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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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용 기자입니다.

parky@donga.com

취재분야

2024-03-28~2024-04-27
칼럼97%
사설/칼럼3%
  • 공인인증서를 ‘괴물’로 만든 사람들[오늘과 내일/박용]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모 씨(38)는 지난달 말 미국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미 전자상거래 회사 아마존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주문했다. 아마존은 45% 할인을 하고 한국 현대카드로 결제를 하면 10% 추가 할인을 해줬다. 99달러가 넘는 주문은 서울까지 배송료도 받지 않았다. 박 씨는 이렇게 해서 199.95달러짜리 스피커를 98.95달러에 손에 넣었다. 구매 금액이 200달러 미만이어서 관세도 없다. 소비세가 붙는 미 현지에 비해 서울에서 한국 카드로 20% 더 싸게 산 셈이다. 국내 판매가의 3분의 1도 안 됐다. 국경과 지리적 제약이 사라진 전자상거래 시대의 ‘마법’이다. 한국은 이런 시대에도 ‘재래시장 몇 km 내에선 대형마트를 열 수 없다’거나 ‘일요일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철 지난 유통 규제와 씨름한다. 철기시대에 돌칼을 날카롭게 갈고 있는 석기시대 사람들을 만난 것처럼 답답하다. 한국 전자상거래의 ‘손톱 밑 가시’이던 공인인증서는 도입한 지 21년이 지난 10일에야 독점적 지위를 내려놓았다. 1990년대 후반 공인인증서를 도입할 때 민간 인증서를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당시 정보통신부는 세계에서도 드문 국가 차원의 공인인증 시스템 구축과 전자서명법 제정을 밀어붙였다. 한번 만들어 놓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 경직되고 폐쇄적인 관 주도 인프라는 한국 전자상거래 시장에 4가지 흉터를 남겼다. 첫째, 국가 차원의 공인인증 덕분에 인터넷 뱅킹과 전자정부 서비스는 빠르게 확산됐지만 다른 나라들에선 통용되지 않는 한국만의 표준이었다. 국경을 넘어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는 인터넷 시대의 여권이 필요한데도 주민등록증만 들고 비행기를 타게 한 셈이다.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이 입은 ‘천송이 코트’를 중국인들이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살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둘째, 익스플로러 웹브라우저와 액티브엑스(X) 등을 내려받게 하는 기술 종속은 시장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됐다. 구글의 크롬 웹브라우저나 애플 아이폰 등에선 한국 공인인증서가 돌아가지 않았다. 한국의 전자상거래는 세계 시장에서 더욱 고립된 ‘갈라파고스섬’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셋째, 정부는 2002년과 2003년 인터넷 뱅킹과 온라인 증권거래에 공인인증서 사용을 각각 의무화했다. 정부 독점은 시장에서 혁신의 싹을 없앴다. 민간 기업들이 새로운 인증 수단을 개발하거나 보안기술에 투자할 유인은 사라졌다. 정보기술(IT) 예산 중 정보보호 예산이 5% 이상인 한국 기업은 전체의 2.9%에 그친다. 넷째, 금융사고 책임은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은행이나 인터넷 쇼핑몰들은 의무화된 공인인증서만 잘 챙기면 금융사고 책임을 지지 않았다. 소액결제에도 공인인증서를 요구하고 이용자에게 각종 보안 프로그램을 내려받게 해 인증서 관리 책임을 떠넘겼다. 미국에선 사고가 나면 1차 책임은 아마존이나 카드사가 진다. 신용카드사가 사기추적시스템(FDS)으로 감지해 부정거래를 선제적으로 막고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돌고 돌아 민간 회사들이 경쟁하던 1999년 공인인증서 도입 이전으로 겨우 복귀했다. 정부 실패를 바로잡는 데 수십 년이 걸린 셈이다. 공인인증서는 사라졌어도 인증만 까다롭게 하는 책임 전가 관행은 여전하다. 정부가 만든 공인인증서는 ‘공동인증서’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은행 등도 복잡한 사설 인증서들을 쏟아낸다. 아마존에선 지금도 쓰지 않는 것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이름, 주소, 신용카드 정보 정도만으로도 물건을 쉽게 살 수 있게 한 걸까. 모르면 쫓아가지도 못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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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래서 부동산 정치가 ‘4류’ 아닌가[오늘과 내일/박용]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저금리에 따른 현상이다. 세금 문제와는 별개다. 정부는 전국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었기 때문에 공급 확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재건축을 규제하면 공급이 억제돼 도리어 값이 오른다.” 서울의 한 민간 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 현장. 연구원 A 씨는 “집값 급등은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 등의 시장 외적 요인과 양질의 주거 환경 선호 및 공급 애로 등의 시장 내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원인과 다른 세금 중과, 재건축 규제, 아파트 분양가 규제, 수급 문제를 주거 복지로 연결, 수도권 신도시 개발 규제 등 5가지 오류를 저질렀다는 비판이었다. 그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특징을 ‘수요를 투기세력으로 인식한다’ ‘부동산 이익에 대한 거부감으로 세금을 중과한다’ ‘부동산을 양극화의 시각으로 본다’는 3가지로 요약했다. 통치이념이 분배여서 부동산 정책 기조도 지역 간 계층 간 형평성을 중시하고, 정책 수단도 조세에 의존해 양극화 해소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해법은 이랬다. 먼저 사람들이 원하는 양질의 아파트 공급 확대를 주문했다. 또 탈세와 탈법은 엄격히 막되 ‘징벌적 세금’은 피해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유세를 내려고 집을 팔거나 대출을 받아야 한다면 문제가 아니냐” “미국은 투자는 있지만 탈세는 없는 반면 한국은 투기와 탈세는 있는데 투자는 없다”고 했다. 그는 “시장이 불안하면 비용을 치르는 것은 결국 정부가 아니라 국민, 1주택 아니면 모두 투기라고 하면 누가 임대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부동산이란 ‘역린’을 건드리자 일부 참석자들은 발끈했다. “정부 대책이 최선은 못 돼도 차선은 되지 않느냐” “세금이 너무 올랐다고 하는데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이다. 전남 해남의 집과 서울 강남 집의 재산세가 별로 차이가 없는 게 말이 되나”라는 반박이 나왔다. 누군가는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대책을 내놓았더니 이제는 문제가 많다고 하니 어떡하란 말인가” “언론은 일관성, 합리성 있는 보도를 해왔는가”라며 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문재인 정부 4년 차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노무현 정부 4년 차인 2006년 6월 세미나 현장에 대한 취재 기록을 옮겨놓은 것이다. 14년 전엔 강남 분당 등 일부 지역만 들썩거렸는데 지금은 규제가 없는 곳이라면 지방까지 들썩거린다. 그때는 저금리에 국토균형개발 사업으로 지방에 막대한 토지보상금이 풀렸는데 지금은 위기 극복을 위해 유동성이 풀린 건 다르다. 하지만 저금리가 문제가 아니라 저금리로 시장에 ‘유동성’이 밀물처럼 밀려오는데 무모하게 규제와 세금으로 막겠다고 덤빈 게 문제라거나 수요를 잠재울 ‘공급 확대’ 카드를 외면해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비판은 지금도 나온다. 전 정부의 규제 완화, 언론 탓을 하는 건 그때도 그랬다. 14년 전처럼 수요를 투기로 간주하면 살 집이 없어 못 살겠다는 시민에게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동문서답을 할 법도 하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이 14년간 같은 논쟁과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시장에서 조용히 도태될 것이다. 과오를 잘 아는 공무원들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파수를 맞추고 온수와 냉수를 번갈아 틀어대니 시민들만 죽을 맛이고,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비웃는 게 아닌가. 부동산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지 정쟁 대상이 아니다.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부동산 정치’에 대한 불신이 서서히 바뀔 것이다. 14년 후 취재 수첩을 뒤지며 오늘을 복기하는 일이 다신 없었으면 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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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는 가도 ‘일자리 전쟁’은 계속된다[오늘과 내일/박용]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현직인데도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밀렸다. CNN 출구 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경제 회복을, 바이든 지지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바이든 손을 들어준 대선 결과는 ‘방역이 경제 회복보다 시급하다’는 민심인 셈이다. 한편으로 박빙의 승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엉터리 방역으로 미국인들의 안전과 자존심을 추락시키지 않았다면, 선거 구도를 ‘트럼프 대 바이든’이 아닌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로 몰고 가지 않았다면 표심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게 한다. 바이든 당선인이 당장은 코로나19 방역에 전력을 다하겠지만 불길이 잡히면 경제 회복과 미국인 일자리 복원에 힘을 줄 수밖에 없다. 그가 약속한 ‘통합과 치유’의 정치를 하려면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47.4%의 트럼프 지지자들을 보듬어야 한다. 그들과 공명할 수 있는 정책 공약수는 중산층 재건과 제조업 일자리다. 트럼프를 백악관 주인으로 이끈 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유산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시민’으로 불리며 국제사회에서 인기가 많았으나 안에서는 미국인 일자리를 챙기지 못한다는 반대 세력의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케어’ 등 사회 안전망을 늘려 저소득층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했으나 자국 기업이 해외로 떠나고 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다. 