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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자부하는 사람들은 29일 방한하는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이 특히 반가울 것 같다.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19대 국회 개원 전날 찾아오는 스웨덴 국왕은 진보집권을 예고하는 사자(使者)처럼 보일 수도 있다. 마침 북유럽 복지를 돌아보고 온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복지 하면 경제 망한다는 복지망국론, 재정위기론이 얼마나 근거 없는가를 스웨덴에서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지난해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가야 하고 민주당이 추구하는 방향”이라며 추천한 책도 ‘유러피언 드림’이었다. 2005년 국내 출간된 제러미 리프킨의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말 잘 쓴 책이라고 극찬해 더 유명하다. “이 책을 진보적 관점에서 한국 상황에 적용 가능한지 검토해 보라”고 참모들에게 지시까지 했다. 그가 꿈꿨고 노무현정신 계승자가 강조하는 ‘사람 사는 세상’과 진보정치가 유러피언 드림 속에 있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나쁜 독서는 없다. 다만 의문은 있다. 노무현이 밑줄까지 치며 이 책을 세 번째 읽던 3년 전 이미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는 재정위기에 흔들리고 있었다. 손학규가 읽을 무렵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이 국가부도 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은 뒤였다. 그런데 여태까지도 이른바 진보세력은 유러피언 드림이 밥이라도 되는 양 붙잡고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스웨덴 개혁 모르면 진보 아니다 유럽의 재정위기와 유러피언 드림은 무관하다고? 아니다. 리프킨이 “노동윤리와 효율성보다 레저와 심지어 게으름을 중시한다”고 말한 유럽은 PIGS와 프랑스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미국이 부(富)와 성장, 개인의 이기심을 중시하는 반면 유럽은 지속가능한 발전과 삶의 질,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리프킨이 홈페이지에서 강조한 부분이다. 그러나 붕괴 위기에 처한 유럽연합(EU)을 보면 이 대목도 의심스럽다. 평등과 연대 같은 진보의 가치를 그토록 강조하는데도 북유럽부터 제노포비아(인종혐오)와 극단주의 정당이 출몰하고, 잘사는 북유럽과 못사는 남유럽의 갈등이 심해지며, 불타는 시위가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차라리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앞으로 나아가려는(進步) 우리 특성과 역사에 더 잘 맞는것 같다. 그럼에도 자칭 진보진영이 유러피언 드림에 매달리는 건 지적 게으름과 좌파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외국에선 2, 3년 전부터 “미래의 모델은 유럽이라는 리프킨의 책을 다시 보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유러피언 드림은 죽었다’는 지적이 쏟아졌는데도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를 좇는 좌파에는 이런 변화가 안 보이는 모양이다. 더구나 손학규는 “스웨덴 복지 담당자를 만나 보니 복지와 성장에는 굴곡이 있지만 복지 안 줄이고 오히려 뒷받침해서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 가는 곳마다 강조하고 있다. 어림없는 소리다. 1990년대 초 경제거품 붕괴로 금융위기가 터지자 집권 사회민주당은 1995∼98년 아동수당과 실업수당 같은 복지수당을 줄여 국내총생산(GDP)의 8%나 세출을 삭감했다. 학교와 병원에 민영화를 도입해 100% 무상교육·무상의료의 전설도 사라졌다. 그러고도 노동과 생산시장 유연화, 세출 상한 재정개혁, 소득비례 연금개혁을 계속했다. 2006년 감세와 복지개혁을 내세워 집권한 보수당은 2010년에도 “복지”를 강조하는 사민당에 “일자리”로 맞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 결과 성장이 복지로 이어진 것이고, 그런 개혁이 없었던 남유럽은 재정위기에 빠졌다는 점을 손학규가 놓쳤다면 안타깝다. 그는 “무작정 좌파를 진보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무작정 복지도 진보라 할 수 없다. 복지는 확대하되 개혁 전이 아닌 개혁 후의 스웨덴처럼 효율적 복지를 해야 하고, 유능한 정부가 성장정책을 이끄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사실까지 외면했다면 리더십을 의심받을 수 있다.정치권 ‘미친 특권’부터 개혁하라 “진보는 어디까지나 국민의 삶을 제일로 삼는 것이고 국민의 삶을 개선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진보”라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차제에 가장 후진적 행태를 보이는 통합진보당은 ‘진보’라는 단어를 빼고 정명(正名)을 찾기 바란다. 시대착오적 주체사상의 NL계(민족해방계열)는 물론이고 계급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PD계(민중민주계열), 한가로운 유러피언 드림에 빠진 민주당 사람들도 수구좌파로 칭하는 게 정명이다. 만일 국민의 삶을 제일로 삼겠다는 정치인이 있다면 국회의원 특권부터 최소한 스웨덴 수준으로 개혁해 진정한 진보임을 입증했으면 좋겠다. 1인당 소득이 우리의 2.5배인 스웨덴의 의원 월급은 우리(수당 상여금 포함해 월 1224만 원)보다 훨씬 적은 5만6000크로나(약 940만 원)이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6%로 낮춰 잡았다. 1년 전 4.3%를 반년 전에 3.8%로 하향 조정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지난달 한국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5%를 예상했다. 그리스의 국가부도 가능성 등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탓이라지만 정부 공식 전망치(3.7%)보다 더 내려간 수치여서 불안하다. 작년 하반기에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는 반(反)신자유주의 시위 이후 세계적으로 ‘성장=탐욕’ ‘분배=정의’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무상급식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이 같은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의 총선 및 대선공약에서도 규제 완화나 신(新)성장동력 육성 같은 성장공약이 사라졌다. 그러나 성장 없이 일자리를 창출하기는커녕 지금 있는 일자리를 유지할 수도 없다. 특히 저성장의 고통은 서민에게 가장 많이 돌아간다. 재정 위기에 빠진 유럽에서 프랑스를 필두로 ‘성장론’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주 주요 8개국(G8) 정상들은 적극적인 정부지출과 함께 성장전략이 유럽 경제를 되살리는 방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도 기존의 ‘안정’과 ‘체질개선’ 기조에서 돌아서 경제성장률 제고를 강조하고 나섰다. G8 정상들이 “다만 적절한 조치는 개별 국가마다 다르다”고 성장정책의 차이를 인정했다. 한국의 경우 인플레이션 불안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어서 돈을 풀고 환율을 올려 경기를 자극하기는 힘들다. 독일의 규제개혁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장 효과적인 성장정책 방안은 노동시장과 기업활동의 규제를 푸는 구조개혁이다. 독일과 스웨덴 같은 노동선진국도 노동 유연성을 높이되 비정규직의 처우를 높여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갔다. 의료보건 관광 금융 교육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진입규제를 푸는 것은 유럽에서도 가장 효과적이고 부작용 없는 성장정책이자 일자리 창출정책으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외쳤으면서도 ‘부자와 병원의 이익을 위해 서민을 희생시키는 정책’이라는 좌파의 공세에 밀려 임기안에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송도지구에 국제병원 하나 세우지 못했다. 규제를 풀면 손해 보는 계층의 저항이 생길 수 있다. 이들은 직업훈련과 맞춤형 복지 같은 사회정책으로 지원함이 바람직하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활력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 루트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교수처럼 말했다. 말만 앞세울 게 아니라 정책 집행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기 바란다.}

