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손효림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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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효림 기자입니다.

arys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28~2025-12-28
문화 일반52%
문학/출판23%
연극13%
교육3%
무용3%
산업3%
학술3%
  • [어린이 책]서로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친구랍니다

    햇살과 조개를 좋아하는 ‘바닷가곰’은 행복하다. 가끔 친구가 그리운 것만 빼고. 갈색 털을 가진 바닷가곰은 어느 날 갈대 사이에서 날개를 다친 하얀 새 ‘릴로우’와 만난다. 바닷가곰의 정성스러운 치료로 건강을 되찾은 릴로우. 둘은 함께 바다를 헤엄치고 열매도 나눠 먹으며 마냥 즐겁다. 한데 겨울이 오자 여름새인 릴로우는 따뜻한 곳으로 가야 했다. 바닷가곰도 겨울잠에 빠져든다. 몸의 크기도, 색깔도 다른 바닷가곰과 릴로우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친구가 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렸다.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온 릴로우와 수많은 꿈을 꾼 바닷가곰이 그칠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다정하다. 많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색다른 경험을 듣는 건 근사한 일이라고 속삭인다. 풍부한 색채로 곱게 그린 그림은 둘이 느끼는 행복을 선명하게 전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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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카가와 히데코씨 “요리하고 먹고 이야기하며 위안 얻는대요”

    함께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도 같이 하는 요리 수업이 있다. 때로 와인, 사케 같은 술도 곁들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 추억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열고 위안을 얻는다. ‘히데코 선생님의 연희동 요리교실’이다. 정확히는 한국에 귀화한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53) 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운영하는 ‘구르메 레브쿠헨’이다. 레브쿠헨은 생강쿠키를 뜻하는 독일어로 그에게 맛의 놀라움을 깨닫게 해줬다. 구르메는 미식가다. 유명 요리 선생님으로, 일본 가정식 요리법을 담은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맛있는 책방·4만5000원)을 최근 출간한 나카가와 씨를 4일 자택에서 만났다. 연희동 단독주택 골목에 자리한 파란색 담장의 2층 집이었다. 마당에는 빨간 장미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카가와 씨가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하며 요리교실로 사용하는 1층으로 안내했다. 그가 얼음을 가득 넣은 녹차를 건넸다.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은 계절별 음식을 실제 계절에 맞춰 각각 만드느라 요리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요즘은 365일 모든 식재료를 구할 수 있지만, 가급적 제철 재료를 사용해요. 맛이 훨씬 좋거든요. 수업할 때도 특별한 경우 외에는 제철 재료를 쓰려고 해요.” ‘히데코의 사계절 술안주’ ‘지중해 요리’ ‘셰프의 딸’ 등 여러 요리책과 에세이집을 낸 그는 이번 책을 숙성시키듯 만들었다고 했다. “10년이 지나도 계속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담으려 했어요. 한국은 요리와 식재료의 유행이 아주 빠른데요, 오래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고민했죠.” 간장, 청주, 식초 등 기본 양념을 고르는 법도 정리했다. 요리에 얽힌 추억과 에피소드를 구어체로 실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일본에서 절인 매실을 만드는 ‘우메보시 담그기’는 한국의 김장과 같은 의미로, 일본에 계신 어머니는 이제 하지 않는데 한국에 있는 자신이 열심히 하는 게 묘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감자고로케(크로켓)를 소개할 때는 고교 시절 친구들과 고로케를 사서 후후 불며 먹은 기억을 곁들인다.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와 플로리스트인 어머니는 제가 셰프가 되길 원하셨지만 어릴 때는 음식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학에서도 언어학, 국제관계론을 전공했고요. 20대에 동독, 서독, 스페인에 살면서 각 나라의 요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비교언어학을 공부하기 위해 1994년 한국에 왔고 이후 연세대 국문과 석사를 마쳤다. “동독, 서독에 살았기 때문인지 분단국가인 한국에 관심이 생겼어요. 저처럼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의 엄마가 됐죠. 기자, 번역가를 하다가 요리할 때 너무나 즐거워지는 스스로를 발견했어요.” 일본인으로는 처음 궁중음식연구원에서 3년간 공부했다.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는 걸 좋아하는 그는 지인의 권유로 2008년 요리교실을 열었다. 지금은 한 해 수강생이 150여 명이나 된다. 한 번 수업을 들으면 짧게는 2년, 길게는 7∼8년간 계속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수강 신청을 하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혼밥’ ‘혼술’의 시대라고 하지만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수강생들을 보며 확인할 수 있어요.” 그는 일찍 오는 수강생과 재료 다듬기를 같이 하고 설거지를 할 때는 와인 잔, 나무 도마 닦는 법도 하나하나 가르친다. “요리법만 알려주기보다 요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익혀 스스로 요리를 즐기게 하고 싶거든요.” 수업은 학기제로 3∼6월, 9∼12월에 한다. 수강생은 한 달에 한 번 강의를 듣는다. 요리부터 뒷정리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 걸린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달부터 드문드문 수업하고 있다. 그는 요리를 하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늦은 시간 퇴근하셔서 훈제 연어, 바게트 등 간단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드시던 아버지가 생각나요. 어머니가 오랜 세월 묵묵히 해주셨던 집밥에 대한 그리움도 짙어졌고요.” 그는 아버지의 레시피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수업이 없는 기간에는 재료 산지를 다니고 음악가, 도예가 등과 협업하는 행사도 한다. “셰프, 요리 연구가보다 ‘키친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어요. 부엌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다루니까요. 요리를 통해 다양한 분들과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그는 요리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정성껏 만든 요리는 모두를 평온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요리의 맛과 그에 담긴 마음이 국경, 이념, 세대를 초월해 계속 이어지는 데 제가 보탬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겁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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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토끼곰 치치 만나러 시골에 놀러 갈래요

