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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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철희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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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8~2024-04-27
칼럼100%
  • 푸에블로호 배상 판결[횡설수설/이철희]

    1968년 1월 23일 동해에서 북한에 나포된 미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평양 대동강변에 전시돼 있다.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1866년 조선군과의 충돌 끝에 불타 침몰한 그 장소다. 북한은 그 격침을 주도한 영웅이 바로 김일성의 증조부였다고 선전한다. 원산에 있던 큰 함정이 어떻게 옮겨졌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은밀하게 남·서해를 거쳐 해상으로 운송했거나 분해해서 육로로 수송했을 테지만 둘 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 이틀 뒤 발생한 푸에블로호 사건은 냉전시대 미국에 최악의 굴욕 사건이었다. 억류 승조원 83명(사망 유해 1구 포함) 석방을 위한 11개월의 밀고 당기는 비밀협상 끝에 미 육군 소장이 서명한 사과문은 이랬다. “영해에 침입해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 데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고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다시는….” 미국은 서명 전부터 ‘오로지 승조원 구출을 위해서였다’며 그 내용을 전면 부인하는 성명을 냈지만, 사과문은 북한의 선전 자료로 충분했다. ▷승조원들은 온갖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곳곳에 저항의 흔적을 남겼다. 단체사진에는 가운뎃손가락만 편 채 등장해 은근히 반항과 모욕의 뜻을 표시했고, 자백서에는 나이·군번을 허위로 적고 ‘김일성을 찬양한다’며 ‘pee on(오줌 누기)’처럼 들리는 ‘paean(찬가)’이란 단어를 썼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잠깐의 환영 이후 당국 조사와 의회 청문회, 그리고 고문 후유증이었다. 이들에게 전쟁포로 훈장이 수여된 것도 20여 년이 지난 1990년이었다. ▷푸에블로호는 미 해군 함정 리스트에 남아 있는 현역함이다. ‘아무도 적진에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미군 원칙에 따라 언젠가는 되찾아 공식 퇴역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때문인지 푸에블로호는 북-미 관계의 부침에 따라 외교적 거래 또는 반환 촉구의 대상으로 떠오르곤 했다. 2000년대 초 북한의 반환 제의를 놓고 논의가 오갔지만 2차 북핵 위기로 무산됐고, 미 의회에선 때마다 반환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연방법원이 최근 북한에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 유족 등 171명에게 23억 달러(약 2조5800억 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역대 미 법원이 명령한 북한 배상액 중 가장 큰 액수다. 이미 5억 달러 배상 판결을 받아낸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처럼 앞으로 미국과 해외의 북한 자산을 압류해 배상액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가뜩이나 돌파구가 안 보이는 북-미 간 장기 교착 상태에는 악재가 또 하나 늘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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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색조’ WTO 수장[횡설수설/이철희]

    아프리카 공주, 트러블메이커, 불굴의 전사…. 15일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최초의 여성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으로 추대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67)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그런 요란한 수식어답게 그는 국제무대에서 한마디로 평하기 어려운, 팔색조처럼 복잡 미묘한 인물로 통한다. 지난해 WTO 선거전 도중 그의 미국 시민권 획득 사실이 밝혀져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고 일부 국가의 표심마저 헷갈리게 만든 게 대표적인 사례다. ▷“나이지리아는 1960년대 말 비아프라 내전으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삶이 나아졌을 때 내가 가진 것을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생각을 갖게 됐죠.” 2010년 세계은행 집행이사였던 오콘조이웨알라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개발경제 전문가가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나이지리아의 작은 마을 통치자인 오비(왕)의 딸로 태어난 그는 독립과 내전의 혼란 속에서 하루 한 끼도 먹기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미국 유학은 화려한 이력의 시작이었다. 하버드대 우등 졸업, 매사추세츠공대(MIT) 석·박사를 거쳐 세계은행에서 20여 년간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넘버 2’ 자리인 집행이사까지 올랐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부름을 받아 두 차례에 걸쳐 재무장관을 지냈고 잠시 외교장관을 맡기도 했다. 당시 그는 부정부패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사 기질을 보여줬고, 그때 얻은 별명이 ‘오콘조-와할라’였다. 와할라는 현지어로 골칫거리(trouble)를 뜻한다. ▷그는 공교롭게도 한국인과 두 차례나 경쟁했다. 2012년 세계은행 총재 자리를 두고 한국계 미국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지만 고배를 마셨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과 최종 결선까지 간 이번 WTO 선거에선 지난해 10월 회원국 다수의 지지를 받아 일찌감치 총장 자리를 예약했지만 3개월 넘게 기다려야 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 반대하면서 컨센서스(전체 합의) 방식의 추대 절차가 멈춰 섰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의 친중(親中) 성향을 문제 삼았다고 하지만, 그가 민주당 측과 가깝다는 정치적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아프리카 소년병 이야기를 다룬 소설(‘Beasts of No Nation’) 저자인 그의 큰아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교통장관이 된 피트 부티지지의 하버드대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한국은 미국의 정권교체가 마무리될 때까지 침묵하다 이달 초 후보 사퇴를 발표했다. 미국에 불가분의 동맹 관계를 보여줬는지는 모르지만 그간 쏟아진 국제사회의 눈총이 한국 외교에 많은 의문표를 던졌음을 부인하긴 어렵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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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외교관 잇단 망명[횡설수설/이철희]

