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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가상 대사관을 공격하고 미군 무인기를 나포한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구상됐거나 현실화된 이란의 해킹 실력이다. 이란은 숨은 정보기술(IT) 강국이다. IT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한국이나 인도 등으로 유학을 다녀와 선진기술을 접목시키는 주역으로 자라나고 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란 정부 차원의 인터넷과 전화 통제는 일상이나 다름없다. 시민들은 이런 불편함이 새삼스럽지 않다. “도청이 정말 보편적으로 이뤄지나?”는 기자의 질문에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모르긴 몰라도 당신도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총선 기간이었던 2월에서 3월 초는 더욱 심했다. 야권 및 개혁 세력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 지난달 9일부터 최장 72시간 동안 인터넷을 통제하기도 했다. 구글과 핫메일, 야후 등 외국 e메일 계정을 통한 메시지 전송이 차단됐다. 레자 아밀자데 씨(39)는 “전산 통제로 인해 최근 들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나 은행에서 돈 찾는 게 더 어려워졌다. 이전에는 그래도 60% 정도 운영되던 것들이 지금은 20%도 안 되는 듯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야권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 정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차단했다. 실제로 기자가 체류하는 3일 동안 페이스북에 접속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블로킹을 당했다는 메시지만 PC 화면을 채울 뿐이었다. 트위터와 유튜브도 마찬가지였다.테헤란=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란은 북한처럼 굶어죽지도 물자가 부족하지도 않다. 코카콜라도 언제든 마실 수 있고, 말버러 라이트도 언제든 구할 수 있다. 제재 같은 건 두렵지 않다.”이란 테헤란 시내 바자르 시장에서 만난 파히멘 씨(45·여)는 ‘서방의 제재와 이스라엘의 공습 위협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제재로 인한 고통을 묻는 기자에게 “제재가 뭔가요”라고 묻는 시민도 있었다.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둘러싼 중동의 화약고가 점차 가열되고 있다. 서방은 이란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고 이스라엘은 무력 공습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란은 공습을 당하면 세계 석유 운반선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맞선다. 전운(戰雲)이 고조되는 가운데 서방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이란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이란 곳곳을 동아일보가 돌아봤다. 기자가 테헤란에 도착한 4일은 이틀 전 치러진 총선의 윤곽이 드러난 때였다. 번화가로 알려진 도심 엥겔라브(혁명) 거리는 한산했다. 종교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간의 ‘보-보 대결’(보수파 내의 미묘한 노선 차이)로 치러진 총선에서 강경파인 하메네이 측이 압승을 거둬 서방과의 대립 격화가 예상되지만 시민들은 선거 결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한가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는 취업을 걱정하는 대학생들이 전공 서적을 고르기 위해 서점을 찾았고, 조금 깊숙한 골목에는 서민들이 주식으로 먹는 큼지막한 빵인 ‘난’을 팔에 끼고 가는 한가로운 모습도 보였다. “쇼마 치니?(당신은 중국인입니까?)” 갓 들여온 과일을 진열하던 노점상 주인은 어설프게 히잡을 둘러쓴 기자를 보고 이렇게 물으며 오렌지 하나를 건넸다. 이처럼 평온한 겉모습 속에서도 이스라엘의 공습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면 일반 시민이나 지식인, 관료 모두 굳은 결의를 감추지 않았다. 이스라엘 고위층들이 “단독으로라도 이란을 선제공격하겠다”고 강경 발언을 잇달아 내놓는 데 대해 테헤란 시민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은 불가능하다. 공격을 해온다 해도 이란은 충분히 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슬람 교육라디오방송국에서 일하는 알리 아스가르 바라티 씨(38)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맞붙는다면 그건 개미와 코끼리의 싸움이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물론 여기서 코끼리는 이란을 가리킨다. 엥겔라브 광장에서 만난 호세인 씨(63)는 “우리는 하메네이의 오랜 경험과 지혜를 믿고 따른다. 지도층이 잘 해결해 낼 것”이라며 강한 신뢰를 내비쳤다. 이란의 자신감은 이슬람혁명 이듬해인 1980년 시작된 이란-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지원한 이라크에 8년간이나 꿋꿋이 맞선 데 따른 자부심이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반감도 높았다. 대로변 건물 외벽에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을 그려 놓고 빨간 글씨로 ‘테러리스트’라고 낙인을 찍은 포스터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서방의 제재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현지 신문인 ‘이란뉴스’는 “이란에 대한 제재는 효과적이지 않다. 오히려 서방이 이란 제재로 고통 받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자문위원인 알리 아크바르 자반페크르 씨는 “이란을 움직이려면 제재를 가할 것이 아니라 이 정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 당국자나 상당수 시민의 ‘제재 무효과론’을 반영하듯 시장에는 저렴한 가격의 과자와 음료가 넘쳐나고 한국산 제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테헤란 외곽의 콤 시로 가던 중 들렀던 한 휴게소는 규모는 작지만 초코파이 종류만 3가지였고 냉장고에는 한국 해태의 과일 주스가 꽉 채워져 있었다.하지만 이란혁명과 이란-이라크전쟁 등 오랜 투쟁을 겪어온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층에선 이란의 ‘줄타기 외교정책’을 불안해하는 반응이 없지 않았다. 일자리 부족과 부패한 권력에 대한 분노와 회의가 정부의 대결정책 때문에 평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대학 입시를 앞둔 니모 군(18)은 “사실 진짜로 전쟁이 날까 봐 겁이 난다”며 “전쟁이 터지면 우리는 모두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데 지금처럼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세관 직원인 시아막 씨(40)는 지난해부터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제재의 영향으로 세관 통관 물품이 감소해 일거리가 줄면서 수입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도 테헤란에서 4년제 대학을 나와 한때 정유시설 엔지니어로 일했으나 수년 전부터 ‘백수’가 됐다. 테헤란대 앞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바르브아일 씨(42)는 “핵 갈등을 외교적으로 풀어야지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걱정했다.현지 신문이 게재한 한 장의 만화는 핵개발 갈등으로 받은 제재 때문에 늘어나는 서민들의 고통과 대결 외교를 펴는 정부에 대한 비판, 하지만 왜 반미(反美)의식이 높아지는지 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미국이 발등을 밟자 이란 당국자는 “아야” 하고 가벼운 아픔을 나타내지만 이란 당국자의 구둣발 아래 눌린 서민들은 “우리가 무슨 죄냐”고 하소연하는 장면이다. 이란 정부가 강경 대응 의지를 밝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외교적 해결을 위한 제스처를 멈추지 않는 것도 제재 장기화에 따라 국민이 느끼는 불안과 서민들이 받을 주름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란의 전력은 이스라엘에 비해 월등히 앞선다.” 6일 이란 테헤란의 정부 청사에서 만난 외교부 산하 국제관계대학원의 모하마드 하산 모자파리 교수(사진)는 이스라엘 국방장관 등이 “시간이 다 됐다”며 무력 공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것에 대해 이렇게 반응했다. 