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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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철희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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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6~2025-12-06
칼럼100%
  • [오늘과 내일/이철희]한일관계, 기대와 현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시절 미국과 일본에 파견된 정책협의단은 새 정부 출범 즉시 한미일 정상 간 연쇄 회담을 통해 3각 공조체제를 신속히 복원한다는 파격적인 구상을 추진하려 했다. 윤 대통령 취임식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축하사절로 참석하고 열흘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에 이어 한미 정상이 나란히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으로 간다는 그럴듯한 그림이었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핵실험까지 점쳐지던 때라 북핵에 맞선 3국 정상 간 연대를 적시에 과시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국내 한 싱크탱크가 주최한 한일관계 세미나에서 나온 전문가의 아이디어가 단초가 됐지만, 실제로 정책협의단은 무척 열의를 갖고 미일 양국에 이 구상을 제시했다. 미국은 전적으로 찬동했고, 일본도 꽤나 솔깃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연쇄 이벤트의 시작이 기시다 총리의 방한이라는 점, 즉 일본이 먼저 물꼬를 트는 모양새는 곤란하다는 일본 측의 망설임이 발목을 잡았고, 한일 속도전 외교구상은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참의원 선거를 앞둔 기시다 정권으로선 당장 손에 쥐는 것 없이 손부터 내미는 것은 정치적 자살골이나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고 그 구상이 도로(徒勞)로 끝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달 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무대에서 한일 정상 간 짤막한 대화와 한미일 3국 정상회의가 성사되면서 얼추 비슷한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한일 정상이 정식회담도 열지 못하는 마당에 한미일 연쇄 이벤트 구상은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드러났지만, 어쨌든 한일 두 정상은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속도감 있게 관계를 진전시키자는 이심전심을 확인했다. 그런 기류 때문인지 한일 정관계의 관계복원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게 사실이다. 한국 정책협의단과 일본 축하사절단의 방문에 양국 정부는 과공(過恭)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큼 각별히 대우했다. 일본 측 인사들은 윤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에 놀랐다며 “그 전향적 태도에 진심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이런 양국 상층부의 열기가 과연 한일관계의 급진전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도 컸던 과거 사례들을 돌아보면 이번에도 속도전이 오히려 급제동과 후퇴를 낳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당장 일본이 한국 측에 해법을 요구하는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는 물론이고 독도 영유권, 동해 표기, 역사교과서까지 한일관계는 매년 때가 되면 혹은 언제 불쑥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의 연속이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10일 참의원 선거 이후엔 일본의 자세가 달라질까. 자민당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지만 그런 결과는 한일관계의 미래 전망을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선거의 최대 이슈는 방위비 대폭 증액과 평화헌법 개정이다. 일본 보수우파는 격화되는 신냉전 대결 기류를 타고 한층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차제에 세계 3위의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강국으로 가자는 기세다. 과거를 잊은 일본이 세계 3강의 군사대국으로서 중국에 맞선 미국의 동북아지역 대리인으로 떠오른다면, 한국은 그런 이웃나라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일본이 앞장서는 지역안보체제에 한국은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인가. 한일관계 개선은 필요하고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조급해선 안 된다. 동북아 안보질서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까지 내다본 전략적 고민과 함께 풀어가야 한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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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식 실전공부법 [오늘과 내일/이철희]

    지난 일요일 북한이 서해로 방사포 5발을 쐈다는 사실을 군 당국이 10시간 뒤에나 공개한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국가안보실은 앞서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응하는 새 정부의 3원칙 중 첫 번째로 “발사체가 미사일인지, 방사포인지, 탄도미사일인지 정확히 밝히겠다”고 했다. 그랬던 정부가 잇단 미사일 도발에 핵실험 임박설까지 나온 민감한 시기에 북한의 군사동향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야당의 정치적 공세를 자초했다. 윤석열 대통령 말대로 “미사일에 준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면 그대로 알리고 영화 관람도 갔다면 됐을 텐데 말이다. 물론 북한이 뭐든 쏘면 무조건 “도발”이라며 맞대응할 일은 아니다. 특히 방사포(다연장로켓)는 야포와 미사일 사이에 있는, 그 경계가 애매한 무기체계다. 대부분 휴전선 인근에 배치돼 서울 등 수도권을 기습 공격하기 위한 것인데, 신형 초대형 방사포는 화력이나 사거리에서 웬만한 탄도미사일을 능가한다. 이번 방사포는 사거리가 짧은 구형이어서 호들갑 떨 일은 아니었다지만, 전임 정부와는 다르다던 새 정부로선 스타일을 구기게 됐다. 그런데 정작 주목할 대목은 윤 대통령의 대응이 이전과 크게 달랐다는 점이다. 북한은 새 정부 출범을 50일 앞두고도 방사포 4발을 쐈다. 당시 윤 당선인은 특유의 상기된 톤으로 “방사포는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 아닙니까? 명확한 위반이죠?”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뿐이 아니다. ‘합의 위반은 아니다’는 국방부를 향해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우리 국민 머리 위로, 우리 영공을 거쳐서 날아갔다면…”이라며 있지도 않은 ‘영공 침범’을 거론했다. 그 위세에 국방부는 입을 다물었고, 그렇게 넘어갔던 논란이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다. 대선후보 시절 9·19 군사합의 폐기 가능성까지 거론했던 윤 대통령이다. 그래서 취임 후 9·19 합의는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사실 그 합의는 ‘안보 포기 서약’이라는 보수의 공세 대상이었고 북한의 파기 위협으로 이미 사문화됐다는 평가도 많다. 다만 그것이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는 완충장치 역할을 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새 정부가 “폐기는 아니다”라고 밝힌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무력시위를 넘어 북한이 노릴 지점도 9·19 합의에 완충지대로 설정된 휴전선과 북방한계선(NLL) 일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일찍이 ‘가치와 국제규범, 법치에 기반을 둔 외교관계’를 내세웠다. 그런 칸트식 이상론이 무정부적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국제 현실에서,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한반도 현실에서 얼마나 통할지 의문이다. 가치와 규범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외교안보에서까지 범죄자 단죄하듯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동맹과 그 진영을 향한 잘 뚫린 길을 내달리기는 쉽다. 하지만 그에 따른 마찰과 파열을 이겨낼 힘은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작금의 북한 핵·미사일 폭주는 5년 전 문재인 정부 초기 때와 판박이다.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정부의 수단이나 방법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 정부가 “말이 아닌 행동”을 내세우며 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지만, 달라진 말투 외에 달리 뾰족한 대안이 있을까. 윤 대통령으로선 국가안보를 책임진 자리의 무게, 나아가 녹록지 않은 현실을 실감하는 요즘일 것이다. 면밀한 현실 진단과 대응, 그 반작용까지 내다본 전략적 고투가 필요하다. 외교안보는 겪으면서 배울 수 있는 실전공부가 아니다. 9수는커녕 재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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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尹 ‘북한 비핵화’와 바이든 ‘한반도 비핵화’

