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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4차 핵실험과 중국의 군사 굴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입지가 좁아지고 있어 대대적인 군사력 증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미 의회가 워싱턴 싱크탱크에 의뢰한 보고서에서 제기됐다.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0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재균형 2025’를 발표했다. 275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미 의회의 의뢰로 펜타곤(미 국방부)의 도움을 받아 CSIS가 작성한 것이다. 보고서는 아태 지역에서 미군의 역할을 증대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괌 기지에 배치된 핵공격 잠수함을 4척에서 6척으로 늘리고 장거리미사일도 빨리 성능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 지역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이 우방인 일본과 공동으로 빠르게 대처하는 조정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실험 후 재점화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론에 관해 보고서는 “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는 가치 있는(valuable) 미사일방어 체계를 제공할 것”이라며 강력히 추천했다. 보고서는 또 “한국군이 사드와 비슷한 방어 체계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싶어 한다”면서도 “그러나 미국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이런 체계를 개발하고 배치하려면 수십 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지상군 투입과 관련해선 “비상 상황에서 미국 본토의 병력이 적절한 시간에 한반도에 도착하지 않으면 한국과 미군의 피해를 줄이지 못하고 장기간의 고비용이 들어가는 결정적인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군사력과 관련해선 “북한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끝나는 내년 초까지 최대 4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질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며 “탄도미사일은 700기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4차 북핵 실험 이후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는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한국이 박근혜 정부 들어 북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증진에 집중했다. 한중 관계에 엄청난 가치(paramount value)를 두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한미 동맹에 대해서는 “한중 관계 증진이 당장 한미 동맹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또 “중국의 경제와 군사적 영향력이 완만한 속도이지만 커지고 있다”며 “중국이 10∼15년 안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에 오른다면 수세기 만에 처음으로 비영어권·비서구·비민주주의 국가가 세계 경제를 이끄는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이유종 기자}
중국의 성장률 추락 여파가 세계로 번지고 있다. 그동안 중국 경제의 성장에 의존해온 신흥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세계은행은 7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에서 2.9%로 낮춘 데 이어 19일 국제통화기금(IMF)도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6%에서 3.4%로 하향 조정했다. 여기에는 중국의 성장세 둔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중국 문제로 미국, 유럽, 신흥국에서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심상치 않은 중국발(發) 위기를 우려해 추가 금리 인상 시기를 늦추고 인상 횟수도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경제전문가 사이에서 예상한 연준의 올해 금리 인상 횟수는 4차례가량. 로이터통신이 최근 경제전문가 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3차례 금리 인상이 다수 의견이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도 중국발 악재에 노출돼 있다. 중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포인트 감소하면 향후 2, 3년 동안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이 0.1∼0.15%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유럽중앙은행(ECB)은 보고 있다. 실제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18일 현 경제 상황을 위기로 진단하고 ‘경제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프랑스 정부는 심각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20억 유로(약 2조6400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일본 역시 중국 기업과 거래하는 제조회사들의 매출이 급락하는 등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국 경제의 성장에 기대온 신흥국들은 선진국들보다 더 큰 충격파에 휩싸였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연초보다 19.68% 하락했다. 중국에 석유 등 자원을 수출해온 나이지리아(―17.5%) 카타르(―17.2%) 남아프리카공화국(―16.7%) 러시아(―16.6%) 등도 올 들어 시가총액이 크게 줄었다. 나이지리아는 최대 원유수입국이었던 중국이 경기 둔화에 빠진 여파로 지난해 수출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나라살림이 어려워져 최근 교사와 간호사들에게 급여도 주지 못하고 있다. 남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15일 국가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남아공은 진퇴양난의 상태다. 랜드화 환율은 사상 최고로 뛰었고,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4%로 6년 만에 가장 낮았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대만 딸기세대의 복수.’ 야당인 민진당의 승리로 끝난 16일 대만 총통 및 입법위원 선거 결과에 대해 ‘딸기세대’로 불리는 대만 젊은이들이 야당을 지지해 압승을 이끌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 분석했다. 딸기세대는 1981년 이후 태어난 대만의 20, 30대를 가리킨다. 딸기처럼 겉은 신선해 보이고 예쁘지만 힘든 일을 잘 견디지 못하고 살짝만 건드려도 물러진다는 부정적인 뜻에서 붙여진 말이다. 이들은 사회에 별 관심이 없고 자기만족만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국민당의 친중 노선이냐, 민진당의 독자 노선이냐’를 결정짓는 선거에서 딸기세대는 향후 경제에 대한 두려움,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적극 표출하며 정권 교체를 이끌었다. 실제 여론조사를 보면 딸기세대의 영향력은 두드러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8일 대만 양안정책협회의 온라인 조사 결과 청년층 134만 명이 한국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멤버 쯔위(17)를 둘러싼 사건의 영향을 받아 투표 참여를 결정했거나 표심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대만인인 쯔위가 한국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가 중국에 사과한 것으로 대만과 중국에서 큰 파문이 일었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당선자가 얻은 689만 표 중 무려 19.5%가 ‘쯔위 사건’에 분노한 딸기세대의 몰표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사회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던 딸기세대는 2014년 3월 이른바 ‘해바라기 운동’으로 저항 정신을 표출했다. 친중 성향의 마잉주(馬英九) 정부가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자 이들은 희망을 상징하는 해바라기 장식을 가슴에 붙이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입법원(국회)이 시위대에 점거됐다. 딸기세대는 또 국민당 정부가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소상공인들을 희생시키면서 중국과의 이해관계를 가진 거대 기업에 영합했다고 비난한다. 신입사원 초봉이 20년 동안 오르지 않은 반면 집값은 천정부지로 뛴 것도 분노를 자극했다. 