    기다란 두 귀에 동글동글한 곰의 모습을 한 토끼곰 치치. 시골에는 신기한 존재들이 가득하다. 노란 나비가 살포시 치치에게 내려앉는가 하면 여유롭기 그지없는 소 한 마리가 꽃송이를 든 치치를 커다란 눈으로 바라본다. 삐악삐악 소리를 내는 샛노란 병아리들도 있다. 자연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선입견 없이 해맑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시원한 수박 넝쿨 아래서 쉴 수도 있고, 노랗게 여문 밀 줄기에도 기어 올라간다. 네 잎 클로버, 빨간 나무 열매, 황홀한 빛깔의 노을…. 볼수록 감탄이 나온다. 개미, 당나귀, 돼지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치치의 모습이 정겹다. 마음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면 삶은 놀랍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채워진다. 색색으로 표현한 사랑스러운 장면들에 미소가 나온다. 치치가 빨간 깃털을 따라 아마존을 모험하는 이야기를 담은 ‘아마존에 가면’도 함께 나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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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요리하고, 먹고, 위안 얻고…연희동 파란 담장 집 요리 교실

    함께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도 같이 하는 요리 수업이 있다. 때로 와인, 사케 같은 술도 곁들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 추억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열고 위안을 얻는다. ‘히데코 선생님의 연희동 요리 교실’이다. 정확히는 한국에 귀화한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53) 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운영하는 ‘구르메 레브쿠헨’이다. 레브쿠헨은 생강쿠키를 뜻하는 독일어로 그에게 맛의 놀라움을 깨닫게 해줬다. 구르메는 미식가다. 유명 요리 선생님으로, 일본 가정식 요리법을 담은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맛있는 책방·4만5000원)을 최근 출간한 나카가와 씨를 4일 자택에서 만났다. 연희동 단독주택 골목에 자리한 파란색 담장의 2층 집이었다. 마당에는 빨간 장미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카가와 씨가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하며 요리 교실로 사용하는 1층으로 안내했다. 그가 얼음을 가득 넣은 녹차를 건넸다.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은 계절별 음식을 실제 계절에 맞춰 각각 만드느라 요리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요즘은 365일 모든 식재료를 구할 수 있지만, 가급적 제철 재료를 사용해요. 맛이 훨씬 좋거든요. 수업할 때도 특별한 경우 외에는 제철 재료를 쓰려고 해요.” ‘히데코의 사계절 술안주’ ‘지중해 요리’ ‘셰프의 딸’ 등 여러 요리책과 에세이집을 낸 그는 이번 책을 숙성시키듯 만들었다고 했다. “10년이 지나도 계속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담으려 했어요. 한국은 요리와 식재료의 유행이 아주 빠른데요, 오래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고민했죠.” 간장, 청주, 식초 등 기본 양념을 고르는 법도 정리했다. 요리에 얽힌 추억과 에피소드를 구어체로 실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일본에서 절인 매실을 만드는 ‘우메보시 담그기’는 한국의 김장과 같은 의미로, 일본에 계신 어머니는 이제 하지 않는데 한국에 있는 자신이 열심히 하는 게 묘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감자고로케(크로켓)를 소개할 때는 고교 시절 친구들과 고로케를 사서 후후 불며 먹은 기억을 곁들인다.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와 플로리스트인 어머니는 제가 셰프가 되길 원하셨지만 어릴 때는 음식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학에서도 언어학, 국제관계론을 전공했고요. 20대에 동독, 서독, 스페인에 살면서 각 나라의 요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비교언어학을 공부하기 위해 1994년 한국에 왔고 이후 연세대 국문과 석사를 마쳤다. “동독, 서독에 살았기 때문인지 분단국가인 한국에 관심이 생겼어요. 저처럼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의 엄마가 됐죠. 기자, 번역가를 하다가 요리할 때 너무나 즐거워지는 스스로를 발견했어요.” 일본인으로는 처음 궁중음식연구원에서 3년간 공부했다.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는 걸 좋아하는 그는 지인의 권유로 2008년 요리 교실을 열었다. 지금은 한 해 수강생이 150여 명이나 된다. 한 번 수업을 들으면 짧게는 2년, 길게는 7~8년간 계속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수강 신청을 하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혼밥’ ‘혼술’의 시대라고 하지만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수강생들을 보며 확인할 수 있어요.” 그는 일찍 오는 수강생과 재료 다듬기를 같이 하고 설거지를 할 때는 와인 잔, 나무 도마 닦는 법도 하나하나 가르친다. “요리법만 알려주기보다 요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익혀 스스로 요리를 즐기게 하고 싶거든요.” 수업은 학기제로 3~6월, 9~12월에 한다. 수강생은 한 달에 한 번 강의를 듣는다. 요리부터 뒷정리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 걸린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달부터 드문드문 수업하고 있다. 그는 요리를 하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늦은 시간 퇴근하셔서 훈제 연어, 바게트 등 간단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드시던 아버지가 생각나요. 어머니가 오랜 세월 묵묵히 해주셨던 집밥에 대한 그리움도 짙어졌고요.” 그는 아버지의 레시피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수업이 없는 기간에는 재료 산지를 다니고 음악가, 도예가 등과 협업하는 행사도 한다. “셰프, 요리 연구가보다 ‘키친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어요. 부엌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다루니까요. 요리를 통해 다양한 분들과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그는 요리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정성껏 만든 요리는 모두를 평온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요리의 맛과 그에 담긴 마음이 국경, 이념, 세대를 초월해 계속 이어지는 데 제가 보탬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겁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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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새하얀 알뿌리서 튤립이 피었어요

