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에 보낸 17억 달러는 자국인 몸값?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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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전 무기구입 신탁금 4억달러… 美, 이란혁명 일어나자 반환 안해
16일 억류 5명 석방 직전 돌려줘… “석방과 무관” 해명에도 의혹 솔솔

이달 16일 제이슨 리자이안 전 워싱턴포스트(WP) 테헤란 특파원 등 이란 감옥에 수감됐던 미국인들이 풀려나기 직전. 미국 재무부는 17억 달러(약 2조400억 원)라는 엄청난 돈을 이란 정부에 송금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 시간) 동결됐던 이란의 미국 내 자산 반환을 핑계로 한 이 돈이 사실상 인질 석방을 위한 ‘몸값’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건의 시작은 1979년 2월 이슬람 혁명이 발생하기 직전 팔레비 왕정 시절로 돌아간다.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親美) 정권이었던 팔레비 왕정은 미국에서 신무기를 구입하려고 4억 달러(약 4800억 원)의 선금(신탁금)을 줬다. 하지만 이란 혁명으로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반미(反美)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외교 관계를 끊고 무기 공급을 거부했다. 신탁금은 미국 정부가 갖고 있었다.

1981년 이란은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이른바 ‘미(未)반환 무기 구입 신탁금’ 반환을 미국에 요청했다. 하지만 혁명 이후 37년 동안 서방 국가들과 함께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하던 미국은 신탁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동안 이자 13억 달러(약 1조5600억 원)가 붙어 이란이 받을 돈은 17억 달러로 불어났다.

2013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핵 협상 과정에서 이란 측은 이 돈의 반환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결국 지난해 7월 이란 핵협상이 타결됐고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16일부터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면서 이란 정부는 동결됐던 대외 자산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다음 날인 17일 17억 달러를 상환했다고 밝히며 “만일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미국이 질 수도 있고,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더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억류 미국인 석방이 무엇보다 급했던 미국이 17억 달러를 인질 석방과 패키지로 협상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란의 군 고위 간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신탁금 반환이 미국인 석방의 핵심 사안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공화당 하원의원은 “미국인 5명을 석방하는데, 이란인 7명을 풀어줬고 범죄 혐의자 14명에 대한 조사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며 조사를 요구했다. 조시 어니스트 미 백악관 대변인은 19일 “수감자 석방은 오랜 협상의 결과물”이라며 신탁금 반환과 수감자 석방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이란#미국#몸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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