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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대전 유성구 국가유산청 산하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작업대 위에 놓인 기관총은 검붉은 녹이 남아 지금도 피에 젖어 있는 건 아닌지 착각이 들었다. 오래된 쇠에서 나는 비린내도 살짝 풍겨 왔다. 70여 년 전 6·25전쟁에서 죽은 한 무명용사가 마지막까지 떨리는 손으로 쥐고 있었을 총이었다. “연구원으로 가져와 X선 검사로 탄창을 살펴 보니 한두 발 분량만 비어 있었어요. 탄창을 꽂은 뒤 제대로 쏴보기도 전에 즉사했다는 뜻이지요.”(이재성 학예연구사·52) 이 총은 당시 국군이 썼던 최신 영국제 기관총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습했다고 한다. 처음엔 총을 열어 내부를 볼 수도 없을 만큼 심하게 녹슨 상태였지만, 보존 처리를 통해 추가 부식을 막았다. 다행히 원형도 일부 복원했다. 문화유산연구원은 흔히 ‘옛것’만 다룬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현대사의 아픔이 깊게 배인 문화유산도 당연히 다룬다. 이 연구사와 윤혜성 학예연구원(42)은 이처럼 6·25전쟁 무명용사의 마지막 순간을 밝혀내는 일도 맡고 있다. 사실 이들은 국보 ‘창경궁 자격루’와 통일신라시대 불상 등을 복원한 금속 유물 전문가다. 2020년부터 국방부와 손잡고 화살머리고지, 백마고지 등 DMZ 격전지에서 수습된 전사자 유품을 조사하는 업무를 겸하고 있다. 다른 팀원 5명과 함께 보존 처리까지 마친 유품은 1360여 점에 이른다. 격전지에서 출토된 유품은 고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X선, 컴퓨터단층촬영(CT) 등 방사선 비파괴 조사를 거친 뒤 수술용 칼, 면봉으로 이물질을 제거하면서 현미경으로 꼼꼼히 살피는 이유다. 윤 연구원은 “수저에 ‘壬(임)’ ‘남수’ 등 깨알 같은 표식이 새겨진 사례도 있다”며 “신원이 확인된 유품은 보존 처리를 한 뒤 유족의 품에 돌아갈 수도 있다. 작은 흔적 하나하나까지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말했다. 이 연구사도 “전쟁터에서 나온 물건은 단순 ‘유물’이 아닌 ‘유품’이기도 하다”며 “누군가의 가족, 이웃의 이야기이기에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고 했다.실제로 이런 유품들엔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 임병호 일등중사의 구멍 뚫린 수통도 그중 하나다. 고인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화살머리고지 4차 전투에서 전사했다. 정전협정 체결(1953년 7월 27일)을 겨우 2주가량 앞둔 때였다. 그가 몸에 차고 다녔을 수통에선 총탄 흔적이 9군데나 발견됐다. 이 연구사는 “총탄이 최소 4발 관통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유물이자 유품의 종류도 다양하다. 전우들과 시름을 달래고자 불었을 하모니카, 함께 마셨을 커피 봉지도 있다. 윤 연구원은 “고 김영규 일병은 유해와 함께 방풍(防風) 라이터가 출토됐다”며 “임코(IMCO)사가 1920년대부터 생산한 제품으로, 미군이나 유엔군에게서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윤 연구원은 현재 원삼국시대의 소형 철검도 보존 처리 중이다. 이 철검에서도 전쟁의 흔적이 느껴진다고 했다.“전쟁 관련 유물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요. 하지만 6·25전쟁은 전사자의 이름, 얼굴까지 알고서 작업할 때가 있어 마음이 더 아픕니다. 올해 보존 처리를 마친 화기 중에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쓰이는 것이 있어요. 세상은 전쟁이 끝나질 않는구나…, 안타깝죠.” 보존 처리가 끝난 유품은 대부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유해발굴감식단 수장고에 보관된다. 박물관 전시, 안보 교육 등에 활용되기도 한다. 두 사람은 “나라를 위해 순직한 영웅을 후대에 알린다는 책임감과 뿌듯함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대전=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어린 새들은 언제나 나를 뒷마당의 일부로 봤다. 내 모습이 보이면 모이통을 채우기 전부터 시끄럽게 치카-치카 소리를 낸다.… 저 새들은 알껍데기가 세상의 전부였을 때 부모가 불러주던 사랑스러운 ‘피터-피터-피터’ 노래를 언제쯤 다 배울 수 있을까?” 매일 집 뒷마당에 찾아오는 새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저자의 기록이 담겼다. 2017년부터 약 6년간 작성한 일지 90편을 모아 다듬었다. ‘까마귀들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시점에 배울까?’ ‘벌새 사이에서도 급진적인 여성 운동이 일어나는 걸까?’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 일지들은 발랄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집요한 관찰과 세밀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새들이 지저귀는 뒷마당에 함께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저자는 세계적 영화감독 웨인 왕이 연출한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진 장편 소설 ‘조이 럭 클럽’을 쓴 작가. “어떤 새들은 미끄럼 옆 덤불에 앉아 활강 경기를 지켜봤다. 옹벽의 먼 아래쪽 차선 배수로에 물이 흐르며 거품이 일었다” 등 생동감 있는 문장이 빼곡하다. ‘탐조 동아리(클럽) 회장’에 버금가는 저자의 방대한 식견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책에 담긴 새는 얼룩무늬토히, 은둔지빠귀, 스텔라어치 등 60여 종에 이른다. 각각의 생태, 먹이, 짝짓기 방식 등이 읽기 쉽게 적혔다. 여기에 저자는 알록달록한 삽화들을 손수 그렸다. 큰뿔부엉이의 ‘쉬는 얼굴’ ‘공격할 때의 얼굴’ ‘배고파 죽겠는 얼굴’ 등을 구별해 그린 페이지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저자는 종종 새의 세상을 거울 삼아 인생을 비춰 본다. “새를 보면서 나는 태어나서 한 생을 살아 내고 결국 죽어서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는 삶의 여정을 생각한다.… 성조(成鳥)에 대해 나는 그 새들이 내 앞에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어린 새의 75퍼센트가 첫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고대(古代) 전북 지역의 문화 교류 흔적을 정리한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나고 드는 땅, 만경과 동진’이 27일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서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만경, 동진 유역을 중심으로 전북 지역의 고대 역사를 조명했다. 보물 ‘완주 갈동 출토 잔무늬거울’ 등 유물 404점을 선보인다. 정읍 은선리·도계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꽃 모양 금꾸미개 등 유물 73점은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2022년 김제 만경읍 대동리 유적에서 출토된 ‘乙(을)’자 모양 청동기도 전시된다. 