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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웹툰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 온라인 청원사이트 ‘체인지닷오아르지(change.org)’에 올라온 한 청원이다. 해당 청원에는 31일 기준 총 17만9000여 명이 동의했다. ‘디즈니의 나라’ 미국에서 18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애니메이션화를 요구하고 있는 웹툰은 다름 아닌 한국 콘텐츠 기업 ‘디앤씨미디어’가 제작한 ‘나 혼자만 레벨업’이다. 몬스터를 잡는 헌터 ‘성진우’가 ‘퀘스트’(게임에서 유저가 실행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레벨이 상승하고, 약체에서 최강 전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이 웹툰이 영미권 웹툰 플랫폼에서 서비스되면서 해당 웹툰을 접한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제작을 요청하고 있는 것. 미국뿐만 아니라 만화 강국인 일본과 유럽에서도 반응은 뜨겁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카카오재팬 만화 플랫폼 ‘픽코마’에서 서비스된 이후 하루 최대 100만 명이 봤고, 브라질과 독일에서는 단행본 출간 첫 주에 아마존 만화책 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 해외에서의 선풍적인 반응에 힘입어 디앤씨미디어는 나 혼자만 레벨업 웹툰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추진 중이다. 네이버도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네이버웹툰은 지난해 ‘신의 탑’과 ‘갓 오브 하이스쿨’ ‘노블레스’ 세 편을 연이어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해 선보였다. 세 웹툰은 각각 국내외 누적 조회수 45억 회, 38억 회, 46억 회를 기록한 네이버웹툰의 ‘슈퍼 지식재산권(IP)’이다. 세 작품 모두 네이버의 동영상 플랫폼인 ‘시리즈온’을 통해 국내 방영됐고, 미국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플랫폼 ‘크런치롤’을 통해 미국과 남미, 유럽 지역에서 서비스됐다. 네이버는 올해도 ‘유미의 세포들’ ‘연의 편지’ ‘나노리스트’ 세 편의 웹툰을 애니메이션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제작을 진행 중이다. 유미의 세포들과 연의 편지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나노리스트는 해외 플랫폼을 타깃으로 한 시리즈물로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 K웹툰 등에 업고 ‘뽀로로’ 넘는 K애니 그동안 국내 애니메이션은 타깃 연령층이 영·유아로 한정돼 있고, 완구로 수익을 내는 사업 모델이 수십 년간 지속됐다. 자연히 장르가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같은 영·유아 타깃의 교육물이나 로봇메카물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K웹툰’의 인기는 이런 애니메이션계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기존에는 웹툰 IP를 영화나 드라마로 실사화하는 게 대세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애니메이션에 비해 영화나 드라마 시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K애니메이션의 사업성이 커지면서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드라마부터 로맨스 판타지, 액션, 무협 등 다양한 장르의 웹툰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타깃 연령층과 장르의 한계가 깨질 거란 기대감이 나온다. 웹툰이 애니메이션화의 바람을 탄 건 K웹툰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다. 웹툰 원작의 팬층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대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시장이 큰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한국 웹툰이 인기를 끌자 원작의 인기를 등에 업고 애니메이션도 해외에서 흥행을 노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이희윤 네이버웹툰 IP비즈니스팀 리더는 “원작 팬은 만화에서 받은 느낌을 애니메이션에서 그대로 느끼길 바라기 때문에 웹툰을 얼마나 똑같이 재현했느냐가 애니메이션화 성공의 관건이다. 제대로 재현해 냈을 경우 웹툰 원작 팬이 곧 리메이크 애니메이션 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팬층 유입 효과가 크다”고 했다. 이어 “원작 그림체를 잘 살린 신의 탑과 갓 오브 하이스쿨, 노블레스도 원작 팬 유입 효과가 있었다. 세 애니메이션 모두 원작 웹툰 구독자 주 연령대인 10대 후반, 20∼30대가 가장 많이 시청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개봉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도 원작 웹툰의 해외 인기가 실제 흥행으로도 이어진 사례다. 원작은 오성대 작가의 옴니버스 웹툰 ‘기기괴괴’ 중 ‘성형수편’이다. 기기괴괴는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에서 2015년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해외 시장에서의 흥행 가능성을 본 에스에스애니먼트가 2차 저작권을 확보해 애니메이션 제작을 추진했다. 9월 대만 개봉 당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테넷’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다. 올해 일본에서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아직까지 일본, 미국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는 해외 시장의 편견을 뛰어넘는 데 있어서도 K웹툰의 인지도가 도움이 된다. 기기괴괴 성형수 연출을 담당한 에스에스애니먼트의 전병진 PD는 “한국 애니메이션은 해외에서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한국 개봉 전에 수입배급사가 시나리오와 감독, 제작사 등을 보고 작품을 사가는 ‘프리바이’가 거의 없다. 통상 한국에서 개봉한 뒤 관객 수, 반응 등을 본 뒤 수입배급을 결정한다”면서 “그런데 기기괴괴 성형수는 원작 IP의 인기가 워낙 높았던 덕분에 굉장히 드물게 대만, 홍콩,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프리바이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웹툰을 가장 원작과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점도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를 촉진하는 요소다. 웹툰을 실사화할 경우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도 원작 캐릭터만이 갖는 고유한 매력을 그대로 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물이나 아포칼립스물은 실사화가 까다롭다는 장벽도 있다. 애니메이션은 실사에 비해 웹툰 안의 세계관을 더 쉽게 구현할 수 있기에 ‘높은 싱크로율’을 첫 번째 기준으로 삼는 원작 팬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하다.○ IP는 앞서가지만 인력난이 문제 현재 K웹툰을 둘러보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 때 대박이 날 수 있는 ‘슈퍼 IP’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애니메이션은 수익성이 낮다는 인식 때문에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네이버처럼 자체 투자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콘텐츠 공룡’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형 제작사들은 우여곡절 끝에 인기 IP의 2차 저작권을 확보해도 투자가 막혀 제작이 지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기기괴괴 성형수 역시 투자처를 찾지 못해 2015년 3월 저작권 계약을 하고 5년이 지나서야 개봉을 할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달고나엔터테인먼트의 김광회 부대표는 “제작 기간은 길어야 2년 정도다.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주기가 감독 또는 제작사마다 5∼10년에 달하는 이유는 제작비를 투자 받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다가 시간이 지연됐기 때문”이라며 “220만 관객을 모아 극장 개봉 한국 애니메이션 1위를 달성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조차 차기작 ‘언더독’이 개봉하기까지 투자 문제로 7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투자를 받지 못하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보장된 영·유아 타깃의 애니메이션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성인 타깃의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을 가진 베테랑이 배출되는 길이 막히는 것이다. 시장이 좁으니 돈이 돌지 않고, 노하우를 전수할 인력도 양성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웹툰·웹소설 업체 부장은 “국내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술이 해외에 비해 낮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국내 제작사 대부분이 아동 애니메이션에 치중해 있기 때문에 성인 타깃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연출할 역량을 갖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일본에서 대히트를 친 ‘귀멸의 칼날’ 수준의 3D 드로잉과 컴퓨터그래픽 기술은 한국도 충분히 갖췄지만 귀멸의 칼날과 같은 기획과 연출을 할 수 있는 제작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지난해 10월 일본 개봉 후 2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아 일본 극장 흥행 수입 1위를 달성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개봉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현장에서는 K애니메이션을 제대로 키우려면 관련 인력의 역량을 키울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인기 있는 원천 IP를 제대로 살릴 만한 기획력과 연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 지금처럼 제작비 일부를 주는 형식적 지원을 뛰어넘어서 기획과 시나리오, 스토리보드를 짜는 프리 프로덕션부터 편집, 더빙 등의 포스트 프로덕션에 이르기까지 애니메이션 제작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병진 PD는 “현재 정부 등의 지원책은 제작비 일부 지원 형식이다.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창업투자회사 등의 추가 투자를 유치하지 못해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낼 수 있는 공공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설립을 통해 노하우를 쌓은 인력을 배출하는 데 힘써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김재희 문화부 기자 jetti@donga.com}