    박완서 작가(1931∼2011)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66)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생명에 대한 놀라움과 기쁨을 잔잔하게 쓴 그림책이다. 하얗고 둥글게 생긴 알뿌리는 서울에 사는 비아 할머니에게 가게 된다. 친구인 뉴욕의 로사 할머니가 보낸 선물이다. 마당에 묻혀 겨울을 난 알뿌리는 눈부신 햇살과 할머니의 칭찬에 힘입어 땅 위로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꽃봉오리를 맺는다. 튤립이 피어나고, 손녀 민아는 꽃에 볼을 비비고 입을 맞춘다. 박 작가가 살았고, 지금은 호 작가가 머무는 경기 구리시 아치울 마을의 노란집과 마당이 알뿌리가 꽃을 피워내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세상에 태어난 건 잘한 일이라며 경이로운 시선으로 생명을 바라보는 마음이 화사한 색감의 그림과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마당에서 손수 꽃을 키우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에 감탄했을 박 작가의 모습을 그려 보게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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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 풍요롭게 하는 독서… 부담 아닌 즐거움 느끼도록[광화문에서/손효림]

    “둘이 서로 먼저 보겠다고 난리를 쳐서 순서 정하느라 진땀 뺐어.”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두 아들을 둔 지인의 말이다. 두 아이를 흥분시킨 건 유튜브도, 게임도 아니었다. 초등학생인 스무고개탐정이 스무 개 질문을 던지며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였다. 모두 열두 권으로 지난달 완간됐다. 지인은 “큰아이가 학교에서 지정한 책을 매주 2권 읽고 독서 감상문을 써야 하는데 ‘스무고개 탐정’이 훨씬 재미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독서대 위에 책을 올려놓고 빨려 들어가듯 읽고 있는 둘째 아이의 사진도 보냈다. 이 시리즈를 쓴 허교범 작가(35)의 말이 생각났다. “어린이 독서의 목적이 지식을 얻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활자를 해석하는 그 자체가 독서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글자를 읽는 능력을 키우려면 재미를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독서록 작성 같은 숙제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책읽기가 의무가 되면 아이들이 독서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서뿐만이 아니다. 미술 음악 체육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완성하고, 노래를 매끄럽게 연주하며 줄넘기를 몇 회 이상 하는 등 꾸역꾸역 숙제처럼 해내야 하는 아이들이 많다. ‘파도야 놀자’ ‘거울 속으로’ 등으로 유명한 이수지 그림책 작가(46)도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림은 삶의 일부다. 그림 그리기를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 산, 딸 바다는 그가 작업을 할 때 옆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며 논다고 한다. 작업실 벽에는 두 아이가 그린 화분 그림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그림을 많이 그려줬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림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거침없이 그린다”며 웃었다. 그는 그림에 대한 즐거운 기억을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년 전 파리도서전에서 그가 현지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강연한 후 사인회를 할 때 아이들 손에 작은 그림을 그려준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한 아이가 손등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서 그려줬더니 다른 아이들도 너도나도 손을 내밀었다”고 했다. 이 작가는 정신없이 그리다가 웃음이 터졌고 아이들은 작은 손등의 그림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분명 유쾌하고 신나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독서, 예술, 체육…. 각각이 지닌 재미를 맛볼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스무고개 탐정’ 독자 가운데는 좋아하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인 팬픽을 쓰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자발적으로 글을 쓰며 아이들은 깊이 생각하고 은연중 자신에 대해 차원 높은 탐색을 하게 된다. 어릴 때는 물론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독서와 예술, 체육을 즐길 수 있다면 팍팍한 일상은 한결 촉촉해진다. 학창 시절에 배우고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함께할 수 있는 대상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모르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큰 즐거움이 아닌가.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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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몽실언니’ 권정생 작가,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

