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하정민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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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정민 기자입니다.

dew@donga.com

취재분야

2024-04-15~202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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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커창-아베 “네가 와라”…中日 정상회담 장소 놓고 신경전

    1일 한일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과 일본이 회담 장소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고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이 2일 보도했다. 산케이에 따르면 양측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숙소인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과 리커창 중국 총리 숙소인 신라호텔 중 어느 쪽에서 정상회담을 할지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결국 예정한 시각이 점점 다가오고 의견을 좁히지 못하자 아베 총리가 리 총리의 숙소를 찾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다.양국의 신경전은 회담을 마치고 한일중 3국 정상 만찬장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리 총리는 아베 총리와 달리 신라호텔 정문을 이용하지 않고 뒷문으로 나갔는데, 이는 중국 측이 자신들이 ‘초대한 사람’이고 일본 측이 ‘손님’임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차별화를 꾀한 것이라고 산케이는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중일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일본 측의 ‘요청에 응해’ 회담을 했다는 표현을 썼고, 아베 총리가 리 총리의 숙소로 찾아왔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두 나라 외교장관 또한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일 오전 일본 대표단 숙소에서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한 최종 조율에 착수했는데 회담을 몇 시간 남겨놓지 않은 가운데 각료급 협의를 해야 할 만큼 합의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일본 언론은 이날 회담이 기시다 일본 외상의 숙소로 왕 부장이 찾아가 만난 형식이라는 점, 왕 부장이 1분 늦게 도착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양국의 미묘한 신경전을 전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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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보같고 불평많은 동료는 스파이?” 1944년 CIA스파이 지침서 보니…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만들었던 스파이 지침서가 최근 뒤늦게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1일 보도했다. CIA가 1944년 1월 제작한 ‘손쉬운 방해공작 현장 매뉴얼(Simple Sabotage Field Manual: Strategic Services)’에는 적성국에 침투한 CIA 스파이가 일터에서 적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조직을 망칠 수 있는 다양한 행동들이 담겨있다. 이런 행동의 상당 부분은 21세기 직장인들이 일터에서 흔히 만나는 짜증나는 동료의 유형과 매우 유사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첫째, 바보같이 행동하라. 글씨를 불분명하게 쓰거나, 보고서의 한두 항목을 빠뜨려 보내거나, 상사의 지시를 못 알아들은 척하고 어물쩍 넘기는 것은 좋은 태도다. 둘째, 짜증나게 굴라. 회사가 위급한 상황인데도 갑자기 회의를 열자고 제안하거나, 회의에서 가능한 한 길게 말하거나,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 경험이나 일화를 회의석상에서 줄줄 늘어놓는 일도 포함된다. 셋째, 끊임없이 불평하라. 업무 성과가 나쁠 때 자신의 능력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환경이나 도구 탓을 해야 한다. 자신의 책임을 요리조리 피하려는 태도 역시 미묘하지만 매우 파괴적인 방해 공작이라고 CIA는 분석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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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시장에 명운을 걸겠습니다” 김성완 스무디킹 대표

    음료업체 스무디킹이 지난달 8일 한국 지사인 스무디킹코리아의 사업권을 180억 원에 신세계푸드에 매각했다. 2012년 7월 5000만 달러(약 570억 원)를 투자해 미국 본사를 역(逆)인수했던 스무디킹이 ‘꼬리’격인 한국 지사를 팔고 ‘몸통’인 미국 본사에 명운을 건 셈. “충성심, 스포츠 마케팅, 웰빙이란 3대 키워드로 미국 시장을 공략해 5년 안에 연매출을 현재의 3.3배인 1조 원까지 늘리겠다”는 김성완 스무디킹 대표(43)를 지난달 12일 만났다. ―왜 한국 지사를 매각했나. “임대료 급등 등으로 한국에서 사업하기 힘들었다. 스무디킹 본사가 있는 미 남부 뉴올리언스에서는 10만 달러(약 1억1400만 원)를 투자하면 매장을 짓는다. 반면 명동과 강남역 등에서는 세를 얻으려 해도 보증금 1억 원, 월 임차료 1000만 원이 기본이다. 전체 매출(약 3000억 원)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에 집중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봤다.” ―미국 본사를 인수한 지 3년이 지났는데…. “2012년 말 전체 매출이 약 2000억 원이었는데 현재 1000억 원이 늘었으니 외형 확장은 일단 만족한다. 특히 ‘지역사회에 충성하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 주효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의 80%가 침수되기 전 도시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3대 요식업체는 스무디킹, 패스트푸드업체 파파이스, 스테이크 체인 루스크리스였다. 카트리나 후 파파이스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 루스크리스는 플로리다 주 올랜도로 떠났다. 우리만 남아있는 덕에 많은 소비자가 ‘스무디킹=충성’으로 여긴다.” ―2014년 2월 미 프로농구(NBA)팀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의 홈 경기장 이름을 스무디킹센터로 부르는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10년간 2000만 달러(약 228억 원)에 맺었다. “미국인에게 스포츠는 공기와 같다. 미식축구 농구 야구 등을 모르고 미국인의 삶을 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스무디킹센터는 뉴올리언스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카트리나 때 피해자 대피소로 쓰인 메르세데스벤츠돔(미식축구팀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홈 경기장)과 맞닿아 있다. 벤츠돔은 뉴올리언스에 와보지 않은 미국인이 알 정도로 유명해 인접한 스무디킹센터의 인지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커피 전문업체와의 경쟁이 만만치 않을 텐데…. “다른 음료에 비해 칼로리가 낮고 무기질이 많은 스무디킹 음료는 건강 및 외모 관리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과 부합한다. 현재 스무디킹 미국 매장 600여 개의 대부분은 중남부에 있는데 앞으로 웰빙 성향이 높은 북동부 진출을 강화할 계획이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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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주요 대학서 MBA 학위 따려면 학비 얼마 내야할까?

    2년에 최소 8만 달러(약 9040만 원)인 비싼 학비 등에도 미국 경영학석사(MBA) 학위가 여전히 인기라고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보도했다. 세계 경기둔화로 각국 취업시장이 얼어붙자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젊은이들이 늘었고, MBA 출신이 취직 기회와 연봉 면에서 다른 구직자보다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매년 미국에서만 19만2000명이 MBA 학위를 받는다. 2014년에도 전 세계에서 69만 명이 경영대학원입학시험(GMAT)에 응시했다. 특히 하버드 등 1년 학비가 4만 달러 이상인 비싼 미국 학교는 지원자가 점점 느는 반면, 4만 달러보다 낮은 MBA 프로그램은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WSJ에 따르면 올해 9월 시작된 2015년 가을 학기의 미 주요대학 2년제 풀타임 MBA의 입학 지원자 수는 모두 한 해 전보다 대폭 늘었다. 3대 MBA 스쿨로 꼽히는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7.8%), 스탠퍼드대(7.4%), 하버드대(1.5%)는 물론 예일대(25.1%), 조지타운대(16.4%), 시카고대(15.6%) 등도 마찬가지였다. MBA 출신들은 졸업 후에도 인기가 많다.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미 MBA 졸업생의 89%가 졸업 후 석 달 안에 직업을 찾는다. 이들의 평균 초봉도 10만 달러(약 1억1300만 원)으로 MBA를 취득하기 전 평균 연봉보다 88% 많았다. 다트머스대 턱 MBA 스쿨의 맷 슬로터 학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면허를 취득한 나라에서만 취직할 수 있는 의사나 변호사와 달리 MBA 학위는 세계 어디에서도 통한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와 호주 MBA도 인기다. 현재 세계 GMAT 응시자 중 아시아와 호주 MBA 지원자는 8.1%로 2007년 4%에서 두 배 늘었다.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와 인시아드 싱가포르 캠퍼스 등 아시아 유명 MBA는 세계 20대 MBA 순위 안에 들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여성 지원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다트머스대 턱 MBA 스쿨, 시카고대 부스 MBA 스쿨,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MBA 스쿨, 듀크대 후쿠아 MBA 스쿨 등에서는 신입생의 40%가 여자다. 다만 엔론 회계부정, 리만브라더스 파산 등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문제 기업의 경영진이 대부분 천문학적인 고액 연봉을 받는 MBA 출신들이었다는 점 때문에 세계 대형 금융사들은 예전만큼 MBA를 찾지 않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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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33년만 최악 교통사고 노인 42명 사망

    23일 와인 주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남부 보르도 시 인근 퓌스갱 지방도로에서 나들이에 나선 노인 49명을 태운 관광버스와 대형트럭이 충돌해 최소 42명이 숨졌다고 BBC 등 외신이 보도했다. 1982년 52명이 숨진 차 사고 이후 33년 만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최악의 교통사고로 평가받고 있다. 이날 오전 7시 30분 경 노인 단체관광객들을 태운 버스가 도시 외곽의 곡선도로를 주행하다 대형버스와 부딪혔다. 두 차량이 충돌하면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이 와중에 버스에 있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빠져 나오지 못해 대규모 사망자가 속출했다. 버스 기사는 탈출에 성공해 목숨을 구했지만 트럭 운전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BBC는 전했다. 지역 언론 RTL은 현장에서 어린아이 시신 한 구가 발견됐으며 버스 기사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관광버스에 탔던 노인들은 인구 700여 명의 작은 마을 프티-팔레 마을에 사는 연금생활자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날 새벽 마을을 출발해 인근 랑드로 당일 나들이를 가다가 끔찍한 화를 당했다. BBC는 “사고가 난 도로는 심하게 굽어 있어 지역 주민들 사이에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사고 직후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연기를 봤다. 끔찍한 비극”이라고 덧붙였다.하정민기자 dew@donga.com}