    더할 나위 없이 죽이 잘 맞았다던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두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에선 묘한 불일치가 눈에 띄었다.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확장억제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간 ‘북한 비핵화’냐 ‘한반도 비핵화’냐를 놓고 벌어졌던 논란을 다시 소환하는 대목이다. 한미 정부가 초안과 수정안을 몇 차례 주고받은 끝에 나온 공동성명의 문구는 그동안 남북, 북-미, 한미 간 합의된 용어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였다. 하지만 새 정부 주요 인사들이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와 다름없다며 비난했던 게 ‘한반도 비핵화’다. 정부 여당이 야당 시절 견지해오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가역적 비핵화(CVID)’도, 인수위원회에서 다소 완화했다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CVD)’도 이번에 반영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굴종적 대북자세’를 비판하며 출범한 윤 대통령이 바이든과 달리 굳이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전임 정부의 정책적 흔적을 지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도 한미 간 조율 과정의 견해차를 부인하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워낙 준비시간이 촉박해 일단 기존 표현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미국도 우리 입장에 공감하는 만큼 앞으로 나올 문서에는 ‘북한 비핵화’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한미 공동성명에는 새 정부의 달라진 대북전략 기조를 반영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1년 전 문재인-바이든 공동성명에 담겼던 한반도 비핵화의 다른 한 축, 즉 평화 프로세스에 관한 내용도 모두 사라졌다. 남북 ‘판문점 선언’과 북-미 ‘싱가포르 성명’ 언급이 빠진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웠던 ‘외교적 모색을 위한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법’도 빠졌다. 오히려 이틀 뒤 일본에서 나온 미일 공동성명에 “두 정상은 ‘정교한 외교적 대북 접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표현으로 반영돼 있는 것과 대비된다. 사실 이번 바이든의 첫 아시아 순방은 온통 중국 견제에 맞춰졌다. 그러다 보니 북핵 이슈는 묻혀버린 모양새였다. 오직 관심은 북한이 바이든 순방이란 도발의 최대 찬스를 어떻게 노릴지에 쏠려 있었다. CNN은 바이든 출발 이틀 전에 향후 48∼96시간, 즉 방한 기간에 맞춰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도발이 일어날 진짜 가능성, 실제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바이든이 한국 일본에 머물던 5일 동안 잠잠하면서 그저 호들갑으로 끝나나 싶었는데, 결국 북한은 귀국길에 오른 바이든의 뒤통수를 향해 미사일 3발을 쏘아 올렸다. 이제 북한이 언제 뭘 쏴도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 됐지만, 이미 준비를 마쳤다는 7차 핵실험이나 일본열도를 넘어 태평양을 향하는 미사일 도발은 북한이란 ‘시한폭탄’을 다시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북한은 2017년 ‘화염과 분노’의 시절보다 더욱 대담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세계적인 신냉전 대결 기류를 틈타 중국 러시아의 등 뒤에 재빨리 올라탄 북한이다. 이런 북한의 폭주를 막을 수단은 많지 않다. 유엔의 대북제재 기능마저 마비된 터에 강력한 경고와 응징 능력 과시가 북한에 얼마나 먹힐까. 도발을 관리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도 외면해선 안 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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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3不’ 흔들기, 새로운 韓中관계 지렛대 될까

    “저는 격노 잘 안 하고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퇴임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지만, 재임 기간에 종종 대변인 브리핑이나 참모진 전언을 통해 자신의 노여운 심기를 드러내곤 했다. 문 대통령이 처음으로 그 노여움을 드러낸 것은 취임한 지 20일 만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가 비공개로 국내에 추가 반입된 사실을 보고받고 “매우 충격적”이라며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국방부가 국민도 모르게 일을 진행했고 의도적으로 보고까지 누락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선 하극상이니 국기문란이니 격한 반응도 나왔다. 결국 실무자 문책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그것은 이제 새 정권이 들어섰으니 대외정책도 확실히 바뀔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를 최대의 외교적 실패로 봤다.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과 한한령(限韓令·한류 수입 금지), 외교관계의 사실상 단절까지 낳은 패착을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새 정부의 차별성을 보여줄 기회로 여겼다. 그래서 곧바로 중국과의 사드 사태 해결에 매달렸다. 그로부터 5개월 뒤 나온 것이 이른바 ‘3불(不) 입장’이었다. 사드 철거를 요구하는 중국과의 협의는 순조롭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는 ‘중국 측은 자신들의 우려를 천명했고 한국 측은 그간 밝혀온 입장을 다시 설명했다’는 협의 내용을 발표하고, 외교부 장관이 국회에서 사드 추가 배치와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과 합의하거나 약속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외교적 타협 방식은 사실 30년 전 한중 수교 때도 있었다. 수교 협상의 난제는 과거사 문제였다. 한국은 중국군의 6·25전쟁 개입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중국은 거부했다. 결국 중국 측이 ‘6·25 참전은 중국 국경지대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었고 이는 과거에 있었던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우리 정부가 공개하는 것으로 협상은 타결됐다. 중국은 “사과한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어쨌든 문재인 정부는 ‘굴종외교’ 논란까지 감수하면서 한중관계 복원에 나섰는데도 결과는 갈등의 봉합에 그쳤다. 이후 중국은 마치 시혜라도 베풀 듯 한한령을 찔끔찔끔 풀면서 한국을 관리했고, 한국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통한 관계 정상화를 기다렸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중국에 끌려 다녔다. 윤석열 새 정부의 대(對)중국 기조는 크게 다를 것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때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했고, MD 참여나 한미일 군사동맹 가능성도 열어뒀다. ‘전략적 동반자’라는 공식적 관계가 격하(格下)되지는 않겠지만 실질적 관계의 이격(離隔)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대선 이후 당선인 측의 언급은 신중해졌다. 중국에 당당히 맞설 배짱도 필요하지만 우선 우리 능력부터 갖춰야 한다는 현실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내건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새 정부의 지향점 앞에 중국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보름 뒤 방한하는 미국 대통령에게는 첫 아시아 순방지로서 ‘중국 견제’ 연설을 위한 멍석도 깔아준 상황이다. 그러니 한국의 정권교체를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그 모든 게 러시아와 북한의 불법무도는 방관하면서 주변국에는 치졸한 보복과 겁박, 오만방자한 외교로 일관하던 중국의 자업자득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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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김정은과 푸틴의 ‘삽질 동맹’

    올 들어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을 비교해보면 그 궤적이 묘하게 일치한다. 러시아가 1월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는 동안 북한은 주로 단거리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했다. 2월 들어 베이징 겨울올림픽 기간엔 러시아도 북한도 숨을 고르듯 멈췄고, 러시아가 2월 말 침공을 감행하자 북한도 기다렸다는 듯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연달아 쏘아 올리며 무력시위를 재개했다. 그러다 러시아가 침공 한 달 만인 지난달 25일 ‘1단계 목표 달성’을 주장하며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자 북한도 ‘신형 ICBM 성공’을 선언한 뒤 3주 가까이 잠잠하다. 이제 러시아군은 병력을 보강 재정비하며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준비하고 있고, 북한은 풍계리 갱도를 복구하며 7차 핵실험을 위협하고 있다. 마치 시간표를 맞춘 듯한 북-러의 군사 행로를 보면 양국이 군사계획을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앞으로 진행될 러시아의 총공세와 북한의 핵 도발을 지켜보면 그것이 북한의 기회주의적 숟가락 얹기인지, 아니면 사전 조율 아래 이뤄지는 공동 작전인지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강도 도발과 협상 전환, 장기 교착으로 이어진 북한의 지난 5년 대외 행보에서 김정은이 거둔 최대의 성과는 중국 러시아와의 유대관계 복원이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주최하는 국제행사 때마다 대형 도발로 중국을 화나게 했던 ‘사고뭉치’ 김정은은 남북, 북-미 회담 전후로 늘 시진핑을 찾으며 공을 들였다.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은 북-미 하노이 결렬 뒤에야 열렸지만 이후 러시아는 대북제재 완화를 앞장서 주창하는 후견인이 됐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면서 주변부로 밀려난 러시아와 북한은 현 국제질서의 변경을 위한 모험주의적 공생(共生)을 꾀하고 있다. 특히 거악(巨惡) 러시아에 묻어가는 소악(小惡) 북한의 날쌘 행보가 두드러진다. 북한은 러시아 침공 초기 유엔총회의 규탄 결의안 표결에 중국이 기권했는데도 반대표를 던졌다. 러시아의 무기 지원 요청에 중국은 거절했지만 북한은 수락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북-러의 도발은 이미 1단계부터 그 밑천을 드러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점령과 젤렌스키 정권 교체가 어려워지자 당초 목표를 수정해야 했고, 북한도 신형 ICBM의 실패를 덮기 위해 과거 영상을 짜깁기하는 꼼수까지 부렸다. 북-러 도발이 부른 역풍은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은 핀란드 스웨덴 같은 중립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편입을 부추기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그간 나토 가입에 부정적이던 국민 여론이 급변하면서 정부 차원의 공식 절차에 들어갔고 나토도 신속 처리를 약속했다. 북한이 ICBM에 이어 핵 도발까지 감행하면 한국 일본의 전술핵 배치 등 핵무장론에 불길을 댕길 것이다. 그러면 중국도 북한과의 손절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푸틴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10년 전쟁은 제국의 몰락과 미소 양극체제의 붕괴를 재촉했고, 미국의 아프간과 이라크 20년 전쟁은 유일 초강대국 지위의 쇠퇴를 불렀다. 미국이 한사코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을 담그지 않으려 하고, 중국이 멀찌감치 러시아 뒤편에서 지켜보는 이유다. 호기롭게 시작한 북-러의 삽질이 제 무덤 파기로 판명되기까지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결국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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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카데미, 폭행과 手語 [횡설수설/이철희]