그는 집권 2기에 제조업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든다고 했는데 36만 개만 만들었다.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 해소에 집중하다가 경제의 허리인 ‘일하는 중산층’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민주당에 등을 돌린 일부 중산층은 열심히 일해 세금과 의료보험료 등을 내느라 등골이 휘는데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일자리까지 불안하니 자신들은 ‘잊힌 사람들’이라며 억울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 나라의 ‘잊힌 남성들과 여성들’이 더는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건 우연이 아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광산촌인 스크랜턴에서 태어나 자동차 영업 일을 하는 부친 밑에서 자란 바이든 당선인이 부잣집 아들인 트럼프 대통령보다 쇠락한 공업지대의 아픔과 잊힌 중산층의 고통을 모를 리 없다. 바이든 당선인은 7일 대선 승리 연설에서 중산층을 ‘국가의 중추’로 정의하고 재건을 선언했다. 선거 때는 ‘제조업은 미국 번영의 무기’로 규정했다. 일자리 보호를 위한 ‘바이 아메리칸’ 공약도 내걸었다. 연방정부 조달 사업에서 미국산 구매 기준을 엄격히 하고 세금으로 개발한 신기술로 해외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것도 제한하겠다고 했다. 미 자동차 산업 부활과 미 항구 내 화물 운송을 미 선박에 맡긴다는 구상도 있다. 바이든 캠프는 “무역에 대한 모든 결정의 목적은 미 중산층을 재건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을 올리고 지역사회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불공정 관행, 환율 조작, 반덤핑, 국영기업 악용, 불공정한 보조금으로 미 제조업을 약화시키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에 대해 공세적 무역 이행 조치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우격다짐은 아니더라도 바이든식 보호무역 공세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주요 타깃은 중국이 되겠지만 미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도 반덤핑 관세 등의 불똥이 튈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일하는 중산층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면 4년 뒤 ‘샤이 트럼프’(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트럼프 지지자)는 투표장에서 다시 결기를 보일 것이다. 못을 빼도 못 자국이 남듯이 ‘트럼프는 가도 트럼프주의는 남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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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테크’의 배신[오늘과 내일/박용]

    갓 3년을 넘긴 신생 은행 몸값이 국내 4대 금융지주회사보다 높다고 한다면 예전엔 웃어넘겼을 것이다. 요즘엔 그랬다간 물정 모른다는 소릴 듣는다. 2017년 카카오가 세운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최근 유상증자로 7500억 원을 조달한다고 했더니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들이 주당 2만3500원을 쳐서 지분을 사기로 했다. 내년 상장을 추진하는 이 은행의 지분가치를 약 8조5800억 원으로 평가한 것이다. 국내 4대 금융지주 시가총액과 비교하면 하나금융(9조 원대)에 근접하고 우리금융(6조 원대)보다 높다. 이런 일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다. 중국의 빅테크(거대 기술기업)인 알리바바가 설립한 금융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은 다음 달 중국 상하이와 홍콩 증시 동시 상장을 추진한다. 이 회사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약 345억 달러로 세계 최대 공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장에 성공하면 시가총액은 3130억 달러로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3163억 달러)와 맞먹는다. 빅테크가 금융시장으로 몰려들면 기존 금융사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29일 열린 제2회 동아 뉴센테니얼포럼 기조연사로 나선 타일러 카우언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서로 영역을 확대하다가 충돌하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규제 전쟁’을 예고했다. 박관수 캐롯손해보험 뉴비즈앤서비스 부문장도 “2000년대 유통회사와 충돌하던 전자상거래 시장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빅테크가 더 편리하고 저렴하며 안전한 금융 서비스를 내놓는다면 소비자들은 환영할 것이다. 규제로 막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개방과 공유의 공간인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 덕분에 성장하고도 덩치가 커진 뒤엔 다른 경쟁자가 진입하지 못하게 문을 닫아걸고 통행세나 다름없는 수수료를 거두는 철옹성을 쌓는다면 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 미국 정부는 구글을 시장 지배력을 악용해 경쟁자들을 배제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반독점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 제프리 로즌 미 법무부 부장관은 “정부가 반독점법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차세대 혁신의 물결을 잃을 것이고 미국인들은 ‘차세대 구글’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빅테크가 소비자들의 정보를 끌어모아 만든 플랫폼은 한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편리함을 주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공짜는 아니다. 공짜 플랫폼을 열고 소비자를 모은 뒤에 플랫폼을 이용하려는 금융사 등에서 수수료를 받는 식의 양면 전략을 구사한다. 결국 소비자들이 어딘가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라면 독과점 플랫폼에 따른 소비자 이익의 훼손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빅테크 네이버가 세운 금융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은 기존 금융사와 제휴하는 형태로 금융시장에 우회 진출했다. 실상은 ‘네이버 통장’처럼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연결해 주거나 플랫폼에 입점한 온라인 상인들에게 금융사 대출을 알선하는 일종의 금융 중개 서비스다. 문제는 편리함을 미끼로 지나친 수수료를 요구할 때 발생한다. 수수료 받아가는 거간꾼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네이버는 보험시장 진출을 추진하다가 이 문제로 발목을 잡혔다. 보험사들은 전화마케팅 수수료(5∼10%)보다 높은 건당 11%의 수수료를 줘야 할지 모른다고 반발한다. 이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의자 뺏기’와 같은 수수료 싸움을 혁신이라고 부를 순 없을 것이다. 금융 관료들이 요즘 ‘성을 쌓는 자는 쇠할 것이고, 길을 뚫는 자는 흥할 것’이라는 유목민의 격언을 자주 얘기한다. 혁신은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편익을 가져다주는 길을 개척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빅테크가 정말로 새 길을 뚫고자 한다면 소비자 편에 서는 개방과 공유의 ‘인터넷 초심’으로 되돌아가길 바란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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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스 형, 펀드가 왜 이래?’[오늘과 내일/박용]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를 수술대에 올린 ‘집도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76)의 이름이 뜬금없는 데서 등장했다. 거액의 펀드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로비 창구로 의심을 받고 있는 고문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경제 원로의 명성에 큰 금이 갔다. 한국 펀드시장은 중병이 들었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옵티머스 사태의 기본 틀은 19세기부터 반복된 ‘폰지 사기’와 비슷하다는 게 검찰의 분석이다. 투자 수익을 약속한 뒤 다른 투자자의 돈을 끌어와 돌려 막으며 돈세탁을 거쳐 투자금을 빼돌린 전형적 사기수법이라는 거다. 옵티머스 펀드 자금 5100억여 원 중 절반 정도가 ‘돌려 막기’에 쓰였고 4000억 원 정도는 돈세탁을 거쳐 누군가 주머니에 녹아 들어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는 말도 들린다.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유동화 작업이 필요한 공공기관 매출 채권으로 투자자를 속이고 공공기관들의 기금과 유력 인사를 고문으로 끌어들인 수법은 한국 금융계의 약한 고리를 잘 아는 ‘꾼’의 냄새가 난다. 배후엔 대담한 ‘매스터마인드(범죄 지휘자)’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사고 규모는 3108억 원으로 전년보다 1812억 원(139.8%) 늘었다. 100억 원이 넘는 대형 사고는 2018년 1건에서 6건으로 증가했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반대를 무릅쓰고 1월 서울남부지검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했다. 노련한 꾼들은 ‘여의도 저승사자’의 해체를 ‘그린라이트’ 신호로 여겼을 것이다. 금융사기만 문제는 아니다. 투자자들이 맡긴 돈을 굴리는 ‘금융 집사(스튜어드)’들의 일탈과 무능에 대한 불신도 여전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한국 금융사들은 미국 투자은행들이 설계한 파생 금융상품에 멋모른 채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냈다. 당시 한 시중은행장은 “정장을 빼입고 서류 가방을 든 외국계 은행 영업사원들이 들고 온 상품설명서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돈을 넣었다”고 후회했다. 10년 넘게 흐른 지금도 ‘깜깜이 투자’는 반복된다. 2015∼2017년엔 없던 환매 연기 펀드가 2018년 10개로 늘더니 올해 7월과 8월 각각 21개, 22개가 발생했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입수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지적이다. 이 중에는 해외 금융상품이나 자산 등에 돈을 밀어 넣었다가 환매 중단된 펀드들이 포함돼 있다. 잘 키운 펀드는 혁신기업 생태계의 동맥이지만 견제 장치가 고장 난 펀드는 멀쩡한 기업 생태계마저 망가뜨린다. 옵티머스 자금 중 일부는 기업 사냥꾼들이나 쓰는 무자본 인수합병(M&A)의 돈줄로 동원됐다. 국민의 은퇴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인력들이 대마초까지 흡입할 정도로 기강이 흔들리고 기금 운용 전문 인력을 제대로 뽑지 못하는데도 한국 기업 경영에 대한 견제 책임까지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에선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했던 미 기업을 망가뜨리고 1 대 99의 양극화 논란을 불러온 원인 중 하나로 단기 실적과 거액의 배당을 요구하는 ‘펀드 자본주의’를 꼽기도 한다. 펀드에 맡기면 잘될 거라는 ‘펀드 만능주의’도 불안하다. 정부나 정치권은 툭하면 펀드 타령이다. 정부가 수익성과 성장성이 떨어지는 정책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다 보니 정권마다 ‘관제 펀드’들이 생겨난다. 제대로 된 기업을 키우고, 인재를 육성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면 자본은 민간에서 흘러 들어올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고장 난 펀드 자본주의를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나훈아 노래처럼 펀드 투자자들이 ‘테스 형, 펀드가 왜 이래?’라고 따져 묻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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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통역병을 제비뽑기해야 하는 나라[오늘과 내일/박용]