“‘모아나’ 이후 13번째 디즈니 프린세스는 누구일까?‘ 디즈니 팬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질문이다. 디즈니의 첫 공주인 백설공주부터 신데렐라, 오로라(잠 자는 숲속의 미녀), 에리얼(인어공주), 벨(미녀와 야수), 자스민, 포카혼타스, 뮬란, 티아나(공주와 개구리), 라푼젤, 메리다, 모아나까지. 백설공주가 나온 1937년 이래로 70여 년간 공고한 팬덤을 구축한 이들이기에 디즈니는 ’디즈니 프린세스‘라는 프랜차이즈를 만들었고, 새로운 공주가 탄생할 때마다 ’대관식‘을 열어 이들이 ’디즈니 프린세스‘가 됐음을 선포했다. 모아나 이후 5년 만에 디즈니 공주가 나왔다. 3월 개봉하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Raya and the last dragon)의 주인공 ’라야‘다. 라야는 디즈니가 선보이는 최초의 동남아시아 공주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쿠만드라‘ 섬이 사람들의 다툼으로 분열되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돌로 변하게 되자 라야가 아버지를 구하고 사람들을 통합하기 위해 쿠만드라에 남은 마지막 용 ’시수‘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렸다. 22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을 만든 돈 홀 감독, 오스냇 슈러 PD, 작가 아델 림 등 6명의 제작진을 화상으로 만났다. 홀 감독은 ’빅 히어로 6‘(2014)로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슈러 PD는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작이었던 모아나의 PD 출신이다. 디즈니는 새로운 공주를 선보일 때마다 기존의 공주에게 없었던 특징을 부여했다. 자스민은 처음으로 바지를 입었고, 에리얼은 인간이 아닌 생명체가 공주가 된 첫 사례였다. 기존 디즈니 공주들과 라야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슈러 PD는 ’책임감‘을 들었다. 외적인 모습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해나가려는 라야의 의지를 더 중요한 특징으로 꼽은 것. ”디즈니의 여성 주인공이라고 해서 모두 공주일 필요는 없기에 라야를 공주로 정할 지를 두고 내부에서도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녀를 공주로 정한 건 라야가 분열된 사람들을 통합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진 인물이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라야는 쿠만드라의 리더였던 아버지를 잃은 상황에서 자신이 아버지 대신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죠. 통치자의 딸로서 갖는 책임감을 드러내기 위해 라야를 공주로 정했습니다.“ (오스냇 슈러)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19세에 미국으로 건너 온 림 작가는 동남아시아 여성들의 ’정신‘을 라야에 담았다고 말했다. ”동남아시아는 강인한 여성 리더가 많은 곳이에요. 사회적 지위도 높은 편이고요. 이러한 동남아시아 여성들의 정신을 라야가 대변할 수 있길 바랐어요.“ (아델 림) 영화에서 라야와 그녀의 친구들은 사원에 들어가기 전 신발을 벗는다. 신성한 장소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동남아시아 문화를 반영했다. 식사 장면에서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놓는 위치까지 동남아시아 전통을 따랐다. ”쿠만드라는 허구의 세계지만 동남아시아 물의 신 ’나가‘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게 됐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문화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라오스,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동남아 국가들을 탐방했고, 그곳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유적지를 돌아보며 문화를 체득했죠. 언어학자, 건축가, 안무가 음악가 등 동남아시아 문화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남아시아 스토리 트러스트‘(Southeast Asia Story Trust)를 구성해 이들로부터 동남아시아 문화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배웠습니다.“ 스토리 트러스트는 디즈니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로 팀을 꾸려 자문을 구하는 시스템이다. 모아나를 만들 때도 폴리네시아 지역 출신 전문가로 구성된 스토리 트러스트를 만들었다. 제작진이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신뢰‘다. 사람들 간 배신으로 분열된 쿠만드라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뢰라는 점에 모두 공감했다. ”쿠만드라는 엄청난 생존의 위협이 도사리는 땅입니다. 이곳에서 캐릭터들이 서로를 믿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죠. 영화 제작 도중 팬데믹이 터져 현실세계에서 생존의 위협과 마주했고, 그로 인해 사람들 간 불신이 싹트는 걸 목격했어요.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을 매 순간 실감했죠.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팬데믹 시대에 무엇이 필요한지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돈 홀) 디즈니는 끊임없이 공주 캐릭터의 인종과 국가의 다양성을 추구해왔다. 자스민은 디즈니의 첫 ’비(非) 백인‘ 캐릭터였고, 뮬란은 중국인, 모아나는 폴리네시아인이었다. 개인적인(Personal) 이야기를 꺼내도록 직원들을 독려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영화에 담아내고자 하는 회사의 문화가 바탕에 깔려있다. ”디즈니의 이야기들은 굉장히 개인적이에요. 개인적 이야기를 하도록 장려하는 분위기가 기본으로 깔려있기 때문이죠. 모아나 때도 한 직원이 ’폴리네시아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고 하자 ’재밌겠다. 해보자‘고 한 목소리를 냈죠. 개인적인 이야기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생각해요“ (오스냇 슈러) ”디즈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최대한 넓게 담아내려고 해요. 우리 영화가 인종과 국가를 넘나드는 다양한 그룹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늘 확인하죠.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진솔한 열망은 디즈니의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입니다.“ (돈 홀)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 웹툰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 온라인 청원사이트 ‘체인지 닷 오알지’(change.org)에 올라온 한 청원이다. 해당 청원에는 31일 기준 총 17만9000여 명이 동의했다. ‘디즈니의 나라’ 미국에서 18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애니메이션화를 요구하고 있는 웹툰은 다름 아닌 한국 콘텐츠 기업 ‘DMC미디어’가 제작한 ‘나 혼자만 레벨업’이다. 몬스터를 잡는 헌터 ‘성진우’가 ‘퀘스트’(게임에서 유저가 실행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레벨이 상승하고, 약체에서 최강 전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이 웹툰이 영미권 웹툰 플랫폼에서 서비스되면서 해당 웹툰을 접한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제작을 요청하고 있는 것. 미국뿐만 아니라 만화 강국인 일본과 유럽에서도 반응은 뜨겁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카카오재팬 만화 플랫폼 ‘픽코마’에서 서비스된 이후 하루 최대 100만 명이 봤고, 브라질과 독일에서는 단행본 출간 첫 주에 아마존 만화책 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 해외에서의 선풍적인 반응에 힘입어 DMC미디어는 나 혼자만 레벨 업 웹툰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추진 중이다. 네이버도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네이버웹툰은 지난해 ‘신의 탑’과 ‘갓 오브 하이스쿨’ ‘노블레스’ 세 편을 연이어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해 선보였다. 세 작품은 각각 국내외 누적 조회수 45억 회, 38억 회, 46억 회를 기록한 네이버웹툰의 ‘슈퍼 지식재산권(IP)’이다. 세 작품 모두 네이버의 동영상 플랫폼인 ‘시리즈온’을 통해 국내 방영됐고, 미국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플랫폼 ‘크런치롤’을 통해 미국과 남미, 유럽지역에서 서비스됐다. 네이버는 올해도 ‘유미의 세포들’ ‘연의 편지’ ‘나노리스트’ 세 편의 웹툰을 애니메이션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제작을 진행 중이다. 유미의 세포들과 연의 편지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나노리스트는 해외 플랫폼을 타깃으로 한 시리즈물로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K 웹툰 등에 업고 ‘뽀로로’ 넘는 K 애니 그동안 국내 애니메이션은 타깃 연령층이 영·유아로 한정돼 있고, 완구로 수익을 내는 사업 모델이 수십 년 간 지속됐다. 자연히 장르가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같은 영·유아 타깃의 교육물이나 로봇메카물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K 웹툰’의 인기는 이런 애니메이션계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기존에는 웹툰 IP를 영화나 드라마로 실사화하는 게 대세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애니메이션에 비해 영화나 드라마 시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K 애니메이션의 사업성이 커지면서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드라마부터 로맨스 판타지, 액션, 무협 등 다양한 장르의 웹툰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타깃 연령층과 장르의 한계가 깨질 거란 기대감이 나온다. 웹툰이 애니메이션화의 바람을 탄 건 K 웹툰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다. 웹툰 원작의 팬층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대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시장이 큰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한국 웹툰이 인기를 끌자 원작의 인기를 등에 업고 애니메이션도 해외에서 흥행을 노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이희윤 네이버웹툰 IP비즈니스팀 리더는 “원작 팬은 만화에서 받은 느낌을 애니메이션에서 그대로 느끼길 바라기 때문에 웹툰을 얼마나 똑같이 재현했느냐가 애니메이션화 성공의 관건이다. 제대로 재현해냈을 경우 웹툰 원작 팬이 곧 리메이크 애니메이션 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팬층 유입 효과가 크다”고 했다. 이어 “원작 그림체를 잘 살린 신의 탑과 갓 오브 하이스쿨, 노블레스도 원작 팬 유입효과가 있었다. 세 애니메이션 모두 원작 웹툰 구독자 주 연령대인 10대 후반, 20~30대가 가장 많이 시청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개봉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도 원작 웹툰의 해외 인기가 실제 흥행으로도 이어진 사례다. 