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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만7000원을 받았습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 사용한 노래의 저작권료예요. 가사를 제가 썼거든요. 영화가 TV 등에서 아무리 많이 방영돼도 제게 돌아오는 건 없는데 노래 덕분에 수입이 생기네요.” 지난달 민규동 영화감독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독은 연출에 따른 계약금을 받는 게 전부라고 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추가 수익을 얻지만 손익분기점을 넘는 건 15%에 불과하다는 것. 계약금 외 수익을 갖는 감독은 극히 소수라고 했다. “저를 비롯해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이 많은데요, 여러 플랫폼에서 영화가 방영되어도 시나리오 작가료, 연출료를 못 받아요. 모두 제작사의 몫이죠.” 민 감독은 어려운 환경에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 때문에 창작 의지가 꺾인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영화감독조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받은 연출료를 연봉으로 환산한 결과(2017년 기준) 수입이 아예 없거나 500만 원 미만이 39%, 500만 원 이상 1000만 원 미만이 21%였다. 감독 5명 가운데 3명은 한 달 평균 소득이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셈이다. 민 감독은 “독신인 감독이 많은 건 이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대학 강의를 할 수 있으면 다행이고, 배우자가 생계를 책임지거나 빚을 내 사는 감독도 적지 않단다.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출판계도 그렇다. 이성미 시인은 “원고료 대신 정기구독권이나 문예지를 주거나 씻어도 씻어도 검은 물이 나와 먹어도 되나 싶은 쌀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원고료를 아예 못 받기도 한다. 한 시인은 “원고료가 얼마인지 물어보기가 민망해 일단 원고를 보냈다. 한참 뒤 편집자가 전화해 ‘경영 상태가 어려워 원고료를 지급할 수가 없다. 미안하다’고 한 적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일을 숱하게 겪은 후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반드시 원고료를 확인한다고 했다. 작품이 실패하면 출연료를 못 받기도 한다. 유명 원로 배우는 3년 전 방송 프로그램이 조기 종영되면서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낀 다른 배우는 촬영 때마다 “출연료를 먼저 주지 않으면 안 찍겠다”고 버텨 유일하게 출연료를 받아냈다고 한다. 원로 배우는 “그런데 촬영 현장에서 그렇게 하기가 어디 쉽나…”라며 말끝을 흐렸다. 코로나19 사태로 예술 현장이 멈춰서면서 문화계 종사자들은 질식 직전에 처했다. 정부는 긴급 지원에 나섰다. 급한 불은 빨리 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창작물에 따른 수익을 체계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지급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꼭 필요하다. 정당한 보상이 담보돼야 의욕적으로 창작 활동에 몰입할 수 있고, 이는 더 좋은 결과물로 이어진다. 민 감독은 말했다. “단 한 명이라도 영화를 본다면 수익의 일부분이 감독에게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창작물을 만들고 이에 대한 권리를 지닌 이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요나라 승려 행균이 997년 펴낸 한자 사전인 용감수경(龍龕手鏡). 고려시대에 목판에 새겨 제작한 용감수경은 국보 291호다. 중국에도 남아 있지 않은 세계 유일본이다. 이 국보는 현재 고려대 도서관에 있다. 용감수경을 비롯해 삼국유사, 용비어천가 등 보물 7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까지 고려대 도서관은 모두 16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고서 12만여 권 가운데 귀중서는 1만 권가량이다. 조선시대 규장각을 이어받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을 제외하면 대학 도서관으로는 희귀본 소장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이례적이다. 고려대 도서관은 국보와 보물, 귀중서 50점을 담은 도록(圖錄) ‘카이로스의 서고’(양장본 9만 원, 비양장본 5만 원·사진)를 발간한다. 카이로스는 그리스어로 기회, 특별한 시간을 의미한다. 책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만들었기에 문화재와 귀중서에 대한 설명을 한글로 쉽게 풀고 영어도 병기했다. 이재용 사진작가가 촬영을 담당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국보, 보물이 고려대 도서관으로 가게 된 건 기증과 매입을 통해서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의 유족은 고서 수집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던 육당이 보관하던 2만2000여 권을 기증했다. 용감수경과 삼국유사(보물 419-4호), 훈민정음이 이에 포함됐다. 초판본으로 인쇄 상태가 뛰어난 용비어천가(보물 1463-4호)와 고려시대 문인 최해가 빼어난 문장을 선별해 정리한 시문선집인 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보물 710호)은 변호사였던 만송 김완섭의 유족이 기증했다. 만송은 수임료를 받으면 일본 등 해외로 반출될 뻔했던 고서들을 꾸준히 사들였다. 선생이 고려대에 출강한 인연으로 유족은 1975년 고서 1만9000여 권을 기증했다. 학교는 감사의 뜻으로 5000만 원을 출자해 ‘만송장학금’을 만들어 현재까지 운용하고 있다. 조선시대 전국 팔도에 있는 봉수대를 표기한 지도인 해동팔도 봉화산악지도(보물 1533호)와 김정호가 만든 전국 지도책인 청구도(보물1594-3호)는 학교가 매입했다.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는 적색, 황색, 녹색, 청색 등을 사용해 봉수대는 물론이고 산을 세밀하게 그리고 바다도 물결을 곡선으로 율동감 있게 표현해 한 폭의 그림 같다. 청구도는 두 권으로 나뉘어, 완성된 지도를 보려면 두 책을 위아래로 놓고 나란히 펼쳐야 한다.