    • 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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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경기부양 위해 두달만에 또 금리인하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이 23일 기준금리와 은행 지급준비율(지준율)을 동시 인하했다. 런민은행이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동시 인하한 것은 중국 증시가 폭락했던 올해 8월 25일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런민은행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1년 만기 위안화 대출 기준금리를 기존보다 0.25%포인트 내린 4.35%, 1년 만기 예금 기준금리는 0.25%포인트 내린 1.5%로 낮춘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이후 6번째 금리인하다. 런민은행은 시중은행에 대해 지급준비율도 종전보다 0.5%포인트 낮은 17.5%로 책정했다. 특히 농업 및 중소기업에 대출을 많이 하는 일부 은행에 대해서는 지준율을 1.0%포인트 낮추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거듭된 금리인하는 경기둔화 심화로 올해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목표치인 7% 달성이 어려워진 데 따른 경기부양 조치로 풀이된다. 19일 발표된 중국의 올해 3분기 GDP 증가율은 2009년 1분기 이후 6년 반만의 최저치인 6.9%에 그쳤다.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43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는 등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중국 제조업 경기가 심상찮다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조지 매그너스 UBS그룹 선임 경제자문은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살아나고 있지 않은 가운데 디플레 압력이 여전하다”며 “런민은행의 경기부양책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하정민기자 dew@donga.com}

    • 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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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바이든, 대선 불출마 선언…민주당 경선 양강구도로

    미국 민주당의 대선 경선 후보로 꼽혀왔던 조셉 바이든 미국 부통령(73)이 21일 201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양강 구도로 굳어지게 됐다.바이든 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깜짝 성명서를 발표하고 불출마를 공식으로 선언했다.바이든 부통령은 민주당의 유력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장관 재직 시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것에 따른 논란으로 최근 몇 달간 지지율이 급락하자 출마를 심각하게 고려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3일 미 민주당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클린턴 전 장관이 승기를 잡고, 또다른 유력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꾸준한 강세를 보이자 출마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 언론은 분석했다.그의 가족사도 불출마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올해 5월 장남 보 바이든 전 델라웨어주 법무장관(46)을 뇌암으로 잃었다. 1972년 첫 번째 아내와 갓난아기였던 딸을 자동차 사고로 보낸 바이든 부통령은 이번에 장남까지 사망하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그간 출마설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가족들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을 피력해왔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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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영국에 ‘돈 보따리’ 선물…시진핑, 英 원전 건설에 11조 투자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주석이 영국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60억 파운드(약 10조8000억 원) 투자를 결정하면서 ‘돈 보따리’ 선물을 안겼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1일 런던에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이 영국 남부 힌클리 포인트 원전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며 “이런 역사적인 합의를 발표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시 주석도 “영국과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힌클리 포인트 원전은 영국에서 약 30년 만에 재개되는 첫 원전 건설 사업으로 총 건설비용은 무려 180억 파운드(약 31조6000억 원)에 달한다. 주 사업자인 프랑스 에너지업체 EDF가 대규모 건설비를 조달하지 못한데다 환경단체의 반대 등까지 겹쳐 수년 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이에 영국 정부는 그간 중국 측에 대규모 투자를 요청해왔고 시 주석의 영국 방문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됐다. 이번 투자는 중국 에너지 국영회사 중국광핵그룹(CGN)이 힌클리 포인트 원전 건설사업 지분 33.5%를 확보하고 60억 파운드를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나머지 120억 파운드는 EDF가 조달한다. 힌클리 원전은 2025년 완공되며 영국 전체 전력공급의 7%를 담당할 전망이다. 앰버 루드 영국 에너지장관은 이번 사업과 관련 “영국은 저탄소 에너지를 낮은 비용에 얻을 수 있고 중국은 자국 원전 기술을 서방에 선보일 수 있다”며 양국 모두 윈윈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영국 내부에서는 “안보 주권을 중국에 넘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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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세부서 중국 외교관 2명 피살…범인은?

    필리핀 유명 휴양지 세부의 한 식당에서 중국 외교관 2명이 동석했던 중국인 2명의 총에 맞아 숨졌다고 AFP통신 등이 21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30분경 세부의 등대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쑨션(孫沈) 세부 주재 중국 영사관 영사대리와 후이리(輝李) 상무관이 같이 있던 중국인 남녀 커플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이 사고로 쑹룽화(宋榮華) 총영사도 큰 부상을 입었다. 현지 경찰은 영사관 여직원 거우징(57)과 그의 남편 리칭량(60)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이들을 체포했다. 두 사람이 총격 직후 급히 식당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식당의 CCTV에 포착됐다. 아직 이들이 왜 총영사 일행에게 총을 쐈는지에 대한 정확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하정민기자 dew@donga.com}

    • 20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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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해땐 이곳으로”… 시민들이 구조거점 마련

    최악의 자연재해 ‘카트리나’를 겪은 미국 뉴올리언스의 현재는 재해 자체보다 그 이후의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미 정부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대목은 피해자의 심리치료. 10년간 멈추지 않고 체계적으로 피해자를 돌봐 왔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 10년째 피해자 트라우마 치료 8일 오전 어린이 심리치료 전문병원 머시 센터를 찾았다. 이 병원은 미 보건복지부 산하 약물남용정신건강서비스국(SAMHSA)과 손잡고 카트리나 피해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전문 심리상담 및 치료를 제공하고 있었다. 의사, 임상심리학자, 심리상담가,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들이 주 1회, 회당 약 1시간씩 각 학교를 찾아 정신적 피해가 큰 아이들을 대상으로 개인별 상담 및 치료를 한다. 학교에 소속된 상담교사, 학생의 부모에 대한 상담 및 지도까지 병행한다. 연간 치료비 40만 달러는 미 정부가 부담한다. 일부 종교단체와 독지가들의 현금 기부, 전문가들의 재능 기부 등도 더해진다. 지난 10년간 치료를 받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3만 명이 넘는다. 카트리나가 발생했을 때 미국도 연방정부의 비효율과 무기력이 큰 문제로 지적됐었다. 그러다 보니 뉴올리언스 시민들 사이에는 재해 후 ‘정부를 믿지 말고 나 자신을 믿자’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루이지애나주립대 보고서에 따르면 카트리나 후 뉴올리언스 주민의 24%가 시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공공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카트리나 전 참여율이 미미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이다. 보스턴 출신으로 25년째 뉴올리언스에서 거주하며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크 파워스 씨(45)는 “카트리나 당시 목격했던 정부의 무능이 역설적으로 시민들의 재해 복구 및 시정 참여 의지를 높였다”며 “모든 사람이 일종의 행정가로 변신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개혁도 덤으로 얻은 변화. 공립학교의 상당수가 파손되면서 공교육의 공동화가 이뤄지자 주민들 스스로 자율형 공립학교(차터스쿨)를 세웠다. 이곳 재학생 비율은 미 최고 수준인 전체 학생의 무려 70%에 달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재해 극복 의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는 도로 곳곳에 설치된 ‘구조 거점(evacuspot)’. 시내를 걷다 보면 사람이 한 손을 높이 든 모양의 독특한 철제 구조물을 여럿 발견할 수 있는데 2013년 6월 만들어진 약 4m 높이의 이 설치물은 ‘재해 때 이곳으로 모여라. 곧 구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사진작가 겸 사회운동가 로버트 포가티 씨. 카트리나 직후 재난대피 자원봉사 시민단체를 만들기도 했던 그는 대피로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물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숨졌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총 17개의 구조 거점을 설치했다. ○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다 카트리나 후 이곳 사람들은 건축양식도 바꿨다. 강변과 가까운 동네에는 제방이 세워졌고 신축 주택들도 물난리에 견딜 수 있도록 1층을 지상에서 띄웠다. 하지만 곳곳에는 아직도 참혹한 상처가 그대로인 곳도 많았다. 카트리나로 인한 전체 사망자 1833명의 54%가 발생한 최대 피해 지역 로어나인스워드에 있는 로버트 그린 씨(61) 집 앞마당에는 카트리나로 목숨을 잃은 그의 어머니와 손녀를 기리는 추모석이 있었다. 그린 씨는 카트리나가 닥치자 온 가족을 끌고 지붕 위로 올라갔지만 지붕이 무너지면서 어머니와 손녀를 잃었다. 손녀의 시신은 지금도 찾지 못한 상태. 어머니의 시신도 넉 달 후에 발견되어 겨우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복구가 아직도 느리다는 불만들도 있었다.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살다가 4년 전 이사 왔다는 챈시 헨스 씨(67)는 “살기 좋은 주거지로 만들어 주겠다는 정부 약속을 믿고 둥지를 틀었는데 복구 속도가 느려 실망스럽다”며 “복구 과정에서 부동산 붐만 일어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로어나인스워드 한복판을 남북으로 가르는 클레이번 애버뉴에서는 극심한 빈부격차도 보였다. 북쪽은 신규 주택이 많은 깔끔한 주거지였지만 남쪽은 풀뿌리와 잡초가 무성한 폐가들이 즐비해 한낮에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도 오싹했다. 카트리나 전 뉴올리언스의 흑인 비율은 약 70%에 달해 ‘초콜릿 도시’로도 불렸었다. 최근에는 총인구가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흑인 비율이 59%로 떨어졌다. 2013년 기준 뉴올리언스 거주 백인 남성의 평균 연봉은 5만7684달러, 흑인 남성은 절반 수준인 3만4815달러에 그쳐 격차도 더 심해졌다. ‘카트리나 10년’을 맞아 루이지애나주립대가 실시한 뉴올리언스의 복원 정도 및 삶의 질을 묻는 만족도 조사에서 백인 80%는 “완벽하게 복구됐고 현재 상태에 만족한다”고 했지만 흑인 응답자의 60%는 “모든 면이 더 나빠졌다”고 답했다. 뉴올리언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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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에어포스원’ 33년만에 신형으로 교체…2023년 운항 예정

