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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패자다.” 기자가 만난 정부와 의대 교수, 전문의,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등 취재원들은 하나같이 이번 의정 갈등에서 졌다고 했다. 의대 증원 실무를 담당했던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물론이고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고 환자를 맡았던 의대 교수들이나 1년 7개월 동안 병원을 이탈했다가 이달 초 돌아온 전공의도 “의정 갈등으로 얻은 게 없다”고 했다. 한국 사회는 의대 증원 문제를 두고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다. 의료 공백으로 3조 원 이상 건강보험 재정이 비상진료체계 유지에 투입됐다. 진료와 수술 지연으로 환자 피해와 불안이 가중됐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병원과 학교에 돌아오기까지 미래 의료인력 양성도 늦춰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소아응급 분야는 정상화까지 20년이 걸릴 것”이라며 “필수의료를 지탱하던 의사들이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인원을 ‘0명’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더 큰 손해를 입었다. 지난해 8월에는 의료계가 강하게 반대한 진료지원(PA) 간호사 제도가 담긴 간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최근에는 비의료인 문신 시술을 허용하는 ‘문신사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넘었다. 의사가 독점하던 분야에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 의료계가 반대한 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의료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낮아진 상황에서 의사들이 이제까지의 방식으로 반대했을 때 국민 공감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반면 이번 사태로 얻은 것도 있다. 의대 정원 문제로 유사한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의대 정원 추계를 위한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가 설치됐다.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꼭 필요하지만 지원자가 적은 진료과목에 대한 정책 지원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젊은 의사의 처우, 노동권 등 지속 가능한 수련체계에 대한 논의도 테이블에 올려졌다. 승패의 관점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패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의정 갈등은 장기적으로 의료인력 수급과 수련 환경, 필수의료 등을 개선하는 ‘불편한 촉매’가 될 수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하며 취약성을 드러냈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제는 의정 갈등을 넘어 모두 함께 나서야 한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위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부당 청구가 최근 5년 사이에 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당 청구 규모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만큼 별도의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부당 청구 금액은 2020년 76억1200만 원(461건)에서 지난해 377억8900만 원(612건)으로 5배 이상 늘어났다. 올해 1~8월 130억6100만 원(316건)이 부당 청구된 금액으로 집계됐다. 최근 5년간 부당 청구 금액은 총 1164억1600만 원(3018건)을 기록했다.유형별로는 허위 환자를 등록해 진료비를 청구하거나 입원일을 부풀려 보험금을 타내는 등 거짓 청구가 2020년 54건에서 지난해 299건으로 증가했다. 요양급여비용 산정 기준을 위반해서 과다 청구하는 등 동기간 산정 기준 위반은 217건에서 370건으로 늘었다. 또 비급여 항목을 비슷한 급여 항목으로 바꿔 청구하는 등의 대체 청구도 88건에서 132건으로 증가했다. 의료기관의 부당청구 행위가 특정 유형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요양기관이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으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당이득을 환수한다. 부당청구 비율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업무정지 처분을 내린다. 김 의원은 “현행 업무 정지·과징금 부과와 같은 처벌보다는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보건 당국은 단순히 적발과 징수에 머무르지 말고, 부당 청구 예방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건강보험 부당 청구를 반복하는 기관에 가중 처벌하거나 퇴출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지난해 2월 시작된 의정갈등 영향으로 3차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 초진 환자가 전년 대비 약 1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처음 진료를 받으려면 1, 2차 의료기관에서 먼저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동안 감기 환자 등 경증질환 환자들이 과도하게 큰 병원에 몰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질환, 희귀난치 질환 치료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서울 상급종합병원 환자 줄고 부산-대전 늘어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초진 환자는 2023년 511만7300명에서 지난해 426만1600명으로 85만5700명(16.7%) 감소했다. 의정 갈등에 따른 환자 수 감소와 정부 의료개혁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외래 진료와 입원 환자도 20% 가까이 줄었다.서울 초진 환자는 2023년 242만3400명에서 지난해 193만5400명으로 20.1%(148만8000명) 줄었다. 다만 부산, 대전, 전남 지역은 오히려 해당 지역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가 늘었다. 대전 지역의 초진 환자는 같은 기간 13만 명에서 16만8000명으로 3만7000명 증가했다. 서울 큰 병원에 못 가 대기가 길어진 지방 환자들이 지역 상급종합병원에 간 것으로 보인다.의정 갈등 기간 입원 환자도 감소했다. 2023년 상급종합병원 전체 입원 환자는 197만9700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157만6200명으로 약 40만 명(20.3%) 줄었다. 반면 중환자실 입원 환자는 2023년 16만6200명에서 지난해 14만6900명으로 약 2만 명(11.6%) 줄어들며 상대적으로 감소 폭이 작았다.의정 갈등 이전 상급종합병원 중증환자 진료 비중은 약 50%에 그쳤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와 중증질환 치료 중심으로 전환하고 중증환자 비중을 7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경증질환 환자 상당수가 상급종합병원 대신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 등 2차 의료기관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환자에게 집중하면서 의료전달체계가 정상화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전체 진료량이 감소한 건 중증질환 환자 피해로 연결됐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정 갈등 기간 상당수 병원에서 신규 환자를 받지 않았으니 환자들이 병원에 방문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분명 진료량 감소분의 절반은 구조전환으로 경증환자가 줄어든 수치겠지만, 절반은 중증환자의 진료가 어려워진 영향일 것”이라고 했다.● “상급종합병원 역할에 대한 고민 필요한 시점”올해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1년 7개월간 수련병원을 떠났던 전공의 7984명이 복귀했다. 