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실서 신문 뒤적이다 일생의 천직 찾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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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90돌 남산도서관 별별 사연-추억담들

5일로 개관 90주년을 맞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 남산도서관 전경(위쪽 사진). 하루 평균 4500여 명의 발길이 이곳에 닿는다. 이용객들이 저마다의 큰 꿈을 키웠던 2층 열람실은 시대가 지나도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1970년대 열람실 내부. 남산도서관 제공
5일로 개관 90주년을 맞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 남산도서관 전경(위쪽 사진). 하루 평균 4500여 명의 발길이 이곳에 닿는다. 이용객들이 저마다의 큰 꿈을 키웠던 2층 열람실은 시대가 지나도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1970년대 열람실 내부. 남산도서관 제공
“시내 명치뎡(서울 중구 명동)에 잇는 경성부립도서관(남산도서관의 전신)은 작일(어제)에도 초대를 받은 관람객들이 뒤를 이어 들어오며… 아래층에는 아해(아이)들의 열람실을 설비하야 자미스러운(재미있는) 동화의 서적을 갓추어 노아 처음으로 설비한 것으로는 매우 정돈이 되야잇다.… 아래층 우편에 잇는 인사상담소에서도 매일 직업을 구하는 사람과 여러 가지의 사정을 문의하러 오는 사람이 만타더라.”

남산도서관의 개관을 다룬 1922년 10월 3일자 본보 기사 일부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의 ‘꿈자람터’이자 시민들의 독서 및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아온 남산도서관이 5일로 개관 90주년을 맞는다.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하루 평균 4500여 명이 찾는 남산도서관은 50만여 권의 자료를 소장한 시립공공도서관이다.

1922년 서울 중구 명동2가에 개관한 남산도서관은 1964년 12월 31일 현재의 위치(용산구 후암동)로 신축 이전했다. 90주년을 기념해 도서관은 8월부터 한 달간 이용객들로부터 도서관에 얽힌 사연과 추억담을 모집해 총 185건 중 7건을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김석원 씨(54)는 1977년 겨울을 잊을 수가 없다. 대학입시에 낙방한 그는 남산도서관에서 멸치맛과 간장맛이 나는 10원짜리 국 한 그릇에 도시락 찬밥을 말아먹고 일간지를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가 우연히 지방지에 난 강원도 소방공무원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해 합격했던 순간은 아련하기만 하다. 34년간 소방관으로 몸담았던 그는 2년 전 문득 아내와 함께 도서관 식당을 찾았다. 더이상 10원짜리 눈물의 간장국물은 판매하지 않았지만 도서관에서 꿈을 키워가며 하루하루를 버텼던 때가 떠올라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후암동으로 옮겨 온 도서관에 첫발을 내디뎠던 열다섯 살의 용산중 학생 이창성 씨(62)는 도서관에 들어가기 위해 이용객들이 차도까지 길게 줄을 선 광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입장 인원이 꽉 차면 중지했다가 시간이 흐르고 독서객이 빠졌을 때 입장하던 뿌듯함. 도서관에서는 한니발과 시저도 될 수 있었고 이순신도, 니체도, 헤르만 헤세도 될 수 있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돼 아름다운 여인과 연애도 할 수 있었고 위험한 모험도 마다않고 상상할 수 있었다. 60을 넘긴 지금 직장도 그만두고 다시 찾은 도서관이지만 자유롭게 읽을 책이 잔뜩 있어 행복하다.

뒤늦게 시작한 임용 준비가 여러 해 동안 결과가 좋지 못했던 고시생 이모 씨. 참고도서가 한 권 두 권 옆에 쌓여갈 때마다 상실감과 무력함도 겹겹이 쌓였다.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 참여했던 독서치료 프로그램으로 다시 열정을 불태우게 됐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몸이 불편한 관계로 이동문고를 이용해 쌍둥이 아들에게 책을 읽히는 지체장애인, 라면자판기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자주 고장 났던 기계가 나까지는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주부, 언니 손을 잡고 수선을 피웠던 여고생이 어느덧 애인과 함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러 다니며 복도와 열람실이 키와 마음의 깊이로 서서히 작게 느껴졌다는 사연까지, 남산도서관과 함께 숨쉬며 자라온 이야기들은 추후 도서관 소식지에 선보일 예정이다.

남산도서관은 구조 보강 및 시설 보수를 위해 이달 10일부터 내년 3월 초까지 임시휴관에 들어간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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