    ‘움직이는 백악관’ ‘하늘의 궁전’으로 불리는 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Air Force One·공군 1호기)’가 2023년 최첨단 기능을 갖춘 최신 기종으로 교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국방부가 33년 만에 새 에어포스원을 제작하기 위해 수 주안에 항공기 제작업체 보잉과 1차 계약을 맺기로 했다고 18일 보도했다. 1970년 탄생한 보잉 747-200B 모델을 쓰는 현 전용기는 1990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부터 미 대통령들이 이용해왔다. 반면 신형 에어포스원은 2010년 개발된 최첨단 항공기인 보잉 747-8을 사용해 더 빠르고 더 멀리 운항할 수 있다. 기체 길이만 무려 76m에 달한다. 특히 군 통수권자인 미 대통령이 세계 각지를 누비며 이동 중에도 전쟁을 지휘할 수 있도록 열 감지 유도미사일 회피, 핵폭발 전자기 충격파 방어, 공중 급유 등 각종 최첨단 기기들도 장착된다. 현 에어포스원에 장착된 첨단 기술은 대통령이 이동 중 공중에서 팩스를 받을 수 있는 정도다. 새 에어포스원의 정확한 제작비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미 공군은 이미 내년에만 1억200만 달러(약 1360억 원), 이후 5년간 30억 달러(약 3조40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새 전용기 제작비용으로 요청한 상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 직에서 퇴임하면 가장 아쉬운 점이 더 이상 에어포스원을 탈 수 없다는 것”이라며 “신발을 벗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일도 없고 짐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다. 비행기는 멋진데 반납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농담한 바 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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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트리나 충격 어떻게 극복했나? 트라우마 아이들 10년째 상담치료