단기적으로는 상급종합병원 진료량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상급종합병원 소속 교수는 “전공의 복귀 이전에도 의정갈등 이전 80% 수준까지 진료량을 회복한 병원이 많다”며 “그동안 전공의들은 피교육자의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원들의 대처 방식에 따라 진료량도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향후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이 정착되면 경증질환 환자보다 중증질환 환자를 더 많이 진료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중증질환 수술은 구조전환 사업 이전인 지난해 9월 2만7534건에서 올해 4월 3만9049건으로 7개월 만에 1만1515건이 증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증 적합질환 환자 비중도 5% 이상 상승했다”며 “전공의 복귀 이후에도 비슷한 패턴이 유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옥민수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향후 의료 체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상급종합병원 역할과 의료 전달 체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전문의 중심 병원은 ‘전문의 양성 병원’ 역할을 맡아야 한다. 진료 이외에 교육, 연구도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지난해 2월 시작된 의정갈등 영향으로 3차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 초진 환자가 전년 대비 약 1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처음 진료를 받으려면 1, 2차 의료기관에서 먼저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동안 감기 환자 등 경증질환 환자들이 과도하게 3차 의료기관을 찾아 중증질환, 희귀난치 질환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초진 환자는 2023년 511만7303명에서 지난해 426만1593명으로 85만5710명(16.7%) 감소했다. 의정 갈등에 따른 환자 수 감소와 정부 의료개혁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외래 진료와 입원 환자도 20% 가까이 줄었다.경증질환 환자 상당수가 상급종합병원 대신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 등 2차 의료기관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환자에 집중하면서 의료전달체계가 정상화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의정갈등 이전 상급종합병원 중증환자 진료 비중은 약 50%에 그쳤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와 중증질환 치료 중심으로 전환하고 중증환자 비중을 7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지난해 2월 시작된 의정갈등 영향으로 3차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 초진 환자가 전년 대비 약 1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처음 진료를 받으려면 1, 2차 의료기관에서 먼저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동안 감기 환자 등 경증질환 환자들이 과도하게 큰 병원에 몰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질환, 희귀난치 질환 치료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서울 상급종합병원 환자 줄고 부산-대전 늘어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초진 환자는 2023년 511만7300명에서 지난해 426만1600명으로 85만5700명(16.7%) 감소했다. 의정 갈등에 따른 환자 수 감소와 정부 의료개혁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외래 진료와 입원 환자도 20% 가까이 줄었다.서울 초진환자는 2023년 242만3400명에서 지난해 193만5400명으로 20.1%(148만8000명) 줄었다. 다만 부산, 대전, 전남 지역은 오히려 해당 지역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가 늘었다. 대전 지역의 초진 환자는 같은 기간 13만 명에서 16만8000명으로 3만7000명 증가했다. 서울 큰 병원에 못 가 대기가 길어진 지방 환자들이 지역 상급종합병원에 간 것으로 보인다.의정 갈등 기간 입원 환자도 감소했다. 2023년 상급종합병원 전체 입원환자는 197만9700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157만6200명으로 약 40만 명(20.3%) 줄었다. 반면 중환자실 입원 환자는 2023년 16만6200명에서 지난해 14만6900명으로 약 2만 명(11.6%) 줄어들며 상대적으로 감소 폭이 적었다.의정갈등 이전 상급종합병원 중증환자 진료 비중은 약 50%에 그쳤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와 중증질환 치료 중심으로 전환하고 중증환자 비중을 7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경증질환 환자 상당수가 상급종합병원 대신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 등 2차 의료기관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환자에 집중하면서 의료전달체계가 정상화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전체 진료량이 감소한 건 중증질환 환자 피해로 연결됐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정 갈등 기간 상당수 병원에서 신규 환자를 받지 않았으니 환자들이 병원에 방문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분명 진료량 감소분의 절반은 구조전환으로 경증환자가 줄어든 수치겠지만, 절반은 중증환자의 진료가 어려워진 영향일 것”이라고 했다.● “상급종합병원 역할에 대한 고민 필요한 시점”올해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1년 7개월간 수련병원을 떠났던 전공의 7984명이 복귀했다. 단기적으로는 상급종합병원 진료량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상급종합병원 소속 교수는 “전공의 복귀 이전에도 의정갈등 이전 80% 수준까지 진료량을 회복한 병원이 많다”며 “그동안 전공의들은 피교육자의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원들의 대처 방식에 따라 진료량도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향후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이 정착되면 경증질환 환자보다 중증질환 환자를 더 많이 진료하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중증질환 수술은 구조전환 사업 이전인 지난해 9월 2만7534건에서 올해 4월 3만9049건으로 7개월 만에 1만1515건이 증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증 적합질환 환자 비중도 5% 이상 상승했다”며 “전공의 복귀 이후에도 비슷한 패턴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옥민수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향후 의료 체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상급종합병원 역할과 의료 전달 체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전문의 중심병원은 ‘전문의 양성 병원’ 역할을 맡아야 한다. 진료 이외에도 교육, 연구도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젤리, 식이보충제, 과자 등 해외 직구 식품에서 국내 반입이 금지된 마약류 성분이 다수 검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일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등 대마 사용이 합법화된 지역의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판매하는 식품 중 마약류 성분 함유가 의심되는 해외 직구 식품 50개에 대한 검사를 한 결과 42개 제품에서 마약류나 국내 반입 금지 대상 원료, 성분이 확인돼 반입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마약류 성분 등이 검출된 식품에서는 대마 성분,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등 마약류 성분 19종과 테오브로민, 시티콜린 등 국내 반입 금지 의약품 성분 4종, 바코파 등 식품에 사용할 수 없는 원료 2종이 확인됐다. 