원작은 오성대 작가의 옴니버스 웹툰 ‘기기괴괴’ 중 ‘성형수편’이다. 기기괴괴는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에서 2015년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해외 시장에서의 흥행 가능성을 본 에스에스애니먼트가 2차 저작권을 확보해 애니메이션 제작을 추진했다. 9월 대만 개봉 당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다. 올해 일본에서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아직까지 일본, 미국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는 해외 시장의 편견을 뛰어넘는데 있어서도 K 웹툰의 인지도가 도움이 된다. 기기괴괴 성형수 연출을 담당한 에스에스애니먼트의 전병진 PD는 “한국 애니메이션은 해외에서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한국 개봉 전에 수입배급사가 시나리오와 감독, 제작사 등을 보고 작품을 사가는 ‘프리바이’가 거의 없다. 통상 한국에서 개봉한 뒤 관객 수, 반응 등을 본 뒤 수입배급을 결정한다”면서 “그런데 기기괴괴 성형수는 원작 IP의 인기가 워낙 높았던 덕분에 굉장히 드물게 대만, 홍콩,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프리바이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웹툰을 가장 원작과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점도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를 촉진하는 요소다. 웹툰을 실사화할 경우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도 원작 캐릭터만이 갖는 고유한 매력을 그대로 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물이나 아포칼립스물은 실사화가 까다롭다는 장벽도 있다. 애니메이션은 실사에 비해 웹툰 안의 세계관을 더 쉽게 구현할 수 있기에 ‘높은 싱크로율’을 첫 번째 기준으로 삼는 원작 팬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하다. 이희윤 리더는 “각 웹툰 IP마다 최적화된 장르가 존재한다. 명확한 기승전결이 있고 실사화하기에 부담이 없는 설정인지가 영화나 드라마화의 중요한 기준이라면, 애니메이션은 캐릭터의 ‘엣지’(edge), 즉 그 캐릭터만이 갖는 매력이 가장 중요하다. 캐릭터 설정 하나하나가 매력적인 노블리스나 갓 오브 하이스쿨이 애니메이션에 가장 적합한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유미의 세포들 역시 주인공 유미가 왜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유미 머릿속의 세포들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100% 살릴 수 있는 최적화된 장르는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했다. ●IP는 앞서가지만 인력난이 문제 현재 K 웹툰을 둘러보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 때 대박이 날 수 있는 ‘슈퍼 IP’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애니메이션은 수익성이 낮다는 인식 때문에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네이버처럼 자체 투자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콘텐츠 공룡’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형 제작사들은 우여곡절 끝에 인기 IP의 2차 저작권을 확보해도 투자가 막혀 제작이 지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기기괴괴 성형수 역시 투자처를 찾지 못해 2015년 3월 저작권 계약을 하고 5년이 지나서야 개봉을 할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달고나엔터테인먼트의 김광회 부대표는 “제작 기간은 길어야 2년 정도다.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주기가 감독 또는 제작사마다 5~10년에 달하는 이유는 제작비를 투자 받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다가 시간이 지연됐기 때문”이라며 “220만 관객을 모아 극장 개봉 한국 애니메이션 1위를 달성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조차 차기작 ‘언더독’이 개봉하기까지 투자 문제로 7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투자를 받지 못하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보장된 영·유아 타깃의 애니메이션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성인 타깃의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을 가진 베테랑이 배출되는 길이 막히는 것이다. 시장이 좁으니 돈이 돌지 않고, 노하우를 전수할 인력도 양성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웹툰·웹소설 업체 부장은 “국내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술이 해외에 비해 낮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국내 제작사 대부분 아동 애니메이션에 치중해 있기 때문에 성인 타깃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연출할 역량을 갖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일본에서 대히트를 친 ‘귀멸의 칼날’ 수준의 3D 드로잉과 컴퓨터그래픽 기술은 한국도 충분히 갖췄지만 귀멸의 칼날과 같은 기획과 연출을 할 수 있는 제작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지난해 10월 일본 개봉 후 2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아 일본 극장 흥행 수입 1위를 달성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개봉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현장에서는 K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키우려면 관련 인력의 역량을 키울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인기 있는 원천 IP를 제대로 살릴 만한 기획력과 연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 지금처럼 제작비 일부를 주는 형식적 지원을 뛰어넘어서 기획과 시나리오, 스토리보드를 짜는 프리 프로덕션부터 편집, 더빙 등의 포스트 프로덕션에 이르기까지 애니메이션 제작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병진 PD는 “현재 정부 등의 지원책은 제작비 일부 지원 형식이다.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창업투자회사 등의 추가 투자를 유치하지 못해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낼 수 있는 공공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설립을 통해 노하우를 쌓은 인력을 배출하는데 힘써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세계적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를 올해 선보인다는 소식은 팬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그가 ‘셰이프 오브 워터’ 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인 데다 젊은 망나니 사기꾼이 정신과 의사와 한 팀을 이뤄 사람들로부터 돈을 뜯어낸다는 시놉시스가 관심을 끌었다. 앞서 그는 ‘셰이프 오브 워터’와 ‘판의 미로’로 각각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신작 영화가 동명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내 영화 팬은 적다. 영국 가디언지가 ‘세상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10권의 소설책’ 중 하나로 이 책을 선정할 정도로 작품성에 비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저자가 29세 때 스페인 내전에서 만난 전직 순회 공연단원으로부터 술을 얻기 위해 닭과 뱀의 대가리를 물어뜯은 알코올의존증 환자 이야기를 듣고 썼다는 이 책은 출간된 지 75년이 지난 뒤에야 영화화와 더불어 주목받게 됐다. 소설은 1940년대 카니발 유랑극단에 발을 들인 주인공 ‘스탠턴 칼라일’의 성공과 몰락을 그렸다. 칼라일은 유랑 도중 만난 ‘지나’로부터 독심술을 배워 큰 무대에 오르게 된다. 그는 영매를 통해 죽은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는 심령주의 교회를 만들어 두려움과 죄책감을 가진 부자들을 갈취한다. 돈 뺏는 일에 중독돼 심신이 황폐해진 그는 여성 심리학자 ‘릴리스 리터’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파멸에 이른다. 이를 단순히 ‘독심술로 돈을 버는 사기꾼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건 소설이 담은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때문이다. 상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면 누구든 조종할 수 있고, 공포는 인간 본성으로 이어지는 열쇠라는 사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칼라일을 통해 인간이 병과 빈곤, 실패의 공포 앞에서 얼마나 나약해지는지를 생생히 보여 준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영화 ‘베테랑’ 속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추격하는 ‘서도철’(황정민), 드라마 ‘시그널’ 속 미제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잡는 ‘차수현’(김혜수)과 ‘박해영’(이제훈). 이들의 공통점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형사들이라는 것. 광역수사대는 2개 이상의 경찰서에서 발생한 동종 또는 유사 사건이나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을 수사한다. 이름 그대로 관할 구역에 구애받지 않고 지역을 넘나들며 사건을 파헤치는, 날고 기는 형사들이 모인 조직이다. 촉과 집념으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의 이미지,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사건들을 취급하는 업무의 특성상 광역수사대는 작가와 감독에게 매력적인 이야기 소재다. 광역수사대가 영화와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다. 광역수사대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중 가장 흥행한 건 1341만 관객을 모은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015년)이다. 조태오가 폭행을 사주했다고 의심하고 그 뒤를 쫓는 광역수사대 강력2팀 경사 서도철이 주인공이다. 영화 제목에 걸맞게 서도철은 동물적 감각과 포기를 모르는 집념을 갖춘 베테랑 형사로 등장한다. 체불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는 하청업체 직원을 사무실로 불러 폭행을 사주하고, 그 과정에서 직원이 의식을 잃자 투신자살로 위장한 조태오의 범행을 추적하는 과정은 집요하다. “지금까지 대기업 회장 라인을 경찰이 건드린 역사가 없다”는 팀장의 만류에도 “쫄지 마. 안 죽어”라며 사건현장으로 향한다. 