이란의 핵개발 의혹에 대해 미국 등 서방이 한목소리로 반대하며 제재에 나서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시각의 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국책 대학원의 교수인 그는 다소 애매하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란 정부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파도를 타고 수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파도를 거슬러 헤엄치는 사람이 있다. 미국과 이란이 그렇다. 파도를 거스르는 사람은 더 많은 힘과 근육이 필요하듯이 이란의 상황이 힘겹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는 것이 ‘파도를 거스르는 행동’처럼 국제사회의 기대와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그는 “이란은 도덕 군사 경제 정치 등 모든 방면에서 미국에 비해 잃을 게 없기에 미국이 먼저 공격을 해온다 해도 견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방의 이란에 대한 제재가 효과가 없을 것이며 이란의 핵 프로젝트는 평화적인 이용을 위한 것이라는 이란 정부의 공식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란 정부가 시리아의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데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이란은 미국과 달리 아랍의 봄 지역의 그 어떤 이해관계에도 관심이 없다”며 “우리는 도덕적으로 묵묵히 도와줄 뿐”이라고 말했다. 이란 제재에 한국이 일부 동참하는 것에 대해 “미국과 안보 문제로 결속돼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한국도 이란처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파워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테헤란=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서방의 이란 제재가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 주었다.” 4일(현지 시간) 이란 일간지 ‘이란 뉴스’는 2일 치러진 총선 초반 집계에서 종교 지도자이자 보수 강경파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들이 대거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4일 테헤란 시내는 막 큰 선거를 끝낸 수도라기에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만난 시민들은 아직 선거 결과가 미칠 파장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우리의 ‘테헤란로’처럼 서울을 붙인 ‘서울공원’에서 만난 알리 씨(20·대학생)는 “하고 싶어서 투표를 한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취업할 때 불이익이 있을까 봐 했다. 대부분의 대학생은 누가 되느냐에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과일노점을 운영하는 이스마일리 씨(52)는 “투표율이 64.5%라고 하지만 믿기 힘들다”고 했다. 당국이 부정투표를 자행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주민들은 “테헤란 내 카라치 구역의 한 후보가 못사는 사람들에게 투표를 안 한 사람의 신분증을 빌려주면 1인당 20만∼50만 리알(4만5350원)씩 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3444명이 출마해 290명을 뽑는 이번 총선의 초기 개표 결과 4일까지 당선이 확정된 197명 중 102명이 친(親)하메네이, 반(反)아마디네자드 인사다. 테헤란에서 동남쪽으로 60km 떨어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고향 가름사르에서 출마한 그의 여동생 파르빈도 낙선했다고 반관영 메흐르통신이 전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빈민촌 가름사르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직후 가족과 함께 테헤란으로 이주했다. 이란 내무부는 잠정 집계 결과 이번 총선 투표율이 64.2%로 2009년의 51.0%보다 크게 높아졌으며 하메네이 지지 정당과 후보의 득표율은 75%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서방에 대해 강경 노선을 펴온 하메네이 세력이 승리를 거두면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큰 타격을 받는 등 내부 정국 변화는 물론이고 서방과의 ‘핵개발 제재 국면’에도 긴장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신정 정치’로 정치에 대해 종교가 우위인 이란에서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 종교 지도자인 하메네이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두 사람 간의 대결 양상으로 바뀐 것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하메네이의 일부 각료 인사나 강경 핵정책에 반대하며 지난해 중반 이후 ‘도전’하는 모양새를 띠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AP통신은 이번 선거가 하메네이에게 비판적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국민투표의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총선 투표 마감(오후 5시)을 네 차례나 연장해 오후 11시까지 늘려가며 투표를 독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테헤란의 정치분석가 다부드 헤르미다스바반드 씨는 “이번 총선은 이란 정치에서 아마디네자드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8일 의회에 출석해 경제운용 실패에 대해 추궁당한다. AP통신은 “반아마디네자드 세력이 새 의회를 장악해 이란 핵정책은 더욱 대담하게 나갈 수 있게 됐다. 내년 대선에서도 친하메네이 인물들이 당선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하메네이 등 강경 보수파가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등 서방에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소지가 많아진 것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란의 총선 결과는 ‘치명적 선택’이 될 수 있다”며 대결 격화를 우려했다. 하메네이는 2일 “미국과 동맹국은 이란의 핵개발 야망이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감한 시기’로 넘어가고 있다”며 서방과의 대립을 강조하며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다. 이번 총선은 부정선거 의혹이 일었던 2009년 대통령선거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후 첫 전국 규모 선거다. 이런 가운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5일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한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반대에도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 무력공격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어 어떤 논의가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뉴욕타임스는 3일 미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이스라엘계 인사들이 오바마 행정부에 이란 핵문제에 대해 강경 대응하라는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테헤란=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4일 이란의 농축 우라늄 생산량 증가와 핵 프로그램의 군사적 전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이란이 110kg가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했고 이 양의 절반 이하로 핵탄두를 제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나탄즈 인근의 우라늄 농축시설에서 170개의 원심분리기가 들어 있는 장치가 운영되고 있고, 포르도 지하 벙커시설에서 원심분리기 696개가 20%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다고 IAEA는 전했다. 이는 IAEA가 지난해 11월 보고서를 통해 “이란이 핵탄두에 우라늄을 활용하고 있으며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얻기 위한 노력이 이뤄졌다”고 밝힌 내용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은 이란의 핵개발이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했으며 이란 지도부가 핵탄두 제조 프로그램을 본격화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IAEA의 판단은 물론이고 이란 제재조치를 앞장서 시행하고 있는 미 정부의 태도와도 다소 배치되는 것이다. 미 정보기관은 기존에도 이란이 군사적 목적의 핵개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이번 평가는 2007년 정보기관들의 이란 핵개발 평가모임에서 내린 결론과도 일치하며, 2010년 열린 국가정보평가회의에서 재확인한 결론과도 달라진 게 없다. 