해바라기 운동의 주역들이 대거 참여해 만든 정당 ‘시대역량(時代力量)’은 이번 선거에서 전체 113석 중 5석을 차지하며 단숨에 제3당으로 도약했다. 대만 최고의 록밴드 ‘소닉(Chthonic)’의 메인 보컬 린창쭤(林昶佐·40) 씨도 시대역량 소속으로 타이베이(臺北)의 한 선거구에서 당선됐다. 린 씨는 득표율 49.5%라는 높은 지지율로 국민당 린위팡(林郁方·5선) 의원 등 6명의 후보를 물리쳤다. 2010∼2014년에는 국제앰네스티 대만지부장을 맡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WSJ는 차이 당선자가 딸기세대의 분노에 힘입어 권력을 거머쥐었으나 현실적인 관점에서 양안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이와 동시에 중국에 배타적인 지지 세력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도권 정당으로 발돋움한 시대역량은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를 어렵게 하는 주장을 펼 것으로 보인다. 황궈창(黃國昌) 시대역량 대표는 “해바라기 운동을 잊지 않을 것이며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대만 시민의 미래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2014년 7월 22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간첩 및 반(反)체제 운동 혐의로 붙잡혀 1년 6개월 동안 수감됐던 미국 워싱턴포스트 테헤란 특파원 제이슨 리자이안(39)이 16일 풀려났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전격 해제하면서 두 나라가 서로 붙잡아 두고 있던 상대국 억류자를 석방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리자이안은 아랍에미리트(UAE)의 일간지 기자인 부인과 함께 이란 당국에 붙잡혔다. 부인은 2개월 뒤 보석으로 풀려나 UAE로 돌아갔으나 리자이안은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지난해 7월 국제사회가 이란과 핵 협상에 합의하면서 풀려날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이날 석방됐다. 이란 법무부는 국영 IRNA통신을 통해 “이란에 수감 중인 미국과 이란의 이중 국적자 4명과 미국에 수감된 이란인 7명이 교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현지 언론들은 이와 별도로 미국인 학생 1명이 추가로 석방됐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는 석방된 미국인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석방된 미국인은 리자이안 기자와 미 해병대 출신 아미르 헤크마티(32), 개신교 목사 사이드 아베디니(35), 노스라톨라 코스라비”라고 보도했다. 양국의 수감자 맞교환에는 스위스 정부가 중재 노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CNN방송은 석방된 미국인들이 스위스를 거쳐 미국에 도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해병대에 복무했던 헤크마티도 2011년 간첩 혐의로 이란에서 체포됐다. 처음에는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이후 형량이 줄어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개신교 목사인 아베디니는 2012년 9월 현지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코스라비에 대한 신상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은 간첩, 불법 무기 판매 혐의로 붙잡아 둔 이란인 7명을 풀어주고 미국에서 이란으로 무기를 수입하려다 적발돼 인터폴에 수배를 요청한 이란인 14명에 대한 기소를 취하하거나 수배 요청을 해제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란인은 7명 중 6명이 미국과 이란 이중 국적자였고 대부분 서방의 경제 제재 조치를 위반한 혐의였다. 이란 기업 파라텔의 공동 소유자인 바흐람 메커닉(69)은 수백만 달러를 받고 이란에 미국 기술을 불법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국방부와 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프로그램 운영을 맡았던 기술자 네이더 모단로는 이란의 위성 발사를 도운 혐의로 8년형이 선고됐다. 군사 장비를 이란에 불법 유출하려던 아라시 가흐레만(46)과 미 국방부와 계약한 업체를 해킹한 니마 골레스타네(30)도 석방 대상에 포함됐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도심 한복판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포함해 최소 6차례 폭발과 총격전이 발생해 테러범을 포함해 7명이 숨지고 20명 이상이 다쳤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공식 매체를 통해 “우리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대낮에 사람이 많은 도심 번화가를 노렸다는 점에서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테러와 같은 ‘소프트 타깃 테러’의 일종이며 파리 테러 이후 중동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대도시에서 일어난 IS의 첫 테러다. 14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자카르타의 상업지구인 탐린로의 스카이라인빌딩 1층 스타벅스 앞 주차장 등 일대에서 이날 오전 10시 50분부터 6차례의 폭탄 테러가 잇달아 발생했다. 낮 12시부터는 이 일대에서 경찰과 테러범 사이의 총격전이 2시간 이상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캐나다인 1명 등 민간인 2명이 숨졌고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한 테러범 5명이 숨지거나 사살됐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현지 방송 메트로 TV는 “적어도 14명의 무장 테러범이 관련돼 있다”고 보도했다. 테러범 2명은 경찰에 붙잡혔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우리 국민의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14일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는 여러 면에서 지난해 11월 파리에서 일어난 이슬람국가(IS)의 테러와 유사하다. 도심 번화가에서 일반인과 관광객 등을 겨냥한 전형적인 ‘소프트 타깃(민간인 등 방어 능력이 없는 공격 대상)’ 테러다. 무장 괴한들은 대담하게도 대낮에 서구 자본주의의 상징인 스타벅스 커피숍을 노렸다. 외신과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날 첫 폭발은 오전 10시 50분 탐린로 스카이라인빌딩 1층 스타벅스 앞 야외 주차장에서 일어났다. 첫 폭발 이후 10분 동안 이 일대에서 추가 폭발이 5차례 이상 더 이어졌다. 스타벅스 인근에서만 세 차례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범들은 인근 교통경찰 초소에도 폭탄을 투척했다.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멘 테러범 2명은 폭발 현장에 사람들이 몰리자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보는 여유를 부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건을 수습하던 경찰과 상황을 지켜보던 시민들에게 총을 쐈다. 경찰은 배에 총을 맞았고 시민도 총격을 받아 땅에 쓰러졌다. 이후 한 테러범은 경찰 초소 앞에서 남성 행인 1명을 잡고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다. 인근 은행 보안요원인 트리 세란토 씨는 AP통신에 “3명이 스타벅스에 들어가 자살 폭탄을 터뜨리는 것을 목격했다. (자살 테러범은) 체구가 작고 외국인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현장에 있던 로이터통신 사진기자는 “스타벅스 유리창이 깨졌고 길거리에는 3명이 숨진 채 누워 있었다. 경찰들은 건물 지붕에 올라가 용의자들을 총으로 쐈다”고 증언했다. 스카이라인빌딩 일대는 대통령궁 유엔사무소 쇼핑몰 외교공관 호텔 등이 밀집된 지역이고 미국 대사관과 불과 1km 떨어져 있다. 자살 폭탄 테러로 공포감을 조성한 테러범들은 이어 산발적으로 흩어져 쇼핑몰, 빌딩 등에 숨었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스카이라인빌딩 일대를 차단하고 테러범들을 뒤쫓았다. 경찰만 현장에 500여 명이 배치됐다. 첫 폭발 발생 약 1시간 뒤인 낮 12시부터 경찰과 테러범들 사이의 총격전이 시작됐다. 테러범 중 일부는 오토바이를 타고 경찰에 수류탄을 던졌다. 스카이라인 내 영화관에서도 총성이 들렸다. 테러범 2명은 스카이라인빌딩 인근 사리나 쇼핑몰에서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총격전은 2시간 이상 이어졌고 테러범 중 일부는 도주했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사건 발생 5시간 만인 오후 4시경 상황을 모두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날 사건으로 인도네시아인 1명과 캐나다인 1명 등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고 테러범 5명도 사살 등으로 숨졌다. 