승리는 교사에게 막말을 해대던 아이였다. 못돼서가 아니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라는 질병 때문이다. 약을 먹으면 밥을 못 먹고, 그래서 약을 거르면 말과 행동이 통제가 안 돼서인데 학교에선 그걸 몰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박민숙 선생님이 밥을 챙겨 먹이고, 똥 싼 바지를 빨아 입히고, 그림 실력을 칭찬해주자 승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반신 마비 때문에 마음만큼 승리를 돌볼 수 없었던 엄마에게 박 선생님이 얼마나 고마웠을까. ▷내 아이가 박 선생님 같은 교사를 만나는 것이 보통 엄마들의 바람이다. 그것이 교육의 희망일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스승의 날(15일)을 하루 앞두고 발표한 ‘서울교육희망공동선언’에서 학교를 ‘소수의 승리자를 만들기 위해 다수를 패배자로 전락시키는 곳’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학생회와 학부모회 활성화, 교원업무 정상화, 대학입시 개선 등을 통해 학교교육과 사회구조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곽 교육감이 말하는 희망은 늘 이렇게 답답하고 팍팍한지 모르겠다. 교사가 학생을 잘 가르치는 학교, 학생이 박 선생님 같은 교사로부터 잘 배우는 학교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안 되나. ▷2010년 교육감 선거 때 상대 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1심에서 3000만 원, 2심에선 이보다 높은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사람이 바로 곽 교육감이었다. 잘못이 드러나면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척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는 아직까지도 ‘선의(善意)였으므로 무죄’라고 주장한다. 자기처럼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을 키우고 싶은지 취임 직후 체벌금지 지시를 내리면서 반성문 쓰기까지 금지했다. 7월경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면 교육감직을 잃을 공산이 큰데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학부모회 등 자신의 선거를 도와준 단체들만 모아놓고 공동선언이라니, 곽노현의 교육정책 대못 선언 같다. ▷학부모들이 교사나 교육당국자에게 원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요즘 뉴스를 들으면 덜컥 겁이 나는 부모들은 자녀가 왕따 폭력에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공부하기 싫어하던 아이가 선생님 잘 만나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되고, 친구들과 잘 못 지내던 아이가 특별활동 덕분에 성격이 달라지는 것같이 작은 변화여도 고맙고 충분하다. 우리 모두 한 분쯤은 그런 스승을 가슴에 모시고 산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1년 전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죄인’이었다. 4·27 재·보선 경남 김해에서 벼랑 끝 전술 끝에 야권 단일후보로 내보낸 자당 후보가 패하자 “큰 죄를 지었다”고 했다. 그 유시민이 지금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로 거의 영웅이 됐다. 그가 없었으면 통진당의 반(反)민주적 행태도 안 드러났다. 진보정치를 혁신할 정치인은 유시민밖에 없다고 일각에선 감동의 도가니다. 마키아벨리, 從北정당 몰랐을까 그의 화려한 부활에 큰 몫을 한 사람이 그제 통진당 공동대표직을 사퇴한 이정희다. 두 사람의 대담집 ‘미래의 진보’를 기획한 인터넷신문 ‘민중의 소리’ 이정무 편집장은 “작년 3월 이정희-유시민 토크쇼에 2000여 명이 운집한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고 했다. 민중의 소리는 통진당 당권파와 가깝고, 비례대표 2번 이석기가 이사를 지낸 매체다. ‘진보정치의 붉은 장미’로 칭송받은 이정희, ‘촌철살인, 삐딱해 보이는 몸가짐, 뛰어난 글솜씨가 동급 최강’인 유시민. 이들의 연합은 ‘2013년 체제’를 꿈꾸는 세력에 대박상품으로 보였을 거다. 그 전략기획의 결실이 작년 7월의 대담집 출판기념회이고, 연말의 통진당 창당이다. 이정희만큼 관심을 못 끌었던 민주노동당은 한때 야권 대선후보감으로 첫손에 꼽혔고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유시민과 손잡고 통진당으로 변신함으로써, 비로소 대중적 진보정당이라고 주장하게 됐다. 당권파인 NL계(민족해방계열) 주사파는 당초 계산대로 몸집과 지지층을 늘렸다. 통합 전 유시민에 반대하던 세력을 제압하면서 패권도 확장했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혈혈단신이던 유시민 역시 재기의 발판을 찾았다.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할 수 있는 확실한 필살기가 야권연대지만 참여당은 자신이 없고 이 대표께서 기적을 이뤄 달라”고 간청한 대로 드디어 야권연대에 편입될 수 있었다. 영남 출신이어서 지역구도 양당정치의 희생양으로 자처했던 정치적 한(恨)도 통진당 덕분에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 문재인에다 안철수까지 떠올랐다. 지금은 유시민이 이정희와 당권파를 뿌리째 흔들 만큼 우뚝 섰지만, 야권 단일후보로서의 유시민을 거론하는 사람은 없었다. 통진당 경선 부정이 불거지기 전까지는! 그래서 궁금해지는 거다. 유시민은 통진당의 몸통인 민노당이 원래 그런 정당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합쳤단 말인가? 몰랐다가 이제 와서 구국의 전사처럼 나선 건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제가 이 대표님보다 훨씬 마키아벨리적”이라고 책에서 고백했듯 그는 정치가 기본적으로 권력투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이 말은 자기 자랑이기도 했을 것이다). 2010년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왔을 때 주사파 경기동부연합 핵심들의 선거운동 도움까지 받았는데 그 속성을 몰랐다면 유시민도 아니다. 통진당 위헌 해산에 앞장서라 이정희는 대담에서 “중요한 핵심은 (앞으로 생겨날) 진보통합정당은 그냥 정당, 그러니까 국민정당으로 표현되는 정당이 아니라 진보정당”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보다 ‘진보’가 상위개념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유시민도 통합 전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같은 통진당 강령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방송을 통해 만방에 밝혔다. 북한 3대 세습에 대해선 “연대 협력하는 정치세력 간에는 던져서는 안 될 질문 형식”이라며 이정희 편에 확실히 섰다. 10일 유시민이 통진당의 애국가 거부 문제를 제기한 것은 결코 지나가는 말로 한 게 아니었다. 총선 결과가 실망스러운 이유로 “우리 당의 정책 이념 행동방식 문화양식 등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통진당의 아킬레스건인 ‘이념’을 거론하고는 애국가를 꺼내들었다. 마키아벨리적 감각을 타고난 그가 현 상황에서 국민이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를 리 없다. 경선 부정이 민주주의 원칙을 어겼다는 점을 조목조목 밝혔던 7일, ‘왕년의 스타’가 모처럼 받은 스포트라이트를 유시민은 다시 놓치기 싫었을 터다. 기회주의여도 좋고, 뒤늦게 깨달은 애국심이라도 좋다. 통진당 종북세력이 대한민국 국회에 들어가 그제 같은 패악을 부리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유시민밖에 없다. 그는 “부정 경선에 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권한이 없어 공개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 자료를 근거로 검찰에 당당히 수사를 요구해 통진당이 위헌정당으로 해산 명령을 받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 분당(分黨)은 절대 안 한다고 몇 번씩 공언한 것, 안다. 그러나 유시민의 말 바꾸기가 한두 번인가. 수차 당을 깨고 나갔는데 한 번 더 깬다고 망신스러울 것도 없다. 오히려 재승덕박이네, 싸가지 없네 같은 비판에서 벗어나 우리 시대 가장 절실한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다. 혹시 또 아는가. 대통령이 안 된다 해도 현생에 나라를 구했으니 다음 생에선 사랑받는 정치인으로 태어날지.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일심회 사건은 2006년 민주노동당 간부인 최기영 이정훈 등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국가기밀과 민노당 동향을 북한에 넘겨줘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간첩사건이다. 하지만 민노당 당권세력인 NL계(민족해방계열) 주체사상파는 ‘신(新)공안정국을 조성하고 당을 음해하기 위한 조작 사건’이라고 강변했다. 두 사람의 제명과 종북(從北)주의 청산을 놓고 열린 2008년 2월 3일 민노당 임시 당대회에서 일심회 사건 변호인이자 이번 경선에서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은 김승교 대의원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쓰레기 (공판)자료에 굴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9시간에 걸친 공방 끝에 제명안 자체가 폐기됐다. 당시 민노당 당권파는 “(비당권파의) 종북주의 청산 요구는 중세식 마녀사냥”이라고 되받았다. 인터넷에는 “유사종교를 신봉하는 듯한 (NL 주사파의) 행태를 보면서 일반 상식, 정치윤리, 당헌, 당규, 강령 심지어 선거법까지도 짓밟을 수 있는 그들의 실체를 알게 됐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결국 민노당은 분당(分黨)됐다. 민노당 당권파는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됐다. 그제 통진당 이정희 공동대표(전 민노당 대표)가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에 대한 ‘당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 검증 공청회’에서 보인 태도는 민노당 때 일심회 사건 대응의 판박이 같다. 