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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로는 안 돼.”런던 올림픽 개막을 한 달가량 앞둔 6월 중순. 대한양궁협회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표팀 맏언니 최현주(28·창원시청) 때문이었다.‘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는 대표선발전을 통과한 최현주가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극심한 부진에 빠졌기 때문이다. 연습 때 10점 만점에 5점이나 6점을 쏘는 일이 빈발했다. 컨디션이 좋을 땐 곧잘 쏘다가도 안 좋을 땐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난조를 겪었다. 롤러코스터 같은 최현주 때문에 대표팀 전체 분위기가 널뛰기를 했다.그에겐 ‘폭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당시 한 관계자는 “명색이 대표팀 선수인데 어떨 때는 중학교 3학년보다 못할 정도로 형편없이 활을 쏜다”고 푸념을 했다.○ 사상 첫 퇴출 선수 될 뻔최현주를 대표팀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우세해졌다. 이는 사상 초유의 일이자 대한양궁협회가 수십 년 동안 지켜온 대표 선발 원칙을 스스로 깨는 일이었다.양궁의 대표선발전은 치열하고 공정하기로 유명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니 금메달리스트 할아버지라도 특별한 어드밴티지를 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평가전 성적으로만 대표를 선발한다. 그렇게 뽑은 선수들이 지금까지 모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왔다. 그 원칙을 협회가 스스로 깨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국 여자 양궁의 빛나는 전통인 올림픽 단체전 7연패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협회는 장영술 총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에게 “최현주를 다른 선수로 교체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단호했다. 최현주를 안고 가겠다는 거였다. 코칭스태프는 장시간 회의 끝에 “남은 한 달간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최현주를 제 컨디션에 올려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최현주는 런던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런던의 기적양궁 대표팀은 19일 런던으로 출국했다. 그런데 직전까지도 최현주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3일 강원 원주시 제1군수지원사령부에서 열린 실업팀 현대백화점과의 연습 경기에서 최현주는 3엔드와 4엔드에 각각 5점짜리와 6점짜리를 연달아 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 코칭스태프의 속은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모든 국민이 금메달을 의심치 않고 있는데 최현주가 포함된 여자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였기 때문이다.런던 올림픽 양궁 랭킹라운드가 열리기 하루 전인 26일. 갑자기 기적이 일어났다. 최현주가 잃었던 감을 찾은 것이다. 그것도 연습이 끝나기 1시간 반 정도 전의 일이었다. 박채순 여자 대표팀 코치는 “어느 순간 현주가 급격히 좋아지더라. 그래서 현주를 불러 ‘그래, 지금처럼 하면 되는 거야’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현주가 ‘저는 포기 안 한다고 했잖아요’라고 답하더라. 이제 됐다 싶었다”고 했다.○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30일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여자 양궁 단체 중국과의 결승전. 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갑자기 해가 뜨더니 운동장 저편에 무지개가 걸렸다. 어쩌면 한국의 우승을 예고하는 길조였는지도 모른다.믿었던 이성진(27·전북도청)과 기보배(24·광주시청)는 평소답지 않았다. 1엔드부터 이성진은 7점을, 기보배는 6점을 쏘는 등 시종 불안했다. 위기에 빠진 한국 양궁을 살린 건 최현주였다. 2번 사수였던 최현주는 8차례 활시위를 당겨 5번이나 10점 과녁을 꿰뚫었다. ‘폭탄’이라는 이유로 2번 사수에 배치된 최현주가 실질적인 에이스로 팀을 이끈 것이다. 201-209에서 마지막 사수 기보배의 한 발이 남았다. 기보배는 여기서 9점을 쐈고 한국은 210-209 한 점 차로 극적인 금메달을 획득했다. 여자 단체전이 시작된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7개 대회 연속 우승이었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단연 최현주였다. 그는 “그동안 너무 부진해 성진이와 보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오늘 활약으로 조금이나마 보답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최현주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장 감독은 눈물을 터뜨렸다.○ 늦깎이의 반란은 이제 시작코칭스태프가 말하는 최현주는 ‘노력형’ 선수다. 다른 올림픽 메달리스트와는 달리 최현주는 20대 후반에야 처음 태극마크를 단 늦깎이다. 그 흔한 유소년이나 상비군, 주니어 대표도 한 번 못 해 봤다. 국제대회 경력은 올해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 두 차례 출전한 월드컵이 전부다.대표 선발 과정부터 드라마틱했다. 3차례에 걸친 평가전과 1차 월드컵까지 그는 4위였다. 하지만 5월 초 터키에서 열린 2차 월드컵에서 막판 뒤집기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활을 잘 못 쏠 때도 다른 애들보다 느릴 뿐 부족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꾸준히 노력해 온 게 빛을 본 거 같다”고 말했다. 랭킹라운드 21위로 개인전에 출전하는 그는 “단체전이 모두를 위한 경기였다면 개인전에서는 나 ‘최현주’만을 위한 후회 없는 경기를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최현주의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현주의 끊임없는 노력이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하루 전 랭킹 라운드(순위 결정전)에서는 개인 1∼3위를 휩쓸었고 세계 신기록도 3개나 작성했다. 연습할 때 10번을 쏘면 8번은 230점대의 고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의 4강 탈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임동현-김법민-오진혁으로 구성된 한국 대표팀은 29일 단체전 4강에서 복병 미국에 덜미를 잡혔다. 219-224의 완패였다. 미국이 잘했다기보다는 한국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3, 4위전에서 멕시코에 이겨 동메달을 땄지만 지난 3개 올림픽에서 연속으로 단체전을 제패해 왔던 남자 양궁이기에 아쉬움은 컸다. 예전 같으면 우리 선수들이 좀 못 쏴도 승부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지레 부담을 가진 외국 선수들이 스스로 무너진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세계 양궁계는 급격히 상향 평준화됐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한국인 양궁 지도자들의 대대적인 해외 진출이다. 이들의 체계적인 지도를 받은 외국 선수들은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장점을 벤치마킹했다. 이날 한국을 꺾은 미국 사령탑은 이기식 감독이다. 