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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을 빛내주는 마지막 장식 같아요.” 6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교회에서 열린 웰다잉 수업. 스크린에 띄운 영상에서 한 초등학생이 죽음을 이렇게 정의하자 몇몇 수강생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을 삶의 한 단계로 받아들이고, 아름다운 마지막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건 이날 교육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했다. 강사로 나선 대한웰다잉협회 이계상 대외협력팀장은 “입시, 취업, 결혼, 출산을 준비하듯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선 임종에도 계획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남은 삶의 가치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임종 계획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한다. 웰다잉 교육에선 생의 행복과 불행을 그래프로 나타낸 ‘인생 곡선’ 그리기, 자기소개서 쓰기 등을 권한다. 경기도의 한 노인복지관에서 일하는 권소진 씨(35)는 “방문하는 어르신들에게 인생 노트와 사전 장례 계획을 써 보길 권한다. 처음에는 죽음을 떠올리는 것에 두려움과 거부감이 크지만, 삶을 한번 돌아본 뒤 홀가분해졌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날 교육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미리 상상하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오래 일한 전소연 씨(49)는 최근 중학생 자녀에게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전 씨는 “가족에게 부담되는 화려한 장례식보다는, 조촐한 ‘생전 이별식’으로 주위에 감사와 용서를 전한 뒤 떠나고 싶다”고 했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선 집과 지역 사회에서 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원미선 씨(54)는 “80세 어머니가 ‘집에 있다가 죽기 전 일주일만 병원에 있고 싶다’고 하더라. 가족들이 충분히 임종기 돌봄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정 호스피스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300만 명이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처럼 구체적인 사전돌봄계획(ACP) 수립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은 2018년부터 ‘인생회의’라는 이름으로 사전돌봄계획 수립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연명의료와 완화의료 중 무엇을 선택할지부터 생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과 장소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윤영호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장(가정의학과 교수)은 “임종 계획을 세우는 것은 누구나 막막하다. 정부가 존엄한 삶의 마지막이 가능하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며 “결혼의 웨딩플래너처럼 ‘엔딩플래너’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국민 10명 중 6명은 ‘치매 전 단계’로 불리는 경도인지장애가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도인지장애 증상이 나타난 초기에 병원을 찾겠다는 국민은 10명 중 3명에도 못 미쳤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와 대한치매학회가 12일 개최한 ‘초고령사회 치매 예방과 치료, 미래 대응 방안’ 심포지엄에선 이런 내용의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일까지 20세 이상 성인 1036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경도인지장애는 정상 노화와 치매의 중간 단계로, 대체로 일상생활은 수행할 수 있다. 기억력 저하 등 인지 능력이 부분적으로 저하된다. 경도인지장애 환자 중 10~15%가 치매로 진행된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47.4%는 경도인지장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11.7%는 ‘매우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용어 정도만 들어봤다’는 27.3%, ‘전혀 모른다’는 13.6%였다. 3년 전 학회 조사에서 경도인지장애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는 응답이 58%였던 것에 비하면 경도인지장애 인지율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경도인지장애가 치매 예방에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들어본 적 있다’는 응답자도 60.3%로, 3년 전 26%보다 많이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치매 인구는 97만 명으로 추산된다. 내년엔 100만 명을 넘고, 2044년엔 2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인지 능력이 저하됐을 때 조기에 병원에 방문하겠다는 응답은 10명 중 3명에 불과했다. 내원 시점을 묻는 말에 응답자의 28.6%만 ‘(기억) 깜빡임이 시작된 초기’라고 답했다. 45.7%는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낄 때’, 21.1%는 ‘가족이나 타인이 인지 저하를 지적할 때’라고 답했다. 1.7%는 ‘중증 치매로 진행된 후’라고 답했다.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겨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로는 ‘자연스러운 노화로 생각해서’라는 답변이 45.2%로 가장 많았고. ‘치매 진단이 나올까 봐 두려워서’ 26.3%, ‘시간이 없어서’ 25% 순이었다. 최호진 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는 “인지 기능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느끼면 되도록 일찍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치매 진행을 막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12일 생일을 맞아 국내 병원에 총 2억 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RM은 생일에 맞춰 서울아산병원에 후원금 1억 원을, 고려대의료원에 발전 기금 1억 원을 각각 기부했다.RM은 “생일을 맞아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 후원을 결심했다”며 “치료가 꼭 필요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서울아산병원은 후원금을 불우 환자 치료비와 수술비 지원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고려대의료원 역시 기부금을 진료 환경 개선과 다양한 의료 서비스 확충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국내 기업의 성별 임금 격차가 전년보다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시 대상 기업 2980곳의 남성 평균임금은 9780만 원, 여성 평균임금은 6773만 원으로 집계됐다. 남녀 임금 격차는 30.7%로 전년(26.3%) 대비 4.4%포인트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제출된 공시 대상 기업 2980곳의 2024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다. 