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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바흐의 ‘b단조 미사’를 200번 정도 지휘했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정’에 가깝습니다. 바흐 생애 전반의 경험, 신학적 깊이, 대위법적 완성도, 그리고 제 이해를 뛰어넘는 영적인 힘이 응축돼 있죠.” ‘고(古)음악 거장’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78)가 18일 바로크 앙상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와 내한한다.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19일 대전예술의전당, 20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연달아 연주회를 연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바흐가 생애 막바지에 자신의 성악 작품을 집대성해 선보인 바흐의 ‘b단조 미사’를 선보인다. 헤레베허는 19세기 중후반 악기와 연주법의 혁신이 일어나기 이전의 음악을 그 곡이 작곡되던 시대의 악기와 연주법을 되살려 연주하는 ‘역사주의’ 혹은 ‘시대주의’ 음악으로 정평이 난 지휘자다. 내한 공연을 앞두고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내게 ‘순도’란 음악이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불필요한 것을 걷어낸 투명함과 자유로움을 뜻한다”며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향수나 순수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바흐가 상상했던 소리의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바흐의 목소리가 ‘더 진실되게’ 전달된다”고 말했다. “‘b단조 미사’를 수없이 연주했음에도 매번 악보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합니다. 전에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어요. 특히 제2부 ‘글로리아’에서 오보에와 알토가 긴밀하게 주고 받는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헤레베허는 의대생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벨기에인인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신의학을 전공했지만, 음악을 좋아해 겐트 예수회 학교에서 음악 공부를 병행하며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등을 연주했다. 그러다 1970년 역사주의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창단하며 본격적으로 지휘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여자 친구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며 “솔리스트로서도 손색없는 각 연주자의 역량과, 각 레퍼토리에 맞춰 최적의 합창단을 구성하는 역량이 이 앙상블의 큰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창단한 지 50년 넘게 이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는 저한테는 음악적 기반이자 집이에요. 정신과 의사라는 길을 내려놓고 전업 음악가로 나아갈 힘을 줬거든요. 이들은 동료라기보단 친구 같은 존재이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요. 저를 지휘자로 신뢰해주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헤레베허는 한국 관객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그는 이전 내한 공연 때도 한국 관객의 열린 태도와 역동적 반응에 감탄했다고 한다. “특히 인상적인 건 한국 관객의 다양성”이라고 했다. “모든 연령대의 관객들이 마치 록스타를 대하듯 열정적으로 반응해 주는데 유럽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거든요. 이번엔 관객 반응이 또 어떻게 다를지 무척 궁금하네요.”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평생 바흐의 ‘b단조 미사’를 200번 정도 지휘했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정’에 가깝습니다. 바흐 생애 전반의 경험, 신학적 깊이, 대위법적 완성도, 그리고 제 이해를 뛰어넘는 영적인 힘이 응축돼 있죠.”‘고(古)음악 거장’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78)가 18일 바로크 앙상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와 내한해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19일 대전예술의전당, 20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연달아 연주회를 연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바흐가 생애 막바지에 자신의 성악 작품을 집대성해 선보인 바흐의 ‘b단조 미사’를 선보인다.헤레베허는 19세기 중후반 악기와 연주법의 혁신이 일어나기 이전의 음악을 그 곡이 작곡되던 시대의 악기와 연주법을 되살려 연주하는 ‘역사주의’ 혹은 ‘시대주의’ 음악으로 정평이 난 지휘자다. 내한 공연을 앞두고 본보와 서면으로 인터뷰한 그는 “내게 ‘순도’란 음악이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불필요한 것을 걷어낸 투명함과 자유로움을 뜻한다”며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향수나 순수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바흐가 상상했던 소리의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바흐의 목소리가 ‘더 진실되게’ 전달된다”고 말했다.헤레베허는 “‘b단조 미사’를 수 없이 연주했음에도 매번 악보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전에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며 “특히 제2부 ‘글로리아’에서 오보에와 알토가 긴밀하게 주고 받는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헤레베허는 의대생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벨기에인인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신의학을 전공했지만 음악을 좋아해 겐트 예수회 학교에서 음악 공부를 병행하며 오르간, 하프시코드 등을 연주했다. 그러다 1970년에 역사주의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창단하며 본격적으로 지휘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여자 친구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며 “솔리스트로서도 손색없는 각 연주자의 역량과, 각 레퍼토리에 맞춰 최적의 합창단을 구성하는 역량이 이 앙상블의 큰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창단한 지 50년 넘게 이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콜레기움 보칼레 켄트는 저한테는 음악적 기반이자 집이예요. 정신과 의사라는 길을 내려놓고 전업 음악가로 나아갈 힘을 줬거든요. 이들은 동료라기보단 친구 같은 존재이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요.