박물관 측은 “만경강 동진강 유역은 바다와 강, 평야와 고원이 만나는 독특한 지형을 바탕으로 초기 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주변국이 문화적으로 교류하는 통로가 됐다”고 설명했다. 10월 12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인 입지가 아주 넓어졌죠. 저는 조선 수묵화나 고려 불화 등 전통 미술에서도 그 가능성을 봅니다. 최근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등에서 열렸던 전시의 높은 인기가 이를 입증해요.”(멀리사 매코믹 교수)“고려 불교 미술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중국, 일본과 비교했을 때 크기는 더 대범하고, 그림을 그린 장인의 기술은 최고 수준이죠.”(유키오 리핏 교수)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의 ‘부부 교수’이자 동아시아 고미술 연구의 권위자인 리핏, 매코믹 교수를 26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났다. 이들은 27일부터 이틀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 왕실 문화와 미술’에 발표자로 참여한다. 두 교수는 “한국의 문화, 특히 왕실 미술은 그 중요성과 우수성에 비해 더 깊이 연구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리핏, 매코믹 교수는 각각 2003년과 2005년부터 하버드대에서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리핏 교수는 일본 에도시대 정치권력과 미술의 관계를 다룬 저서 ‘국가를 그리는 사람들: 17세기 일본 가노파 화가들의 세계’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 중세·근세 회화 전문가. 최근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소셜미디어에 올렸던 16세기 조선 화가 이암의 ‘강아지 그림’에 대해 “17∼18세기 일본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매코믹 교수는 일본 궁정미술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학자다. 대표 저서로는 ‘중세 일본의 소형 족자와 토사 미쓰노부’(2009년), ‘겐지 이야기: 시각적 동반자’(2018년) 등이 있다.리핏 교수는 학술대회에서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쇼소인(正倉院·정창원) 소장품을 주제로 발표한다. 쇼소인은 756년 쇼무 일왕의 명복을 빌고자 고묘 왕후가 일왕과 자신의 애장품을 봉헌한 창고. 일본 귀족은 물론 백제, 신라 등 주변국이 일왕에게 선물한 고대 유물 9000여 점이 폐쇄적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리핏 교수는 이 보물들을 ‘국제 교류의 흔적’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쇼무 일왕이 군주로서 갖는 권위를 보여주는 동시에 “일본 사상 처음으로 출가해 승려가 된 왕으로서 세속과 권위를 포기한 모습이 투영됐다”는 이중성(doubleness)을 짚었다. 리핏 교수는 “예컨대 신라에서 건너간 악기인 ‘신라금(琴)’이나 중국이 조공한 악기 ‘5현 비와(琵琶)’는 보살이 되고자 했던 쇼무 일왕이 쾌락을 포기했음을 상징하는 물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두 교수는 왕실 미술을 “군주의 이상이 다층적으로 반영된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매코믹 교수는 일본 에도시대의 한 족자 그림을 통해 궁정 기록화가 “단순 기록물을 넘어 고전 설화처럼 재구성된 복합적 예술품”이라고 해석했다. 후대에도 왕실의 권위를 반복적으로 상기시킬 시각적 장치로 활용됐다는 것이다. 이 족자는 하버드대 소장품으로, 과거 일본 왕궁에서 거행됐던 불교 의례가 그려졌다. 매코믹 교수는 조선시대 왕실 기록화인 의궤나 궁중 행사도 이와 비슷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조선은 화재와 전란을 겪으면서 궁궐이 여러 번 소실된 한편 왕조의 정통성을 강화해야 했단 점에서 에도시대와 닮았어요. 18, 19세기 두 나라는 회화 전통을 활발히 주고받았고, 특히 의궤는 휴대성이 높으니 영향을 주거나 받았을 가능성이 있죠.” 이런 주장은 동아시아 궁정 기록화에 대한 접근 방식이 주로 기록성이나 사실성에 집중됐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매코믹 교수는 “동아시아 궁중화가 단순히 경험적인 기록을 보여주는 수단이 아니라 감동적, 상상적인 예술로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 올해 ‘관월당(觀月堂)’을 한국에 돌려보내게 돼 영광입니다. 문화유산 반환은 땅과 땅, 국가와 국가를 다시 잇는 가교가 된다고 믿습니다.”조선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는 목조 건축물인 ‘관월당’을 한국의 품으로 돌려보낸 일본 가마쿠라시의 사찰 고토쿠인(高德院)의 주지인 사토 다카오 게이오대 교수(62)는 24일 언론 공개회에서 관월당 환수의 의미를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2009년부터 게이오대에서 민족학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다.그는 이날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제국주의 시대 반출된 유산을 돌려보내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라며 “관월당과 같은 문화유산은 원래의 역사적, 장소적 맥락을 떼어 놓고 볼 수 없는 법”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의 혼을 달래거나 기도하는 곳이라는 사당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원래 있었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도 덧붙였다. 해외에 있는 건축유산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반환된 것은 관월당이 처음이다.1920년대 일본으로 넘어간 관월당은 양국 불교계 협의로 2010년 처음 반환이 거론됐으나 현지 우익의 반발 등 논란 끝에 불발됐다. 최근까지 고토쿠인의 기도처로 활용됐다. 사토 교수는 “주지로 취임한 2002년, 유엔 대사를 지냈던 삼촌이 저에게 반환을 제안한 뒤로 줄곧 한국에 돌려줄 방법을 고심했다”며 “15년 전엔 일본 우익 단체의 협박 전화를 받고 반환에 지장이 생기겠다고 판단해 보류했다”고 회상했다.하지만 2016년경 서까래나 지붕 등이 내려앉는 등 관월당이 눈에 띄게 노후화하자 사토 교수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한일 관계의 분위기를 살피며 적절한 시점을 기다리다가 2022년 한국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과 반환 협의를 재개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김병철 교수, 한일 관계 연구자인 하종문 한신대 교수 등의 자문을 거쳤다.“조사하면 할수록 아주 중요한 건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이 건물이 한국에 귀향할 수 있다면 더없이 다행일 것 같았고, 한국과 일본의 우호 관계를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사토 교수는 관월당의 모든 부재를 한국에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했다. 현지에서 해체한 뒤 한국으로 운송하는 비용도 고토쿠인 측이 냈다. 국가유산청이 비용 부담을 제안했는데도 “노후화 때문이 아니라 정말 소중한 문화유산이기에 돌려보내는 것”이라면서 고사했다. 