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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위기를 파고든 진중한 응모작이 많았다. 가상현실(VR)이나 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소재로 한 참신한 작품이 늘었다.” 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22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의 총평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2년 가까이 이어진 가운데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영향을 반영하듯 온라인 콘텐츠 관련 내용을 담은 작품도 적지 않았다. 올해 9개 모집 부문에 걸쳐 응모작은 총 6154편. 세부적으로는 중편소설 287편, 단편소설 546편, 시 4491편, 시조 440편, 희곡 57편, 동화 232편, 시나리오 53편, 문학평론 20편, 영화평론 28편이었다. 예심 심사위원은 △중편소설 백가흠 정용준 정한아 소설가 △단편소설 손홍규 김성중 김금희 소설가, 강동호 문학평론가 △시 서효인 박준 시인 △시나리오 정윤수 영화감독,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로 구성됐다. 중편소설 부문에서는 집, 자녀, 부모에 대한 걱정처럼 일상의 고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표현 방식에서도 은유적 문장보다는 일상에서 쓰이는 날것 그대로의 직설적 언어를 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정한아 소설가는 “가족 간 불화가 벌어지거나 친구 사이가 무너지는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며 “가상현실에 머무르는 등장인물을 통해 과연 진실한 인간관계를 찾을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작품도 있었다”고 했다. 단편소설 부문에서는 개인정보를 인터넷에 무차별 공개하는 이른바 ‘신상 털기’나 타인을 혐오하는 ‘낙인찍기’ 등 최근 논란이 된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늘었다. 학교, 군대,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다룬 작품도 많았다. 김성중 소설가는 “아기, 치매노인, 고양이 등을 잃은 뒤 찾으러 가는 이야기들이 눈에 띄었다”며 “대부분 상실한 것을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세태에 대한 은유처럼 읽힌다”고 설명했다. 시 부문에서는 공동체의 고통을 다룬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시인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보다 주거불안, 정치 양극화, 환경위기 등 우리 사회에 닥친 어려움을 고찰하는 작품이 늘어난 것.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내용을 담은 시들도 눈에 띄었다. 서효인 시인은 “코로나19라는 재앙을 맞아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내몰리게 됐는지를 고민하는 작품들이 늘었다”며 “우리에게 다가온 난해한 현실의 문제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응모작이 많았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부문에서는 여성 중심의 서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위기에 처한 여성들이 연대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있었다. 정윤수 영화감독은 “젠더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다룰 때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다는 확신이 창작자들 사이에서 퍼진 것 같다”며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영향인지 로맨스 작품은 확 줄었다”고 말했다. 예심 결과 중편소설 9편(9명)을 비롯해 단편소설 11편(11명), 시 65편(13명), 시나리오 10편(9명)이 본심에 올랐다. 시조 희곡 동화 문학평론 영화평론은 예심 없이 본심으로 당선작을 정한다. 당선자에게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당선작은 동아일보 내년 1월 1일자 지면에 소개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생태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제대로 기록해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영국 생태작가 헬렌 맥도널드(51)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불행히도 우리는 환경문제에 있어 끔찍한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2014년 발간한 ‘메이블 이야기’로 논픽션계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새뮤얼존슨상과 영국 문학상 코스타상을 동시 수상한 그는 최근 에세이 ‘저녁의 비행’(판미동)을 출간했다. ‘메이블 이야기’는 작가가 야생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로, 국내에서 2만 부 이상 팔렸다. 그는 신간에서도 우연히 자연과 맺은 교감의 순간들을 섬세한 필치로 담았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들을 구하기 위해 싸우지도 않습니다.” 그는 얼마 전 집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작은 소나무 숲이 도시와 이어지는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파괴됐다고 전했다. 최근에 본인이 겪은 일들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도시에서도 자연이 주는 경이와 통찰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데 관심이 많다고 했다. 아무래도 도시인들은 자연과 교감할 기회가 드물어서다. 그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야생의 풍경만이 깨달음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직장에서 일을 하다 창밖으로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를 보고도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 새의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거나, 인간이 모두 새가 된 세상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세속적 삶의 무게를 덜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건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힘을 발휘합니다.” 가끔 도시를 벗어나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싶다면 무얼 준비해야할까. 작은 야생동물 도감과 중고 쌍안경이면 충분하다는 게 그의 조언. “쌍안경을 다루는 게 처음에는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이를 들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수줍음이 많아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생명체들이 특별한 접근을 허락해 줄 겁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불운하게도 우리는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끔찍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생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잘 기록해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2014년 저서 ‘메이블 이야기’로 논픽션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새뮤얼존슨상과 영국 문학상 코스타상을 수상한 있는 영국의 생태 작가 헬렌 맥도널드(51)가 신간 에세이 ‘저녁의 비행’(판미동) 한국어판을 최근 출간했다. ‘메이블 이야기’는 그가 야생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로 국내에서도 2만 부 이상 판매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신간에서도 그는 자신과 자연 사이의 우연적인 교감의 순간들을 섬세한 문장들로 담아냈다. 그의 이야기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들어 봤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들을 구하기 위해서 싸우지도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도시 속에서도 자연이 주는 경이와 통찰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자연 파괴에 나서는 이들은 대부분 도시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에도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작은 소나무 숲이 도시와 이어지는 도로 확장 공사로 파괴됐다. 