    세계 최고로 쳐주는 영화상인 아카데미 시상식은 대략 3시간 반가량 이어진다. 시상식 시청률은 비스포츠 생방송 중계 프로그램 중엔 가장 높다지만 최근 몇 년간 급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상식 시간을 줄이거나 주목도가 덜한 시상을 생중계 전에 배치하기도 했지만 하락 추세는 막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94번째 시상식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중계사인 ABC방송의 잠정치에 따르면 시상식을 지켜본 미국 시청자는 1536만 명. 최악이던 작년의 985만 명보다 56% 늘었다. 그 현장에서 벌어진 초유의 폭행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배우 윌 스미스가 자기 아내의 탈모 증상을 농담의 소재로 삼는 코미디언 시상자에게 격분해 무대로 뛰어 올라가 뺨을 후려치는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가족의 아픔을 건드린 것에 자제력을 잃었다지만 폭력 행사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기 어렵다. 스미스는 당국의 처벌과 남우주연상 박탈 위기에 처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끝없이 추락하던 아카데미가 드디어 이제 갈 데까지 갔다는 혹독한 평가들이 줄을 잇는다. 한편으로 올해 시상식이 그 어떤 작품이나 배우, 감독이 아니라 ‘역대 가장 추악한 오스카의 순간’으로 기억될지 모른다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아카데미상은 몇 년 전까지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비판받았다. 그런 따가운 시선에 아카데미도 변하기 시작했다. 재작년 한국 영화 ‘기생충’의 4관왕, 작년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도 그런 변화의 산물이었으리라. 아카데미는 올해 여성과 비백인, 성소수자, 장애인을 모두 무대에 불러올렸다. 특히 청각장애 부모를 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코다(CODA)’는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3관왕을 차지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를 통해 출시된 작품이다. 감독상을 받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파워 오브 도그’와 함께 스트리밍 서비스의 대세화, 할리우드가 지배하던 극장영화의 쇠락을 보여준다. ▷과거 할리우드는 장애인을 연기하는 비장애인에게 상을 줬지만 이번엔 달랐다. 청각장애인 트로이 코처의 남우조연상 수상은 그래서 빛났고, 그 시상자로 나선 윤여정의 수어(手語)는 더 큰 감동을 줬다. 윤여정은 수상자 호명에 앞서 수어로 “축하한다”고 표현했고, 관객들도 박수 대신 양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축하했다. 윤여정은 코처가 수어로 소감을 밝히는 동안 대신 트로피를 들고 곁을 지켰다. 누군가의 고통을 희화화한 코미디언, 분노에 찬 폭력을 행사한 할리우드 스타가 전 세계 시청자를 충격에 빠뜨렸다면 수렁에 빠진 아카데미를 살린 것은 윤여정의 진심이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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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MB맨의 귀환

    새삼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꺼내 읽었다. 이른바 진보에서 보수로의 정권 교체이고,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정부인수팀 외교안보 분과에 MB맨들이 대거 등장하니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오는 상황이기에. 역대 어느 대통령이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MB의 대외정책은 특히나 그렇다. 대외적 성과는 화려했다. 미국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 주요 20개국(G20)과 핵안보 정상회의 같은 대형 이벤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완성 등등. 하지만 MB 시절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대표되는 남북 충돌의 시대로 기억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MB 회고록의 절반이 외교안보와 대북관계에 할애됐다. 그만큼 자랑하고 싶은 것도, 설명할 것도 많다는 뜻일 듯싶다.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과 중국 총리의 권유에 따른 여러 차례의 대북 접촉 비사(秘史)를 공개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읽힌다. MB 정부는 이전 10년의 햇볕정책을 ‘퍼주기’라고 비판하며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내걸고 출범했다. 한미동맹 등 4강 외교를 앞세웠고, 대북정책은 뒤로 밀렸다. 북한은 대남 비난과 군사 도발에 나섰고, 남북관계는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비밀접촉은 이어졌다. 이런 모든 접촉이 무위로 끝난 뒤 MB 정부는 ‘방법론적 유연성’을 내세우는가 하면, 김정일이 사망한 뒤엔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며 북한 붕괴론에 기대기도 했다. 다만 MB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강변했다. “정상회담을 하는 것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내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고, 더 값진 일이기도 했다.” MB는 회고록을 두고 “내 개인의 기록이자 참모들의 집단 기억”이라고 했다. 회고록 작성에 외교안보 분야 멤버로 참여해 감수까지 맡았던 사람이 김태효 전 대외전략기획관이다. 북핵 ‘그랜드바겐’의 설계자이자 어그러진 대북 접촉에도 나섰던 MB 외교의 핵심이었다. 마흔을 갓 넘어 청와대에 들어간 그는 ‘소년 책사’로 불렸다. 기자들이 전화를 하면 늘 “질문은 30초 이내로, 공부해서 물어보세요”로 시작하는 까칠한 인물이었다. 그가 윤 당선인의 인수위원이 됐다. 윤 당선인과는 한 아파트에 사는 동네 주민이다. 대선 때 윤 당선인의 ‘포린어페어스’ 기고문도 사실상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기고문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굴종적이었고 중국에 지나치게 고분고분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명료성과 대담함, 원칙을 강조했다. 사드 추가 배치, 쿼드 가입론도 담겼다. 이를 두고 MB식 외교로의 복귀 혹은 한발 더 나간 것이라고 본다면 비약일까. 윤 당선인에 대한 미국 측 반응은 긍정적이다. 미 의회조사국(CRS)도 “미국 정책에 더 부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의 선제타격 발언과 관련해 “미국은 남북 군사 충돌이 나면 종종 한국에 ‘군사 대응을 자제하라’고 압박했는데, 이는 윤의 공약과 상충될 수 있다”고 했다. 폭침과 포격 이후 도발 원점과 지휘부 타격을 공언했던 MB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다. 정권이 바뀌는 만큼 대외적 변침(變針)은 불가피하겠지만 이번엔 인수인계 단계부터 요란하다. 가열된 ‘안보 공백’ 논란이 자칫 차분한 실태 파악도 건너뛴 급격한 변침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외교는 궁극적인 해결을 추구하지만, 현실적 우선순위는 갈등을 관리하는 데 있다. 연속성 속에서 변화를 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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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은 푸틴의 귀띔 못 받았을까[오늘과 내일/이철희]