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는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1935년 도서관을 착공하고 1937년 완공했다. 석영중 고려대 도서관장(노어노문학과 교수)은 “귀한 손님에게 보물창고를 열어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도록을 발간했다”며 “섬약하면서도 질긴 종이에 담긴 강건하고 항구한 에피스테메(지식)에 바치는 헌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맛난 개암 세 알을 가진 너구리. 두 알을 먹고 세 번째는 위로 던져 받아먹으려는데, 아뿔싸. 땅속 구멍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가 나 두 발로 땅을 쾅쾅 찬다. 한숨 자고 난 너구리에게 까마귀가 엄청난 얘기를 들려준다. 낮잠 자던 호랭이가 노루에게 배를 콱 밟혔다는 것. 호랭이에게 잡힌 노루는 구렁이가 쫓아와 놀라서 펄쩍 뛰었다고 한다. 구렁이는 멧돼지들이 달려와서, 멧돼지들은 두더지가 튀어나와서 그랬다. 두더지는 굴러온 개암을 먹는데 갑자기 땅이 쿵쿵 울리고 집이 무너져 개암이 목에 걸리는 바람에 숨이 막혀 급히 땅을 파고 올라왔다는데…. 곤경에 처한 친구들 소식에 키득거리다 두더지 얘기에 얼어붙는 너구리의 표정 변화에 웃음이 쿡쿡 나온다. 아파서 몸부림치는 호랭이, 놀란 노루와 구렁이, 멧돼지. 모두 생동감이 가득하다. 익살맞은 이야기와 장면들은 보고 또 보게 된다. 친구에 대해 생각할 거리도 유쾌하게 던진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배리어 프리 영화’는 시청각장애인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고 비장애인은 코멘터리를 듣는 기분으로 새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간신’ 등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50·사진)이 말했다. 장벽 없는 영화라는 뜻의 배리어 프리 영화는 시청각장애인이 볼 수 있게 영상과 소리를 음성으로 설명하고 대사는 자막으로 해설한다. 민 감독과 ‘감쪽같은 그녀’의 허인무 감독, 오하늬 배우, 시각장애인 아나운서 이창훈이 23일 서울 중구 현대오일뱅크 사옥에서 배리어 프리 영화를 주제로 토크쇼를 열었다. 현대오일뱅크 현대중공업 등의 직원들이 급여 1%를 기부하는 ‘현대중공업그룹 1%나눔재단’의 지원으로 올해 ‘감쪽같은 그녀’와 애니메이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가 배리어 프리 영화로 탄생했다. 재단은 매년 영화 2, 3편을 배리어 프리로 제작하도록 지원하고 토크쇼 영상은 전국 맹학교에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민 감독은 윤제균 감독과 함께 2018년부터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를 맡아 배리어 프리 영화 제작을 위한 재능기부를 독려하고 있다. 민 감독은 농담처럼 “감독조합 대표를 맡아 주로 하는 게 중개업”이라며 웃었다. 민 감독도 2014년 한지민 배우와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를 배리어 프리로 제작했다. 민 감독은 “장면에 담긴 모든 걸 해설할 수 없기에 핵심을 뽑느라 고민했다. 의미를 잘못 전달할까 봐 걱정도 되고…. 바람이 솔솔 부는데 어느 정도 세기로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묘사하는 것도, 음악을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액션 장면이나 화면 전환이 빠른 경우, 사람이 많이 나오는 장면도 말로 옮기는 게 까다롭다. 그는 “그럼에도 시각과 청각을 언어화하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좋아하는 영화를 찬찬히 다시 음미하는 것도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허 감독은 “‘감쪽같은 그녀’를 배리어 프리로 만들며 놓쳤던 포인트를 다시 풍성하게 살려내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 아나운서는 “중학생 때 ‘공동경비구역 JSA’를 배리어 프리로 봤다.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각 장면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어 정말 놀라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한 해 상영되는 영화는 1700여 편이지만 배리어 프리로 제작되는 건 30편가량으로 2%가 채 되지 않는다. 사단법인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2011년부터 매년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열고 있다. 민 감독은 “제작된 영화가 배리어 프리로 만들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 되고, 더 많은 영화가 장애를 넘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돼지치기 소녀 요릿. 숲에서 압둘라 아저씨가 숨진 채 발견되자 조사관으로 로봇 리처드가 파견된다. 숲길을 안내하던 요릿과 리처드는 구덩이에 빠지고, 뱀 같은 몸뚱이에 늑대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나타난다. 뜻밖에 괴물은 둘을 구덩이에서 꺼내준 뒤 “나는…누구…입니까?”라고 묻고는 사라진다. 요릿은 괴물을 만든 로봇 닥터 프랑켄에게 붙잡히는데…. 자만하던 인간이 자신들이 개발한 로봇에게 지배당하는 현실을 생생하고도 긴장감 있게 그렸다. 로봇이 책을 모조리 압수하지만 알퐁스 도데의 ‘별’,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수도원’ 등을 구전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지식과 지혜를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제3의 존재라는 뜻으로 괴물에게 ‘써드’라는 이름을 지어준 요릿. 서로 교감하고 우정을 나누는 요릿과 써드, 리처드는 달라도 함께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캐릭터를 차용한 건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다가온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2015년 표절 파문으로 칩거하다 지난해 중편소설을 발표했던 신경숙 소설가(57·사진)가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창비는 ‘창작과비평 웹매거진’(magazine.changbi.com)에 신 씨의 신작 장편 ‘아버지에게 갔었어’ 연재를 23일 시작했다고 밝혔다. 고통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화요일과 목요일에 싣는다. 