    카트리나는 미국 전체의 재난대응 체계와 피해자 트라우마 치료 방식에도 상당한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피해자 치료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정도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 10년째 피해자 트라우마 치료 8일 오전 어린이 피해자 치료를 주도하고 있는 심리치료 전문병원 머시(Mercy) 센터를 찾았다. 가톨릭계 병원인 머시센터는 대형 재난에 따른 국민 트라우마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미 보건복지부 산하 약물남용정신건강서비스국(SAMHSA)과 손잡고 카트리나 피해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전문 심리상담 및 치료를 제공하는 ‘플뢰르 드 리스(fleur-de-lys)’ 프로젝트‘를 10년간 운영해오고 있다. 프랑스 왕실의 백합 장식문양을 뜻하는 ’플뢰르 드 리스‘는 뉴올리언스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머시센터의 임상심리학자 더글러스 워커 박사(52) 팀이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의사, 임상심리학자, 심리상담가,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들이 주 1회, 회당 약 1시간씩 각 학교를 찾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개인별 혹은 상담 및 치료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 장난감 가지고 놀기 등을 하면서 처참한 재난 당시의 상황을 자연스레 말하도록 한 후 그런 경험과 기억이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학습 장애 등이 발견되면 이 문제를 도와주기 위한 또 다른 전문가를 붙여준다. 이 외 성인 피해자의 장기 재활을 위한 일자리 주선 등 성인 전용 프로그램도 있다. 연간 프로젝트 운영비 약 40만 달러는 전액 SAMHSA가 부담한다. 이 외 일부 종교단체와 독지가들의 현금 기부, 전문가들의 재능 기부 등도 더해진다. 플뢰르 드 리스 프로젝트의 특징은 단순히 아이들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각 학교에 소속된 상담교사, 해당 학생의 부모에 대한 상담 및 지도까지 병행하는 데 있다. 학교와 집에서 피해 아동을 만나는 성인들이 누구보다 이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잘 인식하고 이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해야 아이들의 회복도 빨라지기 때문. 워커 박사는 “카트리나 직후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도 예기치 못한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했다”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전문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어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0년간 이 프로젝트를 통해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무려 3만 명이 넘는다. 대부분은 흑인으로 로워나인스워드처럼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북부 버몬트 주 출신으로 뉴올리언스에 23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워커 박사는 “나 또한 두 아들의 아버지였기에 이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며 “카트리나 당시 내 집 일부도 파손돼 몇 달간 큰 불편을 겪었고 당시 6세, 4세이던 두 아이가 작은 비에도 몸서리치며 두려워하던 모습을 가슴 아픈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저소득층 가정의 피해 아동이 일반 병원에 가서 이런 치료를 받으려면 의사, 임상심리학자, 심리상담가 각각 1명에게 시간당 최소 150달러(약 18만 원)를 줘야 하는데 저소득층 가정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한 아이가 ’심리 치료를 받는 것은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하기 싫다가도 막상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기분이 좋아져요‘라고 했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워커 박사는 “카트리나와 같은 대형 재난은 그 피해와 후폭풍이 매우 장기적이어서 반드시 지속적 치료가 필요하다”며 “10년이 매우 긴 시간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 전담 치료기구 설치와 이를 위한 예산 확보 및 전문인력 양성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과제”라며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돕겠다”고 강조했다. ○ 재난관리 체계도 환골탈태 카트리나 피해가 유달리 컸던 이유는 비상사태 선포 및 대피계획 수립을 주도해야 할 뉴올리언스 시, 루이지애나 주 정부, 재난관리 전문기구인 연방재난관리청(FEMA) 등 3개 주체가 서로 결정을 미루고 다른 쪽에 책임을 전가하다 구조 최적 시점을 놓친 탓이 크다. 즉 명목상으로는 시와 주정부가 현장 대응을, 연방정부가 인력과 물자 지원을 맡는 분권 체제였지만 이를 통한 협력보다는 역할 범위를 둘러싼 갈등만 난무했던 것.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지 4일 후인 2005년 9월 2일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캐슬린 블랑코 전 루이지애나 주지사, 레이 내긴 뉴올리언스 전 시장이 회동했을 때 이 3명이 서로에게 책임전가를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로 인한 각계각층의 비난이 빗발치자 미 의회는 2006년 ’카트리나 재난관리 개혁법‘을 통과시켜 재난관리의 근본 변화를 시도했다. 우선 9.11 테러 직후 경비 절감을 이유로 국토안보부 산하로 편입됐던 FEMA를 다시 독립기관으로 만들고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FEMA가 국가 재난대책을 진두지휘하는 중심 기관임을 법에 명시했다. 국장 급이던 FEMA 청장을 차관 급으로 높이고 FEMA 청장이 대통령에게 독자적으로 재난발생 상황을 보고하고 의회에 재난관련 정책을 건의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또 대재난이 발생하면 미 50개 주지사가 주 정부는 물론 연방정부 소속의 연안 경비대에도 출동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주 정부와 연방정부의 소통 혼선으로 구조대의 도착 시간이 지연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시 정부의 노력도 뒤따랐다. 뉴올리언스 시는 지난 10년간 146억 달러의 돈을 들여 도시 전체에 약 214km의 홍수 방지벽을 설치했고 총 73개의 배수처리 공장(pumping stations)도 지었다. 미치 랜드류 시장(55)은 올해 1월 시 전체의 홍수 대비체계를 관장하는 ’폭우 관리자(stormwater manager)‘라는 새 직책을 만들고 튤레인대 교수를 지낸 건축공학 전문가 프리시카 윔스 씨(45)를 영입했다. 시청 인근의 수도사업소 건물에서 만난 윔스 씨는 방지벽, 배수처리 공장과 같은 물리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시민 스스로가 재난 대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 대처에 신뢰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 더 의미있는 변화“라며 ”’내 것은 내가 지킨다‘는 성향이 강한 미국인의 특성 상 과거에는 허리케인이 왔을 때 대피 명령이 떨어져도 이를 잘 이행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으나 이제는 사람들이 이를 충실히 따른다“고 말했다. ○ 풀뿌리 재건문화도 정착 실제 카트리나 후 뉴올리언스 시민들은 ’낡고 비능률적인 정부 기능을 쇄신하고 효율적인 재난대비 체계를 갖추려면 우선 시민들이 먼저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루이지애나주 주립대 보고서에 따르면 카트리나 후 뉴올리언스 주민 24%가 시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공공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카트리나로 일반 공립학교의 상당수가 파손된 탓에 이후 교육 개혁도 자연스레 뒤따랐다. 주민들이 세운 자율형 공립학교(차터스쿨) 재학생 비율은 미 최고 수준인 전체 학생의 무려 70%에 달한다. 뉴올리언스 시민들의 자발적인 재난 극복 의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는 곳곳에 설치된 구조 거점(evacuspot)이다. 뉴올리언스 시내를 걷다 보면 사람이 한 손을 높이 든 모양의 독특한 철제 구조물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2013년 6월 만들어진 약 4m 높이의 이 설치물은 ’재해 때 이 곳으로 모여라. 곧 구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구조 거점(evacuspot)’이다. 이를 만든 사람은 미 사진작가 겸 사회운동가 로버트 포가티 씨다. 카트리나 직후 ‘이베큐티어’라는 재난대피 자원봉사 시민단체를 만든 그는 대피할 곳 없던 희생자들이 물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숨졌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설치미술가 더그 콘펠드 씨와 손잡고 총 17개의 구조 거점을 설치했다. 1개 당 건립비용 약 20만 달러는 모두 시민 모금으로 충당했다. 뉴올리언스 미식축구팀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스타 선수 스티브 글리슨(38) 씨가 1만5000달러를 내놓는 등 유명인 기부도 잇따랐다. 보스턴 출신으로 25년째 뉴올리언스에서 거주하며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크 파워스 씨(45)는 ”카트리나 당시 목격했던 정부의 무능이 역설적으로 시민들의 재해복구 및 시정참여 의지를 높였다“며 ”모든 사람이 일종의 행정가로 변신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 양극화는 심화 1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있다. 바로 뉴올리언스의 뿌리깊은 흑백 빈부격차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카트리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 서부의 흑인 밀집지역 로워나인스워드(lower ninth ward)를 방문했다. 미시시피 강과 맞닿은 이 작은 마을에서 카트리나로 인한 전체 사망자의 54.5%인 약 1000명이 숨졌다. 왜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생겼을까. 이는 뉴올리언스의 뿌리 깊은 흑백 빈부격차와 관련이 있다. 뉴올리언스 주거지의 80%는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대에 있다. 안전하고 높은 곳에 있는 땅이 부족하다 보니 자연스레 집값이 비싼 고지대인 올드 메터리와 메터리 등에는 백인 고소득층이, 로워나인스워드나 샤멜처럼 집값이 싼 저지대에는 흑인 저소득층이 몰려 살게 됐다. 이로 인해 카트리나로 인한 피해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저지대 흑인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카트리나를 겪었고, 복구가 시작되기도 전인 약 한 달 뒤 또 다른 허리케인 리타까지 맞이했다. 침수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던데다 백인과 달리 홍수 대비보험 가입도 사실상 전무한 이들의 복구 속도가 백인보다 훨씬 느릴 수밖에 없었다. 6일 오후 로워나인스워드를 찾았다. 흉물스런 폐가가 가득한 을씨년스러운 곳일 것이라는 기자의 당초 예상과 달리 의외로 로워나인스워드의 첫 인상은 깔끔하고 아담했다. 미시시피 강변과 마주한 동네 가장자리에는 한 눈에도 튼튼해 보이는 제방이 설치돼 있었고 일반 미 단독주택보다 개성 있고 독특한 모양과 색깔을 지닌 주택이 여럿 들어서 있어 ‘여기가 우범지역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날 기자를 이 곳을 안내한 강홍조 한인 회장(73)은 ”대부분이 최근 2~3년 안에 지어진 새 집“이라며 ”물난리에 견딜 수 있도록 1층을 높이 띄우고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태양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을을 둘러보자 참혹한 재난이 할퀴고 간 상처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동네 한가운데에 자리한 로버트 그린 씨(61)의 집 앞마당에는 미 국기와 두 명의 희생자를 위한 추모석이 있었다. 카트리나가 마을을 강타한 2005년 8월 29일 어머니 조이스 그린 씨(당시 74세)와 손녀 샤나이(당시 3세)를 잃은 그가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당시 그린 씨는 자신의 어머니, 샤나이, 샤나이의 두 자매 등 총 네 사람을 대피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원래 지붕 위로 올라가려했지만 지붕이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집 전체가 물로 가득 찼고 이로 인해 어머니와 손녀를 잃었다. 천신만고 끝에 자신과 남은 두 손녀의 목숨은 건졌지만 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구나 샤나이의 시신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찾지 못한 상태. 어머니의 시신도 넉 달 후인 12월 말에야 간신히 발견해 2006년 1월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린 씨의 안타까운 사연은 미 언론에도 수 차례 보도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자가 방문했을 때 그가 부재 중이어서 만날 수 없었다. 대신 그린 씨의 이웃인 챈시 헨스 씨(67)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회계 업무에서 종사하고 있다는 그는 카트리나 당시 조지아 주 애틀란타에 살다가 2011년 일자리를 찾아 뉴올리언스로 왔다. 헨스 씨는 ”이 곳을 살기 좋은 주거지로 만들어준다는 정부 약속을 믿고 둥지를 틀었는데 복구 속도가 느려 실망스럽다“며 ”로워나인스워드의 절반은 아직 폐가 상태이며 복구 과정에서 부동산 붐이 일어 집값만 오르는 통에 고향을 떠났던 많은 흑인들이 이 곳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네 한 복판을 남북으로 가르는 클레이본 애비뉴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헨스 씨가 사는 클레이본 애비뉴 북쪽은 신규 주택이 많은 깔끔한 주거지였지만 남쪽은 풀뿌리와 잡초가 무성한 폐가가 즐비해 한낮에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도 오싹했다. 그는 ”이렇게 버려진 집들이 마약굴로 변해가면서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카트리나 전 뉴올리언스의 흑인 비율은 약 70%에 달해 흑인의 피부색을 의미하는 ‘초콜릿 도시’로도 불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체 인구가 늘고 있음에도 흑인 인구는 더 줄어 흑인 비율이 59%로 떨어졌다. 2013년 기준 뉴올리언스 거주 백인 남성의 평균 연봉은 5만7684달러, 흑인 남성은 절반 수준인 3만4815달러에 그쳐 빈부격차도 더 심해졌다. 카트리나 10주년을 맞아 올해 8월 루이지애나 주립대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뉴올리언스의 복원 정도 및 삶의 질에 대한 뉴올리언스 거주 백인과 흑인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백인 80%는 ”완벽하게 복구됐고 현재 상태에 만족한다“고 했지만 흑인 60%는 ”경제, 교육, 삶의 만족도 등 모든 면이 카트리나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답한 것. 지역 싱크탱크 데이터센터의 앨리슨 플라이어 소장은 ”복구 과정에서 부동산 붐이 일면서 뉴올리언스 중심가 임대로는 10년 전보다 40% 이상 올랐다. 타지로 떠난 흑인 중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오는 사람이 많다“며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뉴올리언스의 진정한 복구가 완료됐다고 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뉴올리언즈=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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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업 메카’ 된 재난의 땅… 파격지원에 젊은 인재 ‘밀물’