저를 지휘자로 신뢰해주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헤레베허는 한국 관객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그는 이전 내한 공연 때도 한국 관객의 열린 태도와 역동적 반응에 감탄했다고 밝혔던 바 있다. 그는 “특히 인상적인 점은 한국 관객의 다양성”이라고 했다.“모든 연령대의 관객들이 마치 록스타를 대하듯이 열정적으로 반응해주는데 유럽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거든요. 이번에는 관객의 반응이 또 어떻게 다를지 무척 궁금하네요.”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우리 엄마는 나보고 맨날 엄마 닮았다고 하다가, 화나면 내가 누구 닮아서 이러는지 모르겠대.” “우리 엄마는 나보고 화내지 말라고 하면서 엄마가 화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엄마는 늘 ‘어허’ ‘으이그’ ‘씁!’ ‘안 돼’란 말을 달고 산다. 오늘도 엄마에게 혼나고 풀이 죽은 이찬이를 위로하면서 친구들도 엄마들의 이상한 행동을 성토한다. “우리 엄마도 그래. 엄마들은 이해할 수 없다니까.” 손님이 오면 화를 안 내는 엄마들의 특성을 역이용해 이찬이네 집에 몰려가기로 한 친구들. 그런데 오늘은 인자한 할머니만 계신다. 게임하고 군것질하고 실컷 노는 와중에, 집에 도착한 엄마의 표정이 굳는다. 게임을 두 시간이나 했냐고 이찬이를 혼내려는 순간, 엄마를 방으로 부르는 할머니. 방 안에서 할머니의 폭풍 잔소리가 흘러나온다. 육아와 살림, 옷차림에 대해서까지. 잠시 뒤 혼자 침대맡에 우두커니 앉은 엄마 등을 툭 치며 이찬이가 위로한다. “원래 엄마들은 다 그래.” 모두에겐 ‘이해할 수 없는 엄마들’이 있다. 심지어 그 엄마들에게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가족 관계를 재밌게 그려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먼(67)이 다음 달 2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데뷔 50주년 기념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2001년 이후 24년 만이다. 소련 출신으로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브론프먼은 테크닉과 섬세한 서정성을 겸비한 연주자. 미국 그래미상과 에이버리 피셔상 등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음악상을 두루 받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연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내한을 앞두고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 응한 브론프먼은 “악보에 대한 정직함, 작곡가에 대한 존중, 음악 속 깊은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내겐 가장 중요하다”며 “집중력 있고 열정적인 한국의 청중과 섬세한 뉘앙스를 탐구할 수 있는 리사이틀을 갖게 돼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슈만과 브람스, 드뷔시, 프로코피예프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1부에서 낭만주의의 정수를 담은 슈만과 브람스를, 2부에서 20세기 초 음악의 혁신을 보여준 드뷔시와 프로코피예프 곡을 들려준다. 브론프먼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깊이 연결된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 이후 드뷔시에서 시작해 프로코피예프로 발전해 가는 근대 음악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섬세한 드뷔시에 이어 전쟁 같은 폭발적 강렬함을 지닌 프로코피예프가 연주될 때 마치 음항적 충격파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올해는 그가 데뷔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부상, 어려운 레퍼토리, 자기 의심의 순간 등 많은 도전을 겪었지만 음악 자체가 언제나 나를 일으켜 세웠다”고 말했다. 2015년 10월 영국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 당일 심한 손가락 부상을 당했지만 끝까지 연주를 마친 뒤 건반에 핏자국을 남겼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브론프먼은 “그 순간엔 멈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음악이 저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제 목표는 계속 배우고, 음악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하며, 음악에 대한 진실을 진솔하게 청중과 나누는 것입니다.” 한국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한국에서 연주할 때마다 한국 음악가들이 지닌 탁월한 기교와 감수성에 감탄한다”며 “마지막 리사이틀의 기억이 생생하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러 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6만∼15만 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67)이 다음 달 2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데뷔 50주년 기념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2001년 이후 24년 만이다. 옛 소련 출신으로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브론프만은 테크닉과 섬세한 서정성을 겸비한 연주자. 미국 그래미상과 에이버리 피셔상 등 세계적인 권위을 가진 음악상을 두루 받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연주자로 자리매김했다.내한을 앞두고 동아일보와 서면 인터뷰에 응한 브론프만은 “악보에 대한 정직함, 작곡가에 대한 존중, 음악 속 깊은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내겐 가장 중요하다”며 “집중력 있고 열정적인 한국의 청중과 섬세한 뉘앙스를 탐구할 수 있는 리사이틀을 갖게 돼 기대된다”고 밝혔다.이번 공연은 슈만과 브람스, 드뷔시, 프로코피예프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1부에서 낭만주의의 정수를 담은 슈만과 브람스를, 2부에서 20세기 초 음악의 혁신을 보여준 드뷔시와 프로코피예프 곡을 들려준다. 브론프만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깊이 연결된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 이후 드뷔시에서 시작해 프로코피예프로 발전해 가는 근대 음악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섬세한 드뷔시에 이어 전쟁 같은 폭발적 강렬함을 지닌 프로코피예프가 연주될 때 마치 음항적 충격파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올해는 그가 데뷔한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부상, 어려운 레퍼토리, 자기 의심의 순간 등 많인 도전을 겪었지만 음악 자체가 언제나 나를 일으켜 세웠다”고 말했다. 2015년 10월 영국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 당일, 심한 손가락 부상을 당했지만 끝까지 연주를 마친 뒤 건반에 핏자국을 남겼던 일화는 유명하다. 브론프만은 “그 순간엔 멈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음악이 저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제 목표는 계속 배우고, 음악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하며, 음악에 대한 진실을 진솔하게 청중과 나누는 것입니다.”