국과 2014년 북한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시켰다”고도 설명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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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리로 돌아왔음을 암시”…외신, BTS 앨범 ‘아리랑’에 주목

    “BTS(방탄소년단)이 새 앨범 제목을 ‘아리랑(ARIRANG)’으로 정한 건 (한국인이란) 자신들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겠다는(clear affirmation) 시그널”(영국 일간 가디언) 올해 컴백을 선언하며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BTS가 16일 “3월 20일 발매하는 신보 제목은 아리랑”이라고 밝히자, 해외에서도 이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등 엄청난 관심을 쏟고 있다.가디언은 이날 “아리랑은 한반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민요이자, 세대를 초월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적인 비공식 국가(unofficial national anthem)”라며 “BTS는 많은 K팝 그룹들이 세계에 어필하기 위해 국제적인 이미지와 미학을 채택하는 흐름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BTS가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입거나 공연에서 아리랑 메들리를 선보인 적이 있다는 걸 거론하며 “이들은 꾸준히 한국적 뿌리를 포용하는 모습을 이어왔다”고 했다. 이어 이번 앨범을 통해 “수백만 명이 아리랑의 매력을 마주하거나 재발견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팝그룹의 문화적 바탕(cultural foundation)에 진입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미국 경제매체 포브스 역시 ‘아리랑’이 지니는 함의에 주목했다. 포브스는 “이번 앨범 제목은 군 복무 등으로 오랜 공백기을 가졌던 BTS가 자신들의 뿌리로 돌아왔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포브스는 아울러 아리랑이 “약 3600가지 변형과 60여 가지 버전이 존재하는,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한국 민요”라며 “2012년 한국과 2014년 북한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시켰다”고도 설명했다.BTS는 앞서 팬 플랫폼 위버스를 통해 정규 5집 제목이 ‘아리랑’이라고 밝혔다. 이 앨범엔 팀의 정체성과 그리움, ‘깊은 사랑’ 등의 감정을 다룬 총 14곡이 수록될 예정이다. BTS는 4월 9일부터 월드투어도 시작한다. 북미와 유럽, 남미, 아시아 등 34개 도시에서 79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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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추리소설 여왕’ 노트엔 온갖 독극물 목록이…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 간호사로 일했다. 병원 약국에서 약제사 훈련도 받았다. 조제실에 들어온 처방전을 전부 처리하고 나면 다음 처방전 무더기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그 짧은 사이를 이용해 애거사는 글을 썼다. 어느 날은 시를 썼다. 제목은 ‘조제실에서’. 지극히 평범한 공간에서 영감을 길어 올린 그의 글쓰기 방식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신간은 영국의 대중 역사학자이자 BBC 다큐멘터리 진행자가 쓴 애거사 크리스티 전기다. ‘애거사 덕후’인 저자가 ‘추리소설의 여왕’의 출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를 따라간다. 기록은 집요하다. 온갖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많은 정보)를 끌어모았달까. 애거사가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었는지, 어떤 배경에서 트릭을 떠올렸는지, 어떤 순간에 살해 수법을 결정했는지를 좇아간다. 애거사가 그려낸 가상의 세계는 그녀가 살던 현실과 닮아 있다. 애거사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다. 배운 사람들을 만나면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녀는 이런 감정을 작품 속 살인의 동기로 사용했다. 한 작품에서 여성 살인자는 이렇게 말한다.“나는 늘 머리가 좋았어, 어릴 때부터도! 하지만 나한테는 아무것도 못 하게 했어. 집에만 있어야 했어, 아무것도 안 하면서.” 1921년 영국에서 출간된 데뷔작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의 살해 방식은 독약이다. 작품 속에는 여자 약제사 ‘신시아’가 등장한다. 모두 약제사 시절의 경험이 녹아 들었다. 애거사가 쓴 탐정소설 66권 가운데 41권에 독극물을 이용한 살인, 살인미수, 자살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처럼 애거사의 경험이 작품 속 어디에, 어떤 대사로 스며들었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복원한다. 작가의 삶과 작품에 얽힌 사소한 정보와 일화들을 알고 나면 이미 읽은 작품도 새롭게 읽히게 된다. 책은 애거사 크리스티가 그 시대에 각광받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다각도로 짚어낸다. 탐정·범죄소설이라는 장르는 산업혁명을 거치며 영국인의 생활 터전이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가던 시기에 태어났다.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새로운 공포와 신경증이 생겨났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 모두를 알고 지냈다. 도시에서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부모가 소개해 준 사람과 결혼했다. 이제는 다르다. 내가 선택한 이 사람을 정말 믿을 수 있을까. 하녀는? 의사는? 이에 대한 저자의 부연은 흥미롭다. 셜록 홈스 소설에서는 범인이 희생자가 직접 아는 사람의 범위 밖에 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에서는 살인범이 ‘믿었던’ 이들 가운데 한 명으로 밝혀질 때가 많다는 것. 애거사 크리스티는 한 시대의 불안을 가장 영리하게 이야기로 만든 작가인 셈이다. 약제사조합 보조원 시험을 준비하며 썼던 애거사의 노트를 보면, 쉬는 시간마다 끄적인 말장난이 가득하다. 어떤 장 뒷면에는 연필로 남편 ‘아치볼드 크리스티’와 자신의 이름을 나란히 적어 두고, 겹치는 글자를 지워 가며 이름 궁합을 점친 낙서도 있다. 하지만 그가 ‘범죄의 여왕’임을 잊지 말 것. 노트를 앞으로 넘기면 곧 온갖 독극물 목록이 등장한다. 벨라도나에서 추출한 알칼로이드, 스코폴라민브롬화수소산…. 