신 씨는 ‘연재를 시작하며’에서 “당신 뜻대로 되지 않은 힘겨움 앞에 서 계시는 나의 아버지께 이 작품을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쓴다고 말하고 싶으나 사실은 오그라든 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신 씨는 2015년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활동을 중단했다. 지난해 5월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중편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를 발표하며 표절 문제에 대해 처음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표절을 인정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계속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시몬이 학교에서 받은 질문이다. 대답을 하지 못한 시몬.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들은 비밀이라며 “꿈이 답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잠든 시몬은 꿈에서 벌새, 지네와 이야기를 나누지만 만족스러운 답을 찾지 못한다. 달콤한 딸기 향을 맡은 시몬은 딸기를 키우는 농부가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한데 다람쥐가 다가와 이렇게 말하고 사라진다. “네가 원하는 것이면서도 항상 될 수 있는 것.” 작가는 아이들이 자주 받는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특정한 직업을 찾는 건 아니다. 다람쥐의 말은 나란 존재는 누구인지, 진정한 내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던진다. 아이도, 어른도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 과감하면서도 몽환적인 그림은 생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게 만든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50세가 넘어 처음 가본 요리교실. 일본 라멘 위에 올려 먹는 간장에 조린 계란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평소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았기에 재미나기 그지없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퇴근 후 집에서 매일 혼자 해봤다. 한 달간 간장에 조린 계란만 100개. 아내는 “이 많은 걸 누가 다 먹느냐”며 핀잔을 줬지만 자꾸 만들고 싶었다. ‘연희동 요리교실’로 유명한 일본인 나카가와 히데코 씨(53)가 들려준 50대 남성 수강생의 이야기다. 나카가와 씨는 요리를 배울 때 그의 모습에 대해 “재미있는 걸 발견하고 곧장 빠져든 아이 같았다”고 말했다. 나카가와 씨는 이처럼 호기심에 가득 찬 이들을 종종 만난다. 시부모를 모시고 자녀 둘을 키운 한 50대 전업주부는 유일한 취미가 요리교실에 다니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요리를 카메라에 담고 싶어 사진 찍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요리교실에 올 때마다 카메라를 메고 와 꾸준히 사진을 찍던 그는 결국 사진가가 됐고 스튜디오를 열어 운영하고 있다. 나카가와 씨의 아버지도 그렇다. 프랑스 요리 셰프였던 아버지는 운영하던 식당이 쉬는 날이나 다소 여유가 있는 낮 시간에 요리교실을 열었다. 어려운 프랑스 요리를 일반인도 만들 수 있게 레시피를 바꿔 가르치기도 했다. 2011년 은퇴했지만 지금도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다. 그의 나이는 86세다. 몰입한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에게서는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시 같은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의 노래로 잘 알려진 가수 루시드폴(45)은 매일 나무의 소리를 채집한다. 제주에서 귤, 레몬 농사를 짓는 그는 나무에 센서를 연결해 소리를 모은 뒤 이를 음악으로 바꾸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나무에 수액이 흐를 때 나는 소리가 있어요. 연주를 들려준 뒤 나무가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도 확인해 보려 해요. 나무들은 뿌리를 통해 서로 신호를 주고받아요. 옆의 나무가 쓰러지거나 베어져서 광합성 작용을 못 하면 다른 나무가 양분을 나눠 주죠. 나무가 내는 소리가 궁금해요.” 한데 듣고 있자니 그 방법이 꽤 어려울 것 같았다. 생명공학 박사인 그이기에 가능한 작업이 아니냐고 묻자 웃음을 터뜨렸다. “절대 복잡하지 않아요. 문과생도 할 수 있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미 충분히 즐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카가와 씨는 “요리를 통해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 진짜 많다”고 했다. 요리를 함께 만들어 나눠 먹는 것을 비롯해 새 요리를 개발하고 예술가들과 협업해 신선한 방식의 행사를 여는 등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음식으로 교류하고 국경을 넘어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는 그의 얼굴에는 가벼운 홍조가 돌았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자기만의 길을 가며 차근차근 성취해 나가는 사람이 뿜어내는 건강한 기운이 흘렀다. 호기심으로 가슴 설레며 눈을 반짝이는 이들. 나이를 떠나 그 자체로 푸르른 청춘이 아닐까. 가슴을 뛰게 하고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게 되는 게 뭔지 곰곰이 짚어본다.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미국 설치예술가 제임스 터렐(77)을 비롯해 로버트 어윈(92), 피터 알렉산더(1939∼2020)의 작품을 모은 전시 ‘벤딩 라이트’가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960년대부터 빛을 바탕으로 공간과 지각을 연구하는 ‘빛과 공간(Light and Space)’ 운동을 주도했다. 터렐의 ‘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2019년)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을 표현했다. 