    북한 노동당 39호실은 김씨 일가의 통치자금, 이른바 ‘궁정경제’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1970년대부터 각종 알짜 기업과 광산, 농어업에서 벌어들인 외화 수입을 관리했고, 위조 달러와 마약 밀매까지 불법 외화벌이는 물론 사치품 조달에 손을 대면서 미국의 대북제재 리스트 상단에 올라 있다. 그 금고지기 역할은 오랫동안 김정일의 중고교 동기동창인 전일춘에게 맡겨졌다. 전일춘은 김정일 김정은 2대에 걸친 39호실장으로서 권력자의 최측근이었다. ▷그런 전일춘의 사위인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대리가 재작년 9월 망명해 한국에 살고 있다고 한다. 망명 시점은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대사대리가 한국으로 탈출하고 두 달 뒤다. 당시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래 유엔 대북제재에 따른 북한 노동자들의 12월 송환 시한을 앞둔 시기였다. 쿠웨이트 대사관은 파견 노동자 관리는 물론 무기 수출과도 관련된 중동의 거점공관이다. 국제사회와 북한당국 양쪽에서 오는 압박은 외화벌이를 책임진 고위 외교관의 탈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북한 외교관은 대부분 당 간부 자녀가 차지한다. 외교관 선발부터 친가 6촌, 외가 4촌, 처가 4촌까지 성분이 좋은 핵심 계층에 속해야 한다. 더욱이 해외에 나갈 땐 수많은 서면보증과 면접, 심사 등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친다. 그래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국민의힘 국회의원)도 장인이 숙청되면서 해외 발령을 포기했다가 1994년 강성산 총리의 사위 탈북 사건으로 간부 자녀들의 해외 파견이 전면 보류되는 바람에 ‘천운’을 얻었다고 한다. ▷북한 외교관의 잇단 탈북은 독재체제가 핵심부 언저리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몇 년 전까지도 20만 명이 넘던 해외 일꾼들이 대북제재로 대폭 줄어들면서 이제 해외엔 소수 외교관과 무역일꾼만 남아 있다. 외국 생활을 통해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절실하게 느낀 외교관들이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귀국 후 닥칠 현실은 상상하기조차 싫을 것이다. 류 전 대사대리도, 태 전 공사도 자식의 장래 문제를 탈북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김정은도 어려서 스위스에서 살았다지만 그건 경호원의 엄호 속에 한정된 경험만 하던, 잠시의 바깥바람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한때는 외국물 먹은 젊은 지도자에게 기대를 걸었던 이들마저 집권 10년 차가 되도록 나빠지기만 하는 현실에서 탈출을 결심하는 것이리라. 김정은도 외부인들에겐 “내 아이들까지 평생 핵을 짊어지고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이 말에 내부 엘리트층이 먼저 코웃음 치고 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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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김정은 ‘戀書’[횡설수설/이철희]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주고받은 편지는 2000여 통에 이른다. 고립주의를 고수하며 개입을 주저하던 루스벨트가 결국 영국에 대한 원조와 참전을 결정한 데는 처칠의 집요한 편지외교가 톡톡히 한몫했다. 처칠의 편지는 대부분 루스벨트를 구슬리고 애원하는 일방적 구애였지만 결정적 순간엔 “미국이 원조하지 않으면 영국은 독일에 항복하게 될 것”이라는 은근한 협박도 마다하지 않았다. ▷밥 우드워드의 신작 ‘격노(Rage)’ 출간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고받은 27통의 서신이 일부 공개됐다. 김정은의 편지는 손이 오그라드는 표현이 가득하다. “우리가 나눈 매 순간순간이 소중한 추억이다. 특별한 우정이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재차 만남을 요청했다. 트럼프도 화답했다. 둘의 사진이 실린 신문 1면을 동봉하고 이틀 뒤 회동 사진 22장을 또 보내며 “우리의 독특한 우정을 담았다”고 썼다. ▷김정은은 ‘밀당(밀고 당기기)’도 적절히 구사했다. 작년 판문점 회동 이후 한미 군사훈련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은 것에는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나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도 “이런 솔직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우정이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며 트럼프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았다. 우드워드는 이를 ‘실망한 애인의 어조’라고 묘사했다. ▷트럼프는 며칠 전 트위터에서 “존 볼턴(전 국가안보보좌관)은 내가 그걸 정말 연애편지로 여겼다고 한다는데, 그건 비꼬는 것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볼턴의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는 그 편지에 정말 반색했다. 편지를 보자마자 “김정은을 백악관으로 초청해야겠다”고 말해 측근들을 기겁하게 하는가 하면 “나에 대해 뭐라고 썼는지 들어봐라”며 자랑스레 읽기도 했다. 볼턴이 “쥐똥만 한 나라 독재자의 편지”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러니 참모들은 그 편지가 트럼프의 어디를 긁어줘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파블로프식 전문가의 솜씨라며 혀만 찰 수밖에 없었다. ▷김여정은 두 달 전 이례적인 담화를 냈다. 김정은의 허락을 받았다며 “미국 독립절 기념행사 DVD를 꼭 얻으려 한다”고 했다. 끊긴 정상 간 소통을 복원해 보자는 기대였을 것이고, 그 사이 은밀한 편지가 오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는 “나는 상대가 거칠고 비열할수록 잘 지낸다”며 독재자를 잘 다룬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과의 기이한 브로맨스는 틀어지면 엄청난 위험을 낳을 수 있다. 연애의 끝이 결별을 넘어 원수지간이 되듯.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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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의 태풍특보[횡설수설/이철희]

    북한에서 50년 가까이 방송원으로 일해 ‘노력영웅’ 칭호까지 받은 리춘희 아나운서. 재작년 5월 북-중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거듭 실수를 했다. “감사의 뜻을 표하시…하셨습니다.” 평소 엄숙한 모습과 달리 안경을 쓴 채 머리까지 숙이고 원고를 읽으면서 더듬거리는가 하면 같은 문장을 다시 읽기도 했다. 최고지도자의 동정을 속보로 전하면서 벌어진, 북한 최고의 ‘1호 방송원’으로선 유례없는 굴욕의 순간이었다. ▷조선중앙TV가 엊그제 밤새 태풍 마이삭이 지나는 길목 곳곳에 방송원들을 파견해 현장 영상을 실시간에 가깝게 보여주는 재난방송을 했다. 생방송이란 거의 없는 북한에선 이례적인 보도였다. 방송원이 비바람에 몸이 흔들리며 생생한 상황을 전하는 모습을 30분가량의 시차를 두고 내보냈다. 북한은 지난주 태풍 바비가 북상할 때도 새벽까지 특보를 내보냈다. 지난해 태풍 링링 때는 정규방송 시간에 특별 편성을 하는 것이었지만 올해는 심야까지 방송시간을 연장해 사실상 24시간 특보체제를 가동한 것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 특히 여동생 김여정이 당 선전선동부 실세로 부상한 2014년부터 북한 방송에도 변화의 바람이 두드러졌다. 나이 지긋한 아나운서가 이른바 혁명적 억양과 발성으로 보도문을 읽던 과거와 달리 아나운서의 나이는 젊어졌고 말투도 나긋나긋해졌다. 현장감도 가미하고 입담까지 선보인다. 자막과 그래픽도 한결 세련되게 바뀌었다. 그 내용에서도 당 주력사업의 부진을 비판하는가 하면, 평양시민용 대내방송에선 길거리 젊은이들의 옷차림을 단속하는 장면을 담은 ‘현장고발’도 나온다고 한다. ▷북한의 재난특보는 어린 시절 외국 문물을 경험한 스위스 유학파 남매가 만들어낸 작은 변화일 것이다. 보다 친근하고 신속한 보도로 주민의 안위를 염려하는 ‘애민(愛民)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하지만 세상과 문을 닫은 채 자폐적 독재체제를 이어가는 북한으로선 첨단기술로 전 세계를 실시간 연결하는 방송의 진화 속도를 수십 년 뒤처진 채로 겨우 흉내 내는 수준일 뿐이다. ▷생방송, 특히 생중계는 장비 등 기술적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예측불허의 현장 상황 탓에 늘 사고와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사전 녹화하고 검열과 재검토를 거쳐 편집해 내보내는 북한 방송체제에서 생방송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당과 수령을 대변하는 선전선동 수단으로서 북한 방송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도 딱 거기까지다. 아버지 김정일도 최은희 신상옥 부부까지 납치하며 영화의 혁신을 이뤄냈다지만 그때뿐이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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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中 스파이 전쟁 [횡설수설/이철희]