    2월 영화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현지 통역 최성재(샤론 최) 씨의 맛깔스러운 통역 덕분에 세계와 소통할 수 있었다.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 정상회담도 전문 통역관의 입을 통해 이뤄졌다. 미묘한 어감과 말의 맛까지 살려야 하는 통역은 실력과 경험이 검증된 프로들의 세계다. 대한민국은 이런 일도 제비뽑기로 정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 씨(27)의 휴가 특혜 논란으로 국방부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투입할 통역병을 카투사(KATUSA·미군 배속 한국군)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발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카투사들이 평소에 영어를 쓰며 근무를 한다지만 다는 아니다. 통역은 일상 업무와도 다르다. 사람마다 어학 실력도 제각각이니 누가 돼도 문제없는 일은 아니었다. 당시 주한 미8군 한국군 지원단장이었던 이철원 예비역 대령은 “‘서 군과 관련해 여러 번 청탁 전화가 오고, 2사단 지역대에도 청탁 전화가 온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제가 2사단 지역대에 가서 서 군을 포함한 지원자 앞에서 제비뽑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추 장관의 해명은 달랐다. 그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제 아들인 줄 알고 군이 방식을 바꿔 제비뽑기로 떨어뜨렸다”며 조사를 요구했다. 한쪽은 권력자의 청탁 논란을 피하려고 그랬다고 하고, 다른 쪽은 군이 여당 대표 아들을 떨어뜨리려고 선발 방식을 바꿨다고 주장한다. 외압과 음모 어느 쪽이든 외부 요인으로 선발 과정이 변질된 건 심각한 문제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 로또 추첨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구시대엔 부와 권력이 계급, 재산, 연고 등에 따라 배분됐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지지자들에게 공직을 나눠주는 ‘엽관제도(Spoils system)’가 횡행하던 미국에서는 1881년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공직을 받지 못해 불만을 가진 지지자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이후 대대적인 개혁이 이뤄졌다. 공직을 당적이 아닌 실력에 따라 선발하는 ‘실력주의(Meritocracy)’가 그때 자리 잡았다. 재능과 노력으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세계 최강 국가로 밀어 올렸다. 한국 사회의 실력주의 믿음은 필자가 미 2사단에서 카투사로 근무했던 20여 년 전보다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엔 국사 국민윤리 영어 필기시험을 치러 뽑았다. 이 지식이 미군과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그때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선발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토익 780점 이상 등 어학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지원자 중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한다. 자대 배치도 컴퓨터 추첨이다. 추첨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공정한 기회와 절차의 수단은 아닐 것이다. 미국식 실력주의가 과도한 경쟁을 부르고 승자 독식 사회를 만든다는 지적도 있지만 계층 이동의 공정한 사다리를 복원하려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회와 평가가 공정해야 한다. 특정 계층에 유리한 방식이면 엘리트들이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수단으로 실력주의를 교묘히 악용할 수도 있다는 게 미국 싱가포르 등 실력주의 사회의 교훈이다. 우리 사회 엘리트 부모들의 ‘자녀 스캔들’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패자를 배려하되 기회와 평가가 공정한 ‘따뜻한 실력주의’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청탁’과 ‘제비뽑기’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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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지원금 중독’으론 자영업 눈물 못 닦는다[오늘과 내일/박용]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오래된 식당이 5일 문을 닫았다. 유력 정치인 단골 때문에 정권이 바뀌고 손님이 줄어 힘든 적도 있었지만 꿋꿋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막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앞에선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식당 직원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걱정에 “이젠 실업자”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식당의 마지막을 함께한 단골들의 마음은 돌덩이를 안은 것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인근 무교동에서 51년째 구두 수선을 하고 있는 70대 A 씨는 지난달 오랜만에 1주일 쉬었다. 몸도 불편한 데다 수입마저 줄자 문을 닫았다. 주변 건물을 돌며 직장인들의 구두를 걷어와 닦아 주고 인당 월 2만 원을 받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외부인의 건물 출입이 막혔다. 출근한 직장인도 줄었다. 일감도 끊겼다. A 씨는 “요즘 참 힘들다”고 했다. 코로나19 재난의 최대 피해자는 환자와 가족이지만 식당 빵집 슈퍼 등 동네 가게 주인과 직원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은 자영업자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3%)을 크게 웃도는 20%대를 맴돈다. 코로나19 대책에서 자영업자 맞춤 대책이 더 긴요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된 상황에선 긴급재난지원금을 1차 때처럼 모두에게 주는 건 자영업자들에게 당장 도움을 주지 못한다. 가게 영업을 제한하면서 소비를 하라고 돈을 푸는 격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장기전이다. 거리 두기 3단계 격상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인당 1200달러의 현금을 지급한 건 우리의 3단계에 해당하는 봉쇄령으로 미국인 98%가 자택 대기 명령을 받고 경제가 마비된 상태에서 소득이 끊긴 사람을 위해 ‘비상금’을 나눠준 것이다. 우리는 K방역의 성공을 해외에 자랑하면서 나라 곳간을 열고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눠 줬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재난지원금을 또 풀어야 한다면 격상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해 피해를 본 영세 상인과 소상공인에게 집중하는 맞춤형 대책이 맞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재난 피해자를 돕는다는 취지에도 부합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4∼6월) 도소매 숙박 음식점업 등 서비스업 대출이 전 분기보다 47조2000억 원 늘었다. 가게 주인들이 대출로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수입이 끊긴 상황에서도 주인들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을 마련했다. 먼저 대출을 해주고 그 돈을 직원 인건비로 쓰면 상환을 면제하는 식으로 신속하게 지원한 점이 우리와 다르다. 자영업자들이 이런 지원금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건 바이러스 걱정 없이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최전방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가장 먼저 매달려야 할 일은 급한 불을 끄는 방역이다. 환자가 느는데 재난지원금 타령을 하는 건 ‘재난지원금 중독’ 소리를 듣기 딱 좋다. 그들이 할 일은 따로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경제는 상극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했더니 도소매 음식 숙박업 등 소상공인의 61.4%가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격상을 반대했다. 매출이 줄고 경기 침체가 우려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자영업자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사회적 거리 두기도 성공할 수 없다. 뉴욕시는 코로나19 환자가 줄자 가게 앞 도로 주차공간을 야외 식당처럼 이용하게 규제를 풀었다. 감염 위험이 높은 실내 영업은 제한하되 야외 영업을 양성화해 장사할 공간을 내준 것이다. 식당 1만여 곳이 참가할 정도로 호응이 있었다. 방역과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온라인이든 야외든 거리 두기 속에서도 자영업자들이 숨 쉴 공간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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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슬라만 타면 ‘친환경 엘리트’인가요”[오늘과 내일/박용]