유엔환경기구에서 근무하는 네덜란드인 1명 등 20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경찰과 군 병력 등 15만 명을 동원해 경계 태세를 대폭 강화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현지 메트로 TV에 출연해 “국가와 국민들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이 같은 테러 행위에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 주재 외교공관들은 자국민들에게 테러주의보를 발령했다. 주인도네시아 미국 대사관은 현지 체류 미국인들에게 ‘사리나 쇼핑몰 일대를 피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대사관도 자국민들에게 이동 자제를 당부했다. 스타벅스는 “자카르타의 모든 지점을 임시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이슬람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에서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일으킨 테러가 발생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지난해 12월 IS 대원 등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 음모를 적발하고 용의자 9명을 체포했다. 안톤 차를리얀 경찰청 대변인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IS가 ‘인도네시아가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란 위협을 해왔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인 500∼700명이 IS에 가담하기 위해 출국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귀국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이유종 pen@donga.com·이설 기자}
중국 완다(萬達)그룹이 영화 다크나이트, 고질라 등을 제작한 미국 영화사 레전더리엔터테인먼트를 35억 달러(약 4조2437억 원)에 인수한다고 AP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이번 인수는 중국과 외국계 기업이 맺은 문화산업 분야 계약 가운데 최대 규모다. 1989년 일본의 소니사가 미국의 영화사인 컬럼비아픽처스를 34억 달러에 인수한 것에 견줄 만하다. 이로써 완다그룹은 영화 제작과 배급 및 상영 사업을 모두 갖추게 됐다. 부동산 개발로 성장한 완다그룹은 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영화와 스포츠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2012년에는 미국 2위의 극장 체인인 AMC홀딩스를 26억 달러(약 3조1500억 원)에 인수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아돌프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Mein Kampf)’이 70년 만에 독일에서 재출간되자마자 동났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8일 독일어 원문으로 출간된 ‘나의 투쟁’을 사려는 선주문이 1만5000부 들어오면서 초판 4000부가 다 팔렸다고 10일 보도했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는 정가 59유로(약 7만8000원)인 이 책을 170배 가까운 약 1만 유로(1320만 원)에 팔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재출간본 초판의 소장 가치가 그만큼 높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아마존에서는 최저가 385유로(약 50만8000원)부터 거래됐다. 1925년 처음 출간된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1923년 ‘뮌헨 폭동’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바이에른 감옥에 갇혔을 때 썼다.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 등을 낱낱이 기록했다. 나치 집권 시절엔 1200만 부 이상 배포됐다. 이 책의 판권은 나치 패망 이후 독일 바이에른 주정부가 지난해까지 보유했지만 히틀러가 죽은 지 70년이 지나면서 저작권이 소멸돼 올해부터는 누구나 출판할 수 있다. 원본은 780쪽 분량이지만 이번 재출간본은 독일 현대사연구소가 히틀러 사상에 대한 비판적 주석을 붙여 2000쪽으로 늘어났다. 비판적 해석이 달려 있다고는 하지만 ‘나의 투쟁’이 큰 인기를 끌자 찬반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독일 유대인중앙위원회 요제프 슈스터 위원장은 “‘나의 투쟁’ 비판본은 히틀러의 오류를 폭로하고 반(反)유대주의에 맞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세계유대인회의 로널드 로더 의장은 “나치 관련 책은 학술적인 목적에 한해 출판이 가능하고, 이미 학자들은 ‘나의 투쟁’에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며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재출간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유대포럼’의 레비 살로몬 대변인도 “어떻게 악마에게 주해(註解)를 붙일 수 있느냐”고 재출간을 비판했다. 독일의 일부 서점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받을 상처를 고려해 판매를 거부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중동의 양대 맹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갑작스러운 국교 단절로 이르면 이달 중순으로 예상됐던 대(對)이란 경제 제재 해제 시점이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란은 국내 보수파의 반발을 억누르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받는 등 국제사회가 부과한 여러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했지만 막판에 사우디발 악재에 발목이 잡혔다. 미국은 전통적인 우방 사우디를 편들기도, 제재 해제 이후 함께 미래 관계를 풀어 나가야 할 이란을 홀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4일 “사우디를 선택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 관점에서 맞지 않다”고 보도했다. 그렇다고 사우디가 국교 단절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낸 마당에 사우디의 적대국인 이란에 대해 미국이 ‘경제 제재 해제’라는 선물을 안겨 주는 것도 외교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두 나라 관계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는다면 이란이 간절하게 바라는 경제 제재 해제의 시기가 늦춰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바람과는 달리 사우디-이란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사우디는 4일 이란과의 국교 단절 선언에 이어 5일 이란과의 교역 및 항공편 운항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아델 알 주바이르 사우디 외교장관은 이날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이란과의 외교 관계 단절은 항공편, 교역 중단은 물론이고 사우디 국민의 이란 여행 금지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항공 당국도 “사우디의 외교 관계 중단에 따라 (사우디와의) 항공편 운항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우디 당국은 이란 무슬림이 사우디 메카와 메디나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허용하기로 했다. 무슬림의 의무인 성지 순례를 보장함으로써 사우디가 갖고 있는 종교적 권위를 지키려는 조치로 보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사우디의 주바이르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란과 단교를 선언한 것을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어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는 “이란 국내의 외교시설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했다. 유엔은 또 스타판 데 미스투라 유엔 시리아특사를 사우디와 이란에 파견하기로 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 뉴욕=부형권 특파원}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남성 5명을 처형하는 동영상을 최근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런데 이 참수 동영상에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대원이 출연해 ‘제2의 지하디 존’(사진)이 등장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지하디 존으로 불리던 무함마드 엠와지는 IS의 참수 동영상에 종종 등장했던 영국 출신 대원으로 지난해 11월 미군의 공습으로 숨졌다. BBC 등 주요 외신들은 최근 IS가 자신들이 적발한 영국 스파이라고 주장하며 남성 5명을 처형하는 동영상에서 검은 복면을 쓰고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한 대원이 “작은 섬나라(영국) 따위가 불과 몇 대의 비행기로 우리를 위협하니 한심하다”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3일 보도했다. 10분 30초의 동영상에 등장한 남성들은 처형되기 직전 IS가 점령한 지역에서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해 돈을 받고 영국에 넘겼다고 고백했다. 