가로 185.4cm, 세로 142.2cm 크기 작품에서 발광다이오드(LED)로 만든 여러 층의 빛이 2시간 30분간 변화한다. 불이 꺼진 형광등을 세로로 나란히 배치한 어윈의 ‘Belmont Shore’도 만날 수 있다. 여러 색깔의 반투명 오브제들로 구성된 알렉산더의 작품도 있다. 8월 14일까지.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햇살과 조개를 좋아하는 ‘바닷가곰’은 행복하다. 가끔 친구가 그리운 것만 빼고. 갈색 털을 가진 바닷가곰은 어느 날 갈대 사이에서 날개를 다친 하얀 새 ‘릴로우’와 만난다. 바닷가곰의 정성스러운 치료로 건강을 되찾은 릴로우. 둘은 함께 바다를 헤엄치고 열매도 나눠 먹으며 마냥 즐겁다. 한데 겨울이 오자 여름새인 릴로우는 따뜻한 곳으로 가야 했다. 바닷가곰도 겨울잠에 빠져든다. 몸의 크기도, 색깔도 다른 바닷가곰과 릴로우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친구가 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렸다.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온 릴로우와 수많은 꿈을 꾼 바닷가곰이 그칠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다정하다. 많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색다른 경험을 듣는 건 근사한 일이라고 속삭인다. 풍부한 색채로 곱게 그린 그림은 둘이 느끼는 행복을 선명하게 전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함께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도 같이 하는 요리 수업이 있다. 때로 와인, 사케 같은 술도 곁들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 추억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열고 위안을 얻는다. ‘히데코 선생님의 연희동 요리교실’이다. 정확히는 한국에 귀화한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53) 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운영하는 ‘구르메 레브쿠헨’이다. 레브쿠헨은 생강쿠키를 뜻하는 독일어로 그에게 맛의 놀라움을 깨닫게 해줬다. 구르메는 미식가다. 유명 요리 선생님으로, 일본 가정식 요리법을 담은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맛있는 책방·4만5000원)을 최근 출간한 나카가와 씨를 4일 자택에서 만났다. 연희동 단독주택 골목에 자리한 파란색 담장의 2층 집이었다. 마당에는 빨간 장미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카가와 씨가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하며 요리교실로 사용하는 1층으로 안내했다. 그가 얼음을 가득 넣은 녹차를 건넸다.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은 계절별 음식을 실제 계절에 맞춰 각각 만드느라 요리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요즘은 365일 모든 식재료를 구할 수 있지만, 가급적 제철 재료를 사용해요. 맛이 훨씬 좋거든요. 수업할 때도 특별한 경우 외에는 제철 재료를 쓰려고 해요.” ‘히데코의 사계절 술안주’ ‘지중해 요리’ ‘셰프의 딸’ 등 여러 요리책과 에세이집을 낸 그는 이번 책을 숙성시키듯 만들었다고 했다. “10년이 지나도 계속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담으려 했어요. 한국은 요리와 식재료의 유행이 아주 빠른데요, 오래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고민했죠.” 간장, 청주, 식초 등 기본 양념을 고르는 법도 정리했다. 요리에 얽힌 추억과 에피소드를 구어체로 실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일본에서 절인 매실을 만드는 ‘우메보시 담그기’는 한국의 김장과 같은 의미로, 일본에 계신 어머니는 이제 하지 않는데 한국에 있는 자신이 열심히 하는 게 묘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감자고로케(크로켓)를 소개할 때는 고교 시절 친구들과 고로케를 사서 후후 불며 먹은 기억을 곁들인다.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와 플로리스트인 어머니는 제가 셰프가 되길 원하셨지만 어릴 때는 음식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학에서도 언어학, 국제관계론을 전공했고요. 20대에 동독, 서독, 스페인에 살면서 각 나라의 요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비교언어학을 공부하기 위해 1994년 한국에 왔고 이후 연세대 국문과 석사를 마쳤다. “동독, 서독에 살았기 때문인지 분단국가인 한국에 관심이 생겼어요. 저처럼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의 엄마가 됐죠. 기자, 번역가를 하다가 요리할 때 너무나 즐거워지는 스스로를 발견했어요.” 일본인으로는 처음 궁중음식연구원에서 3년간 공부했다.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는 걸 좋아하는 그는 지인의 권유로 2008년 요리교실을 열었다. 지금은 한 해 수강생이 150여 명이나 된다. 한 번 수업을 들으면 짧게는 2년, 길게는 7∼8년간 계속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수강 신청을 하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혼밥’ ‘혼술’의 시대라고 하지만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수강생들을 보며 확인할 수 있어요.” 그는 일찍 오는 수강생과 재료 다듬기를 같이 하고 설거지를 할 때는 와인 잔, 나무 도마 닦는 법도 하나하나 가르친다. “요리법만 알려주기보다 요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익혀 스스로 요리를 즐기게 하고 싶거든요.” 수업은 학기제로 3∼6월, 9∼12월에 한다. 수강생은 한 달에 한 번 강의를 듣는다. 요리부터 뒷정리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 걸린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달부터 드문드문 수업하고 있다. 그는 요리를 하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늦은 시간 퇴근하셔서 훈제 연어, 바게트 등 간단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드시던 아버지가 생각나요. 