    미국 전기차 테슬라 주가가 20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2000달러를 넘었다. 두 달여 만에 주가가 갑절로 뛴 셈이다. 서울 거리에서 테슬라 차량이 자주 보이고 한국에서 이 회사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테슬라는 올해 상반기(1∼6월) 국내 친환경차 보조금의 절반 가까이를 싹쓸이했다. 5년 전 미 실리콘밸리에서 연수를 하면서 방문한 구글 애플 등 빅테크 기업 주차장에는 1억 원이 넘는 전기차 모델인 테슬라S가 흔했다. 당시 월가 금융인은 벤츠, BMW를 타지만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사업가들은 테슬라로 갈아타는 게 유행이었다. 기후변화 방지에 기여하는 ‘친환경 엘리트’라는 걸 과시하려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전기차는 친환경이지만 동력원인 전기 생산은 그렇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석탄화력 발전 의존도가 높고 제조 공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많은 중국, 인도에서는 전기차가 오히려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미국은 중국 다음으로 석탄화력 의존도가 높다. 한국은 세계 8위의 석탄화력 발전 대국이다. 그들이 전기차를 탄다고 으스댈 일은 아니다. 친환경 엘리트들의 주장처럼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보조금을 줘 전기차를 보급하기 전에 더 깨끗하고 저렴한 전기부터 생산하는 게 맞는다. 미국의 분석기관인 서드웨이는 석탄을 대체하는 원자력발전소 1기가 테슬라 차량 54만1353대를 보급한 만큼의 탄소 배출 절감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연료비 단가는 원전이 6원, 유연탄이 56원, 천연가스 93원이다. 서민은 전기요금이 무서워 찜통더위에도 에어컨을 못 켜는데도 원전만은 안 된다는 친환경 엘리트들도 많다. ‘환경적 올바름’에 매달려 딛고 서 있는 발판마저 걷어차는 일도 있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해외 석탄발전소 투자에 공공기관의 지원을 막는 ‘해외석탄발전투자금지법 4법’(한국전력공사법, 한국수출입은행법, 한국산업은행법, 무역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에너지 사정에 따라 석탄화력 발전이 불가피한 나라가 있는 데다 한국 기업이 일본 등과 경쟁하며 플랜트 사업을 따내야 하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도 산업계에서 나온다. 기후변화 위협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도 무책임하다. 이명박 정부는 기후변화에 따른 대홍수와 가뭄을 막기 위해 4대강 사업을 시작했고, 현 정부는 기후변화 대책으로 산비탈을 깎아 태양광발전소를 세웠다. 막상 홍수 피해가 나고 산사태가 발생하니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네 탓 공방’만 벌인다. 피해를 입은 서민들은 기후변화 대책에 쓴 내 세금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그들을 붙들고 따지고 싶을 것이다. 5년 전 실리콘밸리에서는 다른 각도의 ‘테슬라 논쟁’이 벌어졌다. 값비싼 전기차를 타는 친환경 엘리트들은 정부나 회사가 제공하는 무료 전기 충전소를 이용하고 보조금까지 받는데 서민들은 낡고 오래된 싸구려 차를 몰며 비싼 기름값을 도로에 뿌리고 다니는 게 현실이었다. 소수의 환경 엘리트들이 독점한 환경 정책에서 다수의 서민들이 ‘기후 악당’으로 전락하고 불이익을 받는 ‘정책의 역진성(逆進性)’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기후변화는 현재 진행 중인 위협이다. 인류가 대책을 마련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부담과 불편을 서민과 시장에 전가하고 생색만 내려 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기후변화 대응을 막는 진짜 ‘기후 악당’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 정책이라야 기후변화와의 긴 싸움에서 승산이 있다.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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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준병의 월세시대, 김진애의 뉴요커처럼[오늘과 내일/박용]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시 부시장 출신의 도시 전문가다. 그가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온다”며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게 나쁜 현상이냐’고 반문했을 때 이래서 정부·여당이 23번의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전·월세 전환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 보증금의 덩치가 커 생각처럼 월세 시대가 금방 닥칠 거라고 보긴 어렵다. 문제는 정부의 인위적 개입으로 시장이 뒤틀리고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된다는 말에 계약을 끝내자고 하거나 보증금을 월세로라도 올려 받겠다는 집주인들의 요구에 밤잠을 설친 세입자가 한둘이 아니다. 저금리와 소득 증가로 전세가 월세로 자연스럽게 전환되고 있다면 정치권이 굳이 전·월세 전환율까지 규제하겠다고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월세시대가 팍팍하다는 건 살아본 사람은 다 안다. 월세를 꼬박꼬박 낼 현금이 없으면 살기 팍팍한 주변부로 하염없이 밀려난다.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통장의 ‘현금 흐름’이 좌우할 월세시대의 도시 양극화에 우린 얼마나 준비가 돼 있나. 월세시대는 ‘신용의 시대’다. 미국 아파트 보증금은 한 달 월세 정도다. 세입자는 월세가 밀려도 보증금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집주인들은 월세의 2, 3배 이상의 월수입 증명을 요구하고 집세 공과금 연체 등의 세입자 신용 기록을 따진다. 세가 밀린 세입자와 내보내려는 집주인들의 갈등도 빈번하다. 우린 이런 갈등을 어떻게 풀 건가. 월세시대가 온다면 시민들은 이런 걸 묻고 싶을 것이다. 월세시대엔 공공 임대주택도 중요하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도시계획학 박사 학위를 받은 미국 유학파 전문가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주택청이 생기면 좋겠다”고 불쑥 말했다. 주택청을 만들어 주택 통계나 공공 임대주택 관리, 민간 표준 임대료 제시 등을 맡기는 법안을 내겠다는 것이다. 일만 터지면 세금으로 조직부터 만들겠다고 덤비는 건 익숙하게 봐 온 일이다. 미국에서 주택청은 저소득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방만한 운영과 열악한 주거의 질로도 악명이 높다. 공공 아파트 56만 채를 관리하는 뉴욕시 주택청(NYCHA)은 최악의 ‘임대인’으로 2년 연속 선정됐다. 곰팡이가 피고 물이 새고 난방이 잘 안 된다거나 범죄, 화재를 걱정하는 민원이 쏟아진다. 시영 아파트 보수 예산만 수십조 원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공공 아파트 관리를 민영화하는 방안까지 추진되고 있다. 김 의원은 또 “차를 안 가지고 다니게만 하면 우리도 상당 부분 뉴요커가 된다”고 말했다. 고밀도 도심개발을 지지하면서 교통 문제 해법으로 뉴욕을 제시한 것이다. 맨해튼 주민이 차를 갖지 않는 건 비싼 주차비 탓도 있지만 24시간 운영되는 지하철과 페리 케이블카 우버 등 다양한 교통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 지하철 편도 요금은 2.75달러(약 3200원)로 비싼 편이나 버스 지하철을 무제한 탈 수 있는 한 달 정액권은 127달러(약 15만 원)다. 지하철 청결, 막대한 대중교통 적자는 고민거리다. 서울은 24시간 지하철도 없고 한 달 정액권도 없다. 승차 공유 등 혁신적 교통 서비스 도입도 더디다. 이런 얘긴 빼놓고 뉴요커처럼 차 없이 살라고 얘기할 수 있나. 한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에 성공하고 있는 건 미국과 달리 과학과 사실에 입각한 방역 대책을 전문가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혼란과 불안을 해소하려면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 신중하고 정교한 해법을 내야 할 책임이 그들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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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도시 ‘벌집 아파트’ 시대가 흔들린다[오늘과 내일/박용]

    2주 전 미국 뉴욕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왔을 때 거리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3년 전 퇴근길 직장인들과 차량으로 밀리던 오후 8시경 광화문 주변 도심은 주말처럼 한산했다. 꼬리를 물고 가다 서다를 하던 차들이 거리를 씽씽 내달리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해외 입국자 전용 택시의 기사는 “주52시간제 도입 이후 직장인들의 퇴근이 빨라진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터져 거리가 더 한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더 기가 막힌 건 이런 경기 침체 속에서도 서울 아파트값은 3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3년간 서울 25평 아파트값이 4억5000만 원(53%) 상승했다고 한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막대한 돈을 풀어 유동자금은 넘쳐나는데 서울에서 아파트만 한 주거 환경과 투자 가치를 갖춘 곳이 별로 없으니 아파트 시장이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 것이다. 서울에서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해 아파트에 투자한다는 얘길 들으면서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뉴욕시의 아파트에서 지난 석 달간 갇혀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3월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되고 뉴욕에 봉쇄령이 내려지자 아파트 주민들이 누리던 헬스장, 루프톱 등 공용 편의시설은 문을 닫았다. 집 밖에 나가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식당이나 백화점, 박물관, 극장도 문을 닫았다. 도심 아파트의 장점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아파트의 불편함과 고통은 커졌다. 가족들이 학교나 직장을 가는 것을 전제로 좁은 공간을 선택했던 사람들은 가족들과 24시간을 아파트에서 갇혀 지내야 한다는 막막한 현실에 직면했다. 사람들이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층간 소음도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맨해튼의 오래된 아파트 주민들은 집 안에 세탁기가 없어 건물 내 공용 세탁시설이나 동네 빨래방을 이용했다. 바이러스 감염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소형 세탁기를 사서 욕조에 설치했다. 초기 방역에 실패하고 의료시설 포화를 걱정하던 뉴욕시 당국은 시민들에게 코로나19 증상이 있더라도 심각하지 않으면 병원에 오지 말고 집에 머물도록 권했다. 증상이 있건 없건 주민들은 숨넘어갈 정도로 아프지 않으면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를 떠날 수 없었다. 