남성 평균임금 감소폭(―0.8%)보다 여성 평균임금이 감소폭(―6.7%)이 컸던 것이 임금 격차 확대로 이어졌다. 산업별로는 제조업 임금 격차가 지난해 29.1%로 전년 대비 9.1% 증가했다. 정보통신업은 30.3%에서 34.6%로, 금융 및 보험업은 30.2%에서 31.2%로 격차가 커졌다. 산업별 성별 임금 격차는 도매 및 소매업(44.1%), 건설업(41.6%), 정보통신업(34.6%) 순으로 컸다. 반면 예술·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15.8%), 숙박 및 음식점업(17.7%), 전기·가스·증기 및 공기 조절 공급업(22.5%) 등은 격차가 적었다. 지난해 공시 대상 기업의 평균 근속연수는 남성 11.8년, 여성 9.4년으로 격차는 20.9%였다. 전년(23%) 대비 2.1%포인트 감소했다. 통상 근속연수 격차가 줄면 임금 격차는 완화되는데 지난해엔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여가부는 “임금이 근속연수 외에 직급, 근로 형태 등 다양한 요인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공공기관 344곳의 성별 평균 임금은 남성 7267만 원, 여성 5816만 원이다. 임금 격차는 20.0%로 전년(22.7%) 대비 2.7%포인트 줄었다.공공기관의 평균 근속연수는 남성 10.5년, 여성 8.4년으로 성별 근속연수 격차는 19.9%이었다. 격차는 전년(29.0%) 대비 9.1%포인트 감소했다.여가부는 “성별 임금 격차 분석 시 연령, 직급, 고용 형태, 경력 단절 여부 등 다양한 변수를 포함해 격차 원인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이를 기업별로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고용평등임금공시제’ 도입을 통해 격차를 해소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병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가 7조 원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됐다. 비급여 중 규모가 가장 큰 항목은 1인실 상급병실료였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항목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24년 하반기 비급여 보고제도’ 분석 결과를 4일 공개했다. 비급여 보고제도는 비급여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의료기관이 비급여 진료내역 등을 보고하는 제도다. 올 상반기 전체 의료기관에 이어, 하반기엔 병원급 의료기관의 9월분 비급여 진료내역이 보고 대상이다. 병원급은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 치과병원 등이 포함된다. 병원급 의료기관 4166곳의 1068개 비급여 항목 진료비는 5760억 원으로 집계됐다. 상반기(3월분)와 비교해 38억 원 늘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6조9124억 원으로 추정된다. 항목별로는 상급병실료(1인실)가 553억 원(9.6%)으로 가장 많았고, 도수치료 478억 원(8.3%), 치과 임플란트(1치당)-지르코니아 234억 원(4.1%) , 척추·요천추 자기공명영상(MRI) 진단(3.7%) 순이었다. 진료과목별로는 정형외과가 1534억 원(26.6%)으로 가장 많았고, 신경외과 816억 원(14.2%), 내과 592억 원(10.3%) 순이었다. 진료비 규모 상위 항목 중 연조직(근육, 피부 등) 재건용 치료 재료, 인체 조직 유래 2차 가공 뼈 등 치료 재료의 진료비 규모 증가가 크게 나타났다. 권병기 복지부 필수의료지원관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비급여 자료를 활용한 비급여 정보 제공을 지속해서 확대할 방침”이라며 “국민에게 의료비 부담을 주는 과잉 비급여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광주 한 의원의 도수치료 최고가는 60만 원이다. 2시간 동안 관절가동술 및 교정술, 개인 운동 교육 등이 포함된 가격이다. 반면 경기 성남시의 한 의원에서는 물리치료를 받는 환자를 대상으로 간단한 수기 치료만 하는 300원짜리 비급여 도수치료를 제공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진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 항목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3일 이런 내용의 ‘2025년 비급여 진료 비용’을 심평원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조사 대상은 693개 비급여 항목으로, 지역별 가격순 검색이 가능하다. 환자가 많이 찾는 의원급의 도수치료 중간 가격은 10만 원, 최고 가격은 25만5000원이다. 체외충격파도 전체 의료기관 중간 금액은 7만 원, 최고는 31만9000원으로 4배 이상으로 차이가 났다. 근골격계 통증 완화 주사인 증식치료는 전체 의료기관 중간 금액 5만 원, 최고 금액은 25만 원으로 5배 차이가 발생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같은 비급여 항목도 시술 부위, 난도, 소요 시간, 투입 장비 등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임플란트는 중간 금액이 120만 원이지만, 최고 금액은 의료기관 종류에 따라 200만∼461만 원으로 차이가 컸다. 비교 대상 571개 항목 중 48.7%(278개)는 의료기관 간 가격 편차가 지난해보다 커졌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등 근골격계 질환 시술의 의료기관별 중간 금액과 최고가 차이가 3~5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별 임플란트 가격 편차도 지난해보다 커졌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3일 이런 내용의 ‘2025년 비급여 진료 비용’을 심평원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조사 대상은 693개 비급여 항목이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진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항목이다. 병원이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의료계는 “같은 시술도 인력과 시설, 시술 난도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분석 결과 공통 항목 571개 중 367개(64.3%) 항목의 평균 가격이 인상됐다. 도수치료는 전년 대비 1.3%, 체외충격파는 1.6% 올랐다. 571개 중 48.7%는 기관 간 가격 편차가 지난해보다 커졌다. 다만 조사 시점인 지난해 6월과 올 6월의 물가상승률(2.2%)을 고려하면 평균 금액이 인하된 항목이 75.1%로 더 많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의료기관별 가격 차도 컸다. 전체 의료기관의 최저 금액은 300원, 중간 금액은 10만 원, 최고는 60만 원이었다. 일반 국민이 흔히 찾는 의원급은 중간 가격 10만 원, 최고 25만5000원이다. 다만 최저가와 최고가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는 게 복지부와 의료계 설명이다. 심평원 홈페이지를 보면 최저가는 경기 성남시 한 의원으로 간단한 수기 치료 가격이다. 이 병원도 최고가 치료는 15만 원이다. 반면 광주광역시 한 의원은 가장 비싼 도수치료가 60만 원이다. 2시간 동안 관절가동술, 관절교정술, 개인 운동 교육 등을 진행한다.체외충격파도 병원급 중간 금액은 7만5000원, 최고는 31만9000원으로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근골격계 통증 완화 주사인 ‘증식치료’는 전체 의료기관 중간 금액 5만 원, 최고 금액은 25만 원으로 5배 차이가 났다. 임플란트는 중간 금액은 120만 원이지만, 최고 금액은 병원 종류에 따라 200만~461만 원까지 차이가 컸다. 시술 숙련도와 재료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올해 처음 공개된 샤임프러그 사진 촬영 검사도 편차가 컸다. 