한국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한국에서 연주할 때마다 한국 음악가들이 지닌 탁월한 기교와 감수성에 감탄한다”며 “마지막 리사이틀의 기억이 생생하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러 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6만~15만 원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있을 땐 여기저기 흘러 넘칠 정도로 많아 관리가 어려운데, 막상 찾으면 그새 다 떨어져 아쉬운 물건. 대다수 가정의 화장대나 협탁 위쯤에 올려져 있을 법한 물건. 이 책의 주인공은 하얀색 면봉이다. 면봉은 연필, 붓, 성냥, 가위처럼 특별하고 고유한 쓰임새가 있는 게 아니라서 별의별 일을 다 한다. 누군가의 귀나 코를 파기도 하고, 화장에도 쓰인다. 멀티탭이나 키보드 자판 틈새 먼지를 제거할 때도 쓰이고 속눈썹을 말아 올릴 때도 필요하다. 궂은일이란 일은 다 하고, 그 일에는 꼭 면봉만이 맞춤 역할을 하지만 사실 세상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평범한 존재다. 흔하고, 잘 부러지고, 잘 잊혀지는 그런 물건. 하지만 면봉은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 또 재미있는 쓰임새로, 설레는 일로 불려 나갈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놓지 않는다. 분명히 요긴한 물건인데 흔해서인지 한 번도 주목하지 않았던 면봉에도, 자세히 보니 우리의 모습이 녹아 있구나 느끼게 해주는 책. 면봉의 갖은 역할을 유머러스하게 일별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스스로에게도 ‘수고가 많구나’ 말해 주고 싶어진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완성도 높은 더빙과 번역의 힘이 컸던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신드롬인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만들어낸 저력에 대해 넷플릭스 관계자들이 보는 시각은 좀 달랐다. 보통 콘텐츠의 힘이나 K팝의 위력 등을 꼽는데, 그에 못지않게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어떤 언어로 시청해도 더빙과 번역이 완벽하게 이뤄진 콘텐츠였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에는 ‘랭귀지 매니저’라는 직책이 따로 있는데, 한 편의 콘텐츠를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했을 때 그 나라 특유의 역사, 문화를 반영한 어휘가 이질감 없이 미묘한 뉘앙스까지 살린 채 반영될 수 있도록 철저한 프로세스를 거친다. 또한 특정 어휘가 어떻게 번역돼야 하는지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감수를 마치는 모든 과정이 제작 프로세스에 포함된다.“기러기 토마토 우영우” 같은 말장난이 많았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한국 전통놀이가 다양하게 등장했던 ‘오징어 게임’ 같은 한국 콘텐츠들이 세계에서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인기를 끈 이유 역시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철저한 번역 및 더빙 덕분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번역해 전달하느냐는 동일한 콘텐츠라도 질적으로 다른 파급력을 갖게 한다. 만약 그게 문학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최근 한국문학번역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곳의 번역출판 지원을 받은 문학도서의 해외 판매량이 약 120만 부로 전년 판매 수치(약 52만 부)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번역도서 출간 종수와 판매량이 모두 큰 폭으로 상승했다. 도서당 평균 판매량은 1271부로 사상 최고치였다. 1만 부 넘게 팔린 책도 24종에 달했다. 정보라의 ‘저주토끼’,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등이 3년 연속 해외에서 4000부 이상 판매된 스테디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과 K컬처의 선전에 힘입어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런 기세를 이어가려면 번역가 양성과 지원에 좀 더 체계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2016년 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처럼 주로 영미권에서 주목받은 작가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이후 다른 언어로 번역본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 ‘케데몬’ 등의 흥행에서 보듯 한국문학의 세계화 보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언어권에서 그 나라의 역사, 문화적 맥락을 감안한 섬세한 번역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튀르키예에서 출간된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지난해 8만 부 이상,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는 독일에서 2만 부 이상 팔렸다. 한국에는 아직 ‘그곳의 언어’로 번역되지 못했을 뿐, 세계 독자를 흔들 만한 힘 있는 작가가 많다. 넷플릭스가 완성된 콘텐츠에 사후적으로 자막과 더빙을 입히는 게 아니라 번역까지를 창작의 일부로 포함시킨 것은 콘텐츠 속 언어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일 것이다. 한국문학의 체계적 번역 지원에 참고로 삼을 만하다.박선희 문화부 차장 teller@donga.com}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형 집행 가능성에 대해 “미국 국민과 의회, 정부에서 우려가 크다”며 사면을 요청하는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김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를 맞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기밀 해제한 관련 문서를 18일 공개했다. 해당 자료는 종이 상자로 2박스(약 3150장) 분량으로, 미 국무부 산하 인권 및 인도주의국에서 작성하거나 보관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1980년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 20여 명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5·18민주화운동을 일으켰다며 군사재판에 회부된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1980년 11월 10일 미국에 서한을 보냈는데, 카터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6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를 통한 답신에서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위원회는 “카터 대통령은 이 편지에서 사형 집행이 한미 관계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미국이 김 전 대통령의 재판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본국에 상세히 진행 상황을 보고했던 문서들도 포함됐다. 