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풍요롭게 하는 독서… 부담 아닌 즐거움 느끼도록[광화문에서/손효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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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손효림 문화부 차장
“둘이 서로 먼저 보겠다고 난리를 쳐서 순서 정하느라 진땀 뺐어.”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두 아들을 둔 지인의 말이다. 두 아이를 흥분시킨 건 유튜브도, 게임도 아니었다. 초등학생인 스무고개탐정이 스무 개 질문을 던지며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였다. 모두 열두 권으로 지난달 완간됐다.

지인은 “큰아이가 학교에서 지정한 책을 매주 2권 읽고 독서 감상문을 써야 하는데 ‘스무고개 탐정’이 훨씬 재미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독서대 위에 책을 올려놓고 빨려 들어가듯 읽고 있는 둘째 아이의 사진도 보냈다. 이 시리즈를 쓴 허교범 작가(35)의 말이 생각났다. “어린이 독서의 목적이 지식을 얻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활자를 해석하는 그 자체가 독서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글자를 읽는 능력을 키우려면 재미를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독서록 작성 같은 숙제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책읽기가 의무가 되면 아이들이 독서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서뿐만이 아니다. 미술 음악 체육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완성하고, 노래를 매끄럽게 연주하며 줄넘기를 몇 회 이상 하는 등 꾸역꾸역 숙제처럼 해내야 하는 아이들이 많다.

‘파도야 놀자’ ‘거울 속으로’ 등으로 유명한 이수지 그림책 작가(46)도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림은 삶의 일부다. 그림 그리기를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 산, 딸 바다는 그가 작업을 할 때 옆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며 논다고 한다. 작업실 벽에는 두 아이가 그린 화분 그림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그림을 많이 그려줬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림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거침없이 그린다”며 웃었다.

그는 그림에 대한 즐거운 기억을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년 전 파리도서전에서 그가 현지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강연한 후 사인회를 할 때 아이들 손에 작은 그림을 그려준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한 아이가 손등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서 그려줬더니 다른 아이들도 너도나도 손을 내밀었다”고 했다. 이 작가는 정신없이 그리다가 웃음이 터졌고 아이들은 작은 손등의 그림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분명 유쾌하고 신나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독서, 예술, 체육…. 각각이 지닌 재미를 맛볼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스무고개 탐정’ 독자 가운데는 좋아하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인 팬픽을 쓰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자발적으로 글을 쓰며 아이들은 깊이 생각하고 은연중 자신에 대해 차원 높은 탐색을 하게 된다. 어릴 때는 물론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독서와 예술, 체육을 즐길 수 있다면 팍팍한 일상은 한결 촉촉해진다. 학창 시절에 배우고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함께할 수 있는 대상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모르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큰 즐거움이 아닌가.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독서#예술#체육#즐거움#이수지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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