    1945년 7월 포츠담 정상회담의 막바지.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다가가 넌지시 “비범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원자폭탄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인데, 스탈린은 무심한 듯 대꾸했다. “기쁜 소식이군요. 잘 사용하기 바랍니다.” 질문도 없었다. 둘의 대화를 지켜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스탈린이 깨닫지 못한 게 틀림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스탈린은 미국이 언제 그 사실을 털어놓을지 기다리고 있었다. ▷트루먼이 두 달 전 프랭클린 루스벨트 사망 때까지 부통령으로 있으면서도 까맣게 몰랐던 극비 프로젝트를 스탈린은 이미 오래전부터 훤히 알고 있었다. 미국 곳곳에 심어놓은 스파이망 덕분이었다. 그리고 4년 뒤 소련은 보란 듯이 핵실험에 성공해 미국의 절대무기 독점을 무너뜨렸다. 아무리 극비에 부친 최첨단 기술이라도 영원한 독점은 불가능하다. 결국엔 시간의 문제이고, 그 격차를 지키거나 좁히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자체 개발하거나 사는 게 아니라면, 특히 판매는커녕 접근조차 거부당한다면 추격자가 선택하는 방법은 해커나 스파이를 이용한 도용과 절취일 것이다. ▷전방위로 격화되던 미중 경쟁은 이제 극한적 외교 충돌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휴스턴 주재 중국총영사관 폐쇄를 전격 통보했고, 중국도 맞대응 조치를 경고했다. 미국은 휴스턴 총영사관을 ‘연구 도둑질의 진원지’ ‘거대한 스파이 소굴’이라고 지목했다. 일찍이 “그 나라 유학생은 다 스파이”라고 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1억 명에 달하는 중국 공산당원의 입국 금지까지 검토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다분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반중(反中) 정서를 자극하려는 정치적 동기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지만, 중국의 거침없는 대외 공작활동이 그 빌미가 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손자병법’은 용간(用間), 즉 간첩·밀정의 활용을 승리의 요체라며 거기에 돈을 아끼지 말라고 했다. 포섭과 매수, 역이용, 심리전, 침투라는 5대 첩보활동 유형도 제시했다. 중국의 대외전략이 첩보활동을 넘어 회유와 협박, 여론조작을 통해 비밀스럽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이른바 ‘샤프(날카로운) 파워’에 비유되는 것도 2500년 된 손자병법식 대응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기술전쟁의 시대에 외교와 첩보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지만, 부국강병을 넘어 세계 패권을 노리는 중국엔 그 경계가 아예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중국인들도 새삼 되돌아볼 때가 됐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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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년前 판문점의 김정은[횡설수설/이철희]

    비굴한 유화정책의 상징인 뮌헨회담에 견줘 ‘제2의 뮌헨’이라 불리는 얄타회담. 동서 냉전의 모든 문제는 얄타에서 싹 텄다는 게 역사가들의 평가였다. 하지만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건강이 괜찮았더라면, 그리고 두 달 뒤 세상을 뜨지 않았더라면 얄타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렇듯 자유세계 지도자의 건강도 역사에 수많은 의문표를 남길진대, 독재체제 지도자의 건강은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곤 했다. ▷딱 2년 전 오늘, 김정은이 판문점 북측 판문각을 나와 군사분계선을 거쳐 남측 평화의집까지 걸은 거리는 불과 200m 남짓이었다. 그만큼 걷고도 김정은의 얼굴은 의장대 사열을 하는 동안 벌겋게 변해 있었고, 방명록에 서명할 때는 숨이 가쁜 듯 어깨까지 들썩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보다리 독대를 마치고 돌아올 땐 땀이 흥건할 정도였다. 그의 거친 숨소리를 가까이서 들은 우리 당국자들이 “김정은 상태가 큰일이네…”라고 탄식한 것도 벌써 그때였다. ▷그해 9월 평양 정상회담 땐 김정은 건강이 막간 화제로 등장했다. 백두산 케이블카 안에서 김정은은 숨을 고르며 문 대통령에게 “하나도 숨차 안 하신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뭐 아직 이 정도는…”이라고 했다. 이에 부인 리설주는 “정말 얄미우시네요”라고 웃으며 박수를 치기까지 했다. 거기엔 김정은의 무절제에 대한 은근한 타박이 담겨 있었다. 앞서 리설주는 남측 특사단과 만나서는 김정은이 금연을 권해도 듣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지 보름이다. 중태설부터 식물인간설, 사망설까지 온갖 소문이 난무하지만 북한에선 감감무소식이다. 그간 수없이 핵·미사일 도발을 했지만 이만큼 관심을 끌었을까 싶다. 김정은이 멀쩡하다면 이 상황을 한껏 즐기고 있을지 모른다. 정작 김정은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것은 오히려 주변국 몫이 됐다. 우리 정부는 “특이 동향이 없다”고 되풀이하고, 미국 대통령은 “보도가 부정확하고 옛 문서를 (근거로) 썼다더라”며 가짜뉴스로 치부하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 ▷재작년 판문점선언은 북-미 싱가포르선언, 남북 평양공동선언으로 이어졌지만 작년 2월 북-미 하노이 협상 결렬로 모든 것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남북 간엔 7·4공동선언부터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등 수많은 합의가 있었지만 주역이 바뀌어 대화가 다시 시작되면 늘 참고자료일 뿐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게 된 게 현실이었다. 판문점선언은 지금 한쪽 서명자의 행방조차 묘연한 상황에서 2주년을 맞았다. 그 수명은 얼마나 될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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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한 엑소더스[횡설수설/이철희]

    8일 0시를 기해 인구 1100만의 중국 도시 우한에 대한 봉쇄가 해제됐다. 코로나19의 진원지로 봉쇄령이 내려진 지 76일 만이다. 우한 도심엔 ‘해방’을 자축하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밝혀졌고,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줄지어 기다리던 차량들이 속속 빠져나갔다. 기차역과 공항 대합실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우한에서 일하거나 일시 방문했다가 발이 묶인 외지인만 수백만 명이었다. 이날 하루 우한을 벗어난 사람이 최소 1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전격적 봉쇄 조치가 단행된 1월 23일 이래 우한은 유령도시가 됐다. 대중교통이 끊기고 가게나 업체도 일제히 문 닫으면서 거리는 텅 비었다. 주민들은 집과 거주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조치를 어긴 사람들은 구타당하고 끌려가 구금됐다. 사회주의 통제 국가가 아니고선 불가능했을 가혹한 조치였지만 효과는 뚜렷했다. 매일 수천 명에 달하던 확진자는 감소하기 시작했고 공식적인 신규 감염자 0명이 되면서 역병을 물리친 ‘영웅도시’가 됐다. ▷하지만 감옥 생활에서 벗어난 기쁨을 만끽할 시간은 길지 않을 듯하다. 조만간 오열과 통곡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우한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만여 명, 사망자는 2500여 명으로 중국 전체 희생자의 77%에 달한다. 그간 당국은 모든 장례식을 금지하고 묘지도 폐쇄했다. 코로나19든 다른 질병이든 사망하면 즉시 화장해 유골도 가족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지난달 말에야 유골을 찾아가도록 했지만 장례의식을 치르는 것은 아직 금지돼 있다. 이제 장례식이 허용되면 살아남은 자들은 그간 억눌렀던 큰 슬픔을 토해낼 것이다. ▷우한은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지이자 퇴치 실험실이었다. 이제 봉인됐던 실험실이 열리면서 우한 엑소더스(대탈출)는 코로나19의 2차 발흥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885명 중 68%인 601명이 무증상자였고, 그중 절반 가까운 279명이 우한이 중심인 후베이성에서 나왔다. 공식 데이터에는 포함되지 않는 이들 무증상자는 비록 전염력은 약하지만 ‘침묵의 운반자’가 되어 언제든 다시 외부 세계에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다. ▷우한 봉쇄는 어느덧 서방의 도시들마저 따라 하는 방역의 모델이 됐다. 하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변종 바이러스의 진원지라는 오명은 ‘우한 폐렴’이란 닉네임과 함께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인간의 치명적 바이러스 감염은 대개 불결한 야생동물 사냥과 도살, 생식에서 비롯됐듯 이번 코로나19 발원도 중국인의 기괴한 식문화가 유력한 용의자였다. 우한은 무엇보다 원시적 야만의 불명예 딱지부터 벗어야 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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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린 조’의 부활[횡설수설/이철희]