어머니가 오랜 세월 묵묵히 해주셨던 집밥에 대한 그리움도 짙어졌고요.” 그는 아버지의 레시피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수업이 없는 기간에는 재료 산지를 다니고 음악가, 도예가 등과 협업하는 행사도 한다. “셰프, 요리 연구가보다 ‘키친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어요. 부엌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다루니까요. 요리를 통해 다양한 분들과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그는 요리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정성껏 만든 요리는 모두를 평온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요리의 맛과 그에 담긴 마음이 국경, 이념, 세대를 초월해 계속 이어지는 데 제가 보탬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겁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기다란 두 귀에 동글동글한 곰의 모습을 한 토끼곰 치치. 시골에는 신기한 존재들이 가득하다. 노란 나비가 살포시 치치에게 내려앉는가 하면 여유롭기 그지없는 소 한 마리가 꽃송이를 든 치치를 커다란 눈으로 바라본다. 삐악삐악 소리를 내는 샛노란 병아리들도 있다. 자연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선입견 없이 해맑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시원한 수박 넝쿨 아래서 쉴 수도 있고, 노랗게 여문 밀 줄기에도 기어 올라간다. 네 잎 클로버, 빨간 나무 열매, 황홀한 빛깔의 노을…. 볼수록 감탄이 나온다. 개미, 당나귀, 돼지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치치의 모습이 정겹다. 마음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면 삶은 놀랍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채워진다. 색색으로 표현한 사랑스러운 장면들에 미소가 나온다. 치치가 빨간 깃털을 따라 아마존을 모험하는 이야기를 담은 ‘아마존에 가면’도 함께 나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함께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도 같이 하는 요리 수업이 있다. 때로 와인, 사케 같은 술도 곁들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 추억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열고 위안을 얻는다. ‘히데코 선생님의 연희동 요리 교실’이다. 정확히는 한국에 귀화한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53) 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운영하는 ‘구르메 레브쿠헨’이다. 레브쿠헨은 생강쿠키를 뜻하는 독일어로 그에게 맛의 놀라움을 깨닫게 해줬다. 구르메는 미식가다. 유명 요리 선생님으로, 일본 가정식 요리법을 담은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맛있는 책방·4만5000원)을 최근 출간한 나카가와 씨를 4일 자택에서 만났다. 연희동 단독주택 골목에 자리한 파란색 담장의 2층 집이었다. 마당에는 빨간 장미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카가와 씨가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하며 요리 교실로 사용하는 1층으로 안내했다. 그가 얼음을 가득 넣은 녹차를 건넸다.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은 계절별 음식을 실제 계절에 맞춰 각각 만드느라 요리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요즘은 365일 모든 식재료를 구할 수 있지만, 가급적 제철 재료를 사용해요. 맛이 훨씬 좋거든요. 수업할 때도 특별한 경우 외에는 제철 재료를 쓰려고 해요.” ‘히데코의 사계절 술안주’ ‘지중해 요리’ ‘셰프의 딸’ 등 여러 요리책과 에세이집을 낸 그는 이번 책을 숙성시키듯 만들었다고 했다. “10년이 지나도 계속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담으려 했어요. 한국은 요리와 식재료의 유행이 아주 빠른데요, 오래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고민했죠.” 간장, 청주, 식초 등 기본 양념을 고르는 법도 정리했다. 요리에 얽힌 추억과 에피소드를 구어체로 실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일본에서 절인 매실을 만드는 ‘우메보시 담그기’는 한국의 김장과 같은 의미로, 일본에 계신 어머니는 이제 하지 않는데 한국에 있는 자신이 열심히 하는 게 묘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감자고로케(크로켓)를 소개할 때는 고교 시절 친구들과 고로케를 사서 후후 불며 먹은 기억을 곁들인다.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와 플로리스트인 어머니는 제가 셰프가 되길 원하셨지만 어릴 때는 음식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학에서도 언어학, 국제관계론을 전공했고요. 20대에 동독, 서독, 스페인에 살면서 각 나라의 요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비교언어학을 공부하기 위해 1994년 한국에 왔고 이후 연세대 국문과 석사를 마쳤다. “동독, 서독에 살았기 때문인지 분단국가인 한국에 관심이 생겼어요. 저처럼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의 엄마가 됐죠. 기자, 번역가를 하다가 요리할 때 너무나 즐거워지는 스스로를 발견했어요.” 일본인으로는 처음 궁중음식연구원에서 3년간 공부했다.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는 걸 좋아하는 그는 지인의 권유로 2008년 요리 교실을 열었다. 지금은 한 해 수강생이 150여 명이나 된다. 한 번 수업을 들으면 짧게는 2년, 길게는 7~8년간 계속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수강 신청을 하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혼밥’ ‘혼술’의 시대라고 하지만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수강생들을 보며 확인할 수 있어요.” 