강윤석 강력범죄수사대(전 광역수사대) 의료수사팀장은 “조직을 일망타진하든 하나도 못 잡든 형사들이 받는 월급은 똑같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서도철의 대사처럼 광역수사대 형사들은 돈과 상관없이 하나에 꽂히면 투지와 근성을 갖고 끝까지 판다. 그런 사명감이 서도철 캐릭터에도 잘 투영됐다”고 했다. tvN의 ‘시그널’(2016년)도 피해자 가족들의 설움을 덜어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미제사건을 파헤치는 광역수사대 장기미제전담팀 형사들의 모습을 담았다. 드라마는 ‘대도(大盜) 조세형’ 사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등 실제 사건들에서 모티브를 따 경찰조직 내에서도 “미제사건을 쫓는 경찰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대개 경찰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묘사했던 기존 작품들과 달리 죽음 앞에서 나약해지는 인간적인 모습도 담아 현실감을 높였다. “나도 범인 무서워. 그런데 어떻게 하냐. 누군가는 잡아야 하잖아” “짐승 같은 형사들도 자주 운다.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유가족들은 어떻겠냐. 유가족들이 흘린 눈물은 바다 같을 거다” 등이 명대사로 꼽히는 이유다. 경찰이 정의의 사도로만 그려진 건 아니다. 권력과 유착한 부패 경찰도 영화와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다. ‘부당거래’(2010년)에서는 승진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광역수사대 강력폭력팀 반장 ‘최철기’(황정민)가 주인공이다. 청와대에 보고해야 하는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경찰의 실수로 사망하면서 광역수사대장은 사건을 빠르고 깔끔하게 해결하는 최철기에게 ‘범인만 잡으면 승진시켜 준다’는 제안을 한다. ‘비(非)경찰대’ 출신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제안을 받아들인 최철기는 기업의 힘을 빌려 가짜 범인인 ‘배우’를 세우는 위험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영화 ‘표적’(2014년)도 돈을 위해 조직폭력배와 손잡고 빌딩 소유주를 죽인 뒤 가짜 범인을 세우기로 계획하는 광역수사대 형사 ‘송 반장’(유준상)을 주인공으로 그렸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할리우드 하이틴 로맨스물의 여주인공은 십중팔구 금발에 파란 눈의 백인. ‘퀸카로 살아남는 법’ ‘클루리스’ 같은 히트작마다 이어져 온 공식을 깬 작품이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제니 한 작가(41)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다. 한국계 미국인인 여주인공 ‘라라 진’이 짝사랑하는 남자들에게 쓴 편지가 해당 남자들에게 배송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시즌1이 큰 인기를 끌면서 시즌3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까지 제작됐다. 시즌3는 라라 진이 고교 졸업 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돌아가신 엄마의 나라인 한국으로 가족여행을 오는 내용이 있다. 명동, 남산타워, 한강, 광장시장, 노래방 등 서울의 곳곳이 카메라에 담겨 영화 초반부를 장식한다. 다음 달 12일 마지막 편인 시즌3 공개를 앞두고 한 작가와 라라 진 역의 라나 콘도어(25), ‘피터’ 역의 노아 센티네오(25)를 29일 화상으로 만났다. “남산타워에서 촬영할 때 부모님과 이모, 삼촌을 촬영장에 초대했어요. 굉장히 뿌듯해하셨죠. 작가로서의 제 삶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제작진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와 음식을 소개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한 작가) 라라 진은 남산타워에서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고 노래방에서 신나게 춤추며 노래한다. 한국어 간판이 가득한 광장시장에서 국수도 먹는다. 베트남계 미국인인 콘도어는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화장품에 정말 관심이 많았는데 직접 쇼핑도 했죠. 한국 야구장에서 먹었던 프라이드치킨은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어요.”(콘도어) 콘도어는 이 영화로 하이틴 여주인공에 대한 편견을 깬 것에 대해 “주인공을 맡기 전과 후 들어오는 대본과 캐릭터가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가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10대 영화에 올랐다. AFI는 25일(현지 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미나리를 포함한 10편의 영화를 ‘AFI 어워즈’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2000년 설립된 AFI는 한 해 동안 문화·예술적으로 우수한 영화 10편과 드라마 10편을 선정해 수상하고 있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영화로, 아칸소주로 이주한 한인 이민 가족의 삶을 그렸다. ‘제이콥’(스티븐 연)과 아내 ‘모니카’(한예리), 이들의 어린 자녀를 보살피기 위해 함께 살기 시작한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낯선 타지에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았다. 미나리가 AFI 어워즈를 수상하면서 아카데미상 수상 가능성도 높아졌다. AFI 어워즈 수상작이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아 AFI 어워즈는 ‘미리 보는 아카데미상’으로 통한다. 로이터통신은 “AFI는 오스카와 골든글로브 수상 가능성을 점치는 첫 번째 지표”라고 보도했다.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2019년 AFI 어워즈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앞서 윤여정은 LA비평가협회상, 시카고비평가협회상 등에서 여우조연상을 잇달아 받았다. 정 감독도 노스캐롤라이나영화비평가협회 작품상에 이어 샌프란시스코와 덴버비평가협회에서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각각 수상했다. AFI가 미나리 외 10대 영화로 선정한 작품은 ‘DA 5 블러드’ ‘유다와 블랙 메시아’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맹크’ 등이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맥을 못 추던 극장가가 따뜻한 메시지를 담은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등에 업고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다. 디즈니·픽사의 신작 ‘소울’과 27일 개봉을 앞둔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이 ‘쌍끌이’로 관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 소울은 ‘삶의 매 순간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귀멸의 칼날은 주인공이 위기에 처한 가족을 위해 싸우는 가족애를 다룬다. 20일 개봉한 소울은 극장가의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소울의 개봉과 함께 극장 일일 관객 수는 한 달 만에 10만 명대를 회복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일일 관객 수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를 시작한 2004년 이래 최저치인 1만여 명으로 주저앉았다. 소울이 22∼24일 사흘간 30만3000여 명을 모으면서 해당 기간 전체 관객 수는 36만2000여 명으로 뛰었다. 이는 전주 관객 수(8만7000여 명)의 네 배를 넘는 수치다. 귀멸의 칼날은 개봉 전부터 극장을 북적이게 만들고 있다. 22∼24일 진행한 유료 시사회로만 1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유료 시사회는 영화가 정식 개봉하기 1, 2주 전 주말에 극장에서 유료로 영화를 보여주는 행사다. 국내에서 흥행한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2017년), ‘명탐정 피카츄’(2019년)는 유료 시사로 각각 7만 명, 18만여 명을 모은 바 있다. 지금은 띄어 앉기로 좌석의 45%만 이용 가능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예매 관객도 4만7000여 명으로, 예매율이 49%를 넘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두 애니메이션이 관객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끈 건 팬덤의 힘이다. 귀멸의 칼날은 세계 누적 발행 부수 1억2000만 부를 기록한 고토게 고요하루의 만화가 원작이다. 원작 만화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데다 만화를 리메이크한 TV용 애니메이션을 지난해 티빙, 웨이브, 왓챠 등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도 볼 수 있게 되면서 만화와 TV애니메이션의 팬덤이 영화로도 유입됐다. 소울도 마니아층이 탄탄한 디즈니·픽사의 신작이라는 점이 흥행을 견인했다. 극장 관계자는 “디즈니·픽사 영화라면 작품성이 높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에 ‘묻따않’(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관람을 하는 팬덤의 힘이 있었다. 코로나19에도 재밌는 영화에는 관객이 따른다는 걸 입증한 사례”라고 말했다. 위안을 주는 내용도 한몫했다. 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이 잔잔한 여운을 주는 영화를 찾은 덕이다. 소울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라고 독려하는 대신에 ‘살아가는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화의 메시지를 곱씹기 위해 ‘N차 관람’을 했다는 관객도 많다. 귀멸의 칼날은 ‘혈귀’로 변한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주인공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가족의 의미가 더 커진 코로나19 시대에 가족애를 소재로 해 공감을 샀다.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개봉한 귀멸의 칼날은 19년째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치고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동양에서 개인의 삶은 자기만의 것이 아니다. 가족의 것이고 사회의 것이지.” 다음 달 4일 개봉하는 영화 ‘페어웰’에서 주인공 ‘빌리’(아콰피나·본명 노라 럼)에게 큰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빌리는 러닝타임 내내 동양의 가족중심적 사고방식에 저항한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중국계 이민자 빌리는 폐암 4기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친할머니에게 가족들이 이를 알리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죽는다는 사실을 본인이 모르게 하는 게 가족의 역할”이라는 큰아버지의 말에 빌리는 “할머니도 자신의 상태를 알고 죽음을 준비할 권리가 있다”며 항변한다. ‘개인의 죽음에 대한 알 권리를 타인이 막을 자격이 있는가’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그 사실을 숨기는 것이 과연 ‘착한 거짓말’인가’ 등의 질문과 마주한 빌리는 부모에게 대들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눈물을 삼키기도 한다. ‘중국은 원래 그렇다’는 말에 혼란스러워하는 빌리의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민자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본인에게 시한부 사실을 숨기는 건 미국에서 불법”이라며 강력하게 저항하던 빌리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이들을 이해하게 된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할머니를 위하는 마음만은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다. 