    “김정은은 그를 ‘지능 낮은 멍청이’라 불렀는데, 난 그걸 훨씬 순화해서 ‘지능 낮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게 화낼 일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작년 5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두고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바이든이 김정은을 ‘폭군’으로 칭한 뒤 북한 매체로부터 “품격 없는 속물이 푼수 없이 날뛴다”는 공격을 받자 고소하다는 듯 끼어든 것이다. 진작 바이든에게 ‘졸린 조(Sleepy Joe)’란 딱지를 붙인 트럼프에겐 ‘북한 대 바이든’ 공방도 그저 정치적 호재일 뿐이다. ▷민주당 경선 초반 치욕스러운 패배로 몰락하는 듯했던 바이든이 3일 슈퍼 화요일 경선의 14개 주 가운데 10곳에서 승리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제치고 가장 많은 대의원 수를 확보했다. 피트 부티지지 같은 젊은 온건파 후보가 하차하면서 바이든을 지지한 데 따른 ‘중도 결집’ 효과였다.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도 경선을 포기하며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고, 미국 증시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흔들렸던 대세론도 다시 살아나는 모양새다. ▷바이든은 7선 상원의원에 부통령을 지낸 ‘평생 정치인’이다. 트럼프보다 4세나 많은 78세의 고령인 데다 별다른 카리스마도, 79세 샌더스의 정책적 참신성도 보이지 않는 그에겐 ‘졸린 조’란 닉네임은 치명적이다. 그의 올드한 이미지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말실수로, 주책없는 노인네 행실로 더욱 굳어졌다. 특히 과도한 신체 접촉을 둘러싼 논란으로 ‘섬뜩한 조(Creepy Joe)’란 악명까지 얻었고, 자신은 ‘촉각의 정치인(tactile politician)’ 즉 다정다감한 사람일 뿐이라는 군색한 해명을 내놨다. ▷그런 변명이 다소나마 통한 것은 그의 지극한 가족 사랑 덕분일 것이다. 그는 갓 서른이던 1972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직후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의원직까지 포기하려 했다. 분노와 절망감에 빠져 일부러 싸움질을 찾아 밤거리를 배회하곤 했다고 한다. 결국 두 아들을 집에서 보살피기 위해 매일 지역구에서 워싱턴까지 편도 90분이 걸리는 열차 통근을 의원 재직 내내 이어왔다. ▷바이든은 일단 ‘민주적 사회주의’를 내건 당내 급진파 샌더스를 넘어야 한다. 그 승부는 결국 트럼프를 꺾을 본선 경쟁력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 트럼프는 어제 블룸버그를 ‘꼬맹이 마이크(Mini Mike)’라고 놀리며 그의 바이든 지지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했고, 샌더스의 급진파 경쟁자인 엘리자베스 워런을 ‘역대 최고의 방해 입후보자’라 칭하며 은근히 사퇴를 부추겼다. 샌더스보다는 바이든이 부담스럽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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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호크[횡설수설/이철희]

    항공의 역사는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됐고, 기술혁명이 대개 그랬듯 첫 사용자는 군(軍)이기 십상이다. 18세기 말 나폴레옹도 항공의 시작인 유인풍선, 즉 기구(氣球)가 나오자마자 군사적 활용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비행선, 비행기로 발전하면서 항공기는 처음엔 정찰용으로 이후 폭격용으로 이용됐다. 현대전에서, 특히 핵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전력이 24시간 전천후 감시와 실시간 경보를 가능케 하는 조기경보·감시능력이지만, 한국군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한국군의 감시능력은 휴전선 중심의 단거리 전술정찰 수준.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는 만큼 그 능력을 높일 수단이 바로 고고도 전략정찰기다. ▷미국 전략정찰기 U-2는 냉전시기를 상징하는 항공기다. 냉전 초 공군이 아닌 중앙정보국(CIA)이 개발해 냉전 종식과 함께 생산이 종료됐고,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대표적 장수기종이다. 1960년 미소 정상회담을 취소시킨 U-2 격추 사건과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활약상은 냉전사에 굵직하게 기록됐다. 최근 북한의 도발 징후에도 U-2는 최신 정찰기들과 함께 한반도 상공에 나타났다. U-2는 가늘고 긴 경량의 동체에다 극단적으로 긴 날개를 단 탓에 특히 이착륙이 매우 어렵다. 조종사는 우주복 같은 특수복을 입은 채 비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비행해야 하는 극한직업이다. ▷노후한 U-2를 대체하기 위해 무인기(UAV)로 개발된 것이 고고도 무인정찰기 RQ-4 글로벌호크다. 20km 상공에서 레이더와 전자탐지장비로 지상 30cm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다. 작전반경은 3000km로 30시간 이상 운용이 가능해 인공위성에 버금가는 역할을 한다. 특정 표적과 이동 표적에 대한 정밀 감시가 가능해 북한의 주요 기지와 전력 이동을 추적하는 데 필수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도입을 추진했으나 미국의 판매 거절로, 이후엔 레이더장비의 성능 미달로 지연되는 등 10여 년의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들어오게 됐다. ▷군은 글로벌호크 도입과 관련한 행사는 물론 인도 날짜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 스텔스 전투기 F-35A 전력화 행사도 비공개로 열었다. 그러니 당장 “아무리 민감한 시기라지만 북한 눈치를 너무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두 무기체계 모두 고도의 보안성을 요구하는 국가급 전략무기인 만큼 요란한 홍보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군의 설명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잇단 도발 협박에 가뜩이나 국민적 안보 불안이 큰 터에 그런 우려를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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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狂人전략[횡설수설/이철희]

    “세상을 경험할수록, 더 많이 깨달을수록, 나는 그 노인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새삼 인정하게 됐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서 ‘그 노인’은 1953년 6·25 정전협정에 반대하며 반공포로 석방 같은 예측불허의 행동으로 미국이 넌더리 내게 만들었던 이승만 대통령을 가리킨다. 닉슨은 부통령 시절에 만난 이승만이 자신에게 해준 조언들을 가슴 깊이 새겨뒀다. ▷이후 대통령이 된 닉슨은 이런 불확실성 조장 전략을 소련과 북베트남을 상대로 십분 활용했다. 특히 1973년 하노이 폭격 이후 포로들이 석방되자 일기에 이렇게 썼다. “북베트남인들은 정말로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반드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닉슨의 과제는 최대한 체면을 살리며 베트남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즉, 휴전 협상을 하면서도 북폭을 확대해 굴욕적 철군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고육책이었다. ▷닉슨의 전략은 북한의 잇단 도발로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돌던 재작년 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북 대응책으로 부활했다.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최근 발간한 회고록에서 트럼프가 초강력 대북제재 결의를 위해 유엔 회원국들을 이렇게 압박하라고 했다고 썼다. “그들에게 (군사공격을 포함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전하라. 그들이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게 하라.” 또 북한 김정은에 대해선 “미치광이를 다루는 위험에 대해서라면 문제는 그쪽이지 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치광이 전략은 세상사에 흔한 책략이지만 국가 경영 전략 차원에서 주목한 것은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그는 “때론 미친 척하는 것은 매우 현명한 일이다”고 썼다. 마키아벨리가 흠모한 이탈리아 전제군주 체사레 보르자의 자질은 대담함, 자신감과 함께 뛰어난 속임수에 있었다. 이상적 군주는 초인적 의지력과 교활함, 무자비함을 겸비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래서 누구보다 ‘선의의 무능력자’를 경멸했던 마키아벨리다운 현실정치론이 아닐 수 없다. ▷닉슨과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 배경에는 미국의 고립주의적 퇴각이라는 흐름이 있다. 베트남 수렁에서 빠져나가며 지역 안보는 각국이 해결하라는 ‘닉슨 독트린’이나 더는 세계의 경찰이길 거부하며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결국 초강대국도 이젠 힘에 부친다고 실토하기를 주저하는 역설적 으름장이다. 여기엔 두 사람의 독특한 성향도 한몫했다. 홀로 있기를 좋아했고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닉슨이고, 변덕과 기행으로 진짜 미친 건지 그런 척하는 건지 헷갈리게 하는 트럼프이니.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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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평일 귀국[횡설수설/이철희]