    195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는 신생 중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다자외교 무대였다. 이런 중국을 대만의 장제스 총통이 가만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홍콩 카이탁공항의 직원을 매수해 중국 대표단이 탄 비행기에 폭탄을 심었고, 외교관과 기자 11명이 공중 폭발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거기에 저우언라이 총리는 없었다. 어디선가 위험 첩보를 전달받고 다른 비행기를 탄 덕분이었다. 냉전기 미국이든 소련이든 어느 블록에도 가담하지 않은 제3세계 국가들의 비동맹 회의에서는 공산주의 중국에 대한 의심, 적대적 기류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연단에 오른 저우는 준비한 메모를 치워놓고 즉석연설을 시작했다. “중국 대표단은 공통점을 찾으러 온 것이지, 불일치를 만들러 온 게 아닙니다.” 대만 문제 같은 분열적 이슈도 피했다. 박수가 간간이 터져 나오더니 연설을 마칠 땐 참석자들이 기립 박수로 환호했다. 당시 저우가 제시한 것이 ‘평화공존 5원칙’(주권·영토 존중,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 호혜평등, 평화공존)이다. 이 5원칙은 반둥회의가 결의한 ‘평화 10원칙’의 골간이 됐고, 오늘날까지 중국이 말끝마다 내세우는 외교의 기본 원칙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매력외교’를 펴던 가난한 신생 국가에서 세계 패권을 노리는 강대국으로 변신한 지금, 중국이 표방해온 외교 원칙은 한낱 외교적 수사로 전락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 외교를 시험대에 세웠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브로맨스’를 과시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미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병력을 배치해 놓은 푸틴의 전쟁 명분에 대한 공개적 지지였다. 그 보답이었을까. 푸틴은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 초반 조지아를 침공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올림픽이 끝나길 기다렸다. 중국도 푸틴의 도발을 놓고 꽤나 고심한 듯하다. 푸틴이 베이징을 떠난 뒤 시진핑을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 외신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비공개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그래서 나온 결과는 원칙과 이익의 기괴한 조합이었다. 중국은 ‘주권과 영토의 존중’을 내세우면서도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며 주권 유린을 묵인했다. 반미(反美) 연대를 위해 원칙의 훼손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국은 러시아의 침공에 전혀 대비돼 있지 않았다.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 준비에 관한 비밀정보를 여러 차례 전달했지만 중국은 번번이 묵살했다. 오히려 미국의 경고를 ‘긴장을 부채질하는 가짜뉴스’라고 비판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주재 중국대사관은 갈팡질팡했다. 각국이 자국민 철수에 나섰지만 중국은 막판까지 머뭇거리다 그 시기를 놓쳤다. 오성홍기 부착을 권고했다가 이틀 만에 신분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이런 한심한 대응은 시진핑이 과연 푸틴의 속내를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침공의 공모자’라는 낙인까지 찍히면서 러시아를 감싸는 중국의 태도를 볼 때 푸틴이 귀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푸틴이 조지아 침공과 크림반도 병합 때처럼 속전속결의 국지적 작전이라고 얘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뭐였든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의 자격을 잃었고, 자국민 안전조차 챙기지 못한 비정한 외교는 두고두고 지탄받을 것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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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독일의 줄타기 외교

    헤이스팅스 이즈메이 초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나토의 설립 목적을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나토는 러시아를 내쫓고, 미국을 끌어들이고, 독일을 제압하기 위해(to keep Russians out, Americans in, and Germans down) 고안됐다.” 그 말대로 나토는 제2차 세계대전 종결과 함께 시작된 냉전체제에서 공산주의 소련의 팽창과 전범국가 독일의 부상을 막기 위한 집단동맹이었다. 요즘 나토 동진(東進) 반대를 내걸고 전쟁불사를 외치는 러시아도 소련 시절 나토 가입의 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1955년 서독의 재무장과 나토 가입이 추진되자 정치공세 차원에서 나토 가입을 요청한 것이다. 이즈메이는 “도둑이 경찰관 되겠다는 격”이라며 거부했고, 소련은 동유럽 위성국가들을 모아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출범시켰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엔 통일독일의 나토 잔류, 즉 동독의 나토 편입이 미소 간 난제였다. 당시 서방 측이 거듭 “나토 관할권을 동쪽으로 1인치도 넓히지 않겠다”고 구두약속을 하고서야 독일 분단은 끝날 수 있었다.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제 나토는 1000km 넘어 러시아의 코앞까지 확대됐다. 나토 역사에서 독일은 ‘주역’이 아닌 ‘문제’였다. 그러면서도 나토의 보호 아래 경제성장을 이뤘고 그런 독일을 향해선 주변의 견제도, 새로운 역할에 대한 요구도 많았다. 독일은 신중했다.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자랑하는 영국이나, 미국이라면 거리부터 두는 프랑스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여전히 전범국의 책임과 동맹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독일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또다시 괴로운 시험대에 들었다. 많은 나라가 각종 무기와 전함, 전투기까지 보내는 상황에서 독일이 내민 것은 헬멧 5000개였다. 당장 “다음엔 뭘 보낼 건가. 베개?”라는 조롱이 나왔다. 독일은 에스토니아가 보유한 옛 동독산 곡사포의 우크라이나 이전 승인 요청도 ‘분쟁지역에 살상무기를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워 거절했다. 독일 국민 대다수는 정부의 방침을 지지하지만, 외부에선 ‘또 습관적 평화주의 핑계냐’고 비아냥거린다. 독일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러시아 의존이다. 특히 이미 완공돼 가동을 기다리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비겁하게 러시아 눈치를 본다고 뭇매를 맞고 있다. 주간지 슈피겔은 “독일이 위기 때마다 그랬듯 옆으로 비켜 앉아 불신받는 처지에 몰렸다”며 ‘줄타기 외교로의 귀환’이라고 지적했다. 불신의 눈초리는 독일 정치권의 ‘푸틴 동조자(Putin-Versteher)’로 쏠린다. 러시아의 로비스트가 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와 그의 총아였던 올라프 숄츠 총리로까지 향했다. 숄츠가 엊그제 미국을 방문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푸틴과의 동침’이란 비난까지 쏟아낸 미국 조야의 의구심을 떨쳐냈는지는 의문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한 기고에서 각국의 외교정책 성과를 평가해 금메달을 준다면 그것은 독일 몫이 될 것이라고 썼다. 정치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미국과의 동맹도,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도 잘 관리해 안보와 번영을 증진시켰다는 것이다. 다만 월트 교수는 거세진 강대국 대결에서 독일이 계속 잘해낼지는 큰 의문이라고 했다. 독일 외교가 많은 중견국가에 본보기가 될지, 반면교사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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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美 유럽 파병 딜레마

    미국 국방부가 24일 미군 8500명을 동유럽에 파견하기 위해 비상 대기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미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여 병력과 기갑전력, 미사일장비를 배치한 러시아의 침공 협박에 맞서 단호한 군사적 대응 의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다. 아울러 미국은 상황이 악화되면 파병 규모를 10배로 늘릴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그간 미국은 금융·무역제재 같은 보복조치를 경고해 왔지만 그것만으론 러시아의 도발을 막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판단 아래 마지막 군사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대비 차원의 조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래 “미국의 이익이 심대하게 위협받지 않는 한 해외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혀 왔다. “우리는 세계의 호구(sucker)가 아니다”며 ‘세계의 경찰’ 역할을 거부했던 전임 대통령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출구 없는 ‘전쟁의 진창’에 빠졌던 미국이다. 공화·민주 어느 행정부를 막론하고 군사적 과잉개입(overstretch)은 가장 경계해야 할 과제가 됐다. 바이든이 지난해 ‘카불의 치욕’을 감수하면서도 아프간 철군을 단행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막무가내 치킨게임 도전에 칼집에 넣어뒀던 군사 카드를 다시 저울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물론 우선순위는 외교적 해결에 있다. 미국은 조만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나토의 동진(東進) 금지, 러시아의 옛 소련 세력권 인정 등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요구 조건에 대한 서면 답변을 주기로 했다. 러시아의 턱없는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전쟁은 시작하긴 쉽지만 끝내기는 어렵다는 점을 푸틴도 모르지 않을 것인 만큼 타협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 폐기된 중거리핵전력(INF) 협정이나 군사적 신뢰구축조치(CBM) 복원 같은 큰 그림 속에 러시아를 협상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이 거론된다. ▷전쟁의 북소리가 요란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그런 해법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임시 출구를 찾더라도 합의를 이루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장은 시간싸움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가 누려온 선제적 공세의 이점은 사라진다. 러시아 측은 질질 끄는 ‘협상의 늪’에 빠지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3월이면 땅이 녹으면서 기갑전력의 기동이 어려워지는 만큼 서둘러 결딴을 내겠다며 벼르고 있다. 시간을 벌려면 미국도 일단 양보가 불가피한데, 당장 ‘히틀러를 달래던 유화정책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결코 전쟁을 원치 않지만 마냥 회피할 수도 없는 ‘자유주의 제국’ 미국이 처한 딜레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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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푸틴이 연 ‘공포의 도박판’ 기웃대는 김정은