한 남성은 2014년 8월 미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사망한 IS 지도자급 아부 무슬림 알투르크마니의 정보를 서방에 넘겼다고 말했다. 다른 남성은 영국인 2명을 포함해 IS 전사들의 소재를 넘겨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시리아 락까, 리비아 벵가지 출신이라고 밝혔다. 총격 직전 영국 영어 억양의 복면 테러범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말투를 흉내 내며 “IS에 대항하다니 ‘저능아’임에 틀림없다. IS는 장차 영국을 침략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로 지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전문가 분석을 근거로 테러범이 남아시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자란 인물로 추정했다. 하지만 동영상에 붙은 영어 자막의 문법이 틀린 점으로 미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첩보기관인 MI5는 이번 참수 동영상 배포가 영국의 시리아 IS 근거지 공습 참여 결정에 대한 선전전의 일환일 것으로 보고 테러를 자행한 IS 대원들의 신원을 긴급 확인하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외교부 소식통을 인용해 IS가 이라크에서 패전한 사실과 주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 무능함에 주목하지 않도록 이 같은 선전 동영상을 배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이란 혁명의 아버지’ 루홀라 호메이니(1900∼1989) 가문에서 개혁 성향의 정치인이 배출될 것으로 보인다. 호메이니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를 몰아낸 초대 최고지도자로 이란인들에게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난해 12월 30일 ‘호메이니의 두 번째 등장’이라는 제목으로 호메이니의 손자 하산 호메이니(43·사진)를 집중 조명했다. 이 잡지는 하산이 보수파인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76)에 맞서 하산 로하니 대통령 등 개혁파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내다봤다. 하산은 2월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지난해 12월 18일 후보 등록을 마친 상태다. 고위 성직자 88명이 참여하는 국가지도자운영회의는 국가 서열 1위인 최고지도자를 선출한다. 호메이니의 두 아들은 모두 공식적인 정치 무대에 등장하기 전에 숨졌다. 하산의 아버지인 아흐마드도 호메이니를 보좌하며 이란 혁명 이후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1995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현 상황에선 하산이 할아버지의 뒤를 잇는 유일한 후계자다. 하산은 2월 선거에서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호메이니의 지지층은 여전히 두껍다. 또 로하니 현 대통령과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도 하산의 든든한 후원자다. 하산의 행보는 이란 정가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란 핵협상 등 보혁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할아버지 후광을 등에 업은 하산이 보수파인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온건개혁파인 로하니 현 대통령 사이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혁파를 이끄는 로하니 대통령과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2월 선거 승리를 통해 보수파가 다수인 현 국가지도자운영회의를 장악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반면 보수파의 거두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지난해 3월 사망설이 나돌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이번에 선출될 의원들이 차기 지도자를 뽑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국가지도자운영회의에 차기 최고지도자를 심사하는 위원회가 마련됐다. 이런 상황에서 하산이 개혁적 성향을 보이며 로하니 대통령 등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하산은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이지만 서양 철학에 관심이 많다. 또 음악, 여성 인권, 자유 등에 진보 성향을 보이고 있다. 축구 광팬으로 10대에는 축구선수로도 활동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신념을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개혁 성향의 젊은층을 대변하고 있다. 하산의 아들 아흐마드(18)는 트위터, 페이스북이 차단된 이란에서 거의 유일하게 허가된 사진 공유 애플리케이션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며 아버지와 이란 젊은이들이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FP는 “하산이 개혁파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더라도 호메이니라는 이름은 (보수파 등에서) 그를 보호하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12년 ‘좌파 부부 대통령’ 시대를 마감하고 10일 취임한 기업인 출신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친(親)시장주의 경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만만찮은 도전을 받고 있다. 장기간 좌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젖어 있던 나라여서 노동조합의 반발, 단기 경기침체 같은 복병을 만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8일 마크리 대통령이 발 빠르게 개혁을 추진하지만 걸림돌도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마크리 대통령은 이달 14일부터 쇠고기, 밀, 옥수수 등 농축산물에 매긴 15∼20%의 수출 관세를 폐지하고 콩에 대한 수출 관세율은 35%에서 30%로 낮췄다. 17일부터는 고정환율제를 폐지했다. 그 이전의 공식 환율은 달러당 9.8페소로 고정됐으나 암시장에서는 14.3페소에 거래됐다. 통제를 풀자 17일 페소의 가치가 달러당 15페소 가까이로 떨어졌다. 마크리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재정적자 축소 △외환보유액 확대 △대외신인도 제고라는 3대 정책 목표를 강력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10년 동안 묶여 있던 전기 가스 수도요금도 올리기로 했다. 제조업 기업이 장비, 부품을 제대로 수입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각종 ‘반(反)기업 규제’도 없애기로 했다. 개혁의 핵심은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 부부의 좌파 정책을 대폭 바꾸는 것이다. 철저한 페론주의자인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 부부는 방만한 복지 예산 지출로 나라 경제를 2014년부터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뜨렸다. 페론주의는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의 이름에서 따온 말로 △외국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복지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 키르치네르 정부는 농축산물에 높은 수출관세를 매겨 정부 재정을 모았고 이 돈을 저소득층의 환심을 살 각종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그러자 많은 농가가 농사를 포기했다. 작물 생산량도 줄어 이 나라는 올해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179억 달러(약 21조 원)의 곡물을 수출하는 데 그쳤다. 새 대통령의 개혁에 시장은 일단 반색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아르헨티나 채권에 다시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 시민 다니엘 알바레스 씨(57)는 NYT 인터뷰에서 “고정환율제 폐지로 농산물을 수출하는 농민들이 활력을 되찾았다. 간접적으로 다른 시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크리 대통령의 4년 임기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의회는 여소야대 구조로 여당의 힘이 미약하다. 24개 주 중 15개 주의 지사가 페론주의자일 정도로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마크리 대통령의 개혁이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것도 큰 부담이다.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율은 25%에 이른다. 