    1833명이 숨지고 123조 원의 재산 피해를 남긴 미 최악의 자연재해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지 꼭 10년이 된다. 미국은 2005년 8월 29일 카트리나 발발 1년여가 지난 2006년 9월 30일 재난관리개혁법(일명 포스트 카트리나 법)을 제정하고 본격적인 재건 작업을 시행해 왔다. 이달 초 루이지애나 주 경제개발청(LED) 초청으로 찾은 뉴올리언스는 10년 전과는 딴판으로 활기에 넘쳤다. 과감한 규제개혁과 창업정신으로 시를 재난의 도시에서 혁신의 도시로 바꾼 민관의 노력이 그 비결이었다.○ 창업의 메카로 거듭난 도시 6일 0시 이곳 최고 관광지인 프렌치 쿼터의 버번 스트리트. 한밤중임에도 발 디딜 틈 없이 거리를 가득 메운 관광객들과 길 양쪽에 즐비한 재즈 바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 등 겉으로는 10년 전 대재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 세수(稅收)의 약 40%를 차지하는 최대 산업인 관광업도 호황이다. 2014년 뉴올리언스를 찾은 국내외 관광객은 952만 명으로 5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카트리나 직후인 2006년 관광객이 370만 명에 그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인구 유입도 가파르다. 카트리나 직전 48만5000명이었던 인구는 2006년 22만3000명까지 줄었다가 지난해 말 38만4000명을 회복했다. 미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2010∼2014년 뉴올리언스 인구 증가율은 11.8%로 50대 대도시 중 오스틴(15.5%)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10년 전 대재앙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의 모든 것을 앗아갔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이다. 카트리나는 2005년 한 해에만 뉴올리언스에서 9만 개의 일자리를 앗아갔고 이로 인한 임금 손실액만도 30억 달러(약 3조3900억 원)에 달했다. 이 도시가 재난을 이겨 나간 비결은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뉴올리언스는 석유 등 원자재가 풍부하고 강과 바다를 모두 보유한 덕에 별 노력 없이도 먹고살 수 있는 도시로 꼽혔다. 이에 카트리나 전까지만 해도 외부 투자와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 배타적이어서 ‘부자의 저주’라는 말까지 낳았다. 하지만 카트리나 이후 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며 능력있는 다른 지역 젊은이들을 대거 유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창업’을 위해 찾아오는 젊은 인재들에게 펼친 파격적인 지원정책이었다. 시는 우선 지역 주민을 고용한 정보기술(IT)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기업 운영비의 25%, 임금의 35%를 세액 공제해 주는 세제 혜택을 주었으며 도시 외곽 땅을 시세보다 낮은 비용에 빌려주면서 시세보다 낮은 금리의 대출 프로그램도 알선해 주었다. 현재 뉴올리언스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471개의 스타트업 창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미국 전체 평균보다 67%나 높은 수치이다. 미 언론들은 스타트업의 신 메카로 떠오른 뉴올리언스를 ‘실리콘 바이우(Silicon bayou·실리콘밸리와 뉴올리언스 인근 늪지대를 의미하는 바이우의 합성어)라 부른다. 미치 랜드루 뉴올리언스 시장(55)은 “스타트업 창업은 고학력 젊은이들의 고임금 일자리 창출로 직결되는 데다 이들이 자신을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기 때문에 외식, 레저, 패션 산업 등으로의 파급 효과도 크다”고 했다. ○ 남부의 할리우드로 변신 실제로 현재 뉴올리언스의 영화와 IT 산업은 할리우드(로스앤젤레스)나 실리콘밸리(샌프란시스코)에 비견될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뉴올리언스 영화협회에 따르면 2014년 루이지애나 주에서 촬영된 장편 영화는 총 18편으로 캘리포니아 주와 캐나다(각각 15편), 영국(12편)보다 많았다. 2015년에도 ‘캐리비안의 해적 5’, ‘판타스틱 4’ 등 쟁쟁한 흥행 예정작은 물론이고 ‘NCIS 뉴올리언스’, ‘트루 디텍티브’ 등 인기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커플, 샌드라 불럭, 채닝 테이텀 등 유명 영화배우가 속속 뉴올리언스에서 집을 사들일 정도. 뉴올리언스가 ‘남부의 할리우드(Hollywood south)’로 불리는 이유다. 현재 주 정부는 1편의 영화 촬영비 중 30만 달러 이상의 금액에 대해서는 30%의 세액공제를 해 주고 있다. 다른 주가 세액 공제가 아예 없거나 한 자릿수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 혜택이다. 또 1편의 영화 촬영 시 소요되는 전체 인건비 중 10%를 지역민에게 지급하면 10%의 세액공제를 추가로 해준다. 이곳에서 만난 싱크탱크인 데이터센터의 앨리슨 플라이어 소장(54)은 “관광업은 저소득층의 저임금 일자리에 국한돼 있고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문제점이 있다”며 “그런 면에서 최근 뉴올리언스의 산업 다변화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랜드루 시장은 “카트리나 이후 주민들 사이에 ‘무슨 일을 하든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됐다”며 “과거와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면 또 다른 재앙을 맞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뉴올리언스 경제 회생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뉴올리언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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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리케인 ‘카트리나’ 악재 딛고 다시 태어난 도시 뉴올리언스