한국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고, 호주를 거쳐 몇 해 전부터 미국에 정착했다. 이 감독은 남자 개인 세계 랭킹 1위 브래디 엘리슨을 키워내기도 했다. 한국을 꺾은 미국은 이날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에 패했는데 이탈리아 지도자 역시 한국인인 석동은 감독이다. 3, 4위전에서 한국과 만난 멕시코 대표팀의 감독 역시 한국인인 이웅 감독이었다. 이날 4강에 오른 4개국의 지도자는 모두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확인됐듯 한국 양궁이 세계 정상을 지키기는 앞으로 점점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양궁연맹 역시 한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계속 제도를 바꾸고 있다. ‘1인자’ 한국 양궁이 가야 할 길은 험난해 보인다. 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잘 쏠 줄은 몰랐다. 한국 남자양궁 대표팀이 무더기로 세계기록을 경신하며 런던 올림픽 양궁 전 종목 석권(남녀 개인전 및 단체전)의 빛을 밝혔다. 27일 양궁 남녀 랭킹라운드가 열린 영국 런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 현지 시간으로 오전에 시작된 남자부 경기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협회 관계자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임동현-김법민-오진혁으로 팀을 짠 한국대표팀은 이날 세계신기록만 3개를 작성했다. 세 선수 모두 올림픽기록은 간단히 경신했다. 타국 선수들은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랭킹라운드는 개인 및 단체전에서 출전 조를 결정하기 위한 순위 결정전이다. 개인전은 상위 64명이 출전해 토너먼트 방식으로 승자를 가리는데 랭킹 라운드 1위는 64위와 경기를 치른다. 지난 두 차례의 올림픽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땄던 임동현은 72발을 쏜 랭킹 라운드에서 합계 699점을 기록하며 올해 5월 자신이 세웠던 세계기록(696점)을 넘었다. 이번이 첫 올림픽 출전인 김법민도 698점의 세계신기록으로 2위에 올랐다. 오진혁까지 690점으로 3위에 오르며 한국 선수들은 개인 1∼3위를 휩쓸었다. 이 세 명의 점수를 합산한 단체 랭킹 라운드 점수 2087점도 세계신기록이었다. 2위 프랑스(2021점)와는 무려 66점 차이다. 이날 한국 선수들이 세계신기록을 양산하는 데 날씨가 크게 작용했다. 대회가 열린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는 평소 강한 바람이 불기로 악명 높다. 그런데 이날은 다소 흐린 날씨에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국내에서 바람이 부는 곳만 찾아다니며 극한 훈련을 해 온 한국 선수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임동현과 김법민은 이날 72발의 화살 가운데 50발씩을 10점 과녁에 꽂아 넣었다. 과녁 정중앙인 엑스텐(X10)에는 각각 22발과 26발을 쐈다. 대기록을 세우고도 한국 선수들은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임동현은 “기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일 단체전이 중요하다.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장영술 양궁 총감독은 “선수들이 큰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 선수들은 한국 팀과 상대할 때 더욱 부담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1위로 남자단체전 8강에 진출한 한국은 28일 오후 11시에 영국-우크라이나 승자와 8강전을 치른다. 한편 이성진, 최현주, 기보배로 구성된 여자 대표팀도 합계 1993점으로 단체전 1위에 올랐다. 기보배와 이성진이 나란히 671점을 쏴 개인 1, 2위를 차지한 반면 최현주는 651점(21위)으로 다소 부진했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열심히 하되 (한국 다음으로) 2등만 해.”(황도하 대한양궁협회 부회장) “그럼요, 우리는 2등이 목표입니다.”(이웅 멕시코 대표팀 감독) 27일 런던 올림픽 양궁 남녀 랭킹라운드가 열린 런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 여느 대회처럼 이곳에서도 한국인 양궁 지도자들의 작은 ‘동창회’가 열렸다. 하지만 외모는 한국인인데 다른 나라 마크를 달고 대회에 출전한 선수가 유독 눈에 띄었다. 일본에 귀화한 여자선수 엄혜련(일본명 하야카와 렌·25)이 그 주인공이다.○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올림픽 출전은 모든 선수의 꿈이다. 그렇지만 ‘양궁 국가대표가 되는 게 올림픽 금메달 따기보다 어렵다’는 말처럼 한국 양궁 국가대표가 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엄혜련도 그랬다. 고교 졸업 후 실업팀 현대모비스에서 뛰었지만 태극마크를 단 적은 없다. 올림픽 출전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엄혜련의 언니 엄혜랑이 양궁선수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출전했다. 엄혜련은 지난해 언니의 권유로 일본 대표 선발전에 나갔다가 덜컥 대표로 뽑혔다. 엄혜랑은 탈락해 자매의 동반 출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언니와 동생은 각각 2006년과 2007년 일본에 귀화했다. 2008년 호주 국가대표 마크를 달고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던 남자 선수 김하늘은 이번 대회엔 나오지 못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호주로 귀화했다”던 그는 호주 대표팀의 단체전 출전이 불발되면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아들을 위해 국적을 바꾸다 미국 여자 양궁 대표팀의 간판 카투나 로리그도 대표적인 귀화 선수다. 소련 국가대표였던 그는 소련이 망한 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는 독립국가연합 소속으로 참가했다. 1996년 애틀랜타와 2000년 시드니 대회에는 출생지인 그루지야(현 조지아) 대표로 출전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2008년 베이징 대회부터는 미국 대표가 됐다. 이번 대회까지 6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하는 여자 기계체조의 옥사나 추소비티나 역시 세 차례 국적을 바꿨다. 1992년에 독립국가연합 대표였다가 이후 3개 대회에서는 우즈베키스탄 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병 치료를 위해 독일로 옮긴 뒤 2008년 대회부터 독일 대표로 출전하고 있다. 추소비티나는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오륜기 달고 뛰는 무국적 선수들 한편 이번 대회에는 국적 없이 뛰는 선수도 4명이나 된다. 네덜란드령 앤틸리스 제도 출신의 프힐리피너 판 안홀트(요트), 레히날트 더 빈트(유도), 리마르빈 보네바시아(육상)와 남수단의 구오르 마리알(마라톤)이 주인공이다. 신생국 남수단에서 온 마리알도 ‘신생 회원국은 최소 2년 후 올림픽 참가가 가능하다’는 규정에 따라 올림픽 출전이 무산될 뻔했으나 마지막에 구제됐다. 이들은 오륜기를 달고 뛴다. 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음식 종류는 정말 많아요. 그런데 먹을 게 김치밖에 없어요.” 한 선수의 푸념처럼 런던 올림픽파크 내 선수촌에 머물고 있는 한국 선수들은 매일 식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들의 증언은 다양하다. “초밥이 나왔는데 설익은 밥을 써서 밥을 먹는 건지 쌀알을 씹는 건지 모르겠다” “너무 짜거나 너무 달아 입맛에 맞지 않는다” 등등. 브루넬대에 자리 잡은 한국 선수단 훈련 캠프에 있는 선수들은 매일 태릉선수촌 못지않은 식사를 즐기고 있다. 