물론 이란이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핵보유국이 되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일부 구축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미국이나 이스라엘, 유럽의 국가정보기관들 간에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미 정보기관들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수준 및 의도에 대한 판단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학습효과 때문이다. 2002년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이라크전쟁의 명분을 내걸었지만 결과적으로 정보가 잘못됐던 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 이스라엘과 유럽은 미 정보기관의 신중론에 대해 “이란은 핵개발에 있어 가장 큰 고비이자 어려운 단계인 농축우라늄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란 핵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판단이 혼선을 빚을수록 그로 인한 부담은 지구촌 곳곳에서 떠안아야 한다. 석유수급 불안정에 따른 유가 급등 등 파급효과가 세계인의 일상으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란 핵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신나리 국제부 journari@donga.com}

지난해 아랍의 봄 당시 예견됐던 중동에서의 미국 영향력 약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국방비 감축까지 겹치며 미국이 중동에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과 시리아의 유혈 사태에 실효성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를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목표로 했던 이란의 핵 포기는커녕 외교적 고립마저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이고 이란으로부터 자국 원유 수요량의 12%를 들여오는 인도도 이란에 대한 금융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동맹인 파키스탄과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가스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 덕분에 이란은 이들 국가로부터 생필품과 식료품을 공급받으며 버티고 있다. 시리아에 대해서도 미국은 별다른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 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차원의 군사 개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지만 미국 정부는 아직까지 무력 개입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리비아 내전과 비교했을 때, 시리아는 정부군의 조직력과 무기 성능이 뛰어나며, 인구 밀도가 높아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의 든든한 우방이었던 이집트마저 미국 정부의 호소를 무시하고 미국인들을 자국 법정에 세워 미국의 체면을 구겨버렸다. 이집트는 미국인 19명을 포함한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43명의 공판을 26일 시작하기로 했다. 이들은 이집트 정부 허가 없이 국제기구 지사를 설립하고 불법적으로 외국 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으로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후 미국과 이집트의 30년 동맹이 흔들릴 위기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를 30년 동안 지켰던 심복 만수르 이드하우(56·사진)가 17일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가 최후를 맞기 전 수주간의 비화를 공개했다. 이드하우는 “(반정부 세력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카다피에게는 의사결정권이 없었고 무타심이나 사이프 알이슬람, 카미스 등 아들들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카다피 가족을 지키는 보안군에 대해서는 “카다피에 대한 충성심만 있을 뿐, 고도로 훈련받지 못하고 경험도 없는 자원봉사자들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카다피가 도주하다 사살된 날) 당초는 나토군의 눈을 피해 오전 4시쯤 도망가려 했지만 당시 보안군 일부는 잠들어 있었고, 어떤 이들은 차를 만들어 마시고 있었다”며 “채비를 마치고 조직을 정비하고 나니 오전 8시가 됐다”고 회상했다. 카다피는 고향 수르트에 숨어 지낼 때 친분이 있던 유럽의 전현직 국가원수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화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드하우는 “카다피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를 진심어린 친구로 여겼지만 그들이 그를 위해 뾰족한 해결책을 찾는 데 협조하지 않자 매우 실망했다”고 밝혔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유엔 평화유지군이 시리아 유혈 사태를 해결할 돌파구가 될 것인가.아랍연맹(AL)은 12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연 뒤 “유엔과 AL 합동 평화유지군을 시리아에 파병해 줄 것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요청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AL이 아랍국 문제 해결을 위해 외부 세력의 개입을 요청한 것은 지난해 3월 유엔 안보리에 리비아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한 것에 이어 두 번째다. AL이 유엔 안보리의 시리아 제재안이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자 평화유지군이라는 우회 카드를 뽑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평화유지군 카드가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13일 “시리아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려면 이를 받아들이는 쪽(시리아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시리아 정부는 “평화유지군 파병에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시리아 내의 특수상황도 걸림돌이다. 서방의 군사작전이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극심한 종파 갈등을 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12일 국제사회가 반군 지원사격에 나서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민간인 공습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또 시리아 반군 쪽으로 무기 유입이 늘어나게 될 경우 리비아식의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카타르 브루킹스연구소 도하센터 살만 샤이크 소장은 13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계속되는 혼란은 결국 알카에다 같은 극단주의자들에게 시리아 뒷문을 열어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조지프 리버먼 미국 상원 국토안보위원장은 12일 CNN에 출연해 “의료 지원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그 다음에는 시리아 반군에게 훈련과 통신 장비를 제공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무기를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명령을 내리면 움직일 수 있는 계획을 펜타곤(국방부)이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제이컵 루 백악관 비서실장도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알아사드 체제의 종식을 위해 미국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며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지 시간문제다”라고 말했다.한편 4일부터 계속된 시리아 정부군의 공격으로 반군의 거점인 홈스에서만 최소 500명이 숨졌다고 12일 아랍 위성방송 알아라비야가 전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성지순례를 하다 베두인 무장세력에게 납치됐던 한국인 3명이 29시간여 만에 무사히 풀려났다. 10일 오후 4시 반경(현지 시간) 베두인족 무장 세력에게 납치된 이민성 목사(53)와 장로 이정달 씨(62), 현지 한국인 가이드 모종문 씨(59·여)와 이집트인 여행사 직원 등 4명은 11일 오후 9시 40분경 다른 일행들이 머무르는 현지 캐서린플라자호텔로 돌아왔다. 