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이철희]尹 ‘북한 비핵화’와 바이든 ‘한반도 비핵화’

입력 2022-05-26 03:00업데이트 2022-05-26 11:36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신냉전 속 중-러 등 뒤에 올라탄 北의 폭주
강력 대응과 함께 유연한 접근도 필요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더할 나위 없이 죽이 잘 맞았다던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두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에선 묘한 불일치가 눈에 띄었다.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확장억제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간 ‘북한 비핵화’냐 ‘한반도 비핵화’냐를 놓고 벌어졌던 논란을 다시 소환하는 대목이다.

한미 정부가 초안과 수정안을 몇 차례 주고받은 끝에 나온 공동성명의 문구는 그동안 남북, 북-미, 한미 간 합의된 용어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였다. 하지만 새 정부 주요 인사들이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와 다름없다며 비난했던 게 ‘한반도 비핵화’다. 정부 여당이 야당 시절 견지해오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가역적 비핵화(CVID)’도, 인수위원회에서 다소 완화했다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CVD)’도 이번에 반영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굴종적 대북자세’를 비판하며 출범한 윤 대통령이 바이든과 달리 굳이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전임 정부의 정책적 흔적을 지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도 한미 간 조율 과정의 견해차를 부인하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워낙 준비시간이 촉박해 일단 기존 표현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미국도 우리 입장에 공감하는 만큼 앞으로 나올 문서에는 ‘북한 비핵화’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한미 공동성명에는 새 정부의 달라진 대북전략 기조를 반영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1년 전 문재인-바이든 공동성명에 담겼던 한반도 비핵화의 다른 한 축, 즉 평화 프로세스에 관한 내용도 모두 사라졌다. 남북 ‘판문점 선언’과 북-미 ‘싱가포르 성명’ 언급이 빠진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웠던 ‘외교적 모색을 위한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법’도 빠졌다. 오히려 이틀 뒤 일본에서 나온 미일 공동성명에 “두 정상은 ‘정교한 외교적 대북 접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표현으로 반영돼 있는 것과 대비된다.

사실 이번 바이든의 첫 아시아 순방은 온통 중국 견제에 맞춰졌다. 그러다 보니 북핵 이슈는 묻혀버린 모양새였다. 오직 관심은 북한이 바이든 순방이란 도발의 최대 찬스를 어떻게 노릴지에 쏠려 있었다. CNN은 바이든 출발 이틀 전에 향후 48∼96시간, 즉 방한 기간에 맞춰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도발이 일어날 진짜 가능성, 실제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바이든이 한국 일본에 머물던 5일 동안 잠잠하면서 그저 호들갑으로 끝나나 싶었는데, 결국 북한은 귀국길에 오른 바이든의 뒤통수를 향해 미사일 3발을 쏘아 올렸다. 이제 북한이 언제 뭘 쏴도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 됐지만, 이미 준비를 마쳤다는 7차 핵실험이나 일본열도를 넘어 태평양을 향하는 미사일 도발은 북한이란 ‘시한폭탄’을 다시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북한은 2017년 ‘화염과 분노’의 시절보다 더욱 대담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세계적인 신냉전 대결 기류를 틈타 중국 러시아의 등 뒤에 재빨리 올라탄 북한이다. 이런 북한의 폭주를 막을 수단은 많지 않다. 유엔의 대북제재 기능마저 마비된 터에 강력한 경고와 응징 능력 과시가 북한에 얼마나 먹힐까. 도발을 관리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도 외면해선 안 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