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내 책 보기 힘들죠? 한 권 읽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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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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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취자 불러 모으는 ‘라디오 북’

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EBS 스페이스홀에서 열린 ‘라디오 연재소설’의 ‘낭독의 힘’ 현장. 소설가 백가흠(가운데)과 일일 낭독자로 선정된 문예창작과 재학생이 백가흠의 작품 ‘나프탈렌’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EBS 제공
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EBS 스페이스홀에서 열린 ‘라디오 연재소설’의 ‘낭독의 힘’ 현장. 소설가 백가흠(가운데)과 일일 낭독자로 선정된 문예창작과 재학생이 백가흠의 작품 ‘나프탈렌’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EBS 제공
“이것 좀 꽉 매 주라요. 돈 못 건진다 누가 그러오? 서로를 마주보며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텔레비전도 안 보오? 남편들이 아내를 죽일 때 이유를 대기 좋은 거지….”(백가흠의 미발간 소설 ‘나프탈렌’ 중)

평일 오후 8시 라디오 주파수를 EBS에 맞추면 주부 권아영 씨(32)가 등장인물에 따라 낭랑한 목소리를 달리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채널의 간판 책 프로그램인 ‘라디오 연재소설’이다.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의 소설 전편을 읽어주는데 지루해질 만하면 소설과 어울리는 음악이나 작가 인터뷰가 나온다. 낭독자는 일반인들의 신청을 받아 선정한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 지친 주부, 일용직 노동자, 실직 상태의 젊은이들이 낭독을 맡아왔다.

독서의 계절에 책 읽어주는 라디오 프로들이 청취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KBS1 라디오 ‘책 읽는 밤’, SBS ‘라디오 북카페’ 같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프로뿐 아니라 인기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 등도 현대인들의 피곤한 일상을 위로하고 있다. EBS는 ‘책 읽는 라디오’를 모토로 내걸고 올가을 개편에서 책 관련 프로를 10개로 늘렸다. 매달 공개방송 형태로 ‘낭독의 힘’이라는 북콘서트를 열어 청취자들과 일반인 낭독자, 작가, 인디 싱어송라이터들이 소통하는 장도 마련한다.

아무 기교도 없이 책을 읽기만 하는데 청취자 카페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회사원 장모 씨(30)는 “밤늦게 야근한 뒤 퇴근길 차 안에서 라디오북을 크게 틀어놓고 들으면 꼭 좋은 영화를 한 편 감상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유통업에 종사하느라 일요일마다 출근하는 안영주 씨(27·여)는 “평일 방송분을 일요일엔 하루 종일 재방송해주는데 일요일에도 일해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덜 수 있어 위안이 된다”고 전했다.

소설가들은 낭독 프로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책으로 펴내기 전 EBS ‘라디오 연재소설’에서 소개됐던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 백영옥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김연수의 신작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출간 후 호평을 받았다. 소설가 백가흠은 “예전에는 소설을 쓴 뒤 눈으로만 퇴고를 했는데 내 작품이 낭독되는 것을 들으면서 문장의 리듬감까지 살필 수 있었다”며 “소설이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연수도 낭독되는 작품을 들은 뒤 소설 제목을 ‘희재’에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으로 바꿔 달았다.

‘책은 집에서 혼자 조용히 읽는 것’이라는 편견을 지닌 사람들에게 소설가 편혜영은 이렇게 말한다. “이야기의 원형은 글이 아니라 말입니다. 좋은 작품은 읽었을 때 운율감이 살아나는 글이죠.”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BS#라디오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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