결정적인 순간 착한 거짓말에 동참하는 빌리는 자신 안에 내재돼 있던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계기가 된다. 영화는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는 ‘이민 2세의 뿌리 찾기’라는 소재를 ‘진솔함’으로 뛰어넘었다. 빌리 왕 감독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이민 2세가 마주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세밀하게 그렸다. “미국이 좋냐, 중국이 좋냐”는 단편적 질문을 받았을 때의 불편함, 중국인과 대화를 할 때 “중국어가 서툴러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느끼는 부끄러움 등 빌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정체성 혼란의 순간은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나오지 못했을 연출이다. 빌리 역의 아콰피나 역시 중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 배우로 이민 2세가 느끼는 가치관의 혼란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 그는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에서 아시아계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과거에 상식이었던 리더십에 대한 사고방식이 이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저자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과거의 ‘상식’이 이제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리더십에 대한 시대의 요구가 달라졌음을 밝힌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로 국내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저자는 그의 첫 리더십론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완전히 달라진 업무 방식에 적응하고, 가치관이 다른 MZ세대와의 소통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리더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를 분석했다. 저자가 제안하는 리더십은 아들러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민주적 리더십’이다. 기존의 리더십에서 중요 요소로 여겨졌던 카리스마나 천재적인 유능함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능력 있는 리더의 일방적인 지시보다 소통을 기반으로 한 ‘맡김’이 리더십의 핵심이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기에 지시와 간섭보다는 소통과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통의 과정에서 ‘칭찬을 관두라’는 것도 저자가 전하는 팁이다. 성과를 내지 못해도 칭찬을 한다면 직원은 오히려 상사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독단보다 소통이 중요해진 만큼 ‘미움받을 용기’ 속 메시지가 오늘날의 리더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움받을 용기는 리더의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못 하는 직원에게 필요한 것이며, 리더는 오히려 조직 내에서 나오는 불만에 최대한 귀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한 시대임을 강조한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취미나 운동도 홀로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영화, 뮤지컬 같은 콘텐츠 관람은 물론이고 스포츠, 오락, 쇼핑 등 여가 전반을 집에서 혼자 즐기는 ‘코쿤(cocoon·누에고치)족’이 많아진 것. 코로나19 이전에는 으레 여럿이 만나 영화관에 가고 단체 운동을 하는 것이 노멀이었다면, 이제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랜선 운동’을 즐기는 게 뉴노멀이 되고 있다.○ 영화는 차 안에서, 운동은 나 홀로 코로나19로 인해 극장과 공연장에는 관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이 때문에 신작 영화 등이 곧바로 온라인 플랫폼으로 향하는 사례도 늘었다. 영화, 공연, 뮤지컬, 콘서트를 즐기는 주된 장소는 다름 아닌 ‘내 집’이 됐다. 집에서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콘텐츠 감상용 기기들의 이용률도 큰 폭으로 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5월 성인 6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된 3월 전과 후를 비교할 때 DVD, 프로젝터 등 동영상 기기의 이용률은 51.4%, 스마트패드는 46.9%, 애플TV 같은 스마트형 기기는 41.2% 증가했다. 집 밖으로 나오더라도 격리된 공간을 선호한다. 차에서 즐기는 ‘드라이브인’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로 자동차극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극장 중 하나인 서울 송파구 탄천공영주차장 내 잠실자동차극장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지난해 3월에 전월보다 방문자가 20%가량 늘었다. ‘드라이브인 콘서트’도 공연업계의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현대자동차는 경기 고양시 킨텍스 주차장에서 하루 300대씩 3일간 총 900대를 초청해 K팝 공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갈라쇼, 지휘자 금난새와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한 클래식 음악회 등을 진행했다. 스포츠 역시 ‘나 홀로 운동’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 코로나19로 국민들의 운동량은 전반적으로 줄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2020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한 번에 30분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 인구 비율은 2019년 66.6%에서 2020년 60.1%로 떨어졌다. 특히 헬스장 등이 문을 닫으면서 전년 대비 보디빌딩은 2.9%포인트, 요가와 필라테스는 각각 1.1%포인트 줄었다. 반면 트인 공간에서 혼자 하는 운동은 소폭이나마 늘었다. 자전거가 0.6%포인트, 걷기와 등산이 0.3%포인트씩 늘었다. 본인이 세운 운동 기록을 영상으로 공유하고, 각자의 기록을 비교하는 ‘언택트 경연’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이온 박사는 “코로나19가 지속된다면 운동의 개인화 및 온라인화가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장비 판매량에서도 확인된다. 설민협 이베이코리아 마케팅매니저는 “혼자 또는 소수로 즐기는 운동 제품의 판매량이 지난해 크게 늘었다”면서 “골프, 자전거, 낚시, 등산 용품 판매가 전년 대비 각각 16%, 12%, 11%, 11%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가상세계 속 네트워크 확산 콘텐츠를 다루는 이들은 코로나19가 지속되면 가상공간에서의 ‘연결’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카카오톡’만큼이나 널리 퍼진 ‘제페토’가 그 사례다. 제페토는 네이버제트가 만든 증강현실(AR) 아바타 애플리케이션. 사용자가 실제 얼굴을 바탕으로 아바타를 만들고, 가상현실(VR)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플랫폼이다. 현실세계와는 차별화되는 가상현실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3차원의 가상세계를 의미하는 ‘메타버스(metaverse)’의 대중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블랙핑크의 공연과 팬미팅이 취소되자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제페토를 활용한 가상 팬미팅을 열기도 했다. 송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미래정책팀 팀장은 “코로나19 이후 가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집에서 혼자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연결에 대한 지향이 있다”면서 “완전히 단절된 비대면 콘텐츠 소비가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길 원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MZ세대 사이에서는 이미 아바타를 이용해 소통하는 게 당연해졌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 가상세계에서의 콘텐츠 소비, 아바타를 이용한 연결이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비력·연령에 따른 삶의 질 양극화 대비해야 콘텐츠 소비와 여가 트렌드가 바뀌는 과정에서 삶의 질 양극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특히 소비력에 따라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명확히 갈릴 거라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는 콘텐츠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해당된다. 국내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사람들이 극장 가길 꺼리면서 영화제작사와 투자배급사는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명확한 대작을 만들려고 한다. 수십억∼100억 원 정도 들어가는 ‘중간’ 영화가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소비자 역시 고사양, 고품질의 콘텐츠를 소비하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예를 들어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 콘텐츠를 즐기려면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모니터 등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다. 세대에 따른 콘텐츠 소비의 양극화도 심화될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여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복수로 구독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반면 정보력이 부족한 중장년층은 TV가 유일한 콘텐츠 창구가 될 수 있다. 송진 팀장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저가 콘텐츠와 큰 화면과 고화질로 즐길 수 있는 고가의 콘텐츠가 명확히 갈리고, 향유 주체의 차별화가 심해질 것”이라며 “문화 콘텐츠의 중간 영역이 약화되지 않을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김재희 jetti@donga.com·이호재 기자·이원홍 전문기자}