한국에서 날아온 요리사들이 한식 위주의 식단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훈련장 사정 때문에 올림픽파크 선수촌에 머무는 양궁과 사격 등 몇몇 종목 선수들은 외국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 사격 선수는 “베이징 선수촌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베이징에는 산해진미가 산처럼 깔려 있었는데 뭘 먹어도 맛있었다. 하지만 런던은 종류는 많은데 먹을 게 없다”고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김치 맛 하나만큼은 일품이라고 한다. 선수촌 식당은 영국식과 북미식, 아시아식, 무슬림식, 아프리카식 등 5개의 뷔페 코너로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전 세계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코너는 아시아식이다. 그중에서도 김치는 테이블에 올려놓기가 무섭게 동이 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많은 한국 선수들이 “다른 음식은 제대로 못 만들면서 어떻게 김치는 이렇게 맛있게 담갔을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 비밀은 최근 주방 옆을 지나던 한 한국 코치에 의해 밝혀졌다. 우연히 주방 안을 엿보게 된 그 코치는 “담근 김치를 내놓는 줄 알았더니 요리사가 한국 J김치의 봉투김치를 가져오더니 가위로 포장을 잘라서 접시 위에 올려놓더라”고 전했다. 이 얘기에 많은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J김치는 날이 갈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다. 24일 저녁 식사 때는 김치가 금방 떨어지는 바람에 훈련을 마치고 늦게 도착한 몇몇 한국 선수들은 김치 없이 밥을 먹어야 했다는 후문이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머리도 지끈거립니다. 공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23일 런던 올림픽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승강기 사고가 났습니다. 1층에서 출발한 승강기가 2층으로 가는 도중 딱 멈춰버린 거죠.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왜 저였을까요. 동아일보 취재팀장인 황태훈 선배와 저를 포함해 9명의 각국 취재진과 올림픽위원회 관계자가 꼼짝없이 좁은 승강기 속에 갇혀 버렸으니 말이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떨어져도 죽진 않겠다”며 농담을 주고받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심각해졌습니다. 문은 열리지 않고 승강기 내 비상전화를 걸어도 “기다리라”며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온 탓이죠. 그때부터 한 편의 영화가 시작됐습니다. 인원 구성도 그럴듯했습니다. 한국 기자 2명과 중국 기자 2명, 나머지 5명은 영국,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었습니다. 굳이 제목을 달자면 ‘다국적 엘리베이터 대소동’ 정도 될까요. 다들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지만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는 신호가 떴습니다. 20분가량 지나자 승강기 내 공기가 탁해졌습니다. 천식이 있다는 대회 조직위의 모리스 아주머니가 주저앉습니다. 땀이 비 오듯 흐릅니다. 구조를 요청하는 문자를 후배에게 보냈지만 신호가 약해 전달되질 않습니다. 누군가가 “천장을 뚫고 나가자”고 외칩니다. 하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 철제 천장입니다. 10여 번의 시도 끝에 후배에게 문자를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후배가 대회 조직위에 가서 상황을 전하자 “담당자가 오고 있으니 좀 기다리라”고 했답니다. 마음이 급해진 후배가 “호흡 곤란을 겪는 사람이 있다. 위험 상황”이라고 하자 그제야 불난 호떡집이 됐습니다. 구조대는 사고 발생 40분 후 도착했고 10분간의 작업 끝에 마침내 승강기 문이 열립니다. 50분 만에 탈출 성공. 주저앉아 있던 모리스 아주머니가 눈물을 터뜨립니다. 몰려든 구경꾼들이 박수를 칩니다. 땀범벅으로 나오자 대회 조직위 누군가가 “괜찮냐”고 묻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생수 한 병을 건넵니다. MPC 내에서 꼬박꼬박 돈을 받던 물입니다. 깐깐하고 느리게 굴던 조직위로부터 처음 받은 호의입니다. “Thank you!!”이헌재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최근 출간된 ‘올 어바웃 올림픽’의 양궁 편에는 “한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강력하다. 온통 신궁들로 포진한 여자 선수들은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는 내용이 있다. 한국 양궁은 자타 공인 세계 최강이다. 선수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산(産) 활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절반 이상이 한국 브랜드인 윈앤윈과 삼익 제품을 쓴다. 한국산 활을 쓰는 선수 중에는 북한의 베테랑 여자 궁사 권은실(29)도 포함돼 있다. 권은실은 북한 양궁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번 올림픽 여자 개인전에 출전한다. 23일 연습을 하기 위해 런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권은실은 삼익 마크가 찍힌 활을 꺼내더니 활을 쏘기 시작했다. 권은실이 삼익 제품을 쓴 지는 꽤 오래됐다. 권은실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는데 이때도 삼익 활을 썼다. 삼익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삼익 활을 원하는 북한 선수들에게 활을 무료로 협찬해 왔다. 권은실에게는 지난해부터 후원사가 하나 더 늘었다. 역시 한국 브랜드인 윈앤윈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열린 중국과 북한의 친선대회 당시 권은실은 윈앤윈 관계자에게 “새 활을 하나 받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고 윈앤윈은 선뜻 활을 선물했다. 활과 액세서리 등을 합쳐 250만 원 상당의 고가 제품이었다. 최근 들어 중국 선수들이 윈앤윈 제품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한 게 권은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권은실은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북한 선수단의 몇 안 되는 메달 후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최근 북한 남녀 탁구팀과 더불어 권은실을 북한팀의 강력한 메달 후보로 꼽았다. 장영술 한국 총감독은 “여자 선수로는 파워 있게 활을 쏘는 선수다. 기복이 좀 있지만 8강권에는 충분히 들어올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어떤 활을 쓰든 권은실이 메달을 딴다면 한국 활 제조업체들의 지원도 한몫을 했다고 봐야 한다. 권은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의 윤옥희에게 패해 메달을 놓쳤다. 권은실 이전에 한국 양궁과 깊은 인연을 맺은 북한 선수는 최옥실을 들 수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 개인전에서 한국은 금메달(윤미진)과 은메달(김남순), 동메달(김수녕)을 모두 석권하는 사상 최고의 성적을 냈다. 한국 팀이 시상대를 모두 차지하게 한 일등공신이 바로 최옥실이었다. 당시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의 최대 난적은 이탈리아의 나탈리아 발리바였다. 그런데 최옥실이 8강전에서 우승 후보 발리바를 상대로 의외의 승리를 거두면서 한국 선수들의 걸림돌을 제거해 줬다. 정작 최옥실은 4강전에서는 김남순에게 진 데 이어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김수녕에게 패해 결국 메달을 따지 못했다. 