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굴레 벗어나자”… 獨 ‘나의 투쟁’ 읽기 논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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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초 비판본 형태로 재출간… 교사협회 “16세 이상에 가르쳐야”
유대인단체는 반대입장 표명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Mein Kampf)’(사진)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히틀러의 만행을 경계하자는 의미에서 별도의 주석이 달린 비판본을 읽자는 주장이지만 히틀러의 사상 자체를 금기시해 온 오랜 관행에 비춰 보면 상당한 변화다. 히틀러를 바라보는 독일인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독일인들에게 총통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히틀러에 대한 독일인들의 생각을 분석했다. 잡지는 “내년 1월부터 나의 투쟁의 저작권이 만료되는 상황에서 새 논쟁이 일고 있다”며 “히틀러를 바라보는 독일인의 시각이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1925년 발간된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바이에른감옥에 갇혔을 때 쓴 것으로 나치 집권 시절 1200만 부 이상 배포됐다. 아리안 인종의 순수성을 주장한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 등을 이 책에 적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책의 저작권이 독일 바이에른 주정부로 넘어갔고 내년 초 재출간이 가능해졌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히틀러의 저술에 대한 ‘무비판적 출간’을 전면 불허한다고 밝혔다. 다만 주석 첨부 등 연구, 비판본 형식의 서적은 출판을 허용했다. 독일 현대사연구소(IfZ)는 내년 초 원본에 3500개의 주석을 첨부해 연구와 비판본 형태의 ‘나의 투쟁, 비판본’을 발간한다.

문제는 비판본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교육계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요제프 크라우스 독일교사협회 대표는 최근 비판본을 발췌해 16세 이상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고, 요하나 방카 교육부 장관도 24일 언론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샤를로테 크노블로흐 전 독일 유대인중앙회의 의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나의 투쟁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유민주주의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칠 수 있다”며 반박했다.

잡지는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히틀러에 대한 독일인의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여론조사업체 유거브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는 히틀러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이처럼 히틀러 개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이지만 독일인들은 점차 ‘히틀러 시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후 히틀러가 남긴 전체주의에 매우 민감했던 독일은 2006년 월드컵을 계기로 응원에 국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독일인들은 경기장에서 국기를 흔드는 것이 전체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우려에 그동안 사용을 자제해 왔다. 독일과 히틀러를 함께 떠올리는 사람도 많지 않다. 올해 실시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과 연관된 사람 또는 물건을 묻는 질문(복수 응답 허용)에 25%만이 히틀러를 떠올렸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독일#히틀러#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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