유형별로는 젤리 8개, 식이보충제 8개, 과자·빵 5개, 음료 4개, 시즈닝 4개, 기타 13개 등이다. 식약처는 대마 등이 함유된 식품을 국내에 반입하거나 섭취할 경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한 제품을 확인하고 즉시 차단을 요청하면 며칠간 사라졌다가 ‘좀비’처럼 다른 도메인 주소나 또 다른 형태의 입점 플랫폼을 통해 반입되는 경우가 있다”며 “해외 직구 식품을 구매할 때 식약처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국내 반입 차단 대상 원료나 성분이 포함됐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전남대병원은 심장혈관흉부외과 레지던트가 4년 차 1명뿐이다. 지난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한 1년 차 레지던트 2명은 올 하반기(7∼12월) 모집에 지원하지 않았다. 한 명은 지난해부터 연락이 끊겼고, 다른 한 명은 다른 진료과에 지원했다. 정인석 전남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전공의가 없으면 교육 및 연구 병원 역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방 흉부외과의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하반기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모집 결과 비수도권 수련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복귀자는 4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 82명 모집에 충원율은 4.9%. 대상을 전국으로 넓혀도 21.9%(46명) 충원에 그쳤다. 심장혈관흉부외과는 의정 갈등 전에도 충원율이 낮았다. 높은 업무 강도 대비 낮은 보상, 의료 분쟁 부담, 개원의 어려움 등이 이유다. 지난해 3월 기준 전국 레지던트는 107명에 불과했다. 의대 졸업생 약 3000명 중 매년 20∼30명만 심장과 폐, 식도 질환 외과의를 지망한다는 의미다. 1년 7개월 동안 의정 갈등을 거치며 이마저도 상당수 수련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전국 수련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는 총 68명으로 의정 갈등 전의 63.6%만 남았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강북삼성병원 교수)은 “흉부외과는 기간산업과 비슷하다. 거점 병원 조성 등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전공의 모집에서 지방 필수과 복귀율은 특히 저조했다. 비수도권 소아청소년과는 총 289명 모집에 23명(8.0%), 산부인과는 203명 모집에 56명(27.6%)만 채웠다. 의정 갈등 전 대비 전공의 복귀율은 소아청소년과 59.7%, 응급의학과 59.9%, 산부인과 73.8%로 집계됐다. 미래 기대 수익이 높은 인기 과는 90% 이상이 수련에 복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과·영상의학과는 각각 95.3%, 피부과 92.6%, 성형외과 91.1%, 재활의학과 90.1%로 의정 갈등 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이번 모집에서 복귀한 전공의는 총 7984명이다. 이미 수련 중인 인원을 포함한 전체 전공의는 1만305명으로 의정 갈등 전 대비 76.2%가 복귀한 것으로 집계됐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젤리, 식이보충제, 과자 등 해외직구식품에서 국내 반입이 금지된 마약류 성분이 다수 검출됐다.식품의약품안전처는 2일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등 대마 사용이 합법화된 지역의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판매하는 식품 중 마약류 성분 함유가 의심되는 해외직구식품 50개에 대한 검사를 실시한 결과 42개 제품에서 마약류나 국내 반입 금지 대상 원료, 성분이 확인돼 반입을 차단했다”고 밝혔다.마약류 성분 등이 검출된 식품에서는 대마성분,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등 마약류 성분 19종과 테오브로민, 시티콜린 등 국내 반입 금지 의약품 성분 4종, 바코파 등 식품에 사용할 수 없는 원료 2종이 확인됐다. 유형 별로는 젤리 8개, 식이보충제 8개, 과자·빵 5개, 음료 4개, 시즈닝 4개, 기타 13개 등이다. 식약처는 대마 등이 함유된 식품을 국내에 반입하거나 섭취할 경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식약처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한 제품을 확인하고 즉시 차단을 요청하면 며칠간 사라졌다가 ‘좀비’처럼 다른 도메인 주소나 또 다른 형태의 입점 플랫폼을 통해 반입되는 경우가 있다”며 “해외직구식품을 구매할 때 식약처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국내 반입 차단 대상 원료나 성분이 포함됐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각 진료실 앞 대기실은 빈자리가 없을 만큼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였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과 진료가 의정 갈등 초기보다 많이 회복됐는데, 마침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돌아와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췌장암 환자 김모 씨(66)는 “더 이상 진료가 밀릴까 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수술-진료, 의정 갈등 전으로 회복” 기대 1년 7개월간의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의료진도 전공의 복귀를 반겼다. 이날 서울 성북구 고려대안암병원에서 만난 비뇨의학과 간호사는 “우리 과는 전공의가 다 돌아와서 일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주치의가 많아야 환자 한 명 한 명 더 세심하게 돌볼 수 있다”고 했다. 김수진 응급의학과 교수는 “하루 종일 인턴, 레지던트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센터에 손이 부족해 서둘러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숙련도가 높은 고연차 전공의는 곧바로 진료나 수술에 투입됐다. 정형외과 복귀 전공의는 “오전부터 환자를 보느라 1년 반의 공백을 느낄 틈도 없었다”고 했다. 병원은 당직 근무표를 새로 짜고 신규 외래 환자도 조금씩 늘리는 등 의정 갈등 전으로 진료량을 회복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필수과 교수는 “다행히 고연차는 거의 복귀했고, 저연차도 한두 명 외엔 돌아왔다. 다만 1년 반의 공백이 있었고, 새 연차로 수련을 재개했기 때문에 몇 주간 적응 기간이 지나야 수술이나 진료량이 회복될 것 같다”고 말했다.● “수련 시간 줄이고, 잡무 안 맡겨” 병원들은 전공의들이 요구해 온 수련 환경 개선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젊은 의사의 이탈이 많은 필수과일수록 전공의 처우에 신경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당 근무 시간(80시간) 준수는 물론이고, 시범사업 수준인 72시간으로 단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수도권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4년 차 레지던트는 “앞으로 고연차는 외래 실습, 진료 참관에만 집중하고, 저연차도 검사 예약 등 그동안 해 왔던 부수적인 일을 맡지 않는다고 안내를 받았다”고 전했다. 전공의 공백을 메워 온 진료지원(PA) 간호사와의 업무 분담도 과제다. 수도권 대학병원 성형외과 3년 차 레지던트는 “근무 시간 단축 등 전공의 수련의 질을 높이려면 PA 간호사가 없어선 안 된다. 다만 각 시술이나 처치를 어떻게 분담할지 정리가 안 돼 있어 당분간 혼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갈등을 빚었던 교수나 사직하지 않고 병원을 지켜 온 전공의들과 서먹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수도권 대학병원 복귀 레지던트는 “‘중간 착취자’라고 비판해 온 교수들과 다시 사제 관계로 돌아가는 게 편하지 않다”며 “근무 시간을 줄이고 잡무를 안 맡으면 교수들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는 구조라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상급종합병원 3년 차 레지던트는 “사직하지 않고 병원에 남았던 후배가 같은 연차가 되고, 동기는 선배가 됐다. 의국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전했다. 