이 검사는 백내장 등 안과 질환 진단 시 진행한다. 광주의 한 의원에선 중간값인 10만 원이었지만, 서울의 한 의원은 200만 원을 받았다. 병원급 중간 금액은 5만7000원, 최고는 16만5000원이었다. 복지부와 심평원은 “합리적인 비급여 선택을 위해서 심평원 홈페이지를 통해 의료기관 간 가격 차이를 확인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전남대병원은 심장혈관흉부외과 레지던트가 4년 차 1명뿐이다. 지난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한 1년 차 레지던트 2명은 올 하반기(7∼12월) 모집에 지원하지 않았다. 한 명은 지난해부터 연락이 끊겼고, 다른 한 명은 다른 진료과에 지원했다. 정인석 전남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전공의가 없으면 교육 및 연구 병원 역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방 흉부외과의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하반기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모집 결과 비수도권 수련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복귀자는 4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 82명 모집에 충원율은 4.9%. 대상을 전국으로 넓혀도 21.9%(46명) 충원에 그쳤다. 심장혈관흉부외과는 의정 갈등 전에도 충원율이 낮았다. 높은 업무 강도 대비 낮은 보상, 의료 분쟁 부담, 개원의 어려움 등이 이유다. 지난해 3월 기준 전국 레지던트는 107명에 불과했다. 의대 졸업생 약 3000명 중 매년 20∼30명만 심장과 폐, 식도 질환 외과의를 지망한다는 의미다. 1년 7개월 동안 의정 갈등을 거치며 이마저도 상당수 수련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전국 수련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는 총 68명으로 의정 갈등 전의 63.6%만 남았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강북삼성병원 교수)은 “흉부외과는 기간산업과 비슷하다. 거점 병원 조성 등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전공의 모집에서 지방 필수과 복귀율은 특히 저조했다. 비수도권 소아청소년과는 총 289명 모집에 23명(8.0%), 산부인과는 203명 모집에 56명(27.6%)만 채웠다. 의정 갈등 전 대비 전공의 복귀율은 소아청소년과 59.7%, 응급의학과 59.9%, 산부인과 73.8%로 집계됐다. 미래 기대 수익이 높은 인기 과는 90% 이상이 수련에 복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과·영상의학과는 각각 95.3%, 피부과 92.6%, 성형외과 91.1%, 재활의학과 90.1%로 의정 갈등 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이번 모집에서 복귀한 전공의는 총 7984명이다. 이미 수련 중인 인원을 포함한 전체 전공의는 1만305명으로 의정 갈등 전 대비 76.2%가 복귀한 것으로 집계됐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2050년 국민연금 적자 규모가 200조 원을 넘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2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보장 장기 재정추계 통합모형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총지출은 올해 50조3000억 원에서 2050년 322조20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기간 총수입은 58조 원에서 116조5000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는 연금 수입이 지출보다 7조7000억 원 많지만, 25년 후엔 지출이 수입보다 206조 원가량 많아지는 셈이다. 이는 국회예산정책처(2020년)와 국민연금공단(2023년)이 추산한 2050년 적자 예상치보다 168조3000억 원, 195조4000억 원보다 큰 규모다. 연금 재정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저출생 고령화다. 연구진은 저출생 영향으로 국민연금 가입자가 올해 2194만 명에서 2050년 1549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수급자는 같은 기간 약 753만 명에서 1692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활동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건강보험 재정도 위협한다. 건강보험료 수입은 올해 106조1000억 원에서 2050년 251조8000억 원으로 늘고, 같은 기간 총지출은 105조2000억 원에서 296조4000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2050년 예상 적자는 약 44조6000억 원에 이른다. 사회보험뿐 아니라 고령자와 취약계층에 들어가는 일반 재정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 재정은 올해 26조1000억 원에서 2050년 66조60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저소득층 생계급여 재정도 같은 기간 11조5000억 원에서 22조4000억 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연구진은 “사회보장 분야를 구성하는 사회보험과 일반재정 모두 미래 재정 여건이 심각하게 나빠질 수 있다”며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3년생)가 고령인구 및 후기 고령인구로 편입되는 2040년대 말까지의 고령화 재정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각 진료실 앞 대기실은 빈자리가 없을 만큼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였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과 진료가 의정 갈등 초기보다 많이 회복됐는데, 마침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돌아와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췌장암 환자 김모 씨(66)는 “더 이상 진료가 밀릴까 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수술-진료, 의정 갈등 전으로 회복” 기대 1년 7개월간의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의료진도 전공의 복귀를 반겼다. 이날 서울 성북구 고려대안암병원에서 만난 비뇨의학과 간호사는 “우리 과는 전공의가 다 돌아와서 일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주치의가 많아야 환자 한 명 한 명 더 세심하게 돌볼 수 있다”고 했다. 김수진 응급의학과 교수는 “하루 종일 인턴, 레지던트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센터에 손이 부족해 서둘러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숙련도가 높은 고연차 전공의는 곧바로 진료나 수술에 투입됐다. 정형외과 복귀 전공의는 “오전부터 환자를 보느라 1년 반의 공백을 느낄 틈도 없었다”고 했다. 병원은 당직 근무표를 새로 짜고 신규 외래 환자도 조금씩 늘리는 등 의정 갈등 전으로 진료량을 회복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필수과 교수는 “다행히 고연차는 거의 복귀했고, 저연차도 한두 명 외엔 돌아왔다. 다만 1년 반의 공백이 있었고, 새 연차로 수련을 재개했기 때문에 몇 주간 적응 기간이 지나야 수술이나 진료량이 회복될 것 같다”고 말했다.● “수련 시간 줄이고, 잡무 안 맡겨” 병원들은 전공의들이 요구해 온 수련 환경 개선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젊은 의사의 이탈이 많은 필수과일수록 전공의 처우에 신경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당 근무 시간(80시간) 준수는 물론이고, 시범사업 수준인 72시간으로 단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수도권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4년 차 레지던트는 “앞으로 고연차는 외래 실습, 진료 참관에만 집중하고, 저연차도 검사 예약 등 그동안 해 왔던 부수적인 일을 맡지 않는다고 안내를 받았다”고 전했다. 