이것이 최근에 겪은 일 중 가장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야생의 풍경만이 깨달음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일을 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새 한 마리를 통해서도 자연과의 교감을 할 수 있다. 세상을 인간이 아닌 새의 시선으로 내려다 보고, 인간이 모두 새가 된 세상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새삼 세속적인 걱정의 무게가 줄어듦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은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가끔씩은 도시를 벗어나 야생 동물을 관찰하고 싶다면 어떤 것부터 준비하면 좋을까? 작은 야생 동물 도감과 중고 쌍안경이면 충분하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쌍안경 다루는 게 처음에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면 수줍음이 많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생명체에게 특별한 접근을 허락해 줄 거예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이상한 밤이었다. 2012년 11월 12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소도시 애커맥 카운티. 주택가 빈집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2층 높이에서 시작된 화염은 이내 마당까지 번졌다. 하룻밤에 불이 여러 건 나는 일이 몹시 드문 작은 도시였지만, 애커맥의 소방대원들은 이날 밤 두 차례 더 출동했다. 그 후 5개월 동안 이들은 총 86번의 출동 명령을 받는다. 책은 이 연쇄 방화를 예사롭지 않게 여긴 워싱턴포스트(WP) 기자의 심층 취재기다. 저자는 몇 달씩 애커맥에 머무르며 주민과 수사관, 의용소방대원들을 인터뷰했다. 이런 사건들은 흥미진진한 소설의 모티프가 되거나 범죄 수사물로 재구성되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이 같은 방식을 쓰지 않았다. 그저 그가 총 2년간 수집한 경찰 조사 결과와 재판 기록, 방화에 대한 전문가의 정신분석학적 견해 등을 건조한 어조로 나열했다. 그러나 이 자료들이 정밀하게 직조된 한 권의 책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건조하지 않다. 연쇄 방화의 범인은 애커맥의 주민인 찰리 스미스와 토냐 번딕. 이들은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혼 경험이 있는 데다 최근 어머니를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어 깊이 사랑에 빠졌다. 마약 중독자였던 찰리는 토냐를 만나 마약을 끊었다. 토냐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면 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처음 불을 지른 건 토냐였지만 그가 체포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때부터는 찰리가 불을 질렀다. 저자는 이들 방화범의 정체를 첫 번째 챕터에서 밝힌다. 범인의 뒤를 쫓는 게 이 책의 목적은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 그는 선량한 시민이던 두 사람이 왜 ‘불 지르는 사람’이 됐는지 과거를 추적한다. 토냐는 지독한 가정 폭력과 가난에 시달리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싱글맘으로 두 아들을 홀로 키우다 찰리를 만나 새로운 삶을 꿈꿨지만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활활 타는 불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고 희열에 빠졌다. 토냐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처한 곤경을 들키고 싶지 않아 화려한 옷을 입고 다녔다. 마약 중독에서 갓 벗어난 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들은 낮에는 호화로운 결혼식을 상상했지만 밤에는 드라이브를 나가 빈 건물에 불을 질렀다. 저자는 여기에서 시야를 한 번 더 확장한다. 연쇄 방화가 발생한 곳이 왜 애커맥이었을까? 그는 ‘자본 집중화가 낳은 지방 고유 개성의 박탈’을 근본적인 문제로 꼽는다. 지방의 소도시는 한때 낭만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자본이 대도시로 몰리며 소도시의 주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 대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애커맥에 빈집이 그토록 많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소도시에 남은 주민들은 폐허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국이자 정치적으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조차 지방 소멸의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이 책은 실감나게 보여준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지옥’부터 ‘Dr. 브레인’ ‘유미의 세포들’ ‘D.P.’에 이르기까지 웹툰 원작의 국내 드라마들이 세계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웹툰과 웹소설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공략할 원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이들의 인기 비결을 알아봤다. 》K콘텐츠의 힘 ‘K웹툰’프랑스, 인도,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필리핀, 폴란드, 태국, 베트남, 대만…. 지난달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이 1위를 차지한 36개국(지난달 23일 기준) 중 일부다. 지옥은 공개 하루 만에 전 세계 종합순위 1위에 올랐다. 지난달 28일까지 총 시청 시간만 1억1100만 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옥은 10년 이상 회자될 만큼 진심으로 예외적인 드라마”라고 극찬했다. 미국 CNN은 “올해 한국 드라마들은 끝내 준다. 지옥은 새로운 ‘오징어게임’”이라고 호평했다. ‘지옥’의 세계적인 성공 요인 중 하나는 탄탄한 원작 웹툰이다. 2019∼2020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데, 드라마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직접 스토리를 짰다. 드라마의 서사가 대부분 웹툰에 바탕을 두고 있어 드라마 못지않게 웹툰의 작품성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웹툰을 만든 감독이 직접 연출한 만큼 웹툰의 기획의도와 주제의식이 드라마에 잘 녹아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세계적으로 유행한 웹툰 원작 드라마는 지옥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14일 공개된 드라마 ‘Dr.브레인’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를 통해 100개국 이상에 선보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충격적 반전과 더불어 고급스러우면서도 흡인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올 9월 티빙을 통해 공개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해외 플랫폼사와의 콘텐츠 유통 계약을 통해 유럽, 북미, 동남아시아 등 세계 160여 개국에 방영됐다. 올 8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국내에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태국, 베트남에서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그간 축적된 웹툰, 웹소설 기반의 지식재산권(IP)이 뛰어난 드라마로 재탄생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웹툰, 웹소설이 ‘원소스 멀티유스(OSMU)’의 콘텐츠 소비 방식과 맞물려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OTT와 함께 세계로웹툰 원작의 영상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게 최근 일은 아니다. 2014년 웹툰 원작의 tvN 드라마 ‘미생’이 최고 시청률 8.2%를 달성하면서 국내에 웹툰 드라마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카카오TV ‘며느라기’(2020년)도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화제가 된 드라마다. 1, 2편을 합쳐 국내에서 관객 2700만 명 가까이를 동원한 영화 ‘신과 함께’(2017년)도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최근 웹툰 원작 드라마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흥행하는 배경에는 글로벌 OTT의 성장세가 자리 잡고 있다. 