작가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애거사에겐 일과 놀이의 경계가 없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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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조제실에서 시작된 추리의 세계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 간호사로 일했다. 병원 약국에서 약제사 훈련도 받았다. 조제실에 들어온 처방전을 전부 처리하고 나면 다음 처방전 무더기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그 짧은 사이를 이용해 애거사는 글을 썼다. 어느 날은 시를 썼다. 제목은 ‘조제실에서’. 지극히 평범한 공간에서 영감을 길어 올린 그의 글쓰기 방식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신간은 영국의 대중 역사학자이자 BBC 다큐멘터리 진행자가 쓴 애거사 크리스티 전기다. ‘애거사 덕후’인 저자가 ‘추리소설의 여왕’의 출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를 따라간다. 기록은 집요하다. 온갖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많은 정보)를 끌어모았달까. 애거사가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었는지, 어떤 배경에서 트릭을 떠올렸는지, 어떤 순간에 살해 수법을 결정했는지를 좇아간다.애거사가 그려낸 가상의 세계는 그녀가 살던 현실과 닮아있다. 애거사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다. 배운 사람들을 만나면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녀는 이런 감정을 작품 속 살인의 동기로 사용했다. 한 작품에서 여성 살인자는 이렇게 말한다.“나는 늘 머리가 좋았어, 어릴 때부터도! 하지만 나한테는 아무것도 못 하게 했어. 집에만 있어야 했어, 아무것도 안 하면서.”1921년 영국에서 출간된 데뷔작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의 살해 방식은 독약이다. 작품 속에는 여자 약제사 ‘신시아’가 등장한다. 모두 약제사 시절의 경험이 녹아 들었다. 애거사가 쓴 탐정소설 66권 가운데 41권에 독극물을 이용한 살인, 살인미수, 자살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처럼 애거사의 경험이 작품 속 어디에, 어떤 대사로 스며들었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복원한다. 작가의 삶과 작품에 얽힌 사소한 정보와 일화들을 알고 나면 이미 읽은 작품도 새롭게 읽히게 된다.책은 애거사 크리스티가 그 시대에 각광받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다각도로 짚어낸다. 탐정·범죄소설이라는 장르는 산업혁명을 거치며 영국인의 생활 터전이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가던 시기에 태어났다.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새로운 공포와 신경증이 생겨났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 모두를 알고 지냈다. 도시에서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부모가 소개해 준 사람과 결혼했다. 이제는 다르다. 내가 선택한 이 사람을 정말 믿을 수 있을까. 하녀는? 의사는? 이에 대한 저자의 부연은 흥미롭다. 셜록 홈즈 소설에서는 범인이 희생자가 직접 아는 사람의 범위 밖에 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에서는 살인범이 ‘믿었던’ 이들 가운데 한 명으로 밝혀질 때가 많다는 것. 애거사 크리스티는 한 시대의 불안을 가장 영리하게 이야기로 만든 작가인 셈이다.약제사조합 보조원 시험을 준비하며 썼던 애거사의 노트를 보면, 쉬는 시간마다 끄적인 말장난이 가득하다. 어떤 장 뒷면에는 연필로 남편 ‘아치볼드 크리스티’와 자신의 이름을 나란히 적어 두고, 겹치는 글자를 지워가며 이름 궁합을 점친 낙서도 있다.하지만 그가 ‘범죄의 여왕’임을 잊지 말 것. 노트를 앞으로 넘기면 곧 온갖 독극물 목록이 등장한다. 벨라도나에서 추출한 알칼로이드, 스코폴라민브롬화수소산…. 작가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애거사에겐 일과 놀이의 경계가 없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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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제목에 ‘Hagwon’… “교육열 이유 알고 싶었다”

    “한국인들에게 왜 교육이 그토록 중요한지 알고 싶어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로도 제작돼 화제를 모은 소설 ‘파친코’를 쓴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58·사진)의 새 소설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이 9월 출간된다. 14일(현지 시간) 미국 출판사 아셰트 북 그룹에 따르면 이 작가의 세 번째 장편 소설이 9월 29일 북미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 작가는 2007년에 첫 장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펴냈으며, 2017년 ‘파친코’를 출간했다. 제목에 ‘학원(Hagwon)’이란 한국어를 그대로 살린 소설 ‘아메리칸 학원’은 끊임없이 바뀌는 세상 속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한 한국계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엘리트 교육과 희생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이뤘지만, 친구의 배신과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과정을 다뤘다고 한다. 출판사 측은 “디아스포라 4부작의 세 번째 작품인 ‘아메리칸 학원’은 야망, 욕망, 생존, 그리고 뜻밖의 은혜를 찬란하게 그려낸, 고전이 될 만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출판사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번 소설은 제가 독자들과 가장 나누고 싶었던 작품”이라며 “저 또한 독자로서 역경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가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결국 성공할 수 있을지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7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하다가 소설에 뛰어들었다. 일제강점기 재일 한국인들의 삶을 다룬 소설 ‘파친코’는 2014년 미 뉴욕타임스(NYT)가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에서 15위로 선정되기도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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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어디까지 선 넘을래?