한국 선수단은 최옥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십시일반으로 선물까지 전했다고 한다. 한 양궁 관계자는 “한국 여자 양궁의 최고의 순간은 최옥실 덕분에 가능했다. 최옥실이 3, 4위전에서 패한 뒤 너무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10년이 지난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당시 최옥실이 사용했던 활도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인 삼익 제품이었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8970엔(약 13만 원)을 내랍니다. 헉∼ 소리가 저절로 났습니다. 택시 한 번 탔을 뿐인데…. 김포∼제주 간 편도 항공료보다 비쌌습니다. 올 초 일본 오키나와에 국내 프로야구 전지훈련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LG 훈련 캠프까지 가는 버스는 몇 시간에 한 대꼴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습니다. 50분가량 달린 뒤 태어나 가장 비싼 택시 요금을 치러야 했습니다.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고 가방까지 친절하게 내려주던 택시 운전사의 밝은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그런데 몇 달 후 ‘신기록’이 깨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교통비가 비싸다는 영국 런던에서였습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런던 올림픽 취재차 21일 현지에 도착했습니다. 런던의 택시비가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올림픽 파크 내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대회 운영위원회 직원과 미팅 약속을 해뒀기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취재팀이 가져온 짐도 한 꾸러미였지요.문제는 런던 서쪽에 위치한 히스로 공항에서 동북쪽에 있는 올림픽 파크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인천공항에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정도의 거리(국내 예상 택시요금 5만3800원)였습니다.런던의 명물 ‘블랙캡’은 넓고 쾌적했습니다. 운전사는 친절했고, 그 많은 짐을 싣고도 운전사를 포함해 5명의 인원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었습니다. 블랙캡은 씽씽 달렸습니다. 걱정했던 런던의 교통 체증도 생각보단 심하지 않았습니다. 기본요금도 2.40파운드(약 4300원)로 만만해 보였지요.하지만 미터기는 왜 그리 빨리 올라가는 걸까요. 요금이 60파운드(약 10만7000원)를 넘길 무렵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반도 못 왔다”였지요. 결국 1시간 남짓에 택시비는 130파운드(약 23만2800원)가 나왔습니다. 잘만 하면 한국에서 일본도 다녀올 수 있는 국제선 항공권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큰 부담 없이 택시를 탈 수 있는 한국이 벌써부터 그리워지기 시작합니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는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8·세종고)는 요즘 잘나가는 광고 모델이다. 귀여운 얼굴과 늘씬한 몸매, 여기에 올림픽 특수까지 겹쳐 올해만 해도 에어컨과 주스, 생리대, 샴푸, 아이스크림 등 각종 TV CF에 얼굴을 내밀었다.하지만 19일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생리대와 샴푸 광고에서는 여전히 손연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에어컨과 주스 광고에는 당분간 나올 수 없다.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대한체육회(KOC)가 올림픽 출전 선수의 상업적 활동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IOC 헌장과 KOC 마케팅 규정에 따르면 올림픽 개막 9일 전부터 폐막 3일 후까지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는 IOC의 허가 없이 광고에 출연할 수 없다. 한국 시간으로는 7월 19일부터 8월 15일까지다. 다만 ‘톱 파트너’라고 불리는 11개의 IOC 공식 후원사는 예외다. 코카콜라(음료), 에이서(컴퓨터), 아토스(정보통신), 다우(화학), GE(가전제품), 맥도널드(패스트푸드), 오메가(시계), 파나소닉(TV 및 오디오), P&G(생활용품), 삼성(무선통신), 비자(신용카드) 등 11개의 회사는 올림픽 기간에 선수들의 광고 출연은 물론이고 올림픽 마크와 마스코트 사용 등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갖는다. 손연재가 출연한 휘센 에어컨 제조사인 LG는 11개의 공식 후원사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생리대 위스퍼와 샴푸 팬틴은 공식 후원사인 P&G 산하 브랜드다. KOC 관계자에 따르면 톱 파트너들은 이상과 같은 독점적 권리의 대가로 각각 연간 1조 원 이상을 IOC에 낸다. 같은 이유로 ‘마린 보이’ 박태환(23·SK텔레콤)은 며칠 전까지 나오던 삼성의 노트북 광고에 더는 출연할 수 없다. 삼성은 11개의 공식 후원사에 포함되지만 분야가 스마트폰 등 무선통신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노트북 등 컴퓨터 분야의 공식 후원사는 에이서다. 만약 선수나 기업이 이 규정을 어기면 IOC는 메달을 박탈할 수 있다. 또 차기 국제대회의 출전을 제한할 수 있고 국가대표 선발에도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이 IOC 규정을 교묘하게 피하는 앰부시(매복) 마케팅으로 선회하고 있다. 앰부시 마케팅은 소비자가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를 공식 후원사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마케팅 기법이다. 올림픽이란 말이 들어간 말을 쓰는 대신에 ‘태극전사를 응원합니다’라거나 ‘금메달을 기원합니다’ 등의 문구로 IOC의 규정을 살짝 피하는 것이다. 삼성은 19일 언뜻 보면 이전과 같은 ‘박태환 광고’를 내보냈다. 하지만 박태환 대신 그와 비슷한 체형의 ‘대역’을 출연시켰다.총인원 수십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올림픽은 기업들로서는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마케팅 무대다. 공식 후원사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IOC와 올림픽 효과를 얻고 싶어 하는 기업들의 머리싸움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1988년 서울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핑이 일어난 사례로 꼽힌다. 캐나다의 벤 존슨은 9초79의 당시 세계기록으로 테이프를 끊었다. 하지만 소변 검사에서 근육강화제를 복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실격 처리됐고 금메달은 칼 루이스(미국)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의학계에서는 서울 올림픽에서 당시 소련이 가장 많은 도핑을 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국가대표 선수단 주치의인 박원하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장(54·사진)은 1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소련 선수단은 선수촌에 입촌하지 않고 인천 앞바다에 띄워 놓은 유람선을 숙소로 썼다. 치외법권 지대나 다름없는 그 안에서 대대적인 ‘혈액 도핑’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게 정설처럼 알려져 있다”고 했다. 