    2005년 8월 29일 최고 시속 280km의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 남부 루이지애나 주 최대 도시이자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다. 도시 전체의 80%를 침수시킨 허리케인에다 국가권력의 무능과 구조 실패가 겹치면서 무려 1833명이 숨지고 123조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미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인 동시에 세계 최강대국의 민낯과 치부를 여실히 드러낸 인재(人災)이기도 했다. 미국은 재난 발발 후 1년여가 지난 2006년 재난관리개혁법(일명 포스트 카트리나 법)을 발효한 후에야 본격적인 재건 작업에 돌입했다. 이달 초 루이지애나 주 경제개발청(LED) 초청으로 찾은 뉴올리언스는 10년 전과는 딴판으로 활기에 넘쳤다. 여기에는 과감한 규제개혁과 창업정신으로 시를 재난의 도시에서 혁신의 도시로 바꾼 민관의 노력이 있었다. ●불야성을 이룬 프렌치 쿼터 6일 0시 뉴올리언스 최고 관광지인 프렌치 쿼터의 버번 스트리트. 18세기 초 프랑스 이민자들이 조성한 이 곳에는 발코니 등 당시 유럽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과 프랑스어 간판들이 넘쳐나 마치 18세기 프랑스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10월인데도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에 관광객들은 얇은 여름옷만 걸친 채 거리 곳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길 양쪽에 즐비한 재즈 바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고 뉴올리언스의 유명 카페 ‘카페 뒤 몽드’나 산책로가 조성된 미시시피 강가에도 인파가 북적였다. 겉으로는 10년 전 대재앙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곳에서 만난 관광객 루이스 마르티네스 씨(35)는 뉴올리언스에서 차로 약 5시간 거리인 미 4위 도시 휴스턴에서 주말을 즐기러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기자에게 “고층빌딩이 가득한 다른 대도시와 달리 뉴올리언스에는 어디에도 없는 낭만과 향수가 있다”며 “낡고 어둑한 공연장에 앉아 눈을 감고 재즈를 즐기는 맛이 그만”이라고 엄지를 들어보였다. 시 세수(稅收)의 약 40%를 차지하는 최대 산업인 관광업도 호황이다. 2014년 뉴올리언스를 찾은 국내외 관광객은 952만 명으로 5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카트리나 직후인 2006년 관광객이 370만 명에 그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뉴올리언스의 관문인 루이 암스트롱 국제공항에는 매일 45편의 국내외 직항편이 취항하는데 이 역시 10년 전 42편보다 많다. 인구 유입도 가파르다. 카트리나 직전 48만5000명이었던 뉴올리언스 인구는 카트리나 발발 다음해인 2006년 22만3000명까지 줄었다 2014년 말 종전의 약 79%인 38만4000명을 회복했다. 미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2010~2014년 뉴올리언스 인구 증가율은 11.8%로 미 50대 대도시 중 오스틴(15.5%)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005년 약 110만 명이던 메트로 뉴올리언스(뉴올리언스 시와 인근 메터리, 보갈루사 등을 합한 지역) 인구는 카트리나 직후 약 70만 명까지 줄었으나 최근 124만 명으로 카트리나 전보다 인구가 더 늘었다. 2010년부터 재임 중인 미치 랜드류 뉴올리언스 시장(55)은 “카트리나 당시 자원봉사로 미 전역에서 몰려왔던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뉴올리언스의 아름다운 풍광, 낮은 물가 등의 매력에 빠져 이 곳을 새로운 삶의 터전 겸 창업 전진기지로 이용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인구 증가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리콘바이유(Slicon bayou) 카트리나는 관광과 에너지 산업에 크게 의존하던 뉴올리언스의 경제 구조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2005년 한 해에만 뉴올리언스에서 9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이로 인한 임금 손실도 30억 달러에 달했다. 기존의 일자리는 없어졌고 살아남으려면 무엇이라도 해야 하니 과거와 다른 일을 해야 했던 셈이다. 또 눈 앞에서 가족이 익사하고 집이 통째로 잠기는 것을 봐야했던 메트로 뉴올리언스 거주 이재민 40만 명의 상당수는 뉴올리언스로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뉴올리언스로 이주한 사람들은 영화, 정보기술(IT), 생명과학, 수자원 관리 등 다양한 신산업에 종사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로 인해 현재 영화와 정보기술 산업은 각각 이 분야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할리우드(LA)나 실리콘밸리(샌프란시스코)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뉴올리언스 시와 루이지애나 주 역시 각종 세제 혜택과 낮은 금리의 대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이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뉴올리언스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471개의 스타트업 창업이 이뤄지는데 이는 미 평균보다 67% 높은 수치다. 뉴올리언스 시 역시 지역 주민을 고용한 IT 스타트업에게 운영비의 25%, 임금의 35%를 세액공제 해주고 있다. 미 언론은 샌프란시스코, 뉴욕에 이어 미 스타트업의 새로운 메카로 각광받는 뉴올리언스를 실리콘바이유(Slicon bayou)라 부른다. ‘바이유’는 강 주변의 늪지대를 의미하는데 미시시피 강 하류에 위치한 뉴올리언스에는 이 바이유가 매우 많다. 이를 실리콘밸리와 합친 신조어가 바로 실리콘바이유다. 뉴올리언스의 경제개발 및 투자유치를 담당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 기구인 그레이터뉴올리언스(GNO)의 마이클 헥트 최고경영자(CEO·45)는 “스타트업 창업은 고학력 젊은이들의 고임금 일자리 창출로 직결되는데다 이들이 자신을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기 때문에 외식, 레저, 패션 산업 등으로의 파급 효과도 크다”고 설명했다. 뉴올리언스 시는 ‘핫 플레이스’ 세인트로치마켓의 부활도 주도했다. 뉴올리언스 시청과 각종 기업 본사가 몰려있는 신도심 센트럴비즈니스디스트릭트(CDC)에서 약 30분 떨어진 시 동쪽에 위치한 이 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IT 분야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먹고 마시고 사업을 논의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1875년 설립된 세인트로치마켓은 원래 서울의 노량진 수산시장과 유사한 서민 전용 시장이었다. 흑인들이 즐겨 찾던 이 곳은 카트리나로 완전히 침수됐고 이후 몇 년간 폐허로 방치됐다. 뉴올리언스 시는 2010년 원래 소유주로부터 약 65만 달러를 주고 이 건물을 산 뒤 4년 간 370만 달러의 리노베이션 비용을 들여 올해 4월 재개관했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지닌 건물 안에는 세련된 외양을 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각종 해산물 요리, 디저트와 커피, 칵테일 등을 즐긴다. 2009년 뉴욕에서 설립된 세계적인 스타트업 킥스타터도 뉴올리언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킥스타터의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중국계 미국인 페리 첸(38)은 원래 뉴올리언스의 무명 음악가 겸 공연 기획자였다. 콘서트를 열고 싶어도 장소 대관 및 장비 섭외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이를 포기한 경험이 많았던 그는 인터넷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투자 방식인 크라우드펀딩에 관심을 갖게 됐고 찰스 아들러, 얀시 스트리클러 등과 킥스타터를 창업했다. 이 회사가 6년간 조달한 자금은 총 20억 달러(약 2조3800억 원)가 넘는다. 헥트 CEO는 “사실 스타트업 창업 지원에 그리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도시 외곽의 땅을 시세보다 조금 낮은 비용에 빌려주고 인터넷과 프린터 정도만 지원해줘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 효과는 엄청나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위기를 겪은 뉴욕이 당시 마이클 블룸버그 전 시장이 IT 창업을 독려하며 ‘실리콘앨리(실리콘밸리와 뒷골목을 뜻하는 영어 alley의 합성어로 구글 등 대형 IT 기업이 몰려있는 맨해튼 서남부 지역)’를 만들어냈듯 실리콘바이유도 뉴올리언스 경제를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남부의 할리우드 뉴올리언스 영화협회에 따르면 2014년 루이지애나 주에서 촬영된 장편 영화는 총 18편으로 캘리포니아 주와 캐나다(각각 15편), 영국(12편)보다 훨씬 많았다. 이에 미 언론은 뉴올리언스를 ‘남부의 할리우드(Hollywood south)’라 부른다. 뉴올리언스 소재 민간 싱크탱크인 데이터센터의 앨리슨 플라이어 소장(54)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겨울에도 눈이 오지 않는 날씨, 대도시보다 싼 인건비를 보유한 덕에 전 세계 영화, 드라마 제작자들이 뉴올리언스에 몰려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루이지애나 주 경제개발청(LED)에 따르면 2014년 루이지애나 주 생산직 근로자의 연평균 임금은 3만6400달러로 미 평균 4만3600달러보다 훨씬 낮다. 산업용 전기와 천연가스 요금도 미 50개 주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루이지애나 주는 1편의 영화 촬영비 중 30만 달러 이상의 금액에 대해서는 30%의 세액공제를 해 주고 있다. 다른 주가 세액 공제가 아예 없거나 한 자리 수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 혜택이다. 루이지애나 주는 또 1편의 영화 촬영 시 소요되는 전체 인건비 중 10%를 지역민에게 지급하면 10%의 세액공제를 추가로 해준다. 이런 노력 끝에 2014년 한 해 루이지애나 주가 영화 산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5억900만 달러애 달한다. 이중 33%인 1억6800만 달러가 큰 인기를 끈 블록버스터 ‘쥬라기 월드’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단 두 편으로부터 생겨났다. 유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 총괄을 맡은 ‘쥬라기 월드’는 뉴올리언스 외곽에 버려져 있던 한 테마파크를 재활용해 만들어졌다. 제작진은 카트리나로 인해 폐허가 됐던 이 곳을 약 2달 만에 무려 축구장 6개 크기의 촬영장으로 바꿨고 이 안에 큰 길, 호텔, 음식점, 나이트 클럽, 카페 등을 지었다.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16억65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거둬 아바타(27억8800만 달러)와 타이타닉(21억8680만 달러)에 이어 역대 3위를 차지했다. 2013년 말 개봉 후 2014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노예 12년’, 2013년 흥행작 ‘나우 앤 씨 미’ 등도 역시 뉴올리언스에서 만들어졌다. 2015년에도 캐리비안의 해적 5, 판타스틱 4, 혹성탈출 속편 등 쟁쟁한 흥행 예정작들이 촬영됐다. 이에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커플, 샌드라 블록, 채닝 테이텀 등 유명 영화배우들도 속속 뉴올리언스에서 집을 사들이고 있다.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제작도 활발하다. 2003년 첫 방영 후 지금까지 전미 시청률 1,2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인기 드라마 NCIS의 자매편인 NCIS 뉴올리언스가 지난해 첫 방영을 시작했고 트루 디텍티브,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스왐프 피플 등도 인기리에 촬영되고 있다. ‘남부의 할리우드’에 위기의식을 느낀 할리우드의 근거지 캘리포니아 주는 2014년 촬영비의 20%에 대한 세액공제, 특히 로스앤젤레스(LA)에서 촬영하면 5%의 추가 공제를 해주는 조건을 내걸며 맞불을 놓기도 했다. 플라이어 소장은 “관광업은 물론 뉴올리언스의 중요 산업이지만 주로 저소득층의 저임금 일자리에 국한돼 있고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문제점이 있다”며 “그런 면에서 최근 뉴올리언스의 산업 다변화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뉴 머니·블루 블러드’의 시대로 뉴올리언스의 별칭은 굉장히 쉽다는 뜻의 ‘빅 이지(Big Easy)’다. 낙천적이고 느긋하며 시간에 쫓기지 않는 뉴올리니언(New Orleanian·뉴올리언스 사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단어)들의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20세기 초 미국이 엄격한 금주법을 시행할 때도 뉴올리언스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쉽게 술을 구하고 마셨기에 이 말이 생겨났다는 속설까지 있을 정도다. 강과 바다를 끼고 있고 천연가스, 원유, 목재 등 각종 원자재가 풍부한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 강 개발이 한창이던 1840년대 미 3대 도시였을 정도로 번성했다. 20세기에도 줄곧 미 20대 도시 안에 들었으나 오일 쇼크가 온 1970년대 이후 쇠퇴의 길을 걸어 현재 미 50위 도시에 불과한 상태다. 즉 카트리나가 휩쓸고 가기 전에도 뉴올리언스 경제는 수십 년간 좋지 않았고 이로 인한 주민들의 박탈감, 패배의식이 심했다는 뜻이다. 뉴올리언스에서 5대째 살고 있다는 변호사 스콧 휘태커 씨(55)는 이를 ‘부자의 저주(curse of rich)’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악착같이 일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먹고 사는 것이 보장되다 보니 지방 정부와 주민 모두 이에 안주하기만 했고 외부 투자와 신기술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했다는 뜻이다. 그는 “현재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있는 델타항공 본사,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있는 테마파크 디즈니랜드도 모두 해당 기업이 먼저 뉴올리언스에 건립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과소평가한 뉴올리언스 시가 오히려 이를 거절하는 우를 범했다”고 설명했다. 휘태커 변호사는 기자에게 ‘레드 블러드(red blood·토종)와 블루 블러드(blue blood·외부인)’, ‘올드 머니(old money·토종의 돈)와 뉴 머니(new money·외부인의 돈)’라는 말도 알려줬다. 레드 블러드(red blood)는 18세기 초 뉴올리언스 개척 시대부터 줄곧 이 곳에 둥지를 튼 토종 뉴올리니언들을 말한다. 인간의 피와 같은 자연 색깔, 즉 원래부터 있었던 존재라는 뜻에서 레드 블러드로 불린다. 반면 블루 블러드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 즉 이방인을 일컫는다. 그는 “레드 블러드의 돈을 올드 머니, 블루 블러드의 돈을 뉴 머니라고 하는데 카트리나 이전에는 뉴올리언스 경제가 뉴 머니를 달가워하지 않고 올드 머니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다”며 “델타와 디즈니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덧붙였다. 뉴올리언스가 이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다른 도시에 뺏기고 쇠퇴하는 동안 인근 휴스턴(4위), 샌안토니오(7위), 댈러스(9위), 오스틴(11위)는 모두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로 급성장했다. 젊은 인재들이 속속 근교 대도시로 빠져나가고 외부 투자는 더디게 들어오면서 경제의 쇠퇴 속도가 더 빨라졌다. 주민들의 박탈감과 열패감도 한층 높아졌다. 카트리나는 이런 관행을 완전히 깨부수는 기폭제가 됐다. 도시 전체가 완전히 폐허가 된 상황에서 토종인지 아닌지, 누구의 돈을 우선해야 할 지를 따질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 헥트 CEO는 “카트리나 이후 주민들 사이에 ‘무슨 일을 하든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됐다”며 “과거와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면 또 다른 재앙을 맞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뉴올리언스 경제 회생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뉴올리언즈=하정민기자 dew@donga.com}