    “미국에선 사업상 분쟁이 생기면 으레 변호사를 고용하죠? 법원으로 가면 통상 수개월이 걸리고 그만큼 변호사비만 쌓이죠. 러시아에선 대개 상식에 따라 해결됩니다. 큰돈이 걸린 분쟁이 나면 양쪽은 대표들을 만찬에 내보내죠. 모두 무장한 채로 말입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할 가능성에 직면하면 양측은 합의 가능한 해법을 찾습니다. 공포는 상식의 기폭제죠.” 과거 여러 미국 대통령의 지정(地政)전략 자문을 맡았던 해럴드 맘그렌(87)이 최근 한 기고문에서 소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992년 발언이다.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의 젊은 야심가 푸틴이 30년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밑에서 일하던 시절 자신에게 했던 얘기에서 마피아 보스 같은 본능을 읽었고, 그것은 요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협하며 미국과 대결하는 푸틴의 벼랑 끝 치킨게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난 몇 개월에 걸쳐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명 가까운 병력을 배치해놓고 푸틴이 미국과 그 서방 동맹에 내놓은 요구사항은 30년 전 옛 소련의 세력권을 복원할 테니 그걸 문서로 보장하라는 것이다.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내밀어 침공의 구실로 삼겠다는 최후통첩성 협박이다. 러시아는 인근 벨라루스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준비하는가 하면 대규모 해킹 공격과 가짜 뉴스 유포, 거짓 피격사건 공작까지 이른바 ‘하이브리드 전쟁’에도 들어갔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당장 푸틴의 의도는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그의 야릇한 눈빛 속에 감춰져 있다. 서방과의 협상에 나선 러시아 측 대표도 그 속내를 모를 것이라느니, 아니 푸틴 자신조차 결정을 못 내렸을 것이라느니, 중(重)기갑전력 작전을 위해 땅이 꽁꽁 얼기를 기다리고 있다느니, 우크라이나 점령 이후 출구 없는 ‘전쟁의 늪’에 빠질 것을 푸틴도 모를 리 없다느니 온갖 추측성 전망만 무성하다. 어쨌든 푸틴은 선제 도발자의 이점을 누리고 있다. 고도의 정치심리전이 노리는 것은 상대를 열 받게 하거나 겁먹게 만드는 것. 미국은 그런 노림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수세적 처지에 빠진 것은 어쩔 수 없다. 병력 파견 같은 맞대응 대신 꺼내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나 금융·무역 제재 경고는 나약하게 비칠 뿐이다. 다만 미국과 동맹들이 점차 결의를 모으고 있는 만큼 푸틴이 주도하는 시간이 마냥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 푸틴의 마피아식 도발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패권도전자 중국보다 질서교란자 러시아의 도전에 먼저 맞닥뜨렸다. 러시아를 이용한 중국 견제, 즉 중-러 갈라치기는 환상이었음도 드러났다. 오히려 중-러의 연대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응원과 경계 사이에서 향후 대만 공략의 학습기회로 여기며 관전하고 있다. 내달 4일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은 세계 양대 스트롱맨 푸틴과 시진핑의 밀월을 과시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짙어지는 신냉전 기류는 다른 독재자들에게도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당장 카자흐스탄의 독재자는 반정부세력 진압을 위해 러시아 군대를 불러들였다. 북한이라고 가만있을 리 없다. 김정은은 새해 벽두부터 각종 미사일을 연거푸 쏘아 올렸고, 국제 제재를 무력화하는 중-러의 비호 아래 더 큰 도발의 호기로 삼을 태세다. 냉전시대 첫 열전지대, 탈냉전시대 마지막 냉전지대 한반도의 불안 요인은 커지고 있다. 바짝 긴장하고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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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조종사 잡는 전투기

    1950년대 말 냉전이 무르익던 시절,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제2세대 전투기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고성능화 경쟁도 한층 가열됐다. 강력한 엔진과 최신 레이더, 신예 무기를 갖추다보니 덩치가 커진 반면 기동력은 떨어졌고 가격도 매우 비싸졌다. 서방의 맹주 미국엔 고성능 막강 전투기가 필요하겠지만 다른 개발도상국 동맹국들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런 틈새를 내다본 방위산업체 노스럽사가 기존 고등훈련기를 토대로 개발한 ‘꿩 대신 닭’ 격인 전투기가 구매가격도 운용비용도 저렴한 초음속 경량 전투기 F-5A/B ‘프리덤파이터’였다. ▷인기 높은 수출 기종으로 세계적 각광을 받은 F-5A는 1965년 한국에 처음 도입돼 한국군의 초음속 전투기 시대를 열었다. 1972년부터는 성능을 향상시킨 F-5E가 나와 한국도 추가로 구매했다. 하지만 F-5E는 당시 북한이 보유한 미그-19나 미그-21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가에 시달렸다. 그래서 추진된 차세대 전투기 F-16 구매사업이 자금 압박으로 물량이 축소되는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F-5E/F가 198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서 조립 생산되기도 했다. 그렇게 한국은 전 세계에서 F-5 기종을 가장 많이 운용하는 국가가 됐다. ▷11일 오후 경기 화성의 한 야산에 F-5E 한 대가 추락했다. 이 전투기는 이륙 직후 좌우 엔진 화재 경고등이 켜지고 기체가 급강하했다. “이젝트(탈출)! 이젝트!” 조종사는 관제탑과의 교신에서 비상탈출을 두 차례나 외쳤으나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추락 지점은 주택 몇 채가 있는 마을에서 100여 m 떨어진 곳이었다. 조종사가 민가로 추락하는 것을 피하려고 야산 쪽으로 기수를 돌리면서 탈출 시기를 놓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워낙 낡은 기종이어서 수리 부품조차 다른 전투기에서 빼내 돌려쓰는 판에 탈출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을지나 모르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군이 보유한 F-5 기종 80여 대는 통상 30년 정도인 정년을 훌쩍 넘긴 노후 전투기다. 2000년 이후에만 모두 12대가 추락했다. 이번 사고기도 운용한 지 36년이 됐다. 공군은 F-5 기종을 한국형 전투기 KF-21로 대체해 2030년까지 도태시킬 계획이다. 영공 방어를 위한 ‘전투기 적정 대수(430여 대)’ 유지 차원에서 퇴역 시기를 넘겨 운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공군은 설명한다. 초계 임무 같은 보조전투기로서의 역할이 있고 조종사의 비행시간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고뭉치 기종을 넘어 ‘조종사 킬러’ ‘과부 제조기’로 오명만 쌓는 상황을 앞으로도 8년간 지켜봐야 하는지 의문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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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팬데믹 3년차 지구촌