    ‘몽실언니’ ‘강아지똥’을 쓴 권정생 작가(1937∼2007)의 동시집으로, 처음 정식 출간됐다. 1972년 작가가 동시 25편을 손수 엮고 색종이로 소박하게 꾸민 모습을 최대한 살렸다. 그는 단 두 권을 만들어 ‘기독교교육’ 편집인이던 오소운 목사에게 한 권을 선물했다. 본인이 소장하던 책은 행방이 묘연해졌고, 오 목사가 간직한 책이 세상에 나왔다. 어머니의 병이 낫길 간절히 기도하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담긴 시가 9편이나 된다. ‘엄마 별이/돌아가셨나 봐//주룩주룩 밤비가/구슬피 내리네.//일곱 형제 아기 별들/울고 있나 봐….’(‘밤비’ 중) 자연의 싱그러움, 생활의 단면도 천진하게 그렸다. ‘땅속 마을에/설 잔치//아이들이/때때옷 갈아입었다….’(‘꽃밭’ 중) 결핵으로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도 교회 종지기, 주일학교 교사를 지내며 진실하고 투명한 글을 쓴 그의 청년 시절이 경이롭게, 때론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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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제 종정 스님 “어려운 시기… 연등 밝혀 대통합 이뤄야”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1개월 늦춰져 30일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봉행된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고 지도자인 종정(宗正) 진제 스님은 대통합을 강조하는 교시(敎示)를 발표했다. 이웃 종교인 가톨릭과 개신교계에서는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진제 스님은 교시에서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아동체(萬物與我同體)로다.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 모든 존재가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며 대통합을 강조했다. 스님은 이어 “우리 불교는 전통적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하여 신명을 다 바쳤다”며 “국민과 불자들이 연등에 불을 밝혀 대광명(大光明)이 충만하게 함으로써 코로나 질병이 소멸돼 세계 평화를 성취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추기경은 축하 메시지에서 “코로나19로 국가적 재난 상황이지만, 우리 종교계가 솔선수범하여 국난극복에 동참하고 있다”며 “더구나 한국 불교가 이번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를 이동하는 대승적 선택을 하신 데 큰 박수를 보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또 “중생에 대한 자비와 인류의 행복을 바라는 종교의 가치는 불교나 천주교 모두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며 “전염병으로 초래되는 불신과 원망, 분노 대신 자비와 평화, 사랑이 세상 곳곳에 퍼지도록 종교계가 함께 힘을 모으고 모범을 보여야 하겠다”고 말했다.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도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맞는 2020년 부처님오신날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근본적 과제를 성찰하며 이웃을 향한 더 깊은 연민과 연대의 자리로 낮아질 수 있기에 더욱 뜻 깊게 다가온다”며 “모든 승가와 불자들께 마음을 모아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중생을 구제하셨던 일과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행하신 일들이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감염병이 던져준 화두를 놓지 않고 불교와 기독교가 함께 노력한다면, 우리는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치유되고 화해된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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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로하고 격려하면 만사형통… 자비심 베풀며 위기 극복해야

    대한불교천태종 대전 광수사(주지 무원 스님)는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대축제를 개최한다. 23일 오후 6시 봉축 점등식과 29일 오후 6시 반 봉축 전야 점등식, 30일 오전 10시 반 봉축 대법회가 이어진다. 23일부터 30일까지는 특별 기도주간으로 정했다. 기도 주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퇴치와 경제위기 극복, 남북의 화해와 평화 염원, 불자들의 소원 기도 등이다. 무원 스님은 최근 법문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도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 만사가 잘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적 거리 두기는 만물과 자신을 하나로 여겨 자비심을 일으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실천”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이런 어려운 시기야말로 불자님들이 그동안 갈고닦았던 지혜와 자비심을 꽃피울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광수사는 29일 오후 6시 기념식을 시작으로 6월 3일까지 ‘개성 영통사 복원 15주년 회고전―천년의 기억’전을 연다. 천태종의 영통사 복원은 남북 화해와 평화의 상징이자 씨앗으로 기록돼 있다. 영통사는 개성시 외곽에서 약 8km 떨어진 오관산에 위치해 있다. 이 사찰은 16세기 무렵 화재로 소실돼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었다. 1998년 북한이 3년여에 걸쳐 발굴 작업을 시행하였고, 천태종이 복원 사업에 나서 2005년 10월 복원 낙성식을 열었다. 사진전은 2000년 북한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 4년여 동안 평양과 개성, 중국 베이징을 오가며 통일 불사를 위해 숨가쁘게 움직였던 현장들을 담았다. 스님은 “올해는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어렵게 부처님오신날 법회를 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부처님의 가피로 이렇게 대법회를 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고, 온 누리를 감싸시는 부처님의 가피가 북녘까지 환하게 내려지길 바란다”며 “영통사 복원 사진전을 기획했으니 모두 남북 화해를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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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7m 길이 종이에 담은 ‘물처럼 출렁이는 노래’

    보조 기구를 단 소년이 수영장에 들어간다. 연꽃이 피어나고 강, 바다로 이어지며 소년은 자유로이 유영한다. 분수가 합창하듯 솟아오르고 달과 별, 새를 만난다. 파란 수채 물감으로 맑게 그린 그림들은 서로 이어져 아코디언처럼 펼쳐진다. 신비로운 여정을 5.7m 길이의 종이에 담은 그림책 ‘물이 되는 꿈’(청어람아이)이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이 작품은 이수지 작가(46)가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본명 조윤석·45)의 앨범 ‘오, 사랑’(2005년)에 수록된 ‘물이 되는 꿈’ 가사로 만들었다. 서울 광진구 작업실에서 18일 이 작가를 만났다. 2014년 제주에 내려가 귤, 레몬 농사를 짓고 있는 루시드폴은 전화로 인터뷰했다. 2018년 가을, 출판사가 루시드폴에게 ‘물이 되는 꿈’을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음유 시인’으로 불리는 그의 노래 가운데는 시인들이 아름답다고 꼽은 가사가 많다. 그는 그림책을 여러 권 번역했고 동화책, 소설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루시드폴은 곧바로 이 작가를 떠올렸다. “이 작가님 팬이에요. 제 음악 세계와 정서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랄까요. 글자 없이도 하나의 서사를 지닌 작가님의 그림책을 좋아해요.” 부산 광안리 인근에 있는 초중고교를 졸업해 바다를 보며 자란 루시드폴은 물이 주는 편안함과 위안을 써내려갔다. 그는 “내 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물에 대한 각별한 감정이 툭 하고 터지듯 나왔다”고 했다. ‘물,/물이 되는 꿈…//강,/강이 되는 꿈/빛이 되는 꿈/소금이 되는 꿈//바다,/바다가 되는 꿈/파도가 되는 꿈…//별,/별이 되는 꿈/달이 되는 꿈/새가 되는 꿈….’ 이 작가도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그는 “가사가 담백하고 직관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리고 지상보다 물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누구일까 고민하다가 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생각났다. 수영장에서 재활훈련을 하는 수중재활센터를 찾아갔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물에 들어가면 너무나 좋아하고 편안해 보였어요. 보통 계획을 세밀하게 짠 뒤 작업하는데, 이번 책은 이야기 구조만 정한 채 노래를 들으며 살짝 달뜬 상태에서 마음 가는 대로 그렸어요. 자유롭고 충만했습니다.” 이 작가는 책 가운데 제본선으로 바다와 모래사장을 나누고(‘파도야 놀자’), 거울에 비친 모습과 실제 모습을 구분하는(‘거울 속으로’) 등 책의 형태를 흥미롭게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5.7m 길이의 이번 작품에서 책의 물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그의 특기가 ‘제대로’ 터져 나왔다. “독자들이 책장을 넘길 때 물처럼 흐르고 이어지는 느낌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아코디언 형태를 떠올렸어요. 책을 보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에게 ‘네 생각이 다 맞아’라고 말해주고 싶은 작품이에요.” 뒷면에는 루시드폴이 연필로 직접 그린 ‘물이 되는 꿈’ 악보를 담았다. 두 사람은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했다. 완성된 책을 본 루시드폴은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겨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 작가는 “협업을 하며 예술 세계가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루시드폴은 나무에 센서를 달아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비롯해 나무의 여러 소리를 채집하고 있다. 내년에 새 음반도 낼 예정이다. 그는 “음악적 장치들의 기름기를 빼고 목소리와 기타에 집중한 앨범을 만들겠다”고 했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영국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은 이 작가는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고, ‘파도야 놀자’는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으로 꼽히는 등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포맷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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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25년 만에 완성된 꼬마둥이의 모험