전공의 공백을 메워 온 진료지원(PA) 간호사와의 업무 분담도 과제다. 수도권 대학병원 성형외과 3년 차 레지던트는 “근무 시간 단축 등 전공의 수련의 질을 높이려면 PA 간호사가 없어선 안 된다. 다만 각 시술이나 처치를 어떻게 분담할지 정리가 안 돼 있어 당분간 혼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갈등을 빚었던 교수나 사직하지 않고 병원을 지켜 온 전공의들과 서먹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수도권 대학병원 복귀 레지던트는 “‘중간 착취자’라고 비판해 온 교수들과 다시 사제 관계로 돌아가는 게 편하지 않다”며 “근무 시간을 줄이고 잡무를 안 맡으면 교수들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는 구조라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상급종합병원 3년 차 레지던트는 “사직하지 않고 병원에 남았던 후배가 같은 연차가 되고, 동기는 선배가 됐다. 의국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전했다. 전공의의 요구가 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수련병원 교수는 “주당 근무 시간을 60시간까지 줄이면 현재 3∼4년인 수련 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 어디까지가 잡무인지 기준도 애매하다”고 지적했다. ● “인턴 절반 이탈” 지방 필수과 궤멸 우려 전공의 복귀율 70∼80%의 수도권 수련병원과 달리 지방은 거점 국립대병원조차 복귀율이 50% 안팎에 그쳤다. 특히 필수과는 저연차를 중심으로 이탈자가 많아 수련과 진료 차질이 우려된다. 부산대병원은 인턴 63명을 모집했지만 35명(55.6%)만 채웠다. 지난해 2월엔 정원을 거의 채웠는데, 20여 명이 서울 소재 수련병원에 신규 지원하면서 도미노처럼 빈자리가 생겼다. 심장혈관흉부외과는 1년 차 레지던트 3명 중 2명이 복귀하지 않았다. 신용범 부산대병원 교육연구실장은 “합격한 인턴도 내년에 인기과 위주로 레지던트 지원을 할 게 뻔하다. 5년 후엔 지방에서 신규 필수과 전문의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일부 전공의는 근무 첫날 노조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대한전공의노동조합은 이날 “국내 모든 수련병원을 포함할 수 있는 전국 단위 조합이다. 전공의의 인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겠다”고 밝혔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진료 예약이 조금 더 수월해질 거란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네요.”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신경과 진료실 앞. 치매와 당뇨병을 앓는 남편을 부축하며 나온 오모 씨(79)는 “젊은 의사들이 이제라도 돌아와서 참 다행”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1년 7개월 만에 이날 수련병원으로 복귀했다. 서울대병원 사직 레지던트 복귀율은 약 72%. 병원 곳곳엔 흰 가운을 입은 전공의가 눈에 띄었다. 환자들은 국민을 볼모로 한 의정 갈등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호흡기내과 진료를 기다리던 김모 씨(68)는 “지난해 종합병원에서 못 고치는 폐렴이라고 해서 대학병원에 왔더니, 올해 초 수술까지 5개월을 기다렸다. 정부도, 의사도 다시는 환자에게 이런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형병원과 달리 지방 필수과는 전공의 복귀가 미미하거나 아예 돌아오지 않은 곳도 있어 의료공백이 지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방 국립대병원 수련 담당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등은 명맥이 끊길 위기”라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각 진료실 앞 대기실은 빈자리가 없을 만큼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였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과 진료가 의정 갈등 초기보다 많이 회복됐는데, 마침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돌아와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췌장암 환자 김모 씨(66)는 “더 이상 진료가 밀릴까 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수술-진료, 의정 갈등 전으로 회복” 기대1년 7개월간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의료진도 전공의 복귀를 반겼다.이날 서울 성북구 고려대안암병원에서 만난 응급의학과 교수는 “하루종일 인턴, 레지던트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센터에 손이 부족해 서둘러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비뇨의학과 간호사는 “우리 과는 전공의가 다 돌아와서 일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주치의가 많아야 환자 한 명 한 명 더 세심하게 돌볼 수 있다”고 했다.숙련도가 높은 고연차 전공의는 곧바로 진료나 수술에 투입됐다. 정형외과 복귀 전공의는 “오전부터 환자를 보느라 1년 반 공백을 느낄 틈도 없다”고 했다.병원은 당직 근무표를 새로 짜고 신규 외래 환자도 조금씩 늘리는 등 의정 갈등 전으로 진료량을 회복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필수과 교수는 “다행히 고연차는 거의 복귀했고, 저연차도 한두 명 외엔 돌아왔다. 다만 1년 반 공백이 있었고, 새 연차로 수련을 재개했기 때문에 몇 주간 적응 기간이 지나야 수술이나 진료량이 회복될 것 같다”고 말했다.● “수련시간 줄이고, 잡무 안 맡겨”병원들은 전공의들이 요구해 온 수련환경 개선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젊은 의사 이탈이 많은 필수과일수록 전공의 처우에 신경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당 근무시간(80시간) 준수는 물론이고, 시범사업 수준인 72시간으로 단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수도권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4년 차 레지던트는 “앞으로 고연차는 외래 실습, 진료 참관에만 집중하고, 저연차도 검사 예약 등 그동안 해 왔던 부수적인 일을 맡지 않는다고 안내를 받았다”고 전했다.전공의 공백을 메워 온 진료지원(PA) 간호사와의 업무 분담도 과제다. 수도권 대학병원 성형외과 3년차 레지던트는 “근무시간 단축 등 전공의 수련의 질을 높이려면 PA 간호사가 없어선 안 된다. 다만 각 시술이나 처치를 어떻게 분담할지 정리가 안 돼 있어 당분간 혼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갈등을 빚었던 교수나 사직하지 않고 병원을 지켜 온 전공의들과 서먹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수도권 대학병원 복귀 레지던트는 “‘중간 착취자’라고 비판해 온 교수들과 다시 사제 관계로 돌아가는 게 편하지 않다”며 “근무 시간을 줄이고 잡무를 안 맡으면 교수들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는 구조라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상급종합병원 3년 차 레지던트는 “사직하지 않고 병원에 남았던 후배가 같은 연차가 되고, 동기는 선배가 됐다. 의국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전했다.