전공의의 요구가 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수련병원 교수는 “주당 근무 시간을 60시간까지 줄이면 현재 3∼4년인 수련 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 어디까지가 잡무인지 기준도 애매하다”고 지적했다. ● “인턴 절반 이탈” 지방 필수과 궤멸 우려 전공의 복귀율 70∼80%의 수도권 수련병원과 달리 지방은 거점 국립대병원조차 복귀율이 50% 안팎에 그쳤다. 특히 필수과는 저연차를 중심으로 이탈자가 많아 수련과 진료 차질이 우려된다. 부산대병원은 인턴 63명을 모집했지만 35명(55.6%)만 채웠다. 지난해 2월엔 정원을 거의 채웠는데, 20여 명이 서울 소재 수련병원에 신규 지원하면서 도미노처럼 빈자리가 생겼다. 심장혈관흉부외과는 1년 차 레지던트 3명 중 2명이 복귀하지 않았다. 신용범 부산대병원 교육연구실장은 “합격한 인턴도 내년에 인기과 위주로 레지던트 지원을 할 게 뻔하다. 5년 후엔 지방에서 신규 필수과 전문의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일부 전공의는 근무 첫날 노조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대한전공의노동조합은 이날 “국내 모든 수련병원을 포함할 수 있는 전국 단위 조합이다. 전공의의 인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겠다”고 밝혔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각 진료실 앞 대기실은 빈자리가 없을 만큼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였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과 진료가 의정 갈등 초기보다 많이 회복됐는데, 마침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돌아와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췌장암 환자 김모 씨(66)는 “더 이상 진료가 밀릴까 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수술-진료, 의정 갈등 전으로 회복” 기대1년 7개월간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의료진도 전공의 복귀를 반겼다.이날 서울 성북구 고려대안암병원에서 만난 응급의학과 교수는 “하루종일 인턴, 레지던트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센터에 손이 부족해 서둘러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비뇨의학과 간호사는 “우리 과는 전공의가 다 돌아와서 일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주치의가 많아야 환자 한 명 한 명 더 세심하게 돌볼 수 있다”고 했다.숙련도가 높은 고연차 전공의는 곧바로 진료나 수술에 투입됐다. 정형외과 복귀 전공의는 “오전부터 환자를 보느라 1년 반 공백을 느낄 틈도 없다”고 했다.병원은 당직 근무표를 새로 짜고 신규 외래 환자도 조금씩 늘리는 등 의정 갈등 전으로 진료량을 회복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필수과 교수는 “다행히 고연차는 거의 복귀했고, 저연차도 한두 명 외엔 돌아왔다. 다만 1년 반 공백이 있었고, 새 연차로 수련을 재개했기 때문에 몇 주간 적응 기간이 지나야 수술이나 진료량이 회복될 것 같다”고 말했다.● “수련시간 줄이고, 잡무 안 맡겨”병원들은 전공의들이 요구해 온 수련환경 개선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젊은 의사 이탈이 많은 필수과일수록 전공의 처우에 신경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당 근무시간(80시간) 준수는 물론이고, 시범사업 수준인 72시간으로 단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수도권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4년 차 레지던트는 “앞으로 고연차는 외래 실습, 진료 참관에만 집중하고, 저연차도 검사 예약 등 그동안 해 왔던 부수적인 일을 맡지 않는다고 안내를 받았다”고 전했다.전공의 공백을 메워 온 진료지원(PA) 간호사와의 업무 분담도 과제다. 수도권 대학병원 성형외과 3년차 레지던트는 “근무시간 단축 등 전공의 수련의 질을 높이려면 PA 간호사가 없어선 안 된다. 다만 각 시술이나 처치를 어떻게 분담할지 정리가 안 돼 있어 당분간 혼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갈등을 빚었던 교수나 사직하지 않고 병원을 지켜 온 전공의들과 서먹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수도권 대학병원 복귀 레지던트는 “‘중간 착취자’라고 비판해 온 교수들과 다시 사제 관계로 돌아가는 게 편하지 않다”며 “근무 시간을 줄이고 잡무를 안 맡으면 교수들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는 구조라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상급종합병원 3년 차 레지던트는 “사직하지 않고 병원에 남았던 후배가 같은 연차가 되고, 동기는 선배가 됐다. 의국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전했다.전공의 요구가 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수련병원 교수는 “주당 근무시간을 60시간까지 줄이면 현재 3~4년인 수련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 어디까지 잡무인지 기준도 애매하다”고 지적했다. ● “인턴 절반 이탈” 지방 필수과 궤멸 우려전공의 복귀율 70~80%의 수도권 수련병원과 달리 지방은 거점 국립대병원조차 복귀율이 50% 안팎에 그쳤다. 특히 필수과는 저연차를 중심으로 이탈자가 많아 수련과 진료 차질이 우려된다.부산대병원은 인턴 63명을 모집했지만 35명(55.6%)만 채웠다. 지난해 2월엔 정원을 거의 채웠는데, 20여 명이 서울 소재 수련병원에 신규 지원하면서 도미노처럼 빈자리가 생겼다. 심장혈관흉부외과는 1년 차 레지던트 3명 중 2명이 복귀하지 않았다. 신용범 부산대병원 교육연구실장은 “합격한 인턴도 내년에 인기과 위주로 레지던트 지원을 할 게 뻔하다. 5년 후엔 지방에서 신규 필수과 전문의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한편 일부 전공의들은 근무 첫날 노조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대한전공의노동조합은 이날 “국내 모든 수련병원을 포함할 수 있는 전국 단위 조합이다. 전공의 인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건강보험료를 1년 넘게 내지 않은 장기 체납자가 95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액·장기 체납자에게 출국금지 등 행정상 불이익을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3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기준 건보료 납부 기한을 1년 경과한 장기 체납자는 94만9151명이었으며 체납액은 2조8877억 원이었다. 이중 지역가입자는 88만9614명, 체납액은 1조8997억 원이었으며 직장가입자는 5만9537명, 체납액은 9880억 원이었다.고액 장기 체납자의 체납액도 상당 비중을 차지했다. 3000만 원 이상 체납자는 9756명이었으며 체납액은 6098억에 달했다. 체납자 약 1%가 전체 체납액 중 21.1%를 차지한 것이다. 유형별로는 직장가입자 법인이 4593곳(47.1%), 직장가입자 개인은 2737명(28.1%), 지역 가입자는 2426명(24.9%)를 기록했다.현행법상 건보료 고액·상습 체납자의 경우 인적사항을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액·상습체납자의 인적사항이 공개되면 사전급여제한 대상이 돼 병의원을 이용할 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으며 진료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다만 1년 이상, 1000만 원 이상의 장기·고액체납세대의 수는 2019년 말 9100세대에서 2023년 말 1만4500세대 수준으로 증가해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이어졌다.