앞으로 한일 문화유산의 학술 교류를 지원하기 위해서 기금 1억 엔(약 9억4000만 원)을 마련해 한국에 기부할 것이라는 계획도 전했다. “중요한 일을 마무리하게 돼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 관월당이 한일 문화유산 협력 분야에서 이정표가 되길 바랍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됐던 조선 후기 목조 건축물 ‘관월당(観月堂)’이 약 10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왔다. 해외로 옮겨졌던 우리 건축 문화유산이 이처럼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환수된 건 처음이다.‘관월당’은 18, 19세기 대군(大君)급 왕족의 사당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단청 등에 쓰인 무늬는 매우 위계가 높은 건물임을 증명한다. 지난해 현지에서 해체된 뒤 부자재 형태로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관월당은 아직 ‘원위치’가 밝혀지지 않아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용과 박쥐 새겨진 왕실 관련 건축 유산 국가유산청은 24일 오전 언론공개회를 갖고 “일본 가마쿠라시의 사찰인 고토쿠인(高德院)으로부터 관월당을 기증받았다”며 “지난해 해체된 건물의 부재를 순차적으로 넘겨받았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 등에 따르면 관월당은 1900년대 초 순정효황후(순종의 비) 아버지인 윤택영의 소유였으나, 그가 막대한 빚을 지며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식산은행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24년 재정난을 겪던 조선식산은행이 고건축에 관심 많던 야마이치증권 초대 사장인 스기노 기세이(杉野喜精)에게 넘기며 관월당은 일본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경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도쿄 메구로(目黑) 자택으로 관월당을 가져간 스기노가 폐병에 걸린 뒤 고토쿠인 옆에 별장을 지으며 다시 옮겨 세웠고, 1934∼1936년경 고토쿠인에 기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관월당’으로 불린 건 고토쿠인으로 옮겨진 뒤부터였다고 한다. 현지에선 최근까지 관음보살상을 봉안한 기도처로 활용됐다. 관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면을 제외한 모든 칸에 화방벽(火防壁·불타지 않는 재료로 만든 벽)이 설치됐고, 구조와 규모가 조선의 사묘(祠廟) 양식을 띠고 있다. 다만 학계는 건물이 타지를 떠도는 동안 구조가 일부 변형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분석 결과, 현 기단은 일본 가나가와현과 도치기현에서 채석되는 안산암과 응회암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기와와 단청에 새겨진 다채로운 무늬는 관월당이 조선 왕실과 연관된 건물임을 뒷받침한다. 암막새엔 용과 박쥐 등의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단청엔 구름과 만(卍)자 무늬 등이 있다. 손현숙 동아시아전통미술연구소장은 “단청은 19세기 후반 다시 채색된 것으로 보인다”며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채색된 초기 단청과 비교 연구하면 왕실 건축 단청의 변화 양상을 엿볼 수 있다.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했다.● “순정효황후 본가 건물일 수도” 관월당은 1990년대 학계와 불교계를 통해 존재가 알려진 뒤 ‘일본으로 반출된 우리 문화유산’으로 꾸준히 거론됐다. 2010년 양국 불교계가 협의하며 한국으로 돌아올 뻔했으나, 일본 우익의 반발 등으로 논란이 커지며 환수가 불발됐다. 이후 2019년 고토쿠인 주지인 사토 다카오 게이오대 교수(민족학고고학)가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에 “제국주의 시대 반출된 문화유산의 귀환을 바란다”며 기증을 제안했다. 이후 팬데믹을 거치며 시일이 늦어졌으나, 건물 해체 및 이전 비용도 모두 고토쿠인 측이 부담했다. 앞서 도쿄 오쿠라 호텔에 있던 경복궁 자선당의 유구가 반환된 적은 있으나, 건물 전체가 돌아온 건 처음이다.향후 과제는 관월당의 원위치를 찾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이 된 순정효황후 본가 터(조선식산은행 사택 터)가 유력하나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일본에 남아 있는 여러 기록을 보면 ‘조선 왕실과 관련됐다’ ‘도로 확장 사업으로 헐렸다’ 등이 확인된다”며 “이런 조건들을 전부 만족시키는 장소가 현 송현동 부지”라고 했다. 이 밖에 종로구 통의동 일대 창의궁 터(동양척식은행 사택 터)나 과거 월궁이라 불렸던 월성위궁 터 등도 후보지로 거론된다.해체된 관월당 부재는 현재 경기 파주시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목재 1124점, 석재 및 철물 401점, 기와 3457점 등이다. 국가유산청은 향후 수리 및 연구를 거친 뒤 관월당을 원위치로 복원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박형빈 국가유산청 국외유산협력과장은 “관월당의 원위치가 밝혀져도 현 토지 소유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면서 “여의치 않으면 다른 장소에 임시 복원해서라도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겠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인 ‘진관사 태극기’(사진)가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취임 직후 공식 석상에서 배지로 착용하며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배지 예약 주문이 밀려드는 등 관심이 커졌다. 학계에선 최근 벌어진 유행이 아니어도 진관사 태극기는 “역사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먹힐’ 콘텐츠”라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열리는 ‘백초월 스님 추모재 및 학술 세미나’에서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대 교수는 논문 ‘진관사 태극기의 기억과 향유’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교수는 “진관사 태극기의 제작 방식이나 발견 과정 자체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를 개조해 만든 태극기로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됐다. 태극기에 대한 억압이 심했던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것으로는 유일하다. 진관사 태극기는 모양새도 당시 최고조에 이르렀던 항일 의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국가유산청 등에 따르면 이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타 손상됐고 구멍 뚫린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 독립운동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교수는 발표 논문에서 “가로세로 비율은 5 대 4로, 다른 태극기에 비해 세로가 길다는 특징은 일장기를 태극기로 개조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훗날 진관사 태극기가 발견된 과정 역시 스토리텔링적 요소가 크다. 2009년 진관사의 부속 건물을 해체·복원하던 중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발견됐다. 