이 공동대표는 일주일 전 전국운영위원회의를 33시간이나 진행했다. 그제는 1시간 30분 동안 질문 한 번 안 받은 채 “중세식 마녀사냥” 운운하는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발언이 끝나자 비례대표 당선자 김재연 씨와 김선동 의원 등 같은 계열의 당원들은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쳤다. 이 공동대표와 비례대표 2, 3번으로 뽑힌 이석기 김재연 씨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반 상식이나 윤리와 거리가 멀다. 주사파가 이념을 위해서는 선거법뿐 아니라 국가보안법이나 헌법까지도 무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당권파 실세로 꼽히는 이석기 씨는 2002년 불법 종북지하당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에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죄로 실형을 살았다. 비당권파는 “민혁당 출신 당권파들의 행태는 지하 운동권 시절의 사고를 그대로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도 한다. 이 공동대표의 맑은 겉모습 뒤에 숨겨진 것은 대한민국 기본질서 파괴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NL 주사파의 목적 지상주의였음이 밝혀졌다. 통진당 당권파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총선 때 10.3%였던 지지율이 지금은 반 토막으로 추락했다. 통진당 내 국민참여당파와 진보신당 탈당파는 당권파의 불법 독선 종북에 눈감고 갈 것인지 단안을 내려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검찰 출두를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어느 은행에 누구 명의로 돼 있는지 검찰에서 모두 까겠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3월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노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고 말했다가 유족에 의해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그제 발언은 그가 지난달 ‘유족이 고소를 취하하면 입 다물겠다’는 식으로 말한 데서 한발 나아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640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 받던 중 2009년 5월 23일 자살함으로써 모든 혐의는 ‘공소권 없음’으로 덮어졌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저서 ‘운명’에서 “대통령은 여사님뿐 아니라 정상문 비서관에 대해서도, 비록 당신 모르게 벌어진 일이지만 모두 끌어안으려 했다”며 고인의 결백을 강조했다. 그러나 올 2월 노 전 대통령 딸 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구입자금 13억 원에 대한 수사가 재개되면서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박 전 회장이 “문제의 돈은 내 돈이 아니다”고 했지만 검찰은 돈의 출처를 파헤치지 않았다.조 전 청장이 언급한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는 전후 사정에 비추어 640만 달러와는 무관하다고 봐야 한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총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조 청장의 발언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며 “꼭 차명계좌라고 하긴 그렇지만 실제로 이상한 돈의 흐름이 나왔다면 틀린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아리송하게 말했다. 노 전 대통령도 ‘현실 정치인’으로서 정치자금과 초연하게 살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정치자금 관련설도 떠돌아다닌다. 그는 2001년 말 “2000년 부산에서 출마했을 때는 원도 없이 돈을 써봤다”고 말한 적도 있다. 조 전 청장은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와 관련한 정보를 소상히 공개해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자신과 경찰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 그는 “모두 까겠다”고 큰소리치면서도 “얘기를 누구에게서 어떻게 들었는지는 검찰에서 안 밝힐 것”이라고 토를 달아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겼다. 그러니 노무현재단에서 “언론플레이로 패륜적 행태”라며 “검찰 조사나 똑바로 받으라”고 공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노 전 대통령에게 차명계좌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면 조 전 청장은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설령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드러나더라도 사자를 처벌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더라도 국민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 무엇인지 알 권리가 있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가 비례대표 경선 부정에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이 공동대표는 “통진당의 재기를 위해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비례대표 당선자 사퇴’라는 수습책은 내놓지 않았다. 통진당의 당권파가 독(毒)나무에 열린 독열매를 그대로 둔 채 대표단 사퇴 정도로 미봉하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자체 진상조사에 대해 당권파(민족해방계열·NL계) 이의엽 정책위의장이 반박 회견을 한 것도 “이석기 당선자(비례대표 2번)를 살리려는 정치적 꼼수”라는 비판이 통진당 비주류에서 나오고 있다. 통진당의 부정 경선은 자율 처리에 맡길 ‘당내 문제’가 아니다. 통진당은 국고의 지원을 받는 공당(公黨)이고 이번 총선에서 제3당의 위치를 확보했다. 국회의원은 연 5억∼6억 원을 지원받고 보좌진 7명을 쓰며 입법 활동을 하는 공직자 중의 공직자다. 통진당이 “자정 능력이 있는데 검찰이 보수유령단체의 고발을 통해 우리 당을 수사하겠다는 것은 불순한 의도”라고 반발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공정한 선거’의 룰도 지키지 않는 세력이 대의민주주의 틀 속에 들어와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인가. 이석기 씨와 이의엽 정책위의장은 대법원이 ‘김일성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핵심 간부 출신이다. 이석기 씨는 NL계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알려져 있다. 비례대표 1번인 윤금순 씨도 주사파로 2005년 맥아더 동상 파괴를 주도한 ‘통일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비례대표 3번 김재연 씨 역시 NL계 주사파로 당권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 통진당 당권파가 주사파 핵심을 국회에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의도가 수상쩍다. 대남 공작원이었던 김동식 씨는 “북한은 폭동이나 전쟁 같은 방법으로 한 번에 (남한)정권을 바꾸는 일이 힘들어지자 선거로 국회에 진출해 서서히 정권을 뒤집자는 전략으로 수정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통진당 내 진보신당과 국민참여당 출신들은 주사파를 국회에 보내려고 민노당과 통합했는가. 검찰은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의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 통진당의 활동이 헌법이 정하는 민주적 기본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세력에게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때맞춰 보내준 선물일지 모른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다음 달 광우병 촛불집회 4주년 기념 시위를 예고했다. 한 번으로 끝낼 리 없는 이들의 촛불잔치는 19일 노무현 서거 3주기(5월 23일) 서울광장 추모제에서 격하게 만날 공산이 크다. “5월엔 추모행사를 열심히 한 다음 (대선 출마) 결심을 밝히겠다”던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으로선 친노(親노무현)와 반MB(反이명박) 세력을 결집시킬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문재인 대망론’이 떠오른 이유 문재인은 “탈(脫)노무현은 이미 돼 있다”고 했지만 지금 역량으로는 ‘노무현정신’의 계승자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사실 문재인의 정치철학이라고 나온 것도 없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의 남자’로 국정 현안에 개입했으나 정작 중요한 일은 못하고, 안 할 일은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 형이 세종캐피탈에서 29억7000만 원을 받을 때 그는 민정수석이었고, 대통령 부인이 전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연차의 100만 달러를 받을 때는 비서실장이었다. 