집 밖보다 안이 더 위험한 게 아니냐는 아파트 주민들의 걱정도 커졌다. 공중보건 위기에 속수무책인 ‘벌집 아파트’의 한계를 체감한 뉴욕 시민들은 고층 아파트에 ‘영끌’까지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맨해튼에서는 돌을 사둬도 돈이 된다’는 말까지 있었지만 6월 맨해튼에서 거래된 아파트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6% 줄었다. 떠나는 이는 늘어나는데 부동산 거래가 중단돼 빈집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아파트를 찾는 이들은 발코니 등 야외 공간이나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홈 오피스’가 있는 집을 찾는다. 대도시의 빠른 회복력을 감안하면 코로나19 확산이 멈추고 경제 활동이 본격 재개되면 맨해튼 아파트 거래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 등이 보편화되는 ‘언택트 시대’에 도심 고층 아파트 인기는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서울 등 세계 대도시의 ‘롤 모델’로 여겨지던 뉴욕 아파트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당분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 인기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는 히트곡 ‘뉴욕뉴욕’에서 ‘이 도시에서 아침에 눈을 떴으면 좋겠다’고 노래했지만, 돌이켜 보면 코로나19 봉쇄령 속에서 뉴욕 아파트에서 아침을 맞는 일은 설레고 흥분되는 일만은 아니었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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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홍콩 특별지위 박탈 행정명령 서명…中 “난폭한 내정간섭” 반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 시간)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없애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 및 시행에 관여한 중국 관리들에게 금융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홍콩자치법에도 서명했다. 미국 정부의 초강수에 중국 정부는 “난폭한 내정간섭”이라고 강력 반발하면서 미중 갈등도 한층 악화될 전망이다.● 홍콩 특별지위 박탈 가속화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홍콩은 이제 중국 본토와 똑같이 취급될 것”이라며 행정명령에 서명한 사실을 밝혔다. 이어 “(홍콩에 대한) 특권, 특별한 경제적 대우, 민감한 기술의 수출은 이제 없다”고 선언했다. 이날 조치는 중국 정부가 홍콩보안법 제정을 의결한 직후인 5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던 관련 계획의 후속조치. 미국은 앞서 지난달 29일 홍콩에 대한 국방물자와 첨단기술의 수출 규제를 단행한 것을 시작으로 분야별로 속속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홍콩에 대한 중국의 위협과 관련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앞으로 홍콩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조치다. 이민과 국적, 국방물자 등 수출통제 등에 대해 홍콩에 부과하던 특혜를 없애는 내용도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홍콩 여권 소지자에 대한 미국 내 입국 특혜 △수출통제 물자 등 특정 분야의 수출 특혜 △국제선박 운항과 관련한 상호 세금 면제 △경찰 교육 협력 △풀브라이트 교육 교류 프로그램 △지리 및 우주 분야 정보 공유 등을 모두 중단 혹은 폐지했다. 홍콩 주민에 대한 미국 비자 발급이 중국인 수준으로 강화되면 중국도 맞대응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홍콩의 기업환경에 큰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과 홍콩 간의 범죄인 인도 협정을 중단하고, 국제 수용자 이송을 폐지시킨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에서 정치범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인사가 망명 또는 탈출을 해서 미국으로 갔을 경우 중국이 송환 요청을 하더라도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향후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관세·금융 분야는 포함 안 해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무역과 관세, 금융 분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밝히지 않았다. 홍콩과 중국은 물론 미국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핵심 분야에 대해서는 일단 여지를 남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 정부의 후속조치가 이어지면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허브’ 위상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폭스뉴스는 “이번 행정명령에 따라 홍콩 수출품의 관세는 중국 본토와 같은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홍콩의 특별지위를 인정해 중국 본토(25%)보다 훨씬 낮은 관세(1.7¤2%)를 부과해왔지만, 앞으로는 중국과 똑같은 관세를 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관세와 금융 분야 조치까지 이뤄지면 홍콩 경제와 금융산업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는 홍콩에서 활동하던 다국적 기업과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엑소더스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주 홍콩 미국 상공회의소가 홍콩 내 180개 회원사를 조사한 결과 30%가 홍콩 밖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과 함께 홍콩 경제를 떠받쳤던 고급 인력들도 대거 유출될 우려도 적지 않다. 벌써부터 홍콩을 떠나 대만 싱가포르 등 주변국으로 향하는 전문직과 유학생이 크게 늘고 있다.● 이례적으로 즉각 반박한 中 중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즉각 반박했다. 통상적으로 오후에 열리는 정기 브리핑을 통해 입장을 밝혔던 것과 달리 이날은 오전 외교부 홈페이지에 성명을 올렸다. 중국 외교부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영원히 실현될 수 없다”며 “중국은 정당한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반응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미국의 이번 조치는 중국 내정에 대한 난폭한 간섭”이라면서 “미국이 계속 고집한다면 중국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구체적인 대응 방침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번 제재에 관여한 미국 고위 인사들에 대한 ‘개인 제재’가 유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동시에 ‘우군’ 확보에 나섰다.15일 런민일보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전날 싱가포르, 태국 총리와 연쇄 전화 통화를 했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데도 정상 간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홍콩 및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우군을 확보하려는 중국 측의 노력으로 해석되고 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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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이 코로나19 위기에서 배운 네 가지 교훈[오늘과 내일/박용]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컸던 뉴욕시가 위기를 딛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식당이 야외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백화점도 다시 문을 열었다. 미국 전역에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300만 명을 넘어 ‘2차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도 뉴욕시의 최근 상황은 꽤 안정적이다. 뉴욕주에서는 7일(현지 시간) 현재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코로나19 환자가 97명에 그쳤다. 인공호흡기 환자가 100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3월 16일 이후 처음이다. 뉴욕은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당한 뒤에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첫째,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감염 확산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컸다. 뉴욕 응급의료시설인 시티엠디(CityMD)에 따르면 저소득층 노동자가 많은 퀸스 지역에서 코로나19 항체 형성률이 68.4%가 나왔다. 검사를 받은 10명 중 7명 가까이가 코로나19에 걸려 항체가 형성됐다는 뜻이다. 항체 검사가 의심 증상이 있어 의료시설을 방문한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됐기 때문에 실제 주민들의 항체 형성률보다 높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전염병 전문가들이 집단면역의 ‘매직 넘버’로 꼽은 항체 형성률 60%를 넘어선 셈이다. 반면 브루클린에서 백인과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코블힐 지역의 병원에서는 항체 양성 반응자가 13%에 그쳤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지난달 26일 현재 뉴욕시에서 31만4000명을 조사한 결과 항체 형성률은 26%로 조사됐다. 둘째, 감염 확산의 속도가 지역, 소득에 따라 차이가 있는 만큼 2차 확산을 대비한 맞춤형 대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식당, 식품점, 의료시설, 건설 노동자 등 코로나19 위기에도 출근해야 하는 필수업종 노동자가 많은 지역에서 감염률이 높았다. 필수업종 근로자들이 밖에서 감염된 뒤에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집으로 돌아가 가정 내 ‘슈퍼 전파자’가 되는 일이 벌어졌다. 2차 위기를 대비해 필수업종 노동자 보호 대책과 취약지역 의료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셋째, 1차 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했던 안전지역이 2차 위기의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점이다. 항체 형성률이 얼마나 지속될지, 집단면역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검증이 필요하지만 1차 위기에서 감염자가 적었던 지역은 2차 확산이 시작되면 감염자가 급증할 잠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넷째, 방역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공감대다. 