    전 세계의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하고 있다. 어제로 중국이 우한의 바이러스성 폐렴을 세계보건기구(WHO)에 처음 보고한 지 2년이 됐지만, 미국 유럽 등 각국 확진자 수는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바이러스 물결이 해일 수준을 넘어 쓰나미급이 됐다는 경보가 요란하다. 곳곳에서 새해맞이 행사들이 대거 취소됐고 항공편 취소나 대중교통 운행 중단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세계는 또다시 혼란과 불안 속에 팬데믹 3년 차를 맞았다. ▷감염병의 확산 속도는 인류의 이동 속도에 비례한다. 세계화가 만들어낸 하나의 지구촌을 코로나19가 장악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각국은 우선 국경의 빗장부터 걸어 잠그고 개인의 이동과 만남을 차단하고 나섰다. 바이러스는 개인의 일상은 물론이고 사고방식까지 바꿨다. 정보기술(IT)에 기초한 비대면 초연결 사회는 이제 뉴노멀(새로운 정상)이 됐다. 인간관계의 단절, 개인의 파편화로 인한 ‘코로나 블루’는 우리 정신건강마저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는 국가별 속성을 드러냈다. 폐쇄적 독재국가의 대응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북한은 국경선 1∼2km 안에 완충지대를 설정하고 침입자는 무조건 사살하도록 했다. 중국은 방역에 드론이나 안면인식 기술까지 동원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코로나는 새로운 전체주의마저 양산하고 있다. 요즘 세계 정치학계에선 위기를 이용해 반대세력을 억누르는 ‘기회 억압(opportunistic repression)’이란 개념이 회자된다. 아프거나 약한 사람에 대한 감염병 유발을 뜻하는 의학용어 ‘기회 감염(opportunistic infection)’과 상통해서다. ▷팬데믹 2년은 부국과 빈국 간 격차로 인한 비극의 악순환을 확인해줬다. 각자도생의 자국 우선주의는 ‘백신 민족주의’에서 분명해졌다. 선진국은 넉넉한 백신을 확보하고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에 나서는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세계화가 낳은 양극화의 그늘을 파고들며 계속 진화했다. 백신은커녕 변변한 방역물품도 없이 방치됐던 빈국들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속출했고 그 변이는 부메랑이 되어 선진국을 다시 위협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전염성과 치사율은 반비례한다고 한다. 오미크론 변이가 최초로 퍼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확산의 정점을 찍고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이다. 앞으로 나올 변이도 종국엔 유행성 독감 같은 계절병이 될 것이고, 만능백신이나 치료제 같은 인류의 대응 능력도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 방패를 뚫고 새로운 역병이 언제 어디서 창궐할지 알 수 없다. 결국 최선의 팬데믹 대책은 각자가 아닌 공동의 대응, 즉 지구촌 공존의식의 회복일 것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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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10년, 내리막길은 가파르다[오늘과 내일/이철희]

    북한 정보를 전문으로 다루는 미국의 인터넷매체 NK뉴스가 최근 김정은 집권 10년을 맞아 전 세계 북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6차례에 걸쳐 게재했다. 그 대표성이나 객관성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전직 외교관이나 연구자, 활동가 등 오랫동안 북한을 관찰해온 각국 전문가 82명의 의견을 모은 결과인 만큼 북한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데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0년 전 ‘과연 몇 주, 몇 달을 버틸까’ 관심의 대상이던 애송이 지도자가 지금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 그걸 가능케 했던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 다수가 김정은이 2018년 중국과의 전략적 유대를 복원한 점을 꼽았다. 반면 최대 실책은? 2019년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즉 ‘플랜B’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10년 뒤 북한은 어떨까? 식량난 같은 위기 속에서도 제재 완화를 얻어내든 중국에 기대서든 간신히 버티며 핵을 붙들고 있을 것이라고 대다수가 내다봤다. 미국의 북한 다루기는 어땠을까. 지난 10년 최고의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외교였다고 다수가 평가했다. 반면 최악의 선택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꼽혔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비핵화는 가망 없다고 보고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 지속적 관여 정책을 추진할 때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핵 포기 압박과 제재 강화를 주장한 응답자의 두 배가 넘었다. 어찌 보면 뻔할 수도, 보기에 따라선 의외일 수도 있는 내용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10년을 되짚어 보고 향후를 내다보는 것이니 그 나름 북한을 잘 안다는 전문가라 해도 지금 이 시간의 무게, 꽁꽁 가려진 북한 정보의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더욱이 김정은은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나라 전체를 2년 가까이 봉인해 놓았다. 그럼에도 아직껏 내부의 동요 조짐은 노출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김정은의 권력 공고화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전문가 다수가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을 향해 북한을 포용하라는 의견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북한 위협을 축소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라는 주문이다. 물론 미국 행정부는 결코 내켜 하지 않겠지만, 김정은의 완강한 버티기와 대외 여론전이 최소한 북한 관찰자들에겐 깊은 인상을 심어준 셈이다. 하긴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도 북한을 좀 안다는 이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다. 김정은은 오늘로 북한군 최고사령관 자리에 등극한 지 10년을 맞는다. 며칠째 노동당 전원회의를 주재하며 ‘승리의 해’를 결산한다지만 뾰족한 현실 타개 방안이 나올 리 없다. 김정은은 또다시 허황된 자존감을 앞세운 미사여구를 쏟아낼 것이고, 대외노선에서도 대화와 대결이 뒤섞인 기회주의적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다. 당분간은 밀무역과 사이버 해킹으로 연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모진 권력자라도 배곯는 주민의 원성을 이길 수는 없다. 김정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진흙구덩이 참호에 처박힌 채 무한정 버티기는 어렵다. 다만 당장 나오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우선 코로나 공포부터 떨쳐내야 한다. 한국 대선도 지켜봐야 한다. 이런 북한에 한미 양국도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 섣불리 나서기보다는 북한의 도발 유혹을 제어하며 비핵화로 유도하는 정교한 관리전략이 필요한 때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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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수 누린 김영주[횡설수설/이철희]