“‘명량’의 김한민, ‘벌새’의 김보라는 이제 어디서 나오나.” 신인 감독의 등용문이자 독립·예술영화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장수 영화제들이 코로나19로 줄줄이 취소되면서 영화업계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다. 김한민 김보라 감독은 물론 ‘곡성’의 나홍진 감독,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 감독을 배출한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올해 영화제를 개최하지 않는다고 최근 밝혔다. ‘한국 단편영화 제작 편수는 미쟝센영화제 출품 편수와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편영화제였다. ‘인디다큐페스티발’도 영화제 개최와 사무국 운영을 잠정 중단한다고 지난해 12월 말 발표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20주년을 맞은 지난해 “팬데믹 등 급변하는 환경에서 영화제를 지속할 수 있는 물적 기반과 새로운 동력을 갖추기 위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2002년 출범한 미쟝센영화제는 ‘후배 감독 양성’을 내세우며 신인 감독의 장편 및 상업영화 데뷔를 지원해 왔다. 이경미 감독은 2004년 ‘잘돼가? 무엇이든’으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당시 영화제 부위원장이었던 박찬욱 감독이 그를 눈여겨봤다. 박 감독은 이 감독의 첫 상업영화 ‘미쓰 홍당무’ 제작자로 합류했다. ‘승리호’를 제작한 조성희 감독 역시 2008년 ‘남매의 집’으로 대상을 받았다. 당시 최대 화제작이었던 남매의 집을 주목한 제작사가 많았고, 그중 한 곳인 ‘비단길’과 손잡은 조 감독은 첫 상업영화 ‘늑대소년’을 선보였다. 김한민 감독은 2003년 ‘갈치괴담’으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윤종빈 감독은 2004년 ‘남성의 증명’으로, 나홍진 감독은 2005년 ‘완벽한 도미요리’로 각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독립예술영화제 수상작들은 극장에 걸리거나, 단편이 장편으로 제작되는 경우도 많았다. 김보라 감독에게 대종상 신인감독상과 청룡영화제 각본상을 안긴 ‘벌새’도 2011년 미쟝센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단편 ‘리코더 시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선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예술영화팀장은 “상영관 확보가 어려운 독립예술영화와 단편영화는 영화제가 주요한 상영 창구다. 영화제가 취소되면 신인들이 작품을 선보일 유일한 기회가 사라지는 셈이다”라고 했다. 그는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과 제작사 및 투자배급사가 가진 미팅이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기회가 줄어드는 것도 신인 감독들에겐 큰 타격”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와중에 기업들도 독립예술영화 지원을 축소하면서 독립예술영화계의 보릿고개는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독립예술영화 상영관인 CGV아트하우스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으로 지난해 10월 CGV아트하우스 전용관이던 명동역점과 대학로 씨네라이브러리 운영을 중단했다. ‘돼지의 왕’ ‘족구왕’ 등 많은 독립영화를 배급·상영했던 KT&G 상상마당 영화사업부에는 현재 직원이 1명만 남아 사실상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KT&G 관계자는 “온라인 영화 시장 확대에 코로나19로 인한 관객 급감으로 독립영화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사업 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상영 중심 공간에서 독립영화인들을 위한 교류 공간으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배급은 계속하면서 시설 투자, 독립영화 관련 전문업체 발굴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27일 개봉하는 영화 ‘세 자매’에 등장하는 가족 중엔 ‘멀쩡한’ 가족이 없다. 세 자매 중 첫째 희숙(김선영)의 남편은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로 돈이 필요할 때만 집에 찾아오고, 사춘기 딸은 희숙에게도 욕을 서슴지 않는다. 둘째 미연(문소리)의 남편은 미연이 지휘자로 있는 교회의 성가대원과 바람을 피운다. 중학생 아들을 둔 남자와 결혼한 셋째 미옥(장윤주)은 엄마 역할을 하고 싶지만 자신의 존재를 부끄러워하고 숨기려는 아들의 모습에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세 자매는 서로에게 ‘척’을 한다. 암 판정을 받은 희숙은 남편과 딸 중 그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지만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미연은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뒤 삶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상실감을 느끼지만 신도시 45평 자가에 사는 완벽한 가족인 척 포장한다. 소주를 입에 달고 사는 미옥은 술에 취해 시도 때도 없이 미연에게 전화를 걸지만 “또 술 마셨냐”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맨 정신인 척한다. 영화는 세 자매가 진짜 모습을 숨긴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근원 역시 ‘멀쩡하지 못했던’ 이들의 가족사에서 찾는다. 세 자매의 아버지가 막내아들 진섭과 첫째 딸 희숙에게 가했던 폭력, 이들이 아버지에게 맞는 모습을 지켜보며 매일 밤 ‘아버지 빼고 우리 가족 전부 죽어서 천국 가게 해 주세요’를 기도했던 미연. 문제적 가족으로 시작해 문제적 가족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겉으론 평범해 보이는 가정 어디에나 존재하는 가족 간 갈등과 봉합, 상처와 치유를 담는다.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영화의 메시지가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건 단연 배우들의 열연 덕이다. 세 배우의 연기는 숨이 막히는 듯한 갑갑함을,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인한 가슴 저릿함을 안긴다.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몰입감을 높인다. 엄마와 말을 섞는 것조차 싫어하지만 한편으론 동정심도 품고 있는 희숙의 딸 보미 역의 김가희와, 새엄마 미옥을 부끄러워하는 성운 역의 장대웅은 주변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가족 중 일원의 얼굴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 영화는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의 관계 속에서 희망을 찾아낸다. 술에 취하지 않은 척 전화하던 미옥에게 미연은 “맨날 술에 취해 전화로 중얼거리는 말이 기억은 나느냐”고 묻는다. 그런 미연에게 미옥은 “남편 집 나가고 이혼당하게 생겼지? 다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괜찮은 척, 완벽한 척, 맨 정신인 척하는 이면의 모습을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래서 표현은 못 해도 마음속으로는 서로를 가엾게 여기고 보듬으려는 가족의 의미를 일깨운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폴란드 출신의 거장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감독(73·사진)의 영화에는 역사의 상처가 흐른다. 홀로코스트가 폴란드를 휩쓴 직후 유대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유대인에도 폴란드인에도 속하지 못하며 배척당한 경험과 전체주의의 잔혹성을 영화에 녹였다. 아우슈비츠행 기차에서 탈출한 여성과 농부의 사랑을 그린 ‘전장의 로망스’(1985년), 나치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대인임을 숨기는 소년 이야기 ‘유로파 유로파’(1990년), 유대인들의 은신을 돕는 폴란드인 하수도 관리인 이야기 ‘어둠 속의 빛’(2011년)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영화들로 세 차례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고 유로파 유로파로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7일 국내 개봉한 ‘미스터 존스’는 1932∼1933년 우크라이나 대기근 ‘홀로도모르’를 폭로한 영국 기자 ‘개러스 존스’(제임스 노턴)의 이야기다. “우리는 역사의 희생양에게 진실을 파헤치고 이를 기억할 의무를 빚지고 있다”는 홀란트 감독을 서면으로 만났다. 홀로도모르는 스탈린 정권이 집단농장 체제에 반기를 든 우크라이나 자영농의 곡물을 수탈해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사건이다. 존스가 남긴 홀로도모르의 기록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시발점이 됐다. “소련의 공산주의, 특히 스탈린 정권은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고 자연의 법칙을 무너뜨렸어요. 오늘날 북한에서도 벌어지는 일이죠. 정치적 이념과 전체주의적 목표를 앞세워 자행한 수많은 범죄를 용서해서도, 잊어서도 안 됩니다.” 카메라는 홀로도모르를 파헤치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존스를 따라간다. 존스의 대척점에는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 ‘월터 듀런티’(피터 사즈가드)가 있다. 듀런티는 스탈린 정권의 돈으로 술과 마약 파티를 벌이고 정권을 칭송하는 기사를 쓴다. “영화는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언론은 여전히 한쪽 편에 서서 정치적 선전을 위한 기사를 씁니다. 소셜미디어와 가짜 뉴스가 퍼진 오늘날 용감하고 객관적인 저널리즘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요.”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영화학교에 진학하지 못해 체코로 떠났고, 자유노조운동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자국으로부터 입국 금지를 당했다. ‘대의’라는 이름 아래 희생된 개개인의 삶을 섬세하게 그리는 능력은 굴곡진 삶이 그에게 남긴 선물이다. “영화는 제게 감정과 사실, 상상력을 담는 도구이자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도구예요. 타인에 대한 이해이자 인간의 숙명, 자유를 향한 투쟁에 대한 공감이죠. 공감이야말로 제가 예술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레진코믹스의 웹툰 ‘유쾌한 왕따’를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올해 동시에 공개된다. 지진으로 세상이 무너져 내린 시대를 세계관으로 하는 웹툰이다. 1부 ‘유쾌한 왕따’는 학교 지하실에 갇힌 학생들의 이야기를, 2부 ‘유쾌한 이웃’은 아파트 주민들의 권력 다툼을 그렸다. 이 중 1부는 드라마로, 2부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각각 제작된다. 변승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는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은 드라마도 자연스럽게 보게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영화 개봉 시기에 맞춰 드라마를 방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누적 조회수 32억 회의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도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 주인공 ‘유미’의 현실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드라마는 올해 방영할 예정이고 애니메이션은 내년 공개를 목표로 캐릭터 개발 단계에 있다. 