함께 발견된 동반 자료도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과 불교계 지하 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등 독립운동과 관련된 문건 19점에 보자기처럼 싸인 채였다. 이 교수는 “근대유산으로서의 태극기는 역사적 엄숙함에 갇혀 있기 쉽지만 진관사 태극기는 풍부한 상상력을 끌어낼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6월 25일 오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울은 늘 우중충한 회색빛 도시였지만 그날은 유독 더 침울해 보였다. 전날 저녁, 북한이 국경에서 군사작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 한국에 주재한 10개월 반 동안 그런 소문을 최소 25번은 들었던 터였다. 새벽 1시에 국방부 본부에 전화를 걸었을 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모든 게 조용합니다’.” 6·25전쟁의 발발을 전 세계에 처음으로 보도한 미국 종군기자 잭 제임스(1921∼2000·사진)는 전쟁 당일 아침을 이렇게 회고했다. 19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6·25 종군기자 잭 제임스’에 전시된 국제문제협의회 연설문 내용이다. UP통신(현 UPI) 한국 특파원이었던 제임스 기자는 1950년 6월 25일 오전 9시 50분 ‘북한군, 남한 침략’이란 제목의 기사를 본사로 보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워싱턴에 타전한 보고보다 더 빨랐다고 한다.이번 전시는 그의 아들 데이브 제임스 미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UNLV) 교수가 보관하고 있던 유품 25점을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다. 제임스 기자가 1947∼1949년 종군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전쟁터에서 입었던 야전 상의나 취재원 정보를 적은 수첩 등이 포함됐다. 우리나라 해군 장병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과 당시 불었던 하모니카도 전시됐다. 전쟁이 끝난 뒤 제임스 기자가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에서 근무하며 쓴 가죽 서류 가방 등도 관람객을 만난다. 그는 이 재단에 근무하며 전쟁으로 황폐화된 한국이 다시 문화적 초석을 놓는 데도 공헌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순회전인 1957년 ‘한국 국보전’이나 경북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 사찰 터인 황룡사지 발굴을 지원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제임스 기자는 1950년 7월 경기 수원에서 포격에 부상당해 기자 생활을 접은 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아시아재단 한국지부장으로 재직했다”며 “해외에 한국의 독자적인 문화를 알리고자 여러 문화 사업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의 한국 문화를 향한 사랑은 각별했다고 한다. 1960년 귀국 길엔 높이 150cm, 무게 300kg에 이르는 17세기 동자석(童子石)을 가져가기도 했다. 데이브 교수는 “서울의 한 공사판에서 동자석을 부셔서 공사 재료로 활용하려고 하자 아버지가 이를 만류했다고 들었다”며 “집 마당에 두고서 돌아가실 때까지 애지중지하셨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품들은 자칫하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질 뻔했다. 원래 데이브 교수가 한국에 기증하려던 유품은 동자석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조사를 나갔던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미국사무소장이 다른 유품들이 있다는 걸 알고 설득 끝에 기증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퇴임을 앞두고 있던 데이브 교수는 짐을 정리해 멀리 이사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강 소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동자석의 취득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데이브 교수의 아버지가 제임스 기자임을 알게 됐다”며 “라스베이거스 자택 차고에 전쟁 현장이 생생히 담긴 기록물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 깜짝 놀랐다. 우리 역사의 한 챕터가 담긴 소중한 사료들이었다”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6월 25일 오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울은 늘 우중충한 회색빛 도시였지만 그날은 유독 더 침울해 보였다. 전날 저녁, 북한이 국경에서 군사작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 한국에 주재한 10개월 반 동안 그런 소문을 최소 25번은 들었던 터였다. 새벽 1시에 국방부 본부에 전화를 걸었을 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모든 게 조용합니다.’”6·25 전쟁의 발발을 세계에 처음으로 보도한 미국 종군기자 잭 제임스(1921~2000·사진)는 전쟁 당일 아침을 이렇게 회고했다. 19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6·25 종군기자 잭 제임스’에 전시된 국제문제협의회 연설문 내용이다. UP통신(현 UPI) 한국 특파원이었던 제임스 기자는 1950년 6월 25일 오전 9시 50분 ‘북한군, 남한 침략’이란 제목의 기사를 본사로 보냈다. 미 대사관이 워싱턴에 타전한 보고보다 더 빨랐다고 한다.이번 전시는 그의 아들 데이브 제임스 미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UNLV) 교수가 보관하고 있던 유품 25점을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다. 제임스 기자가 1947~1949년 종군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전쟁터에서 입었던 야전상의나 취재원 정보를 적은 수첩 등이 포함됐다. 우리나라 해군 장병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과 당시 불었던 하모니카도 전시됐다. 전쟁이 끝난 뒤 제임스 기자가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에서 근무하며 쓴 가죽 서류 가방 등도 관람객을 만난다. 그는 이 재단에 근무하며 전쟁으로 황폐화된 한국이 다시 문화적 초석을 놓는데도 공헌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순회전인 1957년 ‘한국 국보전’이나 경북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 사찰 터인 황룡사지 발굴을 지원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제임스 기자는 1950년 7월 경기 수원에서 포격에 부상당해 기자 생활을 접은 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아시아재단 한국지부장으로 재직했다”며 “해외에 한국의 독자적인 문화를 알리고자 여러 문화 사업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의 한국 문화를 향한 사랑은 각별했다고 한다. 1960년 귀국 길엔 높이 150cm, 무게 300kg에 이르는 17세기 동자석(童子石)을 가져가기도 했다. 