전공의 요구가 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수련병원 교수는 “주당 근무시간을 60시간까지 줄이면 현재 3~4년인 수련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 어디까지 잡무인지 기준도 애매하다”고 지적했다. ● “인턴 절반 이탈” 지방 필수과 궤멸 우려전공의 복귀율 70~80%의 수도권 수련병원과 달리 지방은 거점 국립대병원조차 복귀율이 50% 안팎에 그쳤다. 특히 필수과는 저연차를 중심으로 이탈자가 많아 수련과 진료 차질이 우려된다.부산대병원은 인턴 63명을 모집했지만 35명(55.6%)만 채웠다. 지난해 2월엔 정원을 거의 채웠는데, 20여 명이 서울 소재 수련병원에 신규 지원하면서 도미노처럼 빈자리가 생겼다. 심장혈관흉부외과는 1년 차 레지던트 3명 중 2명이 복귀하지 않았다. 신용범 부산대병원 교육연구실장은 “합격한 인턴도 내년에 인기과 위주로 레지던트 지원을 할 게 뻔하다. 5년 후엔 지방에서 신규 필수과 전문의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한편 일부 전공의들은 근무 첫날 노조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대한전공의노동조합은 이날 “국내 모든 수련병원을 포함할 수 있는 전국 단위 조합이다. 전공의 인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지방 필수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올해 7월부터 시범사업을 시작한 ‘지역 필수의사제’에 지원한 전문의가 모집 인원의 6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부인과는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고, 전남은 지원율이 33.3%에 그쳤다. 지역 근무수당 월 400만 원, 각종 정주 지원책도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기준 지역 필수의사제에 지원한 전문의는 전체 모집 인원 96명 중 58.3%(56명)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경남이 19명으로 가장 많았고 강원 15명, 제주 14명, 전남 8명 순이었다. 진료과목별로는 내과(27명)와 외과(10명)에 총지원자의 3분의 2가 쏠렸다. 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각 5명, 신경과 4명, 심장혈관흉부외과·신경외과 각 2명에 그쳤다. 지역 필수의사제는 종합병원급 이상인 의료기관에서 산부인과 등 8개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월 400만 원의 근무 수당을, 지방자치단체가 주거 등 정주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역별로 5년 차 이하 전문의 24명씩을 모집해 5년 안팎의 계약을 맺는다. 의료 기반이 취약하거나 정주 인센티브가 적은 지역일수록 의사 확보가 어려웠다. 전남 참여 병원 4곳 중 공공병원인 목포시의료원과 순천의료원은 지원자가 1명도 없었다. 목포시의료원 관계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4명 중 3명이 내년에 전역하는 공중보건의사라 급히 구인 공고를 냈지만, 내과 외과 등 모든 과에 지원자가 없다”고 말했다. 순천의료원 관계자는 “기존 인원 이탈을 막기도 버거운데 지방 의료원이 5년 차 이하 젊은 전문의를 채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지원율이 양호한 강원 역시 지역별 편차가 컸다. 서울과 가까운 춘천·원주 소재 병원 3곳은 모집 인원을 거의 채웠지만, 영동권인 강릉아산병원은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강원도 관계자는 “강릉은 춘천, 원주보다 지역 상품권을 2배(월 200만 원) 지급하는데도 지원자가 없다. 수도권과의 거리가 중요해 보인다”고 했다. 젊은 의사가 부족한 필수과일수록 구인난이 심각했다. 최동석 목포시의료원 산부인과 과장은 “의료 취약지는 배후진료 역량이 부족해 고위험 임산부 대응이 어렵다. 사법 리스크 부담에 지방에 남기를 꺼린다”며 “요양병원이나 피부과로 가는 젊은 의사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는 “의정 갈등 전에도 한 해 배출되는 전문의가 20∼30명에 불과했다. 지방은 거점 병원 구축 등 일할 토양이 안 갖춰져 있어 젊은 의사들이 근무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방 필수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올해 7월부터 시범사업을 시작한 ‘지역 필수의사제’에 지원한 전문의가 모집 인원의 6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부인과는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고, 전남은 지원율이 33.3%에 그쳤다. 지역 근무수당 월 400만 원, 각종 정주 지원책도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31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기준 지역 필수의사제에 지원한 전문의는 전체 모집 인원 96명 중 58.3%(56명)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경남이 19명으로 가장 많았고 강원 15명, 제주 14명, 전남 8명 순이었다. 진료과목별로는 내과(27명)와 외과(10명)에 총지원자의 3분의 2가 쏠렸다. 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각 5명, 신경과 4명, 심장혈관흉부외과·신경외과 각 2명에 그쳤다.● 전남 지원율 33% “젊은 의사 구하기 어려워”지역 필수의사제는 종합병원급 이상인 의료기관에서 산부인과 등 8개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월 400만 원 근무 수당을, 지방자치단체가 주거 등 정주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역별로 5년 차 이하 전문의 24명씩을 모집해, 5년 안팎의 계약을 맺는다.의료 기반이 취약하거나 정주 인센티브가 적은 지역일수록 의사 확보가 어려웠다. 전남 참여 병원 4곳 중 공공병원인 목포시의료원과 순천의료원은 지원자가 1명도 없었다. 목포시의료원 관계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4명 중 3명이 내년 전역하는 공중보건의사라 급히 구인 공고를 냈지만, 내과 외과 등 모든 과에 지원자가 없다”고 말했다. 순천의료원 관계자는 “기존 인원 이탈을 막기도 버거운데, 지방 의료원이 5년 차 이하 젊은 전문의를 채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남도는 공공 의료원 모집 정원을 줄이고, 민간병원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상대적으로 지원율이 양호한 강원 역시 지역별 편차가 컸다. 서울과 가까운 춘천·원주 소재 병원 3곳은 모집 인원을 거의 채웠지만, 영동권인 강릉아산병원은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강원도 관계자는 “강릉은 춘천, 원주보다 지역 상품권을 2배(월 200만 원) 지급하는데도 지원자가 없다. 수도권과의 거리가 중요해 보인다”고 했다.젊은 의사가 부족한 필수과일수록 구인난이 심각했다. 최동석 목포시의료원 산부인과장은 “의료 취약지는 배후진료 역량이 부족해 고위험 산모 대응이 어렵다. 사법 리스크 부담에 지방에 남기를 꺼린다”며 “요양병원이나 피부과로 가는 젊은 의사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강북삼성병원 교수)는 “의정 갈등 전에도 한 해 배출되는 전문의가 20~30명에 불과했다. 지방은 거점 병원 구축 등 일할 토양이 안 갖춰져 있어 젊은 의사들이 근무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 정부 ‘지역의사제’는 정착할까 지역 필수의사제는 지난 정부에서 의료개혁 과제 중 하나로 추진됐다. 새 정부는 일본과 유사한 ‘지역의사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의대 정원의 일부를 지역 의사 전형으로 뽑아 학비 등을 전액 지급하되, 의사 면허 취득 후 일정 기간을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이르면 2028학년도부터 지역의사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의료계는 지역의사제 도입에 반대 목소리가 높다. 