그는 일찍 오는 수강생과 재료 다듬기를 같이 하고 설거지를 할 때는 와인 잔, 나무 도마 닦는 법도 하나하나 가르친다. “요리법만 알려주기보다 요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익혀 스스로 요리를 즐기게 하고 싶거든요.” 수업은 학기제로 3~6월, 9~12월에 한다. 수강생은 한 달에 한 번 강의를 듣는다. 요리부터 뒷정리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 걸린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달부터 드문드문 수업하고 있다. 그는 요리를 하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늦은 시간 퇴근하셔서 훈제 연어, 바게트 등 간단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드시던 아버지가 생각나요. 어머니가 오랜 세월 묵묵히 해주셨던 집밥에 대한 그리움도 짙어졌고요.” 그는 아버지의 레시피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수업이 없는 기간에는 재료 산지를 다니고 음악가, 도예가 등과 협업하는 행사도 한다. “셰프, 요리 연구가보다 ‘키친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어요. 부엌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다루니까요. 요리를 통해 다양한 분들과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그는 요리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정성껏 만든 요리는 모두를 평온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요리의 맛과 그에 담긴 마음이 국경, 이념, 세대를 초월해 계속 이어지는 데 제가 보탬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겁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박완서 작가(1931∼2011)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66)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생명에 대한 놀라움과 기쁨을 잔잔하게 쓴 그림책이다. 하얗고 둥글게 생긴 알뿌리는 서울에 사는 비아 할머니에게 가게 된다. 친구인 뉴욕의 로사 할머니가 보낸 선물이다. 마당에 묻혀 겨울을 난 알뿌리는 눈부신 햇살과 할머니의 칭찬에 힘입어 땅 위로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꽃봉오리를 맺는다. 튤립이 피어나고, 손녀 민아는 꽃에 볼을 비비고 입을 맞춘다. 박 작가가 살았고, 지금은 호 작가가 머무는 경기 구리시 아치울 마을의 노란집과 마당이 알뿌리가 꽃을 피워내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세상에 태어난 건 잘한 일이라며 경이로운 시선으로 생명을 바라보는 마음이 화사한 색감의 그림과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마당에서 손수 꽃을 키우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에 감탄했을 박 작가의 모습을 그려 보게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둘이 서로 먼저 보겠다고 난리를 쳐서 순서 정하느라 진땀 뺐어.”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두 아들을 둔 지인의 말이다. 두 아이를 흥분시킨 건 유튜브도, 게임도 아니었다. 초등학생인 스무고개탐정이 스무 개 질문을 던지며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였다. 모두 열두 권으로 지난달 완간됐다. 지인은 “큰아이가 학교에서 지정한 책을 매주 2권 읽고 독서 감상문을 써야 하는데 ‘스무고개 탐정’이 훨씬 재미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독서대 위에 책을 올려놓고 빨려 들어가듯 읽고 있는 둘째 아이의 사진도 보냈다. 이 시리즈를 쓴 허교범 작가(35)의 말이 생각났다. “어린이 독서의 목적이 지식을 얻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활자를 해석하는 그 자체가 독서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글자를 읽는 능력을 키우려면 재미를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독서록 작성 같은 숙제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책읽기가 의무가 되면 아이들이 독서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서뿐만이 아니다. 미술 음악 체육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완성하고, 노래를 매끄럽게 연주하며 줄넘기를 몇 회 이상 하는 등 꾸역꾸역 숙제처럼 해내야 하는 아이들이 많다. ‘파도야 놀자’ ‘거울 속으로’ 등으로 유명한 이수지 그림책 작가(46)도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림은 삶의 일부다. 그림 그리기를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 산, 딸 바다는 그가 작업을 할 때 옆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며 논다고 한다. 작업실 벽에는 두 아이가 그린 화분 그림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그림을 많이 그려줬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림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거침없이 그린다”며 웃었다. 그는 그림에 대한 즐거운 기억을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년 전 파리도서전에서 그가 현지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강연한 후 사인회를 할 때 아이들 손에 작은 그림을 그려준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한 아이가 손등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서 그려줬더니 다른 아이들도 너도나도 손을 내밀었다”고 했다. 이 작가는 정신없이 그리다가 웃음이 터졌고 아이들은 작은 손등의 그림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분명 유쾌하고 신나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독서, 예술, 체육…. 