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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성인 남성 가슴 높이만큼 자라있었다. 추모 기념비에는 거미줄이 가득했다. 우거진 수풀로 인해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2m 높이의 기념비 만이 이곳이 독립운동가 강창보 선생(1902~1945)이 묻힌 곳임을 알려줬다. 추석 연휴를 앞둔 2일 제주 제주시 용강동 강 선생의 묘역은 한동안 관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1932년 해녀항일운동 등을 이끌며 독립투쟁을 벌인 그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지만, 묘역을 관리해 줄 후손이 사실상 끊겼다. 고영철 제주 독립운동가 서훈추천위원회 자료발굴위원장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 목숨까지 잃었지만, 후손이 없다는 이유로 묘소가 방치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추석을 맞아 전 국민이 고향에서 조상 묘소를 벌초하고 성묘하는 가운데 광복 80주년인 올해 후손이 없는 독립운동가의 묘소는 방치되고 있다. 독립운동가 묘소는 전국 각지에 있지만 통계화돼 관리되지 않는데다, 후손이 있을지라도 장기간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정부와 지방자지단체가 전수조사를 통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묘소를 적극 발굴해 관리 및 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묘비 깨지고 잡초 무성한 채 방치돼1일 오전 강원 춘천시 남면 발산리. 이날 50cm 넘게 자란 수풀을 헤집고 찾은 박화지 의병장(미상~1907) 묘소는 잡초로 뒤엉켜있었다. 묘소 옆 팻말에는 후손의 연락처가 적혀있었지만 ‘016’으로 시작하는 옛 번호였다. 박 선생은 1907년 정미의병 당시 의병 소모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고문 끝에 순국했지만 증거 자료 등이 불충분해 아직 서훈을 받지 못했다. 인근 주민 정모 씨(72)는 “묘역이 그렇게 방치돼 있을 줄 몰랐다”고 했다. 최병심 선생(1874~1957)의 묘도 상황은 비슷했다. 전주 완산구 교동의 한 인적 드문 산에 있는 최 선생 묘역은 ‘欽齋崔先生之墓(금재최선생지묘)’라고 적힌 비석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비석마저도 언제 깨진 지 모른 채 수년째 방치되고 있었다. 광복회 관계자는 “후손이 있는 걸로 알지만 연락이 두절 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묘역 안내판이 엉뚱한 곳으로 가리키는 곳도 있었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에 위치한 용곡공원 정상에는 이관구 선생(1885~1953)의 묘가 유일하지만, 등산로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이 선생의 묘 위치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 묘역 방향으로 화살표시가 된 안내판에는 엉뚱하게도 ‘헬스쉼터’라고 표시돼 있었다. 유일한 안내판은 공원 샛길 입구에서 500m가량 떨어진 4차선 도로 옆에 설치돼 있었지만 이마저도 엉터리였다. 해당 안내판에는 ‘애국지사 이관구 선생의 묘소입구 100m→’라고 적혀있었지만, 실제로 100m를 가면 주유소가 나왔다.● ‘무후손’ 독립군 묘소, 통계로도 안 잡혀문제는 이러한 묘소들을 전국 곳곳에 있지만, 통합적으로 통계화돼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후손이 없는 독립군 묘소를 별도 통계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며 “다만 매년 실태조사를 통해 합동묘역과 소재지가 확인된 개별 산재 묘소 현황을 관리하고 있으며, 유지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는 후손이 없는 묘소라도 묘소관리자 등의 신청이 있을 경우 연 1회 20만 원의 유지관리비 또는 200만 원 이내의 단장비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묘소관리자 등의 신청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발굴되지 않은 독립운동가 묘소는 전국에 방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올 9월 기준 후손이 없어 훈장을 전수받지 못한 독립유공자는 7648명으로 전체(1만8569명)의 약 41%에 속한다. 후손이 없고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까지 포함한다면 방치된 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방치된 독립군 묘소를 전수조사하는 등 관리하는 한편 독립운동가에 대한 시민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우선 전수조사를 통한 실태 파악을 해야 하고 이후 적극적인 관리의 책임 주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국민도 독립운동가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춘천=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제주=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아산=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올 1월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로 발생한 피해 복구 비용이 약 1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추산한 것보다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금액이다.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9월 17일 기준 서부지법 난동 사태 이후 피해 복구액은 11억7588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사건 직후 법원이 집계한 피해액(6억∼7억 원)의 두 배 수준이다. 세부 항목으로는 통합관제센터 설치에 4억1400만 원, 외벽 타일 복구에 1억2800만 원, 방범 셔터 교체에 1억1500만 원, 당직실 복구에 9500만 원 등이다. 이 외에 방재실 확장 8000만 원, 담장 보강 및 화단 조성 7100만 원 등이 포함됐다. 앞서 1월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격분해 법원에 무단 침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관을 폭행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이 사건과 관련한 사법 절차는 현재 진행 중이다. 9월 16일 기준 서부지법 난동 사태와 관련해 피고인 129명이 특수건조물침입 및 현주건조물방화미수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거나 이미 선고를 받았다. 이 가운데 94명은 구속 기소, 35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1심 판결이 선고된 인원은 94명이다. 당시 라이터로 불을 붙인 종이를 법원 내부로 던진 혐의 등을 받는 심모 씨(19)는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들 중 형량이 부당하다며 항소한 피고인은 60명이다. 경찰은 서부지법 난동 사태의 배후도 수사 중이다. 경찰은 8월 초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와 전광훈 목사 자택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9월 말에는 전 목사 딸 집을 압수수색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며 근로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지 않고 기존과 같은 조건으로 업무를 하도록 하는 건 ‘나이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30일 인권위는 “적절한 보상 조치 없이 동일한 업무를 시키면서 임금을 장기간 삭감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나이 차별”이라며 진정이 제기된 A사와 B재단에 제도 개선과 감액분 지급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임금피크제란 특정 나이에 도달했다는 이유로 임금을 일정 비율로 삭감하는 제도다. 