대한체육회 의무위원장이기도 한 박 교수는 수년간 도핑분과위원장을 맡았던 대표적인 도핑 전문가다. 그는 2006년 도하와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한국 대표 선수단의 주치의로 활동하면서 도핑 방지와 부상 치료 등에 힘썼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혈액 도핑’이 지난 수십 년간 가장 유행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 피를 뽑아 두었다가 경기 며칠 전 자기 자신에게 수혈을 하는 것이다.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양이 많아지면서 운동 능력이 월등히 좋아진다. 금지 성분이 포함된 약을 먹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주삿바늘 자국을 제외하면 발각될 위험도 없다. 이에 따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혈액 도핑’을 잡아내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해왔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주삿바늘 없음(No needle)’ 정책에 따라 각 팀에서는 주사제를 쓸 수 없다. 모든 주사제를 대회조직위가 보관한다. 이전 대회까지는 각 팀이 주사제를 갖고 있다가 필요에 따라 주사를 놓은 뒤 이후 소명을 하면 됐다. 박 교수는 “2000년대에 동행한 한 종합대회에서 어떤 감독으로부터 ‘선수들에게 영양제를 주사로 놔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털어놓았다. 영양제에는 금지 약물 성분은 없지만 바늘을 사용한다는 자체가 도핑 위반이었기에 박 교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 감독은 “어차피 우리 둘만 비밀로 하면 되는 일 아니냐”며 끈질기게 졸랐다고 한다. 대회가 끝나고 귀국한 직후 박 교수는 경찰이 대표팀의 도핑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핑을 끝까지 막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박 교수는 “도핑은 어떤 식으로든 밝혀지고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선수들에게도 틈나는 대로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IOC가 경기력 강화 물질을 금지하기 시작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이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도핑이 적발된 사례(승마용 말도 포함)는 모두 99건에 이른다. 박 교수는 “선수들이 복용하는 보약이나 영양제 등을 모두 수거해 일반인들에게 먹여 본 뒤 안정성이 입증된 것만 선수들에게 돌려줬다. 다만 신고되지 않은 영양제를 먹는 선수가 나올까 봐 걱정이다. 도핑 테스트에 걸려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까지 망신당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2루 쇄도였다. 41세 노장 LG 최동수의 전력 질주는 연패 탈출을 향한 LG 선수들의 강한 열망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LG가 모처럼 공수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며 최근 7연패이자 홈구장 12연패의 늪에서 벗어났다. 1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SK의 경기. LG가 2-1로 간발의 리드를 지키던 8회말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최동수는 SK의 3번째 투수 이재영을 상대로 우중간에 떨어지는 안타를 쳐냈다. 걸음이 느린 최동수로서는 2루로 뛸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공을 잡은 건 강견으로 유명한 SK 김강민이었다. 하지만 최동수의 발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거침없이 2루로 뛰었다. 당황한 김강민이 뒤늦게 공을 던졌지만 최동수의 발은 이미 2루 베이스를 밟은 뒤였다. 이 주루 플레이 하나가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꿨다. LG는 한 점 차로 리드하고 있긴 했지만 불안한 처지였다. 6회말 1사 만루의 황금 찬스를 무산시키는 바람에 역전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한 점이 절실했던 LG로선 무사 2루 상황이 반가웠다. 최동수는 곧바로 발 빠른 주자 김일경으로 교체됐다. 이후 1사 1, 3루 김태군의 타석 때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스퀴즈 번트가 나왔다. 방망이가 약한 김태군이 1루 쪽으로 스퀴즈 번트를 대 한 점을 보탰다. “상황에 따라 에이스 주키치를 중간 계투로 투입할 수도 있다”며 총력전을 예고했던 LG 김기태 감독은 6회에 정말로 주키치를 등판시켜 2이닝을 막게 했다. 8회와 9회는 각각 유원상과 봉중근이 무실점으로 잘 던졌다. LG의 3-1 승리. 전직 메이저리거이자 절친한 친구 사이인 서재응(KIA)과 김선우(두산)의 선발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광주 경기는 김선우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김선우는 6이닝 무실점 호투로 두산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5월 22일 SK전 이후 56일 만의 승리. 최근 개인 5연패의 사슬도 끊었다. 서재응 역시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1회 김현수에게 결승 2점 홈런을 맞은 게 패인이 됐다. 목동 경기에서는 넥센이 롯데에 6-3으로 역전승했다. 삼성-한화의 대전 경기는 비로 취소됐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성적이 좋든 나쁘든 프로야구 LG는 화제가 만발한 팀이다. 그래선지 야구판에는 LG와 관련된 신조어가 많다. LG는 또 사방이 라이벌이다. 시즌 초 의외의 선전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LG는 6월 말 이후 극도의 부진에 빠져 있다. 공교롭게 LG의 발목을 잡은 팀들은 모두 LG와 오랜 기간 숙적 관계였다. ▽엘꼴라시코=순항하던 LG의 추락은 6월 22일 잠실 롯데전에서 시작됐다. 이날 LG는 9회까지 4-2로 앞서다 9회초 마무리 봉중근이 강민호에게 동점 2점 홈런을 맞은 뒤 역전패했다. 문제는 봉중근이 홧김에 소화전을 오른 주먹으로 쳐 골절상을 당한 것. 이튿날 LG는 마무리 부재 속에 또다시 9회 이후 역전패했고 다음 날은 완패했다. 롯데와의 3연전을 다 내준 LG는 올 시즌 처음으로 5할 승률 아래로 떨어졌다. 엘꼴라시코(LG와 ‘꼴찌’ 롯데 대결을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대결인 ‘엘클라시코’에 빗대 만든 신조어)에서 승리한 롯데는 이후 급상승세를 탔다. ▽엘롯기 동맹=2000년대 중반 LG는 롯데, KIA와 함께 하위권을 전전했다. 팬들은 암흑기를 맞은 이 세 팀을 묶어 ‘엘롯기 동맹’이라고 불렀다. 롯데전 3연패로 처음 5할 승률이 붕괴된 LG는 6월 26∼28일 KIA와의 잠실 3연전을 고스란히 내줬다. 올해 LG는 KIA와의 맞대결에서 2승 9패(1무)다. ▽모기업 대리전=LG는 상황이 가장 안 좋을 때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위용을 찾아가고 있던 삼성을 만났다. 모기업 간의 치열한 라이벌 의식은 야구단이라고 다르지 않다. 두 팀은 서로 트레이드도 하지 않는다. LG는 이달 3, 4일 삼성에 연패를 당했다. 일주일 후인 10일과 12일에도 두 경기 내리 한 점 차로 졌다. 비 때문에 2경기가 취소됐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6번 모두 다 질 뻔했다. ▽한 지붕 두 가족과 ‘엘넥라시코’=잠실구장을 함께 홈구장으로 쓰는 두산도 이번엔 도움이 되지 않았다. 6월까지 LG는 두산에 7승 1패의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었지만 7, 8일 경기에서는 연패를 당했다. ‘엘넥라시코’(LG와 넥센의 라이벌전)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 수년째 만나기만 하면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넥센에는 13일 2-10으로 완패했다. 