각각이 지닌 재미를 맛볼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스무고개 탐정’ 독자 가운데는 좋아하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인 팬픽을 쓰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자발적으로 글을 쓰며 아이들은 깊이 생각하고 은연중 자신에 대해 차원 높은 탐색을 하게 된다. 어릴 때는 물론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독서와 예술, 체육을 즐길 수 있다면 팍팍한 일상은 한결 촉촉해진다. 학창 시절에 배우고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함께할 수 있는 대상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모르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큰 즐거움이 아닌가.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몽실언니’ ‘강아지똥’을 쓴 권정생 작가(1937∼2007)의 동시집으로, 처음 정식 출간됐다. 1972년 작가가 동시 25편을 손수 엮고 색종이로 소박하게 꾸민 모습을 최대한 살렸다. 그는 단 두 권을 만들어 ‘기독교교육’ 편집인이던 오소운 목사에게 한 권을 선물했다. 본인이 소장하던 책은 행방이 묘연해졌고, 오 목사가 간직한 책이 세상에 나왔다. 어머니의 병이 낫길 간절히 기도하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담긴 시가 9편이나 된다. ‘엄마 별이/돌아가셨나 봐//주룩주룩 밤비가/구슬피 내리네.//일곱 형제 아기 별들/울고 있나 봐….’(‘밤비’ 중) 자연의 싱그러움, 생활의 단면도 천진하게 그렸다. ‘땅속 마을에/설 잔치//아이들이/때때옷 갈아입었다….’(‘꽃밭’ 중) 결핵으로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도 교회 종지기, 주일학교 교사를 지내며 진실하고 투명한 글을 쓴 그의 청년 시절이 경이롭게, 때론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1개월 늦춰져 30일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봉행된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고 지도자인 종정(宗正) 진제 스님은 대통합을 강조하는 교시(敎示)를 발표했다. 이웃 종교인 가톨릭과 개신교계에서는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진제 스님은 교시에서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아동체(萬物與我同體)로다.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 모든 존재가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며 대통합을 강조했다. 스님은 이어 “우리 불교는 전통적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하여 신명을 다 바쳤다”며 “국민과 불자들이 연등에 불을 밝혀 대광명(大光明)이 충만하게 함으로써 코로나 질병이 소멸돼 세계 평화를 성취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추기경은 축하 메시지에서 “코로나19로 국가적 재난 상황이지만, 우리 종교계가 솔선수범하여 국난극복에 동참하고 있다”며 “더구나 한국 불교가 이번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를 이동하는 대승적 선택을 하신 데 큰 박수를 보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또 “중생에 대한 자비와 인류의 행복을 바라는 종교의 가치는 불교나 천주교 모두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며 “전염병으로 초래되는 불신과 원망, 분노 대신 자비와 평화, 사랑이 세상 곳곳에 퍼지도록 종교계가 함께 힘을 모으고 모범을 보여야 하겠다”고 말했다.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도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맞는 2020년 부처님오신날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근본적 과제를 성찰하며 이웃을 향한 더 깊은 연민과 연대의 자리로 낮아질 수 있기에 더욱 뜻 깊게 다가온다”며 “모든 승가와 불자들께 마음을 모아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중생을 구제하셨던 일과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행하신 일들이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감염병이 던져준 화두를 놓지 않고 불교와 기독교가 함께 노력한다면, 우리는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치유되고 화해된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대한불교천태종 대전 광수사(주지 무원 스님)는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대축제를 개최한다. 23일 오후 6시 봉축 점등식과 29일 오후 6시 반 봉축 전야 점등식, 30일 오전 10시 반 봉축 대법회가 이어진다. 23일부터 30일까지는 특별 기도주간으로 정했다. 기도 주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퇴치와 경제위기 극복, 남북의 화해와 평화 염원, 불자들의 소원 기도 등이다. 무원 스님은 최근 법문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도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 만사가 잘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적 거리 두기는 만물과 자신을 하나로 여겨 자비심을 일으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실천”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이런 어려운 시기야말로 불자님들이 그동안 갈고닦았던 지혜와 자비심을 꽃피울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광수사는 29일 오후 6시 기념식을 시작으로 6월 3일까지 ‘개성 영통사 복원 15주년 회고전―천년의 기억’전을 연다. 천태종의 영통사 복원은 남북 화해와 평화의 상징이자 씨앗으로 기록돼 있다. 영통사는 개성시 외곽에서 약 8km 떨어진 오관산에 위치해 있다. 이 사찰은 16세기 무렵 화재로 소실돼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었다. 1998년 북한이 3년여에 걸쳐 발굴 작업을 시행하였고, 천태종이 복원 사업에 나서 2005년 10월 복원 낙성식을 열었다. 