인권위에 따르면 A사는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늘리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 적용 기간을 최소 3년에서 최대 6년으로 설정했다. 첫해는 원래 임금의 90%, 다음 해는 81%, 해마다 73%, 66%로 줄였으며 마지막에는 60% 수준으로 떨어졌다.진정을 제기한 근로자들은 이 제도로 인해 결국 원래 받던 연봉의 약 35% 수준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실질적으로 정년이 늘어난 혜택을 보기보다는 오히려 삭감 기간이 더 길어 손해를 본 것이다. A사는 교육비를 4년간 연 100만 원 한도로 지급하고 유급휴가 12일을 줄 계획이라고 했지만, 인권위는 상응하는 조치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B재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임금피크제 적용 기간은 3년이었지만, 이중 마지막 3개월을 제외하면 아무런 보상 없이 임금만 줄어들었다. 재단 측은 일부 직원과 개별 합의를 통해 3개월간 근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를 시행했다고 밝혔지만, 인권위는 3년 전체를 포괄하는 보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인권위 측은 “임금피크제는 단순한 임금 삭감 제도가 아닌 고령 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조직의 인력 운용을 조화시키기 위한 제도”라며 “시행에 있어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경우 적절한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10년 전 경증 치매 판정을 받은 임모 씨(82)는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있다. 아내와 단둘이 사는 임 씨는 시장이나 병원에 갈 때 직접 운전할 때가 많다. 최근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잊거나 모자 같은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임 씨는 “수시 적성검사도 통과했고 아직 운전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전체 치매 진단 환자 100명 중 6명가량은 임 씨같이 수시 적성검사를 신청해 운전면허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면허 갱신 시험을 치른 치매 환자의 95%가 합격하거나 판정을 유예받아 면허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는 상태가 들쑥날쑥해 운전하기에 위험한데 제도가 지나치게 관대해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 시험 응시한 치매 환자 10명 중 9명 합격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도로교통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치매 판정으로 운전적성판정위원회 심의를 받은 1235명 중 불합격자는 58명(4.7%)에 그쳤다. 779명(63.1%)은 ‘운전 가능’ 판정을 받았고, 398명(32.2%)은 유예 처분을 받았다. 즉, 수시 적성검사를 받은 치매 환자 10명 중 9명 이상이 사실상 면허를 유지한 셈이다. 2022년에도 913명 중 868명(95.1%), 2023년에도 1376명 중 1286명(93.5%)이 면허를 유지했다. 치매 환자 100명 중 6명은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수시 적성검사를 받는다. 지난해 치매 환자 1만8568명이 운전면허 적성판정 대상자로 분류됐고, 이 가운데 임 씨처럼 진단서를 제출해 수시 적성검사를 받은 이는 1235명(6.7%)이었다. 나머지 8006명(43.1%)은 검사를 받지 않아 면허가 자동 취소됐고, 4988명(26.9%)은 사망 등으로 면허가 말소됐다. 4339명(23.3%)은 판정이 연기됐다. 지난해 치매 환자 중 1177명(6.3%)은 면허를 유지한 셈이다. 도로교통법 82조와 시행령 42조에 따라 치매는 법적으로 운전면허 결격 사유다. 운전자가 치매로 장기 요양 등급을 받거나 6개월 이상 입원 치료를 하면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경찰청에 명단이 통보된다. 경찰청은 이들을 ‘운전 적성판정 대상자’로 지정하고 전문의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1차 통보에 응하지 않으면 2차 기회가 주어지지만, 이를 끝내 내지 않으면 한 달 뒤 면허가 취소된다. 도로교통공단은 진단서를 제출한 환자에 대해 운전적성판정위원회를 열어 수시 적성검사를 진행한다. 위원장·정밀감정인·내외부 위원 등 7명이 진단서와 자기질환기술서를 검토하고, 출석한 환자에게 증상과 운전 필요성 등을 질의한다. 출석위원 과반 찬성으로 ‘합격’ 판정을 받으면 면허를 유지하고, 불합격 시 면허는 취소된다. 유예 판정을 받은 경우에는 1년 뒤 재검사를 거친다.● “실차 주행평가 등 운전 능력 평가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치매는 초기 단계부터 인지 기능 저하와 길 잃기 증상이 동반되기 때문에 실제로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병철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는 약물 복용 여부 등 관리 상태에 따라 초기에도 운전에 지장을 주는 신체 현상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1명이 사망한 교통사고를 낸 74세 운전자 A 씨도 사고 직후 초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 2023년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은 뒤 3개월간 치료제를 복용하는 등 문제가 없다고 판단돼 운전면허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결국 교통사고를 냈다.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실제 주행 환경에서는 운전 능력이 떨어질 수 있어 실효성 있는 평가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운전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본인이 직접 운전하는 차량을 활용해 주행 평가를 실시하고, 인지 기능 검사 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의료계와 학계 전문가는 물론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서와 함께 논의하여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고려대 경영대학이 개교 120주년을 맞아 25, 2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현대자동차경영관에서 ‘미래를 설계하다(Mapping the Future): 60년 동안 변할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을 주제로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학생과 교수, 산업계가 함께 미래를 모색하는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26일 오후 2시에는 ‘개교 120주년 기념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경영대학 120년 역사를 돌이켜 보며 청중과 소통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는 김희천 롯데인재개발원장과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채준 한국경영대학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 학계와 산업계 인사가 패널로 참석해 학생들의 미래 설계 아이디어를 살펴보며 기업과 사회가 상호작용하는 경영 사회의 미래를 논의했다. 