거칠게 말하면, 대통령 친인척과 비서진을 챙기는 본연의 업무만 잘했어도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반면 화물연대 파업사태에 끼어들어 법치를 훼손하는가 하면, “직선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은 국민투표로 하는 게 맞다”고 부추겨 노무현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의해 국민의 신뢰를 잃는 데 기여했다. 몇 년 새 문재인의 정치적 판단력이 나아진 것 같지도 않다. 총선 막판에 ‘나는 꼼수다’ 팀을 부산까지 초청해 곁불을 쬐려 한 일이 증거다. 대선에 선수로 뛸 사람이 후보경선 엄정 관리가 생명인 민주통합당 대표 자리에 자기편을 앉히도록 개입해 결국 그 자신도 ‘꼼수정치의 한 축’임을 확인시키고 말았다. 그가 자천타천 호랑이 등에 올라타게 된 것도 이런 ‘무(無)의 철학’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쉽게 말해 친노가 ‘도구’로 쓰기엔 정치력도 콘텐츠도 없는 문재인이 딱 알맞다는 얘기다. 참여정부 실세총리였던 이해찬은 ‘선거전략의 달인’인 만큼 자신이 주자로 나서면 될 것도 안 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유시민은 ‘네가지’(싸가지)가 없고 자기 정치만 한대서 친노로부터 “우리 식구 아니다” 평가 받은 지 오래다. 스타 결핍에 허덕이던 1년 전, 노무현보다 잘생기고 인품도 있어 보이는 문재인이 4·27 보궐선거 야권단일화를 중재하고 “노무현 운명이 나의 운명”이라며 등장하자 일부 친노는 쾌재를 불렀을 터다.내 편은 善意가 ‘노무현정신’인가 10년 전 노무현을 도구로 선택했고, 대통령 된 뒤 “나를 놓아 달라”고 해도 안 놔준 세력이었다. 그중에서도 부산파 친노가 이해찬과 손잡고 문재인을 도구 삼아 구현하려는 그들만의 이상향이 어떤 건지 나는 두렵다. 지역과 이념, 이해관계가 다른 친노 사이에 격렬한 반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체 노무현정신이 뭔지는 원소유주가 세상에 없는 관계로 무한해석이 가능하다. 문재인은 “생전에 얘기했던 ‘사람 사는 세상’이란 표현 속에 다 담겼다”고 했다. 박지원은 원내대표에 나서면서 통합의 정신을 노무현 가치인 양 강조했다. 백원우가 “노무현 가치의 핵심은 민주주의”라고 한 것부터 완전히 갈아엎기, 깽판, 막말 같은 극단까지 누구든 원하는 대로 끌어댈 수 있는 만병통치 용광로가 노무현정신이다. 그중에서 공통점을 찾아 한 단어로 줄인다면 ‘선의’가 아닌가 싶다. 노무현이 추구한 가난하고 힘든 이를 위한 복지나 균형발전, 지역주의 해소 등의 정책은 선의에서 비롯됐을지언정 성공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정부의 능력이나 세계적 흐름, 시장원리와 인간본성으로 인해 실현되기 힘든 정책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선의대로 안 된 것인데도 노무현과 친노는 내 편 아닌 모두를 적으로 공격했다. 친노를 폐족으로 전락시켰던 그 정신과 정책으로는 ‘사람 사는 세상’이 될 수 없음을 어쩌면 노무현도 알았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아들딸을 이 땅 아닌 미국에서 살게 했는가 말이다. 지금도 문재인을 둘러싼 친노는 자기들만 옳기에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점에서 노무현과 닮아 있다. 문재인 골수 지지자인 김어준이 나꼼수의 총선 책임론을 “인정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사실이 아니다” 한 거나, 이해찬이 “실체도 없는 계파 타령 말자”며 강한 리더십과 단결을 주장하는 게 단적인 예다. 친노 브랜드와 MB심판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정당에 국민은 표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총선에서 확인됐다. 이제는 그만 노무현을 놓아주었으면 좋겠다. 노무현정신 팔고 문재인을 새 도구 삼아 정권을 잡아서는 ‘완전히 갈아엎고’ 그때 그 권세나 누리려 한다면, 노무현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도구에 불과한 불행한 대통령으로 남을 뿐이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가 어제 “새누리당 문대성 국회의원 당선자의 박사학위 논문 상당부분이 표절된 것으로 판정했다”고 예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문 당선자는 새누리당을 탈당하면서 “저로 인해 정치 불신이 증폭되거나 새누리당의 쇄신과 정권재창출에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인 그가 박사학위와 교수직을 위해 스포츠맨십을 헌신짝 취급하다니 그 끝없는 욕망과 인간적 나약함이 무섭고도 슬프다. 그의 논문을 분석한 학술단체협의회는 총선 전인 1일 “후보 사퇴뿐 아니라 동아대 교수직도 내놓고 국민대 역시 학위논문자격을 취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학술단체협의회가 강력한 제재를 요구할 만큼 문 당선자의 표절은 심각한 수준이다. 절반 이상이 다른 교수가 발표한 논문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영문 초록은 오타까지 똑같다. 과연 어디서 어디까지를 문 당선자가 썼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대학들의 박사학위 논문 심사가 허술하게 진행되는 것도 문제다. 국민대는 2006년 김병준 당시 교육부총리가 국민대 교수 시절에 논문을 표절했던 사실이 드러나 수모를 당했다. 김 전 부총리가 “그게 무슨 문제냐”며 열흘이상 버티다 결국 사퇴한 뒤 교육인적자원부는 각 대학에 ‘연구 윤리 확보 및 진실성 검증을 위한 규정’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이 같은 소동을 치른 다음 해인 2007년 국민대는 또 문 씨의 박사논문 표절을 걸러내지 못했다. 학계의 풍토가 원래 그런 건지 답답하다. 19대 의원 당선자 중 대학원 졸업 이상 학력을 지닌 129명(비례대표 제외)의 학위논문을 점검해 표절 여부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 새누리당 정우택, 민주통합당 정세균 당선자도 남의 논문을 무단 전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의 표절 논문이 드러날 때마다 진위 공방에 휘말릴 것이 아니라 일괄 검증함으로써 소모적인 정치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헝가리의 슈미트 팔 대통령은 20년 전에 썼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사실이 드러나 2일 사퇴했다. “내 문제가 통합 아닌 분열의 상징이 된 상황에서는 물러나는 게 저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말에 여야 의원들은 기립 박수를 쳤다.}

“우리 아버지가 리강이다.” 지난 1년간 중국 최고의 유행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 10월 허베이 성 바오딩 시 공안국 고위 간부인 리강의 아들 리치밍(22)이 외제차를 음주운전하다 여대생을 치어 죽였다. 뺑소니를 치다 잡힌 리치밍은 “우리 아버지가 리강”이라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음주운전을 해도 아버지 덕에 늘 무사했다는 내용까지 인터넷에 퍼지자 사람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결국 아들은 구속되고 아버지는 직위해제됐다. ▷리치밍처럼 고위공직자 아버지를 둔 덕에 부와 권세를 누리는 현대판 귀족이 태자당(太子黨)이다. 최근 낙마한 보시라이 전 충칭 시 서기 역시 마오쩌둥과 혁명동지인 아버지를 가진 최고위 태자당 출신이었다. 미국 하버드대를 다니며 여인들과 호화 파티를 벌인 보과과(24)가 바로 그의 아들이다. 공직에 오른 중장년 태자들은 아버지의 후광을 입으면서도 치열한 당내 경쟁으로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들이었다. 비리가 있대도 언론자유가 없어 들키지 않았고, 따라서 인민의 원성도 나오지 않았다. ▷이들의 자제인 젊은 태자들은 다르다. 귀하게 큰 자식은 버릇이 없다던가. 이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후광을 한껏 누리며 돈과 권력을 함부로 쓴다. 인터넷 시대에 언론통제가 어렵다는 시대적 변화도 모른다. 보과과가 유학생활 중 새빨간 페라리를 몰고 다니며 사치와 방탕을 즐긴 사실이 인터넷에 폭로되면서 중국의 민심이 흔들리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인 런민일보는 사설에서 연일 당 간부의 개인적 수양을 강조했다. 공산당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비리로 축소하고 싶은 듯하다. 그러나 보시라이와 보과과 사건은 태자당과 부정부패, 중국경제가 한 몸으로 엮인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중국경제가 ‘해결사’로 떠오르면서, 유능한 국가가 시장을 장악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경제’가 새로운 로망처럼 주목받았다. 하지만 현재 중국경제를 주름잡는 국영기업 대부분은 태자당과 직간접으로 연관돼 부정부패의 젖줄 노릇을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발원한 자본주의가 타락했다지만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중국의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만큼 심하진 않다. 민주주의와 양립이 불가능한 ‘태자당 경제’는 세계가 본받을 시장경제 모델이 되긴 틀렸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 다시 관심이 몰린다. 나꼼수는 그 공멸적 파워가 예상을 뛰어넘어서, 안철수는 문재인 상임고문의 낙동강 파워가 예상만 못해서다. 오만과 自尊自大의 쌍벽 보는 듯 따져보면 안철수와 나꼼수는 통하는 점이 적지 않다. 작년 9월 안철수가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 직후 가진 청춘콘서트에 나꼼수 멤버인 김어준이 나온 것도 다시 보니 예사롭지 않다. 