    키 180cm가량의 당당한 체격에 아버지와 꼭 닮은 용모, 그래서 아버지는 늘 ‘장군감’이라며 자랑했다. 그러니 주변에선 그가 둘째 부인의 아들임에도 아버지를 이을 후계자가 될 것이라 했고, 친모도 그를 위해 적장자와의 권력투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한번 권력에서 밀려나면 끝도 없는 추락뿐…. 김정일의 이복동생이자 김정은의 삼촌인 김평일 체코 주재 북한대사(65)가 겪은 삶이다. 그는 1981년 유고슬라비아 대사관 무관보로 사실상 추방된 이래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폴란드 등 해외를 전전하고 있다. ▷김평일은 어려서부터 주변의 기대를 받았다. 당 고위 간부 자제들이 다니는 남산중 재학 시절 각종 스포츠에도 만능이어서 인기가 많았고, 온화한 성격에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었다고 탈북 관료들은 전한다. 김일성종합대를 다니다 인민군 상좌로 입대했고 엘리트 군인 코스인 김일성군사종합대에 진학했다. 자연스레 그를 아끼는 간부들이 생겼고, 김일성도 평소 “당은 정일이에게, 군은 평일이에게 맡길까 한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이복동생이 김정일에겐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이미 후계자로 등극하고도 열세 살 아래 동생에 대한 질투심과 열등감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리라. 특히 일부 군 원로마저 김평일을 싸고도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김평일 친구들이 술김에 “김평일 만세”를 부른 사건을 계기로 김정일은 ‘곁가지 청소’에 들어갔다. 김평일의 동기생 등 주변 인물들은 모조리 수용소로 끌려갔고, 우연히 김평일을 만나거나 함께 사진 찍은 사람까지 처벌당했다. ▷김평일의 해외 생활은 사실상 유배(流配), 그것도 중죄인을 울타리 안에 가두는 위리안치(圍籬安置) 못지않은 격리조치였다. 대사관 직원들마저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직원들로서도 대사와 얼굴만 마주쳐도 공연한 오해를 살 수 있고 그 어떤 사소한 접촉도 일일이 보고해야 해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외교 행사로 파티라도 열리면 아무도 김평일 근처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아 그 주위에는 늘 1m의 공백이 생겼다고 한다. ▷평생 ‘불귀의 객’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던 김평일이 조만간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국가정보원이 4일 밝혔다. 그의 귀국이 귀양살이 해제는 아닐 것이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재작년 암살당한 뒤 다음 표적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던 김평일이다. 차라리 곁에 두고 감시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정통성 강화를 위한 화합의 리더십 선전용일 수도 있다. 김평일은 귀국해서도 ‘투명인간’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 김정은 뒤편에 병풍 같은 소품으로 깜짝 등장할지도 모르지만.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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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뉴스’ 정치광고[횡설수설/이철희]

    거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4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 꼬박 이틀이나 불려나왔다. 늘 입던 회색 티셔츠 대신 양복에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다. 페이스북이 대선 때 러시아발(發) 가짜뉴스와 댓글부대의 놀이터가 되고, 페이스북 사용자 정보가 고스란히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진영에 넘어가 선거운동에 이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저커버그는 하루아침에 ‘공공의 적’이 됐다. 의회도 그 문제를 집중 추궁하겠다고 잔뜩 벼르며 그를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시킨 것이다. ▷하지만 정작 쩔쩔맨 것은 의원들이었다. 한 칼럼니스트는 청문회장의 저커버그를 ‘조부모 댁을 방문해 열심히 와이파이 켜는 법을 가르쳐주는 예의바른 10대 소년’이었다고 묘사했다. 평소 시답잖은 질문이다 싶으면 차갑게 무시하며 적대감까지 드러내던 저커버그였지만 컨설턴트와 변호사, 이미지 전문가로 구성된 최고의 준비팀과 몇 주에 걸친 철저한 예행연습 끝에 곰살궂은 젊은이로 변신한 것이다. 더욱이 워드프로세서도 제대로 못 다루는 의원들이 “내 아이들이 인스타그램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같은 한심한 얘기를 쏟아내는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면서 저커버그는 일단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긴급뉴스: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이 방금 트럼프의 재선을 지지했다.’ 지난주부터 페이스북에는 이런 내용의 광고가 널리 퍼지고 있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선거운동본부가 내보낸 광고다. 이 광고는 “아마 여러분은 충격을 받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다(미안)”라며 페이스북의 콘텐츠 감시대책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가짜뉴스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저커버그가 트럼프에게 페이스북에서 거짓말을 할 자유로운 권한을 줬다”고 강력 비판했다. 가짜뉴스를 앞세운 고의적 허위 광고로 저커버그에게 ‘한 방’ 먹인 것이다. ▷페이스북은 최근 정치인들의 포스트는 설령 회사의 콘텐츠 규정을 위반했더라도 팩트체크를 하거나 삭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의 발언엔 간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런 측은 이런 방침이 결국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꽃길을 깔아준 것 아니냐고 힐난한다. 사실 이런 논쟁도 진짜 무서운 가짜뉴스, 즉 매우 교묘해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조차 어려운 날조뉴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문제로 들어가면 그저 장난 같은 고민일 수 있다. 정당한 정치 발언과 고의적 속임수를 구별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총선을 6개월 앞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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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와 쿠르드족[횡설수설/이철희]

    쿠르드족은 한 번도 독립 국가를 이뤄본 적이 없는 세계 최대의 소수 민족이다. 많게는 45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족은 터키 남동부,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 이란 북서부에 걸친 서아시아 산악지대에 흩어져 산다. 중세 십자군전쟁 때 사자왕 리처드와 겨룬 이슬람의 명장 살라딘의 후예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고원지대에 부족별로 거주하다 보니 통합을 이룰 수 없었고 주변 국가의 끊임없는 견제와 박해로 비운의 역사를 살 수밖에 없었다. ▷쿠르드족도 딱 100년 전 독립의 꿈에 한껏 부풀었던 적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과 터키 정부가 체결한 세브르 조약은 쿠르드족의 독립 자치권을 약속했다. 하지만 3년 뒤 그 약속은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패전한 터키가 힘을 회복하고 승전국까지 태도를 바꾼 때문이었다. 특히 쿠르드 밀집지역인 모술과 키르쿠크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면서 영국은 더 많은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쿠르드족을 저버렸다. ▷이후 쿠르드족은 네댓 나라로 찢긴 채 각국 정부가 내부 불만을 달래려 동원한 외곽 때리기용 탄압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터키는 쿠르드족의 ‘터키화 정책’을 통해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하고 ‘산악 터키인’이라 부르며 박해를 가했다. 이라크는 일부 자치를 허용하며 쿠르드족 회유 정책을 폈지만 저항운동이 계속되자 화학무기로 대량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 이런 탄압 속에 쿠르드족은 게릴라전쟁으로 맞서며 ‘쿠르디스탄’ 건설을 꿈꾸고 있다.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2014년 이슬람국가(IS)가 등장하면서 미국의 든든한 동맹군 역할을 했다. IS 토벌작전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도 미군 특수부대와 함께 소탕전을 벌였고, 미국은 쿠르드족을 “IS와 맞서 싸우는 최상의 파트너”라고 격찬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말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시작하면서 쿠르드족은 토사구팽(토死狗烹)되는 처지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엔 터키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폭격을 준비하자 이 지역 미군의 이동을 지시했다. 터키의 공격을 사실상 묵인해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르드족에게 엄청난 돈과 장비가 들어갔다. 우리는 우리 이익이 되는 곳에서 싸울 것이다”라고 했다.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는 트럼프식 셈법에 동맹의 신의는 없다. 영국 총리 파머스턴 경도 1848년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영원한 국익만 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은 그대로다. 국익 앞에서 거추장스러운 동맹은 헌신짝처럼 버려질 뿐이다. 쿠르드족의 비애가 그저 남의 일일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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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의 앵그리 영맨[횡설수설/이철희]