사태 초기엔 마스크를 쓴 동양인이 지하철역에서 폭행을 당할 정도로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요즘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지하철을 타지 못하고 상점도 갈 수 없다. 상점마다 ‘No Mask, No, Entrance(마스크 없으면 입장 못 합니다)’라는 안내문이 걸렸다. 한적한 공원 산책길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 서로 멈춰 서서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게 상식이 됐다. 3년간의 뉴욕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9일 인천공항에 도착해 한국의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을 체험했다. 뉴욕에서 느낄 수 없던 체계적 관리를 경험하며 이래서 ‘K방역’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덕분에 한국의 감염자와 사망자가 적고 코로나19 항체 형성률도 0.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차 방역엔 성공했지만 2차 감염의 잠재 위험이 큰 나라인 셈이다. 집단면역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의 선택은 딱 하나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긴장을 풀지 말고, 다른 나라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맞춤형 대책’을 보완해 혹시 모를 2차 위기에 대비하는 길밖에 없다. K방역의 성공은 우리에겐 기회이자 위기인 ‘양날의 검’이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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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므누신-파월 “추가 경기부양”… 2분기 다우 33년만에 최대 상승률

    미국 재정과 통화 정책의 사령탑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나란히 의회에 출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미 의회가 3월 승인한 2조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 법안에 따라 마련된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 자리였다. 뉴욕 증시는 이날 코로나19 위기 대응 사령탑들의 ‘입’에 주목하며 장 초반 혼조세를 보였다. 므누신 장관과 파월 의장의 추가 경기 부양 의지 등에 힘입어 2분기(4∼6월) 마지막 장은 상승세로 끝났다. 마스크를 쓰고 나온 므누신 장관과 파월 의장은 팔꿈치 인사를 나누고 투명 유리벽이 설치된 좌석에 앉아 의원들의 질의에 답했다. 므누신 장관은 마스크를 벗고 발언했지만, 파월 의장은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파월 의장은 “우리는 중요한 새 단계에 진입했고 예상보다 더 빨리 해냈다”면서도 “경제 활동의 회복은 환영하지만 바이러스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새로운 과제 또한 던져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완전한 경제 회복은 사람들이 광범위한 활동에 다시 참여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할 때까지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정책 조치들에 경제의 앞날이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위기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일찍 중단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미 의회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3조 달러가 넘는 경기 부양책을 마련했지만 핵심 프로그램이 이달 종료될 예정이다. 6700억 달러 규모의 중소기업 고용 유지를 위한 급여보호프로그램(PPP) 대출 신청은 이날 마감됐다. 연방정부가 실직자들에게 지급하는 주당 600달러 추가 실업급여도 7월 말로 끝난다. 므누신 장관은 “7월 말까지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추가 경기 부양책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미 상원은 이날 밤 늦게 PPP 대출 신청을 8월 8일까지 5주 더 연장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뉴욕 증시는 경제 사령탑들의 경기 부양 의지 등에 힘입어 홍콩 국가보안법(보안법) 시행에 따른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재확산 우려 등의 악재를 이겨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날에 비해 0.8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54%, 나스닥 지수는 1.87% 올랐다. 이 결과 다우 지수는 2분기에 3895.72포인트(17.7%) 오르며 1987년 1분기 이후 분기 기준 최대 상승률을 보였다고 WSJ는 전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도 이 기간 515.70포인트(19.9%) 올라 1998년 4분기 이후 가장 훌륭한 성적을 냈다. 나스닥 지수도 2분기에 30.6% 올랐다. 2분기 주식시장의 ‘깜짝 상승세’는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봉쇄령 등으로 급격히 위축된 실물 경제와 동떨어진 흐름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연방정부와 연준의 돈 풀기로 주식 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해진 데다 경제 활동 재개에 따른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요 지수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하반기(7∼12월)에는 코로나19 재확산, 홍콩 국가보안법 서명에 따른 미중 무역 갈등 확대, 11월 미 대선 등이 증시 변수로 꼽힌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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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화웨이가 안보 위협” 공식 지정… 英 “5G망 사업 화웨이 배제”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 등 중국 통신기업을 국가 안보 위협으로 공식 지정했다. 또 영국은 차세대 통신기술인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를 사실상 배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전자업계에서는 ‘반(反)화웨이’ 전선 확대가 삼성 등 한국 기업에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와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아지트 파이 FCC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화웨이와 ZTE는 중국 공산당, 군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며 “미국은 중국 공산당이 통신망의 취약점을 악용하고 주요 통신 인프라를 훼손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명은 지난해 11월 FCC가 연방서비스기금으로 화웨이와 ZTE 장비를 구입하지 못하도록 한 행정명령을 공식화한 것이다. 미 정부는 농촌 지역 등에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소 통신서비스 회사에 총 83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이 보조금으로는 화웨이나 ZTE 장비를 구매할 수 없도록 못 박은 것이다. 같은 날 영국도 나섰다. 올리버 다우든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체육부 장관은 의회 국방위원회에서 “화웨이가 장기적으로 영국 5G 이동통신망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삼성(한국)과 NEC(일본)는 영국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는 공급 회사”라고 언급했다. 현재 보다폰 등 영국 주요 통신업체들은 화웨이 장비를 이용해 5G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앞서 1월 보리스 존슨 정부는 집권여당인 보수당 의원들과 미국의 반대에도 5G 통신망에 화웨이 장비 공급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으로 반중 감정이 고조되자 화웨이 참여 배제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화웨이 등 중국 통신장비의 미국 내 판매를 사실상 ‘봉쇄’하고, 영국 등 일부 유럽 국가가 하나 둘씩 이에 동참하자 글로벌 5G 통신장비 시장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에 장기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지난달 삼성전자는 캐나다 3대 이동통신 사업자인 텔러스의 5G 이동통신장비 공급사로 선정됐다. 텔러스는 그동안 중국 화웨이의 4세대(4G) 이동통신 장비를 100% 사용해왔지만 5G 공급사 선정 과정에서 화웨이를 배제했고, 이 자리를 삼성전자가 차지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신규 통신장비 사업자 선정 주기는 보통 10년 안팎이다. 화웨이 배제 결정이 당장 삼성전자의 단기적 매출 상승 혹은 수주로 나타나진 않겠지만 반화웨이 흐름이 장기화할 경우 삼성전자의 시장 확대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FCC나 영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자국 통신장비 시장에만 초점을 두고 있지만 향후 미국 행정부가 한국, 일본, 독일 등 해외 기업과 화웨이 사이의 거래를 차단하는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 정부가 화웨이를 차단하기 위해 민간 분야 개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화웨이에 반도체 등을 공급하는 한국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전자업계 관계자는 “언제라도 미중 무역분쟁의 불똥이 한국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라며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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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의 일부 홍콩’ 전락하면… 글로벌 자본-기업 대거 이탈 우려