김어준은 “내가 꼼수 읽는 데 능란하니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안철수에게 말했었다. 안철수가 나꼼수와 통한다니, 그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유일한 대선 대항마로 믿는 사람들은 무슨 불길한 소리냐고 쌍지팡이를 짚고 나설지 모른다. 하지만 첫째, ‘저질’은 아닐지언정 듣는 이를 열받게 하는 ‘막말’은 막상막하라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수영하는 사람은 수심 2m나 태평양이나 똑같다…대학교에만 있던 분이나 정치만 하는 분들보다는 (내) 능력이 뛰어나다”는 발언이 단적인 예다. ‘아시아의 물개’였던 조오련도 1980년 대한해협을 헤엄쳐 건널 때 배 세 척의 호위를 받을 만큼 준비를 했고, 근육마비에 시달리는 어려움 끝에 성공했다. 수영이든 경영이든 정치든, 남들이 목숨 걸고 하는 일을 함부로 말한다면 생각의 깊이를 의심받을 수 있다. 4일 대구 경북대에서 “내가 제3당을 창당했으면 (총선에서 의석을) 꽤 많이 확보할 수 있었겠지만”이라고 한 말이나, 대선 출마에 대해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 말도 가볍거나 자존자대(自尊自大)가 너무 심하다. 이러다 모처럼 등장한 ‘정치적 우상’이 나꼼수처럼 자기파괴력부터 발휘할까 봐 겁난다. 오죽하면 한때 멘토였다는 김종인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이 “대통령이라는 게 별다른 노력 없이 공짜로 떨어진다는 사고방식 가지면 정치 못한다”고 꼬집었겠나. 둘째, 안철수도 나꼼수처럼 어느 편인지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반(反)새누리당이 틀림없는 듯했던 나꼼수 멤버 김용민이 야권 표를 갉아먹음으로써 새누리당에서 보낸 X맨(우리 편을 망치고 상대편을 이롭게 하는 사람) 아니냐는 의혹이 나도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안철수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에 대해 “벽을 없애자고 할 때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벌레”라며 보수를 벌레에 비유(가당찮은, 어휘력 빈곤의 비유다!)한 동시에, 자신은 상식파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유시민은 선거 전 “(안철수가) 대립이나 투쟁을 선동하는 사람을 찍지 말라니, 새누리당에 우호적 발언으로 해석될 소지가 많다”고 공격했다. “계산만 하는 정치인엔 박수 없다” 민주당에서 가장 바라는 바는 안철수가 문재인 김두관 손학규 등과 경선을 하며 흥행을 일으키고는, 서울시장 후보로 박원순의 손을 들어줄 때처럼 결정적 순간에 누군가의 손을 들어준 뒤 장렬하게 산화하는 모습일 터다. 지금 같아선 안철수는 야권통합 대선후보 자리가 주어진다 해도 안 받을 가능성이 있다. 설령 받는대도 거꾸로 종북세력을 몰아내거나, 검증과정에서 자살골에 가깝게 몰락함으로써 새누리당의 X맨이 될지도 모를 판이다. 셋째, 안철수는 ‘장외에 있을 때 약발이 먹힌다’는 나꼼수의 치명적 특징까지 닮아가고 있다. 나꼼수는 B급 명랑정치풍자 팟캐스트였을 때가 제격이었다. 대안언론을 자처하고 정치세력화해 김용민 의원 만들기에 나서면서 나꼼수는 더는 웃음도, 충격도 못 주게 됐다. 김용민은 낙선 뒤 사흘도 안 돼 ‘국민욕쟁이’를 자처하며 ‘막말 포르노’를 재개할 태세다. 안철수도 재산의 절반을 내놓는다는 기부선언을 할 때까지가 감동적이었다. 어쩌면 그는 지난달 서울대에서 말했듯이, 지금까지 머물고 있는 그 자리에서 양쪽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임을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불출마 선언을 하는 즉시 안철수연구소 주식을 가진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입을 못 여는 상황이다. 가만있으면 또 주가가 내려가니 실내수영장에 발끝만 담갔다 뺐다 하다가 더는 감동도, 충격도 못 주게 됐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13일 한국정계에서 떠오른 안철수가 앵그리 버드를 이용해 청년층의 투표 참여를 독려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5년 전 12·19 대선을 가까이 두고 출마를 선언했던 이회창(11월 7일) 문국현(8월 23일)에 비하면 안철수에게 아직 시간은 많다. 2007년 초 정운찬 서울대 전 총장은 대선에 나갈 건가 말건가를 놓고 지금의 민주당인 범여권의 애간장을 녹이다 4월 30일에야 “능력도 자격도 없다”고 밝힌 역사도 있다. 그때 청와대가 내놨던 논평은 참여정부의 걸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소신에 따라 자신을 던지는 일을 주저하며 계산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소설가 이외수의 공통점은? 답은 MBC ‘무릎팍 도사’로 떴다는 점이다. 물론 그 전에 안철수에게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스토리가 있듯이 이외수에게는 블로그의 글을 모은 책 ‘하악하악’으로 오래간만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는 스토리가 있다. 성찰과 교훈이 담긴 잠언 같기도 하고, 톡 쏘는 유머와 따뜻한 감성까지 담긴 ‘촌철살인의 연금술’은 2009년 6월 트위터로 옮겨가면서 더 빛났다. 지난해 11월 3일 국내 최초로 팔로어 100만 명을 돌파해 ‘트위터 왕(王)’으로 등극한 이외수는 선언했다. “소외된 분들과 약자의 편이 되겠다.” ▷“악플 끝에 살인 나고 친플 끝에 정분 난다”던 그가 트위터 설화(舌禍)에 올랐다. 9일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 중에서도 낙후된 접경지역, 철원 인제 양구 화천을 이끌어갈 새누리당 정치인 한기호 후보를 응원합니다”라고 트윗을 올리자 일부 트위터리안이 “어떤 이유에서든 새누리당 인물을 응원하거나 추천하는 따위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며 비난했다. 이외수의 대응은 점잖았다. “저도 소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거부감에 대한 심경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사는 지역구 후보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우리 편’은 뭘 해도 옳은 반면 ‘상대편’은 뭘 하든 나쁘다는 진영논리로 들끓고 있다. 이집트에선 트위터가 민주혁명의 도구였는데 우리나라에선 ‘나와 다른 의견’을 용납지 않는 불통의 도구로 쓰이는 것 같다. 이외수가 민주당 후보들을 여러 명 추천하다가 새누리당은 겨우 한 명 추천했는데도 독선(獨善)에 빠진 트위터리안들이 난리를 친다. 트위터의 박수 소리에 취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번 선거부터 온라인 선거운동이 상시 허용된 공직선거법이 적용된다. 투표를 독려하는 인증샷은 가능하지만 허위사실 유포는 물론이고 특정 후보 지지 같은 인증샷은 금지한다는 게 선거관리위원회 설명이다. 트위터 개발자인 비즈 스톤은 “사람들이 트위터로 서로 돕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 내면의 선(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진정성이 보이는 멋진 공약이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알티(재전송)하겠다”는 이외수가 트위터를 ‘서로 돕는 도구’로 이끌고 갔으면 좋겠다. 그가 140자를 벗어난 진짜 소설을 안 쓰는 것은 안타깝지만.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2010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0.9%포인트 차로 당선됐다. 2위인 이원희 후보가 33.3%를 득표했으나 간발의 차로 낙선했다. 곽 교육감이 좌파 단일후보로 나선 반면 우파에서는 6명이 나와 65.8%의 표가 흩어진 탓이다. 전면 무상급식, 평등교육 같은 좌파적 교육에 반대한 서울시민 중엔 “누구를 찍어야 비(非)전교조 교육감이 나오냐”며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4·11총선과 함께 치러질 세종시교육감 선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모양이다. 좌파에서 최교진 전 전교조 충남지부장(노무현재단 대전충남지역위 공동대표)이 혼자 나선 반면 우파 후보로는 네 사람이 나섰다. 좌파 안에 경쟁자가 없는 최 후보는 “노무현 정신을 완성할 일곱 번째 진보교육감이 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 교육’을 원하지 않는 학부모들도 있을 터다. 이대로라면 우파 표가 넷으로 갈리면서 좌파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우파 단일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300여 개 단체가 모인 ‘바른교육국민연합’이 여론조사와 선거인단 투표로 단일 후보를 발표했다. 그러나 여권은 엉뚱한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 분열을 부채질했다. 우파 후보들은 매일 단일화를 논의하면서도 돌아서면 서로 공격했다. 선거운동에 들인 돈 때문에 못 접는다는 말이 나왔지만 보상할 방법이 없었다. 좌파는 단일화를 이뤄냈다. 사퇴 후보에 보상을 약속한 ‘후보 매수’가 드러났어도 곽노현 교육감은 선의(善意)라고 우겼다. ▷공교육살리기국민연합이 세종시 우파 후보들에게 “교육을 정치화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단일화하라”고 촉구했다. 진태화 전 충남체고 교장은 국제학교, 신정균 전 연기교육지원청 교육장은 세종과학영재고, 오광록 전 대전시교육감은 부강 마이스터고 전환, 임헌화 경희대 교수는 시립전문대 설립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이번 선거는 세종시 30여 개 초중고교 1만2000여 학생들에게 어떤 미래를 준비시킬 것인지가 달려 있다.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보듯이 전교조 교육을 선호하는 학부모가 다수는 아니다. 