데이브 교수는 “서울의 한 공사판에서 동자석을 부셔서 공사 재료로 활용하려고 하자 아버지가 이를 만류했다고 들었다”며 “집 마당에 두고서 돌아가실 때까지 애지중지하셨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품들은 자칫하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질 뻔했다. 원래 데이브 교수가 한국에 기증하려던 유품은 동자석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조사를 나갔던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장이 다른 유품들이 있다는 걸 알고 설득 끝에 한국으로 기증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퇴임을 앞두고 있던 데이브 교수는 멀리 이사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모두 처분할 생각이었다고 한다.강 소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동자석의 취득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데이브 교수의 아버지가 잭 제임스 기자임을 알게 됐다”며 “라스베이거스 자택 차고에 전쟁 현장이 생생히 담긴 기록물이 차곡차곡 쌓여있어 깜짝 놀랐다. 우리 역사의 한 챕터가 담긴 소중한 사료들이었다”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 영국 밴드 ‘버글스’의 히트곡은 1980년대 TV가 등장하며 라디오가 쇠퇴한 시대를 대변했다. 하지만 이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가 펼쳐지며 TV 역시 저무는 신세가 됐다. 장난감 산업도 비슷한 처지를 겪었지만 결과는 사뭇 다르다. 덴마크 장난감 기업으로 아날로그 장난감의 대표 격인 ‘레고’는 비디오 게임, 스마트폰 게임 시대가 열릴 때마다 위기론에 휩싸였다. 하지만 레고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며 결코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레고 이야기’는 1932년 설립 이후 “사람들의 내면에 상상력을 제시한다”는 가치를 유지하면서 혁신을 멈추지 않았던 레고의 93년 역사를 담았다. 레고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2대 회장 고트프레드, 올레의 손자이자 3대 회장인 키엘에 이르는 설립자 가족의 일대기를 밀도 높게 풀어냈다. 앞서 덴마크 왕 마르그레테 2세,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등의 일생을 정리했던 전기 작가가 썼다. 이번 책은 레고의 공식 승인도 받았다. 이 책은 레고의 공식 기록 보관소에서 발굴한 자료 등을 토대로 구체적인 사실을 풀어낸 것이 강점이다. 창업주 올레가 기존 나무 블록을 플라스틱으로 교체하면서 혁신을 이룬 과정이 대표적이다. 생산 체계를 바꾸는 비용이 회사 재정을 크게 위협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달려가서 미국제 성형기기의 시연회에 참석했고, “현기증 나게 비싼” 주형 기계를 덜컥 주문했다. 1978년 출시돼 레고 역사를 다시 쓴 ‘미니 피규어’ 일화도 인상적이다. 이전엔 단지 ‘건물을 짓는’ 장난감이던 레고는 미니 피규어 출시 뒤 ‘무한한 역할극의 가능성’을 위한 장난감으로 도약했다. 이는 레고의 오랜 과제였던 여아들의 마음을 사는 데도 한몫했다. 레고는 “여자아이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사물에 인간성이 있어야 하고, 앉히고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분석을 토대로 인간형 미니 피규어를 출시했다고 한다. 이 밖에 레고가 미국에 진출하며 협력자로 샘소나이트를 택한 결정은 패착이 됐지만, 20년 뒤 맥도널드와 손잡고 미국 시장을 개척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보수적인 경영진이 쌍수 들고 반대했던 ‘스타워즈’ 협업 상품이 결국 레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눈길을 끈다. 다양한 고난과 극복의 서사가 한 편의 소설과 같은 긴장감 있는 서술로 몰입도를 높였다. 저자는 1년 반에 걸쳐 3대 회장 키엘과 인터뷰를 진행해 책에 실었다.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인한 장난감 수요 하락, 내부의 혁신 정체가 뒤얽힌 1970년대 초반 상황에 대해 키엘은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회장이던) 아버지의 기백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한순간에 속도를 늦추는 사람이 됐고, 더는 일을 키우고 싶지 않은 듯했습니다.” 인간적인 회고와 솔직한 고백으로 자칫 건조할 수 있는 기업 역사에 서사를 더했다. 수많은 역경에도 살아남은 레고는 오늘날 ‘블록형 장난감’을 일컫는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레고가 그런 지위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키엘의 답변에서 엿볼 수 있다.“할아버지는 상황이 가장 나쁘고 해결이 불가능해 보일 때도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도요. 일종의 고집이 대대로 내려오는 겁니다. … 이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자 내가 책임지는 모든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 영국 밴드 ‘버글스’의 히트곡은 1980년대 TV가 등장하며 라디오가 쇠퇴한 시대를 대변했다. 하지만 이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가 펼쳐지며 TV 역시 저무는 신세가 됐다.장난감 산업도 비슷한 처지를 겪었지만 결과는 사뭇 다르다. 덴마크 장난감 기업으로 아날로그 장난감의 대표 격인 ‘레고’는 비디오 게임, 스마트폰 게임 시대가 열릴 때마다 위기론에 휩싸였다. 하지만 레고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며 결코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레고 이야기’는 1932년 설립 이후 “사람들의 내면에 상상력을 제시한다”는 가치를 유지하면서 혁신을 멈추지 않았던 레고의 93년 역사를 담았다. 레고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2대 회장 고트프레드, 올레의 손자이자 3대 회장인 키엘에 이르는 설립자 가족의 일대기를 밀도 높게 풀어냈다. 앞서 덴마크 왕 마르그레테 2세,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등의 일생을 정리했던 전기 작가가 썼다. 이번 책은 레고의 공식 승인도 받았다.이 책은 레고의 공식 기록 보관소에서 발굴한 자료 등을 토대로 구체적인 사실을 풀어낸 것이 강점이다. 창업주 올레가 기존 나무 블록을 플라스틱으로 교체하면서 혁신을 이룬 과정이 대표적이다. 생산 체계를 바꾸는 비용이 회사 재정을 크게 위협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달려가서 미국제 성형기기의 시연회에 참석했고, “현기증 나게 비싼” 주형 기계를 덜컥 주문했다.1978년 출시돼 레고 역사를 다시 쓴 ‘미니 피규어’ 일화도 인상적이다. 이전엔 단지 ‘건물을 짓는’ 장난감이던 레고는 미니 피규어 출시 뒤 ‘무한한 역할극의 가능성’을 위한 장난감으로 도약했다. 이는 레고의 오랜 과제였던 여아들의 마음을 사는 데도 한몫했다. 레고는 “여자아이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사물에 인간성이 있어야 하고, 앉히고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분석을 토대로 인간형 미니 피규어를 출시했다고 한다.