흰색 지프를 타고 건강한 모습으로 숙소에 도착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폭행을 당하지 않았고 납치범들이 잘 대해줬다”면서 “모두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고 말했다.모 씨는 “(납치범들한테서) 구타를 당하거나 욕설을 듣지 않았다”며 “그들은 이집트 정부와 싸운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한테) 미안하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피랍 직후 시나이 반도 주지사와 현지 경찰 책임자는 베두인 족장의 중재로 납치범들과 석방 협상을 진행했다. 납치범들은 한국인들을 풀어주는 대가로 최근 시나이 반도 은행 무장 강도 혐의로 체포된 동료 살렘 고마 우다(29)의 석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당국이 납치범들의 요구를 수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이에 앞서 이들은 시나이산 인근 유적인 성 캐서린 수도원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서 무장 세력에게 납치됐다. 이집트 경찰에 따르면 성지 순례객을 태우고 버스 3대가 이동하던 중 일부 탑승자가 용변이 급해 1대가 정차했다. 용변을 마친 승객들이 다시 차량에 올라타는 순간 잠복해 있던 소총을 든 베두인족 10여 명이 탄 트럭 두 대가 버스 앞을 가로막으면서 탑승객들에게 버스에서 내리라고 요구했다.외교통상부의 브리핑에 따르면 당시 아무도 버스에서 내리려 하지 않자 무장 부족이 일부 탑승객의 멱살을 잡고 살짝 때리기도 하다가 결국 앞쪽에 탄 가이드 모 씨를 비롯한 한국인 3명과 이집트 현지 직원을 데리고 부족 마을의 한 숙소로 갔다. 부족민은 납치한 한국인과 투옥된 동료의 맞교환을 원했다. 시나이 주지사와 경찰청장의 지휘하에 베두인 족장이 중재하는 협상이 이뤄졌다.피랍자들은 부족민의 거처로 옮겨져 음식을 대접받았으며 그들로부터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납치세력은 특별히 한국 정부에 요구한 사항도 없었다. 협상이 끝난 뒤 이 씨 등 3명은 11일 오후 8시경 부족 마을에서 석방됐다. 이들은 일행과 합류한 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다음 여정인 이스라엘 타바 국경을 넘어 떠났다. 한편 피랍자들과 동행했던 여행객들은 여행지역의 위험성에 대해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 여행객은 “위험지역인 줄 몰랐다. 이집트 현 상황에 대해 염려는 했지만 최근 미국인 등이 납치됐다는 소식을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31일자로 여행자제 경보(2단계)가 홈페이지에 올라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시나이 반도는 이번 사건의 여파로 여행객과 순례객의 발길이 끊긴 상태다. 하지만 시나이산은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것으로 성경에 기록된 곳으로 한국인 순례객들이 좀처럼 줄지 않을 것으로 보여 우려를 낳고 있다. 시나이반도는 지난해 2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 이후 소요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동영상=석해균 선장, “해적들 용서하고 싶다”}

“그들은 음식을 대접했으며 ‘미안하다’고 했다.”10일 오후 이집트 시나이 반도 순례 중 베두인 무장 세력에 납치됐다 풀려난 한국 관광객들은 납치범들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지난주 초 피랍됐던 중국인 노동자 25명과 미국인 관광객 2명도 차와 음식을 대접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전통적으로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 것을 의무로 삼을 만큼 선량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베두인족이 왜 외국인을 납치하는 ‘사막의 범죄자’로 전락한 것일까.외신에 따르면 시나이 반도에 흩어져 사는 베두인족은 대부분 극빈층으로 이집트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다. 최근 관광객 납치가 빈번해지고 가스 송유관 파괴, 경찰 습격 등이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피랍됐던 현지 가이드 모종문 씨는 “납치했던 이들이 ‘우리는 이집트 정부와 싸우고 있다. 그래서 (납치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고 밝혔다.시나이 반도는 이집트의 최고 수익 관광지로 꼽힌다. 이곳의 베두인족이 TV나 휴대전화 등 현대문명을 접하게 된 것도 이곳을 오가는 순례객과 여행객들 덕분이다. 문제는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차별이다.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시나이 반도는 1979년 평화협정 때 이집트로 반환됐다. 그 뒤로 베두인족은 이집트 정부에 의해 ‘이스라엘과 협력했던 자’라는 억울한 딱지가 붙어 불신의 아이콘이 됐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철권통치 30년간 베두인족은 자신의 소유로 된 농지를 등록할 수 없었으며 정당 결성도 할 수 없었다. 시나이 반도가 최고의 관광지이자 광물자원이 풍부한 지역임에도 고용주들은 베두인족을 채용하지 않는 등 구조적으로 차별하고 있다.그러나 지난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한 후로 이집트 국내 상황이 혼란에 빠지면서 수도로 경찰 병력이 집중되자 치안이 약해진 틈을 타 베두인족은 세력을 키워 왔다. 베두인족은 관광객들을 납치했다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피랍자들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당국을 옥죄고 있다. 이는 관광이 국가 최대 산업이자 주요 수입원인 이집트 정부로서는 여행객의 발길이 줄어들수록 난처한 상황이 된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아랍어로 ‘바다위(Badawi)’, 즉 ‘사막에 사는 자들’이라는 어원을 가진 베두인족은 주로 아라비아 반도와 이스라엘의 네게브 지방, 이집트 시나이 반도 등 반건조 사막지대에서 생활해 왔다. 이들은 보통 흘러내릴 듯한 하얀 디슈다샤(전통 복장) 차림으로 모래를 걷는, 부유하고 선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부족이다. ‘낙타를 몰고 오아시스를 찾아다니는 우아한 부족’이라는 별칭도 따라다닌다. 이들은 유목생활을 하면서 텐트에 항시 손님이 2, 3일 편히 묵고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둔다. 따라서 피랍자들이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닌 것.선조 대대로 유목생활을 해 왔던 베두인족은 1950년대부터 상당수가 아시아 중서부로 이동해 정착하기 시작했다. 당시 시나이 반도에 있던 사람들은 카이로 중앙정부의 유화정책으로 땅을 경작하고 사업을 확장하면서 정착을 시작했다. 자녀들은 카이로나 알렉산드리아 등 대도시 학교로 보내져 도시인이 됐다. 이제는 낙타 대신 도요타 트럭이 물을 길어 온다. 몇몇 베두인족이 고립을 자처하며 전통 생활풍습을 고수하고 있지만 대개는 현대 문물에 젖은 지 오래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세계 최고의 휴양지이자 우리나라에서도 신혼여행지로 인기 있는 몰디브에서 최초로 민주선거에 의해 당선된 모하메드 나시드 대통령(45·사진)이 시위에 밀려 물러났다. 7일 나시드 대통령은 국영TV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철권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지금 상황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은 내가 물러나는 것”이라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어 “그 어떤 몰디브 국민들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계속 권력을 갖고 있음으로써 문제를 더욱 키울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2008년 첫 민주선거에서 30년 장기 독재를 한 마우문 압둘 가윰 전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지만 집권 이후 부패 문제가 불거졌고 지난해에는 환율 조정으로 물가가 급상승하면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하야의 계기가 된 결정적 시위는 지난달 형사법원의 수석재판관 압둘라 모하메드의 체포. 나시드 대통령은 모하메드 판사가 가윰 전 대통령 측에 정치적으로 치우쳐 있고 직권을 남용한 혐의가 있다며 체포를 명령했고 이후 항의 시위가 3주 넘게 이어졌다. 시위에는 경찰과 일부 군인들까지 가담했다. 로이터통신은 “시위 주도 세력은 급진적인 가윰 지지자들로 나시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 줄곧 정치적으로 위협을 가해왔다”고 전했다. 전직 인권·환경운동가였던 나시드 대통령은 영국 유학을 한 언론인으로, 장기독재를 비판하는 글을 써 14번이나 투옥되는 등 반체제 인사로 이름을 날렸다. 2009년 10월에는 잠수장비를 갖추고 바다에 뛰어들어 세계 최초의 해저 내각회의를 여는 등 국제사회에 기후변화 위험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인권상인 안나린드상을 수상하고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2010 존경받는 지도자 10인’에 선정되는 등 국내외로 명성을 떨쳤다. 