세종시의 진태화 신정균 오광록 임헌화 후보는 서울의 경험을 보면서도 ‘내가 이길 것’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교육감 자리를 또 전교조에 내주려는 모양이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서울대 출신 방송기자 윤범기는 ‘한포우사’를 차릴까 고민한 적이 있다. ‘한국여자 포기하고 우크라이나 여자 사랑하는 남자’를 겨냥해 결혼정보사업을 하면 장사가 될 것 같아서다. 그의 여자친구는 신도림동 전세 2억 원짜리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린 친구네를 가보고는 ‘이 정도 안 되면 결혼 못 한다’고 믿는 눈치였다. 그래서 헤어졌다. 개룡뻔남(개천에서 난 용이 될 뻔한 남자)인 그에게는 불가능했다. 전문대를 나와 비정규직으로 월 120만 원을 받는 36세의 쌍둥이 형도 결혼은 언감생심이다. 단군 이래 최초로 서울의 보통 총각도 빈곤국 여성 아니면 결혼을 못하는 시대가 왔다! 그래서 낸 책이 ‘결혼불능 세대’다.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취업 포기의 ‘삼포세대’를 겨냥한 책은 적지 않다. 위로 마케팅의 진수를 보여준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있고, 2007년 “그들에게 필요한 건 바리케이드와 짱돌”이라고 주장한 ‘88만원 세대’도 있다. 이른바 진보 성향인 우석훈은 책을 읽고도 싸우지 않는 청년들에게 실망했다며 최근 절판 선언을 했다. ‘결혼불능 세대’는 바로 그 진보 진영의 해법이 잘못이라고 판을 확 뒤집는다. ▷연애를 하려면 직업이 필수다. 문제 해결의 핵심도 일자리 창출에 있다. 좌파의 만병통치약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다. 하지만 이 책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라는 건 기업더러 신규 채용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김진숙 씨의 고공크레인 농성 때 “희망버스는 진보의 재앙”이라고 비판했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의 입을 통해서다. 세계화와 중국이 존재하는 한, 비정규직 자체가 정상인 세상이 됐다. 비정규직으로도 살 수 있도록 동일임금 동일노동의 ‘플라스틱 밥그릇’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마음 놓고 일하는 일자리가 많아지면 여성이 아기 낳고 2∼3년 기르다 다시 일하는 것도 어려울 게 없다. 오전 11시∼오후 3시 근무 같은 유연 근로가 다양해지면 보육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된다. 그런데도 좌파가 비정규직 철폐나 무상보육처럼 비현실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건 “그들이 사회적 약자가 아닌 상위 10∼20%를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질타했다. 진보의 선의만 믿다간 진짜 결혼불능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집권 중 연평균 7% 경제성장을 약속했다. 그러나 취임 첫해 성적은 전년도의 반 토막도 안 되는 3.1%다. 임기 절반도 안 돼 국민 10명 중 7명이 “대통령 잘못한다”며 부동산정책과 물가불안, 빈부격차, 실업문제를 지적했다.‘태평성대’로 기억하는 사람들 이명박(MB) 정부 얘기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8월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의 국정운영 평가 여론조사 결과다. ‘광화문에 빌딩을 가진 신문사’ 조사여서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2008년 2월 시사저널이 “노무현이 다시 출마하면 지지하겠나” 물었더니 10명 중 8명이 아니라고 했고, 7명은 노무현 세력의 조직화에도 반대했다. 지금 선거판에는 노 정권을 태평성국(太平盛國)으로 띄우는 사람 천지다. 민주통합당이고 통합진보당이고 ‘노무현 정신’으로 집권해야만 화합과 소통이 넘치고 양극화가 사라질 것처럼 외치고 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놓고도 각기 다르게 말하는 이런 현상을 ‘라쇼몽 효과’라고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에서 한 사무라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살인 용의자와 사무라이의 아내, 목격자, 심지어 사무라이의 혼백이 전혀 다른 말을 한 데서 나온 용어다. 누군가는 거짓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사람의 기억은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라 슬라이드 같아서 정확하게 복기하긴 힘들다는 거다. 당시의 그리고 현재의 상황은 물론이고 감정과 주변 반응에 따라 사실과 다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정신을 내거는 것도 MB에 대한 반감을 겨냥한 득표 전략이라고 이해는 한다. 그러나 마오쩌둥도 공(功)이 70%, 과(過)가 30%로 평가받는데 노무현처럼 공이 99%요, 과는 1%도 안 되는 듯이 숭배되는 건 가히 신의 경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부활한 것처럼, 그는 부엉이바위에서 죽음으로써 대한민국의 구원자로 부활한 형국이다. 하지만 내 기억이 아니라 기록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는 화합과 소통이 아니라 ‘파업 공화국’이었다. 출범 무렵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진 MB정부와 달리 노 정부 5년은 세계경제가 유례없는 호황이었는데도 우리의 연평균 성장률은 아시아 네 마리 용 중 꼴찌(4.3%)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정도만 빼고는 반(反)시장 반법치 친(親)노동의 좌파적 포퓰리즘으로 밀어붙인 탓이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개혁이라며 절반 이상의 국민을 개혁의 적처럼 몰던 그 지긋지긋한 갈등은 치매에 걸린대도 못 잊을 판이다. 그때도 시대착오적이던 정책기조를 노무현교(敎) 신자들은 더 뒤쪽으로, 한참 좌측으로 뭉쳐서는 ‘2013년 체제’에서 구현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좌로, 더 후진해 ‘사람 사는 세상’? 이 난리통에 진짜 노무현 정신에 정통한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진보진영의 믿음은 틀렸다”고 나선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집권만 하면 ‘종으로 살아온 99%’를 위한 태평천국을 열겠노라는 그들에게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는 책으로 세금폭탄 아닌 경고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대도 승리는 오래갈 수 없다. 분노를 일으켜 집권해서는 더 큰 분노의 부메랑을 맞을 게 뻔하다. 이슬람 국가로 치면 간신히 벗겨낸 부르카(여성 전신을 가리는 베일)를 수구꼴통 탈레반이 돌아와 다시 씌우겠다는 것처럼 시대와도, 세상과도 안 맞는 정책들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증오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김병준은 강조했다. 성장 없이 복지만으론 양극화 문제를 풀 수도 없다. 특히 일자리 문제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면 한미 FTA는 반대할 수가 없는 사안이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장벽이 열리면서 2040세대를 위한 더 좋은 일자리가 쏟아질 수 있는데 이를 막는 건 무책임하거나 무능하다. 공산주의가 무너질 무렵 ‘역사의 종언’을 썼던 미국 스탠퍼드대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지난해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에서“글로벌 위기를 겪는 서구의 큰 시장 작은 정부와 개발도상국은 한참 멀다”며 탈규제와 시장자유화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참여정부 때는 안 하고 못 했던 정책기조를 김병준은 늦었지만 성실하게 책으로 풀어냈다.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한다면서도 전·월세 상한제, 비정규직 폐지 같은 정책으로 서민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기려는 노무현교의 숱한 ‘입 진보’들과 대조적이다. 이 나라에 살지도 않으면서 “정부 역할 강화하라” 방언을 터뜨리고는 시장이 펄펄 뛰는 영국으로 가버리는 장하준 교수 역시 입 진보가 아닐 수 없다. 안철수 교수가 대통령만 되면 당장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것같이 말만 하고는 사라지는 것도 입 진보임을 입증하는 게 아닐까.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2005년 평양산원에서 10월 10일 날 잡아 제왕절개로 딸 출산!… 황선 후보는 북한 원정출산 이유를 밝혀라!” 국민생각의 전여옥 대변인의 화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황선 예비후보가 7년 전 출산이 임박한 시기에 굳이 방북을 강행한 것은 ‘원정출산’이라고 19일 트위터에 올리면서부터다. SNS 공간엔 “황선이 낳은 아이는 평양시민권을 얻는 건가?” “어린 딸에게까지 색깔 칠을 하는 수꼴”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황선은 1998년 덕성여대 재학 시절 8·15통일대축전에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표로 방북했다 옥고를 치렀다. 당시 한총련 간부로 자신을 북에 보냈던 윤기진 씨(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의장)가 지금의 남편이다. 