오후 5시부터는 네트워킹 파티가 이어졌으며, 학생들의 공연도 무대를 장식했다. 앞서 25일에는 학생회 주관으로 ‘호상 대동제’가 열려 부스와 주점 운영, 인디밴드 공연이 진행됐다. 김언수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이번 행사는 학계와 산업계가 함께 답을 찾아가는 촉발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고려대 경영대학이 개교 120주년을 맞아 25, 2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현대자동차경영관에서 ‘미래를 설계하다(Mapping the Future): 60년 동안 변할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을 주제로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학생과 교수, 산업계가 함께 미래를 모색하는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26일 오후 2시에는 ‘개교 120주년 기념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경영대학 120년 역사를 돌이켜보며 청중과 소통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는 김희천 롯데인재개발원장과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채준 한국경영대학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 학계와 산업계 인사가 패널로 참석해 학생들의 미래 설계 아이디어를 살펴보며 기업과 사회의 상호작용하는 경영 사회의 미래를 논의했다. 오후 5시부터는 네트워킹 파티가 이어졌으며, 학생들의 공연도 무대를 장식했다. 앞서 25일에는 학생회 주관으로 ‘호상 대동제’가 열려 부스와 주점 운영, 인디밴드 공연이 진행됐다. 김언수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이번 행사는 학계와 산업계가 함께 답을 찾아가는 촉발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단속을 피할 수 있는 특정 루트가 있다. 10년간 아무 문제 없이 판매해 왔다.” 22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일명 ‘가짜 기지국’이라 불리는 중국의 펨토셀 판매업자에게 “한국 세관에 적발되지 않고 장비를 들여올 수 있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펨토셀은 이동통신사가 전파가 약한 지역의 통신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설치하는 초소형 기지국이다. 개인이나 비(非)이동통신 사업자가 임의로 설치해 전파를 송출하면 불법이다. 경찰은 최근 KT 소액결제 사건에서 중국인 피의자들이 이 펨토셀을 이용해 가입자 정보를 탈취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22∼23일 동아일보가 중국 온라인 웹사이트를 확인한 결과 통신 가입자 정보를 빼낼 수 있는 펨토셀 장비가 ‘다크웹’뿐 아니라 일반 온라인 공간에서도 버젓이 거래되고 있었다. 가짜 기지국은 구매·사용 자체가 정보통신망법 위반이다. 업체들은 이 장비가 주변 최대 5km 범위 내 휴대전화의 주파수를 강제로 끌어들여 단말기 정보를 가로챌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판매업자는 한국 구매자에게 장비를 판매한 내역까지 공개하며 “7∼10일이면 한국에 도착한다”고 호언장담했다. 중국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펨토셀을 활용한 범죄가 발생해 왔다. 강민석 KAIST 전산학부 교수는 “약간의 조정만 거치면 국내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기기”라며 “보안 관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한국인 고객도 2명이나 있었다.” 홍콩에 본사를 둔 소형 기지국(펨토셀) 판매 업체는 23일 텔레그램으로 동아일보 취재팀에 이렇게 말하며 판매 내역을 공개했다. 해당 업체는 “한국 세관 통관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택배회사가 다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 이어 “7∼10일 안에 배송 가능하다”며 “원하면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직접 거래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장비는 최근 경찰이 수사 중인 ‘KT 소액결제’ 사건에서 가입자 정보를 빼내는 데 쓰였을 가능성이 제기된 가짜 기지국과 같은 형태로 추정된다. 경찰은 중국인 피의자들이 KT 가입자의 정보를 탈취해 소액결제로 돈을 빼돌린 사건에서 이 장비가 사용됐는지 확인 중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런 방식의 개인정보 탈취 범죄가 기승을 부렸고, 최근에는 일본·베트남 등 주변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결국 국내에도 같은 범죄 수법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최소 1만 달러에 거래… 기기 AS까지펨토셀은 원래 이동통신사가 전파가 약한 지역의 통화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설치하는 합법적 장비다. 그러나 개인이나 민간업자가 임의로 설치하면 전파를 불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돼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한다. 특히 장비를 개조해 통신사 인증 절차를 우회하거나 강제로 휴대전화 신호를 잡도록 만들면 ‘가짜 기지국’이 되고, 주변 휴대전화의 가입자 정보를 강제로 연결해 탈취할 수 있다. 이렇게 수집한 정보는 대량의 스팸·보이스피싱 문자 발송에 활용되기 때문에 2차 피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동아일보 취재팀이 업체가 공유한 판매 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4G·5G용 가짜 기지국 장비는 대당 1만 달러(약 1393만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신호를 더 잘 잡는다”고 광고하는 프리미엄 모델은 1만8000달러(약 2500만 원)에 달했다. 판매자들은 장비의 사양뿐 아니라 구체적인 범행 활용법까지 안내했다. “설치하면 문자메시지를 수천 건 보낼 수 있다”는 문구와 함께 보이스피싱 공격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암시했다. 장비 성능도 상세히 홍보했다. 일반 모델은 반경 500m∼1km에서 시간당 5000∼1만 건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할 수 있고, 프리미엄 모델은 3km 범위에서 시간당 3만∼5만 건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3년 품질보증, 2개월 이내 무상수리(AS)까지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결제는 가상화폐로 진행되며 주문·발송·도착 단계로 나눠 분할 결제가 가능했다. 기자가 거래 안정성을 묻자 판매자는 한국·말레이시아 고객과 주고받은 대화 캡처를 보여주며 “문제 없다”고 강조했다. 