이 밖에 레고가 미국에 진출하며 협력자로 샘소나이트를 택한 결정은 패착이 됐지만, 20년 뒤 맥도널드와 손잡고 미국 시장을 개척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보수적인 경영진이 쌍수 들고 반대했던 ‘스타워즈’ 협업 상품이 결국 레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눈길을 끈다. 다양한 고난과 극복의 서사가 한 편의 소설과 같은 긴장감 있는 서술로 몰입도를 높였다.저자는 1년 반에 걸쳐 3대 회장 키엘과 인터뷰를 진행해 책에 실었다.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인한 장난감 수요 하락, 내부의 혁신 정체가 뒤얽힌 1970년대 초반 상황에 대해 키엘은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회장이던) 아버지의 기백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한순간에 속도를 늦추는 사람이 됐고, 더는 일을 키우고 싶지 않은 듯했습니다.” 인간적인 회고와 솔직한 고백으로 자칫 건조할 수 있는 기업 역사에 서사를 더했다.수많은 역경에도 살아남은 레고는 오늘날 ‘블록형 장난감’을 일컫는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레고가 그런 지위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키엘의 답변에서 엿볼 수 있다.“할아버지는 상황이 가장 나쁘고 해결이 불가능해 보일 때도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도요. 일종의 고집이 대대로 내려오는 겁니다. … 이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자 내가 책임지는 모든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신극운동을 일으킨 극작가 김우진(1897∼1926)의 친필 원고가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두덕이 시인의 환멸’ ‘이영녀’(사진) ‘난파’ ‘산돼지’ 등 김우진 희곡 친필 원고 4편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한다”고 12일 밝혔다. 일제강점기 전남 목포에서 주로 활동한 김우진은 우리나라 근대 희곡과 연극 평론을 발전시킨 선구자로 꼽힌다. 국가유산청은 이들 친필원고에 대해 “1910, 1920년대 일본 신파극이 지배하던 시기와 결별하고 서구 근대극을 주체적으로 수용한 작품들”이라며 “식민지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며 근대극의 새 시대를 열려고 했던 시대정신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경주 땅엔 ‘돌뼁이’(돌멩이 경상도 방언)가 있고 귀한 ‘돌멩님’도 계시는 기라. 쪼맨한 돌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으요.”(윤희구 반장) ‘천년고도’ 신라의 도읍 서라벌이 있던 땅, 경북 경주. 이곳엔 묻힌 유물과 유적을 호미와 꽃삽으로 캐내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이들이 있다. 경주 ‘쪽샘유적’의 작업반장 윤희구 씨(73)와 ‘동궁과 월지’ 작업반장 고현철 씨(70)도 그렇다. 2007년부터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소속으로 19년째 발굴 작업을 이어 왔다. 유물이 학예연구사 등의 손에 다다르려면 반드시 발굴 현장 종사자들의 삽질에 ‘걸려야’ 한다. 4일 두 사람을 만난 쪽샘유적은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이 잠든 집단 묘역이다. 총면적은 38만4000m²(약 11만6000평)로 축구장 면적의 약 53배. 지금까지 전투용 말이 착용한 갑옷 등이 출토됐다. 현장 종사자 17명을 통솔하는 윤 반장은 “천마총, 대릉원에 비하면 화려하진 않을 수 있다”면서도 “우리 조상이 실제로 쓴 물건이기에 더 특별하기도 하다. 2022년 발견했지만 본격 발굴 전이라 아직 매립 상태인 이형 탁잔(잔과 잔받침 한 벌로 된 그릇)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고 반장이 종사자 20명과 발굴하는 동궁과 월지는 신라시대 태자의 생활공간. 올 2월 경주문화유산연구소가 기존 월지(안압지)의 서쪽에 있다고 알려졌던 동궁(東宮)의 ‘진짜 위치’를 발표해 또 한번 주목받았다. 고 반장은 “일반 건물지엔 없는 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상치 않다 싶더니 동궁에 딸린 연못 터였다”고 회상했다. 이렇듯 ‘돌의 가치’를 파악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발굴터 ‘신입’은 자재를 나르는 것부터 시작해 호미질 등을 차례로 배우며 기초를 다진다. 고 반장은 “예컨대 무덤 둘레에 쌓은 호석(護石)이나 줄지어 놓인 석렬(石列)의 일부면 돌멩님이고, 따로 있거나 점토 아닌 모래만 묻었으면 그냥 돌”이라며 “수년간 경험해야 체득할 수 있다”고 했다. 작업반장은 전체 상황을 ‘매의 눈’으로 주시하기도 해야 한다. 현장에서 돌과 흙을 올바로 다루는지 살핀다. 윤 반장은 약 6년 전 한 종사자가 유물을 빼돌리려 했던 일화를 떠올렸다. “울타리 옆에 몰래 묻어뒀다가 퇴근하며 가져가는 게 폐쇄회로(CC)TV에 찍혔어요. ‘내일 돌려주면 신고 안 하겠다’ 했더니 슬쩍 갖다 놨더군요. 귀한 유물은 아닐지 몰라도, 이 땅에서 나온 건 전부 신라 것 아닙니까.” 고 반장은 “작은 것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며 ‘선각단화쌍조문금박’을 언급했다. 종이처럼 얇은 두께(0.04mm)의 금박에 꽃과 새가 세밀히 새겨진 8세기 유물이다. “돌돌 말린 채 볼품없이 발견됐습니다. 원래 연밭 자리였으니 관광객이 흘렸나 했죠. 그런데 20m 옆에서 비슷한 물건이 또 나왔어요. 연구관이 조심스레 펴보더니 ‘대단한 물건이니 보안 유지해 달라’고 하더군요. 기분이 어찌나 묘하던지….” 두 반장은 이날도 발굴 도중에 인터뷰에 응했다. 가만히 서있어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뙤약볕 날씨였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 파라솔 아래서 잠깐씩 더위 쫓으며 일하는 이들의 일당은 9만2000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인 걸 감안하면 최저시급이나 다름없다. 품삯이 쏠쏠한 건설 현장도 많은데, 이들이 오랜 세월 발굴터를 지킨 이유는 뭘까. 두 사람은 “돈 따지면 못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옛 어른들이 쓰던 물건을 내 손으로 캐내 후세에 남기는 일이잖아요. 그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일합니다. 윤 반장도 나도 경주 토박이 아닙니까. 신라 왕경이 어찌 생겼는지, 그 실체를 밝혀내는 게 염원이지요.”(고 반장)경주=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조선시대에 흰색은 ‘대공지정(大公至正)’한 색채로 여겨졌다. 지극히 공평하고 올바르다는 뜻으로, 이런 인식은 1392년 건국된 ‘새 나라’ 조선을 떠받친 유교 사상과 어우러졌다. 이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 아래 국가가 주도하여 도자 기술을 발전시킨 사회상과도 연결됐다. 조선 미술의 정수로 꼽히는 ‘조선백자’가 탄생한 배경이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1에서 10일 개막한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은 그간 조선 후기 미술에 비해 덜 주목받았던 전기 미술을 당시 시대상과 함께 집중 조명했다. ‘훈민정음’, ‘백자 상감 연꽃 넝쿨무늬 대접’ 등 국보 16건과 보물 63건을 포함해 15∼16세기 도자, 서화, 불교미술 작품 691건이 대거 전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전시에는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 5개국 24개 기관에서 대여한 작품 40건도 함께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만 23건이다. 