현재 인구 30만 명인 몰디브에 체류하는 관광객만 90만여 명. 관광객들이 머무는 리조트는 여러 섬에 분산돼 있어 수도 말레와는 떨어져 있으며 300명가량의 한국인 관광객도 피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현지 한국 영사협력원이 전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시리아의 양민학살을 멈출 수 있는 대안을 찾아라.”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차원의 결의안 채택에 실패한 국제사회가 시리아 사태를 해결할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서방국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이슈 해결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고수해 해결책 마련을 무산시킨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북한의 핵개발을 포기시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구멍이 생기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국제사회는 무기력하게 주저앉곤 했다. 하지만 이번 시리아 사태에 임하는 서방국가들의 태도는 다르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선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양민학살을 더는 방관해선 안 된다는 서방국들의 의지가 강해 새로운 대안 모델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보장이사회가 무력한 모습을 보였기에 이젠 유엔의 테두리를 벗어나 시리아를 돕기 위해 두 배로 노력해야 한다”며 국제적 연대 결성에 불을 지폈다. 기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교장관은 “‘국제연락그룹’을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프랑스도 시리아 반정부 세력을 돕기 위한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일부에선 ‘코소보 모델’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1999년 3월 중순∼6월 초 유고연방이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 주민을 상대로 ‘인종 청소’를 자행하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수차례 경고한 후 유고연방을 공습한 것처럼 시리아 사태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시 공습 초기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3차 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며 유엔 안보리를 거치지 않고 공습을 가한 나토를 비난했다. 또 공습 이후 더 심한 학살을 자행하는 유고연방을 묵인해 줬다. 하지만 결국 학살을 자행하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정권은 몰락했다. 시리아 반체제 인사로 구성된 시리아국가위원회(SNC)는 5일 웹사이트에 ‘코소보 전쟁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SNC는 “당시 러시아 외교장관은 ‘세르비아(유고)에 대한 공격이 발칸의 베트남전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국 결과(사태 해결)가 수단(안보리의 결의를 거치지 않은 나토의 공습)을 정당화시켰다”고 주장했다. 터키로 망명한 시리아 장군 무스타파 알셰이크도 5일 “러시아 거부권 행사와는 별개로 우리는 코소보 사태 때처럼 조속한 국제사회의 개입을 원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6일 시리아 주재 미국대사관을 폐쇄하고 직원 철수에 들어갔지만 군사 개입에 대해선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6일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외부의 군사개입 없이 시리아 사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난해 미국과 동맹국이 리비아에서 취했던 것과 같은 군사행동이 아무 상황에서나 허용되는 게 아니다. 협상을 통한 해법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러시아와 중국은 바샤르 알아사드에게 ‘학살 면허’를 내줬다.” 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시리아 결의안 표결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채택이 무산되자 시리아 반체제 인사로 구성된 시리아국가위원회는 5일 성명을 통해 이같이 비판했다. 유럽과 아랍연맹이 주도해 만든 시리아 결의안은 15개 이사국 중 13개국이 찬성했지만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표를 던지는 바람에 채택되지 못했다. 그나마 이날 표결에 부친 안은 기존에 서방과 아랍 국가들이 제출했던 초안보다 훨씬 완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초안에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아랍연맹의 평화안대로 권력을 이양할 것을 요구하는 조항이 있었지만 러시아가 “알아사드 퇴진 요구는 시리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 기회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반발해 이 조항이 빠졌다. 그런데도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이번 결의안이 균형적이지 못하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결의안이 시리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며 “정부의 폭력 행위만을 제재하는 것은 시리아 사태 당사자들에게 공정하지 못한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리바오둥 유엔 주재 중국 대사도 “오히려 정부와 반정부 세력 간 대화를 저해하고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두 나라 때문에 현재 지구촌의 가장 시급한 현안 해결이 늦어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해 “이번 표결은 정말 역겹기 짝이 없다”며 거칠게 항의했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교장관은 “지난해 10월 두 나라가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2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얼마나 더 많은 시리아인이 피를 흘려야 결의안을 채택할 것이냐”고 말했다고 가디언은 5일 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 각국 정상도 ‘학살’ 수준에 다다른 시리아의 시위 진압을 막아야 한다며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를 규탄했다. 뉴욕타임스는 “내전으로 치달은 시리아 사태가 더욱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하며 “시리아 사태는 아랍혁명 중에서도 피를 가장 많이 흘린 혁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꼴이 됐다”고 분석했다. 두 나라가 친시리아 입장을 취하는 배경에는 장기간에 걸친 무기 판매와 경제 지원으로 다져진 돈독한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권과 2011년까지 약 40억 달러(약 4조4720억 원)의 무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중국은 1956년 수교 이후 시리아와 공동으로 유전 개발을 하면서 경제적 지원을 해 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맹주로 군림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가 사라진 아프리카에서 영어 사용 국가(앙글로폰)와 프랑스어 사용 국가(프랑코폰) 간에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1월 30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임기 1년의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 선거가 끝내 당선자를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가봉 출신의 장 핑 현 위원장(69)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내무장관 은코사자나 들라미니주마 후보(63)가 맞서 하루 동안 4차례나 표 대결을 벌였으나 유효 득표자(회원국 3분의 2)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현 위원장 임기가 6월 말라위에서 열리는 차기 정상회의까지 연장됐다고 로이터통신이 31일 전했다. 이는 AU 창설을 주도하고 막대한 리비아 오일머니를 투입함으로써 막강한 지도력을 행사했던 카다피가 사망하면서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 큰 요인으로 꼽힌다. 