미 국무부 법률고문실 자료는 “(김 전 대통령은) 민주국가에선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는 합법적 정치 활동을 했다”고 명시하기도 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이곳은 감정식당. 뭐든지 뚝딱뚝딱 만드는 요리사 할머니가 있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이 나온다. 엄마가 미미를 꽉 안아줘 기분이 좋은 날은 휘핑크림과 딸기가 올라간 컵케이크,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따뜻한 단호박 수프와 따끈한 빵이 나온다. 수프가 마음을 감싸주고, 빵이 눈물이 넘치지 않게 막아준다. 동생이 성가시게 해 잔뜩 화가 났을 때, 요리사는 불꽃 떡볶이를 만들어준다. 입에서 정말 불이 나는 것처럼 맵지만, 먹을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의 화가 사라진다. 요리사는 미미에게 “우리가 먹는 요리 하나하나가 소중하듯, 너의 모든 감정은 하나하나 다 소중하단다” 하고 알려준다. 음식을 요리하듯이, 우리 감정도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어린아이도 요리를 할 수 있냐고 미미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온다. “물론이지. 네 마음의 주방장은 바로 너니까.” 어떤 감정이든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멋진 요리로 만드는 내는 건 어른도 배우고 싶은 비법. 제각각 다양한 느낌과 결을 가진 감정을 다루는 법을 터득해 가면서 아이들은 한 뼘씩 더 성장해 간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길의 가장 큰 장점은 바이올린으로 노래하게 만드는 독보적 능력이에요.”(아델 앤서니) “아델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연주한다고 말해요. 그의 연주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죠.”(길 샤함)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54)이 같은 바이올리니스트인 부인 아델 앤서니(55)와 2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함께 무대에 오른다. 22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열리는 클래식 축제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을 통해서다. 이 부부가 한국에서 한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샤함과 앤서니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동료 연주가로서 본 서로의 가장 큰 장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서로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앤서니는 “길은 흠잡을 데 없는 기교와 진정한 열정을 결합해 관객 모두에게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며 “그의 연주는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도록 제게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섬세하고 풍부한 연주로 청중을 압도해 온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샤함은 그래미상, 프랑스 음반 대상 등 유수 음악상을 휩쓸며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연주자다. 한 해 연주를 200회 가까이 소화할 정도로 바쁘지만, 최우선적 가치를 두는 건 세 자녀를 비롯한 ‘가족’이다. 둘째 아이를 출산할 때는 베를린필과의 협연도 취소하고 부인 곁을 지켰다. 두 사람이 함께 서는 무대가 더 각별한 이유다. 두 사람은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처음 만났는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나누며 친구가 됐다”(앤서니)고 한다.부부는 이번 공연에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단조’와 아브네르 도르만의 협주곡 ‘슬퍼할 때와 춤출 때’를 연주한다.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짝이 될 만한 곡을 써보자는 도르만의 아이디어에서 이번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앤서니는 “시대를 초월한 명작과 새 작품을 함께 연주할 완벽한 기회”라며 “분명히 서로 다른 시대이지만 두 곡이 여러 면에서 겹친다. 특히 도르만의 곡은 재즈 등 현대 스타일을 참조하면서도 동시에 고전적 기법을 통합한다”고 했다. 도르만의 신곡은 두 사람에게 헌정됐다. 샤함은 “애도와 축복을 결합한 유대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신작에 매우 감격했다”고 말했다. 샤함은 “열정적이고 조예 깊은 한국 관객과 음악을 나누게 돼 영광”이라고도 했다. 그는 서구 바이올리니스트 중 대표적인 ‘지한파’로 꼽힌다. 세종솔로이스츠 창립자인 줄리아드음악원·예일대 강효 교수의 제자로 세종솔로이스츠와 다수의 공연 및 음반 작업을 해왔다. 앤서니도 강 교수의 제자로 세종솔로이스츠 창단부터 12년간 리더를 맡았다. “부부가 함께 연주하는 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예요. 특히 서울에서 함께 연주하게 돼 매우 설레고 기쁩니다.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과 도르만 곡의 독특한 조합을 저희만큼 즐겨주신다면 좋겠어요.”(앤서니)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길의 가장 큰 장점은 바이올린으로 노래하게 만드는 독보적 능력이예요.”(아델 앤서니)“아델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연주한다고 말해요. 그의 연주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죠.”(길 샤함)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샤함(54)이 같은 바이올리니스트인 부인 앤서니(55)와 2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함께 무대에 오른다. 22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열리 클래식축제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을 통해서다. 이들 부부가 한국에서 한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샤함과 앤서니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동료 연주가로서 본 서로의 가장 큰 장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서로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앤서니는 “길은 흠잡을 데 없는 기교와 진정한 열정을 결합해 관객 모두에게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며 “그의 연주는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도록 제게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섬세하고 풍부한 연주로 청중을 압도해 온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샤함은 그래미상, 프랑스 음반 대상 등 유수 음악상을 휩쓸며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연주자다. 