    • 201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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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인들, 핼러윈축제에 8조원 쓴다

    매년 10월 31일 밤 사람들이 유령, 괴물, 마녀, 유명인 등으로 분장하고 놀이를 즐기는 핼러윈 축제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며 소비를 진작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올해 핼러윈 축제로 인한 미국 내 소비 진작 효과가 69억 달러(약 7조935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12일 보도했다. 이는 미국인 1명이 핼러윈데이에 74.34달러(약 8만5491원)의 소비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10년간 미국의 핼러윈 축제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2005년에는 시장 규모가 33억 달러에서 그쳤지만 2012년 80억 달러로 사상 최고점을 찍었고 이후에도 70억 달러 내외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전미소매협회(NRF)는 분석했다. 이는 과거 부모와 자녀의 조촐한 가족 행사였던 핼러윈이 젊은 세대가 즐기는 집단 축제로 변모한 덕이 크다고 신문은 풀이했다. 유행에 민감한 밀레니엄 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자)가 각종 핼러윈 의상과 소품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페이스북 등 각종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소비시장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 핼러윈데이 의상 전문업체인 스피릿 핼러윈의 트리샤 롬바르도 대변인은 “핼러윈은 이제 성인을 위한 축제”라고 진단했다. 핼러윈은 고대 켈트인 축제 ‘사윈’에서 유래했다. 죽음의 신에게 제를 올릴 때 켈트인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꾸며 집안으로 죽은 자들의 영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풍습이 오늘날 핼러윈 분장 문화의 원형이 됐다. 핼러윈데이가 되면 미국 각 가정에서는 늙은 호박에 구멍을 판 후 사람의 얼굴 모양처럼 만든 ‘잭오랜턴(Jack-O’-Lantern)’ 등을 만든다. 또 괴물이나 마녀로 분장한 아이들이 이웃집을 찾아다니며 사탕과 초콜릿 등을 얻는데 이때 외치는 말이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야”란 뜻의 ‘트릭 오어 트리트(trick or treat)’이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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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교류 흔적 간직한 日고찰… 원효-의상 초상화 모셔

    교토(京都) 청수사(淸水寺·기요미즈데라·778년 창건)를 찾는 관광객들은 매년 1000만 명이 넘는다. 교토를 찾는 5000만 명의 20%에 달하는 수치이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절은 올 3월 미셸 오바마 여사가 방문해 경내에 있는 큰 북을 치는 모습이 전해져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청수사는 고대 한일 교류사 측면에서도 매우 상징적인 사찰이다. 일본의 고승 엔친(延鎭) 스님과 백제계 도래인 후손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758∼811) 장군의 깊은 인연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 일본 건축술의 정수 4월 말 청수사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절까지 약 15분간 가파르고 비좁은 골목길을 오르는 동안 하도 사람이 많아 행인들과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발걸음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약 11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세워진 웅장한 본당이 위용을 드러냈다. ‘일본 목조 건축의 불가사의’로 평가받는 유명한 본당 마루는 일본말로 ‘부타이(舞台·무대)’로도 불리는데 못 하나 없이 139개의 대형 느티나무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청수사 학예연구원 사카이 데루히사(坂井輝久·67) 씨는 “한국말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으로 ‘배수의 진을 친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 사람들은 ‘청수의 무대에서 뛰어내릴 각오’라는 말을 쓴다”고 했다. 본당 건물과 함께 유명한 것이 본당 안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십일면관음보살상이다. 33년에 한 번씩만 일반에게 개방되는 ‘비불(秘佛)’인 관음상이 마지막으로 공개된 때가 2000년 3월이었으니 다시 보려면 2033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자가 청수사를 찾았을 때에도 관음상 주변은 접근 자체가 금지돼 있었고 어두운 차양 막까지 쳐져 어렴풋이 실루엣만 확인할 수 있었다. 사카이 씨는 “일본인들은 평생 두 번만이라도 관음상을 볼 수 있으면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이 관음상을 안치한 사람은 일본인 엔친 스님이지만 사찰 건물은 백제계 도래인 후손 다무라마로가 자신의 집을 헌납한 것에서 비롯한다. 하급 무사였던 다무라마로는 교토로 천도를 단행한 간무왕의 총애를 받아 북방 오랑캐 정벌을 총괄하는 장군직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한일 고대인들의 인연 758년 청수사가 있는 오토와 산 인근에서 태어난 다무라마로의 조상은 대대로 야마토 정권에서 군인으로 일하며 이 지역에서 군락을 이루고 살았다. 일본 역사서 ‘속군서류종(續群書類從)’에는 ‘다무라마로의 조상이 오진왕 20년(290년)에 건너온 백제 왕족 아치노오미(阿知使主·?∼?)’라고 적혀 있다. 12세기 일본 역사서 부상략기 등에 따르면 다무라마로는 아픈 아내를 위해 사슴피를 약으로 쓰려고 오토와 산을 헤매다 산에서 수행 중이던 엔친 스님을 만나 불법에 귀의한다. 그리고 엔친을 위해 자신의 집을 청수사 본당으로 바친다. 청수사에 얽힌 한일 교류 역사를 접하고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정작 사카이 씨는 “다무라마로는 후원자일 뿐이고 건립자는 엄연히 엔친 스님이다. 다무라마로가 한반도 도래계의 후손이라 해서 청수사가 한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청수사가 건립된 8세기 말은 한반도 도래인들이 현재로 치면 이민 3, 4세대가 되어 완전히 일본에 동화된 시기이다. 사카이 씨 말대로 그들을 굳이 한반도 도래인이라고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한국과의 연관성을 애써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할 일도 아닐 것이다. 기자가 그런 생각을 하며 서 있는데 사카이 씨가 한마디를 더 보탰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에 모든 문화를 전해 주었다며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 창조를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청수사 건립에서 다무라마로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려 했던 속내가 읽히는 말이었다. 그가 속 좁은 일본인들을 대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하긴 했지만 우리도 이제 일본에 문명을 전해주었다는 것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어떻게 그것을 자기 것으로 체화했는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는 아량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한국에 없는 문화유산을 일본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간직하고 있는 곳들이 있으니 바로 교토 고산사(高山寺·고잔지)에 남아있는 원효와 의상대사의 흔적들이다.○ 원효와 의상대사 초상 고산사는 교토 서북쪽 도가노오(e尾) 산 속에 있는 사찰이다. 산골짜기에 있는 작은 사찰을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이나 걸려 찾은 이유는 신라 명승 원효(617∼686)와 의상대사(625∼702) 일대기를 그린 두루마리 그림과 초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절 살림을 맡고 있는 다무라 유교(田村裕行) 집사가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역시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절을 찾는 이들은 하루에 수십 명 수준. 이 중 30%가 한국에서 온 불자(佛子)라고 한다. 다무라 씨는 “일본인들은 경내를 구경하고 경치를 감상하기 바쁜데 한국인들은 합장하고 기도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고산사가 소장한 원효와 의상의 그림은 이들의 일대기를 그린 ‘화엄종조사회전(華嚴宗祖師繪傳)’이라는 총 일곱 권짜리 에마키(繪卷·두루마리 그림)와 초상화 한 점씩이다. 모두 국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다무라 씨에게 그림을 보여 달라 하자 “교토박물관에 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2006년 교토박물관이 그림을 전시한 뒤 더 많은 관람객들에게 보이기 위해 임대 형태로 박물관에 남겼다는 것이다. 워낙 미술사적 가치가 높아 고산사에 소장되었을 때도 일반 공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원효와 의상대사의 초상화가 일본 사찰에 있게 된 걸까. 관련 연구로 메이지(明治)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임중 메이지대 연구원은 “8세기경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화엄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원효와 의상대사”라며 “원효와 의상은 당시 일본뿐만 아니라 화엄종 종주국인 중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학식이 높은 고승들이었다”고 했다. 원효와 의상은 약간 다른 식으로 일본에 화엄종을 전했다. 원효는 저술을 많이 남겼고 의상은 제자를 많이 길러냈다.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별기’ 등 화엄사상을 집대성한 원효의 저서는 240여 권에 달하는데 이 중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의상이 길러낸 제자 중에 한 명인 심상(審祥)은 화엄종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도일(渡日)해 740년 동대사(東大寺·도다이지)에서 화엄경을 처음 강연했다. 원효와 의상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일본 승려들이 많은데 가마쿠라 시대에 활동했던 묘에(明惠) 스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왕실의 적극적 후원 속에서 번성한 화엄종이 나라 시대 이후 왕권 약화로 쇠퇴하자 묘에는 고산사를 창건해 화엄종을 다시 일으키려 했다. 김 연구원은 “묘에가 자기 나라 일본이나 화엄종 종주국인 중국의 승려가 아닌 원효와 의상을 그린 것을 보면 당시 일본에서 이들의 명성이 높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존경받았던 원효와 의상 묘에의 명을 받아 두 고승에 관한 그림을 실제 그린 이는 묘에의 제자이자 당시 이름 높은 화승(畵僧)이었던 조닌(成忍) 스님이었다. 조닌은 중국 송나라 고승 전기인 ‘송고승전(宋高僧傳)’에 나오는 원효와 의상의 일대기와 가르침을 토대로 그렸다. 두루마리 일곱 권 중 세 권이 원효도(元曉圖)이고 네 권이 의상도(義湘圖)이다. 원효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당나라 유학길에 동굴에서 자던 원효가 목이 말라 맛있게 먹은 물이 해골에 담긴 것이었음을 알고 큰 깨침을 얻는 대목이고 의상도에서는 당나라 유학을 하던 의상에게 반한 선묘 낭자가 귀국길에 오른 의상이 탄 배를 향해 몸을 날려 용이 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치밀하면서도 대담한 화법(畵法)을 구사한 두 고승의 초상화는 현재 남아있는 초상화 중 실제 이미지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검은 수염을 기른 원효는 생전의 파격적 행보에 걸맞게 호방한 모습이고 의상은 인자하고 후덕한 모습이다. 다무라 씨는 “두 분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한국에 있던 원본을 일본 화가들이 베껴 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현재 초상화 원본은 한국에 남아있지 않다.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떻든 일본 화가들이 한국에 와서 존경받는 스님들의 초상화를 모사(模寫)해 갈 만큼 1200∼1300년대 한일 간 문화 교류가 매우 활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교토=정미경 mickey@donga.com·하정민 기자}