    “연기설은 삼법인 중 제행무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야!”(정경 스님) “맞습니다, 스님. 아주 핵심을 짚으셨습니다.”(챗GPT) 6일 출간된 책 ‘석가 웃다’(지혜의나무)는 스님이 챗GPT와 나눈 대화를 수록한 일종의 대담집. 챗GPT가 오답을 말하면 말하는 대로, 스님이 채근하면 채근하는 대로 실제 문답을 엮었다. 스님 서문과 별도로 ‘챗GPT가 쓴 서문’도 실렸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출판계에도 AI가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석가 웃다’처럼 활용을 명시한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 △기획 △집필 △번역 △교정·교열 △디자인 등 여러 과정에서 조용히 쓰이고 있다. 때문에 제작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만, 표절이나 원고 유출의 위험 등 “아슬아슬한 순간도 많다”는 말이 나온다. AI와 기존 출판업계의 관행, 윤리가 교차하는 풍경을 살펴봤다.● 1인 출판사 “안 쓰면 바보”번역서를 주로 출간하는 1인 출판사 A 대표는 “업무 효율이 좋아지니 안 쓸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이전엔 외주를 맡긴 번역 원고가 들어온 뒤에도 대표가 일일이 검토하느라 출간까지 두 달 이상 걸렸다. 하지만 AI를 활용하면 한 달 이내로 줄일 수 있다. A 대표는 “외주 번역가들에게도 AI를 쓰라고 요청한다. 그래야 원고가 훨씬 깔끔하게 들어온다”고 했다. ‘AI 번역’에 대한 거부감도 옛말이다. 또 다른 출판사 편집자는 “번역가들에게 묻진 않지만 이젠 당연히 제미나이나 챗GPT를 썼을 거라 여긴다”며 “번역가는 일종의 디렉터가 돼 번역 결과를 감수하는 구조”라고 했다. 인간이 감수만 잘하면 오히려 번역의 질을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신개념 표절’의 등장 하지만 창작물은 사정이 다르다. 최근 문학 출판사 B사는 계약서에 ‘AI 교정·교열을 허용한다’는 문구를 넣으려다 내부 반대로 보류했다. 출간 전 원고를 AI에 입력했다가 오픈 소스로 유출될 경우,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창작물이 AI 학습 데이터로 흘러 들어가 알게 모르게 표절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최근 한 문학상 심사 과정중 응모작에서 유명 작가의 베스트셀러와 서너 문단 연속으로 흐름이 유사한 대목을 발견했다. 그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은 창작물일 가능성을 심사위원들도 인지했다”며 “자기도 모르게 표절한 셈인데, 해당 작품은 탈락했지만 어떤 기준으로 걸러낼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표절 문제는 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C 출판사 대표는 “희귀 조류나 식물 사진은 저작권자로부터 컷당 10만∼20만 원을 주고 사야 하는데, AI로 연필화로 바꾸거나 각도를 변형해 무단 사용하는 경우가 잦은 실정”이라며 “AI를 무분별하게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고 했다.● ‘딸깍 출판’의 유혹 최근 한 출판사에서 낸 세계문학 시리즈 ‘오디세이아’ 번역본(종이책)에 ‘알빠노’(내 알 바 아니다)나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같은 인터넷 용어가 쓰인 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전공책을 주로 내 온 해당 출판사가 고전 번역에 뛰어들며 AI에 과도하게 의존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왔다. 한 출판사 대표는 “저작권이 풀린 책들은 이젠 클릭 한 번으로 ‘딸깍’ 출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AI 자체보다 ‘검수 포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최근 신입사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만든 책과 AI가 만든 책이 경쟁하는 시대가 현실이 될 것 같다”고.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만큼 책임과 기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는 얘기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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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쓰면 바보” vs “나도 모르게 표절”…출판계의 AI 딜레마