    홍콩의 반(反)중국 시위에 10대 청소년 2명이 잇달아 총상을 입으면서 다섯 달째로 접어든 홍콩 사태는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4일 밤 14세 소년이 경찰이 쏜 총에 다리를 맞아 병원으로 이송됐고, 앞서 1일엔 18세 고교 2학년생이 실탄에 가슴을 맞았다. 중고교생들은 집단 동맹휴업에 나서 격렬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계엄령이나 다름없는 당국의 복면금지법 시행까지 맞물리면서 10대 젊은이들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홍콩 시위는 10, 20대 ‘앵그리 영맨’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20대 초중반인 조슈아 웡 등 데모시스토당 지도부도 10대 때 ‘우산혁명’의 주역이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태어난 이들을 좌절케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사라지고 홍콩의 자유가 말살될 것이라는 공포가 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이들은 당국과 경찰, 기성세대를 모두 불신하면서 이른바 선봉대 역할을 맡아 방독면과 두건으로 무장하고 경찰과 맞서고 있다. ▷홍콩 당국의 강경 대응도 기름을 부었다. 당국이 4일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전면 금지하는 복면금지법 시행을 발표한 뒤 시위는 급격히 과격성을 띠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10대 소년의 총탄 피격을 갚아야 할 ‘피의 빚’이라고 규정하고 그 배후 책임자로 중국을 지목하며 중국계 은행과 점포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하철인 MTR에 불을 질러 MTR 운행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던 본토 출신 중국인이 폭행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홍콩 시위는 ‘중국인 대 홍콩인’의 대결로 나타나고 있다. ▷홍콩은 이제 평화를 잃었다. 눈앞의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특질은 10대 청소년이 잇달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 데 대한 분노와 결합해 제어하기 어려운 질풍노도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과격 시위는 당국의 유혈 진압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홍콩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걱정도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쇼핑의 중심지로 불리던 홍콩은 점차 ‘유령도시’가 되고 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고 은행과 쇼핑몰도 문을 닫았다. 본토에서 대기 중인 무장 군경의 진입도 우려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일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어떤 힘도 중화민족을 막지 못한다”고 했다. 홍콩은 ‘자유주의 대 민족주의’의 전쟁터로 변할 수 있다. 자유주의의 대의가 민족주의 광풍에 굴복했던 역사가 되풀이될까 걱정이다. 과거 한국인에겐 선망하는 여행지였고 그래서 ‘홍콩 간다’는 시쳇말로 남아 있는 그곳의 자유가 위기에 처해 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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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진호 전투[횡설수설/이철희]