아프리카는 과거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배의 유산으로 앙글로폰과 프랑코폰 국가로 나뉘었으며 경제적 격차 등으로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콩고 가봉 니제르 코트디부아르 등 프랑코폰 국가들은 대체로 경제발전 속도가 더디며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가나 케냐 탄자니아 등의 앙글로폰 국가들은 비교적 자본주의가 발달했다. 이들의 경제발전이 차이가 난 것은 식민 모국의 지배 방식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이 현지인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기술을 전수해 자치 능력을 키운 반면 프랑스는 프랑스인을 각 국가의 요직에 배치함으로써 현지인들의 자립도가 낮았다는 것이다. 경제적 격차를 무마하기 위해 프랑코폰 진영이 택한 방법은 정치적으로 의제를 선점하는 것이다. AU 집행위원장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연구센터 스티븐 프리드먼 정치 분석관은 “(가봉 등 프랑스어권 국가들이) 상대편에 대해 상당한 공포심과 분노를 느끼는 듯하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카다피 이후 첫 회의에서 AU는 극심한 분열상을 노출했다. 이에 따라 2002년 7월 AU가 출범할 때 내세웠던 ‘서방에 맞서 아프리카 문제를 아프리카 식으로 해결하자’는 원대한 목표는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방 등 외세에 한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지역 내 현안에서도 통일된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10년 전 출범 당시 54개 회원국이 꿈꿨던 ‘아프리카 르네상스’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2010년 11월 중국 서남부 쓰촨(四川) 성 신청(新城)에서 대학을 졸업한 라이샤오둥 씨(당시 21세). 칭다오(靑島)에 있는 세계적인 전자기기 조립업체인 폭스콘에 입사가 결정된 그는 졸업장이 구겨지지 않도록 옷으로 꽁꽁 동여매 여장을 꾸리면서 잔뜩 꿈에 부풀어 있었다. 열심히 일해 간호사인 여자친구와 가정을 꾸미는 상상에 저절로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는 불과 6개월 뒤인 지난해 5월 한 줌의 재로 바뀌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애플의 아이패드를 생산하던 이 공장에서 불이 나 4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중화상을 입은 사고에 희생된 것이다. 애플은 지난해 4분기 130억 달러(약 14조7000억 원)의 사상 최고의 실적을 냈으며 시장은 벌써부터 아이폰5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26일 애플이 구축한 이 같은 ‘아이 이코노미(iEconomy)’ 뒤에는 중국 노동자의 끔찍한 노동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비자들이 매일 쓰고 있는 아이폰의 부속 하나 하나에 그들의 눈물과 고통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작업 환경 개선에 귀 닫은 애플 라이 씨가 희생된 화재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폭스콘 아이패드 제조공장은 초비상상황이었다. 애플이 출시시기를 몇 주 앞당기면서 하루 수천 개의 아이패드 케이스를 세척해야 하는 ‘지상 명령’이 떨어졌다. 3교대로 24시간 공장 가동이 이뤄졌다. 작업 내내 서 있어야 하는 근로자들은 다리가 퉁퉁 부어 비틀거리기도 했다. 문제는 세척 과정에서 발생하는 알루미늄 먼지였다. 환기시스템 용량을 넘어선 알루미늄 먼지에 폭발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사고가 나기 2주 전 홍콩의 시민단체인 ‘기업의 잘못된 행동을 막는 학생과 연구원들’은 이 공장의 알루미늄 먼지를 포함한 위험한 작업환경을 고발한 보고서를 폭스콘과 애플에 보냈다. 환기시스템 용량을 늘리고 근로자의 안전장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단체의 데비찬쓰완 씨는 “애플은 아무 응답이 없었다. 수개월 뒤에 직접 애플 본사를 찾아갔지만 아무도 우리를 만나주려 하지 않았다. 당시 화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공장에선 7개월 뒤인 2011년 12월에도 똑같은 원인으로 폭발 사고가 나 59명이 다쳤다.○ 시늉만 하는 애플 애플은 전자업체로서는 선도적으로 2005년에 납품 공장들의 근무여건과 안전수칙을 담은 행동강령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동근로자의 취업 금지, 유독성 화학물질 사용 금지 등의 강령을 정했다. 그리고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396개 해외 부품 공장에 대해 감사를 벌여 매년 관련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NYT가 공장 근로자를 인터뷰하고 시민단체 자료, 애플의 공식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취재한 결과 실제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은 최근 보고서에서 60시간 근로는 전체의 38%만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폭스콘은 방 3개가 있는 아파트에서 20명의 근로자가 지내도록 했으며 희생된 라이 씨만 해도 주 6일을 근무했다. 중국 선전에 있는 또 다른 아이폰 제조공장인 윈텍사에서는 최근 2년 동안 18명의 근로자가 자살을 시도해 회사 측이 자살 방지 그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에는 유독화학물질로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다며 근로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한 근로자는 “회사 측이 아이폰 스크린을 세척하는 능력이 세 배나 높은 유독화학물질을 쓰게 했다”고 폭로했다. 애플 해외 제조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애플이 납품업체에 저가의 비용과 빠른 제조공정을 요구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여기에 맞추지 못하는 제조업체는 ‘애플 로또’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윈텍이 이 화학물질 사용을 중단한 지 6개월 만에 애플은 윈텍에 지불하는 대금을 크게 삭감했다. 애플 전직 임원은 “똑같은 문제가 매년 지적되는 것은 애플이 이를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공장의 근로환경과 애플의 이익 및 공정납기가 충돌할 때 애플은 언제나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동아일보와 특약을 맺고 있는 뉴욕타임스 원문 기사 ‘The iEconomy: In China, Human Costs Are Built Into an iPad’를 볼 수 있습니다. }

■ 러 인형들의 눈밭 반정부 시위… 경찰은 단속 고심“도둑은 크렘린이 아닌 감옥으로!” 키 5cm의 세계 최단신 시위대가 플래카드를 들고 러시아 시베리아에 나타났다. 시위대는 레고맨과 테디베어, 펭귄과 사슴 등 각종 동물인형들로 하루 종일 눈밭에 있어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고안해낸 아이디어다. 시민들은 깜찍한 풍자에 즐거워하지만 인형 시위대를 바라보는 경찰은 자못 심각하다. 경찰은 인형 시위대의 적법성을 판단해 달라며 검찰에 심사를 요청했다. 경찰은 “눈은 당국의 소유니 인형들을 눈밭에서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형 시위를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웃자고 만든 풍자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태국 견공 살려” 年 50만마리 베트남 식용 밀수출베트남인들의 개고기 수요를 맞추기 위해 태국 개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태국에서 개를 훔쳐 메콩 강을 통해 베트남으로 밀수출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CNN이 25일 보도했다. 태국의 밀수업자들은 길거리, 절, 심지어 개인주택의 정원에 들어가 개를 훔친 후 한밤중 배를 이용해 메콩 강을 건너 라오스로 보낸다. 라오스로 간 개들은 다시 트럭에 실려 베트남으로 보내진다. 태국 수의사협회는 이렇게 국경을 넘어 끌려가는 개가 연간 약 50만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태국 해군순찰대는 메콩 강의 한 둑에서 40개의 철망에 갇힌 개 800마리를 구조했다. 베트남의 개고기 애호가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육질을 연하게 만든다고 믿어 산채로 가죽을 벗기거나 때려서 도축한다. 베트남 시장에서 마리당 최대 한화로 약 3만5800원까지 받을 수 있다. 불교국가인 태국은 개고기를 먹지 않으며 식용 거래가 불법이다.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그는 내게 ‘오픈 매리지(Open Marriage)’를 요구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레이스에서 급상승세를 보이며 선두 후보를 추격해 온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68)이 두 번째 부인 메리앤 깅리치(사진)로부터 일격을 당했다. 