이에 체납을 방지할 추가 제재수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올 5월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은 납부 능력이 있는데 정당한 사유 없이 건보료를 5000만 원 이상 체납하면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건보공단은 “체납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보험료 징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보험료 고액, 상습 체납자에 대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며 “건강보험료는 공공재정이고 준조세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출국금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저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삶이 너무 힘들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6세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아이리스 하위징아 씨는 10년 이상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오랜 기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결국 정신질환을 이유로 안락사를 선택했고 지난해 9월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네덜란드에서는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 동반 안락사 등이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자기 결정권과 자살 방조 사이에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 위원회(RTE)에 따르면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는 2010년 2건에서 2023년 138건, 지난해 219건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정서적 불안정을 이유로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선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를 선택한 219명 중 29명(13%)은 20대였고 16∼18세 청소년도 있었다. 테오 보어 흐로닝언 프로테스탄트신학대 교수는 “힘든 일을 헤쳐 나가는 게 인생의 중요한 경험인데 안락사가 삶에 대한 젊은이들의 의지를 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에는 드리스 판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가 자택에서 한 살 연상 부인과 동반 안락사를 선택해 93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판아흐트 전 총리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반 안락사는 네덜란드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지만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동반 안락사 사례가 보고된 2020년 26명(13쌍)이 동반자와 함께 생을 마감했으며 2023년 94명(47쌍), 지난해에는 108명(54쌍)이 동반 안락사를 택했다. 배우자에게 동반 안락사를 강요한 사례도 발견돼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20년 네덜란드 자유민주당이 발의한 일명 ‘완성된 삶 법안’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심각한 질환이 없더라도 75세 이상은 삶이 어느 정도 완성됐기 때문에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안락사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네덜란드에서조차 이 법안은 하원에 계류 중이다. 의사인 마르욜라인 세브레흐츠 씨는 “자기 결정권은 의학적 상태로 한계를 지을 수 없다”며 “의학적 근거가 없는 사람도 자기 삶이 완성됐다고 느낄 때 이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법안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많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재도 안락사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많은 노인은 죽음에 대한 사회적 내면적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아버지께서 오래전부터 마지막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다른 치매 환자처럼 몇 년간 더 고통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안락사 지원단체인 네덜란드안락사협회(NVVE) 사무실에서 만난 마리아 흐레이프마 씨(65)는 2023년 4월 치매를 앓던 90세 아버지를 안락사로 떠나보냈다. 아버지는 10여 년 전 ‘안락사 사전 의향서’를 작성하며 “중증 치매 진단을 받거나, 건강 문제로 혼자서 생활할 수 없게 되면 살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이후 매년 주치의와 상의하며 서류를 갱신했다. 아버지는 2018년부터 치매를 앓았고 2022년 건강이 크게 악화했다. 흐레이프마 씨는 “치매가 악화해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아버지 자신을 잃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버지에게는 매우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2023년 1월 주치의에게 안락사 의사를 전했다. 주치의 등 안락사 평가 의료진은 아버지가 매우 심각하게 고통스럽다는 점을 인정했고 안락사를 허가했다.● 네덜란드 안락사 20여 년 새 5배 증가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가진 신체적 정신적 환자는 의료진 확인 등 상당한 절차를 거쳐 안락사를 허가받을 수 있다. 보통 약물을 주입하거나 먹는 방법이 사용된다. 안락사 논의는 1973년 법원 판례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의사인 딸이 난치성 질환인 루게릭병을 앓는 어머니에게 치사량의 모르핀을 투입해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후 안락사와 관련해서 의료 가이드라인과 판례가 쌓였고 2002년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네덜란드안락사협회 활동가 롭 에던스 씨는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의 요청으로 안락사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위원회(RTE)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안락사는 2002년 1882건에서 지난해 9958건으로 22년 만에 약 5.3배 증가했다. 전체 사망자 중 안락사가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1.32%에서 5.8%로 약 4.4배 늘었다. 지난해 안락사 9958명 중 8970명(90.1%)은 60세 이상이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회복 불가능’을 전제로 신체적 질병 말기 환자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 정신질환자 등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RTE에 따르면 지난해 안락사 약 86%(8593건)는 신체질환 관련이었다. 이어 치매(427건), 고령 질환 누적(397건), 정신질환(219건), 기타 질환(232건) 등의 순이었다. 네덜란드가 치매 환자나 정신질환자까지 안락사 대상을 넓히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절차 덕분이다. 환자는 반드시 주치의와 여러 차례 면담을 거쳐 고통의 심각성과 대안 부재를 입증해야 한다. 주치의는 단독으로 안락사를 허가할 수 없으며 반드시 안락사 자문 의사 네트워크(SCEN) 등 독립된 의사들의 2차 의견을 받아야 한다. 특히 치매, 정신질환 등은 이런 절차를 거쳐 안락사 허가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안락사 시행 후에는 변호사 의사 윤리학자 등이 참여하는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위원회가 안락사 절차의 적법성을 심사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다. 실제 지난해에도 6건이 부적절하다는 판정을 받아 검찰 조사가 진행됐다. 비영리 단체인 네덜란드안락사협회는 전국에 7개 지부를 두고 안락사에 대한 상담을 제공한다. 지난해 3만3500건의 문의를 받았고 8000건에 대해 심층 상담을 진행했다. 네덜란드안락사협회 법률고문 변호사 이베트 스카우트 씨는 “협회는 안락사 준비 및 시행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환자들의 ‘죽을 권리’ 보장에 앞서고 있다”며 “문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안락사에 대한 이해와 제도가 사회에 어느 정도 안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락사 논란은 현재도 진행 중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안락사나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없다. 