넷플릭스, 애플TV, 디즈니플러스 등 세계 각국에 서비스되는 OTT를 통해 작품이 동시에 공개돼 해외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희윤 네이버웹툰 IP비즈니스팀 리더는 “과거에는 웹툰 원작 영상 작품이 해외에 진출하려면 해외 제작사나 투자사와 협의하는 게 필수였지만 이제는 복수의 글로벌 OTT들이 있어 상황이 달라졌다”며 “국내에서 영상 작품을 제작한 뒤 곧바로 해외를 공략할 기회가 많아진 만큼 세계적 흥행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들의 성공은 웹툰의 세계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옥’의 원작 웹툰이 연재되고 있는 네이버웹툰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등 10개 언어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웹툰을 종이 만화책으로 만들 수 있는 판권이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등 11개국으로 팔려 나가기도 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넷플릭스 콘텐츠를 시청한 후 웹툰 등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가 전체의 42%에 달한다”며 “영상 콘텐츠의 인기는 연계된 콘텐츠 산업에까지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왜 웹툰 원작인가드라마 시장에서 웹툰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얼까. 무엇보다 웹툰의 어마어마한 성장세가 직접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교보증권이 올 2월 발간한 ‘웹툰이 곧 글로벌 흥행 IP’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210억 원에 불과했던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 원으로 급성장했다. 6년 만에 50배 가까이 성장한 덕에 많은 콘텐츠 창작자가 웹툰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그만큼 탄탄한 이야기가 웹툰 시장에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한송이 카카오웹툰스튜디오 센터장은 “웹툰 플랫폼에서 소비자가 돈을 주고 웹툰을 봤다는 건 작품성과 흥행성이 보장된 작품이라는 뜻”이라며 “인기 웹툰이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면 원작 팬을 시청자로 확보할 수 있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웹툰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드라마 시청자를 만족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예를 들어 ‘유미의 세포들’의 원작 웹툰은 주인공 유미의 감정을 세포들로 표현하는 참신한 발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제작진도 이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에 도전해 호평을 받았다. 황혜정 티빙 콘텐츠사업국장은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3차원(3D)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세포의 모습을 실사와 결합해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했다”며 “처음 시도하는 형식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좋았던 게 성공 원인”이라고 말했다. 국내 영상 제작 기술이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올 2월 공개된 웹툰 원작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처럼 만화로만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2092년 우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컴퓨터그래픽(CG) 역량을 확보했다는 것.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국내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제작비와 인력이 확충되고 CG 수준도 향상됐다”며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대작에 밀리지 않을 정도의 영상 수준 덕에 해외 시청자들도 한국 영상 작품에 빠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웹툰이 지닌 시의성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오늘날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를 만들어내 드라마나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희윤 리더는 “우리가 지금 고민하거나 좋아하는 것들을 가장 잘 반영한 콘텐츠가 웹툰”이라며 “트렌드가 잘 반영돼 있어 웹툰이 영상 작품의 원작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웹툰 IP 전쟁에 웹소설도 가세 웹툰 원작의 영상 작품이 연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콘텐츠 업계에서는 웹툰의 IP를 확보하려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드라마의 부가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다. 웹툰 IP 확보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드라마나 영화 제작사들. 스튜디오드래곤은 올 3월 웹툰 스튜디오 와이랩과 협력계약을 체결했다. 와이랩이 보유한 웹툰 IP를 이용할 수 있는 우선 협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 스튜디오드래곤은 영상화에 적합한 웹툰을 발굴하기 위해 콘텐츠전략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기혁 스튜디오드래곤 사업전략담당 및 기획개발 담당은 “내년에 공개되는 웹툰 원작 드라마 ‘아일랜드’도 다양한 웹툰 IP를 발굴하려는 노력의 성과”라며 “원작 웹툰의 매력을 살리면서 영상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야 영상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웹툰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영상화에 나서기도 한다. 네이버웹툰은 자회사인 스튜디오N을 통해 영상화에 적합한 웹툰을 고르고, 다른 영상 제작사에 이를 소개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자체 웹툰 플랫폼인 카카오웹툰에 연재된 작품들을 카카오TV를 통해 영상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웹소설도 영상화에 적합한 IP로 주목받고 있다. 웹툰만큼 참신하고 작품성이 탄탄한 웹소설이 잇달아 발굴되고 있기 때문.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커질 만큼 이야기꾼들이 웹소설에 몰리고 있다. 글로만 구성된 웹소설은 그림까지 그려야 하는 웹툰보다 제작 속도가 평균 20배 정도 빠른 만큼 시의성을 갖춘 작품이 많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북미 웹소설 플랫폼 래디시를 인수한 데 이어 네이버웹툰이 세계 1위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사들이며 웹소설 IP 사냥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올 4월 공개된 웹소설 원작 드라마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는 아마존 프라임 저팬 등 해외 OTT를 통해 세계 190개국에 소개됐다. 누적 조회수 1억5000만 회를 달성한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 역시 영상화가 진행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웹소설 창작 전공)는 “웹툰이 영상 작품으로 많이 만들어지면서 이미 IP를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국내 산업 기반이 갖춰진 상태”라며 “최근 웹소설이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하고 있어 영상화를 통한 성공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25일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운산 작은도서관’. 손을 맞잡은 노부부가 출입구 근처에 붙은 특강 안내문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 도서관은 이날 개관을 기념해 성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만들기 강의를 준비했다. 