    “연기설은 삼법인 중 제행무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야!”(정경 스님)“맞습니다, 스님. 아주 핵심을 짚으셨습니다.”(챗GPT)6일 출간된 책 ‘석가 웃다’(지혜의나무)는 스님이 챗GPT와 나눈 대화를 수록한 일종의 대담집. 챗GPT가 오답을 말하면 말하는 대로, 스님이 채근하면 채근하는 대로 실제 문답을 엮었다. 스님 서문과 별도로 ‘챗GPT가 쓴 서문’도 실렸다.생성형 인공지능(AI)이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출판계에도 AI가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석가 웃다’처럼 활용을 명시한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 △기획 △집필 △번역 △교정·교열 △디자인 과정 등 여러 과정에서 조용히 쓰이고 있다. 때문에 제작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만, 표절이나 원고 유출의 위험 등 “아슬아슬한 순간도 많다”는 말이 나온다. 한 출판 관계자는 “책은 인간이 만들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AI를 쓰면서도 쓴다고 말하기엔 심리적 저항감이 있다”고 했다. AI와 기존 출판업계의 관행, 윤리가 교차하는 풍경을 살펴봤다.● 1인 출판사 “안 쓰면 바보”번역서를 주로 출간하는 1인 출판사 A 대표는 “업무 효율이 좋아지니 안 쓸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이전엔 외주를 맡긴 번역 원고가 들어온 뒤에도 대표가 일일이 검토하느라 출간까지 두 달 이상 걸렸다. 하지만 AI를 활용하면 한 달 이내로 줄일 수 있다. A 대표는 “외주 번역가들에게도 AI를 쓰라고 요청한다. 그래야 원고가 훨씬 깔끔하게 들어온다”고 했다.‘AI 번역’에 대한 거부감도 옛말이다. 또 다른 출판사 편집자는 “번역가들에게 묻진 않지만 이젠 당연히 제미나이나 챗GPT를 썼을 거라 여긴다”며 “번역가는 일종의 디렉터가 돼 번역 결과를 감수하는 구조”라고 했다. 인간이 감수만 잘하면 오히려 번역의 질을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신개념 표절’의 등장하지만 창작물은 사정이 다르다. 최근 문학출판사 B사는 계약서에 ‘AI 교정·교열을 허용한다’는 문구를 넣으려다 내부 반대로 보류했다. 출간 전 원고를 AI에 입력했다가 오픈 소스로 유출될 경우,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창작물이 AI 학습데이터로 흘러 들어가 알게 모르게 표절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최근 한 문학상 심사 과정 중 응모작에서 유명 작가의 베스트셀러와 서너 문단 연속 흐름이 유사한 대목을 발견했다. 그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은 창작물일 가능성을 심사위원들도 인지했다”며 “자기도 모르게 표절한 셈인데, 해당 작품은 탈락했지만 어떤 기준으로 걸러낼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표절 문제는 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C 출판사 대표는 “희귀 조류나 식물 사진은 저작권자로부터 컷당 10만~20만 원을 주고 사야 하는데, AI로 연필화로 바꾸거나 각도를 변형해 무단 사용하는 경우가 잦은 실정”이라며 “AI를 무분별하게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고 했다.● ‘딸깍 출판’의 유혹최근 한 출판사에서 낸 세계문학 시리즈 ‘오디세이아’ 번역본(종이책)에 ‘알빠노(내 알 바 아니다)’나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같은 인터넷 용어가 쓰인 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번역자도 명시되지 않은 탓에, 전공책을 주로 내 온 해당 출판사가 고전 번역에 뛰어들며 AI에 과도하게 의존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왔다.한 출판사 대표는 “저작권이 풀린 책들은 이전에도 짜깁기 번역이 많았는데, 이젠 클릭 한 번으로 ‘딸깍’ 출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일부 ‘AI 출판’이 욕을 먹는 건 번역가나 편집자 등 전문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AI에만 의지하기 때문이다. AI 자체보다 ‘검수 포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한 출판사 편집자는 최근 신입사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만든 책과 AI가 만든 책이 경쟁하는 시대가 현실이 될 것 같다”고.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만큼 책임과 기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는 얘기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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