법적 논쟁을 떠나 유교, 불교 등의 정서가 깔려 있는 아시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외에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 일부 국가가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조력 존엄사가 가능하다. 20년 넘게 유지된 제도이지만, 네덜란드 내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이들은 인간의 자기 결정권,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 환자의 극심한 고통 경감 등을 이유로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40명의 안락사에 관여한 의사 베르트 케이저르 씨는 “현대 의학은 환자를 불행한 상태에서도 살려낼 수 있을 만큼 발달했다. 하지만 ‘좋은 죽음’을 망칠 수도 있다. 중환자실에서 죽는 것은 최악의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종교계를 중심으로 “인간의 생명은 스스로 끊을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테오 보어 흐로닝언 프로테스탄트신학대 교수는 “안락사가 죽음의 당연한 방식(normal way to die)이 돼 버렸다”라며 “죽음을 일종의 ‘프로젝트’로 생각하는 흐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40대 엄마와 10대 두 딸 등 세 모녀가 추락해 숨졌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 30분경 “12층 오피스텔 앞에 여자 3명이 누워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어머니인 40대 여성과 큰딸은 현장에서 숨졌고, 작은딸은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두 딸은 각각 중학생과 고등학생 나이로, 모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 유서나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채무와 관련 있는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마약이나 음주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세 모녀가 거주하는 12층 오피스텔의 옥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사고 현장을 취재해 보니 오피스텔 옥상은 12층에서 별도의 잠금 장치 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옥상 담장은 성인 어깨 정도의 높이였고, 담장 아래엔 모녀가 밟고 올라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 벤치가 놓여 있었다. 벤치 주변엔 노란색 경찰 폴리스라인이 둘러져 있었다. 추락한 지점은 흰색 천으로 표시돼 있었고, 미처 지우지 못한 혈흔도 곳곳에서 보였다. 오피스텔 인근에 거주하는 김모 씨(32)는 “(26일) 귀가하던 중 (사고 지점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 매우 놀랐다. 이후 주위 이웃들이 몰려들고 구급차와 경찰차가 왔다”고 전했다. 경찰은 세 모녀가 생활고를 겪지는 않았다고 추정했다. 이 오피스텔은 전세보증금이 4억 원 수준이다. 강서구에 따르면 이들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아니었다. 보건복지부 확인 결과 단전·단수 등 위기가구를 모니터링하는 행복e음시스템에도 이들이 포착된 적은 없었다. 이날 경찰은 사건 전후 폐쇄회로(CC)TV 영상을 살펴보고 남편 등 유족을 불러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세 모녀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검토하고 있다. 유족의 의견을 반영해 부검은 의뢰하지 않기로 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40대 엄마와 10대 두 딸 등 세 모녀가 추락해 숨졌다.27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 30분경 “12층 오피스텔 앞에 여자 3명이 누워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어머니인 40대 여성과 큰딸은 현장에서 숨졌고, 작은딸은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두 딸은 각각 중학생과 고등학생 나이로, 모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는 유서나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채무와 관련 있는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마약이나 음주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경찰은 세 모녀가 거주하는 12층 오피스텔의 옥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사고 현장을 취재해보니 오피스텔 옥상은 12층에서 별도의 잠금장치 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옥상 담장은 성인 어깨 정도의 높이였고, 담장 아래엔 모녀가 밟고 올라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 벤치가 놓여 있었다. 벤치 주변엔 노란색 경찰 폴리스라인이 둘러져 있었다. 추락한 지점은 흰색 천으로 표시돼 있었고 미처 지우지 못한 혈흔도 곳곳에서 보였다.오피스텔 인근에 거주하는 김모 씨(32)는 “(26일) 귀가하던 중 (사고 지점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 매우 놀랐다. 이후 주위 이웃들이 몰려들고 구급차와 경찰차가 몰려들었다”고 전했다.경찰은 세 모녀가 생활고를 겪지는 않았다고 추정했다. 이 오피스텔은 전세보증금이 4억 원 수준이다. 강서구에 따르면 이들은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가 아니었다. 보건복지부 확인 결과 단전·단수 등 위기가구를 모니터링하는 행복e음시스템에도 이들이 포착된 적은 없었다.이날 경찰은 사건 전후 폐쇄회로(CC)TV 영상을 살펴보고 남편 등 유족을 불러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세 모녀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검토하고 있다. 유족 의견을 반영해 부검은 의뢰하지 않기로 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60대 여성이 아픈 어린이의 치료비로 써달라며 1억 원을 병원에 기부했다. 기부금은 일용직과 청소 등 궂은일을 하며 평생 모은 돈이었다. 가천대 길병원은 폐암으로 숨진 이성덕 씨(63)의 가족이 1억 원을 기부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씨는 1년 전 감기에 걸린 줄 알고 병원을 찾았다가 폐암 진단을 받았다. 점차 병세가 악화되면서 이달 15일 응급실을 거쳐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씨 조카인 김모 씨는 “폐암을 앓았던 이모가 ‘아픈 아이들을 위해 남은 재산을 기부해 달라’는 뜻을 남겨 이모가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생전에 인천 서구 자택에서 혼자 살며 건설 일용직, 청소 등을 마다하지 않고 해왔다. 가족의 표현을 빌리면 이 씨가 기부한 1억 원은 ‘안 먹고 안 쓰고 모아 마련한 돈’이다. 가천대 길병원 관계자는 “이 씨의 기부금은 어린이의 치료비에 쓰일 예정”이라고 밝혔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서울대병원 하반기 레지던트 지원율이 21일 78.9%로 마감됐지만 필수의료과 지원율은 평균을 밑돈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응급의학과는 전체 지원율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심장혈관흉부외과 등 다른 필수의료과 지원율도 평균을 밑돌았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본원 1∼4년 차 레지던트 511명 모집에 총 403명이 지원해 지원율 78.9%를 나타냈다. 사직 전공의 복귀율은 72.6%였다. 레지던트 모집 중 필수의료과인 응급의학과(34.6%), 흉부외과(43.8%), 소아청소년과(58.9%) 등은 평균 지원율에 미치지 못했다. 병리과(22.2%)와 비뇨의학과(50.0%) 등도 상대적으로 낮은 지원율을 나타냈다. 반면 정형외과, 영상의학과 등 인기과 지원율은 평균을 웃돌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지원율이 117.6%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이비인후과 100% △내과 95.4% △정형외과 95.2% △재활의학과 95.0% 순이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기존 4년 차 레지던트 9명 중 4명만 이번 모집에 지원했으며, 1년 차는 15명 중 8명만 지원했다. 