한 업자는 기기 제조 장소를 묻자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면서 “선전(深圳)시”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해외서 10년 넘게 기승… 국내 대응은 미흡 가짜 기지국을 이용한 범죄는 중국에서 이미 2012년부터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주중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2013년 중국 공안은 반경 3km 내 휴대전화 신호를 탈취해 피싱 문자를 발송한 범죄 조직 72곳을 적발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수법이 중국 인근 국가로 확산되고 있다. 2023년 베트남에선 가짜 펨토셀을 이용한 피싱 사건을 벌인 일당이 적발돼 정부가 주의를 당부하는 공문을 내렸다. 일본 총무성도 올 5월 유사 사건이 발생하자 휴대전화 간섭·피싱 문자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국내에서도 뒤늦게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KT는 이번 사건 이후 내부망에 펨토셀 추가 설치를 차단하는 임시 조치를 5일부터 시행했다. 다른 통신사들도 실시간 모니터링과 신규 개통 제한에 나섰다. 경찰은 23일 KT 서버 추가 침해 정황을 확인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라며 국내 보안체계 미비를 지적했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해킹 기술은 계속 고도화되지만 국내 기업들의 대응 체계는 여전히 2010년대 수준”이라며 “보안 제품과 서비스 수준도 해외에 비해 뒤처져 있다”고 경고했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한 사람 인생 망쳐드립니다. 해킹으로 당신의 목표물은 문제에 휘말릴 겁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2일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신승원 교수 연구팀과 함께 살펴본 다크웹 게시글의 내용이다. 작성자는 자신을 해커라고 소개하며 1700달러(약 237만 원)를 대가로 특정인을 해킹해 법적·재정적 문제를 일으켜 주겠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동 성착취물 관련 문제를 만들어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섬뜩한 문구까지 적혀 있었다. 최근 SK텔레콤, KT, 롯데카드 등에서 대규모 해킹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과거 기술력을 갖춘 일부 전문가들만 가능했던 해킹이 이제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대중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다크웹에는 직접 해킹을 해주겠다는 ‘대행 서비스’부터 구매자가 손쉽게 특정 사이트를 공격할 수 있는 해킹 툴까지 20여 종이 판매되고 있었다. 자신을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전문가라고 소개한 한 해커는 한 달간 매일 8시간씩 해킹 프로젝트를 수행해 주는 조건으로 9500달러(약 1323만 원)를 요구했다. 대상이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일 경우에는 2500달러(약 348만 원)를 추가로 받겠다고 밝혔다. 가장 저렴한 상품은 한 달 동안 보안이 취약한 사이트에 디도스 공격을 할 수 있는 해킹 툴로, 가격은 400달러(약 55만 원)였다. 이 밖에도 ‘타인의 휴대전화 원격조종’ ‘SNS 계정 해킹’ ‘웹서버·게임서버 침투’ 등 다양한 서비스가 메뉴처럼 나열돼 있었다. 신 교수 연구팀은 “해킹 툴을 구매하면 누구나 피싱 사이트를 만들고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며 “일부 해커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돈을 벌어 세력을 키운다”고 분석했다. 취재팀은 해킹 툴을 구입한 이들이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며 ‘2차 시장’을 형성한 정황도 확인했다. 23일 텔레그램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해킹 의뢰’ ‘해킹 텔레’ 등을 검색하자 10여 개의 해커 계정이 나타났다. 이들은 “페이스북 등 SNS 계정을 해킹해 준다. 원하는 해킹이 있다면 문의 달라”며 3000∼5만 원대의 가격까지 제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다크웹에 접속하지 않아도 해킹 대행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해킹 서비스가 대중화되면서 피해 대상과 규모, 공격 방식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 교수는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해킹을 의뢰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다크웹 모니터링과 공격 패턴 분석을 통해 선제적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대전=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김민석 국무총리가 최근 서울 시내에서 열리고 있는 ‘반중(反中) 집회’에 대해 “필요시 강력하게 조치하라”고 경찰에 19일 지시했다. 이날 국무총리실은 김 총리가 최근 서울 중구 명동에서 영등포구 대림동으로 옮겨 열리고 있는 반중 집회와 관련해 경찰청장 직무대행에게 “집회·시위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강력하게 조치하라”고 긴급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해당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 체류하는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에 불편과 불안감이 커지지 않도록 안전 확보와 질서 유지에 최선을 다하라”고도 지시했다. 정부가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지만 보수 성향 단체들은 이날도 서울 도심에서 반중 집회를 이어갔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보수 성향 단체 ‘민초결사대’ 등은 서울 중구 중앙우체국 앞에서 150여 명 규모의 ‘부정선거 규탄’ 집회를 연 뒤 한국은행과 소공로를 거쳐 덕수궁 대한문까지 행진했다. 경찰은 앞서 12일 이들 단체에 ‘마찰 유발 행위 금지’ 등을 담은 제한통고를 내렸다. 이에 따라 집회 및 행진 과정에서 관광객이나 상인, 외교사절 등을 향한 욕설, 폭행 등 마찰을 유발할 수 있는 행위는 금지됐고, 명동 이면도로 진입도 제한됐다.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1년 넘게 일자리를 못 구했어요. 정부까지 외면하는 것 같아 막막하네요.” 16일 오후 경기 고양시 장애인 취업박람회장에서 만난 지체장애인 박모 씨(34)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박람회장은 일자리를 찾는 장애인 수백 명이 몰려 붐볐다.정부가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현행 3.8%에서 2029년 4%로 늘리겠다고 밝힌 가운데, 장애인 정책 담당인 보건복지부가 최근 10년간 의무 고용을 지키지 못해 총 5억 원이 넘는 부담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억2900만 원의 장애인 고용 부담금을 냈다. 현행법상 의무 고용 인원수를 채우지 못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고시하는 장애인 부담금 부담 기초액에 근거해 미달 인원수만큼 부담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2015년과 2023년을 제외하고 매년 의무 고용률에 미달했다. 지난해 기준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 고용률은 3.8%였지만 복지부의 실제 고용률은 3.6%에 그쳤다. 다른 중앙부처도 비슷한 상황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부처 전체 장애인 고용 부담금 규모는 279억 원에 이른다. 