그들의 둘째 딸 ‘겨레’는 조선노동당 창당 60주년 기념일인 2005년 10월 10일 오후 10시 평양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당시 동아일보는 ‘출산예정일이 17일이던 황 씨는 1박 2일 일정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평양을 방문해 이날 오후 8시부터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던 중 갑자기 산통을 느껴 구급차로 평양산원에 옮겨졌다’고 보도했다. ▷전 대변인은 “북한 원정출산이 미국 원정출산보다 더 반(反)국가적”이라고 공격했다. 황선도 트위터로 “산부인과에 물어보라”고 일축했다. ‘통일둥이’를 만들려고 제왕절개로 날짜까지 맞춘 건 아니라는 말 같다. 황선은 과거 인터뷰에서 “그저 맘 편히 관광을 갔다가 평양에서 뜻밖에 겨레를 얻었다. 출산예정일이 일주일 정도 남아 있던 터라 아이가 태어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아무튼 둘째 아이는 그 일로 아주 특별한 고향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진오비)’ 최안나 대변인은 “주치의가 출산이 임박한 산모의 여행을 허용하는 일은 산모가 거기서 아기를 낳을 의지가 있거나, 낳아도 괜찮다고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38주 이상 된 태아는 산통이 없더라도 제왕절개를 통해 출산이 가능하다. 좌파 인터넷매체 자주민보에 실린 황선의 글 ‘나와 겨레가 방북을 신청한 이유’에는 김정일 사망 소식에 “평화를 먼저 배운 아이들이 묻는다. 평양 할아버지한테 절하러 안 가?”라는 구절이 들어 있었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조폭을 당장 열 받게 만들 수 있는 말이 ‘양아치’다. 의리도 없고, 주먹도 못 쓰면서 서민들한테 ‘삥’이나 뜯는 양아치와 동급으로 간주될 순 없다는 거다. 민간인 불법사찰에 청와대가 관련됐다는 새 폭로보다 놀라운 건 비서관이 총리실에서 상납을 받아 왔다는 주장이었다. 관련 컴퓨터를 파기해 유죄를 선고받은 장진수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 따르면, 그 방에 나오는 특수활동비 400만 원 중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에게만 120만 원을 주고 나머지 280만 원을 대통령실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200만 원, 조재정 행정관 50만 원, 최종석 행정관 30만 원으로 갈라 2년간 바쳤다고 했다. 게다가 컴퓨터를 없애라고 지시했다는 최종석은 평생 먹고살게 해준다더니 의리 없이 주미대사관으로 나가 지금 잠적한 상태다. 이영호는 입막음용으로 2억 원도 아닌 2000만 원을 쩨쩨하게 전하고는 모른 체했다는 주장이다. 청와대 일각에서 양아치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폭로가 터무니없다면, 대통령실장은 당장 장진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마땅한데도 조용하다. 그냥 있자니 국민이 사실로 알 테고, 나서자니 그럼 청와대가 증거인멸을 시킨 건 맞다는 의미로 보일 판이니 난감할 터다. 이런 황당한 상황을 보니 전에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했던 조폭 누나 같은 말이 생각난다.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민간인 사찰 ‘몸통’이 누구냐 더 난감한 쪽은 검찰일지 모른다. ‘윗선’을 찾아내라는 성화에 떠밀려 내일 장진수를 소환해 재수사한다지만 다음 타자 최종석 이영호가 입 다물면 그만이다. 간신히 두 사람을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기소한다 해도 국민이 납득할 리 없다. 야권과 적잖은 국민이 사찰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몸통’은 따로 있다고 인식하고 있어서다. 진실로 이영호 혼자 과잉충성으로 한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 시절 옷로비 사건은 실체 없는 로비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청와대는 늘 아니라고 잡아떼다 양치기 소년처럼 돼 있다. 더구나 인식이란 팩트(fact)와 상관없는 괴물이다. 2010년부터 거명되다 급기야 다이아몬드 투자 구설수에 오른 ‘왕차관’(박영준)과 장롱 속에 수억 원이 있다고 고백한 ‘형님’(이상득)까지 밝혀내지 못하면 검찰만 개혁의 칼날을 맞을 게 뻔하다. 의혹이 속 시원히 규명되지 않을 때 뭔가 공정치 못하다는 의심과 분노가 치솟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꼼수다’ 팟캐스트가 판을 치고, 그런데도 공정사회를 외친 이명박(MB) 정부에 2040세대는 더 분노한다. 당연히 야권엔 선거용 호재다. 재수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특검이나 국정조사 요구를 할 것이다. “이러자고 당시 민정수석 권재진이 법무부 장관에 앉았느냐”며 사법부를 공격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선까지 집요하게 정권 심판론을 외쳐댈 게 틀림없다. 2007년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도 그랬다. 국정원 태스크포스에서 MB 처남의 부동산자료까지 파헤친 사실이 드러났다며 민간인 불법사찰 배후를 거세게 캐물었다. 당연히 국정원은 잡아뗐지만, 김영삼 김대중 시절 민간인까지 도청을 했던 사실이 2005년 뒤늦게 밝혀진 바 있다. 작년 1월 박영준 당시 지식경제부 차관도 “청와대의 하명으로 정권에 위해가 될 수 있는 인물을 사찰하는 관행이 37년”이라고 했다. 권력을 아는 쪽에서 보면 잘못은 민간인 사찰 자체가 아니라 들켰다는 데 있는지 모른다. 그런 오랜 관행, 2040세대 용어로는 ‘꼼수’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걸 MB 정부가 모르는 게 문제다. 법치를 말하면서 자신들은 반칙과 특권으로 살아온 그 꼼수를 버리지 않고는 정권 재창출은커녕 ‘형님’을 제대로 모시기도 힘들 수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전당대회 돈봉투’ 관행 때문에 박희태 국회의장은 물러났다. 만일 그가 돈봉투 설이 나오고도 한 달 이상 끌게 아니라 “관행이지만 잘못됐다. 내가 깨끗한 정치풍토를 만드는 발판이 되겠다”며 바로 물러났다면 뒷모습이라도 아름다웠을 것 같다. “나를 밟고 가라”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다음 정권까지 국민적 에너지를 소모시킬지 모를 민간인 사찰도 MB가 실용적 결단을 내리면 빠른 수습이 가능하다. 한보사건으로 들끓던 1997년 김영삼 대통령처럼 나서는 것이다. 2월 25일 취임 4주년 담화에서 YS는 “제 자식이 책임질 일이 있다면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결국 대검 중수부장이 갈리며 재수사를 해 ‘몸통’을 밝혀낼 수 있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너무나 멋있는 왕 이훤이 “바를 정(正)…저의 순리는 틀린 것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정치는 잘못된 관행부터 잡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보수가 의리도 없고,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한 채 제 잇속만 차리는 집단이라고 믿는 2040세대와도 화해할 수 있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민주통합당의 대표적 경제통인 강봉균 의원이 그제 민주당 탈당과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여야가 퍼주기 복지경쟁을 하면서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정치권에 직격탄을 날렸다. 강 의원은 “정치권이 정권을 잡는 데만 혈안이 돼 국민경제를 위협하는 공약들을 쏟아낸다”며 “그런데도 (무상복지) 바람이 부니까 아무도 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가 살아온 이력을 보면 낙천 분풀이 발언이라고 폄훼하기 어려운 진실(眞實)을 담고 있다. 강 의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하면서 외환위기 극복에 기여했고 16대부터 3선을 하는 동안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저기 듬뿍듬뿍 퍼주는 포퓰리즘 정책을 하면 (얼마 안 가) 나라의 곳간이 텅 빌 것”이라는 강 의원의 경고는 나라살림을 책임져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무효화 등 대외 개방에 대해 폐쇄적으로 가면 한국경제의 앞날이 걱정된다”고 민주당에 쓴소리를 했다.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강 의원의 이런 정체성을 문제 삼아 낙천시켰다. 나라가 어디로 흘러갈지 걱정스럽다. 민주당은 친노(친노무현) 강경세력이 주류를 장악하면서 합리적인 사람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 등 요직을 지낸 김진표 원내대표도 공천심사위의 정체성 시비에 걸려 낙천 위기에 몰렸다가 겨우 살아났다. 그 과정에서 김 원내대표는 강경파들의 비위를 맞추는 듯한 언행을 해 구차한 ‘정체성 세탁’이라는 말을 들었다. 경제 양극화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을 위한 복지 확충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재정이 한정돼 있는 만큼 모두가 똑같이 나눠 갖는 보편적 무상복지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의 기본적 생존권부터 보호해주는 일이 우선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4년간 164조 원을 국채 발행이나 세금 신설 없이 퍼주겠다는 무책임한 공약을 내지르고 있다. 2006년 당시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던 강 의원은 “분배니 뭐니 거대담론은 헛소리”라며 대기업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경제 활성화 정책을 주장했다가 친노 세력에 비토당한 바 있다. 동아일보는 2007년 1월 6일 사설에서 “강 의원 같은 사람들이 정부 여당의 주류였다면 지금처럼 국민의 지지가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민주당은 그때와 비슷한 상황을 자초하려는 것인가.}