    ‘모모’로 유명한 미하엘 엔데(1929∼1995)가 다 쓰지 못한 동화를 독일 동화작가 빌란트 프로인트가 25년 만에 완성했다. 환상적이고 짜릿한 모험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꼬마둥이는 인형극단 마차를 운영하는 엄마 아빠를 몰래 떠나 악명 높은 기사 로드리고의 시동이 되겠다며 찾아간다. 로드리고가 위험한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고 하자 꼬마둥이는 우연히 마주친 공주의 마차로 돌진한다. 공주는 왕위를 물려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왕위를 뺏으려는 마법사가 공주를 노리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간다. 불을 뿜는 용, 숲의 정령이 등장하는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예측하기 힘든 사건들이 몰아친다. 전체 16장 가운데 3장까지 엔데가 썼다. 엔데가 만든 세상과 캐릭터를 기초로 쌓아올린 이야기의 성채는 매끈하고 견고하다.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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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 사색 그리고 준비… 출판으로 본 시대의 단면[광화문에서/손효림]

    “대학 교재는 70∼80%가 학교 구내서점에서 판매돼요. 일반 서점 비중은 20% 정도입니다. 개강이 미뤄지고 온라인 수업을 하니까 교재를 진짜 안 사더라고요. 교수가 올린 PPT도 있고 강의 다시 보기도 가능하니 그걸로 때우는 거죠. 매출이 반 토막 났어요.” 한 대학 교재 출판사 대표는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책을 사는 이가 많아졌다고 해 실제 어떤지 물어보자 돌아온 답변이다. 일반 서점의 대학 교재 판매가 늘었다는 소식에 지인들이 “다행이다”라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출판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일단 온라인 대형서점만 보면 긍정적이다. 예스24는 올해 1월부터 이달 8일까지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나 뛰었고, 알라딘 역시 3, 4월에 매출이 15% 증가했다. 반면 오프라인 서점 매출이 절반을 차지하는 교보문고는 1∼4월 판매량이 5%가량 줄었다. 고객이 직접 방문하는 동네 서점도 타격이 크다. 장르별로도 희비가 엇갈린다. 주식, 경제경영, 아동청소년 책은 상승이 두드러진다. ‘동학개미운동’으로 대표되는 주식 투자 열풍으로 주식 공부에 매달리는 이가 급증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경제 구조가 어떻게 변할지 모색하려는 시도가 경제경영 서적 구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 상황과 많은 부분이 겹치는 소설 ‘페스트’를 비롯해 ‘데미안’, ‘이방인’ 등 고전을 읽고 삶과 사회를 성찰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긴 자녀에게 필독서를 읽히려는 부모들은 지갑을 열었다. “아이가 놀다 지쳐 스스로 책을 집어 들더라”는 우스갯소리는 빈말이 아니었다. 여행 책 판매는 곤두박질쳤다. 그나마 찾는 건 국내 여행 책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첫째 주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대만 등 해외여행 가이드북과 에세이가 여행 분야 1∼20위를 모조리 휩쓸었다. 올해는 ‘전국일주가이드북’, ‘대한민국 요즘여행’ 같은 책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어학 책 판매도 급감했다. 채용 일정 연기가 큰 영향을 미친 가운데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되자 외국어 공부에 대한 관심도 주춤해졌다는 분석이다. 출판사들 가운데는 새 책 출간을 연기한 곳이 많다.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북 콘서트를 열기 어려운 데다 오프라인 이벤트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행사에 참여하는 독자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출판 시장은 ‘젊은 피’ 역할을 하는 신간을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활기가 떨어진 게 사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선호하는 책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 노트북, 휴대전화 사용 시간이 늘어나면서 전자책 판매가 증가하고, 오디오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사람들의 생각과 원하는 바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책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편집, 마케팅까지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을 출판계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는 나침반은 이렇게 드러난 수많은 지층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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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현대판 ‘말괄량이 삐삐’가 필요해