경제개혁 조치를 해도 국민소득이 늘지 않으면 노조와 정부 사이에서 다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미 거대 강성 노조들은 마크리 대통령의 정책을 우려하고 있다. 후안 그라보이스 대중경제노동자연합 소속 변호사는 “(대통령의) 잘못된 ‘낙수(落水)효과’ 이론으로 아르헨티나 사회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낙수효과는 부유층의 투자·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 이어져 국가 전체의 경기를 일으키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Mein Kampf)’(사진)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히틀러의 만행을 경계하자는 의미에서 별도의 주석이 달린 비판본을 읽자는 주장이지만 히틀러의 사상 자체를 금기시해 온 오랜 관행에 비춰 보면 상당한 변화다. 히틀러를 바라보는 독일인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독일인들에게 총통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히틀러에 대한 독일인들의 생각을 분석했다. 잡지는 “내년 1월부터 나의 투쟁의 저작권이 만료되는 상황에서 새 논쟁이 일고 있다”며 “히틀러를 바라보는 독일인의 시각이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1925년 발간된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바이에른감옥에 갇혔을 때 쓴 것으로 나치 집권 시절 1200만 부 이상 배포됐다. 아리안 인종의 순수성을 주장한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 등을 이 책에 적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책의 저작권이 독일 바이에른 주정부로 넘어갔고 내년 초 재출간이 가능해졌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히틀러의 저술에 대한 ‘무비판적 출간’을 전면 불허한다고 밝혔다. 다만 주석 첨부 등 연구, 비판본 형식의 서적은 출판을 허용했다. 독일 현대사연구소(IfZ)는 내년 초 원본에 3500개의 주석을 첨부해 연구와 비판본 형태의 ‘나의 투쟁, 비판본’을 발간한다. 문제는 비판본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교육계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요제프 크라우스 독일교사협회 대표는 최근 비판본을 발췌해 16세 이상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고, 요하나 방카 교육부 장관도 24일 언론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샤를로테 크노블로흐 전 독일 유대인중앙회의 의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나의 투쟁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유민주주의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칠 수 있다”며 반박했다. 잡지는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히틀러에 대한 독일인의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여론조사업체 유거브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는 히틀러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이처럼 히틀러 개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이지만 독일인들은 점차 ‘히틀러 시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후 히틀러가 남긴 전체주의에 매우 민감했던 독일은 2006년 월드컵을 계기로 응원에 국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독일인들은 경기장에서 국기를 흔드는 것이 전체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우려에 그동안 사용을 자제해 왔다. 독일과 히틀러를 함께 떠올리는 사람도 많지 않다. 올해 실시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과 연관된 사람 또는 물건을 묻는 질문(복수 응답 허용)에 25%만이 히틀러를 떠올렸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주한 독일대사관에서 비서로 근무하는 체칠리에 브라이어 씨는 1977년부터 3년간 독일 프라이부르크 소재 막스베버직업학교에서 판매원 교육을 받았다. 일주일 중 이틀은 직업학교에서 이론을 배웠고 나흘은 식료품점에서 실무를 익혔다. 브라이어 씨는 최근 독일대사관 발행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위생, 친절 등 실무를 배웠는데, ‘고객의 주문은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라’는 교훈은 지금까지 몸에 배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현재 다른 직종에서 일하지만 직업 소명의식은 평생 남아 있다. 독일의 직업교육은 쾰른의 침대보 직조공 조합이 1149년 처음으로 도입한 중세 길드의 견습공 교육(Lehrlingsausbildung)을 모태로 한다. 이는 도제식으로 선임에게 일을 배워 숙련공으로 성장하고 더 기술을 닦아 마이스터(장인)에 오르는 방식이다. 이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길드에 예속됐다. 오늘날 독일의 직업교육은 견습공, 숙련공, 마이스터로 이어지는 체계가 중세 시대와 같다. 다만 지금은 직업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기업에서 실무를 익히는 이원제 교육 시스템으로 발전했을 뿐이다. 독일은 현재 약 9000개 직업학교에서 85만 명의 직업교육생을 가르치고 있다. 매년 50만 명 이상이 새로 직업교육을 받기 시작하고 2만 명이 넘는 숙련공은 마이스터 시험에 응시한다. 이런 교육 시스템에 대한 교육생의 만족도는 70%를 웃돈다. 직종은 말 관리사, 금세공사, 자동판매기 전문가, 네일아트 디자이너 등 344가지다. 직종 선호도는 시대에 따라 바뀐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소매 판매원, 미용사 과정이 인기를 끌었다. 2012년에는 말 관리사가 선호 직종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원제 직업교육의 강점은 무엇일까. 기업은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사관리를 할 수 있다. 또 최소 2년 이상 맞춤형 교육을 받은 검증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채용 과정에 필요한 시간, 비용도 아낀다. 부적절한 채용으로 발생하는 위험 부담도 던다. 직업교육을 마치고 입사한 직원의 충성도는 높다. 교육생도 무료 직업교육에다 일정 수준의 보수까지 받는 등 혜택이 크다. 정부가 공인하는 직업교육 수료증을 받으면 취업시장에서 매우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한 한국에선 실업계 고교가 대거 인문계 고교로 바뀌었다. 넘치는 대졸자들은 적절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기업에선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구인-구직의 미스매치는 기본적으로 실업계 현장 기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 진학률을 40%까지 낮추는 대신 직업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독일에선 젊은이들이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마이스터로 성장해 대졸자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어 막연한 불안감에 떨지 않는다. 이제 한국에서도 현장 기술 인력을 대거 배출하는 직업교육 시스템을 만들 때다.이유종 국제부 기자 pen@donga.com}
정치와 경제의 유착과 같은 정실주의(Cronyism)로 인한 부(富)의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노아 스미스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교수는 24일 블룸버그통신의 ‘블룸버그뷰’에 ‘정실주의가 최악의 불평등을 일으킨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 같은 결과를 소개했다. 스미스 교수는 부의 불평등 원인을 정실주의, 정실주의와 무관한 불평등, 소득 불평등, 근본적 빈곤으로 세분해 경제성장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가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수티르타 바그치 미시간대 교수팀이 2013년 발표한 ‘부의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문제일까?’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바그치 교수팀은 부패지수, 부호(富豪) 명단, 각국의 부패 상황을 조사해 정경유착과 경제성장률 간의 관계를 분석했다. 정실주의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또 정실주의와 무관한 부의 불평등, 소득 불평등, 근본적 빈곤 등은 경제 성장과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실주의의 대표 사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래서 득세한 러시아 신흥 재벌이 꼽혔다. 