    영화 ‘국제시장’에서 피란민들이 흥남 부두에 정박한 미국 군함에 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각인된 흥남 철수 작전은 아비규환의 필사적 탈출이다. T R 페렌바크는 책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에서 흥남 철수에 대해 “덩케르크(됭케르크) 철수와는 달랐다. 서둘러 배에 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은 없었다”고 썼다. 군 작전 차원에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기습 공세로 전멸 위기에 처했던 연합군이 가까스로 빠져나온 됭케르크처럼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미 군함에 타지 못하면 공산치하를 탈출할 길이 없었던 피란민들의 절박성은 다른 문제였지만. ▷유엔군과 민간인 20만 명의 흥남 철수를 가능하게 한 것은 미 10군단 예하 제1해병사단의 장진호 전투였다. 1950년 말 개마고원에는 어느 때보다 지독한 추위가 찾아왔다. 옷을 여러 겹 입어도 살을 에는 추위를 막을 수 없던 장병들의 손과 발은 동상으로 하얗게 변했다. 수통의 물도, 캔 속의 전투식량도 얼어버렸다. 수류탄은 불발되기 일쑤였고, 차량은 시동 걸기가 어려웠다. 그런 혹한 속에서 미 해병들은 음산한 나팔 소리와 함께 밀물처럼 밀려오는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격렬하게 싸우며 퇴로를 열었다. 남쪽으로 물러서면서도 공격전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 후퇴는 ‘남쪽으로의 공격’이라고 불렸다. ▷장진호 전투는 미국인들에겐 ‘잊혀진 전쟁’이 된 6·25의 기억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워싱턴 한국전쟁기념공원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진 기념비와 함께 서 있는 조형물도 장진호의 해병 장병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장진호 전투의 유엔군 측 사상자는 약 1만7000명에 달했다. 장진호 전투는 ‘초신 퓨(Chosin Few)’라고 불린다. 즉 장진(長津·일본어 발음으로 초신)에서 압도적 병력 열세에도 온갖 고난을 이겨내 마침내 ‘선택받은 소수(chosen few)’가 된 영웅들의 전투였다.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한 장진호 전투 참전 미군 6명이 어제 가족들과 함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장진호 전투 영웅 추모식’에 참석해 한미 동맹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어제는 미 해군과 해병대가 한국 대신 알래스카에서 합동 상륙 연습 등을 하는 극지원정역량연습(AECE)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작년부터 한반도에서 한미 연합 훈련이 유예되면서 다른 장소를 찾게 됐다고 한다. 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요즘, 장진호 전투는 새삼 혈맹(血盟)의 미래를 묻고 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9-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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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中-러 봉쇄전략 펴는 美… ‘한국은 어느 편에 설까’ 의구심[논설위원 현장 칼럼/이철희]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래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걸고 첫 조치로 태평양사령부의 명칭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바꿨다. 미 국방부가 올 6월에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는 미국이 직면한 4대 도전으로 △패권을 추구하는 도전자 중국 △되살아난 악성 방해자 러시아 △불량국가 북한 △테러, 불법무기, 해적 같은 초국가적 과제를 꼽았다. 특히 중국은 경제·군사적 굴기를 통해 패권을 추구하면서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렇듯 미국의 새 전략은 중국 러시아 북한을 핵심 위협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동맹인 한국은 이런 미국의 전략에 동의하고 함께 행동할 태세가 돼 있는가. 동맹의 전제는 공동의 위협에 있다. 과연 한국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 나아가 휴전선 너머 북한을 겨냥한 공세적 전략에 ‘같이 갑시다’라고 외칠 수 있는가. 당장 미국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미국에 도전하는 ‘파괴자’ 중국의 굴기 지난주 나흘에 걸쳐 인도태평양사령부와 그 예하 사령부들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하와이 주도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섬에는 진주만을 중심으로 인도태평양사령부와 태평양함대 및 공군, 육군, 해병대 등 4개 구성군사령부가 들어서 있다. 그 관할구역은 흔히 ‘할리우드부터 발리우드까지, 북극곰부터 남극펭귄까지’라고 표현되듯 전 지구의 51%에 달한다. 태평양함대에선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과 이지스급 구축함, 태평양해병대에선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에도 직접 올라 살펴볼 수 있었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슈퍼파워 미국을 지탱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실감하는 계기였다. 그런 물리적 파워야말로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국제질서를 만드는 지도국가로서 위상을 지키는 바탕일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자유주의 제국을 구가하던 미국이지만 최근 거대한 도전들에 직면했다. 특히 인도태평양에는 보유 병력 상위 10개국 중 7개국, 핵무장 8개국 중 5개국, 미사일 보유 상위 4개국 중 3개국이 있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미국은 중국이 단기적으론 지역 패권국, 궁극적으론 글로벌 우위 국가의 지위를 노리고 있다고 본다. 이번에 방문한 각 사령부 브리핑에서도 ‘중국 견제’가 핵심적 목표임을 감추지 않았다.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에선 중국과 충돌 일보 직전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미군 관계자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활동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중국의 반발에 대해선 “우리도 불만이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특히 공군 관계자는 중국을 ‘강압적으로 기존 질서를 깨는 파괴자’라고 규정했다. 남중국해에 인공 섬을 만들고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등 전쟁과 평화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은 경계의 대상이다. 최근 독도 영해 침범사건에서 보듯 중-러의 연합훈련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금가는 한미동맹, 높아가는 미국의 의구심 각 사령부가 매번 브리핑 때마다 사용하는 지도는 한결같이 하와이를 중심으로 두고 태평양 인도양 북극 남극을 포괄하는 지구의 절반이었다. 수없이 등장하는 지도에는 한반도를 바라보는 미국의 지정학적 시각이 엿보였다. 특히 하와이에서 동북아시아를 바라볼 때 한반도는 일본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 그리고 대만을 거쳐 필리핀을 잇는 미국의 방어 제1선 바깥에 있었다. 한반도는 그 방어선과 중국 대륙 사이에 내해(內海)처럼 보이는 곳에 끼어 있었고, 남과 북이 갈라져 다른 색깔로 칠해진 경계구역 또는 완충지대(버퍼존)로 보였다. 물론 북한의 위협에 맞선 한국 방어는 인도태평양사령부의 핵심 임무다. 북-미 간 협상에 의한 외교적 해결이 모색되고 있지만 미군은 언제든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준비태세를 확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전략, 특히 중국의 팽창에 맞선 봉쇄전략 측면에서 한국의 입장을 두고선 미심쩍어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제복 입은 군인들은 한미동맹의 가치만을 거듭 강조했지만 하와이의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위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장 대북정책과 관련해 한미 간 엇박자가 노출되고 있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따른, 나아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둘러싼 균열은 한미동맹의 지속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미 의회가 설립한 동서문화센터의 데니 로이 박사는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이 남한과의 대치를 포기하고 번영을 꾀할 것으로 가정하지만 과연 그럴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제임스 미니크 예비역 대령은 중국을 겨냥한 한미동맹에 대해선 한국의 입장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다면 그 이후 한미는 어떤 동맹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전작권 전환 이후 미군 대장이 한국군 대장의 지휘를 받는 상황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로이 박사는 “미군이 외국군 지휘 아래 있던 적은 없는 만큼 정서적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국이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유엔군사령관의 정전협정 관리 권한을 내세워 지휘권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한일 갈등이 증폭시킨 한미동맹 경고음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역시 뜨거운 감자였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역을 도구로 삼은 것은 문제라면서도 이것이 지소미아 종료라는 안보 문제로 확대된 데 대해 “한미일 3각 공조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랄한 비판은 삼갔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매우 실망스럽다”는 공식 논평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그럼에도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역할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크리스티 고벨라 하와이대 교수는 “보복의 악순환을 깨기 위해 미국이 중립적 시작점을 제공할 수는 있으나 한일 양국의 국내 정치와 얽혀 있어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한국이 한미일 3각 체제에서 벗어나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한국의 대통령특보가 한일 갈등과 관련해 미국 대신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는 마당에 미국은 한국이 중국 쪽에 기운다는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상협 하와이대 교수는 “미국인들은 미중 간 무역전쟁에 대해 한국으로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라고 말하면 무척 싫어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한미 간 인식차가 한국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정책 혼선 탓에 전문가들도 향후 미국의 대외전략에 대한 뚜렷한 전망을 내놓지 못했다. 앞으로 미중 전략 경쟁은 격화될 가능성이 높고, 북핵 해결은 그 어떤 전망도 섣부른 예측 불가의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 속에서 한미동맹의 성격과 역할은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66년 동맹이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런 초불확실성에 얼마나 대비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데이비슨 美 인도태평양사령관 “한미일, 장기적 위협에 함께 맞서야”▼ 필립 데이비슨 미군 인도태평양사령관(해군 대장·사진)은 북한의 핵 위협을 가장 먼저 꼽으면서도 중국을 ‘가장 큰 장기적 전략적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국제질서를 멋대로 왜곡하고 파괴하며 궁극적으로 대체하려고 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한다. 동맹을 비즈니스 차원에서 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맹의 깊이는 경제를 초월한다. 앞으로 협상자들이 어떻게 해내는지 보자.”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미국은 유엔군사령관으로서 권한을 행사하려는 듯한데…. “(로버트) 에이브럼스 장군이 3개의 모자(주한미군·한미연합사·유엔군사령관)를 쓰고 있지만 미국에선 흔한 일이다.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사는 한국군 사령관 아래 놓일 것이지만 에이브럼스 장군은 유엔군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으로서 중요한 권한을 보유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안보와 관련해 믿지 못하겠다고 해서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다. “한미일 3국은 장기 전략적 위협에 맞서 함께해야 한다. 한국 일본과 각각 양자적으로든 한미일 3자적으로든 정보 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도울 것이다.” 호놀룰루=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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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쫓기는 ‘자유조선’ 리더

    “김정남·김한솔 지도자설은 가장 치욕으로 간주된다.” 반북(反北)단체 ‘자유조선’은 채널A와 이메일로 이뤄진 국내 언론 첫 인터뷰에서 “김씨 일가의 혈통을 우리 조직의 일원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끔찍한 상상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북한의 정권 세습을 끊겠다는 조직에 김씨 왕조 3, 4대 종손의 수반 옹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조선은 2017년 2월 김정남 피살 직후 김한솔 가족을 긴급 피신시킨 것을 자신들의 활동 업적으로 내세웠다. ▷자유조선은 “우리는 평양을 포함해 세계 도처에 거점을 만든 국제적 조직이다. 이런 규모와 실력을 가졌기에 김한솔의 다급한 구원 요청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고 했다. 김한솔 피신 직후 인터넷에 공개된 영상의 원본도 함께 보내왔다. 당시엔 “***에게 매우 감사하다(We are very grateful to ***)”고 무음으로 처리됐지만, 원본에는 김한솔이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에이드리언과 그의 팀’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그대로 담겼다. ▷에이드리언은 올해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침입사건을 주도해 미국 수사당국에 공개 수배된 에이드리언 홍 창. 멕시코 국적의 한국계 미국 영주권자로 자유조선을 이끄는 핵심 인물이다. 자유조선은 이미 체포된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이 김한솔 구출에 참여한 사실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치 목적의 임시정부이기에 앞서 인도주의 단체”라며 탈북민 구출에 자신을 희생한 ‘인도적 실천·행동주의자’라고 했다. ▷예일대 출신의 수재로 알려진 홍 창은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단체 링크(LiNK)를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탈북자 구출에도 뛰어들었고 공안에 체포된 적도 있다고 한다. 김한솔 보호 이후 ‘천리마민방위’라는 이름을 내걸었지만 잠잠하던 그의 팀은 올해 들어 본격 행동에 들어갔다. 3·1절에 맞춰 ‘북조선 임시정부’를 자처한 이래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담장에 낙서를 하고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내던지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홍 창의 활동 궤적은 북한인권운동에서 북한민주화운동으로, 이후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직접적 행동, 나아가 망명정부 표방까지 반북 활동의 진화를 보여준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도 중국도 아닌 유럽 국가에서의 모험주의적 행위도 나왔으리라. 물론 그 뒤엔 미국 등 각국 정보기관과의 내밀한 커넥션도 없진 않았겠지만, 어느 나라든 외교적 마찰 사안에 나서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제 쫓기는 신세가 된 홍 창과 그 팀의 다음 행동이 궁금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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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문재인의 ‘멋진 新한반도’