한해 연주를 200회 가까이 소화할 정도로 바쁘지만, 최우선적 가치를 두는 건 세 자녀를 비롯한 ‘가족’이다. 둘째 아이를 출산할 때는 베를린필과의 협연도 취소하고 부인 곁을 지켰다. 두 사람이 함께 서는 무대가 더 각별한 이유다. 두 사람은 줄리어드 음대에서 처음 만났는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나누며 친구가 됐다”(앤서니)고 한다. 부부는 이번 공연에서 J.S.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 단조’와 아브너 도만의 협주곡 ‘슬퍼할 때와 춤출 때’를 연주한다.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짝이 될만한 곡을 써보자는 아브너 도만의 아이디어에서 이번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앤서니는 “시대를 초월한 명작과 새 작품을 함께 연주할 완벽한 기회”라며 “분명히 서로 다른 시대이지만 두 곡이 여러 면에서 겹친다. 특히 아브너 곡은 재즈 등 현대 스타일을 참조하면서도 동시에 고전적 기법을 통합한다”고 했다. 도만의 신곡은 두 사람에게 헌정됐다. 샤함은 “애도와 축복을 결합한 유대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신작에 매우 감격했다”고 말했다. 샤함은 “열정적이고 조예 깊은 한국 관객과 음악을 나누게 돼 영광”이라고도 했다. 그는 서구 바이올리니스트 중 대표적인 ‘지한파’로 꼽힌다. 세종솔로이스츠 창립자인 줄리아드 음악원·예일대 강효 교수의 제자로 세종솔로이스츠와 다수의 공연과 음반 작업을 해왔다. 앤서니도 강 교수의 제자로 세종솔로이스츠 창단부터 12년간 리더를 맡았다. “부부가 함께 연주하는 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예요. 특히 서울에서 함께 연주하게 돼 매우 설레고 기쁩니다.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과 도만 곡의 독특한 조합을 저희만큼 즐겨주신다면 좋겠어요.”(앤서니)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재능 빼고는 모든 것이 엿보이는 작품.” 어떤 책이 이런 리뷰를 받았을까. 문학비평가 도미니크 보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실상 ‘책의 살해를 시도한다’고 봐도 될, 이 가혹한 리뷰는 프랑스의 ‘르 뷜탱 드 파리’가 공쿠르상 수상작이자 전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인 로맹 가리 ‘하늘의 뿌리’에 대해 썼던 평이다. 여기 합세해 ‘프랑스 디망슈’도 이렇게 거든다. “끝까지 읽으려면 똑같은 생각, 매우 단순한 똑같은 주제의 집요한 반복이 주는 피곤함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책과 리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사물과 그림자처럼, 책이 있으면 으레 비평이 따라온다. 책장에 꽂힌 책엔 저마다 다른 ‘리뷰라는 그림자’가 있는 셈이다. 재밌는 건 어떤 비평은 그 창의적인 신랄함, 너무하다 싶은 융단폭격으로 가늘지만 긴 생명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비평가들의 십자포화를 받은 것으로 치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쓴 오스카 와일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평론가란 예술을 죽이고 살아남는 좀비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쏟아졌던 조롱과 비난(“왜 오스카 와일드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가?” “저속한 프랑스 데카당트를 재잘거리는 학자”)을 보다 보면, 좀비란 표현도 점잖게 느껴진다.“이런 걸 열두 챕터 이상 쓰고 자살하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처럼 끔찍한 혹평도 있다.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에 대해 당시 미국 여성 월간지가 실었던 비평이다. 같은 책에 대해 스코틀랜드 한 잡지는 “이 책을 읽고 위안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점은 이 책이 절대로 대중적으로 읽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창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예술혼이 아니라 강철 같은 멘털이 아닌가 싶어진다. 어떤 비평은 마치 누가 더 기발한 표현으로 창작자의 의욕을 꺾고, 그들을 더 깊은 비탄과 수렁 속에 빠뜨릴 것인가 내기하는 것만 같다. 20세기 영문학 걸작으로 꼽히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댈러스 모닝 뉴스는 “로켓처럼 몇 개의 찬란한 불꽃을 터뜨리고는 이제 연기와 불꽃 잔해만 남긴 채 꺼져버렸다”며 작가와 작품을 일타쌍피로 보내버린다. “쓰레기 더미 중에서도 최악”(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미친 영어 때문에 망가진 책”(허먼 멜빌 ‘모비딕’) 같은 비평에도 작품에 대한 진지한 적의가 잘 드러난다. 그런데 역설적인 건 이런 혹평이 오랜 생명력을 갖고 여전히 인용되는 이유가 혹평의 재치나 신랄함을 무색하게 하는 비평 대상의 눈부신 성공 때문이다. 이처럼 벼르고 벼른 촌철살인이 책을 가루로 만들기 위해 날아간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작품들은 당대 평단의 공격과 무관하게 고전의 반열에 올라갔다. 명작에 쏟아졌던 역사적 조롱을 찾아보는 게 재밌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발한 혹평은 그 자체로도 인상적이지만, 궁극적으로 ‘무엇이 승리하는가’에 대한 인사이트를 준다. 오해나 억측, 비난에 마음이 심란할 때면 책장 앞에 한 번 서 보기를 권한다. 불멸의 옷을 입은 수많은 명작이 받았던 현란한 비난과 조롱. 그것이 이제 책장에 쌓인 먼지만큼의 영향력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건 삶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의 인생은 다 고유한 명작이니까 말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비가 온 다음 날이면 사다리를 높게 올리고 촉촉한 구름을 따오는 할머니. 이렇게 바구니 가득 따온 신선한 구름은 할머니만의 수제 반창고로 재탄생한다. 뛰놀다 깨진 무릎에도, 이마에 난 상처에도 구름 반창고를 붙이면 깨끗한 하늘처럼 말끔히 낫는다. 그럼 할머니의 만능 구름 반창고는 마음이 다쳤을 때도 효과가 있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 상처가 날 때, 할머니는 구름 마시멜로를 띄운 코코아 한 잔을 타서 함께 마시며 상처 난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마음속 이야기가 안개구름처럼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속마음을 다 털어놓으면 할머니는 색연필로 작게 ‘속상해’라고 쓰고 그 위에 구름 반창고를 붙인다. 그리고 ‘호오오오’ 더 큰 숨을 불어넣어 마음의 깊은 곳에 난 상처를 치료해 준다. 마치 구름의자에 앉아 둥실 떠오른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쩌면 할머니의 구름 반창고가 특별한 이유는 만병통치약으로 재탄생한 구름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을 향한 할머니의 사랑 때문이 아닐까. 반창고처럼 상처를 감싸주는 할머니의 넉넉한 품과 마음을 몽글몽글한 뭉게구름을 통해 따스하고 재미있게 그려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서울 예술의전당이 다음 달 5∼10일 세계적인 지휘자 자난드레아 노세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등이 참여하는 제5회 국제음악제(포스터)를 연다. 