    1972년 세계적인 데탕트 물결 속에 비밀 방북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김일성을 만나 그의 동생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서울을 답방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난색을 표했다. “그는 사실 몹시 아픕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반나절밖에 일을 못 합니다.” 이후락이 “그럼 반나절이라도 좋으니 보내 달라”고 했지만, 김일성은 ‘식물성신경부조화증’이란 병명까지 대며 거절했다. 그래도 이후락은 확인해야 했다. 연회에서 김영주에게 집요하게 술을 권했다. 술을 마신 김영주는 그 자리에서 졸도해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결국 김영주 대신 서울엔 박성철 제2부수상이 다녀갔지만 남북 최초의 공식 합의문인 7·4공동성명에는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과 김영주가 서명했다. 남측은 실무협상 때부터 이후락의 대화 파트너로 김영주를 지목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보부장이자 정권 2인자의 상대라면 마땅히 북한 실권자이자 후계 1순위자여야 했다. 하지만 김영주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해외로 신병 치료를 다니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고, 조카 김정일과의 권력투쟁에서도 밀려 퇴장 수순을 밟고 있었다. 중앙정보부는 당시 김영주를 후계자로 잘못 짚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 매체들이 15일 김정은의 종조부인 김영주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1920년생으로 김일성보다 여덟 살 아래인 김영주는 101세로 세상을 떴다. 일제강점기 땐 빨치산 형을 둔 탓에 일경에 체포되기도 했지만 형이 알선해준 덕에 모스크바로 유학도 갈 수 있었다. 6·25전쟁이 끝난 뒤 귀국해선 권력의 핵심인 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시작해 부장까지 초고속으로 올라갔다. 형을 대신해 조카의 훈육도 맡았다. 군사훈련에 불참하고 영화 삼매경에 빠져 있던 김정일을 찾아내 두들겨 패선 훈련소로 복귀시킨 적도 있다고 한다. 김정일의 첫 근무지도 삼촌 아래의 조직지도부였다. ▷김영주가 후계자로 떠오른 것은 1967년 반종파투쟁이었다. 김일성 체제에 도전하는 갑산파를 숙청한 이 권력투쟁의 선두에 선 것이 김영주와 김정일이었다. 하지만 숙부와 조카의 합작은 거기서 끝났다. 원만한 성격의 지식인 타입인 김영주는 권력 의지가 약했고 충성경쟁에도 능하지 못했다. 김일성은 “작은아버지가 주체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아들의 보고를 받고 동생을 지방으로 추방했다. 그렇게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권력에서 멀어진 이래 유배 생활을 전전했고 말년엔 실권 없는 명예직에 머물렀지만 그는 천수를 누렸다. 병 때문이든 천성 때문이든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선 철저하게 낮췄기에 가능했을 것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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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바이든, 2개의 전선에서 살아남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재로 9, 10일 열리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 격렬하다. 중국은 ‘민주: 인류의 공동가치’라는 주제로 맞불 형식의 국제포럼을 열었고, 중국식 민주 제도의 우월성을 내세운 ‘중국의 민주’ 백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폐해를 열거한 ‘미국의 민주 상황’ 보고서도 잇달아 냈다. 여기에 미국이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까지 발표하자 중국은 “결연히 반격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미국의 이념적 도발에 중국은 유례없이 전면적 공세를 펴고 있다. 과거 중국은 큰 나라를 이끌고 신속한 부강을 이루려면 강력한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방어논리를 내세웠다. 덩샤오핑은 “우리 체제의 강점은 효율성이다. 우리는 결정이 나면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창의적으로 제기했다는 ‘전 과정 인민민주’를 내세우며 진짜 민주주의가 뭔지를 두고 미국과 한판 붙어 보자고 나섰다. 미중 대결은 이제 국제정치의 현실이 됐다. 쇠퇴하는 패권국과 부상하는 도전국의 대결이 평화로울 수 없었음은 과거 수많은 강대국의 명멸사에서 알 수 있다. 무역과 기술, 규범, 군사 분야로 확대돼 온 미중 대결은 이제 이념과 체제 경쟁에까지 이르렀다. 수십 년간 세계를 갈라놨던 미소 냉전의 재연, 신(新)냉전의 도래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선 수십 년 냉전질서를 무너뜨린 봉쇄(containment) 정책의 재가동을 외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온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중국 러시아 등 전제(專制) 국가에 맞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복원하겠다는 바이든의 대선 공약에 따른 것이다. 대만을 포함해 110개국이나 참여하는 화상회의에서 과연 어떤 성과가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전선은 선명하게 그어졌다. 하지만 정상회의 초대장을 받지 못한 오랜 동맹과 우방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고, 백악관의 초청 기준을 둘러싼 논란과 잡음도 적지 않다. 이번 정상회의가 오히려 역풍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현실주의 국제정치 학자들은 보편가치를 내건 자유주의 대외정책으로는 강고한 민족주의 노선을 이길 수 없다고 설파한다. 중국은 오히려 미국을 향해 ‘중병(重病) 든 난장판 나라’라며 손가락질하고 있다. 특히 대선 결과에 불복한 의사당 난입 사태를 들어 조롱한다. 이런 중국의 선전공세가 미국과 척을 진 권위주의 독재자들의 심정적 공감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게 바이든이 처한 국내 정치 현실이다. 바이든은 대외적으론 독재자들과 대결하면서 국내적으로 전임자의 포퓰리즘 그늘과 싸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 출마를 벼르는 터에 바이든의 임기 1년 차 지지율은 벌써 바닥 수준이다. 당장 내년 중간선거에서 의회 권력을 공화당에 내주면 조기 레임덕에 허덕일 것이라는 위기감이 바이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바이든은 지금 트럼프와의 차별성을 놓고 분투하고 있다. 소름 끼치는 악행을 저질러 온 독재자들에게도 친밀감을 과시하던 트럼프다. 심지어 시진핑의 주석 임기 제한 철폐 소식을 듣고선 “그는 이제 종신 대통령(주석)이다. 훌륭하다”고 농반진반(弄半眞半) 부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라 안팎으로 2개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는 바이든이 국내에서 자신감을 얻기 전까진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운 ‘편 가르기’식 대외정책 기조도 누그러지긴 어려울 것 같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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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10년 전, 바이든은 시진핑을 잘못 봤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타 공인 ‘외교 대통령’이다. 특히 세계 지도자들과의 넓고 깊은 개인적 친분은 그의 자산이다. 바이든의 옛 측근은 말한다. “카자흐스탄이든 바레인이든 어디가 됐든 그를 떨어뜨려 놓아 보라. 거기서 그는 30년 전 만났던 누군가를 발견할 것이다.” 전직 상원의원도 거든다. “의회를 방문한 외국 손님에게 ‘여기는 스미스 의원, 여기는 존스 의원’ 소개하다가도 바이든 차례에선 늘 손님이 먼저 ‘안녕, 조’라고 인사한다.” ‘모든 정치는 개인적(personal)’이라는 게 바이든의 지론이다. 외교 현장에서도 그 얘기를 꺼내며 “모든 게 궁극적으로 신뢰에 기초하고 신뢰는 솔직한 관계에서 나온다. 그러면 상대의 의도가 뭔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곤 했다. 박력도 결기도 없어 보이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경청, 타협의 리더십이 오늘의 바이든을 만들었다. 바이든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도 어떤 얘기든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관계를 맺었다. 2011년 베이징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함께 국수도 먹고 지방 여행도 했다. 당시 시진핑은 중동의 독재정권이 줄줄이 무너지던 ‘아랍의 봄’ 사태를 무척 궁금하게 여기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들의 실책은 인민과의 접촉을 잃고 자만에 빠져 고립됐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그런 길을 피해야 한다.” 그런 사이였기에 바이든은 그제 자신을 ‘오랜 친구(老朋友)’라 부르는 시진핑과의 화상회담이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서 격의 없는 대화를 하기는 어려운 법. 게다가 시진핑은 10년 전의 그가 아니었다. 바이든은 둘 사이에 대해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만 오랜 친구는 아니다.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다”라고 밝힌 바 있다. 미중 관계를 되돌아보면 바이든과 시진핑의 친분은 예외적이었던 한 시절의 얘기일 수 있다. 1979년 수교 이래 미중 사이는 늘 긴장 상태였다. 특히 미국 정치에서 중국은 목에 걸린 가시였다. 대통령선거 때면 늘 ‘중국 때리기’가 유행했다. 대만에 무기 수출을 주장한 로널드 레이건, ‘베이징의 도살자’라고 비난한 빌 클린턴,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등 역대 대통령들은 당선 뒤에야 비판 수위를 누그러뜨리곤 했다. 중국에 각을 세우지 않고 선거를 치른 것은 버락 오바마, 바이든 콤비의 2008년 대선이 유일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구원투수로 나선 중국을 껴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바이든은 러시아 지도자에겐 “당신 눈에선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바이든에게 시진핑은 말이 통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걸까. 시진핑의 ‘중국몽’은 이미 그때 시작됐다. 슈퍼파워를 쩔쩔매게 만든 금융위기를 시진핑은 미국 쇠퇴의 서막이라고 진단했다. 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던 시절을 끝내고 중국이 세계에 우뚝 설 시대가 왔다고 봤다. 주석에 오르자마자 아시아의 지역패권을 추구했고, 이제 공산당 100년 역사까지 다시 쓰며 글로벌 파워로 질주하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친구는 없다. 사적인 친분이 국가 간 힘의 관계, 질서의 변화를 이길 수는 없다. 물론 영원한 적(敵)도 없다. 하지만 작년 대선 때 ‘베이징 바이든’ ‘조진핑’이라 공격받던 바이든에겐 당장 국내 정치도 힘겨운 상황이다. 그의 인맥외교가 미중 대결이 충돌로 치닫지 않도록 하는 완충장치로나마 작동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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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核 선제 불사용