양수미 미술부 학예연구관은 “혼란했던 고려 말기를 지나 새 나라가 세워지면서 미술에도 변화와 혁신이 있었다”며 “조선 후기에 비해 현존하는 작품 수가 적고, 주요 작품 상당수가 국외에 보관돼 있어 그동안 실물을 접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일본 기후현 사찰인 신초코쿠지(新長谷寺)에 소장된 ‘삼장보살도’는 일본과 우리나라를 통틀어 처음 관객을 만난다. 1550년 화승(畫僧) 성운(性云)이 떠도는 영혼을 위로하는 불교 의식에 사용하고자 세로 163cm, 가로 152cm 크기 삼베에 삼장보살(三藏菩薩)을 담았다. 김영희 학예연구사는 “완전하게 전해지는 조선 전기 삼장보살도 중 가장 오래됐다”며 “세 보살을 한 폭에 그리는 방식은 16세기 조선의 독특한 화풍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작품별로 투영된 당대 사회적 흐름을 읽어 보는 재미가 있다. 박물관에 따르면 1300도 고온에서 구워내 새하얗고 단단한 백자는 국가가 전국 장인과 물자를 엄격하게 관리했기에 균질하게 제작될 수 있었다. 왕실에서 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담던 ‘백자 태(胎)항아리’는 조선 왕조의 권위를 보여준다. 사대부들은 비단에 먹으로 그린 ‘산수도’ 등 수묵산수화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유교가 지배한 시대였지만, 당시 많은 이들을 위로했던 불교미술도 눈길을 끈다. 8월 31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국 관객의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미국 공연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박천휴 작가·42) 8일(현지 시간) 미 토니상 6관왕에 오른 K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박 작가가 평소 좋아하는 영국 록밴드 ‘블러’ 출신 데이먼 앨반의 곡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이 계기가 됐다. 어느 날 카페에서 음악을 듣던 그는 ‘우리는 늘 휴대전화 속에서 로봇으로 살아가지’란 가사를 듣고 번쩍 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곧장 친구인 작곡가 윌 애런슨(44)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국내 팬들에게 ‘윌&휴 콤비’라고 불리는 두 예술가의 ‘케미’가 이뤄낸 결과다. 한국에서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박 작가와 하버드대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애런슨 작곡가는 2008년 뉴욕대에서 처음 만났다. 고전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그들은 이후 18년 지기가 됐다. 본격적인 동업은 애런슨이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2012년) 작곡 제의를 받은 뒤 박 작가와의 협업을 추천하면서 시작됐다. 그 다음 작품이 2016년 서울에서 초연한 ‘어쩌면 해피엔딩’이었다. 이후 ‘일 테노레’(2023년) ‘고스트 베이커리’(2024년)도 연달아 호평을 받으며 ‘믿고 보는 콤비’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계에선 “출신 배경이 다른 두 사람의 긴밀한 앙상블이 양국의 감성을 모두 사로잡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박 작가는 수상 직후 “꿈꿔 왔던 것보다 훨씬 큰일이 벌어졌다”며 “특별한 비결은 없지만 여러 사람이 진심과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애런슨은 “너무 흥분해 한국어로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국 ‘헬퍼봇’, 미국 ‘반딧불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고 했다. 헬퍼봇과 반딧불이는 양국 ‘어쩌면 해피엔딩’ 팬덤을 부르는 애칭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블랙핑크 멤버 제니가 올해 3월에 발매한 솔로 1집 ‘루비(RUBY·사진)’가 미국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이 발표한 ‘2025년 최고의 앨범(The Best Albums of 2025 So Far)’에 K팝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5일(현지 시간) 롤링스톤에 따르면 2025년 최고의 앨범에는 ‘루비’ 등 66장의 앨범이 선정됐다. 레이디 가가의 7번째 정규 앨범 ‘메이헴(Mayhem)’을 비롯해 설리나 고메즈와 베니 블랑코의 ‘아이 세드 아이 러브 유 퍼스트(I Said I Love You First)’, 마일리 사이러스의 ‘섬싱 뷰티풀(Something Beautiful)’ 등이 이름을 올렸다. 롤링스톤은 제니의 ‘루비’에 대해 “2000년대와 2010년대 알앤드비(R&B) 중심의 팝을 지배했던 아이디어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했다”고 평가했다. 미 대중문화매체인 콤플렉스(Complex)도 ‘루비’를 ‘2025년 최고의 앨범’ 25장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콤플렉스는 “이 앨범은 제니에게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제니는 ‘루비’에서 다양한 음색을 마음껏 뽐냈다”고 평했다. 제니의 솔로 앨범 ‘루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서 영감을 얻은 앨범이다. 탄생과 사랑, 신념, 정점 등 주제를 담아 제니가 직접 프로듀싱을 맡았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북한이 제출한 금강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는 무려 668쪽이었어요. 무척 공들인 상차림이죠. (신청서를 보면) 금강산 산사(山寺)들의 가치를 입증하고자 한국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2018년)와 철저히 비교했어요. 유산 등재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난달 우리나라 울산 반구천 암각화와 북한 금강산이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로부터 ‘등재 권고’ 판단을 받으며, 다음 달 두 유산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으로선 ‘고구려 고분군’(2004년) ‘개성역사유적지구’(2013년)에 이은 3번째 세계유산이 된다. 5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지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정책팀장(43)은 이런 상황에 대해 “4월 백두산의 북한 쪽 땅이 북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돼 겹경사를 맞았다”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묘향산과 칠보산도 세계유산 등재를 노리는 등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일해온 김 팀장은 지난해 3월 국제 학술지에 논문 ‘김정은 정권 아래 북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련 유산법 및 정책 변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 팀장은 한국위원회와 무관한 연구자의 시각이란 점을 강조하며 “북한이 과거와 달리 국제사회에 참여해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의지가 최근 분명해졌다”고 했다.