이번 음악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총 11회의 초청 공연과 5팀의 공모 연주가 계획됐다. 교향악, 실내악, 바로크, 현대음악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개막 공연은 로렌스 르네스가 지휘하는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갈라 연주가 장식한다. 2014년 파블로 카살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문태국을 비롯해 영국 런던심포니 종신 단원인 임채문(더블베이스), 독일 뮌헨 필하모닉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트럼펫) 등이 참여한다. 6일에는 미국 카네기홀에 상주하는 미국의 내셔널 유스 오케스트라가, 7일에는 피아니스트 다비드 살몽과 마뉘엘 비에야르 듀오가 연주를 선보인다. 8일에는 첼리스트 스티븐 이셜리스가 쇼스타코비치와 라흐마니노프 등 첼로 소나타를 연주한다. 9일에는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얀 리시에츠키가 전주곡만으로 구성된 독특한 리사이틀을 선보인다. 폐막일인 10일에는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등을 협연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어느 날 아빠 머리털은 빗질을 참을 수 없었어. 매일매일 아빠 머리에만 붙어 있는 게 지겨웠거든.”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충분히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려는 찰나, 놀랍게도 아빠 머리카락은 ‘툭, 투둑’ 뛰어내려 도망가기 시작한다. 졸지에 대머리가 되고 만 아빠. 머리카락을 찾아 온 집을 쫓아다니더니 잔디밭, 시내, 레스토랑, 동물원까지 최선을 다해 쫓아간다. 하지만 머리카락들은 언제나 더 빠르다. 쏜살같이 새로운 곳을 향해 달아나던 이들은 결국 하수구 아래로 흘러들어간다. 아빠가 더 이상 쫓아갈 수 없는 망망대해로 나가 버린 것. 머리카락 찾기를 포기한 아빠에게 이들은 이따금 엽서를 통해 안부를 전해온다. 미국과 남극, 모로코와 싱가포르에서의 즐거운 하루를 담은 사진들을. 머리에 붙어 있는 게 싫증 난 머리카락들의 일탈이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예측 불허로 유쾌하게 전개된다. 생각해보면 바람에 나부끼고 음악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은 언제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상징했던 것도 같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머리카락을 한 번도 그런 관점으로 봤던 적이 없지만 말이다. 글밥이 적어 초등학교 저학년이 읽기 좋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의 미국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기본적으로 뮤지컬 영화다.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세상의 악한 기운을 노래로 물리친다는 서사가 주축이라 다양한 사운드트랙이 나온다. 덕분에 애니메이션의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영화음악들도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애니메이션 속 노래는 비트나 멜로디 측면에서 기존 K팝의 특징을 잘 살렸다. 극 중 악마들조차 흥얼거리며 “중독성 있다”고 인정할 정도다. 가장 인기 있는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4위를 기록한 ‘골든(Golden)’. 결점을 감추는 데 급급했던 주인공이 고음을 내지르며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숨지 않겠다’고 노래하는 모습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의 ‘렛 잇 고(Let It Go)’를 연상시킨다. ‘골든’은 이 곡이 기록했던 빌보드 최고 순위(5위)를 이미 뛰어넘었다.그런데 ‘골든’을 이처럼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또 다른 킬링 포인트는 의외의 곳에 있다. 바로 한 줄씩 감칠맛 나게 섞인 한국어 가사다. 이 작품은 K팝과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하지만, 미국 제작진이 만든 미국 애니메이션이다. 당연히 모든 게 영어로 제작됐는데, 가사에서 갑자기 한 줄씩 한국어가 툭툭 나온다. “Up, up, up with our voices 영원히 깨질 수 없는 Gonna be, gonna be golden”식이다.맥락상 그 대목에서 한국어가 나와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무심히 섞인 한국어 한 구절이 전체 곡과 신비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입에 착 감긴다. 특히 한국인들이 이 대목에서 전율을 느끼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만 해도 한국 대중문화에서 영어가 ‘정확히 그런 효과’를 내기 위해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2010년대만 해도 국내에선 대중가요 가사에 쓰인 영어나 외래어의 영향, 효과나 문제점에 관한 대중문화 연구가 많았다. 이 무렵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대중가요 50% 이상이 영어를 섞어 썼다. 주로 곡 분위기 전환, 후크나 후렴구의 운율을 위해서였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메시지를 은어처럼 전달하는 용도로도 활용됐다.요컨대, 대중가요 가사에서 영어는 대부분 차별화의 방편이었다. 더 그럴듯한 곡을 만들기 위해, 더 정통성 있어 보이기 위해 가사 곳곳에 때로는 무분별할 정도로 섞어 썼다. 문화사대주의나 우리말 파괴라는 지적이 심심찮게 나왔던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완전히 반대 상황이 온 것이다.헌트릭스의 다른 히트곡 ‘하우 이츠 던(How It‘s Done)’이나 이들과 대결하는 저승사자 보이밴드인 사자보이스의 ‘소다 팝(Soda Pop)’ 등도 마찬가지다. “불을 비춰” “지금 당장 날 봐” 같은 한국어 구절이 K팝의 정통성과 힙함을 살려내는 장치로 쓰인다. 애니메이션 대사에선 “가자 가자” “후배” 같은 한국말을 그대로 쓰며 ‘찐’한국 느낌을 과시한다. 이쯤 되면 세계가 열광하는 ‘K콘텐츠다움’을 완성하는 마지막 터치는 한국어가 된 게 아닌가 싶다. 공고한 언어 패권마저 흔들 수 있는 문화의 힘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박선희 문화부 차장 teller@donga.com}

세계적인 소프라노 황수미가 직접 선정한 곡에 설명과 공연을 곁들인 ‘황수미의 사운드 트랙’을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선보인다. 9월 18일과 10월 16일, 11월 20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롯데문화재단이 2016년 개관 때부터 이어온 마티네(연극, 음악회 등의 낮 공연)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황수미는 2014년 세계 3대 음악 콩쿠르 중 하나인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악가. 이 무대를 통해 그는 기획자, 진행자, 성악가 역할을 동시에 소화한다. 첫 공연은 ‘서정 가득하고 기품이 넘치는 가곡’을 주제로 한국 가곡 윤학준의 ‘마중’ ‘별’과 로베르트 슈만의 ‘헌정’, 클라라 슈만의 ‘나는 어두운 꿈속에 서 있었네’ 등을 들려준다. 테너 김우경과 피아니스트 안종도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두 번째 공연에선 오페라를 다룬다. ‘오페라―이야기와 감동이 살아 숨쉬는 무대’를 주제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시 판 투테’를 선보인다. 