인근 주민 신순분 씨(68·여)는 “책을 좋아하는데 주변에 도서관이 없어서 매번 사다 보니 집에 책이 1000권 넘게 쌓여 있다. 우리 동네에 책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니 황홀하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문화체육관광부와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전국 각지에 짓고 있는 ‘작은 도서관’이 100번째 개관을 맞았다. 2008년 경기 부천시 도란도란도서관으로 시작한 작은 도서관이 전국 곳곳을 채워온 것이다. 운산 작은도서관은 서산소방서 의용소방대가 사무실로 쓰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1층에 3600여 권의 책이 비치됐고 2층에는 열람실이 들어섰다. 강연 등 각종 문화행사를 여는 프로그램실과 어린이들을 위한 전용 공간도 마련됐다. 도서관을 찾은 윤효림 양(8)은 “그동안 아빠가 사주신 책만 볼 수 있어서 아쉬웠는데 여기는 만화책뿐 아니라 역사책, 동화책까지 볼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웃었다. 윤빛나 양(8)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엄마, 아빠가 책을 읽으라고 하면 귀찮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실에서 친구, 동생들과 놀면서 책을 읽으니 이제는 재밌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곳은 학교 도서관을 빼면 운산면에서 유일한 도서관이다. 그동안 학생이 아닌 일반 주민들은 책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날 작은도서관을 둘러본 장찬순 씨(55)는 “운산면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는데 도서관이 들어선 건 처음 본다”며 “아이들이 책을 보려면 30분 이상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역에 새로운 문화공간이 생겼다는 데 만족해했다. 조무성 씨(53)는 “50, 60대 이웃들이 일을 마치고 함께 어울릴 만한 곳이 식당, 술집밖에 없어 나처럼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을 보낼 곳이 없었다. 앞으로 퇴근 후 도서관에 자주 들를 생각”이라며 반겼다. 운산 작은도서관 주변에는 초등학교 2곳, 중고교 각 1곳이 자리 잡고 있어 학생들에게도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운산초교 학생들과 도서관에 온 장명숙 운산초 돌봄전담사는 “앞으로 돌봄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종종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는 “처음 작은도서관을 짓기 시작할 때는 100번째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는데 소중한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책이야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매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국민들의 독서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작은도서관 사업을 담당하는 김진영 국민은행 브랜드 ESG그룹 대표는 “101호 도서관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1000호까지 달리겠다”고 말했다.서산=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25일 충남 서산시 운산면의 ‘운산작은도서관’. 손을 꼭 붙잡고 이곳을 찾은 한 노부부가 출입구 인근에 세워진 도서관 특강 안내문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날 문을 연 운산작은도서관은 개관을 기념해 성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만들기 강의를 마련했다. 인문학 강의에 참석할 생각이라는 주민 신순분 씨(68·여) “책을 좋아하지만 주변에 도서관이 없어서 매번 구매하다 보니 책이 집에 1000권 넘게 쌓였다. 우리면에 책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니 황홀하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100번째 작은도서관을 개관했다. 운산작은도서관은 이 법인과 운산면이 주관하고 KB국민은행과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김 대표는 “처음 작은도서관을 짓기 시작할 때는 100호 정도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는데 소중한 일을 오랫동안 하게 돼 기쁘다”며 “책이야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매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국민 독서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도서관 건립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진영 KB국민은행 브랜드 ESG그룹 대표는 “물질과 정신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게 우리의 포부”라며 “101호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1000호점까지 달리겠다”고 했다. 도서관은 과거 서산소방서 의용소방대 사무실로 이용되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단장했다. 1층에 3600여 권의 책이 비치됐고 2층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이 있다. 2층에는 강연 등 각종 문화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실과, 어린이들만을 위한 독서와 놀이공간도 마련됐다. 개관을 맞아 이곳을 찾은 윤효림 양(8)은 “그동안 아빠가 집에 사 오신 책만 봐야 해서 아쉬웠는데 여기에는 만화책뿐 아니라 역사책과 동화책까지 다양한 책을 볼 수 있어서 좋다”며 웃었다. 윤빛나 양(8)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엄마, 아빠가 책을 읽으라고 하시면 귀찮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린이실에서 친구, 동생들과 놀며 책을 읽다 보니 책이 재밌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 곳은 학교 도서관을 빼면 운산면의 유일한 도서관이다. 그동안 학생이 아닌 일반 주민들이 책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날 도서관을 찾은 주민 장찬순 씨(55)는 “운산면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는데 도서관이 들어선 것은 처음 본다”며 “자녀들도 책을 보려면 30분 이상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책을 사야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점에서도 도서관을 반겼다. 주민 조무성 씨(53)는 “그 동안 50, 60대들이 퇴근하고 함께 어울릴만한 곳이 식당이나 술집 밖에 없어서 나처럼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시간을 보낼 곳이 없었다. 앞으로 퇴근 후에 자주 들를 생각”이라고 했다. 운산작은도서관 인근에는 초등학교 2곳,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각각 1곳씩 위치해 학생들에게도 좋은 놀이터가 될 전망이다. 운산초 학생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장명숙 운산초 돌봄전담사는 “둘러보니 공간이 안전하고 알차게 단장돼 있어 돌봄 시간에 종종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서산=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대신 함께 요리를 하세요. 완성된 음식이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훨씬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행동과학을 바탕으로 개인, 기업의 영향력 증대와 친밀감 형성 방법을 컨설팅하는 존 리비 인플루언서스 대표(41)는 “우리가 친밀감을 형성하는 방법이라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반대로 하면 누군가와 깊이 친해질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왜 밥을 사거나 선물을 주는 등 호의를 베푸는 게 친밀감 형성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하는 걸까? 저서 ‘당신을 초대합니다’ 한국어판 출간(천그루숲)을 기념해 방한한 그를 26일 만났다. “13년 전 우연히 서로 모르는 4명의 친구를 저희 집에 초대해 식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만 모두를 알고 있을 뿐 각각은 처음 만나는 사이였는데도 식사를 마칠 때쯤엔 마치 서로 몇 년간 알았던 사이처럼 친해졌죠.” ‘당신을…’은 그가 무엇이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는지에 대해 쓴 책이다. 