의무 복무 기간이 지나면 이탈 확률이 높고, 민간인 신분인 의사를 일정 기간 특정 지역에 의무 복무 시키는 것이 위헌적이라고 주장한다. 정 이사는 “지방은 필수과를 가르칠 교수도 부족하다. 국립대병원 인프라 확충, 거점 병원 투자 등 중장기 계획과 함께 진행돼야 지역 필수 의사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정부와 국회에서 지역의사제가 검토되고 있지만, 이미 시행 중인 지역 필수의사제 시범사업에 대한 성과 분석이 우선돼야 한다”며 “지자체 지원 수준에 따라 지역별 지원율 편차도 크다. 현장에서 수용 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저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삶이 너무 힘들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6세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아이리스 하위징아 씨는 10년 이상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오랜 기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결국 정신질환을 이유로 안락사를 선택했고 지난해 9월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네덜란드에서는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 동반 안락사 등이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자기 결정권과 자살 방조 사이에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 위원회(RTE)에 따르면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는 2010년 2건에서 2023년 138건, 지난해 219건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정서적 불안정을 이유로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선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를 선택한 219명 중 29명(13%)은 20대였고 16∼18세 청소년도 있었다. 테오 보어 흐로닝언 프로테스탄트신학대 교수는 “힘든 일을 헤쳐 나가는 게 인생의 중요한 경험인데 안락사가 삶에 대한 젊은이들의 의지를 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에는 드리스 판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가 자택에서 한 살 연상 부인과 동반 안락사를 선택해 93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판아흐트 전 총리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반 안락사는 네덜란드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지만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동반 안락사 사례가 보고된 2020년 26명(13쌍)이 동반자와 함께 생을 마감했으며 2023년 94명(47쌍), 지난해에는 108명(54쌍)이 동반 안락사를 택했다. 배우자에게 동반 안락사를 강요한 사례도 발견돼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20년 네덜란드 자유민주당이 발의한 일명 ‘완성된 삶 법안’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심각한 질환이 없더라도 75세 이상은 삶이 어느 정도 완성됐기 때문에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안락사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네덜란드에서조차 이 법안은 하원에 계류 중이다. 의사인 마르욜라인 세브레흐츠 씨는 “자기 결정권은 의학적 상태로 한계를 지을 수 없다”며 “의학적 근거가 없는 사람도 자기 삶이 완성됐다고 느낄 때 이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법안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많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재도 안락사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많은 노인은 죽음에 대한 사회적 내면적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아버지께서 오래전부터 마지막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다른 치매 환자처럼 몇 년간 더 고통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안락사 지원단체인 네덜란드안락사협회(NVVE) 사무실에서 만난 마리아 흐레이프마 씨(65)는 2023년 4월 치매를 앓던 90세 아버지를 안락사로 떠나보냈다. 아버지는 10여 년 전 ‘안락사 사전 의향서’를 작성하며 “중증 치매 진단을 받거나, 건강 문제로 혼자서 생활할 수 없게 되면 살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이후 매년 주치의와 상의하며 서류를 갱신했다. 아버지는 2018년부터 치매를 앓았고 2022년 건강이 크게 악화했다. 흐레이프마 씨는 “치매가 악화해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아버지 자신을 잃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버지에게는 매우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2023년 1월 주치의에게 안락사 의사를 전했다. 주치의 등 안락사 평가 의료진은 아버지가 매우 심각하게 고통스럽다는 점을 인정했고 안락사를 허가했다.● 네덜란드 안락사 20여 년 새 5배 증가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가진 신체적 정신적 환자는 의료진 확인 등 상당한 절차를 거쳐 안락사를 허가받을 수 있다. 보통 약물을 주입하거나 먹는 방법이 사용된다. 안락사 논의는 1973년 법원 판례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의사인 딸이 난치성 질환인 루게릭병을 앓는 어머니에게 치사량의 모르핀을 투입해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후 안락사와 관련해서 의료 가이드라인과 판례가 쌓였고 2002년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네덜란드안락사협회 활동가 롭 에던스 씨는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의 요청으로 안락사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위원회(RTE)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안락사는 2002년 1882건에서 지난해 9958건으로 22년 만에 약 5.3배 증가했다. 전체 사망자 중 안락사가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1.32%에서 5.8%로 약 4.4배 늘었다. 지난해 안락사 9958명 중 8970명(90.1%)은 60세 이상이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회복 불가능’을 전제로 신체적 질병 말기 환자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 정신질환자 등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RTE에 따르면 지난해 안락사 약 86%(8593건)는 신체질환 관련이었다. 이어 치매(427건), 고령 질환 누적(397건), 정신질환(219건), 기타 질환(232건) 등의 순이었다. 네덜란드가 치매 환자나 정신질환자까지 안락사 대상을 넓히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절차 덕분이다. 환자는 반드시 주치의와 여러 차례 면담을 거쳐 고통의 심각성과 대안 부재를 입증해야 한다. 주치의는 단독으로 안락사를 허가할 수 없으며 반드시 안락사 자문 의사 네트워크(SCEN) 등 독립된 의사들의 2차 의견을 받아야 한다. 