일각에선 법정 부담금의 기준액이 낮아 ‘값싼 면죄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담금이 최저임금의 60∼100%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채용보다는 부담금 납부를 택하는 기관이 많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장애인을 채용할 만한 일자리’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비판도 나온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고용 시스템에 장애인을 맞추다 보니 일부 사업장은 배정된 직무와 무관한 잡무를 맡기게 되는 등 엇박자가 난다는 얘기다. 나운환 대구대 직업재활학과 교수는 “장애인 대상 임용 과정을 따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 쿼터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장애인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자폐성 장애 3급인 고은철 씨(32)는 “비장애인과 의사소통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편견 탓에 취업 길이 막힐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 장애인취업지원기관 관계자는 “그나마 일할 만한 자리는 제한적이라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의무 고용률 상향, 퇴직 등에 따른 결원 충원 시차로 인해 일시적으로 고용률이 낮았다”며 “제도 개선과 추가 채용을 통해 상황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1년 넘게 일자리를 못 구했어요. 정부까지 외면하는 것 같아 막막하네요.”16일 오후 경기 고양시 장애인 취업박람회장에서 만난 지체 장애인 박모 씨(34)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박람회장은 일자리를 찾는 장애인 수백 명이 몰려 붐볐다.정부가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현행 3.8%에서 2029년 4%로 늘리겠다고 밝힌 가운데, 장애인 정책 담당인 보건복지부가 최근 10년간 의무 고용을 지키지 못해 총 5억 원이 넘는 부담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억2900만 원의 장애인 고용 부담금을 냈다.현행법상 의무 고용 인원수를 채우지 못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고시하는 장애인 부담금 부담 기초액에 근거해 미달 인원수만큼 부담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2015년과 2023년을 제외하고 매년 의무 고용률에 미달했다. 지난해 기준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 고용률은 3.8%였지만 복지부의 실제 근로자 고용률은 3.6%에 그쳤다.다른 중앙부처도 비슷한 상황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부처 전체 장애인 고용 부담금 규모는 279억 원에 이른다.일각에선 법정 부담금의 기준액이 낮아 ‘값싼 면죄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담금이 최저임금의 60~100%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채용보다는 부담금 납부를 택하는 기관이 많다는 것이다.근본적으로는 ‘장애인을 채용할 만한 일자리’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비판도 나온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고용 시스템에 장애인을 맞추다 보니 일부 사업장은 배정된 직무와 무관한 잡무를 맡기게 되는 등 엇박자가 난다는 얘기다. 나운환 대구대 직업재활학과 교수는 “장애인 대상 임용 과정을 따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 쿼터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장애인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자폐성 장애 3급인 고은철 씨(32)는 “비장애인과 의사소통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편견 탓에 취업 길이 막힐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 장애인취업지원기관 관계자는 “그나마 일할 만한 자리는 제한적이라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의무 고용률 상향, 퇴직 등에 따른 결원 충원 시차로 인해 일시적으로 고용률이 낮았다”며 “제도 개선과 추가 채용을 통해 상황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최보윤 의원은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는 단순 권고사항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책무”라며 “법정 부담금이 공공기관의 고용 회피를 정당화하는 면죄부처럼 작용한다면 제도의 도입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의원은 “장애인들이 채용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되는 일 없도록 직무 적합성을 고려한 채용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니하오(你好·중국어로 ‘안녕하세요’).” “Can You Speak English(영어 할 줄 아는가)?”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시설에 7일간 구금됐던 한 근로자는 현지 요원들로부터 이런 발언을 들었다고 토로했다. 아시아인을 중국인으로 뭉뚱그려 부르거나 언어 능력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것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통한다. 구금자들은 충분한 법적 고지 없이 체포됐고, 곰팡이가 핀 침대에서 70여 명이 취침하는 등 열악한 시설에 수용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근로자는 “영화에서만 보던 죄수 취급을 당했다”고 했다.● “북한인 취급하며 ‘로켓맨’ 조롱”… 용모 비하도 14일 구금 근로자와 가족들에 따르면 ICE 단속으로 체포된 한국인 노동자들은 초반 72명이 한 방에 수용됐다. 방 안에는 2층 침대와 공용 변기 4개, 소변기 2개가 있었고, 외부와 단절된 밀폐 구조였다. 매트리스에는 곰팡이가 슬었고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아 일부는 서서 잠을 청해야 했다고 한다. 한 구금자 측은 “근로자들에게 속옷과 양말은 1개씩만 제공됐었고, 죄수복을 입고 머그샷을 찍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수용소 같은 시설에서 약 4일을 지낸 뒤에야 2인 1실 방을 배정받았다. 식사도 빵과 통조림 위주로 부실했다. 구금된 LG에너지솔루션 협력업체 근로자 이모 씨(36)는 “밥은 대부분 삶은 콩이었다. 콩만 보면 치가 떨린다”고 전했다. 