이들이 ‘파이 키우기’에만 매달려 경제를 비효율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파이 키우기로 얻어진 부는 권력과 가까운 사람들이 독점해 부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며 여기서 얻어진 부는 상당 부분이 권력 유지 등 경제 성장과 무관한 분야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정실주의 폐해는 브라질에서도 드러났다. 이 나라는 3분기(7∼9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4.5%로 극심한 경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가 곤두박질친 것은 정치권 부패 때문이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회장을 지낸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와 관련해서는 현재 50명 이상 현직 의원과 18개 기업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20억 달러(약 2조3000억 원) 이상의 뇌물과 리베이트, 돈세탁 사실이 드러났다. 기간산업인 석유회사가 흔들리는 바람에 노동자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나라는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빠져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10일 오후 5시 독일 북부 소도시 슈베린(인구 약 12만 명)의 한 유소년체육회관. 지역 사회봉사단체 ‘카리타스’가 이곳에서 독일 유입 난민을 환영하는 ‘웰컴카페(welcome cafe)’를 열었다. 카리타스 회원 등 시민 10여 명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온 난민 20여 명을 맞아 간단한 다과와 커피, 차 등을 먹고 마시며 난민들과 얘기를 나눴다. 난민들은 최근 1, 2개월 사이 독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시리아 출신 난민 알리 모하마디 군(17)은 “낮에는 직업학교에 개설된 독일어 과정을 다니고 있다”며 “따뜻한 환영은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슈베린에만 이런 웰컴카페가 6곳이나 운영되고 있다. 슈베린이 주도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는 독일 연방 정부의 결정에 따라 올해 2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슈베린은 2000명 이상을 수용했다. 슈베린은 옛 동독 지역으로 극우 정당인 국가민주당(NPD)이 주 의회 전체 71석 중 5석이나 차지하고 있다. NPD가 독일 연방 16개 주 중 의석을 확보한 곳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가 유일하다. 슈베린은 극우주의자가 제도권에서 지지를 받을 정도로 외국인의 정착을 꺼리는 분위기가 상당하다.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슈베린 중앙역 앞에선 극우주의자 300∼400명이 모여 ‘난민 대혼란 중지! 여긴 우리 땅이다. 메르켈 총리’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물론 일반 시민들이 모두 외국인의 정착을 꺼리는 것은 아니다. 카리타스 회원 클라우스 욀러킹 씨(57)는 “저출산으로 이미 인구가 줄고 있는 독일에서 난민 수용은 장기적으로 노동력 부족을 채울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난민들이 독일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슈베린 시청은 부시장을 팀장으로 지역 경찰, 연방군, 노동청 등이 참여하는 난민대책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지역 적십자사,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이 현장에서 난민들의 정착을 도왔고 난민들은 군부대 유휴시설, 학교에 일단 수용됐다.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만 18세 이하의 청소년은 24시간 동안 집중 관리하는 특별시설도 운영한다. 자원봉사자로 시민 100여 명이 나섰다. 슈베린 시는 내년 난민 3000명 이상이 더 들어올 것으로 전망했다. 안드레아스 룰 슈베린 부시장은 “독일인 50% 이상은 현재 난민 수용 정책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 난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내년 선거에선 극우정당이 10% 이상 득표하는 등 선전할 것”이라면서도 “난민은 결국 독일 사회가 포용해야 할 과제다. 해결책은 이들이 독일 사회에 융합(integration)되는 것인데, 그러려면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민 대부분은 독일어 구사 능력이 부족하다. 별다른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당장 독일에서 직업을 구하는 것은 어렵다. 독일 정부는 난민들이 사회에 안착하도록 독일어와 직업 교육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슈베린의 직업학교에는 현재 스페인, 헝가리, 그리스 등에서 들어온 외국인 230명이 다른 독일 직업교육생과 함께 훈련을 받고 있다. 슈베린 시는 이 과정에 난민들을 대거 포함시킬 계획이다. 슈베린상공회의소는 직업교육의 실무를 맡아 교육생과 직업학교, 실습기업을 연결해주고 있다. 최근 직업교육 과정을 소개하는 홍보 책자를 아랍어로 만들기도 했다. 페터 토트 슈베린상공회의소 직업교육국장은 “슈베린 등 인근 지역 기업 2만5000개 상당수가 난민의 직업교육 실습을 수용하겠다고 알려왔다”며 “서비스업 같은 진입장벽이 낮은 직종부터 일자리가 제공될 것”이라고 말했다.슈베린=이유종 기자 pen@donga.com}
필리핀에서 교민이 무장괴한의 총격으로 또 숨졌다. 올 들어 필리핀에서 발생한 11번째 한국인 피살자다. 경찰은 21일 범죄 전문 수사관 4명을 현지에 급파했다. 한국 경찰이 외국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직접 수사에 나선 것은 창설 이후 처음이다. 21일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20일(현지 시간) 오전 1시 반경 필리핀 중부 바탕가스 주 말바르 시에서 교민 조모 씨(57)가 자택에 침입한 4인조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조 씨는 당시 필리핀인 부인, 아기와 함께 잠을 자다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경찰은 괴한들이 금품을 훔친 흔적을 남긴 것으로 미뤄 단순 강도사건인지 아니면 사업상 원한 관계에 의한 범행인지 조사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침입 방법과 금품이 사라진 정황 등을 고려할 때 강도사건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원한에 따른 강도 위장 청부살인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장감식, 프로파일러, 폐쇄회로(CC)TV 전문 경찰관 3명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총기 분석 전문가 1명을 현지로 급파했다. 김일곤 사건과 삼호주얼리 사건 등을 담당했던 이들은 현지 경찰과 함께 범죄 현장 감식, 총탄 분석 등 공조수사를 통해 범인 검거를 도울 계획이다. 지난달 초 강신명 경찰청장이 필리핀을 방문해 필리핀 경찰청장과 강력사건 발생 시 초동수사 단계부터 합동수사하는 방안 등을 협의한 데 따른 조치다. 한국인 피살자가 많은 이유는 불법 총기가 100만 정 이상 유통되고 살인청부가 횡행하는 필리핀의 치안 상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2013년 이후 다른 나라에서 피살된 한국인 중 40%가 필리핀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난해 이후 피살자 중 단순 여행객은 없고 교민이나 사업을 위해 필리핀을 찾은 사람이 피해를 당했다”고 말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이유종 기자}

올해 10월 16일 오전 5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새벽부터 평양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북한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주로 검은색 점퍼를 입은 근로자들은 공항 안 음식점과 매점에서 식사를 하거나 간단한 음료를 샀다. 이 공항은 사할린, 이르쿠츠크, 하바롭스크 등 극동지역을 평양과 잇는 북한 노동자 송출의 허브다. 북한 노동자들은 과거 철도를 통해 북-러 국경 도시 러시아 하산을 거쳐 들어왔지만, 최근엔 주로 항공편으로 일터인 극동지역을 오가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러시아로 들어가는 북한 노동자가 크게 늘었다. 러시아 노동부가 내놓은 외국인 고용허가증 발급 현황에 따르면 올해 1∼3월 러시아에서 고용허가를 받은 북한 노동자는 4만7364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증가한 규모다.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떨어져 전체 외국인 노동자들이 12% 줄었지만 북한 출신 노동자는 오히려 증가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에 인력을 대규모로 처음 파견한 것은 10여 년 전. 당시 러시아에 있으면서 이들을 만났던 기자의 눈에 이번에 만난 노동자들 모습은 그때와는 판이했다. 카키색 인민복 대신 현지에서 구입한 겨울 점퍼를 입고, 러시아에서 벌어들인 루블화로 가전제품도 사들이고 있었다. 이들은 “해외 노동이 우리에게 자유를 줬다”고도 했다. 또 “지금도 보위대의 감시를 받기는 하지만 과거처럼 매달 돈을 뜯기지는 않는다”고 고백했다.