필수의료과 지원율이 낮은 이유는 과중한 근무 강도와 긴급 상황 대응, 높은 소송 리스크 등 기존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 필수의료과의 한 사직 전공의는 “최근 수액 치료 후 뇌 손상을 입은 신생아에 17억 원 배상 판결이 난 것을 보면서 착잡했다”며 “소송 위험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면 보람이 있어도 가족을 생각해 (수련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지난달 22일 오전 일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치매(인지증) 돌봄 시설 ‘사랑의 집 그룹홈’. 아침 식사를 마친 노인들이 20분 넘게 TV 화면의 건강 체조를 따라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리토 씨(84)는 “집에선 혼자였는데, 여기선 가족 같은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춤출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입소자 9명이 함께 쓰는 거실엔 종이로 접은 꽃과 인형 등이 가득했다. 정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근처 어린이집 아이들이 만든 작품이다. 그룹홈 관리자인 나가쓰카 씨는 “어린이들과 핼러윈 파티도 하고, 지역 요양시설 입소자들이 모이는 ‘오렌지 카페’라는 행사를 열어 교류도 한다”며 “인지증 노인이 고립되지 않고 이웃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65세 이상 치매 노인은 올 7월 기준 약 471만 명. 고령화가 일찍 진행된 일본은 2000년부터 치매 노인 공동 주택인 ‘그룹홈’을 도입했다. 치매 노인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려면 병원에 고립시켜선 안 되고, 최대한 늦게까지 몸을 움직이고 이웃들과 만나는 교류를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치매 노인은 무섭거나 불쌍한 존재가 아니고, 주위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얼마든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입소자 자녀도 ‘노인’, 노노케어 부담 덜어 2022년 기준 일본 전역의 그룹홈은 1만4079곳, 거주 치매 노인은 약 21만 명에 이른다. 치매 노인이 97만 명에 이르는 한국에선 이런 소규모 전문 요양시설을 찾기 힘들다. 자녀 또는 배우자의 돌봄을 받거나, 치매에 특화되지 않은 대규모 요양시설에 머무는 경우가 대다수다.지난달 21일 도쿄도 이타바시구의 ‘사랑의 집 그룹홈’. 입소자 2명이 주방에서 9명분의 점심 식사 준비를 돕고 있었다. 그룹홈 책임자 무라타 씨는 “인지증 환자는 집안일 등 쉽게 하던 일을 못 하게 되면 자존감을 잃고 상태가 더 나빠진다. 서툴더라도 식사 준비, 빨래 정리 등 최대한 집에서처럼 생활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 시설엔 3개 유닛에 9명씩, 총 27명의 치매 노인이 거주 중이다. 전체 요양보호사는 25명으로, 항상 9명 이상이 근무한다. 인지력이 떨어지고, 환자마다 특성이 다른 치매는 익숙한 직원들과 소규모로 생활하는 것이 좋다. 대규모 요양시설은 환경 적응과 개별 관리가 어려워 치매를 악화시킬 수 있다. 호텔처럼 깔끔한 1층 오노 씨(91)의 방에 들어서자, 창가의 오래된 불단(佛壇)이 눈에 띄었다. 오노 씨는 “소원을 빌고 싶어서 조상을 모시던 불단을 집에서 가져왔다. 이곳 생활이 너무 행복해서 요즘엔 소원을 빌 필요가 없다”며 해맑게 웃었다. 그는 “산책하며 동네 사람들을 만나거나, 어린이집 아이들이 놀러 왔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시공간 지각 능력과 기억력 감퇴, 불안에 시달리는 치매 환자에겐 배회 증상이 흔히 나타난다. 그룹홈에선 입소자들의 배회를 억제하기보단 요양보호사와 함께 매일 산책하러 나가 건강까지 챙기도록 한다. 집에서 쓰던 이불과 식기 등 익숙한 물건을 갖다 놓는 것도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서다. 입소자들은 상당수가 자녀도 노인이다. 그룹홈은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노노(老老)케어’의 부담도 덜어준다. 무라타 씨는 “고령화로 인해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의 부담도 커졌다. 소규모 그룹홈은 개인 건강 상태나 증상에 따라 맞춤형 돌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룹홈은 같은 지역 거주자만 입소할 수 있다. 이타바시구 그룹홈의 월 부담 이용료는 밥값 등을 포함해 18만 엔(약 171만 원)가량이다. 한국 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개호보험이 월 30만 엔을 지원해 일본 중산층 가정이 이용할 수준으로 비용을 낮췄다.● 치매 카페 만들고, 가족 지원도 그룹홈은 치매 환자가 생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보내도록 돕는다. 야마모토 노리오 메디컬케어 대표는 “그룹홈이 처음 생겼을 땐 입소자 배회 등을 우려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지역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인식이 생겼다”며 “인지증 환자의 행동을 억제하기보단 더 개방적인 환경에서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고령화에 대비해 1990년대부터 치매 정책을 본격 추진했다. 2004년엔 ‘어리석다’는 의미가 담긴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꿨다. 정책 총괄도 후생노동성보다 상위 부처인 내각부에서 맡고 있다. 인지증 카페를 운영해 지역 교류를 활성화하고, 인지증 환자 가족을 통합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후생노동성 치매 정책 담당자는 “인지증 환자가 익숙한 지역에서 안심하고 생활하도록 인지증 재택의료 지원 의사 양성, 인지증 초기 집중 지원팀 지원 등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사이타마·도쿄=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산소포화도, 혈압은 다 괜찮네요.” 지난달 24일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 외곽 단독 주택. 방문진료 기관인 홈온클리닉 히라노 구니요시 원장이 치매와 간경변을 앓고 있는 재일교포 김태희 씨(96)의 배를 연신 주물렀다. 2주 전보다 복수(복강 내 물 고임)가 더 많아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4년 전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았던 김 씨와 가족은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딸 마채희 씨는 “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라 입원은 무의미했다. 무엇보다 집에 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뜻을 존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비를 넘긴 김 씨는 현재는 주 3회 주간돌봄센터도 다닌다. 매주 간호사와 요양보호사가 한 번씩 방문해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23년 전 방문진료를 시작한 히라노 원장은 현재 약 60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 중 절반은 집에서, 나머지는 요양시설에서 말년을 보낸다. 80, 90대 고령 환자들이 많다 보니 임종을 맞는 환자도 한 주에 5명가량 발생한다. 환자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오면 한밤중에도 달려간다. 히라노 원장은 “병원에선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다”고 했다. 그는 “환자와 가족에게 단순히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느냐’ 묻는 게 아니라, 생의 마지막을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86년 방문진료 수가를 처음 도입한 뒤, 1990년대부터 재택의료가 본격 시작됐다. 의료와 돌봄의 중심을 병원에서 지역사회와 집으로 옮긴 것이다. 전체 병의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1만4000여 곳이 재택의료기관이다. 일본의 재택의료 활성화는 고령화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쓰루오카 고키 일본사회산업대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초고령사회가 되면 병상 부족, 고독사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을 최소화해 의료비 지출을 낮추는 효과도 있었다. 재택의료를 이용하는 환자 만족도는 높다. 입원비에 비하면 비용 부담도 작다. 올해 기준 임종기 환자가 월 2회 방문진료를 받으면 요양등급과 소득 수준 등에 따라 7260∼2만1780엔(약 6만8400∼20만5000원)을 낸다. 