사진전은 2000년 북한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 4년여 동안 평양과 개성, 중국 베이징을 오가며 통일 불사를 위해 숨가쁘게 움직였던 현장들을 담았다. 스님은 “올해는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어렵게 부처님오신날 법회를 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부처님의 가피로 이렇게 대법회를 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고, 온 누리를 감싸시는 부처님의 가피가 북녘까지 환하게 내려지길 바란다”며 “영통사 복원 사진전을 기획했으니 모두 남북 화해를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보조 기구를 단 소년이 수영장에 들어간다. 연꽃이 피어나고 강, 바다로 이어지며 소년은 자유로이 유영한다. 분수가 합창하듯 솟아오르고 달과 별, 새를 만난다. 파란 수채 물감으로 맑게 그린 그림들은 서로 이어져 아코디언처럼 펼쳐진다. 신비로운 여정을 5.7m 길이의 종이에 담은 그림책 ‘물이 되는 꿈’(청어람아이)이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이 작품은 이수지 작가(46)가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본명 조윤석·45)의 앨범 ‘오, 사랑’(2005년)에 수록된 ‘물이 되는 꿈’ 가사로 만들었다. 서울 광진구 작업실에서 18일 이 작가를 만났다. 2014년 제주에 내려가 귤, 레몬 농사를 짓고 있는 루시드폴은 전화로 인터뷰했다. 2018년 가을, 출판사가 루시드폴에게 ‘물이 되는 꿈’을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음유 시인’으로 불리는 그의 노래 가운데는 시인들이 아름답다고 꼽은 가사가 많다. 그는 그림책을 여러 권 번역했고 동화책, 소설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루시드폴은 곧바로 이 작가를 떠올렸다. “이 작가님 팬이에요. 제 음악 세계와 정서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랄까요. 글자 없이도 하나의 서사를 지닌 작가님의 그림책을 좋아해요.” 부산 광안리 인근에 있는 초중고교를 졸업해 바다를 보며 자란 루시드폴은 물이 주는 편안함과 위안을 써내려갔다. 그는 “내 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물에 대한 각별한 감정이 툭 하고 터지듯 나왔다”고 했다. ‘물,/물이 되는 꿈…//강,/강이 되는 꿈/빛이 되는 꿈/소금이 되는 꿈//바다,/바다가 되는 꿈/파도가 되는 꿈…//별,/별이 되는 꿈/달이 되는 꿈/새가 되는 꿈….’ 이 작가도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그는 “가사가 담백하고 직관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리고 지상보다 물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누구일까 고민하다가 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생각났다. 수영장에서 재활훈련을 하는 수중재활센터를 찾아갔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물에 들어가면 너무나 좋아하고 편안해 보였어요. 보통 계획을 세밀하게 짠 뒤 작업하는데, 이번 책은 이야기 구조만 정한 채 노래를 들으며 살짝 달뜬 상태에서 마음 가는 대로 그렸어요. 자유롭고 충만했습니다.” 이 작가는 책 가운데 제본선으로 바다와 모래사장을 나누고(‘파도야 놀자’), 거울에 비친 모습과 실제 모습을 구분하는(‘거울 속으로’) 등 책의 형태를 흥미롭게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5.7m 길이의 이번 작품에서 책의 물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그의 특기가 ‘제대로’ 터져 나왔다. “독자들이 책장을 넘길 때 물처럼 흐르고 이어지는 느낌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아코디언 형태를 떠올렸어요. 책을 보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에게 ‘네 생각이 다 맞아’라고 말해주고 싶은 작품이에요.” 뒷면에는 루시드폴이 연필로 직접 그린 ‘물이 되는 꿈’ 악보를 담았다. 두 사람은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했다. 완성된 책을 본 루시드폴은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겨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 작가는 “협업을 하며 예술 세계가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루시드폴은 나무에 센서를 달아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비롯해 나무의 여러 소리를 채집하고 있다. 내년에 새 음반도 낼 예정이다. 그는 “음악적 장치들의 기름기를 빼고 목소리와 기타에 집중한 앨범을 만들겠다”고 했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영국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은 이 작가는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고, ‘파도야 놀자’는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으로 꼽히는 등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포맷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모모’로 유명한 미하엘 엔데(1929∼1995)가 다 쓰지 못한 동화를 독일 동화작가 빌란트 프로인트가 25년 만에 완성했다. 환상적이고 짜릿한 모험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꼬마둥이는 인형극단 마차를 운영하는 엄마 아빠를 몰래 떠나 악명 높은 기사 로드리고의 시동이 되겠다며 찾아간다. 로드리고가 위험한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고 하자 꼬마둥이는 우연히 마주친 공주의 마차로 돌진한다. 공주는 왕위를 물려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왕위를 뺏으려는 마법사가 공주를 노리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간다. 불을 뿜는 용, 숲의 정령이 등장하는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예측하기 힘든 사건들이 몰아친다. 전체 16장 가운데 3장까지 엔데가 썼다. 엔데가 만든 세상과 캐릭터를 기초로 쌓아올린 이야기의 성채는 매끈하고 견고하다.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