    ‘삐삐롱 스타킹’, ‘사자왕 형제의 모험’으로 유명한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 올해 3월 백희나 작가가 그의 이름을 딴 상을 받았다. 전기 작가인 저자는 린드그렌이 쓴 원고, 편지, 일기 등을 분석해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여유로운 농가에서 태어난 린드그렌은 탁월한 글솜씨로 17세에 신문사 수습기자가 됐다. 하지만 아버지뻘 되는 편집장의 애정 공세에 빠졌고, 싱글맘이 된다. 아들 라세는 위탁모에게 맡겨야 했다. 결혼해 딸을 낳은 린드그렌은 출판사, 자동차 클럽 등에서 일하며 계속 글을 썼다. 그는 폐렴 증상으로 침대에 오래 누워 있던 딸 카린에게 초인적인 힘을 가진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삐삐롱 스타킹’은 그렇게 탄생했다. 린드그렌이 교훈적이고 밝은 이야기를 다루던 기존 동화와 달리 자유분방한 캐릭터가 활약하고 죽음도 응시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과정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파격은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기에 가능했다. “아이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외로움”이라고 간파한 건 라세와 떨어져 지낸 죄책감으로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을 거듭한 결과였다. 쾌활한 그였지만 홀로 라세를 키울 때는 불안에 사로잡혔고 아들을 암으로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는다. 린드그렌은 작가로만 머물지 않고 과도한 세금 부과에 항의하고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 환경 보호, 동물 복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며 뜨겁게 질주했다. 그의 삶은 부당한 일에 물러서지 않고 동물들과 친구로 지내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삐삐와 겹쳐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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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괜찮아, 지금의 너로 충분하니까”

    삶이란 무엇일까. 인생에서 중요한 건 무엇이며 관계를 맺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영국에서 일러스트레이터와 표지 디자이너로 일하는 저자는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서정적인 그림과 함께 읊조리듯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친 들판에 홀로 있던 소년은 두더지를 만난다. 아주 작은 두더지에게 소년은 말한다. “네가 이 세상에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야.” 성공이 무엇인지 묻자 두더지는 답한다. “사랑하는 것.”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케이크를 먹으며 힘을 얻는 두더지. 소년에게 주려던 케이크도 먹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가장 쓸데없는 일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이며 나이 많은 두더지들은 자신의 꿈보다 내면의 두려움에 더 많이 귀를 기울였다는 것을 후회한다고. 둘은 덫에 걸린 여우를 구해주고, 말을 만난다. 그렇게 넷이 된다. 말은 이야기한다. 자신이 했던 가장 용감한 말은 “도와줘”였으며 스스로가 정말 강하다고 느낀 건 약점을 대담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때였다. 상처를 지닌 여우는 자신의 얘기를 좀처럼 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말이 계속 나아가야 할 이유를 묻자 조심스레 입을 연다. “너희 셋.” 삶의 여러 단면이 이들의 모습에 은유적으로 투영돼 있다. 소박한 언어로 나누는 대화에 귀 기울이다 보면 마음에 따뜻한 물이 차오르는 것 같다. 때로 강한 울림을 남긴다.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 적고 싶은 문장이 가득하다. 계속 나아가기만 해도 대단한 일이며 가장 심각한 착각은 삶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가 닥쳐오면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기, 살면서 얻은 가장 멋진 깨달음은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것…. 깊은 성찰과 위안이 담긴 글에 문득 멈춰 서서 지금껏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마음이 거칠어지고 메마를 때, 머릿속이 복잡하고 지칠 때면 책장을 한 장씩 넘겨보게 될 듯하다. 맑은 기운을 한껏 불어넣는 선물 같은 작품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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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광부, ‘인재양성’ 故 사애리시 선교사에 국민훈장 동백장 추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인재 양성에 힘쓴 고 사애리시(본명 앨리스 해먼드 샤프·1871~1972) 선교사에게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훈장 동백장(3등급)을 추서했다고 7일 밝혔다. 캐나다 출신 미국인으로, 1900년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 온 사애리시는 선교 활동을 하고 공주 영명중고교 전신인 명설학교 등 교육기관 20여 개를 설립했다. 특히 유관순 열사를 수양딸로 삼아 독립의식을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훈장은 책 ‘이야기 사애리시’의 저자 임연철 씨와 기념사업회 관계자가 대신 받았고, 추후 유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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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편제’ 소개 기사에 관심 폭발, 100만 첫 돌파”