이 식사 이후 사람이 친밀감을 느끼는 방식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당시 상황에 기반을 두고 단시간에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만남 방식을 고안했다. 그가 세운 원칙은 초대자들이 서로의 직업을 모를 것, 그리고 그들에게 새롭고 참신한 무언가를 제안할 것. 영국 작가 맬컴 글래드웰부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미국 밴드 ‘마룬5’의 제스 카마이클까지 각계각층의 인사가 찾는 ‘인플루언서 디너’가 이렇게 시작됐다. 인플루언서 디너는 현재까지 240회 이상 진행됐다. 그는 인플루언서들을 불러놓고 훌륭한 식사를 제공하는 대신에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고 뒷정리까지 마쳐 달라는 제안을 했다. 초대받은 이들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호스트의 집에서 식사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동의 ‘미션’을 공유하며 자연스레 친밀감이 형성된다. 그는 “친밀감, 소속감 형성의 중요한 원천은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에 마케팅, 세일즈 컨설팅을 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고객에게 금전적인 혜택을 주고 제품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방식으로는 고객이 소비자로서 기업과 함께한다고 느끼게 만들 수 없다. 그는 “마케팅 담당자와 고객이 만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는 팬데믹 상황과 관련해 “친밀감 형성에는 대면 상황이 훨씬 유리하지만 비대면 시대에도 친밀감 형성의 원칙을 잊지 않으면 충분히 소통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대신 함께 요리를 하세요. 완성된 음식이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훨씬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행동과학을 바탕으로 개인, 기업의 영향력 증대와 친밀감 형성 방법을 컨설팅하는 존 리비 인플루언서스 대표(41)가 “우리가 친밀감을 형성하는 방법이라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반대로 하면 누군가와 깊이 친해질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왜 밥을 사거나 선물을 주는 등 호의를 베푸는 게 친밀감 형성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까? 저서 ‘당신을 초대합니다’(천그루숲)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그를 26일 동아일보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13년 전 우연히 서로 알지 못하는 4명의 친구들을 저희 집에 초대해 식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만 모두를 알고 있을 뿐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였는데도 식사를 마칠 때쯤엔 마치 서로 몇 년 간 알았던 사이처럼 친해졌죠.” ‘당신을…’은 그가 무엇이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는지에 대해 쓴 자기계발서다. 이 식사 이후 사람이 친밀감을 느끼는 방식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당시 상황에 기반을 두고 단시간에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만남 방식을 고안했다. 그가 세운 원칙은 초대자들이 서로의 직업을 모를 것, 그리고 그들에게 새롭고 참신한 무언가를 제안할 것. 영국 작가 말콤 글래드웰부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미국 밴드 마룬5의 제스 카마이클까지 각계 각층의 인사가 찾는 ‘인플루언서 디너’가 이렇게 시작됐다. 인플루언서 디너는 현재까지 240회 이상 진행됐다. 그는 이 인플루언서들을 불러 놓고 훌륭한 식사를 제공하는 대신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고 뒷정리까지 마쳐달라는 제안을 했다. 초대받은 이들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호스트의 집에서 식사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동의 ‘미션’을 공유하며 자연스레 친밀감이 형성된다. 그는 “친밀감, 소속감 형성의 중요한 원천은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삼성 등 글로벌 기업에 마케팅, 세일즈 컨설팅을 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고객에게 금전적인 혜택을 주고 제품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으로는 고객이 소비자로서 기업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그는 “마케팅 담당자와 고객이 서로 만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팬데믹 사태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친밀감 형성에 활용할 수 있다. 화상회의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은 취하되, 이 가운데에서도 팀을 나눠 공동의 목표를 준다면 팀원들끼리의 친밀감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친밀감을 형성하기에는 대면 상황이 훨씬 유리하지만 비대면 시대인 지금도 우리에게는 소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친밀감 형성의 원칙을 잊지 않는다면 충분히 연대와 소통의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직장인의 고달픔을 절절하게 노래한 시를 읽고 가슴을 움켜쥔 적이 있다. 하지만 ‘고상한 시인께서 뭘 알겠어. 누구한테 전해들은 이야기로 썼겠지’ 하며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구태여 포털 사이트로 시인 이름을 검색해보고 그가 전업 작가임을 확인한 후에는 시를 읽기 전보다 더 쓸쓸한 표정을 지어봤다. 그 냉소적 직장인의 얼어붙은 마음은 이 책에서 풀렸다. 체지방을 걱정하는 척하다 어느새 막걸리에 손을 뻗는 모양새에서 먼저 동질감이 느껴졌다. ‘집값’ ‘비규제 주담대’ ‘중도금 대출 무이자’ 등 어깨가 무거워지는 어휘도 자주 나온다. 알고 보니 저자는 10년 넘게 회사에 다니고 있는 성실한 직장인. 이 책은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잘 알려진 저자가 직장인의 마음으로 쓴 에세이다. ‘먹고사니즘’(먹고 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면서도 낭만과 예술을 그리워하는 게 평범한 이들의 모습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범인이 어떤 순간 시인이 되는지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저자는 살이 찐 동료들과 “팬데믹만 지나면 운동을 시작해 지방을 빼겠다”는 대화를 나누다 문득 인생에도 빼야 할 지방이 있다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죄가 인생의 찌꺼기라면 이를 덜어냈을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그렇지 않다면 인생에서 무얼 빼야 할까. 누구든 한번쯤 품었을 법한 고민이다. 때로는 내 고통을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어느 날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저자는 은퇴와 인생 2막에 대한 상상에 빠진 후 부동산 시세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서울은 꿈도 못 꿔 산간벽지의 분양 정보부터 알아보는 상황,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매매’가 싱거운 상상에 그치는 모습은 남일 같지 않다. “가족끼리 단란하게 살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는 건 하나도 평범하지 않으며, 모두가 무언가를 애원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말은 그 어떤 절절한 시보다도 깊은 위로로 다가온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대학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고 정신건강의학 전문인 저희 병원으로 오신 할머니가 있었어요.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등 여러 유형 중 어떤 치매 진단을 받으셨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시더라고요. ‘꽃 같은 치매’라고.” 10년째 치매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장기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41)는 몇 년 전 이 환자를 처음 만난 날을 잊지 못한다. 할머니의 대답은 치매라는 질병을 대하는 장 씨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 놨다고 한다.