    미국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홍콩에 대해 국방물자와 첨단기술의 수출 규제에 들어가면서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본격적인 조치가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강행 처리에 맞서 공언해 오던 메가톤급 압박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 미중 갈등의 격화 속에 특별지위라는 보호막을 박탈당한 홍콩의 위상이 앞으로 급속히 추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홍콩 엑소더스’ 불러올 강경 조치 신호탄홍콩에 대한 특별지위 박탈 작업은 민감한 안보 분야의 전략물자 수출 통제 분야부터 시작됐다. 미국은 이번 조치가 미국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은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는 이 물자들이 독재체제 유지가 주목적인 중국 인민군의 손에 넘어갈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고 했다. 미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해 홍콩으로 수출한 군수물자와 장비는 7500만 달러(약 902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6400만 달러 규모의 군용 엔진과 터빈, 350만 달러어치의 탱크와 포, 미사일, 로켓, 총과 탄약 등이 포함된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전했다. 이런 품목들의 수출 중단은 물론이고 골프채나 군용 미사일에 모두 쓰이는 탄소섬유 등 이중용도 물품의 수출 제한도 곧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가 지난해 홍콩에 수출을 허용한 국방물자와 서비스는 총 240만 달러(약 29억 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9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철폐하는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무부는 지난주 홍콩의 자치권 훼손에 관여한 중국 관료를 대상으로 비자 제한 조치를 취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6월 11일 미국 자본의 홍콩 이동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모두 박탈하면 글로벌 금융자본과 기업들의 대거 이탈이 예상된다. 현재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할 때 붙는 관세(1.7∼2%)는 중국과 동일한 25%로 늘게 된다. 미국달러와 홍콩달러 가치를 고정시키는 ‘달러 페그제’와 국제 금융시스템을 통해 글로벌 금융허브로 번영해온 홍콩이 특수성을 상실하고 중국의 도시 중 하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홍콩 자금의 상당 부분은 싱가포르 등 다른 지역으로 흘러가 있는 상태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결국 홍콩의 성격을 규정하던 일국양제는 무너지는 셈”이라며 “서방은 홍콩이 사실상 중국의 일부라고 인식할 것이고 하나둘씩 홍콩을 떠나면서 홍콩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위 조절 시 홍콩 타격 제한적일 수도다만 미국이 홍콩 특별지위를 전면 박탈하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감행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홍콩의 특별지위를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미국에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홍콩에는 현재 8만5000명의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고(2018년 기준) 1300개 미국 기업을 포함한 1541개 글로벌 기업이 활동 중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6월 초 의회에 “홍콩을 중국과 같은 관세 대상으로 취급할 경우 미국이 받게 될 영향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대선을 앞둔 미국, 경기 악화에 직면한 중국 양쪽 모두가 전선 확대를 원하지 않는 만큼 부분적 박탈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홍콩이 미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은 데다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예전 같지 않아 당장 중국 경제와 홍콩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의 대홍콩 수출이 2018년 전체 수출의 약 2.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중 미국의 특별 수출허가가 필요한 홍콩 수입품은 2018년 현재 1.2%이다. 홍콩 경제가 제조업보다는 금융과 물류 등 서비스업 중심인 만큼 중국과 같은 보복관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타격이 제한적일 수 있다. CNN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를 인용해 홍콩의 대미 수출액(450억 달러) 중 1%만이 미국의 특혜 관세를 받는 홍콩 생산품이라고 전했다. 워싱턴=이정은 lightee@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 이윤태 기자}

    •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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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격’ 공언한 中, 희토류 수출 제한 카드 꺼내나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 작업을 시작한 것에 맞서 중국이 ‘반격 조치’를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중국이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중국이 꺼낼 수 있는 대표적 카드로 미국에 대한 희토류 수출 제한이 거론된다. ‘4차 산업혁명의 쌀’, ‘첨단산업의 비타민’ 등으로 불리는 희토류는 반도체, 스마트폰, 전기차, 위성 등 첨단 제품과 무기 제조에 꼭 필요한 필수 소재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81%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 역시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상원 에너지자원위원회는 24일 희토류 관련 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의 조 맨친 의원(웨스트버지니아)은 “현재 희토류는 1970년대 원유와 비슷하다”면서 “당시 아랍 산유국들이 서방으로 원유 수출을 막아 미국에 경제 위기가 닥쳤다”고 강조했다. 미국 컨설팅회사인 ‘허라이즌 어드바이저리’도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은 오랫동안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희토류 산업을 육성했으며, 이를 무기로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미 국방부는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별도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희토류 전쟁’에 대한 대비를 서두르고 있다. 1단계 미중 무역합의 파기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무역합의가 깨지고 다시 무역 전쟁이 벌어지면 미중 간의 갈등은 레드라인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홍콩에 대해 과도하게 간섭할 경우 무역합의에 따른 미 농산물 구매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중국이 미국에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 박탈 외에도 추가 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홍콩 특별지위 박탈 외에 다른 혜택들을 없애기 위한 추가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베이징=김기용 kky@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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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일가스 신화’ 美 체사피크社 파산 신청

    미국을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끌어 올린 ‘셰일 혁명’의 상징인 미 셰일회사 체사피크에너지가 28일(현지 시간)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에너지 수요 감소와 유가 하락으로 미 셰일회사들의 줄도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체사피크는 이날 텍사스 남부지방 파산법원에 연방 파산법 제11조(챕터11)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 등 미 언론이 전했다. 채권자만 10만 명에 이르는 체사피크는 부채 70억 달러(약 8조4000억 원)를 감면받고 경영권 유지를 위한 9억2500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받는 자구 계획을 법원에 제출했다. 1989년 오브리 매클렌던이 공동 창업한 체사피크는 셰일가스 추출을 위한 수평시추와 ‘수압파쇄(프래킹)’ 공법을 개척한 셰일 혁명의 선도 기업이다. 전성기 때인 2008년에는 웨스트버지니아주 넓이와 맞먹는 약 1500만 에이커(약 6만700km²)의 개발권을 확보하며 미 제2의 가스 생산회사로 도약했지만 이 과정에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유가 하락에다 셰일 가스보다 수익성이 더 높은 셰일 원유로의 뒤늦은 전환 등으로 경영난을 겪어오다가 코로나19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2008년 350억 달러(약 42조 원)가 넘었던 시가총액은 26일 현재 1억1600만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미국 내 다른 원유 업체들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로펌 헤인스앤드분에 따르면 2015년 이후 북미 지역에서 200개 이상의 원유 및 가스 생산회사들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4월 셰일회사 화이팅페트롤리엄이 파산보호 신청을 하는 등 올해만 최소 20개 원유 및 가스 회사가 무너졌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돼 회복세를 보이던 미국 고속도로 교통량마저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은 올해 들어 30% 이상 하락했다. 컨설팅회사 딜로이트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35달러 수준으로 떨어지면 미 셰일가스 회사의 약 30%가 기술적으로 파산 상태에 놓일 것으로 분석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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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폭파’ 여진 속… 트럼프, 한국전 기념비 첫 참배 “한반도정세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25전쟁 70주년인 25일(현지 시간) 취임 이후 처음으로 워싱턴 백악관 인근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찾아 기념비에 헌화했다. 