메리앤이 19일 미 ABC방송의 인기 시사프로그램인 ‘나이트라인’ 인터뷰에서 폭탄발언을 한 것. 1999년 이혼 이후 첫 방송 인터뷰인 데다 그동안 “내가 입을 열면 깅리치의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고 경고해 왔던 터라 이목이 집중됐다. ABC가 방송 전 배포한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메리앤은 “깅리치가 전 의회 보좌관이자 현재 부인인 캘리스타 비섹과 6년간 불륜을 저질렀으며 이 기간에 내게 그녀와 자신을 공유하는 ‘오픈 매리지’를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오픈 매리지는 부부가 상대방의 혼외관계를 인정하는 개방결혼을 의미한다. 메리앤은 다소 격앙된 어조로 “내가 노려보자 그는 ‘캘리스타는 내가 어떻든(이혼을 하든 말든) 신경 안 써’라고 말했고, 나는 그건 진정한 결혼이 아니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어 “깅리치와 캘리스타는 감히 워싱턴 아파트의 우리 부부 침실에서 일을 치렀다”며 “깅리치의 행동은 ‘충격’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깅리치의 외도시기(1995∼2000년)는 그가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도덕성이 훼손된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했던 때(1998년)와 겹친다. 깅리치는 19세 때인 1962년 7세 연상의 재키 배틀리와 처음 결혼했다가 1980년 메리앤을 만나 데이트를 즐겼다. 그는 배틀리가 암 치료를 받을 때 이혼한 뒤 메리앤과 재혼해 18년간 결혼생활을 했다. 이후 1995년부터 자신보다 23세 어린 캘리스타와 만나다 메리앤이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은 뒤 이혼을 요구했으며, 1999년 헤어지고 이듬해 캘리스타와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리앤의 폭로에 깅리치는 1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대선후보 토론회 기조연설에서 “그녀의 말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라며 “나는 그저 68세의 늙은 할아버지일 뿐이며 내 두 딸과 친구들이 사실을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원들을 공격함으로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주류 언론에 신물이 난다”며 “뉴스 미디어의 파괴적이고 악한 환경들이 이 나라를 더욱 어지럽히고 있으며 품격 있는 유권자들을 끌어모으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언론을 비판했다.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 케이시와 재키는 메리앤의 주장을 반박했다. 두 딸은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단언컨대 아버지는 오픈 매리지를 요구한 적이 없다”며 “분명한 진실은 아버지와 메리앤이 힘든 결혼생활을 했으며 어려운 이혼과정을 거쳤다는 것뿐”이라며 깅리치를 두둔하고 나섰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 이틀 전에 메리앤의 인터뷰가 방영돼 깅리치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아랍에미리트가 한국에 우선적인 원유 공급을 약속했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자는 17일 세계미래에너지회의(WFES) 참석차 아부다비를 방문한 김황식 국무총리를 면담한 자리에서 “아랍에미리트는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필요 시 한국에 원유를 우선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필요하다면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양국 간 협의 채널을 설립해 논의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이라는 압박을 높이는 가운데 아랍에미리트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유사시 원유 확보를 위한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앞서 카부스 빈 사이드 오만 국왕도 14일 김 총리와의 면담에서 “만약 한국에 원유 수입이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최대한 돕겠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제재로 인한 국제원유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자체 증산으로 석유 생산 감소분을 채우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16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며칠 내로 1140만∼1180만 배럴로 원유 생산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며 이란의 석유 생산 감소분을 충분히 보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루 940만∼980만 배럴을 생산하는 사우디가 약 200만 배럴을 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나이미 장관은 이어 “전 세계적인 비상 상황과 고객 수요에 맞춰 우리는 하루 1250만 배럴까지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우리가 바라는 국제 유가수준은 배럴당 100달러 선”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최대 석유 증산능력은 하루 230만 배럴 규모로 OPEC 전체 증산 능력의 약 63%를 차지하며 이란의 하루 원유 수출량(250만 배럴)과 맞먹는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란 권력층 내부에서 신(神)-정(政) 갈등까지 불거져 제재 국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란 이슬람혁명재판소는 15일 알리 아크바르 자반베크르 국영 IRNA통신 사장에게 징역 1년과 5년간 정치·언론활동 금지를 선고했다고 현지 보수일간지 마슈레그뉴스가 보도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를 모독한 혐의지만 자세한 혐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3월 2일 총선을 앞두고 보수세력 내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세력 간의 권력투쟁이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군기 잡기’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IRNA통신이 수년간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지지 세력의 충실한 선전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왔으며 자반베크르 사장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자문위원 역할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자반베크르 사장은 지난해 11월에는 여성의 전통복장인 차도르의 기원이 19세기 파리에서 시작됐다는 기사를 내보내 이슬람 규범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메네이로 대표되는 이슬람 성직자 및 강경 보수파는 자반베크르 사장을 비롯한 친(親)대통령 세력에 대해 국가 운용에 있어 이슬람 원리가 아닌 ‘일탈’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따라서 이번에 자반베크르 사장에 대한 징역형 선고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게는 서방국가의 제재 압박에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라는 주문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이란에서는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신정체제가 들어선 후 종교지도자의 입김이 강할 때에는 서방에 강경 대응해왔다. 이란에서 최고지도자의 권한은 단순 행정권만을 갖는 대통령에 비해 막강하다. 종교는 물론이고 사법권을 포함해 군사령관 대법관 검찰총장 및 주요 장관의 임면권을 갖기 때문이다. 하메네이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의 갈등이 불거진 것은 지난해 4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하메네이 측근인 모스레히 정보장관을 해임하면서부터다. 하메네이가 거부권을 행사해 장관의 복직을 지시했으나 대통령이 항의의 표시로 11일간 업무를 거부하는 등 대립각을 세웠다. 대통령이 최고지도자의 명령에 반기를 든 것은 처음이다. 이후 둘의 세력 다툼은 의혹 제기와 유죄 선고 등으로 얼룩지며 계속됐다. 지난해 6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에 대해 국고 횡령 혐의를 제기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움직임을 견제한 것으로 해석했다. 9월에는 에스판디아르 라힘 마샤이 대통령비서실장의 불법 대출 의혹이 불거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곤경에 처한 바 있다. 