황수미는 “갈라콘서트로 여러 작품의 다양한 아리아를 들려드릴 수 있겠지만 한 편을 재밌게 각색해서 짜임새 있는 공연으로 선사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프라노 이한나, 메조소프라노 정세라, 테너 김효종, 바리톤 이동환, 베이스 김대영과 피아니스트 방은현이 참여한다. 마지막 공연은 ‘시네마’를 주제로 뮤지컬 ‘벤허’의 ‘기도’ ‘운명’, 뮤지컬 ‘팬텀’의 ‘내 고향’을 뮤지컬 배우 카이와 함께 부른다. 황수미는 “세 차례의 마티네 콘서트를 통해 클래식의 확장성을 실험해 보고 싶었다”며 “마티네 관객층은 클래식 입문자가 많기 때문에 너무 심오한 현대 음악이나 어려운 후기 낭만주의 음악 쪽은 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를 보면서 해설도 하고 공연도 해야 해서 큰 도전”이라면서도 “성악가로서 지평을 넓히고 다른 출연자들과 음악적 교감을 나누면서 무대를 만들어 나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2만1000∼4만5000원.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미국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9월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정경화 & 케빈 케너 듀오 리사이틀’(사진)을 개최한다. 이번 공연은 11월 예정된 미주 투어를 기념해 마련됐다. 서울을 비롯해 평택 남부문화예술회관(9월 13일)과 고양 고양아람누리(9월 21일), 통영 통영국제음악당(9월 26일)에서 열린다. 4만∼15만 원. 두 연주가는 드뷔시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단조’,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C장조’, 쇤베르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프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장조’ 등을 협연할 예정이다. 정경화는 1967년 미 카네기홀에서 열린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한국 클래식을 알린 선구자다.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 활동을 잠시 중단했지만, 2010년 복귀한 뒤 세계 곳곳에서 공연을 갖고 있다. 케너는 1990년 쇼팽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 폴로네이즈상 수상자. 정경화와는 오랫동안 음악적 동반자로 교류해 온 피아니스트다. 북미 투어는 매사추세츠 우스터 메카닉스홀(11월 2일)을 시작으로 뉴저지 프린스턴 매카터 극장(11월 5일), 뉴욕 카네기홀(11월 7일), 캐나다 토론토 코너홀(11월 9일) 등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다. 특히 세계적 연주자로 발돋움하는 데뷔 무대였던 카네기홀은 2017년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 이후 8년 만에 다시 찾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커다란 초록 손을 가진 아이 레노어가 있다. 남들과 다른 초록색 손이 부끄럽고 싫다. ‘학교 친구들 중 아무도 초록 손이 달린 애는 없는데.’ 손을 가리기 위해 손에 목도리를 둘둘 감고 다닌다. 그러던 중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 레노어. 처음 가는 학교에서 초록색 손이 들통나 망신을 당할까 봐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너무 답답해’라는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가만 보니, 초록색 손이 말하고 있다. 초록 손은 레노어에게 자기 이야기를 좀 들어보라고 한다. 옛날 옛날 조그만 분홍 혹을 단 멋쟁이 초록 손이 태어났다. 초록 손의 이름은 척. 그런데 척에겐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이 조그만 분홍 혹은 왜 달려 있을까. 커다란 손들 중에 분홍 혹이 달린 애는 아무도 없는데.’ 심지어 이 분홍 혹은 목도리로 척을 덮고 숨까지 막히게 한다. 척의 ‘분홍 혹’은 다름 아닌 레노어. 이어지는 척의 이야기에 레노어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지만, 곧 뭔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주제를 다룬 책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익숙한 전개를 ‘관점의 이동’을 통해 뒤집으면서 예상치 못한 웃음을 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우리 국토에서 자라는 3000종이 넘는 식물의 생육 시기별 사진과 정확한 이름, 용처 등을 집대성한 식물백과사전이 나왔다. ‘잡초박사’ ‘야생종자 전문가’로 불리는 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78)가 제자인 김태완 한경대 교수 등 5명의 공저자와 함께 e북으로 출간한 ‘주변잡초와 외래식물’(상·중·하), ‘자원식물과 외래식물’(1∼3권), ‘자원식물 생태사진’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3196종 식물의 23만 장에 이르는 생육 단계별 사진을 정확한 학명과 영어명, 국명, 약효와 생태적 특성 등과 함께 집약했다. 모두 7500페이지가 넘는 역작이다.강 교수는 1980년대부터 한 달에 보름 이상 논밭과 산야를 돌며 식물 특성을 조사하고 종자를 수집하는 데 열정을 바쳤다. 40년에 걸쳐 모은 종자만 2300종 7000점, 생태사진은 1만2688종 77만 장이다. 국내 자원 식물 종자의 90% 이상에 해당하는 수집 종자는 2012년 은퇴 당시 고려대에 모두 기증했다. 그 가치만 수백억 원에 이른다. 방대한 양의 생태사진은 정년 뒤 13년에 걸쳐 정리한 끝에 책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강 교수는 “모두가 아름답고 푸른 식물환경은 원하면서도 정작 생활 주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관심이 없다”며 “어릴 때부터 농작물과 야생·자생식물을 정확히 알고 배워야 자연을 아끼게 된다. 거기에서부터 우리 국토를 아름답게 지켜내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방대한 식물 해설서를 집대성한 계기가 궁금하다. “나태주 시인 시 중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란 시(‘풀꽃’)가 있다. 어떤 식물이 있는지 알고, 자꾸 관심 있게 봐야 사랑하게 된다. 무분별한 국토 개발, 기후와 농업환경 변화로 농작물과 잡초 종류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고 생태환경도 파괴되고 있다.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사람들이 생육 시기별 자생식물을 식별할 줄 알고,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배우며 주변 생태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그 시작이다.” ―곳곳에 수목원이나 생태원이 다양하게 산재해 있다. “국공립이나 사립 수목원, 각 지방의 습지 생태원 등에 아름다운 꽃식물이 많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수목원인 봉화 백두대간 수목원, 세계에서 입장료가 가장 비싼 수목원인 군위 사유원도 다 우리나라에 있다. 그런데 정작 식물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단 한 군데도 식물 생태사진을 전시하거나 정확한 이름과 특성을 찾아볼 수 있는 자료를 갖춘 식물원과 도서관이 없다. 지금은 희망이 없다. 전 국토가 꽃밭이다. 