히라하라 사토시 일본재택의료학회장은 “방문진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1, 2년 동안 별도 프로그램을 이수한다. 암 환자 돌봄, 노년 의학, 치매 돌봄, 소아 재택의료 등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2040년 85세 이상 인구 급증으로 재택의료 수요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자가 익숙한 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의료·간병 서비스를 더 강화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사이타마·도쿄=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하반기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모집 지원이 22일 기준 대부분 마감되는 가운데, 복귀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지난달 말 기준 레지던트 5000명 이상이 수련병원 외 다른 의료기관에서 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사직 또는 임용 포기 레지던트 8110명 중 5368명이 다른 의료기관에 재취업했다. 의원 3286명, 병원은 1246명, 종합병원은 712명, 상급종합병원은 124명이었다. 6월 말 5501명이 재취업한 것과 비교했을 때 복귀 논의가 이뤄진 상황에서도 상당수가 재직하던 병원을 그만두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2월 집단으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고 난 뒤 사직 전공의는 1만3531명이었다. 이후 현재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총 2532명으로 인턴 353명과 레지던트 2179명이다. 군입대 전공의는 공보의와 군의관을 합해 800~900명으로 알려졌다. 그간 대부분 의과대학 졸업생들은 의대 졸업 후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수련을 택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의정갈등 이후 수련을 하지 않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는 ‘수련 포기 세대’가 나타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전협 관계자는 “다수의 지방 중증·핵심의료과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에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리며 “의료정책으로 인한 실망감, 현실적인 어려움 등으로 전문의가 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돌아가면서 일반의로 근무할 인원이 줄어들자 미용병원 등에서 제시하는 임금이 다시 의정갈등 이전 수준으로 상향되고 있는 추세도 원인이다. 지난해 하반기 약 월 500만 원까지 떨어졌던 일반의 임금은 최근 월 1500만 원 이상 수준으로 다시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결국 돌아오지 않고 일반의로 진료를 이어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며 “9월에 들어가서 나중에 반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비하느니, 안정적으로 바깥 병원 생활을 하다 내년 3월에 수련병원으로 복귀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통해 최종적으로 50~60%의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에 복귀할 것으로 보고 있다. 5대 대형병원들은 70~80%의 전공의들이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방 수련병원의 경우 50% 미만의 지원율을 기록한 곳도 다수였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올해 하반기 주요 병원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모집에서 정원 70∼80% 수준으로 지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난 뒤 처음으로 대거 복귀하는 것이지만, 일부 진료과목과 지방병원에는 지원이 저조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공의 단체 집행부도 수련병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의료계는 21일 수련협의체 회의에서 ‘인턴 기간 단축’을 제안할 계획이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 70% 이상 지원”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19일 하반기 전공의 지원을 마감한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소속 가톨릭중앙의료원 등 3개 대형 병원에 전공의 약 1300명이 지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 병원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 정원은 총 1860명으로 정원의 70% 이상이 지원했다. 이미 각 병원에 복귀한 전공의까지 포함하면 이번 하반기 모집으로 의정 갈등 발생 전 70∼80% 수준으로 전공의가 각 병원에 복귀할 것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다. 앞서 지난해 2월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하자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수련병원을 떠났다. 이후 의정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수차례 정부가 여러 특례 조건을 제시하며 복귀를 유도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이후 정부가 바뀌고 투쟁 동력이 점차 줄어들면서 전공의 대부분이 이번 하반기 모집에 수련병원 복귀를 택했다. 의정 갈등 이후 사실상 집단행동을 주도했던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들도 수련병원에 복귀하기로 했다. 대전협 관계자는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인 비상대책위원들은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지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5대 대형 병원 중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21일까지 하반기 전공의를 모집하는 등 지원 절차는 대부분 이번 주에 종료된다. 이후 수련병원들은 자체 일정에 따라 이달 29일까지 전공의를 선발한다.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따르면 인턴 3006명, 레지던트 1년 차 3207명, 레지던트 상급 연차(2∼4년 차) 7285명 등 총 1만3498명이 모집 대상이다. 현재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2532명이다.● “필수 의료, 지역의료는 지원율 다소 낮아”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 전공의 지원율은 저조한 상황이다. 한 대형 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의 필수 의료 전공 지원율은 50% 안팎으로 보인다”며 “영상의학과 등 인기과 지원율이 다소 높다”고 설명했다. 비수도권 수련병원 지원율도 낮다. 비수도권 병원에서 수련받던 전공의들이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지역 병원에 공백이 생기는, 이른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비수도권 병원들의 경우 지원율이 수도권 병원보다 낮은 50%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했다. 의정 갈등 이후 아예 전문의가 되기를 포기하고 일반의로 일하겠다는 전공의들이 있는 데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내년 하반기 수련을 마칠 때 전문의 시험 추가 시행이 없어 차라리 내년 3월 복귀를 택하겠다는 의견도 있다. 의료계는 21일 열리는 수련협의체 4차 회의에서 ‘인턴 기간 단축’을 건의할 예정이다. 의료계 단체 관계자는 “인턴 지원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점을 고려했다”며 “수련 환경 정상화 차원에서 인턴 기간 단축을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5월 수련병원에 복귀한 인턴도 인턴 기간을 3개월 줄이는 수련 기간 단축 혜택을 받았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