특히 치매, 정신질환 등은 이런 절차를 거쳐 안락사 허가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안락사 시행 후에는 변호사 의사 윤리학자 등이 참여하는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위원회가 안락사 절차의 적법성을 심사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다. 실제 지난해에도 6건이 부적절하다는 판정을 받아 검찰 조사가 진행됐다. 비영리 단체인 네덜란드안락사협회는 전국에 7개 지부를 두고 안락사에 대한 상담을 제공한다. 지난해 3만3500건의 문의를 받았고 8000건에 대해 심층 상담을 진행했다. 네덜란드안락사협회 법률고문 변호사 이베트 스카우트 씨는 “협회는 안락사 준비 및 시행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환자들의 ‘죽을 권리’ 보장에 앞서고 있다”며 “문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안락사에 대한 이해와 제도가 사회에 어느 정도 안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락사 논란은 현재도 진행 중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안락사나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없다. 법적 논쟁을 떠나 유교, 불교 등의 정서가 깔려 있는 아시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외에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 일부 국가가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조력 존엄사가 가능하다. 20년 넘게 유지된 제도이지만, 네덜란드 내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이들은 인간의 자기 결정권,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 환자의 극심한 고통 경감 등을 이유로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40명의 안락사에 관여한 의사 베르트 케이저르 씨는 “현대 의학은 환자를 불행한 상태에서도 살려낼 수 있을 만큼 발달했다. 하지만 ‘좋은 죽음’을 망칠 수도 있다. 중환자실에서 죽는 것은 최악의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종교계를 중심으로 “인간의 생명은 스스로 끊을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테오 보어 흐로닝언 프로테스탄트신학대 교수는 “안락사가 죽음의 당연한 방식(normal way to die)이 돼 버렸다”라며 “죽음을 일종의 ‘프로젝트’로 생각하는 흐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차의과학대는 14대 총장에 서영거 교학부총장(사진·73)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서 총장은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미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약대 학장, 대한약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의정 갈등 여파로 응급실을 찾은 손상 환자가 전년 대비 절반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해·자살·폭력 등 사고가 아닌 의도적 손상 환자 비율은 2006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10%를 넘었다. 질병관리청은 28일 이런 내용의 ‘2024년 손상 유형 및 원인 통계’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 응급실 23곳에 내원한 손상 환자는 총 8만6633명으로 전년(20만3285명) 대비 57.4% 줄었다. 내원 환자 중 입원한 비율은 23.7%로 전년 대비 7.6%포인트, 사망률은 2.6%로 1.4%포인트 올랐다. 질병관리청은 “응급실 이용이 제한되면서 경증 환자 방문이 감소하고, 중증환자들이 주로 응급실을 이용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전체 손상 환자 중 자해·자살, 폭력·타살 등 의도적 손상으로 내원한 환자는 11.1%였다. 자해·자살 환자는 8.0%로 10년 전 대비 3.6배로 늘었다. 자해·자살 시도 환자 중 10, 20대 비율도 같은 기간 26.7%에서 39.4%로 올랐다. 전체 손상 환자의 발생 유형은 추락·낙상(40.0%)이 가장 많았고, 둔상(15.2%), 운수사고(15.1%) 등의 순이었다. 운수 사고 손상 환자 중 70세 이상 고령층 비중은 10년 전 8.3%에서 지난해 17.4%로 약 2배로 늘었다.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를 포함한 ‘기타·미상 육상 운송수단’ 비율도 같은 기간 0.4%에서 5%로 크게 늘었다. 연령대별로는 1세 미만 환자의 손상 원인은 가구가 35.8%로 가장 많았다. 운수 사고로 내원한 3~6세는 보행 중 사고 비율이 40%, 7~12세는 자전거 사고가 54.9%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7~12세 자전거 헬멧 착용률은 5.3%에 그쳤다. 추락 사고로 내원한 13∼18세의 44.3%는 자살 시도로 추정되는 의도적 손상이었다.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이번 통계는 청소년기 자살·자해 증가와 가정과 생활 공간에서의 손상 위험 등 심각한 사회적 의료적 과제를 담고 있다”며 “청소년 건강 지원과 가정 내 약물 안전 관리 지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서 23년째 방문 진료를 하는 히라노 구니요시 원장은 자신을 ‘임종 의사’라고 부른다. 그가 지금껏 임종을 지킨 환자는 약 3000명에 이른다. 지난달 24일 만난 히라노 원장은 “수련의 시절엔 환자를 단 1분이라도 더 살리는 게 의사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보내는 생의 마지막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걸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이어가는 환자들을 보며 깨달았다”고 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그 순간의 가치를 높이자’는 게 임종기 환자를 대하는 히라노 원장의 제1원칙이다.동아일보 취재팀이 ‘노인 1000만 한국, 품위 있는 죽음을 묻다’ 시리즈를 통해 둘러본 덴마크, 영국, 대만 등 6개국 노인과 전문가들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들 국가는 생의 마지막을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 개인 의사를 존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정부는 재택의료, 호스피스 등 촘촘한 생애 말기 지원 정책으로 가족의 부담을 덜고, 품위 있는 노년을 지원했다.“살던 곳에서 늙고, 죽고 싶다”품위 있는 죽음의 첫 단계는 가족과 함께 세우는 임종 계획이다. ‘임종-돌봄 평가’에서 세계 1위로 평가받는 영국은 2009년 임종에 관한 대화를 장려하는 ‘다잉 매터스 캠페인’을 시작했다. 2005년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은 다사(多死) 사회에 진입한 일본도 2018년부터 가족과 사전 돌봄 계획(ACP)을 세우는 ‘인생 회의’를 장려하고 있다. 생의 말기 돌봄과 의료 계획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세워야 본인과 가족 모두 큰 혼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고민의 결과가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다. 살던 곳에서 늙고, 임종을 맞는다는 의미다. 덴마크는 70대 이상 노인 55%가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 배경엔 1937년 산모와 신생아, 1958년엔 노인 대상 방문간호를 시작할 만큼 활성화된 재택의료 인프라가 있다. 