사람 팔자 시간문제다. 한 달 전만 해도 보시라이 중국 충칭 시 서기는 태자당의 대표주자로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예약한 듯했다. 그러나 2월 6일 왕리쥔 충칭 시 부시장이 보시라이를 비난하며 미국 망명을 기도하다 체포되면서 보시라이의 운명도 예측불가다.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해 충칭의 경제개혁을 골자로 한 ‘충칭 모델’을 설명했지만 예전처럼 당당한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충칭 모델이란 보시라이가 자랑하는 ‘강한 (지방)정부와 강한 (국영)기업’ 정책이다. 잘 키운 국영기업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서민층에 주택과 의료 일자리를 아낌없이 제공했더니 충칭 시 국내총생산(GDP)이 연평균 15%, 중국 전체를 뛰어넘는 마법 같은 성과를 냈다는 것이다. 보시라이는 예서 그치지 않고 성역 없는 사정으로 부패 관료와 기업주를 처단했다. ‘마오쩌둥의 깃발’을 쳐들고 충칭 시민을 대상으로 수구좌파적 정신무장에 힘썼다. 국내 일각에선 이 모델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뒤집는 새로운 컨센서스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고통받을(?) 국내 경제의 대안처럼 소개되기도 했다. ▷보시라이가 통 큰 분배와 성장정책을 함께 펼칠 수 있었던 ‘비결’이 최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 소개됐다.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충칭의 30대 부자가 됐으나 조폭 관련 혐의로 전 재산을 빼앗기고 추방된 리준이라는 사람의 사연이다. 그는 2009년 군용지에 럭셔리 아파트를 짓는 샹그릴라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느닷없이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는 허위 범죄 사실을 고백했다며 “충칭 모델이란 법과 인권을 무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붙잡아 보시라이의 권력욕을 채우는 것”이라고 폭로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인 보시라이의 아들 보과과는 중국 인민 평균소득의 수백 배가 넘는 새빨간 페라리를 모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패 척결에 앞장선 아버지와 달리 호화판 생활을 하는 ‘붉은 귀족’이다. 이런 이중성을 빤히 아는 여성들은 “자전거 위에서 웃느니 세단 뒤에서 우는 게 낫다”고 말한다. 평생 가난한 인민으로 사는 것보다는 ‘귀족의 숨은 여자’가 되는 게 낫다는 의미다. 정부가 너무 강하면 인권과 법치, 시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계은행은 최근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여야만 경제위기를 면할 수 있다는 ‘중국 2030’ 보고서를 내놨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같은 여자로서(라는 표현은 정말 싫지만)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청탁 전화설’ 파동을 보는 심경은 복잡하다. 엄친딸(엄마친구 딸)이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나경원은 예쁘고 공부도 잘해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사’자 붙은 남자에게 시집까지 잘 간 데다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여자다. 겉으로만 보면 서울대 출신 탤런트 김태희가 돌연 비례대표가 되고서는, 나이 들어도 늙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남자들의 로망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1억 피부과설’이 불거졌을 때 그래서 여자들은 놀라지 않았다.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면서도, 나경원 같은 엄친딸이 기득권 구조를 또 한 번 굳히는 게 싫어 박원순 후보를 찍었다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다.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아니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지만 않았다면 얼마든지 곱고 편하게 살 수 있었던 나경원이 ‘고행’을 자처한 데서 나는 우파의 전형을 본다.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자유주의 우파의 핵심 가치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다. 학생 때 공부 열심히 해서 원하는 대학을 간 것처럼, 나경원은 야당 대변인 때나 시장 후보 때나 TV토론을 앞두고는 밤새워 시험 공부하듯 준비한 덕에 “똑똑하게 말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당이 시장 후보를 못 구하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섰다가 낙선한 뒤 “내 선택에 책임지는 것이 맞기 때문에 (당을 위한 희생을) 후회한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한 말은 요즘처럼 남 탓 넘치는 세상에 감동마저 준다. 나경원을 엄친딸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보면, 더 많아져야 할 국민상(像)이지 증오 대상일 순 없다는 얘기다. 국가 정체성·우파 기득권에 공격 그는 정치를 하게 된 큰 이유가 아픈 딸을 키우면서 사회를 바꿀 필요성을 느껴서라고 했다. 보수라는 사람들이 사회에 무책임했기 때문에 비판받았다며 “분명한 원칙 속에서 자신의 행동과 인권 문제 등 사회문제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라고 2005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말했다. 말로만 진보가 외면해온 북한인권법 제정안을 2005년부터 주도한 사람이 나경원이다. 지금은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당심이 바뀌었지만 그가 주장한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어려운 사람부터 복지를 확대하는 ‘정직한 복지’는 진정한 보수의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시시한 남성의원 수십 명보다 나았던 나경원에게 유독 말도 안 되는 공격이 집중된 이유를 “나경원 자체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자 기득권이기 때문에 종북세력으로서는 타파해야 할 대상”이라고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지적했다. 전후 사정과 상관없이 현재 사안의 핵심은 나경원의 남편 김재호 부장판사가 아내의 사건과 관련해 박은정 검사에게 청탁 전화를 했느냐가 됐다. 나경원은 “기소청탁을 한 일은 없다”면서도 전화를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당사자가 밝히는 게 우선이고 수사를 해서라도 밝혀야 할 일이지만, 어쩌면 통화는 했으되 청탁이라고 할 순 없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성명대로 김 판사는 탄핵받고 나경원은 정계은퇴를 할 사안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특히 나경원이 오세훈 전 시장 편에 섰다가 낙선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서 낙천시킬 궁리를 하는 새누리당 일각에선 계산을 잘해야 한다. 앞으로 줄줄이 나꼼수가 쏘는 대로 날아가는 제물이 나올 수 있다.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로 수감 중인 정봉주 전 의원을 놓고도 마케팅을 하는 민주통합당과는 게임도 안 된다. 오죽하면 변희재가 “종북이면 이념이나 있고, 친노면 의리나 있고, 나꼼수는 재주라도 있지, 새누리당은 진짜 무능좀비”라고 트위터로 칼을 날렸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일이 생겼을 때 ‘전화 한 통’ 해볼 대상이 없는 보통 국민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게 사실이다. 나경원 스스로도 “정치인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국민이 옳지 않다고 도덕적으로 판단하면 비난받을 수 있다”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강조했다.‘전화 한 통’ 특권도 내려놓을 때다 혈연 학연 지연의 기득권 구조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말고는 아쉬운 적 없이 살아온 세력은 이제 전화 한 통의 관행도 반칙이 되는 시대임을 깨달아야 한다. 일만 잘하면 된다고 믿어온 능력주의 우파라면 효율성을 중시하는 그 깐깐함이 적잖은 사람에게 차별과 소외로 작용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높은 사람, 있는 사람부터 더 내려놔 갈등을 푸는 게 시대적 흐름이고 과제다. 단, 대안 없이 분노만 자극해 정권을 잡으려는 세력에게는 결국 그 분노의 칼이 부메랑이 돼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다. 바로 노 정부의 한 실세였던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는 책에서 한 말이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