시즌 상대 전적은 4승 8패. 이날 패배로 연패는 올해 최다인 ‘7’까지 늘어났다. ▽DTD=현대 시절 김재박 감독이 남긴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own Team is Down)’란 한국식 영어에서 유래한 유행어다. LG가 추락하면서 DTD란 말도 자연스럽게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LG는 15일 현재 32승 2무 41패로 6위 KIA에 4.5경기 뒤진 7위에 머물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LG의 운명은 DTD로 끝날까, 아니면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14, 15일 장맛비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LG는 17일부터 최근 회생의 조짐을 보이는 SK와 3연전을 치른다. 한편 삼성은 15일 대구에서 이승엽의 2점 홈런 등 장단 13안타를 집중시켜 KIA를 11-8로 꺾고 선두를 유지했다. 이승엽은 한일 통산 500홈런에 1개만을 남겨뒀다. 사직(한화-롯데), 잠실(넥센-LG), 문학(두산-SK) 경기는 비로 취소됐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국보’ 선동열(현 KIA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시절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손꼽혔지만 한 번도 세이브 1위를 해 보진 못했다. 요코하마에서 뛰던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둘이 10여 년 만에 마운드에서 맞대결을 벌인다. 이들을 포함해 한일 프로야구의 전설이 20일 오후 6시 서울 잠실구장에서 한판 승부를 겨루는 ‘넥센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매치 2012’의 양국 대표팀 명단이 12일 확정됐다. 한국 대표팀에는 선 감독을 비롯해 김시진(넥센) 이만수(SK) 김기태(LG) 한대화(한화) 류중일(삼성) 등 6개 구단의 현역 감독이 포함됐다. 여기에 ‘바람의 아들’ 이종범과 양준혁 박정태 이순철 등 22명의 정예 멤버를 꾸렸다. 일본 대표팀에는 통산 525홈런을 기록한 기요하라 가즈히로, ‘퍼펙트의 사나이’ 마키하라 히로미 등이 출전한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토 쓰토무 두산 수석코치, 오치아이 에이지 삼성 투수코치, 후쿠하라 미네오 한화 수비코치도 18명의 대표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과 한신 감독 출신 후지타 다이라 씨가 양 팀 지휘봉을 잡는다. 13일 티켓링크(www.ticketlink.co.kr)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며 SBS-ESPN이 생중계한다. 입장권 가격은 VIP석 8만 원, 테이블석 6만 원, 블루 2만5000원, 레드 2만 원, 옐로 지정석 1만5000원, 외야 자유석 1만2000원.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배구에서만 ‘블로킹’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야구에서 포수도 블로킹을 잘해야 한다. 10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LG전의 승부를 가른 것도 블로킹이었다. 삼성의 베테랑 포수 진갑용은 선발 투수 장원삼의 원바운드 공을 곧잘 막아냈다. 반면 LG 포수 김태군의 블로킹은 아쉬움이 남았다. 2-2 동점이던 5회 수비. 1사 1루 박한이 타석에서 투수 김광삼이 던진 2구째 원바운드 공이 김태군의 몸을 맞고 뒤로 빠지면서 1사 2루가 됐다. 박한이를 삼진으로 잡아내 한숨 돌렸지만 이승엽 타석에서 다시 원바운드 공이 김태군 뒤로 빠졌다. 이 공은 백네트까지 굴러갔고 그 사이 발 빠른 2루 주자 김상수는 홈까지 밟았다. 이 점수는 그대로 결승점이 됐다. 5이닝 2실점으로 3-2 승리를 이끈 장원삼은 8개 구단 투수 가운데 가장 먼저 10승 고지에 올랐다. 두산은 잠실에서 3-3으로 맞선 9회말 2사 1, 2루에서 터진 이원석의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한화에 4-3으로 역전승했다. 광주(KIA-롯데)와 문학(SK-넥센) 경기는 비로 취소됐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우리 팀이 자선사업하는 곳도 아니고….” 5월 테스트를 통과한 뒤 계약을 하러 KIA 구단 사무실을 찾은 최향남(41·사진)에게 구단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최향남을 바라보는 구단의 눈길은 냉정하다 못해 쌀쌀하기까지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최향남은 올해 한국 나이로 42세나 된 베테랑 투수다. 지난해 중반 팔꿈치가 아파 롯데에서 방출된 뒤 1년 넘게 실전 마운드에 서지도 못했다. 다른 구단에 테스트를 요청했지만 이를 받아들인 팀은 한 곳도 없었다. 더구나 KIA는 시즌 직전 프랜차이즈(KIA의 안방인 광주출신을 의미) 스타 이종범(42)을 은퇴시키면서 적지 않은 홍역을 치렀다. 세대 교체를 이유로 이종범을 버렸는데 이종범과 최향남은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빗발치는 팬들의 비난에 구단의 처지도 난처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은 단호했다.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최향남의 입단을 관철시켰다. 선 감독은 “투수와 타자는 다르다. 야수인 종범이는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투수는 1이닝만 제대로 던질 수 있어도 제 몫을 할 수 있다.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선 감독이 최향남과 의기투합한 장소는 방문경기 때 숙소에 있던 사우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난 선 감독과 오전 운동을 마치고 나오던 최향남이 우연히 사우나에서 만난 것이다. 선 감독은 최향남에게 “나도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해 봐서 외국에서 살아남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향남이 너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동안 절실함을 가졌을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 같은 감독의 신뢰는 최향남에게 큰 힘이 됐다. 최향남의 입단은 KIA의 팀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6월 중순 1군에 합류한 최향남은 리그 최고 수준의 마무리 투수로 우뚝 섰다. 그는 부상 중인 한기주와 왼손 타자에게 약점을 보이는 유동훈을 대신해 마무리 자리를 꿰찼다. 10일 현재 8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기간 3세이브와 2홀드를 거뒀다. 8일 넥센전은 최향남의 진가를 보여준 경기였다. 2-1로 앞선 9회말 등판한 최향남은 1이닝 동안 안타 1개를 맞았지만 3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시속 140km가 안 되는 직구였지만 공격적인 투구와 빠른 투구 템포는 상대 타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최향남이 입단하기 직전까지 하위권에 머물던 KIA는 뒷문이 안정되면서 6월 말 7연승을 거두는 등 급상승세를 타고 있다. 어느덧 5할 승률(33승 4무 33패)에도 복귀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선 감독의 ‘한 수’가 쓰러져 가던 KIA를 살렸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얼짱 골퍼’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최나연(25·SK텔레콤)은 원래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골프도 잘 친다.