싱가포르는 공공아파트에 노년 돌봄센터를 설치해 방문 간호, 병원 연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재택 임종 케어도 일반화된 싱가포르에선 노인 97%가 집에서 여생을 보낸다.이들 나라에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도 폭넓게 인정한다. 아시아에서 연명의료 거부 제도가 처음 도입된 대만은 말기 환자, 극중증 치매 등 현 의료 수준으로 회복 불가능한 환자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희소병을 앓던 어머니의 단식 존엄사 과정을 곁에서 지킨 비류잉 대만 중산대 의대 교수는 “어떤 종류의 사랑은 손을 놓아 주는 것이란 걸 알게 됐다”고 했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가 합법화된 네덜란드에서 만난 한 60대 유가족은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해방돼 손을 맞잡고 함께 떠난 부모님의 행복한 마지막 모습을 영원히 기억한다”고 했다.재정과 인력 문제, 한국은 준비됐나임종-돌봄의 질이 높은 국가들도 고민은 있다. 연간 31만 명이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영국은 고령화로 인해 완화의료 수요가 매년 약 10%씩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 예산 증가는 그에 못 미친다. 후원만으론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는 시설도 생기고 있다. 일본도 재정 부담이 커지자 재택의료 본인부담금을 점차 높여 왔다. 대도시와 지방의 의료 격차, 간병인 등 돌봄 인력 부족 등은 취재진이 방문한 모든 국가의 공통된 고민이다.한국은 2020년부터 사망이 출생보다 많은 다사 사회에 진입했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000만 명이 넘었고, 치매 인구도 약 100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상당수 노인은 노후가 두렵다. 가족의 간병 지옥을 걱정하고, 낯선 병상에서 차가운 의료기기에 의존하다가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품위 있는 죽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국민이 각자도생에 이어 각자도사(各自圖死)까지 걱정하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가 적극 나설 때다. 박성민 정책사회부 기자 min@donga.com}

지난달 22일 오전 일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치매(인지증) 돌봄 시설 ‘사랑의 집 그룹홈’. 아침 식사를 마친 노인들이 20분 넘게 TV 화면의 건강 체조를 따라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리토 씨(84)는 “집에선 혼자였는데, 여기선 가족 같은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춤출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입소자 9명이 함께 쓰는 거실엔 종이로 접은 꽃과 인형 등이 가득했다. 정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근처 어린이집 아이들이 만든 작품이다. 그룹홈 관리자인 나가쓰카 씨는 “어린이들과 핼러윈 파티도 하고, 지역 요양시설 입소자들이 모이는 ‘오렌지 카페’라는 행사를 열어 교류도 한다”며 “인지증 노인이 고립되지 않고 이웃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65세 이상 치매 노인은 올 7월 기준 약 471만 명. 고령화가 일찍 진행된 일본은 2000년부터 치매 노인 공동 주택인 ‘그룹홈’을 도입했다. 치매 노인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려면 병원에 고립시켜선 안 되고, 최대한 늦게까지 몸을 움직이고 이웃들과 만나는 교류를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치매 노인은 무섭거나 불쌍한 존재가 아니고, 주위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얼마든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입소자 자녀도 ‘노인’, 노노케어 부담 덜어 2022년 기준 일본 전역의 그룹홈은 1만4079곳, 거주 치매 노인은 약 21만 명에 이른다. 치매 노인이 97만 명에 이르는 한국에선 이런 소규모 전문 요양시설을 찾기 힘들다. 자녀 또는 배우자의 돌봄을 받거나, 치매에 특화되지 않은 대규모 요양시설에 머무는 경우가 대다수다.지난달 21일 도쿄도 이타바시구의 ‘사랑의 집 그룹홈’. 입소자 2명이 주방에서 9명분의 점심 식사 준비를 돕고 있었다. 그룹홈 책임자 무라타 씨는 “인지증 환자는 집안일 등 쉽게 하던 일을 못 하게 되면 자존감을 잃고 상태가 더 나빠진다. 서툴더라도 식사 준비, 빨래 정리 등 최대한 집에서처럼 생활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 시설엔 3개 유닛에 9명씩, 총 27명의 치매 노인이 거주 중이다. 전체 요양보호사는 25명으로, 항상 9명 이상이 근무한다. 인지력이 떨어지고, 환자마다 특성이 다른 치매는 익숙한 직원들과 소규모로 생활하는 것이 좋다. 대규모 요양시설은 환경 적응과 개별 관리가 어려워 치매를 악화시킬 수 있다. 호텔처럼 깔끔한 1층 오노 씨(91)의 방에 들어서자, 창가의 오래된 불단(佛壇)이 눈에 띄었다. 오노 씨는 “소원을 빌고 싶어서 조상을 모시던 불단을 집에서 가져왔다. 이곳 생활이 너무 행복해서 요즘엔 소원을 빌 필요가 없다”며 해맑게 웃었다. 그는 “산책하며 동네 사람들을 만나거나, 어린이집 아이들이 놀러 왔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시공간 지각 능력과 기억력 감퇴, 불안에 시달리는 치매 환자에겐 배회 증상이 흔히 나타난다. 그룹홈에선 입소자들의 배회를 억제하기보단 요양보호사와 함께 매일 산책하러 나가 건강까지 챙기도록 한다. 집에서 쓰던 이불과 식기 등 익숙한 물건을 갖다 놓는 것도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서다. 입소자들은 상당수가 자녀도 노인이다. 그룹홈은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노노(老老)케어’의 부담도 덜어준다. 무라타 씨는 “고령화로 인해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의 부담도 커졌다. 소규모 그룹홈은 개인 건강 상태나 증상에 따라 맞춤형 돌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룹홈은 같은 지역 거주자만 입소할 수 있다. 이타바시구 그룹홈의 월 부담 이용료는 밥값 등을 포함해 18만 엔(약 171만 원)가량이다. 한국 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개호보험이 월 30만 엔을 지원해 일본 중산층 가정이 이용할 수준으로 비용을 낮췄다.● 치매 카페 만들고, 가족 지원도 그룹홈은 치매 환자가 생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보내도록 돕는다. 야마모토 노리오 메디컬케어 대표는 “그룹홈이 처음 생겼을 땐 입소자 배회 등을 우려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지역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인식이 생겼다”며 “인지증 환자의 행동을 억제하기보단 더 개방적인 환경에서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고령화에 대비해 1990년대부터 치매 정책을 본격 추진했다. 2004년엔 ‘어리석다’는 의미가 담긴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꿨다. 정책 총괄도 후생노동성보다 상위 부처인 내각부에서 맡고 있다. 인지증 카페를 운영해 지역 교류를 활성화하고, 인지증 환자 가족을 통합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후생노동성 치매 정책 담당자는 “인지증 환자가 익숙한 지역에서 안심하고 생활하도록 인지증 재택의료 지원 의사 양성, 인지증 초기 집중 지원팀 지원 등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사이타마·도쿄=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