    “‘서편제’가 서울 관객 100만 명을 최초로 돌파한 기록은 동아일보와 함께 만든 겁니다.”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만난 임권택 감독(86·사진)이 거실 한쪽에 쌓여 있는 동아일보를 바라보며 말했다. 1993년 ‘서편제’는 전국에서 350만 명 넘게 관람하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당시 중앙일간지로서는 이례적으로 사회면에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운 영화로 서편제를 소개했다. 이 기사는 개봉 직후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서편제에 관객이 몰리는 도화선이 됐다. “학교 선생님들이 서편제를 보라고 권했고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이어졌어요. 김영삼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도 서편제를 관람하고 제작진과 배우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영화를 밥 먹고 사는 수단으로 여겼는데 그렇게 많은 관객을 만나면서 영화를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서편제는 판소리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기폭제가 됐고, 주인공 송화 역으로 데뷔한 오정해는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해 말 동아일보는 임 감독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임 감독은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르는 등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1월 동아일보가 수여하는 일민예술상을 받았다. 상금은 5000만 원이었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일민예술상 받고 4개월뒤 칸에서 감독상… 어마어마한 해” ▼ “언론사에서 주는 큰 상을 처음 받게 돼 깜짝 놀랐습니다. 동아일보가 어떤 신문입니까. 그 험했던 왜정 때 독립운동을 보도하고 손기정 선수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했잖아요. 박정희 정권 때 백지 광고 사태를 겪었고요. 그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언론사가 영화감독에게 상을 주다니…. 참 좋았습니다.” 임 감독은 일민예술상이 주목한 그해 5월 칸 영화제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국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감독상을 거머쥔 것이다. 그는 “2002년은 내게 어마어마한 해였다. 돌이켜보면 일민예술상을 받으며 시작한 2002년의 좋은 기운이 칸 영화제까지 이어진 것 같다”며 웃었다. 신군부의 언론사 강제 통폐합으로 동아방송이 마지막 방송을 한 1980년 11월 30일 임 감독은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고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1934∼2008)과의 추억도 많다. “흥이 많으셨던 회장님은 판소리에 대한 애정이 깊으셨어요. 서편제를 만들 때 판소리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관심을 가져주셨지요. 큰 힘이 됐습니다.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 1기를 회장님과 함께 다니기도 했답니다.” 임 감독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현관문 앞에 놓인 동아일보를 직접 챙겨와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40년 넘게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정치, 사회, 문화 기사 두루두루 다 봅니다. 아내는 문화 국제 뉴스를 주로 읽어요. 오후에는 손자 지우와 놀고요.(웃음) 매일 신문을 봐서 세상 돌아가는 걸 알지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며칠 집을 비울 때면 이웃이 동아일보를 모았다가 전해준다. 임 감독이 신문을 열심히 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안 읽은 신문은 다 챙겨 봐요. 종이에 인쇄된 글씨를 읽는 걸 즐깁니다. 책을 살 때도 서점에 가서 손으로 책을 집어 들고 이리 저리 살펴본 다음에 구입해요. 그게 재미니까요. 신문, 책처럼 종이가 지닌 특유의 촉감을 좋아합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우는 임 감독이 신문, 책을 볼 때면 “할아버지 공부하고 계세요”라고 다른 가족에게 말한다. 동아일보에 보도된 임 감독 관련 기사는 모두 스크랩돼 있다. “여러 신문에 난 기사를 모았는데 동아일보 기사가 진짜 많아요. 동아일보는 영화 사랑이 유별나게 컸다고 할까요.”(웃음) 신문 기사를 비롯해 임 감독이 받은 트로피, 상, 자료 등은 모두 동서대 임권택영화박물관에 있다. 그는 동서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 석좌교수다. “동아일보는 굵은 물줄기를 이루며 굽이굽이 살아온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신문입니다. 그런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용인=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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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리코더 없는 짝꿍 챙겨주고 싶어요

    5학년 새 학기, 선생님은 ‘자율 대청소’를 시킨다. 아이들은 청소하기 쉬운 곳만 하려 하고 몇몇은 학원 수업이 있다며 가버린다. 자율 대청소를 폐지한 선생님이 제안한 건 리코더 합주. 가린이네 모둠은 연주가 계속 틀려 남아서 연습을 하게 된다. 나머지 공부라니. 1등 가린이에게는 치욕이다. 공부 시간을 뺏기는 것도 싫다. 한데 짝인 준기는 리코더를 가져오지 않고 플루트 영재 형갑이는 연주를 잘 못하는 친구들에게 짜증을 내는데…. 친구에게 관심이 없던 가린이가 리코더 합주를 계기로 한 명 한 명과 가까워지고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경쾌하게 그렸다. 준기가 리코더를 마련하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자 리코더 살 돈을 빌려주는 등 친구들을 챙기게 된 가린이. 비로소 사람과의 관계, 삶의 이유를 찬찬히 생각해 본다. 아이들의 행동과 심리를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에 빠져든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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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와 손잡고 콘텐츠 제작… ‘포맷’ 수출도 활발

    CJ ENM은 세계인이 즐기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만든 미국 제작사 스카이댄스와 올해 2월 공동 제작 및 투자 제휴를 맺었다. 지난해에는 넷플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넷플릭스 가입자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제작에 나선 것. 스튜디오드래곤의 콘텐츠 일부도 넷플릭스로 선보일 예정이다. 콘텐츠 포맷 수출도 활발하다. 2016년 한국 예능 포맷으로는 처음 미국에 판매한 ‘꽃보다 할배’는 ‘Better Late Than Never’란 제목으로 미국 NBC의 프라임 타임에 편성돼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랐다. ‘꽃보다 할배’ 포맷은 이탈리아 터키 이스라엘 프랑스 등 10개국에 수출됐다. 다음 달에는 네덜란드 지상파 채널 RTL4에서 ‘네덜란드판 꽃보다 할배’ 시즌2가 첫 방송된다. 엠넷 ‘너의 목소리가 보여’ 포맷도 태국 인도네시아 불가리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루마니아 캄보디아 슬로바키아에 수출돼 사랑받고 있다. 올해 말에는 미국 FOX에서 ‘미국판 너의 목소리가 보여’가 처음 방송될 예정이다.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터키에서 현지 감독과 배우를 기용해 현지 언어로 제작한 영화는 40편이 넘는다. 특히 영화 ‘기생충’이 이룬 성과를 발판으로 할리우드 진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현재 ‘오로라(Aurora)’, ‘하우스메이드(The Housemaid)’ 등 1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CJ ENM은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시청할 수 있는 한류 종합 엔터테인먼트 채널 ‘tvN Asia’와 한국 영화를 24시간 방영하는 채널 ‘tvN Movies’도 운영하고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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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비틀스 할아버지, 마법 보여주세요!