다들 아름다운 꽃만 본다.” ―꽃밭이 많은 게 그리 문제가 되나. “꽃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하지만 대량으로 꽃식물을 재배하는 것은 1년에 절반만 녹색으로 토양을 피복시키기 때문에 환경에 나쁜 영향을 준다. 농작물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지방자치단체에서 생활 주변과 농지에 대량으로 꽃식물을 심고 아름답게 꾸며서 관광객을 유치한다. 이렇게 조성하고 있는 넓은 꽃밭과 꽃식물은 우리 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있다. 비용 때문에 종자의 90% 이상이 외국, 특히 중국에서 들어온다는 점도 문제다. 보기엔 예뻐도 생태계와 종 다양성은 계속 망가진다. 주변에서 자라는 소박한 우리 자생식물을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 쇠퇴한 농촌의 휴경지를 식물 다양성을 살리는 습지와 숲으로 가꿔야 한다.” ―기후 변화 등으로 생태계 위해식물이 느는 것도 문제라고 들었다.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조경과 관상용 외국 식물 종류가 급증하며 외래 식물이 많아지고 있다. 하천 변과 산 가장자리에서는 생태계 위해식물인 ‘가시박’ ‘환삼덩굴’ ‘칡’ 등 덩굴식물류가 급증하는데 소관 부서가 달라 조절이 잘 안 된다. 도로변에는 ‘단풍잎돼지풀’이 확산되며 주변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방치하면 곤충, 동물 서식처가 변하고 결국 생물다양성 감소와 생활환경 위협으로 이어진다.” ―식물 이름을 정확히 알고 구별하는 것이 이런 상황에 어떤 도움이 되나. “식물에 관심이 있어야 이름과 이용성을 알게 되고,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게 된다. 예를 들어 ‘냉이’는 장소나 시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 식물분류 전문가조차 구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들나물 채취하는 할머니들은 경험으로 구별한다. 생육 중의 어린 식물을 구별하는 것은 결국 관심과 경험에 의한 관찰력이다. 식용, 약용, 향료나 염료용 등으로 유용하게 활용하는 식물을 자원식물이라고 하는데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 용도가 끝이 없다. 잡초학을 전공했지만 늘 하는 말이 ‘세상에 쓸모없는 식물은 없다’는 것이다. 잘 알아야 잘 이용할 수 있다. 뽕나무만 해도 110개의 증상과 효과가 조사돼 있다. 식물 연구는 이용가치가 무궁무진하다.” ―현재 우리 식물 이름은 얼마나 부정확하게 불리고 있나. “수목원과 생태원의 규모는 커도 표찰이 부정확하다. 전국 나물시장과 약초시장에서 팔리는 들나물, 산야초 등도 표준국명과 다르게 유통되고 있다. 만병통치약으로 소개돼 전문가 처방 없이 복용하고 오용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남북한 각 지역에서도 식물을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남북에서 같은 명칭의 비율이 34%에 불과하다. 남한에서라도 지방명이 아니라 국가표준식물명으로 불리도록 수목원과 도서관, 학교에서 노력해야 한다. 이름부터 정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 ―해외에선 식물을 어떻게 관리하나. “유럽은 전통적으로 식물원 표본 관리가 잘돼 있다. 식물원을 주로 대학의 생물학과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표찰에 식물학명이 정확히 기재돼 관람객들이 식물을 배우는 데 불편함이 없다. 반면 우리는 수목원이 생긴 지 3년만 지나면 담당 공무원이 이미 바뀌어서 표찰이 달라지고 관리도 안 된다. 넓은 면적에 볼거리는 많지만, 지속적인 예산 지원이나 전문가의 관리가 부족해 세월이 가면 결국 풀밭이 된다.” ―40년간 현장을 누비다 보면 일화가 많았을 것 같다. “현장 조사는 자연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숙명이다. 독일 유학 때부터 유전자원 보존의 필요성을 느껴 생태사진을 찍고 종자 수집을 했다. 차를 타고 산과 들에서 조사하기 때문에 사건 사고가 많았다. 오대산에선 진드기에 물려 3개월을 고생하고, 점봉산에선 말벌에 쏘여 얼굴이 부은 채 운전하기도 했다. 상주 팔음산에선 낭떠러지로 굴렀으나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살았다. 진드기, 벌레, 뱀, 벌에 노출되고 응급실도 자주 가는 위험한 일이다. 종자를 확보하고 보존해야 우리 자생식물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 뒤를 이어받은 제자들의 안전이 걱정인데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 안타깝다.” ―책이 방대해 출간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두껍고 크니 서점에서 판매하기 어렵고 출판 비용이 너무 비싸져서 책으로 낼 수 없었다. 식물원, 수목원, 학교 등에서 교육용으로 활용하고 필요한 이들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e북으로 냈다. 야외 조사를 통해 어린 식물부터 종자성숙기, 채종한 종자까지 생태사진을 지속적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식물의 생육 시기별 생태사진이 모두 담겨 있다. 학생들은 교과서 식물을 배울 수 있고, 일반 국민들은 약초, 먹거리 식물과 꽃식물, 습지식물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이렇게 관찰하고 배우면 사랑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돼 있다.” ―농과대학에 진학했던 1960년대와 현재의 생태환경을 비교해보면…. “먹거리 해결이 급선무이던 시절 식량 증진에 기여하려고 농과대학에 가 잡초 방제를 연구했다. 하지만 기술 발달로 농업 생산력이 향상되고 배고픔이 해결됐다. 세상의 변화가 빨라서 유학 직후 강의한 것이 작물과 잡초였다가 퇴임 전에는 자원식물이었다. 농촌이 쇠퇴하며 학생들은 작물재배 강의를 기피했고 전공학과 명칭과 강의 내용도 바뀌었다. 식물 생태의 위협도 현실화됐다. 2005년과 2010년, 2021년 양재천변을 조사한 결과 자생하는 초본식물이 429종에서 318종, 100여 종으로 단순화됨을 관찰했다. 생물다양성 소실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느낀다.” ―생태환경 보호를 위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생태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이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 각 초종의 이름을 아는 것을 기본으로, 생육 시기 및 개화기, 발생 장소에 따른 모양과 생태를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전시도 하고 교육도 해야 하는데 예산이 많이 드는 일이라 공무원들은 위에서 시키지 않으면 하질 않는다. 지자체 장들은 표에만 관심 있지 자연환경엔 관심이 없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들 한다. 나이 들면 고향 풍경을 그리워하게 되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설레게 된다. 늦기 전에 국토의 자연환경을 살리기 위해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 1973년 고려대 농과대학△ 1983년 독일 호엔하임대 농학박사△ 1985∼2012년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교수△ 2009∼2011년 고려대 환경생태연구소(소장)△ 2010∼2012년 고려대 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 운영책임자△ 2012년∼현재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명예교수△ 2012년∼현재 사단법인 야생자원식물소재연구회 이사박선희 문화부 차장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