이희윤 네이버웹툰 IP비즈니스팀 리더는 “드라마가 사랑받을 경우 시청자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도 유입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나의 지식재산권(IP)을 영화 드라마 웹툰 등 여러 장르의 콘텐츠로 기획 제작하는 ‘동시다발 IP 확장 사례’가 늘고 있다. 기존에는 영화 및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면 팬들의 요청이나 제작사 판단에 따라 해당 작품의 전사(前史)를 담은 ‘프리퀄’이나 후속작인 ‘시퀄’이 만들어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예컨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개봉 7년 뒤인 지난해 영화의 10년 전 시점을 다룬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됐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도 개봉한 지 4년이 흐른 지난해 부산행 이후를 그린 영화 ‘반도’가 만들어졌다. 반면 이제는 콘텐츠 업계가 제작 단계부터 IP를 어떤 장르로 확장할지를 미리 기획하는 추세다. 기존에는 영화 또는 드라마의 흥행 여부에 따라 2차 저작물의 제작 여부를 판단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와 공개 시점을 동시에 기획한다. 이는 콘텐츠 소비자를 체계적으로 유인할 방법을 계획할 수 있어서다. 카카오페이지가 영화 ‘승리호’ 개봉에 앞서 주인공들이 우주쓰레기 청소선인 승리호에 탑승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웹툰을 공개한 게 대표적이다. 웹툰 팬을 영화로 유인하고 개봉 이후에는 캐릭터별 전사를 담은 웹툰을 추가로 제작해 팬심을 이어가는 전략이다. 변 대표는 “파생된 콘텐츠들 사이의 공개 시점이 너무 벌어지면 흥행 효과가 떨어진다”며 “동일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들이 소비자들에게 공개되는 간격을 기획 단계부터 정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동시다발의 IP 확장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면서 콘텐츠 업계는 확장성이 높은 이른바 ‘슈퍼 IP’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존에는 팬층이 비교적 탄탄한 웹툰이 가장 인기 있는 IP였다면 이제는 확장성이 IP의 매력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 영화 ‘신과 함께’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가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기획 제작하고 있는 ‘전지적 독자시점’은 웹 소설 플랫폼 ‘문피아’에 연재된 동명의 웹 소설이 원작이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가 지구 종말 후 세상을 구한다는 원작의 확장 가능성을 보고 문피아와 판권 계약을 맺었다.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는 “영상화를 목표로 원작을 발굴하기 위해 그동안 웹툰을 집중적으로 봤다면 이제는 웹 소설, 애니메이션, 유튜브까지 안 보는 게 없다”며 “확장성 있는 IP를 확보하기 위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콘텐츠를 봐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첫 번째 날’은 아마존 주요 건물부터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매년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다. 매일매일이 ‘언제나 첫 번째 날(Always Day One)’인 것처럼 일하라는 의미에서 베이조스가 아마존 창립 후 20여 년간 강조해 온 메시지다. 2017년 직원과의 회의에서 한 직원이 “두 번째 날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두 번째 날은 정체의 날”이라며 “정체는 상실로, 고통스러운 절망으로, 그리고 결국 죽음으로 이르게 된다”는 베이조스의 말은 자칫 비대해지고 혁신에 느려질 수 있었던 아마존이 끊임없이 진화한 비결을 보여준다.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세계를 움직이는 이 5개 기술기업들은 어떻게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 소속의 정보기술(IT) 기자인 저자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등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부터 파트타임 직원까지 2년에 걸쳐 임직원들을 만났다. 각 기업을 탐구하며 발견한 특징은 키워드를 통해 보여준다. 아마존의 ‘발명 문화’, 페이스북의 ‘피드백 문화’, 구글의 ‘협력 문화’, 애플의 ‘다듬기 문화’,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직 문화’다. 아마존은 하나의 창조가 일어난 다음 날은 다시 아마존의 첫 번째 날인 것처럼 새로운 창조를 시작한다. 부정적 피드백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말단 사원이 저커버그에게도 바로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페이스북의 문화도 생생히 보여준다. 협력이 강점인 구글의 경우 인공지능 음성 서비스인 ‘구글 어시스턴트’ 개발 과정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검색, 하드웨어, 인공지등 등 다양한 팀이 협업해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 비결을 공개한다. 각 기업에서 긍정적인 면모만 발견한 것은 아니다. 애플은 아직 스티브 잡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기존의 관습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처절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팀 쿡이 이끌고 있는 애플에서 발명은 한두 사람의 비전가에 의해 이뤄지고, 협력은 보안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수익성이 높은 기존 비즈니스인 윈도와 오피스에만 집중해 새로운 기술의 발명이 더뎠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사내 수직 구조를 없애고 발명 분위기를 조성한 과정을 통해 혁신을 실천하는 방법도 엿볼 수 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꿈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40대 흑인 캐릭터. 20일 개봉하는 피트 닥터 감독의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은 여러 면에서 기존 디즈니·픽사 작품들과 다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처음으로 흑인 캐릭터 ‘조 가드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영화의 메시지 역시 희망적인 여느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무겁고 심오하다. 학교 음악 선생님 조는 자신에게 꿈의 무대와 같았던 재즈 클럽에서 유명한 밴드와 공연을 하게 되지만, 꿈을 이뤘다는 충만함보다 ‘이게 다야?’라는 허무함을 느낀다. 12일 인터넷 화상 통화로 만난 김재형 애니메이터(48)는 소울에 대해 “기존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에서 벗어난 작품”이라고 입을 열었다. 2008년 픽사에 입사한 그는 ‘업’ ‘인사이드 아웃’ ‘토이스토리 4’ 등에 참여해 캐릭터들의 움직임을 만들었다. “디즈니 영화 대부분이 꿈을 찾아가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는데 소울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깜짝 놀랄 정도로 어두웠어요. 주인공도 최초의 흑인이고요. 수년 전부터 디즈니·픽사가 직원의 다양성 존중을 강조해 왔는데 이 영화는 그런 차원에서 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천편일률적 메시지와 백인 위주의 캐릭터에서 벗어났으니까요.” 흑인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흑인인 공동 연출 켐프 파워스와 사내 흑인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영화 제작 도중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관의 과잉 진압으로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해 인종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기에 영화에 편견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 썼다. “켐프가 흑인 문화, 움직임, 표정 등에 대해 애니메이터들에게 많은 조언을 줬습니다. 공교롭게도 제작 중 미국 내 인종갈등이 심각해졌기에 ‘이 문화는 이럴 거야’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제대로 그들의 문화를 반영하려고 했어요.” ‘업’ ‘인사이드 아웃’ ‘토이스토리’ 등 닥터 감독과 다수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지만 조가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는 오디션 신만큼은 연출이 까다로웠다고 털어놨다. “닥터 감독은 본인이 원하는 게 확고한데 애니메이터가 그걸 찾는 게 쉽지는 않아요. 특히 조의 피아노 연주 신에서 그가 무아지경에 빠진 모습을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죠. 손가락 움직임은 정확하면서도, 표정과 몸동작은 꿈을 꾸는 것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원했거든요. 가장 오랜 시간을 들인 장면인데 결과적으로 만족해요.” 연세대 의대 졸업 후 의사로 일하다 애니메이터의 꿈을 안고 2003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 애니메이터. 학교 음악 선생님이 됐지만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조와도 닮았다. 꿈을 이룬 뒤 비로소 행복은 ‘소원 성취’와 같은 거창한 순간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조처럼 김 애니메이터도 여유를 갖는 삶의 소중함을 배웠다. “부모님과 한동안 대화를 단절했을 정도로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가 좋아서 택한 애니메이터의 길이지만 그럼에도 일에서 오는 힘듦과 치열함이 있어요. 좀 더 여유를 갖고 즐기며 살아가도 된다는 소울의 메시지가 제게도 울림을 줬습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헐크 크기의 ‘근육괴물’, 특수분장과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연근괴물’은 놀라움 그 자체다.” 넷플릭스 ‘스위트홈’에 대해 미국 영화 정보 사이트 ‘IMDb’에 한 평론가가 남긴 리뷰다. 국내외 넷플릭스 ‘톱10’을 휩쓴 스위트홈의 인기 요인은 웹툰에서 걸어 나온 듯한 괴물 크리처에 있다. 운동 중독으로 “프로틴”을 중얼거리는 근육괴물, 머리가 잘려나간 단면이 연근을 닮아 ‘연근이’라는 별명이 붙은 연근괴물 등 크리처들에 숨을 불어넣은 김설진 안무가(40)와 시각특수효과(VFX) 업체 ‘웨스트월드’의 이병주 슈퍼바이저(39), 정고은 이사(42)를 만났다. ○ ‘연근이의 실체’, 김설진 안무가 벨기에 현대무용단 ‘피핑톰’ 단원이자 엠넷 ‘댄싱9’ 우승자로도 잘 알려진 김 안무가는 스위트홈에서 크리처들의 움직임을 설계했다. 