당뇨병 환자가 약을 제때 지급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구금 이후 약 3일이 지나자 ICE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체포 및 인터뷰 등 과정에서 미 요원들이 ‘노스 코리아’(북한) ‘로켓맨’(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별명) 등 북한인 취급하는 조롱과 “니하오” “영어 할 줄 아냐”고 하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아시아인의 용모를 비하하는 뜻의 눈을 찢는 행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자들은 ‘미국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이 씨의 가족은 “(구금됐던 가족이)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제를 먹고 있다”며 “차라리 중국 등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은 안 가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회사와 소통 엄금, 체포 동의서에 서명 강요”미 당국이 회사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모두 제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협력업체 장모 씨(43) 측은 “현지 법인 사장이 면회를 오지 않아 구금 내내 불안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서 면회를 허가해 주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 씨 가족도 “현지에서 모든 소통은 업체에서 선임한 미국 변호사와만 가능하게 제한했다”며 “위생용품 등 요구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ICE는 체포 당시 통역을 제공하지 않았고, 미란다 원칙도 고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ICE 요원들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류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B1 비자를 소지했던 협력업체 직원 한모 씨(31) 가족은 “근로자들이 ‘사인하면 나가는 거다’라고 생각해 서명했는데, 나중에 번역기로 보니 ‘체포 동의서’였다”며 “제대로 된 설명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ICE가 처음엔 B1 비자 소지 근로자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돌아갔으나, 곧 다른 요원들이 들이닥쳐 강제로 퇴거를 명령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근로자는 “절차대로 입국했는데 왜 잡아가느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겠고 윗사람들은 불법이라고 본다더라”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일부 본사 임직원이 체포 당일 출근하지 않은 것을 두고 ‘단속 사실을 미리 알았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일부 근로자 사이에서 나왔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미 정부가 외국 기업에 압수수색한다고 알려 주지 않는다”며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 美 다른 지역 귀국으로 이어져 조지아주뿐 아니라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들도 속속 귀국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 협력사 직원 곽모 씨(43)는 12일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에서 귀국했다. 그는 “다음은 홀랜드라는 얘기가 돌았다. 잡히면 다시 미국에 들어오지 못할 수 있다는 위협을 느꼈다”며 “회사에서 ESTA, B1, B2 비자를 가진 근로자들은 모두 철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이민아 기자 omg@donga.com}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집단 구금 사태를 규탄하는 집회가 13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열렸다. 진보성향 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이날 오후 6시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인근에서 ‘157차 촛불대행진’을 열었다. 이날 모인 500여 명은 “우리 국민 체포·감금 미국 규탄한다” “조셉 윤 미국 대사대리 즉각 추방하라” “양키 고 홈” 등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은 광화문 일대를 행진하며 미국대사관 앞에서 “트럼프는 사죄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연단에 선 김지선 서울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주한 미 대사를 초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추방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앞서 오후 3시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인근에서 9·13 결의대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 1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구금된 배경에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강요, 방위비·국방비 인상 등 내정 간섭이 있다”며 “이는 곧 자주권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우리 국민 316명은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에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단속으로 체포·구금된 지 8일 만인 12일 고국 땅을 밟았다. 귀국한 근로자들로부터 열악한 구금소 환경, 현지 구금 과정에서 ICE 요원들의 인종차별 및 모욕성 발언 등에 대한 증언이 나오면서 비판이 커지고 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니하오(你好·중국어로 안녕하세요)”“Can You Speak English(영어 할 줄 아는가)?”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시설에 7일간 구금됐던 한 근로자는 현지 요원들로부터 이런 발언을 들었다고 토로했다. 아시아인을 중국인으로 뭉뚱그려 부르거나 언어 능력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것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통한다. 구금자들은 충분한 법적 고지 없이 체포됐고, 곰팡이 핀 침대에서 70여 명이 취침하는 등 열악한 시설에 수용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근로자는 “영화에서만 보던 죄수 취급을 당했다”고 했다.● “북한인 취급하며 ‘로켓맨’ 조롱”… 용모 비하도14일 구금 근로자와 가족들에 따르면 ICE 단속으로 체포된 한국인 노동자들은 초반 72명이 한 방에 수용됐다. 방 안에는 2층 침대와 공용 변기 4개, 소변기 2개가 있었고, 외부와 단절된 밀폐 구조였다. 매트리스에는 곰팡이가 슬었고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아 일부는 서서 잠을 청해야 했다고 한다.한 구금자 측은 “근로자들에게 속옷과 양말은 1개씩만 제공됐었고, 죄수복을 입고 머그샷을 찍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수용소 같은 시설에서 약 4일을 지낸 뒤에야 2인 1실 방을 배정받았다. 식사도 빵과 통조림 위주로 부실했다. 구금된 LG에너지솔루션 협력업체 근로자 이모 씨(36)는 “밥은 대부분 삶은 콩이었다. 콩만 보면 치가 떨린다”고 전했다. 