○ 공사장 인근에 방 따로 “자유를 느껴” 사할린 건설현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는 김영철(가명·53) 씨는 오후 12시 35분 평양으로 떠나는 고려항공 JS-272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2012년부터 사할린에서 일했다는 김 씨는 평양 소재 대학에서 건설경영학을 전공했다. 김 씨는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작업반장은 남한으로 치면 팀장급”이라고 했다. 남한 사정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남한 TV에서 봤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씨에 따르면 사할린에는 북한의 인력송출 기업이 5, 6개 있다고 한다. 한 곳에서 50∼150명의 노동자가 집단으로 모여 살며 함께 숙식을 해결한다. 일부 노동자들은 공사장과 가까운 곳에 방을 따로 얻어 2∼4명씩 생활한다. 공사장 인근에서 따로 생활하면 해외에서 상당히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씨는 사할린에선 러시아 브로커를 통해 일감을 얻는다. 사할린에만 2000명 정도의 북한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 노동자들이 일을 꼼꼼하게 잘한다는 말이 퍼져서 일감은 쉽게 얻는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에서 미장공, 콘크리트공 등 주로 건설업에 투입된다. 건축자재를 팔고 있는 한국인 하모 씨는 “북한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지 연해주의 도로와 건물은 북한 노동자들이 다 지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 이하성(가명·56) 씨도 “미장공으로 일하는데, 일감만 있으면 한 달에 4만 루블(약 66만 원)을 번다”고 말했다. ‘번 돈을 다달이 뜯기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옛날처럼 매달 뜯기지는 않고, 노동기간 3년이 지나고 기간을 연장할 때 2만 루블을 내면 된다”고 대답했다. ○ 삼성 스마트폰 사용하는 북한 여성 10월 16일 북한 노동자들이 공항에서 출국을 기다리는 동안 평양에서 출발한 고려항공 JS-271기는 오전 11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평양에서 사할린 등 다른 지역으로 가려는 북한 노동자들이 쏟아졌다. 북한 기업이나 당 요원으로 보이는 40대 남성이 40, 50명의 북한 노동자를 통솔했다. 어떤 서류를 나눠주기도 했고 일부 노동자를 데리고 어딘가로 이동하기도 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로 향하는 비행기는 다음 날 오전 5시 40분 출발한다. 다음 날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부 북한 노동자들은 장시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이동하기도 했다. 일주일 뒤인 10월 23일 낮 12시경에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는 아들과 부인, 아버지를 데리고 귀국길에 오른 간부들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두툼한 지갑에서 1000루블짜리 고액권을 빼내 공항 선물가게에서 물건을 수시로 샀다. 이들의 짐 가방에는 식용유와 선풍기, 방한복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가족을 따라 다니던 한 아이가 “와, ‘울라디’(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식 발언)가 너무 좋다”고 말하자, 간부로 보이는 아버지가 “그래, 최고지”라고 대꾸하는 소리도 들렸다. 공항에 들어선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공항 내 레스토랑, 자판기, 커피숍 등을 이용했다. 대화도 자유롭게 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2G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북한 공관 인사로 보이는 한 여성도 삼성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한글 자판을 치며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기도 했다. 전화를 받는 상대방에게 러시아 남자 이름을 대더니 사업과 관련된 내용을 SNS를 통해 전송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한국 업체의 SNS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 당 간부로 추정되는 한 40대 부부 가족도 보였다. 큰아들은 초중생, 둘째는 유치원생 정도로 보였다. 아내로 보이는 여자 옷에는 김일성 배지가 붙어 있었다. 큰아들은 왼손에 코카콜라를 들고 나이키 신발을 신고 있었다.블라디보스토크=이유종 기자 pen@donga.com}
10월 16일 오전 5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공항. 새벽부터 평양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북한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주로 검은색 점퍼를 입은 근로자들은 공항 안 음식점과 매점에서 식사를 하거나 간단한 음료를 샀다. 이 공항은 사할린, 이르쿠츠크, 하바로프스크 등 극동지역을 평양과 잇는 북한 노동자 송출의 허브다. 북한 노동자들은 과거 철도를 통해 북·러 국경 도시 러시아 하산을 거쳐 들어왔지만, 최근엔 주로 항공편으로 일터인 극동지역을 오가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와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러시아로 들어가는 북한 노동자들이 크게 늘었다. 러시아 노동부가 내놓은 외국인 고용허가증 발급 현황에 따르면 올해 1~3월 러시아에서 고용허가를 받은 북한 노동자는 4만7364명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증가한 규모다.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떨어져 전체 외국인 노동자들이 12% 줄었지만 북한 출신 노동자들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들은 10년 전에 비해 판이하게 달랐다. 카키색 인민복 대신 현지에서 구입한 겨울 점퍼를 입고, 러시아에서 벌어들인 루블화로 가전제품도 구했다. 이들은 “해외 노동은 우리에게 상당한 자유를 줬다”고 입을 모았다. 또 “지금도 보위대의 감시를 받기는 하지만 과거처럼 매달 돈을 뜯기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공사장 인근에 방 따로 “자유 만끽” 사할린 건설현장에서 작업반장으로 김영철 씨(53·가명)는 오후 12시 35분 평양으로 떠나는 고려항공 JS-272편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2012년부터 사할린에서 일했다는 김 씨는 평양 소재 대학에서 건설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노동자 몇 명을 관리하는 작업반장을 맡고 있다. 김 씨는 “남한으로 치면 팀장급”이라며 “‘팀장’이라는 단어는 남한 TV에서 봤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사할린에는 북한의 인력송출 기업이 5,6개 있다. 한 곳에서 50~150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며 함께 숙식을 해결한다. 일부 노동자들은 공사장과 가까운 곳에 방을 따로 얻어 2~4명 씩 생활한다. 공사장 인근에서 따로 생활하면 해외에서 상당히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씨는 사할린에선 러시아 브로커를 통해 일감을 얻는다. 사할린에만 2000명 정도의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 노동자들이 일을 꼼꼼하게 잘 한다는 말이 퍼져서 일감은 쉽게 얻는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에서 미장공, 콘크리트공 등 주로 건설업에 투입된다. 건축자재를 팔고 있는 한국인 하모 씨는 “북한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지, 연해주의 도로와 건물은 북한 노동자들이 다 지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같은 달 23일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 이하성 씨(56·가명)는 “미장공으로 일하는데, 일감만 있으면 한 달에 4만 루블(약 66만원)을 번다”고 말했다. ‘번 돈을 다달이 뜯기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옛날처럼 매달 뜯지 않고, 노동기간 3년이 지나고 기간을 연장할 때 2만 루블을 내면 된다”고 대답했다. 이날 낮 12시 경에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는 아들과 부인, 아버지를 데리고 귀국길에 오른 간부들도 나타났다. 이들은 두툼한 지갑에서 1000 루블짜리 고액권을 빼내 공항 선물가게에서 물건을 수시로 샀다. 이들의 짐 가방에는 식용유와 선풍기, 방한복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가족을 따라 다니던 한 아이가 “와, ‘울라디’(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식 발언)가 너무 좋다”고 말하자, 간부로 보이는 아버지가 “그래, 최고지”라고 대꾸했다.● 삼성 스마트폰 사용하는 북한 여성 공항에 들어선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공항 내 레스토랑, 자판기, 커피숍 등을 이용했다. 대화도 자유롭게 했다. 