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그를 주변에서 가만 놔둘 리 없다. 자연스럽게 그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됐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최나연은 상금을 제외하고 스폰서 계약금으로만 10억 원을 넘게 받았다. 성적까지 좋아 인센티브 금액까지 합치면 20억 원 이상을 벌었다고 한다. 9일 US오픈 우승으로 최나연은 ‘메이저대회 챔피언’이라는 화려한 경력까지 추가했다. 세계 랭킹도 5위에서 2위까지 끌어올렸다. 그야말로 인기 상한가다. ○ 광고 효과 톡톡최나연은 화려한 색상의 옷을 즐긴다. 안 그래도 화려한 옷이 스폰서 로고로 인해 더욱 화려해 보인다. 최나연은 옷과 모자에 무려 5개 회사의 로고를 달고 다닌다. 그가 걷고, 스윙을 할 때마다 스폰서 로고도 같이 움직인다. 모자 중앙과 가슴 왼쪽, 왼팔에는 메인스폰서인 SK텔레콤의 로고가 있다. 모자 왼쪽에는 KDB대우증권의 로고를 달았고, 오른팔에는 스카이72(골프장)와 스릭슨(골프용품 제조업체)의 로고를 부착했다. 가슴 오른쪽에는 의류회사 헤지스의 로고인 왕관 쓴 개가 자리 잡고 있다.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도 스폰서들이 숨어 있다. 최나연은 공과 장갑, 골프화는 타이틀리스트 제품을 사용하기로 계약했다. 한국과 미국의 자생한방병원에서는 무료로 진료 및 치료를 받을 수 있고, 한국팜비오가 제공하는 건강보조식품을 먹는다. 많이 걸어야 하는 골프 선수의 특성상 깔창 전문회사인 피제이튠의 도움도 받는다. 재작년에는 수입차 업체인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와 계약해 한국에 머물 때는 이 회사가 제공하는 차를 이용한다. 그 대신 경기 중에는 이 자동차 업체의 로고가 박힌 캐디백을 사용한다. 최나연의 매니지먼트사인 세마스포츠마케팅의 한 관계자는 “최나연의 캐디백이 미국 선수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LPGA 선수 가운데는 이런 대우를 받는 선수가 거의 없어 최나연이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전했다. ○ 최나연 모시기 전쟁이전부터 최나연을 후원하고 싶어 하는 업체는 상당히 많았다. 한 화장품 업체와 골프용품 업체는 TV 광고를 제안하기도 했다. 최나연은 매니지먼트사와 상의해 대부분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세마 관계자는 “들어오는 대로 후원을 받고, CF를 찍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연예인이 아니라 운동선수라는 생각이 강하다. 자신의 이미지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거절하는 편”이라고 말했다.이번 US오픈 우승으로 최나연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지게 됐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이름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최나연을 모시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프로야구 경기를 앞둔 오후 6시. 서울 잠실야구장 주변은 요즘 인산인해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건 양복 차림의 회사원들이다. 이들은 맥주와 먹을거리를 챙긴 채 삼삼오오 경기장에 입장한다. ‘구도(球都)’ 부산 사직구장이나 인천 문학야구장 역시 가족, 연인이 즐기는 문화공간이자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 자리 잡았다. 두산 팬인 이상현 씨(47·서울 청담동)에게 잠실구장은 비즈니스 무대다. 중견 사업체를 경영하는 이 씨는 지난해 겨울 잠실구장 중앙 지정석에 앉을 수 있는 연간권 2장을 장당 250만 원을 주고 어렵게 구입했다. 중앙 지정석은 포수 뒤쪽에 위치해 야구장이 한눈에 보이는 ‘명당’이다. 이 씨는 “좋은 자리에서 야구를 보고 싶어 하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 예전에는 술이나 골프로 접대를 했지만 요즘은 야구장으로 모시고 온다. 3∼4시간 동안 함께 ‘치맥(치킨+맥주)’을 먹으며 응원을 하다 보면 쉽게 이야기가 풀린다”고 했다. 스포츠 마케팅 업체인 IB스포츠도 잠실구장 연간권을 구입했다. 송재우 이사는 “회사 특성상 표 청탁이 워낙 많아 연간 티켓을 구입했다. 고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전했다. ○ 입장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백순길 LG 스포츠단 단장은 요즘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귀한 손님 모시고 가니 좋은 좌석 좀 챙겨 달라”는 청탁을 받을 때마다 이를 정중히 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실구장 중앙 지정석, 일명 프리미엄석은 약 200석이다.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이를 원하는 사람들은 급증하는 추세여서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LG는 지난해까지 좌석당 280만 원을 받던 프리미엄석 연간권 가격을 올해부터 450만 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그럼에도 연간권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모두 팔렸다.잠실구장을 함께 홈으로 쓰는 두산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두산은 1990년대 초부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중앙 지정석을 연간권으로 판매했다. 2006년 80만 원이었던 좌석 가격은 올해 250만 원까지 올랐다. 두산은 120명 남짓한 기존 회원에서 결원이 생길 때만 연간권을 판매하는데 대기자 수가 200명이 넘는다. ○ “한번 앉아보면 못 떠난다” 중앙 지정석에 특별한 편의시설이 있는 건 아니다. 음식물을 놓는 테이블이 있고 늦게 입장해도 편하게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는 정도다. 그럼에도 지정석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회사원 한상균 씨(38)는 “포수 바로 뒷자리다 보니 투수가 던지는 구질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또 남들과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고 했다. LG 관계자는 “최근 들어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이나 벤처회사 사장 등 연간권 구입자 가운데 젊은층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이 밖에 문학구장을 홈으로 쓰는 SK는 8∼16명을 수용하는 스카이박스 36개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 대형 병원, 제약회사들이 접대를 위해 1300만∼3100만 원에 이르는 연간권을 아낌없이 구입했다.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바비큐존 역시 인기가 높다. 롯데의 홈인 사직구장의 중앙 지정석 연간권 500개(좌석당 161만7000원)는 판매 시작과 함께 모두 동이 났다. 700만 관중 시대를 앞둔 프로야구는 이제 단순히 경기를 즐기는 곳을 넘어 사교와 접대 장소로 진화하고 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2012 런던 올림픽 공식 엠블럼이 새겨진 과녁과 경기 상황을 생중계하는 대형 스크린, 그리고 변화무쌍한 바람까지. 3일 강원 원주시 제1군수지원사령부 연병장은 런던 올림픽 양궁 경기장인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했다. 사로 양편에는 관중 역할을 맡은 장병 700여 명이 나란히 앉아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이번 올림픽에서 사상 첫 4개 전 종목(남녀 개인전 및 단체전) 석권을 노리는 양궁 대표팀이 이곳에서 열린 최종 리허설에서 따끔한 ‘예방주사’를 맞았다. 