당뇨병 환자가 약을 제때 지급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구금 이후 약 3일이 지나자 ICE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체포 및 인터뷰 등 과정에서 미 요원들이 ‘노스 코리아(북한)’ ‘로켓맨(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별명)’ 등 북한인 취급하는 조롱과 “니하오” “영어 할 줄 아나” 고 하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아시아인의 용모를 비하하는 뜻의 눈을 찢는 행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근로자들은 ‘미국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이 씨의 가족은 “(구금됐던 가족이)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제를 먹고 있다”라며 “차라리 중국 등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은 안 가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회사와 소통 엄금, 체포 동의서에 서명 강요”미 당국이 회사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모두 제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협력업체 장모 씨(43) 측은 “현지법인 사장이 면회를 오지 않아 구금 내내 불안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서 면회를 허가해 주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 씨 가족도 “현지에서 모든 소통은 업체에서 선임한 미국 변호사하고만 가능하게 제한했다”며 “위생용품 등 요구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ICE는 체포 당시 통역을 제공하지 않았고, 미란다 원칙도 고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ICE 요원들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류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B1 비자를 소지했던 협력업체 직원 한모 씨(31) 가족은 “근로자들이 ‘사인하면 나가는 거다’라고 생각해 서명했는데, 나중에 번역기로 보니 ‘체포 동의서’였다”며 “제대로 된 설명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ICE가 처음엔 B-1 비자 소지 근로자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돌아갔으나, 곧 다른 요원들이 들이닥쳐 강제로 퇴거를 명령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근로자는 “절차대로 입국했는데 왜 잡아가느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겠고 윗사람들은 불법이라고 본다더라”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일부 본사 임직원이 체포 당일 출근하지 않은 것을 두고 ‘단속 사실을 미리 알았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일부 근로자 사이에서 나왔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미 정부가 외국기업에 압수수색한다고 알려 주지 않는다”며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美 다른 지역 귀국으로 이어져조지아주뿐 아니라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들도 속속 귀국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 협력사 직원 곽모 씨(43)는 12일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에서 귀국했다. 그는 “다음은 홀랜드라는 얘기가 돌았다. 잡히면 다시 미국에 들어오지 못할 수 있다는 위협을 느꼈다”며 “회사에서 ESTA, B1, B2 비자를 가진 근로자들은 모두 철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13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미국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최근 우리 국민 316명이 미국 조지아주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붙잡힌 뒤 일주일간 열악한 구금소 생활에 따른 비판이 이어졌다.진보성향 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이날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인근에서 ‘157차 촛불대행진’을 열었다. 이날 모인 500여 명은 “우리 국민 체포·감금 미국을 규탄한다” “조셉 윤 미국 대사대리 즉각 추방하라” “양키 고 홈”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광화문광장과 안국동사거리, 종각역 등을 행진하던 참가자들은 미국대사관 앞에 잠시 멈춰 선 뒤 “트럼프는 사죄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연단에 선 김지선 서울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주한 미 대사를 불러들이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며 “추방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도 같은 날 오후 3시경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인근에서 ‘9.13 결의대회’를 열었다.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억울하게 구금된 이유는 트럼프 정부가 관세를 강요하고 방위비, 국방비 인상으로 내정 간섭을 하는 등 자주권을 탄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도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집회 참가자 1300여 명은 ‘윤석열표 반노동정책 즉각 폐기하라’ ‘이재명 정부는 노정교섭 즉각 제도화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민노총은 서울을 비롯해 충북, 대전, 세종·충남, 전북, 광주·전남,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강원,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앞서 12일 우리 국민 316명은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에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단속으로 시설에 7일간 구금됐다 풀려났다. 당일 귀국하는 근로자들을 마중 나온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복귀한 분들이 일상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심리 치료 방안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트로트 가수 정동원 군(18·사진)이 과거 면허 없이 자동차를 운전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검은 최근 정 군을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운전)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정 군은 2023년 경남 하동군에서 운전면허 없이 차량을 운전한 혐의를 받는다. 현행법상 만 18세부터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데, 정동원은 2007년생으로 당시 자동차 면허를 가질 수 없는 나이였다. 논란이 일자 정 군 측은 “당시 하동 집 근처 산길 등에서 약 10분간 자동차 운전 연습을 했고, 동승자가 그 모습을 촬영한 사실이 있다”며 “정 군은 면허 없이 운전 연습을 한 잘못에 대해 크게 후회하며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정 군의 지인이 정 군의 휴대전화를 훔쳐 간 뒤 사진첩에 접근했고 ‘무면허 운전을 한 영상이 있다’며 금전을 요구하는 등 지속적으로 협박했다고 한다. 실제 3월 정 군을 협박한 일당 3명은 경찰에 붙잡혔으며 이 중 2명은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트로트 가수 정동원 군(18)이 과거 면허 없이 자동차를 운전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검은 최근 정 군을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운전)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정 군은 2023년 경남 하동군에서 운전면허 없이 차량을 운전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법상 만 18세부터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데, 정동원은 2007년생으로 당시 자동차 면허를 가질 수 없는 나이였다.