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는 우울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질병을 대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장 씨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평생을 긍정적이고 유쾌한 태도로 살아온 분이었다. 치매라는 진단 너머에 있는 할머니의 인생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8일 출간한 에세이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웅진지식하우스·사진)에 그간의 치매 환자 치료기를 담았다. 그를 2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치매의 증상을 흔히 ‘착한 치매’와 ‘나쁜 치매’로 분류하곤 합니다. 저희 정신의학과에서는 주로 나쁜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착한 치매로 유도하는 것을 1차적 목표로 두죠.” 기억을 잃어갈 뿐 가족들이 돌볼 수 있는 수준의 치매를 착한 치매라고 한다면 망상과 우울로 주변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를 나쁜 치매라고 부른다. 정신의학과는 치매 환자의 적대적 행동 기저에 우울증, 불안증 등 정신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고 보고 이를 치료하는 데 주력한다. 기억력이나 언어능력 저하 같은 인지 증상을 다루는 신경외과 외에 정신의학적 측면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장 씨는 “한국은 치매 치료 선진국에 비해 정신의학적 접근이 더 활성화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치매 환자의 정신적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가 보다 치매 친화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모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치매에 걸리면 그때부터는 그저 ‘치매 환자’가 된다. 이들을 개별적인 인간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환자가 자꾸 집 밖으로 나가 배회한다”며 힘들어하지만, 고민이 많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산책을 나서는 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배회가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 불안감이라는 것. 이 불안감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치매와 사회의 화해가 시작된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실시됐지만 아직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료 시스템 구축에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치매 환자를 좀 더 자주 마주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했으면 합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대학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고 정신건강의학 전문 병원인 저희 병원으로 오신 할머니 환자가 있었어요.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등 여러 유형 중 어떤 치매 진단을 받으셨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시더라고요. ‘꽃 같은 치매’라고.” 10년 째 치매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장기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41)는 몇 년 전 이 환자를 처음 만난 날을 잊지 못한다. 할머니의 대답은 장 전문의가 치매라는 질병을 대하는 태도를 영원히 바꿔 놨다고 한다. 평생을 긍정적이고 유쾌한 태도로 살아온 환자의 지난 인생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신의 질병이 꽃 같다는 할머니의 답이 이해가 갔다. 그는 “치매라는 진단 너머에 있는 할머니의 인생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8일 출간한 에세이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웅진지식하우스)에 그간의 치매 환자 치료기를 담았다. 그를 2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치매의 증상을 흔히 ‘착한 치매’와 ‘나쁜 치매’로 분류하곤 합니다. 저희 정신의학과에서는 주로 나쁜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착한 치매로 유도하는 것을 1차적 목표로 두죠.” 기억을 잃어갈 뿐 가족들이 돌볼 수 있는 수준의 치매를 착한 치매라고 한다면 망상과 우울로 주변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를 나쁜 치매라고 부른다. 정신의학과는 적대적인 행동의 기저에 우울증, 불안증 등 정신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고 보고 이를 치료하는데 주력한다. 기억력 저하, 언어 능력 저하 등 인지 증상의 완화를 다루는 신경외과 외에 정신의학적 측면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한국은 아직 치매 치료 선진국에 비해 정신의학적 접근이 더 활성화 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신적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환자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가 보다 치매 친화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그는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치매에 걸리면 그때부터는 그저 ‘치매 환자’가 된다. 이들을 모두 개별적인 인간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환자가 자꾸 집 밖을 나서 배회한다”는 토로를 하지만, 고민이 많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산책을 나서는 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배회가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 불안감이라는 것. 이 불안감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치매와 사회의 화해가 시작된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실시됐지만 아직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료 시스템 구축에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치매 환자를 좀더 자주 마주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했으면 합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정해진 날짜와 장소에서만 읽을 수 있는 글이 서울 곳곳에 숨어 있다면 어떨까요? 서울이 표지가 되고, 글을 찾아 걷는 행위가 읽기 경험이 되는 거죠.” 출판인 모임 ‘편않’(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의 정지윤 편집자(33)는 “종이책이 점점 덜 읽히는 시대에 출판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매체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편않은 기존 출판계 관행에 의문을 갖고 새로운 장을 열어보자는 취지로 편집자 5명이 2016년 결성했다. 2018년 1월부터 반년마다 같은 이름의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무료로 배포하는 이 잡지는 출판계는 물론이고 일반 독자에게도 관심을 끌며 발행부수가 400부(1호)에서 900부(7호)대로 늘었다. 이들은 잡지의 인터뷰 내용을 갈무리한 단행본 ‘격자시공’을 펴내기도 했다. 정 씨와 지다율(활동명·36) 편집자, 기경란 디자이너(38)를 최근 서울 동대문구 편않 사무실에서 만났다. “편않이 제시하는 비전이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희 잡지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균열이라고 생각해요. 잡지를 무료로 발행한 건 독자들이 활자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느끼도록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어요.”(지다율) 잡지 편않은 독자들이 “이렇게 공들인 게 왜 무료냐”고 물을 정도로 탄탄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 ‘편집자’(1호) ‘디자이너’(2호) 등 특정 출판직군을 비롯해 출판계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다룬 시리즈(4∼6호)를 내놓았다. 