이성진(27·전북도청)-최현주(28·창원시청)-기보배(24·광주광역시청)로 구성된 여자 대표팀과 임동현(26·청주시청)-김법민(21·배재대)-오진혁(31·현대제철)이 짝을 이룬 남자 대표팀은 각각 실업팀인 현대백화점과 현대제철을 상대로 올림픽 결승전을 상정한 단체전 경기를 치렀다. 실업팀이라고는 해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현대백화점에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등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딴 윤미진이 버티고 있었다. 여자 대표팀은 2엔드까지 112-103으로 크게 앞서며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했다. 하지만 3엔드 들어 이성진과 최현주가 연달아 7점과 5점을 쏘더니, 4엔드에서는 나란히 5점과 6점을 쏘며 무너졌다. 국가대표 선수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든 실수가 연달아 나왔다. 최종 스코어 206-209의 패배.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성진은 “군인들의 함성과 야유에 긴장을 많이 했다. 오늘 비록 지긴 했지만 남은 기간 컨디션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여자 양궁은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6회 연속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노다지 종목이다. 장영술 총감독은 “선수들이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든지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큰 대회를 앞두고 값진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남자 대표팀은 현대제철을 223-217로 꺾기는 했어도 평소 연습 때 기록하던 228∼230점 기록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다. 오선택 남자 대표팀 감독은 “남자 대표팀은 역대 최강의 전력이라고 할 만하다. 연습 때 기록을 실전에서도 쏘도록 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양궁 대표팀은 4일 실업팀들과의 경기를 더 치른 뒤 19일 런던으로 출국한다.원주=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연아입니다.”이 한마디에 모든 뜻이 담겨 있었다. 2일 오후 기자회견장인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국제스케이트장 2층 대회의실에 들어선 ‘피겨 여왕’ 김연아(22·고려대)는 이 같은 인사말로 입을 열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역대 최고점(228.56점)으로 금메달을 따낸 김연아는 지난해 4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을 마지막으로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대신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와 아이스쇼 등 대외활동과 그동안 밀렸던 학업에 충실했다. 그러나 1년 넘게 대회에 나서지 않으면서 은퇴설이 불거졌다. 소속사인 올댓스포츠가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오후에 김연아가 자신의 진로를 밝힐 것이라고 했을 때만 해도 은퇴와 선수 생활 연장에 대한 예상이 반반으로 갈렸다. 김연아의 최종 선택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태릉선수촌에서 어린 후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자극을 받고 새로운 동기를 갖게 된 결과였다. 그는 “최고에 대한 부담감으로 선수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후회하고 인생의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았다”며 현역 복귀 의사를 밝혔다. “이젠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새 출발을 하겠다. 팬 여러분도 후배 선수들과 똑같은 국가대표 김연아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 그는 이어 “2014년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겠다. 그곳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치 올림픽에서의 은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을 향한 새로운 도전의 의미도 있다”고 밝혔다.김연아가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정하면서 한국의 소치 겨울올림픽 전망도 밝아졌다. 그가 내년 세계선수권에서 10위 안에만 들면 한국은 2장의 올림픽 출전 티켓을 확보한다. 김연아는 “밴쿠버 때 (곽)민정이랑 함께 나갔던 것처럼 소치에도 후배와 함께 출전해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김연아는 세계선수권 출전에 필요한 ‘기준기록’을 통과하기 위해 이르면 올해 가을부터 국제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일본 골프, 홈에서 굴욕.’ 1일 끝난 한일 프로골프 대항전 밀리언야드컵에서 한국이 우승하자 일본의 한 골프 전문 사이트는 이 같은 제목으로 일본의 패배를 전했다. 이날 한국 남녀 골퍼들의 맹활약은 일본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한국 남자 골퍼들은 2년 연속 대항전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일본여자프로골프투어 니치이코 오픈에서는 전미정(30·진로저팬)이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 한국 남자 골프의 양대 산맥 최경주(42·SK텔레콤)와 양용은(40·KB금융그룹)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일본 투어 상금왕 배상문(26·캘러웨이)과 2010년 상금왕 김경태(26·신한금융그룹)도 출전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같은 기간 미국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AT&T 내셔널에 참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빈자리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한국과 일본 투어에서 뛰는 선수들로 구성된 10명의 한국 대표팀은 한일 프로골프 대항전 밀리언야드컵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은 1일 일본 나가사키 현 패시지 긴카이 아일랜드GC(파71·7066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싱글 스트로크 플레이에서 홍순상(31·SK텔레콤)과 류현우(31)가 승점 2점을 추가해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다. 3일간 열린 대회에서 한국은 11승 2무 7패를 기록해 종합점수 12 대 8로 일본을 꺾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으로 통산 전적에서도 3승 1패로 앞섰다. 이변이 없는 한 한국의 우승은 예정돼 있었다. 지난달 29일 열린 포섬(공 1개를 두 선수가 번갈아 치는 방식)에서 한국은 4승 1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30일 포볼(2인 1조로 각자 공을 쳐 좋은 점수를 팀 성적으로 삼는 방식)에서도 4승 1무를 기록하며 전날까지 중간 점수 8.5 대 1.5로 앞섰다. 이날 일대일로 맞붙는 싱글 스트로크 플레이 두 번째 경기에서 홍순상이 5언더파로 다니하라 히데토를 5타 차로 따돌렸고, 류현우가 5번째 경기에서 1언더파로 다카야마 다다히로를 2타 차로 누르면서 한국은 우승을 확정했다. 한국은 이날 3승 1무 6패를 기록했지만 우승컵을 들어올리기엔 충분했다. 일본은 PGA에서 뛰는 이시카와 료를 팀에 합류시키는 등 총력전을 펼쳤지만 한국의 벽을 넘진 못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