    • 201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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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황제’의 세대교체…랄프로렌 “11월 CEO 물러나겠다”

    미국의 ‘패션 황제’ 랄프 로렌(76)이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랄프 로렌’의 최고경영자(CEO) 직을 사퇴한다고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이 29일 보도했다. 1967년 랄프 로렌을 창업한 지 48년 만이다. 로렌 회장은 이날 “11월 CEO에서 물러날 계획이다. 다만 이사회 의장 및 최고창의성책임자(CCO) 직함은 계속 유지한다. CEO에서 물러나도 항상 회사를 위해 고민하고 회사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의 후임자는 스웨덴 패스트패션(SPA) 브랜드 H&M의 임원 출신으로 현재 랄프 로렌의 중저가 의류 브랜드 올드네이비의 사장인 스테판 라르손이다. 라르손은 올드네이비에 합류하기 전 H&M에서 15년간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이 회사 수입을 30억 달러(약 3조5400억 원)에서 170억 달러(약 20조6000억 원)로 끌어올렸다. 같은 기간 H&M이 진출한 나라도 세게 12개국에서 44개국으로 늘었다. 미 언론은 명품 패션의 대명사인 랄프 로렌이 ‘패스트패션 전문가’를 후임자로 결정했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또 그의 세 아들 중 차남인 데이비드 로렌(44)이 랄프 로렌의 광고 및 마케팅 담당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데도 그가 아들을 제치고 업계 전문가를 택했다는 점에 찬사를 보내는 분위기다. 이는 패스트패션의 영향력 급증, 실제 매장이 아닌 온라인을 통해 옷을 구입하는 소비자 패턴 변화 등을 반영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로렌 회장 본인도 WSJ와의 인터뷰에서 “회사는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39년 뉴욕 브롱스의 벨라루시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로렌은 1967년 남성 넥타이 디자인 사업을 시작했다. 창업 5년 만인 1972년 폴로 선수의 로고가 새겨진 반소매 셔츠를 만들어 대히트를 쳤고 이후 전 세계로 사업을 확장했다. 2014년 랄프 로렌 그룹의 매출은 76억 달러(약 86조9680억 원)이며, 그의 개인 재산도 포브스가 추정한 미국 74위 부자인 70억 달러(8조2600억 원)다. 한편 NYT는 랄프 로렌의 퇴진을 미국 디자이너들의 황금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분석했다. 로렌 회장과 마찬가지로 개인 이름을 딴 브랜드를 갖고 있으며 유대계 미국인이기도 한 캘빈 클라인(72)과 도나 카란(67)은 미 3대 패션 디자이너로 불리며 미국 패션을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 패션에 맞먹는 산업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 캘빈 클라인은 2002년, 도나 카란은 올 6월 현역에서 은퇴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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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 시리아 반군에 첫 공습

    러시아가 시리아 서부 도시 홈스와 인근 하마 등지에서 첫 공습을 개시했다고 CNN 등이 미국 국방부 관리의 발언을 인용해 30일 보도했다. 홈스는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약 160km 떨어져 있다. 이번 공습은 이날 러시아 상원 격인 연방의회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요청한 시리아 파병 요청을 승인함에 따라 이뤄졌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장은 “러시아 공군이 시리아 정부군의 이슬람국가(IS) 척결 작전을 지원할 것”이라며 “오직 공군력만을 사용할 것이며 지상군 파견은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중동에서 군사개입을 단행한 것은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26년 만이다. CNN은 미 정부 고위 관리들을 인용해 시리아 서부 라타키아 공군기지에 주둔 중이던 러시아 전투기들이 홈스의 반군 기지를 공습했다고 전했다. 쿠르드계 언론 슬레마니 타임스도 러시아 수호이(Su)-24 전폭기 2대가 홈스 인근 도시 하마에도 공습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 항구인 타르투스에 자국 해군의 기항권을 이미 확보했고 최근에는 최신 전투기도 여럿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뉴스는 러시아 해군이 지중해로 진출하는 규모도 크게 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일주일 동안 다목적 상륙함을 포함한 수많은 군함이 흑해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시리아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공습 개시 및 군사개입 확대가 미국 주도의 서방 연합군과는 별도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리아 내전의 해법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러시아로 옮겨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리아 해법을 놓고 정면충돌한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중동 전문가인 미 전직 외교관의 발언을 인용해 “미국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러시아가 시리아 사태에서의 역할을 늘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의 군사개입으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존속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고 분석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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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 핵심인력 속속 이탈…이유는?

    올해 1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공격으로 12명의 사망자를 낸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의 핵심 인력이 속속 이탈하고 있다고 폭스뉴스 등이 30일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또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각종 성역에 대한 도발로 논쟁을 유발한 샤를리 엡도의 편집 방향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폭스뉴스는 ‘뤼즈’라는 필명으로 활동해온 샤를리 엡도의 대표 만평가 레날 뤼지에 씨(43), 칼럼니스트 파트리크 펠루 씨(52) 등이 최근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모두 테러 현장에서 이 참극을 경험한 바 있다. 뤼지에 씨는 이번 주 안에 공식 사임 절차를 밟겠다는 뜻을 회사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펠루 씨도 이달 26일 프랑스 라디오방송 Web7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1월까지 퇴사하겠다. 테러로 사라진 동료들을 생각하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밝혔다. 샤를리 엡도는 핵심 인력 이탈 외에도 여러 악재를 겪고 있다. 샤를리 엡도는 올해 9월 초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쿠르드 꼬마 알란 쿠르디(3)에 관한 만평을 게재한 후 국내외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당시 샤를리 엡도는 만평에서 “유럽 기독교도는 물 위를 걷지만 무슬림 아이는 물 아래로 가라 앉는다”는 문구를 게재해 ‘언론의 자유 뒤에 서 인종차별적인 언사를 일삼는다“는 질타를 받았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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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국가안보국 폭로’ 前 요원 스노든, 트위터 계정 만들자…

    2013년 6월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을 폭로했던 전 NS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32)이 지난달 29일 트위터 계정(@Snowden)을 만들었다고 텔레그래프 등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스노든은 올해 8월 미국의 유명 천체 물리학자 겸 프린스턴대 교수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57)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에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타이슨이 스노든에게 트위터를 개설할 것을 제안하자 그는 이를 수락한 바 있다. 스노든은 트위터의 자기 소개란에 “한 때 미국 정부를 위해 일했고 이제 대중을 위해 일한다”라고 적었다. 그의 첫 트윗인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Canyouhearmenow?)’는 한 시간 만에 무려 25만 번이 리트윗됐다. 스노든의 트위터 계정은 생긴 지 약 10시간 만에 86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모았다. 하지만 스노든 본인이 친구맺기(팔로잉)를 한 대상은 NSA의 트위터 계정이 유일하다. 스노든은 NSA 본부가 있는 미 메릴랜드 주 포드 미드를 거론하며 “포트 미드에 있는 NSA 직원 수천 명이 (나를 감시하기 위해) 트위터를 개설했다”고 비꼬기도 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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