실제로 다음 달 금강산이 등재되면 2012년 김정은 집권 이전 4건뿐이던 북한 유네스코 유산은 16건으로 늘어난다. 문화유산에 대한 북한 정책이 바뀌었단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94년 제정된 북한 ‘문화유물보호법’은 2012년 무형유산을 포괄하는 ‘문화유산보호법’으로 개정됐다. 2015년 다시 ‘민족유산보호법’으로 바뀌며 자연유산도 포함시켰고, ‘세계유산’이란 표현도 명시했다. 김 팀장은 “북한이 법률에 명확한 조문을 마련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모을 기반을 다졌다고 본다”고 했다. 특히 북한은 최근 자연유산 등재에 적극 힘을 쏟고 있는 분위기. 등재 시 ‘외화벌이’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관광산업은 드물게 대북 제재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다. 큰돈 들이지 않고 가진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게 자연 관광”이라며 “북한은 2018년 법안에 ‘민족유산 보호사업에 대한 투자 원칙’을 추가해 적극 발전시킬 의지를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달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 개장 등 북한이 외국인 대상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려는 기조와도 연결된다. 김 팀장은 “북한은 세계유산 등재가 민족적 자부심을 고양하는 동시에 돈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고 봤다. 올해 함께 유네스코 유산이 될 백두산과 금강산은 북한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영산들. 그런데 백두산보다 금강산을 먼저 세계유산 등재 신청한 이유는 뭘까. 김 팀장은 백두산을 두고 벌어진 중국과 북한의 ‘신경전’을 하나의 이유로 꼽았다. “중국 영토가 4분의 3인 백두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면 양국이 손잡고 ‘초국경유산’으로 신청한 뒤 추후 보존·관리도 함께 해야 해요.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자국 중심적인 역사문화적 해석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백두산은 ‘창바이산(長白山)’으로 지난해 3월 세계지질공원에 별도 등재돼 있다. 다만 문화유산의 보존·관리를 위해 국제사회와 얼마나 협력할지는 미지수다. 김 팀장은 “북한은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으로 ‘씨름’을 우리나라와 공동 등재했지만 그 뒤 연락이 끊겼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상황에 따른 한계도 명확하다는 지적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12년 만에 ‘세종조 회례연(會禮宴)’을 재현하는 무대가 펼쳐졌다. 회례연이란 정월 초하루에 왕과 신하가 모여 정과 뜻을 나눴던 잔치를 일컫는다. 국립국악원은 올해부터 법정기념일이 된 ‘국악의 날’(6월 5일)을 맞아 2013년 이후 처음으로 경복궁에서 세종조 회례연을 다시 선보였다(사진). 세종대왕은 예와 악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유교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음악 제도를 정비하고 악보와 악기도 새로 만들었다. 1433년 회례연은 아악과 당악, 정재와 일무 등 다채로운 궁중 악무를 아우르는 그간의 성과를 집약해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국악의 날은 국악진흥법에 따라 해마다 6월 5일로 지정됐다. 세종이 지은 악곡 ‘여민락(與民樂)’이 처음 기록된 날짜(음력 1447년 6월 5일)를 따랐다. 국악원은 이에 맞춰 이달 15일까지를 ‘국악주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블랙핑크 멤버 제니가 올해 3월에 발매한 솔로 1집 ‘루비’(RUBY)가 미국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이 발표한 ‘2025년 최고의 앨범(The Best Albums of 2025 So Far)’에 K팝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5일(현지 시간) 롤링스톤에 따르면 2025년 최고의 앨범에는 ‘루비’ 등 66장의 앨범이 선정됐다. 레이디 가가의 7번째 정규 앨범 ‘메이헴’(Mayhem)을 비롯해 셀레나 고메즈와 베니 블랑코의 ‘아이 세드 아이 러브 유 퍼스트’(I Said I Love You First)’, 마일리 사이러스의 ‘썸띵 뷰티풀’(Something Beautiful) 등이 이름을 올렸다. 롤링스톤은 제니의 ‘루비’에 대해 “2000년대와 2010년대 알앤비(R&B) 중심의 팝을 지배했던 아이디어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했다”고 평가했다. 미 대중문화매체인 콤플렉스(Complex)도 ‘루비’를 2025년 최고의 앨범’ 25장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콤플렉스는 “이 앨범은 제니에게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제니는 ‘루비’에서 다양한 음색을 마음껏 뽐냈다”고 평했다. 제니의 솔로앨범 ‘루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서 영감을 받은 앨범이다. 탄생과 사랑, 신념, 정점 등 주제를 담아 제니가 직접 프로듀싱을 맡았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과거 북아메리카 선주민 부족들로 이뤄진 ‘이로쿼이 연맹’은 ‘한 접시와 한 숟가락 조약’ 협정을 맺었다고 한다. 부족들은 일부 비옥한 땅을 ‘한 접시’에 빗댔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먹거리와 생필품은 자연의 선물로 간주했다. 그리고 각자 공평하게 나누자는 뜻에서 ‘한 숟가락’이라는 표현을 썼다. 책은 선주민의 생활방식과 자연의 섭리를 기준으로 볼 때 오늘날 사회는 “풍요 대신 결핍, 공유 아닌 축적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선 한정된 재화를 ‘지불’만으로 차지할 수 있기에 결핍된 이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환경생물학을 가르치는 아메리카 선주민 출신 교수다. 대안으로는 ‘선물 경제(gift economy)’를 제시한다. 직접적 보상이 명시되지 않은 채 재화와 서비스가 순환하는 교환 체제를 일컫는다. 선물 경제에서는 ‘관계’가 화폐의 역할을 한다. 호혜성과 상호의존에 바탕을 뒀기에 순환하고 공유된다. 자연 재해같은 위기에서도 연민에 기반한 선물 행위는 시장 경제보다 우위에 선다고 본다. 자본주의 틀 안에서 선물 경제의 요소를 도입한 사례로 북유럽을 든다. 책은 미국 경제는 약자에 대한 ‘멱따기(cutthroat) 자본주의’, 북유럽 경제는 ‘보듬는(cuddly) 자본주의’라고 본다. “북유럽은 공공의 선(善)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율이 미국보다 훨씬 높지만 행복지수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는 주장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