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가도 ‘일자리 전쟁’은 계속된다[오늘과 내일/박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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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트럼프가 남긴 ‘잊힌 중산층’ 과제
바이든 보호무역 공세도 만만치 않을 듯

박용 경제부 차장
박용 경제부 차장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현직인데도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밀렸다. CNN 출구 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경제 회복을, 바이든 지지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바이든 손을 들어준 대선 결과는 ‘방역이 경제 회복보다 시급하다’는 민심인 셈이다. 한편으로 박빙의 승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엉터리 방역으로 미국인들의 안전과 자존심을 추락시키지 않았다면, 선거 구도를 ‘트럼프 대 바이든’이 아닌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로 몰고 가지 않았다면 표심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게 한다.

바이든 당선인이 당장은 코로나19 방역에 전력을 다하겠지만 불길이 잡히면 경제 회복과 미국인 일자리 복원에 힘을 줄 수밖에 없다. 그가 약속한 ‘통합과 치유’의 정치를 하려면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47.4%의 트럼프 지지자들을 보듬어야 한다. 그들과 공명할 수 있는 정책 공약수는 중산층 재건과 제조업 일자리다.

트럼프를 백악관 주인으로 이끈 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유산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시민’으로 불리며 국제사회에서 인기가 많았으나 안에서는 미국인 일자리를 챙기지 못한다는 반대 세력의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케어’ 등 사회 안전망을 늘려 저소득층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했으나 자국 기업이 해외로 떠나고 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다. 그는 집권 2기에 제조업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든다고 했는데 36만 개만 만들었다.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 해소에 집중하다가 경제의 허리인 ‘일하는 중산층’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민주당에 등을 돌린 일부 중산층은 열심히 일해 세금과 의료보험료 등을 내느라 등골이 휘는데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일자리까지 불안하니 자신들은 ‘잊힌 사람들’이라며 억울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 나라의 ‘잊힌 남성들과 여성들’이 더는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건 우연이 아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광산촌인 스크랜턴에서 태어나 자동차 영업 일을 하는 부친 밑에서 자란 바이든 당선인이 부잣집 아들인 트럼프 대통령보다 쇠락한 공업지대의 아픔과 잊힌 중산층의 고통을 모를 리 없다. 바이든 당선인은 7일 대선 승리 연설에서 중산층을 ‘국가의 중추’로 정의하고 재건을 선언했다. 선거 때는 ‘제조업은 미국 번영의 무기’로 규정했다. 일자리 보호를 위한 ‘바이 아메리칸’ 공약도 내걸었다. 연방정부 조달 사업에서 미국산 구매 기준을 엄격히 하고 세금으로 개발한 신기술로 해외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것도 제한하겠다고 했다. 미 자동차 산업 부활과 미 항구 내 화물 운송을 미 선박에 맡긴다는 구상도 있다.

바이든 캠프는 “무역에 대한 모든 결정의 목적은 미 중산층을 재건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을 올리고 지역사회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불공정 관행, 환율 조작, 반덤핑, 국영기업 악용, 불공정한 보조금으로 미 제조업을 약화시키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에 대해 공세적 무역 이행 조치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우격다짐은 아니더라도 바이든식 보호무역 공세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주요 타깃은 중국이 되겠지만 미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도 반덤핑 관세 등의 불똥이 튈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일하는 중산층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면 4년 뒤 ‘샤이 트럼프’(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트럼프 지지자)는 투표장에서 다시 결기를 보일 것이다. 못을 빼도 못 자국이 남듯이 ‘트럼프는 가도 트럼프주의는 남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미국 중산층#취업난#바이든 시대#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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