일부 북한 노동자들은 2G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을 사용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북한 노동자는 아니지만 북한 공관 인사로 보이는 한 여성은 삼성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한글 자판을 치며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 여성은 전화를 받는 상대방에게 러시아 남자의 이름을 대더니 사업과 관련된 내용을 SNS를 통해 전송했다. 한국 업체의 SNS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당 간부로 추정되는 40대 부부의 한 가족도 보였다. 큰 아들은 초중생, 둘째는 유치원생 정도로 보였다. 여성의 옷에는 김일성 배지가 붙어 있었다. 큰 아들은 왼손에 코카콜라를 들고 나이키 신발을 신고 있었다. 같은 달 16일 북한 노동자들이 공항에서 출국을 기다리는 동안 평양에서 출발한 고려항공 JS-271기는 오전 11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평양에서 사할린 등 다른 지역으로 가려는 북한 노동자들이 쏟아졌다. 북한 기업이나 당 요원으로 보이는 40대 남성이 40,50명의 북한 노동자를 통솔했다. 어떤 서류를 나눠주기도 했고 일부 노동자를 데리고 어딘가로 이동하기도 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로 향하는 비행기는 다음날 오전 5시 40분 출발한다. 다음날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부 북한 노동자들은 장시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이동하기도 했다.블라디보스토크=이유종기자 pen@donga.com블라디보스토크=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 박근혜 대통령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한 이후 러시아 극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한국 기업들도 진출을 구체적으로 타진하는 곳들이 많다. 과연 극동은 기회가 될 수 있을까. 본보 취재팀이 올 10월 러시아 극동의 중심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해 나홋카, 하바롭스크 등 주요 도시를 돌아보니 이 일대는 저유가로 현재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러시아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속해 있는 연해주는 하반기 외국인투자가들에게 세금을 대폭 내렸으며, 나홋카 자루비노 등 극동 대부분 항구들은 수입 관세를 대폭 줄이는 자유 항구로 지정됐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연해주 개발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북한도 이 일대에 인력 송출을 늘리고 있었다. 동면에서 깨어나고 있는 극동 개발 현장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 10월 1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북쪽 직선거리로 약 80km 떨어진 나홋카 항. 대형 크레인 70대가 쉴 새 없이 시베리아에서 채굴한 철광석과 석탄을 수출 선박에 싣고 있었다. 최근 유가 하락과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나홋카 항의 물동량은 오히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철광석 및 석탄 수출량은 2012년 688만7000t에서 지난해 931만6000t으로 늘었다. 물류회사 에브라스의 홍보총괄자 스베틀라나 알렉시바 씨는 “일본이 에너지 자원 안보 차원에서 석탄 수입을 크게 늘린 결과”라고 말했다. 러시아 대부분 지역의 경제가 위축되고 있지만 극동 지역만큼은 예외로 보였다. 러시아 정부는 올해 9월 수입품 무관세 통관을 골자로 하는 자유항 개설 등 전격적인 개방 조치를 내놓았다. 직접 찾아 확인한 러시아 극동에서는 경기 불황의 돌파구와 신성장동력 등 활로를 찾으려는 중국과 일본, 남한과 북한이 투자와 무역, 일자리 창출을 놓고 일대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홍콩처럼 극동 중심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는 2차로 도로에 차량이 쏟아져 나와 시민들이 건널목을 건너는 데 10분 이상 기다리는 모습이 여러 차례 보였다. 택시 운전사 세르게이 아카판피로프 씨는 “중국 일본 한국에서 관광객과 투자자들이 몰려온 뒤로 시내 도로가 너무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러시아 극동투자청 공무원들은 “러시아 극동 개발은 1905년 러일전쟁이 종료된 뒤 1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러시아 정부는 올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형 경제포럼인 ‘동방경제포럼(Eastern Economic Forum)’을 열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이 포럼에서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인근인 자루비노 등과 묶어 홍콩·싱가포르 수준의 자유항으로 만들고 하바롭스크 등 9곳에 경제자유구역(FEZ) 수준의 산업기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방문비자 제공, 자유 관세지역 조성, 최고 5년간 법인세 면제 등의 구체적인 투자 유인책도 제시했다.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러시아는 극동 지역 개발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 지역은 연해주, 아무르 주 등 9개 주로 러시아 면적의 36%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러시아 전체의 4.3%에 불과하다. 하지만 러시아 전체 지하자원 중 다이아몬드 98%, 주석 80%, 금 50% 등을 차지하는 자원의 보고다. 러시아 최대 해상 물류기업인 페스코의 발레리 메스툴로프 사장은 “우리 기업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부산까지 달려가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나홋카 항의 물류 중개회사인 TRF유나이티드의 고객 서비스 담당 크릴 시도렌코 씨는 “자유항 선포로 극동 경제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베리아 도시들도 극동의 특수에 들썩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주트린 이르쿠츠크 역장은 “바이칼 호 관광열차의 승객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극동에서 격전 벌이는 한중일 철도 항만 건설 현장에는 ‘잠자는 동토’ 극동을 향한 한국 중국 일본의 투자 열기가 이미 불붙어 있었다. 중국은 이미 동북 3성 주요 도시를 고속철도로 연결한 뒤 블라디보스토크를 두드리고 있었다. 러시아 극동투자청 관계자는 “훈춘(琿春)과 블라디보스토크를 고속철로 연결하자는 중국의 제안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잇는 육·해상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앞세워 자금과 인력을 극동으로 보내고 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에서 러시아로 들어온 농업경영 기업은 이미 150여 개에 달하고 연간 170만 t의 곡물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이 거세게 진출하자 일본이 견제구를 날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지난해 극동에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를 거쳐 도쿄(東京)까지 이어지는 가스관 건설을 러시아 국영가스업체 가스프롬에 제안했다. 러시아 극동의 도로에서 보이는 차량의 90% 이상은 일본제였다. 택시 운전사 테오도로 카타라차 씨(46)는 “일본차가 추위에 강하기 때문에 잘 팔린다”고 말했다. 한국도 극동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한국은 중국의 견제 카드다. 이 때문에 안보문제 등에서 부담이 덜한 한국이 더 많이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10월 2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14차 한-러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는 투·융자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양측의 협력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양국은 이미 한국의 수출입은행과 러시아의 대외경제은행을 중심으로 30억 달러의 자금을 공동 조성키로 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에 러시아를 방문하면 한-러 정부가 추진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도 극동 지역에 거는 기대가 크다. 노동력 수출을 통해 ‘현금’을 받는 것 외에도 중국에 의존한 경제 상황을 러시아를 통해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평양-블라디보스토크 직항로를 개설한 데 이어 나홋카 소재 총영사관을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기며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나홋카=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