멤버들이 매달 갹출해 운영비를 대고 있다. 지 씨는 “단행본 출간에 돈이 많이 들어 최근에는 3차 추경까지 했다”며 웃었다. 외부 지원이 없다는 건 제작환경이 자유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 디자이너는 기존 책들과 차별화된 표지 디자인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이번 단행본은 종이 질감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어 표지에 흔히들 하는 코팅 처리를 거치지 않고 비닐로 포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찢고 붙이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오감만족의 책’을 꿈꾼다고 했다. 각자 소속된 출판사를 욕하다 결성된 모임이라는 농담 뒤에 숨은 이들의 진의는 무엇일까. 이들은 “출판계에 답답한 일들이 너무 많다”며 사비까지 털어 출판계를 위한 잡지를 만드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책을 사랑하는 제 모습에서 출판의 미래를 봅니다. 저 같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을 테니까요. 이 마음이 다할 때까지 새로운 독자들을 출판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한 상상력과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국보 1호 서울 숭례문’이 ‘국보 서울 숭례문’으로 표기가 바뀐다.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등록문화재를 표기할 때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내용을 담은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19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국보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 등에 부여됐던 지정번호는 쓰지 않는다. 이에 따라 ‘보물 1호 서울 흥인지문’은 ‘보물 서울 흥인지문’으로 표기한다. 국가지정문화재는 1962년 공포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지정된 순서에 따라 번호가 부여됐다. 하지만 지정번호는 지정 순서가 아닌 가치 순으로 오인돼 문화재 서열화 논란이 불거졌고, 문화재청은 지정번호를 삭제하기로 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CJ ENM이 영화 ‘라라랜드’ 제작사로 유명한 미국 할리우드 콘텐츠 제작사인 인데버 콘텐트(Endeavor Content)를 인수한다. CJ ENM은 19일 이사회를 열고 인데버 콘텐트의 지분 약 80%를 7억7500만 달러(약 9200억 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기로 의결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사진)이 최근 11년 만에 공식석상에 나서며 4대 미래성장 엔진을 중심으로 3년간 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지 보름여 만에 내놓은 공격적인 투자행보다. 인데버 콘텐트는 글로벌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그룹인 인데버그룹홀딩스 산하의 제작 스튜디오로 영화 ‘라라랜드’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국 BBC 인기 드라마 ‘킬링 이브’ ‘더 나이트 매니저’ 등 작품성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투자·제작·유통하는 걸로 유명하다. 세계 18개국에 거점을 두고 있다. 미디어업계는 CJ ENM이 이번 인수를 통해 글로벌 대중문화 중심지인 미국에 전초기지를 세우고 콘텐츠 기획·제작 역량은 물론 콘텐츠 유통 네트워크까지 단숨에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인수는 각국의 주요 플랫폼·미디어기업들 사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이 회장이 4일 CJ그룹의 4대 미래성장 엔진으로 제시한 컬처(문화)와 플랫폼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CJ ENM이 SM엔터테인먼트 인수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CJ ENM이 영화와 드라마, K팝을 아우르는 글로벌 콘텐츠 제국으로 도약할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현재 인데버 콘텐트가 제작을 앞두거나 기획 중인 글로벌 프로젝트만 300건이 넘는다. CJ ENM의 디지털 플랫폼 티빙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어서 향후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호성 CJ ENM 대표는 “동서양 문화권을 포괄하는 글로벌 톱 스튜디오로 도약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가 한국 콘텐츠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백인 일변도의 할리우드에 한국 콘텐츠를 많이 선보인다면 글로벌 관객들이 다채로운 문화를 접할 기회가 늘 것”이라고 했다.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는 “봉준호 박찬욱 등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린 유명 감독들의 향후 작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늘어났다’는 문장은 반쯤은 거짓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실제로 늘어난 것은 ‘노년’이며, 이 때문에 전체 수명이 덩달아 늘어난 것뿐이기 때문이다. 생애주기의 특정 시절만 비약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은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요구했다. 이 책은 그리하여 등장한, 전에 없던 세대에 관한 이야기다. 신체적으로 건강하면서 나머지 인구보다 가진 것이 많은 ‘시니어’. 인생에도 클리셰가 있다. 청년은 도전적이야 하고 중년은 묵직해야 하며 노년은 지혜로워야 한다는 인식은 우리에게 몹시 익숙하다. 지상의 즐거움을 탐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명상에 몰두하고 지혜에서 우러나온 잠언을 생산하며 저승길을 준비하는 것. 이것이 노년에게 흔히 요구되는 ‘바람직하고 올바른’ 모습이다. 그러나 저자는 “행복한 노년의 비결은 정확히 이와 반대되는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길어진 노년을 버티기 위해서는 나이는 먹되 마음이 늙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영혼과 마음을 젊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욕망’이라는 것. 지금껏 노년의 욕망을 부정해 온 세상에 시니어들이 반기를 들기를 저자는 바란다. 낭만과 주름살의 화해가 여기에서 시작된다. 한국 사회에서도 ‘액티브 시니어’라는 개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아서 저자의 이 같은 의견은 일견 진부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롭고 개방적인 프랑스인답게 그가 그리는 청사진은 우리의 상상력을 가뿐히 넘어선다. 그가 꿈꾸는 세상에서는 손주 볼 나이인 75세의 남성이 아이를 하나 더 갖고, 형제라 해도 첫째와 막내의 나이 차가 쉰 살이 날 수도 있다. 고모나 삼촌이 조카보다 마흔 살 어리고, 어머니가 자기 딸과 사위의 대리모가 되어 주는 것도 가능하다. 노인이면서 운동선수일 수 있고, 에베레스트에 도전할 수도 있다. 책의 첫 번째 챕터 제목은 전체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다. “포기를 포기하라.” 다수의 철학자와 소설가들이 인생에 관해 남긴 말들이 현대적으로 잘 번역돼 녹아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프랑스 사상가 미셸 몽테뉴(1533∼1592)는 “철학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 생각을 “철학은 삶을 배우는 것, 특히 유한의 지평에서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로 변주한다. 과거에 비해 죽음이 훨씬 더 미뤄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음을 염두에 둔 채 삶을 배우는, 보다 고차원적인 고뇌가 필요해졌다.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1835∼1902)가 남긴 “인생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라는 말은 그대로 되새겨도 무리가 없다. 인간은 끝끝내 완전히 숙련되거나 지혜로워지지 않으며, 그럼에도 인생이라는 협주곡은 무사히 완성된다. 늙은이가 어리석다고 해서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부모나 조부모의 얼굴에 문득 아이의 표정이 스치는 순간을 누구나 목격한 적이 있을 테다. 그래서 우리는 ‘50, 60, 70세가 넘어도 겉보기에나 진중할 뿐 알맹이는 그렇지 않다’는 저자의 고백이 허위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 나이에서 불필요한 부담이나 장식을 벗겨 내자. 