    비틀스 멤버로 손주 8명을 둔 폴 매카트니(78)가 그림책을 냈다. 그가 만든 명곡 ‘헤이 주드’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이 책은 한 손주가 “그랜주드(grandude·‘할아버지’의 친근한 표현)”라고 부르자 영감을 얻어 쓰게 됐다. 비 오는 주말 루시, 톰, 엠, 밥이 심심해하자 할아버지는 나침반을 문지른다. 놀랍게도 해변이 펼쳐진다. 거대한 날치를 타고 파도 위를 날다 모래사장에서 한숨 돌릴 무렵, 발가락을 꼬집는 게들이 몰려온다. 할아버지가 다시 나침반을 문지르자 황야에서 카우보이를 만난다. 신나게 놀다 위기의 순간 또 다른 세계로 깜짝 이동하는 마법이 생기 넘치는 그림과 어우러진다. 최고의 마법은 놀고 난 뒤 이도 닦여 있고 얼굴도 씻겨져 잠만 자면 되는 게 아닐까. 책을 만드는 중간에 이를 본 손주들이 “마음에 든다”고 해 매카트니는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세계적 전설도 손주 앞에선 사랑만 주고 싶은 할아버지가 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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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이 책 속에서 헤엄치며 노는 재미를 느꼈으면…”

    “‘스탐’ 12권 언제 나오나요? 10분마다 (출판사인) 비룡소 홈페이지를 확인해요.” “벌써 완결된다니 슬퍼서 가슴이 아릿해요. ‘스탐’은 12년도 안 되는 내 인생의 최애작이에요.” ‘스무고개탐정’ 시리즈 마지막인 12권이 이달 초 출간되기 전 허교범 작가(35)의 블로그에 쏟아진 글이다. 12권이 나온 후 팬 카페 ‘스무고개탐정과 동료들’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에 ‘스포’ 표기를 하지 않으면 즉각 삭제하겠다”는 공지가 떴다. 어린이들을 한껏 달뜨게 만든 ‘스무고개탐정’ 시리즈를 완간한 허 작가를 14일 서울 강남구 비룡소 사옥에서 만났다. 스무 개 질문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스무고개탐정이 친구들과 함께 활약하는 이 시리즈는 2013년 출간된 후 7년간 누적 판매량 35만 권을 돌파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허 작가는 “시리즈를 완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힘겨워하던 과거의 내가 받을 칭찬을 대신 받는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강원 홍천군이 고향인 그는 이야기를 좋아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작가를 꿈꿨다. 사회 시스템과 갈등을 공부하면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는 졸업하지 않겠다며 학교를 10년이나 다녔다. “작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고 나서 많이 방황했어요. 몸무게도 20kg이나 늘었고요. 아들 셋 중 장남인데 서른이 다가오니 생계가 고민되긴 했어요.”  그래도 쓰고 또 썼다. 20대 막바지인 2013년, 비룡소에서 주최한 제1회 스토리킹 공모전에 ‘스무고개탐정과 마술사’가 당선되며 마침내 작가가 됐다. 당시 처음 도입한 어린이 심사위원 100명의 압도적인 지지로 1등이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인 스무고개탐정, 말썽을 일으키지만 마음 여린 문양이와 정보통 명규, 야무진 다희, 카드마술이 특기인 마술사가 단서를 하나하나 추론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데 어린이들은 열광했다. 그렇게 시리즈가 시작됐다. “전체 이야기를 담은 지도를 그려 놓진 않았어요. 제 속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따라갔죠. 범인을 정하지 않은 채 쓴 적도 있어요.” 다 쓴 뒤 논리적으로 안 맞는 내용을 수정했다. ‘스무고개탐정’은 몰래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를 밝혀내는 등 실제 있을 법한 일이 실감 나게 펼쳐지고 산속 보물을 찾아 나서는 모험도 한다. 학원, 공부에 짓눌린 아이들에게 짜릿한 판타지를 선사하며 단숨에 읽게 만든다. 독자들은 ‘스탐’ 팬픽(좋아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창작한 소설)도 활발하게 써서 올린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스무고개탐정의 진짜 이름이다. “이름을 부르면 스무고개탐정의 이미지가 망가질까 봐 밝힐 수 없어요. 아주 여성적인 이름이라는 것만 알려드릴게요.”(웃음) 그는 손꼽히는 인기 강사로, 학교와 도서관에서 초청하고 싶다는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수입은 대기업에 다니는 또래와 비슷하다. 그는 “전업 작가로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큰 행운을 누리게 돼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 청소년 판타지 소설과 추리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두 시리즈 다 올해 말이나 내년에 출간하는 것이 목표다.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단편도 쓰고 있다. “매일 아침 원고지 15장을 씁니다. 일의 여백을 두려 해요. 소진되는 게 두렵거든요.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꾼’, 그게 최고의 칭찬일 거예요. 어린이들이 책이라는 세계에서 헤엄치며 노는 재미를 맛봤으면 좋겠어요. 제 책이 더 큰 책의 세계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겁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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