    핵무기는 그 존재 자체가 가공할 위협이다. 그 효용은 적의 핵 공격 의지를 사전에 약화시켜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억지(deterrence)에 있다. 실제 사용하지 않아도 사용 가능성만으로 적을 두렵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억지력이다. 1945년 일본의 두 도시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래 많은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그 대열에 끼어들기를 열망하는 이유이자, 지난 76년간 한 차례도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핵무기의 주술적 위력 때문에 그 사용과 관련해선 말을 아끼며 ‘의도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절대무기가 세계로 확산하는 것을 방치해야 하는가. 아무런 지침도 없이 위험한 사람에게 핵 버튼을 맡겨둬도 되는가. 적어도 핵 공격을 받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연말에 내놓을 핵태세검토(NPR)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고민하는 문제들이다. ▷사실 이런 고민은 이미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시작됐다. ‘핵 없는 세계’를 내세운 오바마 대통령은 선제 불사용 원칙 도입을 깊이 검토했지만 정책에 반영하지 못했다. 당시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만 선제 불사용을 천명하는 대신 ‘미국과 동맹에 대한 핵 공격을 억지하는 것’으로 핵무기의 ‘단일 목적(sole purpose)’을 명시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대선 때도 그 입장을 견지했다. ▷이런 핵정책 전환 검토에 당장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그것이 선제 불사용과 다를 게 뭐냐고 반발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동맹국들은 미국이 동맹에 약속한 핵우산이나 확장억지 공약을 약화시켜 결국엔 러시아와 중국을 대담하게 만들 ‘적에게 주는 선물’이 될 것이라는 강한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자체 핵개발을 촉발해 그 지역의 군비경쟁을 촉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고 한다. ▷핵 선제 불사용은 1964년 중국이 가장 먼저 세계에 공언한 원칙이지만 중국도 최근 핵 증강에 나서면서 생각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러시아도 소련 시절 선제 불사용을 약속했지만 공산권 붕괴 이후 그 약속을 철회했다. 북한은 선제 불사용을 거론하면서도 ‘선제적 응징’을 위협한다. 커지는 안보 불확실성 때문에도 미국의 정책 전환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선제적인 핵무기 통제론도 만만치 않아 바이든 행정부의 고심은 깊을 수밖에 없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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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교황 방북

    2014년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반세기 넘게 적대시해 온 양국 간의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특별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1년 반 넘게 진행된 양국 간 비밀협상이 막판 벽에 부딪쳤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두 정상에게 개인적 서한을 보내 중재자로 나섰고 양국 대표단을 바티칸으로 초청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이듬해엔 쿠바와 미국을 연쇄 방문해 화해의 지속을 축원했다. ▷교황은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인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이다. 성속(聖俗)의 권력을 아우르던 중세시대에 비하면 그 영향력은 크게 줄었지만 초국가적 권위에 바탕을 둔 교황의 스마트파워는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주요 사안마다 교황이 내놓은 한마디 한마디의 울림과 무게는 남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바티칸 교황청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한 자리에서 북한 방문을 거듭 요청한 것도 ‘하느님의 외교관’으로서 교황이 이뤄낼 수 있는 기적 같은 외교에 기대 보려는 안간힘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기꺼이 가겠다”고 답했다. 3년 전 답변 그대로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교황 방북 초청을 제안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교황이 오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그 다음 달 교황청을 방문해 이런 뜻을 전했고, 교황은 그때도 “공식 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록 북한은 바티칸에 초청장을 보내지 않고 있다. ▷북한도 한때 교황 방북을 추진한 적이 있다. 동구권이 우르르 무너지던 1991년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외무성에 교황 초청을 위한 상무조(TF)를 편성했다.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다급함에서였다. 북한 당국은 과거 독실했던 한 할머니 천주교 신자를 어렵사리 찾아내 바티칸에 데려가기도 했다. 교황청은 그 할머니의 눈빛만 보고도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품어온 진짜 신앙을 알아봤다. 하지만 정작 북한은 이 일을 계기로 종교의 ‘무서움’을 절감했고, 상무조는 두 달 만에 슬그머니 해체됐다.(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교황 방북이 성사되려면 김정은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소탈하고 거침없는 프란치스코 교황인 만큼 절차와 형식을 따지지 않는 파격 방북을 추진할 수도 있다지만 초청도 없이 갈 수는 없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처럼 궁여지책으로 교황을 초청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러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냉전기 두 차례 폴란드 방문이 자유노조 결성과 공산정권 붕괴로 이어졌던 역사를 김정은이 모를까. 그 공포감부터 이겨내야 가능한 일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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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대만해협의 격랑이 밀려온다

    중국이 비밀리에 핵무기 탑재용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을 했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보도는 전방위로 격화되는 미중 갈등이 본격적인 군사 경쟁으로 치닫고 있음을 시사한다.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중국의 극초음속활공비행체(HGV) 시험은 ‘물리학 법칙을 거스르는 기술적 성취’였고 이는 미국 정보당국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로켓에 실려 지구궤도에 올라간 극초음속 미사일은 음속의 5배 이상 속도로 예측불가의 구불구불한 궤적을 그리며 표적을 타격한다. 남극을 돌아 미국 본토를 때리는 ‘궤도폭탄(FOBS)’이 될 수도 있다. 북극을 거쳐 날아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맞춰 구축된 미사일방어체계(MD)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중국은 “우주비행기 시험일 뿐”이라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핵무기를 싣고 랜딩기어 없이 추락하는 우주왕복선을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중국의 핵 증강 야심은 대규모 ICBM용 지하격납고 건설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미국 전문가들은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중국 서북부 간쑤성과 신장위구르자치구에 각각 100여 개에 달하는 ICBM 격납고가 건설 중임을 확인했다. 중국은 수십 년 동안 격납고 20개만 운영하는 ‘최소 억지력’의 핵전략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중국은 이제 최소 핵전략을 걷어차고 본격적으로 ‘공포의 핵 균형’을 준비하는 징후가 뚜렷하다. 중국의 조용한 핵전력 증강이 장래의 일이라면 목전의 화약고는 대만이다. 중국은 ‘미수복 영토’인 대만에 대해 노골적인 힘자랑을 하고 있다. 이달 초 중국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사상 최대 규모의 군용기 무리를 잇달아 진입시켰다. 최근엔 러시아와 함께 군함들을 일본 열도로 보내 해상 시위도 벌였다. 이 모든 게 지역적 군사 대결에선 미국에 밀리지 않는다는, 나아가 핵 대결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이에 맞서 미국은 대만과 한층 밀착하고 있다. 그간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 즉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만 대만의 자력방위도 지원하는 모호한 정책에서 벗어나려는 행보로 중국을 발끈하게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미국이 방어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우리는 그럴 책무가 있다”고 전혀 모호하지 않은 답변을 내놨다. 국무부는 대만의 유엔기구 참여를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대만은 이제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이 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내년 3연임을 결정지을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더욱 공세적으로 대만 통일의 열기를 북돋울 것이고 그럴수록 대만의 독립 움직임은 가속화할 것이다.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우발적 충돌을 낳고 미국의 개입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저 기우가 아닐 수 있는 이유다. 대만해협의 파고는 한반도에까지 미치고 있다. 미중 대결을 틈타 북한은 군사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철도기동미사일 극초음속활공체 등 각종 신형 무기를 발사했다. 최신 무기들을 모아 전람회까지 열었다. 곧 집권 두 번째 10년에 접어드는 김정은이다. 중국의 뒷배를 믿고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처지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운 줄타기 외교는 설 자리를 잃어간다. 북핵 해결은 고사하고 북한의 준동을 걱정해야 하는 데다 유사시 주한미군의 차출, 전술핵이나 중거리미사일 배치 같은 선택의 쓰나미에 직면할 수 있다. 대만해협의 경보음에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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