북한이 최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높인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기념비 헌화는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20분경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공원을 찾아 20여 분간 머물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화환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한 뒤 군인들과 함께 거수경례를 하며 참전 장병의 희생을 추모했다. 이어 참전용사들과 인사와 대화를 나누고 기념공원을 둘러봤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은 각각 정전 60주년, 정전 50주년, 6·25전쟁 발발 50주년에 이곳을 방문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환담을 나눈 이수혁 주미대사는 기자들과 만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정세에 관심을 표명하고 우려도 했다”며 “한반도 문제에 대해 ‘평화가 유지되도록 노력을 계속해주길 바란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이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는 메시지도 있었다고 말했지만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이날 6·25전쟁 70주년 기념식 관련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철통같다”고 강조했다.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서는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우리 입장을 명확하게 밝혔고 북한의 입장도 들었다. 공은 그들(북한) 코트에 있다. 우리는 그 논의를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활용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이들 시스템은 우리 모두가 무역 문제나 다른 문제 해결을 논의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 있다”며 “우리는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 이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논쟁적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양측이 대화를 유지하길 권장한다”고 덧붙였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도 이날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온라인으로 진행한 한미 전략포럼 이틀째 기조연설에서 “미국은 역사적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설정한 목표를 외교를 통해 진전을 이루는 데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역효과를 낳는 추가 행위를 삼갈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해리스 대사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반(反)중국 경제블록 구상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기 위한 미국 주도의 글로벌 인프라 표준 설정 프로젝트인 ‘블루 닷 네트워크’에 한국의 참여도 독려했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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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도시의 시대’가 저문다[오늘과 내일/박용]

    미국 대통령들이 취임식 때 단골로 입는 202년 역사의 미국 정장 브랜드 ‘브룩스브러더스’는 뉴욕 퀸스의 수제 넥타이 공장을 8월에 닫기로 했다. 맨해튼 본점에서 약 6km 떨어진 롱아일랜드시티 공장에서 한 땀 한 땀 넥타이를 손으로 만들던 136명의 직원은 졸지에 직장을 잃을 처지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50대 이상 숙련 노동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도시 경제의 근간인 서비스업을 마비시키고, 그나마 남은 제조업까지 위협하는 일자리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뉴욕 등 세계 대도시들은 보호무역주의 득세와 코로나19 사태, 인종차별 반대 시위 등이 뒤섞인 ‘칵테일 위기’에 직면했다. ‘국가대표급’ 대도시들이 국경을 뛰어넘어 자본과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신(新)중세시대’가 막을 내리고 국가 간 이동과 교류의 통로가 좁아지는 ‘장벽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좁은 공간에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대도시의 생활 방식이 창의성을 뿜어내는 경쟁력의 원천이 아니라 공중보건 위기를 부르는 뇌관이 됐다. 대도시들이 코로나19 이후 ‘넥스트 노멀’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위기에서 드러난 다섯 가지 핵심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도시 경제의 근간인 자영업자를 지키는 일이다. 미 컨설팅회사 맥킨지에 따르면 필라델피아는 50일간 지역 상점에서 5달러를 소비하자는 ‘파이브4피프티(Five4Fifty)’ 캠페인을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주와 시카고시는 연방정부 지원에서 배제된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소액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메릴랜드, 뉴햄프셔, 텍사스주는 식당 주류 배달 규제를 풀었다. 말레이시아는 국내 여행 활성화를 위한 ‘디지털 바우처’를 나눠줬다. 모두 자영업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일들이다. 둘째,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저소득층 일자리를 유지해야 한다. 뉴저지주는 코로나19 실직자들과 코로나19 사태로 수요가 늘어난 식료품점 등 필수업종 단기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코로나 시대 맞춤형 ‘채용 사이트’를 열었다. 재택근무와 비접촉 상거래는 디지털 역량이 떨어지는 영세 자영업자나 저임금 노동자들에겐 위기다. 호주는 기술 재교육 프로그램인 ‘마이 스킬’을 코로나19 시대에 맞게 조정하고 있다. 셋째, 안전한 도시를 재건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 맞춰 의료진, 의약품, 보호장비를 신속하게 배분할 수 있는 기민한 행정력과 비대면 원격의료 서비스 등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 카메라와 센서,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시티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중국에서 500개 이상의 스마트 시티가 건설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넷째,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뉴욕의 관광객이 회복되는 데는 5년이 걸렸다. 뉴욕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력 산업인 금융업의 위기를 겪었다. 이후 코넬대 공대 등을 세우고 스타트업과 인재를 육성하며 실리콘밸리 추격에 나섰다. 뉴욕시의 기술 분야 일자리만 30만 개가 생겼다. 마지막으로 지역화와 부채 위기를 관리하는 일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19 사태로 생산과 소비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지역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도시 간 기업 유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경기 침체와 주민 이탈로 도시의 재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위기가 진정되고 통화정책이 정상화되면 빚이 많은 가계, 기업, 도시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한국은 코로나19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로 꼽힌다. ‘K방역’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이번 위기를 도시와 국가 경쟁력을 다지는 기회로 만드는 정책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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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폼페이오, 주독미군 감축 병력 中 견제위해 아시아 배치 시사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독일 주둔 미군의 감축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병력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재배치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독일마셜기금의 브뤼셀포럼과의 화상대담에서 “2년 반 전부터 전 세계 우리 군의 준비태세에 대한 전략적 평가를 시작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과 관련해 내린 결정은 전 세계에 우리의 자원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의사결정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결정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감축한 주독미군의 일부는 폴란드 등 다른 지역에 배치하고 나머지는 미국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미 언론들은 3만4500명의 주독미군 중 9500명이 줄어들고, 이 중 1000명이 폴란드에 배치될 것이라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독일처럼 국내총생산(GDP)의 1%를 국방비로 지출하는 것은 미국만큼 러시아를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국방비 지출에 소극적인 독일을 비판했다. 또 “러시아와 다른 적국을 저지하는 역량은 더이상 일부 지역에 많은 사람을 주둔시키는 것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며 “일부 지역에서 미군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춰 독일에서 감축한 미군 일부를 재배치할 수도 있다는 점도 내비쳤다. 그는 인도, 베트남,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의 위협을 거론하며 “우리는 중국 인민해방군에 맞서기 위한 적절한 태세를 갖추도록 할 것”이라며 “이것이 우리 시대의 도전이며 우리는 이 일을 하기 위한 자원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21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감축하는) 주독미군 수천 명은 유럽 내 다른 지역, 또 다른 수천 명은 미국령 괌, 하와이와 알래스카, 일본 같은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옮길 수 있다. 호주에도 배치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뉴욕=박용 특파원parky@donga.com}

    •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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