마샤이 비서실장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업가에게 특혜 대출을 받도록 도움을 줘 28억 달러 규모의 불법 대출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이란의 핵개발이 왜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왜 저토록 이란의 핵개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막으려고 난리칠까.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정말 가능한가. 이란 석유를 못 사오면 정말 석유대란이 나는 걸까. 이란산 석유 금수조치를 둘러싼 진실과 오해를 Q&A로 풀어본다. 》Q. 해묵은 이란 핵개발 문제가 왜 다시 불거졌나.A. 이란의 핵개발은 2002년 8월 15일 이란 중부 나탄즈 지역에 비밀 우라늄농축 시설이 존재한다는 폭로가 나온 뒤부터 계속돼 온 지구촌의 두통거리다. 이후 근 10년간 되풀이된 이란과 국제사회의 실랑이는 지난해 11월 8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이 핵탄두 디자인부터 기폭장치 실험까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얻기 위해 조직적이고 비밀스러운 노력을 기울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비등점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란의 핵무장 위험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판단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강력한 추가 제재 조치를 밝혔다. 특히 지난해 12월 3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이란 제재 방안이 포함된 국방수권법에 서명하면서 대치 국면이 본격화됐다. 이 법은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모든 경제 주체가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도록 만든 사실상의 이란산 석유 금수조치다. Q. 미국은 왜 이란 핵개발 저지에 필사적인가.A. 이란은 핵무장을 통해 중동의 맹주를 꿈꾼다. 핵보유국이 되면 역시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에 맞선 군사적 대치의 역학관계도 변한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이란의 핵무장은 악몽 그 자체다. 우선 20세기 중후반 이래 세계에 핵무기가 퍼지는 것을 막고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해온 국제체제인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무력화를 불러온다. 또 현 중동의 세력 균형이 완전히 깨지게 된다. 특히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에는 핵무장한 이란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위협이 된다.2002년 핵개발이 처음 탄로난 뒤 국제사회와 지루한 시소게임을 벌여온 이란은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수를 준비하는 어수선한 지금이 중동의 패권을 장악할 적기라고 판단하고 핵개발 속도와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세 변화는 올 11월 미국 대선과도 맞물린다. 공화당 후보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이란 외교정책이 무르다고 비판한다. 여당인 민주당마저 강경한 이란 제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오바마 행정부로선 강경 카드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Q. 미국의 이란 제재는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A. 미국의 국방수권법은 석유 수입 금지를 직접 명시하진 않았지만 이란 중앙은행이 석유 수출 대금을 처리하기 때문에 사실상 석유 금수조치에 해당한다. 이란은 세계 5위의 원유 생산국이자 4위의 석유 수출국이다. 하루 평균 약 35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250만 배럴을 수출한다.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9%를 차지하는 이란에서 원유를 사올 수 없게 되면 세계 각국은 대체 원유 확보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자연스럽게 국제유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란에서 하루 평균 54만3000배럴을 수입하는 중국을 비롯해 일본(34만1000배럴) 한국(24만4000배럴) 등 아시아 국가의 이란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아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산유국들이 증산을 하고, 이란 원유를 수입하던 나라들이 각자 비축해 놓은 전략비축유를 풀면 국제유가는 안정을 찾을 수도 있다.그러나 최악의 경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대체원유의 수송마저 차질을 빚게 돼 현재 배럴당 100달러 안팎인 국제유가는 210달러 안팎으로 치솟아 세계 경제성장률을 3% 아래로 떨어뜨릴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Q.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가능할까.A. 이론상으로 봉쇄는 가능하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해협 입구의 너비(약 34km)가 좁아 물리적으로 봉쇄가 어려운 건 아니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이란 해군과 혁명수비대의 미사일·어뢰 요격 능력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 봉쇄는 이란에도 자살 행위에 가깝다. 이란은 원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생필품의 대부분도 호르무즈 해협으로 들어온다. 자국에 우호적인 중국 수출길이 막히는 것도 부담이다. 호르무즈 봉쇄 위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8년 이란과 쿠웨이트 갈등에 미국이 개입하자 이란은 봉쇄를 선언했다. 당시 정유시설 폭격 등 전쟁 양상을 띠었지만 완전 봉쇄는 성사되지 않았다. 전면전이 부담스러웠던 양국은 통행을 묵인하며 갈등을 봉합했다.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란의 노림수는 봉쇄 선언이 주는 심리적 파급효과”라고 지적했다. 세계 원유 교역량의 3분의 1이 지나는 길목에 불안감이 조금만 조성돼도 석유 가격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경제위기를 겪는 유럽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요긴한 협상카드인 셈이다. 하지만 봉쇄가 안 된다고 해도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습 등 국지적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엔 엄청난 파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은 “1988년처럼 국지전만 벌어져도 제3차 오일쇼크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Q. 한국은 어떻게 헤쳐가야 하나.A. 일단 한국과 일본, EU 등은 제재에 동참하기로 했다. 일본은 이란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줄일 방침이다. 유럽은 전면 수입 금지를 선언했으나 6개월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한국은 제재에 동참은 하되 감축폭이나 방식은 상황을 보며 대처한다는 입장이다.러시아와 터키는 여러 차례 ‘유엔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주장해 왔다. 인도도 감축 계획이 없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은 겉으로는 제재 반대를 얘기하면서도 반사이익을 얻으려 궁리하고 있다. 이란에 원유 가격 할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석유 수출이 금지되면 구매자가 줄어들고, 그나마 석유를 수출하려면 싼 가격으로 팔아야 하는 이란의 처지를 십분 활용하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도 결국은 서방세계 편에 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뉴욕타임스는 “이번 제재의 성공은 동북아시아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이란 원유 수출량의 46%를 한국 중국 일본이 수입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특히 22%를 수입하는 중국의 참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증산을 요청해 대안을 마련하는 한편 중국 국영석유회사를 제재 대상에 올리기도 했다. 채찍과 당근을 함께 쓰는 형국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