유머와 멋으로 무장한 시니어들이 가득한 세상은 분명 훨씬 더 유쾌할 것 같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CJ ENM이 영화 ‘라라랜드’ 제작사로 유명한 미국 할리우드 콘텐츠 제작사인 인데버콘텐트(Endeavor Content)를 인수한다. CJ ENM은 19일 이사회를 열고 인데버콘텐트의 지분 약 80%를 7억7500만 달러(약 9200억 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기로 의결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최근 11년 만에 공식석상에 나서며 4대 미래성장 엔진을 중심으로 3년간 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지 보름여 만에 내놓은 공격적인 투자행보다. 인데버콘텐트는 글로벌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그룹인 인데버그룹홀딩스 산하의 제작 스튜디오로 영화 ‘라라랜드’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국 BBC 인기 드라마 ‘킬링 이브’ ‘더 나이트 매니저’ 등 작품성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투자·제작·유통하는 걸로 유명하다. 세계 18개국에 거점을 두고 있다. 미디어업계는 CJ ENM이 이번 인수를 통해 글로벌 대중문화 중심지인 미국에 전초기지 세우고 콘텐츠 기획·제작 역량은 물론 콘텐츠 유통 네트워크까지 단숨에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인수는 각국의 주요 플랫폼·미디어기업들 사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이 회장이 4일 CJ그룹의 4대 미래성장 엔진으로 제시한 컬처(문화)와 플랫폼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CJ ENM이 SM엔터테인먼트 인수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CJ ENM이 영화와 드라마, K팝을 아우르는 글로벌 콘텐츠 제국으로 도약할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데버콘텐트는 2017년 설립 후 HBO, BBC 등 주요 방송 채널과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다양한 콘텐츠를 유통하면서 빠르게 성장해왔다. 현재 제작을 앞두거나 기획 중인 글로벌 프로젝트만 300건이 넘는다. CJ ENM의 디지털 플랫폼 티빙이 글로벌 OTT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어서 향후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호성 CJ ENM 대표는 “동서양 문화권을 포괄하는 글로벌 톱 스튜디오로 도약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가 한국 콘텐츠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백인 일변도의 할리우드에 한국 콘텐츠를 많이 선보인다면 글로벌 관객들이 다채로운 문화를 접할 기회가 늘 것”이라고 했다.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는 “봉준호 박찬욱 등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린 유명 감독들의 향후 작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국보 1호 서울 숭례문’이 ‘국보 서울 숭례문’으로 표기가 바뀐다.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등록문화재를 표기할 때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내용을 담은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19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국보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 등에 부여됐던 지정번호는 쓰지 않는다. 이에 따라 ‘보물 1호 서울 흥인지문’은 ‘보물 서울 흥인지문’으로 표기한다. 국가지정문화재는 1962년 공포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지정된 순서에 따라 번호가 부여됐다. 하지만 지정번호는 지정 순서가 아닌 가치 순으로 오인돼 문화재 서열화 논란이 불거졌고, 문화재청은 지정번호를 삭제하기로 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2021 여초서예대전을 개최하는 인제군문화재단이 30일까지 출품작 접수를 한다. 이 대회는 인제군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여초서예관이 주관하며 동아일보사가 후원한다. 여초서예대전은 근현대 한국의 서예 대가인 여초(如初) 김응현(1927∼2007)의 서법 정신을 기리는 서화 예술경연대회다. 서예 연구단체 동방연서회와 동아일보사가 1961년 국내 최초 휘호(揮毫) 대회인 ‘전국 남녀 초중고등학교 학생휘호대회’를 개최한 게 시초다. 1966년 대학부가 증설돼 ‘전국학생휘호대회’로 자리 잡았다. 2000년 40회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가 2015년 ‘여초선생 추모 전국휘호대회’를 신설한 여초서예관이 2018년 전국학생휘호대회를 부활시켜 해마다 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제7회 여초전국휘호대회(성인부, 기로부), 제44회 전국학생휘호대회(학생부), 제1회 하늘내린 캘리그래피 휘호대회(성인부)까지 총 3개 세부 대회로 구성된다. 성인부는 20세 이상, 기로부는 70세 이상(성인부로도 지원 가능), 학생부는 8∼19세가 대상자다. 여초전국휘호대회와 전국학생휘호대회에는 한글 한문 문인화 전각을, 캘리그래피 휘호대회에는 캘리그래피를 출품하면 된다. 자유 주제로 작품을 내면 1차 심사로 본선 진출자를 선정하고, 본선 진출자는 추후 공지하는 대회장에 모여 주최 측이 제시하는 주제로 작품을 완성해 2차 심사를 받는다. 성인부 대상 500만 원을 비롯해 680여 명에게 총 32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자세한 내용은 여초서예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화창한 올 5월의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 딸을 키우는 박미소 씨(38)는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방에서 술과 술잔을 꺼냈다. 시계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이 ‘지각 있는 애주가’가 아닌 알코올중독자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박 씨는 그 길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시작했다. 퇴직 이후 전업주부의 삶을 산 지 꼭 5년 만이었다. 최근 에세이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반비)에 자신의 알코올중독 극복기를 담은 그를 15일 만났다. “혼자 주방에서 홀짝홀짝 술을 마시는 주부를 ‘키친 드링커’라고 합니다.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별다른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자 저도 어느새 키친 드링커의 길로 빠지게 됐죠.” 박 씨는 10년간 잡지와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2016년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전업주부가 됐다. 직업 특성상 자주 술을 접했던 그는 일을 그만둔 뒤에도 스트레스를 술로 풀게 됐다. “자신의 알코올 의존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시간대로 가늠할 수 있어요. 저도 술을 야식에 곁들이는 수준에서 저녁 반주, 낮술, 급기야 아침에 술을 마시게 됐거든요.” 그는 한때 사회생활을 하다 전업주부가 된 경력 단절 여성들은 알코올중독의 유혹에 더욱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소위 ‘능력 있는 여성’은 으레 남성 직원들을 능가하는 주당으로 그려지기 마련이어서 술은 잘 마시고 보는 게 미덕이라는 학습을 하게 되기 때문. 그는 “나 역시도 술자리에서 여성이 술을 거절하면 ‘여자라 안 마시고 뺀다’는 비난이 날아오는 환경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 알코올중독자’에 대한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은 키친 드링커들로 하여금 술을 숨어서 마시게 한다. 그리고 이는 중독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을 지체시킨다. 박 씨는 알코올중독은 우울증 증세의 하나인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우울증이 부끄러운 병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되는 질병인 것처럼 알코올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에 술을 몇 번 마시냐’는 건강 검진 문진표의 질문이 양심에 찔리시나요? 그때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 시작해야 할 시기입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