이응복 PD는 김 안무가가 크리처 디자인을 위해 레퍼런스로 제시한 ‘반덴브란데 32번지’ 무대 영상에서 그가 뭉크의 ‘절규’를 표현하는 장면을 보고 연근괴물 역할도 함께 맡겼다. 8일 서울 강동구 연습실에서 만난 김 안무가는 크리처 구축 과정을 ‘전사(前史)를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크리처의 행동이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았고,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움직임이 있다면 이유 없는 움직임이 나오게 된 전사까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연근괴물도 철저한 전사의 구축을 통해 태어났다. 연근괴물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심한 인물로, 괴물화 직후 머리가 베여 앞을 볼 수 없게 된다. 김 안무가는 “직장 상사로부터 모멸감을 느낀 인물인 만큼 ‘누가 내 얘기를 하면 어떡하지?’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크리처로 설정했다”며 “시력을 갑자기 상실했기에 발바닥의 감각에 의존해 발을 질질 끌고, 손톱으로 벽을 더듬거리며 걷는 모습으로 연기했다”고 했다. 연근이의 마른 몸을 표현하기 위해 11kg을 감량했다. 연근괴물의 목소리도 김 안무가가 직접 냈다. 그는 “코의 윗부분이 잘렸으니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겠다고 생각해 파이프오르간 뚜껑이 열린 듯한 쇳소리를 냈다”고 했다. ○ ‘버추얼 프로덕션’ 도입한 웨스트월드 웨스트월드는 스위트홈에 참여한 유일한 VFX 업체로 크리처들의 CG를 총괄했다. 6일 경기 고양시 웨스트월드 본사에서 만난 정 이사와 스위트홈 프로젝트를 총괄한 이 슈퍼바이저는 가장 주목할 점으로 버추얼 프로덕션을 꼽았다. 이는 촬영 현장에서 CG가 입혀진 화면을 실시간으로 카메라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근육괴물은 키가 430cm에 달해 현장 구현이 불가능한데,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을 활용하면 근육괴물 역할을 하는 배우의 움직임에 CG가 입혀져 카메라에 나타난다. 이를 위해 카메라 안에서 가상공간의 3차원 좌표를 만들고, 좌표 내에서 크리처의 움직임을 파악해주는 ‘N캠’을 도입했다. 정 이사는 “N캠은 장비들이 많고 설치도 복잡해 스튜디오 촬영에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야외 촬영에 N캠을 활용한 버추얼 프로덕션을 국내 최초로 시도했다”고 했다.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정교한 연출이 가능했다. 이 슈퍼바이저는 “크리처의 크기가 촬영 감독의 상상보다 크거나 작을 수 있는데 CG로 완성된 크리처가 카메라에 나타나 촬영감독이 정확하게 앵글을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헐크 크기의 ’근육괴물‘, 특수분장과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연근괴물‘은 놀라움 그 자체다.’ 넷플릭스 ‘스위트홈’에 대해 미국 영화 정보 사이트 ‘IMDb’에 한 평론가가 남긴 리뷰다. 또 다른 인기 영화 정보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한 평론가는 ‘숱한 아포칼립스물과 스위트홈의 차별점은 신선한 괴물들에 있다’고 적었다. 스위트홈은 욕망으로 인해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는 상황에서 ‘괴물화’를 버티는 사람들이 괴물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영화 정보 커뮤니티 방문자 수 1, 2위를 다투는 사이트 내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 아시아뿐만 아니라 북미와 유럽 넷플릭스 ‘톱10’을 휩쓴 스위트홈의 인기 요인은 웹툰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듯한 크리쳐에 있다. 운동중독으로 “프로틴”을 중얼거리는 근육괴물, 머리의 절반이 잘려나간 단면이 연근 같아 ‘연근이’라는 별명도 붙은 연근괴물 등 10종이 넘는 크리쳐들에 숨을 불어 넣은 주역들을 만났다. 김설진 안무가(40)와 시각특수효과(VFX) 업체 ‘웨스트월드’의 이병주 슈퍼바이저(39), 정고은 이사(42)가 그들이다. ● 빼빼 마른 몸, 기괴한 움직임… ‘연근이’의 실체 김설진 안무가 벨기에 현대무용단 ‘피핑톰’ 단원이자 엠넷 ‘댄싱9’ 시즌2·3의 우승자로도 잘 알려진 김 안무가는 스위트홈에서 크리쳐들의 움직임을 설계했다. 이응복 PD는 김 안무가가 크리쳐 디자인을 위해 레퍼런스로 제시한 ‘반덴브란데 32번지’ 무대 영상에서 그가 뭉크의 ‘절규’를 표현하는 장면을 보고 연근괴물 역할도 함께 맡겼다. 연근괴물은 기괴한 움직임, 삐쩍 마른 몸으로 시청자들이 ‘원작과 가장 싱크로율(유사성)이 높은 캐릭터’로 꼽는다. 8일 서울 강동구 연습실에서 만난 김 안무가는 크리쳐 구축 과정을 ‘전사(前史)를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크리쳐들은 욕망에 잡아 먹혀 괴물이 됐기에 인간일 때의 욕망을 상상해 움직임을 설정했다는 것. 그는 “크리쳐의 행동이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았고,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움직임이 있다면 이유 없는 움직임이 나오게 된 전사까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김 안무가가 연기한 연근괴물도 철저한 전사의 구축을 통해 태어났다. 연근괴물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심한 인물로, 술에 취한 채 과장 욕을 하던 중 괴물로 변한다. 괴물화 직후 ‘재헌’에게 머리가 베여 앞을 볼 수 없게 된다. 김 안무가는 “직장 상사로부터 모멸감을 느낀 인물인 만큼 ‘누가 내 얘기를 하면 어떡하지?’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소리에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각이 발달한 크리쳐로 설정했다”며 “시력을 갑자기 상실했기에 서툰 걸음을 표현하기 위해 발바닥의 감각에 의존해 발을 질질 끌고, 손톱으로 벽을 더듬거리며 걷는 모습으로 연기했다”고 했다. 머리가 잘려 피가 빠져나간 연근이의 빼빼 마른 몸을 표현하기 위해 11kg을 감량하는 혹독한 다이어트도 감행했다. 연근괴물의 목소리도 김 안무가가 직접 냈다. 그는 “코의 윗부분이 잘렸으니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파이프오르간 뚜껑이 열린 듯한 쇳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크리쳐의 외형은 절반의 집념과 절반의 타고난 감각으로 만들어냈다. “하루 종일 괴물 생각만 하니 모든 사물들이 괴물과 연관된 이미지로 변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들을 보며 크리쳐의 초현실주의적 느낌을 살렸고, 벽지의 패턴부터 꼬여있는 전선에 이르기까지 일상 속 모든 사물이 영감의 원천이 됐다. “한라봉 사진을 보다가 눈알괴물의 두꺼운 피부와 주름진 질감을 떠올렸고, 난로를 켜면 서서히 불이 주황색으로 달궈지는 과정을 근육괴물의 몸이 붉게 변하는 과정에 녹였죠. 힘들지 않았냐고요? 스위트홈을 만들 땐 제 안에 없던 다른 호르몬이 나왔던 것 같아요. ‘이런 경험을 언제 해 보겠냐’는 생각으로 자유롭고 즐겁게 임했어요.”●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실시간 CG 구현한 웨스트월드웨스트월드는 스위트홈에 참여한 유일한 VFX 업체로 크리쳐들의 움직임, 질감, 빛에 따른 색감 변화 등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총괄했다. 6일 경기 고양시 웨스트월드 본사에서 만난 정 이사와 스위트홈 프로젝트를 총괄한 이 슈퍼바이저는 가장 주목할 점으로 버추얼 프로덕션을 꼽았다. 버추얼 프로덕션이란 촬영 현장에서 CG가 입혀진 화면을 실시간으로 카메라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근육괴물은 키가 430㎝에 달해 현장에서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을 활용하면 근육괴물 역할을 하는 배우의 움직임에 CG가 입혀져 카메라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카메라 안에서 가상공간의 3차원 좌표를 만들고, 좌표 내에서 크리쳐의 움직임을 파악해주는 ‘N캠’을 도입했다. N캠이 가상공간과 현실세계를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특히 넷플릭스의 기술 지원으로 N캠을 제작하는 영국 기업인 'N캠 테크놀로지' 본사 직원을 비롯한 N캠 전문가들이 한국을 직접 방문해 웨스트월드 직원들에게 N캠 활용 방법을 교육하기도 했다. 정 이사는 “N캠은 장비들이 많고 설치도 복잡해 스튜디오 촬영에만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스위트홈에서 야외 촬영에도 N캠을 활용한 버추얼 프로덕션을 처음 시도했다”며 “N캠을 공급한 해외 업체도 ‘이 기술을 야외에서 사용한 경우는 처음 본다’며 놀라더라”고 전했다.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로 더욱 정교한 장면 연출이 가능했다. 이 슈퍼바이저는 “크리쳐의 크기가 촬영 감독의 상상보다 크거나 작을 수 있다.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이 접목되면 CG가 입혀진 완성된 크리쳐가 카메라에 나타나 촬영감독이 정확하게 앵글을 잡을 수 있다. 배우가 크리쳐와 눈을 마주치는 연기를 하거나, 동선 파악을 할 때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디테일한 크리쳐들의 CG도 몰입감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흡혈괴물의 입에서 나오는 촉수, 연근괴물의 잘린 머리 단면과 펄럭이는 귀 등 특수효과로 만들지 못하는 크리쳐의 특징들을 CG로 구현했다.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왕년의 대스타? 웃기지 마세요. 단물 다 빠졌어요. 한물갔단 말입니다.” 한때 연예계를 주름잡던 배우에게 이보다 뼈아픈 ‘돌직구’가 있을까. 19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로 ‘벼락 스타’가 된 차인표였다. 그 후로 27년이 지났지만 과거의 이미지에 갇혀 있는 차인표에게 매니저는 위와 같이 말한다. 물론 실제가 아닌, 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차인표’에서다. 영화는 차인표가 벌거벗은 채 건물에 갇힌 와중에도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고자 구조대를 부르지 않고 탈출하려는 고군분투를 코믹하게 그렸다. 김동규 감독이 연출하고, 1626만 관객을 모은 ‘극한직업’의 제작사 ‘어바웃필름’이 제작한 이 영화는 차인표의 이미지에 기반해 감독이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다. 7일 화상으로 만난 차인표는 “이름을 내건 제목에 부담도 컸지만 정체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2015년 대본을 받았을 때만 해도 미국을 비롯해 여러 영화 제의가 들어오던 시기였어요. 그 후 정체기가 왔어요. 팬들께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해 4년 만에 출연을 결정했죠.” 영화 속 차인표는 대중이 생각하는 차인표와 완전히 다르다. 진흙탕에서 구르는 건 기본. 배우 ‘4대 천왕’이 출연하는 예능에 송강호, 이병헌, 설경구와 함께 섭외되지만 “3대 천왕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매니저의 말에 “설경구가 빠지는 거냐”는 ‘눈치 없음’도 시전한다. “저는 ‘바른 생활 사나이’ 이미지가 강해요. 제가 실제로 안 그렇더라도 대중이 그렇게 본다면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굴레를 만들었어요. 니체 같은 철학자가 나타나 망치로 제 틀을 깨주길 기다리던 순간 제 손에 쥐어진 대본이 차인표였어요. 앞으로도 기존 이미지를 탈피한 도전을 하고 싶어요.” 스스로 틀을 깬 그는 최근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며 팬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있고, 드라마와 영화도 기획하고 있다. “영화가 나온 뒤 ‘찐팬’이라며 응원하는 팬들 반응에 정말 행복했어요. 제일 닮고 싶은 배우가 주성치예요. 그처럼 남을 웃길 수 있고 저도 웃을 수 있는 코믹 장르에 또 도전하고 싶습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