논란이 일자 정 군 측은 “당시 하동 집 근처 산길 등에서 약 10분간 운전 연습을 했고, 동승자가 그 모습을 촬영한 사실이 있다”며 “정 군은 면허 없이 운전 연습을 한 잘못에 대해 크게 후회하며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정 군의 지인이 정 군의 휴대전화를 훔쳐 간 뒤 사진첩에 접근했고 ‘무면허 운전을 한 영상이 있다’며 금전을 요구하는 등 지속적으로 협박했다고 한다. 실제 3월 정 군을 협박한 일당 3명은 경찰에 붙잡혔으며 이 중 2명은 구속돼 재판받고 있다.앞서 정 군은 2023년 자동차전용도로인 서울 동부간선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타다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당시 검찰은 정 군이 미성년자이고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강원 강릉시가 극심한 가뭄으로 제한급수에 들어간 가운데 ‘제2의 강릉’이 될 수 있는 가뭄 취약 시군이 전국 37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릉시처럼 생활용수를 대는 수원(水源)이 1개 이하이면서 ‘수도관 누수율’이 강릉시보다 높은 지역만 집계한 것인데, 다양한 수원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8일 동아일보가 환경부 ‘상수도 통계’와 국가가뭄정보포털 데이터 등을 분석한 결과, 다목적댐·용수댐·저수지가 아예 없거나 1개인 지역은 전국 시군 161곳 중 107곳(66.5%)이었다. 이 가운데 생활용수 부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도관 누수율(수도관 틈새 등으로 새어나간 물의 비율)이 강릉시(23.4%)보다 높은 지역은 37곳에 달했다. 당장 가물지 않았어도, 4주 정도만 비가 멎으면 강릉과 같은 ‘돌발 가뭄’을 겪을 수 있는 곳들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 중 한 곳인 경북 상주시에는 실제로 이날 가뭄주의보가 내려졌다.저수량까지 강릉보다 적은 지역은 5곳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경북 문경시다. 문경은 사실상 경천호 한 곳에 생활용수를 의존하고 있는데, 저수량은 11만 ㎥로 강릉(203만 ㎥)의 20분의 1 수준이었다. 상수도 누수율도 37.9%로 강릉의 1.6배에 달한다. 문경에 30년 가까이 거주한 천정호 씨(86)는 “이번 해가 유난히 가물어 배추가 이미 다 죽어버렸다”고 하소연했다. 이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강릉시처럼 땅윗물(댐·저수지)을 단일 수원으로 의존하면 취약하므로 지역에 맞게 지하댐 등 대체 수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문경=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원래 저수지가 가득 차 있어야 할 때인데 지금은 바닥이 훤히 보이지요. 이래선 농사는커녕 물 끊길까 걱정이에요.” 6일 오후 경북 문경시에서 만난 주민 김순이 씨(71)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생활·농업용수원인 경천호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문경은 경천호에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를 사실상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실제 이날 오후 2시경 방문한 경천호는 가뭄으로 수위가 5m가량 낮아져 상류 부근 일부가 바닥을 드러냈다.● ‘제2의 강릉’ 위험지역 37곳… 강원 지역 최다한국농어촌공사 농촌용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경천호 저수율은 25%로, 경북 지역 평균(49.2%)의 절반 수준이었다. 지난해 9월 경천호 저수율(45.8%)과 비교해도 낮았다. 저수량도 11만 ㎥로 강릉(203만 ㎥)의 20분의 1 수준이다. 문경시 주민들은 “날이 계속 가물면 강원 강릉시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놓일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8일 동아일보가 환경부 ‘상수도 통계’와 국가가뭄정보포털 데이터 등을 분석한 결과, ‘제2의 강릉’이 될 수 있는 지역이 총 37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들은 모두 다목적댐·용수댐·저수지가 1개 이하면서 수도관을 통해 새어나간 물의 비율이 강릉(23.4%)을 웃돌았다. 전국 평균 상수도 누수율은 약 10%인데, 이보다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6배로 많은 물이 낭비되고 있었다. 지역별로 보면 가뭄 위험 지역은 강원이 평창군, 양구군 등 10곳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경북(8곳)과 충남·전북(각 4곳), 경남·충북(각 3곳), 전남·제주(각 2곳), 경기(1곳)가 이었다. 충남 보령시의 경우 보령댐 하나에 생활용수뿐 아니라 산업용수까지 완전히 의존한다. 누수율마저 40.7%로 높아 매년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보령댐에 기댄 청양 등 시군 8곳의 인구만 50만 명이 넘는다. 여기에 인근 산업단지와 화력발전소도 보령댐의 물을 사용하고 있다. 가물면 주민뿐 아니라 지역 산업까지 동시에 타격을 받는 구조다. 보령시 성리에 사는 김진태 씨(65)는 “2015년 가뭄으로 제한급수를 한 뒤 매년 여름이면 윗마을이나 산간 지역에서 단수 소식이 들린다”며 “인근에 공장이 늘어난 만큼 물 사용량도 늘었는데 눈에 띈 대책은 그동안 없었다”고 토로했다. 경북 문경시와 영덕군, 전남 구례군, 충북 영동군, 강원 평창군 등 5곳은 강릉보다 저수량도 적었다.● 새어나간 물만 연간 6900억 원어치문제는 수원(水源)이 하나도 없거나 1개뿐인 상황에서 누수율마저 높으면 수자원 낭비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물 공급까지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22년 연간 전국 누수량은 6억7000t으로 약 6900억 원의 수자원이 낭비됐다. 전문가들은 누수율이 높으면 아무리 많은 물을 공급해도 가뭄 시 취약해진다고 지적한다. 한때 누수율이 60%에 달했던 강원 태백시는 가뭄이 발생하면 물부족이 심해져 3개월간 제한급수까지 시행해야 했다. 상수도 최적화 사업을 통해 누수율을 내린 후에야 상황이 나아졌다.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선 수도관을 개선해 누수율을 낮추고 개인 차원에선 물을 아끼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단 2∼4주 새 가뭄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돌발 가뭄’도 늘고 있다. 송영석 건국대 소방방재융합학과 교수 등이 지난달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0년간 강원도 지역에서 발생한 96건의 가뭄 중 39건(40.1%)이 돌발가뭄이었다. 전문가들은 지역별 자구책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중장기 상수도 투자 확대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주시는 2015년경 큰 가뭄을 겪은 뒤 대형 관정을 설치하고 저수지를 파내는 등의 방법으로 농업용수를 확보했다. 김성준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기후위기로 인한 돌발가뭄이 상수(常數)가 된 만큼 탄탄한 상수도 인프라를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문경=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보령=이정훈 기자 jh89@donga.com원주=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