    북한의 기습 도발로 빛이 바랬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언론 기고문은 무척이나 공들여 쓴 글이다. ‘평범함의 위대함’이란 제목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이뤄낸 위대한 성취의 궤적을 광주에서 촛불로, 3·1운동에서 남북평화로 우리 근현대사를 넘나들며 버무려냈다. 누락이나 생략, 그로 인한 거친 비약도 매끈한 문장과 감성적 접근, 적절한 경구로 잘 감췄다. 기고문을 관통하는 주제는 난세(亂世)에 태어난 영웅과 고통 받는 범인(凡人)들의 이분법으로 읽힌다. 화려한 영웅담에 감춰진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 달리 얘기하면 ‘지도자 대 대중’ ‘권력자 대 민중’ 프레임이다. 그래서 한반도 분단의 역사도 ‘평범한 이들의 눈물과 피’에 주목한다. “분단은 개인의 삶과 생각을 반목으로 길들였다. 분단은 기득권을 지키는 방법으로, 정치적 반대자를 매장하는 방법으로, 특권과 반칙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이용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 발표 직후에도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전쟁의 위협과 이념의 대결이 만들어온 특권과 부패, 반인권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를 온전히 국민의 나라로 복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드릴 수 있어 참으로 가슴 벅차다”고까지 했다. 평양에서, 김정은 옆에서 ‘우리 사회’를 겨냥한 발언도 이런 역사관에서 나온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남북 관계는 곧 국내 문제다. 올해 우리 사회의 ‘반(反)평화세력’을 겨냥해 두 차례 발언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아직도 적대와 분쟁의 시대가 계속되길 바라는 듯한 세력도 적지 않다.” “여전히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발목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의 초당적 협력, 국론의 통합을 주문한다. 기고문에서도 “이제 남북의 문제는 이념과 정치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회 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도 “보수 진보, 이런 낡은 프레임, 낡은 이분법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고 했다. 그 자리가 마련된 것도 기고문을 탈고한 직후였을 테니, 원로들의 ‘협치’ 주문에 “타협은 어렵다”고 밝힌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으리라. 분단과 냉전이 낳은 우리 사회의 비정상에 대한 인식은 문 대통령이 평생 살아오며 굳혀온 인식일 것이다. 쉽게 바뀔 리 없다. 그런 인식은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많은 것을 빠뜨린 채 단순화한 자기 신념이 옳을 수만은 없다. 한쪽에선 뚝심이라며 칭송하고 다른 쪽에선 쌍심지를 켤 발언을 공공연히 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특히나 남북 관계는 남과 북이 우선이지, 남과 남이 먼저일 수 없다. 그런데 북쪽에 짚을 건 짚고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변덕스러운 정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소신도 좋지만 북한이 무슨 망발을 해도 따끔하게 지적하지 못한다면, 그러면서 남남 관계를 우선 걱정한다면 우리 내부 갈등만 심화시킬 뿐이다. 더욱이 대통령의 인식이 완고함을 넘어 집착이 되면 문제는 심각하다. 당장 주변부터 주눅 들게 만든다. 새삼 소신이랄 것도 없는 원칙적 발언마저 혹시라도 북한을 자극할까 봐 서둘러 주워 담는 게 요즘 이 정부의 장관들이다. 공무원이든 군인이든, 나아가 여당 정치인까지 할 소리도 못하게 만드는 분위기라면 더 할 말이 없다. 문 대통령이 그리는 ‘신(新)한반도 체제’,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만들어갈 새 질서는 놀랍고 멋지다. 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실천의 과정이 보이지 않고 꿈과 의지만 넘치면 공허하다. 새삼 전직 대통령이 남긴 말이 떠오른다. 서생(書生)적 문제의식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상인(商人)적 현실감각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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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트럼프 체스판 위 한반도와 중동

    흔히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한다고 하면 음모론이라 치부하곤 하지만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와 스티븐 월트는 공저 ‘이스라엘 로비’를 통해 2003년 이라크전쟁도 이스라엘의 로비가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결론짓는다. “이스라엘과 친(親)이스라엘 그룹, 특히 신보수주의자(네오콘)가 이라크 침공 결정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증거는 많다. 로비의 영향이 없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광범위한 이스라엘 로비망은 한반도라고 예외가 아니다. 북한이 이란·시리아와 맺어온 ‘핵·미사일 커넥션’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 초 북한의 미사일 판매 중단을 조건으로 10억 달러 규모의 대북투자를 제안했고 협상은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미국이 개입하면서 중단됐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이란 핵개발 뒤편의 ‘북한 그림자’를 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스라엘 로비는 한층 거리낌 없고 노골적이다. 한술 더 뜨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다. 트럼프는 최근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면서 대놓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총선 선거전을 거들기도 했다. 머지않아 모습을 드러낼 트럼프의 신(新)중동평화구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내용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온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주적(主敵) 이란에는 가차 없는 강공 드라이브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해 제재를 강화해온 트럼프는 최근 이란의 원유 수출 길을 전면 봉쇄했다. 앞서 2주 전엔 이란의 최정예부대 혁명수비대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함으로써 이란 체제의 붕괴 의도까지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전임 행정부의 ‘정책 뒤집기’를 넘어 후임 행정부가 아예 되돌릴 수 없게 만들려는 ‘대못 박기’ 수준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물론 그 바탕엔 ‘셰일오일 혁명’ 덕분에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위상 변화가 있다. 거기에 판을 세게 흔들고 그 혼란 속에 이득을 챙기는 트럼프의 승부 본능이 더해지면서 화약고 중동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이처럼 중동 문제에 집중하면서 트럼프는 북한에는 “서두를 것 없다”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에겐 중동도, 한반도도 같은 게임판 위에 있다. 한쪽은 조이고 다른 쪽은 늦추며 쥐락펴락하다 보면 대선이 한창일 내년 중반쯤엔 어느 쪽이든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리라. 특히 이란은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만 해도 외교적 승리로 선전할 기세다. 정작 다급해진 것은 김정은이다. 내부적으로 협상라인을 교체하고 미국에도 카운터파트를 바꾸라는 억지소리를 하는가 하면, 지금 시점에 서두를 이유가 없는 러시아 방문 길에도 나섰다. 외곽에서 변죽을 울리며 미국의 변심을 노리겠다는 심산이겠지만 트럼프가 동요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마치 북한에 ‘한 시즌 휴장’ 팻말이라도 내건 듯한 분위기다. 문제는 김정은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그는 최근 시정연설에서 하노이 결렬에 대한 실망과 자책을 감추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슨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듭 다짐하듯 말했다. “방금 말했지만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재 해제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대목을 당장 김정은이 뭔가 방향 전환을 하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제재 해제 요구를 접는다면 그 대신 더 무리한 요구를 내세울 게 뻔하다. 하지만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자력갱생’이 주민들을 끝없는 고통으로 내모는 짓임을 그 역시 모를 리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과감한 결단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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